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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중화굴기와 천안함/구본영 논설위원

    최근 사업차 중국을 다녀온 지인이 ‘떠오르는 중국’을 다시 환기시켰다. 그는 올해 포드로부터 볼보 자동차를 인수한 지리(吉利) 그룹이 상하이 인근에 조성 중인 공장부지를 둘러봤단다. 일본이 자랑하던 골프용품 브랜드 혼마도 오래 전에 중국 기업에 인수·합병됐다고 한다. 구문임에도 중국의 엄청난 ‘식탐(食貪)’에 새삼 놀랐다.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은 강대국의 견제를 의식해 힘을 과시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외교전략을 폈다. 즉 ‘도광양회(韜光養晦·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 정책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장쩌민 시대를 거쳐 현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4세대 지도부는 ‘화평굴기(和平?起)’란 기치를 내걸었다. 산이 우뚝 솟는 모양을 가리키는 ‘굴기(?起)’가 상징하듯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자신감을 깔고 있다. 다만 평화적(和平)이란 수식어에서 보듯이 여전히 조심스러움은 유지하고 있다. 이제 중국 내부의 기류는 화평이란 꼬리표마저 뗄 참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겸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앞다퉈 전하고 있지 않은가. 내달 1일 개막되는 상하이 엑스포는 중화굴기(中華?起·중국이 떨쳐 일어남)의 현장인 셈이다. 192개국이 참가하는 이 박람회에 예상 관람객이 외국인 500만명에 내국인 6500만명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중국이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리거나’ , ‘평화롭게 일어서는’ 노선을 표방하지 않더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형국이다. 그 대국굴기(大國?起)의 낌새에 얼마간 착잡해지는 요즘이다. 중국보다 산업화에 앞선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호시절이 짧은 봄날처럼 가고 있다는 감상 때문이 아니다.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중국 변수’의 영향력이 세진 만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외교적 과제도 커졌다. 당장 천안함 사태가 1차적 시험대다. 정부는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6자회담 참가국들과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대응 과정에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특히 중국의 협력이 필수적인 까닭이다. 미국조차 중화굴기의 위력을 실감하는 듯하다. 캠벨 국무부 차관보는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중국과 대책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두 번의 핵실험으로 안보리의 제재를 받고 있지만, 중국이 미온적이라 제재의 효과는 미미하다. 중국이 북한의 탈선까지 비호하는 한 진정한 세계의 지도국가로 떨쳐 일어설 수 없음을 중국 지도부가 깨달았으면 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通中封北(통중봉북)’ 천안함 외교전

    정부는 천안함 침몰 사건의 가해자가 북한일 가능성이 점차 커져감에 따라 이 문제의 해결 과정에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협력을 얻기 위한 본격적인 외교전에 착수했다. 외교통상부는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는 상황에 대비,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북한의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끌어내는 데 우선 주력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26일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중국은 물론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그리고 6자회담 참가국인 일본에 그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대응과정에서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특히 오는 30일 상하이에서 열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이 중국의 천안함 사건 해결 협조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회담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중 정상회담의 의제로 잡혀 있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후 주석이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천안함 얘기를 꺼낼 것으로 본다.”면서 “이 과정에서 우리측의 입장을 설명할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스웨덴 등이 참여하는 다국적 공조 조사를 진행 중인 만큼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객관적인 조사 결과가 나올 것”이라면서 “우리가 별도로 알려주지는 않고 있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중국, 러시아 등의 이해 속에 천안함 문제가 안보리로 회부될 경우 폭발 책임 국가에 대한 국제 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특히 한국 출신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도 일정 부분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태스크포스(TF) 팀 형태로 출범시킨 ‘천안함 사건 대책반’의 반장에 6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임명함으로써 이 사건의 원인제공자로 북한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위 본부장이 천안함 사건의 중심으로 나서면, 별도의 협의 기구 없이 기존에 가동 중인 6자회담 참가국 간 협의 채널로 천안함 사건 공조를 타진할 수 있다는 이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김성수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월드뉴스 위클리 프리뷰 (4월26~5월2일)]

    [월드뉴스 위클리 프리뷰 (4월26~5월2일)]

    이번주(4월26~5월2일)에는 총선을 앞둔 영국의 선거 운동 열기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박람회 사상 최대 규모인 상하이 엑스포가 주요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한다. ●영국총선 3차 TV 토론회 다음달 6일 실시되는 영국 총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집권 노동당과 야당인 보수당·자유민주당 등 3당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25일 텔레그래프와 여론조사기관 ICM이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보수당이 35%로 선두를 지켰고 자민당이 31%로 뒤를 이었다. 노동당은 26%로 ICM 조사에서 6개월 이래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1차 토론회로 급부상한 닉 클레그 자민당 당수는 정치 자금 스캔들에도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승승장구 중이다. 자민당이 이 같은 인기를 막판 표심까지 연결할 지는 이번 주 여론 추이에 달려있다. 29일 경제 문제를 놓고 벌이는 3차 TV토론회에서도 클레그 당수가 선전할지, 고든 브라운 총리가 막판 뒤집기에 성공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상하이 엑스포 새달 1일 개막 192개 국가와 50개 국제기구가 참가하는 상하이엑스포가 1일 개막, 184일간 대장정을 시작한다. 개막 전후로 102개국 부총리급 이상의 인사들이 상하이를 방문함에 따라 외교전도 치열할 전망이다. 행사 기간 동안 7000만명 이상이 관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8일에는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와 헤르만 판롬파위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만난다. 일·EU 정상회담은 연례 행사이지만 하토야마 정권의 ‘탈미(脫美) 구상’과 맞물려 예년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히 중국이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 일본에게는 EU와 우호적 관계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골드만삭스 부사장 조사위 출석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사기 혐의로 제소당한 골드만삭스의 파브리스 투르 부사장이 27일 미 상원 국토안보위원회 산하 상설조사소위에 출석,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사기 혐의와 관련, 골드만삭스에서 개인으로는 유일하게 피소된 투르 부사장이 실제로 사건의 ‘몸통’인지, 조직의 위법 행위를 책임지는 ‘희생양’인지 판단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거릿 찬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예정대로 26일 2박3일 일정으로 평양을 찾는다. WHO 사무총장의 방북은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찬 사무총장은 북한의 의료 시설 등을 돌아보고 대북 지원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원불교 두 원로, 소태산 대종사를 회고하다

