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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책따라 2∼5개 가명사용/한총련 보위수칙

    ◎서로 알려고 않고 말조심·철저한 변장까지/감청 대비 휴대폰·삐삐번호 두달마다 바꿔 한총련 핵심 지도부의 신원파악과 검거는 왜 어려울까. 이들이 점조직으로 단체를 구성하고 비밀유지를 위해 다른 조직원의 일을 모르게 하는 「차단의 원칙」을 운용하기 때문이다. 서울경찰청은 11일 한총련 핵심지도부의 「보위수칙」을 공개했다.이들은 신분을 숨기기 위해 상황과 장소에 따라 가명을 사용한다.직책에 따라 2∼5개로 「주정남」「홍준표」 등 탤런트나 유명인사의 이름을 쓰기도 한다. 이석씨 폭행에 가담한 서총련 투쟁국장은 「주길남」(주체의 길을 가는 남자) 「이수홍」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민해군(민족해방군)·인해(인민해방)·범해(범민족해방)·바다(상위직급)·호수(하위직급) 등도 자주 사용하는 가명이다. 또 「서로간에 알려고 하지도 말고 말조심 할 것」「집회 참석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항상 2∼3명과 함께 행동할 것」을 강조한다.의장인 강위원씨(26·전남대 학생회장)는 이동할 때 수행실장과 경호대원 등 10여명과 함께 움직였다.변장과 위장술도 구사,음식점 종업원에서부터 종교인으로까지 꾸민다. 감청에 대비,휴대폰과 호출기의 번호를 두달마다 바꾸고 공중전화도 30초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미행·감시를 피하기 위해 택시를 탈때는 오른쪽 백미러로 뒤를 살필수 있도록 반드시 앞자리에 앉고 전철로 이동할 때는 항상 주위를 살피도록 했다.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사용,비행기를 타는 등 차비는 아낌없이 쓴다. 이동할 때는 미리 2∼3가지 길을 알아두고 사방의 지형지물을 숙지한다.다른 대학의 행사에 참석할 때는 사전에 진입로와 퇴로를 확보해두는 것도 철칙이다.학교안에서는 서로 연락하지 않고 연락할 때는 숫자·이름 등을 거론하지 않는다.이름이나 지명은 암호로 대신한다.
  • 동경성의 대종교(송화강 5천리:27)

    ◎발해 도읍지서 꽃핀 민족종교/1930년대 본거지 구축… 동북3성서 독립운동/발해농장·이상촌 건립… 조선족에 살길 열어/단군섬이던 교인들은 일제탄압에 뿔불이/자금난 본떠 만든 궁궐터엔 깨진 기왓장만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은 해동성국으로 일컬었던 발해국에서 따온 지명이다.발해역사 229년동안 두 번이나 도읍지가 되었던 상경용천부는 바로 발해진에 있다.동경성이라고도 불리는 상경용천부의 도성은 당나라 장안성을 본떠서 조영했다는 것이다.장방형을 이룬 도성은 외성과 내성,궁성을 갖추었다. ○궁궐터를 밭으로 개간 오늘날 남아있는 외성에는 버드나무가 길길이 자라 숲이 되었다.북쪽 외성의 길이는 5.5㎞,남쪽 길이는 5㎞,동서 길이 3.5㎞에 달했다.외성안에는 마차가 다니는 80m의 거리가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어 당나라 장안을 방불케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이야기다.그리고 내성 역시 장방형으로 그 둘레가 4.5㎞에 이르고 있다.당시 삼성육부가 자리잡았던 내성에는 성터와 금원자리가 그런대로 남았다.이른바 어화원이라고도 하는 2만㎡의금원 자리에는 인공못과 조산흔적이 아직도 보인다. 궁성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다.궁성의 남문인 오문은 그 흔적이 뚜렷하다.오봉루로 더 널리 알려진 오문은 누각만이 없을뿐 높이 6m,너비 20m 규모로 잘 복원되었다.오문 북쪽 5개의 궁전터에는 크나큰 주춧돌만이 잡초속에 묻혔다.16부 130개 현을 호령했던 왕실의 권력이 오간데가 없는 이 황성을 누가 자금성이라 했던가.가장 큰 궁전터 동쪽에는 팔보 유리정이 있다.왕이 마신 어수가 솟아올랐다는 이 샘의 석축에는 이끼가 창연하다. 용천부를 두루 밟노라면 허무한 생각이 가슴에 쌓인다.세월과 함께 모든 영화가 사라진 궁궐 옛 터전에는 깨어진 기왓장만 나뒹군다.그래도 누군가가 궁궐터를 밭으로 부쳐서 여름이면 옥수수가 검푸르게 자랐다.이 땅은 발해 이전에는 고구려 강토였고,더 올라가면 고조선의 영토였다.청나라때인 강희16년(1677년)에는 청조의 발상지라는 이유로 봉금구가 되어 인적이 끊기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의 변경민들이 사선을 넘나들었다.새벽에 강을 건너 농사를 짓다가 저녁에 돌아가는 조선인들을 더이상 막을수 없게 된 청조는 이른바 「혼춘영고탑초간장정」을 반포했다.이는 조선족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는데,영고탑은 오늘날 행정구역상으로는 혼춘이 아니라 발해진에서 15㎞에 불과한 영안시에 있다.그래서 1889년께 이 일대에 조선개간민촌 고려영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고려영은 주로 영고탑성향으로 형성되었다. ○1889년에 고려영 형성 그 당시 조선인은 1천200∼1천400명이었다.이후 조선민은 더 늘어나 1930년에는 3천88명,1932년에는 1만2천767명을 기록했다.이들은 바로 중국 동북3성에서 독립운동을 거의 주도한 대종교의 기반이 되었다.그러다 대종교는 1911년 길림성 화룡시 용성향 청호촌을 거쳐 1920년에는 흑룡강성 밀산시 당백진 등으로 본거지를 옮겨다녔다.1928년에 다시 흑룡강성 영안시 남관으로 들어온 대종교 본부는 1934년 발해의 옛 읍지인 영안시 발해진 동경성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대종교는 총본사를 동경성으로 옮기면서 조직과 기구를 정비했다.3·1학원을 세우고 발해왕궁터 바로 남쪽에 천진전을지었다.교주는 윤단애 선생이었다.그 무렵에 조만춘이라는 사람이 대종교 활동에 참여했다.그런데 조만춘이 만주국 사법과 밀정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그의 밀고로 대종교 요원들이 모두 체포되었다.이를 대종교에서는 임오교변이라 하는데,영안시 삼량향 남향촌의 이인희옹(70)은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그는 대종교 주요 멤버였던 이수원의 손자다. 『우리집은 대종교 총본사와 200m 밖에 떨어지지 않았디요.아침에 깨어보니 할아버지께서 본사에 다녀오신 모양입데다.그리고 나서 밖을 내다보았더니 일제가 동원한 경찰들이 떼로 몰려와 있었디요.할아버지께서는 옷을 챙겨 입으시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식구들이 울면서 만류했디 않았겠습네까.다 잡혀갔으니끼리 뒤에 수습을 하셔야 된다고….그래서 피신을 하셨디요.식구들은 대종교 서적과 서류를 마대에 넣어 한족집에 맡기는 것도 보았디요』 단군을 섬긴 대종교인들은 거의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겼다.영안시 동신촌 이병조(72)의 부친 이련건도 그런 분이었다.일제의 주구 조만춘의 유혹도 뿌리친 그는 옥중에서 동지들한테 보낸 한시에서 이런 구절을 남겼다.「발해성터에서/무엇을 해야 할꼬/나라일 걱정에/하룻밤이 일년 같구나」.나라를 잃고 독립을 위해 망명지에서 어렵사리 살았던 우국지사들의 고뇌가 엿보였다. 백산 안희제선생은 1933년 동경성에 정착한 대종교 요인이다.동만농장 토지를 사서 발해농장을 꾸리기도 했다.당시 논을 개간하며 쌓은 둑은 지금의 아보저수지에 묻혀버렸지만,그가 「발해농장」간판을 걸었던 건물의 잔영은 남아있다.발해진 상경로 17호 발해진청사에 절반쯤 남은 건물이 그것이다. ○격변의 세월 한족촌 탈바꿈 안희제 선생은 임오교변으로 체포되었다가 이듬해 8월3일 병보석을 받았다.그러나 감옥문을 나선뒤 세상을 떴다.그는 동경성일대의 조선족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어 생전에 많은 추앙을 받았다.그와 더불어 추앙을 받았던 인물을 더 꼽으라면 김소래 선생이 있다.반일투사이자 교육가인 선생은 1928년 오늘의 영안시 와룡향 홍기임장에 이상촌을 건설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바뀌어 한족들이 그 자리에 살고있다.김소래 선생을 아는 사람도 없거니와,본래가 조선족 이상촌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를만큼 변해버렸다.지금 임장사무실로 쓰는 건물 뒤쪽으로 흐르는 실개천 건너의 언덕이 선생의 집자리였다고 한다.물론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그보다 더 애석한 일은 선생의 유해가 묻힌 묘지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아마도 묵묘로 남았다가 세상이 바뀌어 자취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김소래 선생은 1933년에 피살되었다.선생은 피살전에 죽음을 예견했는지 몰라도 책과 서류를 산속 동굴에 감추었다고 한다.그런데 광복후 사냥꾼 이기송이 집으로 가져왔으나,마을 사람들이 담배를 말아 피우는 종이로 사용했다는 것이다.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다.발해 도읍지의 독립운동사는 그렇게 역사 뒤안으로 사라졌다.
  • 한경직 목사 기념관 건립/추진 기념전

