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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병신년 상반기, 남북 정상회담 개최해야/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열린세상] 병신년 상반기, 남북 정상회담 개최해야/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병신년 2016년을 사흘 앞둔 세모에 돌아보는 남북 관계는 우울하다. 이산가족 상봉 한 차례와 민간 교류협력 몇 차례, 이것이 올해 남북 간 교류협력 사업의 전부였다. 8월 한반도를 달군 ‘목함지뢰 사태’를 해소하는 ‘8·25 합의’가 있었지만, 남북 관계에는 여전히 찬바람이 쌩쌩 난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관계 개선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올해 여름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맘 때문이다. 남북 간 교류협력의 축적 없는 한반도는 늘 불안정하다. 남북 교류협력의 축적이 곧 평화다. 남북 교류협력이나 대북지원 사업 등에 대한 김정은 체제의 반응을 보면 확실히 과거와는 달라진 느낌이다. 김정일 시대만 해도 실리를 중요시했지만, 지금은 명분이나 자존심을 더 강조하는 듯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먼저 김정은 체제는 앞으로 30~40년 통치를 이어 가겠다는 구상이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임기가 후반으로 접어들었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임기 5년차인데도 이제 시작하는 느낌이다. 북한은 남북 관계를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주도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것이 명분이나 체면과 관련되는 것 같다. 30~40년 가겠다는 정권이 남북 관계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다른 모든 것도 꼬인다는 생각 때문에 관계를 주도하고 그 속에서 주민들에게 김정은의 리더십을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또 하나는 경제다. 북한 경제는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 체제는 남북 관계 전반의 영역 자체를 대외관계에서 ‘N분의1 수준’으로 낮추고 있다는 느낌이다. 과거처럼 남북 관계가 절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리도 중요하지만 명분 역시 중요하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북측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러니 상호 접점을 찾는 것이 구조적으로 힘들다. 병신년, 남북관계 전망은 명쾌하지 않다. 낙관할 수도 비관할 수도 없는 안개 자욱한 상황이다. 남북 관계가 대화로 흐름을 타면 급격히 관계 개선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하지만 대화 없이 대결 국면이 길어지면 북한의 저강도 무력시위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현재는 남북 당국 모두 여러 이유로 관계 유지는 하고 싶지만, 먼저 선물 보따리를 주고 싶지는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선 회담을 해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서로 주장만 되풀이할 수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도 좋지 않다. 미국 대선인 11월까지 오바마 정부는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 북핵 문제의 현상유지 수준을 넘어서지 않을 가능성 크다. 공화당에 공격받는 빌미를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은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 등 고강도 무력시위까진 아니어도 유엔의 제재를 피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심기를 건드리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 등의 군사적 행동을 간헐적으로 벌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비관적인 상황만은 아니다. 북한은 내년 5월 초 개최되는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남북 관계의 성과, 다시 말해 김정은 체제가 남북 관계를 주도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보여 주려 할 것이다. 총선 직후 북한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박근혜 정부도 남북 관계의 성과를 만들어 내고 국면을 바꾸려 할 가능성이 있다. 총선 직후 당 대회 전후 시점에 남북 당국이 뭔가 모멘텀을 만들 수 있느냐가 내년도 남북 관계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4월 중순 이후부터 5월 초 시점에서의 상황, 그 순간이 짧은 골든타임이다. 골든타임을 기점으로 남북 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교착국면의 돌파는 고위 당국자 간 회담을 징검다리로 하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한 통 큰 결단밖에 없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선물 보따리를 주고받는 일괄타결이 요구된다.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 전반이 충분히 다뤄져야 한다. 병신년 상반기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남북 관계 방향 제시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 [사설] 日 ‘위안부 특사’ 미래 향한 돌파구 만들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진 한·일 양국이 돌파구 마련에 나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에게 위안부 문제의 타결을 위한 연내 한국 방문을 전격 지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28일 서울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일본 외무상이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실무진들의 협의 내용을 토대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 담판을 짓게 된다. 올해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았지만 양국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악화된 상황이다. 양국 관계는 위안부 문제에서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한 발도 진전하지 못했다. 그동안 11차례 열린 양국 국장급 협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고 결국 장관급 협상에서 극적인 반전을 모색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외교책사로 알려진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과 일본 대사 출신인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 사이에서 협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도 분위기 조성에 애를 썼다. 우리 법원이 세월호 사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잘못 보도해 재판에 넘겨진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데 이어 헌법재판소는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헌법소원의 각하(却下)를 결정했다.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사안들이 일단 해결된 상황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쟁점은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여부였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이 종료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 절충선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면서 일본 정부가 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10억원 이상 규모의 새 기금을 설립하는 방안이나 아베 총리가 피해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책임’과 ‘사죄’를 언급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 총리의 사과와 피해자 보상이 담긴 ‘사사에 안(案)’을 토대로 절충점을 찾을 것이란 관측이다. 경색된 한·일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대일 외교 기본 원칙이다. 반면 일본 정부는 침략의 과거사를 미화하고 군사대국화의 길을 걸으면서 한국의 주장이 편협한 주장이라고 선전하는 이중적 태도를 고수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회담이 한·일 관계 개선을 강력하게 종용하고 있는 미국이나 국제적 시선을 의식해 책임 전가를 위한 외교의 장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베 총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강조해 왔다.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내려놓기 위해서는 가해자인 일본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정신으로 풀어 가는 것이 순리다. 한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과거사 그대로를 인정하고 일본군에 끌려가 온갖 고통을 겪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달라는 것이다. 한·일 양국은 ‘상생의 이웃’으로 공존공영의 길을 걸으며 동북아 평화 안정에 기여할 책무가 있다. 이를 위해 아베 총리는 편협된 시각에서 벗어나 더 큰 시선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 박원순 서울시장 “잠실에 제대로 된 돔구장 짓겠다”

     박원순(59) 서울시장이 ‘잠실 돔구장’에 대한 애착을 다시 드러냈다. 24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트위터에서 한 이용자가 박 시장에게 ‘야구에 대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자 박 시장은 “잠실야구장 제대로 된 돔구장으로 만들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이 이용자는 “야빠(야구팬의 인터넷 속어)로서 부탁드립니다. 축구의 반만큼이라도 야구도 관심 가져주셨음 합니다. 야구에 대해선 너무 안 유연하신 거 같다는 느낌. 저만의 느낌이었다면 죄송합니다”라고 남겼다.  서울시의 ‘잠실 돔구장’ 계획은 지난해 초부터 조금씩 언급됐다. 코엑스와 잠실운동장 일대를 종합개발한다는 구상을 구체화하면서 잠실 돔구장 건립이 거론됐다. 잠실야구장은 1982년에 준공돼 시설이 낡아 보수비만 해도 매년 수십억원이 들어가면서 신축 필요성이 제기되자 그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서울시는 현 잠실 학생체육관 위치에 돔구장을 신축하고, 현재 야구장은 돔구장이 완공될 때까지 유지한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재원 마련과 관련 기관 협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 교착 상태다.  이번 잠실 돔구장 발언은 한전부지 발언은 공식석상에서 이뤄진 것은 아닌데다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다만 잠실 돔구장 건설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점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씨줄날줄] 아베의 총리 3연임/박홍기 논설위원

    아베 신조 일본 자민당 의원이 2012년 9월 12일 총재직에 출마했다. 국민은 깜짝 놀랐다. 2009년 9월 총리직을 자진 사퇴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재로 당선됐다. 1955년 창당, 이른바 ‘55년 체제’로 불리는 자민당 역사상 퇴진했던 총재가 다시 선출되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베 총재는 그해 12월 16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민주당에 빼앗겼던 정권을 3년 만에 되찾았다. 아베 총재는 총리에 올랐다. 두 번째다. 집권당 총재가 총리직을 겸하는 까닭에서다.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이다. 아베 총재는 2006년 9월 20일 총리로 취임했다. 첫 번째다. 당시 ‘전후세대의 첫 총리, 최연소 총리’로 갈채를 받았다. 전후체제의 탈각이라는 기치 아래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에 전념했다. 전범국가이자 패전국으로 낙인찍힌 역사를 덮고 새로운 일본을 일구려 했다. 평화헌법의 개정에도 나섰다. 이듬해 9월 12월 저녁 느닷없이 총리직 사임을 발표했다. “국면 전환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취임 1년 만이다. 테러특별법을 연장할 수 없는 정국을 이유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건강 악화와 함께 파벌들의 밀실 합의도 크게 작용했다. 이후 “무책임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명문 정치가의 도련님인 봇짱” 등의 질타가 쏟아졌다. 두 번째 총리직을 맡은 아베 총리는 첫 번째 때와는 전혀 달랐다. 자신감과 함께 강한 추진력, 돌파력을 발휘했다. 일본 경제를 장기 침체에서 탈피시키기 위한 아베노믹스가 대표적인 정책이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와 서비스의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디플레이션과 엔고 탈출을 위해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화폐를 무제한 찍어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안보법안’도 개정했다.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바꿨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심지어 미국과의 과거사에 대해 ‘자학사관’이라는 입장 아래 멋대로 해석, 대응했다. 노골적인 우경화 정책이다. 첫 번째 총리 시절 못다 했던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 강한 일본’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9월 자민당 총재에 무투표로 재선됐다. 집권 2기를 무혈 입성으로 맞았다. 정치적 변수가 없는 한 2018년 9월까지 3년 임기는 보장받은 셈이다. 아베 총리의 현재 권력은 사실상 무소불위다. 자민당의 파벌연합체적 성격이 옅어지면서 1강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하토야마 구니오 전 총무상이 “총리직 3연임”을 꺼냈다. “임기 3년을 훌륭히 수행하면 당규를 고쳐 한 번 더 총리직을 맡기는 게 좋다”며 총대를 멘 것이다. 총재 3연임은 당규로 금지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한다면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다. 최장수 총리다. 문제는 한국이다. 자칫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역사를 둘러싼 한·일 교착 상태가 재임 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커서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깜깜이 선거운동 현실화되나

