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교민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남성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718
  • [길섶에서] 말고기의 추억/오승호 논설위원

    어렸을 적 말고기를 먹었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요즘처럼 샤부샤부나 갈비찜, 육회 등 다양한 메뉴가 개발되기 이전이었다. 고기를 썰어 프라이팬으로 구워 먹었다. 말고기 스테이크인 셈. 그 당시 육질이 좀 퍽퍽하고 담백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말고기의 지방 함량이 소고기의 3분의1 수준으로 적기 때문일 것이리라. 오래전 술자리에 동석했던 제주 출신이 서울지역 호텔에서 말고기 전문 식당을 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본 관광객들과 국내 부유층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사업이 성공해 돈을 잘 벌고 있는지 수소문해봐야겠다. 유럽의 말고기 파문이 가라앉질 않는다. 독일에선 여당인 기독교민주당 간부가 수거한 문제의 ‘말고기 섞인, 다진 소고기’를 거둬 빈곤층에 제공하자고 제안해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단다. 우리는 2011년 9월부터 말산업육성법을 시행하고 있다. 말고기 소비와 수출을 촉진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말고기 스캔들이 국내 마육(馬肉)산업에 타격을 주는 일은 없겠으면 좋겠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리비아, 불법선교 혐의 한국인 체포

    리비아 경찰이 한국인 1명을 포함한 외국인 4명을 불법 선교에 관여한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AP통신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리비아 경찰은 지난 12일 동부 벵가지에서 한국인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인, 이집트인, 미국과 스웨덴 이중 국적자 등 모두 4명을 체포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기독교 선교 서적을 인쇄하고 유포하거나 불법 선교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17일 “체포된 한국인의 신원을 밝힐 수는 없으나 선교사는 아니고 벵가지에서 가족과 함께 1년 이상 거주한 교민으로 보인다”면서 “가족들은 선교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리비아 당국은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후세인 빈 하미드 리비아 경찰 대변인은 관련국 대사관 직원들이 이미 조사 대상자들을 방문해 면담했다고 밝혔지만 이들이 구금된 장소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들의 신원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기독교 선교 서적 4만 5000여권을 압수했으며, 나머지 2만 5000여권은 이미 이들이 배포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서울광장] 민주당, 미얀마에 길을 물어라/구본영 논설실장

    [서울광장] 민주당, 미얀마에 길을 물어라/구본영 논설실장

    미얀마(버마) 민주화의 ‘아이콘’ 아웅산 수치여사.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참석차 이달초까지 한국에 머문 그의 행보는 퍽 뜻밖이었다. 야당투사답지 않게 교민들을 만났을 때조차 자국의 민주화 구상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 곳에서나 미얀마의 경제 발전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드러냈다. 그는 서울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성장 모두를 이뤄낸 국가”라고 부러워했다. 의례적 공치사는 아닌 듯했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의 형편이 미얀마와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회택·차범근이 최고인 줄 알았던 축구 팬들은 이따금 한국팀이 버마팀에 속절없이 무너지던 장면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미얀마의 내리막길은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가 버마식 사회주의와 폐쇄정책을 고수하면서 비롯됐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수치가 이끈 민주화 운동으로 맞은 짧은 ‘양곤의 봄’은 친위 쿠데타로 끝났다. 이후 국제적 고립의 심화로 미얀마는 아시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그러던 미얀마는 2011년 역사적 전기를 맞는다. 군 출신이지만 선거로 집권한 테인 세인 대통령이 확실한 개혁·개방의 깃발을 들면서다. 그는 정치범 석방을 단행하고 노조를 인정했다. 특히 “수치의 집권 기회를 차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가택 연금도 해제했다. 한국을 찾은 수치가 굳이 민주화 일정을 입에 올릴 까닭도 없었던 셈이다. 대선 패배 후 민주통합당이 ‘멘붕’(멘털 붕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내에선 “친노 후보인 문재인의 한계 때문이라느니, 안철수가 흔쾌히 도와주지 않은 탓이라느니”하는, ‘네 탓’ 공방만 무성하다. 하지만 대선 패배의 원인을 둘러싼 ‘친노 대 비노’의 공방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고 있는 느낌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변양균의 진단이 외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는 “민주당이 이념의 틀에 갇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용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프로젝트를 뒤엎어 다수 국민을 실망시켰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 전부터 한·미 FTA 발효 중단에 당운을 걸었다. 지도부가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함께 우르르 미국 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종주먹을 들이대기도 했다. 총선 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당의 이런 행태가 패인임을 정확히 꼬집었다. 즉,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한 것은 (국민들이) ‘당신들은 반대하는 것 잘하니 야당이나 하라’고 한 것 아니겠느냐”는 힐난이었다. 민주당은 최 교수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집권하려면 민주 대 반민주 구호에만 기대지 말고 대안정부로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충정에 공감했어야 했다. 설마 우리의 민주화 수준이 미얀마보다 낮다고 착각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얼마 전 수치는 김대중도서관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자국 교민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집권 후) 미얀마도 (한국처럼)경제 발전을 이룩하면서 고유 문화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서였다. 쇄국으로 인한 미얀마의 ‘잃어버린 50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하기야 멀리 볼 것도 없다. 우리의 반쪽인 북한도 미얀마처럼 문을 닫아 걸어 주민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지 않았는가. 개방 이후 아연 활기를 띠고 있는 미얀마 경제를 보면 한·미 FTA 등 우리가 선택한 세계화 노선에 대해 회의를 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민주당이 ‘불임(不姙)정당’의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우선 자아도취적인 선악 이분법에 매몰돼 습관적 반대는 일삼지 말아야 한다. 자원은 없고 사람은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활로를 열 진취적 대안도 보여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민주당은 5년 후에도 ‘제2의 안철수’에게 기대는 신세일는지도 모르겠다. kby7@seoul.co.kr
  • 수치 “故 김대중 前 대통령 뵙지 못해 유감입니다”

    수치 “故 김대중 前 대통령 뵙지 못해 유감입니다”

