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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ycall프로농구] ‘완산벌 혈투’ SBS 웃다

    12연승의 SBS와 6연승의 KCC가 플레이오프 4강직행 티켓을 놓고 맞붙은 ‘완산벌 혈투’는 농구팬의 기대대로 처절했고, 마지막에 웃은 쪽은 SBS였다. ‘괴물용병’ 단테 존스(24점 9리바운드)가 합류한 이후 단 한번도 리드를 내주거나 박빙의 승부를 허용하지 않던 ‘폭주기관차’ SBS지만 KCC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판 행운의 여신은 SBS 편이었고, 연승행진의 최대 고비인 KCC를 거꾸러뜨린 SBS는 파죽의 15연승을 내달렸다. SBS는 9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04∼05시즌 프로농구 원정경기에서 존스-주니어 버로 콤비가 46점을 합작한 데 힘입어 KCC를 88-81로 힘겹게 따돌렸다.SBS는 이날 승리로 KCC와 공동 2위로 올라섰지만, 남은 LG전을 반드시 승리한 뒤 KCC의 경기결과에 따라 직행여부가 결정된다. SBS는 4쿼터 2분여를 남기고 찰스 민렌드(39점 14리바운드)에게 페이드어웨이슛과 속공으로 연속 4득점을 내줘 84-81까지 쫓겼다. 단 1개의 턴오버만 나오더라도 승부가 뒤집힐 수 있는 상황. 하지만 45초를 남겨놓고 이상민(12점 7어시스트)이 쏘아올린 회심의 3점포가 림을 외면했고, 곧이어 버로(22점 13리바운드)가 골밑슛을 성공시키면서 승부의 추는 SBS로 기울었다. SBS의 루키 이정석은 대선배 이상민과의 맞대결에서 주눅들지 않고 10점(3점슛 2개) 6리바운드를 낚아냈고, 김성철도 고비마다 3점슛 3개를 포함,15점을 터뜨렸다. KCC로서는 아쉬운 한 판이었다. 민렌드가 존스를 압도했고, 이상민-추승균-조성원 트리오도 제 몫을 했지만, 제로드 워드가 8점 7리바운드로 부진한 것이 뼈아팠다. 한편 20여일 만에 발목부상에서 복귀한 ‘득점기계’ 네이트 존슨(38점)이 그동안 못다한 활약을 한번에 쏟아내듯 맹위를 떨친 오리온스가 모비스를 95-86으로 따돌리고 막차로 6강 플레이오프에 합류했다. 오리온스는 7위 모비스와의 경기차를 ‘3’으로 벌려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6위를 확정지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Anycall프로농구] 디펜딩 챔프 KCC vs 폭주기관차 SBS 완산벌 대충돌

    프로농구 최고의 ‘지장’과 ‘용장’이 완산벌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다. 9일 전주에서 열리는 KCC와 SBS의 대결은 프로농구 04∼05시즌 정규리그의 대미를 장식하는 빅매치가 될 전망이다.6연승을 달리는 ‘디펜딩챔피언’ KCC와 사상 초유의 14연승을 질주한 ‘폭주기관차’ SBS가 정면 충돌하는 것. 우선 정규리그 1∼2위에게만 주어지는 4강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놓고 두 팀은 혈전을 치러야 한다.8일 현재 KCC가 33승19패로 2위,SBS는 1게임차로 3위다. 잔여경기는 9일 승부를 포함해 2경기.KCC가 이기면 4강 직행을 확정짓는다. 상대전적에서 2승3패로 열세고 득실점차(공방률)에서 13점을 뒤진 SBS는 14점차 이상의 대승을 거두면 직행 티켓을 노릴 만하다.14연승을 주도한 ‘괴물 용병’ 단테 존스의 영입 이후 두 팀이 처음 맞붙어 KCC가 SBS의 돌풍을 드디어 잠재우느냐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날 승부에 따라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고참 감독인 KCC 신선우(사진왼쪽·50) 감독과 SBS 김동광(오른쪽·54) 감독의 명암도 엇갈리게 된다. 두 감독은 모두 지도자 경력이 20년이 넘으며 프로통산 200승 고지를 넘은 ‘유이’한 감독들이다. ‘신산(神算)’으로 불리는 지략가인 신 감독은 그동안 SBS전을 대비해 다양한 전략을 준비해 왔다. 철저한 패턴 플레이를 구사할 생각이고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등 ‘노장 트리오’에 기대를 건다. 급하면 부상 중인 찰스 민렌드까지 투입할 생각이다. 신 감독은 “존스가 훌륭한 선수임에는 틀림없지만 단점도 있다.”면서 “제로드 워드와 추승균 변청운 등이 가담하는 더블팀으로 존스를 봉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혈남아’ 김동광 감독도 자신감이 넘쳐난다.‘존스 효과’로 주니어 버로 양희승 김성철 이정석 등 ‘베스트 5’의 전력이 최고조에 올랐으며, 은희석 김희선 윤영필 등 알토란같은 벤치멤버들도 출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 김 감독은 “KCC를 이겨야만 우리의 연승기록이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면서 “우선 수비로 기선을 제압한 뒤 과감한 외곽포로 대량 득점을 노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자랜드는 8일 프로농구 경기에서 소나기 3점포(8개)를 퍼부은 문경은(37점)을 앞세워 이미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해 김주성 신기성 양경민 등을 벤치에서 쉬게 한 TG삼보를 99-88로 제압하고, 최하위에서 벗어났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매향리 투기 광풍] “투기와의 전쟁이 더 힘들어”

