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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중예술가서 문화CEO로 김명곤 국립극장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중예술가서 문화CEO로 김명곤 국립극장장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얻어진다고 했던가. 한 청년, 독문학도였다. 어느 여름날 시골의 느티나무 아래였다. 청년은 차마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또 아니 들었던 것을 듣고야 말았다. 그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속세의 풍진을 훌훌 털어냈다. 번뇌도, 욕심도 없다. 끊어질 듯하면 이어진다. 점점 눈이 부신다. 귀가 떨린다. 쿵쾅쿵쾅, 가슴이 요동친다. 어쩔거나, 어쩔거나. 늪이다. 헤어나올 수가 없다. 인간사 삼세번,3일 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결국 청년은 고독한 ‘소리꾼’의 길로 들어섰다. 김명곤(53) 국립극장장.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소리꾼으로 열연한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딸(오정해)에게 약을 먹여 장님이 되게 한 후 소리를 가르치는 ‘아버지’는 더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김명곤’ 하면 평소 1980년대 민중예술계를 대표하는 배우·연출가·판소리 이수자 등으로 꼽힌다. 지금은 문화CEO로 실력 발휘를 하고 있다. 국립극장 사상 처음으로 공채(2000년)로 극장장에 임명된데다 연임의 기록까지 세운 것이 이를 입증해준다. 이밖에 ‘광복60돌60인위원회’ 위원을 비롯, 올 11월에 열릴 APEC행사의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춥고 배고픈 재야 연극인 생활을 할 때를 생각하면 이래저래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을 터이다. “오는 4월이면 국립극장이 개관 55주년을 맞이합니다. 이에 맞춰 국립극장은 지난해 10월 해오름극장에 이어 나머지 극장시설에 대한 리모델링 작업이 완전히 끝납니다. 모두 176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지요. 예쁜 새옷을 입고 좀더 편한 모습으로 국민들과 호흡하겠습니다.” 그의 집무실, 탁자 위에 놓인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잃어버린 나, 그리고 잊었던 우리와 다시 만나는 그런 무대를’ ‘무대와 친숙하지 않은 소외된 대중 속으로 더 가까이 더욱 뜨겁게’ 어떤 철학으로 극장을 운영하는지 짐작이 갔다. 글의 주인공은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 극장의 단골고객이며 평소에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국립극장장에 처음 취임할 때 모든 것을 (기존과)반대로만 하자고 다짐했단다. 즉 권위와 폐쇄, 관료적인 국립극장에서 탈권위적인 국민 속의 극장으로 개혁시키고자 했던 것. 스스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고 자평했다. 우선 공연장 명칭만 하더라도 대극장을 ‘해오름’, 소극장을 ‘달오름’, 실험극장 ‘별오름’ 등 부드럽게 변화시켰다. 또 무지개 길과 은하수 쉼터 등의 공간을 만들어 시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기존의 연평균 관객 30만에서 50만명으로 늘어났다. 수입도 3배 가까이 증가해 재정자립도를 7%에서 18%까지 끌어올렸다. 해외 유명 국립극장의 재정자립도가 대부분 15∼25%인 점을 감안하면 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국립극장은 6·25 발발 두달 전에 처음 출발했습니다. 국립극장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굴곡의 현대사나 다름없습니다. 어쨌든 올 한해는 우리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해외로 쭉쭉 뻗어나가게 할 생각입니다.” 화제를 돌렸다. 진보성향이라는 질문을 자주 받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약간 웃으며 “대학시절, 순수지향적 사회운동이 시작될 때 동료가 잡혀가는 것을 보고 예술과 현실사회 사이에서 무척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당시 임진택·채희완·김석만씨 등과 함께 민족극 운동1세대에 뛰어들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진보적 행보는 19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넓힌다. 연극 ‘갑오세 가보세’ ‘점아점아 콩점아’ ‘인동초’ 등 민족민중극을 연달아 선보였다. 주로 인권과 평등, 분단의 아픔을 고민했다. 예술에의 집착도 이같은 신념에서 비롯됐다. “가난한 연극인으로 진보적인 문예운동을 펼칠 때 다섯가지 마귀, 즉 주마(酒魔), 병마(病魔), 수마(垂魔), 궁귀(窮鬼), 색마(色魔)에 시달리느라 좌절도 많이 겪었습니다.”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2학년 때 연극반에 들어갔다. 연극반은 아예 먹고 자는 곳이었다. 첫 역할은 데모하는 학생을 데려다가 두들겨패는 정보과 형사였다. 교수의 첫째딸 역을 맡은 여학생이 예뻐서 더욱 신났다. 특히 연극이 끝나면 라면과 소주가 나왔다. 밤새 친구들과 소주마시며 얘기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잤다. 아침에 선배가 머리맡에 갖다놓은 도시락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세수는 늘 학교 우물가. 그런 생활이 계속됐다. 주마의 결과는 곧 병마로 돌아섰다.2학년 말 폐결핵이 찾아왔다. 그러다보니 약을 먹고 매일 잠만 잤다. 이제는 수마가 시작된 것. 이때만 하더라도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던 처지였다. 하지만 꼼짝조차 하기 싫었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방안퉁소’(방안에서 하루종일 퉁소만 부른다는 뜻)로 불렸을까. 결국 약도 못 사먹는 궁귀의 상태로 빠졌다. 색마에 대한 설명으로 그는 “연극을 하다 보면 늘 여성과 어울리게 된다.”며 웃는다. ●명창 박초월선생에 판소리 배워 대학 3학년 때 판소리를 처음 접하고 깊은 충격에 빠진다. 몸이 안 좋아 휴학 중이던 여름날. 전북 김제에서 친구를 만났다. 전북대 영문과에 재학 중인 그는 판소리를 배우고 있었다. 심심해서 친구를 따라나섰다. 시골의 큰 느티나무아 래의 정자. 한 여인이 아이들 4∼5명을 앞에 앉혀놓고 북을 치며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여인의 소리는 마디마디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 이런 것이 있었단 말인가. 사흘동안 그렇게 정자에 있었다. 그의 인생을 확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때만 해도 음악이란 오페라나 가곡이 전부인 줄 알았죠. 난생처음 판소리를 듣고 왜 학교에서 한번도 안 배웠는지 충격으로 다가오더군요.”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종로3가의 단성사 건너편에 위치한 명창 박초월 선생의 학원을 찾았다. 학원비를 겨우 마련한 뒤 등록했다. 두어달 후 학원비가 바닥났다. 사정을 안 박 선생은 그냥 다니라고 했다. 대신 전화도 받고 학생들의 가사를 받아쓰는 일 등을 했다. 나중에 박 선생은 그를 친자식처럼 여겼다. 이렇게 광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또한 마당극과 민요 등을 어떻게 하면 창작극에 잘 접목시키고 삽입시켜야 하는지를 연구했다. ●기자·교직 거쳐 연극의 길로 대학 졸업 후 ‘뿌리깊은 나무’의 기자가 된다. 하지만 연극과 판소리의 끼는 버리지 못했다. 배화여고 독일어 교사로 일단 자리를 옮겼다. 방학 때면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독일어과목 첫 수업 때 김 극장장은 “너희들이 독일어를 왜 배우냐, 먼저 우리것을 잘 알아야 한다.”며 ‘사랑가’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한 여제자가 이에 쏙 반해버렸다. 둘은 결혼에 골인했다. 다행히 15년 앓아오던 폐결핵은 아내의 헌신적 간병 덕분에 결혼 2년만에 말끔히 나았다. 지금도 이는 기적이라고 여긴다. “국립극장장이 됐을 때 아내는 이제야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무척 좋아했지요.” 어릴 적 그의 집은 전주시 중앙동. 하지만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장원이 기울어지면서 큰 집에서 작은 집, 중앙에서 변두리쪽으로 자꾸 밀려나갔다. 아버지는 한학을 공부한 낚시광이었다. 김 극장장은 모진 세월을 이겨내는 어머니와 인내심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좋아 독일어를 택했다. 가난한 배우생활을 하면서도 한번도 ‘파우스트’를 잊어본 적이 없다. 올해가 극장장 연임의 마지막해. 내년에 다시 실업자가 된다는 그는 “자유로워지면 꼭 파우스트 같은 작품을 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2년 전주 출생 ▲76년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졸업 ▲77년 뿌리깊은나무 기자 ▲78∼79년 배화여고 교사 ▲86년 극단 아리랑 창단대표 ▲98∼99년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회장 ▲99년 9∼1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객원교수 ▲2000년1월∼현재 국립극장장 ▲2000년11월∼현재 문화관광부 지역문화추진위원회 위원 ▲저서=광대열전, 점아점아콩점아, 꿈꾸는 퉁소쟁이 등 ▲연극=장산곶매, 나의살던 고향은, 장사의 꿈 등 ▲영화=일송정 푸른솔, 바보선언,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 등 ▲상훈=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서편제), 자랑스런 서울시민상(1994), 제1회 현대연극상 연출상(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 [씨줄날줄] 나폴레옹과 명분/이목희 논설위원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뛰어난 군사전략가이면서 선동가였다. 유럽대륙은 평정했으나 영국은 점령하지 못했다. 러시아(소련)를 침공한 것이 몰락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런 공통점에도 불구, 나폴레옹은 위인 반열에 드는 반면 히틀러는 악마에 가까운 독재자로 인식된다. 히틀러는 유대인 집단학살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구분짓는 중요한 잣대는 ‘명분’이다. 히틀러는 우수한 독일 민족이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과대망상 논리로 전쟁을 일으켰다.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는 자유민주주의의 전파자였다.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고, 주변의 전제군주 국가들은 프랑스를 견제하려 했다. 이들 전제국가에 맞서 싸운 프랑스야말로 전쟁의 명분이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는 나아가 농민·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국민군’ 개념을 탄생시켰다. 그전까지는 전제군주가 상비군으로 길러 놓은 ‘용병’이 전쟁을 담당했다.‘국왕을 위해’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국가·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쪽으로 전쟁사를 현대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대문호 괴테는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고 이를 평가했다. 나폴레옹이 확실한 영웅 대접을 못 받는 이유는 그 역시 전제군주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1804년 12월2일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황제 즉위식을 가졌다. 자유·평등 사상은 물론 문학·예술과 법률 등에서 ‘나폴레옹 혁명’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스스로 독재자가 됨으로써 히틀러식의 ‘정복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게 됐다. 황제 즉위 200주년을 맞아 프랑스인들이 그에게 애증의 눈길을 함께 보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피가로 매거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49%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했으나,‘독재자’라는 응답도 39%에 달했다. 힘이 있으면 전쟁에서 이긴다. 하지만 명분없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학살’이 된다.21세기 초입 세계의 관심은 이라크 전쟁이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와 인권을 내세워 이라크를 점령했다. 미국의 ‘명분’을 역사가 인정할까. 한국도 파병했고, 파병연장 문제가 당장의 현안으로 등장했다. 명분없어 보이는 전쟁이라면 빨리 발을 빼든가, 적어도 살상행위에는 절대 가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문화마당] 베르테르와 ‘욘사마’ 신드롬/김욱동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세계 문학사에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 같다.1808년 나폴레옹은 괴테를 만났을 때 그 책을 두 번이나 읽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흔일곱 살이 되었을 때 괴테는 이 소설과 관련하여 말하였다.“나는 살았고, 사랑하였으며, 아주 많은 고통을 겪었다! 누구든지 만약 자신의 생애에서 한 번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가슴에 와닿으면서 마치 그 책이 오직 자신을 위하여 쓰여진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없었다면 그 삶은 참으로 비참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또 다른 이유로 뭇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실연 당한 뒤 슬픔에 못 이겨 자살한 주인공 베르테르는 독일은 물론이고 국경을 넘어 프랑스의 젊은이들에게도 자못 큰 영향을 끼쳤다. 