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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상하이·충칭서도 임정 수립 94주년 기념식

    국가보훈처는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제94주년 기념식을 연다고 밝혔다. 12일 보훈처에 따르면 13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원로 독립 유공자와 유족 등 1000여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기념식이 거행된다. 기념식을 마친 후 11시 정각에는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에서 광복회 주관으로 임시정부 요인들을 추모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열 추념식’이 열린다. 한편 중국 상하이와 충칭에서도 12일 오전 중국 지역 독립 유공자 후손, 현지 교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열렸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독일에서 700㎞ ‘感謝 달리기’

    ‘달리는 스님’으로 널리 알려진 진오 스님(구미 대둔사 주지)이 ‘독일 700㎞ 달리기’ 행사를 무사히 완주했다. 진오 스님은 지난달 20일 독일 옛 수도 본의 한국대사관 앞을 출발해 지난 1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까지 700㎞를 완주했다고 10일 서울신문에 알려왔다. 이번 행사는 한·독 수교 130주년 겸 파독광부 50주년을 맞아 독일 교민과 독일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것. 재독한인총연합회와 베를린한인회, 아시아나항공 후원으로 진행된 행사에서 스님은 매일 평균 60㎞씩 총 700㎞를 내내 양손에 태극기와 독일 국기를 들고 뛰었다. 10여일간 달리면서 교민 100여명을 만나 식사를 대접하고 전통 부채와 김 등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진오 스님은 “그동안 파독광부나 간호인력 교민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향후 한국과 독일의 미래 발전에 도움이 되고, 특히 교민들에게 긍지와 자긍심을 부여하고자 달렸다”고 말했다. 한편 진오 스님은 다문화 한부모가족을 위한 모자원 건립을 위해 한반도 횡단 308㎞(2011년), 베트남 500㎞(2012년), 4대강 1000㎞(2013년) 등을 달리며 1㎞마다 100원씩 모금하는 ‘마라톤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10월쯤엔 종교인의 입장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달리기를 일본에서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美·홍콩 성매매 알선 ‘주부 포주’ 덜미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해외 남성들에게 인터넷으로 성매매를 알선한 정모(34·여)씨와 홍모(25·여)씨를 성매매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8일 밝혔다. 직접 성매매를 한 여성 김모(31)씨 등 23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와 홍씨는 2009년 말부터 지난해 5월까지 각각 홍콩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현지인과 교민을 상대로 한국 여성과의 성매매를 알선해 모두 9억 4000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10여년 전부터 홍콩 현지인과 결혼해 사는 가정주부이고, 홍씨는 현재 로스앤젤레스의 한 대학에 다니는 유학생이다. 정씨 등은 국내 유흥업소 구인 사이트에 모집 글을 올려 성매매할 20~30대 한국 여성을 모았다. 이후 전문 사진사에게 의뢰해 이 여성들의 반라 사진을 촬영한 뒤 해외 성매매 사이트에 올렸고 남성들이 사진을 보고 여성을 선택하면 호텔 등에서 성관계를 맺도록 했다. 홍씨는 일부 여성에게 남자들이 잘 찾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슴과 얼굴 등의 성형수술을 강요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中 신종AI ‘사람끼리 전파’ 등 괴소문… 공포 확산

    中 신종AI ‘사람끼리 전파’ 등 괴소문… 공포 확산

    “열이 나는가?” “최근 닭, 오리 등 살아 있는 가금류를 접촉했나?” “최근 어느 지역을 다녀왔나?” H7N9형 조류 인플루엔자(AI) 감염 사망자 두 명이 발생한 상하이 민항(閔行)구 푸단(復旦)대 부속 제5인민의원 응급실 접수창구는 4일 고열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고열, 두통 등이 이번 신종 AI의 주요 증상으로 알려지면서 체온 이상을 느끼는 지역 주민들이 모두 병원을 찾고 있다. 마스크로 중무장한 접수창구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입에 온도계를 물리며 닭, 오리 등 가금류와의 접촉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 물었다. 병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민항구 징구(景谷)로의 징촨(景川) 재래시장. 지난달 10일 신종 AI로 사망한 남성(27)은 이곳에서 지난 3년간 돼지고기 판매점을 운영했다. 지금은 그의 장인과 부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지만 AI 발병 소식이 전해진 이후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부인 우샤오야(吳曉雅)는 “건강했던 남편이 감기 증상을 보인 지 10여일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며 오열했다. 우샤오야의 남편은 2월 말쯤 고열 등 감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지난달 3일 제5인민의원에서 폐렴 판정을 받고 입원했다가 1주일 만에 숨을 거뒀다. 우샤오야는 “병원에서 의사가 남편의 병은 감염성이 있다고 경고했지만 병실에 다른 환자 3~4명이 함께 있었다”며 신종 AI 감염 확산을 우려했다. 실제 또 다른 사망자(87)가 같은 기간 우샤오야의 남편과 이 병원에 함께 입원했던 것으로 드러나 상하이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신종 AI의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는 당시 노인의 아들 두 명도 중증 폐렴 증세를 보여 함께 입원했으며 그 가운데 한 명이 이미 숨을 거뒀으나 당국이 이 같은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소문도 전해지고 있다. 상하이 보건당국은 신종 AI 감염 경보를 발동했으며 사망자가 발생한 민항구 지역의 재래시장에서는 살아 있는 닭을 제외한 비둘기, 오리 등 가금류의 도축 및 판매가 전면 금지됐다. 징촨재래시장 내 닭 도축 업소들은 사흘 전부터 영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부근 닝구(寧谷) 재래시장에서는 당국 몰래 상인들이 오리 등을 판매하고 있어 AI 확산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상하이 한국총영사관도 이날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교민들에게 감염 예방요령 숙지를 당부했다. 이날 저장(浙江)성 후저우(湖州)에 사는 64세 농민 한 명이 AI 감염자로 확인된 가운데 앞서 장쑤(江蘇)성에서 닭·오리 수송업에 종사하던 남성 한 명이 기침과 함께 발열 증세를 보이다 지난 3일 숨지는 등 신종 AI 감염자가 잇따르고 있다. 이 남성이 AI 감염자로 밝혀지면서 신종 AI 감염자는 11명, 사망자는 4명으로 늘었다. 공포감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베이징에서도 이미 수백 명이 감염됐다’ ‘상하이에 유사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수백 명이나 있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급속히 퍼지고 있다. 감염 경로 등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데다 치료 백신을 만드는 데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10년 전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증후군)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2002년 11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총 5328명이 사스에 감염돼 349명이 숨졌다. 수도 베이징까지 확산돼 외국인들을 비롯한 수십만 명이 사스를 피해 ‘대탈출’에 나서는 등 큰 혼란을 야기했다. 상하이 시민 리젠차오(李健超·38)는 “닭, 오리 등 가금류는 물론 정부가 AI와 관련성이 없다고 말하는 돼지고기도 먹지 않고 있다”면서 “페트병에 담아 파는 물도 끓여 마실 만큼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현재까지 신종 AI 감염자는 상하이와 저장성, 장쑤성, 안후이(安徽)성 등 장강삼각주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글 사진 상하이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MLB] 아쉬운 첫 퀄리티스타트

