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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 서울, 예스 서울신문/창간정신 그대로...국민 속으로

    ■100년 역사와 발자취 서울신문이 세상에 태어난 지 올해로 꼭 100년을 맞았다. 1904년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후 서울신문,대한매일을 거쳐 다시 서울신문으로 돌아온 길은 잠깐의 영광에 이은 오랜 질곡의 역사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유언론의 표상이었다.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고,의병운동을 적극적으로 알려 항일투쟁의식을 고취시켰다.외세의 경제적 침투를 반대하고 자주적 산업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신교육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인 것도 대한매일신보였다.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계승하여 1945년 11월22일 다시 태어났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지조있는 선비 위창 오세창을 사장으로 주필 이관구,편집국장 홍기문으로 진용을 짰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애당 권동진과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는 고문으로 추대됐다. 서울신문은 중립지(中立紙)를 표방했지만,언론매체들이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공(人共)’을 국호로 하자는 몽양 여운형이 인사말을 싣고,홍벽초 고문과아들 홍기문 국장이 모두 월북한 데서 알 수 있듯 좌파적 색채를 지녔다. 정부에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던 서울신문이 반공지(反共紙)로 노선을 바꾼 것은 1949년 5월3일 공보처의 발행정지처분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당시 공보처장은 “서울신문이 반정부적이고 이적행위를 하는 신문이라는 비난사례가 허다했다.”고 강변했다.그는 “서울신문은 대통령 지방순시 등 정부발표기사를 타지보다 소홀하게 취급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부는 이후 좌익계열의 간부진을 퇴진시키고 우익인사들로 하여금 서울신문을 속간케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주식 48.8%가 일본인으로부터 이전된 정부소유의 귀속재산이어서 가능했다. 작가인 월탄 박종화 선생이 새로운 사장으로 선임된 것은 이런 작업의 결과였다.이헌구 유치진 김동리 등 우익문화예술단체 문총(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멤버들이 대거 참여했다.이후 주주총회 및 간부인사에서 정부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신문은 그러나 정부의 통제가 미치기 시작한 이후에도 일부 정치적 보도를 제외하고는 비판적인 논조를 버리지 않았다. 1952년 경남 거창군내 6개 마을에서 공비내통혐의자뿐 아니라 양민 500여명까지 무고하게 집단학살하고,또 이를 덮으려 한 이른바 거창양민학살사건 때도 그랬다. 서울신문은 당시 사설에서 “우리는 국민방위군사건의 비극이 생겼을 때 울었지만,거창사건을 말살하려던 웃지 못할 희극을 보고는 또 한번 울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후 미묘한 정치적 상황에서는 정부를 옹호하면서,사회적 문제에는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유지한 서울신문의 불행한 전통은 2002년 사원이 대주주인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종수 기자 vielee@ ■지령 어떻게 되나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의 지령을 이어간다.1904년 7월18일 창간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는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구국의 필봉을 휘두르며 독립정신과 민족정기를 고취하다 한일병합으로 폐간되기까지 6년동안 1651호를 발행했다.그러나 대한매일이 그랬듯이,한일병합 이후 1945년 미군정청에 의해 정간될 때까지 발행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지령은 계승하지 않는다.시대와 역사와 발행 주체가 다른 총독부 기관지의 지령을 합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재창간된 서울신문 지령은 1904년에 창간돼 한일병합 때 폐간된 대한매일신보의 지령,광복이후인 1945년 11월22일 창간돼 1998년 11월10일자로 종간한 서울신문의 지령,그 다음날자로 창간돼 2003년 12월31일자로 종간한 대한매일의 지령을 합한 것이다.2004년 1월1일자 서울신문의 지령은 20095호이다. 독자의 눈과 귀 역할 충실히 대한매일신보가 항일의 기치를 드높였던 전설적인 독립언론인 데 비해 대한매일은 권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미완의 언론이었다.1904년 영국인 배설(裵說)과 양기탁(梁起鐸)선생 등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박은식(朴殷植) 신채호(申采浩) 장도빈(張道斌) 등 애국지사 논객들이 총집결해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침략과 관료의 무능에 맞선 자유언론의 표상이었다.그러나 1998년 1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발행된 대한매일은 같은 이름의 대한매일신보사가 만든 신문이지만 권력의 그림자를 벗지 못했다. 서울신문 임직원들은 1945년 11월22일 서울신문이 창간된 뒤 여당지 또는 관제언론이라는 오명과 질곡의 역사를 겪으면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정부가 대주주인 신문이 권력의 고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1998년 2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관제언론의 피해자라고 믿고있던 DJ정권은 서울신문을 정론지로 탈바꿈한다는 명분으로 그해 11월11일자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다. 하지만 독자와 임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가 아니라 새 권력의 일방통행식 결정이었다. 임직원들은 대한매일로 제호가 바뀐 뒤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이어받고 정론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그러나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한 진정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고,1999년 중반부터 민영화를 다시 추진하여 2002년 1월 결실을 맺었다.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회복해야 한다는 얘기는 2002년 후반기부터 나오기 시작했다.민영화로 터진 물꼬는 막을수 없었다. 최대 주주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해 11월18일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회복하는 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72.71%,반대 26.05%로 통과시켰다.12월3일 열린 주주 총회도 전폭적으로 사주조합의 제호 회복안을 받아들였다. 황수정기자 sjh@
  • 원주 토지문화관 작가 요람으로