    방한 마지막 날인 1일 아웅산 수치 여사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한국과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인 두 사람이 직접 만난 것은 처음이다. 이 여사가 “남편이 살아계셨다면 상당히 기뻐하셨을 겁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사님의 건강과 자유를 갈망하셨어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수치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을)만날 기회가 없어 너무 유감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여사는 또 “앞으로 꼭 버마의 대통령이 되셔서 국민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버마를 만드시길 바란다”고 말했고 수치 여사는 “아시아에서 첫 번째는 아니지만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이루겠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 자신이 각각 쓴 ‘實事求是’(실사구시), ‘寬仁厚德’(관인후덕)이 새겨진 백자 도자기를 수치 여사에게 선물했고, 수치 여사는 미얀마 현대 미술가의 그림 1점을 답례로 건넸다. 수치 여사는 이 여사와 회동에 배석한 송영길 인천 시장과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송 시장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국제사회의 힘을 모아주기를 요청하는 등 동료 의원들과 여사님의 가택연금 해제를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한 뒤 “가택연금이 해제되었을 때 제가 직접 전화드린 거 기억하시나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수치 여사는 “가택연금 동안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것을 잘 알고 있다. 여러분들의 도움 덕분에 지금 우리가 자유를 얻었다”고 화답했다. 이에 앞서 수치 여사는 재한 미얀마 교민들과 만나 “버마 민주화를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버마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400명이 넘는 미얀마 교민들은 수치 여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일제히 “여사님, 건강하세요!”라고 외치며 크게 환영했다. 교민 녜인마웅탄(32)은 “한국에 온 지 9년 동안 가장 행복한 날”이라면서 “지금껏 고생했던 일들이 모두 잊혀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서울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수치 여사는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개발’이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다. 이번 강연에는 한국에서 유학 중인 미얀마 학생들을 비롯해 우간다, 감비아 등 개도국 학생들 수십여명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수치 여사는 “민주주의의 기본은 자유, 정의, 안보에 대한 개념”이라며 “민주주의를 경제자유화와 연관 짓는 경우도 있는데 진정한 민주 강국은 인간에 대한 가치가 제대로 확립된 곳”이라고 강조했다. 수치 여사는 지난달 28일 한국을 찾아 4박 5일간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이날 저녁 출국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농심, 美월마트에 라면 직접 공급

    농심은 국내 식품업계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와 직거래 계약을 체결했다고 17일 밝혔다. 농심의 미국법인인 ‘농심 아메리카’는 현지 딜러를 통해 일부 월마트에 제품을 공급하던 것에서 벗어나 이달부터 미국 전역의 3600여개 월마트 전 매장에 라면을 직접 공급하게 됐다. 월마트는 신뢰도, 제품 매출, 인지도 등에서 높은 평판을 유지하는 기업들과 직거래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네슬레, 코카콜라, 펩시 등 글로벌 기업만이 참여하고 있다. 197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라면을 수출한 농심은 1994년 농심 아메리카 설립, 2005년 LA 공장 가동과 함께 미국시장 공략에 나서 월마트, 코스트코 등 주요 대형마트 체인, 슈퍼마켓 등 지역별 소매시장을 중심으로 유통망을 늘려왔다. 이번 직거래가 성사된 것은 미국 내에서 높아진 농심과 신라면의 인지도 때문이라고 농심 측은 설명했다. 현재 농심 신라면과 육개장사발면은 한국 교민뿐 아니라 백인, 히스패닉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체 월마트 아시안 푸드섹션에서 수년째 1위를 달리고 있다. 농심은 월마트와 직거래를 계기로 판매데이터를 분석, 시장 트렌드에 맞는 맞춤식 영업활동을 전개하고 매장 바이어와 대면 영업을 통해 제품 입점·진열, 판촉활동을 벌이는 등 전략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알제리軍, 가스전에 발포… 인질·무장세력 수십명 사망

    북아프리카 알제리 정부군의 공격으로 17일(현지시간) 이슬람 무장단체가 억류한 외국인 인질과 무장세력 수십명이 사망했다. 알제리군이 이날 헬기를 동원해 인질들이 억류돼 있는 알제리 동남부 인아메나스 가스 생산시설 단지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인질 34명과 무장세력 15명이 사망했다고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숨진 인질들의 국적은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프랑스 인포 라디오는 “다른 인질 26명은 풀려났다”고 보도했다. 알제리군은 무장세력이 인질을 데리고 가스전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고 할 때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외국인 피랍을 주도한 이슬람 무장단체 ‘복면 여단’의 대변인은 “알제리 정부군의 헬기 공격으로 지도자 아부 엘 바라아도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프랑스24 TV는 무장단체가 일부 인질의 몸에 폭발물을 벨트로 묶었다고 보도했다. 알제리 정부는 앞서 군 병력과 헬기를 동원해 가스전을 포위한 채 20여명의 무장세력과 대치했다. 국제 테러단체 알카에다와 연계한 이 무장단체는 지난 16일 가스전을 점령해 미국인 7명과 영국인, 일본인, 프랑스인, 노르웨이인 등 총 41명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알제리가 말리 내전에 개입하고 있는 프랑스에 영공을 개방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다호 울드 카블리아 알제리 내무장관은 이 과정에서 영국인 1명, 알제리인 1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무장단체는 인질 가운데 한국인도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으나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현지 공관을 통해 알제리 외교 당국에 확인한 결과 현재까지 한국인 인질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만에 하나 가능성에 대비해 계속 확인 작업 중이며 현지 교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무장단체는 앞서 알제리군이 철수하면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 알제리 정부에 협상 의사를 내비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들은 말리에 구금 중인 이슬람 대원 100명과 외국인 인질의 맞교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알제리 정부는 “무장세력과 절대 협상하지 않겠다”면서 인질 석방을 위한 다국적군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단호한 입장을 고수했다. 알제리 정부는 아직 이 사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의 배후는 아프리카 사하라 일대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이슬람 전사 모크타르 벨모크타르인 것으로 전해졌다. 알제리 출신의 벨모크타르는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지부(AQIM)’의 전신이자 강경 무장 분파인 살라피스트 선교전투그룹(GSPC)의 공동 창립자로, 20여년간 여러 건의 외국인 납치 사건에 관여해 온 범죄 조직의 거물로 알려져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달에만 의원 9개팀 31명이 동남아 ‘외유성 출장’ 간다

