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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국가교육위원회, 미국 사례를 보라/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가교육위원회, 미국 사례를 보라/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그동안 후보자들은 국민의 마음을 얻고자 많은 공약을 쏟아냈다.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다. 특이한 점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방향에서는 유사한 공약이 많다는 점이다. 당면한 교육 문제와 해법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유력 후보들이 공약한 만큼 위원회 도입은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새로운 기구나 제도가 만들어질 때에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과거부터 축적된 문제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하고, 둘째는 미래 관점에서 새로운 질서를 능동적으로 형성하고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하고자 할 때, 이를 주도할 기구를 만든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주로 첫째 이유와 관련된 듯하다. 대통령 임기를 넘는 위원회를 만들어 정권이나 장관이 교체될 때마다 바뀌는 교육 정책의 비일관성이나 불안정성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교육정책을 독점하면서 학교 현장에 대한 규제와 통제를 일삼고,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 주지 못한 교육부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부처의 폐지까지 거론되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특정 이념 세력이 교육 정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겠다는 이유도 제시된다. 보수 정권이 추진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기폭제였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청와대 지시를 따라야 하고, 집권 세력의 압력에 취약한 정부 풍토를 고려하면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죽했으면 ‘교육통제부’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을까. 냉철한 진단과 반성이 요구된다. 국가교육위원회로 누적된 폐단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고육책이다. 하지만 과거 문제에만 얽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 관료의 정책 독점을 막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여기에만 집착하면 다음 논의는 자연스럽게 ‘누가 위원회에 참여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여야 정치집단이 추천하는 인사들로 위원회가 구성되고 자리 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여기에 무상급식, 특목고 폐지처럼 이념 갈등을 수반하는 정책이 상정되면, 위원회는 이념의 전쟁터가 되고 파행은 자명하다. 게다가 한 해에 서너 차례만 열리고 대통령은 첫 회의에만 참석하는 관행이 되풀이되면, 국가교육위원회는 결국 형해(形骸)화될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미래 패러다임에서 운영돼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는 인재 양성 전략을 범사회적 관점에서 수립하고 제안하는 역할을 맡겨야 한다. 교육을 통해 사회 갈등을 극복하고, 경제 위기를 ‘근본적’으로 돌파하는 중장기 플랜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라의 교육이 더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한 시점에서 우리 교육의 새 판을 짜서 국민을 설득하고 범부처가 나서도록 하는 ‘담대한’ 구상을 하는 것이 위원회의 임무일 것이다. 미국 사례를 보자. 1980년대 경제, 안보, 과학기술 등 모든 면에서 국가 위기를 직감한 레이건 행정부는 ‘교육 수월성을 위한 전국위원회’를 만들었다. 최고 교육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는 18개월에 걸친 연구, 조사 및 청문회를 거쳐 ‘위기에 처한 나라’(A Nation at Risk)라는 역사적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 내용보다 위원회 운영에서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째, 머리말을 보면 이 보고서가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제출하는 보고서라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낱낱의 정책 발굴에만 매달리기보다 나라의 위기와 교육적 해법을 국민에게 알리고 교육개혁의 절실함과 동참을 호소한 것이다. 둘째, 공공부문 축소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자였던 레이건의 요구와 달리 위원회는 연방 차원의 교육투자 확대와 적극적인 개입을 제안했다. 최고 권력자의 ‘심기’보다 나라의 미래를 우선했던 것이다. 셋째, 철저히 교육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분야별로 과학적인 조사연구를 하고 폭넓은 의견 수렴 후 미래 청사진을 제시했다. 적폐 청산은 중요하다. 하지만 미래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교육은 민생 문제이면서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국가교육위원회 공약이 어떻게 이행되는지 온 국민이 지켜볼 것이다.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인쇄공장 속 파격 걸작들 개념 미술의 교과서 공간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인쇄공장 속 파격 걸작들 개념 미술의 교과서 공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그랜드 센트럴 역은 보자르 양식의 멋진 외관과 함께 세계 최대의 기차역이라는 명성을 지니고 있다. 44개의 플랫폼과 67개 노선을 거느린 이 역에서 허드슨 라인을 타고 한 시간 반가량 북쪽으로 올라가면 비콘(Beacon)이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한다. 이 자그마한 마을이 전 세계의 예술 애호가들에게 아주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디아비콘’(Dia:Beacon) 미술관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을 지원 육성하는 비영리 단체인 ‘디아 예술재단’이 운영하는 이 미술관은 1960년대 이후 활동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대표하는 대가들의 작품을 한곳에 모아 현대미술사의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기차를 타고 허드슨 강의 멋진 풍광을 즐기며 가다 보면 어느새 강변에 자리한 비콘 역에 도착한다. 뉴욕 시에서 북쪽으로 100㎞ 떨어진 비콘은 허드슨 강이라는 지리적인 이점 덕분에 미국 독립 이전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소도시다. 특별할 것도 없었던 조용한 마을이 주목받게 된 것은 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오레오 쿠키, 리츠 크래커 등 비스킷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과자회사 나비스코사가 1929년 이곳에 포장지와 포장상자 인쇄 공장을 세우면서다. 허드슨 강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세워진 포장지 인쇄공장은 수십년간 가동된 뒤 문을 닫았고, 새 전시공간을 물색하던 디아 예술재단이 이를 사들였다. #엄청난 성격·규모의 실험적 작품들 전시 디아 예술재단은 1974년 미국 휴스턴 기반의 유명한 예술후원자인 도미니크 드 메닐 여사의 딸로 세계 굴지의 석유시추 재벌인 슐랭베르제 그룹의 상속녀인 필리파 드 메닐과 그녀의 남편인 예술품 딜러이자 수집가인 하이너 프리드리히가 설립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보다는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1960년대 후반에 처음 등장한 개념미술은 생각 자체도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어 애당초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다. 작품이라는 결과물보다 그 이면의 개념을 함께 고려해야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미니멀리즘은 1960~1970년대 회화와 조각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나타난 경향을 가리킨다. 작가의 감정을 오브제에 싣기보다는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전시공간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관람자와의 물리적 관계에 주목한다. 무슨 의도인지 이해하기도 힘들고, 때로는 이런 것을 왜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작품이 많다. 이런 창의적 사고 덕분에 세상이 진보한다는 확신을 갖고 재단을 만들기로 한다. 디아 예술재단은 창의력 넘치고 실험적인 작품을 하는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성격과 규모가 엄청나서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파격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실현 가능하게 지원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 의지를 담아 예술재단 명칭도 그리스어로 ‘~을 통하여’라는 뜻을 지닌 ‘디아’(dia)를 선택했고, 실제로 실험성 높은 작가들을 선정해 후원하거나 작품을 소장하며 전후 현대미술 발전을 이끌어 왔다.디아 예술재단이 선정해 프로젝트를 후원한 작가로는 독일의 전위예술가 요제프 보이스, 형광등을 이용한 조각을 시도한 댄 플레빈, 개념미술의 선구자 솔 르윗, 미니멀리즘의 대가 도널드 저드, 단색의 추상적인 회화를 시도한 아그네스 마틴, 팝아트의 아이콘 앤디 워홀, 철판 조각의 대가 리처드 세라, 대지미술 장르를 개척한 월터 드 마리아 등이 있다. 원래 유명하기도 했지만 디아 예술재단의 후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경우도 많다. 재단은 뉴욕 첼시 지역에 디아 예술센터를 열고 1987년부터 2004년 문을 닫을 때까지 이들의 작품을 장기간 전시하며 현대미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었다. 뉴욕의 10번과 11번 애비뉴 가로에 7000그루의 참나무와 돌기둥을 세우는 요제프 보이스의 ‘7000그루 참나무’ 프로젝트를 작가 사후에도 여전히 진행하는 것도 이 재단이다. #7000평 실내 전시공간에 전시 작가는 25명뿐 영구소장 작품을 상설 전시하기 위해 적절한 공간을 찾던 재단이 나비스코 공장을 매입했다는 것 자체가 예술계에선 큰 뉴스였지만 2003년 5월 ‘디아비콘’이라는 이름으로 미술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더 큰 뉴스거리였다. 공장 건물 외관은 그대로 살린 채 전시공간을 최대한 크게 구획한 디아비콘은 규모로 보자면 뉴욕현대미술관(MoMA) 다음으로 크기도 하지만 그 크기보다는 소장한 작품들과 그 독특한 전시방법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만 3000㎡(약 7000평)에 달하는 실내 전시공간에 자리를 차지한 작가는 단 25명. 모두가 현대미술사에서 반드시 거론되는 이름들이며 소장 작품도 그들의 대표작들로 이루어져 있다. 미술관을 전시공간에 맞게 리뉴얼하는 데 총 5000만 달러가 소요됐다. 재정 압박을 받고 있던 중 반스앤노블의 레너드 리지오 회장이 재단의 설립이념을 높이 평가하고 3500만 달러를 통 크게 기부한 덕분에 무사히 미술관 개조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재단은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전시장 이름을 ‘리지오갤러리’라고 이름 지었다. 비콘 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난 언덕길로 10분 정도 표지판을 따라 걸어가면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면 매표소 양쪽으로 카페와 서점이 있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전시공간이 시작된다. 미술관이라고 하면 꽉 막힌 화이트 큐브를 연상하게 되고,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 공간에 한꺼번에 전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디아비콘은 오래된 공장 건물의 벽돌과 철골, 콘크리트 구조를 그대로 살리고 천장과 벽의 창문도 그대로 살렸다. 특히 한 작가의 작품 한 점에 넓은 공간을 할애하고 인공조명이 아닌 자연 광선 아래에서 작품을 감상하도록 함으로써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 예술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람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방마다 작가와 작품 해설서를 비치해 놓고 있다.처음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로버트 어윈의 ‘입방체를 위한 헌정’이다. 한 방을 흰색 천과 긴 막대를 이용해 공간들을 만들고 조명을 설치해 공간감각을 느끼도록 해 놓았다. 작품 제작 기간은 1998년부터 2015년까지라고 표시돼 있다. 그 옆으로 가면 북쪽으로 난 긴 복도에 댄 플레빈의 형광등을 이용한 조각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미술관 지하에 설치된 플레빈의 형광등 작품은 장관이다. 북측 벽 쪽의 긴 방에는 마이클 하이저의 ‘북, 동, 남, 서’라는 작품이 설치돼 있다. 네모, 원, 네모, 원 모양으로 바닥의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푹 파인 철 구조물이 작품이다. 하이저는 1960년대 후반 작품 무대를 네바다 사막으로 옮긴 후 사막을 파헤치거나 흙을 쌓고 바위를 끌어모으는 등 미술관에서 실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거대한 대지미술 작품에 몰두한 독특한 작가다. 기다란 실로 공간을 구획해 놓은 프레드 샌드백의 작품, 수학적 개념을 도입한 솔 르윗의 작품, 벽에 선반을 붙여 놓은 것 같은 도널드 저드의 작품, 깨어진 유리를 한 무더기 쌓아 놓은 로버트 스미손의 작품 등을 지나면 폐유조선 덩어리를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은 리처드 세라의 철판 조각이 한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폐차장에 있어야 할 것처럼 자동차를 우그러뜨려 세워 놓은 것은 존 체임벌린의 작품이다. 특별한 날짜를 적어 놓은 온 가와라의 작품이 한 공간에 일렬로 걸려 있고 한 방에는 페미니즘 예술가 루이스 브르주아의 거대한 거미가 차지하고 있다.#인공조명 아닌 자연광 감상… 해 지기 전 문 닫아 미술관에서는 대부분의 작품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데 예외가 있다.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은 작가의 희망에 따라 촬영이 금지돼 있다. 뛰어난 상상력으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대지미술을 오가며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창조적 욕망을 가시화하는 것이 그의 작품이다. 뉴멕시코주의 외딴 벌판에 가로 1.6 ㎞, 세로 1㎞의 공간을 마련하고 쇠로 된 7m 길이의 장대 400개를 꼽아 놓고 인위적으로 번개를 불러오는 ‘번개 치는 들판’(1977)이 대표작이다.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이 작품을 디아 예술재단의 후원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금싸라기 땅 소호에는 대지 161㎡로 설명되는 ‘뉴욕 대지의 방’(1977)과 정확한 측정을 바탕으로 한 ‘부러진 킬로미터’(1977)가 40년째 전시되고 있다. 독일 카셀의 프리드리히광장에는 ‘수직 대지의 킬로미터’(1977)를 설치해 놓았다. 디아비콘에는 붉은 카펫에 나무토막으로 드로잉한 ‘360도’가 설치돼 있다. 오직 디아비콘의 공간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이 작품들을 보기 위해 비콘을 찾는 예술 애호가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미술관은 자연광으로 감상하도록 하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문을 닫는다. 연중 화요일과 수요일은 휴관하며 1월부터 3월까지는 목요일도 휴관이어서 날짜와 시간을 잘 맞춰 가야 헛걸음을 피할 수 있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국보급 만화가의 책상을 만나다···오세영 1주기 추모전