사랑에 절망하고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젊은이들의 호주머니 속에는 늘 괴테의 이 소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소설이 나온 뒤로 자살자의 수가 급격하게 치솟았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라이프치히, 바이에른, 오스트리아에서 금서 목록에 오르는 불운을 맞기도 하였다. 괴테는 독자들에게 제발 베르테르를 따르지 말라고 충고할 정도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문학사에서 최초로 ‘상품 열풍’을 일으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베르테르가 소설 속에서 사용한 장신구가 젊은 세대에게 크게 유행하였다. 젊은 남자들은 베르테르처럼 노란 조끼를 즐겨 입었으며, 젊은 여자들은 ‘베르테르 향수’를 뿌렸다.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놋쇠 단추가 달린 푸른색 프록 코트며, 위를 접어올린 갈색장화, 둥근 펠트모자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가 하면 베르테르 도자기 인형, 소설 속의 삽화를 그려넣은 찻잔, 베르테르 얼굴을 그린 부채들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한다. 요즈음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방영한 TV드라마 ‘겨울 연가’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이 드라마를 벌써 몇 번째 방영할 정도라니 그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금년 연말에는 일본어로 더빙하지 않고 한국어로 그대로 방영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한국어로 직접 듣기 위하여 몇 달 전부터 한국어를 공부해 온 극성 주부들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드라마에 주연 배우로 출연한 배용준의 인기도 각별하다. 이른바 ‘욘사마 신드롬’이라고 하여 일본 열도가 시끌벅적하다. 우리말의 ‘님’보다도 더 높은 존칭어인 ‘사마’를 붙여 존경심을 나타낸다. 일본 총리까지 ‘욘사마’가 자신보다 더 인기가 있는 것 같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정도이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겨울 연가’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콘텐츠 산업과 관광수입도 짭짤한 모양이다. 올해 말까지 이 드라마와 관련한 콘텐츠 상품의 매출은 줄잡아 2000억원으로 예상되고, 드라마의 촬영지였던 용평과 춘천을 찾는 관광객도 엄청나게 늘었다. 연말까지 무려 수십만명의 일본 관광객이 한국을 찾을 전망이다. 그런데 관광수입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를 통하여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심어 주었다는 점이다.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하여 독일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 젊은이들을 끌어들인 것처럼,‘겨울 연가’도 한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일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비록 이 드라마와 주연 배우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 주로 30∼40대 가정주부들이라고는 하지만 그 효과는 아마 세대를 뛰어넘어 일본 사람 거의 모두에게 두루 미칠 것이다.“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을 요즈음처럼 실감하는 때도 없다. 김욱동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 [책꽂이]

    ●20세기 동남아시아의 역사(클라이브 크리스티 엮음,노영순 옮김,심산 펴냄) 동남아시아는 대륙부와 해양부로 나눌 수 있다.대륙부 동남아시아는 태국,미얀마,베트남 등이 주축으로 인도문명과 불교문명이 만나는 지역이다.반면 해양부 동남아시아는 하나의 광범위한 언어·문화집단(말레이폴리네시아계)으로 이뤄져 있었지만,15세기 이후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가 우세한 지역(필리핀)으로 나뉘게 된다.이렇게 여러 문명권과 종족으로 구성된 이 국가들을 동남아시아라는 하나의 테두리로 묶을 수 있을까.책은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놀라울 만큼 동질적인 경험을 해왔음을 밝힌다.2만 5000원. ●괴테 파우스트 휴머니즘­신이 떠난 자리에 인간이 서다(김수용 지음,책세상 펴냄) 괴테가 60여년에 걸쳐 집필한 필생의 역작,독일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파우스트’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시도한 연구서.해석의 키워드는 ‘현대’와 ‘휴머니즘’이다.저자(연세대 독문과 교수)는 ‘파우스트’에 나타난 현대 인본주의의 신화를 분석,이 작품이 기독교적 중세의 틀을 벗어던지고 인간중심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힌 ‘현대’의 산물임을 밝힌다.‘영원한 방랑자’ 파우스트에게는 소시민적 안락함도,순수한 예술의 세계도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안정과 정주는 곧 정체이기 때문이다.1만 5000원. ●송도집(松濤集)(김용직 지음,깊은샘 펴냄) 학술원 회원인 저자(서울대 명예교수)가 한시 창작모임인 ‘난사(蘭社)’활동을 하면서 쓴 작품들을 모은 한시집.오언절구와 칠언절구,칠언율시 등 110여 수가 실렸다.한시 중에서 절구와 율시는 운자를 지키고 평측도 어김없이 밟아야 한다.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말도 고전적인 격식을 갖춰야 하는 것으로,한시 중에서도 작법이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돼 있다.1만원. ●위대한 기업 위대한 리더십(크리스 로니 지음,김이숙 옮김,휴머니스트 펴냄) 1540년 예수회를 창립한 성(聖)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와 동료들은 자신들의 단체이름에 ‘컴퍼니’라는 말을 넣어 ‘컴퍼니 오브 지저스’라고 했다.16세기 ‘컴퍼니’의 의미는 현재의 기업적 이미지보다는 ‘동료’나 ‘친구’ 집단이란 의미가 강했다.그들은 네 가지 리더십 원칙을 통해 역사상 가장 성공한 회사가 됐다.그 원칙은 자아인식과 독창성,사랑,영웅적 자질이다.예수회는 이런 원칙들을 토대로 460여년 동안 다국적 초우량기업으로 성장해 왔다.이 책은 그 비결을 밝힌다.1만 5000원. ●이야기 영국사(김현수 지음,청아출판사 펴냄) 영국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영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1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현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원탁 테이블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에게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후 민주주의의 초기 법령을 제정한 에드워드 1세,시민과 타협하는 정치체제를 수립한 윌리엄 3세를 거쳐 왕·귀족·시민의 균형을 이뤄가며 오늘날의 정치제도로 숙성됐다.저자(단국대 교수)는 아서왕에서 엘리자베스 2세까지 영국의 역사와 문화이야기를 들려준다.1만 4000원.
  • 박용철 전집 복간

    ‘떠나가는 배’의 시인 용아(龍兒) 박용철(1904∼38)의 저작을 모은 ‘박용철 전집(전2권·깊은샘 펴냄)이 나왔다.탄생 100주년을 맞아 발간된 이 전집은 그의 타계 직후인 1939년 미망인 임정희 여사와 문우 김영랑·함대윤·이하윤·김광섭 등이 그의 유고 등을 정리한 ‘박용철 전집’(전2권·동광당서점 펴냄)의 복간본이다. 제1권 시집은 ‘창작시편’과 ‘번역시편’으로 꾸며졌다.창작시편에는 ‘떠나가는 배’‘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이대로 가랴마는’‘싸늘한 이마’ 등이 실렸고,번역시편에는 괴테·하이네·릴케 등의 시편이 담겨 있다.제2권 평론집은 ‘시적 변용에 대해서’‘기교주의설의 허망’ 등 문예비평을 비롯해 동서고전을 읽으면서 얻은 단상을 적은 ‘수필과 소품’편,잡지 ‘시문학’ 등의 편집후기를 모은 ‘잔영’편,번역극 ‘인형집’ 등이 실려 있는 ‘희곡’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복간본은 초간본 원형을 그대로 살렸지만 시집의 경우 1930년대 시어에 익숙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시인인 허형만(국문학과) 목포대 교수가 옛말과 전남 방언 등에 대해 주석을 달았다.전집과 함께 박용철이 발행했던 잡지 ‘시문학’‘문예월간’ 등의 영인본을 묶은 ‘박용철발행잡지총서’(전4권)도 이번에 깊은샘 출판사에서 펴냈다.전집 각권 3만 5000원,잡지총서 7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진짜 ‘좌익신문’ 나왔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에 ‘진짜 좌익’ 신문이 등장했다. 네브래스카 브로큰보 지역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커스터 카운티 치프’는 8월 둘째주에서 셋째주 사이에 발행되는 지면을 완전 ‘좌경화’했다. 그러나 치프의 좌경화는 내용을 급진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형식을 바꾼 것이다.기존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던 지면을 (한문책이나 80년대까지 한국의 신문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겨보도록 인쇄한 것. 데브 매카슬린 발행인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13일)을 기념해 왼손잡이들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봤다.”면서 “가끔씩 새롭고 재미있는 시도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치프는 형식을 바꾼 것과 함께 역사적으로 유명한 왼손잡이들을 소개하는 기사도 실었다.아리스토텔레스,레오나르도 다빈치,아이작 뉴턴,괴테,베토벤,니체,안데르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또 알렉산더,시저,나폴레옹,처칠,간디,잔다르크 같은 영웅들도 왼손잡이였다. dawn@seoul.co.kr
  • [이런 책 어때요]

    ●이탈리아 기행1·2/괴테 지음 괴테의 이탈리아 체류가 그의 삶과 문학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지인들의 도움으로 그는 미술을 공부하고 고대 로마의 유산을 답사하며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가다듬고 정체성을 되찾았다.고전주의에 대해서도 새롭게 눈떴다.젊은 시절 추구한 질풍노도 경향의 조야함을 극복하고 ‘조용한 위대성과 고귀한 단순성’(빙켈만)을 깨달은 것.규범과 조화를 중시하는 이탈리아의 고전주의는 괴테 작품세계의 새 장을 열었다.자연과학에 조예가 깊던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식물학,기상학,지질학,광물학,동물학,색채학 등에 관한 세심한 관찰기록을 남겼다.각권 1만원. ●상군서(商君書)/상앙 지음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 효공 때의 재상이자,법가의 원조인 공손앙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고전.상앙이라고도 하는 공손앙은 위나라 공족 출신으로 젊어서부터 형명학(刑名學)을 좋아했다.효공에게 중용된 공손앙은 형법,가족법,토지법 등 다방면에 걸친 대개혁을 단행해 서쪽 변방의 허약한 나라였던 진나라를 강국으로 변모시켰다.그러나 효공이 죽고 혜왕이 즉위한 뒤 그의 엄격한 법치주의에 원한을 품었던 반대파에 의해 거열형(車裂刑,수레에 사지를 묶어 찢어 죽이는 형벌)을 받았다.‘상군서’엔 공손앙의 변법(變法) 개혁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1만원. ●석유의 종말/폴 로버츠 지음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는 언젠간 바닥이 날 유한자원이다.또한 화석연료를 태울 때마다 온실효과가 가속화돼 기상이변을 가져오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하지만 우리는 이를 망각하고 있다.책은 석유자원의 현실과 한계를 다룬다.지난 1세기 동안 인류가 가스,석유,석탄을 태워 생긴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구의 기온은 화씨 3도나 올랐다. 빙하시대의 종말이 3도의 기온 상승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심각한 문제다.빙하시대 이후 3도의 기온이 오르는 데 5000년이 걸렸지만 지금의 지구온난화 현상은 100년도 안돼 나타나고 있다.1만 4900원. ●카프카의 프라하/바겐바흐 지음 인간의 불안과 소외를 그린 현대문학의 거장 프란츠 카프카는 세상을 뜨기 직전의 요양소 체류와 몇 번의 짧은 여행을 제외하곤 평생을 프라하에서 보냈다.프라하가 ‘맹수의 발톱’처럼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그는 프라하를 증오하면서도 끝내 떠나지 못했다.카프카의 삶과 문학은 카프카가 태어나고 자란 프라하와 깊이 얽혀 있다.책은 프라하가 작가 카프카의 문학성을 어떻게 키워왔는가를 살핀다.채식주의자인 카프카가 늘 가던 레스토랑,카프카가 잠들어 있는 유대인 공동묘지,즐겨 걷던 산책로까지 낱낱이 훑었다.9500원. ●중국도시 현장보고서/라오창 지음 중국의 각 도시를 경제적·문화적 관점에서 비교 분석.장강삼각주를 이끄는 항저우와 쑤저우,서부경제의 쌍두마차인 충칭과 청두,패션산업으로 이색적인 경쟁을 펼치는 닝보와 다롄은 경쟁과 협력을 거듭해온 라이벌 도시다.지역별 분석을 통해 중국의 3대 경제권인 주강삼각주와 장강삼각주,환발해경제권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상하이를 끼고 있는 주강삼각주는 명실공히 중국 제1의 경제권이며,톈진과 다롄을 품고 있는 환발해경제권은 중공업과 가공산업의 핵심지대다.또 선전 주변의 장강삼각주는 50년 후엔 뉴욕을 따라잡겠다는 야심만만한 곳이다.1만 3000원.
