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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일 TV 하이라이트]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1년 365일 쉬지 않고 가동되는 신체의 엔진, 심장. 심장에는 ‘동방결절’이라 불리는 전기발전소가 있다. 우리의 심장은 이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의 자극으로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이 발전소에 문제가 생겨 심장이 너무 빠르게, 혹은 느리게 뛴다면 우리 몸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내와 여자(KBS2 오전 9시) 연하는 모두의 전송을 받으며 짐을 챙겨 회사를 떠난다. 한편 준하로부터 비로소 태환의 일을 듣게 된 원우와 선자 부부는 오히려 연하의 방황을 부채질한 자신들이 한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이런 가족의 근심은 아랑곳없이 이혼하겠다고 소란을 떠는 창하가 준하는 철없고 성가시기만 하다. ●태희 혜교 지현이(MBC 오후 7시45분) 희정은 남편이 카드 값으로 큰 돈을 긁어버리자 홧김에 명품 가방을 구입한다. 하지만 정작 가방을 들고 갈 데가 없는 처량한 아줌마 희정은 명품 가방에 순대나 넣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가방이 찢어지고 만다. 고교동창인 방송국 PD 성민과 마주친 희진은 빵집 알바생인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순결한 당신(SBS 오전 8시30분) 병원으로 옮겨진 단비를 정밀검사한 후 의사는 아기의 심장박동이 약하고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면서 상태가 계속되면 수술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한쪽에 서 있던 미진을 발견한 희숙은 “네가 저렇게 만들었냐.”며 멱살을 잡고, 희숙을 뿌리치던 미진은 순희를 보자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며 태도를 바꾼다. ●극한직업(EBS 오후 10시40분) 앞으로 3~4일 파도가 계속될 거라는 기상예보. 선원들의 안전을 위해 고명수 선장은 귀환을 결정한다. 조기 귀환 결정에 선원들도 풀이 죽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옥돔 조업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며칠 후 파도에 부서진 배를 수리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선원들, 또다시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하는데….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프랑스 파리 남서쪽의 작은 도시 프와티 시 당국이 한국인 설치미술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도록 적극 지원에 나섰다. 프랑스 지방도시가 외국인 작가를 내세워 개인전을 열도록 지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립 미술학교인 보자르와 시립 갤러리 등에서 동포 설치미술작가 하차연씨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 창도 150주년 맞아 인내천 사상 확산…천도교 위상 되찾는다

    창도 150주년 맞아 인내천 사상 확산…천도교 위상 되찾는다

    ‘한국 최대 민족종교의 위상을 되찾는다.’ 천도교가 창도(創道) 150년을 맞아 최대 민족종교의 위상을 되찾고 창도의 근본 정신인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확산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운동에 나선다. 천도교는 창도 150돌을 맞는 다음달 5일 ‘천일(天日)’을 전후해 발상지인 경주 일원과 구미산 용담성지에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갖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천도교 사상 전파 운동에 돌입한다고 24일 밝혔다. ‘천일’ 전날인 4일 오후 2시 천도교 2세 교조 최시형(1827~1898) 동상이 있는 경주 황성공원에서 교인 5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참배식을 갖고 경주 시내에서 ‘동학군(軍) 마임놀이’ ‘무극대도 퍼포먼스’ 행진을 벌이는가 하면 경주 노동고분공원에서 전야제와 불꽃놀이 행사를 이어간다. ‘천일’인 5일 오전 11시 1세 교조인 수운 최제우(1824~1864)가 득도한 구미산 용담 성지에서 기념식을 갖는데 이어 그림 그리기 대회, 풍물놀이, 민요 한마당, 동학군 무예무의 축하행사를 벌이고 천도교 정신을 알리는 강연회도 연다. ●새달 5일부터 용담성지 등서 기념행사 ‘천일’은 수운 최제우가 1860년 4월5일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은 날’을 기리는 천도교 최대의 경축일. ‘사람마다 한울님을 모셨으니 사람 대하기를 한울님 같이 하라.’(侍天主 事人如天)는 천도교 정신의 근간이 세워진 날인 만큼 천도교는 매년 이 날을 맞아 기념행사를 열어 왔다. 천도교가 창도 150돌인 올해 ‘천일’을 뜻깊게 받아들이는 것은 인내천 사상에 바탕한 천도교의 정신이 천도교 내부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퇴색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무엇보다 근세 한민족 최대의 민족종교에서 소수 종교로 쇠락한 천도교 위상을 되찾자는 숨가쁜 자성의 목소리가 모여졌기 때문이다. 천도교는 ‘양반과 상민이 따로 없다.’는 파격적인 평등의 정신과 ‘시천주 사인여천’에 바탕해 동학혁명의 뿌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3·1 독립운동의 주체로 활동했고 대종교와 원불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1920년대 교인 수 300만 명에 달할 만큼 교세가 성했지만 3세 교조인 손병희(1861~1922)가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을 주도하면서 일제의 혹독한 탄압을 받아 교세가 급속하게 쇠퇴했다. 해방후 분단된 남북 정권에서 모두 배척받아 결정적으로 교세가 기울었고 할아버지가 동학군으로 활동했던 박정희 정권의 지지에 힘입어 한 때 다시 번창하는 듯했지만 최덕신(1976년), 오익제(1997년) 교령의 잇따른 월북사건을 당해 지금 교인은 10만 여명(천도교 자체 집계)에 불과하다. ●“天心 되찾는 정신개벽운동 벌일 것” 김동환 교령은 “한민족이 경천숭조(敬天崇祖)의 미풍과 민족적 자긍심을 지켜온 배경에는 천도교의 역할이 큰데 지금 천도교의 정신과 역할이 잊혀져 가고 있어 안타깝다.”며 “물질문명의 팽창 속에 교란되는 생태계와 이상기후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천심(天心)으로 되찾는 정신개벽운동을 이번 천일을 계기로 적극 벌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젊은 연구자들 노력 부족하다”

    “젊은 연구자들 노력 부족하다”

