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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주의연맹총회 서울서 개최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을 대변하는 국제기구인 세계복음주의연맹(WEA·World Evangelical Alliance) 2014년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WEA는 세계 128개국 복음주의 연맹과 104개 회원단체 회원 약 4억 2000만명이 가입된 기구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지난해 6월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 큰 혼란 없었지만 갈등 불씨 여전

    큰 혼란 없었지만 갈등 불씨 여전

    13일 오전 9시. 전국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일제히 시험지가 배포됐고, 정해진 시간에 시험이 치러졌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가 치러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전국 1만 1000여 학교에서 193만여명이 평가에 응시했다. 같은 시각. 대안학교인 서울 성산동 성미산학교 초등 6학년생 10여명은 다른 학교에서 온 9명과 함께 체험학습에 나섰다. 체험학습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자기소개, 공동체 놀이, 마을투어 순으로 진행됐다. 도시공동체로 유명한 성미산마을의 명소 5곳을 직접 둘러보는 ‘마을투어’에 나선 학생들은 “시험보다 훨씬 재밌다.”고 입을 모았다. 강모양이 “초등생에게 시험도 모자라 등수까지 매기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하자 박모양도 “중학교 가면 공부만 할 텐데 초등학생은 가만 뒀으면 좋겠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체험학습을 이끈 진모 교사는 “하루 체험학습으로 많은 걸 깨달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선택의 자유’가 무엇인지는 알게 해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일제고사를 대체하기 위해 마련된 체험학습은 성미산학교를 비롯해 상계동 틔움학교·남양주 산돌 등 서울권 3곳에서 진행됐다. 교과부는 이날 체험학습을 이유로 시험을 보지 않은 학생이 87명이라고 집계했다. 충남이 25명으로 가장 많고, 전남 12명, 서울과 경기 각각 9명, 부산 8명, 울산 6명, 경북 5명, 충북 4명, 대구·강원·경남 3명씩이다. 지난해 첫날 체험학습 참가자수 69명보다 많지만 2008년 체험학습 참가자 97명보다는 줄어든 수치다. 교과부에 반기를 들었던 시·도에서는 등교했다가 시험을 보지 않고 대체수업을 받은 학생이 많았다. 서울에 18명, 강원에 137명, 충북에 1명, 전북에 172명이었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하거나 대체학습을 한 학생은 전체 응시생의 0.02%인 430여명에 불과했다. 일제고사 거부 이슈가 크게 표출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잠복한 이슈임을 보여줬다. 일부 학교에서는 혼란도 없지 않았다. 전북 전주의 한 중학교에서는 도교육청 지시에 따라 미응시생을 위한 대체학습을 마련, 전날까지 학생 4명이 참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응시생을 ‘무단 결과’로 처리하라.”는 교과부 공문이 도교육청을 거쳐 일선 학교에 전달되자 학생 전원이 시험장으로 향하기도 했다. 밤새 방침이 바뀐 것이다. 교과부와 교육청이 시각차를 보여 오전까지도 일선 학교에서는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교과부는 미응시자를 대학입시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무단 결석’이나 ‘무단 결과’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시·전북도·강원도교육청 등은 내신 불이익이 없는 ‘기타 결석’이나 ‘기타 결과’로 처리하겠다며 교과부와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우려됐던 집단적 시험거부 사태는 없었으나 미응시생의 출결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교과부와 일부 교육청 간에 여전히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미응시생에게 어떤 불이익을 줄지를 두고 교과부와 교육청이 맞서는 갈등국면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험을 치른 학생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서울 송파 잠신고 2학년 최모군은 “일제고사가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학교와 학생을 서열화하려는 시험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같은 학교 황모군은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는 기회도 되고, 다른 학교와 비교할 수도 있어 긍정적인 면이 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홍희경기자·전국종합 saloo@seoul.co.kr
  • 軍 순환보직 대령급까지 확대

    육·해·공군의 작전을 총 지휘하는 합동참모본부의 합동성 강화를 위해 순환보직 대상이 장군에서 대령까지 확대된다. 국방부는 8일 합동참모본부의 육·해·공군 순환보직 대상을 장관급 장교인 장군에서 대령급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합참 본부장·부장·처장 등 장성급 공통 직위만 같은 군 소속 장군들이 3회 이상 연속으로 보직을 맡을 수 없었다. 즉 합참 본부장의 보직 연한이 1년이라고 가정할 때 육군 출신 장성 3명이 연속 3번, 3년간 보직을 받았다면 그 이듬해에는 해군이나 공군 장성이 그 보직을 맡아야 했다. 그런데 앞으로 이런 순환보직제가 대령급 장교가 맡는 합참 과장직까지 확대된다는 것이다. 군별 고유업무 등을 고려한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합참 과장급 이상 보직은 모두 특정 군이 독식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순환보직제 확대로 3군 균형발전 및 합동성 강화의 궁극적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전투효율성 발휘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실질적인 순환보직이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지자체 “아토피 치료 사업 선점하라”

    지자체 “아토피 치료 사업 선점하라”

    자방자치단체들이 아토피 관련 사업을 앞다퉈 추진하고 있다. 아토피 사업은 지역의 자연환경을 활용하는 친환경시책이고 장기 치료환자들을 유치할 경우 인구유입 등 지역경제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아토피 사업은 3년 전 전북 진안군이 처음 시작한 이후 전남 장흥·보성군, 충남 금산군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남 장성 등 다른 자치단체들도 적극 검토 중이다. 환경부, 산림청 등으로부터 국비지원도 받을 수 있어 지역개발에 도움이 되고 관광과도 연계돼 전국 자치단체로 확대될 전망이다. ●국내 최초 아토피클러스터 추진 진안군은 2007년부터 아토피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군 조직에 아토피계를 만들고 국내 최초로 아토피클러스터를 조성 중이다. 백운면 노촌리 일대 109만㎡에 조성되는 아토피클러스터는 2015년까지 1700억원을 투입해 힐링센터, 전문연구소, 식이요법치유센터 등을 건립한다. 청천면 봉학리에는 환경친화학교인 에코에듀센터를 건립해 아토피로 고생하는 환자와 학부모들을 유치했다. 현재 36명의 학생과 보호자 등 72명이 생활하고 있다. 나무와 황토 등 친환경자재로 교실을 꾸몄고 집도 모두 친환경건축자재만 사용했다. 주민들은 친환경주택 19동을 건립해 아토피 환자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임대사업을 벌여 소득도 짭짤하게 올리고 있다. 에듀센터에서는 아토피치료 전문인력도 양성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170명을 배출했다. ●편백숲과 녹차 이용한 아토피 치료 전남 장흥군은 장흥 우산리 편백숲에서 아토피 치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목재문화체험장을 조성해 아토피환자들이 이곳에서 머물며 자연치유 효과를 얻도록 했다. 아토피재활치료휴양복합단지에는 1500㎡ 규모의 지하벙커에 거대한 소금동굴을 만들어 환자들을 유치하고 있다. 장흥군은 2012년까지 45억원을 투자해 아토피 환자들이 편백숲에서 풍욕을 하고 적절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백두대간 테라피 밸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전남 보성군은 지역 특산품인 녹차를 이용한 아토피 치료법을 내놓았다. 전남대에 용역을 맡겨 환경성질환치료체험센터 건립 적지를 물색하고 있다. 숲이 좋은 웅치·회천면 등이 후보지로 거론된다. ●아토피 초등학교도 설립 충남 금산군도 ‘아토피 치료메카’로 키우기 위한 각종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군북면 상곡리 상곡초등학교를 아토피 치유 전문 학교로 육성하기 위해 충남도교육청과 협의 중이다. 도교육청은 지난해 3월 폐교 위기에 몰린 이 학교를 아토피 안심학교로 지정했다. 정길호 군 건강도시계장은 “한달 전부터 마을의 황토펜션 4채를 빌려 서울 등 외지에서 4가구의 엄마와 아이가 내려와 아토피 치료를 받고 있고, 2가구가 추가로 내려온다고 해 황토펜션 2채를 더 빌려놓았다.”면서 “아토피 가족이 내려오면서 전교생이 16명이던 상곡초가 21명으로 늘어 폐교위기도 벗어나고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라고 말했다. 금산군은 2014년까지 상곡리를 ‘아토피빌리지타운’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남이면 건천리 남이자연휴양림에 환경성 질환예방관리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산림청에 계획서를 제출했다. 이곳은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발생해 환경성 질환에 특효인 3㏊의 편백나무 숲이 있다. 강원 양구군도 2012년까지 양구 동수리 파로호일대에 아토피치유관을 중심으로 한 ‘농촌테마공원’을 조성한다. 친환경의 장점을 살려 아토피를 치료할 수 있는 공간과 자연친화적인 휴식·레저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참살이로의 귀환’이란 주제로 조성되는 ‘농촌테마공원’은 참살이와 산채를 테마로 한 체험문화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26만 4337㎡에 조성된다. 전국종합·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한·일 진보 기독교인 “한국 강제합병 불법”