    국보급 만화가의 책상을 만나다···오세영 1주기 추모전

    박재동 화백은 조문(弔文)에서 ‘우리 만화계의 보물, 사람들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아는 우리 문화계의 국보, 수많은 그림쟁이의 스승, 세계 대가급 중의 한 사람’으로 그를 이야기했다. 가장 한국적인 최고의 리얼리스트로 평가되는 한 만화가의 손 때 묻은 책상이, 그가 입원하기 전까지 열심히 작업하던 원고가 올려진 그 상태 그대로 만화 팬들과 만난다. 국보급 만화가 오세영(1955~2016)의 1주기를 맞아 ‘오세영 전(展)’이 경기 부천 만화박물관에서 열린다. 5월 2일부터 7월 9일까지다.오세영은 늘 예술로서의 만화를 추구하며 낮은 시선에서 바라본 우리 민초들의 삶을 만화 컷 속으로 옮겨온 작가다. 특히 우리네 얼굴과 표정, 말본새, 체취, 삶의 풍경 등을 생생하고 구수하게 담가 내며 일가를 이뤘다. 오세영은 일제 강점기나 산업 근대화를 이루기 전 민중들의 진실한 모습과 사회상을 후대들에게 남겨주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문예 만화가라고 불릴 정도로 주옥 같은 우리 소설을 만화로 옮기는 작업에도 적극적이었다. 미완의 대표작 ‘토지’에서 해방 전후 시대의 옷이나 건물, 풍광 등을 철저하게 고증해 재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만화 장르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원작자인 박경리 선생이 탄복했을 정도다. 이번 추모전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작업실 전시다. 여느 전시처럼 만화가 책상 하나만 덜렁 가져다 놓는 수준이 아니다. 번잡한 도시의 삶을 뒤로 하고 2005년 경기 안성 쌍령산 기슭에 꾸렸던 작업실을 거의 통째로 옮겨 왔다. ‘토지’가 만화로 옮겨지던 곳이다. 오세영의 손때가 가득 묻은 책상과 각종 화구에서부터 각종 자료와 만화책이 빼곡한 책장 10개, 일반 벽지 대신 만화책 낱장을 도배지로 사용했던 작업실 벽면과 작품 설정자료를 걸어 놓은 빨랫줄까지 고스란히 실어 날랐다. 실제 작업실 사진과 비교하며 작가의 깊은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전시다.지난해 5월 5일 세상을 뜰 때까지 그의 이름처럼 딱 30년 걸어온 만화가의 삶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높이 3m, 가로 12m짜리 ‘작품 맵’도 돋보인다. 그의 작품 중 50편을 시대와 만화, 문학과 만화, 인물과 만화 세 가지 키워드로 분류해 빅데이터 그래픽 형식으로 펼쳐놨다. 우리나라 리얼리즘 계열의 독보적인 만화가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인간진화론’, ‘점’, ‘돈’, ‘불’, ‘쏴쏴쏴쏴 탕’, ‘김노인 경행록’, ‘부자의 그림일기’, 그리고 ‘고샅을 지키는 아이’와 ‘14세 소녀의 봄’에서부터 문학과 만화의 예술적인 만남을 이뤄낸 이태준, 박태원, 안회남 등 월북작가 단편 순례, 교과서에도 실린 이효석과 김유정, 채만식의 단편, 박경리의 ‘토지’가 만화 지도에 올랐다. 오세영이 필생의 역작으로 여겼던 ‘토지’는 사실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다.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커지며 1부 7권에서 멈춘 채 더 이상 진척을 보지 못했다. 작가는 이 때 건강을 잃었고, 출판사는 결국 다른 만화가의 힘을 빌려 17권으로 완간했다.주로 어른을 위한 작품을 그려오던 오세영은 어린이 잡지 ‘보물섬’을 통해 세계 위인 30명 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이 중 12명이 한국 위인으로 고선지, 최무선, 장영실, 허준, 김홍도, 전봉준, 김구, 신돌석, 한용운, 김좌진, 방정환, 윤봉길이다. 여느 위인전 목록과는 달랐던 오세영의 안목을 작품 맵에서 느낄 수 있다. 오명천 선생의 문하로 만화계에 입문했지만 스승의 그림체에 얽매이지 않고 크로키와 데생에 열중하며 한편으로는 미술 해부학을 독학해 자신만의 그림체, 단군이래 최고의 데생력을 일궈낸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접할 수 있는 것 또한 작품 맵의 특징이다. 모처럼 컨디션도 좋고 집중력도 살아났다며 즐거이 열중했으나 마지막 작업이 되어버린 ‘삼국지’ 유고 원고를 비롯한 여러 작품의 원화들도 전시된다. 연필 데생으로 80쪽가량 작업한 ‘삼국지’ 원고는 10쪽 정도가 펜이 입혀졌다. 또 석정현, 차성진, 송동근 등 후배 작가 14명이 오세영과 얽힌 인연과 에피소드를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들도 곁들여진다.큐레이션을 맡은 이상홍 만화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시대가 오세영을 낳고 시대가 오세영을 데려갔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1980년 중반 어른을 독자층으로 한 만화의 시대가 열리며 세계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작가를 탄생시켰지만 성인 만화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입지가 좁아진 채 급속히 웹툰 시대로 넘어오며 이러한 작가를 키워내지 못한 시대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공시 정보] 지방직 9급 공채 마무리 전략

    오는 6월 17일 필기시험이 치러지는 올 16개 시·도 지방직 9급 공채 시험의 원서접수가 지난달 21일 마무리됐다. 서울시는 같은 달 24일 별도로 9급·7급 공채 시험을 치른다. 서울신문은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지방직(서울시) 9급 공채 시험을 준비 중인 응시생들을 위해 30일 공무원시험 전문학원인 공단기의 도움을 받아 마무리 전략을 알아봤다. 행정학은 총론, 정책론, 조직론, 인사행정론, 재무행정론, 통제 환류론, 지방 행정론 7개 파트로 구성된다. 범위가 방대한 탓에 기본 요약집을 단순 암기하게 되기 쉽다. 하지만 기본서와 연계해 이해 위주로 학습하지 않으면 고득점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의 조언이다. 김만희 강사는 “마지막 한 달 동안에는 그동안 문제를 틀렸거나 정리하지 못한 부분을 기본서와 함께 보며 빈출 문제 위주로 공부해야 한다”며 “지방직 시험에서는 전 범위가 균형 있게 출제되기 때문에 특정 파트를 더 공부하는 것보다는 두루두루 보면서 정확도를 높이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한국사는 최근 지엽적인 순서를 묻거나 수험생에게 생소한 교과서 지문 또는 특이한 사료가 출제되는 추세다. 지난해 지방직 이외에 다른 공무원 시험에서도 역사적 사건의 발생 순서를 묻는 문제가 출제됐다. 문동균 강사는 “영조, 정조 등 재위 기간 동안 업적이 많았던 국왕의 경우 업적을 정확한 연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후반기 업적을 구분해 기억해 둬야 한다”며 “일제강점기, 무신 정권, 임진왜란 등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건이 일어난 시대는 자세한 연도와 사건 전후 순서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교과서에 비교적 자세히 서술된 독도·간도 등 현대사 부분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 최근 서울시와 국가직 공무원 시험에서는 정약용 여전제 관련 사료, 손진태 사료 등 기존에 접하기 어려웠던 사료가 등장했다. 최 강사는 “사료의 학습 비중을 높이기보다 출제될 확률이 높은 역사적 인물의 주장을 복합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사료에서 정확한 포인트를 찾아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동기 영어 강사는 “어휘·문법·생활영어는 기출 문제를 벗어나지 않지만, 독해는 매년 지문도 길어지고 내용도 추상화되는 추세”라며 “특히 서울시 9급 시험은 국가직이나 지방직에 비해 고난도 어휘와 시사적인 독해 지문이 출제되기 때문에 정답의 근거가 제시되는 지문을 파악하며 정답을 찾아 가는 과정을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한 해석만으로는 정답을 골라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의 경우 최근 4년간 기출된 문제를 토대로 수험생 개개인이 취약한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위종욱 강사는 “지방직이나 서울시 사회 시험은 지난 4월 치른 국가직보다 어렵게 나올 확률이 크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고난도 문제 풀이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어는 독해 지문을 빠른 시간 안에 읽어내는 훈련이 중요하다. 또 최근 어휘·한자가 빈출되는 추세다. 이선재 강사는 “한자성어는 반드시 공부하되 독음이 없는 상태에서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며 “국가직 시험에서는 독해 지문이 줄었지만 지방직 시험에서는 그동안 많은 비중을 차지해 왔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시 시험은 어휘·한자의 비중이 크다. 또 최근 지식형 문제가 강화돼 난도가 높아졌을 뿐더러 지엽적인 내용까지 출제된다. 이 강사는 “서울시 시험의 또 다른 특징으로 현대 문학사 문제가 꾸준히 출제된다”며 “현대 문학사는 공부를 하지 않고 기본적인 언어 능력이나 상식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시험 전에 반드시 전체 흐름을 짚고 위울 부분을 외워서 정리해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길섶에서] 급훈/박건승 논설위원

