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교수형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공효진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콘도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김영삼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컷오프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01
  • 일란성 쌍둥이 너무 똑같아 둘다 교수형 면해

    마약 거래범에겐 사형을 언도하게 돼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일란성 쌍둥이 가운데 마약을 운반한 사람이 형인지 동생인지를 특정하지 못해 무죄 방면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6일(현지시간) 쿠알라룸푸르 고등법원의 자하라흐 이브라힘 판사는 2003년 166kg의 카나비스와 2kg의 생아편을 집으로 운반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사티스와 사바리시 라즈(27) 형제에 대한 기소를 모두 각하할 것을 판결했다고 영국 BBC가 7일 전했다.이브라힘 판사는 “엉뚱한 사람을 교수대로 보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지 일간 스트레이츠 타임스에 따르면 당시 형제 중 한 명이 먼저 집에서 마약운반 혐의로 체포된 뒤 잠시 있다가 집에 돌아온 다른 형제마저 체포됐다.그런데 경찰은 당시 마약을 운반한 인물이 누군인지 분간하지 못했던 것. DNA 테스트에서도 둘은 정확히 일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법원에서 둘의 외모가 너무나 똑같았지만 키에서 조금 차이가 있었고 용의자는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나중에 도착한 형제는 안경을 쓰지 않은 차이만 있었다고 밝혔다.당시 그들은 입고 있는 셔츠로만 둘을 분간할 수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당시 형제를 체포했던 경찰관이 사망하는 바람에 누가 진짜 용의자인지를 더 이상 밝혀내기 어렵게 된 것. 이날 법정에 나란히 흰색 셔츠를 입고 나온 형제는 판사의 선고 이후 울음을 터뜨리며 서로 껴안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bsnim@seoul.co.kr
  • 일본정부, 4명의 재소자 교수 처형

    일본이 사형제도를 온존시키고 있는 데 국제적 비난이 집중되는 가운데 29일 4명의 재소자가 교수형으로 처형됐다.  일본 법무성은 도쿄와 나고야,후쿠오카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4명의 재소자를 처형했다는 성명을 이날 발표했다고 AFP통신이 교도통신을 인용해 전했다.고도 산업국가 가운데 일본은 미국과 더불어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예외적인 나라..  지난해 8월 두 명의 재소자를 처형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선 처음이다.일본에선 사형 집행 전에 공표하지 않고 비밀리에 집행한 뒤 사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처형된 재소자는 두 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불 태우는 한편,시신을 토막낸 가와무라 유키나리(44)와 공범 사토 테츠야(39),강도 범행 중 4명을 살해한 니시모토 쇼지로(32)와 강도 행각 중 한 여성을 살해하고 3명의 다른 여성을 부상 입힌 마키노 타다시(58) 등이다.  국제적 비난에도 세계에서 가장 범죄율이 낮은 일본 사회에서 사형 집행이 간단 없이 이어지는 것은 국민들이 사형제를 압도적으로 찬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통신은 분석했다.보수 정권은 처형 집행 속도를 오히려 높이고 있다.지난 2007년 9명에 이어 지난해 15명으로 늘었다.지난해 처형자 수는 1975년 17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현재 사형 집행을 대기하고 있는 이들만 100여명에 이른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유럽연합(EU)과 국제 인권단체들로부터 원성을 들어왔다.국제앰네스티는 일본 정부의 사형 강행에 항의하는 집회를 계획하고 있고 인권단체들도 처형 방식의 잔인함을 규탄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이 그토록 인권 후진국이라고 규탄하는 이란 정도가 교수형을 고집하고 있다.이란 정부는 지난해 말 10명을 교수형으로 처형한 바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구로다 “‘용산 참사’ 법·질서 없는 상황 아닌가?”

    구로다 “‘용산 참사’ 법·질서 없는 상황 아닌가?”

    일본 우익세력의 입장을 대변한 ‘극우 발언’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일본 산케이신문 구로다 가쓰히로 서울지국장이 ‘용산 참사’에 대해 “법과 질서가 없는 상황”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구로다 지국장은 2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유선진당 창당 1주년 내·외신 합동 기자회견에서 이회창 총재를 향해 “그 동안 이 총재는 법질서를 강조하는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많이 받아왔는데 ‘용산 참사 평가’에 대해서는 조금 불만”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앞서 이 총재는 ‘용산 참사’ 사태에 대해 “어렵고 힘들게 살아 온 한스러운 영혼들을 짓밟고 고층건물을 세운들 그것이 무슨 개발 성공이고 공공질서 회복의 성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자신 사퇴를 요구했었다.  구로다 지국장은 이 총재에게 “‘용산 참사’는 법과 질서가 없는 상황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사건 자체를 조금 더 비판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이어 “지난해 촛불시위나 지난 달 국회 폭력 사태,이번 용산 사태도 그렇고 ‘한국은 아직 법치주의가 안돼 있구나’ 라는 인상을 받고 있다.”며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이 총재의 견해를 말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고 새총을 쏜 행위를 묵인하거나 잘했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물론 그런 위반행위는 처벌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불법 사태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쳐들어가고 아무렇게나 해선 안된다.설령 범법자라 해도 죽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며 ‘용산 참사’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불법 시위가 아닌 과잉 진압에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구로다 지국장은 그동안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본에)사과를 요구하는데 이것이 정상적인 외교인지 혹은 정상적인 국가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그는 이 외에도 “한국이 50년 동안 독도를 힘으로 지배해 왔다.” “종군 위안부는 한국의 가난 때문” “손기정 쾌거는 일본 근대화의 성과” “독도는 한국땅,다케시마는 일본땅” 등 숱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었다.  구로다 지국장은 1941년 일본 큐슈 가고시마현 출신(부모의 오사카 거주로 출생지는 오사카)으로 교토대(京都)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일본 교도통신 서울특파원을 거쳐 1989년부터 지금까지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사장을 맡고 있다. 글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영상 나우뉴스팀 손진호 VJ nasturu@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군포살해범 수원 실종 40대女도 살해 ”우리도 다 벗겨놓고 싶죠” ”우리보고 Mouth Tank나 하라고?” 일본 또 재소자 4명 교수형으로 처형 게임 ‘대항해 시대’ 승선 어렵네
  • 佛 선교사가 본 조선의 감옥생활

