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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합방조약 부당성 인정할때(해외사설)

    일본공사의 계획에 따라 일본의 무장집단이 조선왕조의 민비를 살해했다.그러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꼭 1백년전의 10월8일이었다. 일본은 그 10년후인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5년후에는 식민지화했다. 그러한 일·한 합방조약을 둘러싸고 무라야먀 도미이치 총리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무라야마 총리의 발언은 식민지지배의 도의적인 면은 반성하지만 합방조약 자체는 법적으로 유효하게 체결됐다는 취지다.그러나 「한·일합방 조약은 강제적으로 체결됐기 때문에 처음부터 무효」라며 남북한은 분노하고 있다. 무라야마 총리의 발언은 역대정권의 견해와 같다.합방조약은 합법적으로 체결되었으며 무효가 된것은 전후라는 해석이다.일·한기본조약 체결때도 그 문제가 큰 쟁점이었다.결국 「이미 무효」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넘어갔다. 당시 사토 총리는 「합방조약은 대등한 입장에서 자유의사로 체결됐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그후 정부가 그러한 입장을 수정한 일은 없다. 그러나 그후 30년간 많은 정세변화가 있었다.첫째,양국의 애매한 해석의 국교정상화를 촉진시켰던 냉전도 이제는 끝났다.두번째는 일본과 국교정상화교섭을 벌이는 북한이 조약무효를 정면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세번째는 일본내에서도 합방조약이 정말로 「대등한 자유의사」로 체결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과 이번의 무라야마총리의 발언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무라야마 총리도 그러한 차이를 인식했는지 자신의 발언을 보충·수정했다.무라야마 총리는 합방조약의 불평등성과 배경에 간접적인 협박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이는 사토총리의 견해로 부터 많이 진전된 것으로 늦었지만 환영한다. 그러나 무라야마 총리는 조약의 법적인 유효성에 대해서는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다.우리는 그러나 통치권의 「영구양도」 조항을 집어넣은 조약의 비도덕성,합방에 이르기까지의 여러가지 강압적인 경위등 많은 부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양국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일본측에서는 더 한층의 성의를,한국측에서는 여유있는 대응을 희망한다.
  • 무라야마 총리의 발언을 반박한다/신용하 서울대 교수·사회학

    ◎“한일합방 국제법상 원천적 무효” 과거 일본의 총리와 정치인들이 한반도 침략과 관련한 망언을 수없이 되풀이해왔지만,최근 무라야마 도미이치 현총리의 망언을 대하고는 더욱 커다란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무라야마 총리만은 이전의 총리들과는 다른,양식을 갖춘 인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그가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의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침략하여 각종 조약을 맺은 것은 당시의 국제공법에 비쳐서도,또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완전히 불법적인 것이다. 우선 을사5조약을 보자.일제는 1904년 2월8일 대규모의 일본군대를 한반도에 불법 상륙시키고,러일전쟁을 도발했다.주권국가인 대한제국의 아무런 승인도 없이 대규모 군대를 상륙시킨 것은 합법인가,불법인가.더욱이 남의 나라 강토에서 외국과의 전쟁을 도발해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만든 것이 합법인가,불법인가. 당시 일제는 러일전쟁에는 참가하지 않은,2개 사단의 대한제국주차(주둔) 일본군을 보내 대한제국의 수도와 조정을 장악했다.1905년 11월17일일제는 바로 이 주차군으로 대한제국의 궁궐을 포위,을사조약의 체결을 강요한 것이다. 당시의 국제공법에 따르면,전제군주국가가 외국과의 조약을 맺으려면 황제가 승인,비준하는 서명날인이 있어야 한다.또 입헌군주국과 공화국에서는 황제의 서명날인에 의회의 동의가 추가돼야 조약이 체결되는 것이다.그런데 과연 대한제국의 조약체결권자인 광무황제가 을사5조약에 서명,날인을 했는가. 당시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황제의 자문기구인 어전회의가 2차례 열렸다.황제가 참석한 1차 회의에서 조약체결안은 만장일치로 부결됐다.그러자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 주차군사령관은 황제가 참석한 회의라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며 황제를 배제시킨채 2차 회의를 열어 조약체결에 찬성하도록 강요했다.이때도 총리대신서리인 한규설이 완강히 반대하자 일본군은 대신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연행해가는 만행을 저질렀다.이런 상황에서 5명의 반역자가 일본군의 무력에 굴복한 것이다.그러나 그 회의는 자문회의였기 때문에 국제법상 아무런 구속력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또일본은 당시 외무대신 박재순과 일본공사 하야시 고노스케가 서명한 조약안을 황제에게 추인받으려 했으나,광무황제는 끝까지 서명날인하지 않았다.따라서 이 조약은 성립조차 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마치 이 을사5조약이 성립된 것처럼 대외에 공포하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했으며,1906년 2월1일에는 한양에 일본통감부를 설치했다.식민지화를 위한 정지작업이 시작된 것이다.그러나 을사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조약이기 때문에 거기에 근거한 일본통감과 통감부는 전적으로 불법이다. 또하나 빠트릴 수 없는 것은 당시 일제의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해 대한제국 전역에서 국민들이 항일의병을 조직해 무력항쟁을 했다는 사실이다.일제가 불법적인 무력으로 국권을 빼앗으려 하니 생명을 걸고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당시 축소발표된 일본군측의 통계로도 1907년부터 1910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14만1천6백명의 의병이 참가한 2천8백60회의 전투가 벌어져,1만6천7백명의 의병이 사망하고 3만6천7백70명이 부상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일제는 1910년 8월22일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하는데,그 조약문도 일본 정부와 통감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서 서명을 강요한 것이다.당시 서명자는 일본의 데라우치 통감과 대한제국의 이완용 내각총리대신이다.그러나 통감 설치를 규정한 을사조약이 무효이기 때문에 데라우치 통감의 서명은 국제공법상으로 원천적인 무효인 것이다.한일합병조약 뿐만 아니라,일본통감이 내린 모든 명령과 지시,법규등은 모두 원천적으로 무효인 것이다. 실제로 2차대전 종전을 전후한 카이로 선언,포츠담 선언,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등에서 국제사회는 일본의 침략적 야욕으로 맺은 조약은 전부 무효라고 선포했으며,1945년 8월10일 일제는 항복하면서 포츠담 선언의 무조건 수락을 통보한 바 있다. 이렇게 볼 때 을사5조약과 한일합병조약은 불법적인 것이고,이를 일제가 무력으로 강제집행한 것에 불과하다. 무라야마 총리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이제라도 『한일합병조약이 법적으로 유효했다』는 발언을 취소하고 한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 이강년 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

