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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자살 클럽’의 충격

    자살을 도와 달라는 사람들이 있고 ‘수탁살인’(受託殺人)을 실행한 청년이 있다.이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연결되었다는 것은더욱 큰 충격이다.인터넷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인터넷 자살 커넥션까지 보게 되었다.일본에서는 이미 몇 년 전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땅에도 벌써 그런 것이 왔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대양 사건처럼 집단자살이 있었지만 매우 특수한 사례일 뿐이고평범한 사람들의 자살은 어느 경우에나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이번 사건을 보면,자살 희망자가 ‘자살 사이트’에 회원으로 등록하고 함께 자살할 사람을 구하거나 죽여 줄 사람을찾는다.양쪽을 연결하는 ‘도우미’까지 있다.한 마디로 ‘자살 클럽’이다. 죽음 특히 자살은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것이어서 문학작품에서 많이 다루어졌다.소설을 읽고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나왔을 때 유럽에서는 청년들의 권총자살이유행했다.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말 카뮈의 소설 ‘전락’을 읽고자살한 여고생이 여럿 있었다.감수성 예민한 일부 젊은이들이 허구와 현실을 분간하지 못해 범한 과오겠지만,그보다는 오히려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나 불우한 환경이 일차적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자살은 미화하거나 권장할 수 없다.또 남의 힘을 빌려 죽는 것은 자살이 아니다.아무리 자살을 원한다 해도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죽고 싶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수탁살인’청년의 말에서 심하게 뒤집힌 가치관을 볼 수 있다.생명 경시는 전통적 가치관의 퇴색과 가정 붕괴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서양의 개인주의와 달리 우리는 가족주의가 강했다.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훼손하는 것은 첫째 불효였다.서양보다자살이 적은 것은 그런 관념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살 클럽’의 회원은 모두 젊은이들이다.자살 가운데 많은 부분이 ‘사회적 타살’이라고 한다면,무엇이 이들을 좌절케 하고 자살로 내모는가를 살펴 봐야 한다.젊은이 자살 증가로 고민하고 있는 프랑스 정부는 2월4일을‘자살 예방의 날’로 올해 정했다.거기 전문가도 ‘가정의 부재’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자살 사이트에 대해서는 합당한 조치가 있을 것이지만,이번 사건을사회의 아픔으로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자살하려는 사람은 몇 차례 주위에 예고하며 마지막까지 마음 한 구석에서는누군가가 만류하기를 바란다고 한다.따뜻한 말 한 마디가 한 생명을구할 수도 있다. 박강문 논설위원 pensanto@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희망의 여정

    나는 산행을 좋아한다.산에 오르면 신선한 공기와 맑은 하늘,푸른숲….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대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산길을걷다 보면 어느덧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지나온 모습들을 돌이켜보면서 앞으로의 삶과 나아가 겨레의 진로까지 고민해볼 수 있는 사색의시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여정(旅程) 또는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한다.이는 여행이나 등산이 도달해야 할 어떤 목적지를 미리 정하고 그것에도달하는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인생도 어떤 목표를 향한 부단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희망의 새 천년 새로운 세기와 함께 남과 북은 화해와 협력,평화와통일을 향한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써 가기 위한 출발점에 서 있는 우리로서는 ‘시작’이란 말이 함축하고있는 의미와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시작’은 언제나 우리에게 설렘과 희망을 안겨주게 마련이다.그러나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다”고 말했듯이 처음부터 그릇된길로 들어서면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가 목표한 결과에 도달할 수 없다는 지혜를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난 55년간 냉전의 굴레 속에 갇혀 있었다.이제 겨우 평화와 번영을 향해 첫 걸음을 떼어 놓았다.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길을가고 있는 것이다.남북간에 진행되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경의선 철도 연결과 경제협력 4대 합의서 타결 등이 바로 그것이며,이는 우리가 그동안 북측에 그토록 요구했던 일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혹자는 “빠르다” “길을 잘못 든 것 아니냐”며 시작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호흡을 가다듬고 변화하는 역사의 흐름을 냉정히 파악해야 한다.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세계적 변화 속에서우리는 민족의 미래를 위해 최선의 선택으로 마땅히 시작을 한 것이다.멀리 내다보면서 자신감을 갖고 분명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산을 오르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듯이 인생도 많은 변화와 기복을 겪게 된다.남북이 하나 되어 가는 긴 여정에서 우리는 적지 않은 우여곡절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이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인내와 노력,그리고 치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그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은 많고,갈수록 길은 멀게만느끼게 될 것이다.그러나 결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자신의 체력에맞게 산을 올라야만 중도에 포기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함께 걷고 있는 화해와 협력,평화와 통일의 길은 우리 민족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스스로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인생이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이듯 민족 개개인에게 주어진 역할을충실히 수행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그럴 때 평화와 통일이라는 정상은 어느새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가고 있는 길은 더 이상 ‘외로운 여정’이 아닌 ‘희망의 여정’이 될 것이다.남과 북은 든든한 동반자로서 서로에게 다가서고 있다. 朴在圭 통일부장관
  • 3色 뮤지컬 입맛따라 골라보기

    순수하지만 심약한 청년 베르테르의 슬픔에 동참할까,뮤지컬계의 전설적 안무가 밥 포시의 삶을 엿볼까.아니면 소낙비처럼 쏟아져내리는리듬과 비트에 온몸을 맡겨볼까…. 늦가을 찬바람에 스산해진 마음을달래줄 3가지 색깔의 뮤지컬이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세미클래식, 재즈,타악연주 등 음악 장르도 제각각이라 입맛따라 골라보기에 안성맞춤. ◆베르테르 약혼자가 있는 아름다운 여인 롯데를 사랑하다 끝내 권총으로 자살하고 마는 청년 베르테르.독일 문호 괴테가 창조해낸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이 뮤지컬 무대에서 새롭게 태어난다.토탈퍼포먼스그룹 갖가지가 10일부터 연강홀에서 공연하는 창작뮤지컬 ‘베르테르’는 사색의 편린으로 가득한 편지글 형식의 원작을 토대로 베르테르,롯데,알베르트의 삼각관계를 재구성해 가슴시린 사랑이야기로 펼쳐낸다. 대사는 거의 없이 40여곡에 달하는 노래가 중심인 오페레타 형식인데연세대 정민선교수가 작곡하고,5인조 실내악단이 라이브로 연주하는서정성 강한 음악들이 귀에 착 감긴다.뮤지컬배우 서영주,이혜경,김법래가 젊은날의 순수한 사랑에 사로잡힌 주인공들을 연기한다.“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잊혀진 사랑의 원형을 되새기는 따뜻한 무대”라는 게 연출자 김광보의 말.12월3일까지(02)708-5001◆올 댓 재즈 60∼70년대 미국 뮤지컬계의 최고 흥행가로 불렸던 밥포시의 삶을 재조명한 뮤지컬.포시는 이야기 중심의 뮤지컬에서 벗어나 음악과 춤을 전면에 내세운 독특한 구성으로 인기를 모은 안무가겸 연출자이다.스타서치가 제작하는 ‘올 댓 재즈’는 포시가 안무하고 연출한 뮤지컬넘버 중에서 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레퍼토리17곡을 골라 엮은 것.‘미스터 댄서’‘포시즈 월드’‘디 엔터네이너’등 주옥같은 노래와 춤이 1시간30분동안 펼쳐진다. 국내 뮤지컬 안무 1세대인 한익평에서 설도윤 이상호 서병구 주원성에 이르기까지 뮤지컬 안무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윤복희,양소민,임춘길 등 출연.22∼12월6일 LG아트센터.(02)515-2890◆스텀프 뮤지컬 퍼포먼스 ‘난타’의 원조로 곧잘 인용되는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최대 히트작‘스텀프’가 96년 내한공연때 전회매진을기록한 데 힘입어 이번에 다시 초청됐다.“모든 것에는 리듬이 있다.모든 것에는 음악이 있다”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로 출발한 스텀프는빗자루, 쓰레기통,나무막대기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악기로 변모시키는 독창적인 무대구성으로 관객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7년째매진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티켓관련 이벤트도 다채롭다.11일까지 예매관객에 한해 10% 할인혜택이 주어지고,인터넷경매업체 옥션에서는 13일까지 티켓 경매를 실시한다.28∼12월10일,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02)580-1300이순녀기자 coral@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22)나그네살이