    130년 전 조선 말기 감옥의 모습은 어땠을까. 푸른 눈의 이방인에게 이런 풍경이 또 어떻게 비춰졌을까. ‘나의 서울 감옥 생활 1878’(유소연 옮김, 살림 펴냄)은 프랑스 선교사인 펠릭스 클레르 리델(1830~1884년)이 1878년 1월 말부터 6월 초까지 5개월 동안 서울에서 체험한 감옥 생활을 담은 회고록이다. 이 책은 아드리앵 로네 신부가 정리해 1901년에 발간한 같은 이름의 책(Ma Captivit Dans Les Prisons de Soul)을 바탕으로, 리델의 회고록 일부를 되살린 것. 한국과 관련된 희귀 서양고서를 번역한 ‘그들이 본 우리’ 총서의 6번째로, 서양인의 눈으로 조선의 감옥 생활을 관찰한 첫 번째 기록이라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1857년 사제 서품을 받은 리델은 포교지로 배속된 조선에 1861년에 들어왔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중국으로 피신하여 11년이 지난 뒤 선교활동을 하러 다시 조선에 왔다가 이듬해 서울 포도청에 투옥됐다. 리델은 당시의 감옥을 “지상에 존재하는 지옥의 상(像)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좁은 공간, 여름이나 겨울이나 거의 헐벗어 더위와 추위에 시달리고, 환기는 바랄 수도 없다. 씻을 물은 감옥 중앙 웅덩이에서 얻을 수 있지만 몸을 닦았다간 피부병을 얻기 일쑤다. 그나마 손을 겨우 씻을 양의 멀쩡한 물을 얻는 것은 행복이다. 보통 수감자들은 도둑, 채무죄수, 신도들이지만 가끔 포졸의 계략으로 들어온 무고한 사람도 있었다. 옥졸들은 죄수들에게 밤새 노래를 부르도록 강요하며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을 하고, 밤낮없이 작은 구실을 대서라도 죄수를 두들겨 패는 ‘야만인’으로 그려진다.‘차꼬’라고 불리는 목판 두 개를 맞댄 발족쇄, 한쪽 끝에 용 장식품이나 방울 등이 달린 오랏줄, 포졸 넷이 닻을 올리듯 잡아끌며 진행하는 교수형, 감방·법정·형구틀 등으로 구성된 감옥 구조도 등 당시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사료적 가치가 크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나라 조선에서 인간의 정이란 얼마나 끔찍한가.”라는 리델의 표현을 접하는 순간 인간의 잔혹함에 가슴이 저린 것은 어쩔 수 없다. 1만 6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깔깔깔]

    ●아내가 죽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당하게 된 어떤 남자가 묘석에 이같은 비문을 새겼다. ‘내 인생의 등불은 꺼졌도다.’ 몇년이 지난 뒤 재혼할 여자가 생긴 그 남자는 장로에게 물었다. “죽은 아내의 묘비에서 그 말을 지워 없애는 게 좋겠지요?” 그러자 장로가 대답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다만 다음 구문을 덧붙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야.‘…그러나, 또 새로운 등불이 켜졌도다’라고.” ●세계 각국의 음주운전 형벌 송년회로 술자리가 많은 연말에 음주운전은 금물.세계 각국의 음주운전 형벌을 보고 마음을 다잡으시길…. ▲엘살바도르:총살형 ▲불가리아:초범은 훈방,재범은 교수형 ▲터키:30㎞ 떨어진 곳에 버린 뒤 집까지 걸어 오게 한 후 집에서 구속 ▲핀란드:한달 월급 모두 몰수
  • 베네수엘라·볼리비아 비판 언론과 전쟁 선포

    남미의 좌파정부들이 이번에는 언론과 부딪치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자신의 암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는 이유로 일간 누에보 파이스의 카라카스 사옥에 최루탄을 쏘았다고 AP통신이 15일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 신문이 전날 차베스를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처럼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나아가 이 신문사가 군법을 어긴 것이니 대가를 받는 게 마땅하다고 최루탄 발사를 정당화했다. 편집국장 라파엘 폴레오에게는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차베스와 함께 남미대륙의 대표적 좌파로 꼽히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도 이날 37명의 반정부 언론인 명단을 발표했다. 브라질 일간 에스타도 데 상파울루에 따르면 모랄레스는 블랙리스트 발표와 더불어 강제구인 및 추적에 나섰다. 대통령궁은 지난달 12일 유혈충돌이 발생한 북부 판도 주(州) 야권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언론인들이라고 말했다. TV방송 ‘카날 18’의 호르헤 멜가르 케테 기자는 이미 군인들에게 강제구인됐다. 볼리비아 정부는 판도 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브라질 북서부 브라질레이아 시에서 인터넷 신문을 운영하는 브라질 기자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도 주에는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로, 레오폴도 페르난데스 주지사는 과격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군경에 체포됐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전날 자신을 지지하는 농민단체대표와 만나 대통령 연임제한 철폐 및 사유지 보유한도 규제 강화, 원주민 권익 향상, 에너지 산업 국유화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사회주의 개헌안의 국민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국민대행진을 선언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양극화 중간에 끼인 인간 자유로운 삶의 길 찾기

    양극화 중간에 끼인 인간 자유로운 삶의 길 찾기

    “현대인들은 ‘진보냐, 보수냐’‘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 등 이분법적 사고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구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소설집에는 이런 극단의 구도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길은 없을까 하는 모색이 담겨 있습니다.” 중견 작가 박상우(50)씨가 4년만에 소설집 ‘인형의 마을’(민음사 펴냄)을 내놨다.1980년대 이후 제도적 권력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히는 개인의 삶과 인간의 소외를 다룬 ‘샤갈의 마을’(원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사탄의 마을’(원제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사람의 마을’(원제 사랑보다 낯선)에 이은 ‘마을’ 시리즈의 네번째 작품집이다. 표제작 ‘인형의 마을’을 비롯해 ‘독서형무소’ ‘노적가리 판타지’ 등 21세기 급변하는 세상을 살피는 7편의 단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인터넷 등 디지털문명 시대에 꿈을 잃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삶을 철저하게 파고든다.“‘이쪽이냐, 저쪽이냐’라는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중간지대에 끼인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불행한 삶을 사는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작가는 털어놨다. ‘인형의 마을’에는 조선 세조 때 풍운아 남이 장군과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 매국노 이완용을 칼로 응징한 이재명이 등장한다. 소설가인 주인공은 자신에게 남이 장군과 앙투아네트, 이재명이라는 세 역사인물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남이 장군은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대장부가 스무살에 나라를 평안케 못하면)이라는 자신의 시구를 유자광이 ‘남아이십미득국’(男兒二十未得國·대장부가 스무살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일부러 고쳐 쏘개질하는 바람에 능지처참을 당한다. 앙투아네트는 왕비와 창녀라는 극단의 모순된 이미지를 갖고 살다가 단두대에서 처형됐으며, 이재명은 백범 김구가 총을 빼앗자 칼로 이완용을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에 주인공은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이들의 ‘불완전한’ 인생을 사이버 공간에서 ‘완전하게’ 변모시키려 한다.“당신의 인생이 완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방해하는 망설임이 당신의 인생을 불완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완전한 인생을 경험하는 그 순간, 당신은 더 이상 지금까지의 당신이 아닙니다. 완전한 인생을 찾아 지금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수록작 ‘독서형무소’에서 7000일 이상 ‘독서형무소´에 갇혀 있던 ‘나’는 수천권의 책을 독파하고 세상의 모든 것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고통받는다.“세상에는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영역과 육체적인 영역이 있죠. 이와 마찬가지로 독서형무소는 독서라는 정신세계와 형무소라는 자유롭지 못한 육체적 영역의 양자구도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은 독서라는 정신세계를 버리고 육체적으로 자유로운 출옥을 하게 되지만, 육체의 자유도 결국은 감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다시 고통을 받게 된다. 요컨대 ‘독서’와 ‘감옥’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완전히 벗어나야만 새로운 희망을 얻는다는 게 작품의 메시지인 셈이다. 앞으로는 과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해체하는 장편소설을 쓰고 싶다는 작가는 “언제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을’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는 이제까지 외부세계를 탐색해온 것과는 달리 나 자신의 내면 세계를 끌어내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만 1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전설적 도둑’ 기리는 제단 세워져 논란