    원불교 두 원로, 소태산 대종사를 회고하다

    원불교가 오는 28일로 개교 95년을 맞는다. 1916년 소태산(少太山)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개창한 원불교는 민족종교의 하나로 아직 탄생 100년이 채 안 됐지만,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내 4대 종단의 하나로 성장했다. 이런 괄목할 만한 교세 확장을 두고 감회가 색다른 사람들이 있다. 바로 교조(敎祖)인 소태산 대종사 때의 원불교 초기 교단에서부터 몸을 담고 활약했던 원로 교무들이다. 이들은 원불교가 처음 교단의 틀을 갖출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원불교와 함께한 산증인들이다. 대각개교절을 앞두고 지난 19일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원불교 원로인 김정용(85) 종사(宗師·원불교 법계 중 하나)와 전팔근(81) 종사를 만났다. 생전에 소태산 대종사를 친견한 몇 안 되는 제자 중 하나인 이들은 자상하면서 빈틈이 없었던 생전 소태산 대종사의 모습에 대해 전했다. 원불교 교단 내에서 대종사를 친견한 제자들은 남녀 교무를 합해 20명 정도 남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아 그 중 생전 대종사의 모습을 구술할 수 있는 제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중 김 종사는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4살에 소태산 대종사를 처음 만났다. 그때 기억을 두고 김 종사는 “대종사의 성체(聖體)는 한쪽 벽을 가득 채울 만큼 큰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대종사는 신장이 180㎝가 넘었고 목소리 역시 남달라 먼 곳에서도 설법하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면서 “그런 모습은 그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성스러운 모습이었다.”고 했다. 그가 대종사를 친견한 건 5년 동안이었다. 그가 19살 때 대종사가 열반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김 종사는 주로 교단 교육계에서 활동했다. 20대 후반에 원광대학교에 처음 부임한 그는 학교 교무행정 등을 관장하다 총장까지 역임한다. 김 종사는 대종사 생존 당시 일제에 의해 자행된 종교 핍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당시 한 일본 순사가 밤마다 와서는 대종사가 머무르는 방 툇마루 아래에 숨어 있었지. 그러고는 대종사께서 누구를 만나는지, 또 독립운동 자금이 오고가지는 않는지 밤새 거기 누워 감시를 했어.” 김 종사는 원불교 경전인 ‘교전(敎典)’이나 ‘대종경(大宗經)’에 그런 기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어릴 때 직접 듣고 보았던 것들이 지금 와서 보니 경전에도 많이 빠져 있다.”면서 “우리 원로들이 죽고 나면 아무도 모를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김 종사가 최근 그런 이야기들을 모아 ‘생불님의 함박웃음’(원불교출판사 펴냄)을 낸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한편 전 종사는 대종사 생전에 출가하지는 않았지만 바로 이웃에 살아 생전 그의 모습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는 “대종사는 당시 제자들을 꾸지람하는 소리가 이웃에 모두 울릴 만큼 음성이 컸고, 매사 철저한 인물이었다.”고 회상했다. 전 종사는 초창기 원불교 해외 포교 활동의 주역이었다. 그는 ‘Won-Buddisim’이란 영문잡지를 펴내는가 하면, 처음으로 교전을 영문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원불교가 언제까지 한국에만 머무르겠나.”라는 생각에 해외 포교를 겨냥해 서울대 영어교육과에서 영어 실력을 기르기도 했다. 교단 초기 그의 노력에 힘입어 현재 원불교는 전 세계 19개국에 60여명의 교무가 진출해 교당을 세우고 해외 포교에 힘쓰고 있다. 그런 발전된 모습을 보고 전 종사는 “생전 대종사께서 머지않아 서양인들이 와서 우리의 법을 가져 가려고 애쓸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지금 그대로 실현된 것 같다.”면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또 “원불교는 인간 본성에 있어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고 처음으로 말한 종교”라며 “이런 평등 사상이 앞으로 원불교 발전의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글·사진 익산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도시와 길] 서울 미아리고갯길

    [도시와 길] 서울 미아리고갯길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떠난 이별 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미아리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단장의 미아리고개’란 옛노래다. 첫 음절만 들어도 노래에 한(恨)이 가득 서려 있다. 철사로 손을 묶이고 맨발로 다리를 절면서 뒤를 자꾸만 돌아보며 북쪽으로 끌려가는 남편과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부인의 애틋한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 있다. 이 노랫말을 지은 반야월(93)선생은 실제로 피란 중 맏딸이 공포에 질려 숨져 고갯길에 자신의 손으로 묻을 수밖에 없었던 슬픈 사연이 있다고 한다. 미아리고개는 성북구 동선동과 돈암동 사이에 있는 고개로 되넘이고개(되너미고개)라고도 불렸다. 병자호란 때 오랑캐, 즉 ‘되놈’이 한양을 침범할 때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되너미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남쪽인 돈암동에서 길음동을 지나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이 고개가 마지막 고개여서 되너미고개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미아7동에 있는 불당골 자리에 있던 ‘미아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 유래가 분분하다. ●한국전쟁 땐 최후의 방어지 역할 미아리고개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기 때문에 최후의 방어지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곳이다. 경사가 어찌나 가파르던지 길음시장과 부근 주거지역보다 도로의 높이가 높아 4·19혁명 때에는 미아로 옆 길가로 버스가 굴러떨어지는 사고도 있었다 한다. 미아로는 돈암동로터리를 기점으로 돈암동, 길음동을 동북방향으로 뻗어 미아삼거리까지 폭 25m, 길이 1.5㎞에 달한다. 도성의 북쪽 방향에 위치해 의정부, 포천, 철원 등지에서 서울로 입성하는 유일한 관문이자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한 탓에 교통정체와 사고가 잦았다. 1964~1966년 대대적인 도로확장공사로 미아로 도로의 폭은 8m에서 구간에 따라 23~35m의 4차선도로로 확장되었다. 경사도 10도나 낮아졌다. 그러나 대대적인 확장공사에도 불구하고 미아로의 교통정체는 계속됐다. 결국 2007년 4월 603억여원(보상비 78.6% 차지)을 들여 성북우체국에서 창문여고에 이르는 구간을 폭 35m, 왕복 7~8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에 들어가 1년 10개월만인 지난해 2월 개통해 숨통이 트였다. ●시각장애인들의 점성촌 고갯길이 시작되는 태극당 빵집 맞은편에 점성촌이 들어선 것도 미아로 확장공사를 벌이며 경사를 완만하게 만들기 위해 옹벽을 세우면서부터다. 남북 방향으로 옹벽을 만들면서 동서로 횡단하는 길을 그 밑으로 뚫어 자연스레 굴다리가 생겨났다. 중구에서 이주해온 시각장애 역술인들이 옹벽과 굴다리를 의지하며 하나 둘 점판을 깔면서 터를 잡았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00여곳이 성업하면서 외국인들도 찾는 관광코스가 될 정도였으나, 지금은 간신히 10여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미아리고개에 점집이 번성하게 된 이유는 고개 너머에 조성된 한국인 전용묘지 덕분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영혼은 북으로 드나든다고 믿었는데, 미아리고개가 바로 영혼이 다니는 길목이었던 셈이다. ●‘미아리 텍사스촌’도 사라지고… 단장의 미아리고개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아리 텍사스촌’이다. 이곳은 고갯길을 넘자마자 시작된다. 예전에 월곡동은 미아로를 중심으로 길음동과 마주하고 있는 곳으로 미아시장이 형성되어 길음동 사람들이 자주 왕래했다. 지대가 모래땅이어서 물이 잘 나와 콩나물공장들이 즐비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1960년 이후 염색공장, 피혁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쇠락했다. 이 지역이 성매매 집결지로 유명해진 것은 1968년 ‘종삼(종로3가 사창가)소탕작전’이 실시된 이후 포주와 성매매 여성들이 미아시장 근처 월곡동 88일대에 터를 잡으면서부터이다. 구 관계자는 “미아리 텍사스라는 지명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성매매 집결지 안에 있는 술집이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술집의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했다. 그는 “서부영화 속에 등장하는 술집이 1층은 술 마시며 포커를 치고 2층에서 잠을 자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탓에 붙여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창 호황을 누릴 적엔 400군데서 1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황량할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흉물스럽게 남겨진 몇몇 건물의 먼지 쌓인 유리문과 너덜너덜해진 커튼, 굳게 잠긴 오래된 문에선 호시절이 언제였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이들이 이른바 ‘9·23 사태’라고 부르는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 실시 이후 여성들이 하나둘 떠났기 때문이다. ●39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탈바꿈 성매매 집결지라는 오명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반가운 것은 이곳이 신월곡 1·2·3구역으로 나뉘어 2003년 미아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된 것. 구 관계자는 “올해 토지보상문제가 해결되면 내년 5월쯤에는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지 않겠느냐.”면서 “그래도 여전히 골목 업소들에선 간간이 영업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특히 이 일대는 39층 높이의 주상복합 아파트 등 랜드마크 건물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강북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 이 길을 지나가다 보면 곳곳에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잔뜩 들어서고 있다. 얼핏 보아도 금세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뉴타운사업과 관계자는 “성매매집결지에 달라붙은 미아시장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내년 6월이면 지하 6층, 지상 23층 198가구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재탄생한다.”면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옛 추억이 서린 곳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이 한편으론 안타깝지만 주민들 대부분은 윤락가 동네라는 어두운 이미지를 벗을 수 있어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新 차이나 리포트] 中외교 60년 현주소