    내년 20대 총선 예비후보등록일(15일)을 이틀 앞둔 13일, 여야의 선거구 획정안 협상은 여전히 교착 상태다. 15일부터 예비후보들은 현행 선거구를 기준으로 후보등록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행 선거구의 법적 효력은 올해 말까지여서 ‘깜깜이 선거운동’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달 말까지도 선거구 획정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현행 선거구는 법적 효력을 잃게 된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의 탈당 변수까지 더해져 선거 협상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어제(12일) 여야 지도부 2+2 회동에서 선거구 협상이 결렬됐다”면서 “예비후보 등록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정치 신인과 국민들로부터 또다시 비판받게 됐다”고 말했다. 협상과정에서 새누리당은 ‘현행 지역구 246석-비례대표 54석 유지’안과 ‘지역구 253석으로 확대-비례대표 47석으로 축소’안을 본회의에서 비공개 투표에 부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비례성 강화’를 전제로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거듭 주장했다. 새정치연합은 정당득표율의 50%에 해당하는 의석 수를 보장하는 균형의석제(이병석 정개특위 위원장 중재안)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새누리당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용남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이병석안은 사실상 해당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새정치연합 안 의원의 탈당 변수까지 더해졌다. 안 의원은 추가 탈당으로 현역 의원 20명만 확보하면 독자적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해 협상의 한 축으로 참여할 수 있다. 양자 협상이 3자 협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안 의원이 호남 정치세력과 연대하면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안에,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독자세력 구축에 나서면 ‘이병석안’에 기울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정의화 국회의장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언급한 15일까지 여야의 극적인 합의가 없으면, 정 의장이 중재안을 내놓고 직권상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예비후보등록자들은 현행 선거구를 기준으로 후보등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연말까지 선거구 획정이 불발되면 후보등록도 무효가 되고 선거운동도 중단해야 한다. 현역 의원들은 선거운동을 계속하는 반면 정치 신인이나 원외 인사들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 신인이나 원외 인사들은 행정소송인 선거무효소송 또는 여야 정당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열린세상] 신뢰와 남북관계/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

    [열린세상] 신뢰와 남북관계/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

    8·25 합의 이후 처음 열리는 남북 당국회담은 박근혜 정부의 안보, 외교, 대북정책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인 ‘신뢰’의 가시화라고 볼 수 있다. ‘신뢰’와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서로 대화하고, 약속을 지키며, 호혜적으로 교류·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상대방과의 신뢰를 축적해 나가자는 것이다. 즉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신뢰 형성이 상호 이익이 된다는 점을 확신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북한의 변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신뢰’라고 했을 때 몇 가지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신뢰’는 ‘믿음’ 및 ‘확신’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둘째, 신뢰가 쌍방향으로 작동되고 있는가. 셋째, 신뢰의 중요한 기본 목표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위협을 차단하는 것인데, 목표와 수단이 제대로 배열되어 있는가. 마지막으로, 우리 내부의 신뢰, 즉 정부와 국민 간의 신뢰, 정부와 국회 간의 신뢰, 여당과 야당 간의 신뢰, 부처 간의 신뢰 등이 남북 간의 신뢰를 형성해 가는 데 충분한 동력을 주고 있는가 등이다. ‘믿음’은 자신이 믿는 것을 ‘옳다’고 추정하지만, 그 결과는 알지 못하는 상태인데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상충하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 간의 신뢰 형성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기대한다는 점이다. 규범 등을 통해 강제적으로 신뢰를 형성하는 ‘확신’은 군사연습 통보, 정보교환, 상호방문, 사찰, 합동군사훈련 등의 조치가 수반되는 신뢰구축조치(CBM)를 통해 상대방의 미래 행동을 협력으로 나가게 하거나 최소한 위협이 되지 않는 상태로 만드는 것인데, 북한과의 신뢰구축 조치는 남북관계가 상당한 정도 진전됐을 때 가능하다는 ‘믿음’에 젖어 있다.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변화를 강제하는 ‘확신’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신뢰’는 규범만큼 강한 규제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차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상대방에게 나의 기대를 벗어나는 행위를 억제할 수 있고, 상대의 행위를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상대방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뢰’의 개념 속에는 각자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옳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신뢰를 만들어 나가는데 상대방의 행동 변화에만 초점을 둔 일방향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남북 사이에 상대방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지속되는 한, 긴 과정이라는 시간을 통해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가정이다. 당국회담에서 양측이 일방향으로 내가 원하는 이슈만 던져 상대방에게 수용 여부만을 강제한다면 8·25 합의 이후 남북이 새롭게 지향하는 당국회담 개최 의의는 퇴색하게 된다. 장기간 회담이 교착되어 왔던 이유를 남북 모두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회담장에서 또 반복한다면 식상한 회담이 될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악순환 되풀이로 끝날 수 있다. 회담을 통해 남북 모두가 ‘윈윈’ 하는 결과에 이를 때 당국회담의 개최 의의를 찾을 뿐만 아니라 ‘신뢰’가 가동된다고 볼 수 있다. ‘신뢰’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방에 대한 불확실성을 얼마만큼 줄일 수 있는지이다. 비교적 합의에 이르기 쉬운 이슈, 즉 교류와 경제 협력 및 인도주의 사안에만 회담이 집중된다면 지난 20년 넘는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불안정이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볼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상대방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줄이기 위한 남북군사회담을 빠른 시일 내에 재개함으로써 상호 불안정 요소를 해소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북 간 신뢰가 형성되기 위한 동력은 바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로부터 나온다. 남북 간의 극심한 경제력 격차와 이와는 무관한 북한의 도발 및 위협 증대 등 남북관계의 비대칭성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접근방법 간의 충돌과 의견 대립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믿음과 신뢰가 큰 힘으로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 간의 신뢰 형성은 남한만의 노력으로, 정부만의 노력으로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
  • ‘신흥국 대명사’ 브라질의 굴욕