    새해 예산안을 심사하자마자 외유성 출장길에 오른 ‘호텔방 예결위’ 의원들이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번 달에만 국회의원 9개팀 31명이 동남아 출장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 외교’라는 그럴 듯한 목적을 내걸었지만 동남아 현지에서는 국회가 회기 중이 아니어서 정작 방문지 국가의 의원들은 만나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4일 “출장지 대부분이 휴회 중이라 의원들의 출장 일정(명분)을 만들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결국 출장국에 사정하다시피 일정을 만드는 사례가 많으며 의원들을 못만날 경우 국장급 국회공무원을 면담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1~2월과 7~8월에 떠나는 의원 외교 활동은 사실상 외유성 출장이라고 꼬집었다. 호텔방 예결위 의원(9명)들의 출장은 지난해 예산으로 출장을 가는 것이어서 불법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엄격히 적용하면 국가재정법상 ‘예산 단년(單年)주의’ 원칙을 무시한 불법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부 의원의 경우 예결위 회의 도중 말라리아 예방 접종을 맞으러 가는 등 ‘모럴 해저드’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의회 외교’ 사업은 의장단과 상임위원회 시찰단, 의원친선협회 대표단의 방문, 주요국 의장단의 방한 초청, 국제회의의 참석·개최 등 국회의원의 외교 활동을 통해 국익 증진에 기여하는 사업으로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국회 정보 공개를 통해 확인한 18대 국회의 의회 외교 활동은 관광과 만찬으로 짜여진 외유성 출장이었다. 강언주 간사는 “해외 출장에서 소요된 경비의 영수증 관리는 엉망이었고 그나마 있던 영수증의 내용도 현지 교민과 진출기업 관계자들과의 식사 비용이 대부분이었다”고 꼬집었다. 출장비도 상당했다. 공무원 여비 규정에 장관급인 국회의원은 항공료(1등석) 외에 출장 지역에 따라 일비와 숙박비, 식비를 합해 하루 345~817 달러가 지급됐고, 이와 별도로 업무추진비가 의원 1인당 800 달러가량이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회의장이 참석하는 해외 출장에는 수행 인원도 많아 출장기간 수억원의 예산이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출장에 사용되는 ‘국민의 혈세’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정보 공개를 청구하지 않는 이상 확인할 길이 없다. 국회 미디어담당실 관계자는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외교 관련 사항은 비공개로 할 수 있다”며 이를 준용해서 비공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활동 내용을 비공개로는 할 수 있지만 비용 자체는 해당되지 않으며, 어디에 썼는지 보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사우디 주재 한국 영사 숨진 채 발견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한국 대사관의 영사가 지난 2일 숨진 채 발견됐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3일 “사우디 주재 김모 영사가 지난달 31일 교민 송년회를 끝내고 귀가한 뒤 2일 출근을 하지 않아 대사관에서 실종 신고를 했다”며 “사우디 경찰이 현지시간으로 2일 오후 8시쯤 김 영사의 시신과 승용차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김 영사는 수도 리야드의 한국대사관에서 차량으로 20분 정도 떨어진 지역의 절벽 아래에서 차량과 함께 발견됐다. 차량에는 김 영사 혼자 탑승해 있었으며 차량이 절벽으로 추락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우디 경찰 당국은 사고 경위와 사인을 조사 중이며 3~4일 후 시신을 우리 정부에 인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타살 및 테러 정황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당국자는 김 영사가 송년회에서 술을 마신 뒤 음주운전을 하다 변을 당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교민 송년회 참석은 영사 업무에 해당하며 자택으로 돌아가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추정된다”며 “음주 여부는 확인된 게 없다”고 설명했다. 공무 중 사고로 인정되면 김 영사는 순직 처리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찬호 형에겐 미안하지만 124승 기록 내가 깨겠다”

    “찬호 형에겐 미안하지만 124승 기록 내가 깨겠다”

