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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존 最古 장군총사진 공개

    최소한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이전에 우리나라 사람이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 최고(最古)의 장군총 사진이 공개됐다. 우리가 장군총으로 알고 있는 이 무덤이 고구려 장수왕릉으로 확인된 만큼 중국과 일제가 우리 역사를 의도적으로 폄하해 부여한 ‘장군총’이라는 능명 대신 왕릉임을 나타내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경대 서길수(고구려연구회 회장) 교수는 25일 최근 자신이 중국 조선족 동포 허창흘(66)씨를 통해 입수한 장군총 사진을 공개하고 “이 사진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 허씨의 조부가 일제에 의해 3·1운동 직후 독립운동 혐의로 붙잡혀 3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출옥한 뒤 행적이 없는 점으로 미뤄 최소한 1919년 이전에 찍은 현존 최고의 장군총 사진”이라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당시의 사진은 이후 일본 학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찍어 일제시대에 책으로 소개했던 것”이라며 “이 사진은 우리 민족이 장군총을 배경으로 찍은 최초의 사진으로,이는 이 왕릉이 당시 우리 민족의 의식과 생활 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소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사진은 장군총을 배경 삼아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과 한복을 입은 주민 157명이 함께 찍은 것으로,일부 훼손된 장군총의 계단형 석축과 머리 부분의 우거진 나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 교수는 “사진을 제보한 허씨가 이 무덤을 아직까지 ‘황제무덤’으로 지칭하고 있었으며,18세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에도 ‘황제묘(皇帝墓)’로 적혀 있다.”고 소개하고 “최근 중국측 연구에 의해 고구려 20대 장수왕의 능임이 확인된 마당에 이를 장군총이라고 부르는 것은 심각한 역사 왜곡이 아닐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심재억기자 jeshim@˝
  • 서울대 출신 45년 양복匠人 이순신씨

    가업(家業).사전적 의미는 대대로 물려받은 직업이란 뜻이다.세업(世業)이라고도 한다.선대의 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후대 입장에선 도박일 수 있다.후대의 적성과 가업의 계승이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할아버지,아버지의 거대한 그늘에 눌려 평생 자리를 찾지 못하고 ‘짝퉁’으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청출어람(靑出於藍).’그렇게 호락호락한 사자성어가 아니다. 장인을 천하게 취급하는 분위기도 가업을 쉬 포기하게 하는 요소가 돼왔다.이런 탓에 유럽이나 일본처럼 수백년 전통의 장인 명가를 제대로 배출하지 못했다.더군다나 장인이 추구하는 옛것이 성장의 가파름과 무관할 때 장인 명가의 생존율은 급격히 떨어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를 물려 고집스럽게 양복을 지어온 명문대 출신 재단사가 있다.서울 소공동 해창양복점 사장 이순신(68)씨.대학생이 귀했던 1950년대 명문 서울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그가 40여년 동안 한 길만 걸어온 사연은 무엇일까. ●75년의 궤적을 쌓은 해창양복점 “저쪽 길 건너 해창양복점이오.” 양복점이 운집한 소공동에서 가장 오래된 양복점을 물으면 재단사들은 입을 모아 해창을 가리킨다.경쟁자들마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월의 누적이 해창을 믿게 만든다. 지난해 12월 해창은 롯데호텔 본점 지하아케이드인 롯데 일번가에서 소공동 양복점거리로 되돌아왔다.롯데백화점이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자 다시 옛 둥지를 찾은 셈이다.1929년 부산에서 문을 처음 연 해창양복점은 우리나라 수제 양복의 산실이다.해창은 30년대는 서울 을지로4가에서,해방 전후에는 소공동,79년에는 롯데일번가로 자리를 바꿨지만 해창 특유의 브리티시 스타일 양복에는 변함이 없다. 해창의 창업자인 이씨의 아버지 이용수씨는 보통학교를 마친 뒤 일제시대 당시 면서기로 근무를 하다 작은아버지가 있는 일본 고베로 향한다. 항구도시인 고베의 한 양복점에서 이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군복과 예복 등을 지으며 양복기술을 습득한다.그리고 23세에 귀국해 자신의 가게를 시작한다. ●은행 취직 대신 가업을 잇다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학을 졸업했지만 이씨는 주저없이 아버지의 양복점을 첫 직장으로 택했다.살림집과 붙어 있던 양복점에서 살다시피 했던 그는 자연스럽게 재단사로 진로를 정했다.주위의 시선을 고려하면 쉽지 않았을텐데,이씨는 “은행에 다니는 것보다 옷을 만드는 것이 훨씬 재미있어서”라며 선택이유를 평범하게 밝혔다.의외로 아버지도 아들을 이해하고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이씨는 이미 고교 2학년때 수를 놓아 교복의 명찰을 만드는 방식을 처음 고안해낼 정도로 감각을 타고 났다. 당시 상과대학 학장이던 은사는 “상대생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냐?”면서 그의 장래를 걱정했지만 1년 뒤 제자를 다시 만났을 때는 잘 선택했다며 격려해 주었다. “동창들 가운데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친구들은 많아요.하지만 그들만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죠.나도 내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가지고 성공한 셈입니다.” 적성을 찾은 이씨는 지난 1959년부터 고객의 몸치수를 재고 직접 재단을 했다.1970년에는 노동부 주관의 양복재단 1급 기능사 자격증도 거머쥐었다.옷을 짓는 일뿐만 아니라 국내외 양복관련 단체에서도 맹활약했다.70∼80년대에는 한국복장기술경영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영국,프랑스,독일,미국,일본 등 전세계 20여개국 양복제작자들의 단체인 세계주문복업자연맹에서 회장으로 활동했다. ●꼼꼼한 이병철,소탈한 정주영 해창의 오랜 역사가 말해주듯 해창을 거쳐간 단골 명사들도 적지 않다.웬만큼 멋을 찾는 사람들은 옷의 맛을 찾아 해창의 문턱을 넘는다. “제일모직에서 복지를 새로 만들면 인근 양복점에서 고 이병철씨의 옷을 시범으로 만들었습니다.지금은 고급 복지로 평가받지만 초창기에는 물에 적시면 사용한 실의 수축정도가 달라서 복지가 울었어요.” 옷이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듯 단골인 이병철씨와 정주영씨의 취향도 제각각이었다.이병철씨는 권위적인 느낌의 옷을 좋아하며 옷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으며 정주영씨는 소탈하고 서민적인 양복을 즐겨 입었다.해창의 단골손님으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화신백화점의 박흥식씨,한국일보의 장기영씨 등이 있다. “젊은 시절 음식점 국일관에서 일했던 이기붕씨는 정치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적으로는 무척 세심한 사람이었어요.옷을 가지고 가면 옷상자까지 되돌려주고 상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옷값은 즉시 지불했죠.” 풍채가 좋았던 한국일보 창업자인 장기영씨는 검정색 계통의 옷을 즐겨 입었다.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던 시절 숯다리미는 불의 강도 조절이 어려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옷에 흠을 냈던 일화도 있었다. ●“사람의 개성과 옷이 조화를 이뤄야” 40여년 동안 쌓은 이씨의 옷 철학은 비싼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란다.옷은 입는 사람의 개성과 품위,지위와 함께 조화를 이뤄야 제값을 한다고 말한다. “옷은 사람에게 제2의 피부로 감정표현이 가능합니다.비싸고 좋은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품격에 맞는 옷을 입어야 인상이 좋게 보이고 호감도 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점차 사양길에 접어든 맞춤 양복에 대한 아쉬움은 떨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해창은 대량생산보다는 다품종 1제품 생산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도 양복 한벌을 짓는데 1주일여가 소요된다.다음 공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제대로 된 옷이 나오기 때문이다. “양산을 많이 하면 품질을 조정하기 힘들죠.수량이 많아지면 사람의 개성이나 취향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어요.” 옷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은 역시 후학 양성으로 귀결된다.이씨의 아들도 불투명한 맞춤복의 미래 탓에 기성복 수출 쪽에서 일하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 대학에 양복재단 관련 학과를 세우려고 하는데 이를 하겠다는 학교재단이 거의 없어요.요즘 젊은 사람들은 10년이나 소요되는 재단사에 뛰어들지 않습니다. 관련 학과라도 만들어야 맞춤양복의 명맥을 잇지 않을까요.” ■프로필 ▲1936년 1월 8일 서울 출생 ▲1955년 2월 서울고등학교 졸업 ▲1959년 2월 서울대 상과대학 졸업 ▲1959년∼현재 해창양복점 경영 ▲1966년∼현재 세계주문복업자연맹 한국대표 ▲1976∼1986년 한국복장기술경영협회 회장 ▲1984년 9월 제19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양복심사장 ▲1984년∼현재 서울대 총동창회 이사 ▲1991∼1999년 세계주문복업자연맹 부회장 ▲1997∼2003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1999∼2003년 세계주문복업자연맹 회장 ▲2003∼현재 세계주문복업자연맹 명예회장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야무진 꿈

