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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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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교전 北방송 보도문

    남조선군이 서해 해상에서 우리 인민군 해군 경비함에 총포사격을 가하는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 군사소식통에 의하면 29일 남조선군이 서해 해상에서 정상적인 해상 경계근무를 수행하고 있던 우리 인민군 해군 경비함들에 총포사격을 가하는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 10시10분경 10여척의 어선들과 함께 연평도 서남쪽 우리측 영해 깊이까지 침입한 남조선 해군전투함선들의 행동을 저지시키려고 출동한 우리 해군 경비함에 대하여 적 전투함선들은 수백발의 총포사격을 가했다. 이에 대응하여 아군 함선은 부득불 자위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결국 쌍방간에 교전이 벌어지고 손실들이 있었다. 이번 사건은 철저히 남조선 군부의 계획적인 군사적 도발행위이다. 최근에만도 남조선군은 거의 매일같이 전투함선들과 어선들을 우리측 영해 깊이 침투시겼으며, 우리 해군 경비함들이 출동하면 일단 물러나는 척하면서 이 수역의 정세를 긴장시켜왔다. 남조선 군당국자들은 서해해상에서 그 어떤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완화의 길을 걷고 있는 북남 관계를 긴장·격화시키려고 꾀했다. 남조선 군 당국자들은 이번 무장도발 사건의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이러한 도발 책임이 가져올 엄중한 후과에 대하여 심사숙고하고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
  • 서해 교전 아군4명 전사

    서해교전이 발생한 지 3년만에 29일 또 다시 서해상에서 남북한 해군이 포격전을 벌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10시25분쯤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5.4㎞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남북한 함정 사이에 교전이 발생,우리 해군 24명이 전사하거나 다쳤다.북한 경비정의 포격으로 윤영하(尹永夏·28·해사 50기) 대위 등 4명이 전사하고,이해영 상사 등 19명이 부상을 입었으며,한상국(韓相國·27·조타장·부사관 155기) 중사가 실종됐다.해군은 교전 해역에서 밤새 수색작업을 벌였다. ▶관련기사 2·3·4·5·15면 이날 교전은 북측 경비정 2척과 우리 고속정 6척이 450m 앞까지 접근한 상태에서 우리측의 퇴거 통보를 무시한 북측 경비정 1척이 갑자기 함포 1발을 조준 사격,우리 고속정 1척의 조타실을 명중시키면서 일어났다. 교전은 우리측 초계함 2척이 가세,해군 함정 7척과 북측 경비정 2척 사이에 함포와 기관포 사격을 주고 받으며 25분간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북측 경비정 1척이 화염에 휩싸인 채 북쪽으로 도주했으나 정확한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그러나 수백여발의 아군 포격으로 20∼3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군 당국은 추정했다. 교전이 발생하자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오전 11시를 기해 전군에 긴급경계태세 강화지시를 내렸다.주한 유엔군사령부는 이날 오후 북측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장성급 회담을 갖자고 제의했으나 북측은 어떠한 답변도 보내지 않은 채 장성급 회담에 불응했다. 이에 리온 라포트 주한 유엔군사령관은 성명을 내 북한 도발 행위를 규탄하고,북한에 대해 정전협정 위반사항 공동조사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국방부는 이번 교전의 우리측 희생자 4명 모두를 1계급씩 특진,추서했다. 유진상 김경운 장세훈기자 kkwoon@
  • “NLL침범 단호 대응”정부 긴급 안보회의

    정부는 29일 발생한 서해교전 사태와 관련,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은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측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북한에 대해 사과및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등 단호히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오후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 침범 및 도발사건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이같이 결정했다고 NSC 사무처장인 임성준(任晟準)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발표했다. 김 대통령은 회의에서 “북한 경비정이 오늘 선제 기습사격을 가하는 등 무력도발행위를 자행한 것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로서 묵과할 수 없다.”면서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군 당국이 더욱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춰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방부장관 명의로 강력한 항의성명을 발표, 북한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으며 재발방지를 위한 군사적 조치를 취해나가기로 했다. 김 대통령은 “”정부는 국민에게 일어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우리군은 철저한 안보태세를 강화해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강조했다. 오풍연기자
  • 서해교전/ “30~40분 총성·포성 계속 정신없이 어선 철수시켜””

    “‘빵’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두번 번쩍거리다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어요.” 29일 오전 연평도 해상에서 조업을 지도하다 남북교전 상황을 4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지켜본 인천시 옹진군 소속 어업지도선(130t급) 선장 김종운(金鍾雲·51)씨는 “당시 해상의 시정(視程)이 좋지 않아 어떤 함정이 피격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함정에서 검은 연기가 솟았다.”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김 선장은 이어 “총소리와 포성이 뒤섞여 30∼40분간 교전이 계속됐다.”면서 “어선들을 철수시키느라 정신이 없어 교전 상황을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전쟁을 방불케 했다.”고 말했다. 김 선장은 “어선들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많은 해군들이 인명피해를 입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서해교전/ 北 “”南서 선제공격””

    북한의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29일 오전 서해상에서 발생한 남북한 해군의 교전사태와 관련, “”남조선의 선제공격에 따른 자위적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북한방송들은 사건 발생 5시간 30분이 지난 이날 오후 군사소식통의 말을 인용, “”남조선군이 서해 해상에서 우리 인민군 해군경비함에 총포사격을 가하는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김수정기자
  • 서해교전/ 정부 움직임, 3년만에 교전재발 ‘초비상’

