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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광(觀光) 아가씨들의 손님 접대비화(接待秘話)

     관광 한국을 찾는 외국 여행자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고궁과 명승지는 물론 관광요정마다 외마디 외국말이 끊일 날이 없다. 물결처럼 밀려드는 외국관광객들을 위해 이른바「관광 아가씨」라는 새로운 직종이 생겼다.  현재 당국에서 지정한 관광요정은 모두 12개소, 여기 소속된 관광아가씨는 모두 1천2백명가량 된다.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고 고궁과 명승지의 안내를 하고, 또 때로는「호텔」까지 동행해서 외국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기도 해야 하는 이들 관광 아가씨들에게는 눈물과 슬픔에 얽힌 사연이 많기도 하다.    지난 해 12월「크리스머스」와 세모의 기분에 온 장안이 들떠 있을 무렵, D요정의 관광 아가씨 김은정(金恩貞·24·가명)양은 거의 발가벗은 몸으로 새벽 일찍 D요정에 나타나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담요로 몸을 감싸주며 주인 아주머니가 이유를 물으니 김(金)양은 어깨를 들먹이며 더듬더듬 자신이 당한 일을 털어 놓았다.  전날 밤 김(金)양은 D요정에 온 일본 관광객들이「파티」에서「호스테스」로 일했으며「파티」가 끝난 뒤에는 손님의 요청에 따라「호텔」까지 동행했다.  「이시바시」라던가 하는 50대의 일본 손님은 밤새 한 잠도 안자고 김(金)양을 괴롭혔다.  『물어뜯고 꼬집고···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혔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를 써도 정상적인 행위를 할 수 없으니까 여자의 몸을 괴롭히는 것으로 쾌감을 맛보려고 하는 모양이더라는 것. 그런 사정을 이해한 김(金)양은 끝까지 참았다.  『하라는 대로 다 했어요. 정말 눈물을 씹으면서 억지로 참았어요』  그런데 새벽녘이 되자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짐승처럼 씨근거리던 일본 손님이 별안간 정색을 하고 일어나 앉더니『나는 너한테「재미」를 못봤으니까 화대를 줄 수가 없다』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그러나 일본손님의 태도는 완강한 도를 넘어서서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너 같은 건 필요 없으니 빨리 꺼지라』고 했다.  『밤새 괴롭힌 건 누군데 글쎄 돈도 안주고 당장 나가라지 않겠어요』  김(金)양은 억울한 사정을 호소했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완력에 밀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채 쫒겨나고 말았다고 했다.  관광 아가씨들이 받은 하룻밤의 화대는 미화로 60불(2만4천원). 72년 10월 이후 관광 아가씨들에게는 신분을 증명하는「패스」가 발부되었으며,「패스」를 가진 아가씨는 관광「호텔」출입과 관광객 상대 접객 행위가 묵인된다. 화대 60불도 이때 정해진 액수.  그런데 화대를 선불제로 하지 않고 후불제로 한 데서 갖가지 말썽이 빚어지고 있는 것.  O요정의 최선희(崔仙姬·23·가명)양은 이런 일을 당했다.  R「호텔」에서 일본 손님을 접대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60불을 받으려고 했더니 그 일본 사람은 별안간 양복 주머니를 여기저기 뒤지더니 돈이 한푼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밤에 자는 체하고 네가 훔친 게 아니냐』고 뒤집어 씌우더라는 것.  하도 화가 나서『그렇다면 경찰을 부르자』했더니『경찰까지 부를 필요는 없지만 난 너같은 도둑에게 돈을 줄 수가 없다』고 하며 역시 억지로 내쫓겼다.  이럴 경우 최(崔)양과 같은 아가씨는 어디에 호소하고 항의해 볼 방법이 없다. 경찰에 신고해 봐야 윤락행위 단속법 위반으로 최(崔)양이 먼저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  『정말 억울합니다. 외국 관광객 상대는 묵인되어도 정작 말썽이 생겨 우리가 피해를 입어야 할 경우 그것을 보호해 줄 아무런 대책이나 제도가 없으니 말예요』  P요정에 근무하는 신숙자(申淑子·25·가명)양의 말이다.  72년도에 한국을 찾은 외국 손님은 무려 37만명. 올해에는 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순수한 관광객만도 40만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40만명이 대부분 일본 사람일 것으로 추측하며 일본 관광객은 열이면 열 모두 기생「하우스」를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관계 당국에서는 기생「하우스」즉 관광요정의 질을 높이고 기생들의 교양과 예능 지도에 열중하고 있다.  관광요정에는 국내 손님만을 접대하는 일반기생이 있고 외국 관광객만을 접대하는 관광기생이 따로 있다.  이들 관광기생은 모두가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과 미모를 갖추었으며 외국어도 영어와 일본어는 거의 불편없이 통할 수 있을 정도다.  이들이 벌어 들이는 외화는 1인당 하루에 평균 1백불꼴(「파티」비용 포함).  올해에 40만명의 관광객이 한국에 온다 치고, 한사람이 1백불씩만 떨어뜨리고 간다면 4천만불(1백60억원)의 외화가 떨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관광산업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외화획득 사업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절대로 관광객을 접대할망정 나 자신을 창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C요정의 박애라(朴愛羅·24·가명)양의 말이다.  『일본 사람이라고 다 나쁘고 얌체는 아니에요. 어떤 때는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더 나쁜 짓을 할 때가 있어요』  밤일을 마치고「호텔」문을 나설 때 수사관을 사칭한 젊은 남자에게 지니고 있던 외화를 몽땅 털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는 얘기.  「외화 불법 소지」라는 죄목을 덮어 씌우고「핸드백」속에 챙겨 넣은「서비스」 요금을 뺏어간다는 것이다.  이럴때 아가씨들은 신고도 못하고 울면서 당하기 마련이라고.  『물론 그들은 가짜 수사관일 거예요. 그러나 가짜인 줄 알면서도 신고를 못하는 것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당무자의 태도가 너무 싸늘하기 때문이거든요』  「호텔」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마저 관광 아가씨에 대해서는 대개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팁」때문이지요. 지나칠 정도로 손을 내밀기 때문에 한두번 모른 체 하면 반드시 말썽이 나기 마련이랍니다』  비슷한 처지의 몸들이기 때문에 더 이상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하는 관광 아가씨들의 얘기는 한이 없을 것 같았다. 관광「붐」을 타고 이런 일들이 적지않다는 것을 그냥 들어 넘길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하기야 우리 애들이 잘못하는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인 이해가 너무 부족한 때문인 것 같아요』  요정 주인 정찬순(鄭讚順)씨의 말이다.  <재(宰)>  
  • 알지도 못하면서 과학무기 무섭다고?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핵을 이용해야 하나, 혹은 배제해야 하나. 화석연료는 곧 고갈되는 것일까. 수소 경제로부터 석탄, 석유, 태양열 에너지는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바꿔 놓을까. 아폴로 11호가 발사된 지 40년이 넘었는데 일반인들의 달 여행은 언제나 가능할까. 세계 주요 도시에 대규모 테러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어떤 과학 기술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을까. 탄저균 같은 생화학 무기일까. 방사능 공격이 될까. 우리는 과학기술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과학기술 문명 위에서 삶을 영위한다. 특히 지도자들은 국가와 인류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과학적 이슈들에 대한 판단과 결정을 강요받는다. 지도자뿐 아니라 민주국가에서 투표권을 손에 쥔 유권자들은 핵발전소 건설부터 온난화, 핵무기를 만드는 북한과 이란에 대한 대응정책 등에까지 의사를 표명할 권리와 자유를 갖는다. 광우병, 천안함 논란 등도 과학적 상식이 더 보편화됐더라면 이성적인 토론과 해법 찾기가 가능했을 것이다. 국민적인 분열과 대립적 정쟁으로까지 치닫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은 현대과학기술의 핵심 사안들을 설명하면서 독자들을 판단과 결정으로 이끌고 있다. “지도자들이 알아야 할 고급 과학지식 가운데 핵심 사실과 아이디어, 대통령이 결정을 내릴 때 도움될 만한 핵심 개념들을 정리한 책”이란 소개도 내용을 가늠케 한다. 이 책은 테러리즘과 원자력, 인공위성 등 우주경쟁, 지구 온난화 등 우리시대의 사회적, 국제적으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들을 통해 과학 이론을 쉽게 설명하려고 했다. 각 장마다 ‘대통령을 위한 브리핑’ 코너를 통해 경제성, 효율, 발전가능성 등을 다양한 시각으로 풀이하면서 핵심 과학 이슈들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도록 이끌고 있다. 각 분야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건전한 21세기인으로서 알아야 할 문제들을 다룬 과학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맹신이나 막연한 불안과 선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아야 할 최소한의 교양이기도 하다. 이 책은 과학 명문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물리학과 교수 리처드 뮬러의 같은 제목의 인기 강의를 번역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앞으로 몇년간 미국의 원자력 발전소는 에너지 생산에서 상당히 중요해질 것, 석유를 제외한 석탄 등 다른 화석연료는 몇 세기 동안은 더 사용할 수 있을 것” 등 논란이 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반론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과학적인 정보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대중을 화해시키려고 했다. 1만 5000원. 이석우 편집위원 jun88@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전함 크로스 섹션(리처드 플라트 글, 스티븐 비스티 그림, 진선아이 펴냄)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활약한 군함 빅토리호의 내부를 세밀화로 자세히 안내하고, 선원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책. 대형화면에 배를 가로, 세로로 잘라 소개하는 책은 어른이 봐도 흥미롭다. 1만 5000원. ●Who? 손정의 편(이숙자 글, 스튜디오 청비 그림, 다산어린이 펴냄) 세계 어린이의 21세기형 본보기를 다룬 교양 만화. ‘동양의 스티브 잡스’라 불리는 손정의의 삶을 만화로 소개한다. 1만 2000원. ●난 등딱지가 싫어!(요시자와 게이코 글·그림, 김난주 옮김, 찰리북 펴냄) 느림보라고 놀림 받아 속상했던 거북이가 들려주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 1만 1000원. ●강은 어떻게 흘러가나(김연희 글, 김명곤 그림, 다산기획 펴냄)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을 받은 저자의 두 번째 책. 1만 3000원.
  • [유통플러스]