    │도쿄 박홍기특파원│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시모무라 오사무(80) 미국 보스턴대 명예교수가 젊은 연구자들에 대해 “노력이 부족하다.”며 쓴소리를 했다. 24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시모무라 교수는 23일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젊은 연구자들은 재미있는 테마가 있어도 어려운 내용이면 연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의욕이 없다. 리스크를 가지려 하지 않는다. 확실히 말하면 노력이 부족하다.”며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태도를 꼬집었다. 시모무라 교수는 해파리에서 녹색형광 단백질(GFP)을 발견, 발전시킨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뒤 지난 22일 처음 일본을 방문했다. GFP의 발견과 관련, “우연과 겹쳤던 결과였지만 내 자신이 알고 싶은 것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22일 모교인 나가사키대의 강연에서는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노력하면 어떻게든 이뤄진다. 포기하지 말고 힘내자.”라며 대학생들을 격려했었다. 시모무라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수상식 이후 3개월반이나 지났지만 자유로운 시간이 없다.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 발광 버섯의 연구를 하고 싶지만 노벨상을 받은 뒤 너무 바빠져 절망적이다.”며 바쁜 일정에 불평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마스카와 도시히데(69) 교토산업대 교수의 “노벨상 수상이 별로 기쁘지 않다.”라는 소감을 소개하면서 “동감이다. 조금도 기쁘지 않다.”고도 말했다. 시모무라 교수는 현재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자택에서 발광 생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hkpark@seoul.co.kr
  • [열린세상] 종교계 큰어른들의 청빈/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열린세상] 종교계 큰어른들의 청빈/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명동 한복판에 운집한 수십만명의 추모 행렬이, 일생을 참된 목자로 산 그의 선종을 애도하던 광경이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그가 가르치고 실천한 사랑과 나눔의 큰 뜻은 종교와 이념을 불문하고 모든 이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성직자 김수환의 진면목은 청빈한 삶에서 두드러진다. 얼마 되지 않는 사재를 털어 줄곧 불우계층을 도왔던 그는 정작 식구들에게는 물질적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했다고 한다. 대주교이자 추기경의 반열에 오른 그가 남기고 간 것은 낡은 의복과 안경 그리고 푼돈이 들어 있는 통장이 전부였다. 그는 권력에서도 청빈했다. 엄격한 위계가 규범화한 사제 조직의 수장이자 수백만 가톨릭 신자의 영적 지도자이지만 그는 권위를 내세우며 민중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을 ‘바보’로 지칭하고 모든 것을 ‘내 탓이오(Mea Culpa).’라고 고백하면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자들에게 다가간 소탈한 이웃집 할아버지였다. 노사연의 ‘만남’을 즐겨 부르곤 했고, 몸소 철거민의 발을 씻어 주었으며, 명절 때는 성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위해 혼자 나가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처럼 권위주의에 대해 자성의 칼날을 세웠기에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그릇된 권력을 그는 주저 없이 질타할 수 있었다. 청빈이 도리어 베푸는 삶으로 승화할 수 있고 권위에 대한 초연함이 진정한 권위로 귀결된다는 메시지를 남긴 셈이다. ‘가야산 호랑이’ 성철 큰스님도 청빈의 전범이었다. 조계종 종정인 그는 누더기가 될 때까지 승복을 손수 기워 입었고, 이쑤시개를 한 번 쓰고 버리지 않았으며, 화장지도 몇 조각으로 나누어 사용하곤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 박정희 대통령이 해인사를 찾았을 때 그는 백련암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5공화국 시절에도 종교인과 정치인은 가는 길이 다르다며 청와대 방문 요청을 번번이 거절했다. 물질과 권력을 초개와 같이 여기며 구도자로서 외길을 걸은 그는 정녕 성직자의 사표였다. 개신교에는 한경직 목사가 있다. 한평생 봉사와 헌신에 매진한 그는 이산의 고통과 가난에 시달리는 월남민의 친구였고 고아와 병자와 장애인들의 아버지였다. 별다른 재산이 없었던 그는 1992년에 받은 템플턴상의 상금 100만달러를 북한 선교에 쾌척했다. 한국 개신교의 상징인 영락교회를 이끈 기라성 같은 목사였건만 그는 은퇴 후 남한산성에 마련된 조그만 외딴집에서 기거하다 여생을 마쳤다. 많은 것을 주고 갔다. 불교와 기독교는 모두 청빈을 본연의 정신으로 삼는다. 한낱 찰나에 불과한 이승의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다. 현세의 부귀영달은 그저 덧없다는 것이 기독교 신학의 요체다. 요컨대 극락정토와 천상낙원은 철저한 자기부정과 무소유를 통해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땅의 종교계는 과연 청빈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가. 웅장한 사찰과 화려한 교회를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지만, 빈곤에 허덕이는 중생과 피조물들을 보면 왠지 심사가 뒤틀린다. 사판승 요직을 둘러싼 스님들의 난투극에 당황했던 우리는 최근 한 개신교 교단에서 감독회장 직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공방에 또다시 좌절한다. 사찰을 개인의 생활방편으로 악용하는 승려와 교회의 공금을 횡령하고서도 한없이 당당한 목사 앞에서 무소유의 정신을 본받기가 만만치 않다. 성직자와 종교단체가 권력과 물질에 미련을 두는 것은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또 거듭되는 자기모순은 준엄한 응징을 초래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청빈을 온몸으로 실천한 종교계 큰어른들이 새삼 그립다. 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 이화여대「메이·퀸」이은혜(李恩惠)양 -5분 데이트(188)

    이화여대「메이·퀸」이은혜(李恩惠)양 -5분 데이트(188)

    화사함을 한껏 더한 배꽃동산의 잔디. 8천여 이화의 재학생, 선배들이 은사와 부모를 모시고 5월의 마지막 날, 86번째로 베푼 개교기념행사는 흰 한복으로 단장한「메이·퀸」이 옥좌에 올라 대관식을 가짐으로써「피크」를 이뤘다. 갸름한 얼굴에 결곡한 입매가 그저 귀엽기만한 미인이 아닌 5월의 여왕다운 기품을 함께 지닌 이은혜(李恩惠)양(22·성악과 4년)이다. 자신이 31번째 이화의 여왕이 된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 않은 채 지난 4월 이대「글리·클럽」의 한 사람으로 미국순회공연을 마치고 5월11일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야 비로소 본인도 없는새 성악과 친구들이 만장일치로 과(科)「퀸」으로 뽑아놓은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어 15일에는 각과「퀸」46명이 흰「블라우스」에 검정치마를 입고 대강당에서 최종심사를 받았는데 꼭 돼야겠다는 긴장감이 없던 은혜양이었으므로 표정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자연스러웠던 미소가 은혜양을「퀸」이 되게 하는데 많은 보탬이 됐다고. 작년까지「퀸」선발 때 지켜지던 160cm 이상이라는 키의 제한을 허문 최초의「퀸」이기도 한 은혜양(158cm)이다. 신화공업사 대표 이만섭(李萬燮)씨(56)의 2남2녀중 막내. 『어려서부터도 신앙심이 깊고 교만한 티라곤 전혀 없는 아이예요』 딸과 나란히 선 이신실(李信實)여사(52)는 딸이「메이·퀸」이 된 것을 안 순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면서 기뻤던 마음을 숨김없이 말해준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해 서울예고에 입학하면서부터 성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했고 대학에서는「소프라노」이순희(李順姬)교수에게 지도 받고 있는 장학생. 졸업 후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기회가 닿으면 외국에 다녀오고 싶다면서 무대보다는 교단에서 가르치고 싶다고. 대학 1학년 때도「글리·클럽」회원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했고 이번 미국공연은 은혜양의 외국여행으론 2번째.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이번에 단단히 하고 왔어요. 말로만 들을 땐 화려한 듯싶은 외국생활이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가정을 갖고 있거나 공부하는 선배들을 만나보면 듣던 것과는 달라요. 꽉 짜여 틈없는 생활에다「홈·시크」까지 겹치니…』 배우자도 묵묵하고 성실하게 자기 일에 종사하는 기독교인을 원한다는 어머니와 딸의 일치된 결혼관. 원<媛>[선데이서울 72년 6월 11일호 제5권 24호 통권 제 192호]
  • 해군 첫 훈련교관 부부 차경렬 상사·황지현 하사