    ◎구한말 의병장… 「수도탈환 작전」 주도/제천·죽령서 일군 무더기 생포 “전과”/청풍전투서 잡혀 51세로 옥중 순국 「한평생 이 목숨 아껴본 바 없거늘 죽음 앞둔 지금에서 삶을 어찌 구하랴만 오랑캐 쳐부술 길 다시 찾기 어렵구나」 구한말 의병장으로 항일구국운동을 펼치다 옥중순국한 운강 이강년(1858년 12월30일∼1908년 10월13일)선생이 남긴 옥중시의 한 대목이다. 선생은 이 시처럼 일제의 국권침탈만행에 대항해 죽음을 가벼이 여기면서 싸운 애국자였다.선생은 22세 때인 1880년 무과에 급제,선전관등을 지내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관직을 사퇴했다.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전개되자 동학군에 투신,심산유곡을 누볐으며 이 경험은 장차 의병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 1894년 청일전쟁과 1895년 명성황후시해등 일련의 사건으로 의암 유인석 등이 을미의병전쟁에 나서자 선생도 1896년2월 고향인 경북 문경에서 의병모집활동을 시작했다.유인석은 유학자로서 당시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였다.선생은 우선 가산을 털어 의병을 모으고는 왜적의 앞잡이로 지목된 안동관찰사 김석중 등 3명을 붙잡아 목을 베었다. 이어 선생은 안동의 창의대장 권세연과 함께 고성에서 일본군과 처음 전투를 벌인 뒤 제천으로 이동해 유인석 의병부대에 합류했다.유인석의병장의 유격장이 된 선생은 수안보 병참부대 공격등 많은 전투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그러나 유인석선생이 일제와 관군에게 쫓겨 요동으로 건너가자 1897년 뒤따라 요동으로 갔다.요동에서 이주민 정착을 위해 힘을 쏟던 선생은 고국에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고 판단,다시 단양으로 되돌아왔다.한동안 단양에서 충주 유림과 함께 의병전술등을 연구하던 선생은 1905년 조선의 외교권등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데 이어 1907년 조선군이 해산되자 다시 의병운동에 돌입했다. 원주에서 군사를 모으고 병장기를 갖춘 선생은 기세를 모아 제천으로 진군,민긍호·조동교·오경묵·정대무 등 다른 의병장과 합류해 크게 전투를 펼쳤다.광무황제는 선생의 활약상을 듣고는 선생을 도체찰사에 제수하면서 『의병을 일으키는 초모장으로 임명하니 인장과 병부를 새겨 쓰도록 하고 명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관찰사와 수령을 먼저 베이고 파직해 내쫓으라』는 내용의 밀지를 내렸다. 제천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전국 곳곳의 의병이 몰려들어 선생은 도창의대장으로 추대됐다.선생은 이어 충주에 근거하고 있는 일본군을 공격하기로 다른 의병장과 약속하고 진격했으나 공격시기를 놓쳐 충주공격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선생의 의병부대는 그 뒤 단양·영월등지에서 일제 및 관군과 대치,다소 불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펼쳤다.선생은 이 가운데 제천과 죽령에서 각각 적 2백여명씩을 생포하는등 큰 전과를 올려 일제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그러나 겨울에 들어서면서 선생이 병에 걸리는 바람에 풍기전투에서 대패,의병운동의 기세가 꺾이게 됐다.진열을 가다듬어 서울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선생은 전국의 의병장과 함께 작전을 펼치기로 하고 서울로 행군,경기도경계에서 일제와 여러 차례 전투를 치렀다. 추운 날씨와 적의 거센 반격으로 서울진공에 실패한 선생은 의병부대를 강원도쪽으로 회군,1908년초부터 다시 치열한 항일전쟁을 벌였다.선생은 이해 3월12일 강원도 인제 백담사전투를 비롯,안동·봉화 등에서 일제 수백여명을 쳐부수거나 사로잡았다.선생은 그러나 같은 해 6월4일 청풍 까치봉전투에서 장마비로 화승총을 쏠 수 없게 된 탓에 적의 총에 발목을 맞고 사로잡히고 말았다. 「탄환의 무정함이여,발목을 다쳐 더이상 나아갈 수 없구나,차라리 심장에 맞았더라면 이런 수모를 받지 않을 것을」 선생은 옥중에서 당시 심정을 이렇게 시로 남겼다.선생은 여러차례 재판 끝에 교수형을 언도받고 51세로 의기에 찬 일생을 마쳤다.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오지 공관원/본부 무관심·비전부재 “허송 세월”

    ◎국회제출 「외무부 자체감사」 자료/현지어 구사능력 모자라 대외활동 한계/예산 장 중심 집행… 업무인계도 대충대충 외무부에는 소위 「온탕」「냉탕」이란 것이 있다.미국,일본,중국,러시아등 주요지역의 공관은 「온탕」,아프리카나 서·동남아 일부지역등 비교적 근무여건이 열악한 지역의 공관은 「냉탕」으로 불리운다.외무부는 인사의 형평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대체로 온탕에 한번 근무한 외교관은 다음에 냉탕으로 보내는 식의 인사를 추진하고 있다.이런 인사정책은 여러가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른바 냉탕 지역 공관에 근무하는 외교관들의 자세다.「어차피 한번 거쳐 가는 곳」「여기서 잘하면 계속 붙잡힌다」는 식의 태도 때문에 공관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무부가 25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 제출한 94,95년도 자체감사 결과보고서에는 냉탕지역 공관의 문제점이 그대로 담겨 있다. 94년 2차례,올해 1차례등 모두 3차례에 걸쳐 실시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예멘 터키 라스팔마스 미얀마 제다 카라치 등 냉탕지역 공관의 감사결과는 거의 똑같은 지적을 되풀이하고 있다. 우선 해당 공관원의 대부분이 본국 본부의 무관심,열악한 기후(사막,고지대),다룰만한 현안 부재,혹은 회교권 특유의 폐쇄성등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고 사기가 크게 저하돼 있다는 것이다. 둘째,공관원의 현지어 구사능력 부족으로 대외활동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예멘,미얀마 대사관,카라치 총영사관에는 현지어를 하는 외교관이 단 한명도 없다.특수어를 하게되면 그 지역 공관에 계속 머물까봐 재임기간동안에도 배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공관예산이 공관장 중심으로 집행돼 공관원의 불만을 사고 있다.특판비나 정보비등 활동비의 상당부분이 공관장의 선물과 주류를 구입하는데 지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인지라 업무도 대충대충 넘어가게 된다.특히 전임자와 후임자간의 업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요인사기록 카드 관리와 업무일지 작성같은 기본적인 업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지적됐다.사우디의 경우 후임 영사가 여권수첩 보관매수도 몰랐고,아랍에미리트에서는 회계업무 인수인계자가 장부마감도 하지 않아,공관의 장부상 잔액과 은행잔고간에 차이가 나기도 했다.그러다 보니 자연 현지 교민과의 마찰도 빈번하게 된다. 감사보고서는 나름대로 부분적인 해결책까지 제기하고 있다. 우선 외무부 본부가 재외공관에 대한 외교적인 비전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다.정부가 세계화를 외치지만,이들 공관에서는 무슨 일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또 특수지에 근무하는 공무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주고,특수외국어 전문가에 대한 인센티브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 감사담당자들의 요청이다.
  • 여성의 권리향유 공식화에 큰 의미/북경 세계여성회의 결산