  • [논술 비타민] 네 개의 제시문-노병곤 문학박사·’글과 생각’ 송파캠퍼스 원장

    네 개의 제시문은 모두 하나의 공통된 주제와 관련된 글이다.제시문 간의 연관 관계를 밝히고,공통 주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고려대 2004 논술고사 문제) ■ 제시문(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괴테가 원래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우리는 괴테라는 천재적인 작가의 정신의 행로를 따라가며 그의 삶과 문학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기를 원한다.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실제 괴테가 처했던 상황에서 그의 글을 읽는다.이렇게 독자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저자의 의도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 작품을 대하는 옳은 태도이다.그렇지 않다면 각자의 입장에 따른 주관적 왜곡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우리의 삶과 무관한 저자의 의도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지 물을 수 있다.우리는 현대인으로서 나름의 관점과 기준을 가지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는다.모든 고전은 시대마다 고유의 관점에서 재해석되며,거기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다.해석은 자유로운 창조이다.지금 우리의 삶에 아무런 의미를 보태지 못하는 저자의 원래 의도는 죽은 사실에 불과하다. ■ 제시문(나) 랑케는 오로지 실재했던 사실만을 기술하고자 했다.사료(史料)에 대한 비판적 검증을 통해 그는 문헌 안에서 역사적 사실만을 가려내려고 했던 것이다.랑케의 모든 저작에는 역사적 객관성을 향한 강한 의지와 동력이 엿보인다.그는 언제나 무한히 풍부한 사건들로부터 객관적·역사적 연관을 찾되 형이상학적인 역사 구성의 우를 범하지 않는,실증적인 탐구 방법을 추구했다.즉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를 원했던 것이다.랑케는 자신의 현재에서 눈을 떼고,불편부당하고 객관적인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을 정립하려고 노력했다. ■ 제시문(다) 일군의 과학철학자에 의하면,과학지식은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가 아니라 특정의 ‘과학하는 방식’을 공유하는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지식일 뿐이다.여기서 과학하는 방식은 동일한 신념,가치관,연구 방법,검증 방식 등의 집합을 말한다.이 방식에 부합하는 가설만이 과학적 탐구의 대상 세계에 대한 정당한 설명으로 공인을 받는다.즉 과학지식은 과학자 공동체가 공유하는 패러다임 위에서 이뤄진 일련의 합의 내용들이다. ■ 제시문(라) (피고 갑(甲)은 피해자 을(乙)을 폭행하여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검사와 변호사는 현재까지 확인된 증거만으로 갑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판사와 배심원 앞에서 대립되는 주장을 펴고 있다.) 검사 범죄행위에 대한 증거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이미 배심원 여러분이 알고 있는,그리고 피고와 변호인도 인정하고 있는 증거만으로도 피고가 가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은 매우 상대적인 것입니다.예컨대 같은 사건을 목격한 증인들의 증언이 엇갈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이 사건에서 피고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일부 제시되고 있지만,그 증거들에 대한 최종적 평가는 배심원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에 맡겨져 있는 것입니다. 검사 법정은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장소입니다.현명하신 배심원 여러분이 합리적 이성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가려내고,그에 기초하여 공정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의 실현이 아니겠습니까? 변호사 저 역시 실체적 진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그러나 과연 우리가 신(神) 앞에서 어느 정도까지 실체적 진실을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배심원 여러분은 오로지 자신의 현명한 판단을 통해 증거의 의미를 평가하고,그에 기초해서 합의로써 사실을 올바르게 확정해 주시기 바랍니다.(재판장이 배심원들의 평의를 위해 휴정을 선언한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2)안의현감(安義縣監) 연암 박지원의 행정론

    경남 함양군 안의면 안의초등학교 교정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비석 하나가 서 있다.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 선생에 관한 역사와 선생께서 활동하셨던 18세기 영조 정조시대의 조선 지성사와 사회사의 한 단면까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사적비(事蹟碑)다.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와 탁월한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함께 느낄 수 있으며,특히 안의현감이라는 지방의 한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행정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들은 정치와 권력의 남용으로 고통받는 이 시대를 향하여 무언의 꾸짖음을 던지고 있다. 오늘은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아래 함양 안의면의 오월 녹음을 주우며 그 푸르고 향그러운 색깔 속에 살아있는 한 지성의 인간과 세상을 향한 말씀을 들으려 길을 떠난다. 연암 박지원 선생을 두고 칭송하는 글귀는 매우 많다.‘그의 문장은 천마(天馬)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아 굴레를 씌우지 않았건만 자연스럽게도 법도에 다 들어맞는다.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문장 가운데 으뜸이라 할 만하며,뒷 사람들이 배워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글과 ‘영국에 셰익스피어가,독일에 괴테가,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는 글이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이같은 선생은 흔히 ‘양반전’‘허생전’ 등 부패한 사회상과 타락한 양반 사회를 풍자적 기법으로 통렬하게 비판한 소설가로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선생의 나이 44세 때 청나라 여행을 계기로 국내 보수파들의 극렬한 비난을 무릅쓰면서 쓴 ‘열하일기’는 당시 문단에 충격을 던진 놀라운 문체로서 선생의 글이 단순히 글 재주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의 삶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고 가기 위한 위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이 결합된 신선함의 상징이었다.여기에서 선생은 행정가 혹은 정치가로서의 안목과 구체적 능력을 암시하기도 했다. ●나이 50에 임금분부로 마지못해 벼슬길 이렇듯 천하 제일가는 문장가로 널리 알려진 선생이었지만 한사코 과거시험을 거쳐 벼슬길에 나아가는 일은 극력 회피했다.주위의 권유가 하도 잦고 간곡하여 몇 차례 과거시험장에 나간 적이 있었다.그러나 답안지를 작성한 뒤에는 이름을 적지 않았고,글 대신 그림을 그려 놓거나 엉뚱한 시편들을 대신 적기도 했는데,이 때 선생이 지은 글은 곧잘 큰 유행이 되기도 했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감탄과 아쉬움을 함께 자아내기도 했다.심지어 임금의 명령으로 과거시험장에 억지로 나간 적도 여러번 있었지만 모두 이름을 적지 않았다.벼슬이나 권세가 깊은 학문과 향기 짙은 문학세계를 해칠 수 있다는 선생의 청정한 지조,혼탁하고 광분한 지성사를 꾸짖어 바로잡을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세상에 나아가면 더욱 세상을 어지럽힐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직과 청빈을 집안의 가훈으로 이어받은 선생 또한 몹시 가난하게 살았다.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마치 독서하는 군자처럼 살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떴는데,선생이 나이 50세 때 임금의 거듭된 분부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 음관(蔭官)으로 벼슬길에 나간지 반 년도 못 된 때였다.아내를 여읜 지 얼마 안되어 다시 맡며느리의 상을 당한 뒤로는 끼니 챙겨 줄 사람도 없이 19년여를 혼자 살았다.그 고적하고 불편한 생애의 후반에 이르러서야 선생의 학문과 행정가로서의 세계가 더욱 깊고 넓게 완성될 수 있었다. 선생이 참으로 엉뚱하게도 경상도 안의현감이라는 지방 목민관으로 부임한 것은 1792년 1월이었다.1796년 봄에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5년 동안 안의현감을 지내면서 남긴 업적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직자와 정치가들에게 변함없는 교훈이자 반드시 닮아야 할 목표로 남아 있다.53세에 안의현감으로 부임한 선생 앞에 맨 먼저 던져진 과제는 아전들의 오래된 폐단이었는데,공금횡령과 현감을 속이고 우롱하는 행동이었다.다른 하나는 공금횡령을 부추기는 주변의 권유와 부정부패를 일삼아야만 출세할 수 있다는 공공연한 현실이었다. ●군량미 향곡 9000섬 야금야금 도둑질 지방관청의 실무 담당자들인 아전은 모두 그 지방 출신자들인데다 오래도록 아전으로 지낸 터여서 관내의 모든 일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거기에 비해 서울에서 임명되어 오는 현감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었다.따라서 현감은 짧은 임기 동안에 안의지역에 관한 일들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떠나는 일이 흔했다.이같은 사정을 알고 있는 아전들이 고의적으로 현감의 임기를 되도록 짧게 만들기 위한 수작을 부리는 폐습이 뿌리 깊었다.부임하는 현감으로 하여금 안의 지역의 행정 업무에는 아예 손도 못대게 하기 위해 교활한 함정을 파서 빠뜨렸다.아전 상호간의 비리를 적은 투서를 익명으로 현감에게 보내는 것이었다.투서자가 익명이기 때문에 투서에 적힌 당사자를 소환하여 조사하면 으레 시치미를 잡아 떼면서 누명을 덮어 썼다고 항변했다.이같은 투서사건을 조사하느라 시일을 보내다보면 현감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그러는 사이에 현감이 무능하다거나 죄없는 아전들을 잡아들여 족치면서 뇌물을 요구한다는 투서가 서울로 보내졌다.결국 현감은 서울로 불려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겨갔다. 아전들의 이같은 행동은 자신들이 저지른 공금횡령 사실을 은폐시키기 위한 계획적인 짓이었다.아전들이 저지르는 공금횡령의 대표적인 사례는 군량미로 책정된 곡식인 향곡(餉穀)을 도둑질하는 것이었다.각 고을에서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대동미 중에서 일부는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머지는 여러 가지 용도에 대비하기 위해 지방관청에다 보관해 두고 있었는데,이 곡식을 아전들이 야금야금 도둑질하여 선생이 안의현감으로 부임했을 때는 무려 6만여 휘(열 다섯 말이나 스무 말을 일컫는 수량의 단위)나 되었다.10말을 한 섬으로 치면 무려 9000섬이나 되는 엄청난 곡식이었다.아전들의 고질적인 횡령으로 국가와 지방관청은 늘 재정부족으로 허덕였다.선생은 특유의 직관과 지혜로서 아전들의 농간을 혁파하고 그들이 훔쳐 낸 공금을 모두 환수했다.