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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차별 철폐·인간평등 지향/미서 새성경 번역 출간

    ◎미 옥스포드 유니버시티 프레스서/주기도문 「…아버지­어머니」로 시작/「주」(Lord)는 「신」(God)으로 대체/유태인에 대한 부정적 요소도 제거 성차별을 없애고인가느이 평등에 입각해 새로 번역된 신약성겨오가 시편이 오는 11일부터 전미국에 보급될 예정이어서 기독교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게 굴지의 성경번역 출판사인 옥스퍼드 유니버시티 프레스가 펴내는 새 성경은 남녀성차별은 물론 부모와 자식, 백인과 흑인, 왕과 신하, 주인과 노예, 정상인과 장애인 등 인간에게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차별적 요소를 불식한다는 취지로 번역됐다. 새 성경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없어지게 돼 주기도문의 경우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시작되던 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어머니』로 바뀐다. 「주」(Lord)라는 표현도 봉건제하에서 지배계급의 인상을 풍긴다 하여 최대한 줄였으며 「네가 충성을 맹세한」 혹은 「지고의」 등의 표현으로 변경됐다. 따라서 시편 23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The Lord is my shepherd)의 「The Lord」는 「God」로 바뀌었으며 「그」(He)라는 표현도 모두 삭제했다. 아내들이 남편에 대해 「종속」(subject)돼있다는 표현도 「위탁된」(committed)으로 바뀌었고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복종」(obey)해야한다는 표현도 「명심」(heed)으로 고쳐졌다. 또한 인종편견적 뉘앙스가 있다는 이유로 「어둠」(darkness)이라는 말을 더이상 「악」(evil)과 동의어로 쓰지 않았다. 왼손잡이들에 대한 배려에서 「하나님의 오른손」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권능의 손」으로,「장님」은 「눈이 안보이게 된 사람」.「노예」는 「노예로 잡힌 사람」등으로 표현됐다. 또 이번 성경이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성경에 표현돼있는 유태인에 대한 부정적인 뉘앙스를 모두 제거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부분은 데살로니가서 14∼15장으로 『저희가 주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인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는 표현에서 「유대인들에게」가 「사람들에게」로 바뀌었으며 유대인이 예수를 죽였다는 등의 내용도모두 삭제됐다.
  • 일본에선/한국어 교육(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23)

    ◎한글강좌 126개 대학 개설… “7대 외국어”로/NHK 월간교재 1회 7만부 나가/「서울 연수」 한해 1천명… 꾸준히 증가/남북한 문법달라 혼란… 교재·강사 태부족 「한국어」냐 「조선어」냐를 놓고 논란을 벌이다 결국 「안녕하십니까 한글」로 이름이 낙착된 일본 공영방송 NHK의 한글강좌가 올해로 11년째를 맞고 있다. 지난 24일 강좌에서는 재일동포 작가 김달수씨가 어려서 살던 마산을 방문,아스라히 멀어져간 유년기의 추억을 더듬는 모습이 한국어와 일본어 자막으로 소개돼 단순 어학강좌를 넘어 한국과 재일동포의 삶을 조명하고 이해하는 수준에 올라서 있음을 보여 주었다.NHK 한글방송은 한국어 학원이 많은 도쿄 오사카 이외의 지역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많은 사람에게 크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자체 평가되고 있다.개설당시에는 교재가 15만부 이상 팔렸다.올림픽 뒤 다소 열기가 식었지만 7만부 가량이 팔리고 있다고 NHK측은 밝히고 있다. 80년대 중반 이전 일본에서의 한국어는 60만 재일동포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재일동포들도 일본에서의 삶을 꾸려나가면서 모국어로부터 멀어져 갔다.조선적을 가진 조총련계 동포들이 비교적 모국어를 강하게 지켰을 뿐이다. ○한때 15만부 판매 그러나 86 아시안게임,88 올림픽을 앞두고 상황은 일변했다.한국에 대한 소개가 늘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도 늘어갔다.NHK에 한글강좌가 개설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일본 대학내 한국어 교육 실태를 보면 80년대초까지 학과를 두고 있는 곳은 도쿄외국어대학,오사카외국어대학,도야마대학,덴리대학 등 4곳이었다.학과 명칭은 전부 조선어학과,조선어·조선문학과,조선학과 등이었다.제2외국어로서 강좌가 설치된 곳은 77년 30개교,83년 47개교였다. 간다외국어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된 것은 86년이었다.강좌가 개설된 학교수는 88년 68개교로 늘어났다.92년에는 84개교로,가장 최근 조사가 실시된 94년에는 1백26개교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어 강좌개설 대학수는 독일어(5백14개교),프랑스어(4백60),중국어(3백67),이탈리아어,러시아어,스페인어에 이어 7번째를 차지했다.이와관련,일본 문부성 고등교육국 대학과는 『7개 언어가 중요하기 때문에 조사되고 있고 그 이하는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강습소 1백50곳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아직 미미하지만 꾸준히 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86년 고등학교에서 한글이 교육된 곳은 일본 전국에서 7개교,88년에는 14개교,91년에는 24개교였다.91년 당시 전체 5천5백3개교인 고등학교의 0.4%에서만 한글이 교육된 것이었다. 지난 92년에는 42개교로 늘었다.이는 고등학교에서 교육되는 제2외국어가운데 중국어(1백54개교),프랑스어(1백28),독일어(73)의 다음으로 스페인어(39)보다 많다. 또 일본에서 외국어 강좌가 개설된 문화센터,학원 등에는 거의 빠짐없이 한글강좌가 개설돼 있기도 하다.주일대사관 교육관실은 일본 전국에 대략 1백50여곳의 강습소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독특한 예는 게이오대학 종합정책학부.지난 89년 학부 개설 당시부터 제1외국어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한글 등 6개국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첫해 1천54명중 한글을 선택한 학생은 불과 4명.91년 비디오 상영과 불고기파티로 「손님 유치」에 노력한 결과 수강신청 2일째 정원 20명을 겨우 채웠다.92년에는 첫날 정원을 넘었다.지난해에는 70명이 신청해 듣고 있다. ○정부차원 지원을 게이오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세계를 넓혀 나가려는 학생은 아시아언어를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아시아언어별로는 중국어는 메이저 지향의 학생이,말레이·인도네시아어는 희소성을 중시하는 학생이,한글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개의치 않는 성취지향형 학생」이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한글선택 학생 가운데 여학생 비율은 30%를 밑돌아 6개 언어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어는 일본 안에서만 교육되는 것이 아니다.한국에 유학해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도 많다.지난 59년 창립된 연세어학원 한국어학당을 비롯,서울대·외국어대 등의 한국어코스에는 늘 1천명정도의 일본인 학생이 재학중이다.한국어 코스를 거친 일본인들이 2만여명은 되리라는 추정이다. 하지만 일본 안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우선 능력있는 교사가 부족하다.지도방법도 확립돼 있지 못하다.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어의 경우 교재가 다양하고 충실한 반면 한국어의 경우 학원 등에서 주먹구구로 만들어 쓰는 경우도 많고 난이도도 조절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문체부에서 제작해 해외로 보내는 「한국어」의 경우 일본실정에 맞지 않아 일본내 18군데 설치돼 있는 한국교육원 등에서는 재편집해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북한식 한국어와 남한식 한국어의 통일도 시급한 과제.지난 93년 조총련 인사들이 지원해 창설된 「한글능력검정」은 북한문법과 남한문법을 모두 맞는 것으로 하고 있지만 예문 등에는 북한식 표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이에 맞서 한국은 내년부터 「한국어능력검정」을 실시할 예정이다.여하튼 일본인들에게 정확한 통일된 한국어를 보급하는 데는 남북한 언어의 통일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언어는 교류의 다리다.앞으로 교재의 개발,교원 양성,남북한 언어의 통일 등 과제가 개선돼 나간다면 한국어 보급,더 나아가 한일간 교류에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국론 분열 노린 전술적 공세/재야·운동권 부추겨 「연방제」등 선전