    한국 개신교계의 원로지도자 한경직 목사(95)의 신앙생활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 건립추진 기념전시회가 5∼10일 서울 중구 태평로 조선일보미술관(724­6328)에서 열린다. 오는 10월 한목사의 모교인 숭실대 교정에 모습을 드러낼 기념관은 연건평 4천882평에 지하2층 지상3층 규모로 한경직 기념물전시관을 비롯해 도서·자료실,신학세미나실,한국기독교박물관,부흥회와 예술공연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 등으로 꾸며진다. 전시회는 한국화의 김수자,김병종 등 미술 각 장르의 국내외 작가 91명이 100여점을 출품하고 대부분 기독교 신자들인 참여작가들의 출품작은 전시후 모두 기념관에 기증,보관된다. 지난 92년 4월 종교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한 한목사는 이후 남한산성내 자택에 칩거하면서 북한선교와 주민들을 위한 사랑의 쌀 나누기운동을 주도해왔다.
  • “클린턴 성희롱 제자가 판결”

    ◎73년 아칸소대 수학 여판사가 재판관 현직 대통령임을 이유로 재판일정 연기를 요청했다가 미 연방 최고법원으로부터 기각당한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폴라 존스양에 대한 성희롱사건을 재판할 아칸소 지방법원의 판사가 옛날 클린턴으로부터 법학을 배웠던 여제자에게 배정돼 또다시 화제. 클린턴 대통령은 73년부터 3년간 모교인 아칸소대학 법학부에서 법학을 강의한 바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때 클린턴에게 법학을 배웠던 수잔 웨버 라이트 판사가 클린턴의 성희롱사건 재판을 맡게된 것. 라이트 판사는 클린턴이 존스의 소송에 대해 2달내로 대응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클린턴 대통령을 성희롱 혐의로 고소한 폴라 존스양(30)의 변호인측은 이번 사건에 대한 본격재판이 1년 내에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길버트 데이비스 변호인은 또 『존스양은 클린턴 대통령과 특정한 조건 아래서 합의를 통해 이번 사건을 해결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녀는 클린턴 대통령의 사과로서 해석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존스양 변호인의 이같은 언급은 클린턴 대통령이 성희롱을 했다는 잘못을 인정할 때에만 합의에 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나라를 시민중심으로/김석준 이대 정보과학대학원장·정치학(시론)

    나라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총체적 난국으로 인해 국민들의 삶이 어려움에 처한지 오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난국을 극복하고 국민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줄 기미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정치인이 정치를 멀리하고 기업인이 경영의욕을 잃었으며 근로자와 시민들도 지도층에 대해 허탈감과 끝없는 불신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국가경쟁력은 점차 떨어지고 국내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가 표류하고 있다.한보청문회 이후 정치인들의 사법처리나 대통령 아들의 구속도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스럽게 하기보다는 답답함만 더하게 했다. 눈을 밖으로 돌려보자.세계시장은 호황을 맞고 영국에서는 정권교체로 돈쓰지 않고 새정부가 출범하여 21세기를 준비한다.미국도 클리턴 정부가 재신임을 받아 경제부흥의 발판이 되고 있다.세계시장의 호황을 우리의 경쟁대상국들은 국가도약의 좋은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우리가 이들을 부러워만 하고 있어야 되겠는가.이제 우리도 나라의 중심을 바로 세워야 한다.그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가꿔나가야 한다.치열한세계경쟁속에 우리의 힘을 다시 모아 앞서가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북의 동족을 도우며 21세기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하겠다. 민주시대의 나라의 중심은 바로 우리들 평범한 시민들이다.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관료,기업인,근로자,농어민,학생,주부,종교인,전문직,예술인 등 모든 시민이 나라의 중심이다.그동안 지도층을 탓해왔지만 그들 스스로 변하기는 어려움을 이번 한보청문회가 입증했다.이것은 값비싼 교훈이다. ○새공동체 가꾸기 힘모을때 더이상 한가롭게 그들이 국민에게 해주기를 기다리면서 비판만 할 수도 없다.민주주의 시대,시민이 주인이 된 시대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는 다르다.나라의 중심이 바뀌고 바로 우리 시민들이 그 중심에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시민이 중심이 되어 나라의 틀과 다음 정부를 바로 세워야 한다. 먼저 정경유착을 구조화하고 우리 사회 모든 부정부패 먹이사슬의 근원이 된 「돈정치」를 몰아내는 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부패방지법,돈세탁방지법,고발자보호법,특별검사제 등의 제도를 정비하는데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천문학적인 돈이 소요되는 선거나 정당체제를 고치고 그것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위에 열거한 제도들을 도입 또는 정비해야 한다. 이 일을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둘 순 없다.그동안 정치개혁 관계법이 여야 합의로 몇차례 개정되었지만 그 내용이 기존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크게 배제하지 못하고 일부는 개악이라고까지 비판받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입법청원과 입법감시 활동을 펴고 여기에 일반시민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시민조직화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일반시민들도 시민단체의 노력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돈선거」와 「고비용 정치구조」를 몰아내는 국가적 과업을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주도해야 한다.돈정치는 수요와 공급 모두를 치료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돈을 쓰는 정치인과 돈을 대는 기업인,돈을 받는 유권자,그리고 관리를 맡은 정부당국 모두 주체적으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로 나서야만 돈정치를 추방할 수 있다.이들 네 집단은어떻게 보면 돈정치의 공범이다.모두가 회개하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 돈정치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 그 자체보다 그것을 운영하는 주체들의 의식이 혁명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제도를 바꾸는 것은 최근에만 해도 어느 정도 있었으므로 유권자나 정치인,기업인,선거관리인 모두의 의식과 행동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 ○돈정치 깨끗하게 청산하자 모두가 바뀌기 위한 일에 최근 언론과 시민단체가 함께 나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지금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은 물론 입법,사법,행정 등 국가 3권의 모든 권위가 훼손된 상태에서 언론은 단순히 제 4부가 아니라 그 이상의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주제이다.이러한 언론이 시민단체와 함께 돈정치청산과 다음 정부를 바로 세우는 일에 나서는 것은 우려도 있으나 기대가 더 크다.TV토론회를 통한 국가비전과 정책선거 유도,유권자의 의식개혁운동 등에 기여하길 바란다. 이제 시민이 나라의 중심으로 바로 서야할 때다.권리와 의무를 바로 알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지금의 난국이 나라의 중심을 바로세워 한국이 진정한 민주국가로 세계속에 우뚝서 21세기를 앞서 갈 수 있는 역사적인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
  • 서울 불교신자 2년새 절반 감소