    핸드크림·립케어 라인 출시 네이처 리퍼블릭이 피부 상태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는 ‘핸드 앤 네이처’ 8종과 ‘에코 가든’ 5종을 출시했다. 주름개선 기능성을 인정받은 핸드크림은 시어버터와 아르간 오일이 들어 있어 건조한 손을 촉촉하게 가꿔준다. 에코 가든 5종은 천연 유래 성분인 비즈왁스, 시어버터 등을 함유해 민감한 입술뿐 아니라 몸 전체의 거칠어지기 쉬운 부분에 펴 발라주면 각질 관리를 도와주고 피부를 보호해 준다. 080-890-6000. 동원 양반김치 김장투어 동원F&B는 김장철을 맞아 오는 21일~12월 16일 ‘동원 양반김치 김장투어’를 연다. 충북 진천공장에서 당일 일정으로 진행되며 12월 3일(토)엔 직장인과 가족 신청자를 위한 행사를 연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국산 재료로 김장을 하고 택배를 통해 3주 내에 받을 수 있다. 공장 견학과 김치 관련 교양 강좌도 마련한다. 참가비는 1인당 8만원. 김치 10㎏이 기본으로 제공되며 배추 겉절이 1㎏을 덤으로 받는다. 080-589-3385. 미네랄 풍부한 천일염 맛소금 CJ제일제당은 천일염 브랜드 ‘오천년의 신비’로 만든 맛소금을 선보였다. 일반적인 맛소금은 정제염으로 만들지만 이 제품은 천일염으로 만들어 천연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대형 마트 기준으로 100g은 850원, 300g은 2100원에 판매된다. 랜드로바 호주여행 이벤트 금강제화 랜드로바는 13일까지 매장에서 ‘랜드로바 양털부츠 신고 호주여행 가자!’ 이벤트를 실시한다. 매장에서 양털부츠를 구매하고 받은 응모권 번호를 홈페이지에 등록하면 추첨을 통해 1명에게 2인이 4박 6일 동안 호주를 다녀올 수 있는 여행권을 증정한다. 30명에게는 호주 천연 양털부츠 브랜드 코알라비 부츠를 제공한다.
  • 봉소아(bonsoir) 마담(4)=「나폴레옹」오미정 마담

    봉소아(bonsoir) 마담(4)=「나폴레옹」오미정 마담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비록 그 꿈이 이루어지기에는 어려운 현실 속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역시 꿈이기에 신비스러운 애착과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는가 보다. 지금은 한낱 스카치 코너의 마담. 그러나 그녀에게도 꿈이 있었고 지금도 그 꿈은 포근한 기대와 흥분을 그녀의 가슴에 안겨 주고 있다.  스카치 코너「나폴레옹」(서울 중구 소공동)의 주인 마담 오미정(吳美貞·28)씨의 꿈은 성실하고 인정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  꿈 치고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실속있는 꿈이다.  결혼을 할 수 없는 어떤 이유도, 조건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고향은 부산(釜山)이라고 했다.  여자상업고등학교를 나왔다던가 웬만큼 교양도 지성도 갖추었다.  처녀시절(지금도 처녀지만)에 저지른 무슨 잘못이나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외모는?  160cm가 될까 말까 한 키에 50kg이 채 못돼 보이는 알맞은 몸매.  스물여덟살이라고는 하지만 미혼인 때문인지 몸 전체에 흐르는 탄력은 생고무만큼이나 탄탄해 보인다.  얼굴 윤곽은 흔히 말하는 동양미인의 그것과 같은 달걀형.  시원스러운 이마의 곡선, 화장붓 끝이 한번도 닿지 않은 듯한 자연미 그대로의 눈썹, 도툼한 코와 입술,모두가 미인이라고 판정할 수 있는 합격선을 상회한다.  다만 눈매가 약간 매섭게 보이기는 하지만···.  쌍꺼풀 없이 얄팍한 눈매가 예쁘면서도 만만치 않은 성깔을 말해 주는 듯하다.  『눈매가 그래서 팔자가 센가 봐요』  그녀는 스카치 코너 마담으로 일하게 된 원인이 그 눈매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 1년 동안 어느 대학생과 교제를 해 본 경험은 있어요』  그것이 이성교제의 전부라는 듯한 말투다.  『물론 믿지 않으실 거고, 믿어 달라고 사정도 안합니다만, 제 성격과 생활 환경이 그 이상의 경험을 허락해 주지 않았어요』  한때는 언론계에서 꽤 이름 있는 어버지가 뇌일혈로 세상을 떠나자 다섯식구 한 가정의 생활을 몽땅 책임맡게 됐다는 것.  그때 오(吳)마담의 나이 21살, 부산(釜山) 모 대학생과 한창 열을 올리고 교제하던 중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머니와 3명의 남동생을 거느리게 된 오(吳) 마담은 즉각 교제를 끊어버리고 부산(釜山) 보수(寶水)동에 음식점을 차렸다.  주인 겸 종업원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일해 봤으나 경험 부족 때문인지, 장사는 뒷걸음질만 쳤고 결국 1년여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그동안에도 혼담은 여러 번 있었지만 제 자신이 전혀 마음이 내키지 않아 모두 거절해 버리고 말았어요』  집을 팔고 재산을 정리해서 서울로 올라온 오(吳)마담은 서울 종로구 수송(壽松)동에 조그만 한옥 한채를 전세로 얻어 가족을 정착시켰다.  취직을 해 보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사를 해 보려 했지만 지난 경험에 비추어 두려움이 앞섰다.  궁리 끝에 손을 댄 것이 스카치 코너「나폴레옹」.  문을 연 것은 72년 10월.  10평 남짓한 홀에는 손님이 끊일 새 없지만 오(吳)마담의 얼굴에는 별로 기쁜 빛이 나타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희생된 젊음의 아쉬움 때문인가,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꿈의 실현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인가.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저는 남성에 대한 환멸을 크게 느꼈어요』  이름이「나폴레옹」이지「나폴레옹」을 상징할만한 사진 한장, 장식품 하나도 없는 좁은 홀을 지키고 앉은 오(吳)마담의 남성관이 펼쳐진다.  『그래도 손님들은 대개 대학 교수나 공무원, 언론인 등 수준이 높다면 높은 손님들이에요.그런 손님들이 간혹 참기 어려운 말과 행동을 할 때는 머리가 어지러워져요』  웃음기 없는 얼굴에 엷은 냉소가 흐른다.  『남자가 술을 마시면 으례(으레) 그렇다지만 숫제 술 한잔 안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아저씨들도 있어요. 남자란 그런 건가요?』  『남자란 그런 건가요?』무척 낯익은 표현이다.『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시대에 비롯된 표현이던가, 아니면 여류 풍류객 황진이(黃眞伊) 시대부터 던가, 아마도 남자 있고 여자 있던 시대부터 비롯됐다고 해 두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결혼은 물론 해야지요.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온 꿈인 걸요』  결혼을 어린 시절부터 꿈으로 간직할 만큼 동경했다는 조숙한 여자도 아마 드물 것같다.  『때가 되면 하게 되겠지요. 인연이 닿으면 좋은 남자도 만나게 되겠지요』  그녀는 다 그렇고 그런 남자들 속에서도 때를 기다리고, 인연이라는 것에 기대를 건다고 했다.  『고독이요? 꼭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야만 되겠어요?』  때가 오고, 인연이 닿을 때까지의 고독을 그녀는 웃음으로 시인했다.  여자 나이 스물여덟, 고독을 느끼기로 말한다면 그 정도를 어떻게 다 말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볼링, 수영, 테니스··· 그런 것이 고독을 달래주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운전면허증까지 받았어요. 남들이 한다는 것은 다 조금씩 해 봤어요』  북한산 테니스클럽 회원에 또 무슨 볼링클럽 회원에 정말 가뜩이나 쪼들리는 시간을 용캐도 짜내어 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오(吳)마담의 말처럼, 그 매서운 눈매 때문인가. 그녀의 얼굴에는 싸늘한 고독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을뿐이다.  스카치 코너「나폴레옹」에는 오늘도 많은 손님이 찾아들고 있건만···.<재(宰)> [선데이서울 73년 8월12일 제6권 32호 통권 제252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장교양성’ 학군교 괴산 이전