    첫 패전이었지만 퀄리티스타트로 치른 괜찮은 데뷔전이었다. 류현진(26·LA 다저스)이 3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미프로야구 샌프란시스코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6과3분의1이닝 동안 10안타를 맞았지만 삼진 5개를 솎아내며 3실점으로 역투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첫 번째 선수로 데뷔한 그는 역대 열네 번째 한국인 메이저리거이자 박찬호(은퇴)와 최희섭·서재응(이상 KIA)에 이어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네 번째 한국인이 됐다. 그러나 팀이 0-3으로 져 패전의 멍에를 썼다. 상대 좌완 선발 매디슨 범가너가 그를 도울 다저스 타선을 완전히 잠재운 탓이었다. 범가너는 8이닝 동안 삼진 6개를 낚으며 단 2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류현진의 다음 등판은 오는 8일 오전 5시 10분 피츠버그전이 될 전망이다. 류현진은 0-1로 뒤진 7회 유격수 저스틴 셀러스의 실책과 안타로 만들어진 1사 2, 3루의 위기에 로날드 벨리사리오에게 마운드를 넘겼지만 셀러스의 홈 송구 실책으로 주자 둘이 홈을 밟아 실점이 3으로 불었다. 하지만 야수 실책인 탓에 자책점은 1점에 그쳤다. 투구수 80개 가운데 55개의 스트라이크를 던진 류현진은 최고 구속 148㎞를 찍었고 평균자책점 1.42를 기록했다. 류현진은 긴장한 탓인지 직구 제구가 흔들리며 이닝마다 주자를 내보냈다. 특히 7명이나 포진한 상대 우타자들의 몸 쪽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류현진은 볼넷 없이 2루타 이상을 하나도 내주지 않았고 병살타 3개로 실점을 최소화하는 위기관리 능력을 뽐냈다. 그는 경기 뒤 “안타를 많이 맞았지만 실점이 적은 게 다행”이라며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던진 공이 안타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첫 실점과 하위 타선에 내준 안타가 아쉬웠다”며 “오랜만에 크게 긴장했고 진 것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음 경기에 더 열심히 던지겠다”고 강조했다. 류현진은 1회 앙헬 파간에게 빗맞은 안타, 마르코 스쿠타로에게 번트 안타를 내줘 순식간에 무사 1, 2루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지난해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 파블로 산도발을 중견수 뜬공, 지난해 내셔널리그 MVP 버스터 포지를 3루수 병살로 처리해 한숨 돌렸다. 2회에도 연속 안타로 무사 1, 2루에 몰렸지만 안드레스 토레스를 병살타로 유도하고 브랜든 크로퍼드를 헛스윙 삼진으로 낚아 불을 껐다. 불안감을 보이던 류현진은 4회 1사 후 포지 등에게 연속 3안타를 내주며 결국 1실점했다. 5회를 병살타 등 무실점으로 넘긴 류현진은 6회 산도발, 포지, 헌터 등 중심 타선을 제물로 첫 삼자범퇴를 일궜다. 돈 매팅리 감독은 “류현진에게 잘 던졌다고 말해 줬다”며 “투구 내용이 시범경기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데뷔전에서) 아주 잘 던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볼 스피드에 변화를 주는 모습이 좋았다”면서도 “변화구의 각도가 좋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A J 엘리스도 “잘 던졌다”고 칭찬했다. 많은 교민을 비롯해 4만 5431명이 그의 투구를 지켜봤다. 류현진이 6회 3루 땅볼을 때린 뒤 전력 질주하지 않자 야유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류현진은 경기 뒤 “무조건 내 잘못”이라며 “팬들에게 사과드린다”며 고개숙였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애국가보다 美국가 먼저 불러라” 한인단체에 공문 보낸 미주총련