    ‘전설적 도둑’ 기리는 제단 세워져 논란

    ’마약범죄의 성인’에 바쳐질 제단이 멕시코에서 세워지고 있다. 멕시코의 ‘현대판 로빈 훗’ 격인 헤수스 말베르데(1870∼1907)에 바쳐질 제단이 멕시코 북서부 ‘바하 캘리포니아 수르’주(州)에서 세워지고 있다고 ADN문도 등 현지 언론이 10일 보도했다. 헤수스 말베르데는 멕시코 북서부 시날로아의 주도(州都) 쿨리아칸에서 출생한 전설적인 도둑이다. 부자들의 금품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의적이었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의적도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그는 경찰에 체포돼 37세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더 큰 유명세를 탄 건 그가 교수형을 당한 이후다. ‘절도의 성인’ ‘마약범죄의 성인’으로 그를 추앙하는 마약조직 등이 등장하면서 그의 고향 쿨리아칸에는 그를 기리는 예배당까지 세워졌다. 예배당은 마약 밀매자 등 범죄자들이 ‘기적’을 기다리며 기도를 드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예배당에 이어 이번에 제단이 세워지고 있는 곳은 미국인 휴양객이 많이 찾는 로스 카보스 지역 주변이다. 이 재단에는 벌써부터 “말베르데여!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등의 기도문이 붙고 있다. 주당국은 바하 캘리포니아 수르가 범죄천국으로 낙인될까 걱정하는 눈치다. 관계자는 “발베르데의 재단이 세워지고 있다고 해서 바하 캘리포니아 수르를 범죄자 천국으로 여겨선 안 된다.”며 “우리 주는 멕시코에서 올 들어 피랍자 살해사건이 단 1건도 발생하지 않은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거리 미술관 속으로] (55) 절두산 성지

    [거리 미술관 속으로] (55) 절두산 성지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순교박물관’에는 개화기 때의 천주교 역사를 담은 다양한 조형물이 놓여있다.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 전뢰진 홍익대 명예교수 등 국내 원로 조각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최초의 한국인 신부인 김대건 신부 탄생 150주년을 맞아 전 교수가 제작한 ‘김대건 동상’이 처음 자리한 곳이 바로 절두산 성지이다. 받침 높이 5.8m, 본상 높이 4.35m에 이르는 거대한 조형물로, 원형은 가톨릭대학으로 옮겨졌다.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은 1972년 최 교수가 제작했다. 첫 순교자 가족으로 기록된 이의송(프란치스코)의 가족을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두 어른과 한 아이의 몸통 위에 목이 겨우 얹어있는 모습이다. 아빠, 엄마, 아이의 다정한 모습 같아 보이지만 아이 손에 묶인 밧줄을 보는 순간 당시의 처절함이 생생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는 성모상이 곳곳에 놓여있다. 특히 조영동 성신여대 명예교수와 고(故) 이남규 전 공주사대 교수가 공동 제작한 ‘안수 성모상’은 위안을 받기에 충분하다. 앞으로 뻗은 두 손이 보통 키의 성인 머리 높이와 딱 맞아떨어져 마치 얼굴을 보듬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최 교수의 ‘성모상’이나 1978년에 만들어진 ‘성모동굴’도 편안한 마음의 휴식을 가져다 준다. 역사적 가치를 가진 유물도 곳곳에 서있다.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인 천진암 주어사를 순례하다가 발견한 ‘해운당대사의징지비(海雲堂大師義澄之碑)’나, 모조품이긴 하지만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의 근거가 된 ‘척화비’가 그것이다. 1866년에 순교한 다섯명의 성인이 충남 보령 갈매못 형장으로 끌러갈 때 쉬었다 간 바위라는 ‘오성바위’와 다블뤼 안 주교가 21년간 숨어 살던 방을 드나들 때 밟고 다녔다는 문지방 돌도 고스란히 보관해 놓았다. 1만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데서 붙어진 ‘절두산’이라는 으스스한 이름만큼 살벌한 유물도 많다. 병인박해 당시 교수형틀인 ‘형구돌’을 비롯해 성당 앞 형구 전시장에는 순교자를 고문했던 형구들이 전시돼 있다. 종교색을 내세워 외면하기엔 역사적 깊이와 한강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너무 좋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일요영화]석양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KBS 1TV 오후 11시50분) 1960년대를 풍미했던 서부활극 영화의 걸작으로,‘폼생폼사’ 주인공 블론디(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기에 가까운 총 솜씨가 트레이드 마크인 영화다. 원제는 ‘The good,the bad,and the ugly´. 허리춤엔 총자루를 차고, 먼지가 뒤덮인 망토를 두르고, 늘 시가를 입에 문 채 우수에 찬 눈빛으로 서부를 가르는 신비의 남자 블론디.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인 때, 블론디는 멕시칸 총잡이 투코(알도 지우프리)와 함께 동업 중이다. 블론디는 현상범인 투코를 신고해 엄청난 현상금을 타내고, 투코가 교수형을 당하는 순간 어디에서인가 총성이 울린다. 하지만 영화 제목처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선한 자(The Good)’라기보다 교묘히 법을 이용하며 살아가는 영악한 인간유형에 더 가깝다. 그는 ‘추한 자(The Ugly)’투코를 잡아 현상금을 타낸 다음 처형을 당하려는 순간에 살려내고, 다시 다른 마을 보안관한테 넘긴다. 한편 ‘악한 자(The Bad)’로 분류되는 청부업자 센텐자(리 반 클리프) 역시 우연히 20만 달러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블론디와 투코를 만나게 된다. 이들 셋은 우여곡절 끝에 모두 돈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에서 다시 만나고, 전형적인 서부영화 스타일의 1대1 결투가 아닌 1대1대1의 삼각결투를 벌이게 된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주제가는 영화를 안 본 사람도 다 알 만하다. 국내에선 김지운 감독이 제작비 110억원을 들여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 등을 내세운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리메이크해 2008년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140분.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9)숭록대부까지 오른 ‘神醫’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9)숭록대부까지 오른 ‘神醫’

