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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땐 6200억원… 하노이 경제효과는

    삼성·LG 공장 방문땐 韓기업도 반사이익 교민들 “박항서 매직 더해 베트남 붐 기대” 베트남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맞물려 이미지 개선 등 경제적 효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올림픽을 비롯한 스포츠 이벤트 상당수는 적자인 반면 정상회담과 같은 정치적 이벤트는 짧은 기간과 적은 비용에 비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어서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교민들도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부터 하노이와 인근 도시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삼성전자(박닌성)나 LG디스플레이(하이퐁)의 현지 공장을 찾을지에 대해 국내외 언론의 관심도 뜨겁다. 하노이 도심 자체가 거대한 광고판이 될 수도 있다. 하노이에서 가장 높은 두 건물은 경남건설의 ‘랜드마크72’와 롯데건설의 ‘롯데센터 하노이’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상당수도 입점해 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이 쌍용건설이 지은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전망대를 올랐듯 주요 관광지를 방문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글로벌 미디어 정보분석업체인 멜트워터는 싱가포르가 160억원을 들였지만 정상회담으로 누린 홍보 효과는 비용의 40배에 육박하는 6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 기업 관계자는 25일 “북미 정상이 현지 공장이나 매장, 광고판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고마운 일”이라면서 “제조업 기업은 주로 수출을 많이 하지만 베트남 내수를 겨냥한 유통업계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노이 현지 교민들도 회담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노이한인회는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 등과 함께 27~28일 회담장 인근에서 기념 모자와 한반도기를 나눠 주고 거리 응원을 할 계획이다. 교민 곽동훈씨는 “한류 열풍과 박항서 감독의 선전으로 베트남에서 호감을 쌓았던 한국이 이번 회담으로 이미지를 더욱 개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역효과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베트남에서는 한국 등 외국 기업이 인도 등지로 빠져나가는 흐름에 대한 경계감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삼성전자는 베트남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베트남은 국제사회에 경제적 성과를 보여 주는 컨벤션 효과를 노릴 것”이라면서도 “북한에 뺏길 수 있는 한국 기업 공장보다는 베트남 기업 공장을 소개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하노이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그랜드캐니언 추락 학생 아버지 “부잣집 절대 아니다”

    그랜드캐니언 추락 학생 아버지 “부잣집 절대 아니다”

    그랜드캐니언 추락 사고 뒤 22일 귀국…52일만사고 학생 아버지 “귀국 후 관심 거둬주길” 지난해 말 미국 그랜드캐니언에서 추락사고를 당한 대학생 박준혁(25)씨가 사고 52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22일 외교부와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박씨는 전날 오전(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해 이날 오후 4시 20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22일 새벽 한국에 도착하는 항공편이었지만 라스베이거스 현지 폭설로 인해 입국시간이 늦어졌다. 이송 비용은 대한항공에서 지원했다. 당초 에어 엠블런스를 검토했지만 이송비용이 2억원에 이르러 부담이 커졌고 박씨가 어느 정도 회복하면서 대한항공 민항기로 이송했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좌석 8개를 연결해 박씨가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각종 의료 장비 등을 갖춰 박씨를 이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지난해 12월 30일(현지시간) 미국 그랜드캐니언에서 추락해 중태에 빠졌다가 최근 의식을 회복했다. 당시 가족들이 미국 현지 치료비와 이송비용에 막대한 금액이 들어간다며 국가가 나서 달라며 국민청원에 글을 올려 도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해외여행 중에 개인이 당한 일에 국가 세금이 들어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과 개인의 부주의로 인해 사고를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의견이 빗발쳐 논란이 크게 일었다. 한편 박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귀국을 앞두고 YTN과의 통화에서 “알려진 것처럼 부잣집이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YTN에 따르면 그는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아들의 캐나다 유학도 어렵게 보냈고, 정말 돈이 많았다면 아들이 현지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를 벌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아들이 크게 다친 것도 힘든 상황인데 언론보도가 나올 때마다 가족을 향한 비난까지 쏟아져 견디기가 쉽지 않다는 심정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아버지는 YTN에 도움을 준 현지 의료진과 교민 관계자, 성금을 모금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언론의 관심은 귀국을 끝으로 거둬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곽병찬 칼럼] 보수 야당이 ‘20년 집권’하려면

    [곽병찬 칼럼] 보수 야당이 ‘20년 집권’하려면

    썩 내키는 표현은 아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 말대로 지금 자유한국당에는 “더이상 개혁보수가 설 땅이 없어 보인”다. 내키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없어 보이’는 게 아니라 없기 때문이요, 둘은 지금까지 과연 한 번이라도 ‘개혁보수’의 둥지가 됐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5·18 광주항쟁 관련자들을 단죄하고, 5·18을 법적으로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신군부의 주력인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단행한 것은 지금의 자유한국당 당사에 사진이 걸려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은 것이니 ‘개혁’이 아니라 ‘혁신’이라는 표현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남북 대결 구조라는 민족의 정수리에 박힌 말뚝을 더 깊이 박아 버렸다. 이에 관한 한 그는 이전 군사정권 이상으로 수구적이었다. 1994년 남북은 남북 정상회담을 약속했다. 대결 구조를 변화시킬 획기적 계기였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마자 그는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는 등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심지어 북미 제네바 합의 이행에 딴지를 걸었다. 북한 정권의 붕괴를 기대한 것이지만, 이전의 군사정권보다 더 졸렬했다. 북한을 ‘핵 무장 외길’로 내몬 배경 가운데 하나였다. 정수리의 말뚝을 더 깊이 박았으니, 다른 외과적 개혁은 의미를 갖기 힘들었다. 시비를 거는 게 아니다. 한국의 보수정당에 포기할 수 없는 기대가 있어 하는 말이다. 기대라니? ‘비정상체제’를 끝내기 위한 전당대회가 비정상 집단에 끌려가는 자유한국당의 막장 꼴을 보고도 기대 운운하다니, 제정신인지 의심받을 수 있겠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정수리의 말뚝을 뽑는 데 꼭 필요한 보수정당의 평화 이니셔티브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수는 없다. 독일 기독교민주당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기민당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주도하에 이루어지던 냉전의 첨병이자 동독 및 동구권과의 체제 대결에서 선봉이었다. 1969년 동독에 대한 포용 및 동구권과의 관계개선(동방정책)을 내세운 사회민주당에 정권을 내줬음에도 1980년대 초까지 이런 대결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1982년에야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대부분 수용하면서 재집권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동구권이 기민당 정권을 신뢰하고, 동독 주민들이 서독과의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이런 기민당의 변화 덕분이었다. 기민당은 1982년부터 지금까지 부패 스캔들로 7년간 정권을 내준 것을 제외하고 30년째 집권하고 있다. 우리는 전쟁까지 치렀으니, 보수정당의 평화 주도권은 더 중요하다. 보수정당이 아니면 대결을 통한 북 체제의 파괴라는 환상과 석고처럼 굳어 버린 대북 적대감을 완화하거나 해소하기 힘들다. 보수정당의 지지가 없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화로운 서울 답방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그들의 협조가 있어야 대한민국 열차는 북한을 지나 유라시아로 뻗어 갈 수 있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국가 정책으로 설 수 있다. 한반도 평화 국면은 보수정당에게 기회다. 길은 사민당이 깔았지만 결실은 기민당이 거둔 것처럼 블루오션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진보세력 20년 집권의 꿈’을 이야기했다면, 보수정당은 30년 집권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기회다. 피하거나 거스를 수 있는 흐름도 아니다. 이미 피할 수 없는 대세다. 북미 협상은 이제 어느 한쪽도 발을 빼기 힘들게 됐다. 이승만부터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적대적 남북 관계를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려 했던 타성 때문에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할 뿐이다. 정두언 전 의원이 말한 ‘집포당’(집권을 포기한 정당)의 행태는 그런 타성의 결과다. 자유한국당판 경기동부연합이라는 ‘한 줌도 안 되는’ 태극기부대에 얹혀 다니고, 유력 후보자가 그 눈치를 보느라 국회와 헌법재판소, 사법부 등 헌법기관의 의결과 결정을 부정하고, 김진태·김순례·이종명 등 ‘5·18 망언’을 입에 달고 다니는 자들이 당을 쥐락펴락하고…. 물론 숨어 있는 다수는 “우리가 대한애국당인가. 김진태 데리고 우리 당에서 좀 나가 달라”는 조대원 최고위원 후보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묻고 싶다. 보수정당은 집권할 의지가 있는가? 그러면 타성을 버리고 독일 기민당의 길을 가라. 20년 집권을 원하는가? 그러면 한반도 평화의 이니셔티브를 잡아라.
  • [단독] 하와이 한국전쟁 추모 공원에 ‘일본해’ 표기 지도 버젓이

