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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위안화 2% 전격 절상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서울 전경하기자| 미국 달러화에 위안화를 고정시켜온 중국 정부가 21일 저녁 고정환율제(달러화 페그제)를 폐지하고 외환바스켓에 기반한 관리변동환율제를 도입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외환바스켓제도는 한 나라의 주요 교역국이나 외환시장에서 자주 거래되는 국가들의 통화 거래량을 반영하고 자국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환율을 정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정환율제에서 시장평균변동환율제도로 옮겨 가는 중간단계로 평가된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이날 웹사이트 성명을 통해 달러화 페그제를 폐지하고 외환바스켓에 기반한 환율제를 22일부터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현행 위안화 환율은 21일 발표 시점부터 달러당 8.28위안에서 8.11 위안으로 2% 절상했다. 인민은행은 1년만기 미 달러와 홍콩 달러의 예금금리 상한선도 0.5% 포인트씩 올렸다. 중국의 이번 조치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과 관련, 진동수 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은 “2% 절상은 국내 경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관리변동환율제를 택했다는 것이 큰 의미”라고 분석했다. 재경부와 한국은행은 환투기등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있을 경우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인민은행은 성명에서 “중국의 대외교역 발전상을 감안해 상대적 가중치를 고려한 외환바스켓에 기반해 여러 주요 통화들에 연동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위안화는 이제부터 바스켓에 대해 0.3%의 범위(밴드) 내에서 거래가 허용될 것”이라면서 “당국이 날마다 위안화 종가를 발표할 것이며 이는 다음 거래일의 기준 가격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바스켓에 포함될 통화들은 밝히지 않았다. oilman@seoul.co.kr
  • “北­주변국 교역 늘어 6자 지연”

    중국과 한국, 러시아 등 북한 주변국들이 북한과의 무역·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 때문에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지연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이 28일 보도했다. 특히 북한경제는 사실상 중국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난해 북·중 무역규모는 13억 9000만달러로 전년보다 35% 늘었다. 북한은 식량, 연료를 비롯한 생필품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북한을 다녀온 유럽의 구호단체 관계자는 “북한에서 거래되는 물품의 80% 정도는 중국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기업에 대한 중국의 투자도 증가 추세이며 지난해 총 투자액은 5000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광산, 제지, 담배 제조 분야에 주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또 남북간 지난해 무역규모는 약 7억달러로 2000년에 비해 64% 가량 늘어났다. 한국은 중국에 이어 북한의 두번째 교역국이다. 러시아도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강화, 지난해 북·러 무역액은 2억 1340만달러로 전년보다 80%나 증가했다. 무엇보다 한국과 러시아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한 고위관료는 “주변국들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북한의 무역이 활성화되는 것은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켜 6자회담에 복귀시키려는 미국의 전략과 상반되는 것이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와 외교관들은 북한의 경제난이 완화되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복귀시키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미국은 중국측에 북한을 압박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를 꺼리고 있으며, 오히려 미 정부가 대북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중앙PSAT연구소 실전풀이]

    다음 글은 세계적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동향과 우리나라의 FTA 추진에 대한 신문기사의 일부이다. #기사 1 이제는 노동·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투입에 의해 고도성장을 이루기는 어렵다. 인력도 늘지 않고, 근로시간은 줄어들고, 저축은 감소하는 추세이다. 생산성 향상 없이는 5%의 성장조차도 이룰 수 없게 됐다. 대외 개방을 통해 시장에서 경쟁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경제 성장의 필수요건이며,FTA는 이런 맥락에서 추진되는 것이다.(중략)물론 특정 계층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게 하면서 대외 개방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농업·농민·농가에 대한 정부의 종합적 정책은 피해 계층에 적정한 보상을 제공하고 있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들에 대한 보살핌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FTA 체결에 대한 판단은 냉철한 머리로 한국의 장래를 고려, 결정해야 한다.FTA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를 국제적 외톨이로 남게 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신인도를 추락시킨다는 점을 정치 지도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기사 2 중국과 인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선언했다. 친디아(China+India)로 불리는 두 나라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21세기 국제질서가 새로운 재편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물론 중국과 인도의 현 경제 현실은 세계경제의 4분의1을 독차지하는 미국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두 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추세를 보이는 데다, 시장규모만으로도 세계 인구의 39%를 차지할 정도다. 중국경제의 미국 추월 시점은 이미 전문가의 학문적 탐구대상이 된 지 오래다. 양국은 이번 제휴과정에서 군사적 충돌 등 수십년간 갈등을 겪어 왔던 국경 분쟁을 상호 동등한 안보원칙에 따라 해결하는 외에,FTA 체결을 위한 기초작업을 벌여간다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우리의 시선을 먼저 끌어들이는 대목은 양국의 FTA 체결이다. 양국 경제의 통합은 세계 공장과 탁월한 정보기술(IT)간의 융합을 촉진, 독보적 경쟁력을 갖추게 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에도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친디아 경제권에 매몰되느냐 아니면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무기로 세계 최대 경제권을 시장으로 활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모두가 노력하기에 달려 있다. 위 기사에서 보여지고 있는 FTA에 대한 입장과 반대 견해를 가진 사람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1)시장의 진입 및 선점이라는 측면을 생각할 때, 이러한 FTA 전쟁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수년 내에 주요 교역국은 ‘그들만의 FTA 리그’를 완성할 텐데, 이 대열에서 소외되면 속절없이 2부,3부 리그에 남을 수밖에 없다. (2)FTA는 선택적 자유화이기 때문에 무역전환 효과가 발생하고, 이는 범세계적 차원에서 자원배분을 왜곡시킬 수 있다. 또 다수의 FTA가 체결되면 국가별로 관세율이 달라지고 원산지 증명을 해야 하는 등 수출입 비용이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협상 과정에서 정치적 이유로 특정 품목의 개방 폭과 속도가 결정되면 이는 국내산업 구조조정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 (3)FTA의 필요성은 물론 기대되는 이익과 불이익, 피해산업 지원대책 등에 대해 매스컴 등을 통해 충분히 설명하고 협상 진행과정과 주요 쟁점 등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4)경쟁력이 없는 주곡 생산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농업진흥지역으로 묶어둔 농지를 지자체의 개발계획에 따라 주거 및 산업 용지, 레저·스포츠, 시설용지 등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문전옥답(門前沃畓)이 비탈진 야산보다 가격이 훨씬 낮은 모순을 없애고 농민들의 자산소득을 적절히 보장해 줘야 한다. (5)산업경쟁력은 정부가 보호만 한다고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방을 통한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뼈를 깎는 자기혁신으로 향상될 수 있다. ●풀이 및 정답 위 기사는 FTA 추진이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며,FTA 실시로 인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까지 마련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친디아 경제권과 같이 우리나라도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국내외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필자의 견해와 달리,FTA 체결로 인해 발생가능한 부작용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2)가 정답이라 할 수 있다.
  • “WTO 가입만 시켜준다면”

    베트남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해 대미 설득 외교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WTO 연내 가입을 목표로 하는 베트남이 열쇠를 쥔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총력전에 나선 것이다. 우선 다음달 21일 이뤄지는 판 반 카이 베트남 총리의 미국 방문에서 WTO 가입 문제가 핵심 의제로 협의된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가입의 최대 관건인 미국과의 양자 협의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30일 베트남전쟁 종전 30주년 때도 베트남 당국은 반미 분위기 등 미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무척 조심했다. 나아가 미국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면서 ‘환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들을 취해 나가고 있다. 총리의 방미를 앞두고 최근 베트남 당국은 종교 관련 죄수들을 석방하고 폐쇄했던 교회들도 문을 다시 열도록 허용했다. 미 국무부도 5일 베트남이 종교자유 확대 약속을 이행하기 시작했다고 확인하는 등 양측간에 부드러운 분위기도 조성되는 기류다. 느슨해졌던 국영기업(SOE) 민영화작업, 금융권 개혁에도 박차를 가하며 세계 기준에 부응하려는 노력도 보여주고 있다. 국가증권위원회(SSC)의 거대 건설사 비나코넥스(VINACONEX) 보유주식 매각 추진, 베트남 최우량은행 베트콤뱅크의 민영화 발표 등도 같은 맥락이다. 카이 총리는 “미국 방문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두나라 관계를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에 적극적인 손짓을 보냈다. 경제발전에 중점을 둔 실용 외교나 다름없다. 미국은 1995년 수교 이후 10년만에 베트남의 최대 교역국이 됐다. 베트남은 지난해 43억달러 규모의 의류 및 섬유를 수출했으나 WTO 미가입으로 미국의 의류수입 쿼터와 베트남산 수산물에 대한 관세 등이 유지되고 있다. 2000년 11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종전 후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바 있으나 베트남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기는 카이 총리가 처음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韓·佛 경제교류 최적기 中企교류 활성화할 것”

