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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형된 사형인/5명 장기기증

    반인륜·반사회적 흉악범죄를 저질러 29일 사형이 집행된 9명의 사형수가운데 「양평일가족 생매장」사건의 주범 윤용필(33)등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5명이 안구와 심장등 장기를 기증했다. 윤등은 이날 상오10시부터 하오3시까지 교도소관계자 검사·목사·신부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례로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이들은 처형직전 『부모님과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앞으로 나같은 범죄자가 없어야 한다는 사죄의 뜻으로 몸전체를 의학실험용으로 기증하겠다』는 등 유언을 남겼다는 것.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 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4)

    ◎죽어가는 사람들:다/붙잡힌 탈출자 처형전 이미 초주검/총살·교수형뒤 시신에 돌팔매 강요/돌 안던진 북송교포 뭇매… 선혈 낭자 3일동안 학생 9백여명을 비롯한 수용소내 전 인원이 총 동원됐다.수용소주변의 모든 산봉우리와 골짜기들을 몽땅 뒤져야 했기 때문이다. 수용소에서 도망친 3명을 찾기위해서였다.동원된 사람들은 수십명씩 조를 짜 골짜기에서 봉우리로 일렬로 수색해 올라가는 일을 반복했다. 보위부원들은 눈에 불을켜고 어린 우리들까지 닥달했다.만일 도주자들을 찾지 못할 경우 그들은 일시에 감시자에서 수감자로 전락할 처지였던 것이다 보위부원들은 『도주자를 찾는 사람은 수용소에서 석방시켜 준다』고 했기에 같은 수감자 처지임에도 모두 기를쓰고 이들을 찾아 나섰다. 3일이 지났다.평풍산골짜기 덤불속에 숨어 있던 도주자 3명이 붙잡혔다.눈덮힌 산자락을 꼬챙이로 쑤시고 다니던 우리들의 수색도 끝이 났으나 경험은 이제부터 시작됐다. 도주자들의 처형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그도 그럴 것이 이미 북한사회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이들에 대한 처형은 거리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붙잡힌 다음날 수용소내 모든 사람들이 다시 소집됐다.넓은 공터에 모인 우리들은 눈이 한곳에 집중됐다.총을 든 9명이 한쪽을 향해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처형은 총살형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소장이하 수용소내 감시원들이 한쪽옆에 도열해 있다가 이윽고 소장이 뭐라고 일장 연설을 했다.나는 소장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오직 눈앞에 펼쳐질 「총살형」이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되도록 잘 보기위해 많은 사람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갔다. 보위원들이 세사람을 끌고 나왔다.나는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죽음을 느낄 수 있었다.이미 모든것은 포기한듯 그들은 힘없이 이끌려왔다. 모두들 긴장했다.처형자들의 목과 가슴 다리 3부분이 처형대에 묶일 때에는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절차가 끝나고 드디어 총이 겨누어졌다. 『조준』 『…』 『발사』 귀가 찢어질듯한 총성이 3번 반복됐다.총소리가 터질 때마다 나는 경련을 일으켰다. 첫번째 총성에 얼굴을 묶은 밧줄이 끊어지면서세사람의 머리가 앞으로 꺽어졌다.두번째 총성에는 그들의 가슴에서 피가 튀면서 앞으로 꼬꾸라졌다.순간 나는 총을 더 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총성은 또 들렸고 이들은 나무토막 처럼 땅에 쓰러졌다. 그들의 주검 주변으로 선혈이 흘러 있었다.이것으로 처형은 끝난 줄 알았다.그러나 보위부원 한명이 시체앞으로 다가갔다.그는 권총을 꺼내더니 죽은이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순간 소름이 끼쳤다.그것이 생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음은 한참 뒤에서야 알았다.그뒤 시체는 어떻게 됐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것이 내가 격은 첫번째 수용소내 처형이었다.지난1978년4월의 일이었다. 내가 본 두번째 처형은 그로부터 7년뒤인 지난85년8월의 일이다. 그때도 역시 2사람이 수용소를 탈출했다.이 두사람은 현역군인으로 있다가 말을 잘못해 이곳으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그런데 이번은 지난번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보통군인도 아닌 특수훈련을 받은 이들은 수용소 사상 처음으로 요덕군 수용소구역을 완전히 벗어나 탈출한 것이다.벌집을 쑤신듯 난리가 났다. 한달여동안 계속된 수색작업도 허사였다.이미 밖으로 도망간 이들이 눈에 띌 리 없었다.수용소 사람들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구역에서 탈출한 이들의 능력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도 철저히 통제된 사회속에서 끝까지 버틸 수는 없었다.한명은 함경남도 금양군까지 도주했다 붙잡혔고 다른 한명은 국경을 넘어 중국 단동까지 갔다 중국공안원들에 의해 잡혀 신병이 인도됐다. 1주일 먼저 잡힌 한 사람은 그동안 너무 얻어맞아 이미 몰골이 흉악했다. 이들에 대한 처형은 『총알이 아깝다』는 것과 시각적 효과를 높힌다는 이유에서 처음으로 교수형으로 정해졌다.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날 수용소내 강변 어귀 자갈밭 공터에 ㄱ자형 교수대2개가 설치됐다.하늘높이 치솟은 교수대는 죽음의 갈고리처럼 보였다. 먼저 잡힌사람은 이미 반죽음 상태였고 나중에 잡힌 사람은 지친듯 보였어도 워낙 체격이 건장해 아직 힘은 남아 있어보였다. 둘은 소장앞에 꿇어 앉혀졌다.소장은 『공화국 형법 ○○조에 따라…』라며 난데없이법조문을 들먹이며 재판흉내를 내더니 이윽고 『사형』이라고 외쳤다. 교수대에 올려진 두사람은 머리에 두건이 씌어졌고 이내 올가미에 목이 감겨졌다.그야말로 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릴듯 조용했다. 침묵속에 몇분이 지났을까.『일렬로 정렬하라』는 소리가 들렸다.소장이 우리들에게 하는 소리였다.멍하고 있던 사람들이 제정신을 차려 움직였다.소장은 우리들에게 『모두 돌을 들어 죽은 놈들에게 던지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들 돌을 주워 힘차게 던지는 것이아닌가.잘보여야 편한 일을 할 수 있다는 필사적인 생존의식이 이처럼 인간성을 완전히 말살시킨 것이다. 매달린 시체는 언제부턴가 살점이 너덜너덜 떨어져 나가 뼈가 드러난 부위도 있었다.시체아래로 돌이 수북이 쌓였다. 그러나 사건은 또 이어졌다.일본에서 20세까지 살다 이곳에 온 교포가족세대의 성신휘라는 청년이 돌 던지기를 무시하고 교수대 앞을 그냥 지나친 것이다. 보위부원들이 가만 둘 리 없었다. 보위부원들은 돌을 던지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행렬 옆에서 성신휘를 구둣발로 짖이겼고 사람들은 이미 혼이 나간듯 그의 얼굴이 엉망으로 찢어지면서 흘러내리는 선혈을 보고도 무표정했다.