    *우리 입맛에 꼭맞는 쌀요리 '밀라노 리조트' 일미. 밀라노는 유럽 북쪽과 서쪽으로 통하는 중심에 있기 때문에 들어갈때나 나갈 때에도 기차를 갈아타기가 편리한 곳이다.밀라노는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접경 지역인 롬바르디아 지방의 대도시인 셈인데 그래서인지 버터 치즈 같은 낙농품과 쇠고기 돼지고기 가금류 같은 육류요리가 다양하고 특히 우리네 입맛에도 맞는 쌀 요리인 리조토가 유명하다.밀라노의 디자인은 뉴욕이나 파리를 앞서는데 거리에는 예쁘고 세련된 아가씨들이 넘친다. 밀라노식 토르텔리와 라비올리는 말하자면 우리네 만두와 같은 음식이지만 수프처럼 주요리가 나오기 전에 먹는 파스타의 일종이다.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다지거나 뭉근하게 오랜 시간 익혀서 크림처럼 만들어 갖은 양념과 파마산 치즈로 조미하여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서속을 넣어 뜨거운 육수에 담아낸다.먹어보면 영락없는 우리네 만두국이다. 밀라노의 쌀 수프는 우리 입맛에 맞아서 우연히 먹어 보고는 떠날 때에도 일부러 찾아서 먹었을 정도였다.샐러리,당근,호박,데쳐서 씨를뺀 토마토,감자,파슬리,마늘,돼지고기 삼겹살 등을 잘게 썰어서 준비한다.팬에 잘게 다진 고기와 양파와 잘게 썬 삼겹살을 넣어 볶다가바실리코 잎과 샐비어 잎이며 완두콩이나 강낭콩을 넣고 함께 볶아준다.냄비에 물을 붓고 위의 것들을 간하여 오랜 시간 감자가 뭉개지도록 끓인다.국물이 꺼룩해졌을 때 양배추와 쌀을 넣고 좀 더 끓여서 파마산 치즈를 뿌려서 낸다. 쌀로 만드는 음식으로 이태리 전국에 걸쳐서 각 지방의 특성을 살린리조토가 있다.리조토는 이를테면 쌀죽이나 볶음밥 같은 식이 대부분이다.수제비나 밀가루 경단 비슷한 뇨키와 리조토를 별 재료없이도간단하게 조리해 먹을 수가 있는데 내가 베를린 시절에 이태리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유학생 친구에게서 배운 것이다. 밀가루와 소금 그리고 버터와 파마산 치즈 가루만 있으면 된다.소금에 간하여 밀가루 반죽을 해 놓는다.반죽을 조금씩 동그랗게 떼어 내어 끓는 물에 떨어뜨려 삶아낸다.뜨거운 경단(뇨키)을 녹인 버터로버무리고 그 위에 파마산 치즈 가루를 뿌려서 낸다. 쌀과 버터 파마산 치즈와 달걀만 가지고 맛있는 리조토를 만들어 먹을 수가 있다.쌀은 소금 친 끓는 물에 삶는다.접시에 녹인 버터와 파마산 치즈와 달걀 노른자를 놓고 삶은 쌀을 건져서 뜨거운채로 살살섞어서 먹는다. 괴테는 이태리 기행에서 베네치아의 인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내가 타고있던 배에 첫 번째 곤돌라가 다가왔을 때 나는 이십 여년쯤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장난감이 생각났다.아버지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다가 아름다운 곤돌라 모형을 사왔는데 내가 그것을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허락했을 때 나는 매우 기뻤다.맨 처음 다가온 곤돌라의 그 빛나는 철판 뱃머리와 검은 선체가 모두 오랜 친구처럼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안내자도 없이 동서남북의 방위만을 확인하면서 도시의 미로 속으로들어갔다. 도시는 크고 작은 운하들이 이리 저리 교차되고 있지만 그 위로는 크고 작은 다리들이 연결되어 있었다.이 도시 전체가 얼마나 좁고 번잡한지는 직접 보지않고는 상상하기 힘들다.골목의 폭은 대개 두 팔을벌리면 닿을 정도였다.아주 좁은 곳에서는 두 팔을 옆구리에 대고 있으면 팔꿈치가 닿는다.물론 가끔 가다가 좀 넓은 길도 있고 여기 저기 작은 광장도 있긴 하지만 비교적 모든 곳이 좁다고 할 수 있다.”200여 년이 훨씬 지난 오래 전의 묘사였지만 지금도 베네치아는 그때와 거의 변함이 없다.내가 묵었던 운하 옆의 펜시오네 뒷편은 이곳의 택시인 곤돌라가 모이는 정류장이었는데 밤 늦게까지 사공들이 떠드는 소리와 높다란 테너의 노랫소리로 조용할 때가 없었다. 괴테도 그들의 경박한 소음을 불평하면서도 나중에는 나처럼 유쾌한기분으로 바뀌면서 이태리의 대중과 친밀해진다. 여러 개의 섬으로 나뉘었지만 다리와 운하로 모두 연결된 베네치아의 중심지는 산 마르코 광장이었다.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베네치아에서는 산 마르코 성당이 있는 광장으로 통한다.베네치아의 뒷골목에는 크고 작은 여러 식당이 있지만 특히 중심가인 광장 뒷편의 아름다운 소상점들이 있는 골목길 사이 사이에 맛있는 식당들이 있었다.도시의 버스격인 바닥이 편편한 승합 배와 택시인 곤돌라로 연결되지만 누구나 미로 같은 골목과 광장과 다리를 건너 슬슬 걸어서 섬의 맨끝까지 가볼 수 있다. 내 친구는 베네치아를 짙은 화장을 한 나이 든 창부에 비긴적이 있다.퇴페적인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소리인지.특히 노을에 비낀 바다와 고색창연한 건물들을 다리 위에서 조망하면서 나는 그 말을 기억해 냈다. 육지에 붙어있긴 하지만 섬이나 마찬가지인 베네치아에서 맛있는 것은 무어니 무어니 하여도 생선과 가금류의 요리다.코스 요리를 보면리조토나 수프의 재료도 조개,맛,홍합,오징어,새우,가재,멸치,정어리 등속으로 풍요하다.스파게티도 해물로 한 것이 가장 맛있고 주요리도 생선이 으뜸이다.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먹기에 좋은 홍합탕과 굴은 나중에 뉴욕에 가서도 찾아서 먹곤 했다. 홍합을 마늘과 올리브 기름을 넣고 우리네 뚝배기 같은 질그릇에 끓여서 와인과 소금 후추를 넣어 양념한다.굴은 날 것 그대로 껍질을벌려 잘게 다진 파슬리와 올리브 기름과 레몬을 짜서 떨어뜨린 뒤에먹는다. 나는 지금도 집에서 토마토를 쓰지않고 싱싱한 낙지나 오징어새우홍합 조개 등을 올리브 기름으로 볶아서 마늘 월계수잎 파슬리로 양념하고 해물 육수와 화이트 와인으로 촉촉하게 한 다음에 국수를 넣어 올리브 기름과 파마산 치즈 가루로 끝을 낸 스파게티 마리나라를즐겨 만들어 먹는다.입맛에 따라서는 향신료를 넣을 때 붉은 고추를썰어서 함께 볶으면 매운 맛이 가미된다. 단테와 미켈란젤로,라파엘 같은 르네상스의 천재들을 낳은 피렌체는유럽이 아니라 동방 어느 벽지에 숨어있는 소읍내 같은 느낌이 드는곳이다.저녁 무렵에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앉아서 시내의 모든 교회와 둥근 돔이 장중한 두오모 성당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중세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공기와 바람 자체가평화 그대로였다.붉은 노을이 사라지고 어두워질 때까지 언덕에 앉아 있었다.나중에 로마에서 옛 폐허인 포로 로마노에 갔을 때에는 오히려 피냄새가 났지만. 빵 수프 리볼리타는 피렌체의 유명한 음식이다.토스카나 지방은 원래가 버섯과 육류의 꼬치 구이 요리를 알아준다.야채는 양배추나 샐러리 당근 감자도쓰고 양파 토마토 콩을 쓰기도 하는데 육수는 양고기 돼지뼈 소 내장을 쓰기도 한다.향신료와 양념은 마늘 파슬리 박하로즈마리 올리브기름 후추 등속을 쓴다. 재료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지만 빵 스프 종류는 위의 재료를 볶거나끓여서 육수를 내 수프 그릇 바닥에 빵을 담고 위에서 국물을 부은것이 공통점이다. 마늘 소금 후추 양념하여 올리브 기름이나 로즈마리로 맛을 낸 고기를 꼬치에 꿰어 돌려가며 굽는데 역시 재료에 따라 양고기 돼지고기메추리나 티티새 참새같은 작은 새를 굽기도 한다. 황석영
  • [굄돌] 아웃사이더