    [단독] 하와이 한국전쟁 추모 공원에 ‘일본해’ 표기 지도 버젓이

    하와이 와이키키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자리한 국립태평양 기념묘지(National Memorial Cemetery of the pacific). 높이 150m의 원뿔 모양 화산 분화구에 조성된 국립묘지라는 점에서 펀치볼 국립 묘지공원으로 더욱 유명한 이곳에는 5만 4000여 구의 전사한 미국 장병이 안치돼 있다. 한국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등에 참전, 희생당한 병사들이 안치된 국립 공원 내부에는 병사들을 추모하는 교회가 설치, 매년 수 만여명의 추모객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 곳에서는 매년 6월 25일 한 차례씩 한국전쟁에 참전, 목숨을 잃은 미국 장병 8924명과 신원 파악이 불가한 무명 용사 495명의 영령에 대한 추모 행사가 진행된다. 이날 행사에는 하와이 거주 한인 교민들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여행사 인솔 하에 하와이를 찾은 단체 여행객들까지 참여하는 등 뜻 깊은 행사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바로 공원 중심의 ‘레이디 콜롬비아 여신상'(Lady Columbia) 뒤로 조성된 다수의 전쟁 발발 과정 및 전투 경과 과정, 전쟁 피해 상황 등에 대한 설명을 게재한 지도에 ‘일본해'(Sea of japan)라는 명칭이 게재돼 논란이다. 한국전쟁과 전쟁에 참여한 이들을 기리는 국립공원을 찾은 이들이 ‘동해'(the East Sea)라는 명칭 대신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가 한국전쟁과 참전 용사에 대한 추모 장소에 버젓하게 게재돼 있는 셈이다 더욱이 지난 1949년 완공된 이래 매년 수만 명의 추모객들이 찾는 이 곳에서 약 2m 규모로 제작, 기념관 벽면에 부착된 ‘일본해’로 표기된 전쟁 추모 지도가 수 많은 추모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이에 앞서 우리 정부는 지난 2013년 2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림비를 제작, 헌사한 바 있다. 당시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을 기념해 국가보훈처에서 제작, 헌사한 기림비에 새겨진 지도에는 ‘동해’라는 명칭으로 게재돼 있다. 우리 정부가 제작한 해당 기림비 외에 펀치볼 국립공원 내에 설치된 모든 십 수개의 지도에 ‘일본해’로 표기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특히 이 곳을 찾는 추모객 중에는 국방대학교 교육생 70여명과 한국에서 찾아온 각종 단체, 협회 등 전쟁 시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사회 다방면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펀치볼 국립 묘지가 조성된 호놀룰루 시 일대에는 우리 교민 5~6만 명이 밀집, 거주해오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 일대에는 와이키키 해변, ‘다이아몬드 헤드’와 ‘펀치볼 분화구’ 등 관광 명소가 자리해 있다는 점에서 펀치볼 국립 묘지를 경유해 여행하는 세계 각 국의 관광객들의 수가 상당하다. 실제로 호놀룰루 시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의 수는 연평균 22~2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전쟁에서 희생당한 참전 용사와 그 신원 조차 확인할 수 없는 탓에 전사 후에도 여전히 유족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의 기리는 장소에 ‘일본해’로 게재된 전쟁 추모 지도를 마주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상황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우세하다.이와 관련, 최근 아베 일본 총리가 ‘일본해’ 표기에 대해 국제 사회의 유일한 호칭이라며 변경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 ‘일본해’ 표기 논란은 쉽게 사그라 들지않을 전망이다. 지난 12일 국회 중의원 예산심의회에 참여한 아베 총리는 “일본해는 국제 사회에서 확립된 유일한 호칭으로, 이를 변경할 필요성이나 근거가 없다”면서 “이를 국제 기관과 국제 사회에 계속해서 단호하게 주장해 올바른 이해와 우리나라(일본)에 대한 지지를 요구할 것”이라고 ‘일본해’ 표기 논란에 불을 지핀 바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동해’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 일본과의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는 동해-일본해 동시 표기를 주장해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일본해 표기 개정 문제를 담당해오고 있는 국제수로기구(IHO) 측은 세계 각국 지도 제작의 지침이 되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 개정 추진 시 한국 정부가 ‘일본해’ 표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에 대해 일본에 ‘관계국(한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와이=임지연 통신원 cci2006@naver.com
  • [단독] “한국은 좋은 나라” 美교포 ‘건강보험 먹튀’ 파문

    [단독] “한국은 좋은 나라” 美교포 ‘건강보험 먹튀’ 파문

    “건강검진도 공짜…우리나라 너무 좋아”미국 여성 영주권자, 최근 건보 허점 공개교포들 “편법 진료 한국에 신고해야” 비판해외이주 신고해야 확인…제도적 보완 필요최근 정부가 외국인과 재외동포 대상의 ‘건강보험 먹튀’ 방지 방안을 마련했지만,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미국 교포사회에서 공개돼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대다수 해외 교민들은 “고국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한국 건보공단에 신고하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제도적 한계로 일부 사례는 재외동포의 양심에 기댈 수 밖에 없어 근본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6일 서울신문 제보에 따르면 미국 영주권자로 추정되는 여성 A씨는 최근 한인 커뮤니티인 ‘미시 USA’에 “건강보험에 관해 내가 알게 된 정보를 알려드리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법이 바뀌어서 한국에서 6개월이 지나야 (건강보험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었는데, 결과만 말씀 드리면 남편과 저 둘 다 바로 건강보험을 적용받았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18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외국인 최소 체류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외국인과 재외동포는 6개월 이상 체류해야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단기체류하면서 값비싼 건강보험 진료나 수술을 받고 출국해버리는 이른바 ‘건강보험 먹튀’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외국인 지역가입자 건강보험 재정 적자는 2013년 935억원에서 2017년 1978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반면 외국인 직장가입자 건강보험 재정은 2017년 기준으로 2490억원 흑자다. 유독 건강보험 먹튀 사례가 많은 외국인 지역가입자를 위해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 규제를 손쉽게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A씨는 “건강보험공단에 대표전화로 연락하면 주민번호를 입력하라고 나오는데, 저희는 유학생으로 나왔다”며 “유학생이나 관광비자로 온 분들이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따고 바로 국적상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입국) 다음날 바로 건강보험에 연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처음부터 한국에서 이민으로 나간 분들은 영주권자여도 (건강보험 혜택을 바로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보통 가족들의 건강보험에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걸 정지시킨 것이었는데 도착 즉시 전화해서 풀면 바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행정안전부에 해외 이주 신고를 한 뒤 출국해 영주권, 시민권을 취득했거나 현지에서 영주권, 시민권을 취득한 뒤 외교부(재외공관)에 해외 이주 신고를 한 사람 중심으로 이주 여부를 파악한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이주 신고를 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국적상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장기 출국 중인 내국인과 같이 관리된다”며 “내국인이 1개월 이상 출국하면 급여정지 대상이고, 재입국해 급여정지 해제신고를 하면 입국일부터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씨의 주장대로 해외이주 신고를 하지 않으면 건강보험 자격을 정지시켰다가 바로 풀 수 있는 허점이 있는 것이다. A씨는 이런 허점을 악용해 ‘국가건강검진’ 방법까지 알아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년마다 건강보험에서 종합검진을 무료로 해주는데 50세가 되면 대장내시경까지도 무료로 된다”며 “건보공단 직원이 당신의 주민번호로 정확하게 다 알려준다”고 전했다. 심지어 그는 게시글에서 “(상담원에게) 내가 시민권자인데 어떻데 가능하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절대 공항에서 국적상실 신고 하지말고 건강보험에 연결해놓고 하라고 알려줬다”고 주장했다. 다만, 건보공단 상담원이 실제로 A씨에게 이런 꼼수를 알려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A씨는 “우리나라 너무 좋다. 친절하고 어떻게든 도와주시려고 알아봐주고 복지가 너무 좋은 것 같다. 남편은 시민권 딴 것을 후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글이 공개되자 교포사회에서는 비판 여론이 크게 일었다. 이 내용을 서울신문에 제보한 B씨는 “미국 시민권을 딴 사람은 한국 국적 상실 신고를 의무화해 한국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보도라도 나오면 해당 부처가 좀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해서 제보한다”고 밝혔다. 미시 USA에도 A씨의 행동을 질타하는 의견이 빗발쳤다. 한 미국 교포는 “그동안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았고 6개월 체류할 것도 아닌데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것은 잘못 아니냐”며 “이런 정보는 (교포들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교포는 “한국에서 20년 동안 세금 한푼 안 냈으면서 불법으로 건강보험 혜택이나 받을 생각을 하느냐”며 “편법, 불법으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을 조치해달라고 한국에 신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이집트서 한국인 여행객, 낙타 체험 중 추락해 숨져

    이집트서 한국인 여행객, 낙타 체험 중 추락해 숨져

    이집트에서 한국인 여행객이 낙타에서 떨어져 숨졌다. 7일(현지시간) 이집트 주재 교민과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이집트의 홍해 휴양도시 후루가다 인근 사막에서 한국인 여성 A(60)씨가 낙타타기 체험 중 땅으로 떨어졌다. 추락 직후 의식을 잃은 A씨는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병원으로 이송된 뒤 사망 판정을 받았다. 현장에 있던 다른 한국인 관광객은 “앉아 있던 낙타가 갑자기 일어나 몇 차례 뛴 뒤 A씨가 추락했다”고 전했다.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시신을 검안한 의사는 사망 원인을 뇌 손상으로 보고 있다”면서 “머리가 먼저 떨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사고 현장에서 A씨를 비롯한 한국인 관광객들은 낙타 타기 체험에 나서면서 헬멧은 쓰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국내 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통해 다른 한국인 20여명과 함께 이집트를 여행 중이었다. 이집트를 찾는 관광객들은 카이로 인근 기자 지역 피라미드 유적지 등에서 낙타 타기를 많이 즐긴다. 그러나 낙타가 일어서면 높이가 2m를 넘기 때문에 추락사고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우리의 영웅, 잊지 않겠습니다” 세계 곳곳 김복동 할머니 추모 물결