  • 오늘 의거 83주년… 한·중·일 3국 입체취재

    ◎안중근의사/“동양평화 지켰다” 중국인이 더 추앙/이등 저격 하얼빈시선 해마다 확술대회/기념비 곧 건립… 여순감옥엔 유품 보존 우리는 해마다 10월이 저물어가면 의사 안중근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19 09년 10월26일 하얼빈역두에 터뜨린 총성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더 이상 침략책동자로 세워두지 않은 의거의 그날이 돌아오기 때문이다.일제는 그를 테러리스트로 매도,끝내는 교수대에 세웠다.그러나 안의사는 지금 영원한 휴머니스트이자 또 평화론자로 추앙받고 있다. 1909년 10월26일 상오 10시가 막 지나는 시각.모두 6발의 총성이 중국 흑용강성 하얼빈시 하얼빈역두에 울려 퍼졌다.의장대 사열을 끝내고 귀빈열차를 향해 몸을 돌리던 일본의 침략원흉 이등박문을 향한 안중근의사의 육혈포가 불을 뿜는 소리였다.그날의 총성이 사라진지 83돌을 맞은 하얼빈역은 신역사를 짓는 건설현장의 굉음과 종종걸음치며 플랫폼을 오가는 중국인들의 말소리만이 어울려 요란할 뿐이다. 이등박문이 피를 뿌리며 쓰러진 1번 플랫폼앞 현장에는 뜰이 조성돼 대형플라스틱에 담긴 화분이 몇개 놓여 있었다.피격지점에서 10m쯤 떨어진 러시아군 사열대 뒤편에서 총구를 겨누었던 안의사의 저격장소는 이곳에 새로 지어진 1등 대합실건물에 편입돼버렸다.이등이 쓰러진 곳은 몇년전만해도 피살지점을 표시하는 둥근 녹쇠판이 놓여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등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 안의사가 5개월에 걸친 수감생활끝에 1910년 3월26일 상오10시15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여순형무소.당시 악명 높았던 이「인간지옥」은 요령성 대연시 서쪽 40㎞지점에 「여순일아감옥구지」라는 현판아래 지난88년부터 중국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안의사가 복역한 지하감방은 간수사무실부속창고로 이용되고 있으며 수감동 복도벽에는 「조선애국지사 안중근」이라고 쓴 액자속에 안의사의 수감당시 사진과 함께 남아있다.이밖에 유화초상화·족자·유시「장부가」가 담긴 액자등이 걸렸다. 안의사에게 교수형이 행해졌던 교형실은 감옥 동북쪽 구석에 감춰진채 15평남짓의 좁은 공간으로 남아있다.교수대는 2층으로 꾸며져 있고 시체처리통까지도 보존됐다. 현재 6만명의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는 하얼빈시에는 2개의 안중근연구회가 있다.안의사추모사업은 지난89년 의거80주년을 맞아 한·중·일의 학자들이 하얼빈역에서 추모회를 가진 이래 학술대회를 잇따라 열어 왔다.또 안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대형오페라가 공연되는등 추모붐이 대단했다.최근에는 새로 발굴된 자료를 모은 안중근사료집발간을 준비중이며 안의사기념비를 피격현장에 세우기위해 중국정부와 교섭도 벌이고 있다.당초 하얼빈역 광장에 안의사의 동상을 세우고 기념관도 건립할 계획이었지만 일본과의 불편한 입장을 고려한 중국측의 소극적 태도로 한걸음 물러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얼빈시내 동북열사박물관에 전시된 중국근대사소개부문에도 안의사의 영정과 기념자료등을 손문다음으로 다루는등 안의사에 대한 중국현지의 평가와 연구열기는 그 어느때보다 높다. ◎국내/국내연구 활기­일선 “평화주의자” 새 시각/학계 동향/대중수교 계기 새 자료발굴 기대 우리나라에서의 안중근연구는 올해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짐에 따라 새로운 계기를 맞고있다.그 이유는 중국이 「역사의 현장」인데다 그동안 우리측에 공개되지 않은 자료에 대한 접근도 가능해졌다는 데서 찾아진다. 이에따라 그동안 한정된 자료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학계의 상황도 크게 개선되어가고 있다.또 안의사의 의병활동기지였던 러시아측의 연구성과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여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에는 길림성 조선연구소가 국내에서의 안중근연구를 희망해오는가 하면 러시아사회과학원 동방연구소에서도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우리나라에 와서 발표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또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최석우신부)에서는 안의사가 천주교신자였다는 점을 고려,프랑스측이 소장해오던 자료를 입수,연구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원장은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로 안중근연구에 숨통이 트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때일수록 연구자들은 일과성이 아닌 체계적 연구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새로 입수된 자료들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되지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해석이 나올 경우 안의사연구에 자칫 흠집을 남길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올해는 아직 별다른 성과가 없다.안중근의사에 대한 저술은 물론 연구결과를 집약한 논문 역시 나오지 않았다.기존의 학술자료로는 「한국독립운동사 자료」(국사편찬위원회)안에 수록된 공판기록문서와 주한일본공사관 기록등이 정리돼 있다.또 논문은 신용하교수(서울대)의 「안중근의 사상과 의병운동」등이 꼽힌다.저술은 주로 전기류인데 안의사 의거 이후에 쓴 박은식의 「안중근전」이 있고 해방후에는 「의사 안중근」(만수사보존회·1964년)과 「안중근자서전」(안중근의사 숭모회·1970년)등이 나왔다. 그리고 안의사를 기리는 단체는 사단법인 안중근숭모회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안중근의사장학회등이 있을 뿐이다. ◎일본/올 전기 등 2권 출간… 사당건립도 안중근에 대한 가해자쪽인 일본에서 안의사 평가는 「암살자」와 「휴머니스트」라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시각으로 나타났다.테러리스트 시각을 가진쪽은 안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정권담당자들이다.그리고 휴머니스트로 보는쪽은 안의사의 재판에 참여한 판사와 검찰관,여순감옥의 형리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 일본의 지식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다.안의사를 휴머니스트로 보는 시각도 두 갈래로 나뉜다.