    ◎성생활·재산분배 등 평등권규정 진일보/총론 합의불구 세부사항 실현에는 한계 제4차 유엔 세계여성회의가 북경선언 및 행동강령을 채택하고 15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이번 회의는 지금까지 산발적으로 주장되던 여성의 동등한 권리향유 및 참여권 보장 등 각종 권리선언을 총체적으로 종합,유엔의 결정으로 공식화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모든 삶의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와 권리향유 확보문제에 논의가 집중된 것도 이번 회의의 진일보한 성격을 보여준다. 이번 회의에서 합의된 사항인 「행동강령」은 각국정부의 여성정책의 기준및 틀로서 사용되며 입법및 정책권고의 방향타로 활용된다.특히 이번 회의에선 여성폭력에 대한 개념이 새롭게 정립됐으며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권한강화 추구,성생활 추구 권리와 관련된 여성의 건강등 새로운 개념및 권리등이 유엔의 이름아래 합의됐다. 또 여성회의사상 처음으로 이행 주체를 명기하는 등 결정사항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장치마련 단계로까지 발전했다.이같은 결정은 여성의 지위및 권리향상을 위한새로운 추세를 반영하는 것으로 앞으로 여성운동의 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특히 이번 회의가 여성의 성생활을 위한 자유로운 결정권및 이와 관련된 보건을 인권의 한 부분으로 선언했다는 데서도 여성해방의 진일보한 성과로 평가된다.이와 함께 여아의 재산분배및 계승권을 인정한 것도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또 인종차별,종교적 극단주의에서 여성 폭력이 파생될 수 있으며 성희롱과 인종차별·포르노·매춘 등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여성폭력의 개념을 확대한 것도 여성의 권리보호를 위한 강조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회의 역시 유럽연합(EU)등 선진국그룹과 개발도상국 모임인 77그룹,선진국과 회교권및 카톨릭국가들사이의 견해차를 좁히는데는 실패했다.이들은 폐회 전날인 14일 하오부터 15일 상오까지 철야회의를 하는 등 일부 조문에 대해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었다.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조문에 붙어 있는 『각국의 윤리·종교적 신념및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총칙에만 남기고 의장직권으로 삭제,일부 소동이 있었던 것도 양측의 입장차를 보여준다.이같이 자국의 문화·역사적 특성을 강조함에 따라 이번 회의 합의사항이 각국에서 입법화,실현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세계여성회의의 한계를 나타냈다. 77그룹은 또 여성발전을 위한 내용이 이번 회의에서 비교적 소홀히 취급됐다고 비판,세계여성사업을 위한 추가적인 재원조달을 요구했다. 이번 회의는 지난 85년 나이로비(아프리카 케냐)회의이래 10년만에 열린 사상 최대규모(1백81개국)란 점에서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아왔다.비정부기구(NGO)의 4천여명 참가자들이 정부간 회의에 옵서버자격으로 참여,압력집단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북경선언·행동강령 요지 ◇북경선언 요지=제4차 세계여성회의에 참가한 각국 정부는 전세계 여성들의 평등·발전·평화 증진을 결의한다.이는 인권의 이익과도 직결된다.지난 십년간 여성의 지위는 중요한 향상을 보였지만 아직도 인류복지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남녀 불평등은 남아있다.우리는 여성이 실질세력을 갖고 모든 사회활동에 평등하게참여하는 것이 이의 달성에 필수적이며 여성과 여자어린이의 모든 인권을 보호·증진해야 한다고 확신한다.각국 정부는 이를 위해 행동강령을 정부정책과 프로그램에 반영,이행토록 할 것을 약속한다. ◇행동강령 쟁점부분 요지=▲여성들은 강요나 차별·폭력에 의하지 않고 임신·출산·건강을 포함,스스로의 성생활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여성의 성권리 명기) ▲낙태는 어떤 경우에도 가족계획 수단으로 장려돼서는 안되지만 각국 정부는 불법낙태에 대한 형사처벌 법조항 개정을 고려하도록 요구받는다. ▲아동이 성과 관련된 사생활을 보장받을 권리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부모의 책임과 권한을 강조한다. ▲전쟁·갈등상황에서의 강간을 전쟁범죄로 규정,책임자 사법처리를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한다.(성폭력을 인권의 문제로 강화해 표현) ▲문화적 편견,인종주의,인종청소,종교 등이 일으키는 여성에 대한 성희롱·포르노·성적노예·매춘 등 성폭력 철폐를 위한 긴급대책을 마련한다.(성희롱을 성폭력 범주에 포함) ▲남녀 어린이의동등한 상속권 보장을 위해 법 제정과 강화가 필수적이다. ▲가족의 여자 어린이 차별방지를 위해 가족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레스비언 등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하는 「가족들」대신 「가족」이라는 용어 선택)
  • 「여아 지위향상」 강령 채택/북경 여성대회

    ◎최저고용연령 자국법·국제기준 절충/남녀어린이에 상속권 동등보장 합의/아동의 성교육·서비스 받을 권리 확인 세계여성대회 실무위원회는 12일 한국대표단이 제안한 「여자어린이의 지위향상을 위한 가족의 역할강화」에 합의,행동강령으로 채택했다. 또 ▲어린이 고용에 관한 최저 연령제한 ▲남녀 어린이에게 동등한 상속권보장 ▲어린이의 성문제에 관련한 프라이버시권및 정보자유권등에 대해 합의했다. 그러나 오는 13일까지로 예정됐던 행동강령안 마련은 1백여 조항이 합의되지 않아 늦어질 전망이다.다음은 합의된 주요부분에 대한 요약이다. ◇여아 지위향상=우리나라가 지난3월 유엔여성지위위원회에서 제안,유예돼 왔었다.가정내에서 여아에 대한 차별을 불식시키는데 중점을 두는것.또 이를 위한 부모교육및 노후의 노인봉양기능을 강화하는 정책과 프로그램의 개발도 겨냥하고 있다. ◇어린이 고용=자국의 법령,노동관련 국제기준및 아동의 권리협약을 따르는 것으로 정리돼 수용됐다.최저연령제한에 관한 유럽공동체국가들의 제안에 대해 개발도상국그룹은 어린이 고용이 현실적인 문제며 자국의 법령과 상반된 국제기준을 따를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진통을 겪었으나 막판에 두리뭉실하게 타협됐다. ◇남녀어린이의 공평한 상속권=남녀어린이에게 동등한 계승권과 상속권을 보장하는 적절한 법을 제정,시행한다는 문안으로 합의.회교권국가들의 반대때문에 「관습·전통·상속과 결혼에 관한 국내법률에 관계없이」라는 문안은 유예된채로 본회의에 상정된다.그러나 상속권에서도 원칙적으로 남녀는 동등하다는 의견의 합의를 도출,선언적인 의미는 적지않다. ◇어린이의 성과 관련한 프라이버시등=어린이들도 성및 생육과 관련된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관련 정보및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합의.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에이즈등 불치성병의 어린이환자 증가,어린이 추행범죄의 만연등을 배경으로 선진국들의 주장으로 채택.어린이의 권리와 함께 회교권의 강한 반발로 부모의 역할과 책임·의무가 함께 삽입되는 선에서 합의됐다.
  • 섹스와 젠더(외언내언)

    베이징(북경) 세계 여성회의 「행동강령」 위원회가 드디어 성 표현 용어를 「젠더」(Gender)로 통일 사용키로 결의했다. 앞으로 모든 유엔 공식회의나 문서에서 성을 표현하는 용어를 섹스(sex)로 써서는 안되고 반드시 젠더(Gender)로만 써야 함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75년 첫 회의이래 20여년간 끈질기게 중심 테마로 삼아온 것이 이제야 관철된 것이다.그간 교황청과 가톨릭권 및 회교권 국가에서는 젠더라는 용어를 거부해 왔다. 젠더나 섹스를 우리말 단어로 번역하면 모두 「성」이지만 영어에서는 미묘한 어감 차이가 있고 여성학에서는 보다 큰 뜻의 차이를 두고 있다.섹스는 신체적인 것,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을 지칭한다.젠더는 여자 또는 남자에게 주어진 기질이나 행동등 문화적으로 형성된 사회적인 의미의 성을 말할 때 쓴다. 미국의 세계적인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1935년 펴낸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에서 섹스를 생물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젠더 행동은 사회적인 행동물」이라는 입장을 표현 한 데서 그 구별이 뚜렷해지게 되었다.젠더라는 용어는 현대로 오면서 사회적으로 부과된 남성·여성 역할과 특질에 대한 구분을 하고자 할 때 자주 언급되고 있다. 서구 여성학계는 인간의 성적 정체성(Gender Identity)을 신체구조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 사회 문화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으로 보자는 입장에서 이 젠더라는 용어를 통용하고 있다. 여성학 명칭도 60년대 「위민즈 스타디즈」(Women’s Studies)에서 오래 전에 「젠더 스타디즈」(Gender Studies)로 바뀌어 졌다.연구분야도 남성에 대한 것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성의 억압이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가부장 사회속에서 당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억압을 제거하고 양성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발전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다.
  • 북경 세계여성회의/“여성교육 지원” 손여사 연설에 갈채

