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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긴급파견 119구조대 실종자 수색 본격 활동

    일본 대지진 발생 닷새째인 15일, 정부가 급파한 긴급구조대가 수색활동을 시작하는 등 우리 정부의 구조 지원도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우리 측 구조대 90명이 오전부터 일본 경찰 50명과 함께 센다이시 가모지구에 투입돼 실종자 수색 및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가모지구는 센다이시에서 지진·해일 피해가 가장 큰 지역 중 하나로, 이날 처음으로 수색작업이 진행됐다. 이들은 16일 교민 거주지역인 센다이 시내 1개 지역과 미야기현 내 2개 지역에서 구조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대원 107명과 구조견 2마리로 구성된 구조대는 14일 미야기현 종합운동공원 운동장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했다. 정부는 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맞춤형’ 지원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임채민 국무총리실장은 오전 브리핑에서 “일본이 필요로 하면 언제든 지원할 준비를 갖추고 있지만, 일본의 요청에 따라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게 될 것”이라며 “외교부가 교섭창구 역할을 맡고, 총리실은 각 부처 지원과 재정 및 물자 수송 수단 확보 등을 맡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창구를 단일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측과 일차적으로 협의한 결과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 창구는 양국의 적십자사가 맡기로 했다. 이와 관련, 대한적십자사는 성금 모금을 통해 이날 일본 적십자사에 100만 달러를 긴급 지원했다. 한편 정치권도 일본 돕기에 적극 나섰다. 민주당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소속 국회의원 85명 전원이 1인당 10만원씩 성금을 내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은 ‘일본지진피해대책반’도 편성해 단계적으로 지원방안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도 ‘일본지진피해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외교통상부 등 관련 부처와 협력, 지원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김미경·유지혜·강주리기자 chaplin7@seoul.co.kr
  • “아빠 곧 따라 갈거야… 먼저 한국 가 있어”

    15일 오후 2시 센다이 한국 총영사관 앞 버스에서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먼저 떠나는 가족들과 이들을 떠나보내는 아빠들이 안타까워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차편이 한정돼 센다이에 남아야 하는 가장들은 버스를 타고 떠나는 가족들을 배웅하면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4학년 아들 딸을 한국으로 먼저 보낸 김인권(45)씨는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드는 가족들을 향해 “아빠도 곧 뒤따라 갈 테니 한국에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김씨가 언제 한국으로 들어가 가족을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차편이 부족해 영·유아와 보호자, 노약자부터 공항으로 이송하고 있어 김씨의 차례가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족들이 먼저 안전한 한국으로 간다면 불안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될 것 같다.”면서 “나도 하루빨리 교통편을 마련해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30년 경력의 뱃사람 현대철(57) 선장은 16명의 필리핀인 선원들을 데리고 15일 자정 도쿄로 떠났다. 닷새 전 쓰나미의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필리핀 선원들을 모두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다. 현 선장이 탄 글로비스 머큐리호는 지난 11일 센다이항에 정박해 있다가 변을 당했다. 한순간에 밀려오는 쓰나미 물결에 6000t급 배도 종이배처럼 무력하게 육지로 떠밀려 올라갔다. 현 선장은 “이런 끔찍한 일을 함께 당했는데 다른 국적이라도 선원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면서 “다행히 우리는 회사에서 제공해준 차편을 이용해 안전하게 도쿄로 돌아가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도 하루빨리 상처를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센다이를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 돌아온 사람도 있다. 황기욱(40) 도호쿠대학 약학과 교수는 제자들을 위해 위험천만한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난 14일 오전 11시 원전 3호기가 또다시 폭발한 후쿠시마 지역을 뚫고 학교가 있는 센다이까지 장장 48시간 동안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지진 발생 당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까닭에 화를 면할 수 있었던 황 교수는 그곳에서 외신으로 접한 일본 소식에 깜짝 놀랐다. 황 교수는 다음날로 짐을 싸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공항, 후쿠시마 공항을 거쳐 다시 택시를 타고 센다이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지인들은 ‘위험천만한 곳을 뭐하러 일부러 찾아가느냐.’면서 황 교수를 말렸다. 모두가 여진과 방사능을 피해 멀리 달아나려고 하는 판에 그는 남들이 모두 ‘사지’라고 부르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황 교수는 “부모님과 떨어져 유학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내가 부모와 마찬가지인데 위험한 곳에 학생들만 둘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센다이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사설] 日 대재앙 짜임새 있는 총력지원에 나서자

    일본 열도가 대지진 여파로 인한 원전 폭발로 또다시 불안에 떨고 있다. 12, 14일 후쿠시마 제1원전 1, 3호기에 이어 어제는 2·4호기가 잇따라 폭발해, ‘체르노빌 참사’ 같은 방사능 누출 가능성마저 우려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후쿠시마 원전에서 20㎞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피난 명령을 내렸다. 지금까지 대지진과 해일로 인한 사망자는 공식적으로는 수천명이지만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이 수만명이어서 10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와 국민은 일본의 고통과 슬픔을 같이해야 한다. 현재 선진국인 일본을 도울 수 있는 정부의 가용 예산은 4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부는 다른 예산을 전용해서라도 총력 지원에 나서야 한다. 복구단 파견과 구호물품 지원 등에 필요한 예산은 50만~60만 달러로 예상된다고 한다. 우리 국적의 교민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조치다. 구조 및 지원 활동과 관련한 교섭창구는 외교통상부가, 각 부처의 지원 업무는 국무총리실이 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원 활동이 중구난방이 되면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당연한 조치다. 민간 차원의 지원은 대한적십자사가 중심이 돼 맡기로 했다. 민간의 활동 중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5달러, 10달러 짜리 기부 쿠폰을 사고파는 방식이 특히 눈에 띈다. 국내에서는 싸이월드에서 소셜게임을 이용한 기부를 시작했다. 배용준 등 한류스타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종교 및 시민단체 등도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삼성그룹은 성금 1억엔과 인명구조단·의료봉사단을 파견하기로 했다.일본은 우리의 수출 3위국, 수입 2위국이다. 일본 경제가 어려워지면 우리도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 이유에서뿐이 아니라, 지구촌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인류는 이웃이요 가족이라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민족적 편견은 버리고 인류 가족의 구성원으로 기꺼이 일본을 위로하고 복구하는 데 범국민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재앙이 오히려 한·일관계를 새로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지원은 절박한 상황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과 절차로 짜임새 있게 이뤄져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요란함이 아니라 내실이 중요하다.
  • “지진 피해보다 방사능 누출 공포가 더 불안했다”

