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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학처장들이 밝히는 출제방향

    대학들은 교육부의 ‘3불’(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본고사 금지) 정책 틀 안에서 2008학년도까지 점진적으로 다양한 전형을 개발해 변별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대는 이공계 논술과 통합교과형 논술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종섭 입학관리본부장은 “특히 정시모집은 2008학년도부터 수능시험을 자격고사화하면서 논술·면접 비중이 현재 20%에서 최대 60%까지 늘어날 것”이라면서 “현재 논술 없이 심층면접만 보는 정시 자연계의 경우 심층면접 성격을 띤 논술고사를 신설해 교과능력을 측정하고, 인문계는 기존 언어논술에 심층면접 성격을 추가하되 면접의 비중은 다소 약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또 “수시모집 특기자전형은 당초 취지에 따라 사실상 본고사 수준의 심층면접을 유지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정시모집에서는 교과서를 중심으로 응용력을 측정하는 유형을 연구 중이며 심층면접을 그대로 논술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는 면접·구술시험을 강화하기로 했고, 논술 강화는 검토 중이다. 박진배 입학처장은 “현재 인성면접 성격이 강한 면접·구술시험을 2006학년도 수시모집부터 전공 적성 및 이해도 측정 쪽으로 강화할 것”이라면서 “2008년 이후에는 영어혼합형과 수리논술 도입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논술시험이 ‘사실상 본고사’였다는 지적을 받은 고려대는 일단 고난이도 통합교과형 논술 형태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김인묵 입학처장은 “현재 수시에서 70%에 이르는 논술 비중이 장기적으로 정시에서도 강화될 것”이라면서 “본고사형 논술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당혹스럽지 않도록 수정·보완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서강대는 영어혼합형 논술을 올해부터 인문사회·경제경영·이공자연계로 세분화해 출제한다. 김영수 입학처장은 “2008학년도 이후에는 일부러 비중을 높이지 않아도 논술·면접이 자연스럽게 당락의 열쇠가 될 것”이라면서 “구술·면접에서 실시하고 있는 고난이도 통합교과 문제를 논술에 직접 적용할 계획은 일단 없고, 심층면접 형태는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6학년도부터 수시모집에도 논술고사를 도입하는 이화여대는 지난 14일 모의고사를 실시해 윤곽을 제시했다. 국문·영문·표 등 다양한 제시문을 주고 이해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언어논술, 주어진 자료를 수치적으로 해석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도록 하는 수리논술을 계열별로 출제했다. 박동숙 입학처장은 “고교 범위를 넘지 않으면서도 변별력있는 논술·구술 문제를 내기 위해 지난해부터 연구팀을 구성하고 표본테스트도 실시하고 있다.”면서 “2008학년도에도 언어·수리논술 중심의 틀은 유지하고 수능 자격고사화는 아직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외대는 올해부터 수시모집에 ‘적성논술’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논술을 도입한다. 김종덕 입학처장은 “영어지문을 읽고 기술하는 기존 논술형식을 벗어나 지원계열별로 심화된 논술문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남벌’ 만화가 이현세씨 명예 독도 경비대장에

    인기만화가 이현세씨를 대장으로 민간인들로 구성된 명예 독도경비대가 창설된다. 경북지방경찰청은 17일 독도 영토주권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새달 중 명예독도경비대를 창설키로 했다고 밝혔다. 명예 독도경비대원은 인터넷을 통해 모집하며 대원수는 무제한이다. 경찰은 6월10일 명예 독도경비대 창설식을 갖고 독도 방문도 추진할 예정이다. 명예독도경비대장은 인기 만화가 이현세씨가 내정됐다. 경찰은 이씨의 사전 승낙을 받은 상태이며, 창설식때 임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씨는 지난 99년 경찰 캐릭터 ‘포돌이’와 ‘포순이’를 도안하며 경찰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대표작 중 하나인 ‘남벌’에서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역사교과서 정정, 한·일조약 폐기, 정신대 피해보상, 일본이 수탈한 한국 문화재 반환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씨줄날줄] ‘5·18’의 이름/이용원 논설위원

    역사적 사건에 붙이는 이름에는 그 사건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시대상황에 따라, 역사학자의 사관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특히 근현대사의 굴곡이 심했고 이념적 편차가 여전히 잠복한 우리사회에서는 그동안 역사용어의 교체가 잦았다. 예컨대 1894년 전봉준 주도로 농민들이 봉기한 사건에 대해 현재 학계에서는 대체로 ‘동학농민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1960년대 국정교과서까지는 ‘동학란’으로 부르다 70년대 들어 ‘동학혁명’으로 잠깐 표기되더니, 신군부가 들어선 80년대에는 ‘동학운동’으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지난해 교육부가 교과서 편수용어를 정리하면서는, 학계의 의견이 갈려 있다는 이유로 기존의 ‘동학농민운동’으로 확정했다. 1980년 5월 광주·전남 일대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도 제 이름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폭도들이 무장해 난동을 부렸다는 신군부의 발표에 따라 한동안 ‘폭동’으로 취급됐고 명칭은 ‘광주사태’였다. 그러나 사회 민주화에 힘입어 1988년 정부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다. 문민정부 때인 1995년에는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피해자 명예회복과 보상, 신군부 세력에 대한 법적 심판이 가능해졌다. 이후 ‘5·18민주화운동’이 공식 용어로 자리잡았지만 5·18 관련단체와 광주·전남 주민들은 아직도 ‘5·18민중항쟁’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기층민중이 5·18을 주도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긴 79년 ‘10·26사태’ 직전에 일어난 ‘부마항쟁’과 87년의 ‘6월 민주항쟁’에 비하면 그 중심에 있는 5·18을 민주화운동보다 항쟁으로 부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5·18에 관한 역사적 평가가 미진하다는 점은 최근 서울역 앞에 세운 기념탑에 ‘경축’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을 두고 벌어진 논란에서도 다시 한번 느꼈다. 열린우리당의 비난과는 달리 이 일이 서울시가 책임질 일이 아님은 밝혀졌지만 ‘경축’이라는 표현은 적합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현충일을 ‘경축’하지 않는 것처럼,5·18이 이제 역사의 영역에 자리잡았다 쳐도 경축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논술이 술술] 시사키워드/과거사 청산

