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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운영위 구성과 운영방안」 공청회 지상중계

    ◎총위원 10∼20명… 학부모가 40% 참여/교사·지역사회인사 30%씩… 당원은 자격없어 한국교육개발원의 강무섭 교육발전연구본부장이 20일 공청회에서 제안한 학교운영위원회의 위원 구성과 운영방안을 간추려 본다. 위원수는 10∼20명으로 하되 위원의 40% 가량은 학부모로 구성하고 교장을 포함한 교사는 30% 가량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나머지 30%는 동문대표·교육행정기관의 인사·교육전문가·기업인 등 지역사회인사로 구성한다.실업계고교는 지역사회의 기업인을 적어도 1명이상 포함시킨다. 학교장은 당연직 위원이 되고 학부모 위원은 우편투표나 학급 학부모회에서 학급대표를 선출하고 이들가운데서 학년대표를 선출한뒤 다시 위원을 선출하는 다단계 방법이 검토될 수 있다. 교사위원은 교직원회의에서 직선으로 선출하고 교육경력과 해당 학교에서의 경력 등을 고려한다. 학부모·교사위원 선출과정의 공정성을 위해 「선출관리위원회」를 둔다. 학부모,교사 위원과 당연직위원인 교장은 다른 위원을 위촉한다.동문대표는 동문회,교육행정인사및 교육전문가는 교육청,기업인은 지역 경제단체,지역사회인사는 기초자치단체장의 추천을 받을 수 있다. 위원의 임기는 국민학교 위원중 학부모와 교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하고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도록 한다.중·고교는 학부모와 교사는 1년으로 하고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위원중 지역사회인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1회에 한해 연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모든 위원은 특정정당의 당원이 아니어야 한다. 위원장 1명과 부위원장 1명을 둔다.위원장은 학년도말에 운영회의 결과를 보고서의 형태로 발간해 학부모들에게 돌린다. 학교운영위는 초기에 학교장의 의사결정에 대한 자문 및 심의기능을 갖고 정착되어감에 따라 의결기능을 확대해 나간다. 위원회의 의결사항은 학교장·교사추천위원회 구성,학교운영지원비 징수·관리,학교발전기금(기부금)의 조성 및 관리 등을 들 수 있다. 장기학교발전계획에 드는 경비나 학교발전기금은 반드시 공개하고 기업인 등이 아닌 학부모의 기부금은 거둘 수 없도록 한다.학부모의 자발적인 찬조금은 지금처럼 교육청에서 받을 수 있다.또 방과후 유상 특별활동프로그램의 실시도 결정한다. 심의 사항은 학교예산·결산,선택교과 및 특별활동 프로그램의 선정,학교헌장 및 규칙제정,종합생활기록부의 공정성여부,만5살 어린이의 취학여부,속진 대상아동의 선정 등이다. 자문내용은 교복선정,방학시기의 결정,도서선정,교내연수,급식내용,운동회날의 결정 등으로 한다. 운영위는 사안에 따라 자문·심의·의결을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 교육행정기관의 업무중 많은 부문을 학교로 넘긴다.특히 지금 세목을 정해 지급하는 학교예산을 완전도급형태로 배분하고 단위학교 인사권도 이양한다. 육성회는 폐지하고 새로운 학부모회를 조직한다.학교장과 학교운영위의 권한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교육청에 중재위원회나 교육위원회 등을 둔다.
  • 초·중·고 운영위원/학교운영비·발전기금 관리

    ◎고육개발원 공청회서 시안제시/교육부 내달초 확정키로 한국교육개발원은 20일 초·중·고교의 자율 운영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의 위원수를 10∼20명이내로 하고 학부모 40%,교장을 포함한 교사 30%,동문 등 지역사회 인사 30%로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교육개발원 강무섭 교육발전연구본부장은 이날 중앙교육연수원에서 「학교운영위원회 구성 및 운영방안」이란 주제로 열린 공청회에서 이같은 방안을 제시했으며 교육부는 이 시안을 토대로 다음달 초까지 시행안을 확정해 올 2학기부터 시·도별로 시범운영할 방침이다. 교육개발원은 학교장이 운영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이 되고 학부모 위원은 학부모회에서,교사위원은 교직원회의에서 직접 선출하도록 하며 지역인사위원은 동문회나 경제단체에서 추천받은 사람 가운데서 위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학교운영위는 ▲학교운영지원비 관리 ▲학교발전기금의 관리 ▲학교예·결산 ▲선택교과의 선정 ▲학교헌장 및 규칙제정 ▲종합생활기록부의 공정성 확보 ▲만5세 어린이의 취학 ▲속진 대상아동 선정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교복선정·방학시기결정·도서선정·교내연수·급식문제 등을 자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개발원은 위원을 공정하게 선출하기 위한 「선출관리위원회」와 재무관리·시설관리·교육과정 등의 소위원회를 두고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교육청에 중재위원회를 두는 방안도 제안했다.
  • 서울대 모의 서울시장 선거/박용현 사회부기자(현장)

    ◎세후보 지지호소 정책·재치 대결 『친애하는 서울시민 여러분,역사적인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새 서울 건설의 기수가 되고자 출마한 기호1번 ○○○입니다』 16일 하오2시 서울대 문화관에서는 모의 서울시장선거 유세전이 열기를 뿜었다. 정치학과 학생들이 마련한 이날 행사에는 이른바 「자유만세당」의 정진술후보,「송구영신당」의 김수호 후보,「무소속」의 김형석 후보가 나와 재치를 겨뤘다. 자유만세당의 정후보는 『역사는 인기위주의 대결정치보다 시민들의 복리와 실익을 담아낼 수 있는 화합정치를 요구하고 있다』며 정부요직을 두루 거친 화려한 행정경험을 내세워 지지를 호소했다. 송구영신당의 김후보는 『지역유지에게 간판이나 얹어주고 보수적인 부유층에게만 유리한 지방자치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참여와 복지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에 맞서 무소속의 김후보는 『집권당은 지역의 독자적 발전을 추구하기보다는 중앙의 요구만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며,야당이 내걸고 있는 「시민참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시민동원」일 뿐』이라고 공격했다. 그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대안까지 제시하고 있었다.『고질적인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99년에는 지하철의 총연장을 4백㎞로 늘리고 시민수송의 75%를 분담할 수 있도록 96년 3기 지하철공사에 착수하겠다』(정진술),『지방세 과표의 현실화,수득수준에 따른 의료보험비의 차별화,5인이상 사업체에 실업급여 적용등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추진하겠다』(김수호),『시·구청,민간단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해 행정의 상명하달 구조를 개선하고 시민을 위한 평생교육원인 시민대학을 세우겠다』(김형석)등…. 『대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교복착용과 두발검사,보충수업을 의무화하자』『집권여당은 인권에서는 미얀마를,사회복지에서는 우간다를 경쟁상대로 삼고 있다』『심각한 겨울철 교통체증을 완화하기 위해 순록을 집단사육,보급하겠다』『한강 위에 뗏목을 띄워 부족한 주차장 공간을 마련하겠다』등 대학생 특유의 재치와 유머가 담긴 주장도 쏟아졌다. 2시간 남짓한 갑론을박을 지켜본 학생들은 이번 선거가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몫을 할 것이라는 중요성을 되새기는 모습이었다.
  • “잘가거래이…”통곡의 교정/“꽃다운넋”대구 영남중32명 어제장례식