    “지진 피해보다 방사능 누출 공포가 더 불안했다”

    “이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일본 센다이지역을 빠져나온 교민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해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5일 교민, 유학생 등 200여명은 대한항공 KE764편을 타고 일본 니가타를 출발해 오전 11시 55분 인천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한시라도 빨리 일본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뜻을 밝힌 센다이 지역 교민들은 이날 새벽 2시에 버스로 4시간을 달려 일본 서북부 항구도시인 니가타에 도착,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 지진 이후 교민들이 단체로 귀국한 것은 처음이다. 두꺼운 외투에 간단한 가방 한두개만을 손에 든 교민들은 피곤한 얼굴로 취재진에 현지상황을 알렸다. 센다이에서 9시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손인자(43·여)씨는 “지진이 발생한 후 전기·수도·가스 등 모든 것의 공급이 중단됐다가 14일부터 전기가 일부 공급되기 시작했다.”면서 “생활이 불편한 것보다 방사능 누출 등 추가적인 사고 위험이 높다는 소문이 나돌아 더 불안했다. 한국에 도착하니 이제 안심이 된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손씨는 한국에 거처가 없어 일단 자신이 소속해 있는 수원의 교회를 임시 숙소로 삼을 계획이다. 부모를 따라 10년 전 일본으로 건너간 안진실(17)양은 “학교가 무기한 방학에 들어갔다.”면서 “선생님이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지진 여파로 원전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방사능 유출에 대한 걱정이 일본인은 물론 교민들 사이에서도 확산되고 있었다. 일본에서 유학 중인 김병철(24)씨는 “도쿄 도심에 있어서 지진 피해는 적었다. 도시도 평화로운 상태였다. 하지만 원전사고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학생들이 방사능 노출을 걱정하는 말들을 많이 했다.”면서 “일본 방송에서는 안전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그걸 믿는 유학생은 거의 없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교민들은 현지의 식량과 식수 부족도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에 남편을 남겨두고 귀국한 김옥기(41)씨는 “남편과 통화를 했는데 오늘부터 식사배급을 두 끼로 줄이고 물도 1컵씩만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면서 “교민들에게 물과 식량 지원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면서 울먹였다. 평소 알고 지내는 아저씨를 따라 일본을 벗어난 이지원(14)군은 “대피소에 100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식사로 제공되는 것이 식빵 한 조각과 1ℓ짜리 물 3통밖에 없었다.”면서 “그나마 물은 14일부터 1통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항공사들과 협의를 거쳐 이날부터 니가타 정기편을 중대형 항공기로 바꿨다. 일본 영사관은 아이와 여성을 우선적으로 센다이 지역에서 니가타로 이동시켜 한국으로 수송하고 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길섶에서] 이웃/주병철 논설위원

    6년 전 미국으로 연수 갔을 때다. 산도 물도 낯선 땅에 살림살이를 하려니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럴 때 옆에서 도와 준 이들이 교민, 위·아래층의 아파트 주민, 현지 연수생들, 대학교 관계자 들이었다. 낯선 이웃이었다. 이사 왔느냐며 묻는 인사에서 뭔지 모를 친밀감이 와 닿았고, 필요한 것이 뭐냐는 도움의 손길에서 넉넉한 인심을 느꼈다. 머나먼 타국땅에서도 이럴진대 우리땅에서야 오죽하랴. 유난히 이사를 자주 다니는 편이어서 그런지 이웃의 정에는 익숙해진 것 같다. 그래서 이사를 다녀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이웃이란 든든한 울타리가 있어서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대지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을 돕자는 온정의 손길이 지구촌 곳곳에서 밀려들고 있다. 가깝게 지내든, 그렇지 않든 이웃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은 눈물겹도록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이웃사촌, 이웃나라의 소중함이 새삼 느껴지는 요즘이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JYJ, 일본 지진 피해자 위해 6억원 기부

    JYJ, 일본 지진 피해자 위해 6억원 기부

    남성그룹 JYJ가 일본의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기부행렬에 동참했다. 16일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JYJ가 월드비전의 일본 대지진 최대 피해 지역을 위한 긴급 구호 목표 모금액 전액인 6억 원을 기부한다.”고 밝혔다. JYJ의 멤버 김준수는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난 10일 촬영 목적으로 방문한 일본에서 직접 지진을 겪은 뒤, 다음날 치러진 JYJ의 첫 팬 미팅에서 일본팬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 바 있다. 또한 JYJ는 15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지진 피해를 당한 일본팬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번에 월드비전에 기부되는 JYJ의 기부금은 일본 대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센다이시(市)와 후쿠시마 지역에 긴급구호 물품을 제공하고 도시의 재건과 복구, 아동 쉼터 프로그램에 쓰일 계획이다. JYJ는 이번 기부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재난 구호에 발 벗고 나선다. 오는 4월 2일부터 방콕에서 시작하는 9개 도시 월드 투어를 통해 일본 대지진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적극 앞장설 예정이며, 월드비전 재팬의 홈페이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응원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또한 JYJ는 월드 투어 기간 동안 공식 홈페이지와 연동하여 운영되는 월드 투어 SNS 사이트(www.facebook.com/jyjworldtourconcert)를 통해 각 나라 팬들과 ‘힘내라 일본’ 응원 댓글 캠페인과 월드비전과 함께하는 기부 프로그램 등을 펼쳐 나갈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월드 투어의 종착역인 한국 공연에 자원 봉사자들을 초청하여 뜻깊은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JYJ는 “사실 기부 사실을 알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망설였다. 하지만 우리의 실천이 더 많은 사람을 동참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지진 피해가 가장 큰 지역에 실질적으로 쓰일 수 있게 되길 희망하고, 우리 교민들을 포함한 일본의 모든 분이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고 힘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캠페인을 준비 중인 JYJ 월드 와이드 SNS 사이트는 오픈과 동시에 한 주 동안 아시아, 유럽, 북미, 남미 등 세계 각지의 5만여 명의 팬들이 방문한 상태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뒷돈 거부땐 위생국 동원 식당폐업” “영사들이 우리의 피눈물을 등졌다”