    [논술이 술술] 시사키워드/과거사 청산

    이른바 ‘과거사법’으로 불리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안’이 지난 3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과거사법은 일제 강점기 이후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주요 과거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안이다.4대 개혁법안의 하나로 지난해말 타결 직전까기 갔다가 조사범위와 조사위원회 구성, 조사위원 자격조건 등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는 바람에 국회 통과가 미루어져 오다 극적인 타결을 보게 된 것이다. 이 법이 암울했던 과거의 의혹들을 풀어줄 수 있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권위주의 정권 때 국민들을 탄압했던 인권침해 사건들의 진상이 규명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이 여야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반쪽자리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인혁당 사건 등 중요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없는 법이라며 발효도 되기전에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사법의 내용 과거사법이 규정하고 있는 진실규명의 범위는 다음과 같다.▲일제 강점기 또는 그 직전의 항일독립운동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국력을 신장시키는 등의 해외동포사 ▲광복 이후 한국전쟁 전후의 불법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광복 이후의 헌정질서 파괴행위나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의혹 사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폭력·학살·의문사 ▲위원회가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 ▲진실규명 범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도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하되, 위원회가 의결한 재심의 사유가 있는 사건 등이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해 말 통과된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에 따른 친일진상조사위 활동과 국가정보원 등이 자체적으로 진행중인 진실규명위원회 활동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번에 국회에서 과거사법이 통과됨으로써 ‘올바른 과거사 되찾기’가 궤도에 오르는 셈이다. 하지만, 얼핏 조사 대상이 광범위해 보여도 여야의 생각이 달라 대상 선정을 놓고 대립하고 다투는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 과정에서 좌우 대립 또는 색깔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여당은 좌익의 독립운동에 대한 재조명과 발굴, 김구 선생 암살사건, 장준하 선생 의문사, 유서대필 등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주장하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김신조 간첩 사건이나 이승복 어린이 사건, 이한영 피살사건 등을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국가정보원과 경찰, 검찰 등 국가기관의 과거사건 조사활동과 중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뒷탈 많은 과거사법 특히 여당과 민주노동당의 일부 의원들은 이 법안이 지도부의 막판 타협으로 ‘누더기 법안’이 되었다고 비판하고 제정 철회, 또는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부당한 인권 침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다는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경우는 조사대상에서 제외하되, 조사위원회가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때에만 재조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규정이다. 민·형사소송법의 재심 조건이 매우 엄격해 사실상 확정판결이 난 사건은 재조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혁당 사건이나 5·18 민주항쟁 등은 재조사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또 조사 범위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 등’을 포함한 조항은 국가보안법이 애매한 규정으로 민주화운동가를 탄압했던 것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위증을 검증하고 처벌할 제도적 장치인 청문회와 진상규명을 위해 필수적인 압수·수색 규정이 빠진 점, 위원 자격을 변호사·공무원·교수·성직자로 못을 박은 점, 교수의 경우 ‘전임 10년 이상’이라고 제한해 특별법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교수 대부분이 배제된 점 등도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강경파 의원들은 이에 따라 이번 법이 ‘당리당략의 산물’‘밀실 논의로 만든 법’‘민주인사를 부관참시하려는 입법’이라고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실제로 표결에서도 여당 의원 122명 중 59명만이 찬성한 반면, 한나라당은 109명 참석에 92명이 찬성 표를 던지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여당 지도부들 사이에서도 찬반표가 엇갈리는 등 여당의 당론이 분열됐다. ●과거사 청산 어떻게 볼 것인가 원점으로 돌아가서 과거사 청산은 왜 필요한가.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서는 공공질서를 올바르게 작동시킬 수 없다. 역사는 한번 묻어버리면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을 밝히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과거를 밝히는 것은 미래를 위한 역사 바로세우기인 것이다. 일본의 과거사 망언과 교과서 왜곡을 볼 때 과거를 올바로 정립하지 않으면 현재와 미래가 큰 제약을 받는다. 잘못된 과거를 덮어두는 사회는 정의가 없는 사회로서 구성원 통합이 어려워진다. 또 역사적 책임을 물음으로써 사회적 규범을 확립하고 재발을 방지한다. 가해자의 책임을 밝혀 침해받은 인권을 회복하고 피해자와의 진정한 화해를 유도하는 것도 목적이다. 그러나 조사활동을 하는 동안 우리 사회가 과거사를 놓고 갈등을 겪고 대립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 연연함으로써 정치적 공방을 확대시키는 것의 폐해 또한 분명하다. 실제 과거청산이 독재세력에 의한 반대파의 숙청 수단으로 쓰였던 예도 적지 않았다. 과거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시각을 국민들이 갖게 된다는 점, 초법적인 여론재판을 부른다는 점도 과거청산 작업이 초래할 수 있는 폐단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이같은 폐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과거의 진실을 밝히려는 신념 아래 과거사법을 제대로 운용해야 한다. 당리당략의 도구로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서는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국민을 통합하기보다는 분열을 조장하고, 과거를 청산하기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발전을 저해할 뿐이다. 손성진 기자 sonsj@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지난 3월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강남타워(옛 LG강남타워)에서 열린 GS그룹 ‘CI 및 경영이념 선포식’. “지난 반세기 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GS가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보니 남다른 감회로 가슴이 뿌듯합니다.” 차분히 축사를 읽어가는 구본무(60) LG 회장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조부(고 구인회 창업주)때부터 계속돼 온 허씨와의 57년간(47년 락희화학 설립 기준)의 ‘동거’를 당대에서 마무리짓는 순간이었다. 사돈이자 ‘동반자’였던 GS그룹 허창수(57) 회장과 임직원 300여명은 축사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구 회장을 기립 박수로 환송했다. 행사장에 울려퍼진 ‘사랑해요 LG’는 앞으로도 두 그룹이 여전히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구 회장은 이에 앞서 3월14일 ‘당숙’인 구자홍(59) 회장·구자열(52) 부회장이 이끄는 LS그룹 출범식에도 참석, 새로운 길을 떠나는 집안 어른들을 축하했다. 연이어 열린 GS·LS그룹의 출범은 LG의 역사상 가장 큰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동업으로 일궈 합작으로 키웠다.’는 LG의 사사가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새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GS의 분리로 자산이 지난해 61조 6000억원에서 50조 8800억원으로 줄어든 LG는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기준 재계순위에서 현대자동차그룹(56조 400억원)에 2위(한전 제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1974년과 1980년에는 삼성과 현대를 제치고 재계 1위까지 올랐던 LG그룹으로서는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다. 조부때부터 늘 확장일로를 걷던 사업을 ‘정리’한 구 회장은 LG의 비전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졌던 종합그룹에서 전자·화학중심의 ‘글로벌 리딩그룹’으로 재확립했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여건임에도 올해 경영목표를 매출 94조원, 경상이익 4조 3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15%,26%나 높게 잡은데서 ‘제3의 창업’을 향한 LG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부친이 준 자금으로 사업 시작 재계3위 LG그룹의 역사는 1947년 락희화학(현 LG화학)의 설립에서 시작되지만 그 기원은 1931년 7월 경남 진주시 진주식산은행 건너편 2층 건물에서 시작한 ‘구인회 상점’이 출발이다. 구인회 회장은 1907년 8월28일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홍문관 교리를 지낸 할아버지 만회 구연호 공의 외아들 춘강 재서 공과 진양 하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921년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해 잠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과는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축구로 교유관계를 쌓았다고 한다. 구 회장은 20세때 서울 중앙고보 2년을 마치고 귀향, 사업에 뜻을 보였는데 엄격한 유교집안의 장손이 장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조부와 부친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결국 장손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24세에 이미 3남 1녀와 아래로 다섯 동생을 둔 집안의 가장이었던 구 회장은 아버지가 건네 준 2000원과 첫째 동생 철회씨의 사업자금 1800원을 더해 자본금 3800원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7년 뒤인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시작한 것에 비하면 출발은 일렀지만 규모는 작았던 셈이다. 구 회장의 첫 사업은 ‘실패’였다. 사업 첫 해 무려 500원의 손실을 본 것이다. 이듬해 고향마을의 땅을 담보로 8000원을 빌린 구 회장은 새로운 각오로 사업을 재개했지만 그 해 장마로 포목이 물에 잠기고 만다. 이후 사업이 제 자리를 잡아 가는 듯했지만 또다시 1936년 대홍수로 가게가 떠내려 가고 말았다. 첫 시련은 가혹했지만 구 회장은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장마가 든 해에는 풍년이 들어 살기가 좋아질 것이다.”는 신념을 갖고 주변 사람에게 다시 돈을 빌려 포목사업을 벌였다. 구 회장의 예측대로 그해 풍년이 들어 결혼수요가 폭증하자 포목사업도 번창하기 시작했고 구 회장의 사업인생도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허씨와의 인연 LG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구씨-허씨 동업을 빼놓을 수 없다. 두 가문의 인연은 구인회 회장의 8대조인 구반공 시절부터 시작됐다. 구반공의 부친이 현풍현감으로 재임할 때 진주의 만석꾼인 허씨 집안으로 장가를 왔고 이후 승산마을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구인회 회장 역시 열네살 나던 해인 1921년 담 하나 사이 이웃인 허만식씨의 장녀 을수씨와 혼례를 올렸다. 조부 만회공의 셋째 딸이 허만식씨의 둘째아들 인구씨에게 출가했지만 신랑이 요절하는 바람에 이어지지 못했던 두 집안이 다시 한번 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후 구씨와 허씨는 무려 8건의 겹사돈으로 맺어지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다. 구씨와 허씨는 1946년 1월 구 회장 장인(허만식씨)의 재종인 허만정씨가 셋째 아들 준구(당시 24세)를 데리고 당시 구회장이 살던 부산으로 찾아오면서 사돈에서 동업자 관계로 발전한다. 허만정씨는 사업자금을 내놓으며 아들의 경영수업을 부탁했고 구 회장은 동경 유학생 출신의 준구씨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준구씨는 첫째 동생 철회씨의 맏사위였으므로 이미 남도 아니었다. 잘 알려진 대로 고 허준구씨는 LG건설·LG전선 회장 및 그룹 부회장을 지내며 LG의 역사와 함께했고 허창수 현 GS그룹 회장, 허정수(55) GS네오텍(전 LG기공) 사장, 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 허명수(50) GS건설 부사장, 허태수(48) GS홈쇼핑 부사장 등 그의 아들들도 LG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LG의 초기 역사에는 허준구씨말고도 다른 허씨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준구씨의 친형인 고 허학구씨는 락희화학 전무로 일하면서 구자경 당시 상무와 함께 부산 범일동 공장에서 먹고 자며 밤낮으로 일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또 락희화학 서울사무소를 지원하기 위해 허준구씨의 동생으로 당시 ‘조선통운’에 다니던 허신구씨를 끌어들였다. 허신구씨는 락희유지 상무시절인 62년 동남아출장에서 ‘합성세제’를 처음보고 구인회 회장에게 세제 사업 진출을 건의,66년 ‘하이타이’가 출범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허신구씨는 금성사 사장, 그룹 부회장, 럭키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했고 장남 허경수씨는 87년 코스모그룹을 창립하며 독자경영의 길을 걷고 있다. 허만정씨는 8형제를 뒀는데 학구-준구-신구씨는 LG에 발을 담은 반면 장남 고 허정구씨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창업동지’로 다른 길을 걸었다. 허정구씨의 2남이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다. 허신구씨의 차남 허연수씨도 GS리테일(전 LG유통) 상무로 일하고 있고 허만정씨의 막내인 허승조씨는 GS리테일 사장을 맡고 있다. ●가족들의 맹활약 LG는 그동안 숱한 계열분리를 통해 친족간 재산분배를 마무리지었다. 현재 LG에 남아있는 ‘오너일가’는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몇년전만 해도 주요 계열사 사장과 임원 상당수가 구씨, 허씨일 정도로 가족경영이 활발했다. 오너일가들이 지나치게 많아 그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만 LG의 창업과정에서 이들의 공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인회 회장은 첫째 동생 철회씨와 동업으로 ‘구인회상점’을 창업했다. 철회씨는 형과 함께 사업을 일구며 락희화학, 금성사 등의 사장을 맡았다. 둘째 아우 정회씨도 경성전기학교를 마치고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정회씨는 45년 구인회 회장이 ‘조선흥업사’라는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 화장품 기술자 김준환씨를 영입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처음 만든 화장품 이름을 ‘럭키(LUCKY)’라고 지어 ‘럭키그룹’의 기반을 닦은 것도 정회씨였다. 셋째 아우 태회씨는 서울대 문리대에 다니면서 창신동 집에서 ‘화장품연구’에 몰입,‘투명크림’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50년 서울대를 졸업하자마자 락희화학의 전무로 입사,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같은 해 장조카 구자경 명예회장도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 교사 생활을 접고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다. 태회씨는 이후 안 깨지는 크림통 뚜껑에 목말라하던 구인회 회장을 도와 LG가 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53년 락희화학이 서울에 사무소를 낼 때 기반을 닦은 것도 태회씨였다. 태회씨는 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당후보로 고향인 진양에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역시 서울대 문리대를 나온 넷째 아우 평회씨는 락희화학 지배인 시절인 1954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청년상공인회의(JCI)에 참석한 뒤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콜게이트사’ 주변에 머물며 치약 제조기법을 알아내는 공을 세웠다. 공전의 히트를 친 ‘훌라후프’도 평회씨의 제안으로 들여왔다.5·16 쿠데타 직후인 61년 ‘부정축재 기업인’ 처벌때는 형을 대신해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이창희씨가 아버지와 형(맹희씨)을 대신해 처벌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5년 연속 세계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LG전자의 에어컨 사업은 구자경 명예회장이 락희화학 전무시절 “고층빌딩이 계속 늘고 있어 에어컨이 앞으로 필요해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 시작했다.67년 9월 미국 GE사와 제휴를 통해 국내 첫 에어컨 생산에 들어갔다. 