그 하나가 중천팔양교수(축파대)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이끌려지는데,여순감옥에서 쓴 「동양평화론」이 『한일관계의 원전으로 오늘날 더욱 빛나는 혜안이었다』고 극찬한다.동아시아의 제국이 우방과의 신의를 축으로 한 동맹관계를 수립,러시아에 대응방위를 해야한다는 안의사의 주장은 오늘날 일본에 좋은 교훈이 된다는 것이다. 형무소장과 변호사는 물론이려니와 검찰관·재판관들이 서 있다. 재판과 수형생활등의 과정에서 안의사의 높은 지적수준과 고결한 인품이 자신들을 매료시켰다고 회고한다.오늘날 남아있는 안의사의 유묵은 그들에 의해 고이 간직되어 온 것이 많을 정도다.또 이들의 후손들에 의해 안중근연구회가 조직되어 일본안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현재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와카야나키의 대림사에 세워지고 있는 안의사의 기념사당도 그러한 경우다. 「테러리스트아닌 독립운동가」라는 시각에 따라 「안중근 무죄론」까지 제기되어 주목을 끌었다.특히 올들어 최근 일본에서는 안중근관계 저술이 2권이나 새로 출간됐다. 그 하나가 중야태낭교수(아세아대교수·국제관계학)의 「안중근」(아기화방간행).한국관계의 원상이라는 부제로 간행된 이 저술은 이토를 저격한 안의사를 훌륭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생애와 사상/의병투쟁땐 일군포로 석방/「동양평화론」 저술한 선각자 안중근의사는 1879년9월9일 황해도 해주 한 향반의 집에서 태어났다.그리고 나서 31살을 일기로 1910년3월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기 까지의 삶은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그 생애에서 안의사가 평화론자였다는 사실은 여러군데서 찾아진다.1907년 정미칠조약이 강제체결되고 고종 양위와 함께 군대가 해산됐을 때 독립전쟁을 주장하면서 의병활동에 뛰어든다.그는 의병전투기간에생포한 일본군 포로를 석방,논란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그러나 이 사실은 오히려 의병활동을 일본에 대한 대한제국의 독립전쟁이라는 국제공법에 근거,포로를 인도적으로 처리한 사례로 평가 되고있다. 안의사가 여순감옥에 갇힌 뒤 쓴 미완성원고 「동양평화론」은 그의 이같은 사상적 배경을 구체화한 것이다.「독립한 청국 한국 일본이 일심 협력해서 서양세력의 침략을 방어하게 된다」는 논리를 편다.그래서 개화의 역으로 진보,구주 세계각국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진력할 때 동양평화가 실현되고 또 유지된다고 주창했다. 이토는 침략의 원흉이고 동양평화에도 역행했다는 것이 안의사의 주장이다.그의 자서전과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이등의 15개조의 죄목」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결론적으로 안의사는 자신의 행동을 『한국의병참모중장의 자격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토를 공격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 강냉이 550g 먹고 하루 14시간 노동

    ◎두 귀순자가 폭로한 정치범수용소/첩첩산중에 전기철망… 탈출 엄두못내/대부분 영양실조… 쥐까지 잡아먹기도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됐다 귀순한 안혁·강철환씨등 2명의 증언을 통해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이 상세히 밝혀졌다. 이들이 13일 기자회견에서 밝힌대로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의 생활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비참한 것이었다. 수용소의 실태는 그동안 당국의 내외정보수집에서 어느정도 윤곽이 드러나긴 했지만 직접 수용소에서 생활하다 귀순한 사람의 진술로 밝혀지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안씨등 귀순자 2명이 증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용대상은 해방후에는 「악질지주」「친일파」「종교인」이었고 6·25때는 「치안대가담자」등이었으나 최근에는 김일성의 유일체제구축과정에서 숙청된 이른바 「반대종파분자」등 죄질이 무거운 사상범과 가족은 물론 체제비판자,해외도주를 기도한 사람,해외파견후 견문내용을 전파한 사람과 그 가족,북송교포 등이다. 이 가운데서도 중범자본인은 정치범수용소 가운데서도 「교화소」로불리는 종신수용소에서 평생동안 수용되며 「체제비판자」등 비교적 가벼운 정치범과 중범자의 가족들은 이른바 「관리소」에 수용된다. 수용소는 대부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오지에 설치돼 주변에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쳐놓아 탈출을 막고있다. 안씨 등이 수용됐던 요덕수용소는 경미한 사상범과 북송교포가 수용된 「혁명화구역」과 중범자의 가족들이 수용된 「완전통제구역」으로 나뉘어져 5만여명이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입에 담지못할 정도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이들은 밝히고 있다. 이들의 일과는 새벽5시30분까지 아침식사를 마치고 하오8시까지 하루14∼15시간동안 노동을 하며 하오10시부터 1시간동안 김일성사상학습을 한뒤 11시에야 잠을 잘 수 있다. 식량은 하루 강냉이 5백50g과 소금,주1회 도토리된장 한숟갈을 배급하는 것이 전부이고 그나마 작업태만 등을 이유로 수시로 식량을 빼앗아 한달에 보름은 산나물과 풀뿌리,나무열매로 연명한다는 것. 이때문에 수용자들은 수용 1년만에 몸무게가 15㎏이나 빠져 몸을 지탱할수 없을 정도가 되고 육류와 당분을 먹지못해 대부분 영양실조와 결핵,간염,피부가 벗겨지는 「뻬라그라」병에 걸려 있으며 개구리와 뱀,쥐등을 닥치는대로 잡아먹는 짐승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생활조건속에서도 강냉이농사와 금광·목재채취작업등 노동에 시달리며 게으름을 피우거나 잡담을 하면 경비원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기 일쑤이고 연대처벌과 작업연장처분을 받게된다. 수용자들은 이처럼 극심한 악조건속에서 대부분 폐렴·결핵·간염·치질·늑막염·고환염등 갖가지 질병에 걸려있으며 그래도 작업은 면제되지 않는다.폐렴·간염·결핵환자는 따로 골짜기에 격리수용되나 약도 없고 치료도 받지못해 해마다 40∼50명씩 죽어나가고 있다. 탈출을 막기위해 고압철조망말고도 무장경비원 1천명이 배치돼있고 수용소주변에 7∼8m 깊이의 함정을 파놓았으며 탈출을 기도한 사람은 공개총살 또는 교수형에 처하고 있다. 공개총살되는 사람은 해마다 15명정도로 수용자들이 보는 가운데 처형되며 상부의 지시를 불응한 자등은 「구류장」에 보내 하루에 5시간만 재우고 하루종일 무릎을 꿇고 앉아 있도록해 나올때는 온몸이 피멍이 들고 썩어 곧 죽는다는 것이다.