    상하이 교민들의 울분은 컸다.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영사들이 덩신밍의 협박과 금품 갈취에 시달리는 교민들의 참상은 눈감고, 덩을 비호하며 불륜을 저지르거나 덩을 통해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만 혈안이 됐기 때문이다. 교민들은 “영사들이 우리의 피눈물을 등졌다.”면서 “정부합동조사단에서 덩이 교민들에게 저지른 행태도 조사해 달라.”고 절규했다. 덩의 패악은 4~5년 전 식당, 반찬가게, 의류점, 마사지숍 등 교민들이 운영하는 영세업소에서 ‘공짜 대접’을 강요하거나 소액의 금품을 갈취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교민 A씨는 “식당에서 수백 위안어치를 공짜로 먹거나 옷가게에서 옷을 그냥 들고 간 뒤 몇주 입다 싫증나면 다시 돌려주는 등 악행이 말도 아니었다.”면서 “아무도 덩에게 돈을 내라고 요구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덩은 매월 수백~수천 위안씩 상납을 강요하기도 했다. 교민 B씨는 “덩이 대놓고 협박을 하거나 편의를 봐주겠다며 갈취하는 액수는 천차만별”이라며 “중국 고위직을 들먹이며 협박해 ‘뒷돈’을 뜯었다.”고 증언했다. 덩은 중국 공안이나 위생국 등의 공무원을 움직였다. 위생국은 식당 등에 사업자등록증을 내주고 감사를 한다. 교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해당 공무원들의 권한은 막강하다. 교민 C씨는 “식당은 문제가 없을 수 없다.”면서 “위생국에서 나와 검사하면 ‘위생국 법령’에 뭐라도 걸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덩이 위생국 공무원을 동원해 식당 문을 닫게 한 사례도 부지기수다. 교민 D씨는 “분식집, 한식당 등 덩의 금품 상납 요구를 거부해 위생국 단속으로 문 닫은 업소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교민 E씨는 “덩은 교민 앞에서 위생국에 전화해 한 식당의 단속을 요청한다. 그러면 다음날 어김없이 위생국에서 나왔다.”면서 “실제 눈앞에서 봤기 때문에 갈취를 당해도 후환이 두려워 영사관에 신고를 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고 호소했다. 덩의 욕심은 나날이 커졌다. ‘라이선스 브로커’ ‘부동산 브로커’를 자처하며 점차 큰 액수를 강탈했다. 가게의 경우 분점을 낼 때 까다로운 수속 절차를 간단하게 해주겠다며 수만~수십만 위안에 달하는 수수료를 착복했다(일명 ‘라이선스 브로커’). ‘부동산 브로커’를 자처하며 교민들의 투자를 강요한 뒤 차익의 반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한 교민은 “개발사 사장을 알아 다른 사람보다 5% 이상 싸게 살 수 있다.”면서 “아파트 등을 구입하게 한 뒤 바로 되팔거나 1~2년 뒤 집값이 오르면 팔아 생긴 차익을 반반씩 나누도록 종용했다.”고 말했다. 다른 교민은 “다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을 줬다.”면서 “떼인 사람도, 이익을 본 사람도 덩이 더 큰 요구를 할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토로했다.덩은 최근 활동무대를 구베이(古北)에서 푸둥(浦東)까지 확장했다. 교민들은 “산둥성 시골 출신인 덩이 교민들의 피를 빨아 5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상하이에서 유력 재력가로 컸다.”면서 “이런 실상을 알고 있는 영사들이 덩과 놀아났으니,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탄식했다. 상하이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정부 “구조단 100명 추가파견 준비…교민 피해파악 주력”

    정부 “구조단 100명 추가파견 준비…교민 피해파악 주력”