    ◎조계종 「전법의 해」조직위 분석 결과/성직자 부족… 효과적 포교활동 못해/가톨릭·개신교는 0.9∼1.1% 늘어 “대조”/“일요법회 의무화 등 종단차원 대책 수립 절실” 최근 10년동안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들은 늘고 있으나 불교신자들의 증가세는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수도권의 불교신자들은 급감하고 있으며 서울의 부유층·빈곤층·노동자층 신도수는 기독교계에 비해 열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조계종 전법의 해 조직위원회가 통계청의 「95인구주택 총조사」와 서울시의 「96년도 제36회 서울통계연보」를 토대로 분석해 밝혀진 것이다.분석결과에 따르면 불교인구는 85년 8백59만명에서 95년에는 1천38만명으로 숫자는 2백만명이 늘어났으나 총인구 대비 불교인구 비율은 23.2%를 차지,91년 27.6%에서 4.4%P가 감소했다.반면 95년 현재 개신교 신자는 8백81만명,가톨릭신자는 2백98만명으로 91년에 비해 1.1%와 0.9%가 증가했다.특히 서울의 불교인구가 급격히 감소,85년 1백77만에서 93년에는 1백61만명 95년에는 81만명으로 최근 2년사이 신도들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각 구청별로는 강북구와 서대문구를 제외한 서울시 전지역에서 불교인구가 개신교에 비해 열세를 보이고 있으며 중랑·영등포·구로·관악·강남·송파지역은 심한 열세를 보이고 있다.이 지역중 중랑·영등포·구로·관악지역은 빈곤층과 노동자층이 많은 곳이며 강남·송파지역은 신흥부유층이 많이 사는 곳으로 불교는 빈곤층과 부유층 양쪽 모두 효과적인 포교를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도시화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 지방출신 주민들에게 불교신도를 새롭게 형성하는 역할을 불교가 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의 사찰수는 83년 640개에서 95년 1천37개로 62% 증가한 반면 스님은 83년 당시 2천50명선을 유지하고 있어 성직자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개신교의 교회수는 3천99개에서 5천827개로 증가하고 목사는 8천380명에서 1만2천681명으로 50% 가까이 늘어났다. 또 불교는 연령별 분포에서 40대이상의 신도가 많은데 비해 개신교는 10대 인구가 많고학력별 분포에서도 국졸이하가 35.2% 대졸이상은 17%를 나타내 국졸이하 12.9% 대졸이상 24.3%인 개신교보다 학력이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분석결과에 대해 조계종의 포교관계자는 『앞으로 일요법회 등 정기법회를 의무화해서 신도들을 조직화하고 어린이 청소년 청년층에 대한 포교를 강화하며 신흥도시 빈곤층 노동자층의 포교방법을 개발해야 한다』며 『각 지역별로 전법도량을 지정하거나 도심에 대규모 법당을 설립,종단적인 포교활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라오스의 대우(메콩강이 부른다:6·끝)

    ◎저수량 6억t… 후아이호댐 건설 한창/아시아 최대 800m 낙차… 발전량 150㎿/라오스 남부 지도 바꿀 대역사 BOT 방식으로 축조/전력 85% 태국 수출… 10년내 투자비 회수 라오스 제3의 도시인 팍세에서 170㎞ 가량 떨어진 남부 열대림.메콩강과 그 지류 세콩강이 만나는 이 곳에선 라오스 남부의 지도를 바꿔놓을 대역사,후아이호 댐 공사가 한창이다.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덤프트럭들,수몰지역에서 이뤄지는 막바지 벌목작업 등으로 부산하다. 후아이호 수력발전소는 이른바 유역변경식 발전소로 댐과 발전소가 정반대 방향에 있는 것이 특색이다.대우건설이 BOT(BUILD,OPERATE,TRANSFER)방식으로 축조하고 있다.해외 건설에서 BOT방식의 수주는 이 댐이 최초다.대우건설은 댐 축조와 발전소 및 송전설비의 건설비용을 대고 30년간 운영,운용수익으로 투자비를 회수하게 된다.생산전력의 85%를 태국에 수출하며 30년 뒤 라오스 정부에 넘겨준다.태국은 경제개발에 따라 전력수요가 급증하자 라오스와 1천500MW의 장기 전력공급 협정을 맺었다.후아이호 발전소도 이의 일환이다. 댐의 발전용량은 150MW로 우리의 안동댐 규모.공기는 97년 11월까지 48개월이다.94년을 기준해 전력판매단가는 ㎾h당 4.2센트로 책정됐다.94년 1월부터 상업발전 시점인 98년 9월까지 매년 전력단가를 복리로 3% 인상,송전시점에서는 ㎾h당 5.4센트에 팔게 된다.발전소를 운영하는 회사는 대우가 60%,라오스가 20%,태국이 20%씩 출자해 설립됐다.총 공사비 2억3천만달러로 내부 수익률은 연 15%.10년이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 댐이 들어서는 메콩지류는 강폭은 좁지만 낙차가 커 수력발전소 입지로 적합하다.유역면적 192㎢,저수면적 30㎢에 저수량 6억t으로 라오스에서 두번째로 큰 댐이다.유역변경식이어서 댐 반대편에 3㎞의 수평터널과 714m의 수직갱(직경 4m 내외)을 뚫어야 했다.아시아 최대의 낙차(800m)로 714m의 수직갱을 이용한 발전 역시 세계적 기록이다.곧 물을 담기 시작,98년 8월께 상업운전에 들어간다.라오스 수상과 부수상 등 고위 관료들이 서너번씩이나 다녀갔고 현지인들에게도 관광코스가 됐다. 연 평균 6∼7%의 고성장을 하고 있는 라오스는 86년부터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농업관개시설과 전력,통신,도로 건설에 투자를 늘려나가고 있다.그러나 인구 5백만명에 80%가 산악지형이어서 수자원을 제외하곤 부존자원이 거의 없다.재정도 넉넉치 않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싶어도 여건이 어렵다.코 앞에 메콩강이 굽이굽이 흐르지만 관개시설이 제대로 돼있지 않아 대부분 천수답이다.베트남과 태국,캄보디아에 둘러싸여 있어 발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측면도 물론 있다.우리와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않았던 93년에 댐 건설이 착공됨으로써 라오스와의 민간외교에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장대영 대우건설 현장소장(상무)은 『BOT방식으로 추진한 것은 하나의 모험』이라며 『남들이 꺼리는 시장을 개척하는 대우식 세계경영이 아니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분꺼뜨 대외경제협력위원회(수상 직속) 차관은 『양국간 수교(95년 10월) 이전에 발전소 사업이 시작돼 정부 내에서도 반대가 적지 않았었다』며 『당시 캄푸리 부수상이 적극 지원,성사될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그는 『개발도상국의 국가위험을 감수하고 들어온 민간회사로는 대우가 처음이었다』며 『대우건설에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그는 댐 건설과 관련한 각종 기자재의 통관과 인·허가 문제 등 대우의 대라오스 창구역을 맡고 있다. 후아이호 댐 공사는 세계 7개국의 노동력과 기술이 동원된 다국적 인력공사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타당성조사는 일본업체가,설계는 영국회사가,수직터널 공사는 남아공화국 업체가 맡았다.잡부를 제외한 기능인력은 태국과 필리핀,파키스탄에서 수입했다.태국인의 임금은 월 600∼800달러,필리핀은 이보다 100달러 높고 파키스탄인은 이보다 50∼100달러 낮다.현지인력은 2백달러 내외.수직갱 공사는 남아공의 샤프트 싱커스사에 5백만달러에 하청주었다.금광 등 수직터널을 전문으로 시공하는 세계적인 업체로 현재 백인 17명,흑인 35명이 마무리 작업중이다. 다국적 인력을 쓰다 보니 식당만해도 한국·태국·라오스·필리핀·파키스탄인 식당 등을 따로 운영한다.파키스탄인에 대해서는 회교도와기독교인의 식당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자는 곳까지 다 다르다.공사장 인력은 650명,이중 한국인은 협력업체 인력을 포함,50명. 공사초기에는 대형 건설장비들을 오지까지 운반하느라 고충이 많았다.60t이 넘는 중장비들을 육로로 들여와야 했기 때문에 중장비가 태국국경과 메콩강 지류를 통과할 때는 교량을 보수하거나 우회도로를 만들어야 했다.또 라오스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라는 팍세조차 통신·의료시설이 부실해 전화를 하거나 응급환자가 생기면 태국국경을 넘어야 했다. 특히 풍토병인 말라리아는 외지인들에겐 무서운 복병.라오스인이나 태국인들은 내성이 있어 잘 걸리지 않지만 한국인이나 다른 나라 인력들은 걸리면 「죽을 고생」을 한다.우기(5∼10월)의 집중호우도 공사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지난해에는 홍수가 나는 바람에 공사현장에 보급이 끊겨 한동안 애를 먹기도 했다. 라오스는 수자원이 풍부해 발전여건은 좋다.국내 업체들이 해볼만한 사업도 수력발전 쪽이다.국내 업체로는 대우외에 동아건설이 세리안 세남노이수력발전소 공사를BOT방식으로 수주,착공을 준비 중이다.대우건설은 후아이호 댐건설을 계기로 종합적인 발전소 건설경험을 갖게 됨으로써 다른 발전프로젝트에도 진출한다는 계획이다.라오스의 세콩4 프로젝트나 세카탐지역의 추가 발전소 건설에 BOT방식의 참여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그러나 라오스측과 발전단가 문제가 결정되지 않아 서두르지는 않고 있다.장대영 상무는 『발전단가 등 중요사항을 사전에 확실히 해두지 않고 공사에 착수하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된다』고 조언했다.동아건설도 판매단가를 결정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고 총리,모교 창천초등교 찾아 후배 격려