  • 한·중 의학교류 새 장 열린다

    ◎양국의협,11일 협력가협정 체결/의학자 교환·공동학술대회 추진/G7과제인 「전통약물」 개발도 내년 본격 착수 한중수교로 지난 11일서울에서 대한의학협회와 중화의학회 부회장간에 조인된 「보건의료분야 발전을 위한 상호협력문제」에 대한 가협정서의 이행문제,한방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는 중국의 의료현황 및 과기처 선도개발사업(G7프로젝트)의 하나인 전통 동양약물공동연구 추진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8월초 서울을 방문한 중국의료계 실무자간에 비공식적으로 협의된 가협정서의 주요내용은 한중 상호간 필요한 부분을 배우자는 취지로 ▲대학전임강사 및 조교수등 중견급 의사들을 교류하는 의학자 상호방문 ▲높은 수준의 의대교수 및 의학자들을 교환교수형태로 파견,강의하는 방안 ▲자국의 학술대회 초청및 공동학술대회와 합동회의 개최 ▲대한의학협회 산하 각 학회지 등의 의학잡지 교환등 출판물 교환 및 기타 등이다. 대한의학협회 윤석우국제담당이사는 『이 가협정서는 일반적인 내용을 담은 것으로 구체적 프로그램은 내년봄 의협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할 때 정식 논의,결정될 것』이라고 전제한 후 『이번 수교로 앞으로 가협정서를 토대로 한중상호간 구체적인 협의를 추진하기는 훨씬 쉬울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전통의학은 우리 뿐 아니라세계보건기구도 각종 성인병을 해결할 열쇠로 중국의학계를 주목해 오고 있다.특히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중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중서의학결합이다.이는 「질병을 치료하는데 중의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서의의 장점을 흡수,이를 합해 치료해야 한다」는 정신에 입각,중의의 임상연구와 서의의 실험적 연구를 동시에 병행하는 것이다.하지만 치료부문에서는 중의든,서의든,중서결합의든 환자의 건강에 유리한 쪽으로 택하고 있는 특징.결합형식은 서의의 진단·치료법과 중의의 진단·치료법 등을 동시에 병행해 치료하는 것이 가장 많다. 한편 과학기술처에서도 중국과 과학기술분야의 상호보완적 협력방안의 하나인 「전통 동양약물 연구」를 위해 산학연전문가 6인으로 구성된 「신동의학개발기획단」을 지난 6월 2주일동안 중국에 파견했다.이들은 전통약물연구 관련기관 및 23개 기업 및 관련인사 1백여명을 만나 구체적 논의와 조사실시한 바 있고 이를 토대로 오는 93년부터 바이러스성 B형간염치료제 개발등 14개 연구과제 추진이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 흉악범 9명 교수형 집행/가정파괴·살인범 포함

    ◎“반인륜 범죄 영원히 추방”/6공들어 4번째… “범죄척결” 단호한 의지 표명 법무부는 18일 서울 구로동 「샛별룸살롱」강도살인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된 조경수(25),김태화(23)등 사형수 9명의 형을 집행했다. 이들은 모두 부녀자들을 강간한 뒤 살해하거나 어린이를 유괴살해한 흉악범들로 8명은 서울구치소에서,1명은 광주교도소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이날 사형집행은 지난89년8월과 지난해 4월및 12월에 이어 제6공화국들어 4번째 집행이다. 법무부는 이날의 사형집행에 대해 『지난13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이득화군유괴살인범에 대해 사형이 선고된 것을 계기로 어린이 유괴사범등 각종 흉악범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법집행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밝히고 『이들 9명은 모두 사람으로서 도저히 범할 수 없는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하는등 반인륜적,반사회적 강력범죄를 저지른 자들로서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되어야 마땅하다』고 발표했다. 사형이 집행된 흉악범들은­. ▲조경수·김태화(살인·강도상해)=교도소동기로 지난해 1월 샛별룸살롱 살인,광주 양동 백양주점 접대부살해,미용실등에 침입해 25회에 걸쳐 강도·강간 또는 강도상해. ▲홍순영(24·여·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미성년자 약취유인살해)=지난해 6월 유치원생을 대학구내로 유괴,살해한뒤 부모에게서 3천만원을 갈취. ▲전재복(32·살인·강간·절도)=폭력전과4회,89년1월 친구의 부인을 강간한뒤 두살난 딸과 함께 살해. ▲서병원(38·살인·강간치상)=90년8월 여학생(12)을 아버지에게 데려다주겠다고 속여 산속으로 데리고가 강간 살해. ▲심재화(57·살인·살인예비)=83년 10월 동거하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집에 침입,도끼와 칼로 두사람을 살해. ▲윤도영(38·살인·시체은닉)=동거하던 여자의 오빠가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하자 돈을 갚아주겠다며 승용차로 충남 아산군 매곡리입구로 유인,삽으로 살해한뒤 암매장. ▲서지우(35·살인·살인미수)·강영이(여·36·살인·존속살인미수)=84년7월 강의 남편(35)을 운전연습을 시켜준다고 유인해 뒤에서 승용차로 들이받아 살해.시어머니(60)도 같은 수법으로 살해하려다미수에 그침.