    “친구가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 중국 외교의 수장인 양제츠 외교부장은 2009년 10월1일 신중국 성립 60주년을 앞두고 중국 외교의 현주소를 이렇게 평가했다. 건국 초기 18개 국가에 불과했던 수교국이 60년 만에 10배인 171개국으로 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 표현이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중국은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적인 발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실제 중국은 지금 ‘아세안+1’ ‘상하이협력기구’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 ‘중국·유럽연합 정상회의’ 등 거의 모든 대륙과 1대다(多) 협력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다. 외교강국 미국도 이렇게까지 외교전선을 확대하지는 못했다. 중국 외교의 뿌리는 1953년말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가 주창한 ‘평화·공존 5원칙’ 외교노선이다. 미국과 소련 두 슈퍼파워가 지구를 반분하던 시기, 중국이 선택한 외교노선은 적절했다. 철저히 비동맹을 천명하면서 비동맹국가들을 규합해 나갔다. 그때부터 공들인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금 절대적인 우호세력이 돼 있다. 양제츠 부장은 1991년부터의 관례대로 올해도 아프리카를 가장 처음 방문했다. 2006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에는 아프리카 48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한 대륙의 정상 수십명을 동시에 불러모을 수 있는 힘을 중국은 갖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2010년 중국외교의 역점사항으로 영향력(정치), 경쟁력(경제), 친화력(이미지), 호소력(도의)을 주문했다. 정치적 영향력을 최우선순위에 올려놓은 점이 특히 눈에 띈다. stinger@seoul.co.kr ●도움주신 분들 ▲정정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중국사무소 소장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대표처 수석대표 ▲박한진 코트라 베이징KBC 부장 ▲김명신 코트라 중국통상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 ▲박인성 저장대 토지관리학과 교수 ▲류칭 중국국제문제연구소 미국연구부 부주임 ▲팡징윈 베이징대 도시환경학원 교수 ▲류진허 중국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류시양 중국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취우강 중국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 여 “北공격 아니냐” 야 “靑·軍 냉정 잃어”

    여 “北공격 아니냐” 야 “靑·軍 냉정 잃어”

    8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선 천안함 침몰 사건을 바라보는 여야의 시각차가 뚜렷이 드러났다. 야당은 수습 과정의 문제점을 따졌고, 여당은 북한 공격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국방장관 23분 늦게 보고받아” 민주당 박선숙 의원은 사건 발생 당시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합참의장의 동선을 시간대별로 제시하며 “국방부장관은 첫 상황보고를 대통령보다 23분이나 늦게 받고,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열린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에도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면서 “대통령이 사건 초기에는 북한 공격으로 파악했고, 인근 속초함의 함포 사격 명령을 지시했다던 국방부장관이 이를 번복한 만큼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또 “지난 1월 북한이 미리 공지하고 북방한계선(NLL) 이북 해상에 사격을 했을 때, 우리 군은 벌컨포로 응사했는데, 만일 북한이 이번에 우리의 새 떼 오인사격에 대응사격을 했다면 사태가 어찌 됐겠냐.”면서 “청와대와 군이 냉정을 잃고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지하 벙커로 가기 전 국방부 상황실에서 외교안보수석 등과 전화로 논의했고, 속초함 함포 사격은 교전수칙대로 2함대 사령관이 명령한 뒤 내게 보고했다.”면서 “대통령은 함포 사격을 놓고 ‘너무 과도한 조치가 아닌가.’하는 걱정을 했다.”고 밝혔다. 같은 당 신학용 의원은 침몰 직전 천안함 함수(艦首·뱃머리) 사진을 공개하며 충돌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뱃머리의 뾰족 튀어나온 앞부분이 없어졌고, 함수 쪽 난간이 휘어졌으며, 큰 흠집도 있다.”면서 “‘쾅, 쾅’ 소리가 났다는 것을 보면 부딪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인양을 끝낸 뒤 토론하자.”며 답변을 보류했다. ●“김정일 권력승계 때처럼 테러?” 반면 한나라당 김옥이 의원은 “생존 장병들의 공개 진술로 내부폭발 가능성이 사라졌다.”면서 “북한의 권력이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넘어갈 때 테러를 자행한 사례를 보면 이번에도 북한이 공격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김 장관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조사할 것”이라고만 했다. 김 의원은 “세계 5위를 자랑하는 우리 군이 의무전용헬기가 없어 미국 헬기를 빌려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자, 김 장관은 “2015년까지 도입하겠다.”고 답했다. 같은 당 황진하 의원은 “안보의 생명은 군사기밀”이라면서 “야당의 장관해임 주장에 신경쓰지 말고 사태수습에 전력을 다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2012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문제로 안보가 심각해지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김 장관은 “전작권과 군사주권은 별개의 문제”라면서 “군으로서는 전작권이 넘어오는 게 가장 어려운 상황이어서 국가적 문제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구 허백윤기자 window2@seoul.co.kr
  • [천안함 생존자 증언] 실망하다 절망한 가족들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기자회견이 있은 지 5시간 만에 함미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이 발견되자 실종자 가족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나타냈다. 기적을 바라는 실낱같은 기대감이 허물어졌다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실종자가족협의회는 긴급회의를 갖고 향후 대응책 등을 논의했다. 시신의 신원이 나오기 전에는 극도의 전화 공포증을 보이는 등 아노미 상황을 방불케 했다. 이상민 병장의 누나 상희(28)씨는“군에서 (사망사실을 알리는) 전화 온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며 “불안해서 미치겠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앞서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진행된 천안함 생존장병 합동기자회견을 유심히 지켜보던 실종자 가족들은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음만 아프다. 오히려 안 보는 게 나을 뻔 했다.”며 고개를 젓는 가족들도 있었다.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 예비군훈련장 내 실종자 가족숙소에서 TV를 통해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일부 가족들은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기도 했다. 조진영 하사의 아버지는 “자식을 해군에 보낸 것을 이렇게 후회해 본 적이 없다.”며 말끝마다 한숨을 빼놓지 않았다. 같은 자리에서 함께 만난 김종헌 중사의 작은 아버지 호중(59)씨는 부대 밖 해군회관 앞 벤치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들은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다.”면서 천안함 생존 장병 합동기자회견을 시청한 심경을 토로했다. 조씨는 “처음부터 기대는 안했지만 이 정도로 실망스러울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다른 실종자 가족들도 화가 난것 같다는 말에 조씨는 “기가 차서 울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도 이렇게 애들 장난보다 어설프지는 않을 것”이라고 군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김씨도 “(생존 장병들이)이미 입을 다 맞추고 나왔다.”며 “지난 13일동안 한 것이 고작 저렇게 입을 맞추는 것이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2002년 서해교전 생존자였던 박경수 중사의 사촌형 경식(36)씨는 “국방부가 모든 책임을 생존 장병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면서 “생존장병들을 걱정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환자복 입은 사람들을 줄세워서 앉혀 놓고 기자회견을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이슈 Q&A] 아프간 카르자이 反美발언 왜