    약을 쓰는 의원과 별도로 침의를 양성하자는 주장은 세종시대 전의감(典醫監) 책임자였던 황자후가 처음 내세웠다.“병을 속히 고치는 데는 침이나 뜸만 한 것이 없습니다. 의원으로서 침을 놓고 뜸을 뜨는 구멍을 밝게 알면 한 푼의 약도 쓰지 않고 모든 병을 고칠 것입니다. 지금부터 중국의 의술을 익히는 법에 의해 각각 전문(專門)을 세우고 주종소(鑄鐘所)로 하여금 구리로 사람을 만들게 하여, 점혈법(點穴法)에 의해 재주를 시험하면 의원을 취재하는 법이 또한 확실해질 것입니다.” 허임의 ‘침구경험방’ 첫 판본이 나온 지 7년 뒤인 효종 2년(1651)에 내의원의 부속청으로 침의청(鍼醫廳)이 설치되었다. 당대 침구술의 최고 실력자들이 왕궁에 모이게 된 것이다.‘내침의선생안’에 202명의 내침의, 즉 내의원 침의 명단이 실렸는데, 이 가운데 외과수술로 가장 이름을 날린 침의가 백광현이다. ●의서를 보지 않고 침을 써서 말을 고치다 침의로 이름난 백광현(白光炫·1625∼1697)은 사람됨이 순박하고도 조심스러웠다. 자기 동네에서도 너무 진실스러워, 마치 바보 같았다. 키가 큰 데다 수염이 길었으며, 눈에서 번쩍번쩍 빛이 났다. 대를 잇는 의원이 아니라, 처음엔 말의 병을 고쳤다. 말의 병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그 처방을 모은 ‘마의방(馬醫方)’이 광해군 8년(1616) 4월 의주에서 간행되었지만, 그는 이런 책을 보지 않고 오로지 침만 써서 치료했다.‘마의방’에 말의 경혈도가 있어서 경혈을 찾아 침을 찔러 넣으면 편했는데, 그는 자기 방식을 고집해 경험을 쌓았다. 임상실험을 충분하게 한 것이다. 말침은 사람에게 시술하는 침에 비해 납작하고 넓은 봉 형태이며 철제로 만들었다. 침을 오래 놓을수록 손에 익어지자, 사람의 종기에도 시험을 해보았다. 지금은 종기가 별로 나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는 위생관념이 열악해 많이 났으며, 심하면 목숨까지 잃게 되는 큰 병이었다. 침으로 사람의 종기까지도 고쳐 기이한 효험을 많이 보게 되자, 드디어 사람 고치는 것만 일삼았다. 마의(馬醫)에서 침의(鍼醫)로 전업했으니, 신분이 상승한 셈이다. 그가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의과를 거쳐 내의원에 들어가지 않고 민간에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의 종기를 보고, 상황에 따라 달리 시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그의 진단이 더욱 정확해졌다. 중인들의 전기를 많이 지었던 정내교가 백광현의 전기도 지었는데, 그가 종기의 뿌리를 뽑은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개 종기에 독이 가득 차면 근(根)이 생기는데, 옛 처방으론 이걸 고칠 방법이 없었다. 광현은 이런 종기를 보면 반드시 커다란 침을 써서 근을 발라내어, 죽을 사람도 살렸다. 처음엔 침을 너무 세게 써서, 어떨 때에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에게 효험을 보고 살아난 사람들이 차츰 많아졌으므로, 병자들이 날마다 그의 대문에 모여들었다.” 정내교는 “지금 세상에서 종기를 째고 고치는 법은 백태의에게서 시작되는데, 그 뒤에 배운 자들은 모두 그에게 미칠 수 없었다.”고 했다.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종기를 외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처음 개발한 것이다. 시술하다 환자를 죽이기까지 했다는데, 사람이 아니라 말부터 치료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째보면서 임상실험에 일찍 성공했고, 사람에게 시술할 무렵에는 이미 침술이 손에 익었을 것이다. 침을 놓는 솜씨는 의서를 많이 보았다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병자들이 모여들수록 의술 베풀기를 좋아해, 더욱 힘쓰고 게을리하지 않았다. 몸을 사리지 않았으며, 돈을 밝히지도 않았다. 침으로 째서 뿌리를 뽑는 비법을 써 그의 이름을 크게 떨쳤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신의(神醫)라고 칭송했다.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종기를 똑같이 고치다 그는 의과에 합격하지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내의원에 배속되었다. 현종 11년(1670) 8월16일 실록에 “왕의 병환이 회복되자 백광현에게 가자(加資)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품계를 한 급 올려주었다는 뜻인데, 몇품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숙종은 10년(1684) 5월2일 정사에서 그를 특별히 강령현감(종6품)에 임명했다가 포천현감으로 바꾸었는데,“의관의 수령 임명이 여러 번 중비(中批)에서 나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진실로 만족하게 여기지 않았었는데, 백광현이 미천한 출신이고 또 글자를 알지 못하는데도 별안간 그를 이 벼슬에 임명하니,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대론(臺論)이 일어났다.”고 사관은 기록했다. 어의들이 왕의 병을 고치면 승진하고, 의원으로 더 이상 승진할 자리가 없으면 지방 수령으로 발령내는 경우가 많았다. 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의원에게 상을 주는 것이 당연했다. 백광현이 현종의 목에 난 종기를 고치고, 효종비 인선왕후의 머리에 난 종기도 큰 침으로 수술하여 완치시켰으며, 자신의 목에 난 종기와 배꼽에 난 종기까지 침으로 치료했으니 종6품 현감으로 발령내는 것쯤은 숙종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효종이 종기를 제대로 고치지 못해 세상을 떠났으므로, 종기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중비(中批)는 임금의 뜻이다. 백광현을 내의원의 관직에 올려주는 것은 상관없지만, 지방 수령은 문과나 무과에 급제한 양반이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으니 파격적인 대우였다. 사간원에서 그를 반대할 명분이 없자 “글자를 알지 못한다.”고 반대했다. 그가 전형적인 의과 출신이 아닌 데다 전통적인 의서(醫書)도 보지 않고 경험에 따라 치료한 침의였으므로, 한문에 약한 것을 트집잡은 것이다. 그는 1691년에 지중추부사,1692년에 숭록대부로 승진했는데, 실제 직책이 없는 벼슬이나 품계였다. 정내교는 그의 전기를 쓰면서 높은 벼슬에 오른 그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숙종 초엽에 어의로 뽑혔는데, 공을 세울 때마다 품계가 더해지곤 해서 종1품에 이르렀다. 벼슬도 현감을 지내, 민간에서 영예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병자들을 대할 때에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부름이 있으면 곧 달려갔고, 가서는 반드시 자기의 정성과 능력을 다하였다. 병이 다 나은 것을 본 뒤에야 치료를 그만두었다. 늙고 고귀해졌다고 해서 게을러지지 않았다.” ●“백광현이 세상에 없어서 죽는구나” 정내교는 전기를 쓰면서, 자신이 실제로 본 백광현의 신통한 진단을 이렇게 증언했다. “내 나이 15세 때에 외삼촌 강군이 입술에 종기가 났다. 백태의를 불러왔더니, 그가 살펴보고 ‘어쩔 수가 없소. 이틀 전에 보지 못한 게 한스럽소. 빨리 장례 치를 준비를 하시오. 밤이 되면 반드시 죽을 게요.’라고 말했다. 밤이 되자 과연 죽었다. 그때 백태의는 몹시 늙었지만, 신통한 진단은 여전했다. 죽을 병인지 살릴 병인지 알아내는 데 조금치도 틀림이 없었다. 그가 한창때에는 신기한 효험이 있어서 죽은 자도 일으켰다는 게 헛말은 아니었다.” 정내교가 15세 때라면 백광현이 71세 되던 1695년이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데, 이 해에 재상을 치료한 기록이 실록에 실려 있다.12월9일에 각기병을 앓는 영돈녕부사 윤지완에게 왕이 백광현을 보냈는데, 사관은 “백광현이 종기를 잘 치료하여 기이한 효험이 많이 있으니, 세상에서 신의(神醫)라 일컬었다.”고 설명했다. 효종 10년(1659) 5월1일에 약방에서 문안하자, 효종이 “종기의 증후가 이같이 날로 심해 가는데도 의원들은 그저 심상한 처방만 일삼고 있는데, 경들은 심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답하였다. 의관 유후성이 산침(散鍼)을 놓자고 아뢰어 그대로 따랐지만, 효험이 없었다.3일에는 병이 위독해 편전에 나가지 못했으며, 왕이 입시한 의관들에게 종기의 증후를 설명하라고 명했지만 아무도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4일에는 의관 신가귀가 침을 놓자고 했으며, 유후선은 놓으면 안 된다고 했다. 신가귀가 침을 놓았지만, 혈락(血絡)을 범하는 바람에 피가 그치지 않고 나와 효종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한 달 뒤에 신가귀는 교수형을 당했다. 효종 10년이라면 백광현이 아직 내의원에 들어오지 못하고, 민간에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던 시절이다. 몇 년 뒤였다면 효종의 종기를 침으로 고치지 않았을까? 정내교는 백광현의 전기를 끝내면서 “종기가 생겨서 그 독을 고치기 어렵게 된 사람들은 요즘도 반드시 ‘세상에 백광현이 없으니, 아아! 이젠 죽을 수밖에 없구나.’라고 탄식한다.”고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몇십년 뒤에도 그의 신통한 침술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백광현은 4형제였는데,2남 광린(光璘)과 4남 광현이 의원으로 활동했다.4형제의 후손 가운데 역관, 의원, 계사가 골고루 배출되었는데, 광현의 후손에서 대를 이어 침의가 많이 나왔다. 정내교는 “그가 죽은 뒤에 그 아들 흥령이 대를 이어 의원이 되었는데, 꽤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고 했다. 그의 침술이 아들을 통해 가업으로 전수된 것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표준전쟁/ 톰 맥니콜 지음