  • 구동독 치하 투옥인사 복권작업 활발/베를린=이기백(특파원코너)

    ◎군재등서 “유죄”… 15만명 억울한 옥살이/정부 명예회복 추진… 6만명 복권신청/연내 법개정… 보상금 인상 구동독 치하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투옥되었던 인사들에 대한 복권작업이 최근 들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소련 군사재판 또는 구동독 정권에 의해 부당하게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은 15만여 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2만7천여 명이 소련 군재에 의해 투옥됐던 것으로 집계되었다. 현재 복권신청중인 사람은 6만여 명. 독일정부는 올해 안에 이들에 대한 복권절차를 단순화해 명예회복이 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형편없이 낮은 보상금을 대폭 인상할 방침이다. 킨켈 법무장관은 독일 분단의 희생자인 이들에 대한 복권이 늦어지고 있는 데 대해 『통일 후 구동독지역 법원들이 겪고 있는 법관 부족사태 때문』이라고 밝히고 『구서독의 각주들은 법관들을 구동독지역으로 파견,이들의 복권수속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정부는 구동독 판사들이 이들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만큼 복권업무에서 구동독 판사들을 배제시키고 구서독 판사들을 참여시켜 결정을 내리도록 했으나 구동독지역 법원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판사가 적어 복권업무가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독일통일조약은 「정치적인 동기로 형을 선고받거나 합법적인 절차가 아닌 방법으로 투옥된 희생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통일 후 지체없이 법적 제도를 마련,소정의 절차를 밟아 복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복권과 동시에 이에 상응하는 보상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통일조약 체결 직후 치러진 자유선거에 의해 구성된 구동독 의회는 복권법을 제정,형법에 의한 복권규정·연합군 점령시 투옥자에 대한 복권규정·부당한 법집행에 따라 전과자가 된 사람들에 대한 복권규정 등을 마련했다. 이 복권규정에 따르면 1945년부터 55년 사이에 소련 군재에 의해 형을 선고받은 독일인들은 복권대상에서 제외토록 되어 있다. 이는 소련 군사재판에 의해 결정된 판결을 독일 법정에서 다시 다룰 경우 소련의 주권이 손상당할 소지가 있다는 모스크바측의 주장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이 규정으로 인해 소련군이 동독을 통치했던 45년부터 50년까지 소련군에 의해 검거돼 소련 수용소에서 옥살이를 했거나 사망한 사람과 후에 재판도 받지 않고 석방된 사람들은 복권대상에서 제외되게 됐다. 45년 소련군은 동독 진주와 함께 비밀경찰을 동원,나치군대에 복무했던 군인들과 정치인,12세 이상의 독일인 가운데 소위 위험인물들을 가려내 나치가 사용했던 전쟁포로수용소와 집단수용소에 감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죽었으며 이들 가운데는 억울하게 끌려온 사람들도 많았다. 구동독 정부가 들어선 1년 후인 50년 소련군의 수용소는 폐쇄되고 생존자들은 재판도 받지 않은 채 석방되었다. 점령군의 지위에서 소련군은 독일인들에 대한 재판권을 55년까지 행사했으며 군재에 의해 대지주·기업가·공무원·각종 자영업자들이 유죄판결을 받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당했다. 소련측의 집계에 따르면 45년부터 50년까지 이들 수용소에 억류되었던 독일인들은 모두 12만2천6백71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4만5천2백62명이 석방되고 1만4천2백2명이 동독정부에 인계되었으며 1만2천7백70명이 소련으로 이송되었다. 또 4만2천8백89명이 수용소 생활중 사망했으며 7백56명이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구동독이 마련한 복권법에서는 복권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앞으로 구조방법을 놓고 격론이 일 것으로 보아진다. 그러나 소련군이 수용소를 폐쇄하면서 50년 켐닛츠시 지방법원에 인계해 발트하임수용소에서 재판을 받은 3천5백여 명은 독일법정에서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수용자들과는 대조적으로 복권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발트하임 법정」으로 알려진 판결과정에서 피고인 한명당 재판시간은 불과 몇분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같은 속성판결에서 수백명이 10∼25년의 징역형을,32명이 사형을 선고받아 이 중 26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같은 이유로 같은 무렵에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어떤 사람은 복권이 되고 어떤 사람은 복권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형평성을 잃고 있어 킨켈 법무장관은 올해 안에 복권법의 불합리한 점을 개정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분단의 희생자들에 대한 복권방법과 함께 이들에 대한 보상금 지급액수와 보상방법 등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복권법에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복권된 사람들에게 형기가 2년 미만일 때는 한달에 80마르크(3만3천6백원)씩,2년 이상인 때는 한달에 2백70마르크(11만3천4백원)씩 환산해 보상하도록 되어 있어 2년 복역자의 경우 1천9백20마르크밖에 안 된다. 이 때문에 독일정부는 복권법을 개정,보상금 액수를 현재보다 4∼5배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편 복권대상자 보상의 경우 수용소에서 석방된 뒤 구 동독지역에서 살아온 사람과 구 서독으로 넘어와 생활한 사람들을 구별해야 한다고 킨켈 법무장관이 최근 시사해 관심을 끌고 있다. 킨켈 장관의 주장에 따르면 출소 후 서독으로 넘어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사람과 계속 구 동독에 머물러 있으면서 억압을 받아왔던 사람과는 엄연히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 동독의 과도의회가 마련한 보상법이 획일성을 띠고 있는반면 킨켈 장관의 주장은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상방법을 놓고 사회주의적인 방법과 민주주의적인 방법이 갈등을 빚고 있는 것 같아 그 결과가 주목된다.