    사는 일에 지쳤을 때 훌쩍 떠나는 데가 있다.훌쩍이란 말을 쓸 정도로 가깝지도 않고 교통편도 좋지 않은 네팔이란 나라를 그렇게 친근하게 느끼는 것은 아마 그곳 사람들의 선하고 편안한 표정과 내 따위가 감히 정복할 엄두를 낼 수 없는 장엄한 히말라야의 은빛 연봉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서의 트레킹은 운동 삼아 하는 걷기하고도 등산하고도 다르다.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여서 2000m가 넘는 고지까지도 개간을 해서 농사를 짓고 있다.직립(直立)에 가깝게 경사가 급한 산지를 개간했기 때문에 우리의 다랑이논보다도 폭이 협소하여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도에 그려 넣은 등고선처럼 보인다.농지가 있으니까 농가도 있지만 몇 호 안 되는 마을도 옆으로가 아니라 상하로 발달되어 있다.트레킹 코스는 그런 농지와 마을을 거치게 돼있다.가파르지만 않다면 논밭에서 자라는 작물이나 심심할 만하면 나타나는 마을이 우리의 옛날 농촌의 나그네 길과 다를 것이 없다.어디까지 도달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없기 때문에 무리해서 걷지 않아도 되는 것도 내 성미에 맞는다.안나푸르나를 향해 온종일 걸어도 다음날 아침에 바라보면 그 아름다운 봉우리는 내가 가까이 간 만큼 물러나 있다.정상 언저리에서 눈보라가 이는 것까지 앞산처럼 지척으로 보이지만 내 생전에 거기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경사가 급하기도 하려니와 위대한 것을 감히 내 발로 밟아 보려는 욕심이 없기 때문에 저절로 쉬엄쉬엄 걷게 되고 그러다 보니 거치게 되는 마을의 이 집 저 집을 마을이라도 온 듯 기웃대도 그만이다.봉당 비슷한 부엌의 단순 소박한 살림살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도 어릴 적의 우리 시골의 농가와 다르지 않다.그러나 영양실조의 씻지 못한 어린이가 흙바닥에서 뒹구는 걸 보면 생존을 오직 가파르고 척박한 산지에 짓는 농사에 의지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절감하게 된다. 금년에 그 땅을 다시 밟았을 때였다.새벽녘에 그 고지 마을에서도 학교 가는 아이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가슴이 울렁대는 감동을 맛보았다.산뜻한 교복과 다 자란 키로 봐서 초등학생은 아니었다.남학생도 있었지만 여학생도 있었다.여학생의 깨끗한 운동화와 흰 목 양말과 건강한 종아리가 눈부셨다.그 나라에도 물론 도시에는 학교도 있고,스쿨버스까지 다니고 있는 걸 보았지만 두 다리 외의 교통수단이 없는 고지의 농촌에서 그런 대처의 학교까지 가려면 젊은 건각으로도 두세 시간은 보통이라고 한다. 남존여비가 더 많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후진국에서 아들도 아닌 딸을 저 정도로 가꾸어 학교에 보내려면 본인의 각오도 비상해야겠지만 그 어머니의 노고는 도대체 얼마만한 것일까.그건 엄마들이 딸에게도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생생한 증거였다.나는 엄마들이 아들에게 거는 기대는 한 집안의 이익과 노후대책을 바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인데 비해 딸에게는 이 세상을 바꾸기를 바라는 더 원대한 꿈을 건다고 믿고 있다.내 어머니가 척박한 환경에서도 딸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면서 귀 따갑게 하신 말씀이 ‘너는 나 같은 세상 살지 말아라.’였기 때문이다.그게 바로 세상을 바꾸라는 비원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나라에서도 어머니들이 딸에게도 꿈을 가지고 교육시키기 시작한 이래 남성의 독무대로 돼있던 각계각층의 전문직 분야에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지게 되었다.이번 국회가 종전의 국회와 두드러지게 다른 점도 의원의 연령이 대폭 젊어졌다는 것과 여성의원의 증가라고 한다.걱정도 팔자인 노파심인지는 모르지만 경험 없는 젊은 초선의원의 대거진출이 썩은 정치판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으리라는 기대보다는 오만불손하고 객기 넘치는 말잔치나 구경하게 되면 어쩌나 미리 넌더리부터 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번드르르한 말잔치의 시초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상생과 화해의 정치를 하겠다는 승자의 변이 솔깃하게 들린 것은 무슨 까닭일까.아마도 각 당에 고루 분포된 여성의원들 때문이었을 것이다.상생과 화해의 정치의 실현성을 아직은 극소수인 여성의원에게 건다면 꿈도 야무지다 하겠으나 정말이지 간곡한 마음으로 빈다.여성의원들이여,국회를,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걸로 돼 있는 그 고약한 정치판을 한번 확 바꿔보라고.˝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야무진 꿈