그 과정에서 어느 한 사람도 죄를 묻거나 궁지에 몰아 넣지 않고 깊이 뉘우치면서 기쁜 마음으로 죄를 갚도록 함으로써 안의 사람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선생은 과오를 저지른 아전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다양한 교훈과 모범을 보였다.선생의 정직함과 청빈함이 아전들에게 교훈이 되었다.앞서 간 수많은 현감들의 탐욕과 위선이 아전들을 공금횡령으로 밀어 넣은 것이라고 선생은 말했다.오늘날의 저 많은 국가 공직자들과 지도자들이 다시 살펴봐야 할 두렵고 또 두려운 역사적 교훈이자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기 위한 철학이다.이렇게 채워진 곡식을 두고 서울의 중앙관청 고관들로부터 나눠 갖자는 유혹이 있었다.어차피 없어도 좋은 것이므로 나눠갖자는 제의였다.또한 늘그막에 가난 때문에 지방 수령 노릇을 하니까 적당히 챙기면 가난은 면할 수 있으리라는 중앙의 벼슬아치들이 예사로 주고받는 말은 선생으로 하여금 더욱 청빈하게 만들었다.빈번한 흉년 때마다 굶주리는 백성들을 도울 때 선생이 한결같이 정성을 쏟은 것은 얻어 먹는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또한 부득이 아랫사람에게 곤장을 쳐야 할 경우에는 곤장질이 끝난 후 반드시 사람을 보내 맞은 곳을 주물러 멍을 풀게 했다. ●죄 묻거나 궁지에 몰지않아 모두 감복 “고을 원 노릇은 좋은 일이지만 사람을 매로 다스리는 일만큼은 몹시 괴롭고 싫다.”고 했다. 선생은 지방관청 행정가가 가장 공력을 많이 들여야 할 것으로 몇 가지를 꼽아 실천했다.가난한 사람을 돕되 가난의 원인을 해결해 주는 것,상업과 농업의 중요성만큼 장사하고 농사 짓는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 주는 것,농민들의 노동력을 능률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청나라에서 실시하는 여러 가지 농기계를 제작하여 보급하는 것,지역민들이 자신들의 고장에 대한 긍지를 갖고 살도록 하기 위해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들을 꼽았다. 선생의 이같은 위업은 조선 후기 타락한 양반 관료들의 부패와 탐학의 만연으로 가려져 있었지만,오늘 다시 선생의 청렴과 결백한 행정가로서의 삶은 우리 시대를 향해 또 한 번 꾸짖는다.너는 왜 공무원이 되었느냐고. 선생은 부인과 함께 황해도 장단구 송서면 대현리에 묻히셨는데,지금 누가 그 무덤의 풀을 베고 술잔을 올리는지 알 길이 없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2)안의현감(安義縣監) 연암 박지원의 행정론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2)안의현감(安義縣監) 연암 박지원의 행정론

    경남 함양군 안의면 안의초등학교 교정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비석 하나가 서 있다.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 선생에 관한 역사와 선생께서 활동하셨던 18세기 영조 정조시대의 조선 지성사와 사회사의 한 단면까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사적비(事蹟碑)다.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와 탁월한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함께 느낄 수 있으며,특히 안의현감이라는 지방의 한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행정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들은 정치와 권력의 남용으로 고통받는 이 시대를 향하여 무언의 꾸짖음을 던지고 있다. 오늘은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아래 함양 안의면의 오월 녹음을 주우며 그 푸르고 향그러운 색깔 속에 살아있는 한 지성의 인간과 세상을 향한 말씀을 들으려 길을 떠난다. 연암 박지원 선생을 두고 칭송하는 글귀는 매우 많다.‘그의 문장은 천마(天馬)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아 굴레를 씌우지 않았건만 자연스럽게도 법도에 다 들어맞는다.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문장 가운데 으뜸이라 할 만하며,뒷 사람들이 배워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글과 ‘영국에 셰익스피어가,독일에 괴테가,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는 글이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이같은 선생은 흔히 ‘양반전’‘허생전’ 등 부패한 사회상과 타락한 양반 사회를 풍자적 기법으로 통렬하게 비판한 소설가로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선생의 나이 44세 때 청나라 여행을 계기로 국내 보수파들의 극렬한 비난을 무릅쓰면서 쓴 ‘열하일기’는 당시 문단에 충격을 던진 놀라운 문체로서 선생의 글이 단순히 글 재주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의 삶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고 가기 위한 위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이 결합된 신선함의 상징이었다.여기에서 선생은 행정가 혹은 정치가로서의 안목과 구체적 능력을 암시하기도 했다. ●나이 50에 임금분부로 마지못해 벼슬길 이렇듯 천하 제일가는 문장가로 널리 알려진 선생이었지만 한사코 과거시험을 거쳐 벼슬길에 나아가는 일은 극력 회피했다.주위의 권유가 하도 잦고 간곡하여 몇 차례 과거시험장에 나간 적이 있었다.그러나 답안지를 작성한 뒤에는 이름을 적지 않았고,글 대신 그림을 그려 놓거나 엉뚱한 시편들을 대신 적기도 했는데,이 때 선생이 지은 글은 곧잘 큰 유행이 되기도 했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감탄과 아쉬움을 함께 자아내기도 했다.심지어 임금의 명령으로 과거시험장에 억지로 나간 적도 여러번 있었지만 모두 이름을 적지 않았다.벼슬이나 권세가 깊은 학문과 향기 짙은 문학세계를 해칠 수 있다는 선생의 청정한 지조,혼탁하고 광분한 지성사를 꾸짖어 바로잡을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세상에 나아가면 더욱 세상을 어지럽힐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직과 청빈을 집안의 가훈으로 이어받은 선생 또한 몹시 가난하게 살았다.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마치 독서하는 군자처럼 살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떴는데,선생이 나이 50세 때 임금의 거듭된 분부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 음관(蔭官)으로 벼슬길에 나간지 반 년도 못 된 때였다.아내를 여읜 지 얼마 안되어 다시 맡며느리의 상을 당한 뒤로는 끼니 챙겨 줄 사람도 없이 19년여를 혼자 살았다.그 고적하고 불편한 생애의 후반에 이르러서야 선생의 학문과 행정가로서의 세계가 더욱 깊고 넓게 완성될 수 있었다. 선생이 참으로 엉뚱하게도 경상도 안의현감이라는 지방 목민관으로 부임한 것은 1792년 1월이었다.1796년 봄에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5년 동안 안의현감을 지내면서 남긴 업적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직자와 정치가들에게 변함없는 교훈이자 반드시 닮아야 할 목표로 남아 있다.53세에 안의현감으로 부임한 선생 앞에 맨 먼저 던져진 과제는 아전들의 오래된 폐단이었는데,공금횡령과 현감을 속이고 우롱하는 행동이었다.다른 하나는 공금횡령을 부추기는 주변의 권유와 부정부패를 일삼아야만 출세할 수 있다는 공공연한 현실이었다. ●군량미 향곡 9000섬 야금야금 도둑질 지방관청의 실무 담당자들인 아전은 모두 그 지방 출신자들인데다 오래도록 아전으로 지낸 터여서 관내의 모든 일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거기에 비해 서울에서 임명되어 오는 현감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었다.따라서 현감은 짧은 임기 동안에 안의지역에 관한 일들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떠나는 일이 흔했다.이같은 사정을 알고 있는 아전들이 고의적으로 현감의 임기를 되도록 짧게 만들기 위한 수작을 부리는 폐습이 뿌리 깊었다.부임하는 현감으로 하여금 안의 지역의 행정 업무에는 아예 손도 못대게 하기 위해 교활한 함정을 파서 빠뜨렸다.아전 상호간의 비리를 적은 투서를 익명으로 현감에게 보내는 것이었다.투서자가 익명이기 때문에 투서에 적힌 당사자를 소환하여 조사하면 으레 시치미를 잡아 떼면서 누명을 덮어 썼다고 항변했다.이같은 투서사건을 조사하느라 시일을 보내다보면 현감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그러는 사이에 현감이 무능하다거나 죄없는 아전들을 잡아들여 족치면서 뇌물을 요구한다는 투서가 서울로 보내졌다.결국 현감은 서울로 불려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겨갔다. 아전들의 이같은 행동은 자신들이 저지른 공금횡령 사실을 은폐시키기 위한 계획적인 짓이었다.아전들이 저지르는 공금횡령의 대표적인 사례는 군량미로 책정된 곡식인 향곡(餉穀)을 도둑질하는 것이었다.각 고을에서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대동미 중에서 일부는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머지는 여러 가지 용도에 대비하기 위해 지방관청에다 보관해 두고 있었는데,이 곡식을 아전들이 야금야금 도둑질하여 선생이 안의현감으로 부임했을 때는 무려 6만여 휘(열 다섯 말이나 스무 말을 일컫는 수량의 단위)나 되었다.10말을 한 섬으로 치면 무려 9000섬이나 되는 엄청난 곡식이었다.아전들의 고질적인 횡령으로 국가와 지방관청은 늘 재정부족으로 허덕였다.선생은 특유의 직관과 지혜로서 아전들의 농간을 혁파하고 그들이 훔쳐 낸 공금을 모두 환수했다.그 과정에서 어느 한 사람도 죄를 묻거나 궁지에 몰아 넣지 않고 깊이 뉘우치면서 기쁜 마음으로 죄를 갚도록 함으로써 안의 사람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선생은 과오를 저지른 아전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다양한 교훈과 모범을 보였다.선생의 정직함과 청빈함이 아전들에게 교훈이 되었다.앞서 간 수많은 현감들의 탐욕과 위선이 아전들을 공금횡령으로 밀어 넣은 것이라고 선생은 말했다.오늘날의 저 많은 국가 공직자들과 지도자들이 다시 살펴봐야 할 두렵고 또 두려운 역사적 교훈이자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기 위한 철학이다.이렇게 채워진 곡식을 두고 서울의 중앙관청 고관들로부터 나눠 갖자는 유혹이 있었다.어차피 없어도 좋은 것이므로 나눠갖자는 제의였다.또한 늘그막에 가난 때문에 지방 수령 노릇을 하니까 적당히 챙기면 가난은 면할 수 있으리라는 중앙의 벼슬아치들이 예사로 주고받는 말은 선생으로 하여금 더욱 청빈하게 만들었다.빈번한 흉년 때마다 굶주리는 백성들을 도울 때 선생이 한결같이 정성을 쏟은 것은 얻어 먹는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또한 부득이 아랫사람에게 곤장을 쳐야 할 경우에는 곤장질이 끝난 후 반드시 사람을 보내 맞은 곳을 주물러 멍을 풀게 했다. ●죄 묻거나 궁지에 몰지않아 모두 감복 “고을 원 노릇은 좋은 일이지만 사람을 매로 다스리는 일만큼은 몹시 괴롭고 싫다.”고 했다. 선생은 지방관청 행정가가 가장 공력을 많이 들여야 할 것으로 몇 가지를 꼽아 실천했다.가난한 사람을 돕되 가난의 원인을 해결해 주는 것,상업과 농업의 중요성만큼 장사하고 농사 짓는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 주는 것,농민들의 노동력을 능률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청나라에서 실시하는 여러 가지 농기계를 제작하여 보급하는 것,지역민들이 자신들의 고장에 대한 긍지를 갖고 살도록 하기 위해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들을 꼽았다. 선생의 이같은 위업은 조선 후기 타락한 양반 관료들의 부패와 탐학의 만연으로 가려져 있었지만,오늘 다시 선생의 청렴과 결백한 행정가로서의 삶은 우리 시대를 향해 또 한 번 꾸짖는다.너는 왜 공무원이 되었느냐고. 선생은 부인과 함께 황해도 장단구 송서면 대현리에 묻히셨는데,지금 누가 그 무덤의 풀을 베고 술잔을 올리는지 알 길이 없다.