    “프랑스와 한국의 경제적 연결고리 역할을 하겠습니다.” 지난 3월 한불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한 이준 필립(40) 회장은 3일 주한 프랑스대사 관저에서 열린 취임축하연에서 한·프랑스 중소기업간 교류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프랑스에서는 삼성,LG전자의 전자제품들과 ‘조폭마누라’‘무사’ 등 영화의 인기로 이미지가 크게 변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가 무역을 하는 중소기업을 활성화하기로 방침을 세웠고, 한국을 우선교역국으로 선정한 지금이야말로 경제교류를 확대할 최적기라고 강조했다. 파리에서 태어나 15년전 변호사로 한국에 온 그가 한불상공회의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병역의무 때문. 한국인이지만 프랑스 국적을 가진 이 회장은 병역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상공회의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사무총장, 부회장을 거쳐 회장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1) ‘통일 베트남’ 의 붉은 별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1) ‘통일 베트남’ 의 붉은 별

    ‘Nho Co Bac Ho’, 이 노래를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은 베트남 사람이 아니다. 정확하게 30년 전 1975년 4월30일 사이공 한복판에 자리 잡은 대통령궁. 굳게 닫힌 철문을 부수고 탱크 한 대가 거침없이 돌진해 들어갔다. 거의 동시에 다른 두 대의 탱크가 대통령궁 정면의 담장을 밀어제치며 쇄도했다. 탱크 위로 펄럭이는 깃발에는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의 황색별이 새겨져 있었다. 곧 이어 대통령궁 앞마당에 게양되어 있던 사이공정권의 깃발이 내려지고 NLF의 깃발이 올라갔다.30년간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베트남이 ‘독립’과 ‘통일’을 양손에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남베트남 해방전선의 전사들과 베트남 인민군대의 병사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이 순간만을 고대하며 신화처럼 싸워온 그들이 마침내 움켜쥔 기적같은 승리였다. “Vietnam Muon Nam(베트남 만세)! HoChiMinh Muon Nam(호찌민 만세)!” 이 환호는 곧 사이공시가지를 메우고 베트남 전역을 진동시켰다. 베트남 만세, 호찌민 만세. 일본과 프랑스, 미국을 차례로 물리치고 최종적인 승리를 쟁취한 감격적인 순간, 베트남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바로 호찌민이었다. 호찌민은 베트남이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는 베트남의 남과 북, 전사와 인민을 결속시키는 힘이었다. 승리의 이 기쁜 날 호아저씨 같이 있는 것 같네. 호아저씨 말한 것처럼 휘황한 승리 거두었네. 산천을 되찾기 위한 우리의 30년 투쟁 민주공화국의 30년 항쟁 기어이 성공했네. 베트남 호찌민. 베트남 호찌민. 베트남 호찌민. 베트남 호찌민. - Nho co Bac Ho (박호가 있는 것처럼)가사 전문 이 노래를 부르며 베트남인들은 호찌민을 그리워하고 혁명의 승리를 기뻐했다. 그러나 이 노래를 만든 것이 누구인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이 노래의 임자는 참으로 의외의 인물이었다. 팜 투인.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음악가인 그는 프랑스식민 치하에서 위세를 떨친 세도가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팜 꾸인은 프랑스가 세운 식민왕조의 최고위 관직인 상서를 지냈다.1945년 8월 혁명의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 팜 꾸인은 혁명세력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았다. 호찌민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고 직접 그를 만나겠다는 뜻을 하달했다. 그러나 호찌민의 명령이 도달했을 때는 이미 그의 사형이 집행된 다음이었다. 아마 호찌민의 명령이 조금 더 빨리 당도했더라면 응오 딘 지엠(사이공정권의 대통령)과 같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가 혁명세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지만 팜 투인은 혁명진영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고 함께 싸웠다. 그리고 혁명세력이 승리를 거둔 날 호찌민을 기리는 노래를 만들었다.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가자 오늘도 바딘광장에 있는 호찌민의 영묘 앞에는 끝을 찾을 수 없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베트남에서 모든 것이 변해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풍경이 이것이다. 시장경제 제도의 도입을 근간으로 하는 개혁정책이 본격화된 지난 10여년 동안 베트남의 모습은 엄청나게 변했다. 자전거가 물결을 이루고 있던 하노이의 거리는 이제 오토바이의 차지가 되었다. 사이공의 거리는 이미 오토바이를 밀어내며 자동차가 점령하기 시작했다. 시속 20km를 낼 수 없었던 하노이와 사이공을 잇는 1번국도 위에는 트럭과 버스들이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다. 평균 시속 60km,80km를 넘나들며 아찔아찔하게 추월을 감행하는 차량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차량의 속도만 변할 리 없다. 베트남 사회 또한 시속 20km에서 시속 60km,80km의 사회로 급변했다. 베트남인들의 삶과 생각도 마찬가지다. 시장경제는 이제 돌이키기 어려운 속도로 베트남의 일상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고 있다. 베트남을 상대로 20여년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이고, 그 후로 20년 넘게 경제봉쇄를 감행했던 미국의 대사관이 하노이에 복귀했다. 미국의 동맹국으로 베트남에 총을 겨누었던 나라들은 미국보다 더 빨리 손을 내밀어 대사관계를 맺었다. 미국의 제 1동맹국으로 32만 명의 병력을 베트남에 보냈던 한국은 베트남의 주요 교역국가의 하나가 되었다. 베트남에 대한 투자규모에서도 한국은 최상위 순서를 다투고 있다. 한국의 TV드라마는 베트남의 안방을 장악하고 한국 연예인들의 동향은 베트남 잡지에서 빠지지 않는 고정 꼭지가 되어 있다. 베트남의 작가들은 한국문학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보트피플’이 되어 조국을 등졌던 미국의 협력자들도 베트남으로 돌아오고 있다. 승전 30주년을 사흘 앞둔 4월27일, 베트남 국영TV는 놀랍게도 사이공 정권의 총리를 지낸 응웬 까우 끼의 인터뷰까지 내보냈다. 그러는 한편으로 베트남의 사회주의적 정책들은 대폭 후퇴했다. 무상으로 제공되던 교육과 의료서비스 비용의 대부분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항미전쟁의 전 기간 동안 중국 러시아와 함께 베트남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북한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4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베트남을 경유해서 한국으로 ‘기획입국’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북한은 ‘초보적인 의리도 모르는 행위’라고 베트남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종전 30주년을 맞은 베트남은 항미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통일을 이룩한 지난날의 영광을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바꾸어나가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가자.’ 당과 정부는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여전히 사회주의를 국가성격으로 하고 공산당에 의한 일당지배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베트남의 모든 것은 달라졌다. 달라지지 않는 단 하나는 호찌민에 대한 베트남 인민들의 흠모와 존경이다. 베트남의 모든 것이 달라진 지금도 그의 영묘 앞에 사람들을 줄서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도이머이도 호찌민사상에서 비롯 호찌민의 동지로서 남부혁명을 지도했던 쩐 박 당은 베트남의 개혁노선, 도이머이를 일관되게 옹호해온 원로다. 호찌민 노선에 가장 정통한 이론가이기도 한 그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당과 정부, 어느 쪽의 직책도 맡지 않고 오랫동안 야인으로 살아왔지만 베트남에서 그가 행사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그와 약속을 잡았는데 늦고 말았다. 여성영웅인 따 띠 끼유와의 인터뷰가 길어졌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늦었는데 택시기사가 집을 곧바로 찾지 못했다. 몇 번이나 주소를 되묻는 그에게 메모한 주소를 내밀었다. 우옌 민 호앙거리의 42-65. 다시 차를 돌려 지나온 길을 되짚어가며 번지수를 확인해보지만 찾지 못했다. 기사가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헛수고였다. 쩐 박 당, 내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오자 기사는 반색을 하며 물었다. “쩐 박 당이라고 했어요?” 그렇다고 하자 택시기사는 자신 있게 창문을 내리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다시 물었다. “쩐 박 당 선생의 집이 어디예요?” 새로 생긴 넓은 골목을 가리켰다. 곁에 두고 한참 동안 헤맨 것이다.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공동주석을 지낸 쩐 박 당은 여전히 남부베트남에서 가장 신망이 높은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다.1968년부터 1973년까지 사이공당서기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사이공에서 쩐 반 저우와 함께 남부혁명가를 대표하고 있는 인물이다. “1945년, 프랑스가 사이공에 돌아왔지요. 그리고 ‘남끼’정부를 세웠어요. 총리, 국회, 군대, 다 갖췄어요. 그런데 없는 것이 단 하나 있었어요. 그 나라에는 국민이 없었지요. 프랑스가 물러간 다음에는 미국이 또 하나의 정부를 세웠지요, 베트남 민주공화국. 대통령을 수없이 갈아치웠지만 미국은 늘 지고 있었어요. 그들이 패배한 가장 큰 요인은 그들에게는 국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호찌민이 없었지요.” 미국이 가지지 못한 국민을 가진 사람이 호찌민이었다. 쩐 박 당은 호찌민이 단순히 분단된 땅을 통일시킨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베트남인의 모럴과 사상을 통일시킨 사람이 호찌민이었다. 심지어 마을의 분쟁에서도 최종적인 판단의 기준은 그것이 과연 호찌민의 뜻에 부합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베트남이 앞으로 정치제도를 바꿀 수 있고, 체제까지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호찌민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오늘날 베트남의 변화하는 현실과 호찌민노선과의 관계에 대해서 묻는 나에게 쩐 박 당은 이렇게 되물었다. “10년 전부터 베트남에 왔다니까 아시겠죠. 얼마나 많이 변했습니까?” 10년 전의 베트남과 지금의 베트남은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빠른 속도로 변해온 한국도 베트남의 최근 10년과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10년 전이면 우리가 도이머이에 들어간 지 7년이 지난 다음이었어요. 그 전에는 더 어려웠어요. 해방 후 10년간 우리는 정말 어려웠어요. 쌀은 터무니없이 모자랐고, 굶주리며 고구마 따위로 겨우겨우 연명했지요.” “전쟁이 끝났는데도 우린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미국의 경제봉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원인이 미국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어요. 우리는 미국을 몰아냈고,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우리는 호찌민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습니다. 그 해석에 입각한 첫 번째 실천이 도이머이였던 거예요.” 호찌민은 일찍이 말했다. 혁명을 하고도 인민이 여전히 가난하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혁명을 하고도 여전히 불행하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예전에 우리는 ‘평등’을 너무 순진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가난을 공평하게 나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똑같이 나누어야 하는 것은 가난이 아니라 풍요라야 합니다. 나누는 것은 가진 것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비록 맹목적인 평등에 대한 경계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쩐 박 당의 견해는 역편향으로 기우는 것은 아닐까. 질문을 던져보았다. “분배와 생산력의 향상, 현실에서 이 두 가지는 모순과 충돌을 일으키곤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것 하나를 먼저 해결하고 다른 것을 해결해야 하는 선후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요? 두 가지의 문제는 언제나 동시에 검토되어야 할 중요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나이를 실감할 수 없게 명쾌하고 정연하게 논리를 전개하던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시 입을 연 그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은 일본 통치에서 벗어난 지 60년 되었지요? 그 중에서 3년 동안 전쟁을 했습니다. 우리도 우리 정권 가진 지 60년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30년을 전쟁했습니다. 조선에 비하면 10배의 시간을 전쟁으로 보냈어요. 이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10배의 노력이 필요해요. 호찌민주석이 만들려고 했던 것은 누구나 먹고, 학교 가고, 잘 곳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호찌민 주석이 가려고 했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끔 호 주석의 뜻에서 벗어나곤 했지만 언제나 우리는 호주석의 길에서 벗어나려는 자들을 제재해왔고, 앞으로도 제재해나갈 겁니다. 지금 우리의 원칙은 간단합니다. 자기의 노동으로 거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지금도 베트남을 움직이는 것은 호찌민노선이다. 베트남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었던 호찌민의 지도노선이 지금은 베트남의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뒷받침하는 지도노선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호찌민의 어록이 더욱 빈번하게 불려나오게 될 것을 예고하는 쩐 박 당에게 물었다. “호찌민이 베트남을 가두는 또 하나의 도그마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있나요?” “나와 내 친구들은 호찌민을 성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나와 내 친구들이 원하는 것은 호찌민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모럴로서 말입니다. 그는 정치가로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지만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우리는 호찌민이 우리의 일상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매일매일 확인하게 되지요.”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bang80@jowoo.co.kr ●자료 사진을 협조해주신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통신사(VNA)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써주신 베트남통신사 부 주이 흥 서울지국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호찌민을 정말 아십니까”