    재미 한인회 연합체인 미주한인총연합회(미주총련)가 각종 교민 행사의 국민의례 순서에서 애국가보다 미국 국가를 먼저 부르자는 운동을 벌여 논란이 일고 있다. 미주총련은 3·1절 직전인 지난달 말 미국 내 150여개 한인 단체에 ‘미국 국가 선창(先唱) 운동’ 참여를 권고하는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진철 미주총련 회장은 26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미국에서는 성조기를 단상 오른쪽(단상에서 객석을 보고 섰을 때)에 걸고, 국가도 미국 국가를 먼저 부르는 게 정형화된 행사 의전”이라면서 “교민들이 미국에 살고 있는 만큼 미국식 의전을 존중하는 게 예의”라고 취지를 밝혔다. 지금까지 어떤 한인단체들은 애국가를 먼저 부르고, 어떤 한인단체는 미국 국가를 먼저 부르는 등 중구난방이었는데 이를 미국 국가 선창의 단일화된 형식으로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미주총련의 권고에 대해 교민사회에서는 미국식 의전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수긍하면서도 굳이 애국가를 나중에 부르자는 운동까지 벌일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이민 36년째인 피터 김 ‘미주 한인의 목소리’ 회장은 “미국과 다른 나라가 운동 경기를 하면 미국을 응원하지만, 한국과 미국이 시합을 하면 한국 편을 들게 된다”면서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도 아니고 1세대, 1.5세대 어른들이 굳이 미국 국가를 먼저 부르자고 외치는 것은 난센스 같다”고 말했다. 이철우 한·미공공정책위원회(KAPAC) 회장은 “이스라엘, 이탈리아, 인도 등 다른 나라의 재미 교민행사에서도 미국 국가를 먼저 부르는 게 일반적 의전”이라면서 “그렇다고 해서 다른 중요한 이슈도 많은데 굳이 미국 국가 선창 운동까지 벌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 교민은 “미국시민으로 살면서 미국 국가를 나중에 부르는 것은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애국가에 대한 애착이 떨쳐지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中阿共, 반군에 수도 함락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반군이 24일(현지시간) 정부군과의 교전에서 승리해 수도 방기를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수아 보지제 대통령은 이웃국가인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탈출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3개 무장집단의 연합체로 알려진 셀레카 반군 수백명은 23일 수도 방기에 진입해 정부군과 교전한 데 이어 24일 시가전을 통해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대변인은 “반군이 수도를 함락했다”며 “반군 측의 보복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언론에 밝혔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보지제 대통령의 한 고문은 “대통령이 오늘 오전 콩고로 건너갔다”고 전했다. 셀레카 반군은 보지제 정부에 불만을 품고 지난해 말 무장봉기를 일으켰으나 지난 1월 국제사회의 중재로 반군과 야당 인사가 참여하는 거국 내각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치범 석방을 비롯한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곧바로 연정을 거부, 정정 불안이 지속돼 왔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긴급 회의 소집을 요청하고, 자국민에게 바깥 출입을 삼가도록 했다고 로맹 나달 대통령실 대변인이 밝혔다.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계속된 쿠데타와 군 반란에 시달려 온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분류된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겸임국으로 하는 주카메룬 한국 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23명으로,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OBS 스페셜(OBS 토·일요일 밤 8시 15분) 우리 것에서 세계의 식품이 된 콩과 함께하는 300일간의 맛있는 여정이 시작된다. 한국과 중국,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독일, 벨기에, 미국 등 8개국에서 콩과 함께한 인류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또한 우리 민족과 콩의 관계를 조명하고 콩의 우수한 효능과 세계 각국의 콩 음식문화를 소개한다.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토요일 오전 9시 40분) 타이완 중부 항구의 어시장은 어부들이 직접 잡아온 생선을 그날 판매하는 것이 특색이라고 한다. 그런데 타이완에는 어시장뿐만 아니라 밤에도 휘황찬란한 시장이 있다. 바로 봉갑야시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군침 도는 먹거리들은 물론 애견숍 등도 눈에 띈다. ■주말특별기획 백년의 유산(MBC 토요일 밤 9시 50분) 결혼식 전 학술대회에 온 채원(유진)을 만난 철규(최원영)는 울적한 마음에 술을 마신다. 세윤(이정진)은 채원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로 마중을 가고, 주리(윤아정)는 두 사람을 미행한다. 한편 채원과 강진(박영규)은 춘희(전인화)와 효동(정보석)의 화해를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10분) 전남 나주 드들강에서 발견된 임신 5개월 된 김은채씨의 사망 사건을 재조명한다. 그녀가 물속에서 사망한 이후로 추정되는 시간에 아기 아빠에게 김씨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신고를 한 최초 목격자는 어떤 사람의 부탁으로 신고만 해 준 것이라고 말한다. ■KBS 스페셜(KBS1 일요일 밤 8시) 우리 교민 3만 5000명이 거주하고,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명소 필리핀 세부. 최근 한국인이 배후로 길거리에서 총격사건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총기 소지가 용이한 필리핀은 불법 총기를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심지어 청부살인도 가능한 곳이다. ■2013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동화처럼(KBS2 일요일 밤 11시 45분) 1990년, 삼수 끝에 원하지 않는 과에 입학한 명제는 무료한 대학생활 중 서영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엠티에 가서 서영과 오리배도 타고 어두운 방안에서 서영의 손도 잡았지만 서영은 명제를 밀어낸다. 한편 같은 노래패 장미는 킹카인 치대생 정우를 짝사랑 중이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최후를 맞이한 여인이 있다. 놀랍게도 죄목은 무려 5만명에 달하는 병사들의 목숨을 잃게 한 것이었다. 그녀가 무죄를 주장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한편 아돌프 히틀러와 전쟁의 신 에르빈 롬멜을 당혹시킨 한 남자가 있었다는데….
  • 쿠바 한인4세 “독립투사 증조부 나라 대학생…꿈만 같아”

    쿠바 한인4세 “독립투사 증조부 나라 대학생…꿈만 같아”

    독립운동가 후손인 쿠바의 한인 4세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할아버지 나라의 대학에 다니게 됐다. 아자리아 임(20·여)은 다음 달 4일 한남대의 영어전용 특성화 단과대인 린튼글로벌칼리지에 입학한다. 아자리아 임은 “할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한국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4년간 대학에 다니면서 한국의 경제, 문화, 과학 등 놀라운 발전상을 빠짐없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증조부는 일제강점기 때 쿠바 이주 1세대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임천택(1903~1985) 선생이다. 경기 광주에서 태어나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의해 멕시코 애니깽 농장으로 팔려갔다가 18세 때 쿠바로 이주한 뒤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를 설립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김구 선생이 이끄는 임시정부가 재정난에 허덕일 때는 쿠바 교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벌여 군자금을 보냈다. 정부는 임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97년 사회주의 국적으로는 최초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를 옮겨와 대전 현충원에 안장했다. 임 선생의 증손녀인 아자리아 임이 한국에 유학을 온 것은 한남대 중국통상학과 정명기 교수와 만나면서다. 정 교수가 2011년 쿠바를 찾았다가 교포로부터 임 선생 후손 얘기를 듣고 도운 것이다. 하지만 아자리아 임이 수시모집 외국인 전형으로 한남대에 합격하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로 미수교국이었기 때문이다. 몇 개월간 서류 증명과 까다로운 심사를 거쳤다. 쿠바 한인협회의 도움으로 한글 공부에도 매달렸다. 우여곡절 끝에 양국 정부가 임 선생의 공적을 인정해 한국 유학을 허가하면서 길이 열렸다. 아자리아 임은 “쿠바에서 가수 싸이 열풍이 대단해 한국 피가 흐르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글로벌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해 졸업 후 한국 기업에서 일하고 싶고, 쿠바에 돌아가면 한국문화 전도사가 되겠다”고 밝혔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길섶에서] 말고기의 추억/오승호 논설위원

