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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일 전문가가 본 야스쿠니 신사 참배

    한·중·일 전문가가 본 야스쿠니 신사 참배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패전기념일인 15일을 앞두고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겠다는 일본 정치인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일본과 한국, 중국 등 관련국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신문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문제점과 한·중·일 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진단하기 위해 3국 전문가들을 만나 이들의 의견을 들어 봤다. ■ “강제동원 韓피해자 강제합사 치욕… 합사취소 집단적 대응을” 한·일 관계 전문가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전범과 한국인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참배는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과거 식민지 시대 지배자(일본)·피지배자(한국) 구도를 현재에도 적용하려는 의도입니다.” 한·일 관계 전문가인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1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야스쿠니신사가 A급 전범들과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합사해 한국에 치욕을 주고 있다면서 피해자 후손들만 법적 대응을 할 게 아니라 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252명은 2001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합사 철회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다음은 조 교수와의 일문일답. →야스쿠니신사에 어떻게 한국인이 합사된 건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합사된 경우가 허다하다. 야스쿠니신사는 전범과 강제동원 피해자의 혼을 하나로 합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피해자의 후손들이 합사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일본 측은 한 번 합사된 혼은 분리할 수 없다는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 후손의 입장에서는 강제동원도 억울한데 그 혼마저 가해자인 전범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에 갇힌 셈이 됐다. →한국 국적이니 정부가 나서서 요구해도 되지 않나. -야스쿠니신사는 민간 종교시설이기 때문에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 자칫 내정간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악용해 일본 정부도 야스쿠니는 민간 시설이라며 번번이 빠져나가고 있다. →해결 방안은. -야스쿠니신사를 국가 추도시설화하면 방법은 있다. 국가 추도시설로 만들면 헌법과 배치되는 전범들은 야스쿠니신사에서 빠진다. 이념 성향이 없는 ‘무색무취’의 추도시설이 되는 것이다. 일본의 양심세력들이 야스쿠니의 국가 추도시설화를 요구해 왔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법적 대응 방안은. -일본 정치인이 야스쿠니 참배를 하는 것 자체가 헌법에 위배된다. 일본 헌법에는 정치·종교 분리 원칙이 규정돼 있는데도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이 이를 무시하고 있다. 신사참배가 정교 분리에 위배된다는 비난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일본 자민당이 개헌을 추진 중이다. 공직자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식으로 개편하려는 것 같다. 1980년대만 해도 이런 움직임이 일본 내에서 힘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 사회가 우경화되면서 일본 국민들도 신사참배를 한다든지, 학생들에게 기미가요 제창을 강요하는 것에 더 이상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됐다. 대동아 사관의 부활이다. →일본 정치인들이 신사 참배에 집착하는 이유는 뭔가. -‘나는 과거 일본의 빛나는 역사를 승계하는 정치가다.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라는 정치 이념을 선전하고 ‘인증샷’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수 표를 결집시키기 위한 선거 전술인 셈이다. 만약 한 정치인이 ‘총대’를 메고 야스쿠니를 민간 시설에서 국가 추도시설로 바꾸려 한다면 많은 보수 표를 잃을 각오를 하고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전쟁 때 정신적 지주로 삼으려 우경화 집착… 국제적 고립 초래” 중·일 관계 전문가 칭화대 당대국제관계학원 류장융 부원장 “군국주의적 야망을 가진 일본 우익 세력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향후 전쟁 상황에서 정신적인 지주로 삼으려 한다.” 중·일 관계 전문가인 칭화(淸華)대 당대국제관계학원 류장융(劉江永) 부원장은 12일 “개인 자격이든 공물봉납 방식이든 일본 지도부의 신사 참배는 침략역사에 대한 부정 행위로 한국과 중국, 미국으로부터 일본을 고립시키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류 부원장과의 일문일답. →일본 각료들이 신사 참배 의사를 밝히고 있는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소 다로 부총리 등 중국이 (신사 참배 여부에) 촉각을 세우는 인사들은 불참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신사에 화환, 공물 등을 보내는 식으로 ‘편법 참배’를 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모든 형태의 참배에 반대하며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본이 신사 참배에 집착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역사 인식 부재 탓이다. 일본은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이 주변국과 국민에 재앙을 안기고 원폭 투하 등으로 자신에게도 피해를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경화도 문제다. 전쟁을 미화하는 우익 세력은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전쟁 상황에서 정신적 지주로 삼으려 한다. →일본 우경화의 원인은. -일본은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아 침략 역사를 미화하는 우익 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풍부하다. 여기에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경기 침체와 중국의 부상 등에 따른 위기감을 토대로 우익 세력이 민족주의를 부추기면서 우경화가 주류가 되고 있다. 우익을 이용해 중국에 대항하려는 일부 국가의 중국 견제 전략도 이를 부채질한다. →우경화의 결과는. -동북아의 평화·안정 위협이다. 우익 세력은 중·일 충돌의 순간만을 고대하고 있다. 아베 내각과 우익 세력은 이미 일본에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하면서 평화 발전으로 향하는 자숙의 길을 포기하고 있다. →우경화는 국제적 고립을 초래하는데. -중국을 공격할 수 있고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을 연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은 고립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동맹인 미국이 일본의 과격 행위를 견제할 텐데. -아베 내각은 군국주의 목표를 실현하는 범위 내에서만 미국의 말을 듣고 미국을 이용한다. 미국이 중·일 간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문제를 대화의 방식으로 해결하라고 하지만 영토 분쟁이 없다며 대화의 창을 닫고 무력 증강에만 몰두한다. 미·일 관계도 순탄치 않을 것이다. →중국의 해양 진출 전략이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나. -일본이 중국과 우호적인 전략적 호혜 관계를 갖고 싶다면 방위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해양 전략이 일본에 위협으로 작용한다고 상정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이미 2004년 ‘방위계획대강(大綱)’ 개정 때부터 중국을 주요 위협으로 지목했다. 최근에는 댜오위다오가 있는 동해 지역에서의 해상 및 영해 자위대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개정 중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자민당,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고 야스쿠니 상징성 이용”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 & 우쓰미 아이코 게이센여대 명예교수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인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일왕과 국가를 위해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이들을 신으로 모심으로써 전쟁을 정당화하던 야스쿠니 신사는 표면적으로는 1945년 패전 이후 종교시설로 바뀌었다. 그러나 집권 자민당을 비롯해 일부 일본인에게는 야스쿠니 신사가 아직도 패전 전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 일본의 소장파 지식인 다카하시 데쓰야(57) 도쿄대 교수의 주장이다. 다카하시 교수는 지난 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행사의 심포지엄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발표문을 통해 다카하시 교수는 “야스쿠니 신사는 집권 자민당이 일왕을 일본의 원수(元首)로 칭하면서 헌법 9조 개헌을 노리는 것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 9조는 일본의 전력(戰力) 보유 금지와 국가 교전권 불인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데, 1946년 11월 공포돼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헌법 9조를 고쳐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명시하겠다고 공약했고, 헌법 해석을 고쳐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그는 “지난해 4월 발표된 자민당의 헌법개정 초안을 보면 일왕을 나라의 제1인자라고 설명했다. 요컨대 주권자인 국민 위에 일왕을 받드는 국가가 있다는 것”이라면서 “자민당은 헌법개정 초안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데, 패전 후 평화에 익숙해진 지금의 사회문화에서 전쟁의 목표를 설정한다면 나라의 1인자인 일왕과 그것을 떠받드는 국가로서의 일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자민당이 다시 야스쿠니 신사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이날 다카하시 교수와 함께 패널로 참석한 일본의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공동대표이자 게이센여대 명예교수인 우쓰미 아이코(72) 역시 야스쿠니 신사의 상징성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 경계했다. 우쓰미 교수는 “‘야스쿠니에서 만나자’고 하는 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병사들에게 포로가 되거나 후퇴함으로써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지 못하는 불명예스러운 전사를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이었다”면서 “심지어 1941년 12월 진주만 공격에 참가한 한 장교는 동료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군신(軍神)이 되지 못했는데, 이 사람이 46년 귀국해 주변인에게서 받은 편지에는 ‘바로 할복해 세상에 속죄를’이라고 돼 있었다”고 전했다. 우쓰미 교수는 또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 ‘강한 일본’을 구현하려는 보수 세력에 일침을 가했다. 우쓰미 교수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고통을 맛본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에게 일본 총리나 정치가의 야스쿠니 참배는 일종의 트라우마”라며 “이런 참배는 다시 침략당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을 준다. 이런 참배는 나치의 침략과 학살의 과거를 청산한 유럽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오바마 정부, 시리아 난민 2000여명 수용할 듯