    “사랑만큼은 ‘각’지지 않았어요.” 군에서 절도(節度)를 뜻하는 ‘각’으로 대표되는 훈련교관 부부가 해군에서 탄생했다. 주인공은 해군 교육사령부 기초군사교육단의 훈련 소대장인 차경렬(사진 오른쪽·33) 상사와 부사관 교육대 훈련 조교인 황지현(왼쪽·28) 하사. 두 사람은 오는 29일 진해 해군회관에서 결혼한다. 황 하사는 지난 2005년 해군에서 첫 여군 훈련조교가 배출된 후 세 번째 여군 조교이다. 두 사람은 3년 전 군의 수영 동아리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다. 당시 문무대왕함 전탐(電探)하사로 근무 중이었던 황 하사는 중학교 때부터 학교 수영대표로 활동했던 경력을 살려 동아리에 가입했다. 차 상사는 스쿠버 2단계 자격증 보유자로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황 하사는 20일 “2007년 8월 조교로 선발됐을 때 무뚝뚝한 그가 꽃다발을 내밀어 깜짝 놀랐다.”며 “로맨틱한 프러포즈는 아니었지만 결혼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차 상사는 “업무상 한 달에 두 세 번 만나기도 어렵지만 조교 업무상 겪는 여러가지 어려움과 느끼는 감정에 대해 이해하려 애썼다.”고 했다. 주례는 해군 기초군사교육단 단장인 배일헌 준장이 맡기로 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제주에 내국인 입학가능 외국인학교

    제주도교육청은 외국인 학교인 ‘벤틀리 스쿨 아시아(Bentley School of Asia)’의 설립계획을 승인했다고 17일 밝혔다. 도교육청에 따르면 내년 9월 개교를 목표로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일대에 들어설 벤틀리 스쿨 아시아는 22만 5578㎡ 부지에 860억원을 들여 학교건물과 함께 체육관, 기숙사 등 부대 시설을 지을 예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벤틀리 스쿨’의 학제(5-3-4학제)와 교육과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벤틀리 스쿨 아시아는 4학년부터 12학년까지 268학급, 2412명을 정원으로 하되 개교 연도에는 4학년부터 9학년까지 166학급 1494명을 모집할 계획이다. 벤틀리 스쿨 아시아는 중국, 일본 등 다국적 학생을 대상으로 학생을 모집하며 내국인 학생도 외국거주 요건 없이 재학생의 50% 범위에서 입학이 허용된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화약고 여행’ 제재 시급

    중동지역의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테러 비상이 걸렸다. 지난 16일 발생한 예멘 폭탄테러 사건이 한국인을 겨냥한 무차별 테러라는 일부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 지역이 위험사각지대로 재인식되고 있다. 2003년 11월 오무전기 직원들이 이라크에서 피격된 이후 중동지역 무장단체의 한국인 납치 및 피격 사건은 예멘 폭탄 테러 사건까지 포함하면 무려 9건에 이른다. 2007년에는 분당 샘물교회 소속 교인 20여명이 무장세력에 납치돼 7명이 살해당하는 참사가 있었다. 따라서 이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동지역의 위험성을 사전에 경고하고 예방책을 마련하는 등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7일 한국일반여행업협회에 등록된 여행사 667곳 중 상위 100곳의 중동지역 항공권 판매집계에 따르면 2003년 이후 중동지역을 찾는 여행객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는 모두 8만 2981명이 중동을 다녀온 것으로 파악됐다. 2003년 1만 8284명, 2004년 1만 9316명에 비하면 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여행사 관계자들은 “위험하다고 해도 갈 사람은 다 간다.”면서 “단체이탈 및 야간 개인행동 금지, 현지인과의 대화 자제 등 주의사항을 설명하지만 현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중동여행이 이처럼 위험에 놓여 있었는데도 그동안 정부의 대책 마련은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일이 터져야 수습에 나서는 사후약방문식의 대책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건국대 최창모 히브리중동학과 교수는 “정부는 매번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뒷북 정책만 발표하고 있다.”면서 “기업, NGO 등 여러 단체들과 연계해 어린이공부방 설치 등 중동 지역 현실에 맞는 장기적인 사업을 추진해 한국 이미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외대 장병옥 중동연구소장은 “여행사들이 상품을 판매할 때 중동 지역의 위험성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면서 “이들을 형사 처벌하거나 과태료를 물리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탈레반의 납치 때도 그런 지적이 있었지만 평상시에 중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족장, 학자 등과 교류를 잘해 두고 이슬람인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프로그램과 강연회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 지역의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이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외통부 관계자는 “대국민 홍보를 꾸준히 하고 있지만 여행사 등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없어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라면서 “여행사들이 중동 지역 관련 위험성을 고지하지 않을 경우 영업정지, 영업취소 등 행정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그럴리가… 아닐거야” 부정하다 끝내 실신

    “뭐…뭐라고요? 죽…죽었다고요? 누가 말입니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이라도 환하게 웃으며 나타날 것만 같은데….” 16일 새벽 예멘에서 날아든 비보에 한국인 사망자 유가족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충격에 휩싸인 채 오열했다. 통곡과 ‘아닐거야.’라며 부정을 거듭하다 끝내 실신하기도 했다. 아내 김인혜(64·서울 양천구 목동)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남편 윤구(64·문화일보 전 논설주간)씨는 이날 “인천공항에서 ‘잘 다녀오라.’고 전송한 게 마지막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밤새 잠 한숨 못 잤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생전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는 김씨집 거실에는 김씨가 직접 그린 추상화가 2점 걸려 있었다. 그는 평소 문화유적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등 중동의 여러 지역을 두루 다녔다. 예멘은 친구들의 권유로 함께 가게 됐다. 윤씨는 “예순이 넘으면 평상심을 지녀 감정 기복이 없다는데, 아내의 죽음 앞에 한없이 무너질 뿐이다. 충격이 가시질 않아 아직 형님 등 다른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연락조차 못했다.”면서 목 놓아 울었다. 언론 보도를 접하고 달려온 김씨의 여동생도 “너무 많이 놀라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서 눈물만 훔쳤다. 주용철(59·서울 강동구 암사동)·신혜윤(55)씨 부부 사망소식은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주씨의 동생 용수(56·인천 부평구)씨는 “지금이라도 당장 ‘용수야.’하고 친근하게 부르며 나타나실 것 같은데, 어떻게 형님의 죽음을 믿을 수 있겠느냐.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굵은 눈물 방울을 떨어뜨렸다. 주씨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1978년 6월 백년가약을 맺었다. 자녀가 없어 부부간 의지하는 게 더 컸고, 애정도 각별했다. 여유가 있던 부부는 평소에도 둘만의 여행을 자주 다녔다. 20년 넘게 주씨 부부를 알고 지낸 유미선씨는 “두 분은 금슬도 좋을뿐더러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활동도 열심이었는데, 이렇게 좋으신 분들이 가시다니….”라며 애석해했다. 잠결에 남편 박봉간(70·서울 강남구 삼성동)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아내 이선자씨는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라며 연방 허공으로 손을 휘저으며 남편의 죽음을 부인하다 그대로 실신하기도 했다. 숨진 박씨는 광주서중·광주일고·전남대 상대를 졸업하고 광주 MBC 상무이사와 방송영상진흥원장을 역임했다. 독실한 천주교인이다. 은퇴 후 부인과 함께 성지 순례를 자주 다녔는데, 이번에는 혼자 갔다. 박씨의 동창인 정구선씨는 “부부의 사랑이 정말 돈독했는데 혼자만 떠난 여행에서 친구가 죽었으니, 그 아내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느냐.”면서 안타까워했다. 김승훈 이재연 오달란기자 hunnam@seoul.co.kr
  • 故 김수환 추기경이 최인호 작가에게 던진 수수께끼 같은 화두