    어렸을 적 말고기를 먹었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요즘처럼 샤부샤부나 갈비찜, 육회 등 다양한 메뉴가 개발되기 이전이었다. 고기를 썰어 프라이팬으로 구워 먹었다. 말고기 스테이크인 셈. 그 당시 육질이 좀 퍽퍽하고 담백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말고기의 지방 함량이 소고기의 3분의1 수준으로 적기 때문일 것이리라. 오래전 술자리에 동석했던 제주 출신이 서울지역 호텔에서 말고기 전문 식당을 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본 관광객들과 국내 부유층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사업이 성공해 돈을 잘 벌고 있는지 수소문해봐야겠다. 유럽의 말고기 파문이 가라앉질 않는다. 독일에선 여당인 기독교민주당 간부가 수거한 문제의 ‘말고기 섞인, 다진 소고기’를 거둬 빈곤층에 제공하자고 제안해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단다. 우리는 2011년 9월부터 말산업육성법을 시행하고 있다. 말고기 소비와 수출을 촉진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말고기 스캔들이 국내 마육(馬肉)산업에 타격을 주는 일은 없겠으면 좋겠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리비아, 불법선교 혐의 한국인 체포

    리비아 경찰이 한국인 1명을 포함한 외국인 4명을 불법 선교에 관여한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AP통신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리비아 경찰은 지난 12일 동부 벵가지에서 한국인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인, 이집트인, 미국과 스웨덴 이중 국적자 등 모두 4명을 체포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기독교 선교 서적을 인쇄하고 유포하거나 불법 선교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17일 “체포된 한국인의 신원을 밝힐 수는 없으나 선교사는 아니고 벵가지에서 가족과 함께 1년 이상 거주한 교민으로 보인다”면서 “가족들은 선교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리비아 당국은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후세인 빈 하미드 리비아 경찰 대변인은 관련국 대사관 직원들이 이미 조사 대상자들을 방문해 면담했다고 밝혔지만 이들이 구금된 장소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들의 신원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기독교 선교 서적 4만 5000여권을 압수했으며, 나머지 2만 5000여권은 이미 이들이 배포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서울광장] 민주당, 미얀마에 길을 물어라/구본영 논설실장

    [서울광장] 민주당, 미얀마에 길을 물어라/구본영 논설실장

    미얀마(버마) 민주화의 ‘아이콘’ 아웅산 수치여사.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참석차 이달초까지 한국에 머문 그의 행보는 퍽 뜻밖이었다. 야당투사답지 않게 교민들을 만났을 때조차 자국의 민주화 구상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 곳에서나 미얀마의 경제 발전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드러냈다. 그는 서울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성장 모두를 이뤄낸 국가”라고 부러워했다. 의례적 공치사는 아닌 듯했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의 형편이 미얀마와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회택·차범근이 최고인 줄 알았던 축구 팬들은 이따금 한국팀이 버마팀에 속절없이 무너지던 장면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미얀마의 내리막길은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가 버마식 사회주의와 폐쇄정책을 고수하면서 비롯됐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수치가 이끈 민주화 운동으로 맞은 짧은 ‘양곤의 봄’은 친위 쿠데타로 끝났다. 이후 국제적 고립의 심화로 미얀마는 아시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그러던 미얀마는 2011년 역사적 전기를 맞는다. 군 출신이지만 선거로 집권한 테인 세인 대통령이 확실한 개혁·개방의 깃발을 들면서다. 그는 정치범 석방을 단행하고 노조를 인정했다. 특히 “수치의 집권 기회를 차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가택 연금도 해제했다. 한국을 찾은 수치가 굳이 민주화 일정을 입에 올릴 까닭도 없었던 셈이다. 대선 패배 후 민주통합당이 ‘멘붕’(멘털 붕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내에선 “친노 후보인 문재인의 한계 때문이라느니, 안철수가 흔쾌히 도와주지 않은 탓이라느니”하는, ‘네 탓’ 공방만 무성하다. 하지만 대선 패배의 원인을 둘러싼 ‘친노 대 비노’의 공방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고 있는 느낌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변양균의 진단이 외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는 “민주당이 이념의 틀에 갇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용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프로젝트를 뒤엎어 다수 국민을 실망시켰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 전부터 한·미 FTA 발효 중단에 당운을 걸었다. 지도부가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함께 우르르 미국 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종주먹을 들이대기도 했다. 총선 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당의 이런 행태가 패인임을 정확히 꼬집었다. 즉,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한 것은 (국민들이) ‘당신들은 반대하는 것 잘하니 야당이나 하라’고 한 것 아니겠느냐”는 힐난이었다. 민주당은 최 교수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집권하려면 민주 대 반민주 구호에만 기대지 말고 대안정부로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충정에 공감했어야 했다. 설마 우리의 민주화 수준이 미얀마보다 낮다고 착각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얼마 전 수치는 김대중도서관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자국 교민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집권 후) 미얀마도 (한국처럼)경제 발전을 이룩하면서 고유 문화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서였다. 쇄국으로 인한 미얀마의 ‘잃어버린 50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하기야 멀리 볼 것도 없다. 우리의 반쪽인 북한도 미얀마처럼 문을 닫아 걸어 주민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지 않았는가. 개방 이후 아연 활기를 띠고 있는 미얀마 경제를 보면 한·미 FTA 등 우리가 선택한 세계화 노선에 대해 회의를 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민주당이 ‘불임(不姙)정당’의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우선 자아도취적인 선악 이분법에 매몰돼 습관적 반대는 일삼지 말아야 한다. 자원은 없고 사람은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활로를 열 진취적 대안도 보여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민주당은 5년 후에도 ‘제2의 안철수’에게 기대는 신세일는지도 모르겠다. kby7@seoul.co.kr
  • 수치 “故 김대중 前 대통령 뵙지 못해 유감입니다”

    수치 “故 김대중 前 대통령 뵙지 못해 유감입니다”