    ◎“이승에서 못다피운 꿈 저승에서 필치길”/“한번만 엄마 불러다오” 모정 실신/운구행렬 지날때 대구시민 눈시울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싸늘한 시신이 된 32명의 꽃다운 넋들이 30일 차마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발걸음으로 하나,둘 정든 학교를 다녀갔다. 『친구들아 이승에서 못한 일 저승에서 한없이 하고 영원히 나와 같이 뛰어놀고 영혼이라도 행복하렴』 승민이의 유해 앞에서 부르짖는 헌규(14·2학년4반)의 애타는 진혼곡은 봄바람에 실려 허공을 맴돌았다. 『부모 형제 다 버리고 일순간에 사라졌구나.아 안타깝구나,이미 이승의 인연은 끝이 났으니 저승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피워보며 꽃송이 육신은 편히 잠들고 모두 모두 훗날 만나 이승의 이야기 나누며 영생하라』 같은 학부모를 위로하러 온 한 촌부는 노제를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즉석에서 조사를 띄워 보냈다. 선생님들도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눈물을 감추며 어린 영혼들을 어루만졌다. 『오빠…』 하얀 체육복을 입고 하나 뿐인 오빠의 신위를 받쳐든 열두살 은진이도오빠의 교실 책상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흰 국화꽃 한송이를 올렸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좋은데 가라케라』 은진이는 끝내 아빠의 품에 안겼다. 『재경아,엄마 한번만 불러봐라.엄마 여기 있잖아』 운동장에서 노제를 치르다 재경이 어머니는 실신하고 말았다.지난해 2월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뒤 재경이를 「이끌고」 어머니를 「모시며」 꿋꿋하게 버텨온 고등학교 2학년 재학이도 입술을 꼭 깨물었다. 『준희야 다 잊고 고이 가거래이.이놈들 에미 마음도 모르고…』 준희·준형이 쌍둥이 형제의 꿈이 뛰놀던 운동장에서 어머니는 운구차에 매달려 몸부림쳤다. 『형석아 이놈아 느그 학교데이.느그 친구들도 많이 있데이』 「고 배형석 신위」­동생의 신위를 들고 본관 2층 3학년 10반 교실로 올라간 형진군(17·계성고 2)은 텅빈 동생의 책상에 흰색 국화꽃 8송이를 올려놓고 한동안 묵묵히 바라보다 마침내 그렁그렁 눈물을 떨구었다. 『형석이와는 반은 달랐지만 3년동안 항상 도시락을 같이 먹을 정도로 친했는데…』 형석군의 영정을 든 만길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어린 주검들이 영구차에 실려 차례대로 교문을 들어서자 이들을 기다리던 친구,이웃 주민,학교 관계자 1천여명은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학생들은 교문에서 학교건물까지 4백여m를 두줄로 늘어서 친구들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전송했다. ◎제자 보내는 영남중 이길우 교장/운동장서 뛰놀던 모습 선한데/추모비·기념관 꼭 건립… 겨우 사흘전만 해도 사랑스런 제자들이 맘껏 뛰놀던 운동장에서 그들을 멀리 떠나보내는 노제가 열리는 것을 사무실 창밖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영남중학교 이길우(이길우·63)교장의 눈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하늘로 간 제자들이 다시 돌아오진 못하겠지만 재임중에 꼭 추모비와 기념관을 세울 생각입니다』 슬픔에 겨운듯 이교장의 얼굴은 몹시 초췌했다.사고가 나자 아이들을 맡긴 부모들을 볼 낯이 없어 학교에 혼자 남아 밤을 새운지 벌써 사흘째다. 『그렇다고 애지중지하던 자식을 등교길에 잃은 부모의 마음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훌륭하게 키워달라고 맡긴 제자들을 제가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같아서…』­울부짖음 속에서 치러지는 노제가 이교장을 다시 슬픔에 잠기게 했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59년 경북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어교사로 부임한 뒤 37년동안 줄곧 이학교를 지켜온 이교장에게 이번 사고는 참으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고가 난 28일 상오7시50분 이교장은 달서구 송현동 집에서 출근을 준비하다 엄청난 폭발음을 들었다.그러나 그 굉음이 42명의 어린제자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가는 비극의 전주곡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오늘이 37년 교직생활 가운데 가장 슬픈 날입니다』 이 교장은 그러나 슬퍼할 수 만은 없었다.사고수습대책위원회와 학부모·유가족들 사이에 마찰을 막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자의 한사람으로 가슴아픈 기억을 안고 살게 됐지만,그래도 29일 밤9시 김영삼대통령이 직접 학교로 전화를 걸어 위로해 준 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 석주 원로스님 서예전/「반야심경」·「오반가」 등 70여점 전시

    ◎“수익금 온양 불교복지회관 건립” 불교계 원로 석주스님(86)이 틈틈이 써온 서예작품을 모아 첫 개인전을 19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현궁미술관에서 연다. 석주스님은 그동안 칠보소년소녀합창단,군포교활동 기금마련을 위한 전시회등 불사와 포교,불우이웃돕기를 위해 몇차례 작품을 내놓은 적은 있으나 개인전을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온양의 불교복지회관 건립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개인전에서 스님은 윤선도의 「오우가」를 비롯,「부모은중경」「반야심경」등 병풍 5점과 불교경전 40여점,불교게송 10여점,도자기작품 10여점 등 모두 7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월하·일타·석정·일장·수명·송월·원학스님 등을 비롯,서세옥·전영화교수(동국대)등 스님과 평소 친분이 두터운 중진화가 30여명도 참여했다.이 전시회는 높은 경지에 다다른 서예솜씨를 엿볼 기회도 되지만 오랜 기간 수행생활을 통해 닦아온 스님의 청아한 마음을 접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석주스님은 젊은 시절에는 한글 행서,만년에 들어서는 한문 행서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스님은 지난해 종단개혁 와중에 개혁회의의장을 맡아 불교계 비리척결에 앞장서기도 했다. 석주스님은 『평소 복지회관건립으로 불우이웃에게 따뜻한 쉼터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던터에 이번에 개인전을 갖게 돼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고 말하면서 『몸이 허락하는한 작품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서울대 역사를 찾습니다/내년 개교 50돌… 자료 등 공개 수집