    ◎손명순 여사 기조연설/요지/한국에 「여성공동의 장」 곧 개관/“오염된 환경·세상 회복시킬 원천이 되자” 존경하는 각국 정부대표와 세계여성지도자 여러분. 올해는 유엔이 창설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면서 바로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은 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반세기동안 유엔은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고 세계 각국은 여성의 발전과 남녀평등실현을 위해 진력해왔습니다.평등·여성발전,그리고 화해와 평화 없이는 밝은 미래가 없습니다. 이번 회의는 21세기 여성발전을 향한 획기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세계 각국 대표는 여성발전을 위한 행동강령을 채택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이곳에 모였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냉전체제의 종식으로 인류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서는 아직도 지역간·민족간 분쟁과 전쟁,인권침해,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그리고 자연에 대한 남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국가간 경쟁심화에 따른 불평등과 소외에 대한 우려도있습니다. 이처럼 이번 세계여성회의는 인류문명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습니다. 우리 여성은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볼 때 분명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여성은 불평등과 억압·파괴가 만연하는 부정적 문화를 극복하고 유기적 협력과 공존·평화의 문화를 창조하는 작업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여성이 빈곤과 문맹·폭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경제·정치적으로 힘을 키워야 합니다. 한국은 48년 정부수립 이래 자유민주주의헌법에 입각해 여성에게 참정권·노동권·교육권을 보장했습니다.한국은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실현해낸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분야에서도 상당한 발전을 이뤄왔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정부는 50년부터 문맹퇴치교육 5개년계획을 수립하여 범정부적 노력을 기울여온 결과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문자해독률,여성의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하는 나라가 됐습니다.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저개발국 여성의 교육과 인력훈련을 위한 지원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한국정부는 80년대초부터 여성의 능력을 개발하고 사회발전에 여성이 동참할 수 있도록 여성관련 법제와 기구를 정비해왔습니다.여성정책전담 정무장관실을 신설했고 가족법을 개정했으며 남녀고용평등법과 영유아보육법·성폭력특별법을 제정했습니다. 금년 7월에는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성폭력에 관한 국제전문가회의를 개최,이번 세계여성회의에 상정된 「서울선언문」을 채택하는 등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학교교육과 대중매체의 성차별적 요소개선을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습니다.최근에는 여성의 사회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보육시설확충,여성고용기회확대,정치참여증진 등을 중요정책과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냉전종식 이후 오늘날 평화롭고 함께 번영하는 지구촌 건설을 위해 인류공동의 문제에 대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여성문제도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한국은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국제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곧 개관될 「여성공동의 장」에 국제협력의 창구를 마련하였습니다. 인류가 이제까지 애써 키우고 가꿔온 오늘날의 문명은 물적 가치에 치중한 생산과 소비활동,환경을 도외시한 개발,그리고 과학기술의 오용 등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제 여성은 21세기를 앞두고 미래지향적 철학과 이웃을 사랑하고 참된 평화를 추구하는 이상적 세계관을 가지고 진정한 공동체적 삶을 이룰 수 있도록 건전한 가정과 건강한 사회,그리고 푸른 자연을 지키는 운동을 전개합시다.「하늘의 절반」인 여성의 저력은 오염된 환경과 세상을 건강하게 회복시킬 수 있는 새 힘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우리 여성은 21세기 미래를 이끄는 새로운 주역이 될 것입니다.따라서 여성발전을 위한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은 다른 어느 부문에 대한 투자보다 장기적이며 알찬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정신대 증언·비디오 2편 상영/미 대표단 「낙태 자유」선언 추진/GO회의·NGO포럼 이모저모 ○…북경 세계여성회의 한국대표단 명예수석대표로 참석중인 김영삼대통령부인 손명순 여사는 5일 하오 정부기구(GO)회의 이틀째 본회의에서 지난 85년 나이로비대회이후 한국정부의 여성지휘향상을 위한 노력과 정책방향에 대해 기조연설. 핑크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손여사는 이날 하오2시35분쯤 회의장인 아시아 선수촌내 국제회의센터에 도착,유엔의전관의 영접을 받으며 회의장에 들어서다 현관에서 회의장 7층에 있는 한국공보원의 현판을 발견하고 『좋은 곳에 자리잡았다』고 관심을 표명한뒤 2층 귀빈실로 직행. 손여사는 미 대통령부인 힐러리 여사의 연설직전 대회장에 입장,힐러리 여사와 펑페이윈 중국조직위원회 대표에 이어 하오회의 3번째로 연설.13분 가량 진행된 손여사의 연설은 참석자들의 두어차례 박수를 받으면서 진행.특히 『앞으로 한국정부가 저개발국 여성의 교육과 인력훈련을 위한 지원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란 대목에서는 아시아 아프리카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며 공감을 표현. 이날 손명예대표의 연설시작 9분여쯤뒤 2∼3분 동안 동시통역이 안나와 레시버를끼고 있던 참석자들이 한동안 어리둥절.회의관계자 등은 손여사에게 기계작동의 문제가 생겨 잠시 통역이 나오지 않는 상황임을 알린 뒤 통역을 재개시켜 연설은 무난히 진행.연설이 끝난 뒤 손여사는 고개를 깊게 숙여 장내의 관중들에게 인사,장내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손여사는 상오로 예정됐던 스리랑카,우크라이나,나미비아대표 등의 연설이 순연되고 예정에 없던 힐러리 여사의 특별연설이 끼어드는 바람에 1시간여 가량 귀빈실에서 황대사 등과 환담하면서 대기. ○…이날 아침 북경에 도착한 힐러리 여사는 특별연설에서 『이번 회의의 목적은 여성의 힘을 기르고 여성의 인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여성 인권과 인류의 인권은 결코 분리될 수도 없고 분리돼서도 안된다』고 역설해 박수와 환호를 받기도. ○…중국사회과학원 문헌출판사는 이날 한국공보원을 통해 손명순 여사에게 한국 여류작가의 단편소설을 모은 「한국 여작가품선」한권을 증정. ○…북한NGO가 5일 마련한 「전쟁중 일본의 성노예범죄」주제 워크숍에는 50여석정도의 좁은 장소에 남북한 참가자를 포함,일본·중국·독일인 등 1백50여명이 들어차 정신대문제에 대한 높아가는 관심을 반증.NGO포럼장의 10­M빌딩 48호에서 북한의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대책 위원회 박성옥 부서기장의 사회로 열린 이날 워크숍에서는 피해자 증언과 종군위안부실태 등을 담은 두편의 비디오가 상영됐다.이자리에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북경을 찾은 이혜정·강부자 의원도 방문해 눈길.이의원은 워크숍이 끝난 후 박성옥 종태위부서기장과 악수와 가벼운 대화를 교환. ○…한국 NGO위원회의 공연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여성문화예술기획의 김경란씨가 NGO포럼장의 유명인사로 부각.인간문화재 김금화씨 등으로부터 신내림굿과 교방춤을 전수받은 김씨는 씻김굿공연 등 군위안부 관련행사는 물론 각종 문화행사를 주도했는데 인터뷰 요청이 쇄도.중국 신화사를 비롯,미국의 몇몇 사진잡지는 벌써 인터뷰를 끝냈고 다른 외국언론도 김씨를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후문.NGO 조직위원회가 매일 발간하는 「포럼 95」는지난 3일 김씨의 공연모습사진을 크게 실었으며 김씨가 속한 풍물패의 출연을 요청하는 소수민족단체도 상당수. ○…제4차 유엔 세계여성회의의 거트루드 몽겔라 사무총장은 여성의 사회적 평등을 위한 혁명의 남성도 동참할 것을 요구.그녀는 『이미 이러한 혁명은 시작됐으며 이는 모든 인류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방관자는 있을 수 없다』며 남성뿐 아니라 각국 정부와 국제단체의 관심을 촉구. ○…미국대표단의 도너샤라라 단장은 미국대표단이 이번 회의에서 「여성의 낙태를 위한 선택의 자유」를 추진할 것이라고 천명.바티칸이나 이란 등과 같이 로마 카톨릭과 회교권국가의 대표가 여성의 낙태를 지지하는 문구를 행동강령에 삽입하는 것에 대해 격렬히 반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도너단장은 『우리는 여성의 출산권과 함께 선택의 자유를 위해서도 투쟁할 것』이라고 주장. ◎이질적 문화권대표간 가교 역할/윤순영 NGO위 연락관 인터뷰 『제가 유엔도 알고 NGO대회도 알기 때문에 이런 일에적임이라고 여겼던가봐요』 제4차 세계여성회의가 열리고 있는 북경에서 NGO위원회 유엔리에종(연락사무관)직함으로 활약하고 있는 재미교포 윤순영씨(50). 『세계 곳곳을 떠돌며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 사이에서 다리역할을 하는 게 제 일이었어요.그러다보니 자연히 이질적인 문화들을 이해하게 되고 누구를 만나든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게 됐지요』 지난 47년 3살때 미국으로 이민,미시간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그는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방콕지사·세계보건기구(WHO)뉴델리지사 등지에서 유엔직원으로 일했다. NGO위원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0년 코펜하겐 포럼 당시 유엔사무국 직원으로 행사진행을 뒷바라지하면서부터.당시 그의 탁월한 업무능력을 눈여겨본 산티아고 NGO사무총장이 회유포럼을 앞두고 「구조」를 요청한 것.이를 받아들여 윤씨는 U유엔무국에 사표를 냈고 NGO의 행동강령을 로비하는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유엔을 출입하게 됐다. ◎「우조교 성희롱 판결」 풍자/NGO 포럼장서 한국의 날 행사/길쌈·강강술래 대미 장식 5일NGO포럼장의 간이무대에는 형형색색의 선고운 한복들이 막바지로 접어들어 조금씩 진이 빠지고 있는 포럼의 분위기를 산뜻하게 추스리고 있었다.「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을 주제로 하는 「한국의 날」 행사가 NGO포럼장에 마련된 간이무대에서 이날 하오5시45분 시작된 것.이번 포럼에서 정신대문제를 국제적인 이슈로 끌어올리고 정치·발전·인권분야의 워크숍에 고루 참가,한국여성운동의 지평을 크게 넓힌 우리 NGO위원회가 힘을 모아 마련한 자축 한마당이었다.동시에 5백여명에 이른 외국인참가자와 마음의 벽을 허물고 한국적 「신명」을 나눈 교류의 자리이기도 했다.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연출을 맡은 이날 행사는 하오5시 글로벌 텐트앞에서 청사초롱을 앞세운 한복차림의 우리 NGO 1백여명이 행사장까지 길놀이를 펼쳐 포럼 참가자의 자연스러운 관심을 이끌어내며 시작됐다.삼삼오오 모여든 외국인을 이끌고 무대에 이른 대열은 예술기획 소속 이혜란씨의 깃발춤에 맞춰 문열이굿을 펼쳤다. 이어 성폭력·환경·장애인문제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는 캠페인과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원고패소판결 등을 풍자한 마임으로 이날 행사는 무르익었다.언어와 인종은 달라도,어쩌면 생각도 조금씩 다르겠지만 여성이 함께 눈앞에 놓인 문제의 벽을 넘어보자는 공연의 뜻은 참가자의 뜨거운 박수로 응답받았다. 신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된 김경란의 춤사위와 안혜경의 환경노래공연은 흥겨움과 푸근함을 더한 시간.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 길쌈짜기와 강강술래는 특히 인기가 높았다.참가자 모두가 함께 출 수 있도록 무대의 문을 활짝 열었기 때문.긴 막대에 오색끈을 매어 꼬아가는 길쌈짜기에 직접 참가한 미국인 참가자 에미 애덤스양은 『다른 어느 나라의 행사에 가봐도 이렇게 직접 민속춤을 춰볼 기회는 없었다』고 동양문화의 한자락을 맛본 즐거움을 말했다.
  • 한·비·일 대표 정신대 폭로준비 분주­북경 여성대회 이모저모