    사는 일에 지쳤을 때 훌쩍 떠나는 데가 있다.훌쩍이란 말을 쓸 정도로 가깝지도 않고 교통편도 좋지 않은 네팔이란 나라를 그렇게 친근하게 느끼는 것은 아마 그곳 사람들의 선하고 편안한 표정과 내 따위가 감히 정복할 엄두를 낼 수 없는 장엄한 히말라야의 은빛 연봉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서의 트레킹은 운동 삼아 하는 걷기하고도 등산하고도 다르다.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여서 2000m가 넘는 고지까지도 개간을 해서 농사를 짓고 있다.직립(直立)에 가깝게 경사가 급한 산지를 개간했기 때문에 우리의 다랑이논보다도 폭이 협소하여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도에 그려 넣은 등고선처럼 보인다.농지가 있으니까 농가도 있지만 몇 호 안 되는 마을도 옆으로가 아니라 상하로 발달되어 있다.트레킹 코스는 그런 농지와 마을을 거치게 돼있다.가파르지만 않다면 논밭에서 자라는 작물이나 심심할 만하면 나타나는 마을이 우리의 옛날 농촌의 나그네 길과 다를 것이 없다.어디까지 도달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없기 때문에 무리해서 걷지 않아도 되는 것도 내 성미에 맞는다.안나푸르나를 향해 온종일 걸어도 다음날 아침에 바라보면 그 아름다운 봉우리는 내가 가까이 간 만큼 물러나 있다.정상 언저리에서 눈보라가 이는 것까지 앞산처럼 지척으로 보이지만 내 생전에 거기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경사가 급하기도 하려니와 위대한 것을 감히 내 발로 밟아 보려는 욕심이 없기 때문에 저절로 쉬엄쉬엄 걷게 되고 그러다 보니 거치게 되는 마을의 이 집 저 집을 마을이라도 온 듯 기웃대도 그만이다.봉당 비슷한 부엌의 단순 소박한 살림살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도 어릴 적의 우리 시골의 농가와 다르지 않다.그러나 영양실조의 씻지 못한 어린이가 흙바닥에서 뒹구는 걸 보면 생존을 오직 가파르고 척박한 산지에 짓는 농사에 의지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절감하게 된다. 금년에 그 땅을 다시 밟았을 때였다.새벽녘에 그 고지 마을에서도 학교 가는 아이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가슴이 울렁대는 감동을 맛보았다.산뜻한 교복과 다 자란 키로 봐서 초등학생은 아니었다.남학생도 있었지만 여학생도 있었다.여학생의 깨끗한 운동화와 흰 목 양말과 건강한 종아리가 눈부셨다.그 나라에도 물론 도시에는 학교도 있고,스쿨버스까지 다니고 있는 걸 보았지만 두 다리 외의 교통수단이 없는 고지의 농촌에서 그런 대처의 학교까지 가려면 젊은 건각으로도 두세 시간은 보통이라고 한다. 남존여비가 더 많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후진국에서 아들도 아닌 딸을 저 정도로 가꾸어 학교에 보내려면 본인의 각오도 비상해야겠지만 그 어머니의 노고는 도대체 얼마만한 것일까.그건 엄마들이 딸에게도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생생한 증거였다.나는 엄마들이 아들에게 거는 기대는 한 집안의 이익과 노후대책을 바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인데 비해 딸에게는 이 세상을 바꾸기를 바라는 더 원대한 꿈을 건다고 믿고 있다.내 어머니가 척박한 환경에서도 딸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면서 귀 따갑게 하신 말씀이 ‘너는 나 같은 세상 살지 말아라.’였기 때문이다.그게 바로 세상을 바꾸라는 비원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나라에서도 어머니들이 딸에게도 꿈을 가지고 교육시키기 시작한 이래 남성의 독무대로 돼있던 각계각층의 전문직 분야에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지게 되었다.이번 국회가 종전의 국회와 두드러지게 다른 점도 의원의 연령이 대폭 젊어졌다는 것과 여성의원의 증가라고 한다.걱정도 팔자인 노파심인지는 모르지만 경험 없는 젊은 초선의원의 대거진출이 썩은 정치판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으리라는 기대보다는 오만불손하고 객기 넘치는 말잔치나 구경하게 되면 어쩌나 미리 넌더리부터 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번드르르한 말잔치의 시초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상생과 화해의 정치를 하겠다는 승자의 변이 솔깃하게 들린 것은 무슨 까닭일까.아마도 각 당에 고루 분포된 여성의원들 때문이었을 것이다.상생과 화해의 정치의 실현성을 아직은 극소수인 여성의원에게 건다면 꿈도 야무지다 하겠으나 정말이지 간곡한 마음으로 빈다.여성의원들이여,국회를,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걸로 돼 있는 그 고약한 정치판을 한번 확 바꿔보라고.
  • “한국인목사 3만弗주고 석방” NYT보도 파문… 외교부선 부인

    |뉴욕 연합·서울 김수정기자|지난 8일 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됐다가 풀려난 한국인 목사 7명이 납치범들에게 3만달러를 지급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9일(현지시간) 보도,파문이 일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이라크 무장세력의 일본 민간인 3명 납치사건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을 전하는 도쿄발 기사에서 “이라크에서 납치된 한국인 8명 가운데 한 명은 탈출했고 나머지는 의료기술을 보여주고 3만달러를 준 뒤 풀려났다.”고 밝혔다.다만 이 신문은 이같은 보도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고 한국인 목사들의 피랍과 석방 과정을 더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외교통상부는 이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10일 밝혔다.피랍 목사들의 국내 동료와 친지들도 석방 대가가 건네졌을 가능성을 전면 부인했다.외교부는 이날 신봉길(申鳳吉) 대변인 명의의 보도자료에서 “주 이라크 대사관에 지시해 바그다드 팔레스타인 호텔에 체류 중인 관련 목사 일행을 상대로 확인한 결과,어떠한 금품도 제공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주장했다.목사들이 소속된 한국기독교복음단체총연합 서기 이종억 목사는 “동료들은 연합회 차원의 공금이나 경비를 일절 지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라크 무장세력에 피랍됐다가 석방된 한국인 목사 일행보다 먼저 이라크 현지에 도착해 있던 김종성 목사가 한국대사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위험지역의 선교행사 참석을 강행,물의를 빚고 있다. crystal@˝
  • 이라크 목사 피랍·석방 안팎

    이라크 현지에서 한국 민간인들이 무장세력에 의해 잇따라 피랍됐다 석방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예정된 한국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추가 파병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되는 분위기다. 특히 이라크 저항세력과 미군이 ‘제2의 전쟁’을 하는 양상이어서,8일 사건은 향후 국내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이날 밤 긴급 기자회견을 가진 외교부는 억류됐을 당시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다 안심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9일 긴급 NSC를 소집하는 등 비상체제에 들어갔으며,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도 8일 밤 외교부를 방문하는 등 정치권의 관심도 컸다. ●“미안하다”며 호위까지 허민영 목사 등 한국기독교복음단체총연합 소속 목사 9명이 이라크에 들어가기 위해 출국한 것은 지난 5일.이라크 북부 모술의 니느웨 지역에서 신학대학원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이라크 입국에 앞서 요르단 수도 암만에 머물던 이들 가운데 김종성 목사는 지난 6일 먼저 바그다드로 출발했다. 나머지 7명이 이라크 강행이냐,포기냐를 두고 고민하다 이라크 행을 결행한 것은 7일 밤 10시 30분.요르단 암만에서 차량 두대에 나누어 타고 바그다드로 향했다. 이들이 고속도로를 달린지 12시간 뒤인 8일 오전 10시30분 억류사건이 발생했다.가까스로 탈출한 김상미씨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바그다드 시로 들어오는 길로 들어서 1시간이 지나자 아랍 민간인 차림에 로켓포 등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하나둘 고속도로에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차량을 세우고 검문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들은 복면을 하고 있었으며 도로위에 있는 차들을 하나씩 하나씩 검문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무장세력들에게 ‘코리안’‘코리안’이라고 말하자,처음에는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 듯 하더니 이내 여권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고,한국인임을 확인한 뒤에도 일행을 차량에서 끌어내렸다.”고 밝혔다. 차량 안쪽에 앉아 있던 김씨는 일행이 모두 차에서 끌어내려진 상황에서 이라크인 운전수가 기지를 발휘,차를 빠른 속도로 출발시켜 바그다드로 탈출할 수 있었다. 김씨는 이날 바그다드에 도착한 뒤 대사관에 전화를 하고 대사관으로 가려했으나,시가전이 치열해 임홍재 대사가 김 씨가 머물던 팔레스타인호텔로 갔다. 한편 이날 5시간 만에 풀려난 7명은 “무장세력들이 미군의 스파이가 아님을 확인한 뒤 상당히 호의적으로 대했다.”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바그다드까지 에스코트 해줬다.”고 밝혔다. ●입국 만류에도 강행한 선교단 허민영 목사 등 8명은 요르단 및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 등의 입국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선교활동을 위해 입국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김욱 영사국장은 “이들은 지난 7일 이라크 입국을 취소하고 요르단 및 이스라엘을 여행하고 귀국키로 의견을 모았다고 요르단 주재 우리 공관에 알려왔다.”면서 당초 이라크 입국 취소 방침을 변경하고 바그다드 행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외교부측은 이들의 가족들에게도 전화해 만류했다고 전했다. ●누가 왜 납치했나 목사 일행이 납치된 지역은 미군과 가장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수니 삼각지대 팔루자와 라마다 중간 지점이다.이곳은 미군의 점령 1년이 지났지만 미군의 영향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며칠전 미국인 민간인들의 시체 훼손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미군은 이틀전 ‘신중한 전투’란 작전을 벌이다가 미 해군 12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현재 정부는 어떤 단체가 이들을 납치했는지 파악하지 못했지만,한국인에 대한 적대적이지 않아 상당히 안심하는 모습이다. 당초 정부는 미군과의 전면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미군 또는 미군에 협조하는 외국군 철수를 요구하며 인질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했었다.한국인 뿐 아니라 일본인 3명과 영국인 민간인도 납치돼 살해위협을 받고 있다고 아랍 알 자지라 방송이 전한 것도 비슷한 정황이라는 것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한때 피랍’ 가족 표정