    ◎6학년 담임스승도 만나 사제의 정 나눠 고건 국무총리가 「스승의 날」인 15일 모교인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창천초등학교(교장 이창재)를 찾았다. 고총리는 이 자리에서 6학년 때 은사인 이종윤옹(72)을 만나 사제의 정을 나누고 교사들을 격려했다. 고총리가 모교를 찾은 것은 후배인 학생회장 강동헌군이 「학교에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담은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고총리는 이날 강군이 있는 6학년 2반에 들러 『편지를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어릴때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이었다』면서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고총리가 이 자리에서 어린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꿈을 키우라」는 것이었다.고총리는 『나에게 지금 총리와 초등학교 6학년으로 돌아가는 것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당연히 미래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초등학교 6학년을 택하겠다』면서 『여러분도 꿈을 갖고 자기의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노력하라』고 충고했다.
  • 진각종 25대 통리원장 성초 대정사

    ◎“창종 50돌… 포교·실천불교운동 매진”/새달 중 흑룡강성에 두번째 해외포교당/경제회생 등 49일 불공 『진각종 창종 50주년을 맞아 창종 당시의 정신인 도심포교와 실천불교운동에 더욱 노력하겠습니다.미국 로스앤젤리스 불광심인당에 이어 내달 초에는 중국 흑룡강성에 제2의 해외포교당인 해동심인당을 건립,해외 포교의 기반을 마련하겠습니다』 대한불교 진각종 제25대 통리원장으로 선출된 성초(56) 대정사는 취임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진각종은 1947년 회당 손규상(1902∼1963) 대종사가 불교개혁을 위해 우리 불교를 산중불교에서 도심불교로,또 기복신앙에서 실천불교의 기치를 들고 창종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밀교종단으로 사찰인 심인당에는 불상이 없다.신도들은 석가여래 부처님이 아닌 본래 모습인 법신 비로자나불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주문을 염송한다.진각종은 전국에 120개 심인당과 60만 신도들이 있으며 96년 경주에 위덕대학을 설립했다. 『올해 창종 50주년 기념사업으로는 종조 손규상 대종사의 전기와법어집,밀교사전 간행등 출판사업과 창종 50주년 학술세미나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성초 통리원장은 최근 한보사태등 정치와 사회의 혼란에는 종교인들의 책임도 있다며 종교인들이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달 26일부터 7월13일까지 49일간 전국의 심인당에서 「국가경제와 정치난국 회생을 위한 49일 불공」을 드릴 예정입니다.』
  • 종교단체 잇단 대남접촉 제의/우리정부,순수목적 아니면 불허키로

    북한은 최근 종교단체를 앞세워 남한의 종교지도자들에게 통일문제 등 상호관심사에 대해 협의하자는 제의를 잇따라 보내오고 있다. 관계당국자는 3일 북한의 장재철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장이 지난달 20일 김승훈 신부 등에게 『조국통일을 위한 천주교인들의 연대문제를 비롯한 호상관심사로 되는 문제를 협의하자』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밝혔다.또 22일엔 박태호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장이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등에게 『북과 남,해외의 정당 및 단체들과의 연대회의를 소집하자』는 서한을 보내왔다고 전했다. 관계당국은 북한의 종교단체들이 겉으로는 종교활동을 앞세우고 있지만 내막적으론 노동당의 통일전선부의 지휘를 받아 순수한 종교활동이 아닌 정치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점을 감안,접촉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제2 한국전」땐 둘째주가 고비

    ◎WP지,미 국방부 아시아담당관 시나리오 게재/개전일­서울 북쪽서 극력 대치/첫째주­북 육·해·공군 무력화/둘째주­새 전선 지구전 양상도/막바지­연합군이 북 지역 장악 최근 망명해온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가 북한의 마지막 선택으로서의 전쟁도발 가능성 지적 이후 한반도에서의 전쟁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4일자 워싱턴포스트는 미 국방부 로니 헨리 아시아담당관의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한국전 가상 시나리오를 게재했다. 현역 육군장교인 헨리씨는 북한의 전쟁 도발 경우 수개월간 전투는 계속될 것이나 사실상 두번째주가 대세를 판가름 짓는 분수령이 될것이라며 결과적으로는 한·미 동맹군이 북한을 장악하게 될것으로 예측했다.이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의 전쟁가능성과 북한의 핵무기 사용이 돌출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으나 그 실현성은 적은 것으로 분석했다. 이 시나리오는 현재의 한·미 동맹체제가 지난 44년동안 견지해온 북한에 대한 전쟁억지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짓고 그 이유로 ▲최근 일련의 북한과의 외교적 성과 ▲동맹국간의 유대강화 ▲북한의 경제파탄 ▲북한군의 전력약화 등을 들었다. 이 시나리오는 양측의 전력비교에서 각각의 유리한 점으로 북한군측은 ▲숫적 우세 ▲DMZ에의 전진배치 ▲강력한 포대배치 등을 들었고 동맹국측은 ▲강력한 방위체제 구축 ▲세계최강의 공군력 ▲한반도 전체 해역 장악 ▲고도의 훈련 ▲경제적 뒷받침 등이라면서 동맹국측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지적했다. ▷개전 첫날◁ 북한군은 수백개의 특공대를 남한에 일거에 침투시켜 주요 군지휘소 및 병참기지,공항,항구,통신시설 등을 마비시킨다.이들은 잠수함,각종 선박,경비행기,헬기,터널 등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한다.동시에 휴전선 일대의 모든 포대가 집중포격을 가하면서 30만 전진배치병력이 남침을 개시한다.1천1백만 서울시민은 큰 혼란에 빠지나 남측의 방어태세 가동으로 서울 못미쳐에 새로운 전선이 형성된다. ▷개전 첫주◁ 남측의 공군력의 가동으로 북의 공군력이 조기 무력화되고 해군력에서도 미주력함대의 개입으로 북한의 20여대 잠수함과 구축함들 역시 무력화된다.대신 북한의 주요 도시에 대한 함포사격과 폭격이 시작된다.심한 타격을 입은 북한의 지상군 역시 우세한 남측 화력으로 균형을 잃게 된다. ▷개전 둘째주◁ 사실상 전쟁의 대세가 판가름 난다.북한군 제2선 부대가 투입되지만 전세의 역전은 불가능하게 된다.그러나 새로이 형성된 전선들에서 막바지 지구전이 계속된다. ▷개전 수개월◁ 동맹국의 우세로 전세는 북한군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되고 동맹국군이 북진,북한을 장악하게 된다.
  • 이회창 대표 충청권행사 연쇄 참석