    최근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지칭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웃사이더란 글자 그대로 국외자(局外者) 혹은 열외자(列外者)라는뜻이다.다시 말하면 어느 사회나 집단에서 원만하게 아무런 탈 없이지낼 수 없는 소위 문제아이다. 우선,사르트르의 ‘구토’형 아웃사이더가 있다.부르주아 위주의 질서와 세속적인 관행이 너무나 불합리하고 혼란스러워 수용하지 못하는 유형이다.이들은 출구도 회로도 없는 이 사회에 구토를 느낀다. 둘째,카뮈의 ‘이방인’형 아웃사이더가 있다.이는 어머니가 어제돌아가셨는지 오늘 돌아가셨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이 세상에 대해철저하게 무관심한 유형이다.이들은 이 사회가 너무 무가치해 권태나환멸조차 느끼지 않는다. 셋째,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형 아웃사이더가 있다.이는창백한 얼굴로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끌 수 없다고 고민하거나,꿈속에서 자신을 껴안아 준 미소녀를 현실에서 발견하지 못하는데 대해 고민하다 절명하는 유형이다. 넷째,사드의 ‘소돔의 120일’형 아웃사이더가 있다.방탕자들이 120일 동안 자신들을 가두고 가능한 모든 성적인 유희를 탐닉하듯,사회의 어둠이나 악의 창조를 위해 사회와 격리되는 유형이다. 다섯째,비전의 아웃사이더가 있다.이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출발점에서 이내 일반이 이해할 수 없는 다른 경지로 뛰어올라 있는 유형이다.이들은 꿈꾸는 능력이 있어 외적 세계보다 자신의 깊은 본능과고독의 선을 따라가며,충실한 활동과 고차원적인 삶에의 욕구를 지니고 있다.일반인과 다른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이런 사람들을 비저너리라고 부르는데 아웃사이더의 진정한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유형이다.예술가들이 대표적으로 이 유형에 속한다. 김다은 소설가 추계예술대교수
  • ‘저서 100권 출간’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

    문학평론가 김윤식교수(서울대 국문과)가 최근 현장비평서 ‘초록빛 거짓말,우리 소설의 정체’를 펴내 100권째 저서출간이라는 의미깊은 기록을 세웠다.번역,편저,감수 저서까지 합하면 130권이 넘는 김교수를 찾아 책쓰기,문학작품 읽기,그리고 문학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언제부터 100권 째 책저술을 의식하게 되셨나요. 내가 일일이 세어 본 것은 아니고 홋데이란 일본 서지학자가 리스트를 만들어 알려줬어요.이미 90권이 넘어섰을 때였습니다.책 숫자가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많은 책을 쓸 수 있는 비결이라도 있는지.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많았던 탓입니다.왜 시간이 많았던가.사람은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첫번째는 자기 일만 하는,자기 일에만 몰두하는,‘고약한’ 유형이며,두번 째는 자기 일은 내팽개치고 남의 일,사회에 온갖 열정을 갖고 달려드는 사람으로 이도고약한 유형입니다.대부분의 사람은 이 두 유형의 중간을 적당히 걷고 있는데 나는 첫번 째 고약한 타입으로 자기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시간이많았고 그 시간을 책보는 데 쏟았던 것입니다. ◆책에다 남달리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인상입니다만. 그렇습니다.처음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해야겠군요.‘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학자나 비평가 ‘종자’들을 공동묘지에서 시체나 지키는 신세로 꼬집고 있습니다.책은 관이고 도서관은 공동묘지로 남이 쓴 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시체지기에불과하다는 것이죠.현실을 모르고,시체와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공부나 하고 있는,인간 축에도 못드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비꼽니다. 사르트르만큼 책을 많이 읽었던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스스로 여기서 뛰어나오려고 이렇게 책과 관련된 것을 비하하면서 참여문학의 기치를 높이 쳐든 것입니다.사르트르의 말에 나를 비쳐볼 때꼼짝없이 들어맞는다는 생각,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것입니다. ◆그래도 책을 쓴다는 건 대사회적인,적극적인 어떤 태도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간접적으로 뛰어나온다고나 할까.극도로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나도 알고보면 ‘문제있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문학 연구가 출발점입니다.1930년대의 카프 활동은 우리의 진정한 근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73년에 나온 본격적인 첫 책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는데 당시는 반공 이데올로기 절대우위의 유신 시절이었습니다.금기시되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연구했으니 판금도 당하고 보안사에서 내 책을 죄 가져갔습니다.그런데 그때 나한테 대단한 일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이건 착각이었습니다.이론이나 학문은 어떻든 회색의 세계입니다.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생명의 황금 나무는 녹색’이라고 말할 때의 녹색과 대비되는 회색입니다.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회색에다 회색을더해봐야 회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나 책을 내는 건 아닙니다.자신의 책에 대해 더 말한다면. 내가 쓴 책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비평사 연구 같은 학술적인 것,창작품에 대한 현장비평 즉 평론,그리고 학술 예술 문학 방면의 기행 등입니다.나는 본래 어려서 작가가 되려고 했는데 그러려면 국문과에 가야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산에서 서울로 와 대학 국문과에 갔습니다.그러나 대학은 학문,과학하는 곳이었습니다.잘못 온 것이죠.작가가 된다는 생각을 때려치우고 연구의 길로 나섰습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인데 창작은 못하고 중간적인 비평을 하게 됐고,창작에 가까이 다가가는 마음으로 많은 기행문을 썼습니다.나름대로 유려한 문장을 실컷 쓰고자 했습니다. ◆책을 많이 썼다는 사실보다 남의 글과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더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는데 남의 글을 읽는 것에 대해 말하면. 남의 글을 읽는 것이 본업이죠.지난 25년간 소설을 주로 해서 새로발표되는 작품은 거의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읽어왔습니다.왜 이렇게 열심히 읽어왔나,꼭 직업 상의 이유 뿐일까.아까 말했듯 시간이 많아 투자를 많이 한 것이 한 이유가 되고 또 하나는 문학 창작 작품에는 뭔가,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어떤 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작가는 평범한 우리와 비슷한 사람으로 결코 비범하다거나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은 아닙니다.작가들이 작품을 쓸 때는어떤 의도가 있는데 신기한 것은 완성된 작품은 작가가 처음 의도한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작가도 모르는 것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문학작품이 인간과 세계를 읽는 텍스트가 되는 것이며이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에 매료당해 소설을 끊임없이 읽었다고할 수 있습니다.작가는 보통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보통이 아닌 것입니다.가치가 있고 나아가 인류의 유산이 됩니다.작품 속에 내가필요로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작가는 내 스승인 것입니다. ◆거기서 찾은 의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통속적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문학은,우리 문학은 ‘인간은 벌레가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인간의 기품,인간성,인간다움을 강조하는 것인데 우리 역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벌레 취급을 받아오곤 했습니다.이데올로기 분단 계급 문제의 와중에서 싸우고 죽고 부당한 대접을 받아온 예가 수두룩한데 그런 면에서 우리 문학은 위대합니다.인간의 위엄과 기품을 지키는데 대단히 큰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반공 이데올로기,기관원 시대나 유례없는 경제발전 속에 숱한 노동자가 벌레같이 희생되어 온 노사문제의 시대에 벌레가아니다라는 명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왔습니다.황석영의 ‘객지’가 그렇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련과 동구가 붕괴되고 역사의 종말이 운위되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우리 문학도 달라져야만 했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습니다.94년에 나온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에서 뚜렷해지는데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가 아니라 이제 ‘인간은 벌레다’가 됩니다.여기서 벌레는 인간이하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을 제한했던 꼬리표가 떨어져 나간,확장의 개념입니다.인간은 이제 연어고 철새고 메뚜기고 게놈인 것입니다.세계문학의 큰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우리 문학의 이런 조류를 나는 생물학적 상상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비평이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비평을 학문의 일분야라고 할 때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말한 ‘학문은 예술과 달리 언제가 뒷사람에게 추격당한다’는 말만큼 시사적인 것은 없습니다.누구 작품은 어떻고 저떻고 하고수많은 현장비평을 했던 나로서 비평은 ‘남을 창찬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라고 정의내립니다.이 말에 대들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땅처럼 굳건합니다. 김재영기자 kjykjy@. *약력. 김윤식교수는 1936년 경남 진영에서 출생해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71년과 80년 일본에서 연구했다.62년 ‘문학방법론서설’로 등단했으며 현대문학 신인상(73년) 대한민국 문학상 문학평론상(87년) 등을 수상했다.평론가 김현과 ‘한국문학사’를 공동집필한 뒤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와 ‘근대한국문학연구’를 냈으며 80년대에는 평전쓰기를 주력해 ‘이광수와 그의 시대’ ‘김동인 연구’ ‘이상 연구’ 등을 냈다.‘우리 소설과의 만남’ ‘현대소설과의 대화’ ‘한국소설의 표정’ 등 현장비평서 외에 ‘한국현대문학사상론’ 등 문학사상사서도 저술했다.
  • 니체 서거 100주년 전집 출간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의 사후 100주년을 맞아 그의 전집이 2003년까지 23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완역된다.도서출판 책세상은 ‘니체전집’ 가운데 우선 1차분으로 니체의 사상이 집약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유고(1887년 가을∼1888년 3월)’ 두 권을 내놓았다.전집의 번역은 정동호 충북대 철학과 교수를 위원장으로 이진우(계명대),김정현(원광대),백승영(서강대) 교수를 위원으로 하는 니체편집위원회에서 맡았다. 이번 전집은 니체전집의 정본으로 정평이 있는 독일 발터 데 그루이터 출판사의 ‘니체 비평전집’을 텍스트로 했다.발터 데 그루이터의 니체 전집은 괴테·실러 문서보관소에 보관돼 있는 니체의 저작들을 엄밀한 문헌학적 검토를 통해 출판한 것으로,67년 이후 현재까지 33권이 나와 있다. ‘니체 철학의 전부’로 일컬어지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국내에 20여종의 번역본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그러나 대부분 비전공자에 의한 임의적 번역에 그치거나 일본을 통해 들어온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고 주석을 붙임으로써 니체를 왜곡해온 측면이 적잖다.이번 전집은 그동안 니체의 철학적 개념과 기존 번역본의 오류를 바로 잡고 용어를 통일하는 데 역점을 뒀다.한 예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초인’이라는 말은 이번 전집에서는 볼 수 없다. 초인은 ‘위버멘쉬(^^bermensch)’로,‘권력에의 의지’는 ‘힘에의의지’로 썼다.비유와 상징들이 함축하고 있는 것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니체를 온전히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번에 처음으로 한글번역본을 얻은 ‘유고’는 니체 자신만을 위한 정돈되지 않은 사유와 단상의 기록이다.니체의 후기 사상인 ‘생성의 철학’ 또는 생성에 대한 ‘긍정의 철학’의 내용이 무르익어가는 시기에 씌어진 글들을 모은 것으로,니체 최후의 지적 실존을 엿볼수 있다.니체는 이 ‘사유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다.“나는 독자를더이상 고려하지 않는다:어떻게 내가 독자를 위해서 쓸 수 있단 말인가…그렇지만 나는 나를 기록한다.나를 위해서” 난숙한 사상적 경지에 이른 니체의‘치장하지 않은’ 얼굴을 보는 즐거움이 만만찮다. 김종면기자
  • “스크린속 이탈리아로 여행오세요”