    시리아 내전이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시리아 난민 2000여명의 입국을 허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에 따르면 2011년 3월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간의 교전 이후 올해 말까지 시리아를 떠날 것으로 추산되는 난민은 350만명에 이른다. 8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매체인 포린폴리시의 안보 전문 블로그 ‘더 케이블’은 미 국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버락 오바마 정부가 처음으로 시리아 난민을 대거 수용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수용하기로 한 난민 2000여명은 지난 2년 6개월간 시리아를 탈출한 시리아 난민 200만명의 1000분의1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지난 2년간 미국 내 영구 정착을 허락한 시리아 난민 90명에 비하면 눈에 띄게 증가한 수치다. 종전에 미 국토안보부가 미국에 입국한 시리아 난민 대부분에 임시 보호 자격을 부여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국무부가 난민의 미국 내 영구 정착을 위한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 인구난민이주국 켈리 클레멘츠 부차관보는 “유엔난민기구(UNHCR)로부터의 난민 위탁은 향후 4개월 내로 이뤄질 예정이며, 난민들은 사전 인터뷰, 건강검진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고 ‘더 케이블’에 밝혔다. UNHCR은 올해 여름 시리아 난민의 위탁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27개국의 관계 당국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내전으로 인한 폭력과 고문으로 고통받는 여성, 어린이 등으로 구성된 시리아 난민들은 1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에 걸쳐 미 정보·사법·국방 당국으로부터 테러리스트와의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확인 절차를 거치게 된다. 클레멘츠는 “난민 등록 과정을 고려할 때 2014년까지 2000여명을 모두 수용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미국 의회가 테러 위험성 때문에 난민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을 추가로 수용하겠다고 나선 미국 정부에 국제구호단체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센카쿠·남중국해 분쟁, 해상 군비 경쟁으로 번져