    “당신 말이 맞아.작은 천국같은 집이야.글도 시작했어.아이디어가 샘솟는데.” “즐겁다니 기뻐.밖엔 나가봤어?” “고요한 평화를 즐기는 중이야.”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 ‘스위밍 풀’에서 영국의 성공한 미스터리 소설가와,그에게 프랑스 별장을 빌려준 편집장이 나누는 대화다.작가에게 창작공간이 절실함을 잘 보여준다.우리나라도 개인 창작실을 갖고 있는 이들이 더러 있지만 일부 이름있는 경우이고 대다수 작가들에겐 요원하다.더구나 신인작가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러나 2년 전 강원도 원주시 토지문화재단(이사장 박경리)이 무료로 운영하는 창작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양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매년 20∼25명의 작가들이 토지문화관의 13개 창작실에서 작품을 쓰거나 구상한다.방 2개로 된 창작실엔 늘 작품을 곰삭이는 진지한 열기가 넘친다. 국내 최초로 ‘작가들의 천국’을 구상한 박경리 이사장은 “문인들의 연구와 창작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마련했다.”며 “깨끗한 공기와 조용한 환경 등 창작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려고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그는 감자 옥수수 등 손수 지은 무공해 부식을 작가들에게 제공하면서 작가 사랑을 실천한다. 당연히 창작실은 작가들에게 ‘꿈의 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지금까지 다녀간 소설가 박완서 강석경 김영현 김남일 정도상,평론가 도정일,시인 이재무 고진하 등 원로·중견작가는 물론 신인작가들까지 한결같이 만족스러운 감상문을 남겼다. 지난해와 올해 머물렀던 소설가 윤성희는 “개인 작업실 없이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나같은 작가에겐 맞춤”이라며 “책도 읽고 산책을 하다보면 영감이 떠오르고 창작속도가 붙는다.”고 말한다.그는 지난 4∼5월 입주해 단편 1편을 써냈다.지난해에도 단편 ‘그 남자의 책’을 마쳤고 장편 ‘너도 못 생겼어’(가제)의 초고까지 완성했다. 2주일간 입주할 요량으로 들어와 100장 분량의 단편 1편을 막 끝냈다는 소설가 박정애는 “애 둘 키우랴 가사에 신경쓰랴 공부하랴 집에 있으면 산만해 작업에 몰두하기가 어려운데 이곳에선 잠깐이지만 모든 것에서 해방된 채 작업할 수 있어 효율성이 높다.”고 밝힌다. 또 시인 임동확은 “글쓰기엔 최적의 조건”이라며 “창작과 그 밑거름이 되는 사색과 공부도 병행할 수 있어 작가로서의 생산성을 최대로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엔 박 이사장이 사재 2억여원을 들여(본인은 “그저 기부”라고 말한다) 지난 6월30일부터 토지문화관 오른쪽 아래 창작실 전용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방 2칸이 붙어 있는 창작실을 대개 1명이 쓰다보니 효율성이 낮은 데다가 다른 문화행사며 대관 탓에 약간 시끄럽고 때론 작가들이 방을 옮겨야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박 이사장이 창작실 전용건물을 세우기로 한 것.현재 창작실은 매년 3월까지 신청을 받은 뒤 4월부터 입주할 수 있는데 1인당 100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문화관광부가 첫해엔 3000만원,2002년과 올해엔 5000만원을 지원했다.내년 지원은 어떻게 될지 미지수다.소설가 박정애는 “작가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면서 알차게 지원하는 흔치않은 공간인 만큼 계속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033)762-1382 원주 글·사진 이종수기자 vielee@ ●토지문화관은 토지공사가 40억원을 들여 1999년 6월9일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회촌마을 오봉산 기슭 3000여평에 연건평 800평의 4층 건물 2개동으로 문을 열었다. 앞건물 1,2층에는 동시통역시설을 갖춘 대회의실을 비롯 3개의 세미나실,식당과 사무실 등을 갖췄다.본관 뒤 건물 3개층이 창작실이다.문화관의 주요 활동은 연구 및 창작활동 지원,국제학술교류,문화운동 및 교육운동. 운영비는 박 이사장이 토지문화재단을 만들 때 쾌척한 10억원의 이자와 대관료 등을 보태 연 5000만원.박경리 이사장의 생태철학에 대한 소신으로 인해 단순히 한 작가,작품기념의 차원을 넘어 환경과 생명을 생각하고 지구를 살리려는 사람들의 터전으로 자리잡았다.
  • “서울대총장이 학벌조장” 학생단체 공개사과요구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대학서열 철폐 주장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한 데 대해 학생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학벌없는사회 전국학생모임과 한총련,전국학생연대회의,민주노동당 전국학생위원회,교육운동연대회의,서울대 21세기 진보학생연합 등 6개 학생단체는 25일 오전 서울 신림동 서울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 총장이 ‘대학서열을 철폐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말한 것은 학벌기득권 세력의 망언”이라며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김재천기자
  • 오피니언 중계석/법륜스님 ‘불교와 사회운동’강연

    현대사회에서 불교는 더이상 현실과 괴리된 ‘산중 종교’에 머물 수 없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사회의 발전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그러면 불교가 이 시대 한국에서 사회의 공동선(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일까? 20일부터 25일까지 경기 용인 삼성휴먼센터에서 열리는 ‘2003 참여불교 세계대회’ 사흘째인 22일 정토회 지도법사인 법륜 스님이 ‘불교와 사회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다음은 강연 요지다.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이다.깨달음이란 어떤 신비한 현상이 아니라,사실을 있는 그대로(실상) 아는 지혜를 말한다.불교의 사회운동은 사회적 모순을 깨닫고,그 모순을 제거하는 실천적 삶이다.부처님은 계급이 있는 사회에서 계급이 없는 사회를 제시했고,여성차별이 있는 사회에서 성차별이 없는 사회를 제시했다.이처럼 부처님은 시대를 앞서서 시대의 비전을 제시하셨다.차별이 없음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며,차별을 없애는 것이 자비다. 불교의 사회운동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사회현상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하고,그 사회적 모순을 개선해 나가는 불교인들의 실천을 말한다.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실현하는 붓다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당연히 계급·인종·남녀·민족·문화·종교의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을 지향해야 한다. 따라서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한 불교인의 사회운동은 마땅히 이 차별을 철폐하는 방향성 위에 서있어야 하며,그 과정과 결과에서도 또다른 차별이나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적으로 실현해야 한다.계율이란 일상에서의 말과 행위를 깨끗이 하는 것이다.즉 스스로 말과 행위를 다듬고,사회적으로 말과 행위를 정화시키는 것이다. 불교의 사회실천운동은 다름아닌 계율의 실천인 것이다.그런데 사회현상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그러므로 이 산업사회의 시대에는 개인의 성실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올바른 정립이 중요하게 요구된다.부처님이 당시의 시대적 모순을 해결했듯이 우리들은 이 시대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좀더 폭넓은 이해와 실천을 바탕으로 이 시대 불교인의 실천덕목으로서 사회운동을 당당히 제시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불교인의 사회실천운동을 정리하면 우선 방법에 있어서 법에 맞게,계율에 맞게 해야 한다.불교인의 사회적 실천은 그 목적뿐만 아니라 목적을 이루는 방법도 법에 맞아야 한다.즉 모든 실천은 반드시 평화적 방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둘째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수행을 기본 입장으로 하는 불교인은 어떤 실천을 행할 때에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아야 한다. 셋째 시대의 요구를 안아야 한다.불교의 깨달음은 현실의 고(苦)를 진단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환경운동,인권운동,평화운동,복지운동,교육운동,정신문명운동 등 삶과 사회의 각 분야의 고를 진단하고 무지를 타파하여,현실을 개선하는 실천운동이 되어야 한다. 넷째 시대의 한계를 넘는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해야 한다.불교인의 사회운동은 사회적 모범을 보이는 수행자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자기변화와 세계변화라는 두가지 측면이 자기 삶 속에서 통일되는방향으로 나아가는 신문명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깨달은 분,붓다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가르쳤다.이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이 평등함을 이 사회에 구체적으로 실현시켜야 한다.인류 공동의 선(善)인 평등이 실현되는 것이 정토세계(淨土世界)이다.그런 미래에 대한 비전을 불교인들이 제시해야 한다.수행은 현실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며 나와 세상을 함께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개개인이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깨달음의 삶이 필요하다.그리고 이러한 개인적 깨달음은 사회 속에 구현되어야 완성되는 것이다. 정리 김성호기자 kimus@
  • 이런 책 어때요 / 린 마을 이야기