    월드컵 폐막을 하루 앞두고 3년만에 남북간 서해 교전이 재연된 29일 청와대와 국방부는 물론 통일부,외교부 등 정부 관련 부처는 긴장감이 도는 가운데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하루 종일 분주히 움직였다. ●청와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오후 3시 청와대 본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대응책을 논의했다.회의에는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신건(辛建) 국정원장,정세현(丁世鉉) 통일·최성홍(崔成泓) 외교·김동신(金東信) 국방부장관과 임동원(林東源) 통일특보·임성준(任晟準) 외교안보수석등이 참석했다.이에 앞서 정부는 오후 1시30분부터 정 통일부 장관 주재로 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했다. 김 대통령은 오전 교전사태 발생 직후 임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이를 보고받고 NSC 소집과 함께 단호하면서도 의연한 대응을 지시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이날 저녁 국무위원들과 함께 청와대 본관에서 월드컵 3,4위전 경기를 시청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박선숙(朴仙淑) 청와대 대변인은“군과 정부가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 만큼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고 의연하게 일상생활에 임해 주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또 이날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와 전화 통화를 갖고 향후 대책을 협의했다. 김 대통령은 통화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논의 결과를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알려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나라당 배용수(裵庸壽) 부대변인이 전했다.이에 대해 이 후보는 “사태가 심각하고 국민이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신속히 잘 대응하길 바란다.”면서 “필요하다면 국회차원의 대응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김 대통령은 오후 방한 중인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갖고 서해 교전 사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라우 대통령은 “한반도에 평화와 서로간의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이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유감스럽다.”면서 사망자 가족에 조의를 표하는 한편 부상자들의 쾌유를 빌었다. ●통일부= 통일부는 이번 서해 교전 사태에도 불구하고,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협력은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했다.김홍재(金弘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세현 장관 주재로 열린 간부회의에서 이같은 방침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외교부= 29일 최성홍 장관 이하 전 간부들이 비상대기 상태에 돌입,향후 외교적 대응책 수립에 나섰다. 외교부 관계자는 “북측의 선제공격에 의해 교전상황이 발생하고,적지 않은 피해가 생긴 것이 부시 행정부 출범 후 18개월만의 북·미대화 재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계룡대 표정= 계룡대 전 장병들은 퇴근을 중단한 채 비상대기 상태에 들어갔다.김판규(金判圭) 육군 참모총장,장정길(張正吉) 해군 참모총장,김대욱(金大郁) 공군 참모총장도 각 휘하 지휘관들과 함께 본부에 남아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했다. 오풍연 김수정 조승진 이천열기자 poongynn@
  • 서해교전/김동신 국방장관 성명 (전문)

    2002년 6월29일 오전 9시54분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퇴거를 요구하는 우리 해군 고속정에 대하여 악랄하게도 선제 기습사격을 가해왔다.이 과정에서 아측에 심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북한군의 이와 같은 행위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제1차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남북군사당국자간 긴장완화를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합의한 사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이런 묵과할 수 없는 무력도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엄중 항의하며,북한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재발 방지를 강력히 요구한다. 우리는 북한군의 북방한계선의 침범 및 도발 행위의 중지를 거듭 촉구하며,이번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 월드컵/ 한·터키전 길거리응원 표정