    일본 지진 발생 나흘째인 14일 정부는 긴급 구조단을 급파하는 등 현지 복구 지원 및 교민 피해 확인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교민 사망자가 확인되면서 신속 대응팀도 더욱 분주히 활동하고 있다. 조병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피해 복구 지원과 관련, “긴급 구조단 100명을 일본에 추가 파견할 준비가 돼 있다.”며 “오늘 오전 출발한 긴급 구조단 102명에 이어 필요할 경우 추가 인력을 파견하겠다는 의사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단 외 구호물품이나 감식 전문 요원 등도 필요할 경우 지원하겠다고 일본에 알렸다.”며 “일본 측에서 연락이 오는 대로 지원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이어 “먼저 파견된 긴급 구조단은 센다이 종합체육관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다.”며 “센다이 시 당국과 구체적인 활동 계획에 대해 협의가 되면 바로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가 급파한 긴급 구조단 102명은 이날 오전 공군 C130 수송기 3대를 이용해 성남공항을 출발했으며, 나리타 공항을 경유해 오후 3시쯤 후쿠시마 공항에 도착했다. 긴급 구조단은 주센다이 총영사관이 임차한 차량을 이용해 센다이로 이동했다. 지난 12일 선발 파견된 구조대원 5명과 구조견 2마리도 이들과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소속 6명 등으로 이뤄진 신속 대응팀은 교민 피해 상황을 파악하는 한편, 한국으로 떠나는 교민들의 차량이동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적십자사가 파견한 조사단 일원도 현지에 도착해 국제적십자 공동조사단과 함께 현지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지원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편 김황식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세밀히 분석해 대비해 주기 바란다.”며 “이번 사태를 유념해 우리나라도 지진 재난 가능성이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라.”고 밝혔다. 김 총리는 이어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가까운 이웃이 어려움과 곤경에 처했을 때 서로 위로하고 돕는 것을 전통적 미덕이자 도리로 여겨왔다.”며 우리 교민·국민 안전 보호에 만전을 기하는 동시에 일본 지원에도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청와대는 일본 대지진 여파로 발생한 원자력발전소 폭발이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과 함께 국내 원전 안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비상회의를 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순방을 위해 출국함에 따라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주재해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고 일본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물질의 주변국 확산을 비롯한 국내 영향 등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해안마을 교민 70명 사흘째 실종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한국인 사망자가 14일 처음으로 확인됐다. 현지 재외공관 및 교민 단체와 연락이 되지 않는 한국인들의 숫자가 적지 않아 더 큰 인명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외교통상부는 이바라키 현의 한 철탑공사현장 부근에서 교민 1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망자는 40세 재일동포 이모씨로 히로시마 소재 건설회사 직원이다. 이씨는 지진 당시 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공사 중 추락사했다. 형이 운영 중인 건설회사에는 동생을 포함해 8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씨 형제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며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등 효성도 지극한 것으로 알려져 교민사회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 공사현장에서는 조선적(朝鮮籍) 1명도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적이란 일본이 해방 직후부터 정부수립 이전까지 재일동포를 외국인으로 등록하면서 편의상 구분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이후 남북한 어느 쪽 국적도 갖지 않고 일본에 귀화하지도 않은 이들을 말한다. 정부는 두 사람 이외에 재일동포 사망자가 더 있다는 제보가 있어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지난 12일 오전 구글검색 사이트에 “도쿄 오다이바에 살고 있던, 서울에서 온 김지훈씨가 천장 벽에서 떨어진 마감재를 맞고 사망”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한 일본인이 올린 글로 보이며 사망자의 성별과 나이 등 구체적인 신상 정보와 정확한 사고 경위는 올리지 않았다. 또 센다이에 살던 신강(32)씨의 행방을 찾는다는 사촌 동생의 게시글에 몇 시간 후 “병원 사망자 명단에 이분이 있었다.”는 답글이 게재됐다. 정부는 특히 쓰나미가 발생한 이와테현 오후나토시와 미야기현 센다이시, 게센누마시 등 해안마을에 살던 교민 70여명의 생사 확인에 주력하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김미경기자 jrlee@seoul.co.kr
  • 수도권 시민들 자발적 절전… 낮시간 ‘계획 정전’ 보류

    도호쿠 지역 대지진의 피해를 당한 지 나흘째를 맞은 14일 일본은 시민들의 질서정연한 모습이 지속되면서도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일대에 부분 단전을 실시한다는 ‘계획 정전’ 발표가 번복되는 등 다소 혼란을 겪었다. ●전력량 많은 병원 등 비상조치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폭발로 전력량이 부족해 14일부터 수도권 지역을 5개 그룹으로 나눠 지역별로 3~6시간씩 단전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에 이날 아침 출근길에 전철이 파행 운행되는 등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도쿄전력은 당초 이날 오전 6시 20분에 시작할 예정이었던 제1 그룹 지역의 정전을 취소했다. 오전 9시 20분부터 제2그룹 지역도 보류한 데 이어 낮 12시 20분부터 3그룹 지역도 단전 실시를 미뤘다. 하지만 오후 5시로 예정된 5그룹의 계획정전은 실시됐다. 이에 대해 도쿄전력은 “전력난을 겪고 있다는 정부의 발표로 시민들이 전기 사용을 자제해 전력 수요 전망이 예상을 밑돌아 이날 오전에는 부분 단전을 보류했지만 수요량이 느는 저녁 시간에는 계획 정전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운영되는 철도 회사들은 이날 부분 단전 발표에 맞춰 전철의 운행 대수를 큰 폭으로 줄여 출근길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전력량이 많은 슈퍼나 편의점, 병원 등에서도 비상조치를 취하느라 이날 하루 종일 분주히 움직였다. 실제로 부분 단전이 실시되면 도로의 교통신호기가 멈추거나 선로의 건널목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등이 우려되고 있다. ●센다이 상점·주유소 1㎞ 장사진 지진 발생 후 첫 월요일을 맞은 센다이는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패닉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밤새 여진이 반복되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냈다. 피해가 없는 센다이 시내를 중심으로 일부 회사원들은 출근했고, 일부 상점과 음식점은 지진 직후 3일 동안 닫았던 문을 임시로 열었다. 시민들은 문을 연 편의점과 상점 앞에 1㎞에 걸쳐 줄어 지어 늘어섰다. 센다이의 최대 백화점인 다이에이 앞은 몇 블록이나 긴 행렬이 이어졌다. 나흘째 교통편이 재개되지 않으면서 센다이 시내 식료품과 휘발유 등도 점차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센다이 시내 주유소는 이날부터 입구에 ‘판매금지’라는 입간판을 세우고 경찰차·소방차·앰뷸런스 등 인명구조를 위한 긴급 차량에만 휘발유를 공급했다. 문을 연 주유소마다 자동차 행렬이 이어졌다. 택시 운전기사인 아카마 이사무는 “하루 휘발유를 20ℓ씩밖에 주지 않는다. 다행히 아침 일찍부터 기다린 덕에 휘발유를 넣었지만 영업을 못하는 차도 수두룩하다.”고 전했다. 어쩔 수 없이 차편을 포기한 일부 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센다이를 빠져나갈 수 있는 버스편과 도로 안내가 붙어 있는 현청 1층 게시판 앞으로 몰려들었다. 침착했던 센다이 시민들도 오전 11시 후쿠시마 원전 3호기가 폭발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자전거를 타고 나온 시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길거리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 속보를 주시했다. 오후 2시쯤 센다이 시내 중심가에 구급차 4대가 한꺼번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면서 지나가자 시민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센다이 총영사관 근처에 있던 교민 민주혜(33·여)씨는 “여진이 계속되면서 어디 큰 불이라도 난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센다이 윤설영 윤샘이나기자 snow0@seoul.co.kr
  • 덩신밍, 교민들 고혈짜내 ‘떵떵’