    센카쿠·남중국해 분쟁, 해상 군비 경쟁으로 번져

    중국과의 해상 영토분쟁에 맞서기 위해 반중(反中)연대를 형성하고 있는 일본과 필리핀이 경쟁적으로 해상 군비 확충에 나서고 있다. 중국도 공해부대 창설 등 해상 억지력 강화를 통해 맞불을 놓고 있어 동아시아 지역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이 준항공모함급 헬기 호위함인 22DDH형 ‘이즈모’호를 지난 6일 진수했다. 약 1200억엔(1조 4000억원)이 투입돼 해상 자위대 사상 최대 호위암으로 오는 2015년 정식 취역한다. 중국 언론들은 이즈모(出雲)가 1937년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 상하이를 침공할 때 사용한 기함의 이름과 같다며 최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대치 중인 중국을 겨냥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규모 면에서 중국의 첫 항모인 랴오닝(遼寧)호에 미치지 못하지만 미 F-35 스텔스 전투기를 전용 함재기로 도입할 예정이어서 전투력에서 랴오닝호를 능가한다며 경계심을 나타냈다. 아울러 일본이 히로시마 원폭투하 68주년에 맞춰 진수식을 가진 것은 일본 국민의 동정 여론을 이용해 군사력 확장에 나서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중국 국방부는 이날 이즈모 진수와 관련, “일본의 군사력 팽창 움직임이 우려스럽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도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필리핀 당국이 중국과의 분쟁 해역에 대한 초계 활동에 사용하기 위해 미국의 해안경비정이었던 BRP 라몬 알카라스호를 도입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배수량 3250t급의 이 함정은 함대함 하푼 미사일과 76㎜ 기관포, 광학식 사격통제장비 등 주요 무기와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개·보수 작업을 거쳐 오는 10월 정식 취역한다. 필리핀은 앞서 일본으로부터 ‘무기’로 취급되는 순시선 10척을 기증받았으며 중국과의 영토분쟁 문제에 공동 대처하기로 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해군력 강화를 위해 항모·핵잠수함·순항미사일 구축함·대형 상륙함 등으로 구성된 공해함대 창설을 준비 중이라고 대공보가 이날 외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취임 이후 영토분쟁 문제로 여러 나라와 해상에서 마찰을 빚으면서도 연일 ‘해양강국 건설’을 강조하고 있어 ‘중국 위협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앞서 미 외교전문잡지인 포린폴리시는 최근 항공모함으로 보이는 초대형 선박 건조 장면을 멀리서 촬영한 사진들을 근거로 중국이 랴오닝호에 이어 제2의 항모를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日 만행에 죽고 망언에 운다… 亞 5개국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日 만행에 죽고 망언에 운다… 亞 5개국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1992년 1월부터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가 7일 1086회를 맞았다. 그사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56명으로 줄었다. 지난 5월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 시장은 위안부가 필수적이었다는 망언을 했다. 고통은 여전하지만 일본의 반성은 요원하다. KBS 1TV ‘KBS 파노라마’는 광복절을 맞아 8일과 15일 밤 10시 2부작 다큐멘터리 ‘끝나지 않은 전쟁, 일본군 위안부’를 방송한다. 국내외의 문서와 증언을 통해 일본군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위안부를 모집, 운영하고 은폐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1편의 주제는 ‘아시아의 피해자들’이다. 제작진은 5개국에서 만난 위안부 피해자 30여명의 증언을 통해 일본의 만행을 고발한다. 태평양 전쟁의 격전지였던 팔라우에 위안부로 동원된 강무자(가명)씨는 “언니들 중 일부가 아래가 아파서 몸을 안 주고 칼로 군인을 죽이려고 달려드니까 일본 장교들이 언니들을 데려가 보란 듯이 자궁에 총을 쏘고 젖통을 베어내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중국의 위안부 피해자 만애화는 세 차례나 위안부로 끌려가 밤낮없이 성폭행을 당하고 고문까지 받았던 사실을 진술한다. 인도네시아의 위안부 피해자 에마 카스티마는 병을 얻어 걷기도 힘들지만 가난 탓에 치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 준다. “이미 체념했다”는 그는 촬영 보름 후 세상을 떠났다. 제작진은 아시아 곳곳에 남아 있는 위안소도 찾는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다이살롱’은 해군을 위해 설치한 일본 최초의 위안소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교전 지역이 확대되면서 일본은 중국 난징에 2000평 규모의 위안소를 지었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는 주민들의 건물을 빼앗아 위안소로 사용했다. 팔라우에는 한 번 동원되면 탈출하기 어려운 무인도의 동굴에 위안소를 짓기도 했다. 제작진은 연일 망언을 쏟아내는 하시모토 시장과 ‘무라야마 담화’로 잘 알려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등을 만나 위안부 문제의 현재를 다양하게 짚는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사설] 日 집권세력 쇼비니즘으로 뭘 얻겠다는 건가

    엊그제 나온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의 ‘나치식 개헌’ 발언은 현 일본 집권세력의 쇼비니즘, 즉 맹목적·배타적 애국주의가 어디까지 튈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불길한 징조로 다가온다. 아소 부총리는 지난 29일 도쿄에서 가진 한 강연에서 “독일 나치 정권이 헌법을 무력화한 수법을 배우자”고 말했다.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총리에 오른 뒤 정부가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수권법’(授權法)을 만들어 기존 바이마르 헌법을 무력화했듯 일본도 소리 소문 없이 현행 평화헌법을 개정해 군사대국의 길로 나아가자는 얘기다. 불과 한 세기 전 동아시아를 유린한 일제 침략의 역사를 까맣게 잊은 게 아니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실언이다. 주지하다시피 교전권과 전쟁 참여, 군대 보유를 금하고 있는 일본의 현행 평화헌법은 선대의 침탈 행위를 응징하고 억지하기 위한 국제적 공동선의 소산이다. 일본이 2차세계대전 패배 후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물적 지원을 받아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평화헌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치식 개헌도 불사하겠다는 아소 부총리의 발언은 자신들의 침략사와 성장사를 모두 부정하고, 보통국가화를 미명으로 군사대국의 길을 걷겠다는 일본 내 극우세력의 쇼비니즘에 기대는 발언이라 할 것이다. 안으로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밖으로도 주변국 모두가 우려하는 길이건만 한사코 내 길을 가고 말겠다는 독선과 아집을 거듭 내보인 것이다. 지난 주말 동아시안컵 축구 한·일전 때 관중석에 펼쳐진 현수막에 대한 반응에서도 일본 지도층의 국수주의가 드러난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우리 응원단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펼쳐 보인 데 대해 “그 나라의 민도(국민수준)가 문제가 된다”고 운운했다. ‘울트라닛폰’이든, ‘붉은 악마’든 스포츠 경기에 어울리지 않는 깃발과 플래카드로 경기장을 민족감정의 대결 무대로 변질되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원인을 제공한 나라의 일개 장관이 공개적으로 이웃나라 국민의 수준을 폄하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낮은 격(格)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보름 뒤면 일본 제국주의 패전일이다. 어느 때보다 야스쿠니 신사를 찾는 일본 지도층의 행렬이 길 것이라고 한다. 국수주의로 치닫는 것은 일본의 장래에도 이롭지 않음을 엄중히 인식해야 한다.
  • 日국민 51%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반대” 자민 지지자 43%만 ‘아베 우경화’ 찬성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에 대해 일본 내에서 반대하는 여론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니치신문이 27~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정권이 검토 중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응답자의 51%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자는 36%로 나타났다.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아도 동맹국이 공격받았다는 이유로 타국에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에 따라 일본도 집단적 자위권을 갖고는 있지만 전쟁 포기, 전력 보유·교전권 불인정을 명기한 헌법 9조의 해석상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헌법 해석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국제안보 환경 변화 등을 내세워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민당 지지층 안에서도 이를 찬성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자민당 지지자의 43%만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했고 45%가 반대했다. 연립 정당인 공명당 지지층에서는 35%만이 찬성, 반대(45%)를 밑돌았다. 아베 총리가 대처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는 응답자의 35%가 ‘경기회복’을 꼽았으며 ‘사회보장’(16%), ‘재정재건’(14%) 등이 뒤를 이었다. 헌법 개정은 3%에 불과했다. 한·일, 중·일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서는 ‘조기에 회담을 해야 한다’가 47%, ‘집착할 필요는 없다’가 45%로 엇비슷했다. 아베 내각 지지율은 55%로 7월 13∼14일 조사 때와 같았다. 지지 이유로는 ‘정치 체질이 바뀔 것 같기 때문에’가 41%, ‘정책을 기대할 수 있다’가 26% 등이었다. 정당별 지지율은 자민당이 35%, 일본유신회가 7%, 민주당·공명당·공산당이 각각 5%였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60~80대 유림으로 잇는 유교전통… 서원·향교를 읽다