미국 워시본대와 뉴욕시립대 대학원을 나온 구자두씨는 금성사 관리부장 시절인 62년 동남아 통상사절단을 수행하며 홍콩의 바노사로부터 라디오 200대를 주문 받아오는 등 LG의 첫 수출 물꼬를 트는데 기여했다. 럭키치약 광고판을 부산 연지동 공장에 세우는 등 본격적인 광고개념을 도입한 것도 자두씨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6남4녀의 ‘방대한 혼맥’ 구인회 회장은 허을수씨와 사이에 6남4녀를 뒀다. 자손이 워낙 많다 보니 LG가를 ‘재벌 혼맥의 핵’이라고 부르지만 권력 핵심이나 정계쪽과는 인연이 없어 세칭 ‘정략결혼’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다.LG가는 특히 아들이 많은데 회(會)자 돌림만 6명, 자(滋)자 돌림은 23명에 달한다. 본(本)자 돌림은 구인회 회장 직계로만 11명이다. 장녀 양세(83)씨는 15세때 경남 남해군수를 지낸 박해주씨의 아들로 진주고보 학생이던 박진동씨에게 출가했다. 박씨는 광복후 좌우익투쟁으로 학병동맹본부 피습사건으로 사망했다. 장남 구자경(80) 명예회장은 17세때인 42년 5월 고향인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과 가까운 대곡면 단목리의 대지주 하순봉씨의 장녀 정임(81)씨와 혼례를 올렸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진주공립중 4학년이었고 한살 위인 신부는 한문에 뛰어난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다. 구 명예회장 부부는 올해로 63년째 해로하고 있다. 2남 자승(74년 작고)씨는 56년 부산에서 금성방직 전무로 있던 고 홍재선씨의 딸 승해(71)씨와 선을 본 뒤 4개월만에 결혼했다. 홍씨는 훗날 전경련 회장과 쌍용양회 회장을 지냈다. 구 회장과 홍재선씨와의 우애는 유명한데 홍씨는 훗날 구 회장이 한때 자신을 ‘바람둥이’로 오해해 혼사가 어려울 뻔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홍씨가 평소 안면이 있던 다방 마담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고지식한’ 구 회장이 오해를 한 것이다. 3남 구자학(75) 아워홈 회장은 고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녀 숙희(70)씨와 57년 결혼했다. 구 회장은 64년 제일제당(현 CJ) 기획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한 뒤 동양TV방송 이사, 호텔신라 대표이사,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을 거쳐 본가로 돌아왔다. 4남 구자두(72) LG벤처투자 회장은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관과 국방부 차관을 지낸 고 이흥배씨의 딸 의숙(67)씨와 결혼했다. 이 혼사는 이미 사돈을 맺었던 홍재선씨의 중매로 이뤄졌다. 이씨는 64년 동양TV 사장으로 일하다 삼성과의 동업파기로 물러났고 이후 국제신보(현 국제신문) 사장에 취임했다. 삼성과 LG는 동양TV사장에 이병철 회장의 사돈인 홍진기씨와 구인회 회장의 사돈인 이흥배씨를 나란히 앉혀 ‘공동경영’을 시도했지만 결국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흥배씨의 장남인 이희종(72)씨도 LG산전(현 LS산전) 사장과 부회장을 지낼 정도로 LG와 인연이 깊었다. 5남 구자일(70) 일양화학 회장은 일찌감치 독립했는데 부인 고김청자(66)씨는 사업가인 김진수씨의 딸이다. 차녀 자혜(68)씨는 대림산업 이규덕 창업주의 장남 고 이재준 대림그룹 회장의 막내 아우인 이재연(74) 아시안스타 회장에게 시집갔다. 이재연씨는 럭키화학 상무로 LG에 입사한 뒤 희성산업 사장, 금성통신 사장, 금성사 사장을 거쳐 LG카드 부회장을 지냈다. 장남에게 외식업을 해보라고 권유, 국내에 패밀리 레스토랑 ‘TGIF’를 처음 들여왔다. 3녀 자영(66)씨는 제일은행장을 지낸 이보형씨의 아들 재원(68)씨와 결혼했다. 구 회장 막내 처남 허윤구씨의 아들인 허남목씨 소개로 만난 뒤 20일만에 ‘초스피드’로 결혼했다. 이씨는 자신 소유의 일성제지 회장을 지냈지만 일성제지는 98년 신호제지에 합병됐다.4녀 순자(62)씨는 류헌열 전 대전지법원장 아들이자 서울지검 검사였던 류지민씨에게 시집갔다. 이 혼례도 사돈인 이흥배씨가 주선했는데 구씨의 혼사는 이처럼 사돈이 연결해 준 경우가 많다. 구 회장은 막내 사위를 무척 아껴 골프장에 자주 데리고 다니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았지만 류씨는 43세때 요절했다. 유일하게 구 회장 타계후 결혼한 6남 자극(59)씨는 이화여대 교수인 조필대 교수의 딸 아란(54)씨와 결혼했다. ●창업주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LG가문의 혼맥이 늘 주목받는 것은 구인회 회장 형제들의 혼사가 본가 못지 않게 화려하기 때문이다. 첫째 동생 철회(75년 작고)씨는 부인 안남이(작고)씨와 4남 4녀를 뒀는데 딸들의 결혼이 눈에 띈다. 장녀 위숙(77)씨는 허만정씨의 3남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에게 출가했다.2녀 영희(74)씨는 의학박사인 고 이호덕씨에게,3녀 자애(66)씨 역시 의사인 정승화(71·전 현대피부과원장)씨에게 시집갔다.4녀 선희(61)씨는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의 장남 박용훈(6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에게 시집갔다. 박우병씨는 박두병 전 두산 회장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원(70) 넥스원퓨처 회장은 류영희(63)씨와, 차남인 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은 이갑희(62)씨 등 평범한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3남인 구자훈(58) LG화재 회장,4남인 자준(55) LG화재 부회장의 부인인 임방인(61), 이영희(53)씨도 재계나 정·관계 집안은 아니다. 다만 구자훈 회장의 3녀 문정(31)씨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35)씨에게 시집가 재계 명문가의 위상을 이어갔다. 둘째 동생 정회(78년 작고)씨는 부인 김증문(작고)씨 사이에 5남 2녀를 뒀다. LG유통 사장을 지낸 장남 자윤(작고)씨는 정정자(62)씨와 결혼했다.2남 형우(62) 전 부민상호저축은행 사장은 전 대한석탄공사 전무였던 이길주씨의 딸 화숙(57)씨와 결혼했고 장녀 숙희(59)씨는 이구종 전 대한교과서 대표의 아들 규영(62)씨와,3남 자헌(작고)씨는 조종렬 한일수산 회장의 딸 금숙(55)씨와 결혼했다.LG MMA 사장을 지낸 4남 자섭(55)씨는 최근 LCD 회로부품업체인 한국SMT를 갖고 LG에서 독립했다. 부인은 심영숙(51)씨. 박정화(50)씨와 결혼한 5남 자민(50)씨는 지난해 말 LG전자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3개월도 안돼 회사를 그만두고 형 회사인 한국SMT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2녀 명희(52)씨의 남편은 하영준(56) 전 세원기업 사장이다. 셋째 동생으로 국회예결위원장·부의장을 지낸 태회(82)씨는 최무(83)씨와 사이에 4남 2녀를 뒀다. 장녀 근희(62)씨는 이계순 전 농림장관의 아들 준범(64)씨와 혼인했다. 장남 구자홍(59) LS그룹 회장은 지순혜(60)씨와 결혼했는데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애결혼에 성공한 ‘러브스토리’를 갖고 있다. 차남 구자엽(55) 가온전선 부회장은 김태향(55)씨와 결혼했다. 구 부회장의 사위가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인 정일선(35) BNG스틸 사장이다.3남인 구자명(53) LS니꼬동제련 부회장의 부인은 조영식 경희대 이사장의 딸 미연(53)씨다.4남 구자철(50) 한성 회장의 외동딸 원희(25)씨는 ㈜두산 박용만(50)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결혼이 예정돼 있다. 구씨가문으로서는 두산가로 출가한 자혜씨에 이은 두번째 두산과의 혼사다.2녀 혜정(57)씨는 이인정(60) 태인 회장과 결혼했다. 넷째 평회(79)씨는 부산 피란시절인 52년 금릉원예조합 문흥린 이사장의 딸 문남(75)씨와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장남인 구자열(52) LS전선 부회장은 육군 중장으로 청와대 경호실차장과 성업공사 사장, 전쟁기념관장을 역임한 고 이재전씨의 딸 현주(48)씨와 결혼했다. 차남인 구자용(50) E1사장은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 딸 현주(46)씨와 결혼했다.3남 구자균(48) LS산전 부사장은 독고진(46)씨와, 막내 혜원(46)씨는 주진규(49)씨와 결혼했다. 막내동생 두회(77)씨는 유한선(72)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은정(4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 중민(48) 전 국민생명보험 부회장과 결혼했다. 김택수씨는 김한수 한일그룹 창업주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딸인 인영(37)씨와, 막내 재희(3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 동범(37)씨와 결혼했다. ●점점 ‘소박’해지는 혼맥 구자경 명예회장은 선대 회장 못지않은 4남 2녀를 낳아 ‘다산’의 전통을 이었다. 장남인 구본무(60) 회장은 미국 애슐랜드대 유학을 마친 72년 김영식(53)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충북 괴산의 ‘수재’로 불린 김태동 전 보사부장관의 딸. 장녀 연경(27)씨는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유학중이고 막내 연수(9)양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딸만 둘인 구 회장은 지난해 바로 아랫동생인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광모(27)씨를 양자로 영입해 ‘대’를 잇고 있다. 장녀 훤미(58)씨는 구 회장 작고 직후인 70년 4월 김용관 전 대한보증보험 사장의 4남 화중(작고)씨와 결혼했다. 훤미씨의 딸인 김선혜(34)씨는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37) 전무와 결혼해 대림가와 대를 이은 혼인관계를 이어갔다. 김용관씨는 경방 회장과 전경련 회장을 지낸 고 김용완 회장의 동생이다. 화중씨는 “딸은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지만 사돈이나 사위는 아들에 준하는 대접을 해준다.”는 LG의 ‘가풍’대로 계열사였던 희성금속 사장을 지냈다. 95년 일찌감치 독립한 2남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은 차경숙씨와 결혼했다. 3남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은 숱한 계열분리 뒤에도 여전히 LG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오너 경영인’이다. 사업가 김광일씨의 딸인 은미(48)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2녀 미정(50)씨는 대한펄프 창업주인 고 최화식 회장의 아들인 최병민(53) 대한펄프 회장과 결혼했다. 4남 구본식(47) 희성전자 사장은 조경아(45)씨와 결혼,1남 2녀를 뒀다. ●LG를 떠나는 滋자 돌림 구자경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 자승(작고)씨는 홍승해씨와 3남 1녀를 뒀다. 장남 본걸(48)씨는 LG상사 대주주이자 부사장을 맡고 있고 본순(46), 본진(41)씨도 LG상사 상무로 일하고 있다.LG상사는 LG의 다른 자회사와 달리 ㈜LG가 대주주가 아니어서 자승씨 집안 몫으로 남겨진 것으로 알려졌다.2000년 아워홈을 갖고 독립한 둘째 동생 자학씨는 이숙희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남 본성(48)씨는 심재석 전 장은할부 부회장의 딸 윤보(44)씨와 결혼했다. 본성씨는 처가인 삼성에서 사장까지 지낸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2000년 삼성캐피탈 부장으로 입사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보까지 지냈다. 장녀 미현(45)씨는 고 이문호 서울대의대 교수의 아들인 이영렬(50) 한양대의대 교수와 결혼했다.2녀 명진(41)씨는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의 4남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셋째 동생 자두씨 역시 2000년 LG벤처투자를 갖고 분리했다. 이의숙씨와 사이에 2남 2녀를 뒀는데 장녀 혜란(45)씨는 심창유 청주사대 학장의 아들 현주(50)씨와,2녀 혜선(43)씨는 장홍식 전 극동정유 사장의 아들 원우(44)씨와 결혼했다.LG벤처투자 사장인 장남 본천(41)씨와 차남 본완(39)씨는 각각 22.24%의 지분을 갖고 있다. 넷째 동생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은 처음부터 LG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독립했다. 본길(39), 은미(38)씨를 자녀로 두고 있다. 차녀 구자혜씨는 이재연 전 LG카드 부회장과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명망가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아시안스타 사장인 장남 선용(44)씨는 고 오세중 세방여행 회장의 딸 은주(40)씨와 결혼했다. 차남 지용(42)씨는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딸인 재연(38)씨와 결혼했다. 막내 구자극(59)씨는 LG상사 미주법인 회장을 그만두고 대주주로 있던 예림인터내셔널을 통해 전자코일, 변성기 등을 생산하는 이림테크를 인수(현 엑사이엔씨)한 뒤 스피커 전문업체인 모토조이, 성주음향의 중국 톈진공장 등을 인수하며 종합부품그룹을 키우고 있다. 엑사이엔씨 사장인 장남 본현(37)씨와 차남 본우(26)씨는 엑사이엔씨 지분 24%,4%를 각각 보유중이다. ukelvin@seoul.co.kr ■ 그룹 분가-지분율 따라 재산분배… ‘잡음’ 없어 LG는 1999년 LG화재를 시작으로 LG벤처투자, 아워홈,LS,GS그룹 등을 차례로 분리했다. 재산배분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예사이지만 유독 LG만은 큰 잡음없이 대규모 분가를 마무리지었다. 이는 LG가 엄격한 유교집안으로 집안 어른이 정한 기준을 자손들이 철저히 지키는데다 수십년간 그룹에서 친족들의 지분을 관리해온 덕분이다. 분가에 앞서 일부 친족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그동안 정리해 놓은 지분율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기 때문에 큰 불만을 가질 수 없는 구조다. 계열분리의 신호탄이 된 LG화재는 정부의 ‘5대 그룹 생명보험사 진출 금지’ 정책에 맞물려 분리됐다. 한때 대한생명 인수전에 뛰어들어 손해보험-생명보험을 영위하려했던 LG는 생명보험사업이 좌절되면서 LG화재를 독립시키려 했고 집안회의에서 고 구철회씨 가족들이 화재를 원해 순조롭게 분가가 이뤄졌다. LG벤처투자를 갖고 떠난 구자두씨 가족은 얼핏 ‘재산’이 너무 적어 보이지만 윗대인 구철회씨 가족에 비해 가족수가 적기 때문에 지분도 그만큼 적었다. 아워홈의 구자학씨는 한때 삼성에서 호텔신라 사장을 지내는 등 유통·서비스쪽에 관심이 많아 이견없이 분배가 이뤄졌다. 2003년 말 분리된 LS그룹은 구태회·평회·두회씨가 LG의 창업공신인데다 자녀들도 적지 않아 상황이 복잡했다. 게다가 LS전선은 허씨 가문의 고 허준구씨가 회장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허씨들이 경영을 맡아 애착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태평두씨’ 가족이 갖고 있던 지분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회사를 묶어 주면서 마무리됐다. LG그룹의 가장 큰 지각변동은 허씨들이 갖고 간 GS그룹의 분리다.GS칼텍스,GS건설,GS홈쇼핑,GS리테일을 주축으로 한 GS그룹은 자산이 18조 7200억원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창업주 형제들이나 구자경 명예회장 형제에 비해 허씨들의 재산이 지나치게 많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LG관계자는 “고 허만정씨가 처음 사업자금을 댄 이후에도 허씨들은 계속 자금을 출자했고 그 비율은 일찌감치 65대 35로 정해져 있었다.”고 밝혔다. 지분비율은 정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업을 가져갈지에 대해서는 잠시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측은 전선사업에 마음이 있었고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진 금융관련 계열사도 내심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씨측의 어른인 구자경 명예회장과 허씨측의 대표인 고 허준구 회장이 이미 수년전에 정해 놓은 ‘분리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2002년 허 회장이 타계했지만 두 집안의 자손들은 선대의 ‘약속’을 변함없이 이어갔다. ukelvin@seoul.co.kr ■ 필립스 “具·許씨 동업에 감명 LCD합작” 1999년 9월 LG전자에 16억 5000만달러를 투자하며 LCD합작사를 설립키로 한 네덜란드 필립스사의 크리스털리 전 회장은 합작파트너로 LG를 택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파트너를 찾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체크했는데 LG그룹의 구씨와 허씨가 50년 이상 동업자로서 아무런 잡음없이 경영하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LG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이 이미 13건이나 되는데 이는 LG가 양보와 타협,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업이란 것을 말해 준다.” 구본무 회장의 화답도 이에 못지않았다.“동업은 결혼과 같은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함께 사는 것처럼 동업자도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와 타협을 잃지 않아야 한다.” LG의 58년 역사에는 숱한 합작사가 등장한다. 합작사만 한때 20개에 달할 정도였다.60년대에 이미 66년 미국 칼텍스사와 합작으로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를 설립했고,68년에는 미국 콘티넨털카본사와 합작으로 한국콘티넨탈카본을 세웠다.70년에는 일본 알프스전기와 합작으로 금성알프스전자를,71년에는 일본 포스타전기와 합작으로 금성포스타를 설립했다. 독일 지멘스, 일본 후지전기와 3사 합작으로 금성통신을 설립했고 74년에는 일본 NEC와 손잡고 금성전기를 세웠다. 80년대 들어서도 합작은 계속됐는데 84년 다우코닝과 공동출자로 럭키DC실리콘을 설립했고 84년에는 제어시스템 메이커인 미국 하니웰과 공동으로 금성하니웰을 만들었다. 이후 동업관계가 끝났지만 87년 미국 EDS와 합작으로 만든 STM(현 LG CNS),96년 IBM과 맞잡은 LGIBM도 합작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남아있는 LG계열사 가운데도 합작사가 적지 않다. 히타치LG는 히타치와, LG MMA는 일본 스미토모상사와 합작한 회사다.LG텔레콤은 영국의 BT가 합작투자했고 필립스와는 LG필립스LCD에 이어 LG필립스디스플레이를 합작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오키사와 함께 루셈을 만들었고 올 상반기중으로 LG전자와 캐나다 노텔사의 합작사인 ‘LG-노텔’이 출범할 예정이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시론] 더불어 사는 역사/허동현 경희대 사학 교수