    『잃어버린 서울대의 역사 유물을 찾습니다』 서울대가 개교 50주년을 맞는 내년10월 학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념 전시회를 열기로 하고 관련자료의 공개수집에 나섰다. 서울대는 46년 개교이래 좌우대립의 격동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많은 기록들이 사라져 곳곳에 공백을 남겨놓고 있다. 특히 초창기 서울대를 거쳐간 좌익·월북인사들에 대한 기록이 폐기됐는가 하면 6·25사변으로 부산에 내려갔던 51년 1월부터 54년 10월 사이에는 학적부 등 기초자료마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서울대는 구멍난 역사를 메워줄 수 있는 자료들을 오는 6월1일부터 96년 3월31일까지 열달동안 소장자들로부터 기증받기로 했다. 서울대가 찾고 있는 자료는 학교뱃지,학생증,교복,서울대의 옛 건물과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성적표,졸업장,문예지 및 학술지 등이다.
  • 제주 주성전문대학장 유성종씨(향토에 산다)

    ◎무심천서 몸을 키우고 우암산은 마음 살찌워/“곧게 살라”는 고향의 가르침 끝까지 지키며 제주 흙냄새 만끽 『고향은 따스함이요 삶의 뜻이며 또한 생활의 바탕이요 울(울타리)이지요』 이 시대 교육자의 사표로 추앙받고 있는 유성종(63·주성전문대학장)선생이 고향인 청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향토관은 60평생에서 우러나온 고해성사이다. 집 한칸 땅 한뙈기 없는 가난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나 조실부모해 불우했던 선생은 외로웠던 유년시절 주성국교(당시 영정국교)를 감싸고 흐르는 무심천에서 몸을 키웠다고 했다. 고학생활과 함께 보낸 중·고교 학창시절 청주상고(당시 청주상업중학교)가 자리잡은 우암산은 곧고 바르게 살라고 가르치고 마음을 살찌워 주었다고 했다. 어머니요 스승이었던 고향땅이었기에 평생을 청주언저리에서 맴돌았다.충주대 법대를 거쳐 국어교사로 줄곧 교육현장을 지키며 후학을 가르치는 열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난 81년 충주고교 교장 때에는 『교복이 학생들의 개성을 말살한다』며 정부의 조치보다 1년이나앞서 교복을 폐지했다.교육감재직 때 영세 중·고교의 통·폐합,국민학교 예·체능교과 전담제,외국어고·체육고·예술고 등 특수고교 설립 등 숱한 교육개혁시책을 추진했다. 물 좋고,산세가 수려하고 사람들의 두텁고 순박한 마음가짐이 어우러진 곳 청주 고향을 떠났던 「타향살이」는 단 두번. 젊은 시절 서울에서 교편생활을 하면서 2년동안 고향을 떠난데 이은 두번째 「타향살이」는 역설적으로 『곧고 바르게 살라』는 고향산천의 가름침 때문이었다. 지난 91년11월 두번째 충북도 교육감을 지내고 있을 때였다.교육감의 선거제도가 완비되자 임기를 70여일 남겨두고도 『손해를 볼지언정 곧은 것이 인간다움』이라며 교육감직을 스스로 사퇴했다. 『후세를 위해 벽돌 한 장 놓고 떠나라는 자리에 임명된 교육감이 기득권을 누리며 욕심을 부리는 것은 스스로를 욕되게 한다고 생각했지요』 선생은 곧바로 초·중·고교 교육의 방향을 좌우하는 교육부 장학편수실장에 발탁돼 고향을 떠나게 됐다.차관급인 교육감 보다 한직급이나 낮은 장학편수실장직을맡아 두번째 기행을 기록했지만 서울로 향하는 차안에서 『명예롭게 떠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술회했다고 한다. 그후 차관급인 국립교육평가원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부임 1년전의 대학입시부정과 관련,파문이 발생하자 곧바로 원장자리를 또 스스로 떠나 고향으로 향했다.「곧게 살라」는 고향의 가름침을 마지막까지 실천에 옮기며 서울 나들이가 「진정한 귀향을 위한 짧은 여정」이라는 다짐을 지켰다.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은 고향산천이 바뀌지 않고 달라지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는 선생은 매일 아침이면 고향냄새가 물씬 나는 우암산을 오르며 지난달 22일부터 맡은 주성전문대 운영을 구상한다고 했다.
  • 동아건설 출연금/서울시,수용키로

    서울시는 성수대교복구문제와 관련,동아건설이 4백50억원을 서울시에 출연하겠다는 제의를 수용키로 했다. 최병렬 서울시장은 7일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동아건설이 출연하는 4백50억원을 수용,시민의 안전 및 환경과 관련된 분야에 사용키로 합의했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빠른 시일내에 동아건설측과 구체적인 분야를 선정하기 위한 협의 창구를 마련,필요한 분야별로 이 출연금을 사용키로 했다.
  • “성수대교 복구비 부담”/동아건설/신설교량 공사비는 제외

    동아건설(회장 최원석)은 18일 성수대교 재시공 헌납과 관련,기존 교량의 복구작업을 자사부담으로 시공하겠다고 밝혔다. 동아건설은 이날 서울시에 전달한 성수대교복구방침에 관한 답변서를 통해 『시공사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기존 성수대교 붕괴부분복구 및 잔존부분보수 등의 복구작업을 자사부담으로 시공하겠다』고 통보했다. 동아건설은 그러나 성수대교복구후 양측에 2차선씩 교량을 추가건설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사비를 부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성수대교/기존형태로 연내 복구/트러스 수직재·상판 교체

    ◎서울시 최종확정/43t이하 차량 통행 가능케 붕괴된 성수대교는 기존형태대로 연내에 복구되며 99년까지 교량 양측에 2차선씩 왕복4차선의 교량이 추가로 건설된다. 서울시는 17일 이같은 내용의 성수대교복구계획을 최종확정,정부의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복구방안에 따르면 기존교각과 주트러스는 그대로 활용하면서 문제가 된 수직재와 핀을 전면교체한 뒤 콘크리트상판을 강 상판으로 교체,43t이하 차량의 통행이 가능한 1등급교량으로 건설한다. 서울시는 이같은 방식으로 복구할 경우 설계 4개월,보수·보강 7개월 등 모두 11개월이 소요돼 연내에 차량통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는 이와 함께 교량 양쪽에 2차선씩의 1등급교량 2개를 99년까지 신설키로 했으며 모든 시공감리는 외국인감리업체에 맡기기로 했다. 성수대교 복구 및 시공에는 ▲기존교량복구비 3백50억원 ▲신규교량건설비 9백50억원 ▲설계 및 감리비 1백50억원 등 모두 1천4백50억원이 투입된다. 시는 성수대교의 향후 안전관리를 위해 교량상태를 자동으로 계측하는 모니터시스템과 과적차량감시 자동카메라장치,자동전기식 제설장치인 스노 멜팅시스템 등의 첨단관리장치를 도입,운영키로 했다. 한편 최병렬 서울시장은 동아건설측의 교량시공 헌납제의와 관련,『법적 책임과 헌납제의는 흥정의 대상이 아닌 별개의 것이지만 이를 수용,성수대교에 대한 최종복구방안을 동아건설측에 통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아건설측은 지난해 10월27일 성수대교 재시공에 1천5백억원,안전관리기금 1백억원 등 모두 1천6백억원을 헌납하겠다고 밝혔다.
  • Color로 승부하라/박종서 지음(화제의 책)