  • [보러갑시다]

    ●미 술 ■ 임효 작품전 28일까지 국립전주박물관(063)220-1021.생성과 윤회를 주제로 한 한국적 감성의 작품. ■ 김정수 작품전 26일∼6월1일 인사아트센터(02)736-1020.진달래를 소재로 한 서정적 분위기의 신작. ■ 이병희 개인전 25일까지 갤러리 피쉬(02)730-3280.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하는 창의적인 놀이공간. ■ 원혜연 개인전 6월9일까지 사비나미술관(02)736-4371.인간의 원초적 슬픔을 머금은 초상을 형상화. ■ 정종해 작품전 22∼30일 예술의전당 미술관(02)580-1641.거칠고 둔탁한 필치가 돋보이는 수묵화. ■ 최인선 작품전 6월10일까지 노화랑(02)732-3558.오브제를 활용한 서정 추상의 세계. ●뮤지컬 ■ 아이 30일까지 서울퍼포밍아트홀(02)741-9723.임형택 각색·연출,윤덕선 구기남 출연.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진정한 의사소통을 다룬 뮤지컬. ■ 파우스트 30일까지 게릴라극장(02)763-1268.이재성 연출,김장섭 한애리 출연.괴테의 고전을 음악극으로 각색. ■ 판타스틱스 30일까지 동숭아트센터소극장(02)762-0010.톰 존스 작·김달중 연출,최용민 추상록 출연.순수한 청춘의 사랑을 아기자기하게 그린 소극장뮤지컬. ● 어린이 ■ 열 두 동물이야기 23일∼6월20일 라트어린이극장(02)560-0999.‘리틀드래곤’‘신기한 스프’에 이은 세번째 어린이 영어연극. ■ 우리는 친구다 6월13일까지 학전블루소극장(02)763-8233.겁쟁이 민호와 TV광 슬기,폭력적인 뭉치 등 세 아이의 일상을 그린 극단 학전의 어린이극. ■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6월20일까지 유시어터(02)3444-0651.백설공주에 반한 막내 난장이 반달이의 슬픈 사랑을 그린 가족극. ● 콘서트 ■ 요시다 형제 내한공연 22일 오후6시 남대문 메사팝콘홀(02)730-3607. ■ 윤희정&Friends 2004 26일 오후 4시·7시 문화일보홀(02)3701-5757. ■ 여행스케치 대학로컴백쑈 6월6일까지 목·금 오후8시,토 오후 4시·8시,일 오후 3시·6시30분 대학로 질러홀(02)741-9700. ■ 플라워 ‘사회적응훈련’콘서트 21일 오후7시30분,22일 오후 4시·8시,23일 오후4시 성균관대 새천년홀(02)567-1318. ■ 이사오 사사키의 피아노의 숲 22일 오후 6시·10시 양평 용문산 야외무대(02)525-6929. ● 무 용 ■ 호두까기인형 30일까지 LG아트센터(02)2005-0114.영국 안무가 매튜 본의 댄스 뮤지컬. ■ 아바타처용2 26·27일 오후7시30분 문예진흥원예술극장대극장(02)3674-2210.손인영 나우무용단. ■ 인간 동물의 사육제 22·23일 오후7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02)520-8096.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KNUA)안무집단 정기공연. ●연 극 ■ 버들개지 23일까지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02)765-3380.정영욱 작·김완수 연출,박웅 서갑숙 출연.떠나간 아들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심정을 담은 가족극. ■ 자객열전 30일까지 문예진흥원예술극장 소극장(02)745-0308.박상현 작·이성열 연출,김세동 정철민 출연.동서고금 테러리스트들이 펼치는 활극. ■ 리어왕 26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02)763-1268.셰익스피어 작·이윤택 연출,전성환 김소희 출연.연희단거리패의 야외극. ■ 햄릿 30일까지 동숭아트센터동숭홀(02)764-8760.셰익스피어 작·이성열 연출,김영민 장영남 장두이 출연.햄릿과 클로디어스의 대결을 그린 비극. ■ 짬뽕 30일까지 동숭무대(02)2266-0778.윤정환 작·연출,윤영걸 박민규 출연.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 ● 클래식 ■ 루치아 26∼30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오페라극장(02)587-1950.루치아 알리베르티,고성현 출연.한국오페라단. ■ 서울챔버뮤직소사이어티 21일 오후7시30분 모차르트홀(02)3472-8222. ■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27일 오후7시30분 KBS홀,28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781-2242.지휘 아릴드 레메라이트. ■ 서울시교향악단 특별연주회 21·22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399-1614.장 클로드 카사드쉬 지휘,자크 타데이(오르간)곽 정(하프)협연. ■ 함영주&이명순 피아노 듀오연주회 27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02)497-1973. ■ 장은주 귀국 피아노독주회 21일 오후7시30분 영산아트홀(02)3436-5929,˝
  • [보러갑시다]

    □ 미술 ■ 원혜연 개인전 6월 9일까지 사비나미술관(02)736-4371.인간의 원초적 슬픔을 머금은 초상을 형상화. ■ 모정이 있는 그림·조각전 16일까지 청작화랑(02)549-3112.구자승·이숙자·오용길·김병종·전뢰진·윤영자 등 중견·원로작가 31명의 그룹전. ■ 김주호 작품전 20일까지 학고재(02)720-1524.해학적인 모습과 동작,표정을 지닌 흥미로운 인물상. ■ 이상원 작품전 16일까지 상갤러리(02)730-0030.‘동해인’ 시리즈 등 삶의 본질을 꿰뚫는 극사실주의 작품. ■ 조순길 문인화전 18일까지 물파아트센터(02)739-1997.내면의 정신을 강조한 현대적 감각의 문인화. ■ 임효 작품전 28일까지.국립전주박물관(063)220-1021.생성과 윤회를 주제로 한 한국적 감성의 작품. □ 뮤지컬 ■ 파우스트 30일까지 게릴라극장(02)763-1268.이재성 연출,김장섭 한애리 출연.괴테의 고전을 음악극으로 각색. ■ 아이 30일까지 서울퍼포밍아트홀(02)741-9723.임형택 각색·연출,윤덕선 구기남 출연.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진정한 의사소통을 다룬 뮤지컬. ■ 판타스틱스 30일까지 동숭아트센터소극장(02)762-0010.톰 존스 작·김달중 연출,최용민 추상록 출연.순수한 청춘의 사랑을 아기자기하게 그린 소극장뮤지컬. □ 어린이 ■ 우리는 친구다 6월13일까지 학전블루소극장(02)763-8233.겁쟁이 민호와 TV광 슬기,폭력적인 뭉치 등 세 아이의 일상을 그린 극단 학전의 첫번째 어린이극. ■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6월20일까지 유시어터(02)3444-0651.백설공주에 반한 막내 난장이 반달이의 슬픈 사랑을 그린 가족극. □ 콘서트 ■ 민경인 재즈콘서트 15일 오후7시30분 세라믹 팔레스홀(02)323-5762. ■ 여행스케치 대학로컴백쑈 6월6일까지 목·금 오후8시,토 오후 4시·8시,일 오후 3시·6시30분 대학로 질러홀(02)741-9700. ■ 플라워 ‘사회적응훈련’콘서트 21∼23일 금 오후7시30분,토 오후 4시·8시,일 오후4시 성균관대 새천년홀(02)567-1318. ■ 이사오 사사키의 피아노의 숲 22일 오후 6시·10시 양평 용문산 야외무대(02)525-6929. ■ 양희은 콘서트 16일까지 화∼토 오후8시,일 오후5시 한전아트센터 1544-0737. □ 무용 ■ 정명숙의 춤 15일 오후5시 세종문화회관소극장(02)744-7037.가인무,남도굿거리 등. ■ 강미선의 우리춤2004-전통춤과 신무용의 만남 14일 오후8시 호암아트홀(02)2263-4680.태평무,교방춤 등. ■ 잠자는 숲속의 미녀 14·15일 오후7시30분(02)580-1300.아놀드 누레예프 버전의 국립발레단 신작. □ 연극 ■ 파행 16일까지 문예진흥원예술극장대극장(02)3676-0878.백하룡 작·이기도 연출,한명구 이창직 출연.혼례길이 파행되는 과정을 통해 위정자를 비판하는 내용. ■ 발코니 16일까지 문예진흥원예술극장소극장(02)744-0300.장 쥬네 작·박정희 연출,김명수 나자명 출연,유곽에서 벌어지는 환상놀이 ■ 가시고기 18일∼7월25일 산울림소극장(02)334-5925.조창인 작·박은희 연출,성완경 박규남 출연.백혈병을 앓는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가슴아픈 부정. ■ 햄릿 30일까지 동숭아트센터동숭홀(02)764-8760.셰익스피어 작·이성열 연출,김영민 장영남 장두이 출연.햄릿과 클로디어스의 대결을 부각시킨 정통 비극. ■ 세븐 스토리즈 30일까지 낙산시어터(02)766-2124.모리스 핀치 작·전용환 연출,선종남 김신기 출연.투신하려는 사내와 이를 방해하는 아파트 이웃들의 소동. □ 클래식 ■ 카르멘 15∼19일 잠실올림픽주경기장 1588-7890.잔 카를로 델 모나코 연출,엘레나 자렘바(카르멘)호세 쿠라(돈 호세)출연. ■ 모차르트홀 개관 페스티벌-슈만과 하이네 19일 오후7시30분 모차르톨홀(02)3472-8222.바리톤 박흥우,피아니스트 신수정. ■ 권수미 피아노 독주회 16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02)3436-5929. ■ 금난새와 함께하는 오페라시리즈 15일 오후5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533-8744.‘라 트라비아타’하이라이트. ■ 시와 함께하는 이성주의 작은 사랑노래 18일 오후8시 호암아트홀(02)780-5054.이성주(바이올린)한방원(피아노)최상호(시낭송).˝
  • 베토벤의 머리카락/러셀 마틴 지음

    히틀러는 베토벤의 음악을 게르만 민족정신의 가장 고귀한 표현이라고 찬양했다.자신의 생일 축하 연주곡도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었다.그런가 하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세번 짧고 한번 긴 박자(단단단 다…)는 2차대전 당시 연합군에선 승리의 상징으로 사용했다.모스부호의 ‘V’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베토벤을 숭배한 인물은 한 둘이 아니다.클림트 등 빈 분리파를 비롯해 리스트,괴테,베를리오즈,멘델스존 등은 모두 베토벤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미국의 논픽션 작가 러셀 마틴이 쓴 ‘베토벤의 머리카락’(문명식 옮김,지호 펴냄)은 베토벤이란 이름이 단지 위대한 음악가 이상의 의미를 지님을 하나의 극적인 사건을 통해 보여준다.바로 베토벤 머리카락 경매다. 베토벤이 죽은 다음 날,친구인 후멜은 열 다섯살 된 제자 힐러를 데리고 그를 찾았다.관 속의 베토벤은 유언에 따라 귀의 연골이 적출되고,사람들이 여기저기 잘라가 머리 부분이 움푹 패여 있었다.소년 힐러는 스승에게 눈짓으로 물었다.“가져도 될까요?” 스승의 허락을 받은 힐러는 몰래 한 뭉치의 머리카락을 잘라냈다.이 머리카락은 유리 로켓에 담겨져 세상을 떠돌다 1994년 마침내 런던 소더비 경매에 나오게 된다.200년 전 베토벤의 주검에서 한 소년이 잘라낸 이 머리카락은 결국 두 명의 미국인 베토벤 마니아에게 7300 달러에 팔렸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은 베토벤이 시달린 수많은 질병과 청각장애,죽음의 원인 등을 밝히기 위한 검사에 이용됐다.DNA검사 결과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선 건강한 사람의 머리카락에 있는 것보다 100배나 많은 납이 검출됐다.언론은 베토벤의 납중독 사망설을 대서특필했다.그러나 당시 성병치료 연고제로 쓰이던 수은은 별로 발견되지 않아 베토벤이 매독에 시달렸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책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통해 베토벤의 마지막 순간들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준다.베토벤의 죽음에 관해선 그의 사후 진단기록과 해부소견서가 불타 없어지면서 여러가지 억측이 나돌았다.1만3000원. 김종면기자˝
  • [기고] 사회지도층의 자살 신드롬/하상훈 생명의 전화·자살예방방지센터 원장

    최근 우리 사회는 지도층 인사들의 연이은 자살로 국민적인 충격과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국민들의 믿음과 기대를 받았던 그들의 어이없는 죽음은 우리들의 마음을 허탈하게 하고 우리 삶의 방향 감각을 흔들리게 한다. “아니,저 분이 자살을 하다니….”놀라움과 충격에 말문이 막힌다.평생 이룩해 놓은 자신의 명예와 권력이 법정에 연루되거나 수감이 되면서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고통을 겪는다. 자존심을 상실하고 실추된 명예의 벼랑 끝에서 자살을 생각한다.그러나 몇몇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자살생각에 머물지 않고 자살을 감행한다.그리고 그들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 자살의 모델을 남기고 떠나 버렸다. 자살(suicide)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신을 살해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개인적인 비극의 정도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그리고 그들의 죽음에 대해 동정의 눈길을 보내기도 하고,심지어는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 희생양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조기를 달아 애도를 표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슬퍼한다.그들의 자살행위는 어느 사이 정당화되는 절차를 밟게 된다.그러면서 제2의,제3의 자살 행렬이 이어져 간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는 자살이 개인적인 선택이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자기 문제가 해결되는 종결점으로 생각하는 데에 기인한다.그러나 우리가 함께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은 개인의 자살은 한 개인의 비극적인 종말을 넘어 사회적 파급효과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살은 소중한 인명의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국가 사회적인 손실로서 안타까움이 더욱 크다.사회 지도층 인사의 자살은 그들의 영향력만큼 국가 사회적인 상실감을 더욱 크게 한다. 또한 자살은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큰 상실감의 고통과 그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우울한 삶을 살게 한다.어느 대학생 아들의 자살로 인해 그의 부모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상담창구에서 본다. 