    [시론] 더불어 사는 역사/허동현 경희대 사학 교수

    아이의 이름자에 지은이의 바람이 담겨있듯, 역사용어에도 사가(史家)들의 지향이 실려 있다. 그때 거기를 산 이들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는가는 오늘 여기를 사는 이들이 바라는 내일이 어떠한지를 알려주는 시금석이다. 태평양전쟁과 대동아전쟁. 침략의 과거사를 성찰하는 이들과 분칠하는 이들이 기억하는 군국주의 일본의 모습은 너무도 다르다. 동아시아에 대한 침략을 백인종 제국주의에 맞서 황인종의 번영을 지키려던 방어 전쟁이었다고 기억한다면 앞으로도 그들은 과거의 잘못을 스스럼없이 되풀이할 터. 요즘 한참 일본의 역사왜곡을 둘러싸고 국제전과 내전의 포연이 가득한 이유는 침략의 과거사를 영광의 역사로 미화하는 교과서가 결과할 미래상에 대한 동아시아와 일본의 시민사회가 품는 우려 때문이다. 역사 기억을 둘러싼 전쟁은 더 이상 남의 집에 난 불이 아니다. 군국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시절에 대한 우리의 역사 기억도 합쳐지지 않는 평행선을 달린다. 한 세기 전 이 땅의 사람들은 국민국가의 시대를 맞아 국민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일본 제국의 식민지 국민이자 천황의 신민(臣民)으로 전락하였다.1919년 3·1운동 이후 그들은 아직 생기지 않은 나라의 모습을 놓고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민족독립운동과 민족 해방운동. 역사가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어느 쪽을 꿈꾸느냐에 따라 역사책에 다른 이름이 올라간다. 민족과 민중을 내세워 어느 쪽이 역사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 정당한가를 다툰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냉전시대의 이분법적 역사용어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다. 그시대를 산 이들의 머릿속에는 제방에 난 구멍을 고사리 손으로 막아 마을을 구한 네덜란드 소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1994년 국민교육헌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까지 이 땅의 사람들은 민족의 중흥을 위해 살아야 했다. 전체의 이름으로 낱낱의 희생을 강요하던 시절 국가가 국민을 동원하기 위해 만든 신화일 뿐 아이의 손바닥 하나로 둑에 난 구멍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나 이에 맞서 민중의 이름으로 새 세상을 꿈꾼 이들의 눈에도 개인은 비치지 않았다. 민족과 민중 같은 거대담론이 횡행할 때 개인은 없다. 그때를 산 여성들은 남성보다 큰 희생을 강요받았다. 국가권력과 가부장권 두 개의 족쇄가 여성을 속박했다. 현모양처라는 말이 웅변하듯 여성은 민족과 민중의 이름으로 남성에 봉사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라면, 오늘 우리의 지향이 썩지 않게 하는 성찰의 기억으로 역사는 쉼 없이 다시 쓰여야 한다. 자본가와 노동자, 도시민과 농민,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시민권자와 이주노동자. 생각과 지향과 이해를 달리 하는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다원화된 시민사회를 우리는 꿈꾼다. 아울러 우리에게는 남의 국민과 북의 인민으로 갈라섰던 민족이 다시 하나되는 남북통일을 위한 역사 기억의 화해도 필요하다. 남의 잘못을 나무라기 위해서는 내 결함도 살펴야 하는 법. 반면교사로서 일본의 역사 왜곡을 보면서 우리도 타자와의 공존을 위해, 저항민족주의에서 기인하는 배타성과 우월의식 같은 우리 안의 특수를 어떻게 남의 눈을 감당할 수 있는 일반적인 문제로 환원시킬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성찰해야만 함도 절감한다. 오늘은 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에 자신들이 상상하는 세상에 정당성을 주기 위해 연역적으로 만들어진 도식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타자와 더불어 살기를 이야기하는 시민의 눈으로 본 역사책이 더 없이 필요한 때이다. 허동현 경희대 사학 교수
  • 자치구 사이버스쿨 성적이 ‘쑥쑥’

    자치구 사이버스쿨 성적이 ‘쑥쑥’

    서울 각 자치구가 교육용 홈페이지를 잇따라 개설하면서 교육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섰다. 비록 기초자치단체의 고유업무는 아니지만 지역간 격차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교육서비스 격차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중랑구, 예·복습 스스로 할 수 있게 서울 중랑구는 이달부터 구청 홈페이지(jungnang.seoul.kr)에서 초·중학생을 위한 ‘중랑 사이버 스쿨’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대상은 지역내 초·중학생 5000명이다. ‘…스쿨’은 기존 학교수업의 보조수단의 하나로 온라인 교육과 오프라인의 학교교육이 서로 결합될수 있도록 기획됐다. 콘텐츠는 교과서 내용을 바탕으로 학습계획표에 따라 예습과 복습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학습을 마치면 월말·기말평가와 일기장 등을 통해 학습결과를 측정할 수 있다. 학습동기를 잃지 않도록 애니메이션과 전문 성우의 해설 등을 곁들여둔 것이 특징이다. 다음 학기나 상위학년에서 배울 내용도 미리 확인하거나 학습할 수 있도록 돼 있어 편리하다. 이뿐만 아니라 학습사전·백과, 음악감상실, 사이버 실험실, 그래픽 자료 등 학습에 도움을 주는 보조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학습계획표, 월말 평가, 일기장, 관련사이트 등 부가서비스도 제공된다. 공부하다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학습도우미’ 메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학생들의 학습참여도나 결과 등은 학부모들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통보돼 자녀들의 학습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문병권 구청장은 “원래는 지난 2월부터 서비스를 제공하려 했지만 무료로 사이트를 운영하면 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지적에 따라 관계법령을 확인하느라 제공시기가 늦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원·과외수업 등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콘텐츠 보강을 지속적으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스쿨’을 이용하려면 구 홈페이지에서 가입신청을 한 뒤 로그인하면 된다. 지속적으로 학습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 이용에 제한이 따를 수 있다.(02)490-3318. ●‘원조’은평구선 현직 교사들이 강의 인터넷을 통한 교육서비스를 처음으로 제공한 것은 2003년 은평구(구청장 노재동)가 최초다. 현재 은평구는 구청 홈페이지(eunpyeong.seoul.kr)를 통해 중·고교과정 국어·영어·수학 과목의 강의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강의는 지역내 현직 중·고교 교사들이 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약 4000명의 학생들이 사이트를 이용해 학습을 했다. 구는 2∼3개월 내에 전용사이트를 마련하고 강의과목을 확대하는 등 업그레이드에 착수할 예정이다.(02)350-3588. ●강남구, 더욱 알차게 업그레이드 강남구(구청장 권문용)는 보다 다양한 교육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구는 지난 3월부터 1만원으로 초등학교 전학년과정을 배울 수 있는 ‘e-홈스쿨’을 강남원격교육원 홈페이지(gnelc.gangnam.go.kr)에서 운영하고 있다. 또 강남구는 이밖에도 전자도서관(ebook.gangnam.go.kr), 인터넷 수능방송(edu.ingang.go.kr) 등 다양한 사이버 학습시스템을 갖춰 구민들 및 타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02)2104-1253.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입시전문가들이 공개하는 족집게 내신공략법