    초고화질의 차세대 DVD 시장을 잡기 위한 주도권 다툼이 한창이다. 삼성과 LG를 비롯한 소니·필립스·에이서가 채택하고 있는 블루레이 방식과 인텔·도시바·마이크로소프트·NEC가 채택하고 있는 HD-DVD 방식 사이에 기술표준을 놓고 사활을 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콘텐츠 공급사도 월트디즈니와 20세기폭스는 블루레이 방식, 유니버설과 파라마운트는 HD-DVD 방식으로 갈려 있는 상황이다. 앞서 1970년대 초반 일본 전자업계의 양대 라이벌인 소니와 마쓰시타가 VTR의 기술표준을 놓고 벌였던 대결은 이미 표준경쟁의 고전적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VTR를 개발한 두 회사는 당시 소니가 베타 방식, 마쓰시타는 VHS방식을 채택하면서 팽팽하게 맞붙었다. 화면의 선명도나 용량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베타방식이 한 수 위였다지만, 결과는 VHS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표준전쟁’(톰 맥니콜 지음, 박병철 옮김, 알마 펴냄)은 DVD는 물론 VTR보다도 훨씬 앞선 역사상 첫 번째의 기술 표준 경쟁을 다루었다. 주인공은 바로 전기. 교류(AC)와 직류(DC)를 들고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이 벌였던, 어떤 전쟁보다도 비열하고 야만적이었다는 전쟁의 전말이다. 저널리스트인 지은이는 “이 전쟁은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전세계 인류의 생활 패턴이 좌우될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훗날 다른 표준 전쟁의 교범이었다.”면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기술 표준을 선점하는 쪽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토머스 에디슨은 1881년 백열전구를 발명하고는 직류로 세계를 평정하는 원대한 사업을 그리고 있었다. 반면 에디슨 밑에서 잠시 일했던 크로아티아 출신의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를 연구하고 있었다. 발명가이자 거물 사업가인 조지 웨스팅하우스는 큰 돈이 될 것 같은 교류의 가능성에 흥미를 느껴 테슬러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웨스팅하우스가 뛰어들 무렵 에디슨은 이미 직류로 전기시장의 대부분을 선점하고 있었다. 에디슨의 특허에 발이 묶여 있던 웨스팅하우스는 유럽에서 출발한 새로운 기술로 눈길을 돌렸는데, 그것이 바로 교류였다. 웨스팅하우스의 도전에 에디슨은 “내가 장담하건대 웨스팅하우스가 충분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교류전기공급 시스템을 가동한다면 규모에 상관없이 6개월 이내에 인명사고가 날 것”이라며 웨스팅하우스의 전기배선을 수리하던 전공이 전기충격으로 죽어 있는 모습의 사진을 담은 인쇄물을 일반인들에게 뿌리며 ‘선전포고’를 했다. 이후 에디슨 진영의 지원을 받은 헤럴드 브라운은 44마리의 개와 두 마리의 송아지, 말 한 마리를 전기충격으로 죽이는 실험을 하며 직류보다 교류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1889년 1월1일 뉴욕주가 교수형에서 전기의자로 바꾸도록 사형집행법을 개정한 것도 ‘웨스팅하우스의 교류발전기는 사람을 죽이는 도구’라는 것을 알리겠다는 전략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직류의 가장 큰 단점은 발전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기를 공급할 때 막대한 전력이 손실된다는 것이었다. 반면 교류는 고전압으로 쉽게 승압할 수 있어 굵은 전선을 쓰지 않아도 되는 만큼 먼곳까지 ‘배달’할 수 있다. 따라서 전기시장의 대세는 교류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는데,1895년 나이애가라 폭포에 교류발전기를 달아 3.5㎞ 떨어진 버팔로는 물론 720㎞ 떨어진 뉴욕에까지 풍부한 전기를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지은이는 “직류는 19세기 전기전쟁에서 교류에 패했지만 지난 100년 동안 교류 시장을 서서히 잠식해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휴대용 전기장치, 예를 들어 노트북과 휴대전화 등은 예외없이 직류로 작동되고 있다. 전기의 표준전쟁은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현재진형형이라는 것이다.1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쿠르드 학살혐의 알리 사형 확정