    “이제는 투기꾼과의 전쟁입니다. 미군을 상대로 할 때보다도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17년 동안 미군 쿠니(KOO-NI)사격장 이전과 피해보상운동을 주도한 매향리 미공군폭격장 철폐를 위한 주민대책위원장 전만규(49·매향 2리)씨는 최근 일고 있는 투기바람에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개인 재산권 행사 막을수 없어” 전 위원장은 “동네 여기저기서 ‘누가 땅을 팔았다.’느니 하는 얘기가 들릴 때마다 ‘이러려고 동네 어른들까지 나서서 싸운 건 아닌데….’라는 회한도 든다.”면서 “투기자본 속에 매향리를 더 이상 방치하면 무분별한 개발을 감당하지 못하는 괴물덩어리로 남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매향리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전 위원장은 대책위원장을 맡아 집회와 시위를 주도하다 숱하게 체포되기도 했다. 그는 구속 두차례, 벌금형 두차례의 전과를 남기고도 평화롭던 고향 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길고 고단한 ‘싸움’을 이끌어 왔다. 전 위원장은 “잘못하다간 매향리 싸움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아무리 대책위라 해도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고 안타까워 했다. 전 위원장은 “1985년 기아자동차 공장이 들어서면서 한차례 땅 값이 올랐지만, 이후에는 폭격소음 등으로 다시 내려가는 추세였다.”면서 “지난해부터 투기자본이 몰리며 다시 한번 땅값이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사격장 땅 생태공원 조성 관광지로 ‘투기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전 위원장은 ‘사격장 부지의 생태공원화’를 제안했다. 그는 “생태공원은 환경친화적인 휴식공원과 마을 공동체 유기물 경작지, 가족 농원 등이 합쳐진 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마을 공동체가 함께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생태공원을 조성하면 주민들이 개별의 경제활동을 통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책위는 현재 각계 전문가의 자문과 도움을 얻고 있다. 이미 마을 단위의 생태공원을 운영하고 있는 강원 화천·원주와 충남 홍성을 주민들이 단체 견학하는 계획도 짜놓고 있다. 전 위원장은 “사격장 이전이 발표된 뒤에도 아무런 방침조차 세우지 않고 있는 정부가 이제는 정말 나서줘야 할 때”라고 호소했다. 화성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Anycall프로농구] 막강 SBS 14연승 쾌거

    ‘단테 열풍’은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고,SBS의 신기록 행진은 멈출 줄을 모른다. ‘괴물 용병’ 단테 존스(22점 17리바운드)가 선봉에 서고, 토종 슈터들이 막강 화력을 뽐낸 SBS가 SK에 플레이오프 탈락의 고배를 안기며 연승 신기록을 ‘14’까지 늘렸다. SBS는 6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04∼05시즌 경기에서 SK를 90-86으로 누르고 사상 초유의 14연승을 달리며 단독 3위에 올랐다.6강플레이오프 진출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었던 SK는 이날 6연패의 수모를 당해 남은 2경기를 다 이기더라도 ‘봄 잔치’에는 나갈 수 없게 됐다. SBS는 ‘백척간두’에 선 SK의 마지막 투혼에 자칫 연승 행진을 멈출 뻔했다.1쿼터를 16점차로 뒤진 SK는 2쿼터부터 조상현(13점)의 벼락같은 3점포와 크리스 랭(29점)의 과감한 덩크슛으로 따라붙기 시작해 4쿼터 막판까지 시소게임을 벌였다. SBS는 4쿼터 초반 양희승(22점)의 3점포로 승기를 잡는 듯했지만 SK는 전희철(17점)의 3점포로 응수했다.SBS가 반칙과 실책을 잇따라 범하는 사이 SK는 임재현의 스틸에 이은 랭의 슬램덩크로 3분32초를 남기고 83-83, 동점을 만들었다.21초를 남기고 2점이 뒤진 SK에 마지막 기회가 있었지만 종료 4.3초를 남기고 양희승에게 뼈아픈 가로채기를 당하고 말았다. 존스는 3.4초를 남기고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꽂아 넣으며 승리를 지켰다. 한편 삼성은 서장훈(25점 13리바운드)의 투혼을 발판으로 오리온스를 101-92로 누르고 단독5위로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플레이오프에 나가게 됐다. 모비스는 창원에서 LG를 84-81로 힘겹게 꺾고,6위 오리온스에 2경기 차로 따라붙었다. 모비스가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기고, 오리온스가 모두 패하면 모비스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한 가닥 기대를 가져볼 수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Anycall프로농구] SBS, 4경기 싹쓸이 “내친김에 16연승”