    “코리아팀 파이팅,터키팀 파이팅” ‘태극전사’한국팀이 ‘투르크 전사’터키팀과 3,4위전을 벌인 29일 전국에서는 마지막 ‘붉은 물결’의 장관이 연출됐다.이미 ‘4강 신화’의 짜릿함을 맛본 시민들은 패배의 아쉬움보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양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일부 응원단은 뜻밖의 서해교전에서 숨진 해군들을 위해 검은 리본을 달고 애도를 표했으나 축구 경기는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아쉬운 피날레- 이날 서울 시청앞 광장 50만명,광화문 30만명 등 전국 311곳에서 214만명이 거리응원에 나섰다.연휴와 서해교전 등의 여파로 지난 25일 독일전 당시 700만명에 비해 훨씬 줄어든 규모였지만 이번 월드컵 마지막 길거리 응원이라는 아쉬움 때문인지 응원열기는 더 뜨거웠다. 경북 영주에서 시청까지 왔다는 김형준(24·강릉대 4년)씨는 “지난 한국전쟁때 우리를 도와준 터키에 승리를 내줬기 때문에 크게 분하지는 않다.”면서 “비록 4위에 머물렀지만 축구도 응원도 후회없이 온힘을 다했다.”고 말했다. 3살된 아들을 데리고 광화문에 나온 주부 이영숙(34)씨는 “아들이 크면 월드컵으로 행복했던 2002년 6월의 추억을 말해 주겠다.”면서 “이제 선수들이 마음의 짐을 벗고 푹 쉬었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서울시청 앞에서는 인터넷 동호회 ‘터키팀을 응원하는 모임’회원 500여명이 응원전을 펼쳤다.허윤정(30·여)씨는 “터키팀이 너무 잘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아쉬움을 달랬다. 호주인 마이클 앤더슨(33)은 “고액연봉을 받으면서도 몸을 사리는 유럽 선수들과 달리 최선을 다한 한국 선수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붉게 물든 달구벌- 지난 10일 미국전에 이어 두번째 한국팀의 경기를 치른 대구는 온통 붉은 물결과 함성으로 뒤덮였다.시민들은 한국전쟁 당시 혈맹국인 터키와의 경기를 화합과 평화의 상징으로 여기며 잔치 분위기를 연출했다.거리 곳곳에는 ‘우리는 터키를 사랑합니다’라는 터키어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함께 태극기,터키 국기가 나란히 게양됐다.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등 길거리 응원장에 나온 시민들은 패배를 아쉬워하면서도 밤늦게까지 폐막을앞둔 월드컵 열기를 만끽했다. 김종술(24·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월드컵 추억을 남겼다.”면서 “월드컵의 열기가 계속 이어져 우리가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해교전 여파- 이날 거리 응원에 나선 시민들은 서해교전 소식이 전해지자 “잔치 한마당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날 수 있느냐.”며 한때 술렁거렸으나 곧 안정을 되찾았다.유상호(47)씨는 “북한이 월드컵 녹화방송을 주민들에게 내보내 기뻐했는데 뜻밖의 사건이 터져 남북관계가 경색될까 염려스럽다.”며 정부가 현명하게 대처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숨진 해군을 추모하는 뜻에서 검은색 리본을 단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가슴에 검은색 나비 모양 리본을 단 한명우(28·서울 성동구 성수동)씨는“우리가 즐겁게 응원을 할 수 있도록 나라를 지키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은 군인들의 명복을 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에 주둔하는 해병부대는 그동안 월드컵 한국전이 있을 때마다 인근 농협 마당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장병과 주민 700∼800명이 함께 응원전을 펼쳐왔으나 이날은 남북 해군간에 교전이 발생하자 계획된 응원전을 취소하고 경계강화에 나섰다. -홀가분한 선수가족- 이날 대표선수 가족들은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자 “이제야 두 다리를 펴고 잠잘 수 있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송종국 선수의 아버지 송민배(53)씨는 “4년뒤 독일 월드컵때는 더 체계적으로 준비해 4강은 물론이고 우승까지 가자.”고 다짐했다.박지성 선수의 아버지 박성동(44)씨는 “한국전쟁 때 참전한 우방국인 터키와 거친 플레이를 할 수 없는 일”이라며 “4년 후엔 우리 지성이가 대표팀의 주축이 되어 더 멋진 경기를 펼칠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날 아침 남편에게 ‘승리의 선물을 보여 달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 유상철 선수의 아내 최희선(30)씨는 “딸 다빈이가 아빠를 너무나보고 싶어 한다.”면서 “남편이 돌아오면 가족끼리 즐거운 시간을 마련할것”이라고 기대했다. 대구 황경근·이창구 윤창수기자 window2@
  • 서해교전/ 99년 교전은 어땠나-월선 저지과정 충돌 북한함정 7척 대파

    이번 교전에 앞서 지난 1999년 6월15일에도 남북간에 전면전까지 치달을 가능성도 있었던 ‘서해교전’이 있었다. 당시 충돌에 앞서 6월7일부터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측지역 연평도 일대 해역에서 남북 해군함정이 서로 뒤엉켜 함포와 기관포를 겨누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지속됐다.북측은 어뢰정까지 출동시켰다.마침내 대치 9일째인 15일 오전 9시15분 남북 해군간에 교전이 시작됐다.이 때에도 북한은 어뢰정에서 소총과 기관포를 동원,우리 군함에 선제사격을 가함으로써 교전이 시작됐다.교전이 있던 날 우리측 고속정은 새벽부터 북방한계선 7∼8㎞ 이남에서 초계활동을 벌이고 있었다.이날 북한 경비정을 시작으로 어뢰정 3척 등 모두 7척의 북측 함정이 우리 영해를 침범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측의 경고방송에도 퇴각하지 않자,오전 9시쯤 우리측 고속정 1척이 북한 경비정의 후미를 추돌했고 이어 또다른 고속정이 북한의 경비정을 들이받았다.이 때 북한군은 소총·기관포 사격을 가해왔고,우리측도 초계함과 고속정에서 즉각 대응사격을 했다.이 과정에서 북측의 경비정 4척,어뢰정 3척 등 북한 함정 7척은 불에 타거나 대부분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퇴각,상황은 끝났다. 당시 국방부에서는 지하통제실로 불리는 지하벙커에 국방장관과 합참의장등 군 수뇌부가 모여 전략회의를 갖고 강경 대응 지시를 하달했다.이때 미군사령관도 국방부 긴급회동에 참석했고 주한미군의 위기조치반이 가동됐다.이어 한국과 미국은 긴급 군사위원회 상설회의를 열어 주한 미군의 군사력을 증강시키기로 결의했었다. 유진상기자 jsr@
  • 서해교전 아군피해자 명단