    황수민 지음 / 양영균 옮김 이산 펴냄 중국 푸젠성 린(林) 마을의 당 서기인 예원더라는 인물을 통해 중국 농촌마을의 변화,나아가 중국의 현대사를 살핀 연구서.미국 아이오와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는 194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이 마을을 몰아친 토지개혁과 농업집단화,대약진운동,사청운동(사회주의 교육운동의 일환으로 농촌지역의 무능한 간부들을 재교육하거나 제거하는 운동),문화대혁명,개혁개방의 모습 등을 근접촬영하듯 들여다 본다.원주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관찰하는 등 인류학적 전통에 충실한채 생애사적인 서술방식을 택하고 있어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1만 6000원.
  • 교육 시민단체 ‘티격태격’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이 ‘총성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충남 보성초등학교 교장 자살 사건에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사태를 통해 진보와 보수로 나뉘던 갈등 양상은 최근 시민단체끼리 연대하거나 조직을 강화하면서 세불리기와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양재고에서는 작은 토론회가 열렸다.‘새로운 교육운동단체의 등장과 올바른 교육운동의 방향’이라는 주제였다.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교개연)와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등이 주최한 이 토론회는 최근 출범한 교육공동체시민연합(교시연)과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들의 모임(학사모)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학사모를 파헤친다’는 제목으로 발제에 나선 서울 영등포여고 김재석 교사는 “학사모가 지난 1년 동안 한 일이라고는 전교조를 스토킹한 것밖에 없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교시연은 앞서 지난 6일 이념 교육을 문제삼아 전교조를 고발하겠다고 밝혔다.전교조가 2년 전 수업교재로 발간한 ‘이겨레 살리는 통일’이라는 역사책이 반민주적이며 북한의의식교육이 포함돼 있다는 주장이다. 교시연은 지난달 14일 이상주 전 교육부총리 등 사회 각계 원로들이 참여해 만든 교원단체로 현재 회원은 1만여명이다.교시연은 전국 16개 시·도별로 ‘교시연 ○○지역 시민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지부를 조직할 예정이다.2001년 4월 출범한 학사모는 올 들어 교육계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목소리를 높여 전국에 8개 지부와 4200여명의 회원을 갖춘 거대 단체로 급성장했다. 이에 맞서 전교조와 문화연대,교수노조 등은 ‘범국민교육연대’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대전에서는 이 지역 17개 시민단체들이 이미 지부를 결성했다.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중심이 된 ‘노동자 학부모들의 모임’(가칭)도 결성을 앞두고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장군님의 ‘한자예찬’ 30년 / ‘한자교육 전도사’ 이재전 예비역 중장