    ‘스스로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프라이’. 어느 고3 교실의 급훈(級訓)이란다. 무릎을 탁 치게 한다. 촌철살인이다. 초?중학교 시절 교실 칠판 위에 걸렸던 급훈은 으레 그 자리에 있는, 백지에 검은 정체(正體)를 담은 ‘빛바랜 액자’일 뿐이었다. 해가 바뀌어 새 학생과 선생님이 들어와도 변함이 없었다. 아무리 애써 봐도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최선을 다하자’거나 ‘하면 된다’는 것쯤이 아니었을까. 요즘엔 ‘오늘 흘린 침은 내일 흘릴 눈물’이라거나 ‘창밖의 선생님 지켜본다’, ‘엄마도 계모임에서 말 좀 해보자’와 같은 급훈은 철 지난 축에 든다고 한다. 그 자리를 ‘눈 떠’라거나 ‘미(美)쳐보자’, ‘쟤 깨워라’와 같은 임팩트 넘치는 급훈이 대신하는 모양이다. ‘칠판 보기를 공유 보듯’,‘교과서는 여자친구’?. 학생들과 선생님이 머리를 맞대고 정해서인지 내용이 톡톡 튄다. ‘더이상 미룰 수 없다. 너의 대학 나의 결혼’. 어느 노총각 선생님이 제자들의 대입 성공과 자신의 결혼을 함께 기원하며 만든 급훈이란다. 그 선생님과 학생들의 꿈이 올해에는 꼭 이뤄지길! 전국의 모든 고3들의 소망도 함께. 박건승 논설위원
  • [최준식의 거듭나기] 중화 문명의 정수는 한국에

    [최준식의 거듭나기] 중화 문명의 정수는 한국에

    얼마 전 중국의 습근평(習近平) 국가주석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나는 중국인들의 이름을 한국 발음으로 읽는다. 그들도 내 이름을 중국 발음인 ‘췌이쥔쯔’라고 발음하기 때문이다). 이 발언에 많은 한국인들은 화들짝 놀라면서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나는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중국인들은 그 내막을 알지 못한 채 한국의 전통문화는 다 중국에서 갔다고 생각한다. 어떤 중국인은 ‘한국인은 다 중국인이다. 왜냐하면 한자로 표기되는 중국식 이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 말은 반은 맞는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대단히 고유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빼도 박도 못하게 중국식 이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전 세계에 이런 식의 이름을 쓰는 민족은 중국인 외에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또 중국인들은 ‘한옥은 다 중국집이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면 한국인들은 또 깜짝 놀랄 것이다. 아름다운 한옥이 중국집이라니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말이 맞다. 한옥의 양식은 중국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고궁에 관광 온 중국인들은 고궁의 건물들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다. 자기들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면 한옥은 중국집과는 판연히 달라진다. 온돌과 마루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저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도 일본 고대 문화는 다 한국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지 않는가? 사실 우리들은 중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빌미를 많이 주었다. 특히 조선의 사대주의는 심한 감이 있다. 그런 예는 수없이 많은데 가령 조선의 교육제도가 그렇다. 조선의 양반들은 태어나면 중국식의 이름을 받고 7세가 지나면 한문으로 된 중국 교과서로 평생을 공부한다. 천자문부터 소학, 통감, 사서삼경 등은 모두 중국 교과서이지 않은가.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교과서는 아주 제한적으로만 사용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은 조선 사람인데 머리는 중국인처럼 행세했다. 그런 그들이니 중국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고 부모처럼 섬겼다. 이런 조선 사람들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우리를 도와주었다고 그 은혜를 잊지 못해 창덕궁 후원에 제단인 대보단(大報壇)을 만들어 놓고 파병해 준 신종을 조선 말까지 제사 지냈다. 그러나 명이 군대를 보낸 것은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군의 중국 침공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또 병자호란 때에는 명나라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조선의 사대부들은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고 백성들이 마구 죽어나가고 포로로 몇 십만명이 붙잡혀 가는데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지 않았던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중국인들은 한국을 속국처럼 생각한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문제는 우리이다. 중국과 맞설 때 경제나 정치는 밀리기 쉽다. 중국의 덩치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면에서는 외려 우리가 중국에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미 한류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전통문화에서도 한국은 중국에 밀리지 않는다. 한국은 중화 문명의 진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공산주의 혁명을 하면서 팽개친 그들의 전통문화는 그 정수가 다 우리에게 있다. 공자 제사 지내는 문묘제례가 그렇고 종묘제례가 그렇다. 그리고 주자가례를 따라 장사 지내고 제사 지내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불교도 중국 불교의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한국이다. 중국은 이런 문화를 창조했지만 그것을 보존하고 발전시킨 것은 우리이다. 이 면에서 중국인들은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인들을 대할 때에 그들이 훌륭한 문화를 만들어낸 것을 칭송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켜온 우리 자신을 당당하게 내세워야 할 것이다. 그래야 ‘윈윈’이 된다.
  • 美 교민 11만명 백악관에 ‘동해 병기’ 청원

    美 교민 11만명 백악관에 ‘동해 병기’ 청원

    11만명에 달하는 미국 교민이 동해(the East Sea)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하는 미국 연방정부에 대해 두 가지 표기를 병기해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의 청원서를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 제출했다고 미주 한인의 목소리 등이 전했다. 이는 24일 모나코에서 동해 표기를 국제 표준으로 채택하는 문제 등을 다루는 국제수로기구(IHO) 총회가 개막한 것과 시기를 맞춘 것이다.이번 청원과 서명 작업을 주도한 워싱턴DC와 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 한미여성재단, 미주 한인의 목소리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 버지니아주 폴스처치에 있는 버지니아주 한인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서명은 지난 3월부터 미 전역에 사는 우리 동포를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전날까지 10만 8300명이 청원서에 서명했다. 이들은 또 지난 20일에는 일본과 북한을 제외한 IHO 회원국 전체에 ‘동해 병기’를 촉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1929년 IHO의 첫 국제회의 이후 세계 모든 나라의 지도, 교과서, 출판물에는 우리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해 오늘날까지 배우고 가르치며 사용하고 있다”면서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72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우리는 ‘동해’라는 바다를 되찾아 오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사드, 박근혜, 국정교과서... 전주서 ‘영화 표현의 해방구’ 열린다

    사드, 박근혜, 국정교과서... 전주서 ‘영화 표현의 해방구’ 열린다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슬로건을 내건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가 27일 개막한다. 개막작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몸과 영혼’을 비롯해 전세계 58개국 229편(장편 179·단편 50)의 영화가 상영된다. 역대 최대 규모다. 헝가리 일디코 엔예디 감독이 연출한 개막작은 정신이 미숙한 여주인공과 팔이 불편한 남주인공이 몸과 영혼의 불균형 속에서도 서로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며 올해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차지한 작품이다. 폐막작은 ‘워터보이즈’와 ‘스윙걸즈’로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친숙한 일본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서바이벌 패밀리’로 정해졌다. 대도시 정전에 아버지의 시골 고향으로 자전거를 타고 따라 나선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도시 문명의 허술함을 풍자한 작품이다.슬로건에 걸맞게 사회 이슈를 정면에서 직시한 작품이 다수 포진했다. 원래 독립·예술 영화 축제 컨셉으로 출발한 전주영화제는 최근 표현의 자유를 위협받았던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을 지켜보며 표현의 자유의 해방구를 자처하며 여타 영화제와 차별화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 사드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처음으로 조명한 작품으로 알려진 다큐멘터리 ‘파란나비효과’(감독 박문칠)가 한국 경쟁 부문을 통해 공개된다. 지난해 7월 경북 성주가 사드 배치 적격지로 결정되며 시작된 반대 투쟁을 담은 작품이다. 코리아시네마케이프를 통해 선보이는 열혈 박사모 회원의 사고 방식을 해부하며 ‘박근혜 신화’가 어떻게 생겨났고, 또 몰락했는지 집중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미스 프레지던트’(감독 김재환)와 ‘우리는 왜 21세기에 국정교과서를 강요받아야 하는� ?遮� 질문을 던지며 국정교과서 논란을 짚어보는 다큐멘터리 ‘국정교과서’도 눈에 띈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백승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정지영 감독의 아우라픽처스에서 제작했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N프로젝트’(감독 이창재)도 주목된다. 국내 정당 최초로 국민 참여 경선제를 도입한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지지율 2%의 꼴찌 후보 노무현이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과정을 조명한 작품이다. 새달 6일까지 전주 영화의 거리 일대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지난해 도입한 야외상영장이 업그레이드된 점이 특기할만 하다. 날씨 영향으로 영화 상영이 취소됐던 경험을 거울 삼아 우천에도 아무 문제가 없도록 대형 텐트를 활용한 돔 형태의 야외상영장을 꾸린다. 이른바 ‘전주돔’에서는 개·폐막작이 상영되고 각종 공연과 관객 파티가 이뤄질 예정이다.그래픽 디자이너 100명이 디자인한 상영작 100편의 포스터를 영화의 거리 곳곳에 전시하는 ‘100 필름, 100 포스터’도 영화 팬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제에 방문한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영화제 관계자는 “어떠한 외압에도 표현의 자유를 사수하는 영화인의 자세를 보여주는 작품은 물론, 대중성을 갖춘 작품까지 두루 만나볼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32. 내 남친도 개저씨?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32. 내 남친도 개저씨?