    ‘신흥국의 선두주자’로 꼽히던 브라질이 굴욕을 당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브라질의 국가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하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무디스는 9일(현지시간) “내년에도 브라질의 경제나 재정이 호전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며 브라질의 신용등급을 투자등급인 ‘Baa3’에서 투기등급인 ‘Ba1’으로 강등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블룸버그 등이 보도했다. 무디스는 “브라질의 재정과 경제활동 지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만큼 언제 바닥을 칠지 명확한 신호가 나오지 않고 있다”면서 “정치적 교착 상태가 재정 조정조치 시행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강등 검토 배경을 설명했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하향 검토기간은 90일이다. 무디스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이어 브라질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하면 이는 브라질 자산에 대한 대대적인 헐값 매각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연금 등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무디스와 S&P, 피치 등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2곳 이상이 신용등급을 투기로 강등하면 해당 자산에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다. S&P는 지난 9월 브라질의 신용등급을 투자등급인 ‘BBB-’에서 투기등급인 ‘BB+’로 강등한 바 있다. 브라질 경제는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등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졌다. 물가는 10% 이상 치솟고 실업률도 8%에 육박하고 있다. 주요 수출품인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는 데다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지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4.5%(전 분기 대비 -1.7%)를 기록해 1996년 이후 최악이다. 이에 따라 브라질의 올해 성장 전망치는 -3%에서 -3.7%, 내년 전망치도 -1%에서 -2.5%로 각각 떨어졌다. ‘경제공황’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경제난에다 국영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부패 스캔들 연루 의혹으로 탄핵 위기에 내몰렸다. 최근 페트로브라스 파문이 최대 투자은행 BTG팩추얼로 확산돼 브라질 정·재계를 뒤흔들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열린세상] 반기문 총장 평양행, 빠를수록 좋다/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열린세상] 반기문 총장 평양행, 빠를수록 좋다/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 23일 본인이 직접 “평양행 일정을 조율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얘기한 게 최근 소식이다. 반 총장이 뉴욕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후 한 인터뷰에서였다. 반 총장은 이번 방북 추진이 최근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유엔에 두 차례 방문했을 때 논의됐고, 북한으로부터 긍정적인 신호가 와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애초 지난 15일 한국의 한 통신사가 11월 셋째 주 전격 방북이라 보도한 후 빠른 평양행이 예상됐다는 점에서 그로부터 보름이 다 된 지금도 일정 조율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아쉽다. 반 총장은 취임 후 여러 차례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해 방북할 의사가 있음을 밝혀 왔다. 유엔 사무총장의 평양행, 그것도 한국인 사무총장의 방북이 가져다줄 긍정적인 파장은 상당히 크다. 실제 반 총장의 방북은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관계 개선에 많은 긍정적인 흐름을 만들 수 있다. 북핵 문제의 해법이 난망하고 8·25 합의 이후 지지부진한 남북 관계의 돌파구 마련이 절실한 지금 반 총장의 평양행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 총장의 방북이 빨리 이뤄지길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 총장의 평양행은 북핵 문제의 동력 찾기를 위해 시급하다. 2008년 12월 이후 무려 7년 동안 6자회담은 한 차례도 개최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3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실험 등으로 북한의 핵 능력은 보다 고도화하고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틀에 매여 꼼짝달싹도 하지 않고 있다. 중국 시진핑 지도부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적극적 행보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북한의 선 핵포기에 포박돼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북핵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금 시점에서 반 총장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북핵 문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반 총장의 평양행이 급하다. 지난 8월 ‘목함지뢰 사태’에서 목도했듯이 하나의 사건으로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촉발될 수 있다. 8·25 합의로 관계 개선을 향한 발걸음을 디뎠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와 김 제1위원장 체제가 남북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는 않고 있다. 서로 샅바싸움 속에 공을 넘기는 지루한 남북 관계다. 이 시점에서 반 총장의 평양행은 남북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서로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가 평양 방문 후 서울에 와 박 대통령에게 김 제1위원장의 의중을 전달하고, 박 대통령의 남북 관계 개선 입장이 김 제1위원장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박근혜 정부 임기가 2년쯤 남은 상황에서 2016년 상반기까지가 남북 관계 개선의 이른바 ‘골든타임’이다. 그 후는 임기 말 정부가 적극적인 남북 관계 개선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 김 제1위원장 입장에서도 2016년 5월 초로 예정된 7차 노동당 대회에서 연설문에 남북 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성과를 담아야 할 것이다. 이 골든타임에 반 총장이 방북하고, 남북한이 당국 간 회담을 개최하고,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단계적인 남북 관계 개선 ‘그랜드 프로그램’이 작동하길 바란다. 반 총장의 평양행이 늦어지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파리 테러 사태로 세계가 뒤숭숭한 가운데, 유엔 사무총장이 이 문제에 대한 바쁜 소임이 있다. 북핵 문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해소 문제, 북한 인권문제 등 평양에서 김 제1위원장과 다룰 의제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있다. 국내 정치적 상황이 반 총장을 압박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총장의 방북은 기정사실이다. 그의 평양행이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관계 개선에 촉매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빠른 방북을 위해 북한 당국과 유엔이 조율을 서둘러야 할 때다. 반 총장의 평양행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개선의 노둣돌이 되길 기대한다.
  • 南 “만나자” 두달 만에 응답한 北… 남북관계 닫힌 門 열리나

    우리 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당국회담을 위한 실무 접촉을 제의했음에도 두 달 가까이 응답하지 않던 북한이 오는 26일 실무 접촉을 하자고 20일 역제의함에 따라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인민 경제 향상을 강조하는 북한이 내년 5월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남북 관계를 포함한 대외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기조를 재확인하는 한편 한반도 정세 안정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양측이 당국회담의 의제를 놓고 진통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이번 접촉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경제 발전 시급… 국제사회와 소통 필요성 북한은 최근 부쩍 남한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대화 의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모양새를 취해 왔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를 북한의 ‘매력 공세’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타진이 대표적이다. 북한으로서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된 상황에서 반 총장의 방북이 부담도 있지만 유엔 수장을 초청할 만큼 국제사회에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선전하기에는 효과적이다. 특히 북한은 김정은 체제 출범 직후 제3차 핵실험, 장성택 처형 등으로 전통적인 ‘혈맹’이었던 중국과의 관계까지 악화되며 대외적으로는 고립 상태였다. 그러다 8·25 남북 합의 이후 남북 관계 개선의 ‘모멘텀’이 형성됐고 지난달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즈음해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방북하면서 북·중 관계도 복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미국을 상대로는 평화협정 논의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남북 민간 교류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의 대외정책 행보는 내년 5월 예정된 제7차 북한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업적 쌓기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 안정의 주도권을 북한이 쥐고 있으며 국제사회와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는 모습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의미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인민 생활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핵과 경제 발전 병진 노선이라는 양쪽 모두를 함께 달성할 수 없다는 ‘딜레마’를 인식한 것”이라며 “8·25 합의 이후 미국을 비롯해 대외 관계를 전반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기조를 재확인했다”고 분석했다. 장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반 총장의 방북을 추진하는 가운데 반 총장이라는 제3자의 입을 통하지 않고도 남북 관계 개선을 주도하겠다는 의미”라며 “7차 당 대회를 앞둔 가운데 국제적 위상을 높인다는 정치적 목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당국회담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반 총장의 방북 부담도 덜어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내년 5월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자신들이 주도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진단했다. 이번 실무 접촉은 전반적으로 남북 양측이 상대방의 8·25 합의 이행과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방향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실무 접촉에서 당국회담의 시기와 장소, 회담 대표의 급, 의제 등을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국회담에서 논의될 남북 현안으로는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경원선 복원 및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건립, 5·24 대북 제재 조치 해제 문제 등이 거론된다. 특히 북한은 실무 접촉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비롯한 ‘최고 존엄(김정은)’에 대한 비방 자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등을 거론할 가능성이 크다. ●8·25합의 이행 등 관계 개선 방향타 될 듯 하지만 이번 실무 접촉이 당국회담을 거쳐 남북 관계 개선의 흐름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남측은 북한에 핵과 미사일 도발 중단을 요구하고, 북측은 민간의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시킬 것과 내년부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양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문제를 놓고 상대편이 얼마나 적극적이냐를 탐색할 것인 만큼 대표단이 본국으로부터 협상의 전권을 얼마나 위임받아 회담에 임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사설] 당국회담 성사로 남북 관계 돌파구 마련해야

    당국회담을 위한 남북 간 실무접촉이 오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판문각에서 열린다. 9월 21일과 24일, 10월 30일 세 차례에 걸친 우리 정부의 당국회담 예비접촉 제안에 이렇다 저렇다 대답이 없던 북측이 최종 제안 두 달여 만에 호응한 데 따른 것이다. 북측은 어제 오전 당국회담 실무접촉을 제안하는 내용의 전화통지문을 보낸 뒤 이례적으로 즉각 관영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이에 우리 측은 환영의 뜻을 밝힌 뒤 오후에 동의한다고 회신했다. 실무접촉이 원만하게 진행되고, 종국적으로는 당국회담의 결실까지 맺어 남북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당국회담 개최는 북한의 지뢰 도발로 인한 남북 간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지난 8월 우리 측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43시간 동안의 마라톤 협상 끝에 타결한 이른바 ‘8·25 합의’의 맨 첫 번째 항목이다. 당시 합의 사항 중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은 이미 성사됐고, 다양한 분야의 민간 교류 활성화 역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당국회담만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했다. 비록 많이 늦어졌지만 남북이 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 개최의 첫발을 떼게 된 것은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우리 측은 홍 장관과 김 부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당국회담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막중한 목적을 띤 이번 회담의 성격과 비중을 고려하면 남북의 ‘책임 있는 당국자’들인 홍 장관과 김 부장이 대좌하는 것이 격(格)과 급(級)에 맞는다고 본다. 실무접촉에서 남북이 원만한 합의를 도출하길 기대한다. 의제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및 서신 교환 ▲금강산 관광 재개 ▲경의선 복원 및 비무장지대 세계생태평화공원 건립 ▲5·24 대북 제재 해제 등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측 계산과 우리 측 기대 사이의 간극이 클 것이다. 하지만 남북이 선이후난(先易後難·쉬운 것부터 처리하고, 어려운 것은 나중에 처리한다) 또는 구동존이(求同存異·공통점을 구하고 차이점은 놔둔다)의 자세로 접근한다면 간극도 좁혀질 수 있다. 리충복 북한 적십자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추석 계기 이산 상봉 때 서신 교환 등을 언급했는데 북측은 그 진정성을 이번 당국회담에서 보여 줘야 할 것이다. 북측의 진정성이 확인돼 이산가족 문제가 풀린다면 금강산 관광 재개 등도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여러 차례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지 않았는가. 남북 관계는 전략적·전술적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길 바라지만 북측이 남북 관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번 실무접촉과 당국회담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남북 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게다가 유엔 총회 제3위원회가 어제 또다시 대북 인권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북한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북한이 살길은 오로지 개방뿐이다. 그 실마리를 이번 당국회담에서 찾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실무접촉을 통해 당국회담을 원만히 성사시켜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 [사설] 여야 의원정수 확대 꿈도 꾸지 말라