    ◎북 대표단 참석… 남북여성 조우 불투명/핫팬츠·전통의상 뒤섞여 패션장 방불 ○…제4차 유엔여성회의에 앞서 비정부기구(NGO)포럼이 30일 하오5시(현지시간)북경 국립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세계 1백80여개국 여성운동 지도자,여성단체 관련자 및 보도진 등 1만8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화려하게 개막됐다. TV로 중국 전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2시간 동안 펼쳐진 이날 개막식은 첸무화 중국부녀연합회 주석겸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상무위 부위원장의 환영인사로 시작.이어 거투루드 몽겔라 여성회의사무총장,첸무화주석,수파트라 마스디트 NGO포럼의장 등 3명이 「평화의 횃불」을 밝힌 다음 수파트라의장이 10일에 걸친 NGO포럼의 개막을 공식 선언함으로서 개막식 분위기는 절정에 도달. ○…NGO포럼은 이날 개막식이 끝난후 북경 근교 회유로 회의장소를 옮겨 오는 9월8일까지 12개의 주제를 놓고 5천여건의 워크샵,세미나,회의 등 소집단 활동을 펼친다.또한 정부기구(GO)회의인 세계여성회의에서 채택될 행동강령 등 공식문건에 영향을 주기 위한 로비활동도 벌인다. 회유 대회장의 「아시아·아프리카지역 캠프」에는 이날 한국과 일본,필리핀 종교분과위 관계자 등이 모여 태평양 전쟁 정신대문제의 실상전달을 위한 행진 등을 논의.한국측 한 관계자는 『한국 등 세나라가 정신대문제에 대한 공동심포지엄 개최를 앞두고 31일 대회장내에서 행진을 벌일 예정』이라고 전언. ○…이번 NGO포럼에는 북한에서도 20여명의 대표단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한국NGO위원회 실행위원인 신혜수 한국여성의전화 회장은 『개막식장에서 북한의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희생자보상 대책위원회」 박성욱 상무위원을 만나 그같이 전해 들었다』면서 『그러나 오는 9월4일 열릴 「전쟁중 성폭력 심포지엄」에 참가,우리나라와 필리핀 등 정신대 피해자와 함께 증언하기로 했던 북한의 정신대 피해여성은 동행하지 않은 것으로 북한대표들이 말했다』고 전언.이에따라 4일로 예상되던 남북한 NGO참가자들간의 첫 공식만남은 성사가 불투명해졌다. ○…NGO조직위원회측에는 시위관련 사항에 대한 문의가 그치지 않자 일부 관계자들은 자칫 합법적인 시위로 인한 중국당국과의 마찰에 우려하는 표정.그러나 이날 상오 기자설명회를 통해 NGO측은 『대회장내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며 유엔의 규정이 중국 국내규정에 우선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중국조직위원회의 경고를 일축.이에 앞서 중국 공안부 전기옥부부장은 대회장 안이더라도 중국의 주권과 지도자에 대한 훼손발언을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으나 대회장내 일부 지정지역에서는 시위를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경 주변의 휴양지 30만평에 조성된 회유의 NGO대회장은 흡사 패션대회장 같은 분위기.핫 팬츠에 아슬아슬한 노출의상의 유럽지역 참가자에서부터 전통복장을 착용한 아프리카 대표,30도를 웃도는 더위에도 불구하고 짙은 회색과 검은색의 긴옷에 눈만 내놓고 얼굴을 차도르로 칭칭 감은 회교권 대표 등 다양한 의복의 경연장같은 느낌.
  • 일부 사립교/“「학교운영위」 확대 적용 신중히”

    ◎학부모에 예·결산권… 교권침해 우려/“학교사정에 맞게 실시를”/교육부 다음학기부터 도입되는 「학교운영위원회」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같은 우려는 학부모가 예·결산권을 갖는 등 학교운영에 깊이 개입하는 것이 교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사립학교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재정이 빈약한 일부 사립학교는 학부모의 재정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만큼 사립학교로의 확대를 신중히 해줄 것을 바라면서도 무작정 반대만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현대고 김송일(47)교장은 『개인이 돈을 들여 세운 학교의 예·결산권이 운영위원회로 넘어간다면 사학의 위축은 불을 보듯 뻔하다』면서 『설립주체가 지역공동체로 되어 있는 서구의 모델을 여과없이 수용해서는 안되며 사립학교에 확대적용은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K여중 김모교사(29)는 『사립학교에까지 학교운영위원회가 확대실시되면 재정지원을 하게 될 학부모대표의 학교운영에 대한 간섭이 심해지고 치맛바람이 과열될까 우려된다』면서 『특히 사립학교에서는 교권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H국민학교의 교장은 『교육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학부모가 학교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최소인원만 참여하길 바라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 학교운영위원회에 참가할 학부모대표의 선출방법과 관련해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의 황지연(26·여)간사는 『학부모대표는 학년 학부모회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돼야 하고 학교측의 일방적인 지명은 학부모대표가 학교경영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꼭두각시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학부모대표가 참여하는 것은 「강제조항」이지만 획일적인 기준은 없다』면서 『여러 차례 공청회를 통해서 문제점이 충분히 논의된 만큼 학교사정에 맞게 실시하면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운영위원회」는 오는 2학기부터 시·도별로 1개교씩 시범실시되고 내년부터 공립학교에서 우선 도입된 뒤 사립학교로 점차 확대될 계획이다.
  • 미,을사조약 강압 알아/대일관계 고려 불간여/국무부 문서 확인