    故 김수환 추기경이 최인호 작가에게 던진 수수께끼 같은 화두

    가톨릭 작가 최인호가 김수환 추기경 선종 후 처음으로 월간 <샘터> 4월호(3월 10일 발행)에 게재된 연작소설 ‘가족’을 통해 추모의 글을 발표하였다.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듣고 며칠 내내 눈물을 흘렸다는 작가는 김 추기경과 나눈 마지막 대화를 시작으로 한 일간지에서 기획했던 대담 때의 추억과 얼마 전 자신이 꾼 김 추기경의 꿈을 소개하고 있으며, 언젠가 김 추기경과 함께 천상의 식탁에서 지상에서 미뤘던 식사를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글을 맺고 있다 ■ 천상의 점심식사 글 최인호(소설가) 그림 이우범 지난주는 참 많이도 울었다. 일주일 내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흘렸으니 어지간히 많이도 운 셈이다. 나를 그토록 슬픔에 젖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김수환 추기경이다. 살아생전에 추기경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적은 없다. 손꼽아보면 대여섯 번 뵌 것이 고작일 것이다. 한 번은 신문사 인터뷰로, 두어 번은 여럿이서 함께 나눈 식사모임에서, IMF 때는 금 모으기를 하던 서초동 성당에서, 마지막으로 어떤 신문사에서 주최한 미술 전람회장에서. 그때 나는 두 신문에 연재하고 있어 몹시 바빴으므로 관람이 끝나고서 추기경님을 모시고 점심을 하기로 한 자리에 빠지게 되어 “죄송합니다, 먼저 가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추기경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함께 식사를 하지그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굳이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무리하면 얼마든지 참석하고 늦게 돌아와 원고를 써도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겐 이상하게도 쌀쌀맞은 구석이 있어 추기경님이라도 내 시간을 빼앗을 수 없다는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냉정하게 사무실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왜 함께 식사를 하지그래’라는 말씀은 이 지상에서 추기경님과 나눈 마지막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평범한 인연인데도 일주일 내내 추기경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때 추기경님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섭섭해하시던 그 눈빛. 쓸쓸한 그 눈동자, 그 입술은 내 가슴에 선명히 남아 있다. 언제나 젖어 있던 추기경님의 그 입술, 코에서부터 입까지의 유난히 긴 인중 밑에 언제나 침을 흘리는 어린아이처럼 젖어 있던 그 입술. 그 입가에 항상 번져 있던 미소, 생전에 동료 신부에게 ‘정말 못 해먹겠다’라고 고백하였다던 추기경이라는 성직자의 짐, 그 무거운 십자가, 끊임없이 엿보고 떠보던 지상의 율법학자들과 교묘한 권력자들. 최고의 성직자가 아니라 이름 없는 수도자, 아니 한갓 평범한 평신도로 살아가고 싶어 하셨던 그 모순된 영적 갈등과 시대적 아픔, 수십 년의 불면증(평생 불면을 모르던 나는 최근에야 불면의 고통을 실감하고 있다)과 신경안정제, 그 고통 속에서 피어난 추기경의 천진한 미소들이 떠올라 나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2003년이었던가. 새해를 맞아 나는 동아일보에서 기획한 새해특집에 추기경님과 대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대담의 첫머리를 나는 이렇게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안에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은 마음 편한 일이다. 비록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디딤돌 위에 고무신이 놓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멀리서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하여도 집안은 평화롭다.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집의 어른, 우리 시대의 아버지다….” 그때 벌써 추기경님은 6년 뒤 자신의 임종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대담의 마무리를 자신의 간절한 소망으로 맺고 있었다. “…그보다도 내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남은 생 동안 하느님께 얼마나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그것이 걱정이에요. 이 죄 많은 죄인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받아주실까. 물론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용서해주시는 분이지만, 그래도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부끄럽지 않은 영혼으로 서고 싶은데 그것이 걱정이에요. 이 죄 많은 죄인을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셨으면 하는 것이 요즘 소망이에요. 나이와 함께 오는 여러 가지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도 잘 받아들일 만큼 하느님께 모든 것을 위탁하는 것, 그것이 요즘 간절한 기도 제목이지요.” 지난 7월, 두 번째로 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추기경님이 같은 병동에 입원해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찾아뵙고 싶었지만 그 깔끔하시던 분께서 대소변조차 혼자서 해결하지 못할 만큼 쇠약해지셨다는 소식을 듣자 문병을 포기하였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나라도 누군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추기경님이 같은 병동에서 같은 환자로 누워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불면의 밤이면 그분께서도 불면의 고통으로 뒤척이고 계시다는 생각에 얼마나 용기를 얻었던지. 그 지긋지긋한 치료 중에서 내게 찾아온 이 병이 추기경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던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은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도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부끄럽지 않은 영혼으로 서고 싶은데 추기경님보다도 천 번 만 번 더 깊은 죄인을 과연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실까?’ 그런 간절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지난 2월 16일 밤. 추기경님이 마침내 선종하셨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나는 얼마나 고맙던지 “아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면서 와락 눈물을 쏟아냈다. 거의 동시에 쏟아지는 각종 언론매체의 전화들. 아마도 내가 가톨릭 작가이므로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글을 써달라는 그들의 청탁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추기경님을 위해서 당신도 뭔가 써야 하잖아. 잘 생각해봐.” 아내가 말하자 나는 심각하게 고민을 했고 그리고 일체의 청탁을 거절하기로 하였다. 일찍이 프랑스의 모럴리스트였던 라 로슈푸코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귀중한 사람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라 로슈푸코의 날카로운 지적은 진리다. 나는 추기경님을 나 자신에 대한 연민과 나 자신을 미화하는 자애심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추기경님은 그날 대담에서 내게 한 가지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던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가장 긴 여행이 뭔지 아세요?”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추기경님은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지요. 나 역시 평생 이 짧아 보이는 여행을 떠났지만 아직 도착하기엔 멀었소이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반성과 회개를 통해 조금씩 우리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은 하느님께 나아가고 예수를 닮아가야 합니다.” 추기경님의 빈소를 찾은 그 많은 사람은 추기경님을 가슴으로 느낀 사람들이다. 살아 계셨을 때는 추기경님의 진면(眞面)을 모른다. 사람의 향기는 죽었을 때야 피어난다. 추기경님이 살아 계셨을 때는 이 시대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의 심안心眼을 열리게 한다. 살아 계실 때 추기경님을 만나려면 우리는 혜화동에 있는 주교관을 찾아가야 한다. 추기경님도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시간 약속을 하고 정해진 장소에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죽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보고 싶으면 우리는 언제든 마음속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고, 그분도 우리를 찾아오실 수 있다. 그것이 죽음의 신비다. 나는 추기경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이러한 신비 속에서 그분을 뵈었다. 그분이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돌아가신 다음다음 날, 정확히 2월 18일 새벽이었을 것이다. 꿈속에서 나는 무엇엔가 쫓겨 복도를 황급히 도망치고 있었다. 복도 끝에 흰 운동화 한 켤레가 있었다. 나는 그 신발을 신고 다시 도망쳤다. 내가 도착한 곳은 다락방. 다락방에는 수많은 성직자가 수도복을 입고 경건하게 앉아 있었고, 내가 들어가자 성직자들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도 무릎을 꿇고 성호를 긋고 두 손을 모았다. 뭔가 집중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따뜻한 손이 나타나 내가 수술받은 왼쪽 얼굴을 정확히 두 번 쓰다듬으셨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는데 나는 그 손길이 추기경님의 것임을 확신하였다. 생전에 병원으로 수많은 병자를 찾아가 손수 문병하셨던 추기경님이었으므로. 추기경님은 마침내 누군가의 도움 없이 휠체어도 타지 않으시고 이처럼 자유롭게 나를 찾아와 아픈 부위를 어루만져주신 것임을 나는 믿. 는. 다. 대담기사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아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죄 많은 김수환 추기경을 용서하소서. 우리는 인간 김수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요즘 나는 내 서재 앞 벽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초상을 내걸고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언젠가 천상의 식탁에서 그분과 함께 지상에서 미뤘던 점심식사를 하게 될 것을 나는 믿. 는. 다. ‘가족’은 최인호 작가가 1975년 9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잡지 역사상 가장 긴 소설로, 394회까지 매달 한 번씩 한결같이 월간샘터에 연재를 하다가 지난해 6월 암 수술을 받고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잠시 집필을 중단했었다. 월간샘터 2009년 3월호 제395회 ‘새봄의 휘파람’ 편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이번 월간샘터 4월호 ‘천상의 점심 식사’를 통해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을 소재로 삶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족’은 앞으로 월간샘터 2009년 8월호 게재를 기준으로 총 400회에 이르게 된다 [출처] 故 김수환 추기경이 최인호 작가에게 던진 수수께끼 같은 화두|작성자 샘터지기2009년 3월
  • 충북교육감 ‘빗나간 모교 사랑’