    60~80대 유림으로 잇는 유교전통… 서원·향교를 읽다

    “제관들은 이리 하면 되오.” 지난 3월 초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 음력 2월과 8월에 열리는 가장 큰 의례인 향사(祭祀)를 준비하기 위해 지역 유림 3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향사를 앞두고 헌관과 주요 제관을 선출하기 위한 원회가 열렸는데,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60대 촌로가 겨우 막내 축에 들 정도였다. 원회를 주재하는 석장 등 대다수가 70~80대다. 이곳에서 제관으로 선임된 14명의 원로들에게는 서원 직인이 찍혀 밀봉된 ‘망기’가 보내진다. 향사 이틀 전, 서원의 살림꾼인 내·외임 유사가 직접 시내 재래시장에 나가 제수를 구입했다. 가격을 흥정하지 않는 게 원칙인데 200만원의 제수 비용으로도 빠듯했다. 이때부터 손이 바빠진다. 제물을 제기에 담기 전 행하는 의례인 ‘근봉’ 등이 이어진다. ‘녹포’로 사슴 고기 대신 소고기 육포를 사용하는 게 예전과 달라졌을 뿐이다. 향사 전날 오전 10시, 제관으로 지명받은 덕망 있는 지역 유림들이 한두명씩 서원에 입재한다. 향사 사흘 전 들어오던 전통이 조금 바뀌었다. 상견례를 마친 이들은 이때부터 초헌관의 지시에 따른다. 서원 밖 출입도 금지된다. 의관을 차려입은 제관들은 제물에 흠이 없는지 살피는 ‘성생례’, 입재 당일 해 지기 전 축문을 작성하는 ‘사축’을 마친 뒤 잠자리에 든다. 이튿날 오전 5시, 쌀죽으로 끼니를 때운 제관들이 ‘상읍례’에 나서는 것으로 향사가 시작된다. 25일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전국에 남은 서원(書院)은 672곳, 향교(鄕校)는 234곳이다. 16세기 사림이 설립한 사립 교육기관인 서원은 한때 900곳에 달했으나 대원군이 당쟁의 온상으로 지목하며 당시 47곳만 남기도 했다. 전국 330곳 고을마다 자리하던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는 이에 비해 부침이 덜했다. 이들은 어떻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까. 일제강점기와 급격한 도시화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태다. 이명진 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지금도 사당에 모신 인물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상징성을 유지하고 사회 교육 차원에서 한문학을 지역사회에 전파한다”면서 “여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남계서원(1552년)의 경우 풍천 노씨, 하동 정씨, 진주 정씨 등 함양 지역 유림들이 주축이 돼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지금도 원장을 중심으로 유사 2명이 살림을 꾸린다. 1970년대 이후 한때 운영위원회가 발족됐으나 다시 기존 체제로 회귀했다. 연간 운영비는 800만원에 못 미친다. 땅 임대료와 은행 예금의 이자, 지원금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들 서원, 향교도 고민을 안고 있다. 젊은 유림이 거의 없어 전승이 어려워진 데다 전통 유지와 대중화를 놓고 괴리감을 겪고 있다. 이 연구사는 “한 지역 서원에선 80대 제관이 전통 제례에 익숙지 못한 60대 제관을 꾸짖으며 ‘내가 죽으면 누가 일을 돌보겠냐’고 깊은 한숨을 내쉬더라”고 전했다. 문화재연구소는 2008년부터 제례인 ‘서원향사’와 ‘향교석전’을 중심으로 서원의 조직과 운영, 사회 교육 프로그램들을 기록해 왔다. 올해는 남계서원 외에 도동·무성·필암서원과 공주·충주향교를 책으로 펴냈다. 한 곳의 모습을 담는 데 평균 4개월, 예산도 연 1억원에 미치지 못하지만 여지껏 26곳의 서원, 향교를 영상과 책으로 남겼다. 하지만 사업은 예산 부족 등으로 내년까지만 이어질 예정이다. 후학을 배출하며 지역 분권화에 일조했던 서원, 향교를 단지 기록으로만 마주하는 비극이 조만간 도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탄력받은 아베, 새달 집단자위권 행사 재논의

    탄력받은 아베, 새달 집단자위권 행사 재논의

    아베 신조(얼굴) 일본 총리가 참의원(상원) 선거 대승 이후 그동안 미뤄 왔던 우경화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나섰다. 요미우리신문은 23일 아베 정권이 헌법 해석상 금지돼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위한 논의를 하기 위해 정부의 유식자 회의인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 간담회’를 새달부터 재가동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아베 1차 정권 때인 2007년 만들어진 이 간담회는 미·일이 공해상에서 공동 활동을 할 때 미 함정이 공격받을 경우 자위대 함정이 방어하고, 미국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는 탄도 미사일을 일본의 미사일 방위시스템으로 격파하는 내용 등을 담은 보고서다. 하지만 당시 아베 총리의 갑작스러운 퇴진으로 활동이 중단됐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에 따라 일본도 집단적 자위권을 갖고는 있지만 전쟁 포기, 전력 보유·교전권 불인정을 명기한 헌법 9조에 따라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헌법 해석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일본이 직접 피격이 아닌 동맹국의 피격을 이유로 타국에 반격할 수 있는 권리인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 동북아시아에서 적극적인 군사 행동을 벌이겠다는 야욕을 밝힌 셈이다. 이와 관련해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 승리 후 지난 22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안보환경이 크게 바뀐 상황에서 국민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냐는 관점에서 계속 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국가안전보장기본법안’ 등 관련법 정비를 의원입법이 아닌 정부입법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또 아베 총리는 무기금수 정책을 재검토하기 위한 논의를 새달부터 본격화한다고 교도통신이 같은 날 보도했다. 일본은 공산권과 유엔이 금지한 국가, 국제분쟁 당사국 혹은 분쟁 우려가 있는 국가에 대해서는 무기수출을 하지 않는다는 ‘무기수출 3원칙’을 1967년 4월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표명한 이래 계속 지켜왔다. 하지만 무기의 국제 공동개발이 대세인 데다 일본 내 방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이 원칙을 재검토하겠다는 취지다. 전면적 해제를 추진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기의 공동개발에 일본 기업이 참여한다는 명분으로 점차 무기수출을 노골화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태고종 25대 총무원장 도산스님