    ●사망자(4명) ▲대위 윤영하(28·정장·해사 50기) ▲하사 조천형(26·병기사·부사관 173기) ▲하사 황도현(22·병기사·부사관 183기) ▲하사 서후원(21·내연사·부사관 189기) ●실종자(1명) 중사 한상국 ●부상자(19명) ▲중위 조외건 이희완 ▲상사 이해영 ▲중사 김현 김장남 황찬규 이철규 ▲하사 곽진성 전창성 ▲병장 고경락 김승환 ▲상병 김면주 권지형 박동혁 김용태 조현진 ▲일병 이재명 김상영 김택중
  • 서해교전/“軍서 재발방지조치 취할것”임성준 외교안보수석 문답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인 임성준(任晟準·사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29일 오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NSC회의 결과를 발표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재발방지를 위한 군사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는데. 국방부와 합참이 추후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다. -이번 사건을 NSC는 어떻게 정리했나. 회의에서 성격규정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금후 북한의 태도를 지켜보고,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벌여 결론을 내릴 것이다. -NSC는 이번 사건의 배경을 뭐라고 보고 있나. 논의는 있었지만 다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일단 군사정전위를 소집해 진상을 규명해 봐야 한다. -북한측은 우리가 선제공격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북측이 선제 공격을 분명히 했다. -이번 교전사태가 북·미대화 재개에 영향을 주지 않겠는가. 너무 성급한 예단은 하지 말자.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은 계속 유지되는가. 3년 전 서해 교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햇볕정책 유지했다. -이번 사태가 김 대통령에게 어떻게 보고되고,어떤 지시가 내려졌는가. 사건이 오전 10시50분 넘어 종료돼 긴급 상황으로 국방부로 보고됐다.김동신(金東信) 국방부 장관이 외교안보수석에게 상황을 알렸고,김 장관은 김 대통령에게도 즉각 보고했다.이후 청와대와 국방부,외교부 등이 정보를 공유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는데,미군의 움직임은 있는가. 경계태세를 강화했다.그러나 추가적인 군사조치 부분은 내가 알지 못한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서해교전/ 전문가 시각

    29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북한 해군의 도발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조차 엇갈린 분석을 내놓았다.그만큼 북한의 도발이 급작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행동임을 반영하는 것이다.다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정확한 의도는 시간을 두고 파악해야겠지만 일단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전망하고 정부 당국의 능동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고유환(高有煥) 동국대 교수= 이번 사건은 지난 99년 6월 연평도 해전의 연장선상에 있다.북한이 당시 참패했고,이번 도발은 북한 군부의 보복 차원이다.북한 해군이 선군(先軍) 정통성차원에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충성심을 과시한 사건인 것이다.우발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북한 해군은 보복할 상황에 늘 대비해 왔다.김정일이 지시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꽃게잡이는 북한이 사활을 걸고 있는 외화벌이 수단이다.북한은 현재 테러지원국으로 분류돼 무기를 판매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북한 해군에 꽃게 조업 할당량이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그래서 NLL을 침범하고서라도 조업을 한다. 월드컵 기간을 의도적으로 택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해군은 월드컵 경기일정을 모를 수가 있다.결국 군부가 일을 저지른 것으로,이는 북한 해군과 북측 지도부의 정세인식의 차이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북한 지도부는 월드컵 경기,특히 한국·미국이 참가한 경기를 방송해 줄 정도로 향후 북·미대화 등 관계개선의 분위기를 잡아갔던 게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햇볕정책의 마무리 시점에 일어난 이번 사건은 남북관계에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우리 정부는 햇볕정책 성과를 긴장완화로 꼽았다.정부는 어려워지고 대선 정국에서 대북강경책이 우위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결국 남북은 군사당국자 회담 등 근원적 해결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허문영(許文寧) 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 이번 사건은 크게 우발적 도발과 군부의 반발,북한 지도부의 준비된 도발 등 세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조심스럽지만 준비된 도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우발적으로 보기엔 규모가 큰데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군부의 반발 가능성도 높지 않다. 도발 의도는 일단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려는 것으로 보인다.즉 미국과의 대화가 여의치 않고 지원이 확실치 않자,남북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부각시켜 미국을 압박하려는 전술인 것이다.과거에도 저들은 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통해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냈다. -지만원(池萬元) 군사평론가= 북한 경비정이 지난 27,28일 잇따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것을 보면 의도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치밀한 계획 아래 침범한 것이다. 문제는 군 장비면에서 월등히 앞선 우리 군이 어떻게 이렇게 크게 당했는가이다.가장 큰 이유는 우리 해군에는 일선 지휘관에 부여하는 ‘유엔사 자동교전규칙’이 없다는 것이다.지난해 6월 북한 상선들이 제주해협을 통과했을 때에도 우리 군에 ‘유엔사자동교전규칙’이 없어 수십시간 동안 끌려 다니기만 하지 않았는가. 이번 NLL 침범의 배경으로는 최근 국제적으로 이슈화된 탈북자 문제를 들수 있다.미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등 국제적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데 대한 무력시위로 볼 수 있다. 이번 교전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다시 냉각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정부의 햇볕정책도 한동안 답보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동만(徐東晩) 상지대 교수= 우발적인지,실수인지,아니면 의도적인 것인지 아직은 분명치 않다.향후 북한의 공식 반응이 중요하다.이를테면 유감표명이라든가 하는 후속 움직임을 봐야 사건의 배경과 북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향후 남북관계 역시 이같은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전망이 가능하다. -박영호(朴英鎬) 통일연구원 정책실장= 이번 사태는 김정일이 내부를 분명하게 장악하고 있지 못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아리랑 축전 등을 볼 때 김위원장은 남측과 관계개선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따라서 이번 사태는 김 위원장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북한 해군이 3년전 서해교전의 패배를 만회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사건으로 월드컵 열기가 고조된 남측 사회가 다소 냉각되는 측면이 있겠지만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다만 햇볕정책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데다 두 아들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더 대북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겠나. -이종석(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꽃게잡이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북측의 의도를 잘 알 수 없다.앞으로 좀 더 북측의 반응등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의도야 어쨌든 이번 사태로 인해 남북관계가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동안 남북 당국간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민간단체 교류는 꾸준히 지속돼 사실상 남북관계 자체는 진행형이었다.그러나 이번 사태는 이같은 남북관계 진행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길재(柳吉在)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지난 99년 연평해전에 대한 북한군부의 보복성 공격으로 보인다.꽃게잡이 때문이라고 한다지만 사태가 발생한 정황으로 미뤄 계획적인 공격인 것 같다.NLL이 북측 입장에서 볼 때는 불리한 조건인 만큼 앞으로 이 지역에서 남북간의 군사대결이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우려된다.남북한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향후 남북관계는 우리측이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최근 민간교류가 있었다고 하지만 남북 당국간 교류는 중지돼 왔던 만큼 남측의 대응 정도에 따라 더 나빠질 수도,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하리 스스무(小針進) 일본 시즈오카(靜岡)현립대학 조교수= 한마디로 북한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왜 하필이면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3위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일전을 몇시간 앞둔 시점에서 이런 사건을 일으켰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이 중앙의 지시가 있었다던가 하는 의도적인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우발적인 측면이 강하다.어떤 측면에서는 북한측이 그동안 이맘때가 되면 주장해 온 NLL 문제를 미국과의 회담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과시하고자 하는 면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사망 4명,실종 1명 등으로 사건이 확대되면서 분명 북한측도 난처한 입장에 빠졌을 것이다. 이번 사건이 단기적으로는 한반도 정세에 나쁜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김대중 정권이 펼쳐 온 포용정책이 실패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의 그런 사건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미야즈카 도시오(宮塚利雄) 일본 야마나시가쿠인(山梨學院) 대학 교수= 사건의 핵심은 북한 상부의 지시가 있었느냐하는 점이다.그러나 현재 북한이 처한 상황으로 미뤄볼 때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다만 3년 전에도 똑같은 사건이 있었지만 지금 서해에서는 게잡이 철이기 때문에 북한 해군에는 나름대로 이 시기의 ‘매뉴얼’이 있다고 본다.이번 사건도 그 매뉴얼대로 하다가 한국 해상을 침범하고 급기야는 교전한 것이 아닌가 본다.그렇지만 하필이면 이 시기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남한의 대구에서 월드컵 3위 결정전이 열리는 날 뭔가 찬물을 끼얹는 듯한 이번 사건은 그래서 아쉬움을 남긴다.이번 사건이 어떻게 파급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북·일 관계에는 좋지 않다. 도쿄 황성기 특파원 김재천 홍원상기자 patrick@
  • 서해교전/전사.실종자 5인 주변/꽃다운 젊음 조국에 묻다