    한국과 일본의 진보성향 기독교인들이 일본에 모여 “일본의 한국 강제합병은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이었다.”는 내용의 공동 결의문을 채택했다. 한·일 기독교교회협의회(NCC)와 천주교 관계자 100여명은 6일 도쿄 ‘재일본 한국 YMCA회관’ 지하 강당에서 모임을 열고 ‘미래에의 협동-한·일 재일 기독교도 결의’를 채택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일본 국회는 1904년 1차 한·일협약에서 1910년 한국병합조약에 이르는 일련의 조약이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식민지 지배 책임을 사죄하는 결의를 하라.”고 요구했다. 또 일본 정부와 국회에 대해 한반도 식민지 범죄를 조사할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하고, 북한과 일본 간 국교정상화를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서울 구청장 새꿈 새구정(7)] 유종필 관악구청장 “도서관 많은 사람특별區로”

    [서울 구청장 새꿈 새구정(7)] 유종필 관악구청장 “도서관 많은 사람특별區로”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조국도, 어머니도 아닌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라고 했다.” 유종필(53) 서울 관악구청장이 도서관 확충으로 사람 중심의 관악특별구를 선언했다. 6·2지방선거에서 내놓은 구청장 후보자 공약집 절반을 도서관 활성화 사업으로 채웠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개발 공약보다 삶을 살찌우는 공약이 진정 주민을 위하는 공약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그에게는 ‘도서관 구청장’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유 구청장은 6일 “지식혁명의 시대인 현대사회에서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공장”이라면서 “앞으로 지역 모든 주민들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사랑방처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區를 ‘북스타트운동’ 메카로 육성 도서관에 집착하는 이유를 묻자 유 구청장은 “미국에는 16만개의 크고작은 도서관이 있고 주민들이 도서관 때문에 이사를 못간다는 얘기를 한다.”면서 “주민들이 계속 머물고 싶은 관악구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 도서관”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도서관을 새로 짓겠다는 것도 아니다. 있는 시설을 리모델링하고 필요하면 가정집을 개조해 임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 구청장은 “중장기적으로 관악구 21개 동마다 최소 한 개씩의 도서관을 건립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또 그는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뿐 아니라 주민들의 사랑방, 아이들의 놀이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꾸밀 계획이다. 도서관마다 통합전산망을 구축, 필요한 책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도 시작한다. 도서관 운동 시민단체와 함께 관악구에 어울리는 도서관 프로그램도 찾고 있다. ‘어린이 도서관 건립’을 서울시에 제안하기도 했다. 관악구를 ‘북스타트운동’ ‘북피니시운동’ 메카로 만들 방침이다. 공공도서관을 네트워크로 묶어 효율성을 높이고 ‘만남의 장소’로 지역주민에게 널리 개방하는 한편 명사들을 초청, 살아있는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사업, 명사들이 자신의 책을 기증하는 ‘명사들의 도서관’도 만든다. ‘도서관이 나의 운명이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국회도서관장으로 일할 때’라는 도서관 예찬론자다. 그는 “관악구의 도서관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면서 “반드시 꿈을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유 구청장의 또 다른 관심사는 ‘기업유치’다. 관악구에는 이렇다 할 기업이 없다. 남부순환도로변에 기업을 유치, 지역경제활성화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서울대 연계한 지식문화중심도시로 그는 “남부순환도로를 끼고 있는 관악구는 교통의 요충지”라면서 “강남, 신촌권과 지하철 2호선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기업을 유치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설명했다. 구청장 직속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기업 유치 활동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그는 “유치기업에는 인센티브를 비롯해 신속한 행정 처리, 국내 최대 연구기관인 서울대와의 연계 등 다양한 혜택을 주겠다.”고 밝혔다. 유 구청장의 모교인 서울대와 연계한 사업도 찾고 있다.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제2의 서울대 사대부고를 유치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사고나 특목고보다 사람 중심 교육의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를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서울대와 협의해 ‘제2의 서울사대부고’를 유치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유 구청장은 “서울대는 관악에 있는데 서울사대부고는 강북에 있다.”면서 “서울사대부고를 이전시킬 수도 없고 자율형 공교육 활성화를 위해 제2의 서울사대부고 설립을 서울대와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울대의 우수한 인적자원을 활용, 지식문화중심 도시로 관악을 재탄생시키겠다고 했다. 유 구청장은 “많은 현안이 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순리적으로 풀어가겠다.”면서 “하드웨어적인 발전보다는 ‘사람중심 도시’라는 철학에 걸맞은 소프트웨어적 접근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유종필 관악구청장 4년 10개월 동안 민주당의 ‘입’을 맡았던 최장수 민주당 대변인이다. 서울대 졸업 후 한국일보, 한겨레신문 기자를 지내다 정계에 입문했다. 청와대 정무비서관, KTV사장, 국회도서관장 등을 지냈다. 특히 국회도서관장을 하면서 사회적 이슈에 따라 책을 선정, 소개하는 ‘팩트북’을 펴내는 등 도서관 활성화에 한몫했다.
  • 비난을 부르는 기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거액을 모교인 경북여고에 기부했다. 하지만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은 노 전 대통령이 수백억원의 추징금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기부금을 내는 것은 법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추징금부터 완납하라고 비판했다. 5일 경북여고 총동창회 등에 따르면 김 여사가 최근 모교인 경북여고 역사관 건립기금으로 5000만원을 기탁했다. 김 여사는 경북여고 동창회가 내년도 개교 85주년을 앞두고 동창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역사관 건립기금 모금을 촉진하기 위해 기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는 이와 별도로 지난달 22일 아들 노재헌씨와 함께 대구 동구 신용동 생가에 실물 크기의 노 전 대통령 동상을 설치하고 받침대 앞면에 ‘제13대 노태우 대통령’이라는 글을 새겨 눈길을 끌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서울플러스] 美 중·고생 초청 국제교류

    노원구(구청장 김성환) 오는 12일부터 12박 13일간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시 공립학교인 베이커 중학교와 마운틴 타호마 고교생들을 초청해 청소년 국제교류를 실시한다. 한국어반 학생 20명과 교사 4명은 이번 방문을 통해 그동안 편지로만 이야기하던 펜팔 친구들의 집에 머물며 한국 문화를 접한다. 방문단은 대진여고, 염광중 등 관내 학교를 방문하고, 창덕궁과 용인민속촌·국립중앙박물관·청와대·광화문광장·청계천 등을 둘러보며 구에서 마련한 한국문화체험 행사에 참여한다. 홍보팀 2116-3216.
  •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결혼이주자 2세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결혼이주자 2세