    덩신밍, 교민들 고혈짜내 ‘떵떵’

    ‘상하이 스캔들’의 장본인 덩신밍(鄧新明·33)이 상하이 교민들의 고혈을 짜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중·대기업은 상하이 정부에 미치는 덩의 영향력을 이용해 사업 편의를 도모하고자 덩을 고문으로 올리는 등 로비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총영사관은 민원 등을 통해 이런 심각성을 알고서도 눈감아 줘 교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14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단독 문건과 이를 토대로 상하이 현지 교민 등을 확인 취재한 결과 덩은 4~5년 전부터 교민들을 협박해 금품 갈취 등의 방법으로 재산을 불렸다. 덩은 협박 수단으로 상하이 공안이나 위생국 등 정부 관료들을 활용했다. 한 교민은 “식당의 경우 돈을 주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위생국 관리들을 동원해 검사하게 한 뒤 문을 닫게 했다.”면서 “덩은 중국 고위직을 들먹이며 교민들을 협박해 ‘뒷돈’을 뜯었다.”고 털어놨다. 교민을 상대로 한 덩의 패악은 ▲교민 운영 식당, 반찬가게, 옷가게 등에서의 ‘공짜’ 대접 강요 ▲교민 업주들에게 매월 수백~수천 위안씩 상납 ▲가게 분점 낼 때 수속 절차 간소화 명분 수만~수십만 위안 수수료 착복 ▲아파트 등 투자 종용 뒤 되팔아 시세 차익 반분 요구 등이다. 덩은 이렇게 부정 축재한 돈으로 BMW3(회색 차량)를 몰고, 수십억원에 달하는 아파트와 빌라에 사는 등 호화생활을 누렸다. 카르티에, 구치 등 명품 옷·가방·귀금속 등으로 치장하며 재력가로 행세했다. 복수의 교민들은 “덩은 상하이 교민들의 피를 빨아 재산을 모았다.”고 토로했다. 상하이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사설] ‘일본 재앙’ 함부로 말하는 지도층 자성하라

    3·11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실종자 수만 4만명을 넘는다는 보도도 있다. 교민 희생자도 나왔다.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러시아도 지원에 동참하는 등 국제사회가 인종과 종교,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 어려움에 처한 일본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 긴급구조대 102명도 어제 일본에 도착했다. 피해가 가장 심각한 동북부 지역에서 실종자 구조 및 탐사, 안전평가를 수행할 계획이다. 배용준, 김현중씨 등 한류스타들도 일본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도와주려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일본이 ‘과거’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등 아픈 역사가 있다고 해서 일부 누리꾼들이 일본의 현재 고통을 외면하거나 잘됐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장삼이사(張三李四)도 아닌 지도층 인사가 일본의 재앙을 놓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보편적 인류애마저 내팽개친, 부끄럽고도 몰지각한 행동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본 대지진과 관련,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으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것으로 인터넷신문 뉴스미션이 그제 보도했다. 말문이 막힌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같은 날 트위터에 “일본 대지진으로 사망·실종만 2500여명, 연락불통만 1만여명입니다. 한반도를 이렇게 안전하게 해주시는 하느님께, 조상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과거를 반성하지 못하는 일본 극우주의자들과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재앙을 당한 일본과 일본국민을 자극하는 식의 언행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구조대·의료팀 지원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일본이 대재앙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게 이웃의 도리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일본의 대재앙이 한·일 두 나라가 진정한 이웃이 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일본이 하루빨리 대재앙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거듭 기원한다.
  • 원전 4호기마저 폭발...1~4호기 완전 초토화 ‘방사능 패닉’

    원전 4호기마저 폭발...1~4호기 완전 초토화 ‘방사능 패닉’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건물에서 15일 오전 수소폭발 화재가 발생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이날 오전 11시 기자회견에서 “9시38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4호기가 있는 건물 4층의 북서부 부근에서 화재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도쿄전력이 이날 아침 4호기의 원자로가 들어 있는 건물 5층의 지붕 일부가 파손된 것을 발견했다고 밝힌 데 이은 것이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4호기 원자로 자체는 11일 지진이 발생했을때 운전이 정지됐으나 내부에 보관돼 있던 사용후 핵연료가 열을 갖고 있어 수소가 발생하면서 1호기와 3호기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수소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는 지난 11일 오후 대지진과 쓰나미의 피해를 당할 당시 정기 점검 중이었다. 또 이날 오전 6시 10분쯤 원전 2호기에서도 폭발이 발생했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원전2호기에서 ‘서프레션 풀(압력억제 풀)’이라고 불리는 원자로를 덮는 격납용기와 연관된 설비에 손상이 있다고 밝혔다. 격납용기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났을 때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설비로, 손상이 될 경우 치명적이다. NHK는 “이 설비에 일부 손상이 발견됐다는 것은 방사성 물질 봉쇄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에다노 장관은 “주변 방사성 수치는 급격한 상승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고 밝혀 이번 설비 이상이 곧바로 주민의 건강에 피해를 입히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교도통신은 “원자력안전.보안원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현재 후쿠시마 제1원전 부근에서 매시간 965.5 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선량이 검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수치는 일반인들의 연간 피폭한도인 1천 마이크로시버트에 근접한 방사선량이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전날 밤 “1·2·3호기의 핵 연료봉이 전부 다 녹아내리는 노심용해의 우려가 높다.”고 말해 방사능 유출 우려를 고조시켰다.도쿄 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에서 10 ㎞ 남쪽에 있는 두 번째 원전 모니터링 지점의 방사선 양이 오후 10시 7분, 평소의 260 배에 해당하는 시간당 9.4 마이크로 시베르트(Sv)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에다노 장관은 앞서 1발전소 3호기 폭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전 11시쯤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3호기가 폭발했으나, 격납용기는 안전한 상태여서 방사능의 대량 유출 위험은 없다.”고 해명했었다. ☞[포토]최악의 대지진…일본열도 아비규환의 현장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은 “2호기는 물이 없는 상태에서 원전을 가동하는 상태여서 방사성 물질의 방출과 노심용해의 우려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지통신도 2호기 연료봉 노출과 관련, “연료봉이 녹아내릴 가능성도 있으며, 방사능이 누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3호기 폭발 직후 원전에서는 화염과 함께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는 등 지난 1호기 폭발 때보다 강도가 훨씬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호기의 폭발원인도 지난 12일의 1호기와 같은 수소폭발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폭발로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TEPCO) 사원 4명과 협력회사 종업원 3명, 자위대원 4명 등 모두 11명이 부상한 것으로 파악됐다. 폭발 당시 20㎞내에 주민 615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추후 피해가 예상된다. 원전에서 160㎞ 떨어진 곳에서 구조활동을 벌이던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승조원 17명이 방사능에 피폭됐다고 산케이신문이 미 7함대를 인용해 보도했다. 지진으로 인한 인명 피해도 늘고 있다. 미야기현 오시카반도 해안에서 시신 약 1000구가 발견된 데 이어 미나미산리쿠에서도 시신 1000구가 또 나왔다. 미나미산리쿠에서는 인구 약 1만 7300명 가운데 대피한 7500명을 제외한 약 1만명이 행방불명 상태인 만큼 시신이 추가로 발견될 것으로 우려된다. 경찰은 이날 오후 8시 현재 1886명이 사망하고 2369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했다. 한국인 희생자도 14일 처음으로 확인됐다. 외교통상부는 이바라키 현의 한 철탑공사현장 부근에서 교민 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망자는 히로시마 소재 건설회사 직원 이모(40)씨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jrlee@seoul.co.kr
  • 고속도 끊겨 국도로… 편의점 물·음식 동나