    류현진(25)이 ‘다저블루’를 입고 공식 석상에 섰다. 박찬호 선배가 세운 아시아선수 최다승(124승) 기록을 깨겠다는 야심도 드러냈다. 류현진은 11일 미프로야구 LA다저스의 홈 구장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입단식을 가졌다. 네트 콜레티 단장, 박찬호의 스승인 토미 라소다 전 감독,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매직 존슨 공동구단주가 직접 다저스의 유니폼 ‘다저블루’를 입혀 줬다. LA 타임스와 데일리뉴스 등이 취재에 나섰고 FOX스포츠 등은 생방송으로 연결하기도 했다. 등번호 99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은 “계약이 너무 잘됐다. 타결되고 나서 큰 소리를 지를 만큼 기뻤다.”면서 “어릴 적 박찬호 선배의 경기를 보며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웠다. 박 선배가 뛰던 팀이라 더 영광스럽다.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겨울 동안 열심히 훈련해 체력적인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힌 류현진은 “두 자릿수 승수와 2점대 평균자책점이 목표다. 최종 목표는 박 선배에게 미안하지만 최다승 기록을 깨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할 무기에 대해 묻자 “한국에서도 첫 시즌에 포수 사인대로 던졌더니 결과가 좋았다. 얼마나 빨리 타자들의 장단점을 파악하느냐가 열쇠지만 첫 해에는 포수가 던지라는 대로 던지겠다. 내 직구와 체인지업이면 통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 “교민이 많은 LA를 홈으로 둔 다저스의 선발 투수로서 한인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교민들의 성원을 당부했다. 14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류현진은 비자 발급 등의 절차를 마무리한 뒤 내년 1월쯤 미국으로 가 본격적인 담금질에 나선다. LA에서 개인 훈련을 하다 2월 13일 시작하는 다저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한다. 지난 10일 6년간 3600만 달러(약 390억원)에 다저스와 계약한 류현진은 첫 해인 내년에는 250만 달러(약 27억원)를 받는다. 계약금 500만 달러를 뺀 3100만 달러를 해마다 다르게 나눠 받는다. 2014년에는 350만 달러(약 37억 7000만원), 2015년은 400만 달러(약 43억원), 2016년부터 3년 동안은 매년 700만 달러(약 75억 4000만원)씩 손에 쥔다. 또 사이영상 후보로 올라가면 득표 순위에 따라 보너스가 주어진다. 트레이드 거부권을 포기한 대신 팀이 자신의 동의 없이 마이너리그로 보낼 수 없게 만든 조항도 삽입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기고] 프랑스 한류 팬들은 모두 한국어를 한다/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기고] 프랑스 한류 팬들은 모두 한국어를 한다/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유럽에서 한국 대중문화 사랑은 파리에서 시작되어 확산되고 있다. 필자는 이를 ‘유럽의 한류’라 칭하는 것이 불편하다. 갑자기 우리 대중문화의 열풍과 파도가 유럽 대륙을 휩쓴 것도 아니고, ‘문화’ 교류는 결코 그렇게 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는 오래전부터 다른 민족의 문화와 예술이 소개되었다. 먼저 우리는 그 가치를 발견하고, 즐기며 우리 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맞는 것으로 변형, 재창조하여 그것을 처음 전해준 나라 사람들과 공유하고 함께 사랑하게 되었다. 서양 음악, 미술, 패션, 체육, 영화, 그리고 K팝 등의 예가 그렇지 않은가. 문화는 정치, 경제와 다르다. 서로 관계가 깊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문화도 우리를 점령하거나, 속박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는 비를 오래 맞은 것처럼 스며들어 그 문화가 천천히 우리의 의식과 삶의 태도를 바꾸곤 하기에 정치나 경제보다 더 힘이 있다. 한류가 5년 내로 시들해질 것이라고들 말한다. 상업적 성과가 줄어들 거라는 말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한류를 문화적으로 생각하면 필자는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문화적 산물은 공산품과 달라서 그 안에 수많은 문화적 가치가 존재하기에, 다양한 수요로 확대된다. 실제 파리에서 K팝으로 그들 주변 사람들, 조부모,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이 변하는 것을 봤다. 우리 모두가 K팝을 좋아할 수는 없는 것처럼, 조부모는 한국문학을, 부모는 한식과 국악을, 또 다른 이들은 영화·만화·드라마를 더 열렬히 좋아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한국대중문화의 성과는 결코 잠시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하고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통해 얻은 성공적인 결과들이다. 33년차의 프랑스 한국문화원은 연중 다양한 사업과 행사로 한국문화예술을 프랑스인들이 체험하고 사랑하게 하고 있다. 순수 교민이 4000명에 불과해도, 파리에만 110개가 넘는 한국식당이 성업 중인 이유이다. 전국적으로 여러 한국영화제가 해마다 개최되고, 소수에 불과하던 8개 대학의 한국학 전공 신입생 수가 1000명이 넘은 지도 몇 년이나 되었다. 30여개 프랑스 고등학교에서는 한국문화실습 수업이 열리고 있다. 수십만명의 한국문화 애호가들은 길에서, 광장에서, 바에서, 연습장에서, K팝 공연장에서 가사는 물론 추임새까지도 한국어로 넣는다. 지방의 상점에서, 길거리에서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 인사는 이제 희귀하지 않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만은 아니다. 그 안에 삶의 태도, 의식, 사회적 특성 등 많은 매력적인 것들이 담겨 있다. 설문 결과, 유럽인들은 우선 한국, 한국사람, 한국문화를 알고 싶어 한국어를 배운다고 한다. 우리가 팝송을 좋아하며 영어와 영미 문화에 관심을 키웠던 걸 기억하면 이해가 쉽다. 전세계 23개 한국문화원과 90여개의 세종학당을 통해 세계인들이 우리말을 배우고 있다. 우리의 “문화로 인류의 평화와 사랑에 기여”하려는 꿈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한국인들이 한글과 한국어, 한국문화를 더 사랑하는 일이 아직 남아 있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7·끝) 이승만과 박용만