    “해사 동기와 부하들에게 모범이 되는 진정한 군인이었는데 안타깝습니다.” 29일 뜻밖의 서해교전으로 목숨을 잃은 윤영하(尹永夏·28·경기 시흥시 계룡아파트) 대위와 해군사관학교 50기 동기인 최민석(崔珉碩·28·해군 작전사령부 공보과장) 대위는 뜨거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침몰된 아군 고속정의 정장(艇長)인 윤 대위는 부하들과 함께 바다에 몸을 묻었다. “규정을 지키면서도 항상 동기들을 먼저 생각했고 주위 사람들이 저절로 따를 정도로 속이 깊었습니다.”최 대위가 기억하는 윤 대위는 해사시절부터 조용하고 원칙을 중시하는 ‘참군인’이었다. 92년 해사에 들어간 윤 대위는 해사 18기인 윤두호(尹斗鎬·61) 예비역 해군 대위의 장남으로 영국에서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했다.동시통역이 가능할 정도로 영어 실력이 뛰어났고,성격도 적극적이어서 96년 3월 우수한 성적으로 해사를 졸업,소위로 임관했다.특히 테니스와 수영이 수준급이었다.아버지도 현역시절 인헌무공훈장을 받았다. 아버지 윤씨는 “얼마전 TV 뉴스에서 ‘월드컵을 보지못하는 사람들’코너에 아들 부대가 소개됐다.”면서 “그때 TV로 본 아들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오열했다. 윤 대위는 178㎝의 키에 미남형이지만 아직 여자친구가 없을 정도로 부하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주위에서는 그를 “해군과 결혼한 사내”라고 불렀다. 윤 대위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김상규(40)씨는 “혹시나 해서 윤 대위 집에 전화했더니 아버지가 전화를 받고는 ‘전사했다.’고 하시면서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더라.”면서 “정말 대를 이어 꿋꿋하게 나라를 위해 사는 집안인데….”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윤 대위와 함께 사망한 서후원(徐厚源·21·경북 의성군 옥산면) 하사는 대구 기능대를 졸업한 뒤 지난해 7월 입대했다.아버지 서영석(49)씨는 “아들의 사망 소식이 믿기지 않는다”면서 “성실한 아들이었는데 이런 변을 당해 하늘이 내려 앉는 느낌”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황도현(黃道顯·22·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하사는 숭실대 기계공학과 2학년 재학중 휴학을 하고 지난 2000년 입대했다.아버지 황은택(56)씨는 “하룻밤을 자고 부대로 돌아가면서 ‘금방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고 울먹였다.황 하사는 100만원 가까운 월급 가운데 3분의1 정도를 꼬박꼬박 집에 보내는 등 효자로 알려져 있다. 조천형(趙天衡·26·경기 평택시 안중면)하사는 딸 시은이의 백일을 맞아 지난 22일 휴가를 나온 것이 가족들이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아들의 주검이 안치된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한 어머니 임헌순(56)씨는 “사병으로 복무하던 아들이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하사관으로 바꿨다.”면서 “계속 사병으로 근무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라며 끝내 실신해 응급실로 실려갔다. 방한칸짜리 월세방에 살고 있는 아내 강혜정씨는 “시은이 아빠,시은이 아빠”라며 통곡했다. 실종된 한상국(韓相國·27·경기 평택시 포승면)중사의 가족들은 생사를 모른 채 발만 동동 굴렀다. 이영표 황장석 장세훈기자 shjang@
  • 서해교전/시민들 반응 “”월드컵 축제에 찬물””