    고속도 끊겨 국도로… 편의점 물·음식 동나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난지 만 16시간 째인 12일 오전 6시. 기자는 참극의 현장인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로 가기 위해 노트북과 카메라를 둘러메고 공항으로 달려나갔다. 비행기로 서너 시간이면 날아갔을 그 곳. 그러나 대지진에 강타 당한 일본 열도는 현장 접근조차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22시간의 여정이 펼쳐질 줄, 그때는 몰랐다. 3월 12일 오전 6시30분 하네다로 출발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김포공항 카운터에는 전날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전 9시 출발 예정이었던 대한항공 KE2707편은 출발이 1시간이나 지연됐다. 일본 본토에서 착륙허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후 12시 하네다 공항은 지진으로 인해 휴대전화가 불통이었다. 걸고 또 걸기를 수십차례. 간혹 운이 좋아 전화가 걸리더라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도쿄메트로(지하철)는 다시 정상운행을 시작했다. “지진으로 인해 전화가 불통입니다. 생사확인을 위한 필수 통화가 아니면 전화통화는 자제해 주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하네다공항에 울려퍼졌다. 오후1시 15분 하네다 공항 국내선 터미널. 아오모리현 미사와시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승객들 100여명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B63번. 내 번호는 S,A를 다 지나도 63째다. B20번으로 좌석은 마감됐다. 그러나 누구 하나 “내 사정이 급하다.”거나 “자리를 빨리 마련해달라.”고 항의하지 않는다. 순서대로 차례를 기다리면 자리가 돌아온다고, 오랜 시간 질서에 순응해온 모습이다. 오후 2시30분 항공을 포기했다. 국도를 통해 센다이시로 가기로 결정했다. 도호쿠 고속도로, 신칸센 히가시니혼은 지진 발생 이후 통행이 전면 금지됐다. 평소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 내비게이션은 예상소요시간을 12시간으로 알려줬다. 378km가 남았다. 오후 4시 사이타마현 교다시를 지나는 김에 마트에 들러 간단한 음료수와 비상식량을 샀다. 마트에는 식료품 매장 곳곳에는 ‘지진으로 인해 운송이 원활하지 못해 상품이 배달되지 않았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문구가 걸려있다. 오후 3시 30분쯤 후쿠시마현 원전 1호기가 폭발했다는 뉴스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다. 모든 방송채널은 하루 종일 지진 피해상황과 정부의 안전대책에 관한 뉴스로 넘친다. 밤 11시 사이타마현~도지키현을 지나 후쿠시마현에 들어섰다. 이제 미야기현 센다이시를 향해 나아간다. 캄캄한 밤인 데다 내륙의 국도 위주라 지진피해는 보이지 않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간혹 도로 일부가 파손된 모습이 관찰됐다. 통행 금지로 1시간씩 정체를 이루기도 했다. 후쿠시마시는 온통 암흑이다. 한참만에 발견한 편의점은 모든 음식, 음료가 동났다. 3월 12일 새벽 4시30분 센다이 총영사관에 도착했다. 아침이 머지않았건만 대피소에 모여 있는 교민들은 잠을 못 이룬 채 영사관 밖에서 삼삼오오 모여있다. 대강당에는 70여명의 교민들이 집에서 급하게 꾸려나온 담요 등을 덮고 선잠을 청하고 있었다. 복도에는 영사관측이 비상식량으로 나눠준 라면, 김치 냄새가 진동했다. 센다이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센다이 교민·유학생이 전하는 ‘공포의 순간’