  • 사형수의 때늦은 참회/손성진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4일 사형이 집행된 흉악범 5명의 범죄행각은 듣기만해도 끔찍했다. 데이트하던 남녀를 끌고가 남자를 흉기로 때려 숨지게 하고 여자를 윤간했는가 하면 사망보험금이 탐이나 친아버지를 살해한 사형수도 있었다. 입에 담기에도 거북한 흉악범죄를 매일같이 당하고 있는 시민들로서는 사형집행 소식에 인권 운운하기 보다 그렇게 해서라도 치안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그만큼 우리사회의 법질서가 이미 무너졌고 인륜도덕도 땅에 떨어져버린 때문이다. 이날 다른 사형수 4명과 함께 교수형을 당한 전경숙(26)은 이러한 국민들의 심정을 짐작했던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사형집행관에게 『피해자 가족들에게 죄송한 마음 금할길이 없고 진심으로 속죄하고 하느님 곁으로 갑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은 지난 86년 11월 치과병원에 침입,원장을 살해하고 돈을 빼앗는 등 강도짓을 일삼다 사형을 선고받았었다. 1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계속 죄과를 뉘우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2심과 3심에서 사형이 확정된뒤 뒤늦게 카톨릭에 귀의,독실한 신앙활동을 하며 사형집행을 기다려 왔다고 한다. 종교를 가진 뒤에는 죄를 깊이 뉘우쳐 두눈을 사회에 내놓기까지 했다. 콩팥도 내놓으려 했으나 받을 사람과 혈액형이 맞지 않아 눈만 기증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이 조금만 더 일찍 남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을 왜 갖지 못했느냐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몸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떼어줄 정도의 각오까지 할 수 있었다면 전도 결코 나면서부터 「흉악범」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은 전보다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함께 사형된 손오순(22)도 마찬가지였다.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 콩팥과 안구를 내놓으려 했으나 절차상 문제로 실현되지 못했다고 한다. 죽음이 임박해서야 잘못을 뉘우친 때문이었을까,아니면 곧 죽을 몸인데라는 자포자기의 생각 때문이었을까.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사람이 곧 죄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같은 이유로 그들이 결코 동정받을 수는 없다. 올해들어 두번째 집행된 사형현장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인간이 인간에게 죄악을 저지르고 이를 심판하는 악순환이 하루빨리 없어지고 서로 돕고 위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마음속 깊이 바랐다고 한다.
  • 「범죄와의 전쟁」 이기는 길을 찾는다(질서있는 사회로:16)

    ◎잦은 송년모임… 다시 고개든 음주운전/올들어 5만명 적발… 빙산의 일각/「간접 살인」·「범죄의식」 공감대 절실/외국선 술권한 사람도 벌금형… 강력단속/사회봉사·재교육 통해 처벌효과 높여야 「범죄 및 무질서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후 검찰과 경찰의 강력한 단속으로 한때 주춤하던 음주운전이 연말을 앞두고 송년회 등 각종 모임이 잦아지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음주운전은 특히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를 「살인흉기」로 돌변시킨다는데 문제가 있다. 지난달 30일 새벽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영천리 경부고속도로에서 4명의 목숨을 잃게한 교통사고도 20대 트럭운전사가 혈중알코올 농도 0.35의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일어난 것이었다. 치안본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한햇동안 전국적으로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4백60명이 숨지고 1만9백69명이 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과 경찰은 올들어 지난 10월말까지 ▲단순 음주운전 3만4천4백8명 ▲음주측정 거부 8백54명 ▲음주운전 관련 교통사고 1만5천7백78명 ▲기타 59명 등 모두 5만1천99명을 적발했다. 이는 지난 한햇동안 적발된 2만6천2백25명의 갑절에 가까운 것이다. 또 이 가운데 구속된 운전자는 모두 5천61명으로 지난해 1천2백35명의 4배에 이르러 지속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적발된 운전자의 몇십배에 이르는 운전자들이 음주운전을 계속하고 있으며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고 어떻게든 단속만 피하려는 데 있다. 단속만을 피하려는 가장 흔한 경우가 이곳 저곳 수소문해 경찰의 단속길목을 미리 알아내고는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길로 돌아다니는 음주운전자들이다. 도심에서는 그래도 이목이 있는지 최근들어 경찰의 자세가 상당히 엄격해졌지만 으슥한 변두리에서는 아직도 단속에 걸리더라도 「말이 통한다」는게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 『마음씨 좋은 단속경찰에게는 사정을 하면 통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돈이면 된다』는게 이들의 얘기다. 이들보다 한수 더 뜨는 경우는 멀찌감치 단속하는 경찰이 보이면 아무데서나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그대로 몸만 빠져나와 달아나는 이른바 「도주형」 음주운전자들이다. 걸리면 범칙금은 물론,면허정지에 잘못하다가는 구속까지 될판이니 어떻게든 현장을 피하고 보자는 것이다. 주·정차위반으로 끌려간다 하더라도 이튿날 술이 깬 뒤 견인료만 내고 되찾아오면 되니 경제적으로도 오히려 이익이라는게 이들의 계산이다. 이처럼 음주운전이 판을 치는 것은 우리나라의 특이한 음주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자랑하는 사회분위기,억지로 술을 권하는 관습,취중에 저지른 실수는 눈감아 주는 풍속 등이 음주운전을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원 이모씨(29·회사원·영등포구 문래동)는 『소주 한두잔만 마셔도 금세 취해버리지만 술자리에서 직장동료·상사들의 권유에 못이겨 늘 주량을 넘어서게 된다』면서 『지금까지 운이 좋아서인지 사고를 내거나 단속에 걸린적이 없어 음주운전이 거의 습관화돼 있다』고 말했다. 음주운전은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해치는데도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운전자들에게널리 퍼져있는 것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음주운전이 늘어나는 추세에 따라 정부는 도로교통법을 크게 고쳐 음주운전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이미 시행에 들어간 개정교통법에 따르면 단순 음주운전이라도 혈중알콜 농도가 0.36% 이상이면 구속수사하고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에 그쳤던 형량과 벌금액을 크게 높여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다. 구속사안이 아닌 혈중알코올 농도에 따른 벌금부과 기준도 ▲0.26∼0.35% 2백만∼3백만원 ▲0.16∼0.25% 1백만∼2백만원 ▲0.05∼0.15% 50만∼1백만원으로 크게 올렸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단속 및 처벌기준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대체로 우리나라보다 더 강력한 방법으로 음주운전을 다스리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으나 처벌이 가장 무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적발될 경우 6∼12개월 면허정지와 2백50(약 18만원)∼4백달러(약 29만원)의 벌금이나 구류 30일에 1∼2일간의 순화교육을 받아야 하며 3년동안 해마다 1천달러의 보험금을추가로 내야한다. 두번째 걸리면 면허정지 2년,5백∼1천달러 벌금,구류 90일 등으로 처벌이 가중된다. 일본에서는 음주운전을 과속,무면허운전과 함께 교통의 3악으로 규정,운전자에게 술을 제공하거나 권한 사람까지 벌금형에 처한다. 서독에서는 맥주 2잔 정도를 마셨을 때 농도가 0.03% 이상이면 3년동안 면허정지를 받고 사고를 내면 체형을 받는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음주운전자가 기혼일 경우 부인과 함께 구류시켜 다음날 술이 깬뒤 함께 훈방한다. 터키는 음주운전자를 시외곽 경계선으로부터 30㎞ 밖으로 데리고 가 경찰 감시아래 집까지 걷게 한다. 불가리아와 엘살바도르는 한때 음주운전자를 교수형이나 총살형에 처할만큼 가혹했던 적도 있었다. 서울지검 강지원검사는 『구금 등의 처벌은 생업에 지장을 줄뿐 아니라 막대한 인력손실을 가져오는 측면이 있다』면서 『면허정지·취소의 기준을 높이고 일정기간 운전 재교육을 받도록 하는 수강명령이나 음주운전예방 캠페인을 벌이도록 하는 사회봉사명령 등을 통해 처벌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음주운전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잘못된 음주문화를 바로잡고 음주운전 또한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잡도록 하는 범국민적 공감대와 실천의지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흉악범 사형집행의 의미(사설)