    일곱 살 상원이(가명)는 4개국어를 한다. 한국어와 중국어는 유창하고, 영어와 필리핀어는 알아듣는 정도다. 한국 아빠와 필리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화교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다. “쉬는 시간에는 한국어로, 수업 시간에는 중국어를 써요. 엄마랑은 영어와 필리핀어를 섞어 쓰는데 많이 헷갈려요.” 화가 나면 엄마, 아빠가 못 알아 듣도록 중국어로 불평한다. 상원이가 외국인 학교인 한송 한성화교 소학교에 입학한 것은 아빠 A(40)씨의 결단이었다. 한국어에 서툰 엄마가 학습을 지도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학원비를 맘껏 지출할 가정형편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상원이가 우리나라 교육제도 속에서 상처받지 않고 자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배려 가장한 차별 피해 외국인학교 선택 다문화지원 정책이 쏟아지면서 ‘배려’를 가장한 ‘차별’이 발생한다고 A씨는 지적했다. 다문화 아동만 따로 모아 특별활동을 시켜서 따돌림을 부추기고, 학습수준도, 언어도 다른데 다문화 아동이라는 이유로 방과 후 학교를 강요해 부작용을 낳는다고 했다. A씨는 “아이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 정부의 실험 교육에 상원이를 맡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공부하는 게 외롭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100년 전통의 외국인 학교라 안심했다. 학기가 9월에 시작하는 데다 중국어를 할줄 알아야 입학할 수 있어 6개월 전에 부속 유치원에 보냈다. 2상원이는 첫날, 울면서 돌아와 “다시는 학교에 안 간다.”고 선언했다. 화교 부모를 둔 아이들처럼 중국어를 못하는 데다 어린이집과 다른 낯선 환경이 힘들어서다. “일반학교에 가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붙잡고 A씨는 ‘글로벌 인재’라는 말을 꺼냈다. “네가 크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거야. 아빠는 한국 사람, 엄마는 필리핀 사람, 친구는 중국 사람, 지금부터 그렇게 살면 나중에 상원이는 전 세계에서 1등이 되는 거지.” 상원이는 아빠의 얘기를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필리핀 초등학교와 학생교환 프로그램 계획 A씨는 둘째 상희(4·가명)와 셋째 상수(2·가명)를 ‘다문화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했다. 뜻이 맞는 다문화 가족들끼리 준비모임도 꾸렸다. “학부모가 학교활동에 적극 참여해 아이들을 ‘민간 외교자원’으로 키웠으면 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필리핀 초등학교와 자매결연해 학생 교환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A씨 아이들은 필리핀에서, 필리핀 학생은 한국에서 방학을 보내는 거다. 숙박은 두 나라의 부모가 맡는다. 프랑스와 독일,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A씨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인맥을 쌓고 그러다 보면 민간 외교가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엄마 글로리아(30·가명)는 자녀교육을 고민하는 남편과 중국어를 홀로 배우는 상원이를 보면 “마음이 짠하다.”고 했다. “먼 학교를 지하철로 통학하고 과제물도 혼자 하면서 상원이가 너무 빨리 어른이 됐다.”고 말했다. “다섯 살쯤 되니까 엄마보다 한국어를 잘하더군요. 그러더니 어느날 ‘엄마, 필리핀 사람이라서 좀 창피해’라고 말하는 거예요.” 상원이는 “엄마, 그만해. 다 지나간 일인데….”라고 엄마의 말을 가로막았다. “엄마는 그때 충격 많이 받았어.” “그때는 엄마, 한국어 발음이 이상하니까. 친구들이 놀리고….” 상원이는 말끝을 흐렸다. 글로리아의 한국 적응도 순탄하지 않았다. 친척의 소개로 만난 A씨와 편지를 주고받다가 결혼을 결심했다. 외국으로 떠난다는 딸을 부모가 만류했다. “한번 가면 오기도 쉽지 않은데….” 2000년 5월 A씨가 필리핀으로 입국, 설득에 나섰고 한 달 뒤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말과 달리 시부모는 글로리아를 반기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의 검은 피부를 두고 수군거렸다. ‘다르다.’는 게 한없이 그를 위축시켰다. 그때 남편이 주민센터의 영어강사를 권했다. 한국 아줌마와 어울려 한국어를 배우고, 영어를 가르치며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했다. 둘째 상희가 태어났을 때 또다시 위기가 닥쳤다. 상희가 한 달 일찍 나오는 바람에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한국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입국할 수가 없었고, 시어머니는 그때까지 외국인 며느리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산후조리원에서 몇 달간 머물 가정형편도 못 됐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아니어서 복지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아이는 눈도 뜨지 못하고 쓰러졌다. ‘황달·영양실조’로 일주일간 입원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그후 3년간 병원을 들락거렸다. 이처럼 아이를 홀로 키우기가 어려워 필리핀으로 아이를 보내는 다문화 가족도 있다고 글로리아는 설명했다. 대가족 전통이 남아 있어 어린 시절을 보내기는 그곳이 낫다는 거다. ●‘창피하다’는 상원이 말에 엄마 다시 공부 글로리아는 ‘엄마가 창피하다.’는 상원이의 말에 중단했던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2007년 전문대 복지학과에 입학해 사회복지사 2급,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땄다. 산학협력 프로그램이라 남편도 함께 다녔다. 천안에서 보육교사로 일했고, 지난해에는 다문화 강사로도 등록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필리핀 문화를 소개한다. 전통의상과 국기, 언어를 알려주면 아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난다. 그러나 엄마들의 반응은 실망스럽다. 아이가 만든 필리핀 국기나 다양한 언어의 이름을 자랑하면 엄마가 “그런 거 뭐 하려 했니? 버려.”라고 말한다. “다문화 사회에서 살려면 필요한 교육인데….” 글로리아는 안타까워했다. 상원이와도 자연스레 소통한다. 다문화 강의교재를 만들어 자녀들에게 시연하고 조언을 받았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어를 빨리 배우지 못할까 봐 필리핀어도 잘 쓰지 않았던 엄마는 늦었지만, 자녀들에게 필리핀 문화를 가르칠 수 있어 행복하다. 지하철에서 중국어 학교 과제물을 풀던 상원이에게 한 아줌마가 물었다. “넌 엄마가 중국 사람이니?” “아니요. 엄마는 필리핀 분이고요. 아빠는 한국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는 중국 학교에 다녀요.” “우와, 너희 가족, 참 멋지구나.” 상원이는 엄마 사무실로 달려와 자랑했다. ‘도전하길 잘했구나.’ 글로리아는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아이가 한국에서 차별 없이 똑같이 자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꿈꾸는 다문화사회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책 읽는 밤(KBS1 밤 12시30분) 인터넷을 통해 대규모 군중들의 참여와 협업이 새로운 미래의 경제 패러다임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설명한 ‘위키노믹스’의 저자 돈 탭스콧. 그가 말하는 ‘디지털 네이티브’는 어떤 존재일까. 한국문학의 이방인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성취를 이루어온 작가 배수아. 그녀가 4년만에 내놓은 6번째 소설집 ‘올빼미의 없음’을 만나본다. ●1대100(KBS2 오후 8시50분) 미와 지성을 겸비한 방송인, 박정숙. 대한민국 안전을 책임지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대표 강성규가 각각 1인으로 도전한다. 100인으로는 ‘연예인 퀴즈군단’의 김진, 박화요비, 김재욱, 김정민, 오나미, 그리고 40명의 한국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와 55명의 퀴즈 전사가 뜨거운 한판 승부를 펼친다. ●TV특종 놀라운 세상(MBC 오후 6시50분) 경기 용인의 한 절, 법회가 끝나고 스님과 불자들이 향한 곳은 미용실. 능숙 능란한 솜씨로 불자들의 머리를 손질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스님이다. 팔방미인 혜관스님의 특별한 일상을 소개한다. 사람도 타기 힘든 수상스키를 탄다는 수상스키 경력 7년의 강아지 깜이. 여름을 즐길 줄 아는 물만난 견(犬)을 만나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30분) 어른만 보면 “돈 돈 돈” 하는 6살 규진이. 돈이 없을 때는 호시탐탐 엄마 지갑을 넘보고, 돈이 생기면 슈퍼를 들락날락 물건을 사고 또 산다. 밖에 나가면 물건 사기에 집착, 돈 쓰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 그러나 집에 있을 때는 대낮부터 밤까지 TV만 본다. 쇼핑 중독, 텔레비전 중독이 염려스러운 규진이를 만나본다. ●세계의 교육현장<홍콩 2부>(EBS 밤 12시) 홍콩 현대문화원과 유네스코가 함께 만든 홍콩 첫 자율 민간 고등학교인 ‘창의력 학교’. 맨발로 수업 듣는 것도 오케이, 학교 규율도 학생들이 참여해 함께 정한다. 학생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며 예술가에게 직접 예술을 배울 수 있는 곳, 2006년 9월 설립된 홍콩창의력학교의 교육현장을 찾아가 본다. ●멜로다큐 가족(OBS 오후 11시) 허브로 둘러싸인 농장을 운영하는 김기범(55), 오은석(55)씨 부부. 기범씨가 허브가 주는 자연의 향기에 반해 30여년간 기반을 닦았던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허브와 함께하는 삶을 결심하자 아내와 주변의 반대는 심각했다. 경상북도 경주시 향긋한 허브 향기를 풍기는 산골마을의 농장을 찾아가 본다.
  • 멕시코, 공공입찰 한국 참여 허용