    르네상스,칸초네,피자,곤돌라,마피아….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지중해의 심장부에 위치한,거대한 알프스 산맥으로 둘러싸인 나라.가톨릭왕국의 중심지에서 풍겨나오는 장엄함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나라.고대와 르네상스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거리 곳곳에 살아 숨쉬는 이탈리아는 도시 자체가하나의 ‘예술’이자 ‘문화’다. 문화와 예술로 보는 이탈리아 기행(다나카 치세코 지음·정선이 옮김·예담 펴냄)은 이러한 이탈리아 각 도시의 문화와 예술을 영화라는 창을 통해 소개,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새롭고 다양한 시각에서 이탈리아를 보게 한다.영화평론가인 저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피렌체,‘물의 도시’ 베네치아,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나폴리,고대 유적의 보고 로마 등 매력적인도시들의 모습을 영화 속 명장면들과 겹쳐 보여준다. 영화와 함께 하는 이탈리아 문화산책의 출발지는 피렌체다.‘꽃의 도시’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의 주도.조토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미켈란젤로 등이 대표적인 피렌체의 천재예술가들이다.문학쪽에서는 단테가 이곳 태생이다.그 피렌체로 영국의 한 숙녀가 찾아 온다.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 ‘전망 좋은 방’(1986)의 루시(헬레나 본 카터).그녀의 눈앞에 피렌체는 우아한 모습을 드러낸다.그러나 아르노 강 근처의 펜셔네(여행자용 하숙)에 도착한 루시는 창밖 풍경을 보고 실망한다.그 방에서는 거리도 두오모 성당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결국 친절한 영국인 부자가 전망 좋은 자신들의 방을 내주면서 영화는 궤도에 오른다. 민중적이고 반체제적인 성향을 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여름의폭풍’(1954)을 이해하기 위해선 베네치아를 봐야 한다.때는 오스트리아 지배하의 이탈리아가 통일운동을 벌이던 1886년,장소는 베네치아의 페니체 극장.‘토레바토레’의 3막 마지막 장면,천장에서는 적·백·녹의 삼색 유인물이 쏟아져 내린다.‘비바,이탈리아!’.그 틈바구니에서 백작부인 리비아와오스트리아 장교 마라가 사랑에 빠진다.영화의 무대인 200년 전통의 그 페니체 극장이 1996년 소실돼 외벽만 남았다.방화설이 나돌았지만베네치아에서는 원인규명보다 재건에 먼저 힘을 쏟았다.성숙한 문화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 셈이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어제·오늘·내일’(1963)의 여주인공 아델리나는 찰가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정 깊은 나폴리 여자다.유머와 위트 넘치는 나폴리인은 칸초네로 인생을 노래한다.인생은 한바탕 축제. 그 왁자한 웃음소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마리오 마르토네 감독의 영화‘나폴리 수학자의 죽음’(1992)에서 ‘우울한’ 나폴리를 보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나폴리의 수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레나트 카초포리의 자살을 다룬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절망은 실체가 없다.저자는 아마 나폴리의 무거운 공기와 나른함이 ‘자랑스런’ 절망을 부추겼을 것이라고 말한다.나폴리는 때로 한겨울의 파리보다 더 진한 우수를 안겨준다. 이탈리아 문화산책의 영사막은 끝으로 로마를 비춘다.독일의 문호 괴테는“로마에서 비로소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했다.어디 괴테뿐이랴.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은 독일군 점령하의 로마를 무대로 네오리얼리즘 영화 ‘무방비 도시’(1945)를 만들어 ‘영화의 아버지’로 자리매김됐다.이밖에 로마를 무대로 한 영화는 셀 수 없이 많다.로마거리를 걸으면어느새 ‘달콤한 인생’(1960)의 트레비 분수 앞에 당도하고,지하철을 타고가다 내리면 그곳이 바로 ‘로마의 휴일’(1953)에서 본 스페인 광장이다.이탈리아 걸작영화의 본산 치네치타 촬영소도 로마 근교에 있다.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이탈리아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김종면기자 jmkim@
  • 세계의 지성이 펼치는 시간에 관한 ‘知的 유희’

