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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고 ‘지역제한제’ 논란] ‘공영형 혁신’ 띄우기용?

    외고 등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가 입시 위주 교육기관으로 변질됐다며 교육부가 내놓은 대안이 공영형 혁신학교다. 일각에서는 이번 외국어고 선발지역 제한 조치가 ‘공영형 혁신학교 띄우기’의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공영형 혁신학교의 성공을 바라면서도 시큰둥한 반응도 함께 보이고 있다.●“이번에도 또?” 학생들은 불신 가득한 눈초리를 교육부에 보내고 있다. 금천구에 사는 중학교 2년생 김영아(14)양은 “솔직히 혁신학교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은 학교인지도 모르겠다. 뭔가 해보고 싶은데 잘 모르겠으니 전처럼 또 학생들을 볼모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이지수(14)양도 “2년도 채 안 남았는데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알려 주지도 않고 어쩌라는 것인지 너무 무책임하다.”면서 “어차피 그 학교를 들어가도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학원 다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입시위주의 교육풍토가 바뀌지 않는 이상,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학부모들은 더 회의적이었다. 은평구에 있는 S여중 1학년생 자녀를 두고 있는 김미희(42·여)씨는 “교육 수장이 바뀔 때마다 꼭 뭔가 새로운 걸 하나씩 해보려 하는데,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가지고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장난치자는 것이냐.”면서 “우리 아이가 입학하고 나서 얼마 뒤에 다른 교육부총리가 이번엔 공영형 혁신학교가 문제 있다고 문닫아 버리면 어쩌나 무서워서 절대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입시풍토 해소돼야 성공” 외고에 자녀가 다니는 강남의 한 학부형은 “공영형 혁신학교 졸업생이 5년 이상 배출되는 등 검증절차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면서 “때문에 나라면 자녀를 이런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말했다. 중1년생 딸을 둔 구로구의 40대 학부형은 “정부에서 돈도 지원하고 유능한 분을 교장으로 모시면 아이들의 재능을 나름대로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천구의 모 중학교 교사인 이모(29)씨는 “일단 어떠한 형태의 학교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학생과 학부모의 질문에도 답해줄 수가 없다.”면서 “특목고와 자사고 등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또다시 교육부의 졸속행정으로 학생들이 피해보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박현갑 유지혜기자 eagleduo@seoul.co.kr
  • 시골 축구소녀들 꿈★ 이루다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시골의 한 초등학교 여자축구팀이 전국대회 우승으로 월드컵 못지않은 감동을 주민들에게 선사했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감곡초등학교는 20일 열린 전국소년체전에서 인천 용현초등학교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전국 30여개 여자초등학교 축구팀 중 유일한 면단위 시골인 감곡초등학교에서 여자축구팀이 탄생한 것은 2002년 12월. 축구공 한번 제대로 만져보지 못했던 ‘시골소녀’ 25명으로 구성된 이 축구부는 1년여 동안 전국대회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그러나 ‘2002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이룬 4강 신화를 재현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맹훈련에 들어갔다. 그 결과 1년 만인 2003년 11월 충북도교육감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2004년 전국소년체전 충북대표로 출전해 1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또 지난해 충북협회장배 대회 등을 우승하는 등 도내에서 최고의 팀으로 성장하면서 시골 축구소녀들의 전국대회 우승 꿈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고진감래일까. 이번 전국소년체전에서 우승의 신화를 이룬 이 학교 축구팀은 20일 밤 우승컵을 들고 감곡면에 도착, 면내를 순회하는 거리행진을 하며 주민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김동기 축구 교사는 “지난해까지 각종 전국대회에서 전패하다시피 했지만 집중적인 겨울 훈련으로 실력이 크게 늘어 우승까지 차지했다.”며 “시골 학교인 탓에 선수 수급과 운영비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 축구팀은 한 방송사의 주말프로에 훈련과정이 소개돼 시청자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음성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아내를 외간 남자와 ‘동침’시킨 사내의 사연

    “그게 무슨 죄가 됩니까? 단지 불륜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외간 남자와 동침하는 것처럼 꾸민 것 뿐입니다.” 중국 대륙에 한 중년의 남성이 아내가 신흥 종교에 빠져 집안일을 내팽개치자,외간 남자와 동침하는 것처럼 꾸몄다가 적발돼 쇠고랑을 차게 됐다. 중국 중부 후난(湖南)성 옌링(炎陵)현 스저우(石洲)향 위안춘(源村)에 살고 있는 30대 후반의 한 남성은 자신의 아내가 신흥 종교에 빠져 집안일을 내팽개친데 앙심을 품고,이 신흥 종교의 남자 신도와 마치 부적절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처럼 꾸미다가 들통나 부녀자 성폭행죄 혐의로 붙잡혔다고 광주일보(廣州日報) 인터넷신문 대양(大洋)망이 최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건의 장본인은 다이후이췬(戴輝群·38)씨.지금까지 순박한 아내 장윈메이(張雲梅)와 함께 금실 좋게 오순도순 살아온 아주 평범한 농부이다. 그러나 그렇게 세상물정 모르고 순박하던 아내가 신흥 종교인 ‘산숙신(山叔神·옌링현 주변 일대에 준동하고 있는 소규모의 신흥 종교)교’를 믿으면서 그 좋던 금실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장씨가 너무 산숙신교에만 매달려 종교 일만을 도와주는 바람에 집안 일에는 너무나 소홀히 한 까닭이다. 이 때문에 다이씨와 장씨는 자주 말다툼을 벌였다.그때마다 아내 장씨는 집안 일에도 신경을 쓰겠다고 대답만 했을 뿐 실제로는 행동에 옮기지 않아 궐자의 신경을 자극시켰다. 그러던중 올해 초 장씨가 ‘산숙신교 신도인 남자 쩡(曾)모씨를 집으로 불러다 며칠동안 숙식을 함께 하며 설교와 기도 등을 같이 하는 등 종교의식을 진행했다.이들 두 사람은 매우 즐겁게 종교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때 쩡씨는 이 집에 머물며 장씨와 함께 자기도 했다.이를 보고 견디다 못한 다이씨는 쩡씨에게 당신 두사람의 관계가 불륜인 것처럼 보이니 청산하라고 닦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두 사람은 단순히 같은 종교를 믿고 있는 만큼 함께 행동하다보니 그런 오해가 생긴 것일 뿐 결코 불륜 관계는 아니라고 왼고개를 쳤다. 이들이 보통 사이가 아님을 간파한 다이씨는 도저히 말로는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이들이 관계를 끊을 수 있도록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쩡씨가 종교 행사를 위해 집에 들른 지난 3월 22일 오후 10시 D-데이로 잡았다.그날 10시가 되자,다이씨는 랜턴을 들고 집 2층으로 올라가 전기 공급원을 차단해버렸다, 당시 아내 장씨와 쩡씨는 낮부터 계속된 종교 행사로 피곤해 일찍 쓰러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불을 끈 궐자는 랜턴을 들고 장씨와 쩡씨가 같이 잠을 자는 방으로 몰래 들어갔다. 다이씨는 이불을 살짝 걷어낸 뒤 아내의 두 손으로 쩡씨를 껴안고,다리로는 쩡씨의 엉덩이 위에다 터∼억 걸쳐 놓아 마치 성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잠자다가 이상하다고 느낀 쩡씨가 눈을 떠보고 깜짝 놀라 극렬히 반항하고,옆에 있던 장씨도 잠에서 깨 함께 합세하는 바람에 다이씨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화가 난 아내 장씨는 곧바로 남편을 후난성 옌링현 인민검찰원에 고소하는 바람에 다이씨는 부녀자 성추행 혐의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온라인뉴스부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6)한국 최고의 목조 성당 강화읍 성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6)한국 최고의 목조 성당 강화읍 성당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에 들어선 뒤 고려궁지로 향하다가 오른쪽 좁은 골목길을 끼고 구릉 정상에 오르면 만나게 되는 강화읍성당(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북산과 남산의 가운데 지점에 한옥으로 잘 지어진 이 성당이 바로 개항기 최대의 선교 거점이었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전통 목조 중층 한옥의 성당은 정면 4칸, 측면 10칸의 총 40칸 규모. 팔작지붕을 얹고 목골 벽돌조로 외벽을 두른 한옥이지만 내부공간을 전형적인 삼랑식(三廊式) 바실리카 양식으로 연출한 동서양의 정교한 만남이 이채롭다. 지금은 관할 사제 1명에, 불과 100여명의 신자가 적을 두고 있는 작은 교회지만 1900년 세워질 때만 하더라도 강화에선 기독교를 통틀어 가장 먼저 세워진 큰 교회였다. 성공회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희준을 배출한 성당이고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철범 주교도 이 성당 출신. 이 성당보다 조금 늦게 강화에 세워진 온수리 성당은 현재 강화에서 교세가 가장 크지만 여전히 강화읍성당은 이 지역 12개 교회와 기관을 대표하는 중심 성당이다. 성당의 모습은 세워질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산을 향해 외삼문, 내삼문, 성당, 사제관이 늘어서 마치 배의 형상을 연상케 한다. 선교사들이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가 되자.”는 뜻을 세워 배의 모양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선 성당의 바깥 출입문인 외삼문은 뱃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강화읍내를 훤히 내려다보고 있다. 외삼문에서 3계단을 더 올라 내삼문을 지나도록 돼 있는데 여기에는 종각이 들어서 있다. 원래 이 종각에는 1914년 영국에서 들여온 종이 매달려 있었는데 서울대성당의 것보다 조금 작지만 음색이 아름답고 소리가 4방 30리까지 울려퍼졌다고 한다.1945년 일제에 의해 징발되었으며 지금의 종은 1989년 신자들이 모금해 다시 매단 것이다. 종각 중간에 서서 배의 선복에 해당하는 성당의 팔작지붕을 올려다보면 가장 먼저 ‘천주성전(天主聖殿)’이란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성당이나 예배당에서 일반적인 ‘당(堂)’ 대신 성전으로 쓴 것이 독특하다.‘천주성전’ 현판 밑 4칸 벽면에 주련이 걸렸는데 이 주련 위에 연꽃 무늬를 장식한 것도 인상적이다. 출입구인 전실과 회중석, 통로, 지성소(대제대), 감실(소제대), 예복실로 구성된 성당의 내부는 바깥에서 보기와는 영 딴판. 모두 20개의 큰 나무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데 전실에서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3번째 기둥 중간에 세례할 때 쓰이는 화강암 성천대가 있다.6번째 기둥부터 북쪽으로 지성소와 제대가 들어서 전체적으로 이 곳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꾸몄다. 지성소 안에는 회중석 마루보다 높은 계단 위에 돌판을 깔고 그 위에 화강암 제대를 고정했다. 이 제대는 의식을 거행할 때 신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신성한 곳으로 성당 전체적으로 가장 정성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제대 뒤 가운데 기둥에 하느님 야훼를 뜻하는 ‘만유진원(萬有眞原)’이라 쓴 현판은 당시 선교사들이 선교의 근원으로 삼았다고 한다. 지성소 북쪽 1칸을 2계단으로 높이고 제대를 놓은 후 정면에 성체를 봉안하는 성막을 안치했는데 이곳이 작은 예배가 이루어지는 집회공간. 성당의 구조상 미사때 사제가 신자들에게 등을 보인 채 집전하는 형식이 살아 있는 유일한 성당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초기 교회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유배지 강화에 이처럼 큰 성당이 세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초기 선교사들이 이곳을 영국의 이오나(Iona) 섬처럼 신앙의 성지로 삼으려는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서안에 있는 이오나 섬은 6세기쯤 콜롬바(Colomba)가 들어가 교회를 개척하고 수도원을 세운 성공회의 뿌리. 유배지 강화도도 당시만 해도 소외와 핍박의 땅으로 교회가 전혀 없었다. 선교사들은 강화외성 출입문인 진해루 밖 나루터에서 한옥 한 채를 마련해 처음 선교를 시작했는데 바로 이곳이 강화 최초의 교회인 셈이다. 당시 조선정부가 해군을 육성하기 위한 해연총제아문을 설치해 그 직속으로 조선수사해방학당을 1893년 이곳에 설립했던 것도 성공회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선교를 시작할 수 있었던 요인. 당시 영국인 해군장교와 포병교관이 임명되고 통역으로 고용된 성공회 교인이 영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강화읍성당이 축성된 것은 성공회 3대 주교인 조마가(트롤로프) 신부때.1899년부터 터닦기를 시작,1년간의 공사를 거쳐 1900년 11월15일 축성식이 열렸다. 조마가 신부가 신의주에 직접 가서 백두산 원시림 적송을 뗏목으로 강화까지 운반했으며 도목수는 경복궁을 신축할 때의 도편수였다고 전해진다. 조마가 신부는 지금도 80세 이상의 고령자들에게 회자될 만큼 강화도 지역에서 그의 치적은 곳곳에 담겨있다. 기와와 석재는 모두 강화산을 썼으며 성당내 석물과 담장 기단은 인천에서 온 중국인 석공들이, 담장 미장은 강화 주민들이 맡았다. 강화읍성당이 축성된 뒤 감리교, 장로교 등 개신교와 천주교가 앞다투어 선교에 나서 교회들을 세우면서 그야말로 강화는 종교 각축장이 되어갔다. 지금 강화읍성당 주변에 감리교 중앙교회, 장로교 성광교회, 천주교 강화성당 등 강화지역에선 가장 큰 교단의 중심 건물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 당시 선교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강화읍에선 지금 이 교회들과 주변의 고려궁지, 용흥궁 등을 연결하는 문화벨트 조성공사가 추진중이다. 강화읍성당 관할사제이자 성공회 강화교무국 총사제인 김준배(57) 신부는 “성공회는 구한말 열강의 각축과 맞물려 경쟁적으로 진행됐던 기독교 선교양태와는 사뭇 다르게 한국문화와의 접목을 시도했고 강화읍성당은 그 토착화의 전형”이라면서 “기독교계에서 한국 초기 선교의 역사와 토착화된 교회 양식을 담고 있는 이 성당을 원형대로 보존할 것”이라고 밝혔다. kimus@seoul.co.kr ■ 강화도 의병운동과 교회 1907년 강화도에서 기독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번졌던 정미 의병운동은 지금까지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정미 의병운동이란 정미조약 직후 강제해산당한 군대 출신들이 의병을 조직해 무력투정을 전개한 사건. 이동휘 연기우 지흥윤 유명규 등이 주도한 의병들이 일본인 순사와 일진회 강화지부 총무였던 강화 군수 정경수를 살해했는데 이와 관련해 일본군 수비대가 의병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교인과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강화 의병운동의 핵심인 이동휘는 강화 진위대장 출신으로 1905년 강화읍에서 감리교로 개종한 인물. 강화읍교회의 권사로서 강화 지역을 순회하며 선교사들로부터 ‘강화의 바울’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동휘가 감리교 권사였다는 사실 때문에 감리교회는 민족주의 단체로 인식됐고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에 비해 성공회는 직접적인 무력투쟁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중도적인 입장을 택해 많은 주민들을 구한 공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주민들이 전란을 피해 강화성공회 성당이나 수녀원에 모여들었는데 성공회 단 아덕(터너) 주교가 일본군 대장과 두차례 담판하여 일군을 물러나게 함으로써 화를 면했던것. 성공회는 “일군의 공격을 사전에 막아 주민들의 희생을 줄였지만 일본군의 무력행동에 대한 비판없이 사태수습에 나선 것은 아쉬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 [명문대 교육혁명] (8) 미국 프린스턴대