    “우리의 영웅, 잊지 않겠습니다” 세계 곳곳 김복동 할머니 추모 물결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 “정체성 갖고 역사 배워야 한다는 말씀 기억할 것” 호주 분향소 “힘 모아 恨 풀어드리자” 뉴질랜드 위안부 피해 사진전 옆 분향소 美·英 등서도 빈소 운영·추모행사 계획“김복동 할머니는 우리의 영웅입니다. 평화를 위한 할머니의 열정과 노력, 잊지 않겠습니다.”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운동가였던 고 김복동 할머니에 대한 추모 열기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전쟁 피해자들을 도왔던 뜻을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선 재일조선인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해 온 피해자였지만, 핍박받는 재일조선인과 지진 등 재해를 당한 일본인들에겐 꾸준히 도움을 줘 왔다. 일본 오사카의 나카오사카 조선초급학교의 김채현 교장은 30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뿐 아니라 일본 내 여러 학교들이 김복동 할머니의 사랑을 받았다”면서 “교직원과 학생들이 별세 소식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장학재단 ‘김복동의 희망’을 만들어 재일조선인 학생들을 도와 왔다. 지난해 9월 태풍 ‘제비’ 탓에 재일조선인 학생들이 다니는 오사카 지역 학교 곳곳이 무너지자 한달음에 달려가기도 했다. 김 교장은 “학생들이 마음을 담아 편지와 사진을 할머님께 보냈었다”고 했다. 할머니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학생들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김 교장은 “역사를 배워야 한다”던 할머니의 말씀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일본에 살더라도 조선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가질 수 있도록 역사를 잘 가르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재일한국민주여성회 역시 “고귀한 할머니의 삶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모범”이라며 추모의 뜻을 전했다.호주 시드니에는 작은 분향소가 차려졌다. 시드니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위해 힘쓴 시드니 평화의소녀상 실천추진위원회가 마련한 자리다. 갑작스레 마련됐지만 3시간 만에 30여명의 교민이 할머니를 함께 기억하기 위해 모였다. 방명록엔 “끝까지 싸워 일본의 사과를 받아 내겠다. 늦게 펴서 더 아름다운 꽃, 목련 꽃 김복동 할머님 편히 잠드소서”와 같은 교민들의 추모 글귀가 빼곡히 적혔다. 전은숙 시드니 평화의소녀상 실천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은 “위안부 할머님들이 한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마음이 쓰인다”면서 “활동을 많이 하신 김 할머니의 빈자리가 큰 만큼 추모의 자리를 만들어 함께 뜻을 기리고 싶다는 교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전 사무국장은 “해외 곳곳에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동포들이 많다. 함께 힘을 모아 할머니의 한을 꼭 풀어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각 지역에서도 분향소가 마련됐다. 워싱턴희망나비는 페어팩스에서 이미 빈소를 운영 중이고 시카고여성의전화에서도 곧 분향소를 마련할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 사회정의교육재단(ESLF)은 정의기억연대를 통해 “할머니는 희망을 잃지 말고 함께 힘을 모아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시며 국제연대 활동을 해 오셨다”며 추모사를 전달했다. 뉴질랜드에선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사진전 한켠에 작은 분향소가 마련됐다. 이 전시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전 세계적인 전쟁 성폭력과 연관된 문제임을 알리기 위해 현지 교민들이 오클랜드 시청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비보로 마련된 분향소에는 교민들은 물론 현지 외국인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해당 전시회를 개최한 더좋은세상 뉴질랜드 한인 모임의 곽상열씨는 2017년 한국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할머니를 만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사진으로 뵈었을 때보다 야윈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면서 “활동가들을 안아 주며 고맙다고 하신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교민들은 뉴질랜드에서도 평화의소녀상 건립을 위한 활동을 통해 할머니의 뜻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영국 런던에선 2월 초 할머니를 위한 작은 추모 행사를 계획 중이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를(Justice for Comfort Women) UK’에서 활동 중인 대비 김씨는 “위안부 할머님 부고가 들릴 때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추모 침묵시위를 해 왔다”면서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할머니에게 애도를 표할 방법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할머니는 전쟁 피해자 고통 어루만진 우리의 영웅입니다”

    “할머니는 전쟁 피해자 고통 어루만진 우리의 영웅입니다”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 “정체성 갖고 역사 배워야 한다는 말씀 기억할 것” 호주 분향소 “힘 모아 恨 풀어드리자” 뉴질랜드 위안부 피해 사진전 옆 분향소 美·英 등서도 빈소 운영·추모행사 계획 “김복동 할머니는 우리의 영웅입니다. 평화를 위한 할머니의 열정과 노력, 잊지 않겠습니다.”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운동가였던 고 김복동 할머니에 대한 추모 열기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전쟁 피해자들을 도왔던 뜻을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선 재일조선인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해 온 피해자였지만, 핍박받는 재일조선인과 지진 등 재해를 당한 일본인들에겐 꾸준히 도움을 줘 왔다. 일본 오사카의 나카오사카 조선초급학교의 김채현 교장은 30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뿐 아니라 일본 내 여러 학교들이 김복동 할머니의 사랑을 받았다”면서 “교직원과 학생들이 별세 소식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장학재단 ‘김복동의 희망’을 만들어 재일조선인 학생들을 도와 왔다. 지난해 9월 태풍 ‘제비’ 탓에 재일조선인 학생들이 다니는 오사카 지역 학교 곳곳이 무너지자 한달음에 달려가기도 했다. 김 교장은 “학생들이 마음을 담아 편지와 사진을 할머님께 보냈었다”고 했다. 할머니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학생들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김 교장은 “역사를 배워야 한다”던 할머니의 말씀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일본에 살더라도 조선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가질 수 있도록 역사를 잘 가르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재일한국민주여성회 역시 “고귀한 할머니의 삶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모범”이라며 추모의 뜻을 전했다. 호주 시드니에는 작은 분향소가 차려졌다. 시드니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위해 힘쓴 시드니 평화의소녀상 실천추진위원회가 마련한 자리다. 갑작스레 마련됐지만 3시간 만에 30여명의 교민이 할머니를 함께 기억하기 위해 모였다. 방명록엔 “끝까지 싸워 일본의 사과를 받아 내겠다. 늦게 펴서 더 아름다운 꽃, 목련 꽃 김복동 할머님 편히 잠드소서”와 같은 교민들의 추모 글귀가 빼곡히 적혔다. 전은숙 시드니 평화의소녀상 실천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은 “위안부 할머님들이 한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마음이 쓰인다”면서 “활동을 많이 하신 김 할머니의 빈자리가 큰 만큼 추모의 자리를 만들어 함께 뜻을 기리고 싶다는 교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전 사무국장은 “해외 곳곳에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동포들이 많다. 함께 힘을 모아 할머니의 한을 꼭 풀어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각 지역에서도 분향소가 마련됐다. 워싱턴희망나비는 페어팩스에서 이미 빈소를 운영 중이고 시카고여성의전화에서도 곧 분향소를 마련할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 사회정의교육재단(ESLF)은 정의기억연대를 통해 “할머니는 희망을 잃지 말고 함께 힘을 모아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시며 국제연대 활동을 해 오셨다”며 추모사를 전달했다. 뉴질랜드에선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사진전 한켠에 작은 분향소가 마련됐다. 이 전시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전 세계적인 전쟁 성폭력과 연관된 문제임을 알리기 위해 현지 교민들이 오클랜드 시청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비보로 마련된 분향소에는 교민들은 물론 현지 외국인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해당 전시회를 개최한 더좋은세상 뉴질랜드 한인 모임의 곽상열씨는 2017년 한국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할머니를 만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사진으로 뵈었을 때보다 야윈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면서 “활동가들을 안아 주며 고맙다고 하신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교민들은 뉴질랜드에서도 평화의소녀상 건립을 위한 활동을 통해 할머니의 뜻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영국 런던에선 2월 초 할머니를 위한 작은 추모 행사를 계획 중이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를(Justice for Comfort Women) UK’에서 활동 중인 대비 김씨는 “위안부 할머님 부고가 들릴 때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추모 침묵시위를 해 왔다”면서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할머니에게 애도를 표할 방법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이매리, 아시안컵 8강전 카타르 응원 포착 “마음의 상처→기회준 곳”

    이매리, 아시안컵 8강전 카타르 응원 포착 “마음의 상처→기회준 곳”

    방송인 이매리가 지난 25일 2019 UAE AFC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의 경기가 열리던 날 카타르가 응원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28일 축구전문지 ‘베스트 일레븐’ 보도에 따르면 당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이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는 6000명이 넘는 한국 교민이 태극전사들을 응원했는데, 이매리가 한국 응원석에서 한국이 아닌 카타르를 응원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매리는 카타르 국기를 형상화한 원피스를 입고 카타르 국기를 펼치며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 카타를 응원했다. 특히 경기 후에는 관중석 맨 앞으로 달려가 카타르 선수들을 연호하기도 했다고. 이매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카타르를 응원하게 된 계기에 대해 “한국에서 방송활동을 하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자신에게 기회와 활력을 준 곳이 카타르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2011년 SBS 드라마 ‘신기생뎐’ 이후 건강 악화 등으로 방송활동을 접었다. 한국외대에서 인도어를 전공한 그는 이후 인도와 아랍권 친구들에게 큰 힘을 얻었고 카타르 정부관계자와 교류를 통해 2014년 카타르 수교 40주년 맞아 카타르 월드컵 성공개최 위한 콘서트 진행을 도왔다고 한다. 한편 이매리는 1994년 MBC 3기 공채 전문 MC로 데뷔해 주로 MC로 활약하다가 연기자로 전향해 드라마 ‘연개소문’ ‘인순이는 예쁘다’ ‘내조의 여왕’ ‘신기생뎐’ 등에 출연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장맛 좀 아는 스페인 셰프 “아직도 김치·비빔밥만? 콩 소스로 한식 세계화!”

    장맛 좀 아는 스페인 셰프 “아직도 김치·비빔밥만? 콩 소스로 한식 세계화!”