    어제 여야는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안을 절충하느라 온종일 진통을 겪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는 법정 시한 하루 전날까지 극심한 산고를 치른 셈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스스로 위법적 상황을 자초한 것도 문제이려니와 협상의 교착을 의원 수를 늘려 풀겠다면 염치없는 일이다. 여야는 의원 정수 확대는 안 된다는 데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졌음을 직시하기 바란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선거구 획정을 지각 처리하는 행태는 정치권의 고질이었다. 이번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종전엔 일부 지역구만 조정됐기에 행정상 큰 문제가 없었지만, 올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현행 선거구 구역표 전체가 무효가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각한 상황으로 몰리게 된 근본 원인은 여야의 당략 탓이다. 여야가 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라는 게 국민의 뜻임을 받아들였다면 타협이 불가능하진 않았을 터다. 피차 농어촌 선거구 수 축소를 최소화하기로 공감했다면 현행 지역구 수(246개)와 비례대표 의석 수(54석)를 적정하게 조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헌재는 지난해 선거구별 인구편차 3대1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대1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농어촌 선거구 축소가 불가피한데, 지역 대표성의 약화를 막기 위해 축소 폭을 줄이려면 그만큼 비례대표를 줄이면 되는 것이다. 물론 지역구도 완화를 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장도 명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군소 지역당이 난립하는 게 우리 정치 풍토에 적합한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비례대표를 소폭으로 줄인다면 석패율제 도입 등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제3의 대안 모색도 가능하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며칠 전 이병석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의 중재안마저 거부했다. 현행 의석 수를 유지하면서 지역구를 일정 부분 늘리고,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에 따른 의석 수의 과반을 보장해 주는 ‘균형 의석’으로 변환시켜 여야 간 이해를 절충하는 안이었다. 이처럼 결국 야권이 한사코 비례대표를 단 몇 석도 줄이지 못하겠다니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꼼수가 고개를 드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여야는 의원 기득권 확대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의원 수가 모자라 국회가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하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보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과 일본 등은 우리보다 의원 1인당 인구가 훨씬 많지 않은가. 농어촌 지역 대표성 유지나 직능 전문성을 살린 비례대표의 필요성도 고려해야겠지만, 유권자의 헌법상 평등권 보장을 위한 인구 등가성 원칙을 지키는 것을 우선할 순 없다. 헌재가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2대1로 정했다면 그에 따라 합리적으로 지역구부터 조정하는 게 먼저라는 얘기다. 비례대표가 직능 전문성보다는 여야 당 지도부의 낙하산식 전략공천의 방편으로 활용된 측면이 강했던 게 저간의 사정이 아닌가. 그렇다면 비례대표를 조금도 줄이지 말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별반 설득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외교전문가 이규형 삼성경제硏 고문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외교전문가 이규형 삼성경제硏 고문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9월 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같은 달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미·중 정상회담, 지난달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계기로 권력 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 같은 달 16일 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 이달 1~2일 한·중·일 3국 정상회의 등 굵직굵직한 외교적 이벤트가 잇따라 열렸다. 특히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북핵 문제 등 동북아 외교안보 현안을 비롯해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 현안을 집중 논의했다. 주중·주러 대사를 지낸 이규형(64) 삼성경제연구소 고문을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나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및 현안에 대해 들어 봤다. →역사 인식과 영유권 문제 등으로 공전을 거듭하던 한·중·일 정상회의가 재개됐다. 의미와 성과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3년 반 만에 3국 정상회의가 재개된 데 의의가 있다.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성과를 얻은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간 회의를 열 수 없을 정도의 악화된 관계에서 최소한 같이 만나 여러 주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한 뒤, 그중 합의 내용을 공동선언문으로 만들어 낸 3국 정부의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 특히 회의를 제안해 성공시킨 주최국 한국의 역할은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구체적인 성과는 역시 경제 부문의 협력증진 모색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3국 간 FTA 협상을 가속화하겠다는 것이 눈에 띈다. 3국 정상회의가 정체돼 있는 동안 한·중 FTA가 서명돼 발효를 앞두고 있고, 일본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타결했기 때문에 3국이 직접은 아니더라도 미국이나 동남아시아를 매개로 서로 느슨한 연계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직접적인 경제 협력의 틀을 공고히 하는 데 3국 정부가 거듭 노력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도 의미가 있다. →3국 정상회의에서 한·중 양자회담의 결실을 꼽는다면.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지속적으로 비약적 발전을 해 온 두 나라 경제·통상 관계의 내실화를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회담으로 기록될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한국 쌀과 삼계탕 수출이 가능하게 된 점, 한·중 FTA 조속 발효를 위한 상호 노력, 상하이에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 개설 합의, 특히 우리 정부가 중국 채권시장에서 위안화 표시 국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된 것이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재개된 한·일 정상회담은 의미도 있었지만 한계 역시 드러냈다. -박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에 정상회담이 처음 열리게 된 것에 의미를 둘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양국이 과연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이룩해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시된다. 위안부 문제의 타결을 위해 협상을 가속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하지만, 과연 어떤 내용의 해결 방안이 빠른 시일 내에 타협될지 미지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학자의 견해대로 이번 회담은 양국 정상 간 대화의 시발점으로 앞으로 계속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해 주었다는 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기념식 참석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참석이 여러 가지 요인들을 감안해 오랜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박 대통령의 참석을 어렵게 결정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박 대통령이 참석하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항일전쟁 승전 기념에 항일 공동투쟁 경험이 있는 한국의 축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가원수가 참석한 것은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 같은 입장을 미국 측에 잘 설명해야 한다. →북한에서는 전승절 행사에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갔다.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내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고 해도 아마 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나라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방중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김정은으로서는 베이징을 방문하기는 해야 한다.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안정됐다고 생각하면 내년 중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 북·중 관계에 그런 조짐이 보인다. 김정은이 베이징에 가면 북·중 관계 회복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지난 7월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실험이 시도됐다. 중국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에서 한·중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두 나라 관계 발전을 논의하는 ‘1.5트랙 대화체제’의 출범에 대표로 참석했는데. -지난해 7월 시진핑 주석이 방한해 박 대통령과 합의한 지 1년 만에 열렸다. 한·중이 맞닥뜨릴 새로운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선 과거와 같이 소수 정책 결정자의 역량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이젠 민간의 참신한 아이디어 제공이 필수다. 그런 만큼 ‘1.5트랙 대화’는 정부 간 대화와 민간 대화의 장점을 모두 흡수하는, 다시 말해 정부의 추진력에 민간의 유연함을 더하자는 것이 목표다. 1.5트랙 대화의 구성은 두 나라 외교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전직 고위 관리와 외교·안보·경제·언론·문화·학술 분야의 민간 전문가 등 각각 10명씩으로 이뤄졌다. →일각에서는 ‘중국 경사론(傾斜論)’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전에 비해 국가 지도자 회동 등 중국과의 접촉이 많아 그런 인상을 주는 것 같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2년 반 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여섯 번이나 만났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아주 가깝다 보니 1년 동안 두 나라에서 1000만명이 오가는 등 경제 및 인적 교류가 매우 많다. 지난해 양국 간의 교역량도 2354억 달러(약 268조원)에 이른다. 미국(980억 달러)과 일본(950억 달러)보다 2배 훌쩍 뛰어넘는다. 특히 북핵이나 탈북 등 북한에서 발생한 문제, 동북아 외교안보 현안 등을 놓고 한·중 간에 자주 만나다 보니 가까운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이런 실상을 알면 ‘중국 경사론’은 전혀 타당한 지적이 아니다.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선 중국이 최근 들어 부쩍 ‘힘자랑’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중국의 국력이 세졌는데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새로운 환경 속에 자기 능력에 맞는 행동을 할 때(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를 말한다. 중국이 국력에 상응하는 역할, 즉 인류 번영에 지원한다면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올해 말 출범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합목적적으로 운용된다는 평가를 받느냐가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7%를 유지하던 중국 경제성장률이 3분기에 6.9%로 떨어지면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0조 달러를 넘는 나라가 6.9% 성장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물론 서방에서 중국 통계가 과장됐다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설령 성장률이 6.5%라고 하더라도 일자리 창출 등에 별 문제가 없고 새로운 경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중속(中速)성장을 목표로 하는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부동산 및 지방정부 부채 등의 문제가 있지만 이를 잘 극복해 연착륙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어떻게 평가하나. -중국 지도자들 못지않게 미국 지도자들과도 많이 만나 한·미 관계를 튼튼히 했다. 지금 한·미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나. 주한 미군 분담금 문제도 원만히 해결됐고 원자력 협정, 미사일 사거리 조정 문제 등도 타결됐다. 특히 무기 수입 때 미국에서 사들여 오고 있다. 한·미 간에는 문제가 없다. 미국 입장에서 동맹은 일본처럼 ‘유착’돼야 한다고 보고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한·미 관계를 아베의 미·일 관계처럼 하지 못하는 데 대해 조바심을 갖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일제 식민지, 남북 분단 및 대치 상황, 중국과 같은 이머징(신흥국) 국가 등 한국이 처한 위치가 일본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을 통해 미국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신흥국과 남북 분단 등의 다른 요소를 갖고 있는 데서 양국 간에 오는 간극이 있다. 우리가 처한 이런 위치를 미국 측에 자꾸 거론해 설득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관계가 해빙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도 남북 관계뿐 아니라 대외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다. 남북 관계의 교착으로 한·미 관계 및 한·중 관계 등 우리 외교에도 제약이 많다. 남북 관계는 정권적 차원이 아니라 민족 화합적 차원에서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북한의 도발에는 마땅히 응징하는 스탠스도 있어야 한다. →지난달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협력증진 방안’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어떤 얘기들이 오갔나.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권력 기반이 공고화한 것으로 평가했다. 김정은 정권의 3년 동안 권력 공고화 작업이 끝나 남북 관계, 북·중 관계 등을 정상적인 방향으로 가져가려고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모처럼 남북이 만나 이산가족 상봉 등이 담긴 8·25 남북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지적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이규형 고문은… ‘외교관의 꽃’ 주중·주러 대사 역임 40년 가까이 현장을 누벼 온 외교관 출신이다.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74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에 들어간 뒤 유엔과장, 주유엔 공사 참사관, 국제기구정책관, 주중 공사, 방글라데시 대사, 대변인, 제2차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외교관의 꽃’인 4강 대사를 두 번(주중·주러)이나 지냈다. 주중 대사 시절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경극(京劇) 외교’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1999년부터 3년간 주중 공사로 근무할 때 주재국 중국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경극을 배우기 시작했다. 노래와 춤과 연극이 혼합돼 있는 경극은 고음이 많아 중국인들도 배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경극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2011년 대사로 부임한 이후에도 틈나는 대로 실력을 갈고 닦았다. 제갈량이 눈물을 머금고 심복 마속의 목을 베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과정이 묘사된 ‘실가정’(失街亭) 등 경극 10곡을 ‘완창’해 낼 정도로 실력이 빼어나다. 이 덕분에 어렵고도 미묘한 중국과의 외교전에서 ‘필살기’로 활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외교 당국을 포함한 각종 모임에서 경극을 한 대목 들려주면 아무리 어려운 자리도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는 것이다. 이 고문은 1985년부터 4년간 주일 1등서기관으로 근무했으며, 2007년부터 3년간 주러 대사를 지내는 등 한반도 주변 4강 외교에 정통하다.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할 때 유엔과장으로 실무를 담당했다. 대변인 시절이던 2005년 첫 시집인 ‘때로는 마음 가득한’을 펴낸 데 이어 2009년에도 ‘또다시 떠나면서’라는 제목의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 [北 사상최대 열병식] 우의·교류 내세운 시진핑…北비핵화·관계 개선 강조