    ‘폭주기관차’ SBS의 연승 행진은 언제까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04∼05시즌 프로농구 정규리그의 최대 화두는 파죽의 12연승으로 연승 신화를 창조한 SBS. 단숨에 전국구 스타로 부상한 ‘괴물 용병’ 단테 존스(평균 30.4점 12.8리바운드)의 합류와 그의 시너지효과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SBS가 연승 행진을 몇으로 늘릴지가 초미의 관심사다.SBS는 ‘2월의 선수’ 존스가 가세한 뒤 평균득점 11.9점이 늘어 96.6점이고, 실점은 3.2점이 줄어 81.9점이다. 매 경기 4.5리바운드에 3.3스틸도 추가됐다. 김동광 SBS 감독은 1일 프로농구 최다연승 기록을 갈아치운 뒤 “14연승까지 욕심내 보겠다.”면서 은근슬쩍 남은 경기를 싹슬이하려는 야망을 드러냈다. 공동 2위 KTF·KCC를 1경기 차로 바짝 추격한 SBS가 4전 전승을 거두면 4강 직행도 가능하다. 플레이오프 4강전은 25일부터 열려 2위팀에는 13일간의 꿀맛 휴식이 주어진다.4개월여의 강행군으로 체력이 바닥난 시점에서 2주간의 휴식은 ‘가뭄속 단비’나 다름없다. SBS는 TG삼보,SK, KCC, LG와의 순으로 경기를 남겼다. 까다로운 상대인 정규리그 우승팀 TG의 전창진 감독은 “원주에서만 베스트 멤버를 가동하고, 원정경기는 식스맨 위주로 꾸릴 것”이라고 공표했다.SBS의 승리가 점쳐지는 대목. 다음 상대인 SK는 전력상 SBS의 발목을 붙잡기엔 역부족이어서 14연승까지 기대된다. 관건은 오는 9일 15연승 길목에서 마주치는 KCC와의 한판 승부. 존스 합류 이후 한차례도 붙지 않아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단테 신드롬’에 가려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KCC 역시 최근 12경기에서 10승2패의 가파른 상승세다. 시즌 초반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쳐 ‘한물 간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4라운드부터 야금야금 승수를 챙겨 어느덧 공동 2위까지 올라왔다. ‘가드 지존’ 이상민의 노련한 경기 조율과 조성원-추승균-찰스 민렌드-제로드 워드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스피드와 외곽슛, 위기관리 능력에서 리그 최상위권. 최근 12경기에서 평균 90.6점을 얻고 84.8점을 내줘 SBS와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SBS의 연승 여부는 결국 ‘에어 단테’의 손끝에 달렸다. 김성철-양희승 ‘쌍포’가 맹위를 떨칠 수 있는 것도 존스의 활약 덕이다. 박건연 KBS 해설위원은 “추승균이나 민렌드가 앞선에서 존스에게 투입되는 공을 차단하는 디나이(deny) 수비가 먹힌다면 KCC에도 승산이 있다.”고 내다봤다. 9시즌 만에 한국프로농구 역사를 고쳐쓴 SBS의 목에 어느 팀이 방울을 달지 팬들의 시선이 뜨겁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축구천재 박주영-아두 맞장

    축구천재 박주영-아두 맞장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축구천재’들이 수원벌에서 맞붙는다. 한국의 박주영(사진 왼쪽·20·고려대)과 미국의 프레디 아두(오른쪽·16·DC유나이티드)다. 이들은 다음달 22일부터 26일까지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2005수원컵 국제청소년(20세 이하)대회에서 만나 진정한 ‘축구천재’가 누구인지를 가린다. 나이는 아두가 4살 어리지만 경력은 박주영보다 훨씬 화려하다. 그는 15살이던 지난해 4월 미국 프로축구(MLS)에 데뷔한 ‘축구신동’.1887년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에 당시 14세로 데뷔한 프레드 채프먼 이후 미국 스포츠 사상 가장 어린 선수가 됐다. 그의 프로무대 데뷔전은 입장권이 모두 매진됐고, 이례적으로 ABC방송이 미국 전역에 생중계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가나 출신으로 흑인 특유의 현란한 몸놀림과 화려한 드리블이 장기다. 