    멕시코, 공공입찰 한국 참여 허용

    멕시코 방문 이틀째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멕시코가 추가적인 원전 건설을 추진할 경우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멕시코시티의 숙소호텔에서 멕시코·한국 경제인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멕시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이 하루빨리 재개되길 희망한다.”면서 “기업인 중에서도 FTA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도 아마 있을 줄 알지만 한국과의 FTA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차별화된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양국 경제는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에 우려하는 통상마찰보다는 유익한 내용이 훨씬 많다.”면서 “양국 간 FTA를 통해 한국기업의 미주 대륙 진출과 멕시코 기업의 동아시아 진출이 상호간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대통령은 또 “멕시코의 에너지·플랜트·교통·통신망 구축 사업에 한국기업이 참여한다면 비용절감과 기술이전 등을 통해 멕시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멕시코시티 대통령 관저에서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앞으로 멕시코 정부와 공기업이 발주하는 각종 사업의 국제입찰에 한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다는 데 합의했다. 멕시코 정부가 FTA 체결 국가에만 공공인프라 입찰 참여를 허용하는 관행을 깬 것이어서 향후 결과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FTA 체결 전이라도 한국 기업이 공공인프라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칼데론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국 기업이 멕시코 국제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조치를 추진하겠다.”며 즉석에서 수용 의사를 밝혔다. 김 대변인은 “한·멕시코 FTA는 멕시코 산업계의 반대가 심해 당장 어렵다.”면서 “선언적 FTA 추진보다 더 실효성 있게 우리 기업을 돕는 방안을 끌어낸 이 대통령식 특유의 실용외교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2일 오전 6박7일간의 캐나다·파나마·멕시코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국길에 올라 3일 오후(한국시간)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파나마시티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영국사립교 제주에 설립 신청

    제주도교육청은 내년 9월 개교 예정인 영국의 대표적 사립학교인 ‘NLCS(North London Collegiate School)-Jeju’ 가 학교 설립계획 승인신청서를 제출했다고 30일 밝혔다. 영어교육도시 내 학교 설립은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동의를 거쳐 도교육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도교육청은 교과부장관의 동의를 얻어 학교 설립을 승인할 예정이다. NLCS-Jeju는 영국의 NLCS의 학제와 교육과정에 따라 5학년(우리나라 4학년에 해당)부터 13학년(우리나라 고교 3학년에 해당)까지 운영하게 된다. 학생 정원은 초등학교 과정 192명, 중학교 과정 424명, 고등학교 과정 772명 등 모두 1388명이다. 학생 1인당 수업료는 연간 2만 2700달러(약 2640만원) 정도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모든 절차를 이른 시일 내에 마쳐 내년 9월 개교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한국, 종교의 시대 맞았지만 권력·물질에 얽매여 10년뒤엔 ‘텅 빈 교회’ 될수도”

    “한국, 종교의 시대 맞았지만 권력·물질에 얽매여 10년뒤엔 ‘텅 빈 교회’ 될수도”

    현 정부 출범 이후 크고 작은 잡음이 여러 분야에서 일었지만, 가장 두드러진 곳 중 하나가 종교 분야였다. 교회 장로 출신 대통령의 언행은 일부 타종교인들의 반발심을 갖게 했고, 급기야 ‘범불교도 대회’ 같은 움직임을 낳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등 정신적 지도자들이 나란히 우리 곁을 떠났다. 게다가 용산참사, 4대강 사업 반대 운동 등 예민한 사회 이슈를 거치며 종교인들의 목소리는 매일같이 신문지면과 방송을 채웠다. 이런 현상을 두고 백찬홍(49) 씨알재단 운영위원장은 “지금 한국 사회는 ‘종교의 시대’에 왔다.”고 말한다. 최근 신간 ‘종교의 안부를 묻는다’(평사리 펴냄)를 내고 한국 사회의 종교 권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는 그를 28일 서울 신문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백 위원장은 “한국 사회는 항상 국가권력의 힘이 가장 컸지만 최근 몇 십년 사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최근에는 그중 종교계의 목소리가 가장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 한국 사회의 종교는 ‘시대적 배경’으로 작용한다. 특정 교회 인사들이 정부에 대거 기용되는 등 개신교는 친정부 성향이 커졌다. 불교는 반대로 ‘차별 철폐’ 목소리를 높이며 정부와 각을 세웠고, 천주교는 각종 사회 이슈에서 배제할 수 없는 세력이 됐다. 즉, 종교가 종교 자체가 아닌 권력과 사회와의 밀접한 배치 안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소리가 커진 것과 별개로 종교들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 백 위원장이 내세우는 주장의 핵심이다. 개신교는 일부 교회 부패 문제로, 또 불교는 최근 정권과의 석연치 않은 관계 문제로 불안정하다. 천주교 역시 더 이상 ‘포스트 김수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더 큰 문제는 종교 문제에 끊임없이 경제논리가 끼어든다는 점이다. 교회나 절, 성당 등에 관계없이 한국의 종교 공동체는 평신자 직제에서도 돈이 없는 사람이 배제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백 위원장의 말대로 “신앙이 돈독해도 돈이 없으면 장로든 신도회장이든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백 위원장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에는 유럽과 같이 주일에도 교회가 텅텅 비는 ‘교회 공동화 현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10년 내 그런 변화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특정 계층들은 종교에서 더 이상 현실적인 이익을 얻을 수 없을 때 쉽게 떠나버린다. 그러니 그런 집단에만 의존할 경우, 공동체는 빠른 시일 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 해답은 뭘까. 간단하다. “종교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는 것” 그는 “예수도 그랬고 석가모니도 그랬듯이 마음에 영성을 채운 뒤 평화·생명을 외치고, 또 고통받고 소외된 자들을 끌어안는 것이 종교 본연의 임무”라고 설명했다. 그 임무에 따를 때만 종교가 꾸준히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그는 본다. 아울러 그는 현실적인 답도 내놨다. “현재 한국 종교들 앞에는 여러 가지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오랫동안 배제됐던 성(性)적 소수자 문제, 여성 성직자의 권한 설정, 또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문제가 그것입니다. 한국의 종교들은 미래 가치를 고민하고 이들을 적절히 감싸안을 방안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글 사진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경기대도 양측 대립