    [北 사상최대 열병식] 우의·교류 내세운 시진핑…北비핵화·관계 개선 강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축전과 친서는 물론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이라는 ‘메신저’를 보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북·중 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중국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강한 신호를 보냈다.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메시지가 ‘우의’ ‘교류’ ‘비핵화’라는 3대 키워드에 응축돼 있다고 분석했다. 베이징의 고위 외교 소식통은 11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시 주석이 가장 강조한 것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라면서 “전통적 우의를 기반으로 교착 국면을 돌파한 뒤 새로운 국제 정세에 맞는 관계를 구축하려는 의지가 읽힌다”고 분석했다. 자신의 중국어 서적 출판기념회를 위해 베이징에 온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시 주석이 북·중 관계 개선을 위해 상당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면서 “한국은 중국이 북한을 고립시키길 원하지 말고 둘 사이의 접근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시 주석은 축전과 친서에서 선대 지도자들이 쌓아 온 ‘전통 우의’가 양국의 공통된 자산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류 상무위원도 김 제1위원장과의 회담을 마친 뒤 “양측이 ‘전통 우의’를 계승, 추진하는 것에 대해 광범위한 합의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특히 “김 제1위원장이 앞선 두 영도자의 유지를 받들어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에서 큰 진보를 이루고 있다”며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 주석은 또 고위급 교류를 복원할 뜻이 있음을 북한 측에 분명히 밝혔다. 류 상무위원은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와의 회담에서 “양국은 마땅히 ‘전통 계승, 미래 지향, 선린 우호, 협력 강화’라는 16자 방침에 근거해 고위층의 정치적 소통을 강화하고 경제 무역 등에서의 실속 있는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방북단에 외교·군사 정책의 핵심 인물인 쑹타오(宋濤) 당 중앙외사판공실 상무부주임과 왕자루이(王家瑞) 대외연락부장이 참여한 것도 고위급 교류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읽힌다. 고위급 교류가 재개되면 자연스럽게 경제 교류가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의 중국 방문 가능성이 커졌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고 현 상태만 유지하더라도 중국은 ‘북한에 인센티브를 주자’는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커졌고, 김정은이 지금 상태에서 방중을 원한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 주석은 우호 관계 및 교류 회복의 근본적인 진전을 위해선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류 상무위원은 김 제1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안정 실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등 한반도 정책의 3원칙을 견지하겠다”면서 “6자 회담이 이른 시일 안에 재개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제1위원장은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상하이사회과학원 국제연구소 류밍 소장은 “시 주석이 북한에 큰 숙제를 던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봉황TV 평론가인 후량량 교수는 “북한의 태도 변화가 관건”이라면서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하면 극적인 반전이 펼쳐질 것이지만 북한이 핵 주권 국가를 선언한 상황이어서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우의·교류 내세운 시진핑 北비핵화·관계 개선 강조

    우의·교류 내세운 시진핑 北비핵화·관계 개선 강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축전과 친서는 물론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이라는 ‘메신저’를 보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북·중 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중국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강한 신호를 보냈다.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메시지가 ‘우의’ ‘교류’ ‘비핵화’라는 3대 키워드에 응축돼 있다고 분석했다. 베이징의 고위 외교 소식통은 11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시 주석이 가장 강조한 것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라면서 “전통적 우의를 기반으로 교착 국면을 돌파한 뒤 새로운 국제 정세에 맞는 관계를 구축하려는 의지가 읽힌다”고 분석했다. 자신의 중국어 서적 출판기념회를 위해 베이징에 온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시 주석이 북·중 관계 개선을 위해 상당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면서 “한국은 중국이 북한을 고립시키길 원하지 말고 둘 사이의 접근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시 주석은 축전과 친서에서 선대 지도자들이 쌓아 온 ‘전통 우의’가 양국의 공통된 자산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류 상무위원도 김 제1위원장과의 회담을 마친 뒤 “양측이 ‘전통 우의’를 계승, 추진하는 것에 대해 광범위한 합의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특히 “김 제1위원장이 앞선 두 영도자의 유지를 받들어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에서 큰 진보를 이루고 있다”며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 주석은 또 고위급 교류를 복원할 뜻이 있음을 북한 측에 분명히 밝혔다. 류 상무위원은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와의 회담에서 “양국은 마땅히 ‘전통 계승, 미래 지향, 선린 우호, 협력 강화’라는 16자 방침에 근거해 고위층의 정치적 소통을 강화하고 경제 무역 등에서의 실속 있는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방북단에 외교·군사 정책의 핵심 인물인 쑹타오(宋濤) 당 중앙외사판공실 상무부주임과 왕자루이(王家瑞) 대외연락부장이 참여한 것도 고위급 교류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읽힌다. 고위급 교류가 재개되면 자연스럽게 경제 교류가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의 중국 방문 가능성이 커졌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고 현 상태만 유지하더라도 중국은 ‘북한에 인센티브를 주자’는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커졌고, 김정은이 지금 상태에서 방중을 원한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 주석은 우호 관계 및 교류 회복의 근본적인 진전을 위해선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류 상무위원은 김 제1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안정 실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등 한반도 정책의 3원칙을 견지하겠다”면서 “6자 회담이 이른 시일 안에 재개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한줄영상] 좁은 터널서 마주친 차량 “난 양보 못해~”

    [한줄영상] 좁은 터널서 마주친 차량 “난 양보 못해~”

    갈수록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각박한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영국 텔레그래프가 공개한 이 영상은 좁은 터널길에서 마주친 두 명의 고집 센 운전자가 서로 양보하지 않고 신경전을 펴며 버티고 있어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영국 버크셔에 있는 메이든헤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40여분이 지나도 양보하지 않고 버티는 메르세데스 벤츠 운전자들에게 뒤따르던 차량에 탄 사람이 설득을 해도 요지부동입니다. 두 명 모두 차문을 잠그고 후진하라는 주변의 말을 거부합니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많은 사람들이 설득과 사정을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교착상태가 오래 지속되자 몹시 화가 난 운전자들이 “나잇값 좀 하라”고 욕설과 고함을 칩니다. 나이가 지긋한 남성은 자기는 충돌할까 겁나서 후진을 할 수 없다고 구경꾼들에게 얘기합니다. 컨버터블 벤츠를 탄 금발의 중년 여성은 아무말없이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주변에서 누군가 애들을 학교에 데려다 줘야 한다고 욕설을 퍼붓습니다. 여성 운전자 중 한 명은 “10대 딸과 친구가 걸어서 집으로 오고 있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 탓”이라고 소리칩니다. 지난주 영국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30세의 재무분석가인 브래드 하베리가 촬영했습니다. 하베리는 노인은 좀 겁을 먹은 표정이었고 중년여성은 불쾌함이 역력했는데 배려심이 없는 사람 같다고 말합니다. 결국 시간이 계속 흐르자 다른 운전자가 노인의 차를 대신 후진시키는 걸로 일단락됐다고 합니다. 이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잘잘못을 놓고 의견이 나눠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 잘못이 더 크다고 보십니까? 사진·영상= Bibi Boulais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교황에겐 열광 시진핑엔 냉랭