    일본 강진 최대의 피해지역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살고 있는 교민과 유학생들은 지진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나도록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책장 무너져 연구실에 갇힐뻔” 미야기현 센다이시 모니와다이 지역에 거주하는 심미현(37·여)씨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지진과 맞닥뜨렸다. 서둘러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대피한 심씨는 8개월 밖에 안된 포대기로 딸 아이를 감싸고 앉아 있었다. 땅이 상하로 크게 출렁거리면서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들은 장난감처럼 통통 튀어 다녔다. 심씨는 “20분 거리 유치원에 있는 큰애를 데리러 가는 길이 천길처럼 느껴졌다.”면서 “바닷가 쪽에 사는 지인들은 쓰나미 피해로 집이 모두 물에 잠기는 등 더 심각하다고 해 걱정된다.”고 말했다. 심씨는 현재 남편, 두 아이와 함께 사흘 째 영사관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물자가 부족한데도 영사관에서 끼니때마다 배식을 해줘 지금은 괜찮지만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도호쿠 대학 고등교육 연구센터 교수인 김현철(42)씨는 책장이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연구실에 갇힐 뻔했다. 지진 직후 정신없이 대피하다 책상 위에 두고 나온 차 열쇠와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연구실로 돌아갔다가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 김씨는 “일본에서는 지진이 나면 가장 먼저 출입문을 확보하기 위해 문을 열어놓으라고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순간 눈 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창문으로 뛰어내릴까 생각했지만 4층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면서 “있는 힘껏 문을 밀고 나간 뒤 결국 문이 조금 움직였다.”고 말했다. ●전세기·특별기 등 대책 호소 한편 지진 발생 3일째가 되면서 영사관에 머무는 피난민 수는 크게 늘었다. 지진 발생 당일인 11일 10여명에 불과했던 영사관 피난민 수는 이튿날인 12일 110명으로 늘었다가 13일 200여명이 됐다. 한인교회와 대피소에 있던 교민들도 영사관에 한국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나온 부모들은 영사관 대강당에 담요를 깔고 앉아 아이들을 안심시켰고 밤에는 쪽잠을 잤다. 이들은 영사관에서 마련한 ‘귀국 희망 이송 신청서’에 이름을 적어내며 하루빨리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기를 바랐다. 13일 낮 영사관을 찾아온 도호쿠 대학 교환학생 김혜미(21·여)씨는 “귀국 희망서를 내긴 했지만 언제쯤 한국에 갈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전세기와 특별기 등 당장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는 교민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유학생 김모(24)씨는 “당장 비행기표를 구해주는 등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귀국 희망서를 내기만 하면 뭐하냐. 시간이 갈수록 불안한 마음뿐이다.”라고 불안감을 내비쳤다. 센다이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원전·금융·부품·물류·관광 일일점검 대응체제 가동

    정부는 13일 사상 최악의 일본 도호쿠 대지진에 대한 국내 불안 심리 확산을 차단하는 한편 범정부 차원의 비상대책반을 중심으로 부문별 상황을 면밀히 점검해 필요시 선제 대응으로 국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16개 부처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일본 대지진이 한국 경제 및 개별 산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 체계를 점검했다. 전날 국제·국내금융, 곡물·석유 등 원자재, 산업·교역, 물류·수송, 관광 등 분야별 일일 점검 대응 체계 가동을 위해 임종룡 재정부 제1차관을 반장으로 한 ‘경제분야 합동대책반’을 꾸린 데 이어 ‘원전 관련 대책반’을 추가로 구성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일본에 대한 구호·복구 지원이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한 지원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지식경제부는 국내에 도입될 액화천연가스(LNG) 물량 일부가 일본에 우선 공급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윤 장관은 “현 단계에서는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되지만 불확실성이 크다.”면서 “국제적으로도 일본이 피해를 충분히 감내할 능력이 있다고 보고 일본 대지진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이 세계 경제 및 국제 금융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지난해 우리나라와의 교역규모가 924억 달러에 이르는 제2의 교역 상대국이라는 점에서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정부는 교민의 안전 확보를 위해서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일본 대지진의 영향이 부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각 부처가 소관 사항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한 뒤 필요시 선제적으로 대응해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총괄 부처인 재정부는 세계 경제 동향 및 거시경제 효과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예산 지원이 필요할 경우 긴밀하게 협조할 계획이다. 지경부는 대일 수출입, 일본 의존도가 높은 핵심부품·소재 수급 등 실물 부문 점검을 강화한다. 일본 원전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인 만큼 교육과학기술부는 지식경제부와 함께 관련 동향을 적극 모니터링하고 국토해양부는 물류 상황 점검과 수송 대책에 나선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의 34.4%가 일본 관광객인 점을 고려할 때 우리 관광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이 예상되는 만큼 문화체육관광부는 관련 사항을 면밀히 점검한다. 금융위는 금융·외환시장이 외부 충격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일이 없도록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해 필요시 선제적 대응을 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은행도 지진에 따른 일본 실물 경제 피해 등을 가급적 빨리 파악해 국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뒤 필요할 경우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화력발전소 굴뚝공사 현장서 한국인 2명 사망 첫 확인