    [선택! 역사를 갈랐다] (37·끝) 이승만과 박용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나 박용만(1881~1928)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두 사람은 절친한 동지로서 미국에서 유학한 후 독립운동의 지도자 역할을 했지만, 노선의 차이로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다. 이승만의 ‘외교론’은 조선의 힘으로는 독립이 어려우니 열강과의 외교 교섭을 통해, 그들이 조선을 독립시켜 주도록 교섭을 하자는 논리였다. 하지만, 박용만의 ‘무장투쟁론’은 체계적으로 군사력을 양성하여 일본과 무력항쟁을 벌일 준비를 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4·19 혁명의 결과 하와이로 쫓겨난 뒤, 비서에게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힘든 상대는 바로 박용만이었다고 회고하였다. ●옥중 결의형제, 미국유학을 떠나다 이승만은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서 배재학당을 다니다가 1898년 독립협회가 주최한 만민공동회를 통해 일약 청년 지도자로 부각되었다. 그런데 박영효 세력들이 꾸민 역모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다. 탈옥을 감행했다가 체포됨으로써 죄가 가중되어 사형선고를 받을 뻔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감형되어 감옥생활을 했다. 박용만은 관립일어학교를 다니다가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1901년 귀국 후 박영효와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감옥생활을 몇 개월 하였다. 그는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1904년 일제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에 반대하다가 다시 감옥생활을 하였는데 바로 이때 이승만과 만나 옥중 의형제를 맺었다. 1904년 출옥한 지 몇 달 뒤 미국으로 떠난 이승만은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이때 기자들에게, 자신은 일진회의 대표로 왔고 대한제국 국민은 고종을 지지하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보다는 일본에 더 우호적이라는 말을 하였다. 워싱턴 DC의 유력한 장로교 목사 추천으로 조지워싱턴대학에 들어간 그는 학업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았음에도 무사히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의 석사과정에 입학하였다. 그는 2년 만에 박사를 달라고 우겼지만, 성적 불량으로 석사를 마치지 못하게 되자, 또다시 프린스턴대학의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2년 만에 파격적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을 무렵, 하버드대학에 석사학위를 달라고 요청하여 계절학기 수업 하나를 이수하는 조건으로 학위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억지를 부려 취득한 그의 학위는 평생 그의 권위를 뒷받침해 주었다. 그는 1908년에 일어난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저격 사건’ 통역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여 동포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한편, 박용만은 주로 미국 중부의 네브래스카와 콜로라도를 근거지로 삼고 미국으로 오는 조선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주선하면서 청년들을 규합하였다. 그는 네브래스카주립대학에 입학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대학이 좋은 군사훈련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ROTC에 입단하였다. 그리고 한인 소년병학교를 창립, 젊은 학생들에게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여름방학에 입소하여 8주간의 군사훈련을 받게 하였다. 그 후 헤이스팅스대학에서 기숙사와 학교 시설을 제공받아 한인 소년병학교를 이전하여 규모를 확대시켰다. 이 학교는 일본의 항의로 1914년 폐교될 때까지 6년간 90여명의 생도를 훈련시켰다. ●대한인국민회와 YMCA 여러 단체로 분립되어 있던 미주 지역의 한인 조직들은 마침내 1910년 대한인국민회(이하 국민회)로 통합되었다. 박용만은 이때 ‘백성은 있으나 토지가 없어 남의 토지 위에 만든 국가’라는 의미의 무형국가(無形國家)를 조직하기 위해 1911년 신한민보 주필에 취임하였다. 그는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중앙총회를 설립하는 데 전력하였다. 그가 주도한 헌장은 사실상의 헌법으로 국민회 중앙총회가 해외 한인의 대표기구이면서, 대한제국을 대신한 민주주의 정부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한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공화주의 선언이었으며 이를 주도한 것이 바로 박용만이었다. 한편, 이승만은 1910년 귀국하여 신변보장을 받으며 YMCA에서 종교활동과 교육활동에만 전념했다. 그러던 중, 105인 사건이 터지자 친일 선교사의 도움으로 1912년 세계감리교대회에 조선대표로 선발되어 다시 미국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는 미국에 도착한 후 일본의 조선통치를 비판하기는커녕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사이에 한국은 전통이 지배하는 느림보 사회에서 활발하고 웅성대는 산업경제의 중심으로 변모했다.’고 오히려 찬양했다. ●하와이의 결투 당시 하와이는 조선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으로 자신들을 지도해 줄 사람으로 박용만을 초청하였다. 박용만은 1912년 말에 성대한 환영식을 치르고 본격적으로 하와이에서 자치제도를 실현하려고 애썼다. 그는 하와이 한인지방총회를 법인으로 등록하였고 특별경찰권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국민의무금제를 도입하여 재정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사업을 정력적으로 추진하였다. 특히 그는 1914년 앞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할 군사력를 양성하기 위한 대조선 국민군단과 장교 양성을 위한 사관학교를 설립하였다. 교민들은 평소에 노동하고 틈틈이 군사훈련을 실시하였으며 대한제국 군인 출신들이 교관을 맡아 체계적인 훈련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한편, 미국에 왔다가 귀국을 포기하여 오갈 데 없던 이승만을 하와이로 초청해 준 것은 바로 박용만이었고, 이승만이 1913년에 호놀룰루에 도착하자 성대한 환영행사를 열어 주었다. 그리고 이승만이 창간한 ‘태평양잡지’를 후원했다. 그러나 파국은 곧 시작되었다. 문제는 주도권과 돈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여자 기숙사를 짓겠다며 모금을 시작했으나 여의치 않자 국민회의 부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이전시켜 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민회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다음 해 하와이 지방총회를 장악하려고 하였다. 그는 국민회를 강하게 공개 비판하면서 각 지역을 돌며 추종자들을 모아 박용만 지지파에게 테러를 자행하면서 국민회를 장악하였다. 이때 박용만은 191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치러진 국민회 중앙총회 선거에서 부회장에 당선되었다. 회장으로 당선된 안창호는 이승만을 만나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하와이를 직접 방문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그를 피해 넉 달간이나 잠적해 버려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그 결과 이승만의 탐욕은 국민회와 박용만이 심혈을 기울여 이룩해 놓은 조직과 재정을 송두리째 파탄내 버렸다. 결국, 하와이 한인의 최고기관이자 자치정부로 자리잡아 가던 국민회는 이승만의 개인 왕국으로 전락하였다. 이때 이승만은 1916년 10월 하와이 현지 신문에 자신은 반일교육을 하고 있지 않으며 한인 사회에서 어떤 반일적 언급도 하지 않도록 통제시키고 있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그후, 1918년 회계감사에서 이승만의 부정이 드러나자 유혈사태로까지 발전하였고 이승만은 자신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인사들을 폭동죄 및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하였다. 이승만은 법정에서 그들이 ‘박용만 패당이며 미국영토에 한국인 군대를 만들어 위험한 반일 행동을 하고 일본 함선을 파괴하려는 무리’라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결국 모두 모함이라는 것이 판명되고 살인미수 혐의는 기각되었다. 그는 자신의 부정행위를 감추기 위해 항일운동의 성과를 해치는 것마저 서슴지 않았다. 결국, 참다 못한 박용만은 1918년 이승만의 독선과 야욕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하와이 한인사회는 양분되고 말았다. ●상하이 임정과 군사통일회의 이승만은 3·1운동 이후 각지에서 임시정부 수립안이 나오자, 이를 수렴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을 자임하였고 이를 승인하도록 밀고 나갔다. 그리고 국채발행권을 고집하면서 구미위원부를 만들어 상하이에서의 집무를 거부하였다. 그가 상하이에 나타난 것은 1920년 12월부터 1921년 5월까지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위임통치 건의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여 갈등만 벌이고 몰래 돌아갔다. 이승만은 궁지에 몰리자 자신이 배신하였던 박용만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을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뻔뻔한 강심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박용만은 3·1운동이 일어나자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많은 지역을 다니면서 무장투쟁세력을 규합하고 있었다.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외무총장에 선임되었으나, 자신은 ‘군사노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취임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베이징을 거점으로 이회영, 신채호 등과 함께 1921년 군사통일회의를 개최했고, 이승만과 상하이 임시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그후 군사기지 건설 자금을 모으고 중국 군벌들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1928년 친일파라는 누명을 쓰고 살해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가 친일행위를 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독립운동 노선의 차이에 의한 참극이었을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편, 이승만은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측에 한인 군사부대 창설을 제안하였다. 박용만이 오래전부터 주장해 1910년대부터 준비했으나 이승만에 의해 뿌리가 뽑힌 노선이었다. 이승만의 방해와 파괴공작이 없었다면 박용만이 양성했던 조선인 군사력은 태평양전쟁에 참전하여 훌륭히 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또한, 해방 이후 승전국의 대우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박용만은 이승만과의 대립, 나아가 노선이 달랐던 상하이 임정과의 갈등으로 우리의 독립운동사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잊히고 말았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선택! 역사를 갈랐다’ 연중 기획이 37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열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12월 10일에는 연재에 참여하신 역사학자들과 ‘역사의 역할과 교훈’을 주제로 한 토론 기사가 준비됩니다.
  • 이젠 다 보여줄게, 코리안 몬스터를