    방한 마지막 날인 1일 아웅산 수치 여사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한국과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인 두 사람이 직접 만난 것은 처음이다. 이 여사가 “남편이 살아계셨다면 상당히 기뻐하셨을 겁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사님의 건강과 자유를 갈망하셨어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수치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을)만날 기회가 없어 너무 유감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여사는 또 “앞으로 꼭 버마의 대통령이 되셔서 국민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버마를 만드시길 바란다”고 말했고 수치 여사는 “아시아에서 첫 번째는 아니지만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이루겠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 자신이 각각 쓴 ‘實事求是’(실사구시), ‘寬仁厚德’(관인후덕)이 새겨진 백자 도자기를 수치 여사에게 선물했고, 수치 여사는 미얀마 현대 미술가의 그림 1점을 답례로 건넸다. 수치 여사는 이 여사와 회동에 배석한 송영길 인천 시장과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송 시장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국제사회의 힘을 모아주기를 요청하는 등 동료 의원들과 여사님의 가택연금 해제를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한 뒤 “가택연금이 해제되었을 때 제가 직접 전화드린 거 기억하시나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수치 여사는 “가택연금 동안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것을 잘 알고 있다. 여러분들의 도움 덕분에 지금 우리가 자유를 얻었다”고 화답했다. 이에 앞서 수치 여사는 재한 미얀마 교민들과 만나 “버마 민주화를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버마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400명이 넘는 미얀마 교민들은 수치 여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일제히 “여사님, 건강하세요!”라고 외치며 크게 환영했다. 교민 녜인마웅탄(32)은 “한국에 온 지 9년 동안 가장 행복한 날”이라면서 “지금껏 고생했던 일들이 모두 잊혀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서울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수치 여사는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개발’이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다. 이번 강연에는 한국에서 유학 중인 미얀마 학생들을 비롯해 우간다, 감비아 등 개도국 학생들 수십여명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수치 여사는 “민주주의의 기본은 자유, 정의, 안보에 대한 개념”이라며 “민주주의를 경제자유화와 연관 짓는 경우도 있는데 진정한 민주 강국은 인간에 대한 가치가 제대로 확립된 곳”이라고 강조했다. 수치 여사는 지난달 28일 한국을 찾아 4박 5일간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이날 저녁 출국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농심, 美월마트에 라면 직접 공급

    농심은 국내 식품업계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와 직거래 계약을 체결했다고 17일 밝혔다. 농심의 미국법인인 ‘농심 아메리카’는 현지 딜러를 통해 일부 월마트에 제품을 공급하던 것에서 벗어나 이달부터 미국 전역의 3600여개 월마트 전 매장에 라면을 직접 공급하게 됐다. 월마트는 신뢰도, 제품 매출, 인지도 등에서 높은 평판을 유지하는 기업들과 직거래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네슬레, 코카콜라, 펩시 등 글로벌 기업만이 참여하고 있다. 197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라면을 수출한 농심은 1994년 농심 아메리카 설립, 2005년 LA 공장 가동과 함께 미국시장 공략에 나서 월마트, 코스트코 등 주요 대형마트 체인, 슈퍼마켓 등 지역별 소매시장을 중심으로 유통망을 늘려왔다. 이번 직거래가 성사된 것은 미국 내에서 높아진 농심과 신라면의 인지도 때문이라고 농심 측은 설명했다. 현재 농심 신라면과 육개장사발면은 한국 교민뿐 아니라 백인, 히스패닉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체 월마트 아시안 푸드섹션에서 수년째 1위를 달리고 있다. 농심은 월마트와 직거래를 계기로 판매데이터를 분석, 시장 트렌드에 맞는 맞춤식 영업활동을 전개하고 매장 바이어와 대면 영업을 통해 제품 입점·진열, 판촉활동을 벌이는 등 전략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알제리軍, 가스전에 발포… 인질·무장세력 수십명 사망

    북아프리카 알제리 정부군의 공격으로 17일(현지시간) 이슬람 무장단체가 억류한 외국인 인질과 무장세력 수십명이 사망했다. 알제리군이 이날 헬기를 동원해 인질들이 억류돼 있는 알제리 동남부 인아메나스 가스 생산시설 단지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인질 34명과 무장세력 15명이 사망했다고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숨진 인질들의 국적은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프랑스 인포 라디오는 “다른 인질 26명은 풀려났다”고 보도했다. 알제리군은 무장세력이 인질을 데리고 가스전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고 할 때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외국인 피랍을 주도한 이슬람 무장단체 ‘복면 여단’의 대변인은 “알제리 정부군의 헬기 공격으로 지도자 아부 엘 바라아도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프랑스24 TV는 무장단체가 일부 인질의 몸에 폭발물을 벨트로 묶었다고 보도했다. 알제리 정부는 앞서 군 병력과 헬기를 동원해 가스전을 포위한 채 20여명의 무장세력과 대치했다. 국제 테러단체 알카에다와 연계한 이 무장단체는 지난 16일 가스전을 점령해 미국인 7명과 영국인, 일본인, 프랑스인, 노르웨이인 등 총 41명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알제리가 말리 내전에 개입하고 있는 프랑스에 영공을 개방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다호 울드 카블리아 알제리 내무장관은 이 과정에서 영국인 1명, 알제리인 1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무장단체는 인질 가운데 한국인도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으나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현지 공관을 통해 알제리 외교 당국에 확인한 결과 현재까지 한국인 인질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만에 하나 가능성에 대비해 계속 확인 작업 중이며 현지 교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무장단체는 앞서 알제리군이 철수하면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 알제리 정부에 협상 의사를 내비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들은 말리에 구금 중인 이슬람 대원 100명과 외국인 인질의 맞교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알제리 정부는 “무장세력과 절대 협상하지 않겠다”면서 인질 석방을 위한 다국적군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단호한 입장을 고수했다. 알제리 정부는 아직 이 사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의 배후는 아프리카 사하라 일대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이슬람 전사 모크타르 벨모크타르인 것으로 전해졌다. 알제리 출신의 벨모크타르는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지부(AQIM)’의 전신이자 강경 무장 분파인 살라피스트 선교전투그룹(GSPC)의 공동 창립자로, 20여년간 여러 건의 외국인 납치 사건에 관여해 온 범죄 조직의 거물로 알려져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달에만 의원 9개팀 31명이 동남아 ‘외유성 출장’ 간다