    [명문대 교육혁명] (8) 미국 프린스턴대

    |프린스턴(미국 뉴저지주) 이도운특파원|프린스턴은 순수 학문을 추구하는 대학이다. 또 대학원이 아니라 학부가 중심인 대학이다. 그런 점에서 프린스턴은 세계 대학 교육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주요 대학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로스쿨과 비즈니스스쿨, 메디컬스쿨과 같은 직업 양성 대학원이다. 프린스턴은 학부생이 4700명을 넘지만, 대학원생은 2000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프린스턴과 함께 아이비 리그에서도 ‘톱 3’로 손꼽히는 하버드의 학부생은 6600명, 대학원생은 1만 3100명이다. 예일의 학부생은 5300명, 대학원생은 6100명이다. 대학원생 수를 보면 프린스턴은 하버드 및 예일과는 비교된다. 프린스턴은 대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부 교육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있다. 프린스턴 칼리지(학부)의 낸시 말키엘 학장은 21세기에도 프린스턴은 학부를 중심으로 발전해 나가기로 학교 이사회에서 공식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프린스턴이 직업 대학원에 곁눈질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10년 전에 로스쿨을 열었지만 금방 문을 닫았다고 한다. 순수 학문을 추구하는 프린스턴의 풍토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부를 중시하기 때문에 프린스턴의 전체적인 수업 체계도 학부생들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학생들에 대한 학교측의 지원과 배려도 최고 수준이다. 2학년생 조던의 예를 들어 보자. 조던에게는 전공이 없다. 대신 정치학에 관심을 갖고 집중연구를 하고 있다. 학기마다 커리큘럼은 조던 스스로 결정한다. 정치학과 관련한 필수 강좌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어떤 수업이든 들을 수 있다. 조던이 원하면 우드로 윌슨 스쿨에서 공공정책 및 국제관계와 관련한 대학원 수업도 수강할 수 있다. 프린스턴은 학부생이 원하면 대학원 강좌 수강을 허락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조던은 재학중에 한 학기 또는 1년을 외국에 가서 공부할 수 있다. 프린스턴은 서울대와 교류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한국에 올 수도 있다. 또 방학 때는 외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원하는 나라에 갈 수도 있다. 비용은 물론 학교가 지원한다. 조던은 4학년이 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 도서관 가운데 하나인 파이어스톤(타이어 제조 회사 파이어스톤이 기증) 도서관 내에 개인 열람실을 가질 수 있다. 이곳에서 필요한 서적과 자료를 따로 보관하면서 개별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다.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만큼 학생들도 한눈 팔지 않고 학문에 몰두한다. 학교가 학문적 성취를 위해 요구하는 것도 많다. 조던은 3학년이 되면 정치학과 관련한 연구 논문 한 편을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4학년 때는 물론 졸업논문을 완성해야 한다. 또 수업마다 최소한 1,2개씩의 소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프리스트(동문인 빌 프리스트 미 상원 공화당 대표의 이름을 따옴) 학생회관에서 만난 한 여학생은 “학교 공부 말고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프린스턴 지역의 봉사 활동과 학생회 일도 참여하고 있다.”면서 “지난 1년 동안 놀기 위해 학교 밖을 나간 것은 한두 차례밖에 없다.”고 말했다. 프린스턴은 학생의 학문적 견해와 일상 생활을 보호하는데도 철저하다. 프린스턴의 홍보 담당자인 카스 클리아트는 서울신문의 학교 취재를 적극 환영하며 지원했지만 전제조건들을 제시했다. 참관하는 수업에서 학생들이 하는 말을 개별적으로 인용하지 말고, 학생들의 인종이나 성별을 나타낼 수 있는 묘사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학생들에게 이름을 묻지 말고 사진도 찍지 말아달라고 클리아트는 요청했다. dawn@seoul.co.kr ■ 역사학과 수업 참관 해보니 |프린스턴(미국 뉴저지주) 이도운특파원|아침 8시50분. 인상파 화가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프린스턴의 캠퍼스를 가로질러 역사학과 건물인 디킨슨 홀에 도착했다. 프린스턴에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잘 살아있는 디킨슨 홀의 210호 강의실에서 대니얼 로저스 교수의 강좌가 9시부터 진행된다. 대학원 과정인 이 강좌의 제목은 ‘미국 문화와 지성사의 문제들´ 강의실 시설은 한국의 여느 대학과 비슷했다. 분필을 쓰는 칠판이 벽면을 차지했다.TV와 프로젝션 같은 시설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었다. 강의실 가운데에는 학생들이 둘러앉아 토론할 수 있도록 책상을 ㅁ자(字) 모양으로 설치해뒀다. 첨단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나하나 정돈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정확히 9시가 되자 로저스 교수와 11명의 학생이 강의실로 들어왔다. 로저스 교수는 한국에서 온 기자를 학생들에게 소개한 뒤 곧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이날은 강좌는 여덟번째 수업으로 미국 사회의 ‘소비’ 문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목표다. 11명의 학생 가운데 남학생이 7명, 여학생이 4명이었다. 그 가운데 한명은 학부생. 로저스 교수는 이 강좌가 깊고 넓은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학부생을 수업에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 학생이 강력히 희망하자 응낙했다고 한다. 수업은 미국 소비자의 구매가 갖는 사회적 의미, 구매 행태의 변화, 상품과 서비스가 등장한 사회적 배경, 공산품과 문화 상품의 차이, 제조업과 서비스의 관계 등 다양한 분야를 소화했다. 또 관념적인 개념의 나열보다는 신용카드가 등장한 이유, 나이키 스니커즈를 신는 의미, 골동품의 거래 과정 등 매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뤄졌다. 수업은 대부분 학생들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로저스 교수는 중간중간 중요한 개념을 던져 토론의 방향을 유도해 나갔다. 이날 수업에서 특히 관심이 갔던 부분은 광고와 관련한 토론이었다. 역사학과 학생들이지만 광고나 마케팅 등과 관련한 지식의 폭이 넓고 깊었다. 로저스 교수가 “새로운 스포츠 드링크를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주제를 던지자 수업은 역사학이 아니라 아예 경영학 수업으로 바뀐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학생들의 토론은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그 드링크를 마시도록 하는 방법으로까지 이어졌다. 학생들의 입에서 포커스 그룹 리서치, 차별화, 브랜딩, 구전 마케팅 등 전문 용어가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학생들의 관심 영역도 넓었지만, 수업 준비도 철저하게 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날 수업을 위해 학생들은 텍스트북으로 지정된 마셜 맥루헌의 ‘기계적인 신부’와 6개의 논문을 읽어야 했다. 이 강좌는 1주일에 한 차례인 수업마다 1권의 텍스트 북과 3∼6개의 필수 논문이 지정돼 있다. 로저스 교수는 수업이 끝난 뒤 “역사적 사실 자체보다는 그같은 사실을 이끌어낸 시대의 맥락이나 전후관계를 중요시한다.”고 강의의 목표를 설명했다. 이 강좌는 모두 12번의 수업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11번째와 12번째의 수업 주제는 정해지지 않았다.10번의 수업을 진행하면서 필요가 있는 분야를 학생들과 협의해 결정하겠다는 것이 로저스 교수의 생각이었다. dawn@seoul.co.kr ■ “학부과정 탄탄한 교육은 사회진출 성공토대 마련” |프린스턴(미국 뉴저지주) 이도운특파원|“학부에서 튼튼한 교육을 받으면 졸업후 어느 분야에 진출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 프린스턴 칼리지(학부)의 낸시 말키엘 학장은 웨스트 칼리지 홀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프린스턴은 순수 학문의 가슴과 영혼”이라고 강조했다. 하버드에서 20세기 미국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말키엘 학장은 “한국 학생들이 프린스턴에 더 많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프린스턴은 왜 학부 교육을 중요시하나. -학부야말로 고등교육의 기반을 다지는 곳이다. 학생들에게 학부 시절은 학문적으로나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학부에서 튼튼한 교육을 받으면 학문을 계속하든, 사회에 나가든 어떤 분야에서나 성공할 수 있다. 프린스턴의 학부는 학생들이 세계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기초를 다져주는 곳이다. ▶프린스턴의 학부 교육이 다른 대학과 다른 점은. -우수한 학생들과 교수진이 순수 학문의 연구에 몰두한다는 점이다. ▶하버드 등 경쟁 상대와 비교해 외국 학생이 적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말키엘 학장은 곧바로 외국학생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수치를 확인했다). 학부에 10%, 대학원에는 43%나 된다. 다른 학교들과 비교해 낮은 비율이 아니다. ▶커리큘럼은 시대 변화에 따라 바뀌는가. -계속 변화하면서 새로운 학문의 영역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사를 가르칠 때 단순히 미국 역사뿐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나 세계사와의 상호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최근 중점을 두는 새로운 학문 분야는. -게놈학, 양적생물학, 신경학 등이다. 창조 예술이나 화학 분야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프린스턴에 오고 싶어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무엇보다 학문적으로 자질을 갖췄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어떤 지적 능력과 호기심을 가졌는가에 프린스턴은 관심이 많다.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어떤 공헌을 했는지 보여주면 좋겠다. 과외 활동은 반드시 자신의 ‘열정’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이른바 입학허가서를 받기 위한 과외활동은 열정과 구별이 되나. -그럴 수 있다. 프린스턴에는 정말로 음악을 사랑해서 바이올린이나 첼로 연주를 하다가 입학한 학생들이 있다. 그런 것을 진짜 과외활동으로 생각한다. ▶21세기에도 ‘아이비 리그’라는 개념이 유효한가. -아이비 리그에 속한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아이비 리그라는 말은 원래 스포츠 리그에서 나온 이름이다. 아이비 리그 대학 말고도 스탠퍼드나 MIT, 시카고대학 등은 매우 우수하다. 유럽이나 아시아에도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 많은 것 아닌가. 현 시점에서 아이비 리그가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dawn@seoul.co.kr ■ “美대학중 학비는 비싸지만 학생 절반이상 장학금 혜택” |프린스턴(미국 뉴저지주) 이도운특파원|미국의 부모들은 자녀가 프린스턴대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원한다고 한다. 프린스턴대는 미국에서도 학비가 가장 비싼 대학 가운데 하나이다. 학교측에 따르면 1년치 등록금만 3만 1450달러다. 생활비까지 합치면 최소한 4만 3425달러가 필요하다. 미국 가정의 소득 중간치가 4만 4389달러(2004년 기준)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자녀를 프린스턴대에 보내는 것은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프린스턴대의 돈 베터튼 재정지원국장은 “오히려 학비가 비싼 것이 학생들에게는 이롭다.”고 말했다. 베터튼 국장의 논리는 이렇다. 프린스턴에는 동문의 자녀를 포함해 부유한 집안 출신 학생들이 많이 들어온다. 이들에게는 프린스턴의 학비 정도는 부담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학비를 많이 걷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집안 출신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준다는 것이다. 기여입학제를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일부 사립대 논리와 비슷하다. 베터튼 국장은 이런 장점들 때문에 최근에는 공립학교인 주립대학들까지도 등록금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2006년 입학한 학생 가운데 54%가 장학금을 받았다.1인당 평균 지원금은 2만 7250달러다. 총액이 1700만달러(약 170억원)에 이른다. 학비가 더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학교내의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베터튼은 학비 지원과 관련, 무차별과 무한정이라는 두가지 원칙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1989년부터 입학허가서를 제출한 학생들의 재정상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일단 입학을 결정한 뒤 학생의 재정능력을 보고 지원을 결정한다. 이같은 원칙은 7년 전부터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적용됐다. 또 등록금과 기숙사비뿐 아니라 책값과 여행비, 대학 생활에 필요한 부대비용도 지원해 준다. 베터튼은 “미국의 대학 졸업생들이 학자금 융자로 평균 2만달러(약 2000만원)씩 빚을 지고 있지만 프린스턴 졸업생 가운데는 빚을 짊어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서울 ‘종교월드컵’ 20여개국 한자리