    한가지 색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다양하다.예컨대 갈색은 ▲미각적으로 커피를 연상케 하며 ▲신중하고 무거워 보이고 ▲남성적인 이미지를 풍기는데다 ▲가을 색상이며 ▲우울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색이 주는 느낌의 폭이 크기 때문에 색깔은 사람의 정서에 그만큼 효과적으로 호소해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기능을 한다.따라서 앞으로는 마케팅에도 「색깔을 판매한다」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점이다. 지은이는 「모양·기능이 같고 색깔만 다른 자건거 가운데 아이들이 굳이 값이 더 비싼 빨간 자전거만을 고집하는 경우」를 예로 들고 그 까닭은 아이의 시선을 끄는 빨간색 자체가 상품의 질을 높이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증거라고 강조한다.더욱이 요즘같은 「감성(감성)시대」에는 색채전략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밖에 ▲따뜻함을 전해주는 산타할아버지의 빨간색 코트 ▲보수적인 감색과 흰색의 학교교복 ▲남성의 흰양말등 생활속의 색깔이야기도 곁들였다. 중견 언론인인 지은이는 신문 컬러면을 편집하면서 색채의 세계에 빠져들어 본격 연구하게 됐으며 한국색채학회 이사를 맡기도 했다.쟁기 6천2백원.
  • 성수대교 붕괴 참사 그후(94년 충격의 365일:2)

    ◎무학여고생 “아직도 슬퍼요”/빈자리 지날때마다 급우들 눈시울/제자잃은 선생님들 불면증 시달려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같은 반 친구 이연수양을 잃은 무학여고 2년 김미경(17)양의 책상서랍에는 사고직전까지 연수양과 교실에서 나눈 쪽지편지 수십장이 조그만 플라스틱 상자안에 고이 간직돼 있었다. 『우리 둘만의 아름다운 얘기를 만들자.고등학교,대학교,결혼뒤에도 이어지는 멋진 얘기를…』 2학년 내내 단짝으로 지낸 미경양은 색색의 형광펜으로 곱게 쓴 연수의 쪽지글을 다시 꺼내보며 우정의 고운 베를 짤 친구를 잃은 충격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듯 말을 잃었다. 『잠꾸러기,아직도 자냐.빨리 일어나서 공부해야지』학기말시험을 앞두고 연수가 지난 중간고사때 이른 새벽에 걸었던 전화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오는듯 미경양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시험때가 되니 연수가 더 생각나요.지난 중간고사때는 늦은 밤과 새벽에 공부하고 있는지 확인전화를 하며 서로에게 채찍이 돼주었는데…』 연수양의 담임이었던 송태훈(54·영어담당)선생님도 그날의 참사로 입은 정신적 생채기를 끌어안고 인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그는 『사고가 나던날 방지거 병원에서 교복을 얌전히 입은 연수양의 시신을 목격한 뒤 매일 새벽 3시쯤이면 잠이 깨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사고 직후 한때는 뚜렷한 대상도 없는 분노에 몸을 떨어야 했다』고 고통을 토로했다. 학우와 제자를 8명이나 한꺼번에 잃은 무학여고는 사고가 발생한지 5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날의 아픔과 충격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가 그만큼 우리사회의 전체를 뒤흔들었다는 얘기다. 이 학교 김영의(64)교장선생님도 『학생들이 모이면 그때의 이야기가 다시 나올 것 같아 조회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지금까지의 고충을 피력했다. 성수대교 붕괴가 이토록 우리사회에 충격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튼튼한 것으로 인식되는 대교가 그토록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당혹감,희생자는 우리 모두라는 점,그리고 시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부실공사·부실관리,이에따른 불신감의 확산이라고 하겠다. 이때문에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충격과 교훈을 남겼다. 우리사회가 성수대교의 붕괴를 전화위복으로 삼으려 안간힘을 쓰고있듯 무학여고도 제자리를 찾으려고 모두들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사고후 한때 썰렁했던 도서관에 최근 학생들이 다시 모여들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찬물을 끼얹은듯 무겁고 조용하기만 했던 교실에도 여학생 특유의 재잘거림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 그렇다고 성수대교 붕괴가 몰고온 아픔과 부끄러움이 치유된 것은 결코 아니다.그러기엔 그것은 너무도 부끄러운 이 시대 우리의 자화상이며 개발경제시대의 어두운 유산이기 때문이다. 피지도 못한채 떨어져버린 무학여고의 8송이 꽃망울이 하늘에서 편히 잠들기 위해선 우리사회 모두가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건설공사는 물론 교육,문화,경제,정치…. 『애꿎은 연수의 죽음으로 무엇을 배웠을까요』 미경양은 마치 어른들을 향해 항변하듯 질문을 던지고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50년대 교복/100년전 사제복/조선시대 원삼/「서울 복식전」눈길

    ◎오늘부터 서초구청 강당서 열려/주민소장품 1백여점 선보여 「이제는 장년이된 아들의 국민학교 교복,60년전 시집올때 가져온 고쟁이,일제시대 남편이 입던 국민복…」.일반 시민들이 대대로 가정에서 소장해온 빛바랜 의상과 장신구를 전시하는 독특한 행사가 마련돼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 정도 6백돌을 기념,서울 서초구는 26·27일 이틀간 서초구청 대강당에서 「서초전통문화장터」를 열고 김치 맛 자랑 경진대회와 여성솜씨 작품 모음전,김장채소직거래 등의 행사와 함께 「서울복식전」을 마련했다. 「서울복식전」에는 조선시대이후 개화기,일제시대,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초구민들이 집안에 보관해둔 의상과 생활소품 1백여점이 전시됐다.서초구청측이 운현궁과 세종문화회관에서 빌려온 조선시대복장 1백여점과 나란히 자리한 구민들의 소장품중에는 1850년 사대부가 안주인이 의복짓는법과 음식 만드는 법을 한글로 직접 기록한 책 「규합총서」등의 희귀한 가보들이 눈에 띄었다.1890년 천주교 사제서품시 입었던 사제복과 일제시대 빌로드로 만든 신식웨딩드레스도 진귀한 볼거리다. 또 50·60년대 남대문국민학교와 경기중·고교의 교복은 자신의 아들이 성장해간 징표로 보관해온 한 어머니의 자식사랑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의 복식모습과 함께 뭉클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1910년 전후의 원삼(의식용 의복)이나 굴레(어린이용 방한모),두루마기,단속곳 등은 서초구 노인대학에 다니는 노인들이 간직해오다 내놓은 것들이 대부분이다.이 행사를 준비해온 서초구청 가정복지과 심애영계장은 『많은 주민들이 이행사를 통해 그동안 보관해온 옷이나 장신구를 「가보」로 여기게 됐다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소박한 생활소품의 역사를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가정의 뿌리를 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 전통의상 「걀라비야」·「타란」 서구화물결에 점차 퇴조