    사이공 함락과 함께 막을 내린 베트남전이 30일로 꼭 종전 30주년을 맞는다. 적으로 마주섰던 한국과 베트남은 이제 미래를 향한 동반자가 됐고, 한국산 첨단제품과 ‘한류’가 베트남을 휩쓸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의 국부(國父)이자 베트남전의 ‘또다른 주역’인 호찌민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고 궁금한 인물로만 남아 있다. 호찌민(1890~1969)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지난 1994년부터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에서 활동해 왔으며,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는 방현석(44) 중앙대 교수(문예창작과)의 현지 취재 등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호찌민의 삶을 5월2일부터 5회에 걸쳐 조명해본다. 베트남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거국적인 승전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는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낸 승전 50주년이었다. 올해는 미국을 물리치고 사이공을 접수한 승전 30주년이다. 또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되찾은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호아저씨는 우리의 사업 속에 살아 있다.’ 박 호(Bac Ho/호아저씨). 베트남 사람들은 호찌민을 그렇게 부른다. 당의 서기장도, 씨클로 운전사도 그렇게 부른다. 프랑스·미국과의 전쟁을 거쳐온 노인들도 그렇게 부르며, 아직 젖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아이들도 그렇게 부른다. 살아서보다 죽어서 더 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지도자를 우리는 그리 많이 알지 못했다. 성공한 많은 혁명가들은 빠르게 권력으로 변했고, 또 그만큼 빨리 지워졌다. 그런 면에서 호찌민은 예외적이고 아주 특별한 인물이다. 조국의 독립과 혁명을 위해 고스란히 일생을 바치고 맨 손으로 세상을 등진 그를 향한 베트남인들의 존경과 사랑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심지어 적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던 인간 호찌민의 매혹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호찌민만큼 많이 알려진 동시에 그토록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진 인물도 아마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몇 종류의 번역된 평전과 함께 호찌민이 소개되었지만 체제와 이념, 시대를 넘어서 지속되는 그의 매혹을 제대로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앞두고 필자는 한 달 동안 베트남에 체류하며 호찌민의 주변 사람들을 만났다. 호찌민의 생애를 둘러싼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실과 일화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준 베트남의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과거에, 우리는 베트남과 서로 총구를 겨눈 적이 있다. 지금, 우리와 베트남은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통상교역국가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너무나 모르고 있다. 서로를 모른 채 총을 겨눈 것도 비극이지만 서로를 모르는 채 하는 교류도 자랑은 아니다. 베트남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호찌민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있다. 호찌민을 이해하는 일은 베트남이 경험한 분단의 상처를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상처를 줄이고 통일을 이뤄야 하며 세계와 친구가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8)조선대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8)조선대