    에세이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느낌이나 정서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산문을 말한다.그러나 그것은 신변잡기에 가까운 미셀러니와는 달리 사회평론의 성격을 띤다.에세이의 성격은 그 말의 근원을 따져보면 한층 자명해진다.에세이(essay)는 ‘시도’ 또는 ‘시험’을 뜻하는 프랑스어 에세(essai)에서 비롯됐다.에세의 어원은 ‘계량하다’‘음미하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엑시게레(exigere).이런 맥락에서 보면 에세이란 결코 ‘가벼운 문학’이아니다. 몽테뉴의 ‘수상록(1589)’을 효시로 하는 에세이는 18세기까지만 해도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다.하지만 지금은 명백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최근 도서출판 자인에서 나온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이베타 게라심추쿠 등 지음,류필하 등 옮김)은 중수필(重隨筆)의 진가를 보여주는 에세이집으로 관심을 끌 만하다. 이 책은 지난 97년 ‘괴테의 도시’ 독일 바이마르시가 ‘1999년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마련한 국제 밀레니엄 에세이 콘테스트 수상작 10편을 모아 엮은것이다.이 공모전의 주제는 ‘미래로부터 과거의 해방,과거로부터 미래의 해방’.세계 123개국에서 2,480명이 응모,이베타 게라심추쿠라는 20세 러시아 여대생의 작품 ‘바람의 사전’이 최우수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미국 워싱턴대 교수인 루이스 월처,미국 시인 크리스토프 월 로마나,유고 작가 벨리미르 쿠르구스 카지미르 등 당대의 지성들이 그와 경쟁했다. ‘바람의 사전’은 어떻게 1등상의 값을 하고 있는가.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누구도 에세이 장르에 끌어들이지 못했던 사전식 서술방법을 도입,시간에 관한 사고를 펼쳐가고 있다는 점이다.작가는 시간의 개념을 설명하기위해 ‘흐로니스트’와 ‘아네모필’이라는 대립적인 시간관을 가진 두 인간집단을 만들어냈다.흐로니스트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사이에서 태어난 거인 크로노스의 추종자.시간을 신이 준 선물이라고 믿는흐로니스트는 변화를 몰고올 미래로부터 과거를 해방시키려 한다.반면 바람의 신봉자인 아네모필은 호머의 로토파기(망각의 연꽃을 먹어치우는 종족)를무기 삼아 과거로부터 미래를 해방시키려고 한다.작가는 과거중심주의와 미래중심주의라는 두 입장을 그리스신화 등을 동원해 한권의 ‘사전’으로 풀어낸다. 2위 수상작인 루이스 월처의 ‘시간의 언어’는 시간의 이미지와 싸우는 인간의 딜레마를 다룬 에세이.인간은 시간에 관한한 언제나 현재의 시점에서과거와 미래를 말할 수밖에 없다.“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적실 수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은유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과거와 현재,미래로나누며 분리된 실체처럼 생각하곤 한다.그러나 그것은 시간 자체가 아니라시간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이 이 에세이의 전언이다. 공동 3위 수상작인 크리스토프 월 로마나의 ‘1999년-그 소멸되지 않는 초(超)부채’와 벨리미르 쿠르구스 카지미르의 ‘집’도 주목되는 작품.‘…초부채’는 인간의 존재 양태로서의 역사를 향해 지은 빚을 청산할 것을 촉구한다.18세기 프랑스가 서인도 제도의 섬 아이티에서 행한 착취와 강압의 역사,미국이 헌법제정의 역사에서 노예제도를 둘러싸고 보여준 행태,유럽이 다른 대륙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에게 보내는 기만적 시선 등을 빚으로 든다.작가는 이 ‘불구의 역사’에 대답하지 않는다면 유럽은 ‘알코올중독 식민주의자(alcoloniale)’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카지미르의 ‘집’은 유고슬라비아의 비극을 다룬다.91년까지 존속했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6개의 공화국을 묶어 인위적으로 만든 나라다.그런만큼 처음부터 민족적·종교적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유고연방을 구성한 공화국들이 독립하고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합쳐져 새로운 유고슬라비아연방을 이뤘지만 갈등과 싹은 아직도 시들지 않았다.이 작품이 단순한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떨어지지 않고 현재적 의미를 갖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이 에세이집에는 이밖에 ‘시간의 살인’‘투명한 도시’‘하느님의 장기판’‘과거의 해방으로 미래를 해방하자’‘향수’‘승자는 모든 것을 소유한다’ 등의 글이 실렸다.세계의 지성들이 펼치는 시간에 관한 지적 유희가 진정한 에세이의 매력을 전해준다. 김종면기자 jmkim@
  • [문화예술 분단장벽 허무나](5.끝)결산대담

    한국전쟁은 우리 문화예술계에 깊은 파장과 상흔을 남겼다.그 한국전쟁이 50주년 되는 해, 6·15선언으로 획기적인 남북관계의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최민 영상원장과 인하대 국문과 최원식 교수의 대담을 통해남북분단문화의 극복방안 등을 들어본다. ■최원식교수 6·15선언은 오랜만에 우리 정치가 국민을 기쁘게 해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홍콩과 마카오의 중국 반환이 20세기를 마감하는 빅쇼였다면,한국의 통일과정은 21세기를 여는 대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통일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독일식 흡수통일이나 베트남식 무력통일만이 통일이 아닙니다.‘극적인 통일’관에서 벗어나 통일을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최민원장 동감입니다.어떤 과정을 통한 어떤 통일이냐가 중요해요.원상복구 차원의 통일은 이제 맞지 않습니다.새로운 통일개념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최교수 먼저 문화예술이 민족의 분단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나아가 분단극복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되돌아 볼 필요가있습니다.올해는 더욱이 한국전쟁 50돌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최원장 미술의 경우 80년대에 특히 이념적인 작품들이 많이 나왔지만 장르적 특성상 그림으로 통일의 비전을 제시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입니다.한국영화 ‘간첩 리철진’은 북의 간첩도 인간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합니다.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의 내적인 금기가 많이 깨졌습니다. ■최교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서문을 보면 “이 작품이 나올 수 있게해준 어린 공화국에 감사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4·19직후인 당시로선 굉장히 전향적인 발언인 셈이죠. ■최교수 예술활동을 제재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통일을 주제로 뭔가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요즘 통일글짓기가 유행이나 6·25가 돌아오면 으레 해오던 반공웅변대회나 글짓기대회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제재론적인 입장에서 통일예술만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예술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예술에는 자기검열이 필요합니다. ■최원장 늘 ‘반쪽의 시선’밖에 가지지 못했다는 게 문제입니다.한 쪽을봉쇄하니까 역지사지가 안되죠.지난 50년동안 남한사회는 정치적·문화적 고도와도 같았습니다.독일은 브란트총리 시절부터 동서독이 왕래하며 대화를시작해 지방과 지방끼리는 거의 하나가 될 정도로 섞였습니다. ■최교수 일찍이 지방자치를 했던 독일의 교류수준은 무척 깊었으나 막상 통일이 되려하자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통일을 반대했습니다.통일에 관한 모든논의들이 휴지조각이 됐다는 게 그들의 일성이었죠.결국 현실이 이념을 뒤집은 셈입니다.우리의 경우 한번 물꼬가 터지면 엄청난 가속도가 붙을 것이 예상되는 만큼 역기능이 우려됩니다. ■최원장 속도조절이 필요합니다.언론 보도에서도 나타났듯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시각이 급전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준비가 없었는가를반증하는 것입니다. ■최교수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그 차이가 쌓였을 때 더 큰 풍요를 낳을 수 있어요.에커먼의‘괴테와의 대화’에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대목이 생각납니다.“나는 독일이 통일이 되면 좋지만 지방의 발달한 분권적인 문화가 다 없어지고 베를린 문화 일색으로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최원장 민예총이 주최한 6월 인천 황해예술제에서 ‘불가사리’등 북한영화 5편이 상영됐습니다.이미 낮은 단계의 남북영화교류가 시작된 셈이죠.통일논의가 허공에 뜨지 않기위해서는 서로를 먼저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최교수 통일의 힘은 근본적으로 남한에 있다고 봅니다.특히 문화교류의 경우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야 합니다.상호주의를 꼭 1대1의 계량적인 개념으로 봐서는 곤란해요.문화적 햇볕정책이 필요합니다.한일대중문화교류의 경우를 보면 일본이 먼저 한국가수들을 초청해 개방의 단초를 열었고 결국 한국도 빗장을 풀었습니다.남북문화교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큰 틀에서보면 상호주의로 귀결되는 것이죠. ■최원장 남북교류와 함께 중국과의 문화교류도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봅니다.지난달 북경전영학원에서 학술제 형식의 한국영화제가 열렸는데‘아름다운 시절’등 12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돼 호평을 받았습니다.한해 고작 20편의 외국영화를 수입하는 현실에서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지요.보다 다각적인 문화개방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최교수 문화예술가의 덕목중 으뜸은 역지사지 능력입니다.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자기안의 타자속으로 침투해가는능력이 예술인에게는 있어요.“문학을 하면 여러 삶을 산다”는 말도 있지않습니까.타자에 대한 공감이야말로 문화적 감성의 핵심입니다. ■최원장 현단계에서 남북의 통일문화를 위한 구체적인 처방전을 기대하기는어렵습니다.그때 그때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아요. ■최교수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국민 각자가 깨어있어야 합니다.이른바신자유주의의 환상속에서 IMF체제를 맞아 나름대로 절실한 경험을 했지만 요즘 다시 도덕적 해이의 조짐이 보입니다.어느 원로시인은 금강산 관광길에버스속에서 춤추고 노는 것을 한탄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일정한 희생을 치르지 않고 통일국민이 되기는 어렵습니다.문화적인 저열성을 드러내지 말고 진정한 겸손을 배울 때입니다. ■최교수 90년대 들어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온갖 포스트주의가 창궐했습니다.경배대상이던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해체적 사고가 득세했어요. 신자유주의의 분위기를 거부할 순 없지만 민족주의는 낡은 것이라고 폐기해서는 안되죠.민족주의를 갈무리하면서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지금은 민족예술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 실험기입니다. ■최원장 민족주의냐 탈민족주의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민족적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민족이란 게 언젠가는 의미없는 시점이올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봐요. ■최교수 그렇습니다.좋은 세상이란 민족주의가 필요없는 세상입니다. 정리 김종면 황수정기자 jmkim@
  • 여지희씨 ‘문화원에 가면‘