    이재전(李在田·육사 8기) 예비역 육군 중장은 내년이면 희수(喜壽·77세)인데도 나이를 잊고 산다.현역시절 못지않게 일에 파묻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어릴 적 친구와 군 동기생들은 대부분 현직에서 은퇴했거나,상당수는 이미 작고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요즘 그에게 가장 신명나는 일거리는 한글세대인 청소년들에게 한자(漢字)를 가르치는 일이다. ●한자 보급 전도사 이씨는 매일 아침 (사)한자교육진흥회가 입주해 있는 종로 5가 기독교회관으로 출근한다.한자교육운동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990년 사재를 털어 이 단체를 만든 뒤 회장을 맡고 있다.10·26 사태 당시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있다가 군문을 떠난 그는 83년부터 89년까지 성업공사 사장을 지냈다. 그가 한자교육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수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이유도 있지만 약 30년 전 일선 군단장 재직 때 영관급 장교들이 한자를 몰라 신문이나 전문용어가 많은 병서(兵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된 게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이에 따라 우선 장교들에게 교육용 한자 1800자를 마스터할 것을 지시했다.엉성하지만 ‘교재’도 만들어 배포했다.병사들을 위해 가급적 공부할 수 있는 부대내 여건을 조성해 줄 것도 휘하 지휘관들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일부 부하들 사이에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한글전용 5개년 계획이 한창 추진 중이었는데 정부 방침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고 물러날 그가 아니었다.그의 입장은 단호했다.한글 전용정책에 숱한 문제가 있는 데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은 군인의 도리가 아니라며 오히려 부하들을 나무랐다고 한다. 이씨는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로 구성된 상태에서 한자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않을 경우 실질적인 문맹자를 양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면서 “초등학교부터 한자를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해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표의문자인 한자와 표음문자인 ‘가나’를 적절히 ‘혼용’하는 일본의 예를 들며 우리나라도 학생들의 교과서와 일선 행정기관 공문서에국한문 혼용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국한문 혼용은 일부 단어에 한해 한글을 쓰지 않고 한자를 쓰는 것을 말하고,병기는 한글을 쓰고 뒤에 괄호를 만들어 한자를 함께 쓰는 것을 말한다. ●새 주민등록증 한자 이름도 그의 작품 진흥회 설립 이후 약 13년동안 한자교육 운동을 추진하면서 적잖은 ‘실적’도 거뒀다. 지난 국민의 정부 때 정부가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면서 이름을 한글로만 표기할 계획을 알게 되자 즉각 육사 동기생인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를 찾아가 최소한 이름만이라도 한자 병기를 요구해 관철시켰다.그는 “우리처럼 동명이인이 많은 나라에서 어떻게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들면서 이름을 한글로만 적을 생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또 지난해 월드컵을 앞두고는 고건 당시 서울시장을 만나 도로표지판에 한자 병기를 강력 요구,이 역시 관철시키는 뚝심을 보여줬다. 군 생활을 오래한 때문인지 장병들의 한자교육에 대한 관심은 더욱 각별하다.1999∼2000년 무렵엔 국방부의 협조로 한자교육을위한 벽걸이용 한자교재를 각급 부대에 배포,내무반에 비치토록 했다. 그는 부모의 이름도 한자로 못쓰는 대학생이 태반인 상태에서는 국가 경쟁력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프라이드 장군’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그는 소형 승용차인 프라이드를 손수 몰고 다녔다.신장 176㎝인 그가 소형차를 몰고다니는 모습이 다소 이상했는지 주변 사람들은 “예비역 3성 장군이 그게 뭐냐.차 좀 바꾸라.”는 핀잔과 함께 ‘프라이드 장군’이란 별명을 붙여줬다고 한다.요즘은 사업을 하는 아들이 ‘제발 나이를 좀 생각하시라.’며 기사가 달린 차를 대줘 이 차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고령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무릎이 약해진 것을 빼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매일 아침 기상하면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 근처 공원에서 약 1시간씩 걷기운동을 한다.또 저녁에는 인근 헬스클럽에서 1시간 반 정도 각종 기구를 이용해 체력운동도 한다.그래서인지 70대로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그는 “젊게 보이는 것은 아마 쉼없이 일을해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씨는 한자교육운동 이외에도 국방일보에 자신의 군시절 주변 얘기 등을 재미있게 풀어쓰는 ‘온고지신’이란 연재물을 벌써 수개월 째 연재할 정도로 정열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한글만 쓸 것으로 보이는 북한에서도 초등학생들에게 한자교육을 시키고 있다.”면서 “젊은이들에 대한 한자교육을 강화하지 않을 경우 자칫 동양문화권에서 스스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행자부장관과 허심탄회한 대화 / 윤부총리 “전교조는 노동운동쪽”

    교육행정 정보시스템(NEIS)시행과 관련,‘교체압력’을 받고 있는 윤덕홍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4일 “전교조가 교육운동보다 노동운동 쪽으로 기울어져 점점 어렵다.”면서 “제가 중간에 서 있으려고 했는데 양쪽에서 신념이 없다고 흔들었다.”고 말했다. 윤 부총리는 오후 청와대에서 국사편찬위원장과 소청심사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등과 이같은 대화를 나눴다.윤 부총리와 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입장하기 전까지,풀(pool)기자가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듯,‘솔직한’ 발언을 쏟아냈다.윤 부총리와 김 장관은 언론에 화살을 돌리는 말도 했다. ●김두관 장관 교육부와 전교조 갈등은 해묵은 거지요. ●윤덕홍 부총리 87년 그때는 굉장했죠.전교조도 초창기에는 굉장히 열정적이었다.지금은 3분의1은 과격하고,3분의1 정도는 열심히 하고,3분의1 정도는 전교조 우산 밑에서 피하는 모양이다.지금 전교조는 민주노총 산하가 되었다.성격도 조금 바뀌었다.교육운동보다 노동운동 쪽으로 기울어 점점 어려워진다.●김 장관 프랑스에서 국민연금 문제로 파업을 한다고 들었다.그곳에서는 노동단체들이 파업을 하면 시민들이 고통을 감수한다.우리는 “손발이 묶였다.”고 언론에서 압박할 것이다.원칙대로 하면 원칙대로 했다고,타협하면 타협했다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압박을 한다.우리나라 행정조정이 굉장히 어렵다. ●윤 부총리 맞다.교육도 그렇다.조금 다독거리고 타협하면 “밀렸다.”고 하고,밀어붙이면 “강행한다.”고 한다.이래저래 언론에서 야단이다.밀어붙이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타협하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제가 중간에 서 있으려고 했는데 양쪽에서 “소신이 없다.”,“신념이 없다.”고 흔들었다. ●김 장관 중간에 서기 어렵다.회색인이라고 한다.사회를 이분법적으로 해석한다. ●김완기 소청심사위원장 일제 치하의 투쟁과 좌우갈등,독재체제의 반항 등을 거치면서 선명한 것이 대단히 가치 있는 것으로 길들여졌다. ●윤 부총리 교육부장관이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 와서 때리고 가든지,아주 개혁적인 사람이 와서 손들어주든지 둘 중 하나면 쉽게된다.나는 양쪽 입장을 다 듣다가 양쪽 다 터졌다.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못하게 됐다. ●김 장관 선생들이 양보를 잘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보죠. ●윤 부총리 대학의 분쟁은 타협이 없다.분쟁이 있던 대학의 총장을 해봤다.3년 다독거려 겨우 풀렸는데 정말 어렵다. ●김 장관 국회의원 한분 한분이 헌법기관이라 독자적이듯이 대학교수도 총장 얘기를 잘 안듣는 것 같다.행자부는 그래도 라인조직이라 장관이 시키면 크게 잘못된 게 아니면 한다. ●윤 부총리 어지간한 분쟁을 잘 해결해 왔다.그런데 이번에는 해결이 잘 안된다.정말 어렵다. 문소영기자 symun@
  • [기고]지방대육성법 조속 제정을