    새해 예산안을 심사하자마자 외유성 출장길에 오른 ‘호텔방 예결위’ 의원들이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번 달에만 국회의원 9개팀 31명이 동남아 출장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 외교’라는 그럴 듯한 목적을 내걸었지만 동남아 현지에서는 국회가 회기 중이 아니어서 정작 방문지 국가의 의원들은 만나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4일 “출장지 대부분이 휴회 중이라 의원들의 출장 일정(명분)을 만들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결국 출장국에 사정하다시피 일정을 만드는 사례가 많으며 의원들을 못만날 경우 국장급 국회공무원을 면담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1~2월과 7~8월에 떠나는 의원 외교 활동은 사실상 외유성 출장이라고 꼬집었다. 호텔방 예결위 의원(9명)들의 출장은 지난해 예산으로 출장을 가는 것이어서 불법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엄격히 적용하면 국가재정법상 ‘예산 단년(單年)주의’ 원칙을 무시한 불법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부 의원의 경우 예결위 회의 도중 말라리아 예방 접종을 맞으러 가는 등 ‘모럴 해저드’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의회 외교’ 사업은 의장단과 상임위원회 시찰단, 의원친선협회 대표단의 방문, 주요국 의장단의 방한 초청, 국제회의의 참석·개최 등 국회의원의 외교 활동을 통해 국익 증진에 기여하는 사업으로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국회 정보 공개를 통해 확인한 18대 국회의 의회 외교 활동은 관광과 만찬으로 짜여진 외유성 출장이었다. 강언주 간사는 “해외 출장에서 소요된 경비의 영수증 관리는 엉망이었고 그나마 있던 영수증의 내용도 현지 교민과 진출기업 관계자들과의 식사 비용이 대부분이었다”고 꼬집었다. 출장비도 상당했다. 공무원 여비 규정에 장관급인 국회의원은 항공료(1등석) 외에 출장 지역에 따라 일비와 숙박비, 식비를 합해 하루 345~817 달러가 지급됐고, 이와 별도로 업무추진비가 의원 1인당 800 달러가량이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회의장이 참석하는 해외 출장에는 수행 인원도 많아 출장기간 수억원의 예산이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출장에 사용되는 ‘국민의 혈세’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정보 공개를 청구하지 않는 이상 확인할 길이 없다. 국회 미디어담당실 관계자는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외교 관련 사항은 비공개로 할 수 있다”며 이를 준용해서 비공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활동 내용을 비공개로는 할 수 있지만 비용 자체는 해당되지 않으며, 어디에 썼는지 보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사우디 주재 한국 영사 숨진 채 발견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한국 대사관의 영사가 지난 2일 숨진 채 발견됐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3일 “사우디 주재 김모 영사가 지난달 31일 교민 송년회를 끝내고 귀가한 뒤 2일 출근을 하지 않아 대사관에서 실종 신고를 했다”며 “사우디 경찰이 현지시간으로 2일 오후 8시쯤 김 영사의 시신과 승용차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김 영사는 수도 리야드의 한국대사관에서 차량으로 20분 정도 떨어진 지역의 절벽 아래에서 차량과 함께 발견됐다. 차량에는 김 영사 혼자 탑승해 있었으며 차량이 절벽으로 추락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우디 경찰 당국은 사고 경위와 사인을 조사 중이며 3~4일 후 시신을 우리 정부에 인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타살 및 테러 정황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당국자는 김 영사가 송년회에서 술을 마신 뒤 음주운전을 하다 변을 당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교민 송년회 참석은 영사 업무에 해당하며 자택으로 돌아가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추정된다”며 “음주 여부는 확인된 게 없다”고 설명했다. 공무 중 사고로 인정되면 김 영사는 순직 처리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찬호 형에겐 미안하지만 124승 기록 내가 깨겠다”

    “찬호 형에겐 미안하지만 124승 기록 내가 깨겠다”