    유럽예술에 목말라 하던 시절 시인 김광규,영화감독 이장호,작곡가 강석희등 예술가들은 ‘괴테 인스티투트’라고 불리는 독일 문화원에서 그 갈증을풀곤 했다.문화원은 그들에게 예술과 사색의 숲이었다.인터넷 시대인 오늘날그것은 향수어린 옛 얘기가 됐지만,한 나라의 문화를 아는 데 문화원을 찾는 것만큼 유용한 것도 별로 없다.최근 나온 ‘문화원에 가면 그 나라가 있다’(여지희 지음·미래 M&B)는 국내의 외국 문화원 20곳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실용적인 책이다. 저자는 문화원을 단순한 정보 습득의 장보다는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하는 열린 마당으로 활용할 것을 권한다.한 예로 경기도 고양시 중남미문화원에 있는 가면관에는 인디오 가면 200여점이 전시돼 있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
  • FARBE 5월호

    항상 깜짝 놀랄 만한 새로움으로 독자들을 찾아가는 고급 패션매거진 ‘FARBE’(파르베) 5월호가 18일 발행된다.이번 호 역시 독특한 표지부터 시작해기발하고 다양한 화보는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패션과 예술을 접목시킨 팝아트 스타일링을 비롯해 리조트 룩과 타투(문신)의 만남,남성 베스트 서머 룩 등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파르베의 진면목을 잘 보여 준다. 이번 가을 겨울 해외컬렉션 리포트와 밀라노&뉴욕의 스트리트 룩은 세계 패션계의 흐름을 한눈에 읽게 해주며 톱모델에 관한 기획들도 흥미를 더한다. 또한 파르베 특별 초대로 화보 촬영한 축구 국가대표 김도균선수가 최초로멋진 몸매를 공개했다.이밖에 김지호 한재석 김완선 이정재 김규리 이승연채정안 등의 국내 톱스타들이 파르베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뷰티 분야에서는 2000년 뉴욕의 가을/겨울 눈화장 트렌드를 비롯해 립과네일의 색조 매치법, 심은하 이영애 김윤아의 헤어스타일 따라하기 등을 다뤘다. 피처 쪽 기사로는 ‘새와 물고기의 사랑이야기’를 비롯해‘세계시민 괴테의 끝없는 연가’ ‘피자와 여자의 함수관계’ 등이 눈길을 끈다. 책속 부록은 명품 서머 샌들&슬리퍼. 정가 5천원.
  • [쉽게 읽기] 조선조를 뒤흔든 논쟁

    선거가 끝났다.집권당과 야당의 치열한 대결 양상은 역대의 어느 선거보다도 박진감이 넘쳤다는 생각이 든다.선거 자체를 이벤트로 생각한다면 그럴만도 하다.그러나 이번 선거의 본질은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무서움’을 발견한 과정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호남과 영남이 그토록 철두철미하게 상호배타적일 수 있다는 결과는 과연 소름이 끼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무서움의 연원을 지역주의에서 찾고 역사에 관심이있는 몇몇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조의 당쟁에서 더 깊은 연원을 끌어오기도 한다.당쟁이란 무리들의 다툼이라는 말이다.그리고 그 다툼은 곧생각의 차이에서부터 온다.이 생각의 차이가 우리들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라선을 이끌어 가던 정치 교양인들에게도 있었다.그것이 권력과 결탁함으로써 헤게모니 싸움으로 번진 것이 이른바 사화(史禍)이다.당쟁과 사화의 구조는 오늘의 정치 상황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조선왕조에서 ‘생각의 차이’가 전개된 과정과 본질은 일반인들의생각과 달리 매우 왜곡되어 있다. ‘조선조를 뒤흔든 논쟁 상·하’김기현 지음은 바로 이런 문제에 주목하고있는 책이다.저자는 조선의 싱크탱크인 사림(士林)의 대논쟁인 ‘사단칠정논변’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에서 쉽게 정리하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왜 싸우기만 했던 것일까’가 아니고,‘나라를 어떤방향으로 이끌 것인가를 두고 벌인,세계에서도 드문 거대한 규모의 철학 논쟁의 본모습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경상도의 퇴계 이황과 전라도의 고봉 기대승에 의해 도덕감정과 비도덕감정을 다루는 문제로 발단이 된 사칠논변은 율곡과 우계를 거치면서 장장 300년간이나 지속된다.생각의 차이를 다투는 이러한 지속의 힘을 20세기의 한국인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통박하는 것이 책의 핵심이다.예컨대 저자는사칠논변을 벌이던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수준에 빗대어,오늘날 한국의 지역감정에 기댄 정치가 ‘침팬지 수준’임을 준엄하게 질책한다. 정치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진보의 계단을 거꾸로내려가는 모양이다.할아버지들이 서로 주고받던 정중함과 격조와 논리는 내팽개치고 ‘너는 그르고 나만 옳다’는 식이다.무서운 선거 결과를 보고 나니 이 책의 진가가 더욱 눈에 서늘하다.괴테가 그랬던가.역사가 곧 신(神)이라고.우리에게도 좋은 말이 있다.온고지신(溫故知新)! 도서출판 길 펴냄. 값 상하 각 권 7,000원. 윤재웅 동국대 강사 문학평론가
  • [대한광장] 국익 우선과 ‘아름다운 악역’