특히 지도층이나 유명인의 자살은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카드빚,실직,신용불량 등으로 힘들게 살아가면서 죽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참아내면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저런 사람도 죽는데,나 같은 사람 죽어도 된다.’라는 충동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 1774년 독일의 문호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이 발간된 후 불운한 사랑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베르테르를 모방하여 총으로 자살을 했다고 한다. 일명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이어지는 분위기이다. 자살은 그 사회의 건강성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자살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다.사회 지도층의 자살은 병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지도층 인사들의 자살을 계기로 우리는 자살이 개인적인 선택으로서 용인되는 분위기로부터 우리 공동체에 큰 위해(危害)를 가하는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있기를 기대한다.또한 생명존중 사회의 구현과 자살예방 활동을 위해 국가 사회적인 안전망의 구축과 대책 마련이 있었으면 한다. 가정이 해체되고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어 분열되고 단절된 우리의 사회가 좀 더 투명해지고 서로 관심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건강한 공동체로 전환되어 가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 나가야 한다. 특별히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어렵고 힘든 삶의 위기를 만났을 때 도피를 해 버리거나 자살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고 그 난관을 당당히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면서 삶의 막다른 골목에 처한 많은 국민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하상훈 생명의 전화·자살예방방지센터 원장˝
  • 사회지도층 ‘자살 신드롬’

    ‘명예를 지키기 위한 극단의 선택인가,조직을 살리기 위한 희생인가.’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박태영(63) 전남지사가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사회지도층 인사가 자살한 것은 올 들어서만 4번째다.앞서 지난 1일에는 김인곤 광주대 이사장이,지난달 11일에는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또 2월4일에는 안상영 부산시장이 각각 자기 손으로 생을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회지도층의 자살이 잇따르는 이유가 비리 혐의로 인한 자존심 상실과 자기 비하,조직내 다른 구성원을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등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그러면서도 지도층 인사의 자살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은 생명 중시 가치관을 파괴하고 또 다른 자살을 부를 수 있다며 경계했다. 29일 낮 12시48분쯤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반포대교 남단에서 북쪽으로 450m 지점에서 박태영 전남지사가 한강에 투신했다.함께 있던 운전기사의 신고를 받은 용산경찰서 남부지구대 소속 순찰차와 경비정이 곧바로 출동해 박 지사를 구조,인근 한남동 순천향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는 낮 12시55분쯤 숨졌다. 박 지사는 2000∼200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초대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인사·납품 비리에 관련된 혐의로 서울 남부지검에서 사흘째 조사를 받아 왔다. ●자존심에 상처…굴욕보다는 죽음을 선택 사회지도층의 연쇄 자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이들은 하나같이 명예와 자존심,타인의 존경을 ‘자산’으로 삼아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살연구전문가인 유수현 숭실대 사회사업학과 교수는 지도층 인사의 자살에 관해 “상실감과 절망을 참을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일 수 있다.”면서 “또 조직 속에서 한 사람이 희생하고 다른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이은철 연세로뎀 정신과 의사는 “비리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으면 에너지가 없어지면서 삶에 대한 목표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시대적·심리적 공통점 최근 잇따라 목숨을 끊은 지도층 인사들은 모두 1960∼1980년대 어려웠던 시절에 무언가 일궈낸 사람들이다.표창원 경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이들이 고생과 노력의 결과나 대가를 누려야 할 시점에 비리 혐의로 사회의 비난에 직면하게 된 것이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베르테르 이펙트’ 우려 사회지도층의 자살은 갑남을녀의 그것과는 사회적 파장이 분명히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출세한 지도층 인사를 이상형으로 여기고 존경하는 많은 사람이 이상형의 자살로 허탈감이나 정신적 충격에 빠질 수 있다. 하상훈 생명의 전화 자살예방센터 원장은 “지난해 8월 정몽헌 회장이 자살한 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도 죽는데 나같은 사람은 자살해도 된다.’는 식의 상담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이는 유명인이 죽은 다음 동조자살하는 현상을 일컫는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베르테르 효과’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이 로테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이 책을 읽은 19세기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살자가 급증한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유영규 김효섭기자 whoami@seoul.co.kr ˝
  • [보러갑시다]

    ●미 술 ■ 인사동 고미술축제 28일∼5월4일 인사아트센터(02)736-1020.인사동 문화지구 지정 2주년 기념전.청동여래좌상·분청 연화문 매병·해강 김규진 ‘세죽도’·운보 김기창 ‘바보산수’등 ■ 모정이 있는 그림·조각전 5월16일까지 청작화랑(02)549-3112.구자승·이숙자·오용길·김병종·전뢰진·윤영자 등 중견·원로작가 31명. ■ 문범 작품전 25일까지 pkm갤러리(02)734-9467.‘우연한 풍경’을 주제로 한 평면작품. ■ ‘20세기 7인의 화가들’전 30일까지 노화랑(02)732-3558.박수근·이중섭·김환기·도상봉·오지호·이상범·변관식 등 대가들의 대표작. ■ ‘재미있는 디자인’전 5월2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02)580-1539.어린이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키워줄 디자인 놀이전. ●뮤지컬 ■ 프라미스 25일까지 잠실올림픽주경기장(02)337-8474.예수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린 미국 초대형뮤지컬. ■ 판타스틱스 5월30일까지 동숭아트센터소극장(02)762-0010.톰 존스 작·김달중 연출,최용민 추상록 출연.순수한 청춘의 사랑을 그린 소극장뮤지컬. ■ 7인의 천사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02)507-0888.김정숙 작·권호성 연출,김정렬 이재훤 출연.희망을 찾아 지상에 내려온 천사의 이야기. ■ 파우스트 27일∼5월3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02)743-7252.괴테 작·이재성 연출,김장섭 한애리 출연.파우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 ●국 악 ■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방기준 ‘보성제 심청가’ 24일 오후3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02)2274-3507. ■ 한동희스님 육법공양 29일 오후 4시·7시30분 호암아트홀(02)747-2760. ● 어린이 ■ 돌아온 부리부리 박사 24일∼5월30일 정동극장(02)751-1500.70년대 인형극 ‘부리부리박사’를 무대화.현대인형극회. ■ 태양을 찾는 아이들 5월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02)382-5477.사라진 태양을 찾아 떠나는 해바라기 마을 아이들의 모험담.극단 사다리. ● 콘서트 ■ 김목경 콘서트 23일 오후8시 폴리미디어 씨어터 1544-1555. ■ 신승훈 광주 콘서트 24일 오후7시30분 광주 염주체육관 1544-1555. ■ 안치환 콘서트 24일 오후7시,25일 오후4시 한전아트센터(02)3486-3000. ■ 엠씨더맥스·아야카 조인트 콘서트 24일 오후5시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02)3453-8063. ■ 한대수 콘서트 24일 오후7시 폴리미디어 씨어터 1544-1555. ■ 한영애 콘서트 25일 오후7시30분 클럽 사운드홀릭(02)3142-4203. ■ 이미자 함양 콘서트 29일 오후 3시·6시 함양실내체육관 1588-0766. ●무 용 ■ 한국의 명인명무전 23∼25일 오후7시30분 호암아트홀(02)2278-5452.김문숙 김진흥 등 인간문화재급 원로 춤꾼들의 무대. ■ 움직임과 접촉 23일 오후7시30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02)3141-1770.최데레사무용단의 ‘움직임과 테크놀러지’연작 시리즈. ●연 극 ■ 햄릿 23일∼5월30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02)764-8760.셰익스피어 작·이성열 연출,김영민 장영남 장두이 출연.햄릿과 클로디어스의 대결을 부각시킨 정통 비극. ■ 프랑크와 슈타인 5월2일까지 아트홀스타시티(02)745-0308.소설 ‘프랑켄슈타인’을 각색한 마니미스트 남긍호와 홍콩출신 와이킷 탕의 마임극. ■ 아니마 25일까지 LG아트센터(02)2005-0114.영국 인류학자 데스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에서 영감받은 캐나다 ‘4D 아트’의 홀로그램 연극. ■ 의자는 잘못없다 5월9일까지 삼일로창고극장(02)319-8020.선욱현 작·김태수 연출.의자에 얽힌 욕망과 집착. ■ 해일 5월2일까지 대학로 행복한극장(02)747-2090.이해제 작·연출,유지태 오달수 출연.두 인민군의 사투. ●클래식 ■ 마시모 콰르타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회 23일 오후8시 금호아트홀(02)6303-1919.바흐 파르티타 2번,파가니니 무반주 카프리스 등 연주. ■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23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31)392-6422. ■ 한국가곡연구회 정기연주회 24일 오후3시 영산아트홀(02)2265-9235. ■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29일 오후7시30분 KBS홀,30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781-2242. ■ 김현남 바이올린 독주회 25일 오후3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02)584-1496. ■ 제2회 아르모니아 앙상블 정기연주회 27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02)874-7773. ˝
  • ‘민음사 문학전집’ 100권 눈앞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100권 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오는 15일 99번째인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최종철 역)에 이어 25일쯤 ‘춘향전’(송성욱 편역)이 출간될 예정이다. 민음사는 98년 8월15일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이윤기 역) 등 10권으로 대장정의 첫발을 디딘 이래 동서고금의 문학작품을 폭넓게 소개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그 과정에서 제일 큰 효자 역할을 했던 것은 15만부가 팔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공경희 역).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도정일 역),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전영애 역),새뮤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오증자 역),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김욱동 역),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박찬기 역),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장희창 역),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조구호 역) 등도 5만부 안팎으로 팔려나가는 호조를 보였다. 단순히 이같은 양적인 의미를 넘어,민음사의 문학번역은 몇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우선 기존 영미권 작품 위주의 흐름을 벗어나 스페인,중남미(아르헨티나,칠레,콜롬비아,멕시코),일본,이탈리아,이스라엘,체코 등 다양한 언어권의 문학작품 소개에 주력한 게 큰 성과.여기에 일어로 된 작품의 중역을 피해 전공자가 해당 언어로 완역한 점도 높이 살 만하다. 민음사 박상순 주간은 “올해 말까지 30여 권이 더 번역될 예정이고,이후에도 목록은 계속 추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수기자˝