    우리나라 육군 초급장교의 90% 이상을 양성할 학생군사학교(학군교)가 1일 충북 괴산에서 문을 열었다. 1985년부터 전국 학군단 훈련을 주도해온 경기 성남의 학생중앙군사학교(문무대)가 27년 만에 터는 물론 이름까지 바꾸게 된 것이다. 새로 문을 연 학군교는 2009년 1월부터 2년 10개월여 동안 4600억원을 투입, 연면적 505만 3330㎡에 학교본부(109만 5000㎡)와 각개전투장, 사격장 등 17개 과목 58개 훈련장(389만 4000㎡)을 갖췄다. 군은 올해까지 경북 영천 육군3사관학교에서 양성했던 학사, 여군사관과 군의관·법무장교·군종장교 등 9개 장교양성 과정을 내년부터 학군교에서 교육하게 돼 육군 초급장교의 93%를 양성 배출하는 장교 양성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밝혔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글로벌 시대] 일본 야쿠자에 대하여/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일본 야쿠자에 대하여/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일본에서는 지난 1일부터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폭력단 배제조례’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는 폭력단에 이권 개입을 금지하는 조례이다. 일본 신문에 야마구치파 보스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되었다. 그는 일본사회에서 폭력단의 존재 이유와 조직의 구성원, 그 가족의 입장을 호소하고 있다. 폭력단이 없어지면, 사회에 발을 붙일 수 없는 전과자와 같은 사람들이 고립되어 일본사회에 범죄가 증가할 것이다. 그러한 반(反)사회 구성원에게 직장을 주고 일반 시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규칙을 정해서 그들을 조직에 끌어모아 온 것이 폭력단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폭력단 보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폭력단은 ‘필요악’일 수도 있다. 즉,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간 사람들은 형기를 마치고 다시 사회에 나오면, 일반 사람들과 같이 경쟁사회 속에서 밥 먹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전과자는 쉽사리 취직이 안 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거나 폭력단에 들어가게 된다. 폭력단은 민주주의 사회에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민간 사회복지단체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일본 야쿠자와 같은 폭력 조직은 전세계 많은 나라에 존재한다. 이탈리아 마피아가 대표적인데, 그 기원은 19세기 초 나폴리 왕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규모나 형태는 다르지만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폭력 조직은 각각 고유한 기원과 역사를 갖고 있다. 일본 야쿠자는 다른 나라의 폭력 조직과 달리 그 역사가 상당히 길고 일본사회의 문화적 전통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이것에 대해서 언급하는 자체가 일본사회에서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거론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존재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있겠지만, 일본 중세 사회 연구가인 아미노 요시히코에 의하면, 야쿠자의 기원은 14세기 남북조시대(1336~1392)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조시대는 천황가가 남조와 북조의 두 갈래로 분열되었던 시대로, 남조 천황은 남녀 간의 성행위를 하나의 중요한 수행 방법으로 하는 밀교(불교의 일파)를 이용하여 당시 차별받던 사람들을 규합해서 사조직화했다. ‘차별받던 사람들’은 기생, 연예인, 노름꾼, 궂은일하는 사람, 죄인 등이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이어져 현대에는 ‘차별 부락’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은 본인이 북조계열이었지만 남조 천황가를 정통으로 인정했다. 일본 천황은 지금은 상징 천황으로서 정치적 실권이 없으나 천황제 역사가 일본의 사회구조와 문화 및 일본인의 사고 방식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쳐온 것은 사실이다. 현재에도 야쿠자 구성원 중 60%는 일본인 차별 부락 출신자이고 30%는 한국계, 나머지 10%가 중국계와 일본인 전과자라고 한다. 그리고 차별 부락 사람들의 상당수는 천황제를 지지하는 정치적 우익이며, 일본 우익 단체는 폭력단의 하부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 연예계나 스모계, 신사나 절에서 행하는 마쓰리 등이 야쿠자와 관계 있는 것은 일본 역사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문제시된 연예계·스모계와 야쿠자와의 관계는 최근에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예계·스모계와 야쿠자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을 그을 수 없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것이 아닐까 한다. 일본사회에서 야쿠자를 척결한다는 것은 이상과 같은 역사에 비추어 보면, 천황제에 대한 외과 수술을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작업이 진정성을 가지고 진행된다면 그것은 일종의 문화 혁명이 될 것이다. 이 작업에는 그 정도의 각오와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찰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고립된 전과자를 지원하고 ‘차별 부락’ 출신자나 한국 및 중국계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를 없애는 조치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후생노동성과 법무성이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할 것이다.
  • [시민단체 정치속으로] 전문가들이 본 시민단체 과제

    [시민단체 정치속으로] 전문가들이 본 시민단체 과제

    시민단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념과잉보다 실사구시’다. 진보와 보수로 나뉜 이념 싸움을 자제하고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감시에 나서야 한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이 된 것과 관련, 시정 비판이 아닌 시정에 개입에 대한 경계심을 일제히 나타냈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는 주문이다. 설동훈(왼쪽)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단체는 반드시 정치권력과 거리를 둬야 한다.”면서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마치 정당인 양 밀어붙인 모습은 잘못된 것”이라고 짚었다. 또 “시민단체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판과 견제는 하되 반드시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치 정당처럼 일방적인 이념과 선입견을 가지고 펼치는 네거티브 공세가 이제 국민들에게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정권의 이념 성향에 따라 정부가 시민단체 실무자의 인건비 지원을 달리해 시민단체의 활동이 위축됐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시민단체가 정부의 돈을 받을 필요는 없다.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하는 것이 옳다.”고 잘라 말했다. 현택수(가운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원순 시장 당선 이후 시민단체 활동이 더욱 활성화 될 것”이라면서 “시민단체가 이 기회를 정치권에 진출하는 발판으로 이용할까봐 우려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또 “시민단체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오히려 이미지를 깎아먹는 등 역효과만 난다.”면서 “정치참여를 자제한다는 내용의 윤리강령을 내부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민후보’임을 자처한 박원순 시장의 당선으로 시민단체가 부각되는 것과 관련, “방향을 잘못 짚은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정대화(오른쪽) 상지대 인문사회과학대 교양과(정치학) 교수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박 시장의 당선은 ‘시민단체’가 아닌 ‘시민사회’의 힘이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현재 시민단체가 화두이지만 시민단체보다 오히려 시민사회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보궐선거 과정에서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박 시장을 크게 도와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교육·복지 분야에서 정부와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준·김진아기자 apple@seoul.co.kr
  • ‘사업조정회의’ 구성 현안 조율… “3~5개 공약에 집중”