    ◎북은 통일대축전 왜 열었나 북한이 8·15 50주년을 맞아 판문점에서 개최한 「8·15통일대축전」은 우리측 당국과 민간의 분열을 노리는 통일전선전술적 대공세로 풀이된다. 이같은 성격은 「대축전 북측준비위」가 노동당 대남비서인 김용순을 위원장으로 노동당 전위기구인 조평통 중심으로 구성된데서 두드러진다.이는 북측이 우리측 당국이 제안한 8·15공동경축행사를 일언지하에 거부하면서 남쪽의 재야와 한총련 등 운동권의 참여를 적극 선동해온데서도 확인된다. 남한정부를 제외한 남북 및 해외친북인사 등을 초청한 군중집회성격의 대민족회의를 통해 북한의 연방제통일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연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한마디로 북측이 8·15때마다 개최해온 범민족대회의 확대판인 셈이다. 다만 이번 대축전에서는 음악회와 미술전시회 등 문화행사를 종전보다 늘린 점이 특징이다.하지만 이 또한 사회주의 혁명의 기본계급(노동자·농민계층)이외에 지식인·종교인·예술인 등 이른바 「보조역량」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이라는 점에서 한국내 「대중투쟁」을 부추기기 위한 저의가 숨어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민족통일대축전」 개막/밀입국 한총련대표 3명 참석 북한은 15일 상오 판문점에서 김용순 노동당 대남비서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조국해방 50돌 민족통일대축전」 개막식을 개최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는 천도교 청우당 류미영중앙위원장 등과 북한의 각 정당·사회단체 대표,밀입북한 한총련 대표 정민주·이혜정양,범청학련 공동사무국장 최정남 등이 참석했다. 이날 북측 대표로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조평통 부위원장인 안병수는 이번 행사의 개막이 『민족단합과 통일을 지향하는 온겨레의 드팀 없는(꿋꿋한) 의지의 시위』라고 주장했다. 정민주양은 『연방제 통일방안은 우리 민족이 처한 실정에서 통일을 가장 확신성 있게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북한의 통일방안을 찬양하는 내용의 대표연설을 했다. 통일대축전 참가자들은 이어 판문점 북측 지역에 건립된 김일성의 친필비를 돌아보았다고 북한 중앙방송이보도했다.
  • 뇌사상태 교통단속원/장기 기독교재단 기증

    서울 동작구 교통지도과 버스전용차선 단속요원으로 근무하다 위반차량에 치여 뇌사상태에 빠진 최용강(49)씨의 가족들이 12일 최씨의 장기를 기독교 재단에 기증했다. 장기 기증은 독실한 기독교인인 최씨가 평소 사고를 당하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해 달라고 한데 따른 것으로 이날 하오 11시 강남성모병원에서 기증이 이뤄졌다.
  • 기록으로 본 광복 50년전

    ◎총독부 작성 서울전도 등 희귀자료 “눈길”/명성황후 시해·고종 독살기도사건 판결문 선보여/4·19혁명 당시 계엄선포­공민권 제한기록 첫 공개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소장 이수기)가 광복 50주년을 맞아 오는 10일부터 12월10일까지 3개월간 계속되는 「기록으로 본 광복 50년」전에서 공개하는 각종 자료들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권회복운동 판결문 영인집◁ 1895년 8월20일 일어난 명성황후시해사건,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1898년 일어난 고종 독살기도사건,갑오개혁정부 붕괴 이후 일본으로 망명한 유길준이 주도한 혁명정부 기도사건,한용운의 임제종 창립을 통한 일본 조동종 반대운동,양기탁이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이동령 안명근 김구등이 주도한 서간도 독립군기지 건설운동등에 관한 자료가 들어 있다.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판결문은 19 06년 통감부 설치 이후 의병판결문과 일제시기의 판결문등이 대부분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관련자 판결문=18 95년 11월13일 고등재판소에서 작성된 것으로 주모자는 군부협판(지금의 차관급에해당)인 이주회이며 직접 시해한 인물은 일본인에게 고용되어 있었던 박선으로 되어 있다. ▲서간도 독립군기지 건설사건 판결문=19 07년 이후 양기탁 이동령 김구등이 신민회를 결성,가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이주할 대상자를 모집하기 위해 도 단위 책임자를 전국적으로 임명하는등 비밀리에 전개된 운동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추진되었음이 새로 밝혀졌다. ▷조선총독부 작성 서울 전도◁ 이 지도는 1915년에 측도해 6년 뒤인 1921년 다시 수정 측도하고 이듬해인 1922년 7월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축척 1만분의 1로 제작한 지도다.뒷면에는 붉은 글씨로 「용산군용지일반도」라고 부기되어 있다. 조선조 당시 도성의 성저 10리까지의 지경을 제작한 듯 오늘날의 서울시 일대를 지도 한장으로 축소해 치밀하게 작성했다. 부착물로 여의도도가 인쇄물이 아닌 채색도면으로 되어 있는데 이 지도가 여기에 부착된 것은 당시 여의도가 군용지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밤섬의 위치와 도로를 나타내고 이 지역이 일본인의 개인 소유지로 되어 있음도알 수 있다. ▷일제의 조선군사령부 배치도◁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고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 내지 병참기지화하기 위해 전국 요소요소에 군사시설을 갖추어 나가면서 작성한 것이다.당시 용산 일대는 일본군 주둔지 내지 병참기지화한 데 따른 각종 시설이 있었기 때문에 기밀문서로 분류되었던 지도다. 이에따라 총독부에서 「육군성 관리 국유재산에 관한 건」이라는 문서를 생산했는데 이 문서 가운데는 1931년 4월10일 조선총독부 관리대상 재산을 군부측이 사용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소관 토지건물차입조서」가 들어 있다.이 조서에 따르면 당시 조선주둔 일본군 헌병대사령부및 각 지방별 수비대와 부속 숙영지,연병장,수도급수시설지등과 도별 군부대의 작전범위는 다음과 같다. ○군부대 작전범위 기록 ▲제52연대=경기 일원 ▲제1연대=경북 일원 ▲제29연대=황해도 일원 ▲제3여단=황해도 일원 ▲제14연대=경기·경북 ▲제60연대=충남 일원 ▲제50연대=서울·강원·충북·경북·경기·함남 ▲제51연대=서울·충북 ▲제47연대=강원·경기·경북▷미곡·면화공출문서·징용자명부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에서 발견된 1930년대말 전시상황에서 조선총독부의 군단위 일선기관이 작성한 문서들이다. 경기도 부천군이 1936년 작성한 「소사농업창고 관련서류」 「부천군관내도」등에는 부천군의 산업별 인구,경작면적,품목별 수확량 등이 거의 완벽하게 파악되어 있다. 「징용자명부」에는 태평양전쟁때 일본으로 징용당한 전국의 약 40만명의 명단과 인적 사항이 적혀 있다. ▷수양동우회 판결문◁ 일제의 집요한 강요로 민족운동가로서의 지조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이광수를 비롯한 41명의 항일활동이 수록되어 있다.이 판결문에는 이광수 주요한등이 안창호의 권유로 흥사단에 가입한 이래 흥사단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수양동우회사건이 일어난 1938년까지 「통속교육보급회」를 조직하는등 각종 민족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했음이 기록되어 있다.수양동우회는 안창호의 지시로 이광수가 서울 서대문에 있는 자택에서 1922년 결성했는데 1926년 김성수 최린등 민족운동지도자들을 대거 영입해 발전시킨 민족주의계열의 대표적인 운동단체다.그동안 학계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활동만을 가지고 개량주의 단체로 평가해 왔지만 이 판결문은 수양동우회의 활동방식을 당국을 속이기 위한 교묘한 술책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수립 직후 국무회의록◁ 1949년 2월4일 금요일 하오 2시 개최된 제16회 국무회의는 중앙청의 부통령실에서 16명의 국무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통령의 사회로 개회되었다.이 회의의 의사록 가운데 「반민족특별위원회법 제5조 해당자 조사보고에 관한 건」에는 이승만대통령이 「반민법 제5조 해당자를 비밀히 조사해 선처하라」고 내무부장관에게 친전으로 직접 지시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반민법 제5조는 총독부 고위관료및 경찰관을 지낸 자는 공직에 임명될 수 없다는 규정이다.이 때문에 이 기록은 공식 문서를 통해 이승만대통령이 총독부 관료를 조사는 하되 선처해 그대로 임용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4·19혁명시 비상계엄 및 공민권제한 심사기록◁ 이번에 4·19관련 정부문서가 처음 공개되었다.첫째는 1960년 4월 19일 1시를 기해 내려진 「비상계엄의 건」 원본문서이다.이 문서는 대통령과 국무위원인 내무부장관 홍진기,국방부장관 김정렬등 10명이 함께 서명한 것으로 계엄선포의 목적을 「교란된 질서를 회복하고 공공의 안녕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4월 19일 하오 1시부터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실시하며 계엄사령관은 육군중장 송요찬으로 임명하였다. 둘째는 1960년 4월 25일 상오 5시부터 사태의 호전에 따라 비상계엄을 경비계엄으로 바꾼다는 「계엄종류 변경의 건」이다.그런데 대상지역은 부산 대구 광주 대전지역에 한하며 서울은 제외되어 있다. 셋째는 4·19혁명 후 각 시도별로 구성된 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대상자 심사위원회가 작성한 「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 심사기록」을 공개했다.이 문서는 4·19혁명 후 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법을 발표하여 3·15부정선거 관련자들을 처벌하기 위해서 작성된 것이다.이 문서에는 3·15부정선거를 모의하거나 주도적으로 참여한 자유당 정권 말기의 부패한 정치인 관료 재계인사 종교인사 학계인사들이 총망라되어 있다.이 문서들의 공개로 이승만정권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작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 관계철및 포항제철 관련문서◁ 우리나라 경제개발계획안은 19 59년 3월 당시 부흥부 산하에 있던 산업개발위원회에서 작성된 경제개발3개년계획안(1961∼1963)이 정부가 마련한 최초의 것이다.그러다가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직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1966)을 수립하고 사회·경제적 악순환을 시정하고 자립경제의 달성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19 62년 1월 6일자 국가재건최고회의 재경제 10호로 공표되었다.여기에는 5개년 계획수립의 의의,목표와 기본방침,전반적 내용,부문별 내용,수행에 따른 제정책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역사적인 육필원고 담화문이 내각수반 송요찬의 명의로 수록되어 있다. 아울러 육군대장 박정희의 명의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정 승인하고 이를 집행하는데 따른 제반조치사항을 지시한 일자 역시 공표일과 동일함으로써 추진의 신속성을보여주고 있다. 이 문서는 3급 비밀로 분류되어 오다가 1963년 2월2일 「경제 402호」에 의거해 일반문서로 재분류되었다.
  • 종교계/광복 50돌 기념행사 준비로 분주