    세계 각국의 종교지도자들이 서울에 모여 종교간 화합과 세계평화를 위한 뜻을 모은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가 8일 개막식(서울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을 시작으로 14일까지 13차례에 걸쳐 진행하는 종교지도자 회의와 ‘종교와 평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 만해 한용운의 사상을 따라 평화의 길을 찾기 위한 자리로 중국, 인도, 미얀마, 이라크 등 20여개국 종교지도자 30여명과 국내 종교지도자 200여명, 각계 인사 500여명 등 700여명이 참가한다. 주제는 ‘21세기 세계 평화와 지속 가능성을 위한 종교의 역할’. 행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참석자들의 면면. 스리랑카 대표인 시리세나 반다 헤티아랏치(자웨와테나푸라대학) 교수는 프랑스·스페인·유네스코 대사를 역임했고, 미얀마 대표 타엣 사야도 바단타케사라 대승정은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수행해온 선승으로 현재 미얀마 국립불교승가회의장을 맡고 있다. 중국의 유·불·선 대표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의 차세대 불교대표인 스융신(釋永信) 소림사 방장은 1981년 출가해 소림사를 브랜드화한 데 이어 최근 쿵푸 최고수들을 영화계에 진출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 유교 대표인 쿵더반(孔德班) 산둥성 취푸(曲阜)시 상공회 전 주석은 공자의 77대 직계 후손으로 눈길을 끈다. ‘종교화합’이라는 대회의 화두에 따라 테러·전쟁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세션도 이채롭다. 여기에는 나와즈 칸 마르와트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의장, 유대교 대표인 예후다 스톨브 예루살렘 종교간협의회(IEA)소장, 모사 바샤 미국 이슬람연합 의장, 힌두교와 시크교를 각각 대표하는 인도의 TD 싱과 모힌데르 싱 등이 주제발표와 토론에 나설 예정이다. 이밖에 루스산트세렌 겔에잠스 몽골 불교연구소장, 성휘 중국불교협회 부회장, 판 아나메데 타이불교도우회 회장과 프라 뎁소폰 세계종교지도자협의회 회장 등이 처음으로 한국에 온다. 참석자들은 행사 기간 중 조계사를 비롯한 사찰과 명동성당, 순복음교회 등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시설을 차례로 순례할 예정이다. 한편 행사 참석을 위해 한국 정부에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티베트의 달라이라마는 주최 측에 보내온 메시지를 통해 “전통은 세계 평화의 진정한 바탕인 내적 평화로 이르는 길”이라면서 “이런 선물을 잘 간직해 평화를 위한 소망으로 후세에 전할 것인지, 아니면 후세의 미래를 위협하는 무기로 바꿀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종교간 화합을 강조했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100년만에 6이 세번 겹쳐 “악마의 날” 美선 분만등 미뤄… 영화계 마케팅 활용

    2006년 6월6일은 ‘악마의 날’? 6이 세 번 겹치는 이른바 ‘666’의 날이 100년 만에 찾아와 미 전역이 요란을 떨고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666을 ‘짐승의 표시’로 기록했다. 기독교인들은 사람의 이마와 오른팔에 새겨진 666을 종말로 해석해 왔고 일반인들도 가급적 꺼린다.7이 완전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수라면 6은 하나가 모자라는 수, 즉 불완전성과 세속성을 뜻한다. 미국인들은 입사 지원서나 중요한 사업 계약서에 6일자 서명을 피하는 분위기다. 병원에서는 수술이나 분만 날짜를 조정해 달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교회에 결혼식을 연기해 달라는 요청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나 음반, 출판업계에선 666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뉴스위크 최신호(12일자)가 보도했다. 공포 영화 ‘오멘’의 리메이크작이 6일, 그것도 0시6분에 전세계에 동시 개봉된다.20세기 폭스사의 1976년 히트작 오멘은 666을 몸에 새기고 태어난 소년 데미안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출판사 틴델 하우스도 종말론을 다룬 종교서적 ‘환희’를 이날 출간하기로 했다. 작가 앤 쿨터의 신작 ‘신의 부재:자유주의의 교회’도 이날 발간된다. 심지어 기독교도인 팀 라하예와 제리 B 젠킨스의 소설 ‘레프트 비하인드’ 시리즈의 대중보급판을 6.66달러에 내놨다. 헤비메탈 밴드 ‘슬레이어’는 음반 ‘불멸의 횃불’을 이날 발표하고 다른 메탈 그룹 ‘디어사이드’도 이날부터 신곡 2곡을 인터넷 음악사이트 ‘아이툰’을 통해 발매한다. 그러나 수비학(數秘學)자들은 6 세 개를 더한 18이란 수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재정적으로 매우 좋은 상태”라고 옹호한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정진석 추기경, 8일 모교 중앙고서 특별강론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75) 추기경이 오는 8일 모교인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방문해 특별강론을 한다. 중앙고는 개교 98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로 마련된 특별강론에 41회 졸업생인 정 추기경을 초청했다. 정 추기경은 강론에서 모교 재학생들에게 꿈을 가질 것을 당부할 예정이다. 그는 중앙교우회지와의 인터뷰에서도 “고교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큰 꿈을 키울 수 있었던 학창 시절을 잊을 수 없다.”며 청소년기의 꿈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정 추기경은 또 2008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는 모교의 기념사업 기금으로 1000만원을 기탁할 뜻을 학교측에 전했다.정 추기경은 1950년 중앙고 졸업 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지만,6·25 전쟁을 겪으면서 가톨릭대에 진학해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한편 중앙교우회는 ‘자랑스러운 중앙인’에 한국 최초의 종두학자인 고 지석영, 대한미술협회장과 예술원장을 지낸 고 고희동, 지질학자인 김수진, 연극인으로 토월회를 조직했던 고 박승희, 외국어대 용인캠퍼스 부총장을 지낸 고 석일균, 국어학자서 서울대 도서관장을 지낸 이기문, 한국 법의학의 선구자로 수원도립병원장을 지낸 고 주종훈 선생 등 7명을 선정했다.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마니아] 하키·축구·농구 혼합… ‘전쟁’처럼 격렬