    ‘참여 정부’의 11대 주요 국정과제 중 지방대학을 지역발전과 혁신의 주체로 육성한다는 정책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지방대학 육성책은 수도권 교육집중 현상을 완화하고 지역간 균형발전을 도모하려는 사회구조적 치유책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학이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중의 하나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2분법적 대학관이라 할 수 있고 학문 분야의 편제에 있어서나 발전모형의 모색에 있어서도 다분히 수도권 지향적 사고에 의해 영향을 받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지방소재 대학간의 우열적 시각을 타파하여 고질적인 대학서열 구조를 해소하려는 지방대학 종합 육성책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특히 지역사회와의 밀접한 연계를 통한 학생유치와 산학연 협동 등 지역특성화를 통한 종합발전 모형으로 모색하는 일은 더더욱 바람직한 방향이라 볼 수 있다.따라서 법제도적으로는 지방대육성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여 해법을 내놓아야 할 것이고 개별 대학 차원에서의 집중과 선택 원칙이아니라 지역혁신 네트워크 모델을 통해 지방대학간,지역간 공통인프라 구축 등 지방개혁과 자치권 확대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대 육성은 쉬운 과제만은 아니다.지방대학을 육성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으나 해법을 실천하는 데는 교육운동과 사회구조 개편운동으로 접근해야 한다.따라서 지방대학 육성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간과해서는 아니될 문제들이 있다. 첫째,사법고시와 국가주요고시 등에 의한 취업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지역인재할당제의 도입이 필요하나 기회평등과 능력에 따른 직업선택 등 법적인 쟁점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둘째,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없이 지역사회내 기관간,대학간의 성숙된 협력과 자율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셋째,지방대의 인프라 구축과 교육연구여건 개선 등의 노력,지역산업체와의 발전모델 모색,그리고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충원시스템 개선 등 지방독자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넷째,수도권 대학과의 협력체제 등지방대학 집중육성에 따른 수도권대학의 위상 재정립과 관련해서도 파생될 수 있는 문제들을 고려하여야 한다. 다섯째,지방대학의 위기는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나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제반문제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정부주도의 중앙집권식 경제발전 전략을 수정하는 과제와 연관된다.특히 지방대학의 문제는 지방문화와 경제 등 지방경쟁력 배양의 차원에서 우리나라의 대학교육 구조를 재편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방대학 육성방안 수립에 있어 학생수 감소에 따른 종합적인 대책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지방대학의 위기는 무엇보다 학생수 격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우리나라 대학 지원자 수는 출산율 감소에 따라 2011년까지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이점에서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학생이 없는데 집중적 재정투자만으로 경쟁력을 배양할 수는 없다. 이러한 문제들이 있지만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방대학은 반드시 육성되어야 한다. 이 현 청 대교협 사무총장
  • 국회교육위 공청회/ 교원정년 연장 ‘첨예 대립’

    국회 교육위는 20일 오후 교육전문가 8명을 진술인으로출석시킨 가운데 ‘교원정년 연장에 관한 공청회’를 가졌다. 찬성론자들은 교원 수급난 해소와 교단사기 진작 등을 고려해 63세 정년 연장을 주장한 반면 반대론자들은 교원 수급난 해소 효과 미흡,일반직 공무원 등과의 형평성 등을들어 첨예하게 맞섰다. 찬성론자인 이군현 교총 회장은 “교원 정년이 1년 연장되면 초등학교의 경우 내년엔 1,142명,2003년에는 1,488명이 확보돼 교원수급문제를 상당히 해결할 수 있다”며 교원의 자존심을 회복해달라고 호소했다.김진성 명지대 객원교수는 “퇴직교사 3분의 1이 기간제교사로 되돌아왔다”면서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으로 줄이려는데 교사가 부족하다”며 교원 정년을 65세로 환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학곤 전국초등교사회장도 “지금 농촌학교에선 교원 수급난으로 20대 젊은 교사가 퇴직하면 60대 교사를 기간제로 채용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반대론자인 전풍자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이사장은“정년 단축은 IMF 상황을 계기로 한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 형평성 차원에서 이뤄진 사안”이라면서 “정년을 1년 연장해도 내년에 평교사는 초등의 경우 93명,중등의 경우 284명이 남는 데 불과하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경양 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은 “99년 이후 올해까지퇴직 교원수는 1만3,261명에 불과하나 명예퇴직교사는 3만12명인데,이는 정년단축 탓이 아니라 교원연금 감소를 우려한 측면이 많다”며 정년단축으로 교사부족이 초래됐다는 주장을 반박했다.최현섭 정의사회교육운동 대표는 “정년환원 정책 추진보다는 교육 전반을 점검하고 바로 세워나갈 국민특위를 국회 산하에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좋은교육운동 한기택 회장, 유엔 올해의 평화교육자상

    코리아교육신문사 사장 겸 좋은 교육운동본부 회장인 한기택(韓玘澤·63·전 이리여고 교장)씨가 유엔 산하 IAEWP(세계 교육자 연합)가 주관하는 올해의 평화 교육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세계 105개국에서 교육발전에 공헌한 인사를 선정해 수여하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97년 경희학원 설립자인조영식박사와 99년 전국학원연합회장 문상주 사장 등이 수상했다.한씨의 평화 교육자상 수상은 34년간의 교단생활을통해 교육의 민주화와 합리화에 기여하고 98년 명퇴 후 3년여간 사회봉사단체를 조직,청소년 선도운동에 크게 공헌해 온 데 따른 것이다. 지난 64년 교단에 선 한씨는 산간벽지로 발령난 초임시절다양하고 효과적인 지도방법을 통해 농촌학생의 학력신장을 도모하는 한편 우리집 뿌리 찾기 운동을 전개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7월의 독립운동가 김승학 선생

    국가보훈처는 항일 언론활동 및 무장투쟁을 벌인 희산(希山) 김승학(金承學)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81년 7월 평북 의주군에서 출생한 선생은 한성고등사범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고,졸업후 배일강연을 하다 체포돼 3개월의 옥고를 치렀다.1907년 신민회에 가입해 비현면 면감,의주 극명사범학교 학감,명의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민족교육운동을 전개한 뒤 1910년 단신으로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망명했다. 21년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을 복간해 사장을 맡는한편 교과서 편찬사업과 독립운동 사료수집활동을 펼쳤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노주석기자 joo@
  • 국내·日총련계 초등교 첫 결연