    류현진(25)이 ‘다저블루’를 입고 공식 석상에 섰다. 박찬호 선배가 세운 아시아선수 최다승(124승) 기록을 깨겠다는 야심도 드러냈다. 류현진은 11일 미프로야구 LA다저스의 홈 구장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입단식을 가졌다. 네트 콜레티 단장, 박찬호의 스승인 토미 라소다 전 감독,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매직 존슨 공동구단주가 직접 다저스의 유니폼 ‘다저블루’를 입혀 줬다. LA 타임스와 데일리뉴스 등이 취재에 나섰고 FOX스포츠 등은 생방송으로 연결하기도 했다. 등번호 99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은 “계약이 너무 잘됐다. 타결되고 나서 큰 소리를 지를 만큼 기뻤다.”면서 “어릴 적 박찬호 선배의 경기를 보며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웠다. 박 선배가 뛰던 팀이라 더 영광스럽다.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겨울 동안 열심히 훈련해 체력적인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힌 류현진은 “두 자릿수 승수와 2점대 평균자책점이 목표다. 최종 목표는 박 선배에게 미안하지만 최다승 기록을 깨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할 무기에 대해 묻자 “한국에서도 첫 시즌에 포수 사인대로 던졌더니 결과가 좋았다. 얼마나 빨리 타자들의 장단점을 파악하느냐가 열쇠지만 첫 해에는 포수가 던지라는 대로 던지겠다. 내 직구와 체인지업이면 통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 “교민이 많은 LA를 홈으로 둔 다저스의 선발 투수로서 한인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교민들의 성원을 당부했다. 14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류현진은 비자 발급 등의 절차를 마무리한 뒤 내년 1월쯤 미국으로 가 본격적인 담금질에 나선다. LA에서 개인 훈련을 하다 2월 13일 시작하는 다저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한다. 지난 10일 6년간 3600만 달러(약 390억원)에 다저스와 계약한 류현진은 첫 해인 내년에는 250만 달러(약 27억원)를 받는다. 계약금 500만 달러를 뺀 3100만 달러를 해마다 다르게 나눠 받는다. 2014년에는 350만 달러(약 37억 7000만원), 2015년은 400만 달러(약 43억원), 2016년부터 3년 동안은 매년 700만 달러(약 75억 4000만원)씩 손에 쥔다. 또 사이영상 후보로 올라가면 득표 순위에 따라 보너스가 주어진다. 트레이드 거부권을 포기한 대신 팀이 자신의 동의 없이 마이너리그로 보낼 수 없게 만든 조항도 삽입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기고] 프랑스 한류 팬들은 모두 한국어를 한다/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기고] 프랑스 한류 팬들은 모두 한국어를 한다/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유럽에서 한국 대중문화 사랑은 파리에서 시작되어 확산되고 있다. 필자는 이를 ‘유럽의 한류’라 칭하는 것이 불편하다. 갑자기 우리 대중문화의 열풍과 파도가 유럽 대륙을 휩쓴 것도 아니고, ‘문화’ 교류는 결코 그렇게 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는 오래전부터 다른 민족의 문화와 예술이 소개되었다. 먼저 우리는 그 가치를 발견하고, 즐기며 우리 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맞는 것으로 변형, 재창조하여 그것을 처음 전해준 나라 사람들과 공유하고 함께 사랑하게 되었다. 서양 음악, 미술, 패션, 체육, 영화, 그리고 K팝 등의 예가 그렇지 않은가. 문화는 정치, 경제와 다르다. 서로 관계가 깊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문화도 우리를 점령하거나, 속박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는 비를 오래 맞은 것처럼 스며들어 그 문화가 천천히 우리의 의식과 삶의 태도를 바꾸곤 하기에 정치나 경제보다 더 힘이 있다. 한류가 5년 내로 시들해질 것이라고들 말한다. 상업적 성과가 줄어들 거라는 말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한류를 문화적으로 생각하면 필자는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문화적 산물은 공산품과 달라서 그 안에 수많은 문화적 가치가 존재하기에, 다양한 수요로 확대된다. 실제 파리에서 K팝으로 그들 주변 사람들, 조부모,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이 변하는 것을 봤다. 우리 모두가 K팝을 좋아할 수는 없는 것처럼, 조부모는 한국문학을, 부모는 한식과 국악을, 또 다른 이들은 영화·만화·드라마를 더 열렬히 좋아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한국대중문화의 성과는 결코 잠시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하고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통해 얻은 성공적인 결과들이다. 33년차의 프랑스 한국문화원은 연중 다양한 사업과 행사로 한국문화예술을 프랑스인들이 체험하고 사랑하게 하고 있다. 순수 교민이 4000명에 불과해도, 파리에만 110개가 넘는 한국식당이 성업 중인 이유이다. 전국적으로 여러 한국영화제가 해마다 개최되고, 소수에 불과하던 8개 대학의 한국학 전공 신입생 수가 1000명이 넘은 지도 몇 년이나 되었다. 30여개 프랑스 고등학교에서는 한국문화실습 수업이 열리고 있다. 수십만명의 한국문화 애호가들은 길에서, 광장에서, 바에서, 연습장에서, K팝 공연장에서 가사는 물론 추임새까지도 한국어로 넣는다. 지방의 상점에서, 길거리에서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 인사는 이제 희귀하지 않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만은 아니다. 그 안에 삶의 태도, 의식, 사회적 특성 등 많은 매력적인 것들이 담겨 있다. 설문 결과, 유럽인들은 우선 한국, 한국사람, 한국문화를 알고 싶어 한국어를 배운다고 한다. 우리가 팝송을 좋아하며 영어와 영미 문화에 관심을 키웠던 걸 기억하면 이해가 쉽다. 전세계 23개 한국문화원과 90여개의 세종학당을 통해 세계인들이 우리말을 배우고 있다. 우리의 “문화로 인류의 평화와 사랑에 기여”하려는 꿈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한국인들이 한글과 한국어, 한국문화를 더 사랑하는 일이 아직 남아 있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7·끝) 이승만과 박용만