    이젠 다 보여줄게, 코리안 몬스터를

    “미국에서도 두 자릿수 승리를 자신한다.” ‘괴물’ 류현진(25·한화)이 미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각오를 밝혔다. 류현진은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에 있는 보라스 코퍼레이션 사무실에서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40여명의 한·미 취재진을 앞에 두고 류현진은 “어느 나라 야구나 부담감은 있다. 한국에서의 경험에 비춰 보면 미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새로운 구종을 개발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몸이 좋은 미국 선수들이지만 내가 대전구장에서처럼 던진다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현진은 LA 교민사회의 활기와 LA다저스에서 뛰었던 박찬호(39·한화)를 언급한 뒤 “프로선수로서 최대한 많은 연봉을 받고 싶다. 다저스는 명문 구단인 만큼 합당한 대우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에서도 자신의 등번호 ‘99번’을 달고 뛰겠다고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99번은 ‘왕년의 타점기계’ 매니 라미레스(40·전 오클랜드)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보라스 역시 다저스와의 계약을 자신했다. 그는 일본인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다르빗슈 유(텍사스)와 비교하며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상위팀에서도 당장 3선발감이다. 어린 나이에 훌륭한 경력을 쌓아온 흔치 않은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류현진이 일본에서 뛰었더라면 응찰액이 훨씬 높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다저스에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마쓰자카는 6년 동안 5200만 달러, 다르빗슈는 같은 기간 5600만 달러에 계약했다. 류현진도 버금가는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최근 스탠 카스텐 다저스 사장이 “류현진과의 계약을 윈터미팅(12월 4~7일) 이후로 미룰 수 있다.”고 기선을 제압하려 한 데 대해 보라스는 “단독교섭권을 땄으니 그걸 어떻게 쓰는지는 다저스에 달려 있다.”고 여유롭게 받아 넘겼다. 이어 “공동투자단이 인수한 뒤 다저스는 메이저리그에서 단 하나의 골리앗, 최소한 그중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전과는 매우 달라진 점이다. 다저스가 더 나은 팀을 만들기 위해 단독 교섭권을 얻었다고 본다.”며 계약 성사를 낙관했다. 공동투자단이 실탄을 두둑이 확보하고 해외 시장을 공략한 최근의 분위기가 류현진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보라스는 네드 콜레티 다저스 단장과 다음 주에 만나 협상을 시작한다고 이날 밝혔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韓·오스트리아 수교 120주년 음악회

    韓·오스트리아 수교 120주년 음악회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왼쪽)씨가 13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린 한·오스트리아 수교 12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금난새(오른쪽)씨가 지휘하는 한·오스트리아 필하모닉의 연주에 맞춰 한국 가곡 ‘강건너 봄이 오듯’ 등을 열창하고 있다. 이날 수교 음악회에는 유럽 다자기구 및 외교단을 비롯해 정계·재계·학계·문화계 인사, 현지 교민, 시민 등 1700여명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보였다. 외교통상부 제공
  • [선택 2012 민심탐방-내게 대선은 [ ]다] (7) 재외국민에게 듣다

    [선택 2012 민심탐방-내게 대선은 [ ]다] (7) 재외국민에게 듣다

    2011년 기준 175개국에 726만 8771명의 재외국민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낯선 땅에서도 늘 고국을 마음에 담고 있는 재외국민이 이번 대선을 통해 자부심을 키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미 높은 수준의 국가경쟁력을 갖추었다고는 하지만 타국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떨치기는 어렵습니다. 국가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면 재외국민이 고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도 커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처음으로 해외에서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되는 만큼 책임감 있게 권리를 행사해 보고 싶습니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 가장 역동적인 도시로 꼽히는 미국 뉴욕에 사는 교민들의 목소리입니다. 뉴욕주에서는 지난 6일(현지시간)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연방·주의원 선거에서 김태석(론 김) 후보가 당선되면서 이 지역 최초의 한인 하원의원이 탄생했다. 문화적으로도 빌보드 차트 2위를 유지하고 있는 가수 싸이를 비롯한 K팝 열풍이 정점에 올랐다. 교민들은 최근 들어 미국 내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친밀감과 위상이 더 높아진 분위기를 실감한다고 했다. 20~30년 만에 참여하게 된 대선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20년 전 미국에 둥지를 틀고 현재 퀸스의 베이사이드에서 대형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용철(58)씨는 미국 대선과 우리나라 대선이 40여일 간격으로 치러지는 올해 더욱 소외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미국은 정치가 국민 생활과 매우 밀착돼 있어 각 정당에서 공약을 내세우면 곧바로 실질적인 생활에 와닿는다.”면서 “그러나 한인들이 정책 대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한인이 지역의 유력 정치인이 되는 것만 기대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우리나라 대선보다 뉴욕주 하원의원 선거 결과가 훨씬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인신문인 뉴욕일보 발행인 정금연(56)씨는 “최근 미국 경제의 전반적인 불황으로 교민들의 주력 업종이 몸살을 앓는 등 한인 사회가 잠시 주춤해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또 역이민이 늘어나고 있고 이민 2, 3세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정체성이 약한 점 등을 들어 이런 때일수록 재외국민에 대한 고국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했다. 플러싱에 있는 한인 교회의 문석호(60) 목사도 “우리나라의 위상이 현지 재외국민의 생활에 그대로 영향을 준다.”면서 “국내 정치가 더욱 안정되고 다른 나라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막상 선거를 앞둔 이들에게서는 볼멘소리가 먼저 나왔다. 김씨는 올해 총선과 대선 시기에 한인회를 찾았던 정치권을 향해 “어차피 대선이 끝나면 다시 몇 년 동안 우리를 모른 체할 게 뻔하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선거 직전에는 정치인들이 미국을 찾아와 교민들을 만났는데 정작 재외국민선거 등록률과 투표율이 낮아지자 발길이 뚝 끊겼다.”면서 “선거 때 내놓은 공약도 실행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수단으로 재외국민을 언급할 게 아니라 정치상황과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재외국민을 돕고 우리가 고국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면 좋겠다.”고 밝혔다. 230만명에 달하는 재외국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각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공약에 대해서도 정작 교민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롱아일랜드에 거주하면서 교민 권익신장 운동을 해 온 박윤용(61)씨는 “모든 후보들이 재외국민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 교육 지원을 넓히겠다는 약속을 내놨으나 구체적이지도 않고 아직은 선심성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박씨는 “그나마 복수국적 허용 범위를 넓히고 영주권자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방안은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재외국민 자녀들이나 유학생을 대상으로 교육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일 뿐 아니라 정책 과잉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재외국민 관련 전담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외교통상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에서 범위를 넓혀 재외동포청, 재외동포 전담 부처 등을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씨는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이 큰 틀에서는 한인사회에 필요한 내용들이지만 과연 정치권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줄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면서 “정치권에서 입법화한다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실행할 담당 부처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 목사도 “재외국민 관련 기구가 형식만 갖추고 실상은 국가의 홍보기구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라면서 “재외국민들의 실질적인 활동을 보장하고, 우리들이 고국에 헌신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선 공약에 앞서 재외국민선거 제도부터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관에 직접 가서 선거등록과 투표를 해야 하는 불편함을 덜어 달라는 호소다. 맨해튼에 있는 공관을 가려면 퀸스, 롱아일랜드, 브루클린 등 주변 지역에서도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생계에 매달리는 교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박씨는 “현재 선거 제도는 만약에 있을 커닝을 막기 위해 전체 수험생들이 시험을 제대로 칠 수 없을 정도로 규제를 하는 것과 같다.”면서 “재외국민들을 믿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터넷 등록 등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도 “투표가 민주주의의 꽃이고 국민의 신성한 권리라고 하지만 정작 재외국민에게는 의무일 뿐인데 의무를 위한 편의성조차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정씨는 “그나마 뉴욕은 대도시라 상황이 나은 편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7~8시간 운전해서 공관을 찾아가야 한다.”면서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현 제도의 모순점을 합리적으로 개선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사설] 정부의 독도 외교, 전략도 없는 강공이었나