  • [임영숙 칼럼] 폭설의 추억

    충돌할 듯 마주 보고 질주하는 열차 같은 여야 정치권과 폭설로 마비된 국가 시스템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국가란 무엇이며 정치는 무엇인가. 눈발이 흩날리는 아침이었다.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인 두 아이가 학교에 간지 1시간쯤 지나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폭설예보가 내려져 하굣길이 위험해질 것 같아 수업을 중단하니 학교에 와서 아이들을 데려가라는 것이다.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학교에 가보니 벌써 많은 학부모들이 모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먼 곳에 집이 있는 학생들의 부모에게 먼저 연락이 간 모양이다.함박눈을 맞으며 강아지처럼 신나게 내달리는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오며 국가 시스템과 삶의 질을 생각했다.10여년 전 뉴욕에서 연수 중에 겪은 일이다. 지난 주말 내린 폭설로 고속도로 등에 갇혀 추위와 굶주림과 공포에 떨며 밤을 지새웠거나 무릎까지 파묻히는 눈 속을 10㎞나 걸어 음식물을 구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니었다.국가의 대동맥인 고속도로가 무려 30여시간 동안 마비된 사태의 전말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기상청은 고속도로 마비사태가 이미 시작된 다음에야 대설경보를 발령했고,도로공사는 고속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한 다음에야 차량 진입을 차단하기 시작했다.폭설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관계장관회의는 눈이 멈추고 사태가 종료된 다음날 오전에야 열렸다.한마디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실종된 상태였던 것이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발생한,기상관측사상 최대인 100년만의 이번 폭설에 완벽한 대처는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기존의 재난대비 지침도 제대로 지키지 않아 피해가 더욱 커졌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또 기상이변이라든가 기상관측사상 최대라는 상황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2001년에도 20년만의 폭설이 내렸고,2002년에는 사상최대의 비를 쏟은 태풍 루사가,2003년에는 사상최고의 순간최대 풍속을 기록한 태풍 매미가 휩쓸고 지나갔다. 루사와 매미의 피해지역은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됐고 이번 폭설에도 특별재해지역이 선포돼 3년 연속 특별재해지역이 선포되고 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같은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할 것이다.그러나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지금의 탄핵정국에서 이 나라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지도 모른다.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괴롭히는 존재가 된 우리 정치인들에게 지난 주말의 폭설은 정치적 쇼의 대상일 뿐이었으니 말이다.오로지 총선에서의 승리만을 위해 국가혼란은 아랑곳하지 않고,충돌할 듯 마주 보고 질주하는 열차 같은 여야 정치권과 폭설로 마비된 국가 시스템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국가란 무엇이며 정치는 무엇인가. 지난 가을 독일의 한 방송사가 시청자 설문조사와 토론을 통해 선정한 ‘우리의 최고’ 인물 10명 중 1위를 한 사람은 정치인 아데나워였다.역시 정치인인 비스마르크와 브란트도 각각 3·4위로 선정됐다.바흐(2위) 아인슈타인(5위) 괴테(6위) 구텐베르크(7위) 루터(8위) 마르크스(9위) 숄 남매(10위,나치 저항 희생자) 등과 함께.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 유태인 기념비 앞에서 무릎 꿇고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사죄했을 때 독일 작가 호르스트 크뤼거는 이렇게 말했다.“그렇다.이것은 우리들의 국가다.그렇다.이것은 나의 국가다.” 우리 정치인이 이처럼 국민을 감동시킬 수는 없을까.아니 감동까지 시키지 않아도 된다.속수무책으로 폭설에 갇힌 끔찍한 기억을 잊게 하고 최소한 국민이 마음 놓고 숨쉬고 살 수 있는 울타리 역할을 이 나라가 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다행히 한달 여 지나면 총선이다.우리 정치에 질린 사람일수록 꼭 투표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임영숙 주필 ysi@˝
  • 송두율 15년刑 구형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오세헌)는 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4부(부장 이대경)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논고를 통해 “피고인은 73년 노동당 입당 이후 30년간 북한의 지령에 따라 대남 공작활동을 벌여왔다.”면서 “국가보안법이 적용돼 기소된 최고위급 인사인 데다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최후진술에서 “국보법은 지상유일의 분단국가가 통일된 민족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반통일적 장애물”이라면서 “학문적 양심에 따른 학술활동을 시대착오적 법률로 재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검찰은 “피고인은 91년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뒤 ‘경계인’이란 가면을 쓰고 주체사상을 남한사회에 전파하는 대남공작활동을 펼쳐왔다.”면서 저서·기고문 작성과 남북학술대회를 사례로 들었다.이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명언을 들어 검찰은 “피고인은 남파공작원으로 남한 주요인사를 암살하진 않았지만,선전·선동 활동으로 우리 사회에 더 많은 해악을 끼쳤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 변호인단은 이날 “황장엽 북한 전 노동당비서도 ‘외국인이 정치국 후보위원이 될 순 없다.’고 진술한 데다 국정원 자료에서도 북한은 ‘김철수’란 이름을 외부인사를 부를 때 흔히 사용했다.”며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증거 또한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송두율교수 최후진술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국내외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진행된 이번 재판에 많은 노고를 기울여주신 재판부에 우선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 드려 여러 재판 과정을 거쳐 지금에까지 이른 저의 심정은 여러 가지로 착잡합니다. 한편으로는 악몽 같기만 했던 지난 일이 일단 끝난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분단시대를 뒤로하고 이제 바야흐로 통일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기뻐하며 가슴 가득 희망에 부푼 많은 분들에게 이번 재판의 결과가 어떤 의미를 던질 것인지를 가늠해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 보안법의 실체 외국 땅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저로서는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하면 겨우 ‘반국가단체’, ‘고무-찬양’, ‘잠입-탈출’, ‘회합-통신’과 같은 단어정도를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넉 달 넘게 ‘국정원’ 조사로부터 시작해서 검찰의 심문조사를 거치며 지금까지 숨 가쁘게 이어져온 수 차례에 걸친 재판 과정을 통하여, 저는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몸으로 터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국가보안법’을 저에게 적용하려는 검찰의 시도가 얼마나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저의 변호인단 측에서 법적으로 충분히 지적했기 때문에 그것을 재차 여기서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국가보안법’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서는 짧은 언급이나마 절실한 듯이 보입니다. 여러 가지 가운데 우선 두 문제만 지적하고자 합니다. 베를린 시의 중심에 있는 쇠네베르거 우퍼(Schoeneberger Ufer) 거리에는 재독 ‘대한민국’ 대사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부터 자동차로 겨우 10분 정도 떨어진 글린카 거리(Glinkastrasse)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외국인이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대사관을 방문하여, 입국사증의 신청 등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런데 검찰의 ‘공소장’은 제가 이 대사관을 방문한 것이 “국가를 참칭한 반국가단체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들어가 ‘반국가단체’의 성원과 ‘회합-통신’한 죄를 범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지금 평양에 상주하는 독일대사관 직원들은 모두 ‘국가보안법’의 위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서울에 있는 괴테 문화원(Goethe-Institut) 원장은 평양에 있는 괴테 문화원의 ‘독서실’을 함께 관장해야 하기 때문에, 자주 평양을 방문해야 합니다. 검찰의 논리를 따른다면 이러한 행위 역시 당연히 ‘잠입-탈출’ 죄를 범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제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은 독일인들은 한국이 드디어는 ‘국가보안법’을 독일에까지 수출하려 하느냐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합니다. 뿐만 아니라 16년 전에 제가 독일말로 쓴 책의 내용을 문제삼아 역시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양 검찰이 논리를 세우는 것을 보고 모두 아연실색하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매년 10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제 도서박람회(Buchmesse)’가 열립니다. 이 행사기간 1871년 독일제국헌법을 제정 통과시킨 제국의회가 열렸던 파울교회(Paulskirche)에서는 인류문화의 지적보고인 책을 통해서 평화에 기여한 인사에게 유명한 평화상(Friedenspreis)도 수여됩니다. 내년 2005년에는 한국이 이 박람회 측에서 특별 선정한 ‘손님나라’(Gastland)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해서 ‘고금상정례문’이나 ‘직지심경’등을 인쇄해서 인류문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문화 국에 대한 당연한 예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라임에도 아직도 사상 관련 저술에 중세 때나 가능한 마녀 사냥 식의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반문화적인 현실을 이 세계는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오늘의 세계는 문화를 존중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우리의 공안 검찰은 이러한 반문화적인 작태를 태연히 자행함으로써 한국의 국위를 너무나도 심각하게 실추시키고 있습니다. 검찰은 ‘실정법’이라는 이유를 들어 ‘국가보안법’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지상유일의 ‘분단국가’가 통일된 민족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반통일적 장애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법은 세계화의 기치아래 ‘세계 시민사회(Weltbuergergesellschaft)’를 지향하는 오늘의 국제적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대학이 있는 뮌스터 시에는 ‘30년전쟁(1618~48)’을 종결시킨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Westfaelischer Friedensvertrag)’이 체결된 회의실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근세 국제법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평와 조약이라고 불리우는 이 평화조약의 정신은 칸트의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을 거쳐 나치 독일을 피해 미국에 망명, 법을 통한 평화를 설파해서 초국가적인 평화기구인 UN의 설립정신에 기여한 한스 켈젠(Hans Kelsen)의 법철학의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민족국가를 기초로 해서 국성 이러한 평화개념은 이제 민족 국가의 국경개념을 희미하게 만드는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국가대신에 ‘시민사회’에 근거한 보다 보편적이고 사해동포적인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탈현대적(postmodern)인 법 이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이미 밝히고 있는 원칙, 즉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특수한 관계’도 인정치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에 말한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이 전제하고 잇는 국민 , 국토, 그리고 주권이라는 기본요건마저 무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17세기 중반의 법 이해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법 아닌 법입니다. 