    [선택! 역사를 갈랐다] (37·끝) 이승만과 박용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나 박용만(1881~1928)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두 사람은 절친한 동지로서 미국에서 유학한 후 독립운동의 지도자 역할을 했지만, 노선의 차이로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다. 이승만의 ‘외교론’은 조선의 힘으로는 독립이 어려우니 열강과의 외교 교섭을 통해, 그들이 조선을 독립시켜 주도록 교섭을 하자는 논리였다. 하지만, 박용만의 ‘무장투쟁론’은 체계적으로 군사력을 양성하여 일본과 무력항쟁을 벌일 준비를 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4·19 혁명의 결과 하와이로 쫓겨난 뒤, 비서에게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힘든 상대는 바로 박용만이었다고 회고하였다. ●옥중 결의형제, 미국유학을 떠나다 이승만은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서 배재학당을 다니다가 1898년 독립협회가 주최한 만민공동회를 통해 일약 청년 지도자로 부각되었다. 그런데 박영효 세력들이 꾸민 역모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다. 탈옥을 감행했다가 체포됨으로써 죄가 가중되어 사형선고를 받을 뻔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감형되어 감옥생활을 했다. 박용만은 관립일어학교를 다니다가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1901년 귀국 후 박영효와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감옥생활을 몇 개월 하였다. 그는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1904년 일제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에 반대하다가 다시 감옥생활을 하였는데 바로 이때 이승만과 만나 옥중 의형제를 맺었다. 1904년 출옥한 지 몇 달 뒤 미국으로 떠난 이승만은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이때 기자들에게, 자신은 일진회의 대표로 왔고 대한제국 국민은 고종을 지지하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보다는 일본에 더 우호적이라는 말을 하였다. 워싱턴 DC의 유력한 장로교 목사 추천으로 조지워싱턴대학에 들어간 그는 학업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았음에도 무사히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의 석사과정에 입학하였다. 그는 2년 만에 박사를 달라고 우겼지만, 성적 불량으로 석사를 마치지 못하게 되자, 또다시 프린스턴대학의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2년 만에 파격적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을 무렵, 하버드대학에 석사학위를 달라고 요청하여 계절학기 수업 하나를 이수하는 조건으로 학위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억지를 부려 취득한 그의 학위는 평생 그의 권위를 뒷받침해 주었다. 그는 1908년에 일어난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저격 사건’ 통역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여 동포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한편, 박용만은 주로 미국 중부의 네브래스카와 콜로라도를 근거지로 삼고 미국으로 오는 조선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주선하면서 청년들을 규합하였다. 그는 네브래스카주립대학에 입학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대학이 좋은 군사훈련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ROTC에 입단하였다. 그리고 한인 소년병학교를 창립, 젊은 학생들에게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여름방학에 입소하여 8주간의 군사훈련을 받게 하였다. 그 후 헤이스팅스대학에서 기숙사와 학교 시설을 제공받아 한인 소년병학교를 이전하여 규모를 확대시켰다. 이 학교는 일본의 항의로 1914년 폐교될 때까지 6년간 90여명의 생도를 훈련시켰다. ●대한인국민회와 YMCA 여러 단체로 분립되어 있던 미주 지역의 한인 조직들은 마침내 1910년 대한인국민회(이하 국민회)로 통합되었다. 박용만은 이때 ‘백성은 있으나 토지가 없어 남의 토지 위에 만든 국가’라는 의미의 무형국가(無形國家)를 조직하기 위해 1911년 신한민보 주필에 취임하였다. 그는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중앙총회를 설립하는 데 전력하였다. 그가 주도한 헌장은 사실상의 헌법으로 국민회 중앙총회가 해외 한인의 대표기구이면서, 대한제국을 대신한 민주주의 정부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한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공화주의 선언이었으며 이를 주도한 것이 바로 박용만이었다. 한편, 이승만은 1910년 귀국하여 신변보장을 받으며 YMCA에서 종교활동과 교육활동에만 전념했다. 그러던 중, 105인 사건이 터지자 친일 선교사의 도움으로 1912년 세계감리교대회에 조선대표로 선발되어 다시 미국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는 미국에 도착한 후 일본의 조선통치를 비판하기는커녕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사이에 한국은 전통이 지배하는 느림보 사회에서 활발하고 웅성대는 산업경제의 중심으로 변모했다.’고 오히려 찬양했다. ●하와이의 결투 당시 하와이는 조선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으로 자신들을 지도해 줄 사람으로 박용만을 초청하였다. 박용만은 1912년 말에 성대한 환영식을 치르고 본격적으로 하와이에서 자치제도를 실현하려고 애썼다. 그는 하와이 한인지방총회를 법인으로 등록하였고 특별경찰권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국민의무금제를 도입하여 재정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사업을 정력적으로 추진하였다. 특히 그는 1914년 앞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할 군사력를 양성하기 위한 대조선 국민군단과 장교 양성을 위한 사관학교를 설립하였다. 교민들은 평소에 노동하고 틈틈이 군사훈련을 실시하였으며 대한제국 군인 출신들이 교관을 맡아 체계적인 훈련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한편, 미국에 왔다가 귀국을 포기하여 오갈 데 없던 이승만을 하와이로 초청해 준 것은 바로 박용만이었고, 이승만이 1913년에 호놀룰루에 도착하자 성대한 환영행사를 열어 주었다. 그리고 이승만이 창간한 ‘태평양잡지’를 후원했다. 그러나 파국은 곧 시작되었다. 문제는 주도권과 돈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여자 기숙사를 짓겠다며 모금을 시작했으나 여의치 않자 국민회의 부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이전시켜 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민회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다음 해 하와이 지방총회를 장악하려고 하였다. 그는 국민회를 강하게 공개 비판하면서 각 지역을 돌며 추종자들을 모아 박용만 지지파에게 테러를 자행하면서 국민회를 장악하였다. 이때 박용만은 191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치러진 국민회 중앙총회 선거에서 부회장에 당선되었다. 회장으로 당선된 안창호는 이승만을 만나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하와이를 직접 방문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그를 피해 넉 달간이나 잠적해 버려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그 결과 이승만의 탐욕은 국민회와 박용만이 심혈을 기울여 이룩해 놓은 조직과 재정을 송두리째 파탄내 버렸다. 결국, 하와이 한인의 최고기관이자 자치정부로 자리잡아 가던 국민회는 이승만의 개인 왕국으로 전락하였다. 이때 이승만은 1916년 10월 하와이 현지 신문에 자신은 반일교육을 하고 있지 않으며 한인 사회에서 어떤 반일적 언급도 하지 않도록 통제시키고 있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그후, 1918년 회계감사에서 이승만의 부정이 드러나자 유혈사태로까지 발전하였고 이승만은 자신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인사들을 폭동죄 및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하였다. 이승만은 법정에서 그들이 ‘박용만 패당이며 미국영토에 한국인 군대를 만들어 위험한 반일 행동을 하고 일본 함선을 파괴하려는 무리’라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결국 모두 모함이라는 것이 판명되고 살인미수 혐의는 기각되었다. 그는 자신의 부정행위를 감추기 위해 항일운동의 성과를 해치는 것마저 서슴지 않았다. 결국, 참다 못한 박용만은 1918년 이승만의 독선과 야욕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하와이 한인사회는 양분되고 말았다. ●상하이 임정과 군사통일회의 이승만은 3·1운동 이후 각지에서 임시정부 수립안이 나오자, 이를 수렴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을 자임하였고 이를 승인하도록 밀고 나갔다. 그리고 국채발행권을 고집하면서 구미위원부를 만들어 상하이에서의 집무를 거부하였다. 그가 상하이에 나타난 것은 1920년 12월부터 1921년 5월까지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위임통치 건의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여 갈등만 벌이고 몰래 돌아갔다. 이승만은 궁지에 몰리자 자신이 배신하였던 박용만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을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뻔뻔한 강심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박용만은 3·1운동이 일어나자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많은 지역을 다니면서 무장투쟁세력을 규합하고 있었다.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외무총장에 선임되었으나, 자신은 ‘군사노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취임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베이징을 거점으로 이회영, 신채호 등과 함께 1921년 군사통일회의를 개최했고, 이승만과 상하이 임시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그후 군사기지 건설 자금을 모으고 중국 군벌들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1928년 친일파라는 누명을 쓰고 살해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가 친일행위를 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독립운동 노선의 차이에 의한 참극이었을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편, 이승만은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측에 한인 군사부대 창설을 제안하였다. 박용만이 오래전부터 주장해 1910년대부터 준비했으나 이승만에 의해 뿌리가 뽑힌 노선이었다. 이승만의 방해와 파괴공작이 없었다면 박용만이 양성했던 조선인 군사력은 태평양전쟁에 참전하여 훌륭히 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또한, 해방 이후 승전국의 대우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박용만은 이승만과의 대립, 나아가 노선이 달랐던 상하이 임정과의 갈등으로 우리의 독립운동사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잊히고 말았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선택! 역사를 갈랐다’ 연중 기획이 37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열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12월 10일에는 연재에 참여하신 역사학자들과 ‘역사의 역할과 교훈’을 주제로 한 토론 기사가 준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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