    ‘월드컵 축제’말미에 터진 북방한계선(NLL) 상에서의 남북교전은 우리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6·15 남북선언 이후 조성된 남북 화해·협력의 기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린데다가 자칫 신 냉전구도로 복귀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컸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명확한 진상규명과 강경대응을 요구하면서도 “남북 평화체제가 깨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이해진 안보정신을 가다듬고 북한의 사과·보상과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시백(李時伯·63·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회장)- 남북관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아 아쉽다.월드컵 경기를 북한에서도 방송했다는 소식을 듣고 코리아가 붉은악마로 하나될 것이라 기대했었는데 허탈하다.남북관계에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 -정용탁(鄭用琢·56·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 월드컵 마지막 한국경기가 있는 날 북측이 도발하고 젊은 청년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에 분노가 인다.마치 손님 초대한 날,아이가 심통부린 것처럼 세계 손님들에게면구스럽다. -김고은(23·대학생)- 슬픈 일이다.우선 축제를 잘 마치는 것이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월드컵이 정리되면 철저하게 잘못을 따져야 할 것이다. -존 코이(56·아일랜드인)-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아일랜드도 이러한 사고가 터진다.열심히 준비한 잔치에 좋지 않은 결과가 생겨 안타까울 뿐이다.한국민이 지혜롭게 해결하리라 본다. -손낙구(40·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 이 사태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쪽으로 가면 안될 것이다.신중하게 접근하자. -신해식(35·민주참여네티즌연대 대표)- 그동안 북한이 월드컵을 방송,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는데 결국 그들의 목표가 남북적화에 있음을 이번사태가 보여준다.월드컵 3,4위전이 있는 날 세계가 집중할 때 강력한 도발을 감행한 것은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제스처라고 볼 수있다. -김지연(29·방송작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모두 북한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먼저 정확한 진상을 공개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라고 본다. 오일만 구혜영기자 oilman@
  • 서해교전/ 北선박 올 14차례 월경 예상된 ‘제2 꽃게전쟁’

    29일 서해상에서 발생한 남북한 해군의 포격전은 지난 99년 6월 서해교전에 이어 ‘제2의 꽃게전쟁’으로 충분히 예상된 충돌이었다. [대한매일 5월6일자 25면 보도] 해마다 3월말부터 6월만 되면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는 우리 어선뿐 아니라 북한과 중국 어선까지 끼어들어 경쟁적으로 꽂게잡이에 나선다.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꽃게잡이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북한 어선 및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매년 15차례 정도 침범하곤 했다.올들어서만 지난 1월4일부터 14차례 NLL을 넘어왔다.교전 하루전인 28일 오전 9시24분쯤에도 연평도 서북방 10.8㎞ 해상에서 꽃게잡이 북한 어선을 감시하던 북측 경비정 2척이 NLL을 넘었다가 1시간10분만에 되돌아갔다. 지난 20일 새벽에는 연평도 서남쪽 40㎞ 해상에서 NLL을 넘어 표류중인 북한 어선 3척이 우리 해군 고속정에 발견돼 조사를 받은 뒤 오후 5시쯤 호위를 받으며 북쪽으로 되돌아가는 일까지 일어났다. NLL 침범 사례는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41차례나 된다.가장서쪽인 백령도 부근에서 20차례,대청도·소청도에서 6차례,연평도 근처에서 15차례씩 각각 발생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최근 몇년 사이 중국 근해가 크게 오염되면서 중국의 대규모 꽃게잡이 어선단이 백령도 근해까지 접근,북한 어선 및 경비정과 자주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북측 어선들은 남북관계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노골적으로 NLL을 넘어 남쪽 해역에서 조업을 강행한데다 지난해 6월말부터는 우리 어선의 어로한계 구역이 NLL 근처까지 확대됨에 따라 3국의 어선이 황금어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따라서 이번 교전사태는 외화벌이 어선 보호 임무를 띤 북한 경비정들이 우리 고속정의 귀환 경고방송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다 의도적으로 무력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관련,합참 관계자는 “3년전 서해교전에서 피해를 크게 입었던 북한경비정들이 어선보호를 이유로 보복성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올해 北 NLL월선 일지 -1월4일 경비정(연평도 서방) -3월1일 어선(연평도 동북방) -3월17일 경비정(연평도 서방) -3월27일 경비정(백령도 서북방) -4월22일 경비정(백령도 서북방) -5월3일 경비정,어선(연평도 서방) -5월4일 경비정(백령도 서북방) -5월29일 어선(백령도 동방) -6월11일 경비정(소청도 동남방) -6월13일 경비정(연평도 서방) -6월20일 어선(연평도 서남방) -6월27일 경비정(연평도 서방) -6월28일 경비정(연평도 서방) -6월29일 경비정(연평도 서방)
  • 서해교전/ 외신반응 “”한반도 정세 순식간에 혼미””