    ◎「윤진산 선생 추도식」 참석… 현시국 우려/모교 일일교사·도지부간담회 등 잰걸음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위원의 충청권 공략이 가속화되고 있다.1박2일 일정으로 충남북 곳곳을 돌며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28일 충남 금산군에서 열린 「옥계 유진산 선생 23주기 추도식」에서는 입법부 수장인 김수한 국회의장과 오세응 부의장,정계원로인 유치송 전 민한당총재,이철승 전 신민당총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채 시국을 우려했다. 이대표는 추도사에서 『오늘날까지 이땅의 정치가 국민의 뜻에 따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자책이 앞선다』면서 「강기와 유연성을 동시에 갖춘 정치지도자」로서 진산을 기렸다.김의장도 『정치가 좌표를 잃고 표류해 선생의 경륜과 지도력이 그리워진다』면서 자괴감을 숨기지 않았다. 추도식 위원장을 맡은 유전총재는 『선생이 키워주고 가르친 김영삼 대통령이 문민정부를 창출,기대가 컸으나 지금 국민들은 걱정이 한둘이 아니다』며 실정을 꼬집었다. 모교인 청주중학교로 이동한 이대표는일일교사 자격으로 후배 학생들에게 학창시절 가출 경험 등 성장기를 들려줬다.이어 충북도지부 당직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난국돌파를 위한 단합을 호소했다.충북도지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따뜻한 법치,포근한 대쪽」이라는 플래카드가 나붙기도 했다.특히 이대표는 『근래들어 충청권이 지역할거에 한 몫을 차지하는 위치로 들어갔지만 아직도 충청권은 지역할거주의를 청산할 수 있는 주요 지역』이라며 예산 재선거와 연말 대선을 앞둔 충청권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청주에서 1박한 이대표는 29일 국민회의 김대중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함께 「매헌 윤봉길의사 문화제」 개막식에 참석,연설대결을 벌인다.오는 6월말∼7월초에 실시될 예산 재선거를 앞두고 여야 3당 대표들의 힘겨루기가 본격 불을 뿜을 전망이다.
  • 예산 보선/여야 「민심낚기」 총력

    ◎여­새지도부 데뷔무대… 당단합 호기로/야­DJP공조 재과시 압도적 승리 “골몰” 여야의 충청권 공략이 치열하다.연말 대선에 앞서 오는 7월로 예정된 충남 예산지역구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전략이다.특히 29일 예산에서 열리는 「윤봉길의사 문화제」 개막식에 3당대표가 나란히 참석할 예정이어서 전선은 가열될 전망이다. 신한국당 지도부가 충청권에 쏟는 공은 각별하다.예산 재선거가 새지도부의 첫번째 「데뷔무대」이기 때문에 당내 단합을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듯 하다.이회창 대표는 28일 충남 금산에서 열리는 「유진산선생 23주기 추도식」에 이어 29일 「윤봉길의사 문화제」 개막식에 참석한다.지난 15일 충남포럼 강연차 온양을 찾은데 이어 2주사이 두번씩이나 충청권을 방문하게 됐다.공교롭게도 대표취임 이후 두차례 지방나들이의 행선지가 모두 충청권인 셈이다.문화제 특별강연에서는 지역할거주의를 탈피한 미래지향적 정치풍토의 정착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대표는 이번 방문에서 다른 행사도 갖는다.모교인 청주중학교에서 일일교사를 한뒤 동문들과의 조찬모임과 지역상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등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한껏 과시한다는 계획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이곳에서 당선된 자민련 조종석 전 의원이 선거사무장의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오는 7월쯤 재선거가 치뤄지기 때문이다.대선길목인 만큼 여야간 양보할수 없는 접전이 예상된다. 국민회의 김대중 자민련 김종필 총재도 29일 윤봉길의사의 문화제 개막식에 참석한다.물론 정치적 행사는 아니지만 야권은 재선거에서 「야권공조」를 주요무기로 내세워야 하는 입장이라,사전에 「DJP 공조」를 과시할 좋은 기회인 셈이다. 야권 단일후보로 조 전 의원을 내세울게 확실한 상황이다.국민회의 한 관계자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를 거둬야만 DJP 공동집권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아질 것』이라며 『총력 지원체제를 갖춰 이번 재선거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 “북한동포에 「평화의 성미」 보냅시다”/기독교교회협

    ◎8개교단 동참… 6월25일까지 모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28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에 북한동포돕기비상대책기구를 발족한다. 교회협은 박종순 예장통합 총회장과 김선도 감리회 감독회장 등 8개 회원교단장을 비상대책기구의 공동대표로 위촉하고 교단장 명의의 목회서신을 전국 교회에 발송,평화의 성미보내기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교회협은 앞으로 교회협 가입 8개교단­1만4천교회­100만 가정­500만 교인들이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을 위해 모금한 돈으로 옥수수를 구입,북한에 전달하기로 했다. 교회협은 올해 북한의 식량부족분이 약 150만톤에 이르며 이를 옥수수로 구입할 경우 2천7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이중 10%인 15만톤을 내년 4월까지 북한에 전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7일부터 6월25일까지 가구당 1만1천원씩 성금을 모을 계획이며 내년초까지 추가로 1만1천원씩 더 모아 성금의 목표액을 2백20억원으로 정했다. 교회협 김동완 총무는 『우리 교회의 신도 80%는 여성들이니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중심이 되어 굶어죽어가는 북한의 동포들을 살리는 것이 기독교의 박애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평화의 성미보내기운동을 펴게 됐다』고 밝혔다. 교회협은 북한동포들을 살리기 위해서 남북교류기금을 활용한 정부의 대대적인 식량지원과 함께 기업과 언론이 식량지원운동에 앞장 서고 민간단체들이 북한과 직접 교류할 수 있을 것을 정부가 허용해 달라는 한편 『북한도 식량사정을 있는 그대로 대외적으로 알리고 식량원조를 위해 국제사회의 논의의 장에 나오라』고 촉구했다. 성금접수 지로번호 7513765(한국기독교교회협의),온라인번호 조흥 325­01­161819(북한동포돕기),국민 008­01­0571­066(〃),우체국 010793­0114633(〃)
  • 양자강 하류지역(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5)