    ■비리퇴출 사립대 옛재단 복귀 가시화…사학분쟁 다시 꿈틀 임시이사(관선이사)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사립대에 옛 재단의 복귀가 가시화되고 있다. 임시이사 체제의 구성원들은 비리로 퇴출된 옛 재단의 재입성을 반대하고 있고, 옛 재단 측은 임시이사 체제가 오히려 학교 발전을 후퇴시켰다며 직접 운영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사학분쟁 2라운드가 익어가는 형국이다. 옛 재단들이 이처럼 복귀의 신호탄을 쏘고 있는 것은 ‘시기와 시대적 차이’와 맞물려 있다.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12월 출범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의 색깔이 현 정부 들어 보수적 색채로 바뀌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최근 상지대의 사례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분위는 17년간 학내 분규가 끊이지 않았던 상지대의 정이사 추천권을 옛 재단 측에 대폭 넘길 방침이다. 비리로 물러난 김문기 전 이사장 측에 이사 9명 중 5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로 한 것이다. 또 2007년 대법원은 “임시이사들이 학교가 정상화된 상황에서 학교 설립자 측과 협의없이 정식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학의 설립과 운영에는 자유가 인정되기 때문에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주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옳다는 해석이다. 사분위 관계자는 “실형을 받았지만 사면복권된 옛 재단 측이 학교 운영에 참여한다고 해서 법리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광운대, 경기대, 동덕여대, 덕성여대 등 임시이사체제인 20개 대학의 이사회는 정상화 이후 설립자 측 인사로 구성된 정이사진 형태로 꾸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옛 재단의 학내 재입성에 대해 일부 학교 구성원과 총학생회가 반대하고 있어 분쟁의 불씨는 살아 있다. 해당 대학의 총학생회는 옛 재단의 도덕성 문제를 들어 비리재단의 재진입을 반대한다. 옛 재단 입성 반대의 목적이 학교내 ‘밥그릇’ 싸움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립대학 운영권을 놓고 ‘옛 재단-학생-교과부(사분위)’ 삼자간 분쟁이 불가피한 이유다. 사분위 관계자는 “사학비리, 이사진 공백 등의 이유로 대학에 임시이사가 파견돼도 횡령자금을 보전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고, 갈등관계가 상존하다 보니 대학 정상화와 정이사 임명이 쉽지 않은 것”이라며 “상지대의 경우 재논의를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사분위는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임시이사 파견 원인을 제거해 나갈 것”이라며 밝혔다. 현재 사분위의 행보로 봤을 때 과거 조선대, 영남대처럼 20년 이상 임시이사 체제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옛재단측 “관선체제후 학교발전 후퇴” 총학생회 “부패없는 건실한 재단 유치” 7월 초 임시이사의 임기가 만료되는 경기대의 경우 복귀를 노리는 옛(舊) 재단 측과 총학생회가 대립하는 양상이다. 현재는 탐색전 수준이지만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강한 인화성을 내포하고 있다. 손종국 전 총장은 ‘설립자의 건학 이념 구현’과 ‘학교 발전’을 명분으로 학교를 되찾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손 전 총장은 28일 “설립자의 설립 취지를 이어받은 구성원이 법인의 주체가 돼야 한다.”며 복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손 전 총장은 “현 체제는 개인적 출세나 욕심에만 관심이 있었지 학교를 발전시키는 데는 뒷전이었다.”고 임시이사 체제를 비난했다. 그는 “임시이사 체제가 들어서기 전 전국에서 27위(언론 대학평가 순위)이던 학교가 현재 70위권으로 밀려났고, 관선체제 이후 학교 재산이 주는 등 경기대학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옛 재단 입성을 반대하고 있는 총학생회와의 대화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대화에 적극 나설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기존 총학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학교 이사회는 작은 국회처럼 의견이 분분해 언제든지 삐걱댈 수 있다.”면서 “학내 교수들이 옛 재단의 재입성을 막기 위해 학생들을 선동하는 것은 잘못됐다. 개인이 설립한 사립학교인 만큼 원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옛 재단의 학내 재입성을 반대하는 측은 “사립학교는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개인의 소유로 볼 수 없다.”면서 “옛 이사장이 비리를 저질러 해임됐다면 법인의 모든 권리를 상실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유승훈 경기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장은 “2004년 손 전 총장의 비리가 터지기 이전부터 재단 측의 비리와 부패가 쌓여 왔다.”면서 “지금은 학교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자금력을 가진 건실한 재단을 유치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경기대 총학생회 측은 옛 재단이 다시 학교로 들어올 것을 대비, 과반수의 학생들과 교수, 총장으로부터 ‘입성 반대서명’을 받아 사학분쟁위원회에 제출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대학을 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온갖 인사전횡, 공금횡령 등이 자행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시이사진이 코드 인사라는 옛 재단 측의 주장에 대해 “선임할 때 학내 구성원들의 동의를 거치는 만큼 코드인사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씨줄날줄]軍과 문민통제/노주석 논설위원

    한국전쟁에서 활약했던 맥아더(1880~1964) 원수는 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전설적 군인이자 당대 누구 못지않은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정치감각은 좀 지나친 측면이 있었다. 태평양전쟁 초기 3개월 동안 태평양사령부에서 나온 언론성명서 142건 중 109건이 맥아더 장군의 이름으로 공식발표됐다. 다른 장교의 이름은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모든 공문서 표지에 ‘맥아더사령부’라는 겉표지를 따로 붙였다. 이 시기 사령부는 공식 명칭 대신 맥아더사령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 정도는 약과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병력감축 문제를 놓고 맥아더와 갈등을 빚던 트루먼 행정부는 1945년 9월과 10월 두 차례 맥아더에게 귀국을 요청했다. ‘요청’이라는 격식을 갖췄지만 사실상 군통수권자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미군의 최고 연장자이며 선임 장교인 맥아더는 불응했다. 맥아더는 너무 바쁘고 위험하기 때문에 도쿄를 떠날 수 없다는 이유를 대 트루먼을 격앙시켰다. 야심만만하던 맥아더는 자신이 워싱턴과 링컨 대통령에 필적하는 위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그저 그런’ 대통령에 불과했다. 맥아더는 이 사안의 중요성과 의미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아마 나는 역사상 본국으로 소환하려는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한 첫 번째 군인이 될 거야. 할 일이 많아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말할 작정이야.”라고 보좌관에게 말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 후에도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과 미국의 타이완 정책을 놓고 정부와 장군 간 불협화음이 계속됐지만, 맥아더의 대중적 인기가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대통령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1951년 4월11일 마침내 트루먼은 대통령의 안보정책에 관한 함구령을 여섯 번이나 위반한 맥아더를 명령 불복종으로 해임했다. 트루먼은 탄핵위기를 맞았고, 맥아더의 해임에 반대하는 여론에 의해 미국에는 헌정위기가 닥쳤다. 그러나 미국 국민과 의회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Civil Control )’ 원칙을 수호했다. 당시 미국 합동참모본부도 ‘군은 항상 민정당국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이 해임되지 않으면 민정당국의 군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됐다고 미국 국민이 비난할 것이다.’라고 결론 내리면서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아프간 정책을 비판한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군 사령관을 소환해 전격 경질했다. 맥아더 이후 60년 만의 항명장군 파동이지만 미국의 문민통제 원칙에는 흔들림이 없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십자군전쟁-9·11테러 문명의 충돌이라고? 역사를 모르고 하는 소리!