    【워싱턴 연합】 미정부는 지난 1905년의 을사조약 체결 직후 자체 외교 채널을 통해 이것이 강압적으로 이뤄졌다는 내용의 내부 보고를 받았으나 일본과의 관계 등을 감안해 이에 관여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던 것으로 당시의 미국무부 문서가 밝혔다. 지난 1905년 12월18일자 미국무부 비망록은 『(조선의) 민 프랑스 주재공사가 (1905년)12월11일 국무부를 방문해…(을사조약에 대해) 말했다』면서 『그것은 매코믹 (미)대사가 (1905년) 11월25일자 급보를 통해 국무부에 권고한 것과 실질적으로 같은 사실들』이라고 지적했다. 비망록은 『민공사는 조선이 일본에 외교권을 넘기는 내용을 담은 1905년 11월17일의 조약이 조선 황제를 강압해 맺어진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이것은 무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 미,대통령외교권 제한 추진/백악관선 반발… 거부권 예고

    【워싱턴 연합】 백악관은 미 의회가 입법화를 본격 추진중인 「95년 대외관계 활성화법안」(S­908)이 북한핵문제 등을 풀어나가는데 장애가 된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26일자 성명에서 『S­908이 대통령의 외교정책수행을 가로막는 장애』라고 강력히 비판하면서 『의회에서 입법화를 결정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거듭 천명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것이 발효되면 중요한 나라들과의 외교관계가 심각하게 타격받거나 아니면 금지될 것』이라면서 『만약 몇달전 입법화가 확정됐더라면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동결시키는 협정을 마무리짓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보스니아 회교정부군에/미,몰래 무기제공”/워싱턴포스트 보도

    【워싱턴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정부군이 미제군수품을 구입하고 있다는 유럽정보기관들의 보고로 미국과 유럽 동맹국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2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유럽국가들이 회교권 국가들을 통해 미국이 보스니아에 대한 무기공급을 도모하고 있다는 의혹이 최근 영국·프랑스·미국 등이 참석한 고위급 회의에서 제기됐다면서 이는 3개국간의 신뢰를 저해할 뿐 아니라 세르비아계의 공격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공동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고위 관리들도 회교권이면서 미국과 가까운 터키·사우디 아라비아·파키스탄등이 보스니아에 대해 비밀리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으며 이는 지난 91년 유엔 안보리가 취한 무기금수조치를 위반하는 셈이 된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 학교운영위/학부모­동문참여 교육자활터전 마련(21세기 신교육:7)

    ◎기금조성… 특활프로그램 등 선정/「종합기록부」 검증,교권침해 우려 오는 2학기부터 초·중·고교에 설치될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공동체 중심으로 교육을 활성화하려는 뜻을 지닌 기구다. 지방화시대에 발맞추어 학교마다 교육자치의 터전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부모와 지역주민등이 참여해 예산·결산을 비롯,선택교과 및 특별활동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학교헌장이나 규칙의 제정등을 심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교육부는 국·공립학교에 대해서는 이 위원회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사립학교에 대해서는 권장하고 있다.위원회는 학부모 50%,교사 25%,지역주민 및 동문대표 25%씩으로 구성된다. 위원회는 학교발전기금의 조성과 사용을 결정하고 지역사회의 기부금을 징수·관리하는 업무까지 맡는다.교육자치기구의 역할뿐만 아니라 학교재정의 지원까지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지금까지 각 시·도교육청을 통해 접수하던 일선학교의 찬조금품도 오는 2학기부터는 위원회에서 직접 받는다. 박영식교육부장관은 특히 『운영위원회가 종합생활기록부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작성을 담보하는 기능도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일선학교의 자율적인 운영을 담당하게 될 위원회가 종합생활기록부에 대한 공정성을 검증하게 함으로써 치맛바람을 차단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위원회의 설치에 따르는 부작용도 여기저기서 우려되고 있다. 먼저 구성방식에서 학부모나 지역인사의 비율이 너무 높아 자칫 위원회 본래의 취지인 자율화가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입시위주의 교육풍토가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서 위원회의 절반을 차지할 학부모가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앞세워 학생의 인성교육보다는 성적과 입시위주의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데 열을 올린다면 현장교육이 왜곡·변질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검증제도가 마련되지 않을 때는 위원회에서 제외된 학부모가 종합생활기록부의 공정성여부를 따질 수도 있다.예산·결산의 심의에서부터 기부금의 징수·관리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위원회가 교과과정운영 등 교권을 직접 침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지역인사의 정치논리가 교사의 교육논리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크다.비슷한 성격의 자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이나 영국·호주 등 교육선진국에서는 교사와 학부모·지역인사 사이에 오랜 자율과 전통·경험을 바탕으로 교권에 대해서는 일체 간여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만 입시위주의 우리 교육풍토에서는 오히려 외부의 목소리 때문에 자치가 침해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실교육분과장 김성재(48)한신대교수는 『학부모와 지역인사의 구성비율을 줄이고 대신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교사의 몫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무소불위의 운영위원회에 대해 교사가 신분의 불안정을 느끼지 않도록 교무위원회를 의결기구화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도 했다. 운영위원회가 기부금을 모금할 수 있게 된데 따라 음성적이고 불법적인 「촌지」를 관행화하는 부작용을 부르게 될 것이라는주장도 나온다.이 부분은 공적 기부와 시설확충등 특정사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모금을 공표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교육서비스도 높이고 부정의 소지도 없애려면 소액다수제를 윈칙으로 해야 함은 물론이다. 국·공립학교와는 달리 운영위원회의 설치가 권장사항으로 돼 있는 사립학교에서는 이 위원회를 부족한 학교운영자금을 조달하는 공식창구로 악용할 소지가 없지 않다.서울시내 각급 사립학교의 재정자립도가 50% 안팎에 그쳐 예산의 절반정도를 국고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일선학교에서는 기부금의 양성화가 지역별 교육의 격차를 부추길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서울 H국민학교 이모교장(62)은 『지금까진 그래도 지역별 교육의 질이 어느정도 균형을 이루었지만 기부금 모금이 완전개방되면 특별활동의 프로그램이나 초빙강사의 질 등 강남과 강북의 격차가 엄청나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학부모 박정연(35·주부·송파구 풍납동)씨는 『운영위원회의 도입이 일부 비뚤어진 교육이기주의에 젖은 학부모의 「허가받은 치맛바람」을 일으키지 않도록 위원의 선출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전직 교사인 양호석(61·서대문구 홍은동)씨는 『운영위원회가 50년대 사친회의 재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부작용과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 우호적 강도(외언내언)

    일본의 한국강점은 1870년 일본정부내에서 대두된 「정한론에서부터 비롯된다.대륙진출의 침략정책을 주장한 「정한론」은 청일·러일전쟁을 거치면서 구체화되었고 1905년 마침내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는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체결로 이어진다.1910년 한일합방 이전 나라의 외교권·자주권을 빼앗기고 일본 통감부 설치를 허용한 을사5조약은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소멸을 의미한다. 1905년 11월16일 일본 칙사 이토(이등박문)는 한국정부 대신들을 그의 숙소에 납치해놓고 조약체결을 강요했다.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음날 덕수궁에서 군신회의를 개최토록 했다.궁궐 안팎은 완전 무장한 일본군이 몇겹으로 둘러싸고 있었으며 서울시내 전역을 철통같이 방비한 일군은 각 성문에 야포와 기관총까지 걸어놓고 있었다. 삼엄한 무력시위 속에 대신회의는 하오 8시까지 계속됐으나 일본의 제의를 거부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이토와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는 폐회후 돌아가는 대신들을 위협,강제로 회의를 열게 한뒤 11월18일 조약을 체결한 것이다.고종황제의 윤허도 받지 않은 채로. 조약이 체결된 4일후 고종은 미국인 헐버트를 미국무장관에게 보내 한국정부의 입장을 전한다.이 밀서에서 고종은 『짐은 총칼의 위협과 강요 아래 체결된 소위 보호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한다.짐은 이에 동의한 적도 없고 금후에도 결코 아니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을사조약 체결이후 이를 반대하는 순국항쟁이 국내외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것은 조약체결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을사조약은 불과 90년전의 역사적 사실이다.그런데도 와타나베 전일본 외상은 『한일합방조약은 우호적으로 원만히 체결됐다』고 망언을 늘어놓았다.남의 집에 침입한 강도가 『우호적으로 강도짓을 했다』는 거나 무엇이 다른가.일본 정치지도자와 지식인들의 역사왜곡이 언제 바로잡힐 것인지 한심하다.
  • 한­방글라/실질 협력시대 연다/김 대통령­지아 총리 회담의미