    ‘사업조정회의’ 구성 현안 조율… “3~5개 공약에 집중”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27일 첫 업무지시는 “당장 새달부터 초등학교 5·6학년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이어 그는 “겨울철 서민대책을 철저히 하라.”고 일성을 올렸다. 취임 첫날 업무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박 시장이 5·6학년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지시한 것은, 앞으로 서울시정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원인이자 서울시의회와의 갈등 요인을 시간을 끌지 않고 서둘러 풀어 버렸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오전 10시에 시작된 시정현안 업무보고에서 첫 안건으로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올리고, 초등학교 무상급식과 관련해 서울시청 몫의 5·6학년을 위한 예산 185억원을 서울시교육청에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에 관한 조례에 대한 재의요구를 철회하고 11월부터 즉각 지원하게 된다. 초등학교 전 학년 무상급식이 실현된 것이다. 박 시장은 오후 기자실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새달에 2012년 예산안을 통과시켜 내년에도 무상급식 지원을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 전 시장 체제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상급식에 관한 해법의 방향을 분명히 했다. ●“복지사각지대 재발굴에 집중” 박 시장은 또 서울시청 업무보고에서 “공약 중에 복지 공약이 많은데 저는 특히 장애인, 노인복지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면서 “안전망에서 빠져 있는 분들을 재발굴하는 부분을 눈여겨봐 달라.”고 참석 간부들에게 지시했다. 당선된 직후 이날 새벽 서울광장에서 당선자 신분으로 지지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박 시장은 “선거 때만 시장을 찾아가고 양로원을 찾아가는 시장이 되지 않고, 늘 어려운 노인들과 함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부채 중 7조원 이상을 임기 중에 갚겠다고 약속한 박 시장은 “복지는 예산이 수반돼야 하고 부채도 줄여야 하니 양면의 압박이 있을 것”이라며 “서울시의회와 중간 협의도 하겠지만, 우리 안도 어느 정도 완성해 중장기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지방자치단체 동시선거가 있을 때는 일반적으로 한 달 정도 서울시정을 인수인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지만, 현재 박 시장에게는 그럴 시간적 준비 없이 서울 행정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문제다. ●한강르네상스·디자인시티 등 재검토 우선 한강르네상스 사업이나 디자인시티, 양화대교 교각 확장 공사 등과 같은 정책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겠지만, 나머지 전임 시장의 주요 정책들을 어떻게 이끌어갈지를 빠른 시간 내에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박 시장은 “한강르네상스 같이 현안이 된 여러 사업에 대해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시민들이 함께 심사숙고해 판단하는 ‘사업조정회의’와 같은 기구를 한시적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상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원순표 정책을 시민들에게 각인시키려면 2년 6개월이 짧다.”면서 “주요 공약 3~5개에 집중해 이끌어가는 것이 필요하고, 잘못된 정책은 사업조정회의를 통해 조정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박 시장은 민주당은 물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정당과 시민단체 등과의 정책적인 협의도 과제다. 박 시장은 “자문기구를 통한 협치가 박원순 시정의 핵심이자 소통의 방안”이라며 “의결기구가 아닌 자문기구인 ‘공동정부운영협의회’를 구성해 어려움 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각 정파의 입장이 총론에선 서로 비슷해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어 이들을 조율하고 ‘박원순표 행정철학’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인사는 박 시장이 누구인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신호다. 박 시장이 이날 “인사를 급하게 안 할 생각이다. 간부님들 모두 맡은 자리에서 새로운 분위기로 일해 달라.”고 당부해 들뜬 서울시 공무원들을 안정시켰다. 그러나 고위 공무원은 잠시 미루더라도 주요 정무직에 대한 인사는 해야만 한다. 현재 공석인 정무부시장(차관급)이 가장 중요한 자리이고, 1급 상당인 정무조정실장, 소통특보, 대변인 등이 그들이다. 민주당이 압도적인 서울시의회를 고려한 인사를 할 것인지, 아니며 시민사회단체 출신의 색깔을 강화할 것인지 등이 주요한 관심사다. 고건 시장 때는 행정부시장도 외부인사로 채웠지만, 그 때문에 서울시 공무원들이 상당히 반발했었다. ●임기 다한 市산하기관장 다수 교체 예정 서울시 산하기관인 공사 사장이나 투자기관장들도 기다리고 있다. 이 기관장들은 임기제로 공모를 통해 선출되는데, 일부 기관장들은 올 10월 말부터 내년 2월에 임기가 끝난다. 서울신용보증재단 이해균 이사장의 임기가 오는 31일이고, 서울의료원 유병욱 원장은 11월 30일, 세종문화회관 박동호 사장이 12월 4일, 서울시립교양악단 김주호 단장이 내년 2월 24일, 디자인재단 심재진 단장이 내년 2월 29일 등이다. 서울시 주택정책과 큰 관련이 있는 유민근 SH공사 사장의 임기도 내년 3월 26일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논란 핵심 ‘자유민주주의’ 놓고 학계 28일 맞짱 토론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논란 핵심 ‘자유민주주의’ 놓고 학계 28일 맞짱 토론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런 가운데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지난 24일 정부에 집필 기준안을 제출했으나 진보·보수 양쪽 진영 모두에게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자문기구인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는 26일 국편이 제출한 안을 토대로 집필 기준을 심의한다. 정부는 의견을 종합 수렴해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기준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알려진 대로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논란이 됐던 ‘자유민주주의’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로 다시 바꾸고 ▲‘자유민주주의가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앞에 ‘독재정권에 의해’라는 표현을 삽입하며 ▲‘대한민국이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에 유의한다.’에서 ‘한반도의 유일한’이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핵심은 자유민주주의다. 집필기준안 논의과정에서 일부 위원들이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면서 논란이 촉발됐기 때문. 국편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절충안을 내놓았으나 논란은 오히려 더 커지는 양상이다. 오는 28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평동 4·19혁명기념도서관 회의실에서 열리는 ‘2011 자유민주주의 토론회’가 주목되는 이유다.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민주화기념사업회가 최근 역사 교과서 논란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현대사학회와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놓고 벌이는 맞짱토론이다. ‘정권을 등에 업은 학회를 상대해 괜히 판을 키워 줄 필요가 없다.’는 역사학계 일각의 무시 전략과 달리 사회과학계가 대응에 나선 점도 흥미롭다. 김귀옥(한성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민교협 사무처장은 “사회과학적으로 소통하고 논쟁해 보자는 취지에서 지난달 중순 현대사학회에 제안했고, 그렇다면 공동주관하자는 역제안이 들어와 함께 개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토론회 사회는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맡았다.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가 대표 발제를 맡아 ‘왜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안 되는가’를, 현대사학회 소속 김용직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왜 자유민주주의여야 하는가’를 각각 주장한다. 찬반토론에는 현대사학회장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뉴라이트와 교과서포럼에 관여한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 채택에 항의하면서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 위원직을 내던진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와 자유주의 법철학 사상을 연구해온 정태욱 인하대 법학과 교수가 각각 나선다. 박 교수는 기조논문(‘민주공화국,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대한민국의 기원, 성립, 발전, 특성, 전망의 한 부분적 소묘’)을 통해 “우리나라는 역사상 자유민주주의였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 헌법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했다는 보수진영의 전제 자체를 부정한다. 박 교수는 “1948년 제헌헌법의 가장 중요한 두 특징은 혼합정부와 균등경제 체제”라면서 “유감스럽게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건국세력에조차 방기, 배제, 극복, 타도의 대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 이후에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독재정권이 이어진다.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라고 하게 되면 “실제 존재했던 역사의 상당 부분,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과 건국운동은 물론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체제조차도 포괄하거나 설명할 수 없게 된다.”고 박 교수는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 진영이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기 위해서는 ▲시장경쟁 만능주의와 남북대결 구도를 강요하지 않고 ▲현행 헌법의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배척하지 말아야 하며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오염시킨 과거 행태에 대해 사과하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민주주의’ 방어에 나서는 김 교수는 논문(‘한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수용, 시련, 발전’)을 통해 ‘불가피성’을 핵심이유로 든다. 이승만 정권이 미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통째로 직수입해 왔는데 당시 사회적 역량이 이를 뒷받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며 북한의 강력한 위협마저 존재해 자유민주주의의 변형 왜곡은 어쩔 수 없었다는 반론이다. 다시 말해 시대적 한계였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자유민주주의가 “행정부의 구성 및 작동 원리로 도입됐지만 광범위한 사회 체제에서는 아직 구성원들에게 낯선 외래의 문화와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토착화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하는 미래 체제의 질서였다.”고 말한다. 해서 “과거에는 협소한 이념적 수용의 태세를 보인 시기도 있었지만 자유민주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역대 정권들의 반(反)자유민주주의적 행태를 인정하되 이를 “정권 말기, 즉 이승만 정권 말기인 1968년 이래와 박정희 정권의 4공화국 시기”로 제한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남편 대선캠프 고문 맡자 방송인 아내 마이크 껐다