    11세기 십자군 전쟁과 2001년 9·11테러의 공통점은 뭘까. 둘 다 복잡한 사정이야 나름대로 있지만, 어쨌든 이들 모두 ‘문명 간 충돌’의 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다. 거기다 16세기 레판토 해전이나 이라크 전쟁까지 얼추 더하고 보면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의 충돌은 ‘필연적 역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간 ‘십자가 초승달 동맹: 우리가 알지 못했던 기독교-이슬람 연합 전쟁사’(최파일 옮김, 미지북스 펴냄)를 펴낸 이언 아몬드 미국 조지아주립대 교수는 “그런 생각은 서구중심주의에서 나온 허구”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 반례로 지난 800년 동안 유럽에서 존재했던 기독교-이슬람 간의 협력과 군사 동맹의 역사를 제시한다. 아몬드 교수가 신간을 통해 내놓은 예를 보면 놀랍다. 십자군 전쟁으로 두 문명이 첨예하게 대립했을 것만 같은 11세기에도 “토마스 옆에 압둘라가, 드미트리 옆에 알리가” 아무렇지 않게 머물렀다. 당시 유럽에서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 생활을 했다는 말이다. 예컨데 11세기 에스파냐를 두고 저자는 ‘다문화-민족의 용광로’라고 표현할 정도다. 무슬림 칼리프 체제가 붕괴된 이 시기 아랍인들은 20여개 군소 국가로 쪼개져 살았다. 이때 에스파냐를 점령해 가던 알폰소 6세는 무슬림에게 관대한 정책을 펼쳤고, 이슬람 군소 국가 통치자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시기에는 그의 깃발 아래 기독교인 병사와 무슬림 병사가 호흡을 맞추는 건 예사로운 일이었다고 한다. 14세기 비잔티움과 투르크, 16세기 헝가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잔티움 말기 주변 국가 통치자들은 영토 수호를 위해 이슬람과 거래를 했다. 또 16세기 헝가리 지배층은 합스부르크 제국 통치에 반감을 가지고 스스로 무슬림 통치를 자원하기도 했다. 아몬드 교수는 이런 동맹들이 단지 적을 막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면서 맺은 일시적 동맹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동맹은 기본적으로 현실 정치와 이해관계가 얽히지만, 때로는 지도자들 간의 우정이나 인간애를 바탕으로 삼기도 했다. 또 오랫동안 형성된 역사적 일체감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유럽이 기독교만의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 역시 유럽의 일부였으며 수많은 아랍인 기독교 신자들이 있었다고 아몬드 교수는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생각하는 ‘문명화된 기독교 유럽’은 단지 환상일 뿐이며, 이제는 그런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 유럽을 바라볼 것을 독자들에게 요구한다. 1만 60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美 쓰레기학교’ 달라졌어요

    ‘美 쓰레기학교’ 달라졌어요

    2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로크 고등학교는 범죄의 온상이자 갱들의 천국이었다. 화장실에서는 성폭행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학교 옥상에서는 매일같이 마약파티가 벌어졌다. 무사히 졸업하는 학생은 입학생 5명 가운데 1명꼴에 불과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지난 2년 동안 진행된 ‘미국 최고의 쓰레기 학교’ 로크 고교의 변신을 소개했다. 현재 로크 고교에서는 폭력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중퇴생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학교 광장에 새로 심은 올리브나무 아래에서는 학생들이 모여 숙제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재학생 레스리 마야는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면서 “역겹고 더럽게만 느껴졌던 학교가 이젠 사랑스럽고, 선생님들은 더 많은 것을 도와주기 위해 애쓴다.”고 말했다. 로크 고교의 변신은 오바마 행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교육 개혁 덕분이다. 미 정부는 중퇴율이 높은 학교 5000여곳에 5년 동안 35억달러(약 4조 250억원)를 투입하는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매년 120만명에 달하는 중퇴생을 줄이기 위해 졸업률이 낮은 학교는 교장과 교사를 교체하고 학교 폐쇄도 불사하고 있다. 지원을 받고자 하는 학교는 강력한 자구책을 제출해야 한다. 2008년 로크 고교는 지역내 모범학교인 그린 닷 고교 재단에 개혁작업을 의뢰했다. 그린 닷 재단은 은퇴한 경찰 간부 케빈 킹을 로크 고교에 파견했다. 킹은 “처음 학교를 찾았을 때 깨진 유리창과 전등, 망가진 보안카메라만이 가득했다.”면서 “학생들은 주머니 검사 없이는 화장실에 들어가지도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린 닷 재단은 학교 시설을 수리하고, 경찰을 동원해 갱들을 쫓아냈다. 감옥을 다녀오거나 나이든 학생들에 대해서는 특별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직업 교육을 실시했다. 120명의 교사 중 40명은 재교육을 받았고, 인기 교사에게 더 많은 학생을 배정했다. 학교 문을 새벽부터 열어 과학 특별반과 밴드 등 특기활동도 강화했다. NYT는 “로크 고교는 여전히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낮은 학력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최소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졌다.”면서 “100~150명에 불과했던 신입생은 올 가을학기에 5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2010 한국전쟁 60주년 화해의 원년] 7월 좌익 10월 우익 학살… 1950년엔 모두 희생자였다