    ‘레드 준표’ 홍준표 아저씨가 ‘집에서 설거지를 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하늘이 정해놨는데 여자가 하는 일을 남자한테 시키면 안 된다”고 말했다. 기가 차서 코가 막히는 발언 이후에는 뜬금 ‘돼지 흥분제’ 논란이 일었다. 드디어 귀까지 막혔다.그런가 하면 그 목사님 같던 문재인 아저씨도 우리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말을 했다. 북한 ‘미녀’ 응원단에 대해 “완전히 자연미인이더라”고 했고 그 즉시 ‘여성 비하’ 논란이 일었다. 이 땅에 살면서 너무도 자주 듣는 ‘개저씨 드립’들이지만 (돼지 흥분제 얘기를 빼고) 이번에는 아무도 가만 있지 않았다. 심상정 언니는 TV 토론에서 “여성을 종으로 보지 않으면 그런 말이 나올 수 없다. 모든 딸들에게 사과하라”고 호통쳤고 그 말에 홍 아저씨는 ‘깨갱’ 했다. 문 아저씨도 사과했음은 물론이다. ◆ 비단 ‘개저씨’ 들 뿐 아니라… 비단 이게 개저씨들만의 일일까. 내 사랑스런 남자친구로부터도 종종 이런 말을 듣고, 그 때마다 밥맛이 떨어지곤 한다. 복수의 남자친구들로부터 들은 말은 이런 식이었다. “자기야~ 나랑 결혼하면~ 집안일 많이 도와줄게.”“도와줘? 같이 하는 게 아니라 도와줘?”“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이 잘못됐는데…” 그 순간, 더는 말을 섞기 싫은 상태가 돼 버렸다. 연애만 8년차인 선정릉시라소니(30·여)는 연애 6년차쯤 됐을 때 처음 만난 남자친구의 어머니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 “우리 ○○이 방 청소는 좀 해주니?” 아니, 댁네 아드님 방 청소를 왜 제 친구가 하죠? ‘젠더’니 ‘남혐’이니 ‘여혐’이니 하는 이슈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때는 역시 지난해 5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였다. 프로야근러(26·여)도 그 즈음 남자친구와 자주 싸웠다. “원래는 정치적으로도 크게 이견이 없었는데 강남역 사건 이후로 엄청 갈렸어요. 저는 그거뿐만 아니라 자주 일어나는 여성대상 범행이 엄연히 ‘힘없고 안 달려드는 여자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남자친구는 ‘그냥 범인이 미친놈이다’라고만 생각하니 답답했고...”검스냐살스냐그것이문제로다(30·여)는 남자친구와 예능 프로를 보다가 왕왕 싸웠다. “갑자기 TV 잘 보다가 여자 연예인들 보고 싼티 난다거나, 동기 여자애 보고 쟤는 기가 세 보인다는 둥 옷 입는 게 요란해서 진짜 별로라는 둥. 그래서 사람한테 싼 티가 뭐냐고 했더니 ‘남자들이 말하는 여자 싼 티는 저렴한티...?’ 이 지랄함.” 검스 말마따나 사람한테 ‘저렴한 티’라는 건 대체 뭔가. 쉽게 줄 것 같다, 이런 뜻인가. 비슷하게 나도 가죽 자켓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세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는 스스로 복장에 자기 검열을 하게 됐다. 가령 소개팅에 나갈 때 볼드한 반지는 뺀다든지 (나는 덕지덕지 반지를 끼는 걸 좋아한다), 레드 립스틱은 바르지 않는다. (나는 쥐잡아 먹은 입술을 좋아한다). 그러고보니 남자들이 싫어하는 건 다 하는 것 같다. 아무튼.   ◆ “풀었다기보단 묻었다” 딱히 늘어놓기도 귀찮게 숨 쉬듯이 접하는 이런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팩트폭력이 그러하듯,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의 역사에 남자친구가 한 줌 더 한다고 생각하면 더욱 뜨악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물론, 내 남자친구가 한국의 가부장제 속에서 자랐으며, 여성으로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게 있으니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야근러는 말했다. “풀었다기보단 묻었다”고. “싸우는 것도 버거운데 그 이상으로 상대방이 너무 한심해지고 싫어지더라고요.” 나도 그랬다, 그냥 툭, 말을 안하게 됐다. 더 이상 말을 붙여서 상대가 얼마나 한심하고 둔감한지를 확인하고 싶지 않으니까. 뭇 여성들의 페미니즘 실용서로 불리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저자 이민경씨는 이해를 할 각오가 안돼 있는 남자들을 향해 굳이 애써서 이해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왜 오랜 피해의 역사를 가진 사람이 구구절절 기득권을 설득시키려 들어야 하냐는 말이다.   ◆ “가서 페미니즘 공부 좀 더 하고 와~” 그런 점에서 최근에 봤던 한 커플은 매우 쿨했다. 둘은 ‘젠더’니 ‘남혐’이니 ‘여혐’이니 하는 얘기로 왕왕 싸웠댔는데, 급기야 여자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페미니즘 책 좀 더 보고와. 그리고 나서 나랑 얘기해.” 읽고 나서 6개월 뒤에 얘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공부 더 안하겠다는 남자와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더라도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여자친구가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에 대해 더 알고 싶지 않다는 뜻과 일맥 상통하니까. 부부들의 끝이 없는 논쟁 거리 ‘가사 분담’과 관련해 결혼 2년차 호인(30·여)은 가사 분담표를 만들었다고 했다. 각자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게 이들 부부 가사 분담표의 모태다. 이에 따라 요리는 호인의 몫이 되었고, 보통은 그 날 그 날 호인의 의지에 따라 요리를 한다. “전에는 한 번 오빠가 냉이된장국을 끓여 달래는데 ‘냉이 다듬는 거 귀찮아서 안 돼’ 했거든. 그랬더니 어느 날은 퇴근했더니 뭘 조신하게 다듬고 있길래 봤더니 냉이를 다듬더라구. 그렇게까지 하는 데 어떻게 안 해줘.” 그날 저녁 메뉴는 냉이된장국이었다. 가사 분담표를 만든다거나, 데이트 통장을 만드는 일 등은 누군가에겐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일일지 몰라도 일견 ‘필요한’ 일이다. 어차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이런 부자연스러운 기제가 필요하니까. 손아람 작가는 “여성에 관한 모든 핸디캡을 풀면 더욱 성역없이 연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 핸디캡을 푸는 과정에 기계적인 기제가 필요하다. 내 스스로 뭇 남성들 시선에 나를 가뒀던 지난 날을 반성하며, 다음 소개팅에는 가죽 자켓에 레드 립스틱, 볼드한 반지를 총출동 시켜 ‘상남자의 교과서’인 최민수 아저씨처럼 나가야겠다. (소개팅이 안 들어올지도 모르겠다.)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스무 살, 갓 상경한 꼬맹이는 십여 년 전 나온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로 연애를 배웠다. 드라마 속 ‘캐리’처럼 프라다 VIP가 된다거나, 마놀로 블라닉은 못 신고 살지만 뉴욕 맨하튼이나 서울이나 사람 사는 모양새가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다. 서른 즈음에 쓰는 좌충우돌 여자 이야기, ‘러브 앤 더 시티’다.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 일본, 외교청서에서 ‘독도 일본땅’ 주장…부산 소녀상 설치에 “매우 유감”

    일본, 외교청서에서 ‘독도 일본땅’ 주장…부산 소녀상 설치에 “매우 유감”

    일본이 올해에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담은 2017년판 외교청서(한국의 외교백서에 해당)를 내놨다. 일본 외무성은 25일 각의(국무회의)에 이와 같은 내용의 외교청서를 보고했다.일본 외무성은 특히 지난해 한국 국회의원 등의 독도 방문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용인할 수 없다”고 밝히는 등 도발적인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말 부산 소녀상 설치 이후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의 일시 귀국, 학습지도요령 내 최초 독도 일본 영유권 기술, 고교 사회과 전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기술 등으로 악화된 한일관계에 또다시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청서는 또 부산 소녀상 설치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항의했다. 2015년 12월 한일간 위안부 합의에 대해 “책임을 갖고 이를 이행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책무”라고 주장했다. 이는 유력 대선 후보들이 위안부 합의 재검토 등의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일본 정부의 ‘최종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합의’라는 주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외에서 온 편지] 태국 교육부의 전화 한 통… 한국어, 네가 자랑스러웠다