    정부의 독도 외교가 역풍을 맞고 있는 듯하다. 세계 최고의 모바일 업체로 꼽히는 미국의 애플사가 아이폰 등에 서비스하는 지도에서 독도를 다케시마, ‘리앙쿠르 암초’와 병기하기로 했다고 최근 우리 정부에 알려왔다. 이에 앞서 세계 최대 인터넷 업체인 구글도 지도 서비스에서 독도의 한국 주소를 삭제하고 명칭도 리앙쿠르 암초로 표기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국제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터넷, 모바일 지도에서 독도 단독 표기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임을 자부하는 우리나라가 인터넷, 모바일 쪽에서 일본에 일격을 당한 것은 더욱 뼈아픈 일이다. 이와 함께 동해 명칭 확산도 최근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유엔 지명회의를 앞두고 일본해와 독도를 병기하기로 방침을 세웠던 몇몇 국가들도 일본해 단독 표기로 입장을 바꿨다고 한다. 세계 3위의 경제력을 앞세운 일본이 각국 정부는 물론 글로벌 인터넷, 모바일 기업들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로 보인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현상들은 대부분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월 13일 독도를 방문한 이후 가시화된 것이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당시 우리 정부는 일본의 향후 대응 방향을 모두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세웠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이후 전개된 상황을 보면 정부의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정부는 민감한 독도 외교를 벌이며 면밀한 사후 전략도 없이 강공책을 썼단 말인가. 정부는 지금이라도 독도 영유권과 관련한 외교 전략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독도가 국제법적, 역사적, 현실적으로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각국 정부는 물론 모든 유관 기관, 업체들을 상대로 알리는 노력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 일본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내세운다면, 우리는 독도와 관련 있는 과거사 문제, 특히 위안부 문제 등과 연계시켜 유엔 등 국제사회와 글로벌 인권단체 등을 상대로 여론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 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할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우리 교민들의 네트워크도 독도 외교에 적극 활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마약성분 감기약’ 청국장 위장 밀수출

    필로폰의 원료물질이 함유된 국산 감기약을 대량 밀수출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필로폰 제조원료물질인 ‘염산슈도에페드린’이 함유된 감기약을 청국장으로 위장해 멕시코로 밀수출한 임모(50·여)씨 등 7명을 약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간호조무사 출신인 임씨는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된 멕시코 교민 김모(50)씨의 부탁을 받고 2009년 5월부터 최근까지 N사와 S사의 감기약 1950만정을 구입한 뒤 김씨에게 되팔아 13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감기약을 냄새가 심한 청국장으로 위장한 탓에 별다른 의심 없이 통관 절차를 거칠 수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번에 적발된 감기약에서 염산슈도에페드린을 추출해 가성소다 등 화학성분과 섞으면 600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을 만들 수 있으며, 이는 시가 4조8000억원에 달하는 분량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아옌데 前대통령의 손녀 피노체트 추종자 꺾었다

    1970년대 초반 칠레 대통령을 지낸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의 손녀가 군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의 추종자로 알려진 우파 성향의 정치인을 꺾고 승리했다. 수도 산티아고의 구청장에 출마한 아옌데의 손녀 마야 페르난데스(40)가 지난 28일(현지시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페드로 사바트 현 구청장을 꺾고 당선됐다고 AFP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사바트는 피노체트 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이 지역 구청장으로 일했다. 페르난데스는 당선 직후 “할아버지인 아옌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여전해 승리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페르난데스가 소속된 중도좌파연합인 ‘콘세르타시온’이 승리한 것은 이번 선거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사회당과 기독교민주당, 민주사회당, 급진당 등 4개 정당으로 이뤄진 콘세르타시온은 43.1%의 지지율을 기록, 37.5%에 그친 보수우파 여권을 눌렀다. 이에 따라 2008년 지방선거 패배 이후 4년 만에 재기에 성공한 콘세르타시온은 2014년 열리는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재집권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남미에서 민주 선거로 선출된 첫 사회주의자 대통령이었던 아옌데는 1973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 장군의 군부 쿠데타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아옌데의 사인과 관련, 칠레 법의학연구소는 지난해 아옌데의 유해를 발굴해 부검한 뒤 “쿠데타가 진행되던 당시 대통령궁에서 AK47 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지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뉴욕총영사관에도 ‘독도는 일본땅’ 말뚝테러