    이라크 최고 항소법원은 4일 1980년대 쿠르드족 학살혐의로 지난 6월 1심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된 알리 아산 알 마지드의 사형을 최종 확정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촌이기도 한 알 마지드는 쿠르드족 학살 과정에서 화학무기 사용을 명령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케미컬 알리’라는 별칭이 붙은 인물이다. 이로써 사담 후세인 정권하에서 자행된 비인륜적인 대량 학살사건 가운데 두자일 마을 학살사건을 포함,2가지 사건의 사법적 판단이 마무리됐다. 이라크 법에 따라 알 마지드의 교수형은 대통령과 부통령의 재가를 받은 뒤 30일 이내 집행될 예정이다.두바이 연합뉴스
  • 아베 ‘역사인식’ 또 주변국 자극하나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3일 인도 방문 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범을 심판한 이른바 ‘도쿄재판’인 극동군사재판에서 유일하게 A급 전범 전원의 무죄를 주장했던 인도인 펄 판사의 유족을 면담할 방침이라고 일본 언론이 14일 보도했다. 아베 총리의 이같은 계획은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과 맞물려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행동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커 한국·중국 등 주변국들의 큰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도쿄재판에서는 25명의 일본인이 A급 전범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7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연합국측의 펄 판사는 당시 승전국이 패전국 지도자들을 처벌하는 재판 방식에 비판을 제기하면서 피고인 전원에 대한 무죄 논리를 폈다. 현재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는 펄 판사의 공적비도 세워져 있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이미 A급 전범 및 도쿄재판에 대해 의문을 밝힌 적이 있어 이번 면담이 파문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도 “정부 관계자가 아베 총리의 펄 판사 유족 만남에 대해 ‘일본과 인도의 우호적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면담 내용에 따라 A급 전범을 비난하는 중국 등을 자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hkpark@seoul.co.kr
  • 日軍, 미국인 여성도 위안부 삼았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장교가 미국인 여성을 상대로 매춘을 강요한 것과 관련해 재판을 받은 기록이 확인됐다. 그동안 한국, 타이완, 중국 등 아시아여성이 위안부에 강제동원된 사실이 드러난 적은 있지만 미국령인 괌 여성의 피해 사실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같은 사실은 그동안 ‘위안부의 존재는 인정하나 일본군의 개입은 부정해 온’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박하는 또 하나의 물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달 30일 미국 하원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는 위안부 결의안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일본군이 칼로 위협 “따르지 않으면 죽이겠다” 25일 위안부문제를 연구하는 국내 한 전문가가 미국의회도서관에서 입수한 350장짜리 1945년 미 해군 괌 재판보고서에 따르면 1942년 2월부터 6개월 동안 일본인 괌 사령관 하야시의 부관(소령급)인 ‘사카이’는 당시 17세인 F양을 강제로 끌고가 성노리개로 삼았다. 사카이는 당시 괌에서 활동하고 있던 일본인 사업가 ‘시노하라’와 함께 F의 집으로 찾아가 부모를 칼로 위협해 강압적으로 F를 데리고 갔다. 이어 한 집에 F를 감금한 뒤 매일 감시를 했다. 그 곳에서 F는 언니를 만났다. 사카이는 하야시와 함께 일주일에 2∼3차례씩 그 곳에 들렀다. 그러나 재판기록에는 언니와 하야시 두명에 대한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F는 재판에서 “약혼자가 있었지만 집으로 끌려간 첫 날 사카이와 잠자리를 해야 했다.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하자 (시노하라가)도망가려고 하면 나쁜일이 일어날 것이고 복종하지 않으면 목을 베어버릴 것이라고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 사카이가 “세탁과 청소를 하면 매월 20엔씩 주겠다.”고 했으나 약속한 돈은 절반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적혀있다.시노하라는 재판에서 ‘매춘을 목적으로 여성을 강제로 끌고간 혐의’등 5개 혐의에서 유죄를 인정받아 교수형을 선고받았다가 징역 15년형으로 감형됐다. 일본군 장교 사카이는 미군이 괌을 탈환하기 직전 일본으로 돌아가 재판을 받지 않았다.●“특정인을 위한 성노예도 위안부” 시노하라는 당시 괌 거주 일본인 협회 회장을 지낸 사업가로 일본군 장교 사카이의 지시로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1938년 일본 육군성이 중국 북부지역 참모에게 보낸 결재서류에 ‘위안부 모집은 지역의 군이 통제하고 모집책(업자)선정을 적절히 할 것’이라는 내용과도 일맥 상통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진성 교수는 “전쟁 중 성매매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첫 사례인 네덜란드 바타비아 법정문서보다 앞선 것”이라면서 “이번 재판기록에는 한명의 피해여성이 나오지만 앞으로 케이스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전형적인 위안소의 형태는 아니지만 특정인을 위한 성노예도 위안부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서도 이런 사례가 여럿 있다.”고 덧붙였다. 건국대 법학과(국제법 전공)조시형 교수는 “인신매매 현장에 일본군인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본군의 개입은 명확하다. 설사 사적인 목적이라 하더라도 국제법상 일본군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미국 여성의 사례가 발견되기는 처음인 만큼 앞으로 미국의 태도가 주목된다.”면서 “미국 차원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처벌을 위해 미국의 관련 문서 공개를 촉구하는 등 법제정 움직임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쿠르드족 학살 주도 혐의 ‘케미컬 알리’ 에 사형 선고

    1988년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마을 학살사건(안팔 작전)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알리 하산 알-마지드가 24일 이라크 1심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촌인 알-마지드는 당시 화학가스 살포를 명령해 ‘케미컬 알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로써 지난해 12월30일 후세인의 교수형 집행을 필두로 시작된 후세인 정권의 권력 핵심층에 대한 신병 처리가 이라크전 발발 4년여 만에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연합뉴스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8) 절두산 천주교 순교 성지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8) 절두산 천주교 순교 성지