    “무사히 풀려났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8일 저녁 한국인 목사들이 이라크에서 무장저항세력에 납치됐다는 소식에 불안감에 떨던 가족들은 이날 밤 늦게 ‘석방’소식이 전해지자 일제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인천 성문교회 김상미(49·여) 목사의 언니 김유미(51·여) 집사는 “동생만 혼자 석방돼 안타까웠는데 다른 목사님들도 함께 석방되어서 너무 기쁘다.”면서 “귀국하는 14일까지 안전하도록 기도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앞서 납치된 목사들은 이라크 모술 지역 니느웨에서 11일까지 열릴 예정인 선교대회 참석차 지난 5일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이라크 선교대회는 한국기독교복음단체총연합회(한복총·대표의장 윤석전 목사)가 주관했고 납치된 사람들은 모두 이 단체 소속이다.국내 100여개 교회가 가입한 ‘한복총’은 ‘세계선교’와 ‘민족복음화’를 주창해 온 보수적인 선교단체로 알려졌다. 이 단체에 따르면 9일 이라크 모술에 있는 체육관에서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선교대회를 갖고 이어 11일에는 모술에 있는 ‘니느웨 선교교회’에서 니느웨 선교신학대학원 개원 예배를 열 예정이었다.지난해 이라크 전쟁 이후 한복총은 선교사를 파견해 이라크인들과 연합 예배 행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고 모술 지역으로 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날 갑작스럽게 납치되면서 일정이 무산됐고,가족들은 TV를 통해 피랍소식을 접하고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광주 북구 두암동 ‘생명빛교회’ 조종헌(56) 목사의 부인 김복례(48)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조 목사가 무사하기만을 빌며 이곳 저곳에 연락을 하는 등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딸 정이(25)씨는 “TV 뉴스를 통해 아버지가 납치된 사실을 처음 알았다.”면서 “어제 어머니와 통화도 했는데,제발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시기만을 기도하고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신성교회 허민영 목사의 가족들은 외부와 접촉을 끊고 교회 동료들과 함께 허 목사의 안전을 기원하며 기도했다.부인 변승남씨는 밤 9시쯤 TV를 통해 남편의 피랍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으나 평정을 되찾고 대학생 남매와 함께 기도에 들어갔다.납치 소식을 전해들은 신성교회 동료 50여명도 이날 강서구 화곡본동 허 목사의 집으로 찾아와 가족을 위로하며 함께 기도했다. 성문교회 관계자는 “저녁 6시20분쯤 바그다드에서 팩스를 통해 피랍소식을 처음 전해 왔다.”면서 “김 목사가 떠나기 직전,‘이번에 가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며 노란 봉투를 남겼다.”고 전했다. 이들 일행보다 하루 먼저 바그다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서울 상계본향 김종성 목사는 뒤늦게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부인 김복귀(51)씨는 “너무 놀라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지만,그나마 안전하다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인천 김학준 채수범기자 kimhj@seoul.co.kr˝
  • [길섶에서] 내 걸음, 남의 걸음/심재억 생활레저부 차장

    멀쩡한 아가씨의 걸음이 갑자기 빨라진다.곁의 젊은 직장인도 덩달아 뛰고,초로의 아저씨,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뒤질세라 발자국에 먼지를 일으킨다.풍동처럼 몰아치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나부끼고,그 순간 출근길의 짧은 명상도 이내 헝클어지고 만다.이윽고 내 걸음에도 힘이 실릴 무렵,“내가 왜 뛰지?”하는 생각에 잰걸음을 푼다. 출근길,지하철역의 풍경이다.정말 멀쩡한 사람들이 역사 계단에 발을 디미는 순간,마치 뭔가에 홀린 듯 눈을 반짝이며 뛰고,다른 사람들도 감전이라도 된 듯 덩달아 빨라진다.승강장에 다다라 보면 내닫던 사람들이 군데군데 서성이고 있다.뛰어봐야 더 빠를 게 없다.그런데도 한사코 뛴다.그 빠름 속 어디에도 넉넉한 여백은 없다.우리의 일상이라는 게 이렇다. 바둑에서는 ‘남의 손따라 두면 진다.’고 가르친다.그런데도 사람들은 한사코 ‘손따라’ 뛴다.자신의 삶을 남의 걸음으로 사는 일이다.모든 게 빠른 세상은 아무 것도 빠를 게 없는 세상 아닌가.가뜩이나 숨가쁜 우리의 일상,느려도 좋을 땐 느리게 가자.그게 더러는 빠르게 사는 법이기도 하다. 심재억 생활레저부 차장˝
  • [18일 TV 하이라이트]

    ●사과나무(오후 7시20분) 지은씨는 간과 뇌에 구리가 쌓여 온몸이 굳고 언어장애와 지능저하가 나타나는 윌슨병 환자였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걷고,말할 뿐 아니라 강남대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한 대학생이다.투병 시절,그녀에게 희망을 심어준 ‘사과나무’가 있다는데,과연 그녀의 소중한 사과나무는 누구일까? ●생활속의 무술(오전 8시15분) 현란한 발기술과 진기한 액션으로 무술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이소룡.싸움 기술에서 벗어나 건강과 교육 수단으로 뿌리내린 생활무술 등의 사례를 엿본다.유교적 가치관과 자기 수련 방식으로 서구사회 물질 문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양무술의 진면목을 살펴본다. ●시민의 힘(오후 10시20분) 대통령 탄핵안을 야당이 전격적으로 처리한 것을 두고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는 여론이 없지않다.이번 탄핵정국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한국 정치에서 시민참여의 역사를 살펴보고,어떤 방법으로 의사를 표출했는지 알아본다. ●1050 정면승부(오후 10시50분) 경기도의 숨어있는 나들이 코스를 소개한다.사계절 사랑받는 가평의 남이섬을 찾아 시원한 북한강을 배경으로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레포츠를 체험하고,추억 속으로 안내하는 그때 그 시절 전시관도 살펴본다.경기도 100배 즐기기에 도전하는 한판승부를 들여다 본다 . ●신용사회 만들기(밤 12시55분) 정석문 아나운서와 유치원생들이 대형할인매장을 찾아간다.아이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5000원씩을 주고 물건을 사 오도록 한다.사고 싶은 것을 모조리 다 사는 등 소비행태에 문제가 있는 아이의 부모님을 찾아가 신용상태를 점검하고,올바른 소비와 신용을 지킬 수 있는 정보를 준다. ●꽃보다 아름다워(오후 9시50분) 미수집 거실에 걸려 있는 가족 사진에서 재식의 모습을 본 인철은 충격을 받는다.영민과 같이 살 집을 구하겠다는 미옥의 말에 엄마는 서운해하고,재수와 지니는 제인·진우와 이별 여행을 떠난다.죽은 재식이 미수의 오빠라는 사실을 안 인철 엄마는 인철에게 한국을 떠나라고 말한다. ●피플 세상속으로(오후 7시30분)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교복을 입은 학생에서부터 백발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태극기를 온몸에 휘감은 시민이 있는 가하면 아이를 무동태운 가족단위의 시위대도 쉽게 눈에 띄었다.촛불시위현장에서 민심을 살펴본다. ˝
  • 13년만에 전달된 ‘위안부 눈물’