    ◎김수정기자 이집트 패션기행/카이로 부유층여성들은 양장으로 멋내/중고교복은 흰 상의·감색 바지… 우리 비슷 「옷은 그 사회의 역사성과 개인의 생각,지위를 대변한다」는 말을 피부로 실감 할 수 있는 나라,또 사회가 개방되는 것과 여성들의 노출이 심해진다는 논리의 예외를 보여주는 나라가 요즘의 이집트다.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은 역사와 관광산업의 발달 등으로 회교권에서는 비교적 국제화되고 여권 또한 신장된 나라 이집트에는 다양한 색감·디자인의 현대의상과 신비로운 분위기의 희고 검은 전통의상이 동시에 물결치고 있다.도시와 시골의 패션풍경이 다르고 부자와 가난한 이,깨친 이와 못깨친 이의 의상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며 모래빛으로 뒤덮인 사막의 나라를 역설적으로 조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인들이 본격적으로 서구식 양장을 입고 패션감각을 키운 것은 지난 19 40년대 영국으로부터 독립,사회개혁을 단행할 즈음이라고 이집트인들은 전한다. 이후 계속되는 개방으로 어깨가 드러난 짧은 치마차림,거의 반라인 웨딩드레스등이 60∼70년대초까지 유행했으나 80년대 들어 다시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그래서 비교적 양장을 즐기는 도시 여성들도 치마길이가 짧거나 폭이 좁은 노출된 옷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집트 의사와 결혼,6년째 카이로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이정희씨(34)는 『70년대 중동전쟁을 거친뒤 이집트인들은 「가까워진 종말」에 대비,좀더 정숙한 몸가짐을 해야 한다는 종교적 생각을 하게 되면서 옷차림이 보수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카이로등 도시 여성들은 패션 감각을 갖고 있으며 흰색과 붉은색등 밝은 원색을 선호한다고 카이로 관광초급대를 졸업한뒤 외국인 관광가이드로 뛰고 있는 아멜 켄드리양(25)은 밝힌다. 이집트에서 도시·농촌을 막론하고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옷차림은 전통의상 「걀라비야」에 머리수건을 두른 모습.시골로 갈수록 걀라비야 차림이 많아지며 수도 카이로의 일부 부유 계층은 세계 유명 디자이너의 양장으로 멋을 낸다.남녀공용인 걀라비야는 둥근 목선으로 긴팔,통자루 모양의 원피스드레스로 풍성한 실루엣.이집트 특산의 순면을 소재로 가슴선까지 단추로 앞여밈이 돼 있다.남성은 흰색,여성은 검은색을 주로 입지만 파랑 연두 베이지색과 꽃무늬 등으로 다양하게 염색해 입기도 한다. 걀라비야는 요즘같은 가을에도 낮기온이 섭씨 31도 정도인 아열대 사막건조기후에서 온몸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며 흡수성·통기성 또한 뛰어난 실용적인 옷이라고 이집트인들은 자랑한다.한벌에 10달러 안팎이면 감촉좋은 걀라비야를 장만 할 수 있다. 남성들은 머리에 흰색의 면으로 된 머리수건을 둘둘 말아 써 햇빛을 가리고 여성들은 「타란」이라는 머리수건을 쓰고 다닌다.눈만 가리고 머리·목 전체를 가리는 경우도 간혹 있으나 대체로 얼굴은 다 드러낸다.여대생이나 직장여성이 많은 도회지에서는 타란을 쓰지 않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검은색과 흰색,꽃무늬가 있는 이 타란은 미용및 종교적 이유와 함께 「정숙한 여인」임을 상대방 남성에게 표현하는 다목적의 얼굴수건이다. 중고교생들은 흰색 상의와 감색·회색 하의로 된 교복을 입는데 디자인이 3∼4가지된다.남학생의 옷은 바지슈트로 「바들라」라고 부르며 여학생은 스커트·블라우스로 된 「타야르」란 교복을 입는데 색깔만 단순할 뿐 우리나라 학생들의 교복과 별 차이가 없다. 현대와 전통,빈과 부,개혁과 보수로 뒤엉킨 이집트 패션의 모습은 바로 5천8백만 인구중 50%가 문맹이며 GNP 1천달러에 머물고 있는 후진성을 벗고 파라오 시대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이집트사회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한 지표 역할을 하는 듯 하다.
  • 태국사원,빈민소년들 교육 “큰몫”

    ◎학비·숙식 무료… 수도승 수행뒤 학교 수업/현총리 배출… 지망생 쇄도/고교과정 마치면 절 “썰렁” 전국에 불교사원이 2만7천여개,국민의 90% 이상이 불교신자인 태국.빈민층이 많은 태국에서는 이들 사원들이 학비가 없는 아이들의 유일한 교육기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태국의 무상교육기간은 6년.우리 국민학교 과정까지인 셈이다.이 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농사를 짓는 빈민층들은 수업료,교복비,책값 등을 한꺼번에 댈 수 없어 자녀들의 진학을 포기한다.그러나 배우고 싶은 열정과 더 나은 생활에 대한 욕망을 가진 학생들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절로 들어간다.태국의 절에서는 수도승들에게 종교적 교리 뿐아니라 일반학교와 같은 과정의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들은 종교적 목적보다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수도승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여자는 제외된다.수도승의 과정에 여자는 입문할 수 없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무료로 먹고 자고 옷도 제공받으며 공부까지 할 수 있다.그러나 어린 수도승들은 상당한 대가를 치르며 이를 수행하고 있다.10가지 엄격한 수도계율을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 먹고 자는데까지 엄격한 규제가 가해진다.승복에 머리카락과 눈썹을 모두 깎고 매일 열리는 선,의식,불가 부르기에 꼬박 참가해야 한다.음악감상이나 TV시청은 일체 금지다. 그러나 배우고 싶은 열정이 큰 수도승들은 온 방안에 영어단어나 화학공식을 쓴 종이로 도배를 해놓고 이같은 규율을 잘 견뎌낸다. 이들이 사회로 진출했을 때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태국에 승려대학이 두군데가 있지만 이곳을 졸업해도 공무원이 되려거나 할때 학사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이들 수도승들은 교육과 성직자로서 살기 위한 수행과정을 요구받지만 일단 이들이 고등학교 과정만 마치면 대부분 사원을 떠나는게 현실이다. 이들은 승려출신으로 성공한 명백한 사례로 추안 리크파이 현총리를 꼽는다.남부 시골 트랑의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방콕의 한 절에서 6년을 보낸 추안은 법학도가 되어 총리직에까지 오른 것이다.태국의 많은 빈민자녀들은 오늘도 추안총리와 같은 성공사례를 제것으로 만들기위해 절로 몰려들고 있다.
  • 학교기물 파손/학생에 배상요구/교육부/“질서교육 대폭강화” 지시