    호남의 사학 조선대 법대가 옛 영광 재현에 발벗고 나섰다. 조선대 법대는 로스쿨 도입을 계기로 지방대로서의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며 벼르고 있다. 지난 1946년 호남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운동으로 설립된 민립대학 조선대. 이번엔 동문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한때 이름을 떨쳤던 법대의 위상을 되찾아 최고의 명문사학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각오로 20만 동문들이 뭉쳤다. 동문들의 지지까지 등에 업은 조대 법대는 로스쿨 유치를 위해 자못 비장하기까지 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동문들이 재정 뒷받침” 지난 14일 조선대 총동창회는 ‘법학전문대학원 유치 후원회 결성대회’를 열었다. 로스쿨 유치에 대비한 자금모으기 운동의 일환이었다. 이날 광주에서 열린 행사에는 전국에서 동문 600여명이 참석, 조선대 동문들의 힘을 안팎에 한껏 과시했다. 후원회장을 맡은 이원구(개업의) 총동창회장은 “로스쿨 유치는 법대의 사활만이 아닌 학교 전체의 명운이 걸린 일”이라며 “20만 동창들의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모아져 행사를 열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회장은 또 “학교측이 걸림돌 없이 로스쿨 유치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동창회에서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동창회는 모금행사를 시발점으로 동문들을 상대로 ‘1인 1만원 기부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 회장은 “최소 기부액을 1만원으로 정해 기부운동을 벌이고 있다.”면서 “20만 동창이 만원씩만 기부해도 20억원을 모을 수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얼마든지 힘을 보태겠다는 동창들이 많아 모금액이 상당할 것이라는 게 총동창회측의 설명이다. 이날 참석한 동문들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서명과 함께 모금운동에 동참했다. 총동창회측은 “이번 행사가 기부금을 모은다는 데도 의미가 있지만, 로스쿨을 유치하기 위한 동문들의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고 설명했다. 총동창회는 지역별 조선대 동문회를 통해 모금운동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재정은 서울의 사학에 손색없어 이렇듯 조선대 법대의 경쟁력은 동문들의 힘과 안정적인 재정력에서 비롯된다. 많은 지방대들이 재정악화로 허덕이고 있지만 조선대는 서울의 사학들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탄탄한 재정상태를 자랑한다. 로스쿨 입학생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학교측은 로스쿨을 유치할 경우, 입학생의 30%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법대측은 “로스쿨 정원이 200명이라면 60명 즉, 입학정원의 30%까지 전액 장학금을 지원할 계획”이라며 “장학급 지급대상은 성적순이 아닌 가정형편이 어려운 순으로 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스쿨 도입에 있어 학생들이 부담해야 할 고액의 학비가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일정 부분을 학교측이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조선대 법대는 로스쿨 유치를 위한 인프라도 국내 최고 수준으로 갖추고 있다. 지난해 6월 1700여평의 법과대 독립건물을 완공하는 등 총 5000여평의 로스쿨 전용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또 500평 규모의 로스쿨 전용기숙사도 지난 14일 문을 열었다. 최첨단 모의법정과 법학전문 전자정보도서관, 멀티미디어 강의실 등도 이 학교의 자랑거리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중국 통상법에 핵심역량 집중” 박용현 법대학장 조선대 법대는 ‘중국 통상법’에 핵심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중국이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국으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중국 통상법 전문가의 중요성이 강조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학교측은 중국 통상에 있어서는 조선대가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박용현 법대학장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누리사업(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에서 조선대의 중국비지니스 전문가 양성사업이 선정돼 향후 5년간 50억원의 정부지원을 받게 됐다.”는 말로 당위성을 설명했다. 박 학장은 이어 “조선대가 정부의 지원으로 중국진출 우수인력을 집중 육성하고 있는 만큼 중국 통상법 전문가를 육성하는 데에 있어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법조인 140여명 배출… 탄탄한 인맥형성 개교 60주년을 앞둔 조선대가 배출한 법조인은 총 140여명에 이른다. 헌법재판관, 국회의원, 고위관료 등을 고루 배출, 인맥이 탄탄하다. 지방대학 최초로 사법시험 수석합격자를 배출해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14명의 판·검사와 100여명의 변호사들이 현직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조선대의 제1호 법조인은 임기호(54년 졸) 변호사다.1947년 제1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해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8대 서울민사지법원장,5대 서울형사지법원장,2대 사법연수원장,16대 서울고등법원장 등을 거친 우리나라 법조계의 산증인이다. 이성열(고시사법과 5회·53년 졸) 변호사는 지방대학 출신으로 헌법재판관을 지낸 이 대학의 자랑이다. 대전지법원장, 광주지법원장, 대법관 등을 지냈으며 지난 1988년부터 4년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했다. 이용식(57년 졸) 변호사와 김구일 (68년 졸) 변호사는 사시와 행시 양과에 모두 합격한 케이스다. 이 변호사는 8회 고등고시 사법과와 행정과에 동시 합격, 광주지검 검사장과 대검찰청 총무부장 등을 지냈다. 김 변호사는 행시 13회, 사시 16회에 합격하고 광주지법 판사 등을 거쳤다. 오병선(62년 졸) 변호사는 사시 13회 수석합격자다. 지방대 출신으로는 처음 수석합격을 차지해 화제를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오 변호사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 사법연수원 수석교수 등을 지냈다. 김상남(68년 졸) 전 노동부 차관도 조선대 법대 출신이다. 김 전 차관은 행시 10회 합격, 광주지방노동청장 등을 거쳐 노동부 차관까지 올랐다.2003년에는 청와대 복지노동수석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여성 법조인의 첫 테이프는 이양희 광주지법 판사가 끊었다. 이 판사는 조선대 95학번으로 사시 42회에 합격했다. 조선대의 여성법조인 배출이 늦은 감은 있지만, 다음해인 43회 시험에서 3명의 여성합격자가 나오는 등 최근 들어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조선대 출신의 정치인으로는 장태완(58년 졸)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열린우리당 양형일(79년 졸) 의원은 조선대 11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데스크시각] 뜨는 중국과 묻지마 유학/김용수 공공정책부 차장

    조선시대만 해도 중국은 엄청난 선진국이자 강대국이었다. 중화사상(中華思想)으로 무장한 중국은 중화의 가치를 부정하는 주변 국가들을 가차없이 복속시켜 버리는 무자비한 나라였다. 그러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조선에 있어서 사대주의(事大主義)는 어쩌면 생존을 위한 처절한 전략이었다. 조선은 ‘주체성도 없이 큰 나라에 빌붙는다.’는 비난을 감내하면서 중국을 사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의 중심은 중국”이라며 거들먹거리던 청조(淸朝)가 서구 열강에 무릎을 꿇은 지 1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얼마전 한 중국어학원에서 만난 여학생의 말은 시간을 150여년 전으로 되돌려 놓기에 충분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유학을 위해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그 여학생은 “왜 중국유학을 가려고 하느냐?”는 물음에 대뜸 이렇게 답했다.“중국이 뜬다잖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바로 다음 날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국유학의 효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릴 기회도 없었다. 그녀처럼 오늘도 많은 학생들이 중국이 ‘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중국유학 길에 오르고 있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다른 선진국에 비해 물가도 싸서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 중 한국 출신이 단연 1위다. 중국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04년 말 현재 외국인 유학생 8만 6000여명 중 우리나라 출신이 3만 5000여명으로 약 40%를 차지했다.2위인 일본은 우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만 6000여명이었다. 그 여학생의 말마따나 중국이 최근 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1970년대 말 “쥐(경제)를 잡는 데 고양이의 색깔(체제)이 무슨 대수냐?”며 ‘죽의 장막’을 걷어내고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했다. 자존심을 구겨가면서 ‘세계의 하청공장’ 역할을 마다하지 않더니 이제는 어느새 미국에도 큰소리 치는 강대국이 됐다. 중국은 특히 우리나라와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류가 활발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1992년 수교 당시 50억달러에 불과했던 무역액이 지난해에는 800억달러에 이르러 12년만에 거의 16배나 증가했다.KOTRA 집계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이 5만 2000개나 되고, 중국에 상주하는 우리나라 사람도 30만명을 넘어섰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중국에 가면 뭔가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장래성에 대한 정확한 판단 없이 무턱대고 중국유학을 갔다간 큰 낭패를 보게 된다. 중국이 뜬다고 하니까, 중국 인구가 많다고 하니까, 중국 시장이 크다고 하니까 뭔가 성공할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중국유학을 떠나면 돈과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베이징에서 한국인이 많이 몰리는 우다오커우(五道口)나 왕징(望京) 등지에서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우리나라 유학생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도피성 유학’이나 ‘묻지마 유학’을 떠난 결과다. 중국 유학을 다녀온다고 해서 장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중국 유학생이 넘쳐나 일자리 찾기도 힘든 형편이다. 더욱이 중국에서는 중국어를 아무리 유창하게 구사해도 인건비가 싸고 고등교육을 받은 조선족들이 많아서 취직조차 어렵다. 중국에서는 조선족이 우리나라 유학생의 경쟁 상대인 셈이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중국의 외국인학교에 유학보내면 중국어와 영어를 자연스럽게 터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각고의 노력과 엄청난 비용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학교에 다니려면 학비만도 1년에 최소한 20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중국은 드넓은 땅덩어리와 무궁무진한 시장을 감안할 때 도전해볼 만한 나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 대륙에서 젊음을 불사르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없는 한 중국은 우리나라 유학생들에게 한낱 ‘무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김용수 공공정책부 차장 dragon@seoul.co.kr
  • 한류열풍­-수출지역 따로 논다