    태고종 25대 총무원장 도산스님

    한국불교 태고종 제25대 총무원장에 제주 수정사 주지 도산 스님이 선출됐다. 도산 스님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전통문화전승관에서 전체 유권자 146명 중 144명이 참석한 선거에서 68명의 지지를 얻어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당초 팽팽한 접전이 예상됐던 수열 스님은 29표, 백운 스님은 9표, 월운 스님은 37표를 각각 얻는 데 그쳤다. 19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도산 스님은 1957년 내장사에서 화봉 스님을 은사로 득도해 1960년 사미계를, 1978년 보살계를 받았다. 지난 선거에 이어 두 번째 도전해 총무원장에 당선된 스님은 제주 백우정사 주지와 제주교구 종무원장, 제주태고복지재단 이사장, 보우승가회 회장, 제11·13대 태고종 중앙종회 의원을 거쳐 13대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태고종단 내 대표적 개혁파로 알려져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특별기고] “베델이 꿈꾼 조선의 미래, 국민행복 시대로 구현되길”/윤병세 외교부 장관

    [특별기고] “베델이 꿈꾼 조선의 미래, 국민행복 시대로 구현되길”/윤병세 외교부 장관

    서울신문이 창간 109주년을 맞았다. 1904년 우리 민족이 외세의 침탈에 맞서던 당시,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특히,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조선을 위해 싸운 어니스트 베델은 37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면서도 “나는 죽으나, 신보(新報)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우리를 숙연케 한다. 낯선 나라 조선을 위해 젊음을 바쳤던 베델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베델은 박은식, 신채호 등 한국의 선각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독립과 번영을 누리는 조선의 미래를 상상했을 것이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선각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현대사에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단기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구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고, 국가의 발전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으로 충분히 구현되지는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기조는 이러한 역사인식과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는 국가발전의 양적 측면 못지않게 질적 측면을 중시하면서 국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국민중심적인 비전’이다. 또한 “우리가 행복하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던 백범 김구 선생님처럼 이웃과 함께 성장하는 협력적 공동발전을 지향하는 비전이기도 하다. ‘신뢰 외교’는 이러한 국정 기조를 구현하기 위한 철학이자 외교전략이다. 국가 간의 관계나 공동체의 형성 과정에 있어 지속가능한 협력은 항상 신뢰의 수준과 같이 했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자 순리이기도 하다. 신뢰외교는 진정성과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일관되게 전개해 나감으로써 공고한 상생의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러한 국정 기조와 외교 전략의 기치하에 확고한 안보를 토대로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하여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를 정착시키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해야 할 때는 강하게 대응하여 평화를 지키는 한편, 유연해야 할 때는 원칙 안에서 유연하게 대응하여 평화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남북 간 신뢰구축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올바른 변화를 유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신뢰외교를 동북아 지역으로 확대하여 ‘아시아 패러독스’ 현상을 협력의 구도로 바꾸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연성 이슈에서 시작하여 협력의 습관을 축적함으로써 함께 번영하는 동북아를 차분히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주변국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 평화롭고 협력적인 동북아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신뢰형성 과정이 상승 작용을 일으킬 때 통일 과정도 촉진될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 차원을 넘어 박근혜 정부는 지구촌의 행복이라는 기조하에 세계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 인권 증진, 기후변화와 세계 경제문제 해결 등 글로벌 거버넌스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편, 개도국에 ‘하면 된다’는 희망을 주는 맞춤형 개발협력을 통해 나눔과 배려의 대한민국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간 성공적인 한·미,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에 기반한 포괄적인 협력의 틀을 구축하고, 북한에 대해 강력한 안보태세를 기반으로 도발 의지를 차단하면서 변화를 위한 올바른 선택을 일관되고 강력하게 촉구해 왔다. 또한 북극이사회 진출 등을 통해 새로운 외교 지평을 확대하고, 아세안과 동남아, 중남미 등 우리 외교의 후방을 든든히 하였다. 최근 한반도 문제는 물론 주요 국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우리의 위상과 역량이 크게 달라졌다. 핵심국들과의 전략적 소통이 더욱 원활해졌고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우리의 능동적인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 또한 높아졌다. 이제 우리는 100여년 전 역사의 변방에 내던져졌던 객체가 아닌 당당한 역사의 주체로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베델과 같은 선각자들이 꿈꾼 조선의 미래가 국민행복, 한반도 행복, 지구촌 행복의 시대로 구현되리라 확신하며, 서울신문 창간 109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 [정전협정 60주년] 1993년 NPT탈퇴 등 적대적 관계로

    [정전협정 60주년] 1993년 NPT탈퇴 등 적대적 관계로

    북한과 유엔의 ‘애증’ 관계는 40년 전인 1973년 북한이 국제의원연맹(IPU)과 세계보건기구(WHO)에 가입해 유엔의 옵서버 자격을 얻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 북한과 유엔은 6·25전쟁에서 교전 당사자로 싸웠던 적대적 대결 관계였다. 유엔은 남한 정부 출범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남한 정부에만 국제적 정통성을 부여한 당사자였기 때문에 북한은 유엔의 권능과 결정을 일절 부정하는 대(對)유엔 정책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북한의 대외 정책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급격히 떨어지자 유엔 가입을 추진, 1991년 9월 17일 남한과 동시에 유엔 회원국이 됐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진입한 뒤 대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유엔을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도 북한은 두 차례 유엔 가입을 신청했었지만, 이는 가입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남한만의 단독 가입을 막기 위한 정치적 대응 성격이 컸다. 실제로 북한은 유엔 가입 이후 대(對)서방 관계를 개선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을 수용하는 한편 나진선봉 개방 및 경제특구 정책을 실시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개선 요구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얼마 지나지 않아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1차 핵위기를 일으키면서 유엔과 적대적 관계로 돌아섰다. 1차 북핵 위기 당시 유엔은 북한의 NPT 탈퇴 선언 재고를 촉구한 결의 825호를 내놓은 데 이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때마다 점차 수위를 높였으며, 2013년 2월 3차 핵실험까지 총 6개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3차 핵실험 이후에는 중국도 이전과 달리 유엔의 대북 제재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북한은 유엔 가입 이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북한의 유엔 탈퇴 가능성도 종종 거론돼 왔지만, 북한은 고립을 자초하는 대신 국제사회를 향한 항변의 통로로 유엔을 활용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씨줄날줄] ‘평화헌법’/문소영 논설위원