    남편 대선캠프 고문 맡자 방송인 아내 마이크 껐다

    방송인의 정치적 직업윤리는 얼마나 엄격해야 하나. 한국에서 끝없는 논란거리인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미국에서 나왔다. 미 공영방송 NPR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인 유명 방송인 미셸 노리스(50)는 24일(현지시간) 남편 브로더릭 존슨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캠프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내년 말 대선이 끝날 때까지 프로그램을 떠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대선과 관련해 행여 불공정 시비에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아예 마이크를 잡지 않겠다는 얘기다. 노리스는 존슨이 지난주 오바마 캠프의 선임 고문직에 임명된 뒤 바로 며칠 만에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노리스는 2009년 미 방송기자협회 ‘올해의 방송인’으로 뽑혔던 인물로, 그가 진행하는 ‘올 싱즈 컨시더드’(All Things Considered)는 매일 오전 주요 정치 이슈들에 대해 논평하고 토론을 진행하며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노리스는 이날 NPR 내부통신망을 통해 동료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남편이 새로 맡은 일로 내가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기 어렵게 됐다.”면서 “진행자 자리를 떠나는 결정은 NPR 경영진과의 협의 끝에 아주 신속하게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뉴스기관으로서 NPR의 청렴도를 명예롭게 하고 전문직업인으로서 내게도 최상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나는 대선이 끝날 때까지 NPR에서 다른 일을 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선거와 관련한 보도나 기획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편 존슨 오바마 캠프 몸담아 노리스의 엄격한 직업윤리 실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남편이 2004년 대선 때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선임 고문으로 임명됐을 때도 선거 관련 보도를 일절 중단했다. NPR의 내부 윤리강령은 “NPR 방송인의 배우자나 가족, 또는 NPR의 다른 동료가 정치에 연관돼 있을 때 그것이 ‘이해관계 충돌’에 해당하는지를 민감하게 고민해야 하며, 상급자에게 그와 관련한 취재나 방송활동에서 배제돼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상급자와 국민에게 그런 일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고 돼 있다. ●정치이슈 프로그램 진행 중단 이런 윤리강령에 의거, NPR은 정치와 무관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정치적 활동에 연관돼 있다면 가차없이 마이크를 뺏는다. 실제 NPR은 지난주 ‘오페라의 세계’라는 교양 프로그램의 프리랜서 진행자 리사 사이먼을 진행자 자리에서 쫓아냈다. 그가 월가 점령 시위 주도 그룹 중 하나인 ‘2011년 10월’(October 2011)의 대변인으로 활동해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나 데이비스 렘 NPR 대변인은 “프로그램의 성격과 무관하게 진행자는 방송국을 대표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만큼 정치적 활동은 금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공영방송뿐 아니라 민영방송도 대부분 정치적 직업윤리 규정을 엄격히 고수하고 있다. ABC방송은 올 1월 오바마 대통령이 ABC의 베테랑 백악관 취재 기자인 클레어 십먼의 남편 제이 카니를 백악관 대변인으로 임명하자 “십먼에게 백악관 취재를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WHO&WHAT] 인구 10억명 시대 경제학자 맬서스 ‘2011년판 70억 인구론’

    [WHO&WHAT] 인구 10억명 시대 경제학자 맬서스 ‘2011년판 70억 인구론’