    ◎7천년의 역사·문화가 살아 숨쉰다/송·원·명·청대 거치며 걸출한 문인·묵객 대거 배출/당도·양주·항주·소주·소흥 등서 중국문학 꽃피워 지난달 12일부터 서울신문에 연재하는 「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가 5회째를 맞는다. 그동안 중국의 국민시인 이태백이 만년을 보낸 양자강 하류의 당도시와 꽃과 술과 물의 마을 양주,한말의 망명시인 김택영이 묻힌 남통,송나라 시인 진관이 공부한 고우시 등을 찾았다.이처럼 중국문학 대가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양자강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6천300㎞의 강이다. 양자강의 지리조건과 역사는 황하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장강으로 불리는 양자강,그 길다란 용틀임은 황하의 스무줄기에 상당한 수량을 유출하면서 그 겨드랑이에 중국의 쌀 수요량 10분의4를 산출하는 세칭 어미지향을 거느리고 있다. 그럼에도 인문사회의 역사는 황하보다 천년이 넘게 뒤져 있다.장강유역에 주대의 유물이 간혹 보이지만 역사의 기록은 기원전 6,7세기의 춘추시대 오 월에서 비롯된다.그마저 정치의 중심이나 번영의 시장으로 각광을 받기는 송원 양대부터임을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마저 생생하게 기록했다.항주는 세상에서 제일 화려하다고. 물론 남송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건너온 것은 아니었다.벌써 춘추전국때 오월문화를 비롯해서 육조때의 남조문화가 바탕을 닦은 것이다.그 빛과 힘은 양자강의 하류에 응집되었다.여기서 말하는 양자강 하류란 강서성 호구로 부터 안휘성 동남단과 양자강삼각주,곧 양자강 남북연안에 위치한 절강성과 강소성 상해 등 3개 시·성을 통칭하고 있다. 양자강 하류지역은 남송·원·명·청을 거쳐 민국과 신중국에 이르기까지 줄곧 상승의 기세다.비단과 도자기를 비롯 쌀·차 등 농산품의 생산과 수출로 경제의 번영을 누리면서 희곡과 미술 등의 예술로 강남문화를 일구었는가 하면 성리학과 실학의 연구로 근대화·민주화의 앞장에 섰다.거기다 근대문학의 가장 뜨거운 산지가 됨으로써 문인을 배출하는 못자리가 되었다. 필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했던 「중국고대문학사」와 「중국근대문학사」에 등장하는 문인들을 그 출생지와 활동지별로분류한 나머지 그 전체의 4할쯤이 이곳서 태어나고 이곳에 작품을 썼다는 일차적인 통계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물론 송대 이후 특히 명·청 양대에 집중되어 있다.따라서 시와 산문·평론등 귀족문학은 물론 시민문학으로서 그 광장을 넓혀 소설과 희곡등 다양한 꽃을 피웠다. 그러니까 황하는 열악한 지리환경을 극복한 채 정치문화의 번영을 누렸고 양자강은 풍요로운 지리환경임에도 중화문화의 종속적인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남송때에야 그 지기와 인걸을 발휘했던 것이다. 1949년,새로운 중국이 건설되고 한중관계가 단절된 뒤 중국의 고고학계에는 지각변동에 상당하는 새로운 발굴과 함께 새로운 발견,새로운 학설이 잇따라 발표되었다.그것은 1953년 섬서의 서안교외인 반파에서 기원전 5000년에서 3300년까지 존재했을 신석기 문화유적을 발견하여 북방의 문화사를 2000년이나 소급한 일이 있었다.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제까지 적막한 옥토로만 여겼던 장강 하류지역에서 연거푸 놀라운 문화가 햇빛을 보기 시작하 것이다. 1958년 상해 근교 청포현 숭택에서 기원전 3400년에서 4000년의 정제 석기를,1959년 절강 가흥근교인 마가빈에서 기원전 5000년에서 4000년의 신석기와 홍도를,다시 1973년과 1977년 두차례에 걸쳐 절강 여요현 나강향 하무도에서 기원전 5000년의 쌀과 목조건축·방직·축목등의 유적을 각각 발굴 연구하면서 7000년이나 숨겼던 비밀이 어렴풋 풀리게 된 것이다. 문학은 자연지리적 환경보다는 인문사회적 환경의 산물이요,중국은 황하와 장강을 중심한 남북문화지만 선후적 관계보다는 개성적 차이로 발전되었다는 1차적 결론을 얻을수 있었다.그것은 장강삼각주의 지형이 말해 준다.그 서북에 낮은 산악과 구릉이 남북으로 누워있을뿐,절대의 면적이 수로가 사통팔달하는 대평원이어서 배산임수해야 인물을 낸다는 통속적인 풍수설을 뒤엎고 있다.또한 장강 삼각주에서 출토된 신석기 유물들은 북방의 동시대 유적인 반파의 그것보다 오히려 정교한 데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과 목적으로 필자는 안휘성의 동남단인 당도에서 출발,장강삼각주의 문학 유적을 전전하면서 그 현장을 확인키로 했다.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을 길러준 남경을 거쳐 「서유기」의 저자 오승은의 고향 회남과 「경화연」의 저자 이여진의 고향 연운항,송나라 문호 소동파가 최후를 마친 상주,「삼국지」를 재현시킨 북고산의 진강,원말의 영웅소설 「수호전」의 배경이요 그 저자 시내암과 청나라의 이름난 시인이자 화가인 정판교의 고향인 흥화.명말의 시인 전겸익의 고향인 상숙,역시 명말 시인 진자룡의 고향인 송강,명나라 후칠자의 수령인 왕세정의 고향 태창,역시 명말의 시인 고염무의 고향으로 지방극 곤극의 고장인 곤산,명말의 문인이자 여행가인 서하객의 고향 강음,당나라때 대시인 백거이 위응물 유우석 등이 벼슬살이했던 소주.청말의 문학평론가 왕국유의 고향인 가흥,만당의 시인 두목이 벼슬했던 호주,송나라의 거물 사객인 주방언과 청나라때 문학이론가 원매 등의 고향이요,당 송의 대시인이었던 백낙천과 소동파가 치적을 남겼던 항주.명나라때 시인이요 대사상가였던 왕양명과 역시 시인이었던 황종희의 고향 여요,한나라때의사상가였던 왕충의 고향 상우,송나라 대시인 이었던 육유와 현대문학의 비조인 노신의 고향 소흥,청나라때 희곡가 이어와 중국 현대시단의 거성인 애청의 고향인 금화 등이 앞으로 연재의 대상이 된다. 그 많은 곳을 되돌아보면 청록색의 망망대야,그 풍요로운 평원과 수향에서 중국문학사의 절반이 이룩된 것을 볼수 있었다.
  • 한보 청문회­박경식씨 신문 지상중계