    교육부는 15일 전국 15개 시·도교육감에게 보낸 공한에서 정부의 국가기강 확립을 위해 학생들에 대한 질서교육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교육부는 이 공한에서 전국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퇴폐풍조에 물들지 않도록 용모를 단정히 하라며 80년대 자유화된 두발및 교복자유화 조치에 제동을 걸고나서 일선교사들로부터 시류에 어긋나는 지시라고 반발을 사고 있다. 교육부는 이와함께 전국의 2백41개교 불량 학생서클 4백19개를 관할경찰서에 통보,특별지도하도록 당부했다. 특히 교육부는 최근의 급속한 사회변화와 민주화 추세에 편승한 일부학생들의 등교거부와 집단시위 사태를 사전에 예방하고 학교기물을 파손한 학생에 대해서는 중징계와 함께 구상권을 발동해 손해를 청구하도록 했다.
  • 「스쿨걸 룩」 유행/“청순한 여고생이고 싶어라”

    ◎짧은 주름치마에 흰색양말 “깜찍” 최근 2∼3년 전세계적으로 강세를 띠고 있는 패션 유행은 거지패션(그런지 룩)과 겹쳐입기(레이어드 룩)등 자유로움과 우아함,성숙미를 강조하는 스타일.그러나 최근 이러한 경향에 대비되는「스쿨 걸 룩」(여학생 패션)이 10대후반과 20대 여성들 사이에 유행 스타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쿨 걸 룩」은 말 그대로 여고생의 단정하고 청순한 이미지를 한껏 강조하는 패션 스타일로 올 가을 겨울에 이어 내년 봄 여름까지 이어진다고 패션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스쿨걸 룩은 슬립드레스등 속옷응용패션(란제리룩)과 겹쳐입기,스포츠 룩의 유행과 아울러 프랑스등 유럽과 일본에서 올 봄부터 이미 유행하고 있는 옷차림.지난 봄 밀라노 파리 뉴욕등 세계적인 패션쇼에서 지아니 베르사체등 유명디자이너들에 의해 일제히 제시돼 눈길을 끌었다. 스쿨 걸 룩의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은 바로 밝고 경쾌한 멋을 내는 짧은 주름 치마나 랩스커트,또는 A라인의 스커트다.이중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중·고등학생들의 교복에 보편적으로 쓰인 체크무늬 주름치마가 가장 부각된다. 이밖에 단순한 모양의 섬유로 된 천연운동화나 끈달린 여학생구두,머리핀,흰색양말 등이 소품으로 이용되는데 특히 발목이나 무릎까지 오는 흰색 커버양말은 빼놓을 수없는 코디용품이다. 상의는 보통 셔츠나 단순한 모양의 블라우스,조끼등을 입기도 한다.기온이 떨어지는 가을·겨울에는 조끼나 블라우스 위에 스웨터를 입어 더욱 깔끔한 멋을 연출할 수도 있다. 「씨」디자인실 이지은씨는 『자연주의가 주도하던 봄·여름 유행경향이 우아하고 흐르는 듯한 느낌이 특징이었다면 올 여름 하반기와 가을철에 강세를 띠는 스쿨 걸 룩은 깜찍하고 단정한 청순미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짧은 커트머리의 유행과도 부합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요즘 스쿨 걸 룩의 주름치마소재로 면이나 리넨,폴리에스테르 등이 쓰이고 있는 반면 가을 겨울에는 보온성이 좋은 소재가 등장,울이나 기계주름을 넣기에 좋은 울·폴리에스테르의 혼방소재(T/W)가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 3대혁명 소조/만경대혁명학원/김정일 버팀목 “쌍벽의 두집단”

    김일성 사망후 북한의 세습군주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일에게는 그를 지탱해주는 2개 특수집단이 있다.만경대혁명학원 출신집단과 3대혁명소조가 바로 그것이다.만경대학원 출신들이 일종의 두뇌집단이라 한다면 혁명소조는 친위조직으로서 김정일을 돕고 있다. ◎김의 모교… 소장졸업생 대부분 직계 활약/주도권 쟁탈전땐 「돌격대」역 맡을 가능성 김정일의 모교로 졸업생들 가운데 소장그룹 대다수가 김정일의 측근을 형성하고 있다.극소수 김정일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40∼50대는 대개 김정일파로 분류된다.김정일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만경대혁명학원이다. 만경대혁명학원은 혁명유가족의 자녀들과 당·정 고위간부들의 자녀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는 특수학교다.아니 귀족학교라는 표현이 더 옳다.북한의 특수학교로는 또 강반석혁명유자녀학원 해주혁명유자녀학원이 있다. 만경대혁명학원은 지난 47년 10월21일 평남 대성군에서 문을 열고 3백35명을 수용했다가 다음해인 48년 현재의 평양 만경대로 이전하면서 수용인원도 5백22명으로 늘렸다.요즈음 학생수는 9백여명.교육기간은 유치원 상급반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을 포함해 모두 11년이다.인민무력부 소속으로 학생들은 재학기간동안 장교복장을 하고 의무적으로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졸업후 최우선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하거나 장교임관 또는 당·정의 초급간부로 기용된다.원하면 해외유학을 갈 수도 있다.이 학교에 입학만 하면 북한사회의 엘리트코스를 밟을 수 있다. 졸업생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정일말고도 강성산(정무원총리)서윤석(평남도당책겸 인민위원장) 전병호(당비서) 최태복(당비서) 연형묵(자강도당책겸 인민위원장) 김환(부총리겸 화학공업부장) 윤기정(재정부장) 오극렬(전군총참모장) 김광진(인민무력부부부장)등이 있다.김정일 오진우(인민무력부장)에 이어 당서열 3위인 강성산과 연형묵 오극렬 최태복 전병호 김광진등 사방을 둘러봐도 대부분 김정일의 직계들이다.정무원총리를 역임했으며 남북고위급회담 단장으로 서울에 왔던 연형묵도 김정일의 사람으로 분류된다.김정일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젊은 층은 당·정에 폭넓게 포진해 김정일이 혁명 1세대들에 맞서 권력을 쟁취해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앞으로 북한 내부에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질 때 김정일의 돌격대로 나설 공산이 크다.상류층의 자제들로 구성돼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개방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정일의 술친구들은 대부분 김정일 또래의 만경대혁명학원 동창생들이다. ◎혁명2세대 「친위조직」… 2인자부상 기여/총10여만명… 73년 김영주 축출에 앞장도 이른바 북한의 혁명 2세대는 바로 3대혁명소조를 가리키는 것이다.김정일이 김영주 김성애를 누르고 김일성 다음가는 2인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는 3대혁명소조의 뒷받침이 눈부셨다.김정일이 책임자인 부장에 매제인 장성택을 임명한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이 조직에 애착을 갖고 있는지 금새 알 수 있다.장성택은 김정일과 함께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김경희의 남편이다.당서열 1백위권 밖에 머루르고 있지만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3대혁명소조는 지난72년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규정된 「3대혁명」에 따라 73년 2월 발족됐다.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72년 12월 노동당 중진들의 비밀회의가 있은지 두달남짓만이다.「3대혁명」이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이르는 것으로 3대혁명소조 역시 이들 3분야로 나누어져 있다.소조원은 당원과 국가기관종사원 대학생 대학교원 기술자 과학자 가운데 미혼남녀로 구성돼 있다.지난 83년 9월 개최된 3대혁명소조원 대회에서 현인원 4만6천명,소조를 거쳐간 인원 11만명으로 발표된 바 있으나 그 뒤에는 정확한 숫자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3대혁명소조는 당정책의 관철이라는 표면적인 명분 아래 간부들의 보수주의 경험주의 요령주의 기관본위주의 관료주의를 개조하기 위한 사상투쟁을 활동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중국으로 치자면 문화혁명을 주도한 홍위병인 셈이다.김정일의 직접 지휘 아래 각급 생산단위는 물론 행정기관 문화기관 학교등에 파견돼 기존의 당조직과 더불어 활동해왔다.하지만 사상투쟁의 실질적인 목적은 김정일의 반대세력 견제와 그의 후계체제 구축이다.3대혁명소조는 사실상 노동당 조직과는 따로 움직이는 김정일의 사조직인 것이다.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를 김영주를 제거할때 제일 먼저 이용했다.73년 당시 당조직부장이었던 김영주를 그릇된 사상의 찌꺼기를 가진 사람으로 몰아 마침내 한직으로 축출하는데 성공했다.김정일은 여맹위원장이었던 계모 김성애를 견제하는 데도 3대혁명소조를 동원했다. 하지만 유사시 김정일의 명령에 따라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돼있는 김정일의 수족으로 알려져 있다.
  • 6·25 44돌… 학도병 참전 용사들의 회고 특별대담