    [마니아] 하키·축구·농구 혼합… ‘전쟁’처럼 격렬

    라크로스는 격렬한 운동이다. 스포츠지만 전쟁과 비교된다. 인디언들이 즐기던 것을 미국 개척자들이 받아들였다. 그 뒤 1900년대 초반 미국 명문사립고등학교와 동부 명문대학교 학생들이 미국의 전통을 지킨다는 취지로 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귀족 운동이었던 라크로스가 미국에서 최근 크게 유행하면서 대중화되고 있다. 장비가 비싼 것도 아니고 경기 방식이 복잡하지도 않지만 전통 인기 스포츠인 하키와 축구, 농구의 장점을 고루 지녀 어느 운동보다도 박진감 넘치고 격렬하다. 라크로스를 접한 사람은 누구나 강한 인상을 받는다. 격렬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라크로스 없이는 살 수 없는 마니아가 된다. 경기 모습을 지켜보면 라크로스가 대중화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글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희대학교 대운동장에 건장한 남성들이 모였다. 하키와 축구, 농구를 합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즐기던 구기종목인 라크로스 시합을 하기 위해서다. 국내 대학교 가운데 유일하게 이 학교에 라크로스 팀이 있다. 이날 시합을 벌인 양팀은 ‘CLU’(Corea Lacrosse Union)와 경희대학교 팀.CLU는 외국에서 라크로스를 접한 유학생들의 모임이다. 선수들의 키는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어깨가 벌어지고 피부가 검은 큰 체격을 가진 사나이들이다. 이들은 헬멧을 쓰고 온 몸에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1m 정도 되는 스틱을 들었다. 스틱엔 그물망이 있어 공을 넣을 수 있다. 드디어 중앙선에서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레츠고 클루” “경희대 파이팅” 힘찬 구호와 함께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시작됐다. 특이한 건 하키처럼 공을 몰다가 그물망에 공을 넣고 달리는 것이다. 순간 상대팀 선수들은 공을 쥔 선수의 진출을 막거나 공을 뺏기 위해 스틱으로 상대의 스틱을 치거나 심지어 헬멧과 가슴을 치기도 한다. 이 경기는 등만 치지 않으면 반칙이 아니다. 경기에 앞서 보호장비를 든든하게 착용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만일 스틱으로 쳤을 때 큰 소리가 나면 파울을 선언,1분간 퇴장이다. 결국 경희대 노영동(26)씨가 달릴 때 스틱으로 막다가 가슴을 쳐 큰 소리를 낸 CLU 팀장 노진규(32)씨가 1분간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하키는 지면 위에서 공을 몰지만 이 경기는 주로 공중에서 스틱으로 공을 던지고 받아 더욱 박진감 넘친다. 선수끼리 몸을 부딪치기도 하고 부족하면 스틱으로 쳐 더욱 격렬하다. 갑자기 관중석에서 일제히 “하하하”대박 웃음이 터졌다. 수비를 보던 체격이 다소 작은 김두현씨가 CLU에서도 가장 거구인 박원재(31)씨의 진출을 막기 위해 몸을 던져 부딪친 순간 넘어질 듯 말 듯 비틀비틀하다가 뒤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김두현(20)씨는 교체돼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경기장 밖엔 선수 5명이 늘 준비하고 있다. 경기가 워낙 격렬하고 체력소모가 심해 선수들이 수시로 교체된다. 교체는 무한정 가능하다. 라인 밖으로 나온 김두현씨는 선수들을 향해 장내 빈 공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쳤다.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스코어는 8대8. 경희대 노영동씨가 중앙선을 침투, 골문을 향해 달렸다. 달리는 노씨는 스틱과 몸싸움의 저항을 받았다. 방어가 심해지자 그는 골문 옆에 있는 이헌영(29)씨에게 공을 던졌다. 공을 향해 3개의 스틱이 동시에 올라갔지만 결국 이씨의 그물망에 들어갔다. 그는 넘어지면서 골키퍼 장영재(25)씨의 다리 사이로 공을 넣었다. 5분 뒤 CLU의 노진규씨가 점수를 세는 한인수(22)씨에게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자, 한씨는 “죄송합니다.2분 늦었습니다.”라고 답했다. 경기장 내 선수들은 팀을 가리지 않고 이제히 “야∼임마∼뭐야!”“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는 등 큰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체력 소모가 워낙 심해 1∼2분 더 뛰는 것도 괴로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들어와 헬멧을 벗자 땀이 흠뻑 젖어 머리카락 사이 속살까지 젖어 있다. 선수들은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셨다.10분 동안 이들이 마신 양은 준비한 이온음료 10병 가운데 6병. 노진규씨에게 “게임이 어땠냐.”고 묻자, 그는 “하하하 죽겠어요.”라고 답했고 옆에 있던 박원재씨도 “많이 뛰니까 더 재미있다.”고 거들었다. 격렬한 경기였지만 부상자는 없었다. 노씨는 “운동을 해 보면 오히려 보호장비를 착용하는 경기가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한인수씨도 “고의적으로 때리지 않는다면 보호장비가 있어 큰 부상은 없다.”고 전했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상쾌해서인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국내 마니아 어디 있나 ●한국 유일 고교팀, 외대부속 외고(HAFS)팀 국내 유일의 고등학교 라크로스 팀이다.3일과 10일 서울외국인학교(Seoul foreign studies), 서울국제학교(Seoul internationalschool)와 리그전을 펼친다. 고등학교 리그전은 처음이다. 2005년 개교와 함께 생겼다. 국제화를 내세우는 학교인 만큼 미국 명문사립고에서 유행하는 라크로스를 하겠다는 취지에서다.2학년생 16명이 활동하고 있다.1학년생은 2학기에 모집한다. 주로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관심이 많다. ●유학생 중심으로 구성된 CLU(Corea lacrosse union)팀 유학생이 주축인 라크로스 마니아 클럽이다. 하지만 가입 여부는 유학생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 이름만 올리면 가능하다.2000년 창설됐다. 매년 100여명씩 늘어 현재 430명이 가입돼 있다. 이처럼 급속한 회원수 증가에 대해 노진규(32)운영국장은 “유학생은 서로 인맥으로 얽혀 있어 입소문이 빠르다.”고 말했다. 주로 활동하는 회원은 30여명. 이들은 대부분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 있는 졸업생들이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 활동인원은 급격히 는다. 미국은 겨울방학은 짧고 여름방학이 길어 여름에 유학생이 대거 돌아오기 때문이다. 매주 일요일 경희대학교 수원캠퍼스에서 연습을 한다. 원래 용산 미군부대에서 했는데 9·11테러 이후 출입 제한이 심해져 재작년 장소를 옮겼다. ●1997년부터 활동한 경희대학교팀 조정원(현 대한체육회 부회장)전 경희대 총장이 1996년 미국에서 한인회장한테 라크로스를 소개 받은 뒤 귀국, 당시 체육대학 학장이었던 손두복 교수에게 “한국에서 라크로스를 키워보자.”고 제안,1997년에 구성됐다. 국내 최초의 라크로스팀이다. 당초 권순재(34)씨의 주도로 10여명이 모인 동아리 성격이었으나 곧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됐다. 오는 2009년 아시아태평양 라크로스 게임에 참가할 계획이다. 선수는 50여명이지만 주로 졸업생을 뺀 25명이 활동한다. 체육대생이 아니어도 가입이 가능하다. 공대생과 인문대생이 10명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팀원을 모집한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Lacrosse의 역사와 현재 라크로스(Lacrosse)는 예전엔 필립스 엔더버와 엑스터 등 미국의 명문사립고 혹은 동부 명문 사립대 학생들이 즐겨하던 귀족 스포츠였다. ●美 인디언들이 즐기던 스포츠… 1500여년 이어지며 대중화 하지만 최근엔 미국 전역의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즐기는 대중스포츠가 됐다. 1900년대 초 주로 명문 학교에서만 유행할 때 이들은 라크로스를 하는 이유에 대해 “미국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라고 말했다. 실제 라크로스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스포츠이다. 기록에 따르면 무려 그 역사가 1500여년이나 됐다. 그 뿌리는 미국 인디언에 있다. 라크로스는 프랑스어로 프랑스 개척자들이 인디언들이 하는 경기를 본 뒤 관사와 막대기를 뜻하는 la와 crosse를 합성해 만든 명칭이다. 하지만 1492년 콜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했을 무렵, 인디언들은 이를 ‘바가타웨이’라고 불렀고 개척자들은 이를 보고 열광했다고 한다. 원주민들한테 바가타웨이는 제사와 전쟁의 속성을 지녔다. 태풍과 가뭄 등의 자연재해가 닥치면 인디언들은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바가타웨이를 했다고 한다. 또 피를 흘리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바가타웨이를 했다. 대립하는 부족들 가운데 한 부족이 바가타웨이를 하면서 부족의 상징물인 문패 등을 상대 부족의 성지에 갖다 놓으면 상대 부족의 영역까지 갖는 것이다. 또 갈등을 해소하고 강한 남성이 되기 위해 이 놀이를 했다고 한다. 현재 라크로스가 된 바가타웨이는 전쟁을 대신하고 강한 남성을 만드는 경기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격렬한 운동이다. 이 운동은 하키와 농구, 축구의 복합체다. 하키처럼 스틱을 사용해 공을 잡고 먼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은 축구와 비슷하고 골문 근처에 있는 선수에게 공을 패스하는 건 농구와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 선수와의 거친 몸 싸움에 밀리지 않는 우수한 체격 조건과 농구처럼 패스나 슛할 때 속임수가 가능한 민첩성, 팀 워크를 위한 협동심이 모두 요구된다. ●10년 사이 美 청소년팀 65%, 대학·클럽팀 62% 늘어 라크로스가 뒤늦게 대중화된 이유에 대해선 다양한 설이 있다. 미국에서 최고 인기인 야구와 같은 봄 시즌에 열려 대중화가 안 됐다는 것. 또 명문사립학교 출신들이 사회 유력인사로 성장, 그들이 학생 때 즐겼던 라크로스를 적극 지원하면서 뒤늦게 마케팅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 미국 청소년팀은 65%, 대학과 클럽팀은 62%가 늘었다.5년전 라크로스 장비를 만드는 업체의 브랜드는 2개에 불과했지만 현재 주요 브랜드만 6∼7개. 스틱을 만드는 업체는 수십개로 늘었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에 20만명의 선수가 있다. 아직 국내에선 주로 유학생을 중심으로 마니아들만 즐긴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40년간 잊지 못한 스승의 은혜

    40년간 잊지 못한 스승의 은혜

    학생이 선생님을 때리고 학부모는 선생님을 무릎꿇게 하는 세상이다. 40년을 뛰어넘은 사제의 정은 그래서 더욱 고귀해 보인다. 최근 30년간의 캐나다 이민 경험을 담은 책 ‘스카보로의 봄’을 펴낸 강성옥(59·여)씨와 그의 고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우순구(72·대한수산 사장)씨다. ●사비 털어 장학금 대준 선생님 40년간 그리워해 지난 2월 우씨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선생님 어디 계세요’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제자인 강씨가 쓴 책에 들어있는 글이었다. 고교에 다닐 때 아버지가 경영하던 출판사 인쇄공장에 불이 나 강씨 7남매는 하루 아침에 끼니 걱정을 하는 처지가 됐다.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강씨에게 선생님은 사비를 털어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다. 강씨는 고마운 선생님을 40년 동안 잊지 못하고 있다 편지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강씨는 학교에 등록하지 못했다.“온 식구가 굶을 판이니 일단 등록금으로 쌀을 사자.”고 한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못한 것이다. 그 바람에 1년 유급을 했다. 돈 때문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17살 소녀는 상심한 나머지 자살까지 시도했다. 다행히 새끼손가락을 다치는 정도로 끝났지만 상처는 깊이 남았다. 그것을 이겨내도록 힘을 준 것은 선생님의 사랑이었다. 우씨는 “등록금을 결국 못낸 걸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든 다시 마련해줬을 텐데”라며 가슴 아파했다. 강씨는 책을 선생님께 바친다는 뜻에서 스승의 날인 지난 5월15일 펴냈다. ●부끄럽지 않은 제자 되고자 베푸는 삶 살아 1985년 캐나다로 이민 간 강씨는 일주일 내내 하루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일했다. 어지간히 자리를 잡은 뒤에도 시간과 돈이 아까워 아직도 직접 머리를 자른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이웃 고교에 장학금을 주고 장애아동을 돕고 쓰나미 등의 재해구호 기금을 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남편 심상철(69)씨와 함께 남편의 모교인 성균관대에 사후 보험금 100만달러(한화 9억 5000여만원)를 기증하기도 했다.65세 이후에 연금이 나오면 그 돈으로는 자신의 모교인 이화여고에 장학금을 줄 예정이다. “늘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고 싶어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하기엔 부족합니다.”그는 지금 슈퍼마켓과 빨래방을 운영하며 하루에 15시간씩 일한다. 남들은 편히 살라고 하지만 일할 수 있을 때 더 벌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내년에는 남편과 귀국해 못다한 학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뒤 상담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사제간의 사랑과 존경 부재 아쉬워” “교사를 사명으로 생각하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쳤다.”는 우씨는 “요즘은 그저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자가 40년 동안 가슴 깊이 간직하는 걸 보면 선생님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고 덧붙였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제지간의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해 강씨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선생님은 또다른 부모님이며 평생 내 마음에 담고 살 것”이라고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김치는 인류 문화유산이라 불릴 음식”

    “김치는 인류 문화유산이라 불릴 만한 음식입니다.(파리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뿐만 아니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도 같은 평가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세계적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의 앙드레 쿠앵트로(58) 회장은 26일 “10여년 전 파리에서 일본음식 붐이 일었다가 태국 음식이 이어 받더니, 최근엔 그 바통을 한국음식이 받아 붐을 일으키고 있다.”며 파리 시민들의 입맛 변화를 전했다. ‘르 코르동 블루’란 이름은 1578년 프랑스의 앙리3세가 결성한 ‘성령의 기사단’의 단원들이 단 파란 메달에서 비롯됐다. 왕족과 귀족으로 구성된 단원들은 전설적인 호화 음식을 즐겼다. 이후 1895년 파리에서 같은 이름의 요리학교가 설립됐다. 영화 ‘사브리나’에서는 오드리 헵번이,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가 요리를 배웠던 학교로 나온다. 1984년엔 세계적인 술 코냑 ‘레미 마르탱’ 가문의 후손인 쿠앵트로 회장이 ‘르 코르동 블루’를 인수, 이후 15개국에 27곳의 요리학교를 세웠다. 우리나라엔 2003년 숙명여대와 제휴해 ‘르 꼬르동 블루-숙명 아카데미’를 개설했고, 지난 3월 외식·호텔·리조트 등을 전공하는 MBA 과정도 열었다. 쿠앵트로 회장은 87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김치 홍보대사’인 쿠앵트로 회장은 “오랜 역사와 문화가 담긴 김치는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며 “김치는 자연주의 건강식이며, 인공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천연 음식”이라고 치켜세웠다. 김치의 세계화를 위해 낸 요리책 ‘한국 김치와 르 코르동 블루’는 지난 2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세계 미식책 박람회(GWMA)’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는 “대부분의 참석자가 시연된 김치요리에 대해 처음엔 조심스러워했지만 맛을 보고서는 매우 놀라워했고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쿠앵트로 회장은 “한국 사람처럼 자주 김치를 먹지 못한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그의 화두에는 여전히 김치가 주요 ‘메뉴’로 등장한다. 요즘은 김치를 소스처럼 먹는 ‘김치케첩’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케첩을 만들면 세계인이 보다 쉽게 김치를 즐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쿠앵트로 회장은 한국 음식의 세계화에도 관심이 꽤 깊었다.“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불고기보다 갈비가 세계화에 훨씬 더 경쟁력이 있습니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성별·지역별·교육별 인구