    [이슈 Q&A] 아프간 카르자이 反美발언 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연합군을 파견한 미국과 서방을 계속 ‘건드리고’ 있다. “나를 더 압박하면 탈레반에 합류하겠다.”라거나 “칸다하르 지도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군사작전을 펴지 않겠다.”는 말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낸다. 미국의 지지 덕분에 대통령이 된 카르자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 분야 전문가인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와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로부터 아프간 정세의 향방을 들어 봤다. Q: 카르자이가 민감한 발언을 계속하는 배경은. 유: 생존을 위한 게임이다. 카르자이가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를 자꾸 흔들면 탈레반과 손잡을 수도 있다.’ 작년부터 미국이 전쟁 목표를 두고 탈레반 축출과 알카에다 축출 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나타냈다. 카르자이에겐 미국이 탈레반과 화해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반대로 탈레반을 완전히 소탕하면 그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불안요소다. 인: 미국은 내년에 철군하겠다고 공언한 데다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부패 해결과 부족 간 화합 등 강한 조건을 전제로 카르자이를 지지했다. 카르자이로서는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하면서도 어차피 재선에 성공한 마당에 미국의 ‘괴뢰’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날을 세우는 게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국내정치용이다. Q: 아프간에서 카르자이 위상은. 유: 수도인 카불도 제대로 통치하지 못할 정도로 권력기반이 취약하다. 특히 치안악화와 부정부패 때문에 국민들의 불만이 많다. 의회도 겉으로는 장악하고 있다지만 미국의 협상 파트너 지위를 상실하면 의회도 다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인: 파슈툰족 출신으로 친미 반탈레반 입장인 카르자이는 아프간 국민들에겐 대안이 없어서 인정하는 ‘차악’일 뿐이다. Q: 서방이 카르자이를 통제할 수단과 대안은 무엇인가. 유: 미국에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게 문제다. 미국은 파키스탄 정보부에 공을 들여 다른 인물을 물색하고 있지만 일부 거론되는 군벌들도 대부분 이란과 연계되어 있는 북부동맹 출신이라서 미국이 꺼린다. 인: ‘치킨게임’이다. 미국과 카르자이는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있다. 미국은 탈레반과 벌이는 전쟁 승리를 위해 카르자이 협조가 필요하다. 미국은 무력과 경제지원이라는 수단을 쥐고 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을 필요로 한다. Q: 미국과 유럽이 아프간에서 추구하는 최종목표는. 유: 미국에 아프간 전쟁은 송유관 전쟁이다. 카스피해의 석유를 유럽과 아시아로 보내는 송유관을 통해 중국과 인도를 견제하고 러시아의 유가 정책에 대항할 수 있으며 경제 파트너인 유럽에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카르자이는 아프간 송유관을 건설한 석유회사 고문을 지냈다. 카르자이가 집권한 이후 송유관 건설은 빠르게 진행돼 거의 완성 단계다. 그런데 송유관이 지나는 아프간 남부에서 탈레반의 영향력이 확대된것이 최근 대규모 군사작전의 배경이 됐다. 인: 미국과 유럽이 아프간에서 추구하는 기본 전략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이 군사안보 중심이라면 유럽은 인권과 마약문제를 더 중시한다. 안정화라는 목표는 같지만 미국은 군사적 성과를 통해, 유럽은 지방재건팀(PRT) 등을 통한 장기적 체질개선으로 목표를 이루려 한다. 비유하자면 수술치료와 방사선치료다. Q: 파병 예정인 한국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유: 다른 나라는 군대를 철수하는 마당에 한국은 재파병을 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외세에 반감을 가진 세력들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 인: 개인적으론 미국의 접근법보단 유럽의 접근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한국군이 현지에서 민심을 얻고 대민활동을 통해 희망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선 목표와 임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아프간에서 안전한 지역은 없기 때문에 교전수칙도 세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강국진 신진호기자 betulo@seoul.co.kr
  •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지구촌 참사때마다 앞장… 교리 초월한 사랑실천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지구촌 참사때마다 앞장… 교리 초월한 사랑실천