    뉴욕총영사관에도 ‘독도는 일본땅’ 말뚝테러

    미국 뉴욕과 뉴저지 일대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적힌 푯말 등이 잇따라 발견됐다. 미 경찰은 최근 이틀 새 비슷한 사건이 세 건이나 발생함에 따라 배후 수사에 착수했다. 뉴욕총영사관은 27일(현지시간) 맨해튼의 민원실 현판 밑에 ‘죽도(竹島)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문구가 적힌 하얀색 푯말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총영사관은 전날에도 같은 곳에서 ‘일본국죽도’(日本國竹島·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의미)라는 문구가 인쇄된 스티커가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총영사관 측은 “범인 색출과 민원실 주변 경계 강화를 경찰에 요청했다.”며 “경찰이 정보 부서를 통해 이들 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수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6일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팰팍)시 공립도서관 앞의 위안부 기림비에서도 뉴욕총영사관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종류의 푯말과 1m 길이의 흰색 말뚝이 발견됐다. 팰팍 위안부 기림비는 미 연방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지 3년여 만인 2010년 10월 뉴욕·뉴저지 시민참여센터 등 미 동포들의 풀뿌리 운동의 결과로 세워졌다. 뉴욕·뉴저지 교민들 사이에서는 지난 6월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들이 일본인의 의도적이고 계획된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제임스 로툰도 팰팍 시장은 “조사를 통해 인종이나 증오 관련 범죄로 확인되면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며 “경찰과의 공조를 통해 이들 사건의 연관성과 조직적 범죄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트라이아웃 현장을 가다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트라이아웃 현장을 가다

    억대의 계약금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프로에 입단하지는 못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얼룩만 남긴 야구 인생, 그러나 그라운드에서의 희열을 잊지 못하고 멀리 미국과 일본에서도 달려왔다. 17일 오전 경기 고양시의 우리인재원 야구장. 태풍 ‘산바’의 영향으로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습을 드러냈다. ●투수·야수 등 90여명 도전장 국내 유일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려는 이들. 고교나 대학 시절 야구를 했다가 꿈을 이루지 못한 선수들이 ‘야신’ 김성근 감독 밑에서 다시 도전하겠다고 모인 것이다. 미프로야구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던 이시몬(29)씨는 오전 5시 30분 인천공항에 도착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미국 LA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것. 시차 적응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 텐데 이씨는 50m 주력 테스트를 6초67에 끊었고, 캐치볼로 던지는 공에는 묵직함이 느껴졌다. “미국에서 트라이아웃 소식을 듣고 급히 짐을 꾸렸습니다. 야구가 좋아서, 야구가 뭔지 알고 싶어서 김성근 감독께 배우러 왔습니다. 최고의 선수를 꿈꾸기보다는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고 싶습니다.” 인천고를 졸업한 이씨는 LG가 2차 3번으로 지명할 정도로 유망했던 투수. 그러나 계약에 실패하고 인하대에 진학했다가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야구 인생이 뒤엉켰다. LG가 지명을 포기해 갈 곳이 없어진 이씨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2007년 시카고와의 계약에 성공했다. 루키리그에서 구원으로 활약하며 1점대 평균자책점의 좋은 성적을 냈지만, 구단은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듬해 스프링캠프에서 구속(球速)이 나오지 않자 가차없이 방출됐다. 시카고 구단으로부터 편도 항공권을 건네받고 고국에 돌아온 이씨는 김성근 당시 SK 감독의 제안으로 공개 테스트를 받았다. 그러나 ‘마지막 기회’란 부담감에 제구력이 엉망이었다. “야구가 날 버렸다.”고 절망한 이씨는 독립리그에서라도 뛰겠다며 미국으로 돌아가 지금은 LA 거주 교민들의 사회인야구에서 뛰고 있다. 일본 조사이대 투수로 교포인 안휘권(21)씨도 지난 16일 입국,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뛰고 싶어서다. 포크볼이 주특기라는 안씨는 중학 시절 전국대회에 나간 경험도 있다고 했다. “제가 한국인이란 걸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한국 야구를 배우고 싶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번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사람은 투수와 야수를 합쳐 90명가량. 저마다 절절한 사연을 가슴에 묻은 채 마지막 도전을 꿈꾸고 있다. 2006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해 2년간 뛴 나지원(25)씨는 “야구를 못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 프로에 다시 가겠다는 생각보다는 야구가 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중앙고와 동국대에서 뛰었던 이문광(27)씨는 프로에 갈 만큼의 실력은 되지 않았지만, 그라운드에서의 행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청원중 코치로 재직 중인 이씨는 못다 한 선수의 꿈을 다시 한번 펴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합격자수는 미정 19일까지 트라이아웃을 진행한 뒤 합격자를 선발하는데 몇 명을 뽑을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구단은 올해 내야수 홍재용(두산), 투수 이희성과 내야수 김영관(이상 LG), 외야수 강하승(KIA), 안태영(넥센) 등 5명을 프로에 진출시켰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지금&여기] 아프리카 전문가요, 전 아닌데요/한준규 산업부 기자

    [지금&여기] 아프리카 전문가요, 전 아닌데요/한준규 산업부 기자

    “아프리카 전문가요? 전 아니에요.” D상사 김모 과장은 한 임원이 ‘아프리카 전문가’라고 치켜세우자 그는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2006년부터 4년 동안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근무했던 이력 때문에 그는 아프리카나 분쟁지역인 중동지역 파견근무자를 모집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름이 거론되곤 한다. “치안 불안 때문에 가족이 같이 갈 수도 없고 열악한 지역에 근무했다고 인사상 큰 혜택도 없으니 직원들이 손을 들겠어요? 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아프리카 전문가로 낙인, 유럽이나 미국 근무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됩니다.” 김 과장의 자조 섞인 얘기다. 지난주 아프리카에 다녀왔다. 풍부한 자원을 가진 아프리카가 앞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정부와 수출 전문가들은 현지 사정에 능통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지역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틈만 나면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아프리카 현지에서 만난 무역상사와 코트라, 수출입기관 직원들은 파견 근무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프리카에서 몇년째 혼자 파견근무 중인 수출입기관 이모 과장은 “먹거리, 치안 불안 등보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가장 힘들다.”면서 “정부 기관과 한국 교민이 거의 없는 이런 파견지에는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 114개 무역관을 운영 중인 코트라도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음에도 그 지역에서 근무하게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젊은 직원들은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 근무를 기피한다. 아프리카의 한 무역관장은 “애들이 ‘아빤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근무를 못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을 때 정말 속이 상한다.”고 털어놓았다. 우리 경제 성장의 새로운 무대가 될 아프리카와 중동, 중남미에 근무하는 수출 ‘특공대원’에게 말이 아닌 실질적인 혜택을 듬뿍 주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한다. 인사상의 가점 등은 물론 경제적 지원과 다음 파견근무 선택권 등이 보장돼야 한다. 치안 불안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묵묵히 일하는 이들이 있기에 무역 1조 달러도 가능했고, 2조 달러도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hih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