    교황에겐 열광 시진핑엔 냉랭

    미국이 22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같은 기간 방문으로 들떴다. ‘빅 2’인 이들의 경호와 교통 체증에 미국은 비상이 걸렸다. 이들의 행보는 닮은 듯 다른 꼴이다. ●NYT·WSJ 머리기사는 모두 교황 쿠바를 방문한 교황은 이날 오후 수도인 동부 워싱턴DC에 도착한다. ‘신권의 상징’으로 국가 정상급 예우를 받으며 언론의 조명이 집중된다. 반면 글로벌 리더십의 정점에 선 시 주석은 취임 이후 처음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같은 날 정오쯤에 서부 워싱턴주 시애틀에 닿지만 미국 정부나 언론이 인권과 사이버 해킹 문제 등으로 벼르고 있는 중이다. 미국 신문에서는 교황이 판정승을 거뒀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제호 아래 주요 기사로 교황을 다뤘고 시 주석에 대해선 비판이 주류였다. 교황의 발길에는 지지자들이 몰려 열광하지만 시 주석 방문지에서는 시위대가 ‘수행 시위’를 벌인다. 시 주석이 이날 취임 후 처음으로 4박 5일간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직 생활 시작 이후 7번째인 이번 방미는 시 주석에게 기회이자 위기다. 중국을 미국과 동급의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고 ‘호랑이 굴’에서 약점만 노출하는 무대가 될 수도 있다. 중국 정부와 언론은 시 주석의 방미를 ‘신뢰를 증진하고 의심을 해소하는 여행’(增信釋疑之旅)이라고 규정하며 결과를 낙관하고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신경전보다는 서부 시애틀에서 펼쳐질 각종 경제협력에 무게를 두고 있다. 관영 인터넷 매체 펑파이는 “시애틀은 ‘서부의 워싱턴’이자 미국이 중국에 열어 놓은 기회의 창”이라고 전했다. ●中, 중국계 미국인 체포… 양국 긴장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방미 기간에 기후변화와 관련한 협약을 포함해 40개 이상의 합의와 협정을 도출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7년째 교착상태가 이어진 양국 간 투자협정(BIT)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군축협정’이 처음으로 논의될 예정이며 미국 여객기 구매 및 보잉사 중국 공장 건설, 미국 고속철 건설 등 대형 프로젝트에도 합의할 전망이다. 경제협력은 뜨겁지만 시 주석은 25일 백악관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돌직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 당국이 최근 중국계 미국인 판 판 길리스를 간첩 혐의로 정식 체포했다고 WSJ 등 미국 언론이 21일 보도하면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간 긴장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중국 외교부는 22일 보도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교황·시진핑 만날 일은 없을 듯 22일 워싱턴DC에 방미 첫발을 내딛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는 분위기가 열광적으로 변하고 있다.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 내외에게서 최고 의전의 환영을 받으며 생애 첫 미국 방문 일정을 시작한다. 백악관은 “2008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베네딕토 16세를 직접 영접한 전례를 따르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백악관 행사에서는 교황이 밟을 레드카펫과 21발의 예포, 군악대 연주 등이 마련된다. 교황은 시 주석이 워싱턴DC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에 뉴욕으로 떠나 이들의 조우는 성사되지 않는다. 시 주석과 교황은 비슷한 시기에 워싱턴에서 각각 2박 3일 머문다. 교황이 먼저 도착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고 시 주석은 하지 않는 미 의회 합동연설까지 하면서 이목이 더 집중된 상황이다. 가톨릭 교계 언론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의 평론가 마이클 숀 윈터스는 WSJ에 “시 주석의 방문이 신문 (1면이 아닌) 경제면으로 밀릴 것 같다”며 “교황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의 방미가 교황의 후광에 가려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미 공화당, 특히 대선 후보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미·중 간 갈등에 대한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교황처럼 너무 두드러지기보다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돌아가는 것도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글로벌 시대] 정 마케팅/김창후 LG전자 고문·전 터키법인장

    [글로벌 시대] 정 마케팅/김창후 LG전자 고문·전 터키법인장

    이제는 ‘코레리 암자’(한국 아저씨란 터키 말)란 말이 하숙집과 마을에서 나를 부르는 애칭으로 고유명사화돼 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나의 입지도 점점 강화됐다. 하숙집은 어느덧 마치 우리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말엔 으레 주인아저씨 ‘위날’은 아침상을 물리치고 걸쭉한 터키 커피를 같이 마시며 주중에 발생한 국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측면의 사건 사고 뉴스와 여론을 친절히 이야기해 주었다. 위날은 나를 한 달에 두세 번은 잊지 않고 맛집을 데리고 가곤 했다. ‘사리에르’ 하숙 마을의 읍내에 있어 보스포루스 해협의 야경을 품고 있는 식당이 바로 단골인 생선 요리 집이다. 아저씨는 나의 기호를 알아서 늘 ‘발륵’(생선)과 ‘라크’(42도의 독한 알코올로 포도 줄기로 만듦)를 많이 주문해 안겨 주며 포식하게 했다. 시간이 지나 식당 내에 손님들이 왁자지껄하며 즐거운 분위기가 되면 위날은 간간이 다른 테이블 앉아 식사하는 마을의 인사에게 나를 소개해 주었다. 자랑스럽게 소개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고 나를 마을의 주요 요원으로 대하는 것 같아 우쭐한 정을 느끼게 했다. 회사 마케팅 부서의 ‘디뎀’은 눈이 늘 초롱초롱 빛나며 일도 썩 잘하는 미모의 여직원이었다. 상하 계급 선이 명확히 지켜지는 지위 중시의 터키 문화여서인지 하루는 나도 모르게 책상에 그 직원이 결혼 초청장을 살짝 놓고 갔다. 알아보니 식장은 디뎀의 고향인 에스키세히르란 곳이었다. 이스탄불의 동남쪽으로 수도 앙카라를 향해 서너 시간 승용차로 달려야 하는 곳으로 꽤 장거리인 셈이다. 현지 밀착형 경영을 부르짖어 조직의 전폭적인 지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초기 법인장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참석해야 한다고 나는 판단했다. 처음 가본 전통 터키 결혼식은 한마디로 정이 넘치는 분위기다. 밤늦게까지 지칠 줄 모르게 춤추며 하객 상호 간에 정감 나게 나누는 대화는 그칠 줄 모르는 풍경이었다. 코레리 암자는 외국인으로서는 청일점이었지만 혼주의 배려와 신경 씀씀이로 마음이 훈훈하게 녹아 낯설거나 어색함이 사라져 버렸다. 혼주의 정감 나는 대접이 내가 자식 회사의 상사여서라기보다는 형제의 나라 한국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의 배내 시절부터 마음에서 자라왔기에 더욱 가능한 것 아닐까. 거리감이 전혀 없이 많은 하객 속에서 흐뭇한 정을 느낀 밤이었다. 터키인들은 국가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과 존경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마을 곳곳에 국기를 게양해 놓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터키는 언어도 우리처럼 우랄알타이어 계통으로 교착어이고 어순도 동일하다. 유사점은 오직 말뿐만이 아닌 것 같다. 음식, 문화, 사람들의 습성, 사람들의 정서 등에서도 많은 점이 유사하다. 감정적으로 다혈질의 기질을 강하게 보이면서 거나하게 놀기도 좋아하고, 성질이 급한 면도 많이 유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정다감한 정(情)의 문화인 점도 우리와 동일하며, 정을 많이 주고 또한 정에 매우 약한 것 같다. 정을 기반으로 한 고도의 정(情) 마케팅 전개의 중요성을 깊게 인지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혈맹의 유대 관계인 한국 제품의 브랜드를 소비자 마음에 깊이 뿌리 내려 시장 공략의 지름길을 찾기 위한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박대통령 訪中] “韓·中 우호 불구 北·中 멀어지지 않아… 김정은 곧 中 방문할 것”

    [박대통령 訪中] “韓·中 우호 불구 北·中 멀어지지 않아… 김정은 곧 中 방문할 것”