    종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600회째를 맞은 17일 한국을 비롯한 미국,스페인,필리핀,타이완 등 세계 8개국에서는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종군위안부 해결을 위한 국제 인권집회가 열렸다. 특히 이날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서는 주한일본대사관측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위안부할머니들의 항의서한을 공식 접수해 눈길을 끌었다.수요집회는 지난 92년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정대협 회원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13년째 계속되고 있다.그동안 시위에 참가한 총 인원만 해도 3만명이 넘는 데다 국내에서는 최장기 시위로 기록됐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는 종군위안부 할머니 15명과 한국순교복자수녀회,한국여성단체연합 정현백 상임대표,일 시민단체 ‘평화회’ 회원 등 200여명이 참가해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신혜수 상임대표는 “수 차례 정권이 바뀌었지만 일본의 공식사과나 진상규명 등 위안부문제는 그대로 묻혀진 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참가한 일본인들의 속죄의 눈물도 이어졌다.집회 참석을 위해 일본에서 온 ‘평화회’ 소속 20여명의 일본인들은 일본 전통악기인 ‘오키니’를 연주하며 ‘참회의 노래’를 불렀다.가와미코 미유키(19·여·오키나와 국제대)는 “비록 말은 안 통하지만 할머니들의 슬픔과 한을 담아 노래로 담아내고 싶었다.”면서 연신 눈물을 흘렸다. 2002년 말부터 1년이 넘게 남몰래 수요집회에 참여했다는 고노 다이스케(35)는 “최소한의 잘잘못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화가 나고 미안스러운 마음”이라면서 “할머니들 앞에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일본대사관측은 그동안 ‘불법집회를 통해 전달된 문건은 공식적으로 전달받을 수 없다.’라는 종전 방침을 바꿔 집회 후 정치담당서기관을 통해 정대협의 항의서한을 공식 접수했다.항의서한을 전달한 황금주 할머니는 “항의서한 하나 전달하는 데 13년이 걸렸다.”면서 “젊은이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없다면 일본의 사과는 물론 대사관의 문조차 열기 힘들 것”이라면서 국민의 관심을 촉구했다. 유영규기자 whoami@˝
  • 2004 ‘패륜 잔혹사’

    담임교사에게 꾸지람을 들은 고교 신입생이 앙심을 품고 수업 중이던 담임교사를 마구 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경북 울진경찰서는 16일 교실에서 담임교사를 폭행한 혐의(공무집행방해 및 상해)로 울진군 J고교 1학년 김모(16)군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군은 지난 12일 오전 10시20분쯤 다른 반 교실에서 수업 중이던 이모(33) 교사를 주먹과 발로 폭행,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다. 당시 교실에는 학생 30여명이 있었으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아무도 만류하지 못했다. 경찰조사 결과 김군은 당일 등교후 이 교사로부터 ‘평소 학교생활이 바르지 못하다.’는 등의 꾸지람과 함께 손바닥으로 머리를 한 차례 맞자 교복 상의를 벗어던지며 “학교 안 다닌다.”고 외친 뒤 학교 밖으로 뛰쳐 나갔다. 김군은 30여분 뒤 학교로 다시 돌아와 이 교사가 수업중인 교실 창문 밖에서 “좀 나와 보소.”라고 소리친 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주먹과 발로 이 교사를 마구 폭행했다. 이 교사는 입안이 찢어지고 타박상을 입었으나 이후 정상적으로 출근,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모가 이혼한 상태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김군은 지난해 모 공고에 입학했다가 학교를 자퇴하고 재수를 한 뒤 이 학교에 올해 입학했다.김군은 방과 후에는 학교 인근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학교측은 이날 생활지도위원회와 전체 교직원 회의를 열어 교권침해를 이유로 김군을 퇴학 처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울진 김상화기자 shkim@˝
  • [아하 그렇구나]거리엔 스쿨 룩

    학교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데 편승해 ‘스쿨 룩’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스쿨 룩’은 말 그대로 교복패션.단정하고 깔끔한 느낌과 귀엽고 깜찍한 느낌을 동시에 줄 수 있어 인기다.미국 사립학교가 배경이 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학생들의 교복 차림이 바로 정통 스쿨 룩.여기서 나온 더플 코트는 스쿨 룩을 넘어 세대와 계층을 넘어선 인기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여성의 경우 전형적인 스타일은 감색 재킷,아가일 체크의 브이넥 스웨터,짧은 플리츠 스커트,니삭스(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로퍼로 완성된다.이번 시즌 강세인 데님 미니 스커트와 재킷 대신 카디건을 걸치면 색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다소 밋밋해 보인다면 가수 이효리가 유행시킨 헌팅캡이나 목도리를 두르는 것도 하나의 센스.영화 ‘내사랑 싸가지’의 하지원과 ‘어린 신부’의 문근영이 입고 나온 일본 여학생 세일러복 패션은 별 코디 없이 그 자체로 스쿨 룩의 완성이다. 남자라면 최근 종영된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처럼 입어보자.정장풍 코트나 재킷에 청바지를 받쳐입고 스니커즈를 신는다면 활동적이고 발랄한 느낌이 살아날 터.회사원이라도 흰색 셔츠에 화려한 색감의 넥타이를 매고 더블 버튼의 두툼한 코트 위에 양쪽으로 메는 백팩을 걸치면 조인성처럼 귀여운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숙기자 alex@˝
  • ‘스쿨’ 스크린 점거하다

    …유하 ‘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서 스크린에서 ‘학교’가 뜨고 있다. 학교를 공간적 배경이나 주요 소재로 삼은 영화들이 꾸준히 개봉되거나 제작되고 있는 추세다. 하이틴 영화가 없는 시대는 물론 없었다.그러나 최근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학교는 10∼20대들의 고만고만한 고민과 로맨스를 담는 ‘전통적’ 기능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데서 새로운 의미가 짚인다.학교가 억압된 욕망의 상징공간으로 한정됐던 건 이미 옛말이다.코미디,멜로,드라마,액션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제 학교는 스크린을 무차별(?) 점령한다. 학교가 대중문화의 인기코드로 급부상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초 흥행한 코미디 ‘동갑내기 과외하기’.대학 2학년생 과외선생과 터프한 남자 고교생의 코믹한 신경전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짭짤한 재미를 본 뒤 학교영화는 줄줄이 기획·제작되는 중이다. 학교가 실패한 교육장이자 혼돈의 상징처럼 굳어지고 있음에도,극장가에서 ‘먹히고’ 있는 배경은 뭘까. 한 마케팅 담당자는 “지난 2002년 말 고등학교 교실에 카메라를 정조준한 코미디 ‘몽정기’와 ‘품행제로’가 선보일 즈음만 해도 학교영화가 이렇듯 꾸준히 폭발력을 가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면서 “‘동갑내기‘가 흥행하면서 인터넷 소설이 원작인 청춘드라마가 힘을 얻은 결과”라고 짚었다. 인터넷 소설의 주요 독자층은 10∼20대.주요 영화소비층과 정확히 일치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이들을 겨냥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풀이들이다.여고생과 ‘명품족’ 대학생의 로맨스를 그려 지난 1월 개봉한 ‘내사랑 싸가지’,귀여니의 인터넷 대박소설을 원작으로 새달 개봉할 ‘그 놈은 멋있었다’가 대표적인 사례. 이 즈음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학교가 하이틴 드라마 속에서 단순히 ‘순수’와 ‘꿈’을 대변하는 공간에 머물던 시대는 갔다.욕망의 표현이나 사회적 입지 등이 제한된 ‘학생’들에게 학교는 역설적이게도 일탈의 쾌감을 누릴 수 있는 합법적인 탈출구다.딱딱하게 뭉쳐진 청춘들의 ‘욕망 근육’을 다양한 제스처로 풀어주는 물파스로 기능하는 셈이다. 지난 1월의 흥행작 ‘말죽거리 잔혹사’도 마찬가지.70년대의 어두운 시대상을 깔고 학원문제를 건드린 듯하지만,자세히 보면 영화 속 학교는 폭력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색다른 무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학교가 자유연애 공간으로서 입체적으로 ‘재활용’되기까지 한다.김래원·문근영 주연의 ‘어린 신부’(새달 2일 개봉)는 16세 꼬마신부와 대학생의 결혼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양가 조부들이 정혼한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여학생 신부’가 된다는 설정은 인기 TV드라마 ‘낭랑 18세’와 판박이다.교복차림의 여학생이 주인공인 영화는 또 있다.은지원·임은경 주연의 ‘여고생 시집가기’가 한창 촬영 중이다. 로맨스,액션,코미디가 두루두루 엮이는 학교영화는 한동안 한국영화의 주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교생들의 삼각관계를 그린 ‘늑대의 유혹’,고교 태권도부 이야기인 ‘돌려차기’가 곧 개봉한다.강원도 남자중학교의 관악부를 배경으로 최민식이 주연한 ‘꽃피는 봄이 오면’,천계영의 인기소설 원작에 남녀 고교생들을 주인공으로 세운 ‘더 클럽’ 등이 촬영에 들어갔다. ‘돌려차기’의 제작사인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10∼20대를 겨냥한 상업영화의 주제가 다양해지는 건 나무랄 일이 아니다.”면서 “그러나 크든 작든 사회적 메시지는 잊지 않고 담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수정기자 sjh@˝
  • [여학생 교복선택 논란] 치마나 바지 편한대로 입었으면…