    성별·지역별·교육별 인구

    우리나라 여성 인구가 남성을 초월했지만 농촌 지역은 ‘신부감 부족’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또한 초등학교 조기 입학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며, 종교 생활자 가운데 가톨릭을 믿는 인구는 10년 사이 급증했다.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태어난 아기의 성비(여성 100명 당 남성의 수)는 106.88로 10년전 113.82보다 크게 낮아졌다. 남아선호 사상이 상당부분 해소된 결과라고 통계청은 설명했다. 하지만 농어촌지역인 면(面)의 경우 결혼 적령층으로 볼 수 있는 25∼29살,30∼34살의 성비는 136.1과 124.2로 5년전 130.7과 117.6보다 높아졌다. 농어촌 지역의 20∼30대 여성들이 취업을 위해 도시로 떠난 것으로 보인다. 반면 50대 이상에서는 여초현상이 뚜렷했다. 아울러 5살 단위의 연령층 가운데 10∼14살 인구의 성비가 112.2로 가장 높아 15∼20년 뒤 남성들이 신부감을 찾지 못하는 ‘결혼대란’ 현상이 우려됐다.6살의 재학률은 90년 39%에서 95년 36.2%,2000년 31.3%,2005년 25.8%로 계속 낮아져 조기입학 비중이 줄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종교인구는 10년전보다 10.5% 늘었다.95년 2260만명에서 지난해 2497만명으로 237만명 증가했다. 연평균 47만명이 새로 종교를 믿는 셈이다. 특히 가톨릭 인구는 10년전 295만명보다 74.4%나 늘었다. 종교인구 가운데 불교를 믿는 사람이 43%인 1073만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역별 인구는 경기도가 1042만명으로 전체의 22%로 가장 많았다. 서울 인구는 90년 이후 계속 감소했으나 인천과 경기도를 합친 수도권 인구 비중은 95년 45.3%,2000년 46.3%,2005년 48.2%로 계속 늘었다. 수원시는 104만명으로 처음 100만명을 돌파했다. 특별·광역시 자치구 가운데 서울 노원구가 60만명으로 가장 많았다.234개 시·군·구 가운데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서울 양천구(㎢당 2만 7256명), 낮은 곳은 강원도 인제군(19명)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이종욱 WHO총장 별세

    이종욱 WHO총장 별세

    |제네바 심재억특파원·김수정기자|한국인 최초로 선출직 유엔 전문기구 수장에 올랐던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2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향년 61세로 별세했다. 제네바의 WHO본부는 이날 “이 총장이 오전 7시43분 뇌막하 혈종으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부는 이 총장을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훈장 추서도 검토키로 했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총장은 지난 20일 오후 WHO 총회를 준비하던 중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갑자기 쓰러져 인근 칸토날 병원에서 뇌혈관 혈종 제거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이 총장의 임종은 일본인 부인인 가라부키 레이코(61) 여사와 동생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가 지켰다. 이 총장의 모교인 서울대 의대 동문회에서도 조문단을 파견했다. 고인의 장례는 WHO에서 주관할 예정이며, 국내 빈소는 서울 연건동 서울의대 함춘회관 1층에 마련된다. jeshim@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밀양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밀양길

    경남 양산시 원동면 가야진사 앞을 지나온 옛길은 밀양 땅으로 들어선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작원관 터부터 밀양 땅이다. 이곳을 지나 낙동강을 끼고 가다 삼랑진과 무흘역을 통과해 밀양시내에 들어선다. 그러나 밀양 땅은 쉽게 기자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밀양 땅의 유일한 옛길 출입로인 작원관터는 폭이 불과 70여㎝. 겨우 사람 한명이 다닐 수 있을 정도다. 더구나 왼쪽은 절벽이고 오른쪽은 경부선 철도이다. 이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고심 끝에 접근해 보기로 했다. 사람 진입을 막기 위해 처놓은 철조망을 뚫고 작원관터를 향해 갔다.5분 간격으로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열차 때문에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50m 전방까지는 다가갔으나 더 이상은 어려웠다. 작원관터에서 500m쯤 올라가면 작원마을이 있다. 과거에는 꽤 큰 부락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30여가구만이 살고 있다. 작원관에서 삼랑진으로 가는 길은 시멘트길로 포장돼 있다. ●작원관터 옛길 폭 70㎝로 좁아져 이 길 중간에는 밀양시 안태리에서 흘러 내리는 안태천을 건너는 3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으나 현재는 돌다리 흔적만 있다. 동행한 밀양시립박물관 김재학(47)씨가 이 다리에 담긴 슬픈 사연을 들려줬다. 첫눈에 한 여인에게 반한 스님이 이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한 여인은 스님에게 돌로 다리 놓기 시합을 벌일 것을 제안했다. 먼저 다리 놓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시합이었다. 시합 결과 스님이 져 물에 빠져 죽자 처녀도 뒤따라 물에 뛰어들었다는 전설이다. 이때 놓인 다리가 작원대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다리는 작원석교라고도 불린다. 삼랑진은 낙동강과 밀양강, 밀물과 썰물이 합쳐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김해 방면으로 나가는 나룻목으로도 번창했으며 지금은 경부선과 경전선의 분기점이다. 토박이라는 김길수(67)씨는 “과거 삼랑진은 경남 일대에서는 가장 큰 장이 섰다. 현재도 4일과 9일 5일장이 서지만 규모는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삼랑진읍 네거리에서 옛길은 두갈래로 갈라진다. 우회전해 무흘역을 가는 것이 길손들이 많이 이용했던 길이다. 그러나 평민들이나 홍수가 나서 길이 침수되었을 때에는 삼랑진네거리에서 좌회전해 뒤기미 마을로 거쳐 무흘역에 도착한다. 김재학씨는 “양반들은 가장 빠른 직선 길을 이용했지만 평민들은 길에서 양반들에게 머리 숙이기 싫어 우회길을 선호했다.”며 “옛길에는 평민들의 고통과 눈물이 담겨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전리의 미전고개가 무흘역이 있었던 자리다. 옛날에 역은 역마(驛馬)를 갈아타는 곳이었다. 사람과 말이 머무르는 여관과 차고의 구실도 하였으며, 통신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현재의 역은 철도라는 특정한 교통수단 용어로 축소되었다. ●“양반에 머리 숙이기 싫어” 평민들 우회길로 무흘역 터에는 말을 매두곤 했던 500여년 된 포구나무가 마을에 있었으나 40여년전 어느 목사에 의해 베어져 없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흘역에서 밀양으로 가는 옛길은 1022번 지방도를 가로질러 무월터널 위쪽 산등성이를 타고 무월터널 맞은 편에 다다른 뒤 다시 경부선 철도좌측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변을 따라 곧 바로 밀양시내로 거슬러 올라간다. 밀양시내로 들어서는 길손은 먼저 밀양강을 건너야 했다. 밀양강은 상시범람해 현재 번화가인 삼문동 일대는 조선시대 늪지대나 다름 없었다. 나룻배가 밀양강을 건너는 유일한 수단인 시절에는 영남루 밑에 큰 포구나무에 배를 묶었다. 주변 바위들은 선착장 역할을 했다. 일제시대인 1910년에야 여러 척의 배를 놓아 만든 배다리를 띄워 왕래했다.1935년 콘크리트 다리가 가설됐으며 현재의 밀양교는 1995년 이 다리를 개수한 것이다. 밀양시청 이인수 공보계장은 “현재 두란노기독서점과 내일동사무소 자리가 밀양관아였다.”고 설명했다. 1479년 조선 성종 10년에 축조된 밀양읍성은 현재 일부가 복원돼 있다. 또 아동산 망루 아래에서 무봉사까지 300m, 아동산과 밀양여고 뒷산 아북산 정상까지 2.2㎞ 등에서 옛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기생 운심이 묘 벌초하면 소원 이루어진다” 밀양읍성을 벗어난 옛길은 밀양향교를 지나 제사고개를 넘어간다. 제사고개는 ‘만주에서 죽은 아버지의 혼이 이 지점에서 닭울음 소리를 듣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들이 제사장소를 이 곳으로 옮긴 데서 유래됐다. 제사고개에서 기회송림과 금곡마을을 지나면 신안마을이 나온다. 신안마을 500m 위에는 바위절벽이 두갈래로 움푹 팬 자리에 조그마한 무덤이 하나 있다. 사모하던 한 관리를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이곳에 묻힌 기생 운심이의 묘다.8월초 이 묘를 벌초하면 한가지의 소원은 성취된다는 이야기가 퍼져 이맘 때면 벌초꾼들로 붐빈다. 옛길은 현재의 상동교인 상동나루와 구역마을 관마을, 유천을 지나 청도로 넘어간다. 글 밀양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왜적 침공 방어하던 요새지 작원관은 경북 문경의 조령관과 함께 옛길의 2대 관문 가운데 하나다. 동래에서 한양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한다. 작원나루로 출입하는 사람과 화물도 이곳에서 검문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었다. 숙박시설인 역원의 기능도 했다. 고려시대부터 왜적의 침공을 방어하던 요새지로 고려 고종때 창건됐다. 임진왜란 당시 밀양부사 박진이 이곳을 통해 침범해 오던 소서행장(小西行長·괘시유키나가)의 군대를 막기 위해 제일방어선을 구축하고 결사 항전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박진은 700여명의 군사로 1만 8700여명의 소서행장 정예부대와 맞서 하루 이상 전투를 벌였다. 박진 군사의 활약으로 조선 군대는 전열정비에 상당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곳 일대 옛길은 황산잔도만큼 험하다는 것이 동국여지승람 작원조의 기록이다. 물금취수장 부근에 있는 황산잔도는 황산장 주막에서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과거보러 가던 옛 선비들이 무수히 빠져 죽을 만큼 험하기 그지 없었다. 일제시대 때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작원관은 인근 50m 옆으로 옮겼고 1923년 낙동강 대홍수 때 유실되었다. 그동안 비만 설치돼 있었으나 밀양시가 당시 있었던 곳에서 1㎞쯤 떨어진 삼랑진읍 검세리 산101번지에 지난해 12월 복원했다. 모두 25억원을 들여 작원관 이외 비각과 충혼탑 등이 들어섰다. 작원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두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 때 어느 임금이 행차를 위해 이곳 나루를 건넜을 때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수많은 까치들이 지저귀며 일행을 맞아 유래됐다는 설과 부왕과 함께 종군한 백제 공주가 신라 진영을 교란하기 위해 이곳에 날아와 앉았다는 유래가 있다. 밀양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밀양가면 웅어회·돼지국밥 꼭 드이소 밀양에 가면 2가지 음식은 꼭 먹어야 한다. 웅어회와 돼지국밥이다. 이곳에서 ‘보리누루미´라고도 불리는 웅어는 갈치와 비슷한 은빛을 띤 바다 생선이다. 전어와 맛이 비슷한 웅어는 산란철인 5월말에 낙동강으로 올라온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막걸리로 씻는 것이 밀양 웅어회의 특징이다. 전어는 조금 무르지만 웅어는 부드럽고 고소하다. 묵은 김치에 웅어회를 곁들여 먹으면 맛을 더해 준다. 약간의 군내가 기름진 맛을 없애줘 개운하기 때문이다. 돼지국밥은 여행자의 음식이다. 열을 식히고 피로회복에도 좋다. 또 먹기 쉽고 값이 싸 주머니 걱정을 덜어준다. 막걸리 한잔이 생각 나도 별도로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된다. 국밥에 있는 고기가 훌륭한 안주다. 옛길을 걸은 나그네는 밀양에서 꼭 돼지국밥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밀양의 돼지국밥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밀양 터미널 앞 단골집은 3대에 걸쳐 40여년 동안 돼지국밥을 팔고 있다. 이 식당의 특징은 돼지국밥에 김치를 넣는다는 것이다. 식당 이름과 같이 단골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의사, 변호사 등 돼지국밥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화이트칼라 계층이 다수이다. 밀양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한국 종교계, 이라크 화합에 큰 역할”

    “종교계를 중심으로 이라크 돕기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 국민들에게 이라크 종교계와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6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천주교·불교·개신교 등 국내 7대 종단이 연합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대표회장 백도웅 KNCC총무)와 한국·이라크 종교교류협력에 관한 합의문을 채택해 발표한 이라크종교인평화회의 공동대표인 셰이드 하비브 압둘 하디 모하메드(46). 시아파 고위 종교지도자로 이라크 집권여당 이슬람혁명당의 당수인 압둘 아지즈 알 하킴 의장의 종교간 대화협력 위원장을 맡고 있는 셰이드 하비브는 “한국의 종교계가 보여준 이라크 돕기가 이라크내 종교간 화합에 큰 역할을 했다.”며 “한국과 이라크 정부간 우호적인 채널 가동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국 종교인들의 교류는 2004년 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된 김선일씨의 석방을 위해 한국의 종교지도자들이 현지 종교지도자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싹텄다. 김씨의 석방엔 실패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5월 한국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라크 종교지도자 6명을 초청한 데 이어 이라크 의사 19명을 국내에서 연수토록 했으며 최근 이라크에서 전쟁과 테러로 부상당한 어린이 3명을 국내 대학병원에 초청해 수술, 치료하고 있다. “각 종파간 대화협력은 잘 되고 있지만 권력문제를 놓고 다소 이해가 엇갈리고 있는 게 문제”라고 이라크 상황을 전한 하비브는 “이라크의 종교계는 전쟁 이후 무정부상태에 빠진 이라크 재건을 돕고 있는 자이툰 부대의 인도적 차원에서의 주둔에 호의적인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하비브는 특히 “지금 한국에 초청돼 치료중인 어린이들은 수니·시아·쿠르드·기독교 등 이라크 각 종교계 대표들과 정부의 추천을 받아 선정된 만큼 이라크 어린이 초청 치료가 이라크의 언론과 국민들 사이에 크게 회자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양국 종교인들은 이날 정기적인 인적 교류와 만남을 추진한다는 합의 아래 오는 11월 중 이라크에서 실무접촉을 갖고 내년 2월 한국 종교지도자들의 이라크 방문을 협의키로 했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4) 정동제일교회 ‘벧엘 예배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4) 정동제일교회 ‘벧엘 예배당’