    아이티 대지진이 났을 때 참혹한 현장으로 가장 먼저 날아간 사람들은 누구일까. 유엔 평화유지군이나 정부의 구호지원단일까. 아니다. 바로 종교인들이다. 이들은 교통편만 마련되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우선 혈혈단신 현장으로 떠난다. 재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는 빵과 물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먼저 상처 받고 지친 마음을 보듬어줄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교리를 불문하고 항상 글로벌 나눔의 가장 앞줄에 서 있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 국내 주요 교단들은 각자 교단 차원에서 글로벌 나눔을 위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의 신자들이 모아준 힘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의 글로벌 나눔 현장에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고 있다. 우선 천주교는 한국카리타스(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안명옥 주교)를 통해 해외 원조 및 복지, 국제연대 활동 역량을 집결하고 있다. 한국카리타스는 1985년부터 조금씩 활동을 하다 1992년 주교회의로부터 공식 해외원조 기구로 위임받으면서 본격 사업을 벌였다.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등 세계 각지에 515개 사업, 총 201억 9132만원(2008년 말 기준)을 지원했다. 한국카리타스는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활발한 나눔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사업을 위한 원조 금액도 전체 64%가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최근 아시아에 지진, 쓰나미 등 대형 자연재해가 많았기 때문이다. 카리타스는 자체적인 사업보다 지원이 필요한 현안이 발생할 때 심의를 거쳐 구호 활동을 펼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카리타스는 지진과 쓰나미, 사이클론, 홍수, 가뭄 등으로 고통받는 미얀마, 방글라데시, 인도 등에서 긴급구호활동을 펴는 한편 무료 병원, 학교 건립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 아이티와 칠레 지진 때도 전국적인 모금 활동을 벌여 40만 달러(약 4억 5000만원)를 구호 현장에 지원했다. 천주교의 글로벌 나눔 활동은 한국카리타스뿐 아니라 16개 교구와 본당, 수도회, 사도직 단체 등에서도 개별적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한국카리타스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천주교 전체가 펼친 글로벌 나눔 규모는 100억 9249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이 중 60%가 각 성당 모금을 통해 신자들이 내놓은 후원금으로, 이는 천주교 내에 글로벌 나눔의 열기가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불교는 다른 교단에 비해 글로벌 나눔 활동의 출발이 늦은 편이다. 조계종 차원에서는 공식적으로 공익법인 ‘아름다운동행’(이사장 자승 스님)을 세워 나눔 업무를 진행하고 있으나, 해외 원조 사업은 아직 미미한 단계다. 하지만 올해 아이티 지진 등을 계기로 국제긴급구호활동을 벌이며 나눔의 폭을 해외로까지 넓혀가고 있다. 조계종은 아이티 지진 직후 대한불교조계종의료구호단을 파견해 현장에서 의료 구호 활동을 펼쳤고, ‘아름다운동행’도 모금활동을 통해 총 10억 8000여만원을 아이티 현장에 지원했다. 박찬정 아름다운동행 사무국장은 “현재는 주로 국내 소외 계층과 다문화 가정 지원에 힘을 쏟고 있지만, 앞으로는 교계 단체 및 비정부기구(NGO) 지원을 통해 해외 원조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불교계는 재가 단체에서도 활발한 글로벌 나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산하 로터스월드(이사장 성관 스님) 등이 일찌감치 나눔 활동에 뛰어들었다. 로터스월드는 캄보디아에서 ‘아름다운 세상(BWC)’ 프로젝트를 벌여 학교를 짓고 현지 아이들의 자립을 위한 교육사업을 벌이는 한편, 의료 구호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한편 개신교는 교회별로 글로벌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어 통계를 잡기가 쉽지 않다. 최근 아이티 지진 이후에는 개신교 최대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힘을 합쳐 글로벌 나눔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 교회’라는 이름으로 약 150억원의 후원금을 모아 현지로 보냈다. 하지만 개신교 글로벌 나눔의 저력은 이런 교회 연합체나 개별 교회 활동으로만 다 말할 수 없다. 사실 개신교는 교단 차원의 활동보다 개신교 정신을 토대로 설립된 수많은 NGO단체가 바로 글로벌 나눔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 1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해외원조단체협의회 소속 단체 47개 중 전체 36.2%인 17개가 개신교 계통이었다. 반면 원불교는 3개(6.4%), 불교는 2개(4.2%), 천주교는 1개(2.1%)였다.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컴패션, 굿피플 등 세계적인 구호 NGO단체들도 모두 개신교 정신에 입각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중 6·25전쟁 고아의 양육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컴패션은 글로벌 나눔에 있어 한국의 위상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예다. 한국은 1993년 수혜국 지위를 벗어났고, 현재는 세계 네번째 규모의 지원국으로 탈바꿈했다. 컴패션은 수혜국 어린이와 지원국 후원자를 일대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양육을 지원한다. 한국컴패션은 지난해에 결연 어린이 7만명을 돌파했다. 나눔의 손을 뻗는 데는 교리의 경계도 없다. 교단별 글로벌 나눔 활동뿐 아니라, 국내의 종교단체들은 서로 합친 연합 단체를 통해 해외 원조에 나서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각 종단의 여성 수도자들이 종교의 벽을 허물고 모여 만든 삼소회(三笑會)다. 천주교 수녀, 불교 비구니 스님, 개신교 언님(여성 독신 목회자), 원불교 정녀(여자 교무) 들이 모인 삼소회는 올해부터 에티오피아 소녀·여성 돕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향후 3년 동안 10억원을 모아 염소 5만마리를 에티오피아 소녀 가정에 보낼 계획이다. 현재 전시회 등 각종 행사를 통해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통쾌한 승리? 왕따의 시작!

    통쾌한 승리? 왕따의 시작!

    첫날 오전 8시45분, 세 개의 이스라엘 전투기 편대는 시나이 반도와 수에즈에 있는 이집트의 모든 공군 기지를 기습, 쑥대밭으로 만든다. 400여대의 전투기가 폭격되며 이집트 공군력은 궤멸된다. 둘째 날 오전 1시, 요르단령인 동예루살렘으로 이스라엘 공수부대원들이 투입된다. 요르단 후세인왕은 전의를 상실한다. 오전 5시45분 시리아는 뒤늦게 골란고원 국경 즈음에서 이스라엘과 교전을 시작했지만 곧바로 패퇴당한다. 셋째 날, 새벽녘 이집트군의 3분의1만이 시나이 반도를 탈출, 수에즈 운하를 건너 목숨을 건진다. 이스라엘은 저녁 무렵 요르단령이었던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을 완전히 점령한다. 요르단은 항복과 마찬가지의 휴전을 요청한다. 넷째 날, 이집트가 손을 들었고, 다섯째 날 시리아의 골란고원 점령을 마쳤고, 여섯째 날 시리아마저 백기를 흔든다. 태초에 ‘이 전쟁’이 있었다. 1967년 6월5~10일, 지중해 동부를 접한 중동의 일부 지역에서 단 6일 동안 벌어진 ‘이 전쟁’은 반 세기 넘게 자행되고 있는 테러와 학살, 파괴와 통곡 등 반문명적 혼란과 악순환을 불러일으킨 결정적 첫걸음이었다. 또한 중동 지역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거듭되는 반(反) 미국, 반 이슬람 등의 갈등 한가운데 있도록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근대 세계 전쟁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운 대승(大勝)이자 쾌승(快勝)을 거뒀을뿐더러 이스라엘로서는 아랍 국가들 틈바구니의 위태로움 속에서 근대 국가 성립의 확실한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3차 중동전쟁인 이 전쟁을 이스라엘과 서방 사가(史家)들은 ‘6일 전쟁’이라 불렀고, 아랍에서는 ‘6월 전쟁’이라 불렀다. ‘6일 전쟁’은 속전속결 전투의 전형이었다.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첩보와 미국, 유럽의 군사지원을 바탕으로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쿠웨이트, 이라크 등 주변 아랍 연합에 기습 공격을 가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서안 지구, 동예루살렘, 시나이 반도, 골란고원 등을 차례로 점령했다. 이스라엘이 경제, 외교, 군사 등 모든 면에서 중동의 새로운 패자(覇者)임을 만방에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결코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6일 전쟁’의 승리는 중동 지역에 몰아친 비극과 증오의 시작이었고, 고통과 학살은 쉼없이 확대 재생산됐다. 영국 BBC의 중동 통신원을 지낸 제러미 보엔은 ‘6일 전쟁’(김혜성 옮김, 플래닛미디어 펴냄)을 통해 이 전쟁이 치러진 6일 동안을 정확하고 치밀한 시간, 장소, 인물별 묘사로 재구성한다. 기자 특유의 방대한 인터뷰 취재 자료를 바탕으로 마치 한 걸음 곁에서 전쟁의 모든 상황을 지켜본 듯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풀어나간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침 없는 객관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미덕을 보여준다. 저자 보엔은 한 편의 전투 소설을 읽는 듯 긴장감을 끌어올리다가도 어느새 냉엄한 현실 속의 역사 인식을 깨우쳐 주곤 한다. 이스라엘은 이미 1948년 영국 등 UN의 지지를 등에 업고서 건국을 선포하며 아랍 국가들과 1차 중동전쟁을 치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 78%를 점령했고, 팔레스타인 사람 80만명은 난민이 됐다. 이후 1956년 이집트와 대결하는 2차 중동 전쟁을 거치고 10년 뒤 치른 ‘6일 전쟁’은 이스라엘 입장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전쟁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오만함으로 바뀌었고, 점령 지역을 돌려주라는 유엔의 권고 사항마저 무시하고, 팔레스타인과 평화 협상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자국 총리(이츠하크 라빈)를 암살했을 정도의 폭력이 일상화된 나라로 바뀌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기도 하다. 요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 건설도 ‘6일 전쟁’ 이후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테러와 분쟁, 갈등의 최전선에 일반 유대인들을 보낸 뒤, 그들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을 추가로 배치하는 식이다. 과거 역사 속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라는 면죄부를 앞세워 폭력과 광기를 무시로 자행하며 10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역사의 또 다른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냐, 아랍이냐 하는 정치적 호불호, 혹은 종교적, 이념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과 경외, 평화의 선순환 체제 마련이 절실한 이유다. “만약 우리가 생명을 위해 싸웠다면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통곡의 벽을 위해 싸웠다면 그것은 새끼손가락만큼의 가치도 없다.” 통곡의 벽은 이스라엘이 6일 전쟁을 통해 점령한 예루살렘 구시가지(동예루살렘)에 있으며 유대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일 전쟁 중에 아들을 잃은 한 이스라엘 어머니가 외치는 이 절규가 전쟁이 품고 있는 반 생명적 속성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 준다. 2만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與 “책임론보다 원인규명 먼저” 野 “허위사실 발표해 국민속여”