    ◎15일 전후 종단초월 연합행사 등 개최/종교인 평화회의,14일 「범종교 평화통일 기원대회」 광복 50주년을 맞는 올해 종교계는 15일을 전후해 갖는 행사 준비로 분주하다.종교계 연합행사와 각 종단의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행사가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다. 한국종교인 평화회의(회장 김몽은)는 14일 하오 7시 서울 성균관 유림회관에서 불교·천주교·개신교·원불교·유교·천도교 등 6개 종단이 참여하는 「범종교 평화통일 기원대회」를 개최한다.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가 참여하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함세웅신부 등 공동대표 4인)는 12일 하오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평화통일기원 종교인대회」를 갖는다.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회장 오충일목사)는 지난 10일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감리교여선교회관에서 「평화통일희년국제협의회」를 개최한다.원래 북한과 함께할 예정이었던 판문점 「남북희년공동예배」는 취소하고 13일 하오 3시 임진각에서 단독예배를 가질 계획이다.임진각 예배에서는북한 조선기독교도연맹과 공동작성한 「남북 평화통일 공동기도문」이 봉독될 예정이다. 광복 50주년기념 평화통일희년대회(대표 임옥·이만신)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통일기원 집회를 갖는다. 불교는 조계종의 대한불교청림회가 13일 낮 12시 용산 전쟁기념관 광장에서 「호국선열 전몰장병 위령 대제」를 개최한다. 태고종도 14일부터 17일까지 태평양의 사이판 만세절벽앞에서 남태평양 희생자 천혼대제를 열어 2차 대전당시 일본군으로 강제로 끌려가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한다. 원불교도 13일 상오 전북 이리시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성직자 3백여명과 신도 1천2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통일 기원 대법회를 개최한다. 천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이 광복절 특별메시지를 발표한다.성탄절과 부활절에만 있어온 관례에 비춰볼 때,이번 메시지발표는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천주교 서울대교구는 14일까지 본당 미사때마다 특별 기도시간을 가지며,11일에는 사제와 신도들의 단식을 통해 북한지원 기금도 조성할 계획이다.
  • 애국지사 유물전/통일염원 조각전/예술의전당 광복50주년 특별기획전