    김대중 대통령은 얼마전 “차기 대통령후보는 자유경선으로 하겠다.국민의지지를 받는 사람을 밀어주겠다”고 밝혔다.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은 이말이 오히려 신선하게 들리는 것은 군사독재시절 전직 대통령들의 폐해를 직접적으로 당해본 현직 대통령으로서 간절한 여망일 것이다.당내 민주화를 확실하게 실천해보이겠다는 의지이다.가능하다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거대한경제정책 시야,민족운명에 대한 깊은 애정,국민을 하늘같이 받들 사람 등 구체적 방향제시까지 해놓았다.이것은 김대통령의 평소 정치신념이기도 하다. ‘자유와 자율’을 넘어서는 이상적인 사회이념은 없다.인간은 어머니로부터 탯줄이 잘리면서 운명적으로 자유로운 몸으로 이 세상에 내던져진다.그리고 어머니의 품에서 성장하면서 인격적인 개체가 조성되는 것이다.어떤 종교나 이념도 이 자유를 부자유하게 만들 수 없는 것이다. 퇴계 선생은 ‘인간은 천지창조의 동참자이며 동시에 인간은 능력을 가졌기에 신뢰한다’며 능동적 사유체계를 주창했다.자유와 자율성을 강조한 이 사상은 주자의 ‘자연적 도덕법칙’보다도,칸트나 괴테의 ‘도덕적 의지의 발견’보다도 한 단계 높은 인간의 능동적 가치관을 읽어준 것이다.자유를 바탕으로 한 자율성은 정치문제 뿐 아니라,사회 전반의 모든 것을 편하게 해준다.부자유해질수록 불편해진다.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는 차기대통령을 자유경선으로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다.자유민주주의의 생명인 이러한 주제는 차기대통령 뿐 아니라,국회의원들에게 더 필요한 정치덕목이다. 그러나 총선을 코앞에 둔 지금의 정치판은 어떤가? 신당이 창당되면서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탈락된 낙천자들 중심으로 또 하나의 ‘양로원당(?)’이 급조되면서 전직대통령들까지 가세하고 있다.독재로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망월동 묘지까지 만든 그들,수많은 IMF 노숙자를 만들고 자칫오늘의 인도네시아와 같은 ‘양아치경제’ 수렁으로 빠지게 할 뻔한 그들이또다시 길거리로 나오고 있다. 그 그늘 밑에서 또다시 금배지를 달아보겠다고 몰려다니는 전·현직 의원들이 있는가 하면 평생 동지를 배신하고 탈당을 콜라마시듯 하는 ‘콜라의원’도 있다.그들은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너무 잘 아는 것’ 같지만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지금의 유권자중 30% 이상은 386세대 이후이다.80년대 전후 민주화세대들인이들은 지금 사회의 중견층으로 자리잡고 있으며,더욱 투명한 의식의 486세대가 그 뒤에 포진하고 있다.과연 이들을 선심형 관광버스에 오르게 할수 있는가.각계 각층의 ‘시민총선연대’ 등도 이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이들을법률적으로 재단하려고 하지만 ‘민주시민’으로서 그 뿌리는 감옥행이라고해서 절단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독재시절에 경험한 바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전력에 문제가 있는 국회의원 후보는 공개해야 한다.미국 같이 유권자들이 알 것은 알고 검증돼야 한다.막강한 비자금이 있고,정치적으로 배경이 강력하다고 해서 ‘무차별 돈봉투 분배’ 의식으로 국민을 농단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아름다운 악역’을 필요로 한다.검찰이나 경찰,국정원 등의총수는 엄격해야 한다.정치권을 떠나 국가와 민족을 우선해야 한다.이들이 정치권의 냄새에 따라 흔들린다면 국가기강이 어떻게 확립될 수있겠는가. 미 CIA 등은 국익에 우선하여 때로는 해외에까지 나가 잔인한 역할을 한다. 그로 인해 지탄을 받아 CIA국장이 퇴출당하기도 한다.하지만 그들은 당당하다.국가를 위해 악역을 맡았기 때문이다.미국 뿐이랴.세계 각국의 주요 권력기관이나 정보기관들은 ‘아름다운 악역’을 맡는다. 그러나 한국의 주요 권력기관의 장들은 어떤가.국익보다는 오히려 사리사욕에 한눈을 팔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다.국가의 안보와 국민 전체의 안녕을위한 엄중한 역할보다는 나중에 국회 출마를 염두에 두고 지역구 표밭관리를 위해 더 열성이 아닌지 의심스럽다.유비에겐 제갈량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관운장과 장비와 같은 악역도 있었다.우리도 관운장과 같은 악역의 애국자가 필요하다.그렇다고 과거정권과 같은 어두운 악역이어서는 안된다. 신상성 용인대교수 소설가.
  • [기고] 민족번영·보존의 초점은 언어

    새로운 세기,아니 새로운 천년의 문턱에서 우리는 일상생활에 너무 얽매여과연 다음 세기에 우리 민족이 겪어야 할 일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며이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물론 한 세기 앞을 내다본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허황한 얘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돌이켜보면 지난 세기에 우리 민족은 향후 겪어야 할 일들에 관한 준비는커녕 아무런 예상마저도 없이 맞이한 새로운 세기에서 어떤 고난을 겪어야 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이 ‘세계화’를 엄청나게 큰 파도에 비유한 일이 있다.이 파도가 우리를 미래의 약속된 낙원으로 데려다줄 수도,아니면 우리를 흔적도 없이산산이 부수어버릴 수도 있다.세계화는 아시아대륙의 작은 반도에서 수천년동안 끊임없이 강대국들의 시달림을 받으면서도 명맥을 이어 온 한국인이 세계의 중심에 뛰어들어 새로운 위상과 역할을 개척할 기회가 될 수도,우리 존재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맞아 민족의 번영과 보존이란 전략적 문제의 초점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바로 우리의 언어다. 근대화 과정에서 수많은 민족들이 그들의 언어를 상실했다.위스키를 볼 때마다 술이름 하나를 제외하고 말을 잃어버린 스코틀랜드가 생각난다.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위스키는 ‘생명의 물’이라는 스코틀랜드 말의 변형이다.스코틀랜드인들은 우수한 술을 만들어 인류에 기여함으로써 어휘 하나를 남긴 셈이다.혹 우리도 백년 후에 ‘김치’라는 단어 하나로 기억될지 모른다. 태고시절 공룡이 있었음을 화석을 통해서 알아보듯 한 민족의 독특한 경험과 경륜,이상과 정서,삶과 죽음을 대면하는 자세 등은 언어로 나타난다.때문에 자신의 언어를 지키는 일은 민족의 정체성과 존재를 유지하는 일인 것이다.언어를 지키는 데는 원어들을 대체할 국어 어휘를 만들어내는 소극적 방법이 있을 수 있다.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세기와 세계화에 대처하는 적극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괴테나 헤겔·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솔제니친을단순히 문학가나 철학자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모국어를 살리고 생각을 정리한 사람들로 평가할 수 있다.솔제니친은 단지 공산주의 통치하에서 정치적저항을 한 문학가만이 아닌 억압과 왜곡 밑에서 스러져가는 러시아인의 경험과 정서를 언어의 재발견과 복구를 통해 살리고 지킨 사람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정치적인 실험도 러시아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것이다.이들로 인해 지난 세기 중엽에 이르면 적어도 고급활동의 영역에서별 의미가 없다고 여겨지던 독일이나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홍명희의 소설을 대할 때마다 새로운 감명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그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그것은 식민지 통치하에서 억압돼 왜곡되고 변질돼가는 한민족의 경험에 관한 웅변의 증언이다. 근세 초 서양인들은 해도도 없이 바다를 항해하며 곳곳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그리고 새로운 개념과 범주로 세계를 가늠하기 시작했다.그들이 거기서 얻은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였듯 다가오는 새 세기와 천년에 해도도 없이 대양을 탐험한 서양인들처럼 우리는 새로운 것들을 찾아가는 언어의 바다에서 모험의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들의 존재 자체,삶과 죽음,시장과 분배 등 새로운 세기에 맞이할 모습들을 우리 언어로 새롭게 이해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이 험난한 모험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다가오는 큰 파도를 안전하게 약속된 미래의 항구로 가게될 것이다.나아가 이렇게 해서 얻은 우리 언어가 세계 사람들이 매일 부닥치는 문제를 푸는 빛과 길라잡이가 되도록 하자. 나종일 경희대교수
  • 괴테 탄생 250돌 기념 ‘…편력시대’ 번역 출간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가 그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괴테시대의 문학’회원들에 의해 공동번역됐다.(민음사·전2권) ‘…편력시대’는 전편격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함께 독일교양소설의 고전으로 꼽힌다.산업혁명에 따른 새로운 사회현상을 모티브로,몰락하는 사회의 실상과 몰락을 타개해보려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편력시대’는 괴테 만년의 노작(勞作)이기도 하다.52살이던 1807년에쓰기 시작해 14년 뒤인 1821년에 1판이 완성됐고,곧바로 개정작업에 들어가숨을 거두기 3년전인 1829년에야 최종판이 나왔다. ‘괴테시대의 문학’은 지난 93년부터 괴테읽기에 정진해 온 독회그룹이다. 독문학계의 원로로 부터 갓 박사과정을 마친 소장학자까지 모두 17명으로 구성됐다. 회원들은 5년 가까운 기간 동안 토론을 통해 다소 난해한 이 작품의 번역상오류를 최대한 수정했다. 또 대표필자인 김희숙 동덕여대교수가 마무리하여문체의 일관성을 기했다. 서동철기자
  • 가을 출발… 음악축제와 함께