    내신반영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입시제도가 바뀌는 2008학년도에 대학에 들어가는 현재 고1 학생들은 내신에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중·하위권 대학 입학에는 내신성적이 중요한 전형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위권 학생들 역시 심한 경쟁 속에서 최상위 등급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벼이 여길 수 없다. 그러나 학교시험과 수능시험 준비가 다를 수는 없다. 내신을 수능, 논술·면접시험을 연계시켜 동시에 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효과적인 내신공략법을 살펴본다. 새 대입 제도에 따라 올 1학기 중간고사에서는 학교마다 같은 석차를 방지하고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고심을 거듭했다. 서술형 주관식이 강화되고 종합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는 어렵고 다양한 문항이 크게 늘었다. 암기 위주의 단편적 지식을 묻던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양상이다. 새로운 형태의 문제에 당황할 수 있으나 위기는 오히려 기회.‘내신 따로, 수능 따로’식의 공부에서 벗어나 내신과 수능·논술을 동시에 준비할 수 있는 효과적인 과목별·성적대별 공부 방법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국어-교과서 지문만은 확실하게 국어는 우선 교과서에 나오는 지문만큼은 철저히 소화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학교 시험은 수업 중 다루어진 내용을 기본으로 하는 데다 교과서만큼 엄선된 지문은 없기 때문. 창동고 송원석 교사는 “교과서에 나오는 정제된 지문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연습이 무조건 어려운 지문을 다루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면서 “이를 바탕으로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 다른 작가의 비슷한 주제의 작품 등으로 짜임새 있게 범위를 넓혀나가는 것이 요령”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가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을 공부한다면 그의 최근작 ‘그 남자네 집’을 찾아 읽어보고 비교해 보는 식이다. 특히 문학작품은 교사의 작품해설을 꼼꼼히 익혀두면 배경 지식이 넓어져 수능과 논술에 든든한 기초가 된다. 상위권이라면 여기에 주요 작가들의 경향과 평론가들의 모범적 해설을 읽고 인용해 보는 연습을 하면 논술과 구술에 큰 도움이 된다. 송 교사는 “상위권은 깊게 소화하는 습관이, 중·하위권은 다양한 글을 접해 기본적 독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수학-개념 정리가 가장 중요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념 정리’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서울사대부고 조동석 교사는 “응용문제가 어렵다고 고민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개념에 대한 이해가 약하기 때문”이라면서 “수학은 ‘개념’이라는 수학적 언어를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단어 공부하듯 철저하게 개념을 이해하고 활용하지 못하면 수학적 대화 자체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모르는 문제를 만났을 때도 관련 개념을 되새기면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틀린 문제는 모범답안을 외우려 하지 말고 풀이과정을 정확히 쓰면서 관련 개념을 정리하는 계기로 삼는다. 종로학원 평가연구실 김용근 실장은 “이런 연습을 계속하면 결국 문제해결 능력이 높아져 낯선 문제나 실생활을 응용한 수능·수리논술 문제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조 교사는 “중·하위권은 미리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이 많은데, 수능이든 내신이든 조금만 공부하면 쉽게 풀 수 있는 계산위주의 문제가 30% 정도는 나온다는 데 주목하고 필수 공식만이라도 마스터하라.”고 당부했다. ●영어-활용능력 향상에 중점 영어는 내신·수능·논술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공부할 범위가 포괄적인 과목이다. 에듀토피아중앙교육 안인숙 교육개발부장은 “나름의 단어와 문법 정리로 ‘나만의 참고서’를 만들어 외울만큼 반복적으로 공부하면서 활용해보는 연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상위권 학생이라면 영자신문 등 높은 수준의 지문으로 독해력과 어휘력을 높이는 것 뿐 아니라, 쉬운 단어를 쓰더라도 본인의 말과 글로 정확한 문장을 만들어 표현할 수 있도록 연습한다. 이런 기초가 잡히면 어휘만 바꿔가면서 어려운 문장도 척척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특히 2학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서술형 문제가 학교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평소 이렇게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면 내신과 영어논술·구술을 함께 준비할 수 있다. 독해력과 어휘력이 높아져 수능 대비는 저절로 된다. 안부장은 “하위권 학생은 교과서만이라도 철저히 이해한다는 식으로 공부하되, 기본적인 문법과 어휘는 반드시 암기하면 상당한 점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과학·사회-그림·그래프 이해 역점 과학과 사회 과목은 공통적으로 교과서에 나오는 다양한 그림, 그래프, 지도 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원고 이현준 교사는 “과학은 개념 이해가 기본인데, 예를 들어 ‘전해질’‘이온’ 등을 공부할 때 그 개념을 정확히 익혀야 실생활을 응용한 문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는다.”면서 “이를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과 연관해 이해하는 습관을 들여라.”고 조언했다. 상위권이라면 ‘일정성분비의 법칙’과 같은 법칙이나 이론을 개념, 관련실험, 관련법칙, 생활속의 예 등으로 정리하고 말·글로 설명하는 연습을 하면 논술형 본고사도 두려울 것이 없다. 사회 과목은 말 그대로 사회의 다양한 현상과 연계시킬 필요가 있다. 방산고 김기철 교사는 “족집게식 암기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잘라말하며 “예를 들어 러·일전쟁을 공부한다면 최근 독도 문제와 연관시키는 식으로 교과서의 내용을 요약정리하면서 시사적·철학적 주제와 접근시키는 연습을 하면 수능과 논술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 경기고 민병관 교감은 “학원 등에서 주입식으로 수업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학교공부를 토대로 문제의식을 갖고 찾아나가면 그 자체가 수능 공부”라면서 “내신 강화를 두고 혼란도 많았지만 교사와 학생 모두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면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박현채선생 누구인가

    1934년생인 박현채 선생의 인생을 결정지은 것은 10살 남짓한 나이에 겪은 해방정국이었다. 중학생 때 이미 마르크스 이론서를 섭렵하고 16살의 나이로 빨치산 활동에 뛰어들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위대한 전사 조원제’가 바로 박현채다. 조정래는 ‘조원제’를 두고 ‘내가 쓴 박현채 전기’라고 표현했다. 그 뒤 서울대를 거쳐 농업문제 연구가로 이름을 떨쳤다. 박정희가 쿠데타 직후 국내자본을 동원해 경제개발을 계획했을 때 박현채가 속한 ‘국민경제연구회’는 요즘 말로 ‘싱크탱크’였다. 그러나 박정희가 미국의 압력으로 한·일외교정상화를 통한 외자 도입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관계가 헝클어졌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6·3사태가 발생하자 중앙정보부는 1964년 1차 인혁당사건을 ‘창조’해냈다. 공안검사들마저 기소를 거부했던 이 사건의 여파는 컸다. 빨치산 경력에 인혁당 사건까지 겹쳐 그는 1989년 조선대 교수직을 얻을 때까지 재야 ‘경제평론가’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영향력은 강단학자보다 더 컸다.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내놓은 ‘대중경제론’이 사실상 박현채 작품이라고 볼 정도였다.78년 펴낸 ‘민족경제론’은 ‘전환시대의 논리’와 함께 대학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힌다. 민족경제론은 국민경제 단위 내에는 민족적 이익에 보탬이 되는 민족자본과 해를 끼치는 매판·외국자본이 공존한다고 보는 이론이다.85년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현대 한국사회의 성격과 발전단계에 관한 연구’는 그 유명한 ‘사회구성체 논쟁’의 불길을 당겼다. 그러나 90년대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그 불길은 곧 꺼졌다. 어떤 이들은 문화운동으로 방향을 틀었고, 또 다른 이들은 ‘80년대 소련제 국정교과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며 ‘포스트’ 이론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런 시대변화 속에 차츰 잊혀져 가던 박현채는 1995년 숨을 거두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외무고시 2차 국제정치학이 당락 결정할듯