    세계 무대에서 식재료 ‘콩’이 이렇게 주목받은 적이 있을까. 과거 건강 식품이나 아시아 음식의 상징으로만 여겨졌던 콩이 글로벌 푸드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적인 채식 열풍에 따라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대체육이 각광을 받고 우유 대신 두유, 버터 대신 두부를 사용하는 ‘비건 레스토랑’이 속속 생겨나면서 ‘콩’이 세계인들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어서다. 이런 흐름이 한식의 세계화를 노리는 우리에겐 기회라고 말하는 셰프가 있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엘불리에서 수석 셰프를 지낸 뒤 최근 샘표가 운영하는 미국 뉴욕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의 디렉터로 합류, 한국의 ‘콩 발효 소스’를 연구하는 자우마 비아르네스를 지난 22일 서울 중구 샘표 우리맛공간에서 만났다. ●채식 열풍 등 효과 … 미국서 국내 두부 인기 그를 만나자마자 두부 이야기부터 꺼냈다. 최근 국내 유통업계에서 풀무원USA가 교민과 아시아계를 상대로 한 마케팅에서 벗어나 주류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두부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한 결과 현지 두부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73.8%)을 차지했다는 뉴스가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식품 트렌드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뉴욕에서 활동하는 그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서양인들에게 ‘대두’라는 생소한 식재료가 좀더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며 “두부가 대두의 대중화를 이끈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건강이나 환경 등의 철학을 중요시하면서 동물성 식재료를 줄이고, 식물성 식재료를 더 많이 선호하는 분위기인데 두부가 가장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식물성 단백질 대표 음식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같은 콩 제품이어도 간장, 된장 등 ‘장’류도 두부처럼 대두로 만들어졌다는 인식은 아직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부처럼 모든 음식의 베이스가 되는 소스인 한국의 콩 발효 ‘장류’도 세계화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콩 발효 소스가 채식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각종 나물을 콩 발효 소스에 무친 한국식 샐러드 요리는 고기 소비가 점차 줄어들 미래 식품 트렌드에도 딱 맞다”고 말했다. ●외국서 한식 기본으로 한 퓨전 고급 식당 인기 그가 ‘장류의 세계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글로벌 무대에서 최근 10여년간 변화한 한식의 위상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예전의 한국인들은 비빔밥과 김치를 외국인들에게 먹이면서 메뉴 자체를 알리려고 했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인 한국계 셰프들이 활동하면서 국제 무대에서의 한식 소비 패턴도 변하기 시작했다. 글로벌한 사고 방식을 가진 ‘밀레니얼 셰프’들이 대부분 한식 베이스의 퓨전 파인다이닝(고급식당)을 운영하면서 한식을 찾는 사람들은 더이상 비빔밥, 김치만을 외치지 않게 됐다. 이들 파인다이닝에선 음식을 만들 때 간장, 된장 등을 응용한 한국 전통 콩 발효 소스를 사용했고,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메뉴를 즐겼다. 그가 한식의 존재를 인지한 것도 엘불리에서 수석 셰프로 일하던 시절 파인다이닝 업계 셰프들의 네트워크 때문이었다.●올리브유처럼 ‘장’도 전 세계 음식과 조화 그는 이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진정한 음식의 세계화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세계인들이 올리브유로 꼭 이탈리아와 스페인 음식만을 요리하지 않듯 한국의 콩 발효 소스로 파스타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억지로 된장찌개를 먹이며 익숙하지 않은 것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를 해소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진짜 세계화가 아닐까.” 그가 카탈루냐주 정부의 지원을 받는 스페인 요리과학연구소 수석 셰프 자리를 그만두고 지난해 9월 뉴욕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에 합류한 이유다. 실제로 그는 스튜디오에서 한국의 장류를 활용해 프랑스 디저트인 크렘 브륄레를 만들거나 파스타를 요리하는 레시피를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그는 “이미 유럽에선 한국의 콩 발효 소스를 쓰는 파인다이닝이 많아지고 있다”며 “글로벌 채식 트렌드 속에서 한국의 장류도 머지않아 두부처럼 대중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올해는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모르는 사람 많아 안타까워”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올해는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모르는 사람 많아 안타까워”

    ‘황사손’ 이원이 말하는 고종 승하 100주년“올해가 고종광무태황제 승하 100주년입니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인 것을 알면서도 만세운동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고종 황제의 붕어 100주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황사손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21일 오전 6시30분쯤 일제에 의해 독살되셨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이지만 해마다 이날 정오에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에 가서 제향을 봉행합니다. 고종 황제가 당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는데, 나라를 잘 못 이끌었다는 오해를 아직도 받고 있습니다. 역사교육이 잘 못된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21일 정오 고종 왕릉인 남양주서 ‘홍릉제향’ 봉행 그를 만나면 무엇부터 질문할까 고민했다. ‘군주국이 아닌 나라에서 황위 계승자 제1순위로서의 삶’을 먼저 물어볼까하다 ‘고종 사망 100주년의 소회’를 물었다. 황사손(皇嗣孫·(대한제국)황실의 적통을 잇는 후손) 이원(57·본명 이상협)은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5대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 총재,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총재도 겸하고 있다. 고종의 증손자인 이원 총재는 2005년 영친왕계의 이구 황태손이 타계한 이후 3년상을 치르고 그의 계자(系子)로 입양돼 황가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 고종 황제의 승하 당시 어땠나요. -> 고종이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역적 매국노들은 눈엣가시 같은 고종을 독살했든 겁니다. 1919년 1월 21일 아침 6시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서 한약·식혜·커피를 드시고 30여분만에 시해되셨습니다. ‘윤치호 일기’에 의하면 황제는 식혜를 마신지 30분도 안 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사후에 보니 혀와 치아가 타 없어지고, 30cm 가량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으며, 온몸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는 것입니다. 독살됐다는 확실한 증거 기록입니다. “고종, 21일 아침 6시 한약·커피·식혜 마시고 승하심한 경륜 후…혀·치아 타 없어져 독살 시해 증거고종 시해 이유…항일독립 망명정부 차단하려고”- 고종 승하에 백성들은 왜 ‘만세(萬歲)’라고 외쳤을까. -> 만세가 요즘이야 축하나 환호할 때 외치는 소리이지만, 그때만 해도 황제에게만 사용하는 경칭이었고, 죽음이란 단어를 꺼렸습니다. 국호가 ‘대한제국’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의 수장이었던 황제가 억울하게 독살당하자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한 백성들이 공분을 일으킨 것입니다. 고종의 항일 투쟁의 뜻을 기리는 백성들이 인산일(因山日·왕과 왕가의 장례일)인 3월 3일에 앞서 자발적으로 모여 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인산일에 맞추려다 국장날 소요는 예가 아니다고 미루고, 전날인 3월2일은 일요일이어서 하루 늦췄다고 합니다. 결국 1일로 날짜가 맞추진 것이 3·1독립만세운동입니다. - 고종의 독립운동 가운데 일반인이 잘 모를 법한 이야기는. ☞ 고종 황제는 1897년 황제국을 선포한 것도 지금보면 여러모로 의미있는 일입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1894년 갑오개혁때 공식적인 국문 즉 ‘나랏글’로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근대 문명의 초석이 된 겁니다. 한글을 이용한 잡지와 신문 발간도 적극 권장했지요.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도 출간도 가능했던 겁니다. 또 일본보다 2년 빠른 1884년 미국 에디슨전기회사와 협약해 창덕궁에 전기등소를 설치하고 종로에 전차를 도입했습니다. 종로를 아시아에서 가장 번쩍이며 화려한 명소로 탈바꿈시키셨던거죠. 친일역적 매국노들이 고종 황제를 철저히 암군(暗君·어리석고 아둔한 군주)으로 묘사했지만 최근 학자들에 의해 개명군주(開明君主)로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고종, 한글 공식 나랏글 선포…개명군주 역할 많아대한광복군정부 수장…항일 구국 독립운동 구심점- 대한광복군정부에 대해 설명하면. ☞ 고종 황제는 1907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황위에서 강제로 퇴위되셨습니다만 1914년 이상설(1871~1917)을 중심으로 설립된 첫 망명 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의 수장이 되어 항일구국 운동을 지원하셨습니다. 대한광복군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으로, 다시 대한민국국군의 모체가 됩니다. 간접적인 독립활동에 한계를 느끼신 황제는 이상설과 이회영(1867~1932)의 계획 아래 중국에 망명해 항일구국 독립투쟁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려 하셨습니다. 이런 망명 계획을 첩보로 입수한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민병석·송병준·이완용·윤덕영·한상학이 고종의 망명을 차단하려고 암살을 한 겁니다. - 군주국이 아닌 공화국에서 황사손의 역할은. ☞ 가장 대표적인 직무는 종묘대제·사직대제·환구대제(대한제국 황실 선포 및 국태민안 기원 제사)·조경단대제(조선왕실 시조 즉 전주이씨 시조묘 제사) 그리고 연중 66회의 왕릉제향의 초헌관(初獻官)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연간 70번 거행되는 제사에서 왕과 왕비 신위에 술잔을 처음으로 올리는 제관 역할을 하는 겁니다. 왕실 초헌관은 조선시대 때부터 국왕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만 이구 황태손 저하를 이어 제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조선왕실과 대한제국황실의 그 유구한 역사·문화적인 유산을 지금도 계승하고 있으며, 대한제국황실이 그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공화국이 된 나라에서 황제 계승자라는 직위는 다른 분들에겐 사실 설명하도 이해를 잘 못하는, 그래서 외로운 면이 있습니다. “황사손 역할, 연중 70회 대제·제향 초헌관 맡아유구한 역사 계승…대한민국 정통성 뒷받침 자부”- 황실 최고령인 이해경씨 환국은. ☞ 제게는 고모님이 되시는 해경 황녀님은 1930년 태어나셨서 올해 구순이 됩니다. 고종 황제의 다섯째 왕자이신 의친왕(1877~1955)의 5녀입니다. 조선왕실 법도로 보면 의친왕의 공주가 되고, 대한제국 황실 법도로 보면 황녀가 됩니다. 195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신 이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학 사서로 조선의 기록을 많이 발굴해 내셨습니다. 1996년 정년퇴직하신 이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거주하고 계십니다. 뉴욕의 한인사회 주요 행사에 참석하시며 교민들에게 정신적 구심점이 된다 들었습니다. 뉴욕에서는 황녀라는 호칭보다 ‘한국 공주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계십니다. 독립한 조국이 있는데 이역만리에서 홀로 생활하시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더 늦기 전에 환국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환국시 친모이신 의친왕비가 생활하셨던 안동별궁이나 사동궁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황실의 상징성을 고려해 이구 황태손 저하와 영친왕비, 그리고 덕혜옹주께서 기거하셨던 창덕궁 낙선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황사손으로 보람을 느꼈던 일은. ☞ 2017년과 작년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관계자들과 오하이오주에 사는 고종 황제의 주치의였던 호러스 알렌 박사 후손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소개되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관계자들은 저를 ‘His Imperial Highness’(저하)로 경칭해 놀랐습니다. 또 알렌 박사의 고향에선 ‘한국의 황태자가 온다’는 소문에 알렌 박사의 증조카 며느리의 집에 동네사람들이 저를 만나려 몰려왔습니다. 그들도 저를 ‘Your Highness’로 높여 불러주었습니다. 한 이웃은 오찬 음식점까지 자신의 자녀들을 데려와 소개시켜주면서 “오늘 한국의 황태자를 알현하는 것은 저희 가족에게는 큰 영광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서의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됐고 또한 큰 위로도 받았습니다. 황사손에 대한 마땅한 영어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해외왕실교류수석위원이신 김영관 박사는 제1위 황위 계승자이니 영어로 ‘The Crown Prince His Imperial Highness’(황태자 저하)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고, 현재 영어로는 그렇게 호칭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알렌 후손들로부터 환수된 문화재는 서울시에 기증하였습니다. “황실 최고령 이해경 황녀, 늦기 전에 환국해야사직대제·환구대제·왕릉제향 유네스코 등록 추진”-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은. ☞ 올해는 특히 국민을 섬기며 대한민국의 문화 융성에 이바지하려고 합니다.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이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가장 큰 이유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즉, 민주공화정에서도 종묘에 모셔진 역대 왕과 왕비의 직계손이 제향에 초헌관으로 참여함으로서 그 뿌리와 원형이 인정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직대제와 환구대제 그리고 왕릉제향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올해도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뉴욕한인축제나 에딘버러축제에서 어가행렬을 재현하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종묘제례악이나 어가행렬은 단순한 제례의식의 절차를 뛰어 넘어 대한민국만이 보유한 역사·종교·문화 유산으로서 그 가치가 지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우리의 역사문화 유산에 큰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또 알렉 박사의 후손들을 올해 직접 방문해 작년에 환수하지 못한 나머지 유물 환수와 숨겨진 역사적 사실들은 발굴할 계획입니다. 이런 여정을 영상으로 남길까합니다. 그는 황사손이라고 하지만 궁궐이 아니라 서울 성북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황사손이 되기 전에는 그도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상문고와 뉴욕공과대(NYIT)를 마치고 미국 케이블사 홈박스오피스(HBO)의 PD로 일하다 1990년 귀국했다. 금강기획을 거쳐 현대방송 PD, 현대홈쇼핑 디지털방송본부장으로 있다가 황사손으로 선정됐다. ‘직장인으로 승승장구했는데, 미련이 많겠다’고 하자 그는 “하늘의 부름이죠”라며 말끝을 흐렸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서울광장] 노영민 실장이 성과를 내려면/이종락 논설위원