    [해외에서 온 편지] 태국 교육부의 전화 한 통… 한국어, 네가 자랑스러웠다

    윤소영 교육부 태국한국교육원장 2년 전 방콕에 있는 태국한국교육원 원장으로 부임해 새삼스럽게 놀란 게 있다. 바로 태국인들의 뜨거운 한국어 학습 열기였다.태국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대학은 40여곳에 이른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사설 학원도 적지 않다. 한국교육원에서 직접 운영하는 한국어 강좌는 1시간 안에 수강 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늘 인기가 높다. 2016년 말 기준 태국 중·고교생 가운데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수는 약 2만 5000명에 이른다. 이는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중·고등학생 수의 25%에 해당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대학생과 성인의 수까지 합하면 대략 태국의 한국어 학습자 수는 4만~5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태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 수가 2만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규모다. 태국에서의 한국어 학습 열기에는 ‘한류’의 힘이 컸다. 방콕에 온 지 석 달쯤 지났을 때였다. 태국 공립학교가 실시한 정규 태국인 한국어 교사 선발 면접시험에 면접관으로 참여했다. “왜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으로 공부하셨어요?” “제가 동방신기 팬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왜 한국어 교사가 되고 싶으세요?” “요즘 많은 학생이 한국 드라마와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데요, 한국어를 가르쳐 학생들이 제대로 한국의 드라마와 노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진심 어린 표정으로 또박또박 한국어로 답변하는 태국인 한국어 교사 지망생을 바라보며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한류가 거세다 해도 취미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도 아니고 정규학교 교사가 되려는 사람에게서 이런 답변을 들어서다. 이날 나는 ‘한류’의 종속변수로서 한국어 학습 열기를 실감했다. 그러면서 ‘만약 한류가 주춤하면 한국어 학습 수요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우려도 함께 들었다. 그날 이후 태국 내 많은 한국어교육 관계자들과 한국어의 미래에 대해 논의했다. 한류와 함께 한국어 학습 수요를 견인할 또 다른 동력이 필요하고, 이제는 한국어 학습자 수 증가보다 한국어 학습의 질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조언도 해주었다. 그래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게 된 것이 바로 태국 대학입시 과목에 한국어를 포함시키는 것과 태국 여건에 적합한 중등학교용 한국어 교과서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두 가지 목표 모두 태국 정부 차원에서 결단하고 실행할 문제로,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태국 교육부 관계자들과 태국 대학 한국어과 교수들이 참여하는 한국어 교육 발전 세미나를 꾸준히 개최하면서, 두 가지 사업 모두 궁극적으로 태국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그러던 중 지난해 6월 1일 아침, 마침내 태국 교육부의 지인으로부터 기다리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태국대학총장협의회에서 태국 대학입학시험에 한국어를 시험 과목에 포함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태국 공립학교에서 제2외국어 과목으로서 한국어의 위상이 급격히 올라갔다. 태국 교육부 기초교육위원회는 60여년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태국학생재능대회 외국어부에 한국어를 포함했다. 또 그동안 한국어를 제2외국어 과목으로 채택하기를 주저했던 명문 학교들이 한국어반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태국 최고 명문고등학교인 뜨리암우돔쓱사에서 2017년 1학기부터 한국어를 채택하기로 하면서 매년 5~10개 학교에 머물던 한국어 채택 신규 학교 수가 올해 25개로 급증했다. 태국한국교육원은 2017년 말 6권 발간을 목표로 태국 교육부와 한국 정부, 국내 한국어 전문가와 태국 대학 한국어과 교수, 태국 중등학교 한국어교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어 교과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교과서가 발간되면 태국 중등학교의 한국어 수업의 질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 [역사속 공무원] 아시아 한류의 원조 이수광

    [역사속 공무원] 아시아 한류의 원조 이수광

    中서 한시 교류한 베트남 사신 본국에 퍼뜨려 시집 품귀 현상 日·태국서도 “읽고 싶다” 대유행한류의 원조가 케이팝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조선시대에도 겸재 정선은 중국에서 그의 그림을 사러 온 중국인이 집 앞에 장사진을 칠 만큼 한류스타였다. 조선의 또 다른 한류스타로는 이수광이 있다. 조선시대 최초의 문화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은 베트남에서 한시로 특히 인기가 높았다. 1604~1607년 조완벽이 안남국(安南國·현재의 베트남)을 세 차례 방문하기 전까지는 양국의 사신들이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는 것이 교류의 전부였는데, 이수광은 당시 안남국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요즘 우리나라 아이돌 가수들이 중동처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에서 스타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이수광도 평생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안남국에서 최고의 인기인이 돼 있었던 것이다. 선조 30년인 1597년 30대 초반의 젊은 관료였던 이수광은 진위사로 베이징에 파견돼 50여일 간 사신단 숙소인 옥하관에 머물렀는데, 여기서 역시 안남국 사신으로 온 풍극관을 만났다. 서로 문재(文才)임을 한눈에 알아본 두 사람은 통역을 물리고 직접 필담을 나누며 시를 주고받았다. 귀국한 풍극관은 이수광의 한시를 널리 퍼뜨렸고, 머지않아 이수광의 시집은 돈 주고도 사지 못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안남국 유생들이 이수광의 한시를 밑줄 쳐가며 공부할 정도로 문학 교과서가 됐다. 이 같은 사실은 정유재란 때 일본에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다 무역상의 눈에 띄어 1604년부터 세 차례나 안남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조완벽에 의해 국내에 전해졌다. 이수광의 시가 얼마나 인기였는지는 조선왕조실록, 이지항의 ‘표주록’, 안정복의 ‘목천현지’ 등을 통해 전해지고 있으며,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상세히 소개됐다. 조완벽은 진주 출신의 선비로 세 번째 안남국 방문을 마치고 일본 교토에 있던 중 때마침 이곳에 쇄환사로 왔던 여우길 일행을 만나 10여년만인 1607년 귀국할 수 있었다. 고향에 돌아온 조완벽이 자신의 경험을 친구 김윤안에게 전했고, 김윤안은 정사신에게, 정사신은 이수광에게 이를 전해 이수광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20권의 책으로 정리한 ‘지봉유설’ 이문(異聞)편에 깨알 같은 자기 자랑을 실을 수 있었다.‘인조실록’ 19권 1628년 12월 26일자에는 이날 타계한 이수광에 대한 추모 글이 있다. “수광의 자는 윤경, 호는 지봉인데 약관에 급제하여…그가 사신으로 중국에 갔을 때 안남, 유구(현 오키나와), 섬라(현 태국) 사신들이 모두 그의 시문을 구해 보고 자기 나라에 유포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던 자(조완벽)가 상선을 타고 교지(交趾, 당시 안남국은 2개로 분열돼 내전 중이었는데, 그중 한 세력)에 갔었는데 교지인들이 그의 시를 내보이며 ‘그대는 당신 나라 사람인 이지봉을 아는가?’하였다. 이처럼 다른 나라 사람까지도 그를 존중하였다.” 실록에는 더 언급이 없지만, 20살에 일본에 끌려 온 조완벽이 이수광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안남인들이 몹시 실망스러워했다는 내용이 몇몇 문헌에 전해져 온다. 조선 사신이 이수광이 얼마나 인기스타인지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숙종실록’ 23권 1691년 12월 5일자에는 연경에 사신으로 다녀온 민암과 강석빈의 보고이다. 안남국 사신에게 이수광의 시를 알고 있느냐 물었는데, 능히 알고 있어 함께 암송까지 했다는 내용이다. 풍극관에게 시를 지어준 지 9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수광의 시가 안남국에서 인기였음을 확인한 것이다. 최중기 명예기자(국가기록원 홍보팀장)
  • [퍼블릭IN 블로그] 교육부의 찾아가는 정책토론회… 따끔한 ‘워치독’도 두렵지 않다

    정부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과 공무원들의 관계는 ‘창과 방패’에 견줄 수 있습니다. 기자들은 공무원들이 낸 정책자료를 독자들에게 보다 정확하고 알기 쉽게 전달하려 고민하는 한편 정책내용에 허점이 없는지도 꼼꼼히 살핍니다. 언론의 창끝이 살아 있어야 공무원들도 다음 정책을 마련할 때 좀더 주의를 기울일 테니까요. 감시자로서의 이런 역할을 하는 언론을 가리켜 ‘워치독’이라고도 합니다. 기자들의 공격이 공무원들로선 곤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공무원들은 기자를 애써 피해다니기도 합니다. 교육부가 지난달 6일부터 시작한 ‘찾아가는 정책토론회’는 이런 점에서 분명 칭찬받을 만합니다. 굵직한 정책을 내놓기 일주일쯤 전에 2시간 남짓 교육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토론회입니다. 교육부 담당 실장이나 국장이 30분 정도 정책을 설명하고, 기자들과 해당 부서 공무원들이 토론을 벌입니다. ‘교육격차 해소 종합대책’을 주제로 열린 1회 토론회는 이영 교육부 차관이 나섰고, 지난달 20일 열린 2회 토론회 ‘대학 창업 붐 조성 계획’에는 김영곤 대학지원관이 나왔습니다. 3회 토론회는 지난 3일 남부호 교육과정정책관이 ‘체육특기자 제도 개선 방안’을 주제로 열었습니다. 토론은 상당히 과격하게 진행됩니다. “근거가 부족한 것 아니냐”, “학부모들 입장은 생각도 않느냐”는 지적은 기본입니다.“이대로 발표할 거면 차라리 발표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어떤 다혈질 기자는 삿대질도 하고, 또 다른 기자는 책상을 탕탕 치면서 눈을 부릅뜨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과격한 토론을 교육부 공무원들은 오히려 반기는 눈치입니다. 이 차관은 “교육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심도 있게 설명할 수 있어 좋았고, 국민에게 전달해 주는 기자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생각지 못했던 지적을 해 줘 감사했다”면서 “중요 정책은 발표 전 기자들의 의견을 들어 최대한 수정·보완하겠다”고 했습니다. 기자들의 반응도 좋은 편입니다. “굵직한 정책에 대해 세부까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의견, “정책을 만든 공무원의 생각까지 파악할 수 있어 기사 쓰기가 쉬웠다”는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어떤 기자는 “교육부가 욕을 많이 먹었던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과정을 이렇게 알렸으면 참 좋았을 텐데…”라고도 했습니다. 토론회 아이디어를 낸 주명현 교육부 대변인은 “중요한 정책을 국민에게 전하는 최전선의 기자들에게 미리 이를 오픈하고 엇박자가 나지 않게 하려 시작했다”면서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 토론회에 대해 칭찬을 많이 했다”고 전했습니다. 문화부 대변인실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해 토론회를 계획 중이라는 얘기도 들립니다. 토론회를 거치더라도 정부 부처 출입기자와 공무원이 여전히 창과 방패인 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다만 마구잡이식으로보다 좀더 서로를 알고 맞서다 보면 교육부 공무원들, 언젠간 더 탄탄한 방패가 돼 있지 않을까요.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백제 불교 중심서 ‘천자의 땅’으로… 내포 1500년史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백제 불교 중심서 ‘천자의 땅’으로… 내포 1500년史