나의 ‘통일철학’ 그러나 저는 이 기회에 -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심정으로 - 이러한 ‘국가보안법’이 이해하려고 시도하지도 않고 또 이해할 수도 없는 저의 통일 철학의 핵심을 간략히 밝히고자 합니다. 통일 문제를 말할 때, 언제나 저는 제일 먼저 ‘상생(相生)’의 원칙을 강조해 왔습니다. 불교적 용어로 이해되고 있는 ‘상생’은 ‘연기(緣起)’라는 개념을 전제합니다. 즉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이 가르침은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민족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는 ‘남이냐, 북이냐’라는 양자택일의 논리가 아니라 ‘남과 북’이 공유하는 관계를 중시하는 논리로서, 저는 큰 대나무와 저 작은 대나무가 실은 땅속에서 뿌리를 통하여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비유를 들어 이 관계를 설명합니다. 1989년 봄, 비엔나에 있는 유명한 ‘문학의 집(Literaturhaus)’에서 행한 ‘탈현대의 고고학(Zur Archaelogie der Postmoderne)’이라는 강연에서 저는 대나무와 도토리나무의 비유를 들어 현대의 인식론적인 문제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어미 대나무(母竹)로부터 뿌리가 옆으로 퍼지면서 일정한 거리에 죽순이 나오는데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번식하면서 무성한 대나무밭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토리나무는 도토리가 땅에 떨어져 떡잎이 나오고 어느 정도 성장하지만 어미 도토리나무의 무성한 잎의 그늘 때문에 이 어린 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습니다. 대나무는 ‘관계철학’, 도토리나무는’주관철학’을 각각 상징합니다. 또 ‘관계철학’은 ‘상생’을, ‘주관철학’은 나만이 옳다는 ‘아만(我慢)’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상생’의 원칙에 입각할 때, 비로소 남과 북은 서로를 ‘자기 속의 타자(他者)’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게 됩니다. 남과 북이 똑같다면 이미 통일이 이룩된 상태일 것이고, 남과 북이 완전히 다르다면 통일이야기를 꺼낼 필요조차 없는 상황일 것이기 때문에,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남북은 긴장 속에서도 계속 줄기찬 여유를 지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태도는 통일을 어떤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전개되는 ‘과정’으로서 바라보는 훈련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반세기 이상 서로 이질적으로 형성되어온 남북의 체험공간은 서로의 기대 지평을 달리 만들어 왔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라는 ‘과정’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서로가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그리하여 서로의 관점을 바꾸어 보는 ‘합리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적 수단을 통해 갈등을 해결한다는 이러한 원칙을 우리의 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체제의 수립이라는 ‘적극적’ 의미의 평화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전쟁이 없다는 의미에서는 ‘소극적’인 의미의 평화 정도만이라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오늘의 한반도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상생’, ‘자기 속의 타자’, ‘과정’, ‘합리적인 대화’ 그리고 ‘평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제 스스로의 ‘통일철학’의 실현을 위해 ‘배제하고 동시에 통합하는 제3의 무엇’을 지향하고자 하는 ‘경계인’의 삶을 “기회주의적”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제 뇌리 속에는 초기 불교의 성전 ‘쌍윳따 니까야’의 함축적인 비유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즉, 흰 소와 검은 소가 서로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대개는 검은 소가 흰 소에, 또는 흰 소가 검은 소에 묶여있다고 보는데, 사실은 이 두 소를 서로 묶고 있는 것은 단지 ‘끈’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남과 북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유는 남이 북에게, 또는 북이 남에게 묶여 있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이 남북의 ‘사이’를 생각해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이라는 ‘제3의 공간’이 전 한반도로 확장된다면, 위에서 지적했습니다만, 전쟁이 없다는 뜻에서의 소극적인 평화 정도는 가능하다는 발상으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경계인’의 의미 37년 만에 ‘경계인’으로서 제 조국 땅을 밟으면서, 저는 ‘조직 사회학’에서 종종 거론되는 다섯 마리 원숭이에 대한 우화를 생각했습니다. 원숭이 사육사가 매일 아침 나무 꼭대기에 신선한 바나나를 매달고, 그 근처에 전류를 통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먹으려고 나무에 오르다가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곧 포기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원숭이도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연이어 포기했습니다. 이튿날 새롭게 우리 안에 들어온 다섯 번째 원숭이가 걸려있는 바나나를 보고 나무에 오르려고 하자 이미 혼난 경험이 있는 네 마리 원숭이가 다 나서서 그를 말렸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번째 원숭이는 이 만류를 뿌리쳤습니다. 사육사가 이미 전류를 끊었는데도 네 마리 원숭이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 우화는 지식의 역할이 사회에서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즉 ‘지식은 조직을 멍청하게 만든다(Intelligenzmacht Organisation dumm)’는 역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를 항상 깨어있게 하는 지식은 기존의 선입견을 파괴하고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는 이른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Andersdenkender)’을 요구합니다. 국가보안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국가정보원’과 ‘공안검찰’ 및 이른바 ‘거대 언론’,그리고 이에 덧붙여 기존의 선입견을 ‘지식’으로 포장하고 확대 재생산시켜온 이른바 ‘지식인들’이 바로 위에서 지적한 네 마리 원숭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이 사회를 항상 깨어있게 만드는 많은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번째 원숭이는 ‘해방 이후 최대간첩’이니 ‘말 바꾸는 지식인’이라고 저를 매도하는 네 마리의 원숭이가 벌이는 그 시끄러운 굿판(Affentheater) 속에서도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회를 건강하고 새롭게 만드는 지식체계의 구성은 사실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특히 사회의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이를 예방하는 문제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복잡해질수록 더욱 어려운 과제로서 등장합니다. 또한 ‘위험사회’니 ‘보험사회’니 하는 말처럼, 위험이 항시적으로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우리들의 감각이 둔화하기 때문에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생태철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은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어 점차적으로 조금씩 온도를 높여서 가열하면 이 개구리는 끊는 물 속에서 그만 죽습니다. 그러나 만약 끊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이 개구리는 펄쩍 뛰어 밖으로 도망치려고 시도합니다. 이 비유는 분단 시대를 오래 살아온 우리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국가보안법’이 민주화 진전에 따라 유명무실하게 되었다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입국을 전후해서 생긴 소용돌이는 분명히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민족분단을 확대 재생산해온 우리의 의식구조 속에서 제 문제가 충격적이라면, 저는 차라리 이 충격이 지속적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놀라게 했던 모든 사건도 곧 잊혀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또 한번의 가능한 충격을 곧 있을 재판의 결과에서 기대해 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네 마리 원숭이가 벌였던 그 시끄러운 굿판이 결국 도깨비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몰고 올 또 한번의 충격을 기대해 봅니다. 그러한 충격은 우리의 정신적 위기상황을 적극적으로 깨닫게 하는 일종의 ‘정신 생태학(Oekologie des Geistes)’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러한 ‘정신생태학’은 자연환경을 문제시하는 ‘생태학’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저의 문제를 계기로 해서 분단된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나라로 한 걸음 더 다가섰으면 하고 저는 바랍니다. 최후진술을 마치면서 저는 부모가 난 땅을 난생처음 밟았다가 기대가 실망으로 뒤바뀐 엄청난 충격을 경험했던 저의 자식들이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거는 기대도 같은 맥락이라고 믿습니다. 이 나라가 깨어있고 또 건강해서 바로 그 때문에 사랑할만하다는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판결을 저의 가족들이 기다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민족과 세계를 함께 생각하면서 걸어온 지난 40년 가까운 학자생활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아 또 한번 비상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그러한 재판의 결과를 기대합니다. 온 나라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재판부의 미래지향적인 판결에 희망을 걸면서 저의 최후진술을 경청해주신 재판부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2004년 3월 9일 송두율 ˝
  • 춤추고 노래하는 ‘파우스트’

    적당히 가볍고,적당히 재미있지 않으면 관객의 시선을 모으기 힘든 것이 요즘 연극계의 현실.하지만 이런 세태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연극인들이 적지 않다.연출가 정일성이 이끄는 극단 미학도 그중의 하나.지난해 가을 국립극장에서 새뮤얼 베케트의 ‘게임의 종말’을 공연한 데 이어 이번엔 괴테의 고전 ‘파우스트’를 무대에 올렸다. ‘파우스트’는 학문에 회의를 느낀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와 영혼을 걸고 계약을 맺는 이야기.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움을 찾아 비상하는 파우스트의 초인적인 의지와 그레첸의 아름다운 영혼은 세대를 뛰어넘어 짙은 감동을 전해준다.연출자는 “원작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춤과 음악 등을 곁들여 각색했다.”고 밝혔다. TV와 연극무대를 오가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김명수가 타이틀롤을 맡았고,만능예술인 장두이가 메피스토로 분한다.14일까지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02)571-1727. 이순녀기자 co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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