아두는 2003년 8월 핀란드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17세 이하)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만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1-6 참패의 수모를 안긴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 대회가 끝난 뒤 잉글랜드의 첼시 등 유럽명문 구단의 러브콜을 잇달아 받았고 미국의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2003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박주영도 국내에서는 이미 청구고 시절부터 ‘괴물선수’로 알려져 있었지만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그는 지난해 아시아청소년(19세 이하)선수권대회에서 6골을 뽑아 득점왕과 팀 우승을 동시에 이루며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올들어서는 지난달 카타르 4개국 초청대회에서 4경기 동안 무려 9골을 뽑아내는 가공할 득점력을 과시했고 ‘박주영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박주영 역시 당장 유럽무대에서도 통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일본 J리그 팀들이 다투어 눈독을 들이는 등 한껏 ‘몸값’이 치솟고 있다. 이 때문에 자존심을 건 박주영과 아두의 대결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가 사뭇 주목된다. 수원컵에는 한국·미국 외에 이미 오는 6월 세계청소년대회 진출이 확정된 아르헨티나와 이집트 등 4개국이 참가, 풀리그로 경기를 벌인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미드필더 리오넬 메시와 프랑스 프로팀 소쇼에서 활약하는 이집트의 공격수 아메드 페라그 등 정상급 스타플레이어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박성화호’로서는 전력을 점검할 좋은 기회가 될 전망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영화 ‘피와 뼈’ 최양일 감독

    재일교포 감독이 재일 한국인의 삶을 소재로 만든 영화라고 해서, 차별과 편견으로 얼룩진 시대상을 용기있게 담은 영화일 거라고 속단하진 말자. 영화 ‘피와 뼈(Blood&Bones·25일 개봉)’는 그보다는 시대에 등을 돌린 채 동물적 욕망만으로 살아간 한 사내의 꿈틀거림을 담아낸 영화다. 그 사내가 거쳐온 시대적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원인으로서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은 최양일(56) 감독은 “특별히 사회적 의미를 넣진 않았다.”면서 “영화 ‘대부’가 이탈리아 이민사를 중심에 두지 않았듯, 내 영화도 시대상보다는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강함과 약함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1923년. 제주도에서 일본 오사카로 향하는 배에 오른 청년 김준평. 영화는 이내 그의 청년시절을 건너뛰고, 이미 폭력만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괴물’이 돼버린 중년의 그에게 초점을 맞춘다. 최 감독이 기타노 다케시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을 정도로, 김준평을 연기하는 기타노 다케시는 완벽하게 비열한 욕망의 화신으로 부활했다.“원작소설의 주인공보다 체구가 작지만, 주인공의 어두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게 그를 캐스팅한 이유다. “괴물과 같은 삶을 산 남자를 그리는 건 오랜 희망이었다.”는 최 감독은 이 작품을 위해 6년을 투자했다. 재일 한국인 소설가 양석일이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1998년 쓴 동명소설이 원작. 최 감독은 “원작에 드러난 방대한 스케일을 영상으로 그려내기 위해 1000여명의 스태프가 참여했다.”고 말했다. 제목은 피와 뼈로 연결된 가족관계를 의미한단다. 자신의 욕망에 갇혀 스스로 불행해져 버린 김준평과,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던 아들과 딸과 부인의 처절한 몸짓을 정지된 프레임 속에 가두어 슬프게 관조하는 느낌의 영화. 일본에서는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닛칸스포츠 영화대상, 키네마 준보 영화상 등에서 주요 부문을 수상했다. 최 감독은 거장 오시마 나기사의 조감독 출신으로,‘달은 어디 떠 있는가’‘개, 달리다’ 등 스무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지난해부터는 일본 영화감독협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영화보러 극장 간다고? 난 안방에서 느긋하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2부(EBS 7일 낮 12시)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텔레비전용 영화로 만든 작품.1999년 NBC에서 제작. 