    ‘한국 감리교의 어머니 교회’로 불리는 정동제일교회(서울 중구 정동34·사적 제256호). 정동제일교회의 초석이자 신자 수 150만명에 달하는 한국 감리교의 요람이 바로 ‘벧엘예배당’이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가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들을 중심으로 선교를 펴나간 ‘하나님의 집’(벧엘). 이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건물 안에는 교회사에 남을 숱한 기록들이 담겨 있다. 서울시청 건너편 덕수궁 돌담 길을 따라 걷다가 모퉁이를 돌면 정동극장과 이화여고, 시립미술관에 둘러싸인 아담한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크지 않지만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교회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게 벧엘예배당. 지금은 주변의 높은 빌딩들에 가려 왜소해 보이지만 1898년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통적인 라틴십자형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을 때만 해도 이 ‘언덕 위의 신식 건물’은 단연 장안의 명물이었다. 하나님 신앙을 상징하는 중앙의 높은 천장지붕과 양측 측랑의 삼랑식(三廊式)에, 출입구에서부터 제단까지 장방형의 긴 수평선을 갖추고 있다. 중앙의 높은 수직과 장방형 긴 수평방향의 내부공간이 유럽 전통의 고딕양식을 띠고 있지만 신랑(身廊)과 측랑(側廊) 천장높이의 큰 차이가 없는 것은 전통 고딕양식에서 탈피한 느낌이다. 삼각형의 박공 지붕형태가 고딕 교회에서 흔한 뾰족첨탑을 대신하는 게 독특하다. 기둥은 처음 지어질 땐 없었지만 증축과정에서 생겨난 것.4각 또는 원형의 석조기둥이 중앙 신랑과 양측 측랑을 구분하고 있으며 이 내부 기둥을 통해 가운데 신랑과 양쪽 측랑이 구분되어 종교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창문의 첨두아치와 격자무늬 장식창은 일반적인 고딕형태보다 단순화된 형태로, 나중에 교회창문의 모형이 됐다. 제단은 내부 전면에 4각의 형태로 외부에 약간 돌출되어 있고 내부의 반원형 아치는 전통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만들어 들여온 강단 성구는 한국 개신교 최초의 것으로 이후 모든 교회들이 같은 형태의 성구를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1885년 부활절에 한국 땅을 밟은 선교사 아펜젤러(1858∼1902)가 서울 정동구역에 일군 역사는 곳곳에 스며 있지만 이 벧엘예배당은 그중에서도 핵심. 미국 감리교 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의 책임을 부여받아 한국에 파송돼 온 선교사 아펜젤러 일행이 처음 치중했던 것은 선교가 아닌 교육사업이었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그가 처음부터 선교를 강행하기엔 무리였다. 아펜젤러를 비롯해 당시 선교를 위해 함께 한국에 들어온 일행이 고종으로부터 허락받은 것도 교육과 의료사업에 국한됐다. 그래서 1887년 시작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그같은 분위기에서 본격적인 선교에 앞서 탄생한 한국 최초의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벧엘예배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아펜젤러는 한국에 온 뒤 정동의 조선인 집을 사들여 내실 한 방을 지성소로 꾸며 첫 예배처로 삼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정동예배처’. 한국 감리교와 정동제일교회의 태동지로, 이곳에서 한국선교회가 창시됐으며 배재학당이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남녀가 한자리에 모여 예배드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남자들은 교회이자 학교인 아펜젤러의 집에서 모였고 여자는 함께 파송된 스크랜튼 여사의 집과 이화학당에서 모였다.1885년 10월11일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한 한국개신교 최초의 성찬예배가 드려졌는데 정동제일교회는 이날을 창립일로 지키고 있다. 그러나 조선인에게 전도하는 것은 여전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따라서 아펜젤러는 우선 일본 공관원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이 모임이 성장해 서울연합교회로 발전했으며 초대 담임목사로 아펜젤러가 선임됐다. 그러다가 고종이 ‘배재학당’이라는 학교명을 하사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복음선교사업도 본격화되었다. 이같은 흐름을 타고 세워진 게 바로 벧엘예배당이다. 예배당 건립비용(8048.29원, 조선인 모금액 693.03원)은 미국 선교부가 대부분 충당했고 한국의 교인들도 헌금을 했지만 극히 일부분이었다. 건립 당시의 예배당 규모는 길이 70자, 너비 40자, 높이 25자,115평. 지붕은 함석으로 꾸몄고 사방으로 유리창을 내어 자연채광을 하였다.1897년 6월 거의 완공됐을 무렵 배재학당 방학식을 먼저 치렀고, 헌당예배는 그해 12월26일 성탄절에 드렸지만 실제 건물이 완공된 것은 이듬해인 1898년 10월이었다. 2년 반에 걸친 공사 끝에 세워진 벽돌예배당은 단연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당시만 해도 검은 기와나 초가지붕에 흙으로 쌓은 집 일색이었으므로 당연히 화제가 되고도 남았다. 이 건물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이 줄을 이었다. 처음 보는 십자가 모양 예배당 형태 자체는 물론, 남쪽 귀퉁이에 솟은 종탑은 퍽 이색적인 것이었다.“교회당에 지붕을 올린 후 8개월 동안 고종황제를 비롯해 시골에서 온 농부들까지도 교회당의 구조에 대해 경이로움을 갖고 구경하러 왔다. 교인들과 외국인들도 감격에 겨워 교회당 주변을 맴돌았다.”(1897년 아펜젤러 연례보고서) 예배당이 처음 건립됐을 때만 해도 의자 없이 마룻바닥에 남녀가 따로 앉아 예배를 보았으며 남녀석 가운데에는 휘장을 쳐 남녀를 구분했다. 예배 때면 창문을 통해 예배 모습을 들여다보는 구경꾼들로 혼잡을 빚곤 했다.“주로 이화학당 학생들로 구성된 성가대와 찬송소리를 듣기 위해 주일마다 교회창문은 구경꾼들로 메워졌고 제단에 나와 남녀 교인들이 나란히 무릎꿇고 예수의 피와 살을 받아먹고 마시는 그 거룩한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정동제일교회 구십년사).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혼례도 이곳에서 열렸다. 예배당이 건립된 이듬해인 1899년 7월14일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 두쌍이 합동결혼식을 가진 것으로 이후 이른바 ‘신식결혼’‘연애결혼’이 확산되었다. 벧엘예배당을 중심으로 한 정동거리는 당시 문학예술인들의 중요 활동처. 나도향 전영택 등이 작품활동을 하며 후진을 양성했고 창조, 백조 등의 주요 문학동인지가 탄생했는가 하면 소설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일제치하 벧엘예배당을 중심으로 한 정동교회 역시 수난을 피하지 못했다. 민족대표 33인 중 감리교 대표가 9명으로 이 가운데 정동교회 교인 2명이 옥고를 치렀다. 특히 2만 5000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이 서울 중심부에 몰려들면서 정동교회 주변에 살던 신자들이 성밖으로 밀려나 예배 참석자가 사뭇 줄었고 1912년 한 해에만도 교인 54명이 상하이, 만주로 망명하거나 이민을 간 것으로 정동교회측은 밝히고 있다. 벧엘예배당은 1916년 북편을 증축한 데 이어 1926년 1500명 수용 규모로 60평을 증축하면서 원래의 라틴십자가형에서 지금의 사각형으로 변해 원형을 잃은 아쉬움이 있다. 6·25전쟁 중엔 폭격을 받아 예배당의 절반가량이 무너져 내렸으며 이때 예배당에 있던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도 부서졌다.1977년 문화재로 지정된 뒤 ‘문화재 예배당’으로 불려 왔으며 1987년 화재로 소실된 내부 보수와 1990년 종탑 보수,2001년 건물붕괴 우려에 따른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kimus@seoul.co.kr
  • 대안학교 입학 가이드