    [서울광장] 노영민 실장이 성과를 내려면/이종락 논설위원

    노영민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이 임명 하루 만인 지난 9일 자신이 지휘할 청와대 비서실의 3대 원칙으로 ‘성과·경청·규율’을 제시했다. 노 실장은 청와대 전 직원에게 발송한 서신에서 “성과를 내는 청와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부터 경제·민생 정책에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제시한 상황에서 비서진도 이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킨 셈이다.그러나 비서실장이 취임 일성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포부를 밝히자 기대감에 앞서 우려 섞인 반응도 적지 않다. 임종석 비서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 재임 시 청와대가 정부 부처 위에 군림하고, 국회를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이번 2기 청와대 비서실은 부처에 최대한 자율권을 보장하고, 국회와의 소통에 적극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 많았다. 그런데 노 실장이 취임하자마자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하니 곱게 들릴 수가 없었을 테다. 특히 노 실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을 정도로 최측근이어서 친정체제를 구축한 셈이다. 친정체제는 대통령이 편하게 지시하고 기댈 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 그립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상존한다. 다행히 노 실장이 취임 직후 국회를 찾아 소통 강화 의지를 전한 것은 기대할 만하다. 문제는 부처와의 관계 설정이다. 청와대는 노 실장 취임 전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원톱’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시장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천거한 홍 부총리가 문 대통령의 공약 수립뿐 아니라 현 정부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해 온 김수현 정책실장에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불식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노 실장의 절박한 메시지는 정책실장뿐만 아니라 비서실장까지 부처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로 들릴 수도 있다. 서둘러 청와대와 부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해 줘야 한다. 문 대통령은 노 실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비서실장도 경제계 인사를 만나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주문에 노 실장이 성과를 낼 수 있는 답이 있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늘리도록 경제활력을 내는 데 노 실장이 온몸을 던지는 길이다. 우리 경제는 연초부터 적신호가 켜졌다. 관세청 집계에 따르면 이달 10일까지 수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6% 급감했다. 장기간 실업 상태에 있거나 일감 찾기를 아예 포기한 인구가 지난해 250만명을 넘어섰다. 부정적인 기업관을 가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다니면서 우리 기업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1년 9개월 만인 2004년 11월 남미 순방 중에 브라질 교민 간담회에서 “한국이 발전한 진짜 이유를 브라질에서 새삼 깨달았다”면서 “한국 기업에 대해 다시 한번 평가하고 싶다”고 말한 뒤 적대적 기업 정책을 수정했다. 실제로 기업 관계자들은 “역대 정권 중 노무현 정권 때가 기업 하기가 제일 편했다”고 회고한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임기초 지지율이 20%대로 급전직하했다. 하지만 MB 정부는 ‘공생발전’ 등 친서민 정책을 추진하며 지지율을 단숨에 50%대까지 끌어올렸다. 정책 기조 변화를 통한 국정 운영에 성공한 사례다. 경제의 대기업 과잉 의존 체질을 바꿔 나가는 정책은 필요하다. 대기업의 갑질 행태와 재벌 3, 4세들의 철부지 일탈도 일벌백계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을 제쳐 놓고선 경제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 정부가 대기업을 협력 파트너로 삼아 법인세 인하 등의 당근책을 던져 주며 내수 진작과 수출을 독려하고 있다. 이런 외국기업들과 피말리는 ‘외로운 경쟁’을 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 바로 그 역할을 노 실장이 맡아야 한다. 노 실장은 3선의 의정 활동 기간에 산업통상자원위원만 6년을 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산업통상자원위원장도 맡았다. 국회 내 대표적인 ‘산업통’, ‘기업통’으로 통한다. 어제 가졌던 ‘기업인과의 대화’를 보여 주기식 이벤트로 끝내선 안 된다. 기업 애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노 실장이 진솔한 마음으로 기업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 대기업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화답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기업의 얼어붙은 마음을 열어젖혀야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노 실장은 명심했으면 한다. jrlee@seoul.co.kr
  • ‘낮기온 32도’ 호주오픈에 등장한 토끼모자…정현 경기 응원 관중

    ‘낮기온 32도’ 호주오픈에 등장한 토끼모자…정현 경기 응원 관중

    호주오픈 4강 신화의 정현(세계랭킹 25위)의 경기에 국내에서 유행 중인 ‘움직이는 토끼 털모자’가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현은 15일 호주 멜버른 멜버른파크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1라운드에서 브래들리 클란(미국·78위)을 3-2로 물리치며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정현의 승리에는 열렬한 응원도 한몫했다. 낮 최고기온 32도의 뜨거운 날씨에도 300여명의 멜버른 한국 교민과 한국에서 직접 원정 응원을 온 팬들이 관중석 절반 이상을 채웠다. 팬들은 고비 때마다 정현을 연호하고 “대~한민국” 응원 구호를 외쳤다. 관중석에는 국내에서 한참 인기를 끈 토끼모자를 쓴 팬들도 있었다. 중계카메라에 잡힌 팬들은 정현이 승리하자 토끼 귀를 들어올리며 기뻐했다.토끼모자는 이른바 ‘핵인싸템’(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려면 갖춰야 할 아이템)으로 불리며 올 겨울 크게 유행했다. 웃는 토끼 얼굴 양옆에 길게 늘어뜨린 발 끝을 누르면 귀가 쫑긋 올라간다. 움직이는 토끼모자는 청와대에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은 지상작전사령부 창설 부대기를 전달하고 준장 진급자에게 삼정검을 수여했다. 노경희 준장 진급예정자의 어린 딸은 토끼모자를 쓰고 무대에 나왔고 문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을 때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함께 토끼 귀를 번쩍 들어올려 웃음을 자아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풀무원 미국 두부시장 점령…점유율 74%·매출 988억원

    두부가 웰빙식품으로 주목받으면서 풀무원의 두부가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풀무원은 풀무원USA의 지난해 두부사업 매출이 8800만 달러(약 988억원)를 달성해 전년 대비 11.1% 성장했다고 13일 밝혔다. 미국 전체 두부시장 점유율은 73.8%으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미국 전체 두부시장도 전년 대비 9.3%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에서 육류를 대체할 식물성 단백질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풀무원의 미 두부시장 점령은 풀무원USA가 2016년 미국 두부 브랜드 나소야를 인수한 이후 교민과 아시아계를 상대로 한 마케팅에서 벗어나 주류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두부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 결과로 분석된다. 풀무원USA 조길수 대표는 “미국 두부시장 전망이 밝다”며 “지속적인 R&D 투자와 신제품 출시로 올해 자사 두부 매출을 12.3% 이상 증대시켜 1000억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양반·평민 나뉘어 기호·서북파 대립… 내분 중심엔 이승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양반·평민 나뉘어 기호·서북파 대립… 내분 중심엔 이승만