    ◎유묵전­애국·항일정신 깃든 선인 101명의 필묵 전시/조각전­통일 주제 중진 작품·공모전 수상작 모아 광복 50주년을 맞아 예술의 전당은 통일에 대한 열망을 조각작품으로 담아낸 「통일염원의 조각전」과 일제시대 항일운동을 펼친 애국지사들의 유묵을 모은 「애국지사 유묵전」 등 두개의 특별기획전을 개최한다. 한가람미술관에서 3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통일염원의 조각전」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만 가능한 전시회이다. 중견·중진작가 25명과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40세미만의 젊은 작가 25명이 「통일염원」이라는 주제로 제작한 작품 50점이 선보인다. 전시작품 전체가 「통일」이라는 테마를 놓고 작가들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잘 소화되고 있으며 재질이나 양식에 있어서도 흥미있게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시회는 이름으로 듣는 것처럼 무겁거나 경직된 전시회가 아니며 주제와는 별도로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한 작품이 많다. 특히 공모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수상작품이 눈길을 끈다. 대상을 받은 이민수의 「백두사람 한라사람」은 백두산의 기상을 인체의 형상을 빌려 웅장하고 힘있게 처리,통일염원의 의지를 표현했으며 우수상을 받은 차주만의 「가을날의 열망」은 넘고싶은 분단의 열망과 넘을 수 없는 현실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잘 풀어냈다. 중견·중진작가로는 강관욱 강대철 김인겸 박충흠 심정수 전수천 최만린 최병상 강희덕 고정수 김광우 김찬식 박석원 심문섭 이승택 이종각 최종태등이 출품한다. 서예관에서는 10일부터 9월10일까지 한달간 「애국지사 유묵전」이 열린다.단발령과 민비시해로 촉발된 을미의병(1895년)에서 해방때까지 민족자존과 독립을 위해 힘쓴 선열들이 남긴 필묵을 통해 숭고한 애국·항일정신과 역경과 고뇌로 점철된 삶의 체취를 생생히 접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지금까지 광복회 등 관련단체에서 기념행사로 일부 공개되긴 했으나 이처럼 한 주제아래 대대적으로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좌·우익,무정부주의 등 이념이나 계파를 초월해 사건 전개순으로 1백1명의 유묵 1백17점을 전시한다. 기우만 김복한 등 의병장,남궁억 장지연 등애국계몽운동가,을사조약과 경술국치때 순절한 민영환 이만도,오세창 한용운 등 3·1운동지도자,여준 이범석 등 해외독립군,안중근 윤봉길 등 의열투쟁으로 생을 마감한 열사들의 유묵이 공개된다.또 김구 신규식 안창호 이승만 등 임시정부 요인, 나철 윤동주 등 종교인과 문인,여운형 홍명희 등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망라됐다.
  • 북에 이용당하는 종교인들(사설)

    『김주석님 80평생 그 어려운 고비를 다 넘기시고 활짝 피는 봄을 맞이하고… 더욱 빛나는 업적들을 자손만대에 남기셨습니다』­밀입북했던 고 문익환 목사부인 박용길 장로가 북을 떠날 때 김일성 시신을 경배하고 남겼다는 말의 일부다.북측의 조작이라고 할지 모르나 어쨌든 이런 해괴한 말을 박씨의 불법 밀입북은 이끌어 냈다. 목사남편의 장로아내인 그가 순수한 종교차원에서 벌인 일이라는 것이 그와 그의 주변세력이 내세우는 말이다.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른바 북측의 대남전략에 실컷 이용당하는 「성과」를 올린 그의 「종교적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이런식 이용은 그의 남편 문목사가 이미 당했었고 안호상씨가 최근에 범한 일도 그런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행동이 모르고 한 일이랄 수도 없다.오히려 영웅적 거사라도 한 것처럼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판문점을 「당당히」 통과하여 돌아온 것을 보면 그는 국법을 매우 우습게 여기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도 신당이 「불구속 수사 운운」하며 편들고 나서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그 논리는 박씨를 『구속하면 백배 천배로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폭언하는 북측의 논리와 꼭같다.앞으로도 북과 이렇게 같은 논리의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편들기는 안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박씨가 북에 가서 하고 온 일을 생각하면 신당이 그렇게 덮어놓고 편을 들 수는 없을 것이다.김일성시신에 경배하고 그 일생을 우러러 서슴없이 찬미한 일이 전부였다.통일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정서에도 크게 어긋나는 일들 뿐이다.통일정책을 수행할 역할에 있지도 않은 그가 한 일은 변함없는 저들의 「대남적화통일론」을 거들어 준 데 불과하다. 그의 이런 입북문제에 대해서는 정부도 책임이 있다.사전에 몰랐던 것이라면 정부의 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늦게라도 범법부분을 가려야 한다.나이를 빌미로 한 온정주의는 특히 곤란하다.유사한 행동들의 반복은 그런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 미,원폭투하 사죄서한/종교인 등 7천5백명

    【도쿄 연합】 미국의 평화운동가·종교활동가등 7천5백여명이 일본 히로시마(광도)·나가사키(장기) 원폭투하에 대해 사죄하는 공개서한을 오는 8월초 두 피폭지에서 개최될 예정인 원수폭 금지 세계회의에서 히로시마시 등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29일 일본언론들이 보도했다.
  • 납북 안승운 목사는 누구인가/90년 10월부터 연변서 선교활동

    ◎쾌활한 성격… 평소 사회주의 부정 안승운(50)목사는 1945년 경북 안동군 와룡면 가동 566 번지 태생으로 장로교회의 장로 생활을 하다 지난 87년 2월 순복음 신학원을 졸업하고 순복음교회의 목사가 됐다. 안목사는 목사가 되기전 금은방과 봉제공장을 경영했으나 38세인 83년에 신학교에 들어가 87년 목사가 된뒤 인도와 필리핀등지에서 원주민선교를 해왔다. 그는 90년 10월 자진해서 중국 연변지역으로 들어가 조선족과 북한탈출 주민들에게 선교활동을 해왔으며 93년 6월 순복음교회의 정식 중국 선교사로 임명됐다. 안목사는 중국 길림성 연길시 인민로 51564에서 혼자 생활해왔으며 가족들은 서울 구로구 시흥동 994의 6 전세집에 부인 이연순씨(45)와 큰딸 소연양 (21),작은딸 지연양(19),외아들 상엽군(16)이 함께 살고있다. 순복음교회 선교국 윤형모 선교부장은 『안목사는 성격이 쾌활하고 활동적인 성품으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헌신적인 선교활동을 해왔다』며 『평소 통일이 되면 연변이 북한선교의 중심이 되어야한다며 사회주의체제를 부정하던선교사가 북한으로 망명을 했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않는다』고 말했다. 키 1백74㎝,몸무게 80㎏의 건강한 체격의 안목사는 평소에도 믿음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않는 성격이었다고 교인들은 설명했다. 중국의 만주 지역에는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목사 전도사 들이 약 4백여명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종교활동을 할 수 없어 수백개에 이르는 가정 교회에서 전도활동을 하고있다.
  • 종교계/남북교류 성과 없었다