    ‘낮은 소리’는 사회의 그늘진 곳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다수의 큰 목소리에 가려,외면되고 있는 소외층의 목소리를 드러내 보이려는 것입니다.방치할 경우 사회의 대형 갈등요인으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을 미리 공론화함으로써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것입니다.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제보를 기다립니다.서울신문 편집국 사회교육부(02)2000-9173,www.seoul.co.kr 또는 www.kdaily.com으로 연락 주십시오. “여학생 교복은 치마라는 등식은 여학생을 두번 죽이는 거예요.” 최근 여성부가 여학생에게 치마만 입도록 하는 것은 성차별 소지가 있다며 시정권고한 것과 관련, 논란이 일고 있다.여학생에게 치마만 입도록 제한하는 것은 편견이라는 견해가 우세한 상황이지만,성차별 문제를 거론하며 여학생들에게 바지 교복을 입도록 강제하는 것은 일종의 피해의식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여전히 바지 대신 치마 교복을 고집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여학생=치마 교복’은 고정관념 지난 1986년 정부의 교복 자율화 조치 이후 지금은 학교 수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교복이 있다. 하지만 여학생들이 바지 교복을 입은 모습은 여전히 ‘가뭄에 콩 나듯’ 찾기가 어렵다.학칙으로 치마만 입도록 강제하는 학교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 데다,치마와 바지를 선택할 수 있더라도 사실상 치마만 선택하는 학교도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여성부가 지난해 말 실시한 ‘중·고등학생 교복착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학생이 재학중인 전국 4036개 중·고교 중 ‘규정상’ 치마만 허용하는 학교는 2181곳(54%),치마와 바지를 선택할 수 있는 학교 1715곳(42%),교복을 입지 않는 학교 140곳(4%) 등이다. 여성부 조신숙 조사관은 “성장기 여학생들에게 치마만 입도록 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의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성별에 따른 차별적 감정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양성평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치마만 입는 학교에서는 이같은 부분에 대한 문제 의식없이 ‘관행적으로’ 치마를 입어왔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실제 S여중의 학생부장은 “교복의 디자인과 색상 등을 고르기 위해 고민은 해봤지만,학생들에게 바지를 입혀야 할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까닭에 여성부는 최근 여학생에게 치마만 입도록 하는 것은 남녀차별 소지가 있다며 각 시·도교육청에 시정권고했다. ●“남학생은 바지,여학생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 치마 교복이 갖는 제약은 단순히 정신적 측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활동성과 실용성 등까지도 포함한다는 지적이다. 서울 중랑구 망우동 송곡여고의 경우 86년부터 줄곧 치마와 바지를 함께 입을 수 있도록 허용해 왔다.정미화 학생부장은 “학생들의 건강문제 등을 고려해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겨울철에는 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교복의 디자인과 색상 등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만큼,활동성과 실용성 등이 강조되는 추세를 고려할 때 특정 스타일의 옷을 고집할 명분은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여학생들의 교복 선택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안정선 남녀차별개선위원회 위원은 “교복을 통해 학생이라는 신분만 구별할 수 있으면 충분한데 구태여 성적 구분까지 할 필요는 없다.”면서 “더군다나 교복 결정과정에서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의사가 중요하지만,이같은 과정이 생략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학교의 전통을 교복에서 찾는 것은 옛 생각일 뿐 이제 교복 선택 문제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고 덧붙였다. ●“여학생이 남학생처럼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피해의식을 버려” 반면 각급 학교에서 교복 선택 등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는 만큼 특정 사안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특히 수십년째 치마 교복만을 고수해 온 일부 여학교는 치마 교복이 선뜻 바꾸기 힘든 ‘전통’이라는 입장이다. L여고 김모 교감은 “치마가 바지에 비해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면을 부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학교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교복을 일부에서 바꾸라고 해서 쉽게 바꿀 수 없으며,시일을 두고 신중을 기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특히 바지 교복을 허용해 달라는 학부모나 학생들의 요구가 없는 만큼 현재로선 (바지 교복 허용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익명을 요구한 한 여학교 학생부장은 “요즈음 학교 분위기는 자유스러울 뿐만 아니라,학생들의 의사표현방식도 다양화됐기 때문에 교복이라는 물리적 환경이 학생들의 의식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라면서 “치마 교복이 갖는 성차별적 요소를 거론하며 여학생들에게 바지를 입혀야 한다는 주장은 일종의 피해의식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학교운영위가 최종결정 교복은 학생과 학부모,교직원 등의 의견을 수렴한 뒤 학교별로 구성돼 있는 학교운영위원회가 학칙 개정 등을 통해 최종결정토록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복의 착용 및 선택 여부를 강제할 수는 없지만,각급 학교에 학칙 개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줄 것을 요구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교운영위가 졸업생을 보내고,신입생이 들어온 직후인 3∼4월에 소집된다.즉 ‘여학생=치마 교복’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앞으로 1∼2달 동안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며,학부모와 학생들의 관심과 노력도 필요한 시기인 셈이다. 장세훈 이유종기자 shjang@˝
  • [여학생 교복선택 논란] 실용성 바지 vs 옷맵시 치마

    여학생 바지 교복 허용 문제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의견도 극명하게 대비된다.학부모들은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바지 허용론’을,학생들은 자기표현에 무게중심을 둔 ‘치마 옹호론’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복은 1886년 이화학당 여학생들이 입은 한복의 치마 저고리가 시초다.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었던 1940년대에는 한때 여학생들이 ‘몸뻬’라는 작업복 바지에 블라우스를 교복으로 입기도 했다. 이후 1969년 당시 문교부의 중학교 평준화 시책에 따라 모든 중·고교의 교복이 획일화됐고,이 때문에 여학생들은 치마 외에는 선택권이 없었다.하지만 83년 교복제도가 폐지된 데 이어 86년부터 교복 착용 및 선택 권한을 각 학교에 일임했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는 셈이다. 학부모들은 실용성 등을 감안해 바지 교복을 입어줄 것을 은근히 바라는 눈치다.중학생과 고등학생 딸을 둔 박모(44·여·송파구 풍납동)씨는 “바지가 여름철에는 땀 흡수에,겨울철에는 보온에 유리한데 치마만 입어야 하는 아이를 보면 안쓰러울 때가 있다.”면서 “치마는 행동에도 제약이 큰 만큼 바지와 선택해 입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경우 실제 바지 교복을 입을 수 있는 여학생들조차도 치마를 즐겨 입는 게 사실이다.서울 송곡여고 정미화 학생부장은 “학생들이 바지보다 치마를 선호한다.”면서 “날씨가 추워도 바지 교복을 입는 학생 수는 10명 가운데 1∼2명에 그친다.”고 설명했다.이에 대해 학생들은 바지가 갖는 실용적인 측면은 인정하지만,외모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말한다.홍모(17·서울 관악구 신림동)양은 “초등학교 때 이미 바지를 입는 데 익숙해졌는데 갑자기 치마만 입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교복은 주로 체형에 비해 큰 치수를 사기 때문에 치마가 바지보다 옷맵시를 살리기가 쉬워 치마를 입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학부모와 학생간 견해차를 극복하기 위한 타협점을 찾는 게 쉬워 보이지만,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한벌에 20만∼30만원을 호가하는 교복을 철마다 또는 해마다 몇 벌씩 사줄 수 있을 만큼 여유있는 가정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장세훈 이유종기자 bell@˝
  • [여학생 교복선택 논란] 청소년사이 ‘교복짱’ 바람