    전교조 출신 첫 초등학교 교장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조총련계 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는다. 경기도 성남시 은행초등학교 이상선(李相善·61) 교장은16일 “우리 아이들에게 북한과 총련 재일동포 친구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갈 ‘형제’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18일일본을 방문,에히메(愛媛)현 마쓰야마(松山)시의 조총련계시코쿠(四國) 초등학교와 결연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내년 8월이면 정년이 되는 이 교장은 지난 87년 6월 항쟁때 전교조의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를 시작으로 교육운동에 뛰어들었다.그는 지난 98년 전교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교장에 임명됐다. 이 교장이 총련동포 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3월말 마이러브코리아(www.mylovekorea.net)라는 재일동포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송재근(宋在根·27)씨의 제의를받으면서.학생수 부족과 재정난,정보 부족으로 우리말과 우리문화에 대한 교육이 어려워 나날이 일본화되어가는 총련학교와의 교류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도움을주자는 송씨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 교장은 “일본 사회에서 온갖 멸시를 견디며 우리글과우리문화를 지키고자 노력해온 총련학교 선생님,학생들과함께 독도·위안부문제·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남북이 화해와 협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나유달리 교육분야만은 협력이 부진했다”면서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고착화시킨 사상의 벽을 넘어 함께 어깨동무할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소망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네티즌 칼럼] 오락가락 교육정책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올해 대입수능시험을 지난번보다어렵게 출제하겠다고 밝히자 일선 선생님과 학부모들은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또 한번 실망을 하게 되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출범한 교육발전 5개년 계획은 변질된지 오래고 또 안정된 교직풍토 조성을 위해 마련된 교직발전종합방안 역시 표류하고 있다.또 ‘보충수업 엄금’ 방침은 특기 적성형 보충수업이라는 미명아래 사라졌고,어제는 ‘열린교육’을 외쳐대더니 오늘은 그 말조차도 없애는 등 교육정책의 조령모개가 반복되고 있다. 작년에는 수험생,학부모,선생님 그리고 대학 모두가 허탈해 할 정도로 쉽게 수능을 출제하더니,금년에는 갑자기 평균성적이 최고 36점 이상 낮아질 만큼 어렵게 출제한다고발표했다.이로써 정부는 수험생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무책임한 행정이라는 지탄을 받고 있고,동시에 반복되는 일관성 없는 대학입시 정책에 고3 교실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가원은 학교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 등을 내세워 ‘쉬운 수능’ 고수 입장을 천명했었다.그러나 대학입시를 불과 8개월 남겨 놓고 수험생들에게 중요한 학습지침이 되는 수능시험 출제방향을 널뛰기식으로 발표하여 수험생들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 98년에 중3이던 현재의 고3 학생들에게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며 무시험 환상을 심어 주었었다.그러나 오히려 올 수능시험이 예년보다 어렵게 출제된다는소식에 고3학생들은 당시 발표했던 내용을 되새기며 교육정책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고3 학생들부터 적용되는 대입제도는 수능이 등급제로 바뀌어 수능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수능이 등급제로 변하고 자격기준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쉬운 수능’이 문제가 없다”고 하던 당국이 느닷없이 태도를 바꾼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올해도 쉽게 출제한다는 말을 믿어온 수험생들은 이에 맞춰 공부해 왔을 것이다. 일선고교와 입시학원은 수능시험의 난이도가 높아짐에 따라 수능 부담을 피하기 위해 1학기 수시 모집에 수험생들이 대거 몰리고,대학생 재수생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올해부터는인원제한을 없애고 수시 모집 기회를 늘림에 따라 지원자가 대거 몰릴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어 고3학생들의 진학지도와 생활지도에 일대 혼란이 예견된다. 중요한 교육정책이 이처럼 중심을 못 잡고 갈팡질팡해서는 안된다.교육정책이 3년 앞은커녕 1년도 못 내다보고 있으니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란 말이 무색할정도다. 오죽하면 “교육인적자원부가 없어져야 교육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등급제 도입 취지에 걸맞은 수능난이도를 유지하되,고3 수험생의 부담을덜면서 공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한다. 또 대학입시를 정부가 끌어안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선진국으로서 이에 걸맞은 대학입시 제도를 연구하여 학생 선발권 등을 과감하게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흔들림 없는 교육정책을 세우고 추진하는 데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기 택 좋은교육운동본부 회장] koreaedu@borahome.net
  • 전교조 이수호씨 “공교육 살리는 정책대안 제시 주력”

    “11년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를 처음 만들던 때의 초심으로돌아가서 피폐해진 공교육을 살리는 ‘제2의 참교육운동’을 펼치겠습니다” 지난 7∼9일 실시된 전교조 제9대 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이수호(李秀浩·51)후보는 10일 한국 교육의 실질적인 대안세력으로서의 전교조 역할을 다짐했다. 전교조 합법화 이후 처음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이후보는 러닝메이트인 김은형(金恩亨·43·수석부위원장)후보와 함께 총투표자의 51.27%인 3만3,933표를 얻어 당선됐다.조합원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총 유권자 7만5,977명중 6만6,187명이 참가해 87.11%의 투표율을 기록했다.임기는 내년 1월1일부터 2년간이다. 영남대 국문과를 나온 이 당선자는 지난 87년 전국교사협의회 부회장과 89년 전교조 사무처장,97∼99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을 역임한전교조의 산 증인.현재 서울 선린정보산업고 교사로 재직 중이다. 김 수석부위원장 당선자는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뒤 89년 서울오류중 교사시절 전교조 결성으로 해직됐다가 94년 서울 신원중에복직돼 전국국어교사모임회장을 지냈다. 이 당선자는 “학교의 존재마저 위협받는 현 교육의 망가진 실상을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하고,정책대안을 제시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이와 함께 의무교육 확대실시,사립학교법 개정,교육재정확충, 주 5일 수업제 실현 등 선거공약들을 차근차근 실현해나가는데온힘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이순녀기자 coral@
  • 시공 아트시리즈 4권 출간