    ◎개신교·가톨릭·불교측 상반기 추진상황 결산/북한측,대표단 방문신청 잇따라 거부/선교보다 구호만 요구… 우리측 실망 광복 50주년과 6·25전쟁 45주년을 맞아 연초부터 활기를 띠던 종교계의 남북교류 움직임이 상반기가 지나는 동안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 남북교류를 희망하던 종교인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개신교와 카톨릭은 광복 50주년을 맞는 올해를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앞당기는 희년으로 삼고 북한의 개신교와 카톨릭을 조건없이 도와주는 계획을 세우고 남북교류를 추진했으나 북한측의 잇따른 입국거부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개신교의 홍정길 목사 등 4명과 천주교의 김상진 신부 등 4명은 통일원의 방북 승인을 받은 상태에서 북한에 교회와 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지난 6월 하순 북경에 갔으나 북한이 약속한 기간내에 비자를 발급하지않아 되돌아왔다. 불교의 경우도 지난 5월 23일 중국의 북경에서 송월주 총무원장과 박태호 조선불교도연맹 위원장등이 남한 불교 대표들의 방북 원칙에 합의했으나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린 방북 실무협상에서 북한측의 초청장이 전달되지 않아 방북계획이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서봉 태고종 총무원장과 법타 조계종 총무부장은 재일 한민족총연합회와 재일본조선불교도 협회가 주최한 「8·15 광복 50주년 조국통일 기원희생동포위령 공동 법요식」에 참석,북한의 황병대 조선불교도연맹부위원장,유성철 상무위원과 송월주 스님의 방북 문제를 협의 했다.그러나 북한측이 약속한대로 개별초청장을 전달하지 않고 공동 성명도 없이 법요식이 끝나버려 이달 하순 판문점을 통해 입북하려던 불교대표단의 방북계획은 더이상 진전되지 않고 있다. 개신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조선기독교도연맹이 지난 3월 일본 교토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주관으로 회담을 갖고 오는 8월 15일 판문점에서 남북희년공동 예배를 갖기로 합의했으나 「판문점 예배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염려가 있어 불허한다」는 우리 정부입장표명으로 성사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판문점을 종교인들의 모임장소로 고집하는 것은 정전협정을 무시하고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고있다. 카톨릭도 지난 2월 미국을 방문중이던 조선천주교인협회 장재철 위원장이 김수환 추기경을 초청하고 한국 신부들의 북한방문과 사목활동을 요청할 때와는 달리 남북 교류 전망은 보이지 않고있다. 지난 5월 북경을 방문했던 서울 대교구 최창무 보좌주교가 북경에서 북한측 종교인들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 신부들의 방북도 어렵게 됐다. 종교관계자들은 남북 종교교류가 이루어지지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종교인들의 방북목적이 북한주민들의 선교와 구호인데 반해 북한측은 선교없는 구호와 정치선전만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정부차원의 쌀지원을 받고있는 요즈음 북한으로서는 구호를 받은 셈이어서 남한 종교인들을 초청하지 않을것』이라고 전망했다.
  • 정치인 믿지않는 미국민/나윤도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미국인들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정치인을 가장 부정직하고 부도덕한 부류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밝혀졌다. 워싱턴에 위치한 대중과 언론과의 관계를 연구조사하는 기관인 타임즈미러센터가 최근 일반대중의 인식과 언론보도 사이의 갭을 측정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직성과 도덕성을 기준으로 할때 일반대중은 정치인에 대해서 23%만을 「높음」으로 평가하고 있다.「낮음」은 53%이고 「매우 낮음」이 24%로 나타났다.이는 기업인(31%),종교인(55%),군인(63%)등 다른 사회지도층의 「높음」평가와 비교할때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한편 언론계가 이들을 보는 시각은 일반대중보다 비교적 후한 편이다.정치인에 대해 51%가 「높음」으로 평가했고 기업인 (50%),종교인 (76%),군인 (81%)등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이 여론조사는 정치인들이 언론보다도 일반대중들로부터 더 불신당하고 있는 미국정치의 현실을 수치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결국 정치인들이 눈앞에 드러나는 언론의 보도보다도 눈앞에드러나지 않는 여론으로부터 훨씬 더 나쁜 평가를 받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때마침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전략에 결정적인 영향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화이트워터사건과 92년 연방수사국(FBI)의 다윗파 본거지인 웨이코 사원 과잉진압에 대한 의회 청문회가 개최돼 클린턴 대통령의 정직성이 또한번 도마위에 올라가게된 시점이어서 이같은 여론조사는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정치가란 결국 시냇물이 없어도 다리를 놓겠다고 공약하는 사람이다』라는 후르시초프의 자성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정직성은 정치인에게 최고의 덕목임이 틀림없다.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해방을 이룩한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진짜 이유는 그의 정직성 때문이다.그래서 지금도 그는 「정직한 에이브」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 서울외곽 순환고속도/판교∼학의 20일 개통/8.8㎞ 8차선

    ◎착공 3년8개월만에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중 판교∼학의간 8.8㎞ 구간이 착공 3년8개월 만인 오는 20일 개통된다. 왕복 8차선인 이 구간은 성남시 중원구 삼평동 판교분기점과 의왕시 학의동 학의분기점을 연결하는 도로다.지난 91년 12월 착공 이후 총 3천55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분기시설은 판교와 학의동에 각각 1개씩 설치돼 서울쪽에서는 판교인터체인지,성남쪽에서는 판교∼구리간 고속도로,의왕에서는 의왕∼과천간 고속화도로를 통해 각각 진입할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쪽에서는 직접 진입할 수 없게 돼 있다.그러나 앞으로 한남대교 판교간의 교통 흐름을 감안하여 진입로 연결을 추진할 계획이다. 통행료는 빠져나올 때 내는 개방식 영업체제로 운영되며 내달 16일부터 받는다.
  • 유양에 성금·선물… 특채 제의 “밀물”

    ◎「기적의 생환」 이틀째 이모저모/방문객 줄이어 면회 30분으로 제한/커피회사 자사제품 기증경쟁 “눈총”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이 14일째 계속되는 동안 지난 9일과 11일 각각 구출된 최명석군,유지환양이 입원중인 강남 성모병원에는 각계의 온정이 쏟아졌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3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돼 서울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첫밤을 지낸 유양은 12일 상오 6시쯤 잠에서 깨어나 『아직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탓인지 잠을 푹 자지 못했다』면서 『가슴이 갑갑하고 온몸이 욱신거리지만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푹신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고 감격. ○…병원측은 유양이 이날 상오 8시30분쯤 미음 한 그릇을 모두 먹는 등 왕성한 식욕과 함께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설명. 병원측은 사고 직후 유양이 콩팥과 심장의 기능저하,눈 염증 등의 현상을 보였으나 하루 사이 거의 정상상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3일쯤 지나면 일반병동으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 한편 병원측은유양과 최군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줄을 잇자 이들의 회복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면회시간을 상오 8시부터 8시30분과 낮 12시부터 12시30분으로 엄격히 제한하기로 결정. ○…「사지」에서 살아남은 유양에게도 특채하겠다는 제의와 성금이 답지. 유양이 재직중인 삼광유리공업 김종훈(57)사장은 이날 5천만원의 위로금을 전달하고 대졸사원으로 대우해줄 것을 약속. 수협중앙회 박종식(46)회장도 유양을 연봉 1천6백만원의 대졸사원으로 채용하고 취업을 희망하는 가족들도 같은 조건으로 입사시키겠다는 뜻을 전달. 유양의 모교인 위례상고 유준웅(57)이사장도 호주 퍼시픽대에서의 연수 비용 또는 이 대학 2년 과정의 학비와 함께 생활비를 지원하겠다는 유학증서를 전달해 주위를 흐뭇하게 하기도. 삼광유리의 모회사인 동양화학은 또 유양 구조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사고대책본부에 성금 1억원을 기탁.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 호텔 총지배인 존 콘웨이씨(37)도 병원을 찾아와 『유양이 우리 회사에 취직을 원하면 언제든지 받아들이겠다』고 제의.○…유양이 구조된 직후 『냉커피가 먹고 싶다』고 말한 사실이 전해지자 커피제조·판매회사들도 앞다퉈 자사제품을 기증해 와 눈길. 이날 동서식품,한국네슬레 등 유명업체가 캔커피를 보내온 데 이어 강남구 논현동 이화물산(대표 홍승업·40)은 『귀여운 유양의 생환을 축하합니다.냉커피 실컷 드세요』라고 쓴 카드와 함께 커피원료,커피잔세트,원두커피추출기 등을 기증. ○…전남 화순군 동면국민학교 학생들도 이날 조순 서울시장에게 삼풍백화점 사고현장에서 수고하는 구조대원들에게 전해달라며 꼬깃꼬깃한 천원짜리와 동전을 포함한 성금 18만1천20원과 편지를 보내오기도. 이 꼬마들은 『비록 작은 성의지만 구조대원 아저씨들에게 힘이 될수 있도록 편지와 성금을 대신 전달해 달라』고 주문.
  • “한국·조선학교 졸업생에 일 국립대 입학자격 차별”