    ◎“현철씨 부산시장 출마하려 했다”/오정소씨,임용 이틀전 현철씨 만나/김희완·이성재씨가 전화녹음 부탁/이성호씨 북한에 여러번 다녀왔다/현철씨가 몇번 돈주려 했지만 거절 국회 한보국정조사특위는 21일 국회에서 김현철씨의 YTN(연합텔리비전뉴스) 인사개입 의혹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한 G남성클리닉원장 박경식씨를 증인으로 출석시킨 가운데 청문회를 열어 김현철씨의 각종 인사 및 이권개입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이상만 의원(자민련) ­대통령과 현철씨를 언제부터 알게 됐나. ▲87년 통일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있을때 주치의를 맡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4·11총선 당시 공천문제를 들은 적이 있는가. ▲들은 바 있다.대표적인 예가 우리 형(박경재)도 있을테고…한리헌씨의 경우,해운대구보다 자기 고향인 김해쪽을 원했는데,어른(김영삼 대통령)한테는 말 못하고 현철씨에게 얘기한 것으로 안다. ­형의 공천관계는. ▲96년 1월 중순 현철씨가 형에게 『전국구든 지역구든 원하는 것은 주겠다』 『서울의 어디를원하느냐』고 제의했다.현철씨가 재차 권유했지만 형은 거부했다. ­YTN 인사권 등 현철씨가 국정에 깊이 관여했다고 보는가. ▲처음에는 현철씨가 아버지를 도우려는 순수한 뜻을 가진 것으로 안다. ­현철씨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다 못하고 부산시장에 출마하려 했다는 얘기도 있었다는데. ▲출마하려다 지방의회 선거의 참패때문에 부담을 느낀 것같다. ­김기섭,오정소씨를 잘 아는가. ▲지난 대선때 김기섭씨는 의전을 맡았다.그래서 알게 됐다.오정소씨는 96년 6월인가 신라호텔 647호실에서 현철씨가 오라고 해서 갔는데 그곳에는 현철씨와 김기섭씨,그리고 처음본 사람이 있었다.이상하게 생각했는데 현철씨가 「열심히 하라」고 하니 그 사람이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고 했다.이틀후 발령받은 것을 보고 오씨인줄 알았다. ­메디슨 사건에 대해 알고 있나. ▲95년 4월 이민화 사장이 직접 내게 항의를 해와 알게 됐다.초음파와 MRI 설비를 주생산품으로 하고 있다. ­이홍구 전 신한국당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에서이 회사를 언급했는데. ▲이대표가 그런 말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대통령 주치의 고창순씨와 김현철씨가 측면 지원하는 회사라고 생각하나. ▲고창순씨는 전화를 해서 「꼭 돌봐줄 사람이다」라며 담당검사에 압력을 넣은 사람이다.보건복지부에 팩스를 보낸 일도 있다. ­국무총리나 신한국당 대변인 임명사실을 김씨가 미리 얘기한 소리를 들은 적 있나. ▲이총리는 총리 임명 하루전에 알았고 김철 대변인도 하루전에 알았다.김현철씨에게 직접 들었다. ­강성구 문화방송사장,홍두표 한국방송공사사장 임명을 김현철씨가 알고 있었는가. ▲대안이 없다고 그러더라. ◇김학원(신한국당) ­메디슨 사건으로 증인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했나.청와대 주치의 고창순씨가 검찰에 압력을 넣었다고 얘기했는데 그렇다고 믿고 있나. ▲고씨가 이민화 사장은 내가 꼭 돌봐주어야할 사람이라고 했다. ­김희완씨(현서울시 정무부시장)와 이성재 의원이 지난해 10월21일 병원을 찾아와 메디슨 문제를 의논했나. ▲의논한 셈이다. ­증인이 찾아와 달라고 부탁했나,그 사람들이 자청해 찾아왔나. ▲본인들이 찾아왔다. ­그 사람들이 가면서 걸려오는 모든 전화에 대해 녹음과 녹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나. ▲녹음해 달라고 했다.그래서 했다. ­10월23일 이성재 의원과 관련해 김현철씨로부터 전화온 것도 그 사람들이 부탁해서 해놓은 것인가. ▲내가 판단해서 한 것이다. ­김희완씨는 어떻게 테이프를 입수했나. ▲통화가 끝났을때 김씨가 들어와 김현철씨와 통화하지 않았냐고 물어서 들으면 문제가 있다고 했다.그러자 김씨가 자꾸 테이프를 달라고 했다.들으면 문제가 있다면서 못준다고 하니까 1주일을 쫓아 다녔다.억울한 것을 푸는데 봐야겠다고 말했다. ­억울하다는 것이 뭘 의미하느냐. ▲총선에서 홍준표씨와 맞붙었는데,100% 부정선거였다고 말했다.억울하다면서 재정신청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이야기했다. ­김현철씨가 한보철강의 시설재 도입과 관련해 2천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없다. ­김현철씨와는 93년 이후 몇번 만났나. ▲100번도 더 만났다.­김현철씨가 증인에게 치료받은 적이 있나. ▲(침묵 뒤)개인적인 일은 묻지 마라. ­오정소 안기부1차장 등용전에 모호텔에서 만난적이 있다고 했는데,오차장에 대한 인사가 이 자리에서 결정됐다는 의미인가. ▲단순히 만났다고는 할 수 없다.김현철씨가 『열심히 일하라』고 했더니,오차장이 90도로 깎듯이 절하면서… ­YTN 사장 인선과 관련한 테이프를 공개했는데,그 뒤 김현철씨가 MBC사장에 대해서는 대안이 없다면서 유임을,KBS 사장에 대해서는 열심히 했으니 유임시켜야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 말했다.특히 KBS 홍사장에 대해서는 극찬했다. ­증인은 「내가 입열면 나라가 흔들린다.한달이상 기사거리가 나올 것이다.핵폭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나. ▲그런 말 한 것같다. ­갖고 있는 테이프에 김현철씨가 국정개입을 했다는 내용이 있느냐. ▲개인적인 것을 이야기할 수 없다. ­증인이 갖고 있는 테이프외에 김현철씨와 만나면서 적은 자세한 메모가 있다던데. ▲메모는 어떤 기자가 갖고 있다. ­증언 등과 관련해 외압을받은적 있나. ▲외압을 받을 나이가 아니다. ­평소에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하는데 왜 찍었나. ▲나는 성기확대수술과 발기부전증의 전문이다.수술전후의 상태를 비교하고 합병증 등을 연구하는 것은 의사의 의무다. ◇김민석 의원(국민회의) ­증인이 김주열 열사의 심정으로 증언을 한다고 해서 인상적있다.증언과 관련해 협박받은 적이 있나. ▲많이 받았다. ­현철씨가 여러 사람을 만나는데 강삼재씨 등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을 목격했나. ▲함께 본 적도 있다. ­박태중씨는 김현철씨의 측근이라는데 박씨가 김씨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는가. ▲거의 그랬다. ▲치료를 위해 녹화를 하고 있다.이런 사실을 (환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공천과 관련해 이상룡씨와 증인의 형 얘기를 했는데,현철씨가 공천을 준 다른 여당의원은 또 없는가. ▲다 알면서 왜 그러느냐. ­증인과 현철씨와의 갈등해소를 주선한 대권주자가 혹시 박찬종씨 아닌가. ▲그 분의 정치적 입장이 곤란해지니 답변 안했으면 한다. ­현철씨가 대통령되려는 원대한 꿈을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또 증인이 기자회견에서 「이 나라에 또 하나의 대통령이 있다」고 했는데. ▲근본적으로 현철씨에 대해 나쁘게 생각 안한다.옛날 야당시절의 정치인 자제에 대해 학벌을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매일 구속이나 되고 하니 자제들을 돌봐줄 리가 있겠나.개인적으로 현철씨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처음에는 아주 좋았는데,나중에 변절돼서 그렇지… ◇이인구 의원(자민련) ­테이프가 공개된 이후 박해와 위협을 많이 받았을텐데. ▲죽기를 각오했다. ­김현철씨와 김덕룡 의원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김덕룡 신경식씨이다.김덕룡 의원은 사실 김현철씨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한번은 김의원이 영부인에게 「사이비종교인을 만나지말라」고 하자 영부인은 「아저씨(김의원을 지칭) 왜 종교문제까지 건드리느냐,아저씨는 정치만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증인은 김현철씨가 95년 가을 이성호씨에게 전화를 걸어 박태중,정보근이 하고 술을 한잔 하자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으나 정보근씨는 청와대 민원비서관의 소개로,김현철씨와 딱 한번 롯데호텔 중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적이 있다고 증언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김현철씨가 (이성호씨에게) 전화를 걸었을때 날씨가 쌀쌀한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맹형규 의원(신한국당) ­김현철씨씨가 인사와 관련한 애기들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나. ▲그가 대선에서 일등공신이었고 정치참모로서 일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87년 대선이후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의원출마를 권유받았다는데. ▲사실이다. ­박태중씨가 김씨의 제일 큰 돈줄이라고 했는데 어떤 근거인가. ▲항상 박씨 사무실에 김씨 사무실이 있었다.박씨가 김씨 사무실 직원들 비용을 댄다고 했다. ◇이상수 의원(국민회의) ­이성호 전 대호건설사장의 아버지 이건씨가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때 입건돼,김현철씨가 풀어주겠다고 해놓고도 집행유예를 받아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아니냐. ▲김현철씨가 풀어준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흐름에 따르라고 했다.이성호씨는 자기아버지보다 더 비자금을 조성한 사람이 많은데 아버지가 뭐 그래 잘못했느냐며 섭섭하게 생각했다. ­대선때 한번 모일 때마다 3억∼5억원씩 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경실련에서 뒤에 말한 부분인데 큰 의미를 두지 마라. ◇이사철 의원(신한국당) ­김현철씨를 통해 권력행사나 청탁을 하려했나. ▲김현철씨가 대선 끝나고 대통령 주치의로 (청와대에) 들어가자고 했으나 사양했다. ­96년 8월까지는 김현철씨와 사이가 좋았나. ▲9월까지인 것 같다. ­8월에 김현철씨에게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고 충고했나. ▲여러차례 말했다. ◇이규정 의원(민주당) ­과거 대통령 후보때 주치의한 것과 관련,청와대에 공적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는데. ▲나는 명예욕이 없다.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것도 거절했고 주치의도 사양했다. ◇이양희 의원(자민련) ­이성호씨가 북한에 다녀왔다는데. ▲그렇다.여러번 다녀왔다. ­현철씨가 남북회담 등에도 은밀하게 개입했다고 생각하나. ▲잘 알지 못한다. ­현철씨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일부에서는 「신라호텔에 구름처럼 모여든다」는말도 하고 있는데. ▲신라호텔에선 모르고 롯데호텔에서는 (사람들이 모인 것을) 봤다. ◇박주천 의원(신한국당) ­김동진,박상범,오정소씨 등의 인사에 현철씨가 개입됐다는데. ▲김동진씨는 아니고.인사개입이라기 보다는 인사내용을 미리 알았다는 것이다. ­미리 알았다면 개입했다는 것아니냐. ▲사실상 개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경재 의원(국민회의) ▲김현철씨 한 명이다…아니 몇명 더 있다. ­92년 당시 김영삼후보는 선거운동 경비로 3백20억원을 신고했는데 측근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액수가 터무니 없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여야) 피차간에 많이 쓰지 않았는가. ◇이국헌 의원(신한국당) ­메디슨사건에 비호세력이 있다고 생각했는가. ▲이미 국산회된 제품이 있었는데 메디슨에 1백억원의 특혜대출이 나갔다. ◇김문수 의원(신한국당) ­메디슨사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된 뒤에도 여러차례 문제를 제기했는데,증인이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게 아니냐.정권이 도움을주지 않아 야속하게 생각한 것 아니냐. ▲사실을 밝히자는데 피해의식은 무슨 피해의식이냐. ◇조순형 의원(국민회의) ­청문회 준비를 어디에서 했나. ▲서울 근교 호텔에 있었다.이상한 전화가 많이 왔다. ­여당인사 및 관계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지 말라고 전화했다는데. ▲사실이다. ◇박헌기 의원(신한국당) ­93년이후 김현철씨와 어디서 가장 많이 만났나. ▲롯데호텔에서 많이 만났다. ­정보근,박태중씨와 함께 만나자고 이성호씨에게 전화한 곳은 어디인가. ▲한국일보 부근 사무실이다. ◇김원길 의원(국민회의) ­전병민씨가 청와대 비서관을 그만둔후 김현철씨와의 관계는 어떤가. ▲전씨는 작년까지 하와이에 있었고 금년에는 일본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김씨의 일본체류를 위해 전씨가 일본에 가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씨로부터 돈을 받은적 없나. ▲안 받았다. ­김씨가 주려고 하지 않던가. ▲여러번 의사표시를 했지만 거절했다.
  • 식량지원 북 주민이 알게하자/김주영 작가(서울광장)