    아시아의 ‘한류 열풍’이 관광객 유입에는 짭짤한 효과를 낳는 반면 이를 소비재 수출 증가로 연결시키지는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는 3일 ‘한류 열풍의 실체와 기업의 전략적 활용방안’ 보고서에서 “한류·비한류 상위 8개 교역국의 4년 평균 소비재 수출 증가세를 분석한 결과, 독일(31.2%)과 영국(26.7%), 이탈리아(26.7%), 미국(13.8%) 등 비 한류권 국가가 중국(26.9%), 일본(-3.4%), 홍콩(15.7%), 대만(11.6%) 등 한류권 국가보다 수출증가율이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나 한류가 제품 수출로 연결되는 효과가 아직까지 미미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일본의 특정 문화상품에 대한 마니아적 소비 성향이 강하고, 다른 나라 문화를 흡수 재생산해 수요를 창출해 내는 반면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 한류는 특정 스타에 몰입하고, 모방에 치우쳐 한류를 자국문화로 재생산해 내기보다 단순 소비에 머무는 것으로 분석하고 이런 특성을 활용해 한류 마케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문화산업 시장 규모가 2003년 기준 약 800억∼900억달러에 달하고, 다른 나라 문화를 자국 문화로 재생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에서 문화상품을 공동개발하거나 소비재 위주로 한류 마케팅을 활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분석했다. 중국 등 동남아 지역은 원·부자재 수출이 대부분인 만큼 우리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한류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미국은 세계 문화산업 시장의 42.6%를 차지하고 있어 매우 매력적이긴 하지만 세계 최고의 제품·콘텐츠의 격전장이기도 하기 때문에 섣불리 접근하기보다 고품질 제품에 한류 마케팅 전략을 적절히 가미한다면 소비재와 문화상품이 동시에 미국에서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표적인 한류 상품인 영화와 방송, 음반의 2003년 일본 수출실적은 1억 3863만달러로 2002년(3327만달러) 대비 316.6% 증가하며 중국(1709만달러), 대만(1891만달러), 홍콩(928만달러) 수출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류 원조국인 중국과 대만은 2년간 51.1%,18.5% 증가하는데 그쳤으며, 홍콩은 15.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강서구의 ‘뜨거운 중소기업 사랑’

    강서구의 ‘뜨거운 중소기업 사랑’

    출입문 자동개폐기를 취급하는 ㈜동광상사 권오병(62) 사장은 지난 9월 ‘강서구 해외시장개척단’에 참가, 스페인 등 유럽 3개국에서 모두 250만달러의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권 사장은 “34년의 기술력으로 국제특허까지 취득했으나 동남아 시장에서 고전했다.”면서 “해외시장개척단을 통해 유럽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10년간 28개국에 1억 7654만달러 수출 도와 자치구의 중소기업 해외시장 개척사업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지난 1995년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해외판로 개척에 나선 강서구는 10년동안 1억7654만달러의 수출실적을 거뒀다.10년 동안 거친 대상국도 28개국에 이르며 올해만 1100만달러의 수출계약을 맺었다. 직원수가 10명을 넘지 않는 중소기업들이 올린 성과로는 적지 않은 실적이다. 지난 1995년 강서구는 당시 유영 구청장의 제안에 따라 지역내 중소기업의 해외판로 개척에 나섰다. 첫 대상지인 호주에서 올린 성과는 5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꾸준히 증가,99년부터 매년 1000만달러 이상의 실적을 보였다. 지난 1999년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에서 거둔 액수는 1640만달러에 달했다. 10년을 거치며 교역국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에서 멕시코, 파나마,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 동·서유럽을 모두 아우른다. 내년에는 영국과 스웨덴, 벨기에를 대상지로 선정했으며 현재 희망 업체를 모집중이다. 해외시장 개척단에는 10∼13개 업체가 참가하고 있다. ●상품성·현지 적합성 고려해 업체 선발 유영 구청장은 “해외시장에 약한 중소기업이 바이어와 직접 상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실질적으로 지역내 중소기업을 돕는 방법이며 앞으로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참가를 희망하는 중소기업은 왕복항공료와 숙박비 등 체재 10일 동안 필요한 기본 비용을 부담한다. 올해는 370만원 정도 소요됐으며 팸플릿과 기타 진행경비는 자치구에서 부담한다. 강서구는 품목의 상품성과 해외시장의 적합성 등을 고려해 업체를 선발한다. 올해 해외시장 개척단을 파견한 자치구는 강서구를 비롯해 은평구, 구로구, 종로구, 관악구 등 모두 5곳. 이들이 내보낸 기업체 수는 54개에 이르며 내년부터는 금천구와 영등포구, 양천구도 파견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로구는 상반기와 하반기 등 모두 두차례 걸쳐 21개 기업체를 파견했다. ●금천·영등포·관악구등 참가신청 접수 해외업체와 연결하는 방식은 대부분 KOTRA의 협조를 얻는다. 참가 희망업체의 팸플릿을 제작한 뒤 KOTRA의 해외무역관을 통해 수출 가능여부를 타진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참가업체는 현지의 상황에 따라 선정된다. 내년에 새로 파견단을 운영하는 금천구와 양천구도 KOTRA를 통해 해외판로 개척에 나설 계획이다. 내년 해외시장개척단은 강서구가 31일까지 희망 업체를 모집하며 금천구는 1월10일, 구로구와 영등포구, 관악구는 1월말 까지 각각 접수한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시론] 자본유출, 얼마나 심각한가/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

    [시론] 자본유출, 얼마나 심각한가/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며 추운 날 한 조각 붕어빵처럼 작으나마 따뜻한 소식이 그리운 때다. 그런데 시중에는 반가운 소식 들었다는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어 들리는 소식이 모두 어둡게 해석되는 까닭일까. 내수부진이라는 내우(內憂)에 찌든 우리 경제가 최근 환율급락이라는 외환(外患)에 직면했는데 지난주에는 어디서 낮도깨비 같은 자본유출 소식까지 들려왔다. 바람 잘 날 없는 집안 모습이다. 올 5월 이후 매월 10억달러 이상 해외주식자금이 유입되던 추세가 10월 들어 약 15억달러 유출로 반전되었다고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환율하락과 자본유출은 양립될 수 없는 현상이어서 둘 중 어느 하나는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일인데 언론이나 일반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자라보고 놀란 마음에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리라. 환율과 자본 유출입이 어떻게 관련되었는가를 살펴보자. 달러당 한국 원화의 가치, 즉 원·달러 환율은 기본적으로 원화에 대한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국제투자자금이 대규모로 한국에 유입될 경우 이들이 우리 주식이나 채권시장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게 된다. 원화에 대한 수요 증대는 원화가치 상승, 즉 원·달러 환율하락으로 연결된다. 반대의 경우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 환율은 상승한다. 우리가 겪었던 1997년 외환위기는 국내에 투자됐던 자금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급등해 나타난 일이다. 당시는 달러에 대한 수요가 지나치게 많아 우리가 보유한 달러화가 바닥나는 위기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런 최근의 경험을 살펴보면 환율급등이 환율하락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자본유출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급락하고 있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라 하겠다. 간단히 말해서 자본유출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10월 무역수지가 약 29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10월의 주식투자자금 유출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올 들어 10월까지 증권 및 채권투자 누적치는 약 155억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소폭 밑도는 수준이지만 당장의 자본유출을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러한데 세간의 불안감이 큰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우리경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근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수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우리경제의 성장세를 이끌어 오던 수출증가세 둔화가 가시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수출비중이 큰 대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주식시장의 양호한 추세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코앞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상황에서 소규모일지라도 자본유출 소식은 주식시장과 우리경제의 향방을 시사해주는 의미가 크다. 이것이 왜 10월 자본유출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높은가를 설명해준다. 끝으로 작금 우리경제의 제일 큰 불안 요인으로 부각된 환율하락은 당장의 소규모 자본유출보다도 우리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전적으로 미국의 경상수지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교역국들간의 무역역조를 시정하기 위해 필요해진 달러화 가치하락 추세에 기인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추세가 중국 위안화를 제외한 여러 통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우리만 수출가격경쟁력에서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올해 고유가의 경우처럼 환율은 새해 최대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우리경제, 잎 떨어진 겨울 나뭇가지처럼 바람 잘 날 없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
  • 中 “브릭스끼리 뭉치자”