    1만명에서 많게는 2만명의 순교자를 냈다는 이 땅의 천주교 역사는 그야말로 처절한 박해의 점철이다.‘박해의 역사’란 말 그대로 곳곳에는 목숨을 던져 신앙을 지켜낸 천주교 선구들의 외침을 소리없이 전하는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휘광이´(천주교에서 망나니를 부르는 말)의 칼날 아래 피를 뿌리며 스러져간 숱한 순교자들 가운데 지금까지 성인 품에 오른 이는 103위이다. 지난 1984년 시성(諡聖)되어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들 103위의 영혼은 뒤늦게나마 위로받은 채 빛을 발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순교자들은 부지기수다. 전국의 천주교 순교터 가운데 절두산 성지(서울 마포구 합정동 96의1·사적 399호)는 이름 나지 않은 무명의 초기 신자들이 가장 많이 피를 흘린 성지이다. ‘절두산’(切頭山).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순교 터이다. 수천명(3000∼7000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신원이 파악된 순교자는 고작 29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24명만 이름과 행적이 확인됐고 나머지 5명은 이름만 겨우 알 수 있을 뿐이다. ●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참배 지난 1984년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한국에 온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공항에서 곧바로 직행해 참배했던 곳도 이곳이다. 이 땅에선 어떤 험한 일이 있었을까. 옛 양화진 일대를 포함하여 사적지로 지정된 이 순교 성지는 지금의 이름과는 달리 원래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했던 곳. 양화진 동쪽 봉우리의 절두산은 ‘동국여지승람’이며 ‘세종실록’등에 ‘머리를 높이 든 형상’, 혹은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형세’라 하여 ‘가을두(加乙頭)’니 ‘잠두봉(蠶頭峰)’의 이름으로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에서 강희맹은 그 형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서호는 도성에서 10리도 안 되게 떨어져 있는데, 산이 푸르고 물이 푸러 형승이 나라에서 제일 간다. 호수 남쪽에 끊어진 언덕이 있는데 형상이 큰 자라 머리 같으며 혹은 잠두라고 불린다.” 그 말마따나 늘상 풍류객들이 산수를 즐기고 나루손들이 그늘을 찾던 평화로운 곳으로, 중국의 사신이 오면 반드시 유람선을 띄웠다고 한다. 그렇듯 한가롭게 명승을 이루던 양화나루와 잠두봉이 피비린내 나는 ‘절두’의 극형지로 변한 것은 바로 병인년인 1866년의 병인양요 때문이다. 그해 두차례의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침입해온 배경에 천주교 신자들이 있었음을 확인한 대원군과 조정이 박해의 칼을 들었다. “양이(洋夷)로 더럽혀진 한강 물을 서학(西學)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며 프랑스 함대가 쳐들어온 바로 그 양화진을 보란 듯이 사형지로 삼은 것이다. 당시 절두산에서 처형을 하기 전 내건 포고문에서 “천주교인들 때문에 오랑캐들이 여기까지 왔다. 그들 때문에 우리의 강물이 서양의 배로 더럽혀졌다. 그들의 피로 이 더러움을 씻어내야 한다.”는 내용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교회사연구소와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조사한 대로라면 이곳에서 휘광이의 칼이 피를 뿌렸던 시기는 1866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였다. 황해도 출신으로 시흥 봉천동에서 잡혀온 이의송(프란치스코)과 그의 아내 김엇분(마리아), 아들 붕익(바오로)이 순교한 것을 시작으로 수천명이 9개월간 차례로 목숨을 잃어간 것이다. 절두산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는 동안 천주교 신자들의 주 처형지였던 새남터와 서소문 밖 네거리에선 형이 집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조정에서 얼마만큼 절두산 처형을 집요하게 진행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재판의 형식과 절차가 있었을 터이지만 절두산의 처형은 무지막지한 선참후계(先斬後啓)였다. ● 순례성당·박물관 등 웅장하게 세워져 “일단 먼저 머리를 자르고 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 순교자들에 관한 기록은 29명만 빼놓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이곳을 성지로 삼은 천주교계는 1962년 ‘가톨릭 순교성지’ 기념탑을 세웠다가 병인박해 100주년을 맞은 1966년 기공식을 갖고 그 이듬해에 종탑과 순례성당, 박물관으로 구성된 절두산 기념관을 웅장하게 세워놓았다. 사제관을 겸한 순교성인시성기념관을 지나 야외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오른쪽에 3층의 기념관이 우뚝 섰다. 순교자기념상을 쳐다보면서 오른쪽 경사로를 따라 오르면 가장 먼저 ‘절두산’이라 새긴 바윗돌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계단과 소로를 조금 더 올라 꼭대기에 닿으면 형 집행 때 썼던 형구들을 전시해놓은 진열장이 당시 처형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진열장 정면에 박물관, 그 오른쪽에 성당 출입문이 따로 나 있다. 기념관은 잠두봉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채 순교자들의 정신을 오롯이 담았다고 한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전통 갓의 모양을 한 돔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이 중앙 제대와 독서대, 해설대, 감실을 환히 비춘다. 양쪽 벽을 두른 14처며 천장에서 제대 앞으로 내리건 십자고상, 부활절에만 밝힌다는 제대옆 부활초, 죄인이 목에 쓰는 칼을 형상화한 독서대의 모습이 독특하다. ● 순례객들 발길 끊이지 않아 신자석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성해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가장 먼저 찾은 공간으로 순교 성인 27위와 무명 순교자 1위가 모셔져 있다. 왼쪽 위에는 빈 공간이 마련된 채 앞으로 봉안될 순교자 6위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옆 박물관은 그야말로 한국 천주교 박해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공간. 절두산 순교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초대 교회 창설을 보여주는 이벽, 이가환, 정약용의 유물과 순교자 유품, 형구(刑具)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한국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 일대기 31점을 포함해 유중철 요한, 이순이 루갈다 동정부부 일대기 27점도 들어 있다. 박물관에서 나와 야외전시장으로 내려서면 병인박해 때 교수형을 집행하던 형구들이며 희생자들의 행적을 재현해 놓은 갖가지 전시물들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한다. 김대건 신부 동상을 비롯해 오타 줄리아의 묘, 박순집의 묘, 남종삼 성인의 흉상과 사적비가 순례객들을 차례로 맞는다. 한 집안 열여섯명이 한꺼번에 희생된 박순집 일가의 이야기를 새긴 비석 앞에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순교 성지를 다지기 위한 작업이 한창일 무렵 “너무 많은 사람의 목을 잘라 절두산으로 부른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계기로 이름이 붙여졌다는 ‘절두산 성지’. 무명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고 위로하기 위해 천주교계가 어렵사리 마련해 놓았지만 그 형세는 마치 칼을 쓰고 처형을 기다리는 순교자의 모습을 닮아 있어 순례객들을 안타깝게 한다. 기념관과 사제관 앞쪽을 가로지르는 당산철교와 성당 아래쪽 강변북로, 일산 방향으로 뻗은 지하차도가 ‘ㄷ자’ 모양으로 성지를 옥죄고 있다. 한국 천주교 사상 가장 혹독했다는 ‘병인박해’의 순교자들은 지금도 신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kimus@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정확한 순교 위치는 어디? 수천명 천주교 신자의 목숨을 빼앗은 절두산 순교 성지. 그 많은 순교자들이 희생된 처형장의 위치를 놓고 천주교계는 엇갈린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정확한 처형 장소는 어디일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처형장은 절두산 잠두봉 꼭대기인 지금의 순례성당 제대 뒤쪽의 이른바 ‘치명터’. 어차피 신자들의 처형장면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을 택했다면 한강에 인접한 봉우리 꼭대기였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천주교계가 성지 조성을 하면서 접촉한 주민들은 “절두산 꼭대기에서 칼로 신자들의 목을 쳐서 그 시신을 강물에 던졌다.” “한 오랏줄에 여러 명의 교우들을 결박하여 산 채로 낭떠러지 밑 강물로 밀었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 증언했다고 한다. 이같은 증언을 토대로 순교자 기념탑을 절두산 꼭대기에 세웠고, 나중에 이 탑을 헐고 마련한 기념관과 성당도 그 자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많은 사람들이 올라 형을 집행하기엔 절두산 꼭대기가 비좁고, 각종 기록과 증언으로 미루어 볼 때 양화나루 앞 길가 평지가 처형지였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같은 입장은 정부측의 관련자료나 교인들의 증언집인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치명일기’에서 모두 처형지를 절두산 꼭대기가 아닌 ‘양화진두’ ‘양화진 진터’ ‘양화진 진’ ‘양화진’ 등으로 밝히고 있다는 근거를 들고 있다. “양화진두에서 군민을 많이 모아놓고 천주교 신자들의 목을 베어 머리를 달아 대중들을 경계시켰다.”라는 정부측 기록의 ‘진두’와 천주교회측 자료의 ‘양화진 진터’ ‘양화진 진’ ‘양화진’이 일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근거로 미루어 순교 장소는 당산철교로 인해 순교기념관에서 성지가 분할된 동쪽의 꾸르실료 건물, 즉 세계성체대회기념교육관과 잠두봉의 중간 어느 지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북 리뷰] 컨닝, 교활함의 매혹/돈 허조그 지음