    도서출판 시공사가 펴내는 시공 아트 시리즈 4권이 새로 나왔다.‘호안 미로’‘르네 마그리트’‘포스터의 역사’‘바우 하우스’ 등이다.영국의 대표적인 미술평론가이자 화가인 롤랜드 펜로즈가 지은‘호안 미로’(김숙 옮김)는 야수주의,입체주의,다다이즘,초현실주의 등 동시대 미술사조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한 스페인 화가 호안 미로의 생애와 작품을 다뤘다.저자는 ‘기호의 고안자’‘몽상의 발명가’로 불리는 미로의 예술세계를 20세기를 특징짓는키워드인 개성과 파격의 좋은 예로 꼽는다.‘르네 마르그리트’(수지 개블릭 지음,천수원 옮김)는 벨기에 출신 화가 마르그리트의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그림들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발모양의 신발,다리 달린 물고기,‘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 같은 파이프 그림등을 대상으로 했다. 예술의 본질이 창조라면 광고와 선정의 기능을 담당하는 포스터는부차적인 예술형식일 수 밖에 없다.하지만 포스터는 툴루즈 로트렉,알퐁스 무하 같은 미술가 뿐만 아니라 무대디자이너와 산업디자이너를 포함한 모든 예술가들의 관심을 끌었다.그것은 또한 아르누보,상징주의,입체주의,아르데코에서부터 바우하우스의 조형성과 1960년대히피와 언더그라운드 운동의 ‘의도적 모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형식을 선보이며 생명력 넘치는 예술형식으로 발전했다.영국 첼시미술학교 학장을 지낸 존 바니콧이 쓴 ‘포스터의 역사’(김숙 옮김)는 포스터와 순수미술의 상보적 관계를 밝히는데 초점을 맞췄다. ‘바우하우스’(프랭크 휘트포드 지음,이대일 옮김)는 근대 디자인운동의 모태가 된 바우하우스의 설립배경과 전개과정을 다룬 책이다. 바우하우스는 원래 1차대전 이후 독일의 국가재건 목적의 일환으로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주도아래 시작된 것.이것은 미술과 공예분야를 아울러 산업사회의 물적 생산방식에 걸맞는 새로운 양식을 창출하고자 했던 교육운동으로 20세기 디자인 양식의 근간이 됐다.이 책은 디자인 문제가 단순히 ‘모양내기’의 차원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측면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것임을 일깨워준다.각권 1만2,000원. 김종면기자
  • [대한광장] 단군과 기독교

    기독교도들의 단군상 파괴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그러나일제하에서는 기독교와 단군은 결코 긴장관계가 아니었고,서로 어울렸다.그 구체적 증거를 일제하 경기도 강화 기독교인들이 수행한 마리산부흥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마리산부흥회는 일제하 강화 기독교인들이 형성한 독특한 신앙형태로 기독교 신앙과 민족의 해방과 독립,단군신앙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강화는 한말 기독교 민족운동가인 성재 이동휘에 의하여 보창학교,합일학교 등 교육운동이 크게 일어난 곳이며,기독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의병을 일으킨 곳이다. 강화의 기독교인들은 3·1운동을 주도하여 열정적인 민족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당시 교회들은 부흥회와 사경회를 자주 개최하였는데,새벽기도회로 하루를 시작하여,오전에는 성경공부하는 사경회를 열고,오후에는 교인들이 흩어져 개인 전도와 낙심자들을 심방하고 저녁에는 부흥회로 모였다고 한다. 이들의 마지막 부흥사경회의 모임은 마리산 참성단에서 가졌는데 이때 강화의 여러 교회는 연합집회로서기독교인 수백인이 모여 노천기도를 올렸다.이들은 횃불을 들고 참성단을 보수할 돌들을 지고 찬송을 부르면서 민족의 성산 마리산 산정에 올랐다. 참성단을 향해 가면서 중간 중간에 멈추어 기도하고,민족의 해방과독립을 하나님께 빌었다. 이들 기독교인은 당시 일제가 의도적으로 훼손했던 참성단을 보수하면서 국조 단군의 민족신앙과 기독교 복음을 동앗줄처럼 하나로 연결시켰다.참성단에 올라 집회를 가진데서 훗날 ‘마리산부흥회’란 명칭이 붙여졌고 강화 기독교인들만의 특이한 신앙집회로 자리잡게 되었다.부흥회는 강화 근처의 장봉도라는 섬에서 시작되었다. 그후 섬에서 섬으로 집회가 연결되다가 마지막 모임을 마리산 참성단에서 갖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그들은 바다를 건너는 과정을 출애굽여정으로,또 산에 오르는 과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으로 해석함으로써,성서의 해방과 구원의 역사를 강화에서 재현하였다.일제시대였기 때문에 독립과 민족을 말할 수는 없었으나,민족의 국조신앙 근원지인 참성단에 올라 기도하는 교인들의 의식 속에크게 자리하고있었던 것은 민족이었다.강화 사방에서 모여든 교인들은 돌을 이고지고 정성을 다하여 참성단을 향하였고 허물어진 제단을 보수하였다. 오늘날까지 참성단의 옛 모습이 유지된 것은 바로 강화 기독교인들의 민족신앙 덕분이었다. 마리산기도회가 민족신앙과 연결되는 결정적인 증거는 이 부흥회를이끌었던 지도자들이 3·1운동때,강화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민족운동가로 활약했다는 사실이다.마리산 신앙집회는 일제시대는 물론이고 1950년대까지 해마다 열렸다. 기독교와 단군은 결코 배타적인 것만이 아니었음을 알수 있다. 개신교는 이땅에 전파된 지 100년을 넘어섰고,천주교는 200년을 넘었다.더이상 서양종교가 아니다.기독교는 조선후기와 한말,일제하를거치면서 한민족의 고난과 민중의 어려운 현실에 동참하였다.기독교는 한민족의 종교 지형속에서 민족종교,민중종교로 자리하고 있다.따라서 기독교는 한민족 문화의 중심이요,민족정체성을 대변하는 단군을 박대해선 안된다. 일제하 노령 및 서·북간도에서는 단군을 민족독립운동의 한방편으로 삼았다.당시 단군신앙의 대종교와 기독교는 연합하여 교육·사회결사·무장독립운동을 전개했다.기독교가 짧은 기간동안 한민족에게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민족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데 있다.그간 기독교는 인권운동,빈민운동,민주화운동,통일운동에 헌신해왔다.이제 민족문화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새 민족공동체운동을 일으켰으면 한다. 서굉일 한신대교수·국사학
  • 재미 독립운동가 이보배여사 별세