    [2부] 통합과 갈등:상하이 시기 ② 해체위기 몰린 임시정부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생겨난 세 개의 임시정부는 9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통합 임정은 행정력과 외교력을 갖춰 독립운동의 중추 구실을 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초심을 잃고 내부 갈등과 분열에 휩싸였다. 한줌도 안 되는 임정 권력을 두고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서 싸웠다. 몇몇은 갑오개혁(1894~1895) 때 사라진 양반·상민까지 거론하며 전근대적 계급의식을 보여줬다. 이 시기 임정은 ‘난파선’ 그 자체였다. ●통합정부 초기 비행대 운영 등 역량 총 동원 지난달 중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를 위해 찾아간 상하이 번화가 화이하이중루. 과거 프랑스 조계(외국인 자치구역)답게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이 남아 있어 젊은 세대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일대는 재개발이 마무리돼 도로나 건물이 정비됐지만 여전히 100여년 전 모습을 간직한 골목 하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바로 우리 역사학계에서 ‘푸칭리(보경리) 청사’로 부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다. 임정이 상하이를 떠나기 전인 1926~1932년 사용하던 곳으로 상하이 임정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기자와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보경리 청사가 있는 저 구역은 상하이 안에서도 지가가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중국 정부가 임정 청사 보전을 위해 개발을 막고 있다”며 “최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을 두고 양국 관계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이들이 여기를 지키는 것은 항일투쟁의 역사를 공유하는 우리나라를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노령정부와 중국 상하이정부, 서울의 한성정부가 모인 ‘통합 임정’은 설립 초기부터 독립운동 주도권을 쥐고자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국내 곳곳에 지하 행정조직을 갖추기 위해 연통제를 실시하고 비밀 통신망을 확보하려고 교통국도 운영했다. 이들 조직을 활용해 국민들에게 공문을 전달하고 독립전쟁 인력과 자금도 모았다. 파리강화회의(1919~1920)에 외교력을 집중해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알렸고,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선포해 무장투쟁을 독려했다. 기관지 독립신문(1919~1925)을 발간하고 한인교육기관인 인성학교(1917~1975)도 육성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비행사 양성소를 설치해 비행대를 운영했다.김희곤(65)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은 “이 정도면 초기 통합 임정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했다고 볼 수 있다”며 “특히 국가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 임정을 세워 외교 활동을 펼친 것은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행정부·의회 떨어져 미국서 혼자 활동 하지만 일제가 임정의 국내 연결망을 차단하면서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 본토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내분도 시작됐다. 가장 큰 문제는 리더 이승만(1875~1965)에게 있었다. 원래 상하이정부는 국무총리제였고, 통합 임정의 법통이 된 한성정부 역시 집정관과 국무총리가 중심인 집단지도체제였다. 이들은 정치권력이 한 사람에게 모이면 조선의 왕처럼 국가를 사유화할 수 있다고 여겨 대통령제에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이승만은 자신을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임정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대미 외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려고 미국인에게 친근한 표현을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판 세력은 “늘 1인자이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상 자신이 최고지도자라는 점을 알리고 싶어 의도적으로 오역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승만의 거처도 논란이 됐다. 그는 “대미외교에 주력하겠다”며 임정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미국에 머물렀다. 그는 3·1운동이 일어난 뒤인 1919년 8월 25일 한성정부 집정관총재 자격으로 워싱턴DC에 대미외교단체인 구미위원부를 세워 그곳에 기거했다. 행정부와 의회가 중국에 있는데 대통령이 혼자 미국에서 활동해 제대로 소통이 될 리 없었다. 임정은 각료 인선이나 주요 정책 시행 때마다 대통령 부재로 어려움이 컸다.이승만은 미국 교민에게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다. 1919년 12월~1921년 8월 지출액은 8만 9321달러였는데, 이 가운데 상하이 임정에 보낸 돈은 1만 6732달러로 전체 지출의 20%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대부분은 구미위원부 운영비와 이승만 자신의 활동비로 썼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임정은 구미위원부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그가 강하게 반발해 무산됐다. 국무총리 이동휘(1873~1935)는 그를 “독립정신이 불철저한 썩은 대가리”로, 내무총장 안창호(1878~1938)는 “정신병자”라고 비난했다.●이르쿠츠크파, 러 적군 부추겨 상하이파 독립군 학살 임정은 기호파(경기·충청·호남)와 서북파(평안·함경)로 양분돼 있었다. 기호파는 양반계급 출신이 주를 이뤘고 이승만을 지지했다. 서북파는 평민 출신이 많았고 안창호를 밀었다. 이들은 사사건건 대립했다. 기호파는 ‘변방 상놈들에게 임정 주도권을 내 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서북파 역시 ‘한양 양반네’들의 텃세에 지역주의 논리로 맞섰다.임시정부의 핵심 전략인 외교독립론도 성과가 없었다. 임정은 국제사회에서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나마 임정에 우호적인 곳이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이 이끄는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와 쑨원(1866~1925)이 세운 중국 광둥성 호법정부였다. 하지만 이들도 임정의 내분이 심해지자 더 이상 지원에 나서지 않았다. 1919년 임정 통합 작업을 주도한 러시아 출신 문창범(1870~1938)은 상하이정부와의 갈등으로 통합 임정에 합류하지 않고 연해주로 돌아갔다. 그는 같은 러시아 출신임에도 새 임정에 합류한 이동휘를 비난하며 갈라섰다. 이때부터 문창범 세력은 ‘이르쿠츠크파’, 이동휘 계열은 ‘상하이파’라고 불렸다. 양측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1921년 6월 28일, 이르쿠츠크파는 러시아 적군을 부추겨 연해주 알렉셰프스크(자유시)에 머물던 상하이파 한인 독립군 부대를 대거 학살했다. 일본과 맞서기 위해 모인 고려인들이 의견 차이를 참지 못하고 서로에게 총구를 겨눴다. 이것이 한국 독립운동사상 최악의 비극으로 평가되는 ‘자유시 참변’이다. 이후 독립군은 연해주 일대에서 자취를 감췄다.●재정난·파벌싸움으로 재중동포 기반 상실 독립운동사 거두인 고 조동걸(1932~2017) 국민대 명예교수는 “이때라도 임정이 군무부를 만주로 옮기고 교통국(비밀통신망)을 다시 설치해 재만동포를 추스르고 조직 정비에도 나섰어야 했다. 하지만 재정난과 내부 파벌싸움 등으로 기회를 놓쳐 국민적 지지 기반을 잃었다”고 비판했다.임정은 이승만이 대미외교를 위해 워싱턴회의에 참석하려다가 개최국인 미국으로부터 문전박대당한 1922년 4월부터 ‘식물 정부’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은 1925년 3월 이승만이 대통령에서 탄핵될 때까지 이어졌다. 임정 지사들은 자신들이 표방한 민주공화정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남자들을 모성으로 품고 묵묵히 뒷바라지해준 이가 있었다. 바로 ‘임시정부의 어머니’로 불리는 정정화(1900~1991)다. 임정이 27년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헌신 덕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1살이던 1910년 김가진(1846~1922)의 3남 의한(1900~1964)과 혼인했다.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던 김가진은 아들을 데리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이듬해 정정화도 “연로하신 시아버지와 남편을 챙기겠다”며 상하이로 따라갔다. 그는 여성이어서 상대적으로 감시가 소홀하다는 점을 십분 활용해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10여년간 독립운동 자금을 운반했다. 이 과정에서 일제에 검거돼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김구는 그를 가리켜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칭송했다.●임정 가재도구마다 손때… 요인들 임종 다 지켜 정정화는 상하이에 온 뒤부터 1946년 귀국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 시간을 임정 요인과 가족을 돌보며 보냈다. 임정 인사 가운데 그가 지어준 밥을 먹지 않은 이가 없었고, 임정 가재도구 가운데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임정 독립운동가들의 임종도 다 지켰다. 그가 26년간의 임정 생활을 구술한 ‘장강일기’는 당시 독립운동 진영의 사정을 가장 잘 알려주는 사료로 평가된다. 그의 일대기는 연극 등으로도 만들어져 공연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귀국 뒤 그의 인생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 남편 김의한은 한국전쟁 중 안재홍(1891~1965), 조소앙(1887~1958) 등과 함께 납북됐다. 남한에 남은 정정화는 부역죄로 투옥돼 고초를 치렀다. 이때 ‘옥중소감’이란 시로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남겼다. 나라를 되찾고도 여전히 남과 북으로 갈라져 싸움질만 하던 남자들에 대한 힐난이었으리라. “혁명 위해 살아온 반평생 길인데/오늘날 이 굴욕이 과연 그 보답인가/국토는 두 쪽 나고 사상은 갈렸으니/옥과 돌이 서로 섞여 제가 옳다 나서는구나.” 상하이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예천군의회 가이드 “권도식 의원이 ‘여성 접대부 있는 술집’ 계속 요구”

    예천군의회 가이드 “권도식 의원이 ‘여성 접대부 있는 술집’ 계속 요구”

    자유한국당 소속 박종철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가이드가 무소속 권도식 군의원이 해외연수 중에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계속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미국 현지 교민이자 최근 예천군의원들의 국외연수 가이드를 맡았던 A씨는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농담하는 건가 싶었는데 (권도식 의원이) ‘이거 농담 아니다. 정말로 좀 찾아봐달라’라고 했다”면서 “‘여기는 그런 곳이 없다’ 그랬더니 (권도식 의원이) ‘보도를 불러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권도식 의원이 여러 번 같은 부탁을 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데려가 달라고 말한 의원이 한 명이었는지’를 물은 김현정 앵커의 질문에 A씨는 “그건 한 사람만 계속 그랬다”면서 “권도식 의원”이라고 실명을 언급했다. A씨는 “녹취는 당연히 없다. 버스 안에서 처음에 그런 말을 했으니까 같은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 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예천군의원 9명과 의회사무국 직원 5명은 지난달 20일부터 29일까지 7박 10일 동안 미국과 캐나다 연수를 다녀왔다. 이 연수에 6100만원이 넘는 주민들의 세금이 쓰였다. 그런데 연수 나흘째인 지난달 23일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캐나다 토론토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 전 버스 안에서 박종철 의원이 A씨를 주먹으로 때렸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박종철 의원은 예천군의회 부의장직을 사퇴했다. 그런데 이 연수기간에 일부 군의원들이 A씨에게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데려가 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날 A씨는 인터뷰를 통해 권도식 의원이 그런 요구를 했다고 폭로했다. 논란이 일자 권도식 의원은 한겨레, 동아닷컴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 캐나다로 가는 버스에서 가이드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단 한 번 ‘현지에도 도우미가 나오는 노래방이나 가요주점이 있느냐. 있으면 일정 끝나고 한 번 가고 싶다’고 말했고, 가이드가 ‘없다’고 해 그걸로 그 이야기를 끝냈다”면서 “솔직히 말하면 노래방 가면 눈도 어둡고 번호도 책자에 있는 번호도 찾아주고, 그런 의도로 물어본 건데 수차례 요구했다고 하니 억울하다”고 했다. A씨는 또 박종철 의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에도 박종철 의원에게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몇몇 예천군의원들은 호텔에서 문을 열어놓고 술을 마시고, 복도를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러 다른 투숙객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또 이번 예천군의회 국외연수 일정에는 외유성 일정이 다수 포함된 점도 비판을 받았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인 캐나다 퀘백 쁘띠샹플랭 거리를 비롯해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아브라함 대평원 등 관광명소를 견학하는 일정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박항서 감독 60회 생일에 아시안컵 입국, 베트남 교민들 열렬히 환영