    (도쿄 황성기·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전경하기자) 외신들은 남북한 해군이 29일 오전 서해 북방한계선(NLL)부근에서 교전을 벌인 사건을 일제히 긴급뉴스로 타전했다.이들은 월드컵 말미에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한 점,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우호적인 분위기가 흐트러진 것 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일본 언론- NHK방송은 속보와 정규 뉴스시간을 통해 서해교전을 머리뉴스로 보도하고 “이번 사건은 월드컵 3,4위전이 열리기 불과 몇시간 전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보도했다. 일본 석간신문들도 일제히 1면 머리뉴스로 서해교전을 전하고 남북한이 다시 긴박한 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도쿄신문은 ‘남북조선 한때 교전’이라는 1면 머리기사에서 월드컵 폐막을 하루 앞두고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조성됐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남북관계가 한층 악화될 것”이라면서 “북-미·북-일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가운데 남북관계도 급속히 냉각돼 한반도정세는 순식간에 혼미를 더하는 심각한 사태가 됐다.”고 풀이했다. -중국 언론- 관영 신화통신은 서해교전을 북한측 주장을 중심으로 보도하는등 북측에 유리하게 편향적으로 전했다.이 통신은 한국측이 먼저 도발했다는 북측 말만 장황하게 먼저 늘어놓은 뒤 한국측 주장을 기사 뒤쪽에서 전했다. 한편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런민왕(人民網)은 한국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엄중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언론- 뉴욕타임스는 29일 한국-터키전이 열리는 날 발생한 남북한간 서해교전으로 그동안 월드컵 경기를 통해 조성된 것으로 여겨져 온 남북한간 우호정신이 깨졌다고 보도했다. CNN은 이번 사건이 중단된 북·미대화의 재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고 평가했다. -주요 통신- 긴급타전 AP통신은 오전 11시27분,AFP통신은 11시30분,교도통신은 11시48분 교전사실을 처음 보도했다.외신들은 국방부 발표 전후 사망자가 확인되자 다시 긴급뉴스를 타전,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했다.러시아의 이타르 타스 통신도 긴급뉴스로 소식을 전했다. 영국 BBC방송은 이번 사건이 남북관계를 2년전 개최됐던 남북정상회담 이후 최악의 상태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독일 공영 ARD방송도 교전사실을 주요뉴스로 보도하면서 이번 사건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남북한 화해노력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는 “남한과 북한의 해군 대치상황은 남북대화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전망했다.khkim@
  • 서해교전/ 연평도 해역 여객기·어선 운항 전면 통제

    해양수산부는 29일 남북간 서해안 교전에 따라 인근 해역의 여객선과 어선의 운항을 전면 통제하고 비상대책반을 설치,운영에 들어갔다. 우선 연평도·백령도·대청도 부근에서 고기잡이 중인 우리 어선 165척 가운데 139척을 귀항시켰으며,나머지도 인근 섬으로 긴급 대피시켰다.여객선과 어선의 출항 재개는 군당국과 협의해 결정할 방침이다.남북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은 금강산 유람선 설봉호와 한반도에너지 개발기구(KEDO) 여객선을 비롯해 인천∼남포,부산∼나진을 각각 운항하는 컨테이너선 2척이다. 주병철기자 bcjoo@
  • 서해교전/ 부상병들 교전순간 증언

    29일 남북 해군간 교전에서 부상해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된 병사들은 교전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침몰한 고속정의 갑판장 이해영(51) 상사는 “우리가 경고방송을 한 지 2∼3분 뒤 북한이 조타실쪽을 먼저 쏘았다.”면서 “조타실이 계속 당하기에 우리가 즉각 대응사격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 상사는 “교전 중 1∼2m 옆에 있던 서후원 하사가 적탄에 옆구리를 맞고 쓰러져 있었다.”면서 “북한이 감정 없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아예 작정을 한 것 같았다.”고 몸서리를 쳤다. 황창규(29) 중사는 “북한 경비정이 전방 914m까지 접근해 우리 고속정 왼쪽 옆으로 포를 쐈다.”면서 “탱크 포신만한 포신이 3개 설치돼 있었으며,그렇게 큰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황 중사는 “그들이 포를 쏘자마자 1,2초 후에 바로 대응사격을 지시했다.”면서 “그러나 북한군의 공격으로 배의 전원이 모두 나간 상황이어서 전자동 조작이 안돼 수동으로 포를 쏘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교전이 끝날 무렵 지휘부가 있는 함교쪽으로 올라가 보니 윤영하 대위가 등쪽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으며,맥박이 뛰고 있어 인공호흡을 두차례 했으나 곧 맥박이 끊어졌다고 전했다. 함교쪽에 있던 권기형 상병은 왼쪽 손가락 부분이 북한군의 총탄에 맞아 모두 잘려나간 채 오른손 하나로만 탄창을 갈아끼우고 총을 쏘고 있었다. 황 중사는 “함교 밑 조타실에는 화재가 발생,조천형 하사가 완전히 불길에 휩싸여 새까맣게 굳은 채로 숨져 있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황도현 하사는 포탄을 맞아 머리부분이 심하게 함몰됐다고 했다. 이들은 “숨진 부대원들의 명복을 빈다.”면서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더 열심히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월드컵/4강 신화 남기고…/한국,터키에 패배…아쉬운 4위