    ●교활함(Cunning):(명사) 강한 동물이나 사람을 약한 동물이나 사람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기능.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강한 정신적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상당한 물질적 광고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탈리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모피 장수는 당나귀 가죽보다 여우 가죽을 더 좋아한다.” 미국의 기자이자 작가인 앰브로즈 비어스가 교활함에 대해서 내린 정의다. 흔히 시험을 치를 때 부정행위란 의미로 사용되는 커닝이 14세기만 해도 박식함을 의미했다고 한다. ‘컨닝, 교활함의 매혹(돈 허조그 지음·이경식 옮김·황소자리 펴냄)’은 교활함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그 세계는 온갖 문제들이 잔뜩 도사리고 있는 매혹적인 미궁이다. 도덕성과 규칙, 그리고 합리성의 여러 갈래들이 난마처럼 뒤얽혀 있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법률과 정치철학을 강의하는 교수인 저자 돈 허조그는 예리하고도 장난기 넘치는 문체로 교활함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혐오를 탐구한다.16세기의 목사 존 켈로는 아내를 살해하고 교수형을 당했다. 아내의 목을 조른 뒤 자살인 것처럼 꾸미고,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설교도 한다. 신도를 집으로 초대한 뒤 허공에 매달린 아내를 발견하고는 기절하는 척까지 했다고 한다. 이처럼 교활함의 표본과도 같은 목사의 이야기를 사례로 들면서 저자는 선한 것의 감동적인 환상에는 관심이 없다고 선언한다. 지혜로움을 뜻하지 않고 영리함을 뜻하는 교활함의 기본적 개념은 오디세우스 이야기나 마키아벨리 저작물을 통해 탐구한다. 교활함은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필수 항목일 수도 있다. 전혀 교활하지 않은 포커 플레이어,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 같은 정치가는 상상하기 힘들다. 예나 지금이나 교활한 생각과 행동은 개인의 삶과 법과 정치에, 심지어 학문과 사상 속에도 체계적으로 녹아들어가 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면 교활함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스스로의 교활함에 당혹스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교활함의 영역에서 합리성과 사회적 역할, 그리고 도덕성이라는 3개의 개념은 분리되기 힘들기 때문이다.2만 3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이라크 전부통령 교수형

    사담 후세인 정권시절 부통령 타하 야신 라마단이 20일(현지시간) 두자일 마을 주민 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교수형을 당했다고 알 자지라 방송이 그의 아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예멘에 체류 중인 그의 아들 아흐마드는 라마단 전 부통령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묻혔던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 부근에 묻힐 것이라며 알 자지라 방송과 전화인터뷰를 갖고 “이것은 사형이 아니라 정치적 암살”이라고 비난했다. 그의 교수형 집행은 지난 15일 이라크 항소법원이 사형을 확정한 지 닷새만이며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꼭 4년째 되는 날에 이뤄졌다.이라크 정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그의 사형 집행을 확인하지 않았다.두바이 연합뉴스
  • 28년만에 올리는 이 연극, 인혁당 피해자에 바친다

    “이 빚만 갚으면 연극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십년 넘게 걸렸습니다. 앞으로 매년 한편씩 남들이 쉽게 안하는 카프카의 ‘심판’과 같은 연극을 만들겠습니다.” 국내 유례가 드문 100만 관객을 동원한 뮤지컬 ‘명성황후’의 연출가 윤호진(59)씨가 15년 만에 연극을 만든다.현재 에이콤 대표와 단국대 연극영화과 교수직을 맡고 있는 윤씨는 ‘아일랜드’ ‘사람의 아들’ ‘신의 아그네스’ 등 한국 연극사에 획을 그은 작품을 만든 주인공이다. 하지만 1994년 ‘아가씨와 건달들’ 이래 뮤지컬 제작에 몰두해오다, 에이콤이 재정적 안정에 들어서자 다시 연극무대로 복귀했다.윤호진씨가 이번에 연출할 희곡은 아서 밀러가 쓴 ‘시련’으로 그에게는 각별한 사연이 있는 작품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미국 최고의 희곡작가 밀러의 작품을 1970년대 유신말기에 접한 윤씨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당시 이정길, 최형인, 이낙훈 등 쟁쟁한 연기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극을 연습하던 도중 10·26사태가 일어나고, 제5공화국 군사정권이 집권하면서 결국 ‘시련’은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시련’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실제로 있었던 전대미문의 마녀 재판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1950년대 공산주의자 색출에 혈안이 됐던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을 비판하고 있다. 밀러의 희곡은 1996년 ‘크루서블’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된 바 있다. 영화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연기한 정의와 신념의 대변자 존 프락터 역은 드라마 ‘대조영’에서 검모잠으로 열연한 김명수가 맡았다.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발칙한 소녀 에비게일은 이승비가 맡았다. 숲속에서 어린 소녀들이 발가벗고 춤을 추며 혼령을 불러내는 금기된 장난을 벌인다. 목사에게 발각된 소녀들은 처벌이 두려워 악마에 사로잡힌 듯 거짓 연극을 하고, 마을 주민들은 정말 악마가 있다고 믿어버린다. 마녀 색출이란 명목으로 고소, 재판, 교수형이 벌어지고 사람들의 이기심은 극에 달한다. 윤호진씨는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들과 판결자들을 연극에 모시고 싶다. 판·검사로 임용되기 전에 필수교양 과목으로 이 연극을 감상하면 앞으로 좋은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연극이 끝날 때 관객이 제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예술의전당이 ‘토월정통연극’ 시리즈로 제작하는 작품이며, 오는 4월11∼29일 토월극장에 오른다.1만 5000∼3만 5000원.(02)580-1300.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