    누구는 이달 말이면 된다고 하고, 누구는 올해 말 또는 내년 3월이라고 한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이미 넘었다고도 한다. 누가 맞았는지 정확히 알거나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계 인구 70억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꼼수’가 등장했다. 유엔은 아예 31일을 ‘70억 인구의 날’로 정했다. 한발 더 나아가 아동인권운동기구인 ‘플랜 인터내셔널’은 인도 북동부 우타르프라데시아주에서 태어나는 여자아이를 ‘70억번째 아이’로 공인한다고 발표했다. 1초마다 2.5명, 1분에 150명씩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죽는 사람까지 고려하면 누가 70억번째인지 어차피 알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이벤트인 셈이다. 생명의 탄생은 축복이지만, 70억이 사는 지구는 마냥 축복할 수 없는 일이다.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은 파괴되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늘어나고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세계화 ‘덕택’에 한 나라의 불행은 다른 나라의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지며 지구는 이미 완벽히 ‘연동’된 상태다. 과연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에서는 이 같은 질문에 답해줄 만한 사람의 강연을 들어보기로 했다. 바로 역사상 가장 ‘비관적’인 책을 쓴 사람으로 꼽히는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1766~1834)다. 지난 200여년간 그의 저서 ‘인구론’에 비할 만한 논쟁을 낳은 책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유일하다고 평가된다. 인구 10억명 시대에 살았던 최초의 ‘전업 경제학자’ 맬서스는 오늘날의 지구를 어떻게 평가할까. 2011년에 부활한 맬서스의 인구론 1, 2강을 들어보자. 제1강 ‘음울한 과학’ 인구론 전형적인 영국 신사의 강연을 기대했는데,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시는 분들의 표정이 보이는군요. 네. 전 선천성 구개파열, 소위 말하는 언청이죠. 그래도 지금 보시다시피 말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은 케임브리지대 지저스 칼리지에 입학한 이후에 여러 웅변대회를 휩쓸 정도였으니 강연에 대한 실망은 접으셔도 됩니다. 강단에 올라오기 전에 좀 들어보니 다들 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시더군요. 이해합니다. 200년이 지났으니, 제가 한 일만 남고 제 자신은 희미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우선 간단히 제 배경을 얘기하면서 시작하죠. 전 대학을 졸업한 후에 목사로 일했고, 나름대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1793년에는 지저스 칼리지의 평의원이 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 주요한 관심은 당시의 정치와 경제에 있었습니다. 특히 복지정책이나 식량가격정책에 대해 깊은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39살에는 이스트인디아컴퍼니 칼리지의 교수가 되면서 역사, 정치, 상업, 금융을 가르쳤습니다. 담당은 ‘정치경제학’이라는 처음 만들어진 분야였죠. 흔히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의 시조라고 여기지만, 스미스는 도덕철학 담당 교수였어요. 결국 제가 최초의 전업 경제학자가 된 셈이죠.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제가 오늘 여기 선 이유가 된 책. 바로 ‘인구의 원리에 관한 소론:고드윈, 콩도르세 및 기타 저술자의 연구를 논평하면서 장래의 사회개혁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함’이죠. 너무 기니까 그냥 여러분들이 부르는 대로 ‘인구론’이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이 책은 원래 제 아버지와의 논쟁에서 시작됐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목사였던 제 아버지 대니얼 맬서스는 굉장히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당시 철학가나 정치인들과 비슷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막 시작되던 단계였고 양모 수요가 늘어나면서 귀족과 중간계급이 대규모 목양지를 만들기 위해 토지를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삶의 터전을 잃은 농민들이 도시빈민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부양 자녀수에 따라 빈민에게 생활보조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역시 이에 동조하는 입장이었죠. 하지만 전 이 정책이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려는 장기적인 악수가 될 것으로 봤습니다. 왜냐고요. 간단합니다. 초판의 서문에 전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실 책은 사라지고 이 문구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인구는 억제되지 않을 경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렇게 설명해 보죠. 인간은 가급적 많은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인구는 1, 2, 4, 8, 16, 32…로 증가하죠. 반면 식량은 마음대로 증산할 수 없기 때문에 1, 2, 3, 4, 5, 6, 7, 8…로 늘어납니다. 그럼 지금 인구와 식량이 1:1이라면 200년 후에는 인구와 식량의 비율은 259:9, 300년 후에는 4096:13으로 벌어지게 됩니다. 물론 식량생산 기술을 개발하면서 격차는 좁아지겠지만 균등하게 늘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인류가 파국으로 가고 있다는 거죠. 물론 인구론은 그 해결책 역시 담고 있었습니다. 인구 증가속도를 늦추는 방법은 전쟁, 기아, 질병 같은 ‘적극적 억제’와 출산율을 낮춰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예방적 억제’가 있습니다. 전 예방적 억제를 권장했습니다. 목사인 제가 어떻게 적극적 억제를 하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결혼을 늦게 하거나 빈민에게 청결을 권고하지 말고, 도시의 거리와 집은 더 좁고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게 하면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인구증가를 억제하고 평균수명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잔혹하다고요. 인구증가로 모두가 파멸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구론은 ‘성경’이 아닙니다. 단지 제 스스로 생각했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제 주장을 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전 평생 악평과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사회학적으로 해결책을 고찰했던 제 이론들은 빈민구제나 복지정책에 대한 반대 근거로 사용되며 기득권만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18세기에 저보다 앞서 이런 내용을 발표한 사람은 많았죠. 단지 제 이론이 산업혁명 급변기의 영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또 비교적 간단명료하게 쓰여졌기 때문에 당시를 대표하는 이론이 되지 않았을까요. 제2강 ‘수정 인구론’ 자, 그럼 현실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2011년의 오늘을 보니 제가 예측했던 것과 확실히 다르군요. 200여년이 지났으니 인구와 식량의 비율이 259:9여야 한다는 말인데 전혀 그렇지 않군요. 원인을 분석해 보니 전 산업혁명의 초창기의 암울한 분위기에 치중했던 나머지 인류가 얼마나 놀라운 발전을 할지 미리 내다보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구와 식량에 대한 제 전제를 다시 써야 하겠죠. 다만 변명을 하자면 저는 생전에 제 의견을 고치려고 노력했다는 겁니다. 인구론은 개정판이 나왔고 그때 내용이 획기적으로 달라졌는데, 지금 사람들은 초판만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 2판에서 인구 문제 해결 가능성을 낙관하기도 했죠. 또 빈민구제도 전면적인 폐지보다는 점진적으로 상황을 보며 조절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강조했던 예방적 억제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인구억제 정책을 썼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아이를 적게 낳고 있습니다. 인구증가율이 높은 저개발 국가에서는 결혼연령을 늦추고 피임을 유도하는 등 제 200년 전 주장을 쓰고 있습니다. 인구는 늘어나지만 인구증가율은 둔화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언제 실질적으로 줄어드느냐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인구증가가 식량과만 연관을 맺는 것뿐 아니라 환경파괴나 자원고갈, 기후변화 등 제가 예측하지 못했던 요소들이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요. 인구증가는 아직도 막아야 하는 숙제입니다. 식량이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제 전제는 분명 틀렸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산업국가와 개발도상국에서는 식량 생산 증가율이 인구 증가율보다 높아진 경우도 있더군요. 그러나 저개발 국가에서는 아직 굶어죽는 이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비교적 충분해진 식량을 어떻게 나눌지를 고민하는 분배의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입니다. 오늘의 강연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경제학은 어디까지나 당시의 사회상황에 치중해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느 것을 택할지는 전문가와 정책 결정권자들의 몫입니다. 제 시절에 장 바티스트 세이는 “공급이 수요을 창출하기 때문에 공급 과잉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전 공급 과잉 현상이 충분히 생길 수 있고, 이런 경우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요.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 훨씬 적합한 얘기 아닌가요. 이래도 제가 단순히 한물 간 경제학자, 거짓 예언자이기만 할까요.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답이 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없습니다. 70억이 살아가는 지구라면 더 그렇습니다. 2025년에는 80억의 지구가 됩니다. 그 이후는 여러분의 손에 달렸습니다. 함께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무기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박중서/네이버 인물세계사) 교양세계사(동서역사문화연구회/우물이있는집) 경제학콘서트(팀 하포드·이진원/웅진지식하우스) 부의 탄생(윌리엄 번스타인·김현구/시아출판사) 더 이코노미스트 2011년 10월 22일/‘세 섬 이야기’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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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고된 시집살이를 담은 옛날옛적 노래가 요즘 세상에도 존재할까. 여기 세 며느리의 시집살이를 합치면 무려 200년이 넘는다는 며느리 3대(代)가 있다. 쪽진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며, 하루를 시작하는 103세 황간난 할머니 아래로 82세 선경숙 며느리와 58세 정민숙 손자며느리까지, 며느리 삼대가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딸기가 좋아(KBS2 오후 4시 30분) 바닷가로 조개를 잡으러 간 아이들. 똘밤이 커다란 굴을 캐서 레몬에게 준다. 그러자 수박은 질투를 느끼고, 더 큰 걸 잡겠다며 점점 멀리 나간다. 한편 바나나는 자기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딸기를 보자 심통이 나 딸기에게 진흙을 던지며 시비를 건다. 그렇게 딸기와 바나나가 아웅다웅 싸우는 사이 수박이 사라지고 마는데…. ●월화 특별기획 계백(MBC 밤 9시 55분) 대야성을 함락한 의자는 품석과 그의 아내 고타소를 죽이고, 서라벌을 함락하겠다며 만취한 상태로 말을 달리다 실종되고 만다. 계백은 목숨을 걸고 의자를 구하고, 그 와중에 문근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한편 도망치던 중 부상을 당한 의자는 뇌혈 증상을 일으키며 쓰러진 뒤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한국기행(EBS 밤 9시 30분) 산자락마다 주렁주렁 알밤이 영근 계절. 충남 공주 하면 알밤, 알밤 하면 공주다. 이곳 의당면 두만리 전용주 어르신 댁은 알밤 수확이 한창이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게를 어깨에 메고 밤밭으로 향한다.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알밤 수확 후 구워 먹는 달달한 군밤의 맛 또한 일품. 공주의 계절을 알리는 가을 전령사, 공주 알밤을 맛보러 떠나 보자. ●멜로다큐 가족(OBS 밤 11시 10분) 경북 봉화의 인적이 드문 고즈넉한 산골 마을. 자연을 벗삼아 매일 소풍 온 기분으로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3대 가족이 있다. 24시간 늘 붙어 있는 강완중·곽윤숙 부부와자연 체험 학습 현장에서 뛰노는 아이들. 자연 속에서 함께하기에 더 행복한 산골 가족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본다. ●기자가 만나는 세상 현장 21(SBS 밤 8시 50분) 41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판대와 서점의 한구석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책 한 권이 있다. 손안에 쏙 들어올 것 같은 샘터다. 예전만큼의 위용을 나타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라는 슬로건을 지켜내고 있는 샘터.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준 샘터 500호를 기념해 본다.
  • 아이들 ‘신비한 언어능력’ 어디서 오나