    바닥난 체력 탓일까,풀린 정신력 탓일까.한국축구가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하려던 꿈을 접고 2002 한·일월드컵을 4위로 마감했다.한국은 29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터키와의 3,4위전에서 월드컵 통산 최단시간 골을 내주는 등 전반에만 3실점하는 바람에 막판 추격에도 불구하고 2-3으로 아쉽게 무너졌다. 이로써 한국은 54년 스위스월드컵 때 0-7로 참패한 빚을 48년만에 되갚는데 실패하며 통산 전적에서도 1무3패로 뒤졌다. 48년만에 본선 무대에 복귀한 터키는 개최국 한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당당히 3위를 차지해 이번 대회에서의 돌풍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한국은 이번 대회 예선에서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 등 강호들을 상대로 48년 동안 비원으로만 간직해온 1승과 16강 진출을 한꺼번에 달성한 것은 물론,우승후보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차례로 꺾고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4강까지 오르는 쾌거를 일궈냈다. 연휴와 남북한의 서해 교전 후유증 등으로 길거리 응원단이 당초 예상한 430만명에서 214만여명으로격감한 가운데 펼쳐진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김태영 최진철 등 핵심 수비수들이 결장한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전반 3골을 내줘 일찌감치 패배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홍명보가 유상철의 패스를 어설프게 컨트롤하다 터키 일한 만시즈에게 공을 빼앗겼고 이를 이어받은 하칸쉬퀴르가 왼발로 가볍게 차 넣었다. 이 때가 11초.지난 62년 칠레대회 때 체코의 마세크가 멕시코전에서 기록한 종전 최단시간 득점기록 15초를 4초 경신한 신기록이다. 한국은 전반 9분 이을용의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뽑았지만 13분과 32분 수비진이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드러내며 일한 만시즈에게 연속골을 내줘 대세를 망쳤다. 후반들어 한국은 홍명보 대신 김태영을 투입해 수비를 보완한 뒤 차두리 최태욱 등 신예 공격수들을 기용해 반격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하지만 문전에서의 처리가 정교하지 못했던 데다 터키 골키퍼 뤼슈튀가 빛나는 선방을 하는 바람에 번번이 득점 일보직전에서 물러서다 종료 직전 송종국이 한 골을 만회하는 데 그쳤다. 대구 임병선 이종락 박록삼기자 bsnim@
  • 서해교전/ 北·美대화 차질 없나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서해에서의 남북 해군간 교전으로 급물살을 타던 북·미 대화 움직임도 차질을 빚게 됐다.북·미간 대화 재개는 한·미·일 3국의 공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남북한 관계가 경색되면 북·미 대화 역시 정상적으로 추진되기는 어렵다. 물론 서해교전이 북한의 고의적 도발인지 여부는 단정할 수 없다.그러나 해군 4명이 교전 중 사망하고 실종자까지 발생했다면 우발적 사건으로 치부하더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북한의 선제공격에 의해 교전이 시작됐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특사 파견 논의는 당분간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물밑 접촉은 있을지언정 공식적인 대화 재개는 한반도에서의 냉기류가 걷힐 때까지 잠복기를 거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한·미 동맹관계를 감안,사태추이를 지켜보자는 자세다.섣부르게 대화를 중단한다든가 하는 반응도 자제하고 있다.워싱턴의 소식통도 “북·미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단언할 수는 없다.”고 말했지만 7월 중순 평양에 특사를 보내려는 방안은 물건너 갔다는 반응이다. 서해교전은 북·미 양측이 의제와 대화시기 등을 놓고 뉴욕에서 막바지 조율작업을 벌이던 중에 터져 미묘한 해석을 낳고 있다.1999년 서해교전의 보복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과의 대화를 지연시키려는 북한의 정략적 의도가 깔렸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서해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남북관계를 경색시키지만 미국과의 껄끄러운 대화를 피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논의하기를 기피하는 미사일 개발 문제를 비롯해 재래식 무기와 인권문제를 꾸준히 제기했다.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도 핵사찰 수용 압박도 가했다.특히 탈북자들의 잇따른 망명 시도로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번 사태는 ‘햇볕정책’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의 입지를 높여 장기적으로 북·미 관계개선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이들은 대북특사 파견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으며,북한의 위협을 줄이기 위해 대화보다는 실력행사를 주창한다.북한과의 대화 목적도 관계개선이 아니라 북한의 위협을 재는 잣대 정도로 생각한다.서해교전이 북한의 위협을 그대로 반영하는 장면이라고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18개월의 산고를 거친 북·미 대화 재개가 완전히 원점으로 되돌아갈지는 속단키 어렵다.만약 우발적인 사건으로 마무리되고 희생자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뒤따른다면 한반도의 대치국면을 완화하기 위해서도 북·미 대화가 재가동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다만 단기적인 측면에서 북·미 대화 채널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m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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