    부처가 깨달음을 이룬 인도 동북부 비하르주의 보드가야로 가려면 13㎞ 남짓 떨어진 거점도시 가야를 경유하기 마련이다. 가야에는 정각(正覺) 이후 부처가 처음으로 설법한 브라마주니 언덕이 있으니 보드가야에 버금가는 성지(聖地)다. 주변에는 팔리어(語)로 가야시사라는 산이 있어 부처 당시 초대형 사원이 지어졌다. 꼭대기가 코끼리 머리를 닮았다고 중국에서는 가야시사를 상두산(象頭山)으로 의역(意譯)하기도 한다. 코끼리는 석가모니 부처를 상징한다.가야산(伽倻山)이라면 경남 합천의 해인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충남 내포(內浦)의 가야산 역시 합천의 가야산을 뛰어넘는 한국 불교 역사의 중심지였다. 합천 가야산 정상은 해발 1430m 상왕봉(象王峯)이다. 내포 가야산 줄기 북쪽에도 해발 310m의 상왕산(象王山)이 있다. 조선시대 사찰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상왕산 개심사는 가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합천 가야산과 내포 가야산의 작명 원리는 다르지 않다. 인도의 가야와 보드가야, 가야시사는 부처의 수행과 깨달음, 그리고 설법이 이루어진 곳이다. 인도에서 실크로드, 중국을 거쳐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 조상들도 같은 상징성을 가진 성지를 갖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다. 내포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주변의 10개 남짓한 살기 좋은 고을을 가리킨다. 삽교천을 따라 바닷길이 깊숙하게 내륙으로 들어왔다는 지형적 특징이 고유명사가 됐다. 가야산 서쪽 서산시 운산면에는 개심사와 함께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 마애불과 백제 사찰 보원사의 옛터가 있다. 가야산 동쪽 예산군 덕산면에도 백제 거찰(巨刹)로 알려진 가야사가 있었다. 이름으로만 보면 가야사는 과거 보원사를 뛰어넘어 내포 가야산을 대표하는 사찰이었을 수도 있다. 가야사 옛터에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대에 걸쳐 천자(天子)가 나올 길지(吉地)’라는 지관의 말에 헌종 10년(1844)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무덤을 옮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2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는 흥선대원군의 아들과 손자가 고종황제와 순종황제에 오른 이후 퍼진 말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황제가 불과 2대에 그치고 나라가 망했으니 흥선대원군이 ‘2대천자지지’를 제대로 해석했어야 했다는 씁쓸한 우스개도 있다. 어쨌든 남연군 무덤에 서면 풍수지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과연 명당이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대원군이 가야사를 불태우고 아버지 무덤을 썼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대원군은 훗날 아들 명복이 보위에 오르자 건너편 산기슭에 새 절을 짓고 부처의 은덕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보덕사(報德寺)라 이름 지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퍼졌다. 하지만 가야사는 이미 폐사(廢寺) 상태였던 듯하다. 다만 남아 있던 석탑과 석등 같은 석물의 일부 훼손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한말의 개화파 문인 김윤식의 ‘속음청사’(續陰晴史)에서도 ‘남연군묘를 가야사의 빈터에 썼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대원군은 단순히 불교에 호의를 가진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 후원한 인물이었다. 집권 이전에도 영종도 용궁사를 원찰로 삼은 것은 물론 쇠퇴한 흥천사, 화계사, 보광사를 중창했다. 대원군은 ‘불교를 즐겨 좇았다’거나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우리라’는 글귀가 새겨진 인장을 즐겨 썼다고 한다. 조선 후기를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친(親)불교적 인사가 유서 깊은 대찰(大刹)에 불을 지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대원군이 불교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는 것은 보덕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구니 수도도량이어서 일반인 출입을 막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개방한다. 보덕사는 한마디로 남연군 무덤의 원찰이다. 대원군이 아버지의 극락왕생과 후손의 발복(發福)을 빌고자 지은 절이다. 이름처럼 자식을 왕으로 만들어 준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뜻이 아주 없지는 않았겠지만, 부수적이었을 것이다. 큰법당은 무덤의 원찰이니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다. 큰법당 앞에 바짝 붙여 지은 디귿자 모양의 대방(大房)은 충청도에서는 이례적이다. 폐쇄적인 구조의 대방은 내부에 다양한 용도의 공간을 두고 있다. 왕실 여인들의 출입을 전제로 한 공간이다. 대방은 서울 근교의 왕실 무덤을 수호하는 사찰에 주로 지어졌다. 보덕사는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성껏 지었다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비구니 사찰답게 아주 깔끔하게 관리하고 있어 절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절의 들머리에는 가야사 터에서 가지고 왔다는 화사석(火舍石)으로 다시 세운 석등이 있다. 가야사는 백제시대 겸익이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유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2012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발굴조사에서는 통일신라 시대 기와가 쏟아져 나왔다. 머리 부분이 없는 소조 불상도 10점 남짓 출토됐다. 고려와 조선 시대 건물 유구도 찾아냈다고 한다. 가야사 역사의 본격 재구성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발굴조사에서는 절의 흔적뿐 아니라 남연군묘의 제각(祭閣)이었던 명덕사(明德祠)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었다.특히 ‘가량갑’(加良岬)이라고 새겨진 통일신라 시대 기와가 눈길을 끌었다. ‘가량’과 ‘가야’(伽倻)는 과거에는 같은 발음이었던 듯하다. 가야국과 관련된 역사 기록에서도 ‘가량’과 ‘가야’를 혼용한 사례가 보인다. 가야사라는 이름은 ‘고려사’에 처음 나온다. 창건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사이 어느 시점에 가야사로 이름이 바뀌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는 가야사와 ‘가야갑사’(加倻岬祠)의 기록이 함께 보인다. 그런데 발굴조사에서는 일정한 두께로 깎은 돌로 조성한 유구가 확인됐다. 절의 시설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명산(名山)에 제사 지내던 흔적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계룡산 산신에 제사 지내던 중악단(中岳壇) 역시 사찰인 신원사 곁에 두었다. 잘 알려진 대로 남연군 무덤은 대원군에게 통상을 요구하고자 오페르트가 저지른 도굴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독일 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1868년 행담도에 1000t급 차이나호를 정박시킨 뒤 작은 배로 삽교천을 거슬러 구만포에 상륙한다. 일당은 덕산 관아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한 뒤 가야산으로 향했지만 남연군이 안장돼 있는 무덤의 회곽은 단단하기만 했고, 결국 간조 시간에 쫓겨 퇴각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국사 교과서에도 서술돼 있으니 역사적 의미는 각자 새기면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연군 무덤을 방문한 길이라면 오페르트 일행이 상륙한 예산 고덕면의 구만포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삽교호 방조제에 물길이 가로막혀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지만 삽교천 중류의 구만포는 내포의 중심 포구의 하나였다. 남연군 무덤에서는 자동차로도 20분 이상이 걸린다. 이 길을 걸어서 오갔을 오페르트 일당은 매우 조급했을 것이다. 구만포는 지금 한때 포구였다는 사실조차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황량하다. 그래도 내포의 역사를 더듬기에 구만포만 한 곳이 없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4차 산업혁명시대, 교육의 미래를 묻는다’ 토론회] “시속 10마일의 학교가 100마일의 기업에 대응하겠나”

    [‘4차 산업혁명시대, 교육의 미래를 묻는다’ 토론회] “시속 10마일의 학교가 100마일의 기업에 대응하겠나”

    이준식 시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에서의 국가 경쟁력은 우수한 인재 양성에 성패가 달려 있으므로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혁신 전략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면서 “교육부에서는 지난해 12월 4차 산업혁명의 도래에 대응하여 대한민국 교육이 2030년까지 나아가야 할 5개 방향과 이에 따른 22개 추진 전략을 포함한 ‘지능정보사회에 대응한 중장기 교육정책의 방향과 전략 시안’을 발표했는데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가져올 변화를 바탕으로 교육 정책의 방향을 크게 유연화, 자율화, 개별화, 전문화, 인간화로 나누어 제시한 바 있다“고 말했다. 토론회를 주관한 조승래 의원(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은 환영사에서 “지금까지의 교육 패러다임으로는 능동적 대응을 할 수 없다. 혼자서 공부하는 고립형 학습보다는 여럿이서 공유하는 개방형 학습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견해를 표출하고, 다양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연대·협력·소통에 기반한 문제해결 능력을 이끌어내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축사에 나선 정세균 국회의장은 “제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의 무대가 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접목과 융합이 곧 미래 준비의 핵심가치로 떠오르는 지금이야말로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해 심층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며 “오늘 이 자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혁신 방안을 모색하고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융복합 어젠다를 도출해내는 미래교육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성엽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 교육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교육 혁신을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 오히려 누리과정 예산 갈등, 국정교과서 강행 등으로 교육 현장이 갈등과 혼란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미래를 위한 교육 비전을 제시하는 그 어떠한 논의도 할 수 없었다. 이제는 더이상 시간적 여유가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혁신 방안을 모색하고 이를 다양한 학문분야에 적용 가능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창덕 안양대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도약과 성장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산업구조와 기업 운영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하며, 이를 지원하기 위한 국가 교육 육성전략과 관련 지원정책, 법,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로봇, 인공지능 등으로 인해 대폭 줄어들 수 있는 일자리를 대신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미래 사회변화 예측 분석을 토대로 중장기적인 일자리 창출 전략을 마련하고 일자리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육성할 수 있도록 현행 교육체계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석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저서 ‘부의 미래’에서 시속 10마일의 학교가 100마일로 달리는 기업에 취업하려는 학생들을 준비시킬 수 있겠느냐고 갈파했다. 그는 학교의 변화 속도는 시속 25마일로 달리는 정부 관료조직보다도 늦다고 지적했다”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능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의한 첨단 교수·학습방법을 일반화하고 학습 분석(Learning Analytics) 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학습을 실현하고 학문 간 융합 또는 모든 학문과 ICT의 융합, 그리고 협업을 통해 학습하고 이를 문제 해결에 활용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인성을 갖춘 ‘21세기 오디세이형 인간’을 양성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토론회를 후원하는 서울신문 대학발전연구소장 박성태 특임논설위원은 “정부와 학계는 물론 대선을 앞둔 후보자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4차 산업혁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구호와 선언만 난무할 뿐 알맹이가 없어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마치 새로운 정책과제를 발굴해 성과 위주의 정책수행을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정치적 구호에 매몰돼 성급하게 4차 산업혁명 대책을 추진하기보다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에 걸맞는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의 틀을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회 창립준비위원장인 신종우 신한대 교수는 미래융합교육학회 창립 배경에 대해 “일반대, 전문대 구분 없이 다양한 전공의 교수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창의성 융합 학문’이라는 거대한 교육 혁신의 틀을 창출해내기 위해 힘을 합쳤고 지속적으로 미래교육 보고서, 새로운 교수법 개발, 융합학과목, 융합학문 등을 개발하여 고등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자”고 주문했다. 박성태 대학발전연구소장 sungt57@seoul.co.kr
  • [방승언의 삐-급 문화 쪼개기] 나의 SNL은 이렇지 않아…‘풍자 후진국’의 비애