    6·25때 홍안의 미소년으로 전장을 누볐던 학도병들은 몇차례 강산이 바뀌는 세월속에서 이제 이순을 넘긴 노년의 옛전사로 변했다.하지만 이들의 가슴속에는 동족상잔의 아픔이 지금도 어제일처럼 살아있다.포연의 전장에서 불퇴전의 용기로 살아남은 유성덕 서울대광고교장(63)과 정년탁대한학도의용군회 총본부 전회장(63)의 대담을 통해 그날을 되새기고 오늘날 젊은이들이 가져야할 자세등을 되짚어본다. ◎“펜대신 총으로…” 5만여명 구국전선에/조국사수 일념에 사격훈련만 받고 전투/곳곳서 맹활약… 포항선 71명 장렬한 산화/“자유만끽” 요즘 젊은이들,기성세대의 체험 곱씹어 보아야 ▲유교장=사실 저는 의식적으로 6·25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하지만 또 한시도 기억에서 떨쳐버리지 못하는게 바로 6·25지요.중학6년(18세)때 학도병으로 자원해 나갔다가 온 몸을 크게 다쳐(왼쪽 손가락 4개와 오른 손가락 2개,양쪽 발가락절단,발뒤꿈치 골수염) 지금도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하는 불편한 상태입니다.하지만 해방이후 북쪽의공산당이 싫어 평양에서 단신으로 내려와 학도의용병으로 참전해 죽을 고비를 넘긴끝에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에서 교육자로 평생을 지내고 있으니 그래도 행복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6·25발발 직후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할 당시를 생각하면 우리 남쪽은 정말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지요.북한군에 밀려 대구와 부산만 겨우 남아 있었으니까요.피란지인 부산에서 중학교 영어 실력이지만 미군부대에서 일하다 학도의용군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50년 8월 초쯤으로 기억됩니다.어린 나이였지만 「펜대신 총을 들어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자」고 모두들 나서는 분위기였습니다.전투에 나가 더이상의 북한의 공세를 막아야한다는 생각에 미군부대에 보고도 않고 곧바로 의용병모집 장소로 달려갔습니다.함께 지원한 2백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경주에서 3일동안 사격훈련을 받고 안강전투에 참가했지요.갑자기 모집한 학도병이고 보니 복장도 교복차림에 군복,미군작업복등 각양각색이었어요.우리가 배속된 부대가 김석원준장(작고)이 이끄는 수도사단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당시 학도병들은 일정지역에 모아 부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모이는대로 그때 그때 전투지역으로 보냈지요.그만큼 병력은 부족하고 전황은 다급했다는 이야기지요.정회장도 학도병에 자원할 당시 중학생이셨지요. ▲정전회장=저는 중3때 광주지역에서 학도병으로 참가했어요.사실 호남지역에는 6·25이전에 이미 빨치산등 좌익세력이 적지않았어요.학교에도 좌익에 물든 사람이 꽤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학생은 물론 선생까지 좌우로 갈라져 있었어요.어린 눈에 좌익분자들이 사람을 백주에 죽이는것을 보고 까무러쳤습니다.좌익학생들의 연대파업등을 수없이 보았습니다.그래서 전쟁이 발발하고 학도병을 모집한다고 하니까 공산당의 폐해를 피부로 경험한 학생들이 너나없이 몰려나갔지요.4일동안 간단한 사격훈련등을 받고 12사단에서 배속돼 주로 태백산과 노령산 일대에서 전투를 했었죠.훈련받을 때 총이 모자라 인민군의 딱총도 함께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어릴때 공산당의 잔학상을 보아왔던 때문인지 사람이 죽는다는걸 별로 무섭게 느끼지도 않았던것 같아요.안강전투는 대단했다면서요. ▲유교장=지금생각해도 정말 대단했습니다.우리로서는 더이상 밀리면 부산·대구까지 내주어야 하니까 몸으로라도 끝까지 사수해야하는 마지노선이었어요.죽거나 부상당해 후송되는 학생들 말고는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습니다.당시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학도의용병의 사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지요.학도병들의 용기는 현역병을 훨씬 능가했습니다.살아남겠다는 생각없이 그야말로 물불을 가라지 않고 싸웠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을 겁니다.지금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나 싶어요.형산강을 피로 물들이고 일주일여 사투를 벌이니까 북한군이 물러서기 시작하더군요.이후 포항탈환작전에 참가,시가전을 벌였고 고성,함흥등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습니다.포항 시가전에 참가했을때 어느 중학교에는 인민군과 우리 군과 학도병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기도 했습니다.결국 그들을 포항에서 물리친 것이지요.북진이 계속되고 김일성이 다급해지니까 중공군에 도움을 요청,이른바 중공군의인해전술이 시작돼 우리는 다시 남으로 밀리게 됐지요. ▲정전회장=교장선생님도 지적하셨지만 당시 학생들의 전의는 대단했습니다.군대 안가려고 일부러 손가락까지 자르던 일부 징집대상 젊은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끓는 울분을 토로했던 기억이 납니다.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언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한마디로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지요.죽음을 초월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이런일도 있었어요.태백산자락 어느 전투에서 북한군과 밀고 밀리는 전투를 벌였어요.어느 지점을 며칠만에 지나는데 태극기로 자신의 얼굴을 덮고 반듯이 누운 한 젊은이를 발견했어요.죽은 줄알고 다다가 보니 목숨이 붙어있더군요.전투중에 실종된 학도병이었습니다.이 친구는 부상을 당해 낙오가 되고 기력이 떨어져 움직일 수 없게되자 가지고 있던 총을 인민군이 사용할 수 없도록 완전히 분해해 버리고 태극기로 얼굴을 가리고 죽음을 기다린 것이지요. ▲유교장=당시 학병들의 참전은 아군의 전투력증강에 상당한 보탬이 된것으로 압니다.정회장은학병모임일도 보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정전회장=대한 학도의용군회 회장을 여러해 맡았습니다.학도의용군은 50년 6월 전쟁발발때부터 51년 4월 이승만대통령이 복교령을 내리기 직전까지 전쟁에 참여했던 학생들로 중학생과 대학생들로 구성됐었습니다.50년 6월28일에 피란가던 서울시내 각대학 학도호국단 간부 2백여명이 수원에서 합동비상학도대를 조직한 것이 시발이었습니다.이후 각 군소재지 학교에서까지 이들이 결성돼 눈부신 활약을 벌였어요.군번도 없고 계급도 없이 말입니다.5만여명 정도가 참전했고 7천여명이 전사했습니다.당시 정규군병력이 15만에도 못미치는 상황이었으니 규모면에서도 대단한 것이지요.그중에서도 중학생이 가장 많았습니다.1·4후퇴때는 북한에서 2천여명의 학생들이 넘어와 참전했었고 부산지역의 학생 7백여명은 유엔군에 편입돼 일본에서 훈련을 받은뒤 다시 돌아와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었죠.가장 비참했던 전투는 포항전투로 1기로 참전했던 3사단 학도의용군 71명 전원이 이름없는 고지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역사적으로 학생들의 애국심이 이처럼 높았던 나라는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외에는 없다고 외국전문가들도 이야기합디다. ▲유교장=학병들의 정신은 지금도 면면이 내려온다고 생각됩니다. ▲정전회장=그렇습니다.지금도 국립묘지에 가보면 6·25당시 어린 나이에 나라를 지키겠다고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학도의용군들의 묘역이 있습니다.지금도 당시 같이 전투에 참가했던 동료들을 만나면 그때의 이야기들을 하곤 합니다.당시 장성들을 만나도 학도병들의 애국심과 용기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제가 보기에 학생운동의 맥은 일제시대의 광주학생운동과 해방직후 반탁반공운동,4·19의거,그리고 6·25때의 바로 이 학도의용군으로 이어지지않았나 생각합니다.역사속에 면면이 흐르고 있는 피끓는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당시 절박했던 상황이나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선배들의 정신을 너무 모르는 것같아 안타깝습니다.세계적인 변화속에서 반공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안쓰럽고요. ▲유교장=독사에게 물려본 사람만이 독사가 무서운 줄 알듯 전쟁을 겪은 사람만이 전쟁의 고통과 공포를 알 수 있지요.자유역시 마찬가집니다.자유를 빼앗겨본 사람만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요즘 젊은이들은 민주화 민주화하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지만 진정 자유가 박탈된 상태,전쟁이 주는 공포는 체험해 보지 못했습니다.기성세대의 뼈아픈 체험을 한번쯤은 곱씹어 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기성세대를 무조건 이해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가슴에 담고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자신들의 포부를 펴나가라는 것이지요.일제와 6·25를 겪으며 고난의 역정을 걸어온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부인의 대상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열어나가는 좌표로 인식돼야합니다. 학생들이 사회의 모든 일에대해 지나치게 간여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정치는 정치인에게 국방은 군에 맡기고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주길 바랍니다.또 국민역시 각성해야 할 부분이 적지않다고 봅니다.지난 현충일 연휴때 나들이 인파로 주요도로가 모두 만원을 이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날의 어려움을 모두 잊지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전회장=지금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의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주변국들의 정세에 맞춰 겉모습만을 바꾼 것뿐입니다.그런데도 학생들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폭력시위를 벌이는 것을 보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나름대로 애국심을 가진 행동이라고 주장할지 몰라도 북한과 김일성을 찬양하는 학생운동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시대에 맞게 어른들과 선배들의 충고에도 귀기울일줄 알아야죠.통일에 대한 문제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고루 반영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음란비디오(외언내언)