    외무고시 2차 국제정치학이 당락 결정할듯

    올해 외무고시 2차 시험은 국제정치학에서 당락이 결정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치러진 이번 2차 시험은 대체적으로 평이했지만, 국제정치학이 다소 까다로웠다는 게 수험전문가들의 평이다. 또한 최근 국제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핵문제가 다수 출제됐다. ●2~3년새 시사문제 비중 높아져 국제정치학은 시사문제의 비중이 높았다. 동북아 질서와 핵문제 등 시사성 짙은 문제들이 출제됐다. 국제정치학 신희섭 강사는 “최근 2∼3년간 국제정치학에서 시사문제의 출제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단순히 이론 또는 현상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바탕으로 현안을 해석하는 능력을 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도 이라크전과 관련해 외교사에서 1·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과 미국의 역할을 묻는 문제가 출제된 바 있다. 이같은 방향성에 대해 수험 전문가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수험생들이 수험 대비를 하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전언이다. 특히 올해는 예상을 비켜간 문제가 출제돼 많은 수험생들이 애를 먹었다. 한 응시생은 “발칸의 동방위기에 대한 문제는 외교사에서 그리 많이 다루던 부분이 아니어서 문제를 봤을 때 당황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국제법·경제학·영어는 평이 반면 국제법·경제학 등은 무난한 수준으로 출제됐다. 국제법은 이론과 시사문제, 그리고 사례문제가 골고루 출제됐다. 국제법의 안진우 강사는 “이번 국제법 시험은 최근 3년간 가장 평이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점수가 잘 나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뤄 충분히 예상가능한 문제들이었지만, 완벽한 암기와 이해를 요구하고 있어 공부량에 따라 답안 수준이 크게 차이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점수배점이 가장 높았던 ‘서비스무역일반협정(GATS)’에 관한 문제는 난이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관련 조항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지 않으면 답안이 부실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영어 역시 예년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문제 형식도 지난해와 비슷했다는 평이다. 특히 영문으로 편지를 쓰게 하는 문제는 최근 2년간 출제됐던 형식이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다는 것. ●5명 중도 포기 이번 2차 시험에는 1차 합격자 173명이 모두 응시했다. 최종 20명을 선발할 예정이기 때문에 8.7대 1의 경쟁률을 보인 셈이다. 하지만 3일간의 시험과정에서 5명의 중도포기자도 나왔다. 이에 대해 중앙인사위 관계자는 “외시의 경우 지난해부터 1차 유예제도가 없어져 한 해에 1·2차를 모두 합격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2차 준비를 충실히 하지 못한 일부 수험생들이 포기를 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2차 시험의 결과는 오는 6월 20일 발표될 예정이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뻔뻔한 日 과거사 인식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일본은 2차대전에 대해 충분히 반성했다.”고 말한 데 이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후지오카 노부카스 부회장이 10일 “‘난징(南京)사건’에서 증언에 의해 확인된 일본군의 민간인 살해는 단 1건뿐”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후지오카 부회장은 이날 일본 주재 외국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 일각에서는 1937년 발생한 난징사건 때 중국인 30만명 이상이 살해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같은 대량 죽음은 없었으며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새역모는 역사왜곡으로 비판받은 후소샤 교과서를 집필한 단체다. 그는 후소샤 역사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 표현이 사라진 것이 역사의 비극을 숨기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질문에 “일본 교과서에는 97년 종군위안부 표현이 등장했지만 한국 교과서에는 그 이후 나왔다.”며 “그러면 한국은 그 이전까지 사실을 숨긴 것이냐.”고 반문했다. 후지오카 부회장은 후소샤 교과서의 집필 의도에 대해 “전쟁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을 찾아내 그에 입각한 기술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가마다 고유의 관점이 있으며 출판사마다 다른 견해가 있는 만큼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고이즈미 총리는 9일 현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전후 일본이 걸어온 모습을 보면 전쟁을 충분히 반성하고 평화국가로서 노력해온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를 설명하면서 “야스쿠니문제에 국한할 것이 아니며 일면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전제,“세계 각국이 일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이날 도쿄 시내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중국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단을 요구한 데 대해 “중국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일본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면서 “총리가 올해에도, 내년에도 참배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아베 간사장 대리는 이날 도쿄(東京) 시내에서 열린 자당 소속 중의원 의원의 후원파티에 참석, 연설한 자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밤 크렘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일본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했으며 푸틴 대통령은 “일본 방문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일 시기를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다. 영토 분쟁 중인 북방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ㆍ러시아명 쿠릴열도)에 대한 협의 내용에 대해서도 고이즈미 총리는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고만 말했다. taein@seoul.co.kr
  • [사고] ‘일본을 다시본다’ 수교 40주년 기획 새달 연재

    서울신문이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새 기획시리즈 ‘일본을 다시 본다’를 6월 초부터 내보냅니다. 특별취재팀의 일본 현지취재와 자문교수단의 자문을 토대로 밀도있게 짜여질 이번 기획은 10년간의 장기불황속에서도 철저한 구조조정과 신산업 창출을 통해 실질경쟁력을 높인 일본의 노력을 집중 조명하게 됩니다. 아울러 독도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일본의 우경화와 군국주의 움직임 및 ‘힘의 외교’의 실상을 짚어보고 21세기 진정한 한·일 협력시대를 열기 위한 조건과 미래지향적 지평도 함께 모색합니다.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 차장(경제부), 손원천(사진부)·안미현(산업부)·김상연(정치부)·이언탁(사진부)·황장석(국제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협찬 posco
  • 명성황후 무덤 찾아 ‘사죄의 눈물’

    명성황후 무덤 찾아 ‘사죄의 눈물’

    “할아버지를 대신해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오는 10월8일은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무참하게 시해된 지 110년째 되는 날이다. 그날의 참극을 일으켰던 시해범 48명 가운데 한 명인 구니토모 시케아키(國友重章)의 외손자 가와노 다쓰미(河野龍巳ㆍ84)와 이에이리 가가치(家入嘉吉)의 손자며느리 이에이리 게이코(家入惠子·77), 그리고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 10명 등 12명이 10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에 위치한 홍릉을 찾아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홍릉은 명성황후가 고종황제와 함께 묻혀 있는 곳이다. 가와노씨 등은 이날 묘소 앞에 국화꽃 한다발과 일본 전통차를 올린 뒤 10여분 동안 무릎을 꿇은 채로 조상을 대신해 속죄했다. 가와노는 “명성황후의 무덤을 대하는 순간 ‘용서해달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면서 “시해에 가담했던 다른 분들의 후손도 같은 심정일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와노 일행은 고종황제의 둘째 왕자였던 의친왕의 기일을 맞아 이날 홍릉을 찾은 의친왕의 9번째 아들 이충길(67)씨 등 황실 후손들에게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또 시해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자신들이 살고 있는 구마모토에서 400개의 연을 날리는 등 일본 역사교과서들이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하도록 시민 운동을 펼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들은 11일 명성황후 시해 장소인 경복궁 건청궁 등을 둘러본 뒤 12일 출국할 예정이다. 이번 방한은 다큐멘터리 감독 정수웅씨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논술이 술술] 노동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정보화가 우리 현실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임은 이미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 ‘분권화’,‘원격 민주주의’,‘다품종 소량 생산을 통한 다양성의 실현’ 등 교과서에 나오는 개념에 근거한 가상적 이미지로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실제 진행되는 현실의 변동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자본의 새로운 네트워크 질서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실제 사회 변동에 관한 실증적 자료를 토대로 정보화에 따른 사회문제와 대책 등에 관한 논의를 이끄는 ‘노동의 종말’은 우리가 정보화의 본질과 그에 따른 위험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에서 리프킨은 “인간의 노동이 처음으로 생산과정으로부터 체계적으로 제거”되면서 나타나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다룬다. 정보통신 기술이 노동 과정에 매우 빠른 속도로 도입돼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서 수많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실업자로 만드는 것이 지금의 문제라는 것이다. 초기 산업기술은 노동력의 육체적 힘을 대체했지만, 새로운 컴퓨터 기술은 인간의 정신노동까지를 대체하려 한다. 정보화에 의해 재편되는 경제 체제는 경제 행위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 노동력을 대체한다. 리프킨이 보기에 이것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대다수 산업국가 노동력의 75% 이상이 단순 반복 작업에 종사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것들이 기계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매년 20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줄이고 있으며, 그나마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도 대부분 저임금 부문이거나 임시직에 불과하다. 이것은 비단 선진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발도상국가들도 날로 높아지는 구조적 실업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정보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기술적·구조적 변동은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파괴하고, 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리프킨은 이같은 변동이 과학자·엔지니어·기업주들에게는 반복되는 노동에서 인간이 해방되는 새로운 시대, 곧 ‘노동의 종말’ 시대를 뜻할 수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대량 실업, 전세계적 빈곤, 사회적 불안과 격변이라는 ‘노동으로부터의 추방’이라는 우울한 미래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때문에 리프킨은 전세계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시장 부문에서 축출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제3부문 창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제3부문’이란 자원봉사나 비영리적 사회 활동처럼 전통적으로 산업으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었던 부문을 일자리로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이윤을 목표로 한 ‘시장 경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를 목표로 한 ‘사회적 경제’의 성격을 지닐 것이다. 리프킨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기술 발달에 따른 혜택을 사회 전체가 나누고, 사회의 복지 수준을 높여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청년실업 등이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이 단지 경기변동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기술변동에 근거한 구조적 문제임도 분명해지고 있다.‘노동의 종말’은 이러한 현실을 좀더 깊이 이해하도록 이끌면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의 길이 아니라, 공동체의 공존과 나눔의 문화를 새롭게 창출해 가는 길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생각해보기 -정보화가 우리 현실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나.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청년 실업’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은. -기술의 발달에 의해 인간 사회의 계층적 격차가 더욱 구조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을 써보자. -‘노동’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고1∼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정치, 경제, 사회문화 -함께 읽어 볼 책:소유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바이오테크 시대(〃), 권력 이동(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앨빈 토플러) -기출논제:서강대 2003학년도 정시 논술, 한양대 2003학년도 정시 논술, 한국외국어대 2002학년도 정시 논술, 건국대 2000학년도 모의 논술, 성균관대 2000학년도 정시 논술
  • [종전60년…731부대 현장을 가다] 발굴 유해 급증…1만 5000명 사망설도