    북한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그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익히 알고 있었다.몇년전 소설쓰기의 답사를 위해 두만강과 압록강 상류나 중류의 국경선 일대를 수차에 걸쳐 다녀본 적이 있었다.그 답사 경험에 의하면 북한은 95년과 96년의 치명적이었던 수해이전 92년이나 93년경부터 식량부족 사태가 심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중국의 집안과 북한의 만포가 마주보고 있는 압록강 한가운데는 조그만 섬이 하나있다.그 섬은 북한의 영토인데,배를 타고 그 섬을 관찰해 보았을때는 섬 전체가 옥수수밭이었다.그런데 수확기였던 그때 옥수수밭에는 수확할 옥수수가 보이지 않았다.식량부족을 겪고있던 그들은 옥수수대에서 옥수수 싹이 나오는대로 꺾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정작 수확기에는 수확할 옥수수가 없다는 것이었다.집안에 살고있는 중국인들의 말이었으니까 그건 확실하고 또 그런 정상이 94년 이전의 일이기도 하였다.그것은 북한이 식량부족사태를 맞게된 것이 2년에 걸친 수해의 타격뿐만 아니라,그들의 농업정책에 구조적 함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여름이 되면 양쪽 강안에 많은 주민들이 나와서 목욕을 하거나 빨래를 하고있는 장면들을 목격하게 되는데,가까이 다가가서 보노라면 북한주민들의 헐벗은 모습이란 가슴이 찡할 정도다.그리고 담배 피는 사람조차 볼수 없다.중국인들이 탄 배가 다가가면 손짓으로 담배를 달라는 아이들의 요구를 흔히 보게된다.그리고 그것이 거절당했을때 보여주었던 아이들의 전투적인 행위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굶주린 모습 가슴 아파 이유야 어쨌든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에 우리들은 너나 할것없이 가슴아파하고 있고,그들의 굶주림을 덜게 만들 방법들을 찾고 있다.굶주린다는 일차적인 문제와 마주치게 되면 대개의 사람들은 비겁하게 된다.그런데 그것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들의 모습이 또한 안쓰럽기 짝이 없다. 민간단체와 종교단체들이 모금운동을 벌여 그들에게 식량을 원조하자는 열기가 확산되고 있다.그러한 과정에서 남한의 곡식을 사서 보내자는 여론도 있고,혹은 연변의 옥수수를 사서 손쉬운 경로로 보내자는 주장도 있고,또는 종교인들이 직접 북한을 방문하여 그 곡식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확실하게 전달되는가를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혹은 그들의 군량미를 푼다면 주민들의 아사사태를 막을 수도 있다는 진단결과도 있다.이러한 여러 갈래의 주장과 진단들이 저마다 어떤 설득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식량원조에 딜레마가 존재한다.그리고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북한 당국이 보여주는 여러 측면의 부정적인 요소들 때문에 발벗고 나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면하고 있을 수도 없는 곤경에 처해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몇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고 생각된다.첫번째 일로는 남한의 곡식을 구입하여 선박편으로 실어보내든 연변의 옥수수를 대량 구입하여 보내든 그 방법에 구애받지는 않더라도 그 곡식을 받아야할 북한 주민들이 그것이 남한의 주민들이 보낸 곡식이라는 것을 알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생색을 내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주장에는 생색 이상의 무엇이 있다.그러나 북한 당국은 그것을 막아오고 있다. ○원조창구 단일화해야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제지하고 있다.그런데 북한 당국의 그런 단호한 태도에는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선 국민들은 굶어죽어도 좋다는 배타적인 논리에서 나온 살의가 숨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북한은 이 시점까지 배급이라는 식량운영제도를 가지고 그들의 국민들을 통솔하고 다스려왔다.그렇기 때문에 구호식량 문제,특히 남한에서 왔다는 식량을 국민들이 알았을때 보여줄 불신과 괴리감을 북한 당국은 두려워하는 것이다.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대로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우리들이 갖고 있는 순수성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식량을 원조하려는 사회단체 혹은 종교단체들이 중구난방식의 주장이 난무해서는 우리들에게 정서적 혼란을 야기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통일된 주장의 유지가 필요하다.
  • 이 토리노성당 화마 모면/예수 성의 진위 논란

    ◎전문가 “탄소연대측정결과 13세기 제품”/가톨릭 “여전히 경애로운 상징” 경의 표명 【로마 AFP 연합】 소방관들의 활약으로 지난 11일밤 이탈리아 토리노 대성당 화재에서 간신히 화를 면한 예수의 「성의」는 기독교계가 간직하고 있는 성스러운 물건중 가장 유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진위여부를 놓고 가장 논란이 많기도 하다. 가로 4.10m,세로 1.40m의 이 성의에는 상처를 입은 남자의 얼굴과 몸이 음화형태로 그려져 있으며 기독교계에서는 이를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를 장사할때 사용한 수의로 믿어 왔다.그러나 지난 88년 교황청의 동의하에 대주교가 지명한 위원회에서 조사해본 결과는 성의의 정통성에 의구심을 갖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시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 성의가 중세시대인 1260∼1390년사이에 『제작된』 가짜인 것으로 『95% 확신』할 수 있다고 밝혔다.그러나 성의를 보기 위한 기독교인들의 발길은 멈추지 않고 있다. 성의의 존재에 대한 첫기록은 7세기 예루살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성의는 당시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12세기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공개됐다.그러나 1202∼1204년 사이에 벌어진 제4차 십자군전쟁 기간중 사라졌다.토리노 성당의 성의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자취를 감춘 성의와는 다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따라서 1353년 프랑스에 다시 나타난 토리노 대성당의 성의는 아마도 십자군 전쟁 당시 제작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이후에도 성의에 대해 『그리스도의 경애로운 상징에 존경과 경외를 보낸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성의의 신비를 더욱 고조시켰다.
  • “한동대 정상화” 포항시민 촉구대회

    ◎학사운영 제멋대로… 설립목적 저버려 경북 포항 한동대가 제멋대로 학사운영을 하고 있어 숙원사업의 하나로 이 대학을 세웠던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포항 한동대 재단 정상화 추진위원회(위원장 진병수 포항시의회의장)는 11일 포항 시민회관에서 지역 시민단체와 철강공장 근로자·민주노총 시지부회원·방송대 학생 등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동대 재단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 촉구대회」를 가졌다. 이들은 이 대회에서 『1백만 지역주민의 숙원에 따라 시민 11만6천여명의 서명으로 설립된 한동대가 설립목적과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면서 『한동대가 일방적으로 취소한 야간부를 개설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한동대가 특정 종교단체에서만 학생을 선발,지난 2년동안 지역출신 학생은 17명만 입학했다』고 지적하고 특정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입학이 허용되도록 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교육부와 학교측에 전달키로 했다.
  • 13개 전문대 설립신청/내년 6곳 개교… 정원 5천여명

    교육부는 최소한의 설립기준만 갖추면 대학 설립이 가능한 「대학설립준칙주의」에 따라 전문대 학교법인 설립신청을 받은 결과,13개 단체 및 개인이 내년과 99년도 개교 예정으로 설립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7일 밝혔다. 98년 3월 개교예정이 6개교(입학정원 2천840명),99년 3월이 7개교(2천540명)이며 98년 3월 개교예정에는 각종학교인 부산예술학교의 전문대 개편 신청도 포함됐다. 지역별로는 ▲부산 1개교 ▲경기 4개교 ▲충북 2개교 ▲충남 2개교 ▲경북 1개교 ▲경남 2개교 ▲전남 1개교 등이며 계열별 입학정원은 ▲인문사회 1천560명 ▲자연 1천140명 ▲공학 1천460명 ▲예·체능 1천220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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