    중국을 축으로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브릭스(BRICs)국가들의 ‘전략적 짝짓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차세대 핵심국가, 거대 신흥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이들 브릭스 국가들이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 대한 시장, 자원 등 일방적인 경제적 의존관계에서 벗어나 전방위적인 ‘남남협력’관계의 틀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특히 브릭스 국가간의 협력을 선도하고 있는 중국은 남미의 자원대국 브라질을 비롯, 러시아, 인도 등과의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며 자원협력 등 경협 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중국은 20일 칠레에서 열리는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 앞서 이뤄진 12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브라질 방문에서 ‘호혜적 협력관계 강화’를 공식 선언했다. 지난 4년 동안 중국과 브라질 두 나라의 교역규모 증가율은 400%. 중국은 미국, 아르헨티나에 이어 브라질의 3번째 교역국이 됐다. 두 나라의 올 예상 교역액은 120억달러.2010년까지 350억달러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브라질의 철광석, 원유 등 자원과 원자재난에 직면한 ‘세계의 공장’ 중국의 제조업이 결합, 상승 작용을 내고 있다. 브라질 수출의 3분의 2는 철광석과 콩류 등이었다. 에너지와 자원난 등 고도성장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중국은 브라질의 자원 개발을 위해 브라질 대륙횡단 철도 건설에 40억∼50억달러를 투자하고 철강 및 광업 부문에 35억달러 가량을 투자할 계획이다.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겠다는 계산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지난달 4300㎞에 달하는 국경선 확정문서에 서명한 뒤 ‘새로운 동반자관계’수립을 약속하며 상호보완적인 협력을 가속화했다. 지난해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수출은 57%, 수입은 25%가 각각 늘었다. 경제성장에 따라 에너지 부족에 직면한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대량의 원유와 가스의 수입을 늘렸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가 시베리아 원유와 가스전 개발, 철도 연결 등에서도 각종 의향서를 체결하는 등 활발한 협력을 벌이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주력기술인 항공우주, 에너지, 신소재 및 박막기술 등 첨단분야의 기술 이전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또 전투기, 잠수함, 로케트 등 군수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를 설득, 첨단무기체계의 구입을 위한 각종 협의도 진행 중이다. 중국과 인도도 올해 국경분쟁을 매듭지으면서 교역량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 인도의 PTI통신은 최근 올 9월까지의 무역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5%나 증가하는 등 두 나라의 교역량이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브라질·인도·러시아 등 브릭스 4개국의 국내총생산(GDP) 총액은 오는 2039년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선진 6개국의 GDP 총액을 앞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쉬쉐즈 회장 “中 광고시장 내년 개방… 많이 오세요”

    쉬쉐즈 회장 “中 광고시장 내년 개방… 많이 오세요”

    “관시(關係)보다는 기획·제작 실력이 중요합니다. 중국광고협회는 심의와 업체간 분쟁 조정을 도와줍니다.” 내년 말 중국 광고시장의 전면 개방을 앞두고 쉬쉐즈(時學志) 중국광고협회 회장이 한국을 찾았다.16일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회장 조병량) 주최로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중 국제광고심의 세미나에 나와 국내 광고 종사자들에게 현지 광고 실정과 법률을 소개했다. 중국광고협회는 제작단계부터 광고의 광고법 저촉 여부를 심사한다. 거금을 들여 만든 광고가 정부 인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조정하고, 업체간에 생기는 분쟁의 해결을 중재한다. 정부를 대신해 광고회사에 도움을 주는 반관반민의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의 광고심의는 광고자율심의기구가 방송위원회로부터 위탁받은 반면 중국에서는 정부 산하 공상관리총국에서 맡는다. 쉬 회장은 공상관리총국 산하 공평교역국 부국장 출신. 그는 “중국에 6만여개의 광고회사가 있고 그중 합작 기업은 400개 정도”라며 “내년 광고시장이 전면 개방돼 외국계 광고회사 독자법인 설립이 가능해지면 기존 업체들과의 경쟁이 뜨거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중국 광고시장 매출액은 2002년 930억위안(13조원)에서 2003년 1078억위안(15조원)으로 매년 증가하는 등 광고시장은 성장 기회가 많은 분야”라면서 “한국계 광고회사도 대거 진출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고 문화가 발달된 한국 광고에 대한 인상을 묻자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 중구에 있는 호텔까지 오는 동안 전광판 등 옥외광고가 중국보다 현저히 적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면서 “도시 미관상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삼성 ‘신경영 바람’ 아프리카에 솔솔

    삼성 ‘신경영 바람’ 아프리카에 솔솔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도 삼성의 신경영 바람이 불고 있다. 삼성은 이달 1∼8일 탄자니아, 케냐 등 2개국 정부 초청으로 신경영 전파단을 파견, 특별강연을 펼쳤다고 8일 밝혔다. 삼성은 강연에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한국의 저력, 연간 수출 2000억달러를 돌파한 세계 10위권 교역국의 위상, 세계 최고의 IT 기술력과 인프라 등을 알리는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강연은 지난 7월 나호다 탄자니아 총리가 주탄자니아 한국 대사관을 통해 서한으로 요청한데 이어 9월 은가송와 탄자니아 산업통상장관이 방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한 뒤 “삼성의 성공 비결을 탄자니아에도 알리고 싶다.”고 거듭 요청해 성사됐다. 김경원 삼성경제연구소 해외경제실장 겸 금융실장(상무), 신태균 삼성인력개발원 상무 등이 강사진으로 나섰다. 강사진은 지난 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시작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철학, 선택과 집중 전략, 회장·구조조정본부·계열사를 축으로 하는 ‘삼성식 3각 편대 경영’, 핵심인력 양성 등을 통해 세계적 기업으로 고속성장한 삼성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지난 3일 케냐 수도인 나이로비 시내에서 이뤄진 강연에는 은조키 카히가 대통령실 인사담당 수석과 알프레드 무투아 정부 대변인 등 150여명의 정부 관료 및 현지 기업인이 참석, 큰 관심을 나타냈다. 케냐 최대의 민영 미디어 그룹인 네이션사는 메인 뉴스 시간에 강연 특집 프로그램을 긴급 편성하기도 했다. 이어 탄자니아 잔지바르 연방과 본토 수도인 다르 에스 살람에서 5∼6일,8일 등 사흘간에 걸쳐 진행된 강연에는 나호다 총리와 대통령 실장·부실장, 장관급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삼성 관계자는 “IT 강국으로서의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한·아프리카 우호증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박건승기자 ksp@seoul.co.kr
  • [사설] 우다웨이, 한국 민심 알고 가라