    [종전60년…731부대 현장을 가다] 발굴 유해 급증…1만 5000명 사망설도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을 맞는 올해 일본 관동군 산하 731부대가 만주지역에서 자행한 생체실험 현장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정식 신청할 예정이다.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과는 달리 일본군의 만행은 그 실상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데다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유네스코는 유대인 120만명이 희생된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나치 수용소와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기념관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중·일관계가 최악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731부대’ 현장을 찾았다. |하얼빈 오일만특파원|중국 북부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시내에서 남쪽으로 20㎞쯤 떨어진 핑팡지구 신장(新疆)대로 21호. 상가와 아파트가 섞여 있는 지역에 ‘731부대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정식 이름은 ‘침화일군(侵華日軍) 731부대 죄증(罪證)전시관’으로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붉은색 벽돌 건물이다. 이 전시관에는 2차 대전 당시 일본 군국주의가 만주에서 비밀리에 자행한 ‘생체 실험’의 전모가 생생하게 보존돼 있다. ‘731 전시관’은 2차 대전 당시 부대의 본청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현재 14개 전시실로 개조해 수천점의 관련 자료와 일본군이 자행했던 주요 생체실험 과정을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다소 어두운 전시관 내부를 안내원과 함께 돌아보면서 억울하게 죽어간 마루타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듯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사진과 실험에 쓰였던 도구, 모형을 이용한 생체실험 장면, 비디오 영상물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일본 군국주의의 잔학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얼빈 사회과학원 731부대 연구소 진청민(金成民) 소장은 “731부대 유적지는 일제 군국주의가 세균전으로 인류를 말살시켜려 했던 역사의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인류 말살을 기도한 역사 현장 31종의 세균 실험과 영하 60도에서의 동상 실험, 사람과 말의 ‘피교환 주사’, 공기없이 얼마나 생존 가능한지를 실험한 ‘진공 실험’ 등등. 일본군은 인간의 몸을 나무토막(마루타·丸太)으로 여겨 온갖 생체실험에 사용했다. 엄청난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죽으면 태워버리거나 구덩이에 파묻었다. 그야말로 ‘인간이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일본 병사들의 동상 치료법 개발을 위해 영하 60도까지 내려가는 실험실에서 맨발·맨손의 인간을 기둥에 묶고 강제로 동상을 입혔다. 그 상처에 끓는 물을 부어 보기도 했고, 찬 물과 미지근한 물을 번갈아 붓기도 했다. 강제로 얼린 손발을 도끼로 때려 뼈를 부러뜨리는 실험도 했다. 마취 없이 실험에 동원된 마루타들은 자신의 배가 갈라지고 뼈에 붙은 살가죽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큰 유리 상자 속에 사람을 가두고 밖에서 공기를 빼내 완전 진공 상태를 만든 뒤, 인간의 생존 시간을 체크했다. 또 페스트 등 각종 세균을 강제로 몸 속에 주입, 인간의 장기가 어떻게 변하고 투입량에 따라 어느 정도 빨리 죽는지 실험했다. 중국인·러시아인·몽골인·한국인을 동원한 인종별 실험도 자행됐다. ●한국인들도 마루타로 희생돼 왕강(王剛)이라고 소개한 중년의 관람객은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몹쓸 짓을 할 수 있을까.”라며 치를 떨었다. 헤이룽장 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한 학생은 “말로만 듣던 일본 제국주의의 실상을 오늘에서야 명확하게 알게 됐다.”며 “침략 역사를 부인하는 일본인들이 직접 이러한 만행을 목격해야 한다.”며 분개했다. 전시관 관계자는 “실험이 끝나고 더 이상 필요가 없는 마루타들은 실험실 내부에서 소각됐거나 한꺼번에 구덩이에 파묻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죽어간 마루타들의 숫자는 대략 3000여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부대의 책임자는 ‘인간 백정’으로 불렸던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중장이다. 그는 전후 도쿄 국제군사법정에 기소돼 재판을 받을 당시 마루타(생체실험 대상)가 총 3850명이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러시아인이 562명, 한국인이 254명, 나머지는 모두 중국인이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최근 전시관 인근 지역 개발과 함께 발굴된 유해 숫자가 급증하면서 ‘1만 5000명 사망설’이 떠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당시 조선인들도 다수가 마루타로 희생됐지만 신원이 확인된 것은 심득룡(沈得龍)과 이청천(李淸泉) 두 명뿐이다. 심득룡은 당시 소련 극동 코민테른에서 파견한 공산당원으로 확인됐다. ●중국 마을에서 세균전 실험 45년 8월15일 일본 항복 직후 731부대는 인체 실험실과 각종 건물을 철거하고 증거가 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소각한 뒤 퇴각했다. 하지만 46년 페스트 실험용으로 사용됐던 쥐들이 튀어나와 당시 마을 주민 100여명을 몰살시킨 비극적 사건도 있었다고 전시관 관계자들이 전했다. 중국 대륙에 존재했던 인체실험실은 731부대 이외에 창춘(長春) 100부대, 베이징 1855부대, 난징(南京) 1644부대, 광저우(廣州) 8604부대 등 5개이며, 이들을 주축으로 중국 전역에서 인체 실험이 광범위하게 운영됐다는 게 전시관측 설명이다. 일본군이 실제로 전쟁 당시 세균전을 감행했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1940년 닝보(寧波)에서 페스트균을 대량 살포하여 100명 이상을 사망케 했고,1941년 봄 후난성(湖南省)에 페스트 벼룩을 공중 살포하여 중국인 400여명을 희생시켰다는 것이 중국측의 주장이다. 최근 731부대 장교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가 일본의 한 대학에서 발견돼 일본군의 세균전 및 생체실험이 사실로 입증됐다. 페스트균을 배양해 지린성(吉林省) 눙안(農安)과 창춘에 고의로 퍼뜨린 뒤 주민들의 감염 경로와 증세에 대해 관찰했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oilman@seoul.co.kr ■ 731전시관 청리화 부관장 |하얼빈 오일만특파원|“일본 군국주의의 잔학상을 세계에 알리고 인류의 평화 애호사상을 함양하기 위해 731부대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게 됐습니다.” ‘731 전시관’ 청리화(程立華·여) 부관장은 “지난해 20만명이 731부대를 관람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모두 300만명이 이곳을 다녀갔다.”며 앞으로 전시관 주변에 ‘731 공원’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731 전시관’을 통해 전세계에 일본과의 반파시스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불한 중국인들의 희생과 고난을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 82년 설립된 ‘731 전시관’은 85년 8월15일 처음으로 외부에 개방됐다.95년 중국의 반파시스트(중·일전쟁) 전승 50주년을 맞아 신관을 설립하고 새로운 자료를 보강했다. 세계문화유산 신청 준비 작업은. -2000년부터 하얼빈시는 731부대 인근 120 가구와 11개 기업을 이주시키고 유적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2002년 5월부터 현 전시관 면적의 3배에 달하는 ‘731 공원’ 설립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예산은 모두 5억위안(약 650억원)이다. 일본이 이 부대를 설립한 이유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죽이는 방법을 찾기 위해 세균 부대를 창설한 것이다. 세균·화학 무기는 총과 대포와 비교해 원가가 5분의1에 불과하다. 731부대는 수천, 수만의 인민들이 참혹하게 죽어간 도살장이며 일본 군국주의가 인류를 말살하기 위해 시도했던 ‘세균전’의 현장이다. 생체 실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됐나. -페스트, 장티푸스, 이질, 콜레라, 탄저, 결핵, 매독 등 31개 종류의 세균을 이곳에서 배양시켜 마루타들에게 실험을 했다. 생체 실험 대상이었던 마루타들은 대부분 항일운동을 한 경험이 있으며 특수 감옥에 수감된 채 세균 전문가들의 치밀한 실험계획에 따라 고통 속에서 살해됐다. oilman@seoul.co.kr ■ 731 부대란 ‘731부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관동군이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에 주둔시켰던 세균전 부대이다.1932년 창설돼 1936∼1945년 여름까지 전쟁포로 및 민간인 3000여명을 대상으로 각종 세균 실험과 약물 실험 등을 자행했다. 바이러스·곤충·동상·페스트·콜레라 등 생물학 무기를 연구하는 17개 연구반이 있었고, 각각의 연구반마다 마루타라 불리는 인간을 생체 실험 대상으로 사용했다. 1940년 이후 최소한 3000여명의 한국인·중국인·러시아인·몽골인 등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7년 미 육군 조사에 따르면 36년부터 43년까지 부대에서 만든 인체 표본만 해도 페스트 246개, 콜레라 135개, 유행성 출혈열 101개 등 수백개에 이른다. 생체실험의 내용은 세균실험 및 생체해부실험, 동상 연구를 위한 생체 냉동실험, 생체 원심분리실험 및 진공실험, 신경실험, 생체 총기관통 실험, 가스실험 등이다.
  • [사설] 반성 촛불로 기념한 종전 60주년

    유럽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2차대전 종전 60주년 기념행사는 역사의 교훈과 패권경쟁의 현실이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노무현 대통령도 참석한 러시아승전 기념식은 표면상 승전국과 패전국의 화해를 내걸었지만 보이지 않는 국가간의 신경전도 있었다.‘강한 러시아’의 야심에 대한 미국의 ‘민주주의 확산’공세가 외교적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우리는 독일 베를린에 켜진 반성의 촛불에서 미래의 희망을 본다. 전범국이었던 독일 시민들이 보여준 침략 반성과 평화의 기원 정신이야말로 2차대전 종전이 세계역사에 주는 교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독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쟁범죄의 과오에 대한 사과와 참회 발언을 했다. 발언뿐만 아니라 마지막 피해자가 배상받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물질적 피해배상과 추모기념관 건설도 해 왔다. 반성의 촛불은 브란덴부르크 관문을 중심으로 시민 3만여명이 인간띠를 만들면서 켜졌다. 이 자리에는 오늘 종전 60주년 기념행사의 절정이자 과거 반성의 결정판이라 할 ‘유럽학살유대인추모비’공원이 개막되리라 한다. 일부 극우파 잔재가 있긴 하지만 이런 독일의 압도적인 노력이 유럽통합과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인정을 끌어냈다고 본다. 러시아 승전기념식에는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도 참석했다. 전범국가로서 종전의 의미와 현재 동북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커녕 독일과 일본은 상황이 다르다거나, 역사교과서 왜곡을 해놓고 거꾸로 상대국의 교과서를 공격하는 적반하장식 태도로는 세계평화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수원 한일초교 어머니 사물놀이패 ‘한우리’

    수원 한일초교 어머니 사물놀이패 ‘한우리’