    흉악범 5명이 교수형으로 사형이 집행됐다. 그런 극약처방이 아니고는 요즘과 같이 빈번한 흉악사건을 근절시킬 수가 없다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양평 일가족 생매장사건,화성 여중생 피살사건,공인회계사 피살사건에서 보듯 끔직한 흉악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교수형이라는 충격요법으로 범죄예방을 기대해보겠다는 의도이다. 지금의 상황은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게 사실이다. 강력범들을 엄벌하지 않고는 각종 범죄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비관적인 시각이 많고 그런데서 강경대응을 많은 사람들은 바라고 있다. 이번의 5명도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범죄자들에 틀림없다. 데이트중인 남녀를 강도 강간 후 살인했거나,아버지를 죽였고,약수터에서 여중생을 강간 살해하는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여러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이들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 타당성을 갖는다. 그것이 법 집행을 엄격히함으로써법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정부의 민생치안 확립의지에도 합당한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범죄예방도 예상된다는 측면에서 기대 또한 적지 않다. 정부의 대범죄전쟁 선포 이후 범죄의 발생률이 줄어들었고 검거율도 상승추세에 있어 좀더 강경조치가 있게 될 경우 범죄는 더 줄어들게 될 것이 아니냐는 판단이 가능한 데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사형집행이라는 극약처방만으로는 지금의 범죄전쟁에서 이겨낼 수가 없다는 한계성을 지적하고 싶다. 근본대책이 없는 강경조치만으로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겠으나 바람직한 범죄의 억제나 근절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사형집행이 오히려 범죄자들을 더욱 자극시켜 극도의 흉포화를 부채질할 우려가 없지 않다는 사형비판론자들의 소리도 귀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범죄를 예방하고 흉포화를 막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필요성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형집행이 문제가 있다 해도 예방에 효과적이라면 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고 법정 최고형의 징벌,격리수용 주장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범죄예방을 위한 근본대책을 다시 논의·점검하고 마련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권력의 강경대응이 있어왔으나 범죄예방에 절대적인 우리 모두의 자구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범죄추방에 우리가 할일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학교주변의 정화를 위해 유해환경은 정리되어야 하는데도 현실은 여전한 상태이고 숨어버린 조직폭력배들은 한 명도 못 잡고 있다. 폭력·외설물은 계속 판을 치고 있고 과소비도 여전하다. 그것뿐인가. 사회지도층의 솔선은 말뿐 오히려 탈선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다시 정부와 각 단체가 범죄추방에 앞장서고 전국민적인 호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번의 흉악범 사형집행이 그나마 범죄예방에 기여하고 전국민의 범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또 한 번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흉악범 5명 사형 집행/법무부,올두번째

    ◎“반사회적 범죄 단호 응징 경고”/양평 일가살해 범인 2명엔/기소 11일만에 사형을 구형/검찰 법무부는 4일 경기도 부천에서 데이트하던 남녀를 살해한 죄 등으로 사형이 확정된 손오순(22) 등 흉악범 5명을 사형시켰다. 이들 흉악범은 강도살인ㆍ존속살인ㆍ강간치상 및 살인 등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서울구치소와 부산구치소,광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다가 이날 상오 교수형을 당했다. 이날의 사형집행은 지난 4월17일 포항 연쇄강도ㆍ강간살인 사건의 주범 최정호(24) 등 9명의 사형이후 7개월만이며 이로써 현재 사형이 확정된 죄수는 재심중인 2명을 포함,16명이 남았다. 이날 사형된 죄수들 가운데 전경숙(26)은 죄를 참회하는 뜻으로 안구를 사회에 기증했다. 법무부는 이날의 사형집행에 대해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에도 양평 일가족 살인사건 화성여중생 살인사건 등 강력범죄가 잇따르고 있어 법의 집행을 엄격히 해 경고를 주는 뜻에서 단행된 것』이라고 밝혔다. 사형이 집행된 손은 지난 87년 11월 공범7명과 함께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야산에서 데이트하던 정모군(18)과 김모양(20)을 숲속으로 끌고가 정군을 몽둥이로 때려 숨지게 하고 김양을 윤간하는 등 모두 15차례에 걸쳐 강도살인ㆍ강도강간죄를 저질러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전은 지난 86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치과병원에 들어가 원장 김모씨(64)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는 등 5차례에 걸쳐 강도살인 등을 저질렀다. 함께 처형된 송재홍(35)은 지난 83년 12월 사망보험금 6천만원을 받아낼 목적으로 택시에 아버지를 태우고 제주도 서귀포시 회수동 숲속으로 데려가 돌로 때려 숨지게 한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택시운전사(25ㆍ여)도 돌로 때려 실신시키고 택시에 불을 질렀다. 또 임천택(42)은 지난해 10월 부산 동래구 복천동 가정집에 들어가 흉기로 주인(38)을 찔러 숨지게 하고 4만원을 빼앗았다. 이재철(29)은 지난해 7월 부산 부산진구 부암3동 약수터에서 여중 1년생(12)을 납치,강간한 뒤 목졸라 살해했다. ◎여자 공범,분리심리 【수원=김동준기자】 수원지검 박종환검사는 4일 수원지법 형사합의2부(재판장 유창석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평 일가족 암매장 살해사건 첫 공판에서 윤용필(31),오태환(31) 등 2명의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또 심혜숙피고인(21)에 대해서는 선임변호사의 분리심리 요청에 따라 오는 11일 하오2시에 첫 공판을 열기로 했다. 이들 피고인 2명에 대한 구형은 기소 11일만에 신속히 이뤄진 것으로 이는 흉악범에 대해 곧바로 형을 선고하거나 집행함으로써 범죄응징 효과를 높이는 등 사회적 대응을 위한 검찰과 법원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이날 재판부는 또 이례적으로 법정에서 보도진들에게 피고인들에 대한 사진을 촬영토록 허용했다. 박검사는 논고를 통해 『피고인들은 어린 손녀 앞에서 외할아버지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매장하고 흙이 입까지 차 오르는 동안 계속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서연양을 생매장하는 잔인성을 보였고,완전범죄를 꾀하기 위해 불과 3시간동안 4명의 목숨을 앗아버렸으며,검거된 후 강릉에서 신혼부부를 살해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등 비인간성,야수성까지 보여 사형을 구형한다』고 극형 구형 이유를 밝혔다. 윤ㆍ오피고인 등 2명에 대한 선고공판은 다음달 18일 상오10시 수원지법 210호 법정에서 열린다.