    일본 헌법은 ‘평화헌법’이라고 불린다.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을 포기한다고 명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미 군정하에서 1946년 11월 3일 대일본제국헌법(大日本帝國憲法)을 개정했다. 평화헌법의 핵심은 제9조의 1, 2항에 들어 있다. 1항에는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 발동으로서의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는 영구히 포기한다”고 돼 있다. 2항은 “전항(1항)의 목적 달성을 위해 육·해·공군 등 기타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평화헌법에 대한 균열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 군정이 일본 내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경찰예비대를 창설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예비대는 1952년 보안대를 거쳐 1954년 자위대로 개편됐다. 자위대는 사실상 군대이지만 군대라고 부르지 못한다. 일본은 2012년 기준 세계 국방비 순위 6위의 ‘군사대국’이다. 침략전쟁과 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해 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엊그제 나가사키 국제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9조를 개정하고, (자위대의) 존재와 역할을 명기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압승이 예상되자 그동안 자제해 온 개헌론을 재점화한 것이다. 개헌에 대한 그의 의욕은 두 달 전 도쿄 돔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시구식에 등번호 96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개헌 요건을 규정한 헌법 제96조를 손질해 개헌을 수월하게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돼 논란을 낳았다. 제96조 1항에는 “헌법 개정은 각 의원의 총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국회가 발의하고… 국민투표 등에서 과반수 찬성을 필요로 한다”고 돼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회의원 3분의2 이상을 개헌 발의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개헌 ‘적정선’을 과반수 찬성으로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자민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아베 총리의 개헌 시도는 2007년 1기 집권 때부터 있었으니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일본은 1946년 평화헌법이 나오게 된 이유를 직시해야 한다. 평화헌법은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에 따른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반성이 결여된 일본의 재무장은 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깨뜨린다. 따라서 일본의 재무장은 프랑스 등 유럽이 용인한 서독의 재무장 사례처럼 한국과 중국 등 이웃나라의 최소한의 동의와 용인이 필요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국정원, 탈북자 9000명 정보 美에 넘겨”

    국가정보원이 9000여명의 탈북자 정보가 담긴 보고서를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에 넘긴 사실이 미국의 비밀외교 전문을 통해 드러났다. 해직 언론인들이 참여하는 인터넷언론 ‘뉴스타파’는 12일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전문 가운데 주한 미 대사관이 2007년 7월 9일 미 국무부 등에 보낸 2급 비밀 전문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주한 미 대사관은 당시 이 외교전문에서 “DIA 한국지부가 국정원 등 한국의 정보기관으로부터 탈북자 관련 보고서를 넘겨받았다”며 “미 정부가 방대한 양의 탈북자 정보를 확보하게 됐다”고 보고했다. 전문에 따르면 국정원이 미 정보기관에 넘긴 탈북자 관련 기록은 모두 9180건으로, 1997년부터 2007년 전문을 보낼 당시까지 탈북자 정부합동심문센터 등이 탈북자에 대한 직접 조사 등을 통해 수집한 자료다. 이 기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가 9000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10년간 작성된 기록 전체가 넘어갔을 수 있다. 보고서에는 탈북자 개인 정보와 북한 내부 정보가 포함됐으며, 탈북자 한 사람당 평균 20~30장에 걸쳐 기술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전문은 전했다. 2007년 12월 대선을 불과 5개월 앞둔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이 탈북자 관련 자료를 대거 미 정보 당국에 넘겼다는 얘기다. 당시 국정원장은 김만복씨였다. 미 대사관은 외교전문에서 국정원을 통해 입수한 보고서가 북한 정권의 안정성을 평가하거나 정권의 붕괴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계획을 세우는 데 유용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알카에다에 대응해 만든 ‘하모니 데이터베이스’와 유사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을 요청했다. ‘하모니 데이터베이스’는 미 정부기관이 대테러 활동에 활용할 수 있도록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수집된 알카에다 관련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은 탈북자 보고서를 넘긴 사실이 없으며, 보고서 역시 국정원 것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美 의회, 달 영토화 나서

    세계 최초의 달 착륙 유인우주선인 아폴로 11호를 후대에 기념하기 위해 달에 국립역사공원을 세우는 방안이 미국 의회에서 추진된다. 일각에서는 이 법안이 1967년 발효된 우주 공간의 탐사 및 이용에 관한 국제적 합의인 ‘우주조약’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우주조약에는 우주와 천체 공간은 모든 나라에 개방되며 어느 나라도 영유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9일(현지시간) 의회 전문지 더힐에 따르면 민주당의 도나 에드워드 하원의원과 에디 버니스 존슨 하원 과학우주기술위원회 간사는 달에 국립역사공원을 조성하는 ‘아폴로 달 착륙 유산 법’을 공동 발의했다. 두 의원은 법안에서 “기업들과 다른 나라들이 달 착륙 기술을 확보한 만큼 후손들을 위해 아폴로가 달에 착륙한 흔적을 보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1969년과 1972년 각각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와 17호를 기리기 위한 국립공원을 지구가 아닌 달에 만들자는 내용이다. 또 아폴로 11호의 착륙지점을 유엔에 세계유산으로 신청하자는 제안도 담겨 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내무부와 국립항공우주국(NASA)이 공원을 관리하고 민간 기업이나 외국 정부로부터 기부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에드워드 의원은 이와 함께 NASA가 유인화성탐사와 2020년까지 국제우주정거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2014~2016년 예산을 재승인하는 법안도 함께 제안했다. 미 의회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미국이 이 법안을 발효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공격적인 일방주의 외교를 펼치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러 “시리아 반군 화학무기 사용” 美 “증거 없다”

    러시아가 시리아 반군의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을 제기하자 미국이 즉각 반박하고 나서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시리아 내전의 화학무기 사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됐다. 9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비탈리 추르킨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이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관련 보고서를 제출한 뒤 기자들과 만나 “시리아 반군이 지난 3월 19일 정부군 통제에 있는 칸 알 아살의 외곽 지역인 알레포에서 발생한 교전에서 사린 신경가스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추르킨 대사는 사린 로켓인 ‘바샤르 3’가 투하된 지역에서 채취한 발사체 일부를 러시아 전문가들이 분석했으며 해당 연구는 국제화학무기금지기구가 공인한 러시아 연구소에서 진행됐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반군이 화학무기를 직접 제조해 정부군을 공격하는 데 사용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에 대해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면서 일축하고 나섰다.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아직 시리아 정부군을 제외한 다른 진영에서 화학무기를 제조할 능력을 갖췄다거나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카니 대변인은 그러면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시리아 내전의 화학무기 사용 여부를 유엔이 조사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는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증거를 근거로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는 등 내전 개입 가능성을 시사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 측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향후 서방 국가들의 반군에 대한 군사지원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박대통령, 시진핑에 위로 전문