    천안함 침몰 사태와 관련한 2일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문에서는 여야가 김태영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각종 의혹과 문제점을 추궁하며 설전을 주고 받았다. 한나라당은 침몰 원인을 밝히는 데 집중한 반면 야당은 군 대응태세의 문제점과 진실 은폐 의혹을 집중 부각시켰다. 이 과정에서 원색적인 표현과 비난이 오갔으며, 본회의장 의석에 앉아 있던 의원들까지 가세하면서 한때 소란스러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나라당 박상은 의원은 “인명구조는 잘됐다. 해군이 온힘을 쏟고 있는 것을 봤다.”며 김 장관을 격려했다. 같은 당 정옥임 의원은 “현장에 있어야 할 주무장관과 핵심인력을 불러들여 질타하고 책임론에만 매달리는 게 맞는 일이냐.”면서 “정치공세에만 급급하신 분은 사과하라.”며 야당 의원들을 겨냥했다. 반면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군은 구조를 포기한 채 국민의 비난 여론을 피하고 무마하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고 허위사실을 발표해 국민을 속이고 있다. 잘못 말하면 위증이 된다.”며 김 장관을 다그쳤다. 같은 당 문학진 의원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거짓말을 하다 정권을 내놓았다.”면서 “정권의 명운과 연관될 수 있으니 사실대로 답변하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김 장관은 “너무 섭섭하다. 그런 식으로 말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김 장관은 “나도 살리고 싶어 죽겠다. 마음 같으면 모든 인원을 바다에 처박아서라도….”라는 표현까지 썼다. 한편 김 장관은 북한의 어뢰공격 여부에 대해 “훈련은 있었지만 도발하기 위한 큰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면서도 “북한은 아주 특이한 국가다. 특수부대도 있고, 별도로 또 하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다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교신일지 공개 요구에는 “일부 국회의원이 꼭 보셔야 한다면 보여드릴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열상감시장비(TOD)를 공개한 것과 관련해서는 “차라리 안 보여 드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희 군이 운용하는 장비가 교전상대인 북한에도 노출된다.”며 유감을 드러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사진]침몰 천안함… ‘무심한 하늘’
  • [천안함 침몰 이후] 故 한 준위가 받게 된 무공훈장은

    고(故) 한주호 준위가 받게 된 무공훈장은 군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 중 하나다. 상훈법 제13조는 ‘무공훈장은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한다.’고 대상을 명시하고 있다. 사실상 전투에서 공을 세운 군인이 받는 훈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도 이날 “한 준위 사례를 계기로 서훈제도를 전반적으로 현실에 맞게 탄력적으로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서훈제도 전반에 대한 개편도 이뤄질 전망이다. 한 준위에게 무공훈장 추서가 결정된 것은 그만큼 그의 공이 지대하고 귀감이 된다는 의미다. 무공훈장의 등급은 계급이 아닌 공적에 따라 나뉜다. 태극, 을지, 충무, 화랑, 인헌 등 5등급이 있다. 태극무공훈장은 전투에서 매우 혁혁한 공을 세운 최고 중의 최고 군인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2002년 서해교전 전사자들은 충무무공훈장이나 화랑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순국한 윤장호 하사에게는 인헌무공훈장이 추서됐다. 결국 한 준위는 서해교전 전사자와 같은 공적자로 인정받은 셈이다. 당초 한 준위에게 수여됐던 보국훈장은 33년간 특별한 흠결없이 근속한 군인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공적이 아닌 계급에 따라 5등급으로 나뉘는데 위관급인 한 준위는 맨 아래인 광복장에 해당한다. 앞서 정부와 군이 한 준위가 사실상 비상사태(준 전시사태)에서 순직했다는 점은 생각하지 않고 그동안의 관례에 따라 보국훈장을 줬던 것이다. 무공훈장은 ‘명예 포상’이기 때문에 훈장과 관련한 직접적인 포상금은 없다. 대신 한 준위는 순직 군인으로서 보상을 받게 된다. 특히 일반적인 순직이 아닌 교전 중 전사자 수준으로 보상금이 상향 지급된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사진] 한주호 준위 영결식 ☞ [사진] 살신성인 故한주호 준위 ☞[사진]침몰 천안함… ‘무심한 하늘’
  • [천안함 침몰 이후] 北 6일째 침묵 왜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 북한은 사고 발생 6일째인 31일까지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자기들과 무관해서 그런 것이라는 관측과, 그들의 소행이라 모른 척하는 것이란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북한 개입설에 갈수록 무게가 실리면서 언제까지 북측이 입을 닫고 있을지 의문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현재 천안함 침몰 사고 개입 여부와 관련없이 의도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면서 “사고원인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신중히 접근하되 과거 6자회담 재개 등을 앞두고 북한이 도발과 유화 모드를 적절히 반복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공격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탈북자 출신인 서재평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은 “1, 2차 연평해전 등 과거 남북 서해교전 당시 북측은 빠른 시간 내 입장을 밝혔는데, 그것은 누가 도발했는지 분명한 상황이었고, 그 책임을 남측에 미뤄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서 국장은 “북한은 과거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고 때처럼 은밀하게 남측을 공격한 경우 정확한 사고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침묵하고 있다가 북측 공격이라는 발표가 나오면 ‘남조선이 사실을 날조하고 있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식이다.”라고 했다. 그는 “북한군에는 해상 6중대라는 육탄부대가 있는데 잠수함 등을 이용해 어뢰나 기뢰로 상대를 공격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면서 “북한의 공격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침묵은 천안함 사고와 관련해 자신들은 관여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6자회담 재개 등을 앞두고 북한이 천안함을 의도적으로 공격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대화를 갈구하며 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한 상황에서 천안함 공격이라는 도발을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면서 “북한은 사고원인으로 지목된 것만으로도 남한 내 진보와 보수세력 간의 갈등 유발 효과를 거뒀기 때문에 계속 침묵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이 31일 금강산 남측 부동산 조사를 마침에 따라 예고한 대로 4월부터 금강산 관광 계약 해지 등의 특단 조치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천안함 침몰사고로 남한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때문에 바로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숨고르기를 하다 단계적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날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북한이 이제라도 당국 간 대화를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협의하는 데 호응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회담을 제의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사진] 살신성인 故한주호 준위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선체 순식간에 두동강… 우연한 폭발로 보기 어려워”

    [천안함 침몰 이후] “선체 순식간에 두동강… 우연한 폭발로 보기 어려워”