    대안학교 입학 가이드

    대안학교 입학 전형은 학교 설립 주체와 교육과정처럼 제각기 다르다. 입학 상담만으로 학생을 뽑는 학교가 있는 반면 1주일 정도 가입교한 뒤 학교생활에 따라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입학에는 일반학교와는 달리 학업 성적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교 적응 능력이 크게 작용한다. 모집 시기도 언제든지 입학할 수 있는 수시 전형을 비롯해 5∼6월,10∼11월 등 다양하다. ●학부모 가치관이 학교에 부합해야 입학 초등학교 입학은 대개 원서접수와 학부모·아이 면담을 거쳐 결정된다. 입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교육 철학과 학부모 가치관이 맞는가이다. 입학생 규모는 결원에 따라 매년 달라진다. 대체로 10∼11월 원서 접수를 시작해 12∼1월 면담을 한 뒤 입학생을 선발한다. 수시전형을 실시하는 학교도 있다. 초등학생은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가 아니면 등·하교 때 보호자가 필요하다. 광명 볍씨학교는 광명에 사는 학생만 받으며 다른 학교들도 학교 인근으로 거주지를 옮길 것을 적극 권유한다. 초등학생도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먼저 살펴 보기도 한다. 과천자유학교는 면담을 거친 뒤 아이를 한달동안 공부 모임에 참가시킨다. 학교 수업에 잘 적응하면 최종 입학을 결정한다. 대안중학교는 대체로 10∼11월에 공개 입학전형을 치른다. 하지만 간디청소년학교는 6∼7월, 용정중학교 등은 9월 신입생을 모집한다. 정시와 별도로 수시 전형을 실시하기도 한다. 입학 과정은 서류전형과 학생면접, 학부모 면접 등이다. 하지만 입학 과정에서 특정 프로그램에 참가 경력이 요구되는 등 추가 사항이 필요하기도 한다. 지평선중학교에 입학하려면 여름이나 겨울에 학교가 주최하는 계절학교에 최소 한번 이상 참여해야 한다. 여름계절학교에 참여한 학생을 대상으로 1차 선발한 뒤 남은 정원을 추가 모집한다. 학기 중 전입생은 면접으로 1차 선발하고 일주일동안 학교에서 생활한 뒤 입학 여부를 가린다. 두레자연중학교는 학생 입학에 면접(60%) 이외에도 글짓기(30%)와 자기소개서(10%) 등이 포함된다. 이우중학교는 학생과 학부모가 각각 자기소개서를 내야 하며 추천서와 생활기록부 등도 제출해야 한다. 서류전형에서 입학정원의 1.5배를 선발하면 2박 3일동안 캠프를 거쳐 최종 입학자를 결정한다. 기숙형 헌산중학교는 신체검사를 통해 전염성 질병이 있는 학생은 입학에서 제외시킨다. 간디 청소년학교와 산돌학교는 경쟁서류와 면접을 거친 뒤 마지막에는 추첨을 통해 학생들 뽑는다. ●예비학교 거쳐야 입학 대안고등학교는 중학교같이 입학 방식이 공개전형으로 이뤄진다. 서류전형과 학생·학부모 면접 등이 기본사항이다. 하지만 학교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 추가된다. 입학생을 뽑는 것 자체가 학교 교육철학을 반영하기 때문에 학교마다 다양한 선발 방식을 지닌다. 특성화 고교인 간디고는 1차는 서류전형을 실시하며 2차에 진입하면 면접과 예비학교 전형을 거친다. 서류전형은 학생생활 기록부(30%)와 학생 자기소개서(30%), 학부모 자기소개서(30%), 추천서(10%) 등이 요구된다. 정원의 1.5배 학생들이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3일 동안 예비학교에서 생활한다. 이 과정에서 감성교과 수업과 영어·수학 기초 평가, 사고력 평가, 기숙사 생활 등이 이뤄진다. 양업고는 1차 면접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의지를 살펴본다.2차 전형에서는 심리검사와 성격검사,3차에서는 생활계획서, 자기소개서를 받는다.4차에서는 모든 교사가 면접하고 동의를 받아야 최종합격이 결정된다. 한마음고는 1차에서는 서류 평가와 상담,2차에서는 성격유형 검사와 면접을 거친다. 영산성지고는 서류심사와 학생 학부모 면담 등이 이뤄진다. 입학 자격을 특별하게 제한한 학교도 있다. 교육비가 무료인 지리산고는 생활보호대상자와 해체 가정 자녀들은 우선 선발 대상이다. 또 다른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킨 학생은 받지 않는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도움말 격월간 민들레 편집실 ■ 유형으로 본 대안학교 대안학교에 입학한 뒤 학교철학이나 운영방식에 맞지 않아 중퇴하는 학생들이 있다. 새로 문을 연 대안학교에는 이런 사례가 더욱 많다. 대안학교에 관심을 가진 학부모들은 입학하기전 학교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 선택할 필요가 있다. 학교 설명회나 홈페이지에서 소개되는 내용만 보고 선택하면 시행착오를 거치기 쉽다. 학교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정보는 해당 학교에 다니는 학부모에게 체감 정보를 듣는 것이다. 입학 하기에 앞서 학교 인가 여부도 살펴 봐야 한다. 정부가 특성화 학교로 인가한 대안 중·고교는 26곳에 불과하다. 비인가 학교는 상급 학교에 진학하려면 검정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비인가 학교는 설립 이념에 맞게 학교를 운영하지만 재정 상태가 열악한 곳도 적지 않다. 기부금과 입학금을 빼놓고도 수업료와 기숙사비 등으로 월 50만원씩 내야 하는 학교도 있다. 학부모의 재정 능력도 우선적으로 뒷받침 돼야 한다. 초·중·고 통합형 교육을 실시 하거나 학년제를 하지 않는 학교들도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대안학교를 고를 때 일반적으로 ▲대안학교의 교육 이념·방향 ▲재정 부담 ▲교사 자질 ▲교육 내용 등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녀들의 학교 적응 능력도 고려 대상이다. 부적응 청소년을 위해 세워진 도시형 비인가 대안학교에는 동기부여가 안된 상태에서 입학한 학생들도 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입학한 탓에 생활리듬에 맞지 않거나 부모의 관심이 부족하면 중도에 그만두기도 한다. 자녀들이 기숙사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가도 살펴야 한다. 초등 대안학교에서 기숙형은 양평 전인새싹학교와 제주 문화교육들살이 밖에 없지만 중학교 이상은 대부분 기숙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학 진학과 무관하게 대안학교를 선택했어도 솔직히 학부모 입장에서는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수능 준비를 하려면 일반 학교가 훨씬 낫다. 하지만 일부 대안학교 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해 보습학교에 다니기도 한다. 비인가 대안학교는 검정고시를 따로 준비해야 한다. 분당 독수리중학교 학부모 이미재(42·여)씨는 “대학 입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자녀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 보다는 과정”이라면서 “지식 전달 위주로 가르치는 일반학교와 견줘 대안학교는 균형잡힌 전인교육을 통해 인성을 갖춘 인재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학교 선택은 이렇게 대안학교는 학교마다 특징이 다르지만 몇가지 기준에 따라 유형별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가장 큰 기준은 인가 여부다. 인가 대안학교란 일반학교와 똑같은 학력이 인정되는 학교이며, 비인가 학교는 학교 과정을 마쳐도 검정고시에 합격해야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학교이다. 비인가 학교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지만 교육당국의 간섭없이 자유롭게 운영된다. 인가 학교는 일반학교의 공통 과정은 그대로 따르는 대신 특기·적성이나 선택 영역 과정에 한해 자율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 학교 부적응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로도 구분된다. 부적응 학생을 위한 대안 고등학교는 영산성지, 화랑, 원경, 양업, 두레자연, 세인, 산마을, 경기 대명고 등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곳에서 교육받고자 하는 일반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로는 간디, 푸른꿈, 한빛, 한마음, 달구벌, 이우고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이런 구분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곳도 많다. 세인과 한빛, 동명, 두레자연, 산마을, 지구촌고는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한다. 영산성지고와 경주화랑고, 원경고, 성지중, 지평선중, 헌산중은 원불교, 양업고는 천주교 재단에서 각각 운영한다. 이밖에 2000년부터 새롭게 등장하는 대안학교 형태가 도시형 대안학교이다. 중·고 통합형으로 일정한 교육과정의 틀을 갖춘 학교부터 쉼터와 비슷한 형태도 있다. 도시형 학교들은 주택이나 상가 건물에 공간을 마련한 뒤 상근교사 2∼3명과 외부 강사들이 수업을 진행한다. 서울시와 연세대 청년문화센터가 서울 남부 청소년 직업훈련센터를 리모델링해 문을 연 ‘하자센터’를 비롯해 한국청소년재단의 ‘도시속작은학교’, 서울 광진구청이 공간을 제공한 ‘두드림’ 등이 해당된다. 위탁형 대안학교는 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는 일반 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외부 대안학교에 위탁한 뒤 출석으로 인정하는 제도이다. 교육과정을 모두 마치면 소속학교에서 졸업장을 받는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검은 대륙은 슬프다

    “그런데 이 땅도 한때는 이 지구의 어두운 구석 중의 하나였겠지.”(조셉 콘래드 ‘암흑의 핵심’)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기억하시는지?영화에선 캄보디아 정글로 묘사됐지만,사실 원작이라 할 수 있는 폴란드 출신의 영국 작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무대는 아프리카입니다.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콩고 강이었지요. 아프리카 연수 중 우연히 후배가 권해 이 책을 펼친 순간,제가 느끼고 있던 바를 제대로 짚은 책이란 생각이 들더군요.사실 시에라리온에서 자꾸 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겹쳐 보여 몸서리를 치던 뒤끝이었습니다. 해서 이 책을 줄거리로 이번 연수 중에 느꼈던 여러가지 소회를 나누려 합니다. “정복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포악한 힘뿐인데,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 해서 자랑할 것은 못 되지.왜냐하면 누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약하다고 하는 사실에서 생기게 된 우연한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지.그것은 암흑 세계를 다루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당한 행위이지.이 세계의 정복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우리들과는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보다 코가 약간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약탈 행위가 아닌가.그러므로 그 행위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것이 못 된다구.이 불미스러운 행위를 대속해주는 것은 이념밖에 없지.그 행위 이면에 숨은 이념이지,감상적인 구실이 아니라 이념이라야 해.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사심 없는 믿음이 있어야지.이 이념이야말로 우리가 설정해놓고 그 앞에서 절을 하며 제물을 바칠 수 있는 무엇이거든.”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저는 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했더랬습니다.분명히 가슴 아픈 여행이 될거야 라고 속으로 확인시키곤 했지요.아니나 다를까,가나 수도 아크라에 도착하자마자 확인이 됐습니다.길거리에는 한참 일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나와 사과 봉다리 같은 걸 들고 운전자들에게 사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지금도 엄청난 숫자인데 1년 전만 해도 차량이 운행되지 못할 정도로 수가 많았지만 그나마 줄어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걸 이 나라 말로 ‘카이에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인신매매된 아이들의 가족 재결합 행사를 지켜보고 난민 캠프를 둘러보러 오가는 길 창밖으로 비치는 장면들은 하나같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는 속된 말로 양반이었습니다.시에라리온의 둥기 공항에 내려 헬리콥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아,내전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지요.포터들이 앞다퉈 여행객들의 가방을 서로 옮겨주겠다고 나서는데 정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일자리가 부족하고 일이 없어 저렇게까지 사람들이 극단적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만을 건너 수도 프리타운에 내려 호텔로 이동할 때가 밤 8시가 가까웠을 때입니다.밤 풍경으로도 이 나라가 심각한 에너지난,경제난에 허덕인다는 사실이 증명됐지요.사람들은 집안의 열기를 못 견뎌 밖에 나가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호텔 밖으로 잠깐 나가려다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호텔 앞인데도 위쪽 산동네에서 흘러온 하수가 길거리에 넘치고 있었던 것이지요.거리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정부 관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일행이 어느 빈민가 근처에서 내린다고 채비하는데도 저는 가만히 차안에 앉아 있었습니다.제 감정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은 5분도 못돼 올라왔습니다.비참한 상황을 목도한 듯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누군가 “어휴,저렇게 어떻게 사나”라고 혼잣말을 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저는 시에라리온에 있을 때 나중에 기사 쓰면서 한가지 표현은 계속 써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카메라를 들이댈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는 상황이 연일 이어졌습니다.저희 한국 기자들은 이번 연수 12일 가운데 딱 두번 술을 많이 마신 날이 있었는데,우연의 일치인지 이날은 모두 기억에 남겨두기 싫은 장면들을 보았던 날들인 것 같았습니다.무의식에서나마 기억을 떨쳐버리고 잠이라도 편히 자기 위해 통음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돌아와 바를 연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에 저희 일행은 정말 못 사는 동네에 발을 들여놓게 됐습니다.지나는 저희를 보며 “차이니즈” 하면서 시비를 붙이려 하는데 사실 겁 나더군요.비좁은 골목길 누군가 지나던 아주머니를 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운전자를 욕하는데 운전자는 한마디로 벌벌 떨더군요. 이슬람이 주류 종교인 탓도 있고 해서 이곳에서 사진 찍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렌즈를 돌리면 마구 화를 내며 손사래를 치거나 고함을 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누군가 기다렸다가 불씨만 당겨주면 무슨 일인가 터질 것 같은,똑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저만큼 우리 앞에 전개되는 해안은 미소를 짓는가 하면 상을 찌푸리기도 했고 매혹적이고 장려한가 하면 야비하고 무미하구나.일반적이기도 했는데,늘 이리 와서 알아내보라고 속삭이는 듯한 모습만 보이면서 침묵하고 있었다네.” 식민주의자들은 이런 식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해안선이 알아내 보라고 손짓한다고 거기 이끌려왔다고 설명하는 탐험가,목사,선교사들은 밀림으로 들어가 상아는 물론,노예까지 신대륙으로 빼내 데려갔고 해방도 그들의 이름으로 시켰지요.프리타운은 17세기 말 자메이카 등에서 해방시킨 노예들을 풀어놓고 영국이 다시 이들을 환금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으로 키워내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지요. 그 많던 광물이며 천연 자원들은 이제 고갈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됐지만 오늘 아프리카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만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사실 아프리카로서도 책임을 떠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지요.중국이 지금 저렇게 아프리카를 파고들 수 있는 것도 수십년동안 아프리카 지도자와 엘리트들에게 속은 사실을 깨달은 유럽 각국이 발을 뺏기 때문에 가능해졌다는 설명을 국제이주기구(IOM)의 김철효 씨는 했습니다. 당당하면서도 절박한 엘리트들의 호소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지만 얼마 뒤 그 친인척들이 세운 회사가 고스란히 그 돈만을 떼먹는 사례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던 것이지요.그런 일을 수십년 겪다보니 이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이 하는 얘기를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고 김씨는 덧붙였어요. 거기 비하면 우리 근대화 세력은 그나마 도덕적이며 근대적이었던 것이지요.갑자기 우리나라가 부쩍 커진 것처럼 느껴지더군요.돌아와 딸에게 건넨 첫마디가 “너,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였습니다.딸 아이는 언제쯤 이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어느 정신 나간 보수주의자가 이 두나라에 운동권 출신들을 모두 보내 정신교육 단단히 시켜볼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미치더군요. 사실 아프리카인들에겐 이해되지 않는 대목들이 많았습니다.첫째가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도 전혀 꿇리지 않는다는 점이었지요.가나 부두부람 캠프에서 라이베리아 난민들은 제게 “너희들이 급수 문제를 해결재줄 수 있느냐.약속을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사람들의 전술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덕적 의무감을 긁어 약속을 받아내는 데 노련하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또 그렇게 난민 중에 기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또 놀랐습니다.어느 여성은 저희 일행에게 너네 신문사에서 우리를 기자로 재교육시킨 다음 고용해줄 수 있느냐고 공개적으로 물었습니다.후배 하나가 제게 그러더군요.“형,권력이 좋은 게 그런 때인가 봐요.그런 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약속을 해줄 수 있지 않아요?”라고요.딴은 옳은 지적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그건 매력있는 일이겠지요. 둘째는 정말 이 사람들 아무 데서나 잘 잔다는 것이지요.그냥 의자에서 자는 게 습관화된 것 같더라고요.날이 더워 그런지 몰라도 호텔 직원들도 거의 의자에 앉아 자더군요.아크라 호텔 옆 공사장 인부들도 그냥 아무 데서나 자리깔면 바로 잠들어 버리더군요. 셋째,마시는 물에 대해 정말 둔감하더군요.도로 변에 물을 봉지에 담아 파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 물 뜨는 장면을 본 우리 일행들이 기겁을 하더군요.그냥 아무 데나 물웅덩이 같은 데서 물을 담아 팔더라는 거지요.근데 그걸 뻔히 알 어른들은 돈 주고 그 물을 사먹고 가나와 시에라리온 두 나라의 출산 때 기대 수명이 각각 40대 후반과 중반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위엄있는 선의(善意)를 가지고서 그 거대한 이국적 세계를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었어.우리는 단순히 의지로 해나가기만 해도 실제로 무한한 이익을 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위엄있는 선의의 모든 것이 로마에 있었습니다.하필 이번 연수를 주관한 한국언론재단은 이번 연수의 마지막 경유지를 로마로 잡아놓고 있었지요.처음에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브뤼셀을 거쳐 로마로 들어가는 비행기에서 마침 창 쪽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번 여행의 마침표가 로마인 것은 우연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쭉쭉 뻗은 영지와 동그랗게 모여든 사람들의 마을,포도밭과 유채꽃밭의 어울림 등 이탈리아의 모습은 아프리카의 그것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6시간 정도의 짧은 트랜짓을 틈타 돌아본 로마 시내의 콜로세움과 성당,로마 광장 등은 식민지 수탈의 땀방울을 고스란히 담아 그 알갱이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있었지요.아프리카인들은 계속된 수탈과 침탈,내부 분열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고요. 세계화 체제라는 숭고한 이념,대속될 수 있는 이념 아래 이제는 멀리 중국까지 아프리카의 자원을 노려 해안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요.우리 역시 사해 동포주의가 아니라 자원이 욕심 나 최근 부쩍 아프리카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다녀온 저는 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지원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지만,정말 조건없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면 저들을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이었습니다.국제기구들이 얼마나 위선적으로 움직이는지도 어느 정도 파악했습니다.프리타운 산 정상에선 엄청난 규모의 미국 대사관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그들만의 성을 쌓고 있었습니다. 그냥 놔둡시다.조건없이 도와줍시다.자원 같은 것 노려 그들을 지원한다면 식민주의자와 우리가 무어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커츠 대령은 죽음을 자청하기 전 “모든 야만인을 말살하라.”고 내뱉습니다. 사실 콘래드가 식민주의를 찬양하거나 숭상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으면서도 제국주의자라는 평단의 오해는 존재해왔습니다.그의 갈팡질팡하는 문체가 이런 오해를 증폭시킨 것도 물론이고요.하지만 그의 글은 두세번 읽어보면 아,이 친구가 비아냥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하여튼 제가 기사에도 썼듯이 이 두 나라,특히 시에라리온은 외부 원조 없이는 하루도 견뎌낼 수 없는 나라입니다.도덕적 죄책감을 긁어 원조를 얻어내려는 아프리카인의 의도는 뻔히 알지만,그럼에도 그 물이 흘러 넘치다 보면 저 밑에까지 돌아가지 않겠는가 생각해봅니다. 주위를 돌아보시면 이들 나라의 각종 프로그램,예를 들어 아동 인신매매 퇴치나 난민 돕기 등 도울 수 있는 창구들은 많이 있더군요.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 기부금의 사용처를 명확히 요구하고 이를 나중에 모니터할 수 있도록 기부 문화가 진보돼 있더군요.월드비전 같은 곳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빈곤층 아이들에게 월 2만원씩 기부하고 매달 어린이의 진척 상황을 이메일 등으로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제가 많이 언급한 국제이주기구(IOM)도 이런 프로그램을 갖고 있더군요.우리 연수단 일행도 이런 프로그램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어요.도덕적 의무를 충족시키고 너네들 나름대로 인생 즐기려는 거지,그게 무슨 소용있겠어 라고 핀잔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위선적인 기부금이 그들에겐 도움이 되니까요. 에이 모르겠어요.그렇다고 제가 이 복잡한 세계 체제를 뜯어고칠 혁명가 체 게바라가 나타나길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세계 체제도 아니니까요.
  • 터키 2000년전으로의 여행