    [2010 한국전쟁 60주년 화해의 원년] 7월 좌익 10월 우익 학살… 1950년엔 모두 희생자였다

    전남 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 주민 정석재(61)씨는 23일 나지막한 동구림리 야산을 가리키며 좌·우익, 가해자·피해자 구별 없이 한국전쟁 희생자 262명의 원혼을 위로할 ‘용서와 화해의 위령비’(위령벽)를 세울 터라고 말했다. 그는 ‘군서면 위령비 건립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위령비를 건립할 5000여㎡ 공터 아래쪽에는 ‘지와목 방화 사건’ 때 좌익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28명을 기리는 순절비(1976년 제막)가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돌계단을 내려가면 서기 405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스카 문화를 꽃피운 백제인 왕인 박사의 유적지가 바로 건너다 보였다. 이곳이 한국전쟁 때 민간인 학살이 반복된 참극의 현장이다. 구림마을을 휩쓸고 간 ‘전쟁의 상흔’은 한반도 그 어느 지역과 다르지 않다. 이웃끼리 죽고 죽이는 야만적인 보복 학살이 이어졌다. 마을은 불신과 공포로 뒤덮였다. 1950년 7월 영암경찰은 후퇴하면서 국민보도연맹원 20~30명을 월출산 자락의 도갑산 골짜기 등에서 처형했다. 그러다 인민군이 점령하자 좌익 유가족들은 과거 경찰·경찰지서에 자주 드나들거나 협조한 사람들을 색출해 살해했다. 10월 초에는 좌익 세력이 잇따라 방화사건을 일으켰다. 특히 7일에는 우익 인사와 기독교인 28명을 자와목에 있는 주막에 가두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17일 오전 6시 경찰 공비토벌부대가 ‘구림 첫 포위사건’을 저질렀다. 3개 소대가 ‘좌익의 근거지’라며 부녀자, 아이까지 무차별 살해한 것. 대나무 숲이나 마루 밑에 숨었던 사람들만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나 인민군에 부역하거나 협조했던 사람들은 이미 마을을 떠나고 없었다. 이런 참극이 되풀이돼 불과 반년 만에 민간인 262명이 학살됐다. 그러나 다른 지역과 달리 구림마을은 ‘전쟁의 상처’를 용서와 화해로 치유하고 있다. 2006년 11월17일부터 ‘과거사를 용서와 화해로 이루고자 한다.’는 명분으로 가해자·피해자 구별 없이 희생자의 위패를 함께 놓고 합동위령제를 올렸다. ‘용서와 화해’로 가는 첫발은 험난했다. 적극적으로 좌익·우익 활동을 한 사람들까지 ‘희생자’에 포함시켜야 하느냐는 논란이 거셌다. 친정에 왔다가, 피란 왔다가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과 그들은 다르지 않으냐는 문제제기였다. 주민들은 마을 역사를 담은 ‘호남명촌 구림’을 공동집필하며 의견을 모아 갔다. “냉전체제 속에서 약소 민족이 겪은 불행한 전쟁이다. 그래서 역사 앞에서 모두가 희생자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림마을 주민들은 2006년부터 이 같은 화해와 용서의 다짐을 새길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높이 4m, 길이 7m의 위령비는 무덤을 뚝 자른 모양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여기에 월출산을 밑그림으로 그려 넣고, 골짜기마다 희생당한 262명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는 구상이다. 올해 위령제(11월17일) 전까지 착공하기로 했지만 만만찮은 건립비 마련이 걸림돌이다. 주민은 성금 2000만원을 모았지만, 영암군이 약속한 8000만원이 아직까지 지원되지 않고 있다. 정 사무국장은 “정부의 관심이 부족해 예산 확보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530년간 대를 이어 구림마을에서 살아온 현삼식(62)씨는 “위령비 건립은 비극적인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라면서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처럼 생생한 역사교육의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05년 좌·우 희생자 374명을 아우르는 유족회를 결성한 전남 나주시 다도면 주민들은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를 건립해 다음 달 제막식을 갖는다. 나주시가 3000만원을 지원해 성사됐다. 화해를 상징하며 ‘맞잡은 두 손’을 위령비 재단에 그려 넣었다. 다도면 주민 374명이 1948년 11월부터 1951년 5월까지 좌익 세력과 군·경에 학살당한 상처를 덧내지 않고 기록으로 남겼다. 영암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남한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떻게 평가받을까. 북진통일을 외친 이승만은 한국전쟁 발발을 논하는 장에서 반짝 등장하지만, 한국전쟁 과정에서는 언급이 미미하다. 존재감이 없다. 러시아나 중국, 심지어 미국 자료들도 한국전쟁의 주역으로 이승만을 취급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의 남쪽을 지배하고 있던 남한 정부와 이승만은 단지 전쟁을 획책한 북한 김일성과의 비교 대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휴전협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이승만의 극렬한 휴전반대가 주요 변수로 급부상했다. 이 시기 평양과 모스크바, 베이징 그리고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오간 각종 자료를 분석해 보면 ‘이승만’이라는 이름 석 자의 등장 빈도가 갑자기 높아졌다. 특히 1953년 6월18일 반공포로 2만 7000명의 전격적인 석방이 준 충격파는 컸다. 휴전협정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 평양이 발칵 뒤집혔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아침에 면도하다 이 소식을 보고받고 얼굴을 벨 정도였다. ●‘미국의 남자’ 이승만 美와 애증 미국은 진퇴양난이었다. 미국 국내의 들끓는 휴전여론과 달리 중국과의 휴전협상은 평행선을 긋고 있었다. 한국정부와의 관계는 이승만의 휴전반대로 말미암아 담벼락 위를 걷는 아찔한 상태였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간행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러운 이승만 정부의 자세와 행동이 특별히 어려웠다. 이러한 것들은 회담에 역기능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협상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떤 점에서 이 대통령의 조치는 유엔군사령부의 군사적 입장을 위태롭게 하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승만은 어떤 종류의 휴전협정도 반대했다.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오로지 남한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원했다. 그는 ‘중국군의 완전한 철수, 북한 공산당 해체, 인민군 무장해제’ 등을 협상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승만은 1951년 7월 “유엔군이 한국의 분할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보장해 달라.”라는 서한을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다. 트루먼은 이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협조를 요청하는 답신을 보냈다.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합참보고서는 1952년 초 뉴욕 출신의 저명한 천주교 인사인 스펠만이 한국을 방문, 무초 미 대사와 벤플리트 8군 사령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승만이 “미국의 모든 천주교인이 한국에 휴전이 없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정보를 싣기도 했다. 미국입장에서는 수용 불가능한 무리한 요구였다. 미국이 한국의 지도자로 선택한 ‘가장 미국적인 한국인’인 이승만은 그를 키워준 미국을 거역하고 있었다. 소련이 김일성을 북한지도자로 지목한 것처럼 이승만도 미국에 의해 선택되고 키워졌다. 이 시기 이승만을 묘사한 미국 측 자료는 온통 노회, 변덕, 아집, 독선 같은 단어로 도배돼 있었다. 전쟁발발 이전 이승만을 접촉한 한국주둔군 사령관 하지는 “솔직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불안하며, 야비하고, 부패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악평했다. 이승만을 바라보는 미국의 우려가 오래됐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남자’였다. 1905년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선발돼 백악관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방문해 인연을 맺었다. 미국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중단할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랐지만, 그때 이미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맺으려고 작업 중이었다. 서로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재량권을 인정하는 조약이었다. 이승만은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고 나서 프린스턴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훗날 대통령이 된 윌슨의 제자가 됐다. 윌슨은 이승만을 ‘미래 한국의 독립을 위한 구세주’라고 부추겼다. 이승만은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미 국무부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이승만과 미국은 애증의 관계였다. 미국 지도부는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기독교인인 이승만이 미국식 종교와 정치 기조를 따를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마음속에는 미국에 대한 배신과 위선, 불신의 불씨가 자라고 있었다. ●이승만 ‘북진통일’ 정치적 구호 이승만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인 ‘북진통일’은 남한주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았지만 득보다 실이 컸다. 김일성의 남한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구실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스탈린으로부터 원조받은 무기와 군수물자로 완전무장한 북한 인민군과 비교하면 남한의 군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전쟁발발 당시 한국군은 자신을 지키기에도 역부족인 상태였다. 전쟁 열흘 전인 1950년 6월15일 미 국방부에 보고된 군사고문단 보고서에는 ‘한국군은 가까스로 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장비와 무기 대부분은 쓸모가 없었고, 방어능력도 기껏 보름 정도’라고 기술돼 있다. 실제 인민군이 보유한 소련제 T34전차의 위력 앞에 한국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구형 바주카포는 무용지물이었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한 김일성의 남침에 비해 이승만의 북진통일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다. 한국전쟁은 이승만의 의도와는 달리 종결을 향해 달려갔다. 미국 공화당이 1952년 7월 아이젠하워를 대통령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대세는 군사적 종결이 아닌 정치적 종결, 즉 휴전 쪽으로 기울었다. 대통령 후보자 아이젠하워는 같은 해 10월 디트로이트 연설에서 “명성을 걸고 한국전쟁을 조기에 명예롭게 종결짓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새로운 행정부의 정책은 한국전쟁을 끝내는 일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그는 12월2일 극비 한국방문길에 올랐다. 미 행정부 수뇌부는 남한의 정치적 위기는 전적으로 이승만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다고 여겼다. 이 같은 위기가 휴전협상뿐만 아니라 38도 상에 진행되고 있는 군사작전마저도 위협한다고 보았다. 실제 이승만은 1952년 국회 간선을 통한 재선이 어렵게 보이자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이른바 ‘발췌개헌’을 꾀했다. 임시수도인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대파를 제거했다. 한국군 전투부대를 철수시켜 계엄군으로 사용하려 했다.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이 나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인의 군대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이승만은 막무가내였다. 전쟁을 끝내고 싶은 미국에 이승만은 골칫거리였다. 1953년 미국과 중국의 협상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지만, 미국과 이승만 정부와의 사이는 또 다른 고비를 향해 뒤틀려 갔다. 이승만은 4월5일 “판문점에서 무엇이 일어나든 관계없이 우리의 목표는 똑같다. 우리의 변함없는 목표는 한국을 남으로부터 압록강까지 통일시키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유엔군사령부가 중국군이 압록강 이남에 잔류하는 것을 허용하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한국군을 유엔군사령부에서 철수시킬 것이며 단독으로 싸울 것”이라는 내용의 최후 통첩장을 보냈다. ●아이젠하워 한때 李 제거 계획 워싱턴은 이승만을 휴전협상의 훼방꾼이자 위협세력으로 간주했다. 특유의 허세라고 판단하면서도 극단적인 조치로까지 몰고 갈 것으로 예측했다. 달래기에 나섰지만 이승만은 클라크 사령관과의 회담에서 “당신들은 모든 유엔군, 모든 경제원조를 철수시킬 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우리를 도울 것이라고 의존한 것이 우리의 실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협력하겠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면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승만은 6월6일 ‘선(先) 한미방어조약 체결, 후(後) 유엔군과 공산군의 상호철군’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반쪽 휴전이나 평화보다는 싸움을 택한다.”라는 예의 벼랑 끝 외교전을 펼쳤다. 클라크 사령관은 “이 대통령은 송환 불원 한국인 포로를 경고 없이 석방할 수 있다.”는 예언에 가까운 메시지를 워싱턴에 보냈다. 포로경비부대 대부분이 한국군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유엔군은 이를 막을 수단이 없었다. 클라크 사령관의 예언대로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석방하자 아이젠하워는 이승만 제거를 검토했다. 미국 수뇌부는 당시 한국에 임시군사정부를 수립하는 극비의 군사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공포로 석방 다음날인 6월19일 자 미국 국가안보회의 비망록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위험을 없애는 가장 빠르고 유일한 길은 쿠데타”라면서 “이는 확실히 고려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군사자문 기구인 합참은 1952년부터 쿠데타 계획을 세워 놓았다. 합참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6월27일 벤플리트 장군에게 이 계획을 통보했다. 한국육군과 참모총장은 유엔군사령부에 충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밀해제된 미국 합참보고서에 따르면 “이 대통령을 어떤 구실을 붙여 서울로 초대한다. 유엔군사령부가 부산으로 이동하여 주요 지지자들을 체포하고, 주요시설을 방호하며 한국육참총장을 통하여 기존 계엄령을 장악한다. 이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종결토록 요구한다. 만일 거부하면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한 채 연금하고, 요망되는 포고령은 협조적인 것으로 예상하는 국무총리가 발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李 재선 이후 美와 화해모드 다행히 워싱턴의 친위 쿠데타계획은 불발됐다. 현실론을 내세운 참모들의 설득으로 강력한 경고수준에서 그쳤다. 한국 국회도 대통령 직선제 헌법개정을 승인했다. 계엄령은 해제됐고 이승만은 제2대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화해모드로 전환됐다. 미국은 손을 들었다. 미국은 휴전동의를 얻고, 이승만은 그 대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보호우산을 제공받는 선에서 양국의 갈등은 마무리됐다. 아이젠하워는 “한국의 통일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계속 추구한다. 휴전협정 수락 직후에 상호방위조약을 협상한다. 전후 경제원조를 계속한다.”라는 세 가지 조치를 약속했다. 이승만은 극단적인 휴전반대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이끌어냈다. 허물도 컸지만, 오늘의 한국이 있게 한 주춧돌을 놓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전쟁의 산물인 한·미동맹은 단순한 양자동맹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지역동맹”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를 저지하고, 중국을 봉쇄하면서, 일본을 견제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동맹이라는 것이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기자 joo@seoul.co.kr
  • [주말 데이트] 한국인 첫 시카고예술대 名博 이성순 소마미술관 명예관장