    박근혜 대통령은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착륙 사고로 중국인 사상자가 발생한 것과 관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외교전문을 보내 위로했다. 박 대통령은 전문에서 “이번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로 귀국 국민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당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시 주석님과 중화인민공화국 국민, 사망자의 유가족들과 부상자들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라고 말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지상파 하이라이트]

    ■고향극장(KBS1 밤 10시 50분) 웬만한 약초에는 훤한 약초박사 금옥씨와 천지분간 못 하는 초보 약초꾼들이 약초 찾아 삼만리 산행을 시작했다. 독초냐, 약초냐 고민하는 이들의 예측불허 위기일발 상황이 이어진다. 과연 금옥씨와 초보 약초꾼들은 무사히 산을 내려올 수 있을까. 탤런트 김미경의 맛깔스러운 내레이션이 함께한다. ■은희(KBS2 오전 9시) 성재는 은희의 출근으로 사무실 일이 너무나 즐거워진다. 성재가 전에 없이 일을 열심히 하자 속사정을 알 리 없는 금순은 그저 흐뭇하기만 하다. 한편 금순이 20년 전 고향 사람과 형만을 비롯한 옛이야기를 나누게 되자 석구는 더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낀다. 이에 우연히 재필로부터 정옥이 일하는 곳을 알게 된 석구는 국밥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MBC 특별기획 구암 허준(MBC 밤 8시 55분) 허준(김주혁)은 해부도를 참고하며 정성스럽게 반위를 치료하지만 약속한 기일이 다가와도 병의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예진(박진희)과 소현(손여은)은 초조해하며 눈에 보이는 병증인 구안와사부터 다스릴 것을 권유하지만, 허준은 포기하지 않는다. 한편 김병조(이찬)는 심한 고통을 느끼며 토혈을 한다. ■꾸러기 탐구생활(SBS 오후 4시 30분)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유와 얼음, 그리고 소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얼음과 소금으로 어떻게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을까. 꾸러기 탐구대원들과 실험에 나선다. 한편 넘어질 때도 요령만 있으면 다치지 않는다는데…. 유도의 기본 기술인 낙법에 대해 배워 보고,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도 탐구해 본다.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규슈는 일본의 다른 섬에 비해 예부터 새로운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이자 본연의 전통을 간직해 온 곳이기도 하다. 그들이 지켜온 전통을 따라가는 마지막 여정을 시작한다. 오랜 전통을 이어온 도자기 마을, 온타로 향한다. 기하학적 무늬가 특징인 온타 도자기를 만드는 이곳의 풍경은 모든 걱정을 씻어주는데…. ■더 워(OBS 밤 9시 50분) 탈레반이 설치한 급조폭발물에 희생되는 병사들과 민간인들. 10년 이상 계속된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황폐해지고, 사람들의 피해는 더 커져만 간다. 계속되는 전쟁의 참상, 물러설 수 없는 전투와 피할 수 없는 총격전. 이제 막 성인이 된 앳된 병사들이 바라본 혹독한 전쟁의 실체와 군인의 눈으로 기록한 아프가니스탄의 치열한 교전 기록이 공개된다.
  • [정전협정 60년] “지척의 北기정동에 형님 두고도 60년간 못 만나”

    [정전협정 60년] “지척의 北기정동에 형님 두고도 60년간 못 만나”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받지만 평생 농사지은 경작지의 땅 한평조차 마음대로 소유할 수 없는 곳. 시집온 며느리는 주민이 될 수 있지만 시집간 딸은 주민이 아니어서 친정 왕래조차 쉽지 않았던 곳. 최북단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DMZ) 안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민간인 거주지 대성동 마을의 얘기다. 대성동 마을은 ‘남북 비무장지대에 1곳씩 마을을 둔다’는 정전협정 규정에 따라 북측의 기정동 마을과 함께 1953년 8월 조성됐다. 행정구역상 경기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이며 현재 50여 가구 2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대대로 이 마을에서 생계를 일궈 온 주민들은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영문도 모른 채 ‘특별구역’ 주민으로 60년을 살아왔다. 대성동 마을에서 나고 자라며 60년 분단의 ‘나이테’를 몸에 새긴 마을 주민 박필선(80), 김경래(77)씨를 3일 파주시 문산읍에서 만났다. 대성동 마을은 최근 남북 간 군사 긴장이 고조되면서 출입이 더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전쟁이 난 건 그날 아침에 알았어요. 그 전에도 포 쏘는 소리는 종종 들어서 양측이 또 교전을 하나 보다 했는데 웬걸, 전쟁이 터졌다는 거예요. 임진강을 건널 배도 없고 해서 그냥 살았죠.” 김씨는 14살이 되던 해 이 마을에서 전쟁을 맞았다. 밤에는 한국군이, 낮에는 인민군이 마을을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마을 청년들은 숨을 죽인 채 3년을 살아야 했다. 인민군이 국군으로 위장하고 마을로 들어오는 바람에 환영을 나갔다가 붙잡혀 간 마을 주민도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잡혀간 주민 중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박씨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옆 마을 기정동에 친형님을 두고도 60년간 만나지 못했다. 박씨는 “왕래를 못 하니 아직도 큰형님이 기정동에 사는지, 돌아가셨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아직도 지척인 옆 마을에 사신다고 생각하고 위안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판문점에서 정전협상이 한창일 때도 마을 청년들은 총을 들고 마을을 지켜야 했다. 협상이 벌어지는 동안 판문점 반경 2㎞ 내에서는 교전이 금지됐지만 양측 군대가 조금씩 밀고 들어오면서 판문점과 1.5㎞ 떨어진 이 마을에서는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김씨는 “마을 청년 13명이 소총을 들고 지켰다”며 “마을 산기슭에까지 포탄이 날아들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마을을 지켜냈지만 휴전 이후에도 대성동의 수난은 계속됐다. 1997년 도토리를 줍던 마을 주민 홍승순씨 모자가 북한군에게 끌려갔다가 5일 만에 풀려났고, 이보다 앞선 1975년에는 마을 부근에서 북한군 2명이 농부를 강제로 납치하기도 했다. 김씨는 “1960년대에 마을 주민 한 명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는데 어찌나 끔찍하던지, 그때는 정말 떠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북한의 ‘임진각 군사적 타격’ 위협에 마을의 모든 주민이 잠시 벙커 신세를 지기도 했다. 박씨와 김씨는 “남들은 우리 마을이 병역도, 납세 의무도 없다며 부러워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박씨는 “통일이 돼 집도 논도 없이 설령 빈손으로 이 마을을 떠나게 된다 하더라도 가장 큰 희망은 통일”이라고 말했다. 문산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4) 남북 군사 대치 (하) 北의 협정 위반과 일촉즉발 위기