    일본 이바라키현 화력발전소 굴뚝 증설공사 현장에서 한국인 2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통상부는 14일 ”지진 발생 당시 도쿄 북부 이바라키현에서 철탑 공사를 하던 이모(40)씨와 김모(43)씨가 철탑에서 추락해 숨진 사실을 오늘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조선 국적의 재일교포이며, 이씨는 한국 국적의 교민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확한 신원은 확인 중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한국구조대 102명 日급파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오전 10시 30분(현지시간)부터 15분간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했다. 이 대통령은 “인간의 힘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엄청난 자연재해를 입은 데 대해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 진심으로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간 총리께서 경황이 없으실 것 같아 이제야 전화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국민들이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은 감동적”이라면서 “저는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서 이번 재해에 위로를 드리면서 허락하신다면 구조활동팀을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간 총리는 이에 대해 “대통령께서 지진이 발생하던 당일 위로 전문을 보내 주시고, 오늘 이렇게 따뜻한 말씀을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면서 “첫번째 해외팀으로 구조견팀에 대해 일본 국민이 감격해 하고 있고, 국민을 대표해서 감사드린다. 한국의 구조팀이 파견될 수 있도록 조정해 나가겠다.”고 화답했다. 정부는 일본 측과 협의, 14일 새벽 중앙119구조단 및 의료요원, 통역요원 등 100명과 외교부 직원 2명 등 긴급구조대 102명을 공군 C130 수송기 3대를 통해 센다이 인근 지역으로 급파하기로 했다. 이들은 피해가 가장 큰 도호쿠 지역에서 실종자 구조와 탐사, 안전평가 등을 수행할 예정이다. 민동석 외교통상부 2차관은 브리핑에서 “앞으로 일본 측과 협의해 가능하다면 구조 인원을 추가로 파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현지로 파견한 신속대응팀 등을 통해 우리 국민의 안전 확인 및 구조 지원 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재외공관 및 교민단체와 연락이 되지 않는 국민의 숫자가 적지 않아 인명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번 지진의 피해가 가장 큰 도호쿠 해안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교민은 이와테현 오후나토시 8가구, 미야기현 이시노마키 8가구 등 20여 가구 60여명으로, 현재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또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반경 30㎞ 이내에 거주하던 교민 2명도 연락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외교부는 일본 도쿄 및 지바현을 여행경보 1단계(여행유의)로, 도호쿠 5개 현을 여행경보 2단계(여행자제)로, 후쿠시마 원전 주변 반경 30㎞ 이내 지역은 3단계(여행제한)로 각각 지정했다. 아부다비 김성수·서울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日지진 피해 교민 사망자 1명 확인…조선적도 1명

    일본 대지진으로 한국 교민 이모(40)씨가 숨진 것으로 14일 밝혀졌다. 이번 재난이 발생한 이후 우리 교민 사망자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주 히로시마 총영사관에 따르면 사망자 숨진 이씨는 일본 히로시마 소재 건설회사 직원으로 지난 11일 지진이 일어날 때 이바라키현의 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굴뚝 증설공사를 하던 중 추락했다. 이씨의 시신은 아직까지 수습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숨진 이씨는 수십년 동안 일본에 거주해온 사람으로 일본 당국이 사망사실을 확인해 먼저 연락해 왔다.”면서 “일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족들에게 연락해 장례를 지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또 같은 현장에서 조선적(朝鮮籍) 재일동포 김모(43)씨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선적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간 이들 중 한국이나 북한 국적을 갖지 않고 일본에도 귀화하지 않은 재일동포이고 법률상 무국적자인 사람들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교민들이 전하는 지진 당시 끔찍한 상황

     일본 강진 최대의 피해지역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살고 있는 교민과 유학생들은 지진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나도록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눈 앞에서 책장이 무너지고 유리창이 깨져 나가는 아비규환 속에서 일본에 오래 거주한 베테랑 교민들도 당황했다. 주로 센다이 시내에 사는 교민과 유학생들은 해안가쪽에 비해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최악의 강진에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미야기현 센다이시 모니와다이 지역에 거주하는 심미현(37·여)씨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지진과 맞닥뜨렸다. 서둘러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대피한 심씨는 8개월 밖에 안 된 딸 아이를 포대기로 감싸고 앉아 있었다. 땅이 상하로 크게 출렁이면서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들은 장난감처럼 통통 튀어 다녔다. 심씨는 “주차장에 30분쯤 대피해 있다가 20분 거리의 유치원에 있는 큰애를 데리러 갔는데, 그 길이 천길처럼 느껴졌다.”면서 “그나마 센다이 시내는 피해가 적지만 바닷가 쪽에 사는 지인들은 쓰나미 피해로 집이 모두 물에 잠기는 등 더 심각하다고 해 걱정된다.”고 말했다.  도호쿠 대학 고등교육 연구센터 교수인 김현철(42)씨는 책장이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연구실에 갇힐 뻔 했다. 지진 직후 건물 밖으로 대피하면서 책상 위에 두고 나온 차 열쇠와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연구실로 돌아갔다가 문이 열리지 않는 바람에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김씨는 “일본에서는 지진이 나면 가장 먼저 출입문을 확보하기 위해 문을 열어놓으라고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순간 눈 앞이 깜깜했다.”고 말했다. 나사로 벽에 단단히 고정해놨던 책장이 힘없이 무너져 책과 집기들이 온통 나뒹구는 바람에 열쇠와 휴대전화는 찾지도 못했다. 김씨는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릴 생각도 해봤지만 4층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면서 “결국 힘으로 문을 밀고 나가 비상계단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부인과 3개월 된 아이가 있는 집까지 무작정 걷기 시작한 김씨는 “10㎞ 떨어진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각 건물에서 쏟아져나온 사람들로 홍수를 이뤘다.”면서 “전기가 끊겨 신호등도 모두 꺼지면서 도로 위는 차가 뒤엉킨 아수라장이 됐다.”고 회상했다.  지진이 발생한 순간 센다이 시립도서관 4층 열람실에 있던 도호쿠 대학 교환학생 김혜미(21·여)씨는 “도서관 안에 비상대피 사이렌이 정신없이 울리고 도서관 책이 다 쏟아져 내려는 걸 보면서 발이 얼어붙어 도망갈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내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김씨는 건물이 계속해서 흔들리자 열람실에 있던 일본인 15명과 함께 비상계단을 통해 탈출을 시도했다. 아랫층에 있던 사람들부터 차례대로 빠져나가느라 지체하는 30분 동안 바닥과 벽이 계속해서 흔들렸다. 김씨는 “가까스로 건물 밖으로 빠져나간 뒤에도 출렁였는데 그게 무서워서 몸이 떨린건지 실제로 지진이 계속된 건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비상식량을 구입을 시도했지만 큰 마트는 이미 모두 문을 닫았다. 편의점만 전기가 나간채로 물건을 팔고 있었지만, 영업을 하는 편의점 앞에는 이미 300m가 넘는 줄이 골목을 돌아 길게 이어져 있었다. 김씨는 “그나마 편의점에 남았던 음식도 100명이 채 되지 않아 다 동이 나고 길거리에는 겁에 질린 표정을 한 사람들로 가득했다.”면서 “교환학생 한 학기가 남았지만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돌아가 이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센다이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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