    박항서 감독 60회 생일에 아시안컵 입국, 베트남 교민들 열렬히 환영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결전지에 첫 발을 내디디며 60회 생일 축하 꽃다발을 받았다. 1959년 1월 4일 태어났으니 60회 생일을 맞았다.. 그런데 마침 6일 새벽 1시(이하 한국시간) 개최국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의 공식 개막전으로 시작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결전지인 아부다비 국제공항에 이날 베트남 교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입국했다. 교민들은 베트남 대표팀이 입국하기 전부터 박 감독의 생일 축하 손팻말을 든 채 기다렸다. 베트남 대표팀은 카타르 도하에서 전지훈련을 치르다가 이날 오만 무스카트를 거쳐 아부다비에 도착했다. 대표팀을 태운 비행기의 착륙 사인이 뜨자 베트남 교민들은 화환과 꽃다발을 들고 출국장에 늘어섰다. 한참을 기다려 마침내 출국장의 문이 열리고 이영진 수석코치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자 베트남 교민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휴대전화 플래시를 터뜨렸다. 선수들의 뒤를 이어 박항서 감독이 나타나자 교민들은 일제히 “해비 버스데이 투유, 해피 버스데이 투 유”라고 ‘떼창’을 시작했다. 교민들의 큰 환호에 박 감독은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꽃다발을 받아든 뒤 대기하고 있던 선수단 버스에 올라탔다. 박 감독은 아부다비에 도착한 소감을 묻자 웃은 얼굴로 “너무 힘들게 아부다비에 왔다. 힘들어요. 힘들어”라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0위인 베트남은 조별리그 D조에 속해 8일 밤 10시 30분 이라크(88위)와 1차전을 갖고 12일 밤 8시 이란과 2차전, 17일 새벽 1시 예멘(135위)과 3차전을 치른다. 지난해 박항서 감독의 지휘를 앞세워 역대 첫 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준우승, 역대 첫 아시안게임 4강 진출, 10년 만의 스즈키컵 정상 탈환까지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왔다. 2007년 대회 때 공동 개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 자격으로 본선에 자동 진출해 8강까지 진출한 게 역대 최고 성적인 베트남은 ‘박항서 매직’을 앞세워 역대 최고 기록 경신에 나설지 관심거리다. 하지만 조별리그 통과가 1차 목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진원지 서울 한복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 선포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진원지 서울 한복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 선포

    <1부> 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③서울 ‘한성임시정부’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지자 일제는 헌병을 동원해 주모자를 검거·학살했다. 특히 조선의 수도이자 이번 운동의 진원지인 서울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민족은 대담하게 적지(敵地)가 된 서울 한복판에서 임시정부 설립을 선언했다. 바로 노령정부(러시아)와 상하이정부(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수립된 한성정부다. 이 정부는 인민의 뜻을 수렴하기 위해 민주적 절차를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3·1운동 당시 감리교 전도사 이규갑(1888∼1970)은 평양 대표로 시위에 참석했다가 일제의 검거령으로 친척 집에 숨어 있었다. 3월 5일 오후 9시쯤 그에게 동지 8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이번 시위로 우리나라가 독립이 될 수도 있으니 서둘러 임시정부를 수립하자”고 제안했다. 이규갑은 “정부를 세우는 건 한두 사람의 기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의 총의를 모을 지역 대표부터 뽑자”고 설득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임정이 만들어졌다. 임정 설립 주도자는 검사 출신 홍면희(홍진·1877~1946)와 목사 출신 이규갑 등이다. 이들은 조선 황실 인사나 독립운동가 33인 등과 관계없는 순수 민간인이었다. 17일에는 검사 한성오(생몰연대 미상)의 집에 20여명이 모여 임시정부 준비위원회를 열었다. 정부 명칭을 ‘한성임시정부’로 정하고 민주공화제에 기반한 집정관총재 제도를 택했다. 이들은 보름 뒤인 4월 2일 인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에서 ‘13도 대표자회의’를 열기로 했다. 각 도 대표들이 모여 민주적으로 결의하면 조선 국민 전체 의견으로 봐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임정 준비위는 곧바로 전국 각지를 돌며 민족 대표 25명을 모집해 13도 대표자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풍경을 묘사한 이규갑의 증언이다. “당일(4월 2일) 아침 권혁채와 홍면희, 안상덕 등과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그때는 3·1운동 뒤 각 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던 때라 일경(일본 경찰)의 경계가 심했다. 인천역에 내리자 불심검문을 받았다. 홍면희는 변호사여서 무사했지만 나는 검색을 당했다. 그러자 홍면희가 ‘이 사람은 약장사로 우리와 일행’이라고 둘러대 위기를 면했다.” 이날 만국공원에 찾아온 이들은 많지 않았다. 종교계와 서울·경기 지역 대표들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13도 대표자회의 장소를 만국공원으로 정한 것은 당시 이곳이 일본인을 중심으로 외국인이 모여 살던 곳이었기에 조선 독립 의지를 보여줄 좋은 장소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대표자회의 참석자들은 같은 달 23일 서울 종로 중식당 봉춘관에서 총회 격인 국민대회를 열어 임시정부를 선포하고 보신각에서 민중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3·1운동의 여파가 끝나지 않은 때 한번 더 일제의 허를 찌르겠다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이날 종로 일대에는 임시정부 선포문과 국민대회 취지서 등이 뿌려졌다. 집정관총재 이승만(1875~1965)과 국무총리 이동휘(1873∼1935), 내무총장 이동녕(1869∼1940) 등 각료 명단도 나왔다. 이런 내용은 미국의 UP통신(현 UPI)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됐다. 덕분에 한성정부는 국내외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임시정부가 됐다.●현실적 제약으로 ‘미완의 시도’ 평가도 다만 한성정부가 완전하게 수립된 임정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인천에서 열린 13도 대표자회의는 성원을 채우지 못했고 서울의 국민대회 역시 소수 학생들이 전단을 살포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는 것이다. 노령·상하이정부와 달리 국민 전체의 뜻을 반영해 민주공화정을 탄생시키고자 했지만 일제의 압박 등 현실적 제약이 많아 ‘미완의 시도’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현희(1937~2010) 전 성신여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한성정부는 13도 대표나 임시정부 준비위원회 위원들을 집행부 임명에서 배제하는 등 공평무사한 인사를 단행하려고 했다. 절차적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이 덕분에 1987년 9차 개헌 당시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의 법통이 (한성정부를 계승한) 임시정부에 있음을 명확히 선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논란의 중심에 선 임정 초대 대통령 “(해방 당시) 대한민국이 갓 도입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정부와 국민 모두 낯설고 서툴렀다. 이승만 정부는 (불가피하게 권위주의 방식으로 통치했지만) 그래도 헌법을 정지시키거나 국회를 해산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하지는 않았다.”(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는 (같은 진영인)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조차 좋았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독재·반공 이데올로기는 이승만 정권과 연관성이 높기에 그를 치켜세워야 (독재·반공 정치체제가) 합리화된다. 이승만의 재평가 시도는 반대편을 종북이나 용공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다.”(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한성정부 집정관총재에 추대돼 훗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오르는 우남 이승만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를 비판하는 이들은 “독립운동의 분열과 남북 분단, 한국전쟁 당시 그릇된 대처, 부정부패, 독재정치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이승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마음놓고 그를 비난하는 자체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한 그의 공로”라며 “과(過)보다 공(功)이 훨씬 큰 만큼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1896년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독립협회가 만들어졌다. 자주독립과 천부인권 존중, 한글 사용 등을 강조했는데, 배후에는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 등 서양 선교사들이 있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만들어 조선인에게 영어와 민주주의를 가르쳤다. 이승만은 이 학당의 학생이었다.●“일단 비위 거슬리면 타인 이해하려 안해” 독립협회는 종종 대중 집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배재학당 학생들도 대거 참여했다. 이승만은 여기서 주도적 역할을 하다가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7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때부터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조선사회에 환멸을 느꼈다.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면 반드시 기독교 이념에 입각한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믿었다. 배재학당의 경험과 기독교의 이분법적 선악 개념 등이 더해져 훗날 남과 타협하지 않는 특유의 성격이 생겨난 것 같다. 이승만을 가까이서 도왔던 정치인 허정(1896∼1988)은 “평소 장난도 잘 치고 유머러스했지만 일단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조금도 자기 뜻을 굽히거나 남의 사정을 봐주려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성정부 집정관총재를 시작으로 중국 상하이로 통합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첫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는 임정 대통령 재임기간 5년 6개월 가운데 상하이에는 반년 정도만 머물렀다. 대부분 기간은 미국에 혼자 머물며 전보를 이용해 ‘원격 통치’를 했다. 이 때문에 이동휘(1873~1935), 안창호(1878~1938) 등과 마찰이 생겼고 훗날 임정 전체가 내분에 휩싸이는 원인이 됐다.●“정부가 단 한 사람 때문에 법을 바꾼 사례” 그는 또 한성정부 집정관총재에 임명된 때부터 스스로를 집정관이 아닌 ‘대통령’(president)으로 칭해 논란이 됐다. 교민 성금 유용 의혹과 윤봉길(1908~1932) 의거 비난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최근에는 1918년 10월 그가 미국에서 작성한 1차 세계대전 징집 카드에 국적을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적은 것이 알려져 비난을 샀다. 당시 미국에서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도적 오기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원래 상하이정부는 국무총리 제도였다. 하지만 이승만이 끝까지 대통령 직함을 고집해 결국 임정이 1919년 9월 개헌 때 통치제도를 대통령제로 바꿨다. 정부가 한 사람 때문에 법을 바꾼 보기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루스벨트·윌슨과 인연… 지도자로 급부상 그럼에도 이승만은 1919년 4월 15일 중국 길림성에서 선포된 고려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로, 17일 평안도에 설립된 신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방총리로, 19일 인천에서 수립된 조선민국임시정부에서 집정관총재에 선임되는 등 거의 모든 임정에서 1, 2인자로 지목됐다. 조선 사회는 왜 이승만을 새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 여겼을까. 그는 31살이던 1905년 8월 기독교계의 주선으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를 만나 한국의 독립을 청원한 경험이 있다. 또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해 약소 민족에게 희망을 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 역시 이승만이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 학교 총장이었다. 당시 한국인으로서 갖기 힘든 경력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이승만은 1차 세계대전 뒤 최강국이 된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외교 카드’였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사사건건] 죽은 표, 살려라