    아이들 ‘신비한 언어능력’ 어디서 오나

    아이들이 말 잘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소망이다. 또박또박 예의 바르게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언어발달 과정을 봤더니 자기중심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24~26일 오후 9시 50분 방영되는 EBS 다큐프라임은 ‘언어발달의 수수께끼’는 이 문제를 다룬다. 1부 ‘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는 영어조기교육 논란에서 출발한다. 수도권 아이들은 평균 3.7세부터 영어교육을 받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로 우리 부모들의 영어교육은 유별나다. 반론도 거세다. 너무 어릴 적부터 가르치면 언어상 혼란이 온다는 것이다. 아기는 돌이 지나면 ‘엄마’, ‘아빠’라고 입을 연다. 좀처럼 안 터지던 말이 이 시점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아기들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말 그 자체의 뜻보다 그게 말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게 먼저다. 해서 인공언어를 아기에게 들려주고 아이가 단순한 소리뭉치와 말을 구분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실험 결과를 보면 6개월 된 아기는 R과 L 발음까지 구분한다. 성인들이 영어를 하면서 애먹는 걸 손쉽게 해낸다. 이 능력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사라지는지 송현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와 함께 알아본다. 그렇다면 영어 조기교육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와 함께 알아본다. 2부 ‘언어가 나를 바꾼다’는 언어의 프레임 문제를 다룬다. 어떤 단어와 표현을 쓰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유미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 이재호 계명대 심리학과 교수 등과 함께 중학생을 상대로 어떤 어휘를 쓰느냐, 또 같은 단어를 써도 어순을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심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규명해 나간다. 한국 아이들이 다른 나라 아이들보다 수학을 잘하는 이유도 언어에 있다는 사실까지 공개한다. 3부 ‘나도 말을 잘하고 싶다’는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지 살펴본다. 연구 결과 아이들은 18개월부터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때부터 이미 아기들은 대화에 실패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없어서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진 이들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실제 오래된 부부들을 상대로 실험도 했다. 대학생 면접 실험 결과도 공개한다. 그 결과 사람이란 묘하게도 같은 말을 들어도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듣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듣기 싫은 말까지 잡아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오감도’ 이상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오감도’ 이상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1934년 식민도시 경성의 여름은 뜨거웠다. ‘조선중앙일보’에 7월 24일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작품 ‘오감도’(烏瞰圖) 때문이다. 작가는 2000여편 중에서 30편을 골라 연재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15회를 넘기지 못했다. 띄어쓰기 무시! 문법 파괴! 기호와 숫자가 문자를 대신하는 시! 독자들은 분노했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 당장 원고를 불살라라, 작가가 미쳤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을 미쳤다고 비난하는 독자들에게 반문한다.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년씩 뒤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그가 보기에 대중은 게으르고 편협했다. 자신은 지금 시대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뛰어넘고 있는 중인데 독자들은 아직도 구태의연한 문학관만 소비하는 중이니 말이다. ‘오감도’의 작가 이상(李箱·1910~1937). 그는 정말 시대와 불화한 천재였을까. 시대가 박제시켜 버린 천재였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이나 영감에 의지해 개성을 뽐내는 그런 천재는 아니었다. 모두가 문명화, 근대화라는 덧없는 망상 속에서 허둥댈 때, 그는 아무도 보지 못했던 문명의 메커니즘을 보고, 시대의 이면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비상(非常)한, 비상(飛上)을 꿈꾼 지식인이었다. ●모던 경성, 적빈(赤貧)의 시공간 1910년 9월생인 그는 일본어를 국어로 하는 세상에서 태어나 문화통치 기간인 1920년대에 학교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920년대 중반이 되면 제국 일본의 식민 경영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아울러 경성의 도시경관은 총독부 건물, 경성제국대학, 백화점을 중심으로 근대 도시의 풍모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 안에서 근대적 학교교육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출판산업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다. 그리하여 1920년대에는 신문과 잡지를 통해 동시대의 근대문화를 흡수하고 소비하는 ‘대중’이 유럽풍 옷가지와 장신구로 몸을 두르고 커피 한잔을 찾아 방랑하는, 보들레르가 명명했던 ‘산보객들’이 경성 한복판에 등장하기에 이른다. 경성고등보통학교 건축과 학생이었던 이상 역시 화구통을 메고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가난이었다. 끼니를 잇기 힘든 가난한 중인 가문의 장남이었던 그는 현미빵을 팔아 학교를 다녔다. 그가 배우는 최신 기하학과 건축학이 식구들과 이웃의 허기를 달래줄 날은 참으로 요원했다. 하지만 이런 물질적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의 가난이었다. 생활은 점점 더 돈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돈은 아비와 자식, 친구와 애인을 연결시켜 주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였다. 의리도 인정도 돈 앞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다. 지독한 정신의 가난은 가난한 서민들뿐 아니라 도시인 전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대중매체가 선전하는 소비와 향락, 학교에서 강요하는 청결하고 근면한 생활. 이상이 보기에 이것은 실상 일본식 유행풍속을 좇아 양복을 입고 몇 개 안 되는 다방을 전전하면서 ‘교양입네’ 하는 꼴이었다. 제국 일본의 식민도시 경성은 제대로 문명화를 구가하지도 못하면서 박래품 소비에만 열광하는 ‘무늬만 근대도시’였다 경성의 도시인들은 모두 ‘모던’(modern)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지만, 정작 자신의 텅 빈 정신은 보지 못하는 불구자들이었다. 왼팔을 들면 거울 속의 나는 오른팔을 들어 올리는 기묘한 형국처럼 도시인들은 자신을 비추는 문명의 거울 앞에서 분열증에 시달렸다. 지독한 정신의 가난 속에서도 겉으로는 잘사는 척, 문명인인 척하기에 급급한 삶이라니! 이상은 이 사태가 공포스러웠다. 그 수선스러움에 질식할 것 같았다. 이 가난에 맞서야 한다! ●나의 펜은 나의 칼이다 1930년 ‘조선’에 연재된 첫 장편소설 ‘십이월 십이일’을 필두로, ‘이상한 가역반응’, ‘삼차각설계도’, ‘건축무한육면각체’ 등 기하학과 일본어가 맞물린 시들과 ‘지도의 암실’ 등의 소설, 다양한 수필이 발표된다. 문명을 지탱하는 정신의 가난과 대결하면서 그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언어의 문제였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본어가 국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조선어다. 그는 식민지에서의 가난과 소외가 무엇보다도 언어와 그 언어 사용자 사이에 놓인 간극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1930년대를 지배하는 ‘모던’이라는 말 안에는 그 어떤 진지한 성찰도 부재했다. 도시의 소비자들은 양복(洋服), 양행(洋行)과 같이 서양풍을 내세운 습속에만 매달릴 뿐 왜 서양식 옷을 입고 서양에서 나온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문하지 않았다. ‘모던’이란 말은 식민지 조선에서 텅 빈 기호였다. 그 안에서 어떤 정신적 가치도 찾을 수 없었다. 이상은 그런 시대를 ‘활자허무시대’라고 명명했다. 이상은 그렇게 기호에 갇혀 자기 삶의 진실을 외면하는 문명인의 삶을 해부하기로 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런 그에게 문학은 대중이 기대하는 여가선용이나 위안의 도구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듯 특정한 계급의 현실을 드러내고 정치적 방향을 선동하는 이념의 도구에 머무를 수도 없었다. 문명의 매커니즘을 해부하고, 소외된 삶을 극복하는 것! 이것이 문학의 일차적인 임무여야 했다. 이상에게 펜은 그런 가난한 문명과 나태한 정신을 향해 휘두르는 칼이어야 했다. 그의 시 ‘오감도’는 숫자와 여러 가지 기호들을 통해 근대적 삶의 폐쇄성과 불구성을 해부하는 ‘메스’로서의 문학이었던 셈이다. ‘오감도’ 연재가 중단된 후 자신의 시도가 불러일으킨 적대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상은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을 몰라보는 대중을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관광객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관조하지도 않았다. 속악한 돈의 횡포나 비정한 이기주의를 직시하면서도, 그는 자신 역시 허위에 찬 근대의 산물임을 처절하게 의식했다. 박태원과 김기림 같은 지인들은 이상이 퇴폐적 카페를 열고 여급들과 연애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문학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도 문명을 비판하고 자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감추려고도, 미화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배반과 궁핍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근대문명을 고민하고, 그 안을 휘청거리며 걸었다. ●이상, 시대의 혈서를 쓰는 자 1936년 가을, 이상은 일본 도쿄로 떠났다. ‘날개’를 통해 평단으로부터 큰 주목과 호평을 받은 직후였다. ‘날개’는 돈으로 마음과 정신을 사고파는 근대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여기서 이상은 주인공이 날개를 얻어 비상할 것을 꿈꾸는 장면으로 작품을 마무리했다. 해부를 넘어 새로운 도덕을 발견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어쩌면 그 도덕적 비전이 식민지 조선 바깥에, 현해탄 건너 문명의 본산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쿄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허영의 낙원이었다. 특가품, 할인품, 온갖 상품들로 넘쳐나는 긴자 거리에서 사람들은 모두 성병에 걸린 듯 화려하게 치장한 채 돌아다녔으며, 최신 서적들은 그저 교양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거기에도 자기 삶의 정열을 태우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가 더 노골적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영국 런던에 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딜 가도 적막, 암흑, 권태뿐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새로운 도덕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20세기가 그토록 찬미해 마지않는 문명이란 정신의 가난만 키우는 황금만능의 허위 세계임을, 이상은 낯선 땅에서 뼛속 깊이 절감한다. 그해 겨울 도쿄 거리에서 이상은 불온한 조선인으로 낙인찍혀 감방에 갇히게 된다. 도일(渡日)하기 전부터 앓았던 폐병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문명의 속악성은 그의 마음에서 한 가닥 희망마저 앗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글을 쓰면서 돌파구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1937년 4월 17일. 채 십년이 되지 않는 창작 기간 동안 오직 근대문명의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글을 썼던 이상이 죽었다. 그의 죽음은 친구 김기림의 말대로 제 육체의 마지막 조각을 갖고 제 혈관을 짜서 쓴 시대의 혈서였다. 죽기 몇 달 전 탈고한 소설 ‘종생기’(終生記)에서 이상은 자신의 묘지명을 작성한다. “일세의 귀재(鬼才) 이상은 그 통생(通生)의 대작 ‘종생기’ 일편을 남기고 서력 기원후 일천구백삼십칠년 정축(丁丑) 삼월삼일 미시(未時)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하다. 향년 만이십오세와 십일개월.” 자신을 죽이고, 그 시체로부터 생과 예술의 본질을 투시하려 했던 자. 임박한 죽음 앞에서도 이상은 그렇게 끝까지 예리한 언어의 칼날을 거두지 않았다. 오선민 남산강학원 연구원
  • 김정일父子 3개월만에 軍시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조선인민군 제4304군부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20일 보도했다. 김정일 부자가 군인들의 공연 관람이 아니라 군부대를 시찰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는 지난 7월 25일 해군사령부 시찰 이후 3개월 만이다. 오는 24~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북·미 2차 고위급 대화 등에 앞서 군의 결집을 강화하고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부대 내 연혁실과 군사강실, 군인회관, 도서실, 식당 등을 둘러봤고 군인들의 훈련을 지켜본 뒤 기념 촬영을 했다. 또 부대가 관할하는 중대 내 교양실, 병실, 세목장 등도 돌아보고 군인들의 생활에 관심을 표했으며 특히 세 쌍둥이 병사인 허충심·효심·일심을 만나 격려했다고 중앙방송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기본 전투 단위인 중대를 강화하는 것은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백두산 혁명 강군으로 만들기 위한 매우 중요하고도 책임적인 사업”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힘내라 軍” 전방지역 장병 지원 ‘활짝’