    종아리 부분의 바지 폭을 줄인 ‘꼬챙이 바지’,주름을 뜯어 없앤 ‘A자형 긴 치마’,몸에 꼭 맞도록 주름선을 박음질한 ‘인어공주 치마’…. 70∼80년대 교복이 획일성을 강조하는 억압의 상징이었다면,요즈음 교복은 이처럼 청소년들이 개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패션 코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까닭에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최근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얼짱’,‘몸짱’보다 ‘교복짱’이 인기다.인터넷에서는 교복을 입고 각종 자세로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을 찍는 ‘교복쇼’,일본의 교복 패션을 따라하는 ‘고갸루족’ 등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교복과 관련한 카페나 커뮤니티가 수천개에 이르고 있으며,회원 수가 20만명에 육박하는 곳도 있다. 청소년들이 회원의 대부분인 이곳에서는 학교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하루에도 수백건씩 올라오고,품평회를 통해 교복짱을 선발한다.같은 학교 교복이더라도 어떻게 고쳤느냐에 따라,어떤 자세를 취했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이 때문에 교복을 입고 패션쇼를 벌이거나 치마를 걷어올리는 등 짓궂은 장난도 마다하지 않는 교복쇼도 곧잘 등장한다. 게다가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일본 교복 패션을 따라하는 고갸루족도 유행이다.고갸루란 고(高)와 걸(girl)에서 유래된 일본식 영어로,짧은 주름 스커트와 리본,무릎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루즈삭스’ 양말 등을 입는 일본 여고생을 이르는 말이다. 이같은 추세 때문에 교복 제작업체들도 홈페이지에 교복 코디법 등 관련 코너를 개설하고,사이버 교복얼짱 선발대회 등 이벤트도 마련하고 있다.한 업체 관계자는 “최근 청소년들은 교복을 통해 자신의 개성과 멋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강하다.”면서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화와 얼짱 신드롬 등도 청소년들의 교복문화를 바꿔나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세훈기자˝
  • 충훈고 둘로 갈린 입학식

    학교재배정을 둘러싼 경기도 안양 충훈고 사태가 교육당국과 학부모들의 극한 대립으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입학식이 두곳에서 열리는 기이한 풍경이 연출됐다.또 등록을 거부한 학부모들은 임시교실을 만들어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혀 초유의 집단 사교육 사태로 이어질 전망이다. 3일 오전 10시 충훈고 본관 1층 다목적홀에서는 전체 입학예정자 554명 가운데 329명이 참석한 가운데 입학식이 열렸다. 계필현 교장은 환영사를 통해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고 다른 장소에 있는 학부모,학생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느냐.”고 위로한 뒤 “입학한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 3년 뒤 멋진 충훈고의 전통을 세운 첫 졸업생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반 편성뒤 오후에는 시간표에 따라 교과목수업을 진행했다. 유한솔(17·여)양은 “학교도 완공되지 않고 주변 환경도 나쁜 데다 친구들마저 등록을 거부해 고민하다 2차 때 등록을 했다.”고 말했다. 반면 입학을 거부한 충훈고 배정학생 225명은 오전 10시30분 학부모 대책위 주관하에 안양시청 강당에 모여 자체 인성교육을 받았다.학생,학부모 350여명은 이어 오후2시30분 수원시 조원동 도교육청으로 자리를 옮겨 ‘경기도교육청 무 배정학생 학교 없는 입학식’이란 현수막을 내걸고 별도의 입학식을 가졌다. 민병권(48) 대책위원장은 호소문을 통해 “급조된 교실,눈과 코를 막아야 하는 환경 등 헌법과 법령이 정한 최소한의 기준에도 미달해 눈물의 입학식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박영록(17)군은 “다른 친구들은 교복입고 가족들의 축하 속에 입학식을 가졌는데 우리는 추운 날씨 속에 학교도,선생님도 없는 아스팔트 위에서 부모님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입학식을 하게 돼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 30여명은 상복을 입고 ‘부실 경기교육’을 질타하는 제사행사를 가졌다.학부모 대책위는 4일부터 안양시청 6층 회의실에 학습공간을 마련한 뒤 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학원 강사와 자원봉사 교사들을 초빙,정규 교과를 진행할 예정이다.한편 학부모 대책위는 이날 1차 소송(166명)에 참여하지 않은 49명이 수원지법에 추가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으며 도교육청도 이날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에 대한 항고서를 수원지법에 제출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야살쟁이록1·2/김종광 지음

    “5공화국의 악령이 낄낄대고 있던 그 시절,작게는 충남 서해안 작은 고을의 고삐리들이 스승과 벗들과 세계와 교감해 나가는 이야기이며,크게는 ‘전교조 꽃등 세대’의 무수한 기록 중 하나다.” 시골 체험을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와 입심으로 풀어내 ‘제2의 이문구’라 불리는 작가 김종광의 익살스러운 시선이 이번엔 ‘교복시절’에 꽂혔다.우리교육에서 낸 ‘야살쟁이록’은 87∼89년 고교시절을 보낸 주인공들의 눈에 비친 세상사와,그들만의 이야기가 싱그럽게 펼쳐진다. 소설의 배경은 서해안 혼주고.작가는 주인공 다현의 눈에 비친 학교내 풍경과,그가 친구들과 함께 만든 문집 ‘야살쟁이록’의 내용을 들려준다.그 속에 비쳐지는 ‘추억의 힘’은 87년 6월항쟁·대통령선거 등 학교 담장 너머 어른들의 세상과 학교내 전교조 결성과정 등을 통한 학교 안 세계를 아우른다. 작가의 경험이 밴 소설은 87년 호헌철폐를 둘러싼 혼란,투신한 대학생,민주항쟁 기념 군민 촛불시위 등에 대한 그 또래의 호기심을 생생하게 드러낸다.특히 “모레는 13대 대통령 선거날이다.우리한테 투표권도 없다니 너무 억울하다….”며 컵라면을 걸어놓고 하는 모의투표 과정에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희화적이다.그 세계에는 어른들의 생각이 주입돼 있기도 하고(“어른들 말을 들어보면 열에 아홉이 김종필이다.”“김대중이는 공산당이다.김대중이가 대통령되면 김일성이 바로 쳐들어 온다.”) 그 틀을 깨려는 애벌레 같은 꿈틀거림이 들어 있다.(“김영삼과 김대중도 똑같은 인간들이다.김영삼은 부산 하나 믿고,김대중은 전라도 하나 믿고 출마했다.”) 그러나 주무대는 학교안.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시간에 ‘감시의 눈길’을 피해 드나드는 오락실과 짤짤이,패싸움,첫 사랑 등의 정경은 아련한 추억에 젖게 한다.전교조 선생님과 함께 춘 해방춤이 상징하듯 잠시 맛본 자유로움과,제도 속에 눌릴 수밖에 없는 또래의 번민·갈등의 흔적들이 섞여 있어 읽다 보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런 저런 통과의례를 담은 이 작품은 일종의 청소년 성장소설이다.그래서 젊고 싱그럽다.비록 “삼각함수와 to-부정사에 묻혀 있어야 정상이고 니체를 읽으면 비정상적”이라는 대학입시 사슬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지만 ‘되바라지고 얄궂다’는 뜻의 야살쟁이들의 장난끼와 작고 아름다운 거부의 몸짓이 함께 담겼다.엽편·단편·중편 등 다양한 형태로 글을 써온 김종광은 이 젊은 초상화를 그리면서 장편소설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종수기자 vielee@˝
  • 대학 신입생·첫 출근길 어떻게 입을까