    [사사건건] 죽은 표, 살려라

    국회가 지난 27일 본회의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 기간을 내년 6월 30일까지 연장했다. 법적 활동 기간이 6개월 늘었지만 21대 총선 1년 전인 내년 4월까지 선거 관련 법안 정비를 마쳐야 한다. 정개특위는 지난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에 따라 내년 1월 중순까지 정개특위안을 확정한다는 목표로 주 4회 소위 회의를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연장 바로 다음날인 28일 제1소위 회의가 개의 20분 만에 파행했다.●선거제도 개혁은 필수 우리 선거제도는 소선거 지역구제와 병립형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로 요약할 수 있다.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으로 구성된 병립형 혼합선거제도다. 지역구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로 253개 지역구에서 각각 최다득표자 1인만 선출한다. 비례대표는 전국 정당득표율에 따라 47석을 배분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연동하지 않고 각각 독립적으로 선출하는 병립식이다. 소선거구 지역구에서 1등 외의 표는 모두 사표가 된다. 20대 총선에서 사표 비율은 50.32%에 달했다. 또 사표가 절반을 넘어가다 보니 비례성과 대표성이 약하다.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796만 272표, 더불어민주당은 606만 9744표, 국민의당 635만 5572표, 정의당 171만 9891표를 얻었다. 정당 투표율 3% 이상 또는 지역구 5석 이상 정당 간 득표율을 비교하면 새누리당은 33.5%, 민주당 25.5%, 국민의당 26.7%, 정의당 7.2%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122석(40.7%), 민주당은 123석(41.0%), 국민의당 38석(12.7%), 정의당 6석(2.0%)을 가졌다. 득표율과 달리 새누리당이 18석, 민주당이 44석을 더 얻었다. 반면 실제 얻은 표보다 국민의당은 45석, 정의당은 17석을 손해 봤다. 현재 모든 정당과 정파가 이런 이유로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선거의 본질인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려면 모든 사람의 한 표가 똑같은 가치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개혁이 필수라는 데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부터 자유한국당까지 의견이 일치한다. ●계속 늘어나는 독일의 의원 정수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라가 독일이다. 하지만 독일은 우리 실정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우리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인 의원정수 확대 문제를 따져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도의 단점이 잘 드러난다.독일은 연방선거법 제6조 제3항에 따라 정당투표에서 최소 5% 이상의 유효한 표를 얻은 정당 또는 최소 3개의 지역선거구에서 의석을 확보한 정당에만 의석을 배분한다. 독일 연방하원의 의석은 598석이다. 지난해 9월 시행된 연방하원 선거에서 지역구에서 초과의석이 46석 발생했고 이 초과의석에 대한 균형을 맞추기 위한 균형의석이 65석 발생해 실제로 111석이 증가했다. 598명의 의원을 뽑으려고 실시한 선거였지만 실질적으로 709명이 선출됐다. 독일은 균형의석모델을 적용해 정당별 의석 점유가 정당득표율에 비례하도록 조정한다. 균형의석은 정당의 득표율에 따른 배분의석보다 지역구 의석이 많아 초과의석이 발생하면 그에 대한 균형의석을 추가로 배분해 모든 정당의 의석 점유가 득표에 비례하도록 만든다. 2017년 총선에서 기독교민주연합(CDU)은 지역구에서 185석을 얻었지만 최소보장의석은 200석이었다. 최소보장의석은 각 주의 인구수 비율에 따라 주별로 배정한 의석수와 해당 주의 실제 당선자 수를 비교해 더 큰 의석수의 합이다. CDU가 슐레스비히홀슈타인(SH)주에서 배분받은 의석은 7명인데 지역구에서 10석을 얻어 최소보장의석은 10석이고 초과의석 3석이 발생했다. 반면 함부르크에서는 3석을 얻어야 하는데 지역구 당선자가 1명뿐이라 비례로 2명을 더 받았다. 이렇게 16개 주를 각각 계산해 모두 더한 기민련의 최소보장의석은 200석. 하지만 기민련은 정당득표율에서 28.2%를 얻었기 때문에 164석을 얻어야 하고, 초과의석 36석 만큼의 ‘과대 대표’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균형의석을 배분해 모든 정당의 의석 점유가 득표에 비례되도록 전환한다. 균형의석은 단순히 초과의석수에 비례해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총 의석을 늘려 모든 정당의 득표와 의석점유를 비례적으로 변환하기 때문에 총 의석이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는 독일 총선 결과 분석 보고서에서 “특히 득표와 의석점유의 불균형이 가장 심한 정당이 균형의석 결정의 기준이 되는데, 그 정당이 어떤 정당이 될지 추측하기 어렵다”며 “총 의석의 과다한 증가는 선거제도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의원 정수 증가에 따른 세비 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의회에 대한 불신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선거 때마다 매번 국회의원 정수가 달라지는 독일도 초과의석 억제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나의 선거구에서 2인 이상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 도입, 개별 권역별 명부 방식을 전국 명부로 변경, 균형의석모델을 폐기한 후 ‘정당 간 조정’ 또는 ‘권역 간 조정’ 과 같이 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고 초과의석을 상쇄하는 방안 등이다. 정개특위도 독일의 사례를 감안해 의원 정수를 300명 또는 330명으로 고정하는 권역별 연동형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고정된 정수를 넘기는 의석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연동의 의미를 100% 구현할 수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후 의원정수를 더 늘리자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또 독일식 제도는 일부 권역은 특정 정당이 지역구 의원만 배출하고, 비례대표 의원은 단 한 명도 채우지 못할 수 있다. 지역구 의원으로 정수를 다 채우면 초과의석이 발생한 권역에서 해당 정당은 비례대표 의원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권역을 대표하는 의원을 뽑자고 만들어진 제도인데 권역별 비례대표 의원을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의 김영재 박사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선거제도라면 모든 나라가 채택할 것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독일식 선거제도에도 역기능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비례대표 대표성 명확해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부 작성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역대 총선마다 비례대표 후보자는 공천권을 가진 권력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명부가 작성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친박연대와 창조한국당이 수십억원이 오고 가는 비례대표 공천 비리를 저지르기도 했다. 또 국회에 입성한 후 자신의 전문성이나 대표성을 살리기보다 곧장 지역구를 찾아 헤매는 비례대표 의원의 의정 활동을 보는 국민의 시선도 싸늘하다. 지난달 21일 열린 정개특위 공청회에서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례대표의 증원이 적절한 처방이라고 전제하더라도 과연 이 비례대표를 어떻게 공천할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후보자의 자격요건을 객관화하고 정당 명부 작성과 순위 결정과정에 당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는 이유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지난 19일 한국당 토론회에서 “명부상의 순위에 대한 국민의 판단이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며 “국민이 그 정당이 제시한 후보자 중에서 특정인에 대해 투표하는 것까지 가능케 해 후보자 명부 내에서 순위 변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논의는 어디까지 정개특위는 지난 3일 세 가지 선거제도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소선거구제+권역별 연동형 비례제+정수 유지 ▲도농복합선거구제+연동형 또는 병립형의 권역별 비례제+정수 유지 ▲소선거구제+권역별 연동형 비례제+정수 확대(지역구 220석, 비례대표 110석) 등이다. 첫 번째 안은 현행 소선거구제에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의석을 배분한다. 문제는 253석의 지역구를 200석으로 줄여야 한다. 현역 의원이 동의할 리 없다는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 도농복합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두 번째 안은 인구 100만명 이상인 도시는 중선거구제, 농촌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시행하는 방안이다. 의원 정수는 300명으로 유지되지만 지역구(225석)와 비례대표(75석) 의석 비율이 3대1이 돼 위헌 여지가 있다. 의원 수를 30명 늘리는 세 번째 안은 의원 정수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국민 여론을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관건이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외계인 침공한 줄… ‘블루라이트’에 휩싸인 뉴욕 밤하늘

    외계인 침공한 줄… ‘블루라이트’에 휩싸인 뉴욕 밤하늘

    뉴욕의 밤하늘이 흡사 SF 영화에서 우주선이 등장하기 직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푸른빛으로 가득차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CNN 등 현지 언론의 28일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27일 밤 9시경, 뉴욕 퀸즈 발전소의 변압기가 폭발해 화재가 발생했고, 이 사고로 뉴욕의 하늘이 일시적으로 푸른빛에 휩싸였다. 이 일로 소방대원들이 출동했으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도로의 불빛이 깜빡거리다가 정전되는 등의 피해가 있었고, 변압기가 폭발하는 순간 발생한 굉음에 놀란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잠시 혼란이 빚어졌다. 현지에 사는 한 교민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도로에 불빛이 깜빡거리다 정전된 뒤 갑자기 하늘이 대낮처럼 밝아졌다”면서 “순간 외계인이 침공한 줄 알았다.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모두 하늘을 보며 무서워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밤하늘이 이상하게 밝아진 현상은 약 10분간 계속됐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지 언론이 실시간으로 보도한 당시 영상을 보면, 비교적 넓은 구역의 밤하늘이 마치 푸른빛에 휩싸였으며, 일명 ‘블루라이트’는 범위뿐만 아니라 밝기도 상당한 수준이어서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뉴욕 경찰은 SNS를 통해 “이번 사고는 장비 오작동으로 인한 변압기 폭발로 발생했다”면서 “전력은 곧 복구됐고, 더 이상의 심각한 정전사태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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