    ◎교포,유엔에 첫 제소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의 국립대학이 한국·조선학교 졸업생에게는 수험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가 처음으로 유엔 인권위에서 논의된다고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조총련계 민족학교인 조선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 자격검정시험을 본 뒤 일본 국립 교토대에 입학한 김해영씨(21·이학부 3학년)는 7월말부터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위원회 차별방지 소수보호소위원회(차별소위)에 국립대학의 불평등 실태를 제소할 계획이다. 일본은 민단계 한국학교를 비롯해 조총련계 조선학교를 교육법상 정식 고등학교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대학입학자격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 기독교 재건(두만강 7백리:19)

    ◎신도 2만여명… 80년대 초부터 예배활동/문혁 이후 박해 사라지자 “자생교회” 탄생/초기 고 김성화 목사 혼자 연변 포교 활동/일부 조선족,한국 갔다 기독교인 돼 돌아오기도 우리 민족이 당시 북간도땅으로 불리던 연변지역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많은 종교를 맞아들였다.불교·기독교·천주교·유교·대종교등 자그마치 20여개나 되었다.아마도 이국 타향의 고독한 심사를 종교에 의지하여 달래보려는 것이 종교를 불러들인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토록 번창했던 종교가 광복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다.토지개혁때는 종교재산만 압수되고 교회당과 같은 건물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문화대혁명 시기에는 한수 더 떠서 종교건물을 모두 창고로 사용했다.그러다 1983년 정부가 다시 종교단체에 건물을 돌려주었다.연변 사람들은 한 때 종교를 아주 버린 것처럼 보였으나 개혁개방 이후 종교주변으로 또다시 몰려들고 있다. ○한때 교회건물도 뺏겨 연변기독교의 부흥은 1978년 중국 공산당 제11기 삼중전회에서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나서 80년대 초부터 서서히이루어졌다.그러니까 예배활동을 시작한지 10여년이 좀 넘는다.신도 숫자도 2만명을 헤아리게 되었다.처음에는 김성화(작고) 목사 혼자서 연변 전체를 맡아 순회목회를 했다.그러나 지금은 세분의 목사가 연길·용정·왕청에 상주하고 있다.이들은 40세 미만의 신학교 졸업생이다.최근에는 연길시에 1년 코스의 기독교훈련센터가 세워져 해마다 20명의 예비목회자를 배출할 수 있게 되었다. 용정시 기독교회 박영호 목사(33)는 문화대혁명을 실감나게 체험한 세대는 아니다.그러나 그가 들은대로,또 어렴풋한 기억을 재생하여 들려준 종교박해의 실상은 모질었다. 『신자들은 다 잡귀신으로 몰렸다고 기래요.머리에 한발씩 되는 꼬깔모자를 씌우고 잡귀신 아무개라는 패쪽을 목에 걸었다는 겁네다.그리고 상두차에 조리돌림을 시키는 것은 약과고,장로와 권사·집사들이 자살하거나 매맞아 죽었디요.연변의 교회는 멸망의 변두리에 서 있었다 이겁네다.하디만 혁명은 육체를 소멸할 수는 있어도 정신을 깡그리 짓밟지는 못했디요.그래도 교회가 살아났으니끼리…』연변의 시골 교회당은 대개 1980년대 들어 자생교회로 출범했다.용정시 삼합진 북흥교회는 북흥촌의 조금숙 집사가 마을 신도조직을 만들어 예배를 본 것이 효시가 되었다.조집사는 자기네 집을 팔아 교회당을 세우는데 보탰다.현재는 신도가 1백명에 이르고 있다.이밖에 화룡시 노과진 노과촌 교회당은 마을 최수영씨(61)자택을 이용해 3명의 신도가 지난 1985년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출발했다.지금은 신도가 34명으로 늘어났다.농한기에 수·일요일 예배를 보고 농번기에는 일요일 예배로 국한하고 있다. ○예비 목회자 배출까지 요즘은 교회 역할도 커졌다.불행한 사람들의 안식처로 큰 몫을 하기 때문에 신도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신도가 늘어나는 또 하나의 원인은 한국을 다녀온 조선족들에게도 있다.한국에 나가 불법체류를 하는 동안 조마조마 애간장을 녹이던 조선족들이 한국교회에서 동정과 사랑을 받다가 돌아와서는 결국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다.연길시 흥안교회당의 이상옥씨(33)는 한국에서 집사가 되어 돌아온 사람이다.그는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맹장수술을 받아야 했는데,수술비가 없어 애를 태웠다.그 때 기독교계병원에서 받은 무료수술을 인연으로 교인이 되었다. 공산주의를 종교 이상으로 받아들였던 당원들까지 신도가 되는 경우도 있다.이들은 개혁개방과 함께 현실을 직시하고 나서 자신들의 황폐한 심성을 발견한 것이다.북경 중앙민족대학 출신의 작가이자 연변대 강사였던 박길춘씨(36)가 그 대표적 사례다.그는 본래 당원이었는데 지난 92년 당에 퇴당신청을 내고 연길시 민주촌에 교회를 세웠다.현재 3백여명의 인텔리군을 신도로 거느린 이 교회는 연변에서 가장 믿음직한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화룡시에 사는 박희남씨(34)는 화룡 건달판에서 이름난 주먹이었다.사람들은 그를 만나면 슬금슬금 피할 정도로 불량기가 대단했다.그런데 교회의 신도들이 따뜻하게 대해주는 바람에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지금은 양처럼 순한 사람이 되어 연길 기독교훈련센터에 들어가 신앙학습을 받고 있다.종교의 힘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한다.그래서 화룡에서는 아이들이 쌈질을 하면 『박희남 못 보았느냐』고 나무라는 말이 생겼다. ○탈당 후 교회 세우기도 연변의 교회는 아직 자립할 수 있는 재정능력이 없다.한국을 포함한 외국의 동포교회의 지원이 필요하고,실제 외국에서 소리없이 돈이 들어온다.두만강 연안 개산툰 천주교 성당은 수원 매산성당에서 지어주었다.좁은 방에서 예배를 올리고 있는 것을 직접 보고 돌아간 신부님이 귀국해서 성금을 보냈던 것이다.그리고 대전시 신성동에 사는 오금손 집사(66) 등 몇몇 분은 생활이 어려운 조선족 신도와 기독교훈련센터를 계속 도와주고 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연변에 긍정적 모습만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지난 1992년 화룡시 서성진 교회당에 머물렀던 미국 다미선교회의 한 선교사는 연변에 큰 파문을 던져주었다.그 선교사는 설교를 통해 「천국에 들어갈 만반의 준비」를 시켰다.그해 10월28일 하느님의 사자가 와서 영접해 간다는 그의 말을 서성진 교회 신도들은 곧이곧대로 믿었다.전기문 집사와 같은 신도는 천당에 갈텐데 농사가 웬 농사냐고 일손을 놓았다.어떤 신도는자살을 기도했다.화룡시 서성진 진정부에서 사전예방을 했기에 망정이지,큰일이 날뻔 했다. 그리고 북한에 국적을 두고 연변에 와 있는 조교(조선교포)들도 교회에 나온다.그들은 하느님 앞으로 다가서면서 모든 시름을 덜었다고 말한다.지난해 한반도에서 혈육상쟁이 일어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 결과 정상회담 얘기가 나오더니만,갑자기 수령님이 돌아가 애달프다는 표현도 하고 있다.남북 7천만 동포가 하나되게 기도한다는 조교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용정시 삼합진 북흥교회를 찾았던 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20리나 떨어진 마을의 노인아낙들이 새벽길을 떠나 걸어서 교회로 모여들었다.아침 9시에 시작하는 주일예배 시간에 대느라 종종걸음으로 반달음질들을 쳤다.1원이면 너끈할 버스값을 아끼는 까닭은 감사헌금으로 쓰기 위함이었다.연변의 기독교는 이렇듯 재건되고,또 부흥하고 있다.
  • 이춘구 대표 「선거제도 개혁」 왜 제의했나