    예술의전당이 올가을 두개의 음악축제를 펼친다.9월7일부터 14일까지 콘서트홀에서 갖는 ‘99 서울국제음악제’와 25일부터 10월10일까지 오페라극장에서 여는 ‘99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이 그것이다. 음악제는 백건우와,부르노 페랑디스가 지휘하는 서울시교향악단 연주회로 막을 연다.레퍼토리는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와 강석희의 피아노협주곡,라벨의 ‘스페인 랩소디’.8일은 바이올리니스트 엘리사 리 콜죠넨 초청 코리안 심포니 연주회다.피아니스트 이경숙의 딸이기도 한 콜죠넨은 금난새 지휘로 글라주노프의 협주곡을 들려준다. 9일은 러시아 볼쇼이합창단,10일은 보자르트리오의 창설멤버인 첼리스트 그린하우스가,이종영이 이끄는 비하우스 첼로앙상블과 공연한다.11일은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윤이상 음악의 밤’,12일은 일본의 NHK체임버오케스트라 연주회,13일 피아니스트 리처드 클레이더만과 김혜정의 듀오 콘서트로 꾸며진다.14일 KBS교향악단이 바이올리니스트 이미경과 베토벤의 협주곡,모차르트‘하프너’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음악제는끝난다. 올해 음악제도 창작곡을 상당수 연주토록 함으로서 국내작곡가들의 발표무대를 넓힌 것이 특징이다.백건우가 대곡에 속하는 강석희의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비롯,콜죠넨이 임지선의 ‘새벽’,비하우스 첼로앙상블이 박영란의 ‘활개치는 대나무들’을 선보인다.NHK체임버는 김용진의 ‘해금과 현을 위한소협주곡’을,KBS교향악단은 우종갑의 ‘축전서곡-하나의 세계’를 각각 골랐다. 오페라축제는 국내 초연인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와,푸치니의 ‘나비부인’‘라보엠’으로 이루어진다. ‘파우스트’(9월28일,10월3·6·10일 공연)는 괴테 탄생 250주년 기념작.문호근이 연출하고,프랑스 투르 오페라단의 예술감독인 장 이브 오송스가 지휘를,독일의 하랄트 B.토르가 무대디자인을 맡는 등 3국이 합작했다.파우스트역에는 테너 김재형과 이중운,메피스토에 바리톤 김동섭과 조병주,마르가리트에는 메조소프라노 김현주와 전효신,브란더스에는 베이스 함성식이 나선다.음악은 코리안심포니. ‘나비부인’(9월25일,10월1·5·9일)은 국제오페라단이 만든다.연출자 정갑균은 “작품 배경인 1885년의 일본 나가사키가 서구열강의 동양진출 전초기지이고,주인공 ‘초초상’이 미군의 ‘현지처’라는 역사적 의미를 살릴 것”이라고 말한다.나비부인 역에 김영미·김향란·김유섬,스즈키에 메조소프라노 김학남과 황경희·박수연,핑커턴에 테너 김진수와 이현.김덕기가 지휘하는 프라임 필하모닉이 출연한다. ‘라 보엠’(9월26·29일,10월2·8일)은 지난해에도 페스티벌에 참여한 작품.여성연출가 이소영의 섬세함과 특유의 서정성이 인정받아 앙코르를 받았다. 미미 역에 소프라노 조경화와 김수정,로돌포에 테너 이원준,마르첼로에 바리톤 우주호,뮤제타에 소프라노 윤이나,콜리네에 바리톤 김요한,알친도르에 바리톤 김원경이다.카를로 팔레스키가 코리안심포니를 지휘한다. 공연시각은 음악제가 10일은 오후8시,나머지는 오후7시30분,오페라축제는 평일 오후7시30분,일요일 오후4시이며 월요일에는 없다.(02)580-1300서동철기자 dcsuh@
  • 獨프랑크푸르트 탄생250주년 ‘괴테축제’

    [프랑크푸르트 남정호특파원] 독일 최고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태어난지 28일로서 250주년이 된다. 괴테는 지난 1749년 8월28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이를 기념해 도시일대에 세워진 18곳의 노천 무대에서는 560명의 예술가,배우,음악가,가수 등이 괴테에게 경의를 표하는 공연을 하게된다. 이번 250주년 기념 축제는 괴테의 출생시간으로 알려진 “12번의 타종이 울려퍼지는 정오에” 시작돼 저녁때까지 계속된다. 시(詩)낭송,고전음악 연주회와 같은 고상한 프로그램에서부터 말이 끄는 맥주운반 마차를 타고 시내를 가로지르기 등과 같은 대중적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jhn@
  • [외언내언] 國樂路

    하나의 거리는 그 거리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따라 특성이 조성된다.그래서 괴테는 ‘거리의 모퉁이를 돌고 다리 하나를 건널 때마다바로 그곳에 역사가 전개된다’고 말했다. 지난 50년대 서울 종로 3가 일대는 국악의 온상이었다.단성사에서 비원으로 이어지는 운니동과 와룡동·낙원동의 행길가는 국악인들의 살림집이나 연구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판소리의 대가인 만정 김소희와 송만갑의 소리를 이어받은 명창 박초월,가야금병창으로 유명한 박귀희의 운당여관이 있었고 낙원동으로 가는 좁은 골목에는 여성국극의 임춘앵과 그 일행이 진을 치고 있었다.국악계 원로 박동진씨의 연구소는 지금도 파고다극장 건너편의 낡은 3층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국악인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서울의가장 한복판이면서도 유난히 발전하지 않는 거리의 특징에서 변하지 않는 전통을 고수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종로 ‘국악로’를 전통문화의 거리로 만들기 위한 ‘국악로 문화보존회’가 국악인들에 의해 창립됐다.올 10월부터는 이틀에 걸쳐사물놀이·판소리공연을 펼치는 ‘국악 축제’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지금도 이곳에는 국악기점만 100여곳에다 대금의 이생강 등 인간문화재급 국악인의 연습실만 50여곳 등 국악의 거리로서 마모의 흔적이 없다.더구나 지난 54년 우리나라 대학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악과를 설치했던 덕성여대도 이곳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에서 국악로 조성은 의미가 있다. 서울의 곳곳은 언제부턴가 구(區)마다 동(洞)마다 수많은 축제가 열리고 이태원특구에 이은 인사동특구,명동과 북창동을 묶는 특구 움직임이 활발하게진행되고 있다.물론 특징 있는 거리 조성은 도시에 생동감을 주고 주변에 영향을 주어 도시 전체를 발전시켜 나간다.그러나 거리가 조성되면 먹자거리나 패션거리 등으로 바뀌어 거리의 특색이 희석되는 것이 문제다.또 너무 많은 축제로 인해 차량통행을 막는 일이 잦아지면 교통체증이 심화될 수도 있다. 국악로는 일반 다른 거리와는 달리 뚜렷한 차별화가 있어야 한다.종로 3가에 그치지 말고 같은 전통문화의 거리인 낙원동과 인사동을 연계해 걷고싶은거리를 만들고 골목마다 남아 있는 작은 한옥들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악만 있고 한국적 정취가 없다면 국악의 거리로서 명분이 약해지기 때문이다.대낮에도 ‘덩더쿵’ 북장단에 어깨춤이 절로 나고 모퉁이마다 가야금 소리가 아로새겨지는 운치 있는 국악로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이세기 논설위원
  • 괴테 ‘파우스트’ 발레로 본다

    문호 괴테의 탄생 250돌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올들어 연극·음악·영화·시 낭송회 등의 형태로 봇물처럼 터져나왔다.이 열기가 모던 발레로이어진다. 오는 8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를 ‘파우스트 2000’은 괴테의역작을 몸짓으로 그려보려는 자리다. 구성과 안무를 맡은 장선희 세종대교수는 “방대한 스토리보다는 춤으로 풀수 있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전개할 것”이라며 “대신에 4명의 주인공을 주축으로 작품을 이끌어 가면서 남녀 무용수들로 이뤄진 코러스와 리드댄서를활용하여 장면을 매끄럽게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힌다. 이어 이번 무대는 발레의 딱딱한 룰에 얽매이지 않고 컨템퍼러리 댄스 개념을 도입하여 움직임을 자유롭게 했는데 특히 화려한 색상과 과감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이상봉의 무대의상(이상봉)이 압권일 것이라고 덧붙인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이준규가 파우스트,장선희교수가 그레첸·헬레네의 1인2역을 맡았으며 국립발레단의 최세영이 메피스토펠레스로 나온다. 국립발레단의 ‘스타 댄서’김창기와세종대의 황순영은 코러스를 이끄는 리드댄서로 가세한다. 장교수는 주로 문학작품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는데 창작발레 ‘황진이’를비롯하여 ‘신라의 사랑’‘외디푸스의 변명’‘나비꿈 혹은 나비의 꿈’등의 작품을 안무한 바 있다.오후7시30분(02)3408-3280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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