    꽃 피고 새 지저귀는 3월,참 좋을 때다.1월보다 더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은 새 학교,새 반,새 친구들,새 환경 등으로 뛰어 들어가는 때이기 때문이다.루키즘(외모지상주의)에 이어 얼짱·몸짱이 사회를 주름잡는 이때 새로운 시작을 후줄근하게 할 수는 없는 법!과연 어떻게 새로운 느낌을 살릴 수 있을까.발랄 깜찍 우아 고상 멋스러움 등을 자유자재로 버무려 좋은 첫인상을 남길 수 있는 차림새는 없을까. ●학교 가니? 좋겠다∼ 세월이 흘러도,어린 나이가 아니라고 다짐해도 자꾸 마음이 가는 스타일이 바로 ‘스쿨 룩(School Look)’이다.남성보다는 여성이 스쿨 룩을 많이 따르고 있어 ‘스쿨걸 룩’이라는 표현이 더 널리 퍼졌다. 해석하자면 ‘교복 패션’인데,아주 교복처럼 입으면 촌스럽다.여성은 아가일 체크(마름모형 체크) 스웨터,주름 치마,무릎까지 오는 니렝스 삭스로 코디한 영국 사립학교 학생풍이 기본 차림새.남성은 브이 네크라인(V넥)의 스웨터에 면바지를 차려입은 미국 아이비리그 스타일이 대표적이다. 여성이라면 V넥 니트+미니스커트+니삭스를 매치하고 캔버스화나 스니커즈,로퍼(납작한 스타일의 구두)로 마무리한다.남성의 경우 깔끔한 재킷에 면바지,정장바지 또는 데님바지를 입고 양쪽으로 메는 가방을 코디하면 센스만점 신입생. ●첫 출근? 부럽다… 직장 새내기,어려운 취업관문을 뚫어 스스로를 대단히 대견하게 생각하면서도,한편으로는 첫 출근 옷차림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까.실력뿐만 아니라 외모도 경쟁력으로 꼽히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말이다.업무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초보 티내지 않고 직장인 이미지에 맞는 감각적인 연출이 필요한데…. TNGT 박경아 디자인실장은 “사회에 처음 첫 발을 내딛는 중요한 순간인 만큼 단정하지 못한 차림새나 잘 맞지 않는 정장은 주위에 불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성실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남성은 기본이 되는 남색과 회색,검정색의 젊은 이미지에 어울리는 캐주얼 정장이 무난하다.남색 정장은 셔츠·타이와 다양하게 매치되고,회색과 검정색은 안정된 느낌과 지적인 분위기를 준다. 직장 여성들은 세부 장식을 절제한 미니멀한 스타일인,일명 ‘며느리 패션’이 추천 스타일.단정하면서도 상쾌한 연출이다.스커트는 무릎이 보이지 않는 길이를,바지는 복숭아뼈가 보이는 9부나 10부 길이에 단정한 로퍼를 신는 것이 깔끔하다.샤넬풍의 트위드 재킷은 생기발랄함을 표현할 수 있다.색상은 밝고 무난한 와인·베이지·아이보리 등이 적당하다. ●빼놓지 말자,패션 포인트 전통적인 스쿨 룩에 체크무늬 헌팅캡,여러가지 색을 믹스한 니트모자,발목에 끈이 달린 스트랩 슈즈를 더하면 패션이 심심하지 않다. 여성 직장인은 평범한 라인의 정장 속에 흰색 셔츠를 입고 밝은 스카프로 포인트를 주면 감각적인 표현을 할 수 있다.남성은 정장 안에 입는 셔츠와 타이의 V존 연출이 중요하다.보라·분홍·파란색이 화사하다. 타이 색상은 재킷·셔츠 색상과 같은 계열로,셔츠 색상보다 짙은 것이 좋다.타이의 무늬색은 재킷이나 셔츠 색상에 맞춰 준다. 양말의 포인트는 흰색이 아니다.정장과 잘 어울리는 남색,회색,검정색을 선택한다.스타일링의 또하나 포인트는 가방과 신발.구두는 옷의 전체적인 색상과,스타킹 색은 피부색과 맞춘다. 탠디의 강선진 디자인팀장은 “스쿨 걸 룩에는 로맨틱하면서도 발랄한 느낌을 주는 구두를,새내기 직장 여성은 앞코가 동그란 낮은 굽의 로퍼나 스트랩 슈즈가 좋다.”고 조언했다. 가방 역시 옷 색상과 같은 계열로 맞추고,약간 큰 직사각형 모양의 토트백(손에 드는 가방)을 선택하는 것이 실용적이다. 최여경기자 kid@˝
  • 서울탱고-광화문 연가

    이문세의 ‘광화문연가’ 첫사랑의 추억을 다시 꺼내는 것만큼 가슴시린 일은 없다.‘사랑은 시한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초보 연인들은 엇갈림만 반복하다가 결국 사랑을 과거형으로 만든다.철없는 감정싸움이나 머뭇거림이 평생 잊지 못할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을 게다.그저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는 연인은 깨진다.’는 악담이 둘 사이를 갈라 놓았다며 탓할 뿐이다. 그렇지만 악명높은 정동길도 연인들을 내쫓진 못한다.흑백사진의 향취를 물씬 풍기는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을 유혹하는 데이트 코스다.퇴락한 왕조의 고궁을 끼고 도는 호젓한 분위기는 사귐을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그만이다.‘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다정히 걸어가던 연인들….’ 또 하나의 ‘광화문 연가’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5월의 향기가 그리워지면 ‘얼굴없는 가수’의 원조격인 이문세는 1988년 발표한 5집 음반에 광화문 연가를 수록했다.작곡·작사는 3집부터 함께 작업해온 이영훈씨가 맡았다.70년대 올드팝을 곱씹는 386세대에게 TV출연을 거부하던 가수 이문세는 살아있는 전설이다.PD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던 이씨는 자신의 노래에 대해 곧잘 이렇게 말한다. “제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르기 때문에 이제는 제 노래가 아니에요.개인적으로는 어쿠스틱 기타만으로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옛사랑’을 좋아하는데,광화문 연가는 비슷한 분위기라서 즐겨 부르죠.” 5집에서 광화문 연가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시를 위한 시’나 ‘붉은 노을’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의 비중이 크고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졌다.하지만 잊혀질듯 잊혀지지 않는 광화문 연가를 첫사랑의 추억으로 아련하게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서울고와 경기여고,이화여고 등이 모여 있던 광화문 일대는 까까머리 교복세대들에게는 첫사랑의 무대다.빽빽한 통학버스에서 피어나는 그들의 이야기는 광화문 주위를 몰래 맴돌며 다져간다.고딕풍의 붉은 벽돌건물인 정동제일교회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공회성당은 뒤배경으로 등장한다.대법원이 시립미술관으로 바뀌고 주택가 깊숙한 자리에 성곡미술관이 들어섰지만 주머니가 가벼웠던 학창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이제 근사한 레스토랑도 곳곳에 생겨 광화문 예찬을 늘어 놓자면 수도 없이 많다.하지만 옛 사랑도,옛 배움터도 사라진 지 오래다. ●다시 만들어진 또 다른 느낌의 연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광화문 연가’를 검색하면 가수 이수영의 사진이 떠오른다.음반시장의 불황에도 불구,15만장을 훌쩍 넘긴 5.5집 덕분에 그는 광화문 연가의 대물림을 성공적으로 마쳤다.현해탄을 건너기 전,흘러간 가요를 모아 만든 앨범은 30∼40대의 향수를 자극해 폭넓은 반향을 일으켰다. “같은 곡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전달해 팬들에게는 새로운 곡으로 다가설 거예요.80년대의 감성으로 이문세씨가 불렀다면 저는 지금의 제 감성을 새로 불어넣었지요. 광화문 연가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서 솔직히 제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죠.하지만 순수함이 느껴지는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어요.” 예전부터 이문세의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그 시절의 추억을 향유하지 않지만 광화문 연가를 한번 불러보고 싶었다.리메이크곡으로 5.5집을 기획할 때,20대인 그와 30대인 프로듀서 그리고 40대인 음반기획사 사장 모두 광화문 연가를 골랐다.당시 30∼40대들은 젊은 날의 추억을 강하게 느끼는구나 생각했고,자주 들은 노래라서 흔쾌히 결정했다. “요즘 노래는 직설적이에요.예전에는 같은 것을 표현하더라도 시적이고 서정적이었죠.신세대의 사랑법과는 달라서 직접 겨냥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의 애틋함과 순수함은 다가서겠죠.” 침울하고 쓸쓸한 것이 요즘 시대와 잘 어울려서 타이틀 곡으로 광화문 연가를 뽑았단다.겨울과 눈이 들어가는 영상도 잘 맞아떨어졌다. 이유종기자 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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