    한 초등학교 교사가 대학 동아리의 경험을 살려 학생과 학부모, 교사 대상의 사물놀이패 동아리를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공동체의식을 키우는 것은 물론,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마당으로 국악을 활용하고 있다. 교육대에 재학 중인 후배들에게는 예비교사의 교단 경험을 쌓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국악을 통해 교사-학생-학부모 사이에 서로 이해하며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학교 현장을 찾았다. “쟁쟁쟁∼쟁기∼쟁∼기쟁∼쟁쟁” 상쇠 강경순(39·여)씨의 꽹과리 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수장구 남양선(39·여)씨는 “쿵따따∼쿵따! 덩덩덩∼”하며 신나게 장구를 두들기고, 북재비 김미향(41·여)씨도 머리를 힘차게 흔들며 “더덩∼더덩∼덩덩∼” 쉴새없이 북채를 움직였다.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수원 한일초등학교 운동장은 어머니 사물놀이패 ‘한우리’의 공연으로 한껏 달궈져 있었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어머니 11명은 혼연일체가 됐고 북과 장구, 꽹과리는 환상적인 소리의 조화를 만들어냈다.“우와!” 6학년 동주(12)는 환호성을 질렀다. 상쇠 강씨는 바로 추임새에 들어간다.“얼쑤, 절쑤, 잘 한다, 절씨구, 덩닥기, 덩기닥, 덩기, 닥기, 덩기닥, 절쑤” 그러자 공연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모두 젓가락을 마주 때리며 장단을 맞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고 어깨를 덩실거리며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 “저기가 우리 엄마야.” 3학년 예진(9)이는 이강복(38)씨를 가리키며 친구에게 연신 자랑을 늘어놓았다. 장단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던 6학년 석현(12)이는 “우리 조상 고유의 리듬에 맞춰 절로 춤이 나왔다.”면서 “사물놀이패 공연을 자주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7분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어머니들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꽹과리를 맡은 박상숙(42)씨는 “아들 앞에서 한 공연은 처음이라 무척 떨렸다.”면서 “아이들의 반응이 예상 외로 좋아 보람을 느낀다.”며 흐뭇해했다. 한일초등학교 어머니 사물놀이패 ‘한우리’가 결성된 것은 지난해 4월이었다. 학교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짜내던 중이었다. 그 때 평소 전통문화에 조예가 깊던 김종호(32) 교사의 자원으로 주민들에게 사물놀이 강습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학부모 20여명이 모여 시작했다. 모두 전통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하지만 우리 가락을 익히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전통 가락을 외우는 것도 녹록지 않았지만 몸으로 익히기는 더욱 어려다. 박씨는 “몸과 머리가 함께 가락을 익히는 데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며 처음 배울 때를 돌이켰다. 남씨는 “피아노나 플루트 등은 아파트에서 연주해도 주민들의 불평이 적은데 장구나 북을 연주하면 여기저기서 민원이 들어와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몇 명이 그만두었고 11명만이 남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성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9월 마을노래자랑 찬조 출연으로 공연의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 지금까지 동네 양로원과 노인대학 등에서 5∼6차례 공연을 펼쳤다. 동네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일부는 사물놀이를 배우겠다며 학교를 직접 찾기도 했다. 학부모들의 열정이 전통음악에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무엇보다 전통음악을 통해 가족 분위기가 밝아진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정선숙(39)씨는 “가족끼리 국악 공연을 찾는 일이 많아지면서 전통음악이라는 가족 공통의 관심사가 생겨 더 친해진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강경순씨는 “국악공연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가 무척 좋아한다.”면서 “모자간의 정도 더 깊어졌다.”고 했다. 박상숙씨는 “전통음악을 배우고 싶어하는 남편을 직접 가르치고 있다.”면서 “평소에는 일상적인 대화만 했었는데 요즘은 사물놀이가 대화의 양념 역할을 한다.”고 좋아했다. 김종호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사교육 때문에 너무 바빠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적은데 학부모와 아이들이 사물놀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생기면서 새로운 대화의 장이 생겼다.”면서 “학부모와 학생들 모두 달라진 가족 분위기에 만족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이들이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도 장점 가운데 하나다. 엄마의 공연 모습을 보면서 배우고 싶다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6학년 인성(12)이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배울 곳이 많은데 우리 음악은 가르치는 곳이 별로 없다.”면서 “조만간 태평소를 배워 전통음악의 맥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일근 교감은 “한우리 활동을 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지난달 어린이 단소부 모집에 이들 학부모의 80% 이상이 가입했다.”면서 “앞으로 한우리 단원을 30명까지 늘리고 가야금부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원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공동체 정신 기르는덴 전통문화가 가장 적합-‘한우리’ 창설 주도 김종호 교사 “전통문화는 아이들이 즐겁게 공동체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경기도 수원의 한일초등학교에서 어머니 풍물놀이패인 ‘한우리’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김종호(32) 교사는 전통문화 교육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까지 한일초등학교에 몸담고 있다가 올해부터 수원 당수초등학교에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 게임 등에만 푹 빠져 공동체놀이를 모른다.”면서 “강강수월래와 농악, 사물놀이 등 우리 전통문화를 학교 현장에서 활성화시켜 공동체정신을 길러주면 인성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가 전통문화의 효과를 확신한 것은 지난 1995년. 대구교대에 재학하면서 대구 남도초등학교에서 특기적성 강사로 근무하면서다. 당시 김 교사는 학교에서 탈춤을 가르쳤다.5월 운동회 때에는 탈춤반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연습할 때 ‘얼쑤, 절씨구, 덩기 닥기 덩기닥’ 추임새를 넣었어요. 그러자 아이들도 따라했고 운동장을 반쯤 돌았을 때 옆 뒤로 애들이 쫓아오더군요. 곧 이어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었습니다.” 그는 “서양음악보다 우리 전통가락이 아이들 정서에 훨씬 더 맞는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학부모들을 모아 사물놀이패를 만든 이유에 대해 “교육은 가정과 학교, 사회 3곳에서 동시에 이뤄진다.”고 전제한 뒤 “7차교육과정으로 바뀌면서 음악 교과서에 전통음악이 6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전통문화의 비중은 늘어난 반면, 가정과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어머니부터 국악에 관심을 가지면 아이들도 관심을 갖게 되고, 이같은 분위기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김 교사는 대구교대 1학년 때 전통음악 동아리인 ‘풀이마당’에 들어가 처음 전통음악을 접한 뒤 푹 빠져 교육적 효과까지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이후 1994∼95년 대구·경북지역 사물놀이 경연대회에서 각각 은상과 금상을 받았다.1997년에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다사농악팀으로 출전, 문화관광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수원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풍물 동아리 ‘풀이마당’ 김종호 교사가 몸담고 있는 ‘풀이마당’은 대구 교육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는 풍물 동아리다. 지난 1987년 출범, ‘성년’을 바라보는 동아리다. 출범 당시 84학번이었던 나규식씨와 이재완씨가 전통문화를 익히고 널리 보급하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10여명의 학생들과 시작했다.‘풀이마당’이라는 이름은 액과 살을 풀어헤치고 마당에서 함께 어울려 신명과 흥을 나누자는 뜻이다. 주로 탈춤과 풍물놀이를 다룬다. 풀이마당 단원들은 매년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미래의 선생님이 될 대구교대생들을 대상으로 장구장단과 민요, 교과서에 나오는 전통음악 등을 가르친다. 예비교사인 교대생부터 전통문화에 익숙해야 교단에 서더라도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풀이마당 안에는 독특한 소(小)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바로 졸업생들의 모임인 ‘어제의 용사’다. 김종호 교사도 이 모임에 속해 있다. ‘어제의 용사’는 크게 대구·경북과 경기도 권역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매년 정기적으로 권역별로 한두 차례의 모임을 갖고 학교 현장에 전통문화를 어떻게 보급할지에 대한 토론회를 열고 있다. 단순한 대학 동아리에 머무르지 않고 일선 학교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 동아리인 셈이다. 이같은 풀이마당의 취지에 따라 재학생들은 교내 국악반과 함께 선배들이 재직 중인 학교 5∼6곳을 찾아가 학생들에게 전통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국악을 통해 선후배간 정도 쌓고, 미리 교단을 경험해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풀이마당 박원석(22) 회장은 “초등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올해에는 더 많은 학교를 찾아갈 생각”이라면서 “사물놀이를 지역사회에도 알리기 위해 예비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양로원에 가서 공연을 하는 계획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의회]독도 중요성 알리기 초등학교 순회 강연

    [의회]독도 중요성 알리기 초등학교 순회 강연

    최재익(중랑구) 서울시의회 대변인이 독도의 중요성을 알리는 전국 순회 강연회에 나선다. 현재 독도향우회 회장인 그는 “최근 일본 위정자들의 독도 관련 발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과성이 아닌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독도를 제대로 알리는 일에 앞장설 것”이라고 6일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독도와 관련된 역사교육이 시급하다.”며 전국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준비하게 된 동기를 알렸다. 초등학생들에게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와 독도침탈음모, 역사교과서 왜곡 실태 등을 중점적으로 전파할 각오다. 그는 이날 가장 먼저 중랑구민회관 대강당에서 ‘독도강탈음모 및 역사교과서 왜곡 규탄 중랑구민 궐기대회’를 열어 지역주민들의 독도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궐기대회 이후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의 초등학교를 돌며 독도 관련 강연회를 이어 나간다. 최 의원은 “독도 지키기는 민족의 자존과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고양이에 생선 맡긴 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03년 학습참고서 가격담합을 유도한 학습자료협회에만 과징금을 부과하고 가격담합으로 이익을 본 회원사는 과징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해 징계의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습자료협회는 “문화관광부의 행정지도에 의한 조치였다.”며 과징금 부과에 반발하고 있다. 8일 공정위는 2003년 참고서 가격인상을 자제해달라는 문화부의 행정지도를 받고 10개 회원 출판사업자들을 소집, 오히려 가격인상을 공동결정한 학습자료협회에 시정명령과 함께 1억 5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반면 회의에 참석한 교학사, 천재교육, 두산동아, 대한교과서, 디딤돌, 중앙교육진흥연구소, 지학사, 금성출판사, 블랙박스, 창과창 등 10개 출판사는 경고조치만 받았다. 참고서값은 출판한 지 1년 이내인 책은 할인이 안 되고 인터넷 서점에 한해서만 10%가 할인되는 도서정가제가 2003년 2월 도입됐을 당시 최고 60%까지 올랐다. 이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의 민원이 빗발치자 문화부는 협회에 참고서 값을 정가제 시행 전인 2002년 수준으로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협회는 출판사들로부터 받은 가격자료를 참고해 쪽당 단가를 만들어 138개 회원사에 보냈다. 그러나 협회가 발송한 쪽당 단가는 출판사의 평균 가격보다 높다. 이에 대해 이원희 학습자료협회장은 “제시된 단가는 상한선”이라면서 “물가상승을 고려한다면 상한선을 설정, 값을 낮춘 셈”이라고 반박했다. 이 회장은 “문화부의 협조요청 공문을 받고 모임을 주도했는데도 5억원의 예산에 1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내야 하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공정위는 문화부의 행정지도 적법성 여부도 가려낼 계획이다. 공정위 허선 경쟁국장은 “문화부의 행정지도는 적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협회가 과징금을 낼 경우 회원사가 이를 분담토록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번 조치에서 회원사에 대한 분담명령은커녕, 과징금도 부과하지 않았다. 특히 조사에 참가한 공정위 관계자들은 출판사들이 실질적인 이익을 얻었다며 출판사들에 대해 3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제재 수준을 결정한 공정위 전원회의 참석자는 “심사보고서대로 결정할 경우 전원회의가 열릴 필요가 없다.”면서 “협회가 담합을 주도했고 출판사들은 협회가 주도한 모임 외에는 따로 만난 적이 없어 경고조치만 내렸다.”고 설명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법안표결서 ‘反개혁’ 고집한 의원의 속내는?

    법안표결서 ‘反개혁’ 고집한 의원의 속내는?

    정치권은 4월 임시국회에서 공직자윤리법 등 주요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대부분이 여야 합의를 이뤄 무사통과됐지만 이 과정에서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소신파 의원’들이 있었다. ●“평소 반대하던 의원 투표땐 찬성” 지난달 26일 본회의를 통과한 공직자윤리법은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의 직무관련 보유주식에 대한 매각 및 백지신탁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 법안에 반대하는 것은 자칫 ‘깨끗한 정치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소지가 있다.‘너무 심하다.’는 의견도 없진 않았지만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공개투표였다는 점도 의원들에게 부담을 줬다. 그러나 한나라당 김태환·김영선 의원은 반대했다.‘너무하다.’는 게 이유다. 김태환 의원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아니고 남의 재산을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김 의원은 “평소 반대하던 동료들이 적지 않았지만 막상 투표할 때는 이상하게 보일까봐 찬성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김영선 의원도 “자유민주주의에서 어느 정도 주식을 갖고 있는 게 정상 아니냐.”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보수대열에 새로 합류?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보수대열’에 새로 합류했다. 반면 ‘원조보수’ 김용갑 의원은 물러섰다. 북한 주민 접촉에 대한 승인제를 신고제로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하는 남북교류협력법에 전 의원을 포함해 이방호·이상배 의원 등 3명이 반대했다. 반대 이유는 ‘시기상조’이다. 전 의원의 반대와 김 의원의 찬성 모두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김 의원은 “생각의 차이”라고 전제한 뒤 “신고제를 하되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반대할 생각을 했지만 접촉까지 막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찬성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반대이유 첫 머리에 “깊은 내용을 몰라서…”라고 답해 법안의 내용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찬성표를 던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다. 반면 전 의원의 “인적 교류를 활발하게 하는 원칙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탈북자들을 만나 보니 인적교류에 신중하지 않으면 충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반개혁적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독도 이용만이 능사가 아니다 독도를 체계적으로 이용·보존하자는 독도의 지속가능 이용법안에 214명 의원 가운데 제종길 의원만 기권했다. 이 법안은 일본과 독도영유권과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별다른 이견은 없었다. 반대나 기권 자체가 ‘친일’로 보일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해양생태학 박사 출신으로 독도전문가임을 자임하는 제 의원은 기권표를 던졌다. 물론 법안을 만드는 데 반대하는 것은 아닌다.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상황에선 국제여론 조성 등이 더 시급하다는 게 제 의원측의 설명이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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