    [방승언의 삐-급 문화 쪼개기] 나의 SNL은 이렇지 않아…‘풍자 후진국’의 비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함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폭로되고, 그 주동자들이 나란히 구속되면서 그간 지속된 정부의 문화 불법검열 실태에도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갇힌 사람은 소수인데 자유로워진 것은 여럿이다. 4년 만에, 더 정확히는 9년 만에 비로소 돌아온 ‘표현의 해방’은 가장 일상적인 공간, 그러니까 주말 TV 개그프로 같은 곳에 먼저 찾아들었다. ●드디어 숨통 트인 개그계지난해 말 KBS ‘개그콘서트’에는 지금쯤 태블릿PC를 인류 최악의 발명품으로 꼽고 있을 모 인사가 나타나서 웃음을 줬고 tvN의 ‘SNL 코리아’에는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를 선택하는 소급적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던 젊은 여성이 등장해 조롱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이들 방송이 전파를 탔던 날 전국의 시청자는 어쩌면 정작 개그의 내용보다도 그 내용이 공공연히 방영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더 크게 웃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즐거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사회가 어쩌다 풍자의 신랄함이 아닌 공공연함 따위에 감탄해야 할 수준에 도달했는지 씁쓸히 곱씹어볼 일이기도 하다. ●같은 ‘SNL’이지만… 해외의 개그·예능계와 비교해보면 오랜만에 찾아온 우리의 해방감이 얼마나 소박한 것인지는 명확해진다. ‘SNL 코리아’의 원조 격인 미국 ‘SNL 쇼’만 봐도 그렇다. 1975년에 시작된 장수 예능 프로그램인 미국 SNL에서 정치풍자는 처음부터 주된 개그 요소였다. SNL이 정치인을 다루는 방식은 가혹한 편이다. 정치인의 평소 말투나 표정 등을 패러디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물이 가장 기피하고 싶을 이슈를 가차 없이 걸고넘어지는 직설적 어법은 대상의 정신적 급소를 가격하는 듯한 통쾌함을 선사한다. 최근 한 방영분에서도 미국 SNL은 할리우드 배우 알렉 볼드윈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풍자극을 연출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외계인이 미국을 침공했다는 설정으로 진행된 이날 콩트에서 트럼프는 흑인 병사들만 콕 집어 ‘변신한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며 평소의 인종차별주의적 면모를 뽐낸다. 진보성향의 캘리포니아 주가 초토화됐다는 보고에는 ‘그러면 내가 투표에 이겼다는 뜻인가?’고 되묻는 속물로 묘사되기도 했다.그런데 이날 방송에서 드러난 미국 SNL과 우리 SNL의 진정한 차이는 사실 트럼프가 다뤄진 ‘방식’보다는 그 ‘시점’ 쪽에 있다. 해당 에피소드는 트럼프 취임 두 달 후인 3월 초에 방영됐다. 이 방송에서 트럼프는 외계인 침공의 대책으로 황당하게도 석탄 에너지를 들먹이는데 이는 트럼프가 방송 몇 주 전에 “오바마 정부의 기후변화 대책을 폐지해 석탄 산업을 부활시키겠다”고 말했던 사실을 비꼬은 것. 우리라고 한들 ‘젊은이들은 모두 중동으로 가라’던가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사람은 혼이 비정상’이라는 등의 대단히 재미있는(?) 발언이 TV방송에서 버젓이 패러디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까. 트럼프가 ‘괴짜 대선후보’에서 덜컥 ‘현직 대통령’이 돼버렸다고 해서 입을 조심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미국 SNL의 태연함과 당당함은, 정치인 몇 명을 가볍게 풍자했다는 이유만으로 작가 교체 등 대대적 가위질을 당해야 했던 ‘SNL 코리아’의 비극적 운명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신성한 조롱과 모욕의 권리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 된 국가 대부분이 그렇듯 미국에서도 정치 풍자는 민주시민의 지극히 온당한 권리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런 ‘조롱의 권리’는 때론 모욕에 가까운 수준으로 강도 높게 행사돼도 억압받지 않는다. 하나의 극단적 사례로 미국에서 20년째 장수하고 있는 만화 ‘사우스파크’(South Park)를 들 수 있다. 여덟 살 어린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온갖 음담패설, 폭력, 광기가 난무하는 이 만화는 정치계, 종교계, 연예계, 경제계를 좌우구분 없이 거칠게 조롱하는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다른 유명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과 비교해보면 ‘사우스파크’의 극단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심슨 가족’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가 그저 외모 단장에나 신경 쓰는 한심한 정치인 정도로 묘사된다면, ‘사우스파크’에서 트럼프를 대변하는 캐릭터인 ‘허버트 개리슨’은 난민, 이민자, 범죄자 등 미국에게 거슬리는 모든 존재를 ‘손수 겁탈해서 죽이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미치광이다. 그럼에도 개리슨은 막대한 지지와 함께 당선된다.‘사우스파크’의 표현 방식은 이처럼 조롱 대상자는 물론 일부 시청자들까지 거부감을 느낄 만큼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사우스파크’의 극단적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논조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적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만약 정부가 ‘사우스파크’의 제작 관행에 모종의 압박을 가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여론의 성토는 당장 제작진이 아닌 백악관 쪽을 향할 확률이 높다. 현지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윤리적 가치는 과장을 약간 섞어 말하자면 일개 정치인보다 훨씬 더 신성시되는 대상이다. 이런 정치 상황에서는 정부의 민간 언로(言路) 통제란 그저 전체주의식 폭정에 다름없다. 실제로 트럼프는 취임 전 기자회견에서 특정 언론들을 ‘가짜 언론’이라고 일컬으며 이들의 질문 기회를 박탈했다가 무수한 비난을 받았다. ●놀릴 수 있는 것은 무섭지 않다 물론 정치풍자가 국내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문화인 것은 아니다. 1987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자신을 소재로 한 개그를 전면 허용해 많은 정치 개그 프로그램 탄생의 계기를 만들었고, 더 가까운 예로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도 무수한 ‘대통령 개그’가 유행했었다.더 나아가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들과의 토론에서 ‘(자신을 포함한) 정치인들에 대한 희화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 있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바 있다. 정치인 희화화를 억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오히려 적극 권장해야 한다는 박 시장의 말은 정치풍자 행위가 지니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함축한다. 희화화는 대상이 지닌 권위를 해체해 대상이 주는 두려움을 희석하는 작업이다. 박 시장의 말은 결국 ‘국민이 정치인을 두려워해선 안 되며, 오히려 그 반대여야만 한다’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의 재확인인 셈이다. 하지만 9년 전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한 풍자는 종적을 감췄었다. 뺄셈을 해보면 현재 중학생 정도의 나이인 청소년들은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기본원칙’을 공적인 영역에서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 기간 동안 정부에 대한 신랄한 농담은 인터넷에서만, 혹은 죽이 맞는 친구들 사이에서만 불온서적이나 음란물처럼 유통됐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에 이르는 이 시기를 우리는 흔히 자아가 확립되는 시기라고 이야기한다. 사석에서조차 정치를 함부로 논할 수 없었던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의 일부가, 2017년 현재에 이르러 대통령 비난 글 하나하나에 분노의 반박 댓글을 다는 장년으로 자라난 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불가침의 권위의식’과 ‘무비판적 맹종’으로 이뤄진 악의 순환 고리를 끊는 일은 어쩌면 가장 일상적인 공간, 그러니까 주말 TV 개그프로 같은 곳에서 먼저 시작될지도 모른다. earny@seoul.co.kr
  • 광진구 “얘들아, 즐토엔 역사여행 떠나자”

    광진구 “얘들아, 즐토엔 역사여행 떠나자”

    ‘이번 주말엔 아이들 데리고 어디 가지. 아이들에게 유익한 체험 프로그램은 없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이런 부모들의 걱정을 덜어 주고자 서울 광진구가 온 가족이 함께 여행하며 역사도 배우는 ‘가족과 함께하는 토요역사기행’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광진구는 “어린이들에게 교과서 속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부모와 함께하는 현장학습으로 가족 간 소통의 장도 만들고자 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며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11일 밝혔다. 초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4월부터 11월까지 상반기 4회, 하반기 5회 총 9회 진행된다. 45인승 버스로 정해진 장소를 이동하며 전문 강사가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체험학습도 한다. 회차별 40명씩 참가할 수 있다. 참가비용은 1인당 7000원이다. 구 홈페이지(www.gwangjin.go.kr)에서 신청한다. 오는 15일 1회차 프로그램은 ‘백제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주제 아래 충남 부여에서 시행된다. 백제 최후의 보루였던 부소산성, 삼천 궁녀의 전설을 간직한 낙화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인 궁남지 등을 둘러보며 백제 문화를 살펴본다. 29일에는 서울의 조선시대·근현대사 유적지, 다음달 20일에는 강화도 고려·조선시대 유적지, 6월 3일엔 경기 여주의 조선시대 유적지를 차례로 탐방한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어린이들이 역사 현장을 답사하고 체험하며 올바른 역사관과 인성을 함양하길 바라고,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을 통해 소중한 추억을 쌓으며 가족 간 사랑도 느껴 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공시 정보] 5급 공채 고득점자 3인이 말하는 합격 비결은 [  ] 이다