    ◎한국의 새로운 교역파트너 급부상/남아시아 진출 교두보 확보 기대 26일 김영삼대통령과 베굼 칼레다 지아 방글라데시 총리의 정상회담으로 우리나라와 방글라데시는 정치·경제적 실질협력관계를 한층 심화시켜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방글라데시가 창설을 주도한 남아시아 지역연합(SAARC)이 이 지역의 튼튼한 지역경제협력체로 발전할 움직임이어서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의 남아시아 진출기반 조성에 큰 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SAARC는 현재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부탄 몰디브등 7개국이 가입,역내국가간 비정치분야에서 협력을 도모하고 있는 「경제기구」다. 한­방글라데시 교역규모는 94년 말 현재 약4억6천만달러.이가운데 우리의 수출은 4억5천만달러로 지난 90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인구 1억1천만명의 교역시장을 감안할 때 조만간 우리의 중요 교역파트너로 부상할 조짐이다.유망 수출품으로는 섬유·철강·금속·기계류가,수입품으로는 혁제품·직물류·유류제품등이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31개업체에서 6천만달러를 투자함으로써 방글라데시 경제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나라.79년이후 매년 「태풍피해복구비」「난민구호비」명목으로 수백만달러어치의 무상원조가 계속돼 왔으며 지난해에는 1천4백만달러에 달하는 경제협력개발기금(EDCF)이 제공됐다.또 두차례에 걸쳐 2천3백50명의 산업기술연수생이 우리나라를 찾아 기술지도를 받고있다. 방글라데시는 회교권의 단결,비동맹외교의 강화를 대외정책기조로 하고 있어 국력에 상응하는 우리의 역할확보와 관련해서도 중요 파트너로 꼽힌다. 지아총리는 81년 쿠데타로 피살된 지아 울 라만 전대통령의 부인으로 37세때인 82년부터 에르샤드 군사정권을 상대로 반정부운동을 펴왔으며 91년 총리에 당선됨으로써 오랜 군사통치를 종식시킨 인물.그녀는 85년 남편이 창당한 방글라데시 국민당(BNP)을 맡으며 정계에 들어와 국회의원에 피선됐었다.
  • 「세계화 위한 교육개혁」 교총세미나 주제요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윤형원)는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정부의 교육개혁안 발표에 앞서 「세계화를 위한 교육개혁과 교원」이란 주제로 교육정책 토론회를 열어 교육개혁의 방향과 교원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울산대 이상주총장의 「세계화와 교육개혁」및 서울대 박성익교수의 「교육개혁의 주체는 교원」이라는 주제발표 내용을 간추려본다. ◎이상주 울산대총장/“세계시민의식 가르치자” 세계화란 무한경쟁의 개방시대,국경없는 지구촌시대를 맞아 모든 분야를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켜 궁극적으로 「통일된 세계중심국가」를 이루자는 것이다. 세계화에 관해 많은 논자들이 대체로 합의하는 한가지 사항은 교육이 세계화 전략의 요체이기 때문에 교육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그것은 「경쟁과 공존」이라는 두 축 위에 걸쳐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세계화 교육은 인간교육 차원과 교육제도개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인간교육차원에서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사항은 무엇보다 외국어 능력이다.외국어능력은 외국인과의사를 소통하고 외국에 관한 정보를 얻는 기초적 수단이다.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와 식견을 넓히고 자신의 문화적 폐쇄성을 깨뜨리는데 외국어습득 이상 효과가 큰 것이 없다. 또 하나는 외국에 대한 폭 넓은 지식과 이해이다.그동안 한국은 냉전체제속에서 불가피하게 미국등 선진국 일변도로 교육이 편중돼 왔다.그러나 이제는 균형있고 폭넓은 국제이해를 갖게하는 방식으로 교육과정과 방향을 개선해야 한다. 외국의 각분야에 대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세계화교육의 중요한 과제다.외교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군사·통상·기술·언론·국제법·환경 등 여러 영역에서 전문가가 많이 있어야 한다. 또 세계화는 세계시민의식의 배양을 중요한 교육목표로 삼아야 한다.즉 국적·인종·종교·문화의 차이를 뛰어넘는 모든 인간에 대한 동질감과 일체감 그리고 인류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책임감을 갖추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교육개혁차원에서는 교육이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과거의 「교육지체」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기위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그 방향은 첫째 대학진학 희망자에게 문호를 더 개방하고 정부의 인력개발 정책도 인력 접근법에서 사회수요 접근법으로 전환돼야 한다. 또 학교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힘써야 한다.이를 위해 교사의 자질을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 경제적 처우개선 등을 통해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입시경쟁의 치열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입시제도의 개혁이 단행돼야 한다.그 접근방법으로는 비정상적인 진학열을 식히는 일과 대학의 문호를 더욱 강하는 일,대학의 질적 격차를 줄이는 일 등이 있다. ◎박성익 서울대교수/“교육개혁의 주체는 교원” 교육개혁이 가시적으로 실현되는 곳은 학교현장이며 학교에서 교육개혁을 실천하는 사람은 교원이다.그러므로 교육개혁의 주체는 교원이며 교원이 개혁에 임하는 태도에 성패가 달려 있다. 우선 교육현장 위주의 교육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교원이 앞장서야 한다.교원이 교육개혁을 선도해 나가면서 실제적이고 실용적이며 타당성과 적절성을 지닌 개혁방안을 수립하는데앞장서야 한다. 또 교원의 자질을 향상하고 교직사회를 활성화하기 위해 교원들이 노력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교원 스스로 자발적인 연수활동 등 부단한 자기연수를 해야 한다. 교직윤리와 교권의 확립을 위해서도 교사 스스로 노력해야 하며 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교원들이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사회·학부모·학생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높은 윤리의식을 지니고 전문적 권위를 지키며 교육적 책무와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 교권확립의 첩경이다. 이와 더불어 교육개혁을 위한 방안 수립에 교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확대돼야 한다. 교원은 세계화·정보화 사회로 사회가 변화해 감에 따라 지식의 신진대사와 교육내용의 개혁을 주도해 나가는 주체가 돼야 한다.교원들은 학교밖의 세계에서 변화하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수렴하여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내용을 자율적 주체적으로 최신화해야 한다. 교육내용의 개혁이 교육현장에 스며들도록 하는데 교사들의 능동적인 역할이 요구되며 개혁된 교육내용을 현장에 반영하고 절차를 개선하는 일도 교사가 주체적으로 해야할 일이다. 교육과정의 내용이 획일적이라 하더라도 교원들 스스로 교과연구를 통한 창조적이고 다양한 학습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교육내외적인 여건의 변화와 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의 변화에 따라서 교사의 역할이 크게 변화함을 교원들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교육의 수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학습자들의 적성 능력 관심 흥미등에 따라 수업지도 기술이 다양해져야 하며 학습자료 수업방법학습속도 등의 차별화가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교원은 교실의 생태를 깊이있게 연구하여 적합한 교수방법과 교수자료를 개발할 필요가 있고 수업집단의 운영도 다양화할 수 있도록 연구해야 한다.
  • 3월13일자 일 산케이지 사설/유일한 주일공보관 반박