    재미 독립운동가 고(故) 임창영(林昌永) 박사의 미망인 이보배 여사가 29일미국 LA에서 심장질환으로 별세했다.88세. 고인은 1912년 원산에서 태어 나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36년 도미,임 박사와 결혼한 뒤,서재필 박사 등과 함께 독립 및 교육운동을 펼쳤다.74년 방북,당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비서와 면담하고 이후에도 3차례나 북한을 방문하는 등 통일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재미 민주화 여성대표를 지냈으며 임창영 통일재단과 기념사업회를 설립,운영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2남 1녀가 있다.연락처는 미국 (510)848-6997,한국 (02)746-3839.
  • 진보작가 송기숙씨 새장편 ‘오월의 미소’

    소설가의 펜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역사적 사건이 있는가 하면 펜이 돌멩이에 부딪히는 양 소설가를 좌절시키는 역사가 있다.그런데 다른 것 제쳐두고 돌멩이같은 역사에 문학과 이야기의 길을 내려고 자꾸자꾸 펜을 들이대는작가들이 있다. 송기숙이 장편소설 ‘오월의 미소’(창작과 비평사)를 냈다.5·18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행정적으론 반듯해졌지만 5·18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피하고 싶은 역사의 험로이다.또 5·18은 한국의 작가들에게 한번은넘어야할 악산(惡山)으로 다가오나 머리속 생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통과의례로서가 아니라 악산에 더 끌리는 진정한 등산가처럼 5·18의 흉악한 돌산을 오르고 또 오를 그런 작가도 여럿이다.송기숙도 그중 하나다. ‘자랏골의 비가’(1977) ‘암태도’(1981) ‘녹두장군’(전12권 1989∼94) 등 역사성 짙은 소설을 쓴 작가는 70년대부터 두번의 옥고를 치르며 교육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나섰으며 80년 5·18때 공수부대 철수후 구성된 시민수습위원으로 활동했다.5·18 이후에는 항쟁에참여한 700여명의 구술을 받고 정리하는 작업을 주도했다.즉 작가는 5·18을 매우 잘 아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5·18을 잘 아는 작가가 쓴 ‘오월의 미소’에서 5·18은 어떤 색조로 흐르고 있을까.5·18하면 피빛이 먼저 연상되는 많은 독자들은 이렇게 물을 수있다.혹시 발을 들여 놓는 즉시 괴기스러운 색깔로 변해버리는 악산의 하늘빛같지는 않을까.5·18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항쟁의 핏빛 기록이 아닌 소설을 보기 위해 책을 펴든 독자들에겐 다행히 ‘오월의 미소’는 그다지 험상궂거나 원색적이지 않다. 작가는 독자를 끌기 위해 알면서도 부러 색채를 순화한 것인가.그렇다기 보다 20년 가까운 세월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퇴색에 더 가깝다. 1980년 당시 재수생이었던 주인공은 좋아하던 여고생과 그 언니가 공수부대원에게 능욕당하면서 5·18의 한가운데로 내동이쳐지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공수들의 비인간적 만행을 차례로 목도한다.공수들에 대한 복수에 모든 것을 던지며 목숨을 걸고 시민군에 가담했던 주인공은 계엄군아닌 민간인 여자를 쏘아버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실수를 저지른다.시민군 가담전력이나 오발사고가 행정적으로 반듯해진 가운데 주인공은 사회생활에 복귀하고 십여년의 시간이 흐른다.5·18이후의 시간이 무심히 흐를 리 없다. 정신이상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여고생 친구의 언니는 고향에서 자살하고,주인공은 사업상 알게된 공수단 장교가 의문스럽게 익사하는 현장에 있게 된다.그리고 이 두 남녀의 영혼혼사를 지켜본다. 그러면 주인공 자신은 어떤 사연과 변화를 겪는가.5·18 주동자들을 용서하려는 정치 바람에 동참할 수 없어 테러를 꿈꾼다.화해 쪽으로 한걸음 떼기와항쟁정신의 불씨지피기가 20년 세월이 가져온 퇴색의 생산물로서 이 소설의주제다. 이런 화해시도니 테러모의니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질 독자도 있을 것이다.자연스런 퇴색이 아니라 섣부른 변질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분명 ‘오월의 미소’는 5·18이란 악산을 너무나 가뿐하게 넘어버렸다는 인상을 피할수 없다.그러나 오르고 또 올라야 할 악산이라면 처음부터 위험한 코스에 달려들 필요는 없다.송기숙은 반드시 이번보다 더 무서운 길로 더 꼼꼼히 오르는 등반을 시도할 것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 美공화 大選후보 6명 TV토론회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도전장을 낸 공화당 후보경선자들이 6일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열띤 공방전을 벌였다.애리조나주피닉스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 TV토론회에는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 등6명의 후보경선자가 출연했다. 이날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토론회에서 후보들은 자신을 내세우고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한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을 구사,본격적인 여론몰이에 시동을 걸었다.그러나 아직 선거 초반인 탓인지 예상보다 상대방에 대한 험담의수위는 높지 않았다. 시류에 맞게 토론주제는 주로 감세(減稅)문제와 외교,인터넷 상거래 등에집중됐으며 선두를 달리는 부시 주지사가 다른 후보경선자들로부터 집중적인공격성 질문을 받았다. 유타주 상원의원 오린 해치는 부시에게 “당신은 대단한 주지사지만 겨우 5년차 밖에 안됐다”면서 “대통령이 되기전 경험을 더 쌓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에 내 부통령후보로 고려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교육운동가 게리 바우어 역시 부시에게 “왜 중국정책에서 레이건이 아닌클린턴을 따라갑니까?”라며 최근 그의 대 중국정책 언급변화를 꼬집었다.한편 스티브 포브스는 최근의 유가상승과 관련된 정책 질의로 석유산업에 종사했던 부시를 우회적으로 몰아세웠다. 막상 부시 후보는 “여론 동향을 볼때 나에 대한 집중적인 공박은 당연한것”이라면서 “그것이 정치과정 아니겠는가”라며 가볍게 받아 넘겼다. 인기 공약도 적지 않았다.유일한 흑인후보인 앨런 키이즈는 소비세를 모두소득세로 대치하겠다는 과감(?)한 제안으로 박수를 받았지만 다른 후보들로부터 웃음을 사기도 했다. h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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