    중국내 대표적 지한파인 우다웨이 신임 외교부 부부장이 비공개리에 한국을 방문중이다.중국측이 무슨 연유로 그의 방문을 비밀에 부치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주한 대사까지 지낸 그가 임명장을 받자마자 한국을 찾은 것을 보면 중국도 고구려사 왜곡문제를 화급한 현안으로 생각하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우 부부장은 우리 조야의 인사들을 두루 만나,우리 정부의 요구사항과 성난 민심의 향배를 있는 그대로 본국에 전달하기 바란다. 역사왜곡문제가 가로막고 있는 한 26일로 예정된 자칭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의 방한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은 중국도 잘 알 것이다.우리는 중국이 결자해지(結者解之)차원에서 고구려사 왜곡문제 해결에 성의있고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줄 것을 수차에 걸쳐 요구한 바 있다.자 주석은 중국공산당내 서열 4위로,우리 국회의장의 카운터파트다.자 주석의 방한이 두나라 역사문제 해소 계기가 되도록 우 부부장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24일로 수교 12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는 고구려사 왜곡이라는 돌출문제를 제외하고는 경제,외교,문화 등 여러 면에서 순조로운 발전을 거듭해왔다.그동안 중국은 한국의 제1교역대상국이자 제1의 투자대상국이 됐고,중국에 한국은 3대 교역국이자 제1의 투자유치국으로 성장했다.중국대륙을 휩쓴 한류열풍을 비롯해,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의 주도적인 역할 등 중국은 외교,문화적으로도 우리의 긴요한 파트너가 됐다. 중국은 모든 차원의 역사왜곡 작업을 즉각 중단하고,지난 2월 양국 외교부 차관이 합의한 학술차원의 접근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중국이 이를 어기고 관영매체를 동원하고 외교부 홈페이지를 왜곡해 문제가 악화된 것이다.왜곡된 역사를 교과서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분명히 해야 한다.최소한 이 정도의 명시적 약속은 있어야 자 주석의 성공적인 방한,나아가 두나라의 선린관계를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을 중국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 [한·중 수교 12주년] (상)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

    [한·중 수교 12주년] (상)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

    |베이징 오일만특파원|24일 한·중 수교 12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는 ‘생존의 파트너’로서 ‘전면적 협력 동반자’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한국은 IMF 경제위기를 한·중간 경제교류에서 돌파구를 마련했고,북핵 문제 해결에서는 ‘평화적 해결’이란 대원칙 속에서 강경 일변도인 미국을 공동 설득하는 등 안보 분야로까지 우호·협력 관계를 확장시켰다. 올해 중국은 한국의 제1 교역 대상국이자 제1 투자 대상국으로 떠올랐다.한국 역시 중국의 3대 교역국이자 제1위의 투자 유치국,제1위의 유학생 유치국이다.양국 모두 경제적·인적 교류차원에서 서로가 절실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접어든 것이다. ●양국 교역 1000억달러 시대 수교 당시(1992년) 64억달러이던 양국 교역액은 지난해 570억달러(한국 통계기준)로 11년만에 8.7배로 늘어났다.올 들어 상반기에만 홍콩을 포함해 413억달러에 이르렀고 흑자만 170억달러에 이른다. 우리의 대중 투자 누계액은 211억달러이며 인적교류는 지난해 245만 8000명이다.이 가운데 한국 유학생은 3만 5000명에 이른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방중 때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5년 내 양국 교역 1000억달러 시대를 열자.’는 합의가 빠르면 3년 앞당겨진 내년쯤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기나긴 한반도·중국의 역사적 시각에서도 최대의 경제교류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양국 관계는 생존의 파트너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과의 정치·외교 분야에서도 구동존이(求同存異·같음을 추구하고 차이점을 존속시킨다)의 원칙 속에서 비교적 협력지향적 관계를 설정했다.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미국이나 일본이 시기할 정도로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엔,아·태경제협력체(APEC) 등 국제기구에서도 중국과 호흡을 맞추고 있고 중국내부에서는 내심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유럽연합(EU)이나 북미 경제협력체인 나프타(NAFTA) 등에 필적할 동북아 경제협력체 구상을 내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밝힌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부국강병(富國强兵)으로의 대외전략 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드러나는 중화 패권주의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도광양회(光養晦·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속에서 실력을 기른다)’에서 화평굴기(和平堀起·평화로운 가운데 우뚝한 존재로 선다)로 방향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 국방과학기술대학 취안린위안(全林遠)교수는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야심이 날로 커지고 경제·과학·군사 분야에서의 중국에 대한 압박 때문에 경제성장과 동시에 국방력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와중에 터진 중국정부의 ‘고구려 역사의 자국편입’ 시도는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중화(中華)사상의 부정적 측면과 함께 패권주의(覇權主義)적 속성까지 아우르고 있어 한국민에게 적잖이 충격을 주고 있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장관이 최근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고구려사 문제는 한국정부의 최대현안”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양국 관계는 수교이후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수교 12주년은 이런 의미에서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부상하는 중화주의를 냉철하게 분석,질적 성숙을 향한 양국 관계의 새로운 좌표 설정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oilman@seoul.co.kr
  • [월드이슈-인도 제2의 중국될까] 세계 아웃소싱 ‘본산’… 경제대국 시동

    [월드이슈-인도 제2의 중국될까] 세계 아웃소싱 ‘본산’… 경제대국 시동

    인도는 제2의 중국인가?세계는 지금 인도를 주목하고 있다.저임금과 풍부한 전문 고급인력에 끌려 세계 기업들이 앞다퉈 콜센터와 업무지원본부를 세우며 인도는 세계 아웃소싱의 중심지로 뿌리내렸다.인도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다국적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중심지로도 각광받고 있다.경제전문가들은 인도 경제가 중국의 두자릿수 고성장에는 못미쳐도 지난해 8%대의 성장에 이어 당분간 7∼8%대의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이들의 예상대로 10억 인구의 인도가 7∼8%의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일정 수준의 소비계층이 형성돼 중국에 이어 또다른 거대시장의 출현도 배제할 수 없다.바로 이것이 세계가 인도를 주목하는 이유다. 정보통신(IT)과 생명공학(BT),우주항공에서 선진국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인도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관심을 모은다. 인도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놓고 세계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은 없다.단,인도가 오랜 잠에서 깨어난 중국이라는 용을 제치고 세계 경제의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를 인용해 인도 경제가 연간 약 6%대의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중국을 13년 만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또 구매력 평가를 기준으로는 10년 안에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정치시스템 경쟁력 中보다 앞서 당장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중국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고 수출입 규모와 외국인투자,사회간접시설(SOC)에 대한 투자,소비 등 대부분의 경제 분야 지표에서 중국에 열세를 면치 못하지만 금융기관 제도의 선진화나 정치시스템 측면에서 경쟁력이 앞서고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한편 지난해 10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중국과 인도,러시아,브라질 등 브릭스(Brics)시대의 도래를 예고한 미국의 골드만삭스는 인도가 GDP 기준으로 2032년 미국과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인도와 중국의 1인당 GDP는 2003년 각각 486달러와 1051달러에서 2013년에는 998달러와 2922달러로 오히려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對中 교역액 사상 첫 100억달러 돌파 한편 삼성경제연구소는 인도와 중국의 경제력 격차를 GDP와 수출규모 등을 기준으로 약 10∼15년 정도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도와 중국간의 경제협력이 대폭 강화돼 주변국들을 긴장시킨다.인도의 엘란 고반 무역장관은 최근 인도 최대의 역내 교역국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으며 양국 교역액이 사상 처음으로 올해 1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인도 경제는 지난해 8.2%의 고성장을 기록했다.올해에도 7∼8%의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인도 정부는 보고 있다.특히 인도의 핵심산업으로 자리잡은 IT의 성장이 두드러졌다.인도 PTI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이후 인도의 IT 허브인 방갈로르에 1주일에 평균 2∼3개의 서구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개발과 지원업무 등을 위해 새로 진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작년 SW수출액 28% 급증 인도 정보통신부도 인도의 지난해 소프트웨어 및 관련 서비스 수출은 전년보다 28% 늘어난 122억달러라고 발표했다.IT관련 서비스 수출액은 36억달러로 전년보다 54% 늘었다.IT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산업이 인도 GDP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64%와 21.3%였으며 2008년에 각각 7%와 35%로 늘어날 전망이다.IT관련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전문인력만도 지난 3월 현재 81만 3000명으로 전년보다 23% 늘었다.IT 고용인력이 급증한 것은 미국 등 세계 기업들이 앞다퉈 인도로 소프트웨어 업무를 아웃소싱하고 있기 때문.인도의 IT분야 신규 근로자의 평균임금이 미국의 15%에 불과,기업들이 운용비용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작용했다. 미국의 리서치그룹 포레스터가 지난 연말 미 1000대 기업들을 대상으로 해외 아웃소싱 여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3∼4%만이 적극적으로 해외 아웃소싱을 하고 있으며 60%가 아예 고려하지 않고 있거나 검토중인 것으로 나타났다.따라서 미국기업들의 인도 등으로의 아웃소싱은 시작에 불과해 인도 경제,특히 IT산업의 성장 잠재력은 매우 크다. 한편 인도는 콜센터나 소프트웨어 지원센터뿐 아니라 기업들의 R&D 중심 후보국가로도 중국을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도 경제의 과제 하지만 인도가 이같은 장밋빛 경제전망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극복해야 할 난제들도 적지 않다.인도의 최대 장점인 값싼 임금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IMF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인도의 임금이 향후 40년간 8배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인도가 최근의 호황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저임금 이외에 새로 출범한 정부가 연립정권 내 좌파 정당들과 협력해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전개하고 취약한 인프라 확충,도·농 및 계층간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또 제조업의 발전과 중국의 10분의 1 수준인 외국인직접투자를 늘리기 위해 외국인 투자환경의 개선이 시급하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서울광장] 과거의 반성과 화해/손성진 논설위원