    [주말 데이트] 한국인 첫 시카고예술대 名博 이성순 소마미술관 명예관장

    이성순(67) 소마미술관 명예관장은 지난달 22일 건축가 프랭크 게리,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 작가 고(故) 루이스 부르주아·에드워드 호퍼 등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 한국인 최초로 모교인 미국 시카고예술대학에서 세계적인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다. 외국인으로는 두 번째였다. 244년 역사의 시카고예술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대학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남편과 어린 남매를 두고서 1976년 미국으로 혼자 유학을 떠났다. 한 세대가 바뀔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결혼한 여성이 홀로 외국에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학생 때부터 공부해야겠다는 열망이 강했고 책으로만 보던 현대미술을 현장에 가서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동생이 먼저 유학을 떠난 데다 친정어머니가 아이들을 맡아주셔서 조금은 마음 편하게 유학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이 관장은 회고했다. 당시 시카고 예술대에는 한국인이 달랑 3명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한국인 담당 학생처장을 따로 둘 정도로 유학생 숫자만 350여명으로 늘었다. 한국인 졸업생으로는 이 관장 외에 홍상수 영화감독이 유명하다. 그는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2008년 정년퇴직을 한 뒤 서울 방이동 소마미술관의 명예관장직을 맡았다. 하지만 이 관장은 학생들을 가르친 교수이기 이전에 ‘몬드리안 추상화를 앞서는 아름다운 한국 보자기’의 매력을 세계에 알린 섬유예술가다. 조각보로 커튼을 만들어 꾸민 그의 집은 화보 촬영을 자주 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는 흰 모시를 조각조각 이어 붙여 커튼, 천장 장식, 캐노피 등 다양한 예술품을 선보였다. 17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200회 이상 초대전시회에 참여했다. 2000년 교환 교수로 다시 시카고예술대를 찾았을 때 이 관장은 “공예가가 화가와 똑같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염색으로도 그림과 같이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발판으로 보자기의 현대화에 앞장섰다. 전통에 머무르면 전승공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카고예술대의 토니 존스 총장은 이 관장의 이러한 노력을 “한국 문화의 DNA였던 보자기로 새로운 언어와 톤을 창조했다.”고 평가했다. 소마 미술관장으로서 그의 꿈도 크다. 지난 4월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아시아 현대 미술상’의 첫 수상자로 태국의 미디어아트 작가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을 선정했다. 아피찻퐁은 연이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까지 챙겨 아시아 현대 미술상의 권위를 높였다. 오는 9월5일까지는 에이즈로 31살에 요절한 미국의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1958~1990)의 20주기 기념 전시가 열린다. 해링은 기어 다니는 아기, 눈 세 개짜리 인간, 양성인간, 가슴이 뻥 뚫린 사람 등 자신의 아이콘(icon)이 된 이미지를 단순명쾌한 검은 선으로 그려냈다. 10여년간 짧게 활동하며 탄생과 죽음, 사랑과 성, 전쟁 등의 보편적 주제를 애니메이션 같은 이미지로 표현한 해링의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다. 이 관장은 “키스 해링은 상식적인 그림을 뛰어넘는 작가로 책받침, 티셔츠, 책갈피 등 각종 문화 상품으로도 인기가 높았다.”고 소개했다. 그의 목표는 88서울올림픽 25주년과 30주년이 되는 2013년과 2018년에 세계인의 이목을 올림픽 조각공원과 소마미술관에 다시 집중시키는 것이다. 솔 르윗, 세자르 발다치니 등 21세기 스타 조각가들이 꾸민 조각공원의 대형 조각 작품을 재점검하는 심포지엄을 열고, 새로운 작품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작품 활동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모시로 작업하는 이 관장은 손으로 짠 국산 모시 대신 어쩔 수 없이 기계로 짠 중국 모시를 쓴다. 값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탓이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모시로 착각할 만한 신소재를 개발했다더라며 아쉬워했다. 젊은 세대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보자기를 더욱 현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 10월에는 프랑스 파리, 내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시회가 예정되어 있다. 이 관장은 “예술가는 정년퇴직이 없다.”며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글 사진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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