    한국과 북한에 모두 정통한 중국의 권위 있는 한반도 전문가인 베이징대 선딩창(沈定昌·64) 교수는 4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과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에 대해 “양국 역사상 최고의 우호 관계를 증명한 것은 맞지만 중국과 북한이 그만큼 멀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분명히 중국과 관계 개선의 뜻이 있는 만큼 조만간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시 주석을 만나지 못하고 간 것과 관련, “국가 원수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나지 않은 것이 정상적이며, 최 비서는 중국 공산당중앙대외연락부(중련부)와 비공식적으로 접촉해 김정은 방중 문제를 논의하고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대 한국학연구센터 소장인 선 교수는 1970년대 김일성대에서 3년간 연구하는 등 북한에서 6년 동안 생활한 경험이 있고 남한에서도 3년 동안 살았다. 특히 지난해 8월 북한을 방문했던 선 교수는 “북한은 생각보다 안정적이었고 시장개방도 많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 대해 평가한다면. -박 대통령은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압박 속에서 방문했다.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이래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는데, 이번 정상회담과 열병식 참석도 비약적 발전의 큰 분수령이다. 양국 관계는 역사 이래 가장 친밀하고 우호적인 관계가 됐다. →비약적 발전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양국의 교류는 경제와 문화 차원을 넘어 정치와 군사 분야로 발전했다. 특히 북한, 동북아를 넘어 세계적 문제를 놓고 합작하는 관계가 됐다. 이는 단순한 쌍방 관계를 넘어선 차원이다. →이번 열병식에 대해 서방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예상한 것 아닌가. 열병식 자체에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남중국해 문제와 중·일 관계 때문일 것이다. 서방의 여러 국가는 미국의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평화와 열병식은 모순 아닌가. -열병식에 대한 시각차 때문에 그런 평가가 나온다. 서방은 중국이 파워를 자랑하기 위해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은 열병식을 통해 평화를 옹호해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싶었다. 시 주석이 선언한 군사력 감축도 평화를 추구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과거 10차례 병력 감축도 모두 열병식을 즈음해서 나온 것이었다. →1954년 열병식 때는 김일성 주석과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나란히 섰었는데,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시 주석 옆에 섰다. 최 비서는 맨 끝에 섰다.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먼저 중국이 중·한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다음으로는 외교 의전 때문에 그런 자리 배치가 이뤄졌다. 외교적 중량감 때문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 주석과 가장 가까이 섰고 그 다음에 박 대통령이 섰다. 북한의 수반이 아닌 최 비서가 떨어져 선 것은 정상적이다. →김정은 제1비서가 왔다면 어땠을까. -박 대통령과 나란히 섰을 것이다. 아니면 박 대통령의 자격과 경력이 김정은보다 높으니 약간 앞에 배치했을 것이다. →김정은은 왜 안 왔다고 보나. -중·북 관계가 북한의 핵 문제로 인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이 중국과 핵 문제에 대해 이견이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방문을 회피한 것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지난해 8월 북한을 방문했는데, 느낌이 어땠나. -예전보다 많이 개방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한 측이 제시하는 스케줄 외에 아침에는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아파트 단지나 골목에서 손수레에 과일과 야채를 놓고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에 실시했던 농가생산청부제(생산량을 할당하고 성과에 따라 포상하고 책임을 묻는 제도)도 실시하고 있었다. →김정은 통치가 불안해 보이지는 않았나. -생각보다는 안정적으로 보였다. 특히 일반인들도 대부분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평양에서 금강산을 갈 때 휴대전화를 사용했는데 통화품질이 매우 좋았다. 산간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중국과도 직접 통화가 되나. -그렇지는 않다. 북한 휴대전화는 북한 사람끼리만 통한다. 북한의 중국 유학생들은 휴대전화로 중국에 있는 친구들과 채팅도 가능하지만 북한 휴대전화를 쓰는 북한 사람과는 통화가 되지 않는다. →잇단 숙청으로 공포정치 분위기가 있지는 않았나. -처형은 권력 투쟁의 결과로 봐야 한다. 이를 직접 통치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한국에서 최룡해가 처형됐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번에 중국에 오지 않았나. 한국 언론이 숙청과 공포정치를 너무 과장한 측면이 있다. →김정은이 최룡해를 열병식에 보낸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나름대로 중국을 중시해 성의표시를 한 것이다. 최룡해는 김정은의 심복이고 사실상 북한의 2인자이다. →시 주석과 만나지도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간 것 아닌가. -짧은 열병식 기간에 많은 국가 원수들이 찾아왔는데 국가 수반도 아닌 최룡해를 공개적으로 만나는 게 더 이상하다. 북한을 전담하는 중련부와 비공식적으로 접촉했을 것이다. →톈안먼 성루 끝자리에 자리를 마련한 것은 너무 홀대한 것 아닌가. -의전 서열상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다. 중국이 과거처럼 북한과의 혈맹 관계를 드러내놓고 자랑하려면 시 주석 옆에 앉혔겠지만, 지금 중국과 북한은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중국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인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그와 관련해 많은 얘기가 오갔을 것이다. →북한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앞두고 다시 핵실험을 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막 남북 고위급 회담을 끝내고 이산가족 상봉 협의를 하고 있는 데다 중국의 경고도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도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의 핵 문제가 매우 복잡한 것 같지만 핵심은 북·미 관계에 있다. 오늘날 북한의 핵무기 문제의 상당 부분은 미국이 초래한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을 억제할 수 없나. -다른 나라보다는 비교적 큰 영향력을 줄 수 있지만 선택은 북한이 한다. 중국의 역할이 너무 과장된 측면이 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중국은 어떻게 할 것으로 보나. -유엔 등 국제 사회와 같이 행동할 것이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 가능성은 있나. -국제 외교 경험이 없는 김정은이 열병식에 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최룡해 방문으로 일종의 물밑 작업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도 지난 7월 노병대회에서 한국전쟁 당시 중국 지원군에 특별히 경의를 표했다. 조만간 방문할 것으로 본다. →열병식이 시 주석의 9월 미국 방문에 영향을 줄 것인가.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남중국해 문제와 일본 우경화가 가장 큰 문제다. 양국 사이에는 여전히 많은 갈등이 있고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은 어찌 보면 중국을 조준한 것이다. 현재의 갈등을 줄이고 추가적인 마찰을 피하는 게 중요하다. →시 주석이 열병식에서 일본을 강하게 비판하지 않았다. 중·일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천천히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안보법 개정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이 더 심각하게 극우화되지 않는 한 우호적인 관계 발전을 추구할 것이다. →한·중·일 정상회담은 어떻게 전망하나. -개인적으로 보면 중국이 그동안 한국 입장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한국과 일본이 교착 상태인데 중국이 드러내놓고 일본과 만나기는 힘들었다. 3국 정상회담이 잘 풀리면 중·일 관계 개선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 글 사진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선딩창 교수는 ▲1951년생 ▲1979년 베이징대 졸업 ▲북한 김일성종합대, 한국 관동대 유학 ▲베이징대 조선어(한국어)과 연구실 부주임 및 대리주임 ▲주북한 중국대사관 교육팀 팀장 ▲중한 전문가연합 연구위원회 중국 측 위원회 위원 ▲중국 인민대외우호협회 중한 우호협회 이사 ▲베이징대 ‘한국학 총서’ 부편집장 ▲푸단대 ‘한국연구논총’ 편집위원 ▲중산대 한국학 총서 편집위원 ▲베이징대 한국학 연구센터 연구 및 교수 ▲저서:일한 실용 비교 문법, 한국 대외 관계, 한국 외교와 미국 등 다수
  • [사설] 한·중·일 협력 복원에 큰 진전 이룬 한·중 정상

    어제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여섯 번째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 있는 공감대가 이뤄졌다. 우선 동북아 평화협력의 기반을 마련한 점이 눈에 띈다. 두 정상은 일제의 침략 전쟁 과오를 꾸짖는 계기로 만난 자리에서 의연하게 다음달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한·중·일 정상회담을 갖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박 대통령이 8·15 광복 70주년 경축사를 통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연장선이다. 과거사는 준엄하게 꾸짖되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해서는 한·중·일 3국 간의 비정상적 관계가 더는 지속돼선 안 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적극적인 자세 변화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한·중 양국 간 긴밀한 협력과 소통이 확인된 점도 큰 성과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언제든 긴장이 고조될 수 있는 한반도 안보 현실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또 북한의 지뢰 도발로 촉발된 이번 긴장 해소 과정에서 보여준 중국 측의 건설적인 역할에 감사를 표명했다. 시 주석은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또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떠한 행동에도 반대한다”며 장거리 미사일이나 추가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에 사실상의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다만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 시 주석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 등 기존 입장에서 더 진전된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북한의 핵무기는 한반도 평화의 최대 장애물인 만큼 우리 측은 중국의 더 적극적인 ‘중재자’, ‘해결사’ 역할을 내심 바랐지만 중국은 일단 6자회담을 통한 대화와 타협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미국·일본 등의 우려에도 전승절 기념식은 물론 열병식까지 참관하는 우리의 기대에는 좀 못 미쳤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두 정상은 이번 회담을 통해 보다 긴밀해진 양국 관계에 공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세기 두 나라가 모두 역경을 헤쳐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어려움을 함께 겪어 낸 ‘환난지교’(患難之交)의 역사가 오늘날 양국 우의의 소중한 토대가 됐다고 평가했고, 시 주석은 두 나라가 역대 최상의 우호 관계로 발전했다고 화답했다. 정치·외교는 냉랭하고 경제만 뜨거웠던 ‘정랭경열’(政經熱)에서 모든 분야가 긴밀한 ‘정열경열’(政熱經熱)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한다.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의 상호 연계까지 이뤄지길 기대한다. 박 대통령은 ‘차이나 리스크’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경제를 관장하는 리커창(李克强) 총리까지 만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효과 극대화를 비롯한 양국 경제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중국을 방문한 외국 정상이 같은 날 주석과 총리를 동시에 만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또한 긴밀한 양국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중 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서로 상생하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인천상륙작전 D-1 ‘장사상륙작전’ 아시나요