    [서울광장] 과거의 반성과 화해/손성진 논설위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유신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에 화해하고 용서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김 전 대통령은 유신의 최대 피해자 아닌가.박 대표가 아버지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했지만 먼저 화해의 손짓을 한 쪽은 사실 김 전 대통령이었다.재임중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위한 예산을 책정한 것이다.사후 20년 동안 잠잠하던 박정희의 공과(功過)에 대한 시비가 촉발된 것은 그때였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반성을 거쳐 앞으로 나아간다.대결과 화해의 반복으로 발전하는 것이다.이런 변증법적 절차로 역사가 진보하려면 진정한 반성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어제가 없이 내일이 찾아올 수 없듯 과거가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다.진정한 반성이 없으면 대립에서 벗어날 수 없고 화해도 없다.과오를 인정하지 않을 때 역사는 정체되고 만다.6·25전쟁에 개입해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가로막은 최대의 적이었던 중국이 지금은 수교와 화해로 최대의 교역국이 됐다.그러나 중국은 고구려사 왜곡을 시도함으로써 한·중 관계를 뒷걸음질치게 만들고 있다.일본은 어떤가.제국주의의 망령을 버리지 못하는 일본의 반성없는 태도로 한국과 일본은 수십년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감정적 대립 상황에 놓여 있다.그것은 양국의 동반자적 관계를 해쳐서 상호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더 먼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볼 후세에 올바른 과거를 정립해서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친일 문제가 그렇고 박정희와 유신이 그렇다.과거의 진실은 여전히 부정되고 있다.박정희는 일본군 소속이 아니라 만주군이었다는 한나라당 김모 의원의 주장은 해괴하다.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던 박정희는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이라는 여덟글자를 혈서로 써내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다.진충보국이란 물론 일본국왕에 대한 충성다짐이다.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졸업한 그는 이렇게 선서를 했다.“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죽겠습니다.”나구모 주이치 당시 일본 육사교장은 천황폐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면에서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답다고 박정희를 평가했다.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을 했던 박정희는 더 일본인다워지려고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다시 이름을 바꾼다.(최상천의 ‘알몸 박정희’)만주군 제8단에 배치된 박정희는 독립군 토벌작전에 들어간다고만 하면 ‘요오시(좋다),토벌이다!’하고 벽력같이 소리쳤다고 한다.(문명자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만주군은 일본의 군대였고 박정희는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일본군 장교였다.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자란 박정희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정말 일본인인양 착각했는지 모른다. 박정희의 경제적 치적은 무시될 수 없다.그러나 실정(失政)과 과오가 묻혀서는 안 된다.경제 업적에 대한 평가도 양면적이다.개발독재의 폐해는 아직도 앙금이 남아 발목을 잡고 있다.정경유착,빈부격차,경제력 집중 등 독버섯 같은 요소들은 개발독재의 산물이다.치적만 부각하는 박정희 기념관을,그것도 국가 예산으로 건립하는 것은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잘못도 함께 보여주는 ‘박정희 역사관’을 만든다면 모를까.역사를 오도할 수 있는 기념관 건립보다는 참모습을 규명해서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다.친일 경력의 왜곡이 시도되듯 시간이 흐르면 협박,사생활 추적,세무조사,고문,날조 등 그가 동원한 온갖 불법수단도 부정되고 미화될 것이다.지금도 막걸리를 마시며 농민들과 담소하는 박정희의 웃는 모습만 기억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은가.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문화마당] 묘청이 절실한 까닭/문흥술 서울여대 교수·문학평론가

    단재 신채호는 고려 후기 묘청의 자주파와 김부식의 사대파와의 싸움에서 김부식 파의 승리를 두고 한국 정신사상 최대의 비극이라 했다.단재는 사대파의 승리 이후 중국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중국의 역사왜곡과 관련하여,한 세기 전에 도출된 단재의 이 비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 소수 지방 정권의 역사로 왜곡하는 이유는 무엇일까.표면적으로 남북통일 후의 영토분쟁에 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실상은 새로운 중화주의의 실현이라는 음험한 목표가 그 배후에 깔려 있다.아마도 중국은 중국만이 세계의 중심이고 나머지는 변방의 오랑캐들이라는 패권적인 중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하고,그 일환으로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구려가 중국 지방 정권의 하나라면,그 고구려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재의 한국도 중국 지방 정권의 하나라는 논리로 귀착될 수 있다.머지않아 왜곡된 역사를 배운 중국인들은 한국을 변방의 오랑캐 내지 속국으로 평가절하할 것이다. 따라서 역사 왜곡에 대해 전민족적 차원에서 체계적이면서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다.그러나 우리의 위정자들은 중국이 우리의 2대 교역국이라는 경제논리만을 앞세워 역사 왜곡을 단순하면서도 일시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그렇다면,일반 국민들의 결집된 힘에 기대어 이 문제를 정면 돌파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이 역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단적으로 우리의 문화 상황을 살펴보자.우리 문화의 대부분이 미국과 일본의 문화,그것도 ‘폐수문화’에 철저하게 감염되어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일제강점기에 임화가 한국문화의 식민지성을 제기한 이후,아직까지 한국문화는 서구문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주변문화의 속성을 조금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한류열풍을 들어,한국문화의 우월성을 이야기하곤 한다.그러나 그 속내를 파고들면 사태는 전혀 딴판임을 알 수 있다.서구 자본주의 문화를 동경하는 중국인들이 반일감정으로 인해 일본문화를 배격하고,대신 서구 문화를 완벽하게 모방한 한국문화에 열광하는 것이 한류열풍의 본질이 아닐까.한류열풍은 한국의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문화에 대한 열풍이 아니라,한국문화를 지배하는 서구문화에 대한 열풍일 수도 있다. 중국인들은 한류열풍의 뒤편에서 서구문화를 무조건적으로 모방하는 한국문화를 비판하면서,한국과는 달리 서구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을 치밀하게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시간이 지나면 중국은 그 방법을 터득할 것이고,그 후 ‘위대한’ 중국문화를 자신들의 속국이라 생각하는 한국문화에 강요할 것이다.역사왜곡을 여기까지 연결시키면 지나친 억측일까. 묘청 같은 자주파가 절실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외부의 오랑캐가 아니라 내부의 적(아들)이라는 것을 중국인은 잘 알고 있다.그러기에 그들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내부부터 철저하게 단속하는 것이 아닐까.한국을 망하게 하는 것은 외부의 적일 수도 있다.그러나 결정적인 적은 외래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한류열풍의 허상에 휩싸여 한국문화가 우수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우리들 자신임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역사왜곡에 대한 강력한 제도적 대응과 함께 우리의 주체적인 문화를 계승,발전하려는 마음 자세를 정립할 때,고구려사도 우리 민족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유산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질 것이며,중국의 의도도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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