    ◎“지역할거 청산” 중선거구제 해법 제시/총선서 여소야대구도 탈피 모색/민주 찬반양론… 성사 불투명 민자당의 이춘구 대표는 5일 국회 정당대표연설에서 6·27 지방선거이후 지역적으로 갈라진 정치구도에 「선거제도개혁」이란 묘한 해법을 제시했다.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대표의 발언은 지역감정극복을 위해 국회의원선출방식을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 어떠냐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를 둘러싼 정가의 반응은 다양하다.민자당은 명분에서 공감하지만 내놓고 추진할 처지는 아니라는 분위기다.민주당은 얽혀 있는 당내 역학구도 때문에 분명한 의견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본격적으로 공론화가 된다면 그만큼 진통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한 듯 민자당도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자고 꼬집어 얘기한 것은 아니라고 일단 「꼬리」를 내리고 있다.이대표가 언급한대로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타파하기 위한 모든 노력의 한 방법일 수는 있다』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사정은 한결 절실하다.민자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역감정의 「쓴맛」을 보았다.상당수가 『특정지역에서 1등이 어렵다면 2등이라도 해서 따내자』고 주장한다.다만 이러한 의도를 내비추는 것이 부담스러울 뿐이다.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호남·충청·대구권 출신의원은 두손을 들어 환영하고 있다. 충남 예산 출신의 오장섭의원은 『소선거구제는 선거비용이 많이 들어 시대추세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지역이기주의를 벗어나려면 골고루 뽑을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반응은 계파에 따라 판이하다.동교동계는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주장한 지역등권주의를 통해 3당구도를 정립시켰다는 데 대해 만족스러워하고 있다.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여소야대」국면을 내년 총선까지 그대로 끌고가면서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계산이다.따라서 이대표의 선거구제도 개편제의에 적극 반대하고 있다. 이기택 총재쪽은 이와 달리 긍정적이다.민주당이 지역색을 극복하기 위해 2인이상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지역정당탈피라는 명분과 함께 비호남권에 자기세력을 구축하겠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곁들여 있다. 하지만 동교동계가 당내 역학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민자당의 주장이 먹혀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민련은 현행 제도를 유지해도 밑질 것은 없다는 생각이나 충청권 이외 지역의 이해득실을 검토하며 당론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민자당에서도 아직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다.이대표가 제의한 「선거제도개혁」 문구를 놓고 고위당직자회의 및 대표연설문기초소위에서 『넣자』『빼자』는 의견이 맞서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윤환 사무총장은 『국회의원선거가 9개월밖에 남지 않는 시점에서 야당이 반대하면 어렵지 않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이대표의 이날 제의는 여론과 야당의 반응에 따라 추진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애드벌룬용」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춘구 대표 국회연설 요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부실한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이번 참사를 계기로 안전관리청의 신설,신속하고 효율적인 재난구조를 위한 재난관리법 제정,건설분야의 총체적 부실치료를 위한 건설제도개혁위원회 구성을 추진하겠습니다. 4대지방선거를 통해 국민 여러분은 준엄하게 집권당을 꾸짖어주셨습니다.집권당이 자만에 빠지고 결속하지 못할 때 받는 채찍질을 절감하면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국정을 펴나가는 데 있어 당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며 언로를 활짝 열어 직언하는 풍토를 만들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됐습니다.지방자치가 당파적 대결장으로 전락해서는 안되며 중앙과 지방의 대립,지역간 대결등을 경계해야 합니다. 지역감정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며 그 타파를 위해 선거제도개혁등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선거기간중 일부에서 개헌문제를 제기했으나 대통령직선제를 시행한 지 10년이 안되고 통일을 위해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므로개헌논의는 소모적·분열적 논쟁에 불과합니다. 실질적 현안으로 먼저 지방화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제도보완이 필요합니다.지역이기주의 극복,중앙과 지방의 조화,자치단체간 분쟁조정등 대책을 세우고 지방세제를 개혁하겠습니다. 6·27선거는 가장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선거였지만 동시선거로 인해 국민의 참다운 선택권이 제약당하는등 문제가 많았습니다.선거의 분리실시를 검토하고 선거제도의 불합리는 국회 지방자치특위에서 논의해야 합니다. 북한에 대한 쌀지원선박이 인공기를 달고 하역작업을 한 데 대해 정부는 깊은 반성을 해야 합니다.무조건 양보나 타협이 능사가 아닙니다. 나라의 체통과 정부공신력에 타격을 준 외무부공문서 변조사건은 문서변조사실이 분명히 밝혀졌습니다.정부는 누가,무슨 목적으로 변조했는지 속히 의혹을 풀어줘야 합니다. 한국통신 분규수습과 관련,종교인에게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는 바입니다. 안전관리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 국민불안을 해소하고 2001년까지 도시철도망을 2배로 확장하는 한편 98년까지 전국민연금제도를 실시하는등 민생문제해결에도 앞장서겠습니다.
  • “잔해제거때 틈새는 육안점검 하라”/빌딩붕괴때 구조요령

    ◎미 연구소 15개항 소개/때로 작업 멈추고 신음소리 듣는일 중요/구조대원 적절히 교체·언론 창구 일원화 미국 시카고에 취치한 비상대응조사연구소(ERRI)의 클라크 스테이튼 소장은 최근 건물의 고층화와 이에 따른 고층거너물의 붕괴사고 증가에 있어 구조작업시 참고해야 할 사항을 15가지로 정리, 「빌딩붕괴시 구조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소책자를 펴냈다. 다음은 이책자의 요약이다. (1)폭발직후 파괴된 잔해의 위치가 불안하기 때문에 추가붕괴 가능성이 있으므로 붕괴상태를 먼저 세심하게 관찰한뒤 필요하면 버팀목을 세운다. (2)사고 현장에서 대피해 나온 사라머이나 주변의 목격자들로부터 사고당시의 상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입수함으로써 정확한 대비책을 세울 수 있다. (3)구조대의 안전도를 살핀 뒤 소규모 구조대를 만저 붕괴된 윗면으로 올려보내 체계적인 표면조사를 실시한다. 이때 색테이프 등으로 조사지역과 매몰가능지역을 표시해 놓음으로써 중복조사를 피하고 본구조대의 시간을 단축시킨다. (4)대형붕괴의 경우 체계적인 인명구조 계획에 의거하여 대량구출인력과 의료지원인력을 일시에 투입한다. (5)매시간마다 4∼5분씩 일제히 작업을 멈추고 새로운 생존자의 신음소리를 파악한다. 이때 특수 청음기게를 사용, 잔해속 깊은 곳에서 나는 생존자의 소리를 잡아내야 하며 폐회회로TV·광섬유TV등 첨단기계를 최대한 활용한다. 군견을 불러 탐색에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6)잔해제거 작업은 조심스럽게 수직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나타나는 틈마다 직접 들어가서 세심하게 점검해야 한다. (7)매몰자가 발견되었을때는 먼저 추가 붕괴가 없도록 받침목을 세우고 손이나 소도구로 매몰자 주변의 잔해들을 조심스럽게 긁어내야 한다. (8)응급사고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한 감정적·심릭적 치유사가 필요하다. 지연되는 구조작업, 미확인 시체 발굴, 기이한 냄새와 광경등을 겪으면서 구조대원이나 희생자, 혹은 그 가족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적 이상을 보일 때가 있으므로 종교인이나 정신건강전문가, 위기중재자 등이 현장을 지켜야 한다. (9)구조대원의 적당한 교체가 필요하다.주구든지 18∼24시간이 지나게 되면 신체적 능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10)사고발생 직후 공보담당자를 임명하여 쏟아지는 매스컴의 질무에 대한 창구를 일원화함으로ㅕ 궁금증도 풀어주고 일의 능률도 높인다. (11)빌딩의 설계도와 가스관, 수도관의 배관 및 전기선의 배선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입수, 구조작업을 지원한다. (12)여러층 건물의 경우는 지하로 동굴형태를 만들어 구조작업을 전개할 수 있다. 이때 구조대원은 자일을 타고 등산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13)구출노력의 빠른 종결은 금물이다. 지진으로 인해 붕괴된 건물 잔해에서 12일만에 살아서 구출된 기록이 있다. (14)관련된 많은 유관기관의 협조가 중요하다. 구조·의료·호송·치안·건설등 각기관들이 사고지휘본부의 지시에 따라야 능률적인 구조가 가능하다. (15)구조대에 포함된 모든 이들의 헌신적 노력과 근면성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부단한 구조훈련과 구조장비 개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 미의 대중정책 일관성 있어야(해외사설)