  • 이라크 외국인에 식량배급 중단/다음주부터/서방의 봉쇄조치에 대응

    ◎공관피신 외국인 처형 위협/쿠웨이트인에 이라크 신분증 소지령 【바그다드ㆍ카이로ㆍ뉴욕 외신 종합】 이라크는 10월1일부터 외국인에 대해 배급식량 구입을 금지한다고 27일 발표했다. 이라크 공보부의 한 대변인은 이라크에 가해진 「제국주의의 봉쇄」 때문에 공정가격에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쿠폰을 외국인에게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는 또 바그다드주재 외교관들이 자국 대사관 건물내에 피신해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이라크당국에 제공해 주지 않을 경우 이들 외교관들을 교수형에 처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각서를 미국,영국,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대사관에 보냈다. 그러나 미국,영국 등은 이라크의 이같은 요구를 거절했다. 영국정부는 50여명의 영국인들이 바그다드주재 영국 대사관에 피신해 있다고 밝혔으나 다른 공관에는 몇명의 일반인들이 피신해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라크언론들은 이라크정부가 쿠웨이트인들에 대해 오는 10월1일부터 1개월내에 그들의 신분증을 이라크 신분증으로 바꾸도록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27일 이라크에 대해 수단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수단에 설치되는 어떠한 미사일기지도 「즉각」 파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 흉악범9명 사형집행/가정파괴ㆍ강도살인범“민생치안 확립차원서 단죄”

    ◎뉘우친 5명은 눈ㆍ콩팥 기증 법무부는 17일 포항연쇄강도ㆍ강간ㆍ살인사건의 주범 최정호(24)등 사형수 9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이들은 대부분 부녀자들을 강간한 뒤 살해하거나 원한관계로 보복살인을 저지른 가정파괴사범및 흉악범들로 7명은 서울구치소에서,2명은 부산과 대구교도소에서 각각 교수형을 당했다. 이날 사형집행은 지난해 8월4일 원혜준양 유괴살해범 함효식과 서진룸살롱사건의 주범 김동술ㆍ고금석등 7명이 사형된뒤 8개월만에 실시된 것이다. 법무부는 이날 『민생치안을 확립하기 위한 범정부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정파괴ㆍ강도살인ㆍ강도강간ㆍ조직폭력사범등 강력사범이 근절되지 않고 국민생활을 불안하게 하고있는 실정을 감안,법의 집행을 엄격하게 함으로써 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사형을 집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들 가운데 강창구(33) 박영국(26) 유자환(31) 권현집(41) 어성갑(38)등 5명은 범죄를 참회하는 뜻으로 눈과 콩팥등 장기를 사회에 기증했다. 이들의 사형집행으로 현재 사형이 확정돼복역하고 있는 사형수는 모두 17명으로 줄었다. 사형이 집행된 최는 지난 87년 3월 공범4명과 함께 경북 포항시 공설운동장 후문쪽에서 승용차를 타고 데이트를 하던 최모씨(당시 29세)와 김모양(당시 24세)을 차 트렁크에 태우고 용흥동 공동묘지로 납치,김양을 6차례나 윤간하고 최씨를 목졸라 살해한 뒤 저수지에 던졌었다. 또 강창구는 지난 87년 4월 충남 공주군 반포면 칡골계곡에서 이모씨(당시 47세ㆍ여)를 목을 졸라 실신 시킨뒤 강간ㆍ살해하는등 3년동안 이 일대에서 절에서 기도하고 돌아오는 부녀자 6명을 강간ㆍ살해 했었다. 함께 사형된 육근성(30)은 지난 87년 3월 서울 동대문구 중화2동 김모씨(당시 52ㆍ여)집에 들어가 김씨의 딸 한모양(당시 23세)을 전깃줄로 목을 졸라 살해하고 집에 돌아오던 김씨 마저 살해 했다.
  • 이라크,간첩혐의 영기자 전격 처형/영,주이라크대사 소환…외교보복

    “유학생 전원 송환·각료접촉도 중단”영외무 【바그다드·런던AP로이터연합】이스라엘과 영국을 위해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지난주에 이라크혁명재판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영국의주간업저버지의 이란인기자 파르자드 바조프트씨(31)가 15일처형됐다고 이라크의 관영INA통신이 보도했다. 바조프트는 작년9월 바그다드남쪽에 자리잡고 있는한 군수산업단지근처에서 이라크당국에 붙들려 그동안 구금돼왔다. INA통신은 바조프트기자가 어떤 방식으로 처형됐는지 밝히지 않았으나 간첩죄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교수형에 처하는 것이 이라크의 관례이다. 이라크의 한 관영신문은 이날 바조프트가 이스라엘과 영국 등 두나라를 위해 간첩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면서 그의 자술서라는 것을 공개했다 【런던AFP연합특약】 더글러스 허드 영국외무장관은 16일 영국은 이라크주재 영국대사를 소환하고 영국에 유학중인 이라크인들을 송환시키며 이라크군의 영국내 연수취소및 영국각료의 이라크 방문을 중단시킨다고 발표했다 이는 이라크가 영주간지업저버의 기자인 파르자드바조프트를 간첩혐의로 처형한데 따른 것이라고 허드장관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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