    터키 2000년전으로의 여행

    무너져 내린 돌덩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에 손을 대어보자. 느껴지는가,2000년 전의 그들의 외침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터키 디딤의 아폴로 신전은 ‘신’과 인간을 이어주었던 대표적인 ‘신탁’의 성지였다. 무채색의 올리브 나무, 파란 물감을 잔뜩 풀어놓은 듯한 바다와 하늘의 절묘한 조화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해안 도시로의 여행은 낯선 이방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에게해, 마르마라해, 흑해 그리고 지중해 사이에 기묘한 모양으로 떠있는 나라, 터키 여행은 보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또한 지중해를 따라 가득 들어선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들과 아폴로 신전, 고대 기독교 문화의 에페소 등 세계 문명의 흔적들이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시계를 2000년 전으로 맞추어 놓고 코발트빛 바다가 펼쳐진 지중해를 따라 터키를 돌아보자. 글 사진 터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터키 서남부 해안을 달리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좁다란 해안도로가 뻗어 있는 터키의 서남부 해안을 버스로 달렸다. 따스한 봄바람에 실려오는 싱그러운 바다 내음에 기분이 들뜨기도 하고, 로마와 그리스의 위대한 문화를 칭송하듯 하얀 포말을 토해내는 파도의 노랫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며 여행을 시작했다. # 진짜 코발트 블루, 이런 색이야 터키의 지중해 여행은 안탈리아에서 시작한다. 이스탄블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지중해 해안 도시로 터키 관광의 중심으로 불릴 정도로 최고급 호텔과 빌라 등 여행자들을 위한 고급스러운 편의시설이 많다. 또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안탈리아에서 주변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버스투어’는 유럽인들에게는 인기. 첫번째 목적지인 올림포스까진 이름 모를 크고 작은 해변들을 끼고 달렸다. 끝없이 펼쳐지는 파란 하늘과 바다가 하나인 수평선을 보고 있노라니 ‘김형영씨 시’가 생각난다.‘하늘과 바다가 내통하더니/넘을 수 없는 선을 하나 그었구나/나 이제 어디서 널 그리워하지.’ 낯선 땅이라서일까, 슬픔을 간직한 색 ‘블루’때문일까. 뜻모를 슬픔이 가슴을 메운다. 파란 도화지에 흰점 같은 버스는 하얀 선을 그리며 달리고 또 달린다. 올림포스 해변은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했으며 아직도 해안 절벽 위에는 집터들이 남아 있다. 계곡으로 들어가면 도굴되어 겉모양만 남아 있는 AD2세기 오데모스 장군의 묘,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 흔적과 담장 등이 기다린다. 또한 올림포스는 레포츠의 천국으로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산과 바다, 계곡이 잘 어우러져 캠핑이나 산장에서 머물며 트레킹, 카약, 스쿠버다이빙, 암벽 등반 등을 즐긴다. 많은 산장 중에 트리하우스가 유명하다. 산타클로스로 유명한 성니콜라스 교회와 바위절벽에 굴을 파 만든 암굴 묘가 있는 미라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 게코바가 있다. 비잔틴 시대의 아름다웠던 도시가 수차례 지진으로 인해 물에 잠겼다. 그래서 지금은 산 정상에 있는 리키아인들의 무덤만 슬픔 역사를 조린다. 하지만 에메랄드빛 바다 속에는 당시의 아름다운 도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렇게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했다면 이젠 로마와 그리스의 거대한 문화에 취해보자. # 아폴로 신을 만나다 ‘아폴로 신전’이 터키에도 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게코바에서 버스로 2시간을 달리면 디딤이란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곳 역시 그리스와 로마시대 번영을 누렸던 항구도시다. 그러나 지금 남겨진 것은 아폴로 신전이 유일하다. 아폴로 신전으로는 그리스 델포이 신전이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터키에도 디딤을 비롯한 아폴로 신전이 두개나 있다. 디딤의 아폴로 신전은 규모 면에서는 그리스 델포이보다 크다. 그러나 온전히 서 있는 기둥이 3개에 불과해 세상에 덜 알려졌다. 디딤의 아폴로 신전에 발을 디뎠다. 인간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던 신들의 영역은 지금 몇 번의 지진으로 무너져 내려 신전 앞에 뒹굴며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준다. 몇 아름도 넘는 기둥에 눈을 감고 손을 대어보았다. 혹시 아폴로 신을 만날까 하고 말이다. BC6세기경에 지어진 이 신전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황제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오직 고위 사제만이 신전 안으로 들어가 하늘의 계시를 듣고 그 내용을 밖에 있는 왕이나 백성들에게 전하는 그런 곳이었다. # 황홀한 로마의 도시 에게해 해안 도시 이즈미르는 오디세이로 유명한 호메로스의 고향으로 터키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70㎞ 정도 떨어진 셀주크에는 터키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에페소가 기다린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유명하며 로마시대에는 25만 명이 살던 아시아 최대의 도시였다. 에페소로 들어서자 기다리는 것은 앙상한 뼈대만 남은 신전의 기둥, 나뒹구는 대리석, 허물어진 건물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기둥 하나, 돌멩이는 모두 로마의 역사다. 특히 에페소는 기독교인이면 꼭 한번 들러보는 성지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이 갖은 핍박을 받으며 전도를 했던 곳이며 옥중에서 에페소 교인들에게 보냈던 편지가 바로 신약성서의 ‘에베소서’이다. 또한 사도 요한이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에페소에 머물며 요한복음을 썼던 기독교 역사상 아주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에페소에는 없는 것이 없다. 여러 신전은 물론이고 대중들을 위한 목욕탕, 돈을 받고 운영했다는 화장실, 평민과 귀족들의 공간을 나누었던 헤라클래스가 새겨진 기둥문, 병원을 상징하는 조각, 대리석에 새겨진 ‘발’보다 작으면 미성년자로 취급해 들어 갈 수 없었던 창녀의 집, 도서관, 각종 하수도 시설 등 정말 고대 로마의 발달한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원형극장도 두개다. 귀족들이 회의를 했던 작은 것과 무려 2만 5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중을 위한 원형극장도 재미나다. 과학적인 설계로 앞에서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뒤쪽까지 잘 들린다. 에페소에서 가장 멋있는 건물은 단연 켈수스 도서관이다. 비록 거의 다 무너져 내려 앞쪽만 간신히 건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건물의 높이가 16m나 되고 1만 2000권의 책을 가지고 있던 거대한 도서관이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도대체 2000여년전 기계도 하나 없던 그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거대한 신전과 건물들을 오직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따사로운 봄햇살이 내리쬐는 켈수스 도서관 앞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에 잠시 발을 멈춘다. 한쪽에서 3인조 오케스트라가 관광객을 위해 음악을 선물한다. 정말 2000년 전 그들의 삶이 스치듯 지나간다. 이곳에서 나온 많은 유물은 인근 셀주크 박물관이나 에페소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 터키 여행정보 인천∼이스탄불 직항편은 터키항공(02-777-7055)이 월·목·토요일 1주일에 3차례 뜬다. 현재 전세기를 띄우고 있는 대한항공(1588-2001)도 조만간 주 3회 정식 취항할 예정.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약 12시간 걸린다.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늦다. 통화는 터키 리라인 에테르(YTL)를 쓴다. 1달러에 1.25 YTL 정도.1유로는 1.45YTL. 우리 돈으로 720원 정도. 달러와 유로 모두 통용된다. 미리 달러로 환전을 해서 출국하는 편이 좋다.
  • ‘네거티브’ 연일 설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선거전에서 ‘자질 검증’과 ‘네거티브’의 양보없는 신경전을 이어갈 기세다.지난 5일 열린우리당이 제기한 ‘오세훈 후보 검증 13제’로부터 촉발된 공방은 장외 라운드로 확대됐다.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측의 민병두 기획위원장과 한나라당 오 후보측의 정병국 홍보기획본부장은 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민 위원장은 “네거티브는 없는 사실을 있는 것인 양 부풀리는 것”이라면서 “지도자의 덕목을 가리는 후보의 철학과 관점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 후보의 보안사 근무 경력과 관련,“오 후보가 2003년 고건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 때는 고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때 고 전 총리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점을 공격하고도 본인은 당시 심경조차도 말하지 않고 있다.”며 오 후보의 답변을 촉구했다.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고 전 총리와 관련된 사안과 오 후보의 군 경력 비교는 ‘억지 춘향이’”라면서 “군대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 위원장은 “우리는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전을 많이 봐왔고, 과거 김대업씨의 폭로에 의해 정권을 탈취당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폭로정치, 네거티브정치, 공작정치는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 위원장은 “오 후보가 2004년 1월까지 민변에서 활동하다가 최근에는 뉴라이트 모임에 나가고 있다. 오 후보의 종교인 가톨릭에서는 생명윤리를 강조하는데 황우석 난자기증 발기인에 참여한 까닭은 무엇인가.”라고 몰아세웠다.정 위원장은 “우리도 강 후보의 말바꾸기 전력을 정리해 놓았지만 대국민 약속에만 집중한 것”이라면서 “여당은 근거없는 네거티브전을 중단하고 정책선거에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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