    [정전협정 60년] (4) 남북 군사 대치 (하) 北의 협정 위반과 일촉즉발 위기

    북한은 지난 60년 동안 끊임없이 무력 도발을 시도했다. 정전협정이 무색할 정도다. 특히 무력 도발 빈도는 줄어든 반면 수위는 상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무력 도발 방식 역시 다양화, 노골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국방부에 따르면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부터 1994년 4월 말까지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행위는 무려 42만 5271건에 이른다. 특히 지금까지 무력을 동원해 우리 영토와 국민들을 직접 위협한 행위는 간첩 남파 등의 침투 도발이 1959건,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국지 도발이 994건이다. 60년 동안 해마다 평균 49건, 일주일에 1건씩 발생했다는 얘기다. 유엔군사령부가 1994년 5월부터 위반 사례를 집계하지 않아 더 이상의 자료는 없지만 북한의 도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도발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1968년 ‘1·21사태’ 또는 ‘김신조 사건’이다. 북한 무장 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했다가 발각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1980년대까지는 이렇듯 무장간첩 등의 테러 도발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1974년 8월 15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저격 기도,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 폭탄 테러, 1987년 11월 28일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1974년, 1975년, 1978년, 1989년에는 북한의 남침용 땅굴도 발견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정전협정 무력화 시도가 두드러졌다. 북한은 1991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의 유엔군 수석대표에 우리 군 장성이 임명되자 불참을 선언했으며 1994년 4월에는 아예 군정위에서 철수했다. 이듬해인 1995년 9월에는 북한이 중립국감독위원회마저 봉쇄했다. 군정위와 중감위의 설치 근거인 정전협정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북한은 이어 1996년 4월 정전협정 의무 이행 포기를 선언한 뒤 지금까지도 한·미 군사훈련 등을 구실 삼아 정전협정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또 북한의 해상 침투가 두드러졌다. 1996년 9월 ‘강릉 잠수함 사건’이 발생해 무장 공비 13명이 사살되고 11명은 자폭했다. 1998년 6월과 12월에도 각각 강원 속초와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북한 잠수정이 발각됐다. 2000년대부터는 남북 간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등 도발 수위가 이전에 비해 대폭 상승했다. 1999년 6월과 2002년 6월에는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의 북방한계선(NLL) 무단 침입을 계기로 제1, 2차 연평해전이 벌어졌다. 이 중 2차 연평해전 때는 우리 군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2009년 11월에는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과 우리 해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대청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2010년 3월 26일에는 북한 잠수정 어뢰에 의해 우리 초계함이 격침당해 해군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는 ‘천안함 폭침 사건’까지 발생했다. 같은 해 11월 23일에는 북한이 연평도에 100여발의 포탄을 발사했으며, 이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대규모 군사 공격으로 기록됐다. 북한은 또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전면에 내세워 국제사회를 압박하는 공세도 펴고 있다.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북한은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지난 2월 등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강행했다. 아울러 북한은 1998년 8월 사정거리 2000㎞급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1호’를 시험 발사한 이후 지속적으로 장거리 로켓을 쏘아올리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화됐기 때문에 북한이 레토릭(정치적 수사) 차원의 비난 수위를 높일지는 몰라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면서 “다만 우리가 방심할 경우 이를 명분 삼아 틈새를 파고들 가능성이 있고, 그 위험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남북 관계가 악화될 경우 NLL을 중심으로 한 무력 충돌 가능성이 상존한다”면서 “북·미 관계가 나빠진다면 핵실험 등 대량살상무기를 활용한 위협이 반복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6자 ‘대화 액션플랜’ 총력 외교전

    6자 ‘대화 액션플랜’ 총력 외교전

    6자회담 또는 북·미 양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을 둘러싸고 남북은 물론 한반도 주변 4강이 본격적인 ‘밀당(밀고 당기기) 신경전’에 돌입했다. 한·미, 한·중 정상회담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등 박근혜 정부 출범 후 한반도 외교안보 지형을 결정짓는 주요 회의가 마무리되면서 남북을 포함, 미·중·일·러 등 관련국들이 대화 재개를 위한 구체적인 액션플랜 마련에 착수했다는 의미다. 핵 문제로 스스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 북한은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총력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2일 러시아 방문길에 올랐고 김성남(오른쪽)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도 같은 날 중국을 찾았다. 6자회담에 나설 조건과 명분을 찾으면서 국제적 고립 구도를 타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철기(왼쪽)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중 정상회담 직후인 2일 러시아로 날아가 주요국 고위급 안보회의에 참석한 뒤 3일 귀국했다.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적 공조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의 신형대국 관계 설정에 골몰하고 있는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 어떻게든 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회담장 문턱을 낮추는 작업에 골몰하고 있다. 북한을 압박, 설득하는 한편 북한을 대신해 대미(對美) 메신저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날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조건을 다소 낮추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한편 북한에 대해서는 진정성 있는 조치를 먼저 취하도록 설득과 압력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북한은 6자회담 재개와 관련, ‘조건 없는 대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한·미·일 3국의 공식 조건은 ‘2·29 합의+알파’다. 지난해 2월 북·미 회담에서 도출된 ‘2·29 합의’는 북한의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 우라늄 농축프로그램(UEP)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재입국을 대가로 미국이 24만t의 영양(식량) 지원을 하는 것이다. 한·미·일 3국이 요구하는 ‘알파’는 북한 비핵화의 확실한 검증과 관련된 내용으로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과도 연결돼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최종 대화 조건은 미국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면서 “공식적으로 한·미·일과 북한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지만 물밑에선 대화의 조건을 놓고 관련국들 간에 치열한 밀고 당기기가 이뤄지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28일 미국의 제임스 줌왈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대행의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하원 외교위 산하 동아태소위 청문회에서 “북한이 IAEA의 사찰을 다시 허용하는 등 비핵화를 향한 조치를 취해야 6자회담 등의 대화나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고 구체적인 조건을 밝혔다. 북한이 적어도 IAEA의 핵사찰 수용+알파 수준의 진정성을 보인다면 대화의 물꼬가 트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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