    “힘내라 軍” 전방지역 장병 지원 ‘활짝’

    경기·강원 북부 지자체들이 군부대 및 장병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우리나라 육·해·공군 부대의 80% 이상이 주둔하고 있어 지역 주민들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군부대도 지자체에 보답하기 위해 주둔 지역에 대한 지원 사업을 펼치는 등 상생의 꽃을 피우고 있다. 17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군부대 장병들을 대상으로 평생학습기회 및 취업 등을 지원하는 ‘경기 행복학습 병영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는 3군사령부, 용인대학교, 한국폴리텍대학 등과 협약을 체결하고 51사단과 55사단 소속 장병 100명을 대상으로 지난 7월부터 6개월간의 일정으로 맞춤형 전문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장병들은 기계설비, 정보처리, 전기공사 등 4개 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해에는 13명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또 장병들이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으면 6학점 범위 내에서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희망병영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저명한 강사들이 군부대를 찾아가 강의를 진행하는 ‘교양강좌 및 라이프코칭’ 사업도 호응을 얻고 있다. 이한규 경기도 평생교육국장은 “가정 형편 등으로 전문기술교육을 받지 못한 저소득 취약계층 장병들의 경우 맞춤형 직업전문교육이 제대후 일자리를 찾는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제대군인 취업지원 사업인 ‘힘내라 김상사 프로젝트’에는 올해 말까지 200여명이 참여해 경기도 일자리센터가 제공하는 개인상담, 직무교육, 취업알선 등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된다. 강원도도 제대군인 정착 지원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군장병 및 가족들이 도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안정적으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제대군인 취업박람회’, ‘취업·창업특강’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고성군은 지역 내 장병들을 대상으로 ‘군장병 관광지 팸투어’를 실시하고 있다. 주요관광시설에 대한 현장견학을 통해 제대 후 취업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파주시는 육군 1사단 및 2기갑여단과 업무 협약을 맺고 ‘군 정신건강증진사업’을 연중 운영하고 있다. 군부대도 지자체에 대한 보은 활동에 적극적이다. 최근 경기도와 ‘재난관리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협약’을 맺은 육군9공수특전여단은 경기도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즉시 재난지역 피해복구 및 인명구조에 참여하기로 했다. 육군 제1군 사령부는 강원도와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군작전지역 내에서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위한 자료조사와 함께 군부대 쓰레기를 자원하는 데 공동 협력하고 있다. 1군 사령부 소속 군장병과 군인 가족들은 지역 농산물 구입 및 전통시장 활성화 시책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현대차 “사회적 기업가 키워 청년에 일자리”

    현대차그룹이 청년실업 문제 해소와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해 청년 사회적기업가 양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현대차그룹은 12일 서울 서초구 심산기념문화센터에서 이성철 현대차그룹 인재개발원장과 진익철 서초구청장, 노태욱 서초구의회 의장, 사단법인 씨즈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초창의허브 청년 사회적기업가 양성센터’(서초창의허브)를 열었다고 밝혔다. 서초창의허브는 취약계층의 일자리와 사회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해 현대차그룹과 서초구청, 씨즈가 함께 만든 사회적기업 창업 인큐베이팅 센터다. 현대차그룹은 2년간 운영비 지원과 함께 마케팅·회계·노무 등 기업운영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하게 되며, 서초구는 심산기념문화센터 공간 일부를, 씨즈는 창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을 맡게 된다. 서초창의허브는 현대차그룹의 기업운영 노하우를 활용해 예비 청년 기업가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모델 워크숍 ▲기업경영컨설팅 ▲멘토링제도 등 다양한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창업 보육 사업 외에도 지역주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공연과 전시회, 교양강좌 등을 무료로 개설해 사회적 서비스 제공에도 앞장설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통해 연간 150여명의 청년 사회적기업가를 양성하고 현재 입주가 완료된 35개 창업팀이 성공적으로 창업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우리가 공부하고 살아가는 목적은가진 것 나누며 더 좋은 세상 만드는 것”

    “우리가 공부하고 살아가는 목적은가진 것 나누며 더 좋은 세상 만드는 것”

    한국 시각장애인 최초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강영우(67) 박사는 11일 “인생을 살다 보면 좌절을 겪을 때가 있으나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역설했다. ●18살때 인생목표 정하고 스스로 채찍질 강 박사는 대구동신교회에서 열린 ‘인물은 길러지고 명문가는 만들어진다’라는 제목의 특강에서 “사고로 실명한 이후 죽도록 공부해 연세대 교육학과에 입학했지만 동료 학생들이 꺼리는 바람에 서클 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다.”면서 “그래서 직접 독서클럽인 자유교양회를 만들었다.”고 재학시절을 회고했다. 그는 “다행히 천사 같은 분들의 도움으로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이 모든 것은 18살 맹인학교에 입학할 때 앞으로 30년 동안의 인생 비전과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했기 때문”이라며 “현재 워싱턴 지역안과협회장인 첫째 아들에게도 동기부여 필요성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눈 뜬 아빠’ 소망하던 아들 안과의사로 “큰아들이 4살 때 ‘야구도 못하고 자전거도 못 타는 아빠 대신에 눈 뜬 아빠를 갖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을 들었다. 서글플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들에게 안과의사가 돼서 아빠 눈을 고쳐주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 아들에게 안과의사의 꿈을 이루도록 했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돌이켜 보면 장애인이 된 덕분에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고 미국 대통령 4명을 포함해 각국 정상 22명 등을 만날 수 있었다.”면서 “미 대통령 은사인 한 교사가 내게 ‘강 박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명문가를 이루고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했다’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목적적 가치·도구적 가치 잘 구분해야” 그는 미국 한 명문 사립학교의 건학이념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Not for self)’를 언급하며 “공부를 하는 목적과 사는 목적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에 주어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목적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를 잘 구분해 자신만의 성공 척도를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박사는 중학교 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으며 1972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교수를 거쳐 2001~2008년 미 백악관 정책차관보를 역임했다. 현재 유엔 세계장애인위 부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장남은 미국에서 유명한 안과의사로, 차남은 오바마 대통령의 입법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부산시 노숙인 자립 멘토 양성

    부산시가 노숙인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멘토 역할을 할 자원봉사자 양성에 나선다. 부산시는 거리 노숙인의 멘토 역할을 해 줄 자원봉사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해 자원봉사자와 노숙인 간의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노숙인 맞춤형 서비스 사업을 추진한다고 5일 밝혔다. 이에 따라 시는 부산노숙인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를 사업운영기관으로 선정했다. 지원센터는 노숙 경험자 중 자립한 시민과 봉사단체원, 상담 활동가 등을 중심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자원봉사자들은 노숙인 상담과 사례 관리에 대한 실무를 익힌 다음 현장에 투입된다. 노숙인 맞춤 지원을 통해 노숙인에게 철학, 문학, 교양 등 다양한 인문학 교육, 자립정신 향상과 취업준비교육 등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도 제공된다. 또 재활과 건강관리, 신용회복, 독립형 주거지원, 자활과 일자리지원 등의 선택형 서비스 지원도 병행된다. 응급(위기)상황 노숙인 발생 시 문제 해결과 안정적 생활지원을 위해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회의도 가질 예정이다. 시는 노숙인과 자원봉사자 간 신뢰관계 형성을 촉진하기 위해 노숙인과 함께하는 갈맷길 걷기, 사회체육동호회, 명랑운동회, 문화공연 등 다양한 어울림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특히 거리생활 경험이 적은 3개월 미만 신규 노숙자에 대해서는 자립과 사회복귀의 가능성이 큰 만큼 신속하게 멘토를 연결하기로 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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