    [밀리터리 인사이드] 인천상륙작전 D-1 ‘장사상륙작전’ 아시나요

    9월 15일. 디데이(D-day)라는 암호명으로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한 상륙작전으로 꼽히는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진 날입니다.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 스스로도 ‘5000대 1의 도박’이라고 말했을 만큼 성패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작전이었죠. 북한 인민군은 38선에서 낙동강 방어선까지 진격하는데 81일이 걸렸지만, 인천상륙작전 이후 우리 군이 38선까지 돌아오는데 15일 밖에 걸리지 않았을 만큼 전세는 급변하게 됩니다. 허리가 잘린 인민군은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급격히 세력이 약화됐고 곧 패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하기 전 난관이 많았습니다. 당시 인천의 항만은 대규모 함정이 입항하기에는 수로가 매우 좁았고, 조수간만의 차가 7~10m나 돼 안정적인 상륙작전을 벌이기에는 부적합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작전 당일 인천항의 만조시간은 2시간 밖에 되지 않아 위험부담이 컸습니다. 인민군이 진지를 구축하고 강력하게 저항한다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죠. 그래서 유엔군사령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연합군 수뇌부와 마찬가지로 기만전술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양동작전 준비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6개월 전부터 스웨덴, 노르웨이가 있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프랑스 칼레에서 상륙작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허위정보를 꾸준히 흘렸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1944년 전세를 뒤집기 위한 연합군의 대규모 상륙작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6·25전쟁 초기 유엔군사령부도 7만명이 넘는 병력과 260여척의 함정이 참여하는 역사적인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두 가지 묘안을 짜냈습니다. 우선 유엔군이 남쪽인 전북 군산으로 상륙한다는 거짓 소문을 내는 한편 실제로 군산을 포격해 인민군의 주의를 돌렸습니다. 또 상륙이 한반도 동쪽에서도 동시에 이뤄질 것으로 오인하도록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경북에서 상륙작전도 벌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장사상륙작전’입니다. 경북 영덕에서 남쪽으로 15km, 포항 북쪽 26km에 위치한 동해안의 작은 어촌 장사동(현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인천상륙작전 불과 한 달 전인 8월 16일 국군 3사단이 북한군 12사단에 의해 퇴로를 차단당하자 해상으로 철수했던 독석동과 인접한 지역입니다. 3사단 지휘부는 포항여중 전투에서 71명의 학도병이 분전한 덕분에 인민군의 공격을 피해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이 전투는 330만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포화 속으로’에서 재연돼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장사상륙작전도 포항여중 전투와 마찬가지로 학도병들의 희생에 모든 것을 맡긴 슬픈 역사였지만 인천상륙작전에 가려 지난 65년 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극비로 수립된 작전명 174호. 9월 13일 오후 부산항 제4부두에는 2700t급 상륙함(LST) ‘문산호’에 탑승할 학도병들이 모였습니다. 육군본부는 상륙작전을 위해 이명흠 대위를 지휘관으로 하는 독립유격대 1개 대대를 차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보름 훈련받은 10대 학도병, 비밀 작전을 맡다 이름만 ‘유격대’였을 뿐 편성된 이들의 대부분은 경남 밀양에서 불과 보름 동안의 훈련받은 앳된 10대 학도병이었습니다. 실탄을 채 10발도 채 쏴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죠. 군에서 보급받은 것이라곤 소련제 장총과 배낭, 인민군 군복, 물 약간, 건빵 한 봉지, 미숫가루 세 봉지가 전부였습니다. 낙동강 전선 후방을 교란하고 보급로를 끊는 작전에 투입된다는 설명이 곁들여졌습니다. 원래 이 작전은 위험한 임무 특성상 미 8군이 수행해야 했지만 미군은 “실패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우리 군에 떠넘겼습니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기 어려웠던 육군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학도병들에게 작전을 배정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학도병 772명은 전란의 회오리 속에서 오로지 애국심 만으로 군에 자진입대한 이들이었습니다. 수개월째 이어진 전쟁으로 마음마저 피폐해진 그들이었지만 사기만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14일 새벽 상륙함은 드디어 장사해안에 도착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상륙작전은 시작부터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거센 파도가 일면서 문산호는 해변에서 30m 가량 떨어진 지역에 좌초되고 말았죠. 바다에 뛰어든 학도병의 60여명이 제대로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물에 빠져 숨졌습니다. 무사히 헤엄쳐 해변에 도달한 이들이 밧줄을 소나무에 연결해 다른 많은 대원이 해안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 오전 문산호는 심한 파도에 떠밀려 바다 속에 가라앉았습니다. 고난은 이어졌습니다. 상륙 직후부터 1개 대대 규모의 인민군이 해안 앞 200m 고지에서 공격해왔습니다. 오후 2시 30분 미 해군 구축함 함포지원을 받아 간신히 적을 물리친 학도병들은 빠르게 동해안의 7번 국도를 차단하고 다수의 적 진지를 파괴했습니다. 상륙, 전투 과정에 ‘유격전의 귀재’로 불렸던 군사고문 전성호 대령, 민간인 황재중 선장 등 2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다음날 오전 6시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진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인민군 5사단 등 적 정예병력을 만나 악착같이 싸웠습니다. 인민군은 대규모 상륙부대가 들이닥친 것으로 판단해 전차 4대를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학도병들이 사용해야 할 탄약 대부분은 배와 함께 물에 가라앉았고, 배낭에 든 보급품은 불과 3일치였지만 전투는 계속됐습니다. ●악착같이 7번 국도를 끊고 임무를 수행한 그들 해군본부는 인천상륙작전 뒤인 16일 해난구조선을 보냈지만 문산호가 너무 깊이 침몰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대로 철수했습니다. 우리 해군의 304정도 출동했다가 극심한 풍랑으로 포항 구룡포로 귀항하고 말았습니다. 해군은 “상륙부대를 구출하려면 증원부대를 보내거나 철수하는 수 밖에 없다”고 육군본부에 연락한 뒤 상륙함 조치원호를 현장에 다시 급파하게 됩니다. 또 상륙 5일째인 18일 수송기를 보내 약간의 탄약과 의료품을 투하했습니다. 상륙 6일째인 19일 드디어 조치원호가 장사해안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민간인 선장은 인민군의 공격이 두려워 침몰한 문산호와 멀리 떨어진 곳에 배를 대려고 했습니다. 미군 고문관으로 참가한 프랭크 스피어 소령이 다그쳐 겨우 문산호 동북쪽 약 400m, 육지에서 300m 떨어진 지점에 닻을 내리고 구조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학도병 39명은 적의 공격과 구명대가 유실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배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복귀하지 못하고 적의 포로가 되거나 죽음을 맞았습니다. 일부는 우리 군이 북진하는 과정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배에 타지 못한 인원 외에도 작전 중 전사한 인원이 총 139명이나 됐고, 90여명이 부상했습니다. 나머지 인원들은 다행히 7시간에 걸친 결사적인 구조작업으로 조치원호를 통해 부산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상륙작전은 군사기밀이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작전 상황이 제대로 명시된 공식문서조차 없었습니다. 생존 대원들의 입을 통해서만 일부 내용이 알려졌죠. 하지만 작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당시 평양방송은 아군 2개 연대가 동해안에 상륙했다고 보도했을 정도로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죠. 특히 우리 1군단은 인천상륙작전 뒤 교착상태였던 낭동강 전선을 돌파해 북상할 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교란작전 때문에 인민군 5사단과 2군단이 주력부대를 전선에서 이탈시켜 동해안에 집중적으로 배치했기 때문입니다. ●맥아더도 경의를 표한 학도병들의 활약 1997년 3월 해병대원들이 갯벌에 묻힌 문산호를 발견하면서 역사는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역사 재조명 필요성을 느낀 영덕군은 지난해부터 1년 4개월 동안 부산의 한 조선소에서 문산호 복원 작업을 진행해 길이 90m, 폭 30m, 높이 26m의 배를 건조했습니다. 원래 배보다는 길이 10m, 너비 5m 가량을 줄인 축소 모형입니다. 지난 5월 복원된 문산호는 바지선으로 옮겨져 장사해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상륙작전 65년 만의 일입니다. 내달 문산호는 스토리 전시관으로 개관할 예정입니다. 문산호 1, 2층에는 장사상륙작전의 역사적 배경과 200고지를 점령한 학도병 영웅 이야기를 영상물과 디오라마로 만들어 설치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집니다. 4층에는 PX와 군번줄 걸기 등 군 체험코너, 5층엔 조타실과 전망대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역사는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인천상륙작전의 그늘에 가려져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도 잊지 않은 역사, 우리가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래는 맥아더 장군이 사망하기 4년 전 772 유격동지회에 전한 서한입니다. 이종훈 회장 귀하. 최근에 보내주신 귀하의 편지를 통해 772 유격동지회가 결성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귀하의 동지들이 수행한 전투는 혁혁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최고의 찬사를 받을만한 것이었습니다. 772 유격대 동지들이 보여준 용맹과 희생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영원히 빛나는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귀하의 동지들에게 제 진심어린 안부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들을 충성스럽고 헌신적인 전우로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1960. 10. 31 더글라스 맥아더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밀리터리 인사이드는 핫한 아이템을 가지고 매주 화요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아래 리스트를 보세요. (17)국산 ‘명품 복합소총’ 왜 애물단지가 됐나 (18)“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19)“남침 땅굴, 있다니까요!” 끝나지 않는 전쟁 (20)北 목함지뢰 도발, 과연 이번이 처음일까 (21)당황하셨어요? ‘서울 불바다’ 통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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