    [공시 정보] 5급 공채 고득점자 3인이 말하는 합격 비결은 [  ] 이다

    2017년도 국가공무원 5급 공개경쟁채용에 수험생 1만 628명이 응시했다. 그러나 1차 시험 합격자는 단 2352명(행정직 1843명·기술직 509명)으로 지난달 29일 확정됐다. 올해 5급 공채 채용인원이 338명인 만큼 최종합격하려면 앞으로도 7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올해 1차 시험 합격자의 평균점수는 83.54점으로 지난해 80.70점에 비해 2.84점이 오른 만큼 2차 시험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오는 6월 27일부터 치러지는 2차 시험의 진검 승부가 시작된 셈이다. 서울신문은 10일 지난해 5급 공채시험 합격자 가운데 성적 우수자 4명으로부터 합격 비결을 들어 봤다.# 단 하루도 책 안 놔 2010년 여름부터 5급 공채 시험(일반직렬)을 준비한 최일암(30)씨는 지난해 11월 최종합격했다. 2차 시험만 4번을 치렀다. 그런 최씨가 밝힌 2차 시험의 합격 비결은 출제자의 채점기준을 고민해 보라는 것이었다. 2차 시험은 답이 상대적으로 명확한 만큼 출제자의 관점에서 답안을 써야 고득점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씨에게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은 경제학이었다. 학부 전공이 겹치기도 했고, 경제학적 마인드가 체화돼 있어 교수님들이 원하는 답안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5급 공채 시험을 준비하면서부터 최씨는 교과서를 읽으며 미시·거시 경제학의 체계와 논리를 정립하고자 노력했다. 이후엔 문제를 많이 풀면서 응용능력을 키우고자 노력했다. 특히 기출문제를 여러 번 풀면서 고득점을 얻으려면 어떤 풀이방식이 적합한지 고민했다. 최씨에게 어려웠던 과목은 행정학이었다. 경제학과 달리 논리적 엄밀성이 낮은 데다 수리적으로 명확한 정답을 도출하는 게 아닌 글로 풀어써야 했기에 어려움이 컸다. 최씨는 우선 매일 신문을 읽으며 현실적 사례를 찾아 공부함으로써 구체성을 높였다. 규제 완화가 이슈일 땐 ‘신제도주의’ 이론에서 바라보고 정리하는 식이다. 최씨는 “다소 엄밀성이 떨어지더라도 어떻게든 아는 이론과 사례를 동원해 답안을 완결 짓는 훈련을 했다”며 “엄밀하고 명확한 답안을 쓴다기보단 이론을 통해 현실을 그럴듯하게 설명해 내는 스토리라인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단 하루라도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일요일에도 오전, 오후, 저녁 중 한 타임에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아 감각을 이어 갔다. 최씨는 “스트레스를 풀더라도 공부에 지장을 주는 행동은 삼갔다”면서 “수험생활이 길어지면서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힘들었지만, 합격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묵묵히 공부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 2차 준비 더 세게 2013년부터 5급 공채(일반직렬)를 준비해 지난해 합격한 연희정(25·여)씨도 행정학이 가장 어려웠다. 경제학과 달리 좋은 점수를 받는 방법이 무엇인지 터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읽으면 이해가 잘 됐지만, 정작 문제를 풀 땐 명확한 정의가 떠오르지 않아 문제였다. 그래서 연씨는 개념 노트를 만들어 틈날 때마다 읽어보고 암기했다. 다른 학생들이 쓴 모범답안에서 괜찮은 사례가 있으면 스크랩해 정리하기도 했다. 답안지를 쓸 땐 최대한 쉽게 풀어서 쓴다는 생각으로 자세히 설명을 했고, 논리적으로 명확하고 꼼꼼한 답안이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연씨는 2차 준비 기간엔 공부의 강도를 높였다. 1차 준비 땐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부하고 쉬었지만 2차를 준비하면서부터는 오전 8시에 공부를 시작해 저녁 10시에 귀가, 집에서 한두 시간 더 공부했다. 학원 수업은 인터넷 강의로 대신했다. 온종일 자습만 하면 느슨해지는데, 하루에 한 번은 인터넷 강의를 듣도록 스케줄을 짜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다. 스터디 모임은 아침 출석체크 겸 행정법 암기 스터디를 했다. 행정법을 매일 꾸준히 외울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됐다. 연씨의 수험생활 원칙은 친목 시간을 줄이고 공부 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었다. 남들이 보는 학습 자료는 나도 다 보고 시험장에 간다는 마음으로 공부했다. 그럼에도 정신적으로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해 잡념과 걱정할 시간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연씨는 “앞으로 남은 석 달을 매일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공부한다면 6월에는 최고답안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반복 또 반복학습 학부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진민(26)씨는 경제학에 흥미를 느껴 2013년 4월부터 5급 공채(재경직)를 준비했다. 재경직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경제학에 자신이 있었다. 이 밖에 자신이 있는 과목을 꼽자면 행정법이었다. 답안 작성 시 논리적으로 법적 쟁점을 하나씩 전개해 나가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공부를 할수록 답안이 유기적으로 구성되는 게 즐거웠다. 진씨는 우선 학원 강의와 반복 학습을 통해 행정법 전반을 빠르게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교과서와 사례집을 통해 이해의 깊이와 넓이를 넓히는 데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행정법 답안은 판례를 기반으로 구성된 사례를 적어야 하는 만큼 판례와 사안 포섭이 중요하다는 게 최씨의 설명이다. 진씨에게도 가장 어려운 과목은 행정학이었다. 공대 출신이기에 어려움은 더 컸다. 그럼에도 지난해 마지막 시험에선 60점대 중반 점수를 얻었다. 행정학 공부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 이유도 있지만, 대학교에서 진행된 교수 특강과 교과서 학습을 통해 행정학 흐름을 새롭게 이해하고 행정학 이론과 사례 정리를 위해 서브 노트를 작성한 게 도움이 많이 됐다. 재정학은 출제범위가 상당히 넓기에 폭넓은 공부는 필수다. 진씨는 이준구 교수의 재정학을 충실하게 공부하고 로젠(H. Rosen)이 쓴 재정학 등으로 내용을 보충했다. 또 수리적 보충이 필요해 전영섭·나성린 저자의 공공경제학 등을 공부했다. 마지막 시험에서 85점을 획득한 진씨는 “마지막 시험에서 풍부한 근거와 짜임새 있는 논증, 실증연구 제시 등을 기반으로 답안을 작성했다”며 “학원의 순환시스템에 맞추면 재정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운 만큼 재정학은 주도적으로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공부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2018년 영어교육 환경변화, 스마트 영어 학습법을 알아본다

    2018년 영어교육 환경변화, 스마트 영어 학습법을 알아본다

    2018년 초등 3학년부터 중학교,고등학교 영어교과 과정에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된다. 디지털교과서는 교과 내용과 풍부한 학습 자료, 학습지원 및 관리가 부각되는 기능이다. 이것은 창의 융합형 인재양성을 위한 질 높은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위해 개발, 도입되는 혁신적 영어학습 방식이다. 이에 따라 스마트학습시스템을 개발한 영어교육 전문 기업 잉글리쉬 무무의 스마트무무를 통해 새로운 영어학습 방식에 대해 알아본다. 스마트무무는 학교 영어교과 과정의 충실한 이행을 목표로 개발된 자기주도학습 방식의 영어완전학습 시스템이다. 따라서 플립러닝(Flipped Learning)학습법과 생각 키우기 학습법을 독자적으로 고안했다. 플립러닝 학습이란 교사가 사전에 학습 내용을 동영상으로 제작해서 학생들이 가정에서 미리 온라인으로 학습하게 하고 교실에서는 질의–응답, 문제풀이, 연습활동, 과제수행, 토론학습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기존 수업방식과 학습의 순서가 뒤바뀌어 거꾸로 학습이라 할 수 있다. 잉글리쉬 무무는 플립러닝 학습법을 영어학습 분야에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것은 디지털 학습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학습법으로, 말하기, 쓰기 학습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플립러닝체제에서는 교실에서 연습 중심의 수업만큼이나 가정에서 학습이 필수적이다. 영어에 대한 노출이 절대 부족한 현실에서 보다 많은 연습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 때문에 스마트무무는 학생에게 정해진 일정한 학습시간 외에도 더 많은 개인 학습으로 연습량을 늘려 연습의 일상화를 강조한다. 이른바 1+1학습법으로 영어로 말 잘하고 글 잘 쓰기 위해서 연습량을 더욱 늘렸다. 잉글리쉬 무무는 학습효과를 내기 위해 잉글리쉬 콘서트를 매달 지속해 운영한다. 이것은 학생이 익히고 연습한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발표하는 잉글리쉬 무무의 영어학습 방식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배운 내용과 연습 방법을 청중에게 강의를 통해 가장 정확히 알게 되며, 영어 사용에 자신감과 논리적인 표현력을 강화해 간다. 또한 잉글리쉬 무무에는 생각키우기 학습법이 있다. 스마트무무의 개발을 통해 학생들의 목소리 크기를 인식하고 기준에 맞는 큰 소리를 내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학생이 원어민의 소리를 듣고 큰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 학습으로 넘어갈 수 없어 듣기, 말하기 훈련에 효과적이다. 잉글리쉬 무무 관계자는 “학습 내용을 보고, 가리고, 떠올리고, 말해보며 생각을 키울 수 있도록 전 학습과정에 가림판 기능을 적용해 학습 내용의 집중과 기억 효과를 유지하도록 했다. 그리고 학생이 학습한 원리를 설명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스스로 촬영하여 교사에게 전송하는, 배운 것을 가르쳐 보는 선생님 역할 훈련이 있다. 이를 통해 학습내용의 정확한 이해, 확인과 발표력,자신감을 키워줄 것이다”고 밝혔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장래 또 만나 보세” 지키지 못한 김주열의 약속

    “장래 또 만나 보세” 지키지 못한 김주열의 약속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의 친필 메모가 발견됐다.전북 남원문화원은 1959년 김 열사가 남원 금지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동문 친구들과 함께 쓴 졸업 축하 글이 담긴 책자를 확보했다고 6일 밝혔다. 이 책자는 당시 김 열사의 금지중학교 동문이었던 박병금씨가 졸업을 앞두고 김 열사를 비롯한 친구와 후배들에게 받은 졸업 축하 메모 66매를 묶은 것이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서 추억박물관을 운영하는 박재호씨가 자료를 정리하다 발견해 남원문화원에 알려 왔다. 메모에 있는 바탕 그림은 친구 박병금씨가 그린 것이다. 김 열사의 글은 이 책자 16번째 장에 있다. 김 열사는 페이지 상단 오른쪽에 자신의 주소와 성명, 생년월일, 희망 등을 적은 뒤 “졸업을 축하한다. 사막을 걸어가던 사람이 오아시스를 만날 때를 생각하여 지금은 헤어졌을지라도 장래 또 한번 만나 보세. 군의 성공을 바라며”라고 썼다. 장래 희망은 ‘은행 사장’이라고 적었다.남원문화원은 “그동안 장래 희망이 교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던 김 열사가 마산상고에 진학한 동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김 열사는 자신의 별명은 따로 밝히지 않았다. 김 열사가 마산상고를 간 이유는 어머니 고향인 마산에 친인척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열사는 마산상고 1학년이던 1960년 3월 15일 당시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마산시민 부정선거 규탄대회에 참석했다가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김현식 남원문화원 사무국장은 “김 열사가 썼던 교과서 등은 남아 있으나 친필이 담긴 유품은 의외로 많지 않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발견자가 이를 남원 금지면에 있는 김 열사의 기념관에 임시 전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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