    이기용 충청북도 교육감이 온갖 편법을 동원해 모교인 청주고등학교에 교육예산 62억 7100만원을 부당하게 지원해 온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은 13일 ‘교육과학기술부 특별교부금 운용실태’ 추가 감사결과를 공개하고 이 교육감에게 주의조치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 교육감은 2007년 5월 청주고에 기숙사가 있는데도 ‘청주고 기숙사 신축사업’을 특별교부금 지원 우선순위 1번으로 신청하도록 충북교육청에 지시해 약 13억원을 받도록 했다. 당시 충북교육청 관내에는 기숙사가 없는 고등학교가 46개나 됐다. 이 교육감은 또 충북교육감 선거에 입후보해 교육감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는데도 2007년 11월 ‘학교단위 총괄 교육환경 개선 시범사업’ 대상으로 ‘청주고 본관교사 리모델링 사업’에 19억원을 교부받도록 했다. 이어 지난해 3월에는 청주고 교장의 부탁을 받고 본관교사 리모델링 사업을 위해 충청북도 교육비특별회계에서 11억원을 추가로 지원했다. 또 지난 2007년 3월에는 재난위험시설심의위의 심의도 거치지 않고 청주고 강당 개축비 20억원을 충청북도 교육비특별회계 예산에 반영토록 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결과 드러났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전국플러스] 안산 ‘장기기증 추진委’ 구성

    경기 안산시는 장기기증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장기기증운동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고 13일 밝혔다. 추진위는 부시장을 위원장으로 종교인, 병원장, 변호사 등 14명으로 구성됐으며 장기기증운동을 널리 보급하기 위한 다채로운 사업을 벌이게 된다. 앞서 시는 지난 1월 ‘장기기증등록 장려에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장기기증 서약자에게 보건소 무료 진료서비스, 안산시티투어 무료 제공, 사망시 위로금 100만원 지급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37)한국 시·소설 25권 번역 佛 테제공동체 소속 안선재 수사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37)한국 시·소설 25권 번역 佛 테제공동체 소속 안선재 수사