    중국의 이붕 총리는 지난주 모스크바에서 「으스대는」 미국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의 공동대응을 촉구했다.닉슨 전 미국대통령이 옛소련 억제용으로 대중국 유화정책을 쓴 지 25년만에 중국은 대미 지렛대역할을 하기 위해 삼각외교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이는 한때 미국외교의 자랑거리였던 미·중관계가 매우 껄끄러워졌다는 증거다.클린턴대통령이 미국국익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인내와 단호함이 요구된다. 미국이 북경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에게 확실한 이익이다.중국은 핵강국의 하나이고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경제국이며 세계인구의 5분의 1이 사는 나라다.미국 회사들은 지난 79년이후 70억달러 이상을 중국에 투자했으며 매년 90억달러어치의 상품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또 미국은 4백억달러에 가까운 중국상품을 수입함으로써 중국을 미국의 6대 무역국으로 자리잡게 했다. 그러나 양국관계 유지는 수월하지가 않다.부시 전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의 민감성을 수용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중국 지도자들은 협력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더욱 신랄한 태도를 보였다.현재 그들은 등소평이후를 위한 정치적 기반확장에 몰두,모든 계파가 이념적으로 엄격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미·중 관계는 89년 천안문사태이후 악화됐지만 정확히 말해 워싱턴정부가 이등휘 대만총통에게 모교인 코넬대학 방문을 허용한 뒤 최근 몇주 사이에는 아예 무너져 버렸다.중국은 워싱턴주재 중국대사를 소환하고 미국의 짐 세서 신임 북경대사의 승인을 유보했다.이란·이라크와 두드러지게 관계개선을 추구했다. 닉슨이 냉전시대의 모스크바 대응수단으로 북경과 관계를 맺은 이래 중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변했다.오늘날 미국은 핵확산과 지역분쟁을 억제하고,역동적인 세계최대시장에의 접근을 보호하며,반체제 지식인 및 소수민족등 중국인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를 촉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년동안 중국은 무기판매서부터 교도소 노동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약속과 국제적 합의를 위반했다.워싱턴정부는 중국이 경제개혁에 전념하는데 만족했었다.그러나경제재건은 정치적 억압과,미국이 보다 강하게 항의해야 하는 국제적 호전성을 감추기 위한 위장이었다.북경정부는 최근 남사군도에 대한 자국의 권리를 믿기위한 명목에서 군함을 파견했다.최근 민주적 지식인들의 재구속과 미국시민권자에 대한 영사접근 거부를 비롯한 중국의 인권문제 악화에 대해 미국은 중국이 분명히 원하는 각료레벨의 방문과 양국 정상회담 등의 조치를 보류시키는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이달말 연례 동남아 외무장관회의에서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면 중국이 남사군도에서 무력시위를 함으로써 지역안정에 가해진 위험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시해야 한다. 워싱턴정부는 중국의 외교적 도발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그러나 중국의 민감성에 대한 과도한 우려는 정책의 마비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북경정부의 과도기는 순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미국의 대중국 처리자세는 명확하고 일관돼야 할 것이다.
  • 30일 정년퇴임하는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

    ◎“한국교회 베푸는 교회로 거듭나야”/“정신박약아들 돌보며 여생 보낼터”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맞아 우리교회도 앞으로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이들이 사는데 불편이 없도록 도와주고 베푸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31년간의 신부생활을 통해 성공회 초대 관구장,서울교구장 등을 역임하며 대한성공회를 이끌어온 김성수 주교(65)는 오는 30일 교구장 퇴임을 앞두고 한국교회의 역할을 이렇게 말했다. 김주교는 이런 소신으로 『퇴직후에는 서울 오류동에 있는 정신박약아 학교인 성베드로 학교에서 3백60여명의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고 퇴직후의 계획을 밝혔다. 1930년 서울에서 태어나 교동국민학교와 배재고를 졸업한 김주교는 20대에 폐결핵에 걸려 10년간 요양하면서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성공회 신학원에 입학,64년 청주교회 보좌사제로 성직자의 길에 들어섰다. 김주교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은 누가복음 22장 27절의 『나는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이곳에 와있다』는 구절로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심부름하는 자세로 기도하고 헌신하는 목회를 이끌어 교세를 확장했다. 71년 서울 대성당사제가 된 김주교는 성당에서의 목회을 하면서 70∼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가,빈민·장애인·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끊임없는 보살핌으로 당국으로부터는 「진보 사제」말을 듣으며 감시를 받기도 했다. 84년부터 서울교구장을 맡으면서 항상 바쁘게 살아온 탓으로 자녀들로부터는 『우리집이 여관이냐』라는 핀잔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주교는 그동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성서공회 이사장,바른언론을 위한 시민연합 공동대표,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종교적인 사회 운동을 펼쳤다. 그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도운 것은 『좋은 신부,좋은 목사들을 만나 의로운 일을 하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뒷바라지를 한 것뿐』이라고 밝혔다. 그가 빈민과 장애인 등에 관심을 가진 것은 『10년간의 폐결핵투병 생활을 한 경험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주교는 그동안 ▲성공회대학을 정식 대학으로 만든 것 ▲대한성공회를 관구로 격상시킨 것 ▲선교 1백주년 기념 선교행사를 무사히 마친 것 ▲서울 교회를 확장 증축한 것 등을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주교는 당초에 결혼을 하지않는 수사생활을 하려고 했으나 39살의 노총각때 일본을 방문하면서 당시 일본에 선교사로 와있던 영국인 부인 후리다 여사(63)를 만나 만혼,1남 1녀를 두었다. 김주교는 『다시 신부가 된다면 광산이나 어촌·농촌으로 들어가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주교는 성당에서 퇴직금은 받지만 액수는 아주 적어 『묻지 말아달라』 며 『아내 후리다 여사가 장애인 들을 위한 봉사를 하면서 월급을 받고 있으니 생활에는 불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성직자들은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자기 회개를 거듭하는 경건한 삶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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