    천안함의 침몰 원인은 크게 내부폭발과 외부충격 둘 중 하나로 좁혀지고 있다. 애초에 바닷속 암초에 부딪혔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으나 사고 해역에 암초가 없다는 증언으로 가능성이 소멸하는 분위기다. 외부충격이라면 북한군의 어뢰나 기뢰에 의한 공격이라는 얘기다. 먼저 북한 어뢰정이나 반잠수정이 몰래 우리 해역으로 침투, 천안함에 접근한 뒤 어뢰를 쐈을 가능성이다. 잠수정은 발신을 극도로 삼가면서 조용히 잠입하면 레이더로 잡아낼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천안함이 어뢰탐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주한미군이 사고 직후 “북한군의 개입은 감지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도 첨단통신장비에 북한군의 침투가 감지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통상 어뢰는 배의 측면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은 점도 어뢰 공격 가능성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외부공격이 맞다면, 어뢰보다는 ‘바다의 지뢰’라고 불리는 기뢰에 의한 폭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북한 잠수정이 몰래 침투해 ‘음향 기뢰’를 설치해 놓고 갔는데, 이것이 천안함 후미(後尾)의 스크루 소리에 감응해 붙어 터졌다는 것이다. 김학송 국회 국방위원장은 28일 기자들에게 “만약 외부 공격이라면, 북한군이 설치해 놓은 기뢰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서해상에서 북한의 기뢰가 발견된 적이 없고, 사고해역의 해류가 북쪽으로 흐른다는 점에서 이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자칫하다가는 자신들이 설치한 기뢰가 되레 북쪽 선박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군의 공격이 사실이라면 북한 정권 수뇌부의 지시라기보다는 북한군 서해사령부 차원의 비밀 작전일 가능성이 다소 우세하다. 현재 남한의 경제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이런 불장난은 전쟁 수준까지 불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으로서는 부담이 큰 도발이다. 반면 북한군 하급 군단에서는 최근 연이은 서해 교전에서 패퇴한 데 대한 보복과 함께 자존심 회복 차원에서 표시내지 않고 공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내부폭발이라면, ‘우연’ 또는 ‘의도’적 폭발로 나뉜다. 우연한 폭발이란, 유류탱크에서 생긴 유증기에서 화재가 발생해 선미(船尾) 쪽 기관실 혹은 탄약고 폭발로 이어졌거나, 보관하고 있던 폭뢰가 오작동으로 폭발했을 가능성이다. 선미 아랫부분 탄약고에 있던 76㎜ 함포탄과 어뢰가 노후화로 인해 폭발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사병들이 그 시간에 그 쪽에서 뭔가 작업을 했다는 얘기인데, 사고 당시 시간은 일과를 끝낸 밤이어서 앞뒤가 안 맞는 측면이 있다. 더욱이 탄약과 신관은 평소에 분리 보관하고 있다는 게 해군측의 설명이다. 때문에 내부폭발이라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치명적인 폭발을 유발했을 수도 있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은 2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모두 취침하는 동안 한 병사가 무슨 폭탄을 갖다 놓고 장난을 치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다”며 “기무사 등이 이런 것들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내부자 소행’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기식 합동참모본부 정보작전처장은 “탄약에 TNT를 장착해서 터뜨린다면 (탄약이 한꺼번에 터질) 가능성도 있다.”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내부폭발이든, 외부충격이든, 우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사고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아 보인다. 증언에 따르면 폭발이 엄청나게 커 배가 금세 두 동강이 났기 때문이다. 한 군사 전문가는 “천안함처럼 큰 배는 선체가 매우 두껍고 단단해 웬만해서는 파손되지 않는다.”면서 “누군가 치명적인 급소를 노리고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군은 공식적으로는 배에 난 구멍을 확인해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구멍 부분의 선체가 안쪽으로 휘어져 있다면 외부공격에 의한 폭발이고, 반대로 바깥쪽으로 굽어져 있으면 내부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국내외 역대 해군 참사

    ■ 역대 해군 참사 지난 26일밤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이 침몰, 46명의 승조원이 실종된 것은 해군 참사로는 지난 1974년 이후 최악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대형 전투함이 폭발로 침몰한 것은 처음이다. 1974년 2월22일 경남 통영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를 참배하고 돌아가던 해군 수송정(YTL)이 돌풍으로 침몰했다.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해군과 해경 훈련병 316명 가운데 무려 159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천안함 침몰은 1967년 1월19일 경비함 당포함(PCE-56) 침몰 사고 이후 5번째다. 당시 당포함은 동해 명태잡이 어로 보호 임무를 수행 중 북한 해안(수원단) 동굴 포대의 공격을 받고 침몰, 39명이 전사했다. 제1 연평해전(1999년 6월15일)에서 참패한 북한 해군이 2002년 6월29일(제2 연평해전) 참수리 357정을 기습 공격, 정장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장병이 전사했다. 제1 연평해전이 벌어진 지 3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이뤄진 남북 함정 간 교전이었다. 2004년 10월 12일에는 동해상에서 심야 훈련을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던 해군 특수목적용 반잠수정이 높은 파도에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 러 사례로 본 침몰사고 지난 2000년 8월 노르웨이 북부 바렌츠해에서 훈련중이던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 호가 폭발음과 함께 해저 108m 아래로 침몰했다. 승무원 118명 전원이 사망했지만 당시 수습한 시신은 12구에 불과했다. 사고 당시 러시아 정부는 숨기기에 급급했다. 서방 언론이 처음 사고를 보도한 지 이틀 지나서야 인정했을 정도다. 인접국의 구조 제안도 거부했다. 생존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러시아 해군이 아니라 노르웨이 구조대였다. 사고 직후부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는 정찰활동을 하던 미군잠수함과 충돌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결국 2002년 7월 쿠르스크호의 한 어뢰에서 연료가 누출되면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 원인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사고가 나고 1년 11개월이 걸린 셈이다. 마지막 생존자들이 잠수함 속에서 얼마나 살아있었는지는 지금껏 논란거리다. 러시아 정부는 낮은 수온과 깊은 수심 탓에 매우 빨리 사망했을 것으로 봤다. 반면 일각에선 생존을 위한 산소가 충분했기 때문에 며칠간 살아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쿠르스크호에 탑승했던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중위는 어둠과 추위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깜깜한 속에서 느낌으로 글을 쓴다. 기회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누군가 이 글을 읽어주기만 해도 좋겠다.”는 마지막 메모를 남겼다. 러시아 정부는 인양한 시신을 모두 러시아에 안장했지만 심하게 탄 3구에 대해서는 끝내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승무원 전원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수색대원 115명 탄 구조함 투입