    한국문학은 작품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그 독특한 어휘와 토속적 뉘앙스를 외국어로 옮기는 번역의 어려움 탓에 세계무대에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서야 뒤늦게 번역의 중요성에 눈뜬 문학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여전히 한국문학의 번역은 지난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우리 한국문학을 번역해 세계에 알리는 어려운 작업을 벌이고 있는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의 수사(修士)가 있다. 오래도록 서강대 교수로 살다가 정년퇴직하고 서강대 옆 오피스텔에 연구소를 꾸려 여전히 한국문학 번역에 매달려 있는 테제공동체의 안선재(67·본명 브러더 앤서니·영국) 수사. 얼마 전 선종(善終)한 김수환 추기경의 ‘한국에 와달라.’는 주문에 선뜻 응해 한국 땅을 밟아 귀화까지 한 생활 속 수도자다. 신촌역과 서강대 캠퍼스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 오뚝하니 선 허름한 오피스텔 12층. 꽃샘추위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을씨년스러운 날, 작은 방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오피스텔을 찾았다. 궂은 날씨와 어둑한 조명 때문인지 조금은 어둡다 싶은 오피스텔 초인종을 누르니 기다리고 있던 노 수사가 큰 손을 내밀어 손을 반긴다. 왠지 꾸밈이 없을 것만 같은 편안한 얼굴. 푸근한 인상에 편한 마음으로 손을 잡았지만 잘 정리된 집안의 분위기가 순간 객을 긴장하게 만든다. 사방의 벽에 빼곡히 꽂힌 한국 책들, 책상 위에서 몸을 사르는 은은한 향 내음, 그 향 내음에 잘 어울리는 다기들, 그리고 공간 곳곳을 장식하는 그림과 붓글씨들. 번역 작업에 매달리는 서재라기보다는 오히려 수도자의 은밀한 신앙공간 성격이 강한 독특한 방이다. ● 천상병 ‘귀천’·고은 ‘화엄경’등 번역 “번역을 하다가 가끔씩 머리를 식히려 향을 사르곤 하는데 마음에 드시는지요.” 지리산 자락에서 어렵게 구한 차라며 우려내 따라 주는 차 맛이 일품이다. 생각대로 화제는 자연스럽게 번역에서부터 풀어졌다. “한국문학에 관심이 많아 번역을 하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아요. 텍스트를 정해 1차번역 정도만 하고 세밀한 번역은 전문가에게 맡기지요.” 지금까지 안선재 수사의 손을 거쳐 번역되어 책으로 마무리된 한국 시, 소설만 해도 25권. 천상병의 ‘귀천(Back to Heaven)’, 고은의 ‘화엄경(Little Pilgrim)’,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Faint Shadows of Love)’, 서정주의 ‘밤이 깊으면(The Early Lyrics)’ …. 수사가 손에 잡히는 대로 빼어서 객에게 보여주는 책들이 모두 굵직굵직한 한국 문인들의 시, 소설. 그 공으로 해서 받은 상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문학상 번역상(1991년), 대산문학상 번역상(1995년), 옥관문화훈장(2008년)…. 어떻게 이 많은 작품들을 골라 번역해 냈을까. “1988년 서강대에서 영문과 강의를 하던 중 문득 한국문학을 번역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학생들에게 영문학 강의를 하는 것보다 직접 한국문학에 파고들고 싶은 욕심이었지요.” 서강대 교수에게 뜻을 전해 가장 먼저 1990년 구상 시인의 시를 파고들었고 지금까지 모두 25권의 책을 번역해 세상에 내놓게 됐다. 수사의 이름 ‘안선재’도 고은 시인의 ‘화엄경’을 번역하면서 얻은 이름. 인도를 돌아다니며 53명의 스승을 만난 선재 동자의 역정에서 자신의 한 면을 보았고 또 닮고 싶어 본명 앤서니와 비슷하게 붙인 이름이다. 벽면에 걸린 그림이며 글씨들로 눈길을 옮기자니 사연들을 들려준다. “편액 ‘난석산방’(夕山房)은 고은 시인이 연구소에 달라며 써준 것이고 ‘다선일미’(茶禪一味)는 김지하 시인의 선물입니다. 그 옆의 불상 사진은 구상 선생이 일본에서 구해 선물하신 것이지요.” 53명의 다양한 선지식을 만나고 다닌 화엄경 속 선재 동자만큼이나 안 수사의 삶은 다양한 가지를 쳐왔다. 옥스퍼드의 수재 문학도가 수사의 길을 택해 한국 땅을 밟고 대학교수에서 한국문학 번역가로 살아가는 파격의 연속. 그의 삶은 수사 자신의 말마따나 ‘예측불허’이다. 어려서부터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 교회를 다녔지만 중·고등학교는 감리교 계열의 학교에 진학했다고 하니 그의 신앙과 생각은 처음부터 자유로웠던 것 같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 근대 영문학을 전공해 학사와 석사 학위를 딴 뒤 공부를 계속할 요량으로 프랑스에 갔다가 인연을 맺은 테제공동체가 한국에 온 계기다. 1940년 프랑스의 테제에서 시작된 테제공동체는 개신교와 가톨릭 등 종파를 가리지 않는 독특한 공동체. 화해와 일치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갈등 극복과 평화 찾기 운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가는 수사들의 모임이다.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혼란기, 자유로운 생각의 소유자였던 그가 테제공동체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내가 갈 길은 이것이다.” 그토록 매달려 살던 모든 학문과 종전의 삶을 송두리째 버리고 평생 구도자의 길을 선택, 파리 공동체에서 5년간을 살았고 1977년 필리핀 남부 다바오의 판자촌 주민들과 어울려 살던 무렵 우연히 판자촌을 찾아온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한국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는 1972년 이미 들은 적이 있어요. 당시 사제의 신분으로 파리 테제공동체에 들렀던 김 추기경은 한국의 암울한 군사독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테제공동체 수사들이 기도하는 모습에 몹시 감명 받았던 것 같아요.” 7년 뒤 머나먼 필리핀에서 사목하다가 우연히 김 추기경을 다시 만났고 한국에 관심 많던 수사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달라.”는 추기경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 故 김수환 추기경 요청으로 한국 와 귀화 격동기인 1980년 한국에 들어와서도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주일 미사 때 김수환 추기경은 영문 자료 번역 등을 자주 수사에게 맡겼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화곡동의 테제공동체 한국 지부를 찾았던 일화도 들려준다. “테제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던 김 추기경이 찾아왔는데 대접할 게 없었어요. 라면을 끓여 드렸는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았다며 웃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서강대 교수로 살기 시작한 것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대학 문이 굳게 닫혔던 1980년. 외국인만 학교를 출입할 수 있었던 시절 우연히 방문한 서강대측이 프랑스어 회화를 가르칠 교수가 없다고 해서 학교 문이 다시 열린 뒤부터 2년반 동안 프랑스어 기초를 강의했다고 한다. 이후 영어회화와 영문학 전임강사로 줄곧 강단에 섰고 학과장도 두 번이나 지낸 뒤 지난 2007년 2월 정년퇴임하고 이곳에 연구소를 차린 것이다. 화곡동 테제공동체 한국지부에서 프랑스, 스위스 출신 수사 3명과 함께 살며 아침 일찍 이곳 연구소로 출근해 하루 종일 번역에 매달려 살다가 화곡동 숙소로 돌아간다. 주일 미사에 참석해 강론을 하기도 하고 화곡동 공동체를 찾아오는 한국인 신자들과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미사도 함께 드린다. 생의 극적인 전환을 계속해온 안선재 수사. 한국에 귀화한 노 수사의 앞날이 궁금해진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숱하게 옮겨 살았지만 한국은 정착한 땅이지요. 하지만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은 아직도 끝이 안 잡힙니다.” ‘인생은 40세가 돼야 비로소 시작하는 것’(Life begins at 40)이라는 영국 속담을 들려주는 노 수사는 “한국에서 인생이 시작됐고 그 삶은 곧 신앙이고 거스를 수 없다.”며 언제까지나 ‘어린 나그네’(고은 시인의 화엄경 번역서 이름)로 살아가겠다고 한다. ■ 안선재 수사는 ▲1942년 영국 잉글랜드 출생 ▲1964년 옥스퍼드대 학사 ▲1967년 옥스퍼드대 석사 ▲1969년 박사학위 논문 준비중 파리 테제공동체 방문, 수도자의 삶 결정 ▲1969~1974년 파리 테제공동체에서 생활 ▲1977년 필리핀 판자촌에서 사목중 김수환 추기경 만남 ▲1980년 수사로 한국 생활 시작 ▲1980~2007년 서강대 교수, 학과장 ▲1990년 한국문학 번역 시작 ▲2007년~ 서강대 정년퇴임 후 오피스텔에서 한국문학 번역 글 사진 kimus@seoul.co.kr
  • 갈 곳 없는 前 충북교육감 흉상