    ◎“한일관계”우려가 내정간섭인가/“미래지향적 관계발전 희망”김 대통령 의도 오해 주일대사관의 유일한 공보관은 18일 산케이신문이 일본의 불전결의와 관련한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을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하는 사설(3월13일자)을 실은데 대해 『양국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왜곡된 편견』이란 반박문을 보냈다.18일자 산케이지에 게재된 반박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3월13일 귀지 사설은 김영삼 대통령이 3·11 코펜하겐에서 무라야마 총리와의 정상회담시 행한 일본내에서의 소위 불전결의를 둘러싼 논의에 관한 발언내용을 「내정간섭」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와 같은 지적은 김 대통령의 발언의 내용이나 진의를 사려깊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 대통령은 보도되고 있는 일본국회내에서의 소위 사죄·부전결의와 관련된 최근의 동향을 언급하면서 그와 같은 움직임의 귀결여하가 한국 국민이 일본에 대하여 갖는 이미지나 감정,나아가서는 한·일관계를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양국의 공동노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와 같은 지적은 양국 수뇌간에서 더구나 그간 수차의 접촉을 통하여 익숙해진 사이에서 당연히 있을만한 것으로서 이를 「내정간섭적」으로 보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김 대통령이 일본의 자주성,사상의 영역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으며 국내 대책상의 정치적 발언』이라고 단정한 것은 과거사에 대한 깊은 성찰의 토대위에서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추구하려는 김 대통령의 진지한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이며 또한 자칫하면 민주주의와 다원성이 정착된 한국정치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일본 국민들에게 심어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한 귀지에서 지적하고 있는 한국내의 소위 「반일이벤트」의 실상을 관찰해보면 반일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기 보다는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식민지 통치의 잔재를 청산하고 미래지향적 한·일 우호협력 관계를 구축하려는 우리정부와 국민 나름대로의 자발적 노력의 발현이라는 것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귀지는 또한 과거 한·일 관계의 기본에 관한 인식에서도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1905년의 한·일 협약은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조약이었으며 그이후 병탄에 이르기까지 모든 양국간의 합의나 조약 또한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임은 명백한 것으로 원초적으로 하자가 있는 것이다.과거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화를 정당화시키거나 미화시키려고 운운한다면 한민족 전체의 감정을 근저부터 흔드는 것이 되며 과거의 일은 청산될 수 없다. 한국정부나 국민도 일본정부나 국민과 다정한 선린으로서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해 나갈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또한 우리는 일본이 앞으로 이 지역에서 나아가서 세계적으로 역할을 더욱 확대·심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금년은 한국으로서 광복 50주년이 되지만 동시에 한·일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된지 30년이 되는 기념할 만하 해이기도 하다. 일본이 과거 일제에 의하여 쓰라린 고통을 겪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쓰다듬는 겸허한 자세가 우리나라를포함한 아시아 여러나라들과의 밝은 장래를 약속하는 기초가 되고 세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게 함을 지적하고 싶다.
  • 구엔 티 빈 부주석 인터뷰/송정숙 본사고문

    ◎“한국은 베트남의 좋은 이웃”/“통일후 베트남 만족할 수준 아니다/전쟁고통 처절… 한반도 평화부러워” 1968년5월 존슨 대통령의 북폭중지성명을 계기로 69년1월부터 시작된 「파리평화회담」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북월남의 한 여성실력자가 있다.회담의 차석대표로 출발하여 다시 수석대표로 세계적인 교섭의 천재 키신저를 상대로 단호하고도 확실한 매듭을 이끌어내곤 하던 공산월남의 혁명1세대 여성 구엔 티 빈씨.그는 그들이 「해방」시킨 남베트남의 임시혁명정부에서 외무장관과 교육부장관을 지냈으며 통일 월남인민공화국에서 국회 대외위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국가 부주석으로 있다.혁명운동으로 감옥을 들락거린 젊은 날과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슬기 있는 동물처럼 강대국의 종아리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져서 마침내 거인이 두손을 들게 만드는 천재적인 회담의 지모를 지닌 그는 그 선입견과는 달리 지금은 온화하고 사려깊은 7순의 원로다.초록색의 아오자이깃에 가느다란 금목걸이를 걸고 입술에 연분홍 립스틱을 바른 이쁜 할머니.투지가 서릿발처럼 엉겨 있던 젊은 날의 어디에 그런 온화함이 숨겨져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한국의 동아시아연구회(이사장 김덕중 아주대총장)의 방문단과 함께 만나본 그는 친화력 넘치는 총기있는 노인이었다. 한국과의 불행한 과거에 대해서는 『있었던 일은 분명 있었던 일』이고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준 일』이지만 미국의 잘못된 정책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므로 『한국이 적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고 명료하게 말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다방화 외교정책을 쓰고 있으므로 과거의 상처를 되살리는 일은 상처치유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원칙아래 어느 나라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만을 강조한다.그런 뜻에서 한국은 좋은 협력관계의 이웃이라는 것.식량난의 북한을 위해서 여유가 생긴 월남의 식량을 수출할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해방투쟁에서 우리 입장을 지지해준 북한』을 위해주라는 말은 『듣기에 좋다』고만 대답했다. 무력을 통한 통일의 어려움을 겪은 월남이 한국의 통일을 위해 충고할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나라마다 각각 사정이 있고 한국과 북한도 각각 자기 생각이 있을 터이므로 직접 언급할 생각은 없지만 『실전 없이 평화로운 상태로 있는 한반도가 부럽다』면서 가능한 한 통일은 평화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충고만은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또박또박 그러나 심호흡을 하듯이 말하는 그에게서는 전흔(전흔)의 고통을 읽을 수 있었다. 청교도적 금욕을 이념으로 인민의 인내를 담보하며 이룩한 그의 통일조국이 지금 겪고 있는 경제발전위주의 개혁과 개방수순에 그는 만족하는가,그들 혁명1세대가 예측하고 기대하던 통일은 이런 것이었는가,특히 교육받을 기회까지 내팽개치고 「1달러벌이」를 위해 어린이들이 거리에 내세워진 형국인 이런 개방을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그런 의문에 그는 다만 『만족할만큼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부족한 자본·기술에 시달려 국가발전상태가 만족할만하지는 못하다고 짧게 대답했다. 한자문화의 영향속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베트남은 같은 유교권문화다.그러므로 여성의 의식에 남아 있는 남성우월의 잔재가 여성의 사회진출을 저해하지는 않느냐는 물음도 짧게 답했다.『아직도 봉건잔재가 남아서 여성의 사회진출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고. 탁월한 기지로 적당히 섞는 농담과 재치가 놀랍다.월남의 여성은 매우 아름다운데 그 비결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월남여성이 특별히 예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면서 『먼데 여자가 예뻐 보이는 것은 모든 남자의 공통인 것같다』고 말했다.미소를 띤 채 조용한 음성으로 말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매혹을 느끼기에 충분했다.키신저에 대해서는 『그는 아주 인텔리전스하고 식견도 훌륭한 인품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다만 그는 잘못된 정책을 계속 옹호해야 하는 입장이었던 것이 불행이었다』고 말했다.어떤 질문에나 간단하고 명료하게 대답하는 솜씨와 여러 질문을 동시에 듣고도 메모없이 빠뜨리지 않는 총기가 7순을 의심하게 한다.깊은 인상을 주는 우리시대의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 1백년 한국교회사 산증인 노진현목사/회고록 「진실과 증언」출간

    ◎59년 장로교단 분열 원인 등 밝혀 1백년 한국교회사의 산증인 노진현목사(92·부산 새중앙교회 원로목사)가 최근 「진실과 증언」(도서출판 하나)이라는 회고록을 출판했다. 노목사는 한경직목사와 함께 한국교회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으나 목회활동을 일본과 부산지역에서만해 전국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않았다. 1904년 부산 구포에서 출생한 노목사는 소년시절 주기철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34년 일본 고베중앙신학교를 졸업한뒤 교토에서 한국인 목사로 지내다가 45년 귀국했다. 노목사는 부산 YMCA초대총무로 취임,교회청장년 지도에 힘썼고 부산 대정동에 있던 일본 감리교회를 인수,부산중앙교회를 설립,평생을 목회에 헌신했다. 노목사는 이 회고록에서 지난 59년 제44차 예장 총회에서 장로교단이 합동과 통합으로 분열된 원인은 신학적견해차이와 합동신학교 박형룡박사의 「신학기금유용」사건 으로 알려져왔으나 사실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복음주의운동의 대립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신학기금 유용사건은 신학교 총무로 있던 사람이 공금 3천만원을 교제비로 사용 한 것을 당시 교장인 박형룡박사가 도의적인 책임을 진 것으로 교단 분열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노목사는 일평생을 주기철목사의 순교정신과 칼뱅의 개혁주의사상으로 살아오면서 개혁주의 신앙으로 교권주의 추방에 일생을 바쳐왔다. 대학생 선교회대표 김준곤목사는 서평을 통해 노목사의 일생을 한경직목사와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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