    28일 오후 인천 옹진군 백령도 인근의 천안함 참사 해역은 막막했다. 쉴 새 없이 출렁이는 거친 파도로 취재진이 탄 해군 지원정은 검푸른 바다 위에서 거칠게 요동쳤다. 이날 현장에 투입됐던 수색구조함 광양함 역시 정확한 사고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 채 대기 중이었다. 광양함 함장 김현태 중령은 “115명의 새로운 수색 대원들을 투입할 것”이라며 “아직까지 육상 지휘부의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전달받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날 백령도 용기포 선착장으로부터 약 2.5㎞ 떨어진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 해역에서는 광양함 1척을 비롯해 상륙함 1척, 초계함 2척, 호위함 4척, 고속정 4척 등 10여대의 선박들이 계속해서 수색활동을 펼쳤다. 정박해 있는 함선들 사이로 해난구조대(SSU) 요원들이 탄 고무보트 10여대가 오가며 바다 위를 살폈지만 실종자 수색의 결정적인 실마리는 찾지 못했다.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같은 시각 백령도 장촌포구 해안. 천안함 승무원 46명이 실종된 해군 천안함 침몰 현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는 무거운 적막감과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섬 주민들은 마치 자신의 가족을 잃은 듯 슬픔에 잠겨 말을 잊었다. 곳곳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경계근무에 나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검은 잠수복을 입은 30여명의 해군 해난구조대 잠수대원들이 분주하게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백령도 서남쪽 1.8㎞ 해상의 사고 해역 주변에서 수색 작업을 마친 구명 보트 5~6대가 귀대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사고 지점 주위를 수색 중인 해군 함정 2척이 선명히 보였다. 맑은 날이었지만 수색대원들의 얼굴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수색대원들에게 수색에 성과는 있었느냐, 언제쯤 끝날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한 대원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라며 서둘러 장비를 챙겼다. 옆에서는 다른 수색 교대조들이 구령을 외치며 구명 보트에 몸을 실은 뒤 사고지점으로 출발했다. 장촌포구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용기포 선착장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오후 1시쯤 도착한 여객선 데모크라시 5호에서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승선한 관광객과 주민, 취재진 등이 쏟아져 나왔다. 여객선 운항을 총괄하는 원진수 사무장은 “토요일에는 관광객보다 취재진이 많아 사고를 실감했지만 하루 만에 정상을 되찾은 것 같다.”면서 “오늘은 지난주 일요일과 별다른 차이 없이 358명 정원에 195명이 탑승했다.”고 전했다. 주민들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2002년 ‘2차 연평해전’을 떠올리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북한과의 교전이 아니라는 소식에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현실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듯했다. 사고 이후 조업이 제한되면서 일부 어선들의 발이 묶였다. 천안함 인양 등 사고 수습까지 한 달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여 생업 차질을 우려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주민들은 실종자 수색 작업이 원활히 이뤄지길 소망했다. 한 주민은 “사고 원인이 빨리 규명되고 실종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살아 돌아오도록 군 당국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그러면서 실종자 수색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더 늦으면 안될 텐데”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안석 윤샘이나기자 ccto@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이번엔 조용한 北

    북한은 천안함 침몰사고 사흘째인 28일 현재까지 계속 침묵했다. 사고 관련 논평은 물론, 사실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과거 북한이 서해상에서의 우리 군 동향이나 남북교전만큼은 관영매체를 통해 신속히 보도해 왔다는 점에서 다소 이례적이다. 특히 사고 발생 직후 남측 언론이 한때 북측의 공격 가능성을 거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입장을 전혀 피력하지 않아 주목된다. 북한은 1·2차 연평해전 등 과거 서해에서 발생한 세차례의 교전 당시 늦어도 사건 발생 6시간 안에 공식 입장을 관영매체를 통해 밝혔다. 지난해 11월 10일 발생한 대청해전 때에는 교전 발생 4시간 53분 만에 최고사령부 보도를 내고 “남조선 해군이 우리측 해역에서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2002년 6월 29일 2차 연평해전 당시에는 교전 발생 5시간 35분 뒤 보도를 통해 남측에 책임을 전가했으며, 1999년 6월 15일 1차 연평해전 때에도 5시간 5분 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측을 비난했다. 이와 관련,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사고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북측이 관련 입장을 내놓기 어려운 것”이라면서 “나름대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 [천안함 침몰 이후] ‘연평해전 용사’ 박경수 중사 이번엔 지각 결혼식 앞두고…

    [천안함 침몰 이후] ‘연평해전 용사’ 박경수 중사 이번엔 지각 결혼식 앞두고…

    천안함 실종자 가운데 제2 연평해전 용사인 박경수(30) 중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박 중사는 2002년 6월29일 제2 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정 보수장으로 탑승, 북한 함정과 마주보고 있던 좌현의 사수가 총탄에 쓰러지자 대신 기관총을 잡고 싸운 ‘진짜 해군’이었다. 그는 치열한 교전 중에 적탄에 맞아 부상을 입었지만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전투에 임했던 용사였다.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박 중사는 제2 연평해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6년 가까이 항해에 나서지 못하다 공포심을 떨쳐내기 위해 천안함에 승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천안함은 제1 연평해전에 참전한 초계함이었다. 박 중사는 천안함이 26일 밤 서해상에서 침몰하기 전까지 천안함에서 1년 정도 근무하면서 함정의 보수와 정비를 담당했다. 제2 연평해전 당시 갑판장이었던 이해영(59) 원사는 “연평해전 이후에 전역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계속 함정을 탔다.”고 말했다. 박 중사는 부인 박모씨와 슬하에 6살 난 딸을 뒀다. 박 중사는 이번 훈련에서 돌아오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는 2004년 혼인신고를 한 뒤 딸까지 낳았지만, 바다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 미처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들은 전장에서도 살아 돌아온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실종되자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부친 박종규(62)씨는 27일 해군 제2함대 사령부를 찾아 “전함의 함장이라면 부하를 구출하고 난 뒤 맨 마지막에 배를 떠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함장이 혼자 살겠다고 미리 탈출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오열했다. 박 중사의 장모는 “무섭고 떨려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해군 초계함 침몰] “밤11시부터 10여분 끊임없이 포소리”

    [해군 초계함 침몰] “밤11시부터 10여분 끊임없이 포소리”

    ‘팡~팡~팡’ 해군 천안함의 선저(배 밑)가 원인 모를 충격으로 폭발해 침몰하기 시작한 지 1시간15분쯤 지나 사고 부근인 백령도 주변은 요란한 포격 소리로 한때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백령도 신촌리 한 주민은 “오후 11시부터 10여분 동안 포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며 “보통 훈련상황과는 달랐다.”고 초기 순간을 전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여러 대의 헬기가 백령도 상공을 수시로 비행했다. 백령도는 군·관·민 할 것 없이 비상이 걸렸다. 사고가 난 백령도 해상은 파고가 높지 않았고, 바람도 강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수시간 뒤에 아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처음에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제기되자 공포에 휩싸였다. 전화로 경찰서 및 관공서, 외지에 있는 가족들과 쉴새 없이 연락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27일 새벽 1시가 넘어 북한과의 교전 가능성이 낮다는 청와대 관계자 등의 언급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자 주민들은 다소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2시간여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고 마을 주민들은 전했다. 백령파출소 임채일 경위는 “군과 해병, 경찰 전 직원이 동원돼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밤 12시쯤 다리 골절상을 당한 해병 1명이 병원으로 후송됐다.”고 말했다. 임 경위는 “사고가 난 초계함 관련 병사”라고 밝혔다. 백령도 내 유일한 종합병원인 인천의료원 백령병원도 침몰 중인 함정에서 구조된 승무원들을 진료하기 위해 의료진을 비상대기시켰다. 인천의료원 관계자는 “오후 10시쯤 군 당국으로부터 병상 50개를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고 공중보건의와 간호사 등 10여명의 의료진이 전원 대기했다.”고 말했다. 한편 합참은 백령도 주민의 포격 소리 증언과 관련해 “포 소리는 조명탄을 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백령도에 주둔한 부대에서 발사했다.”고 밝혔다. 백령도 김학준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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