    갈 곳 없는 前 충북교육감 흉상

    김천호 전 충북도교육감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된 흉상이 10개월이 다 되도록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0일 충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제작된 김 전 교육감 흉상이 아직도 제막장소가 정해지지 않아 방치되고 있다. 흉상은 2005년 6월 김 전 교육감이 임기 중 관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 구성된 추모사업회가 제작한 것이다. 추모사업회가 처음에 흉상을 세울 곳으로 생각했던 곳은 김 전 교육감이 마지막까지 생활했던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교육감 관사 앞마당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돼 김 전 교육감이 건립을 추진한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 충북학생교육문화원 정문 앞으로 장소가 변경됐다. 하지만 도교육청 내부에서 ‘흉상은 실내에 있어야 한다.’, ‘김 전 교육감 흉상을 세우면 나중에 다른 교육감 흉상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며 일종의 견제 내지 반대여론이 나왔다. 이런 와중에 이기용 현 교육감이 지난해 9월 “김 전 교육감의 모교인 보은 삼산초등학교에 흉상을 세우는 방안도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흉상이 안치될 곳이 여태 오리무중이다. 김 전 교육감 제자인 황은주 추모사업회 사무국장은 “조만간 이사회를 소집해 장소를 결정할 계획”이라며 “김 전 교육감이 돌아가신 지 4주기가 되는 6월까지는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인간 문선명을 만나다

    “하나님은 왜 나를 불렀을까요? 나는 고집불통에다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소년일 뿐이었습니다. 내게서 취하실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나는 지독하게 하나님의 사랑에만 목을 매고 사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지난 1월 구순(九旬)을 맞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김영사)를 펴냈다. 3년간의 기획을 거쳐 2년여의 집필과 탈고, 수정 끝에 나온 자서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베트남 전쟁, 중동전 등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를 관통하며 종교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살아온 문 총재의 역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문 총재는 자서전을 통해 “16세 되던 해 부활절(4월17일) 아침, 기도 중 홀연히 인류 구원에 대한 천명을 자각하고 일평생 공의의 노정을 걷기로 다짐했다.”고 밝히고 있다. 평양과 부산에서 뜻을 펴다 서울 청파동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회)를 창립해 본격적으로 선교에 나선 게 1954년. 1957년 일본에서 해외선교를 시작해 1972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세계 선교를 본격화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문 총재는 책에서 일제 식민통치 시대와 북한 공산정권,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치렀던 여섯 번의 투옥, 평화 전도사로 활동하다 목숨을 잃을 뻔한 뒷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 나간다. 광복 이후 성경책 하나만 달랑 들고 평양에서 교회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렇게 회고한다. “평양에 가서 교회를 시작했을 때 나를 그렇게 반대하고 돌을 던지던 기성교회가 부산에서도 역시 나를 반대했습니다. 이단, 사이비는 내 이름 앞에 붙는 고유명사였습니다. 이단 사이비니 하는 접두사 없이 그냥 이름만으로 불려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책에는 특히 대학가에서 이단으로 몰려 문 총재를 따르는 학생과 교수들이 퇴학·퇴직당하던 이야기며 초기 미국 선교 시절 ‘한국이라는 보잘것없는 나라에서 온 종교 지도자가 감히 미국을 상대로 회개하라는 소리를 하느냐.’며 멸시하던 일에 대한 고백이 솔직하게 담겨 눈길을 끈다. 384쪽 1만 45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질병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나

    질병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나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 사망, 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 결핍의 경우에 보장 받을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문 제25조에는 이렇게 명시돼 있다. 또한 제27조에는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그런데 인류는 자신의 ‘동료’에게 과연 과학의 혜택이 공유되도록 하고 있는가. ‘권력의 병리학’(폴 파머 지음, 김주연·리병도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은 세계인권선언문에 나오는 권리를 누리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 결과 요람에서 무덤까지 불평등이 지속되고, 선진국의 정책결정자는 자신의 ‘동료’인 인류가 고통받도록 방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유아사망률은 물론 암발병률, 흡연율, 우울증, 자살률, 사실상 무작위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통사고 사망률까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 것인가? 파머는 이 질문에 “질병과 가난, 인권의 침해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그 분포와 영향력 역시 무작위로 나타나지 않는다. 즉 권력에 의한 병리증상으로, 누가 고통받고 누가 보호받을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답했다. 의사이자 인류학자인 저자는 아이티, 페루, 러시아, 르완다, 멕시코 등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치료 기준을 높이기 위해 애써 왔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불평등한 사회가 질병의 확산에 악영향을 주고 있음을 체감한 것이다. 즉 에이즈나 폐렴은 이미 현대 의료기술로 치료할 수 있고, 심지어 예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지만 시장의 효율성,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돈 없는 사람들에게 고통과 죽음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이 구조적인 폭력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미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 교통사고로 분쇄골절을 당한 청년 마노는 부러진 뼈를 제대로 고정하는 등의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다리를 잃을 수 있다. 파머는 이것은 범죄라고 주장한다. 파머는 이런 식으로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구조적 폭력의 ‘사례’를 보여 준다. 파머는 사회·경제적 권리인 의료, 주택, 깨끗한 물, 교육 등과 같은 권리를 인권운동 진영에서조차 의붓자식처럼 홀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의 의료문제에 관심을 갖자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권력의 공범이라는 것이다. 파머가 후기에서 밝힌 산디니스타 출신의 시인 레오넬 루가마의 시는 한 지구 안에서 사는 서로 다른 인류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루가마는 ‘지구는 달의 위성이다’라는 시에서 ‘아폴로 8호에는 엄청난 돈이 들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개신교 신자인 우주인들은 달에서 성경을 읽었다. 그리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은 놀라고 기뻐했다. …아카왈린카 사람의 자녀는 배고픔으로 인해 태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태어나기에는 너무나 굶주리고, 태어나더라도 굶주림 속에 죽어간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이 있나니 그들은 달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일은 진짜 아프리카나 중남미, 아시아 등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이 책에 추천사를 쓴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미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는 제1세계의 빈곤층은 사실상 제3세계에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가장 큰 도시인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에 사는 흑인의 평균수명은 훨씬 가난한 중국이나 인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보다도 짧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지난 연말부터 국내에도 신빈곤층이 형성되고 있다. 경제위기는 곧 88만원 세대, 비정규 노동자, 생계형 자영업자들에게 심각한 타격이다. 건강보험 자격이 상실되면 그들의 부양가족까지 의료의 사각지대에 떨어진다. 최근 2~3년 사이에 정부와 재계가 영리병원 도입과 민간의료보험의 확대 등 국내에서도 의료의 상업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권력의 병리학’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970년대 이후로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의 확대로 ‘약 한번 못 써보고, 병원 한번 못가보고’ 식의 탄식은 사라졌지만, 의료의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육·의료·공공정책 등 가장 기초적인 사회안전망 확충이 경제개혁에 선행해야 한다.”는 아미티아 센 교수의 주장이 가슴에 와 닿는다. 1만 8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경기민요 전수조교 유창 명창 서울시문화재 ‘송서’ 보유자로