    학생들의 가방을 조사하던 교사가 한학생의 가방속에서 비디오 테이프 한개를 발견해냈다.케이스에 붙어 있는 제목은 「TV고교학습」.심상히 지나치려던 교사는 학생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히 여겨 테이프를 압수했다.교무실에서 테이프를 틀어본 순간 교사는 까무러치게 놀랐다.그것은 말로만 듣던 음란비디오였던 것이다.얼마전 어느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재로 위장된 음란비디오를 가방에 넣고다닐 정도로 확산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성의 상품화」추세는 20세기후반의 세계적인 현상이다.외설적인 제작물이 어디 비디오테이프 뿐인가.영화나 TV드라마·만화·음란간행물·광고등에 이르기까지 성의 상품화는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음란제작물들이 청소년들앞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성의 폭력으로부터 무방비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것이 우리 청소년들이다. 음란비디오만 해도 그렇다.청소년들은 학교근처 일부 서점이나 만화가게,문방구에서도 손쉽게 구할수 있다.「비디오골목」으로 불리는 종로3가의 세운상가 3층에는 음란비디오가 얼마든지 있다.청계천7가와 8가사이 속칭 벼룩시장일대도 마찬가지.교복차림의 중고생도 이곳에 드나들고 있다고 한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고교생 10명중 7명이 음란비디오를 본것으로 나타났다.남학생의 88%가,여학생의 62%가 문제의 비디오를 본적이 있다는것.참으로 충격적인 보고내용이다.『우리집 아이만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우길수없는 상황에까지 와있는 셈이다. 청소년의 성범죄가 5년새 4배이상 급증하고 전체 성범죄의 54%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청소년들의 손길이 쉽게 닿을수 있는곳에 음란비디오가 있는한 보는 학생들은 결코 줄지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음란비디오를 추방하고 차단시키는 일이 곧 청소년을 보호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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