    경기민요 전수조교 유창 명창 서울시문화재 ‘송서’ 보유자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12잡가) 전수조교인 유창 명창이 6일 오후 2시 서울시로부터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誦書)’ 예능보유자 지정서를 받는다. ‘송서’는 멋을 넣어서 글을 읽는 것으로 전문적 음악교육을 받는 사람이 예술활동의 하나로 소리를 하는 중요한 서울의 대표적 전통문화유산이다. 1930년대 서울 지역 가객인 고 이문원 선생이 묵계월 선생에게 전수했고 현재 유 명창이 유일하게 맥을 이어오고 있다. 유 명창은 송서 삼설기 음반 및 CD를 출반하는가 하면 관련 연구서를 발간하는 등 사라져 가는 송서 살리기에 앞장서 이번에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게 됐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자치구2009 핵심사업] 노재동 은평구청장

    [자치구2009 핵심사업] 노재동 은평구청장

    “늙을 때까지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배운다.” 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의 교육관이다. 노 구청장은 올해 화두를 교육환경 개선에 맞췄다. 회의 때마다 ‘교육은 모든 일의 근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구청장이 이렇게 나서니 간부뿐 아니라 직원들도 교육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자립형사립고·정보 도서관·원어민 영어교실 등 지역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서울 최초 자립형사립고 내년 개교 은평구는 지난해 12월 서울 최초로 설립되는 자립형사립고인 하나고등학교의 인가를 받았다. 2002년부터 심혈을 기울여 온 자사고 유치가 매듭 지어진 순간이었다. 서울지역 우수 인재를 은평에 영입하겠다는 노 구청장의 뚝심이 빛을 발했다. 은평구는 지난 2일 은평뉴타운에서 하나고 기공식을 가졌다. 기숙사형 고교인 하나고는 학생수 600여명(학년당 8학급, 학급당 25명)으로 내년 3월에 개교한다. 국제 경제와 금융 분야 과목을 특성화하고, 서울국제고처럼 한국어·영어로 수업을 병행한다. 국내·외 우수 교사를 확보해 교사 1인당 학생 비율을 10명 이하로 유지하고, 교습능력을 평가해 교사의 능력 향상을 유도하기로 했다. 자사고는 지역 학생들의 평균 학력을 끌어올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자치단체마다 유치경쟁이 치열하다. 노 구청장은 “자사고 유치를 계기로 지역간 교육 격차 해소와 수준 높은 교육환경 조성에 구정을 집중할 것”이라면서 “학생들이 사교육 부담에서 벗어나 자기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최적의 교육 여건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과밀학급 해소를 위해 뉴타운 및 재개발·재건축 지역에 16곳의 학교 부지를 확보했다. 은평뉴타운 내 진관고등학교와 구산동의 구현초등학교, 은평고등학교는 공사를 마치고 개교한 상태다. ●주민 교육을 최우선 순위로 지난해 10월 개관한 증산 정보도서관과 동네마다 문을 연 작은 도서관들을 통해 주민들이 지식 정보를 가까운 데서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독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응암동에 정보도서관을 짓고, 역촌동에 ‘평생학습도시’ 업무를 담당할 도서관도 만든다. 노 구청장은 “‘주민에게는 평생학습 기회를, 청소년에게는 원어민 영어교실을’이라는 취지로 학습센터와 원어민 영어교실을 지을 곳을 찾고 있다.”면서 “역촌동에 자치회관을 조성하고 그 안에 영어교실과 정보도서관을 마련해 올 하반기에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채로운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도서관, 주민자치센터, 체육센터, 복지시설 등에서 한글교실과 교양강좌 등을 연다. 또 이번달부터 매월 둘째·넷째 수요일에 주민자치대학도 운영할 계획이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서울플러스]공자추모 석전제 개최

    강서구(구청장 김재현) 3일 오전 11시 서울 유일의 향교인 양천향교에서 ‘공자추모 2560주년 춘계 석전제’를 연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석전제는 공자를 위시한 27현을 추모하고 덕을 기리는 행사다. 문화체육과 2600-6078.
  • [자치구2009 핵심사업]양대웅 구로구청장

    [자치구2009 핵심사업]양대웅 구로구청장

    ‘서울 구로구가 새로운 변화로 꿈틀거리고 있다.’ 공장이 즐비했던 구로지역이 첨단 디지털 도시로 변신했고 신도림역 주변 개발로 대대적인 문화 인프라 구축에도 성공했다. 이어 올해는 21세기 첨단 주거도시로 비상(飛上)을 꿈꾸고 있다. 2일 구로구에 따르면 천왕동 서울구치소 이전을 시작으로 고척동 반돔형 야구장을 포함한 스포츠·문화 콤플렉스 착공 등 굵직한 사업이 속도를 낸다. 또 독창적인 ‘광역개발’로 가리봉동, 개봉동이 새 주거도시로 태어난다. 양대웅 구청장은 “구로구가 서울 최고의 주거·문화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민선 4기의 마지막 과제인 ‘주거환경 개선’에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구로·오류동 등 단계별 재개발 양 구청장이 민선 3기부터 추진한 ‘4대 권역별 균형개발’이 광역개발 방식으로 탄력을 받는다. 광역개발은 기존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의해 진행되는 각 구역별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이 도시의 난개발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도로와 공원, 학교 등 기반시설 조성 사업과 함께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구로구는 1단계 사업으로 구로2동과 구로본동, 가리봉2동 일대의 72만 5000㎡를 제1지역, 개봉본동과 고척1·2동 일대 65만 6000㎡를 제2지역, 오류1동과 개봉1동, 궁동 일대 55만 8800㎡를 제3지역으로 정해 개발하기로 했다. 양 구청장은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문제를 등한시한다면, 이는 구청장으로서의 직무유기”라고 강조했다. 이미 구로와 신도림 역세권 개발은 마무리 단계로 들어섰다. 가리봉 도시정비 사업은 ‘카이브시티’란 도시 브랜드와 홍보관을 열었다. 사업시행 인가와 용적률을 상향하는 정비계획 변경이 끝나는 2010년에 첫 삽을 뜨게 된다. 이밖에 개봉역 일대의 생활중심권 육성, 오류동과 천왕동 일대 전원형 신도시화 사업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 모든 초중교에 원어민 강사 양 구청장이 7년간 이뤄낸 문화, 교육, 도심정비 등 놀라운 변화는 꿈이 현실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올해 공연예술전문고교인 서울공연예술고와 친환경인증시범학교인 신도림고가 첫 신입생을 받았고 지난해 특목고인 세종과학고와 개방형자율고인 구현고의 문을 열었다. 이는 열악했던 구로구의 교육 인프라가 탄탄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부문의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지역 모든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까지 원어민 교사를 지원했다. 또 영어체험센터(고산초), 국제관(구로중)은 외국어체험실, 글로벌 문화체험관 등으로 재미나게 영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밖에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유치와 구로 아트밸리 개관 등 지역에 크고 작은 공연장이 들어서면서 문화 수준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 구청장은 “꿈은 가슴에 품은 사람의 것”이라면서 “내년이면 주거환경, 문화, 교육 등 삼박자를 고루 갖춘 서울 최고 도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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