우피 골드버그가 캐셔 고양이로, 마틴 쇼트가 모자장수로, 벤 킹슬리가 쐐기벌레로,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흰 기사, 미란다 리처드슨이 하트의 여왕, 그리고 티나 마조리노가 주인공인 앨리스 역으로 나온다. 영화의 줄거리는 고전과 크게 다를게 없지만, 이 영화는 거대한 팬터지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MBC 10일 밤 12시15분) 오종록 감독의 2003년작. 차태현, 손예진 주연. 첫사랑과 결혼하기 위한 한 남자의 좌충우돌 해프닝. 젖동무였던 태일과 일매라는 청춘남녀, 그리고 일매의 아버지인 고등학교 선생님 영달이 억센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펼쳐 가는 코믹 러브스토리. 일매와 태일은 태어나자마자 태일 어머니의 젖을 함께 나눠먹으며 자란 젖동무. 태일은 말썽만 피우며, 허구한 날 일매에게 장가가겠다고 떼쓰는데….108분. ●미션 임파서블2(MBC 10일 오후 2시30분) 오우삼 감독의 2000년작. 톰 크루즈, 더그레이 스코트 주연. 액션 스릴러 ‘미션 임파서블’의 속편. 치명적인 독일산 바이러스가 악당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바이러스를 파괴하는 임무를 띤 요원들의 활약을 그린 액션 대작. 러시아의 생물공학자인 네코비치 박사는 어느 날 I MF(Impossible Mission Force)의 요원인 이단 헌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는 ‘키메라’라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냈다. 123분. ●그녀를 믿지 마세요(MBC 11일 오후 9시55분) 배형중 감독의 2003년작. 김하늘, 강동원 주연. 가석방된 사기 전문 여성이 우연히 만난 청년의 약혼반지를 그의 집에 돌려주려다, 본의 아니게 약혼녀 행세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 깜찍한 외모, 유려한 말솜씨 등을 자랑하는 영주(김하늘). 하지만 그녀는 고단수 사기경력으로 별을 달고 있는 터프걸. 영주는 가석방 심사를 탁월한 연기력으로 가볍게 통과하면서 출감하게 되는데….115분. ●실미도(MBC 10일 오후 9시40분) 강우석 감독의 2003년작.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주연. 북파 공작을 목적으로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은 특공대원들이 1971년 8월23일에 일으켰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순제작비는 82억원이 들었고, 고정출연 70여명에 1000여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다. 개봉 당일 30만 1000명을 시작으로 19일 만에 500만명,58일 만에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1000만명의 관객을 넘어섰다.135분. ●어린신부(MBC 8일 오후 9시40분) 김호준 감독의 2004년작. 김래원, 문근영 주연. 세상 여자가 모두 자기 여자인양 온갖 작업을 펼치던 잘 나가던 대학생 상민(김래원)과 수다 떨기 좋아하고 얼짱 보면 가슴 설레는 앙큼상큼한 여고생 보은(문근영). 두 사람은 보은의 할아버지(김인문)에게서 날벼락 같은 명령을 받게 된다. 할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자 24세 상민과 16세 보은은 어쩔 수 없이 결국 결혼을 하고야 만다.115분. ●영어완전정복(KBS2 10일 오후 9시40분) 동사무소 말단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스포츠신문 운세란을 열독하는 9급 공무원 나영주. 어느날 외국인이 찾아와 민원 처리를 요구하면서 일상에 풍파가 몰아친다. 그 일을 계기로 동료들을 대표해 영어완전정복 주자에 당첨된 영주는 난생 처음 영어학원의 문턱을 밟는다. 하지만 알파벳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바람기 다분한 문수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장혁·이나영 주연.118분. ●인어공주(KBS2 9일 밤 12시30분) 나영은 때밀이인 억척 엄마와 착해서 답답한 아빠와의 생활이 지긋지긋하다. 안 그래도 불만스러운 상황에 아빠는 갑자기 집을 나가 버리고, 나영은 할 수 없이 아빠를 찾아 엄마, 아빠의 고향인 섬마을로 간다. 그곳에서 더없이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스무살 엄마 연순을 만나게 되는데…. 팬터지 속에 유쾌함과 찡한 감동을 규모있게 뒤섞었다. 전도연이 1인 2역을 맡아 열연했다.110분. ●효자동 이발사(KBS2 8일 오후 11시10분) 청와대가 경무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 경무대가 위치한 동네에 효자이발관이 있었다. 효자이발관은 소심하지만 순박한 이발사 성한모가 주인. 경무대 지역 주민다운 자긍심으로 그는 나라가 하는 일이라면 항상 옳다고 믿었지만, 얼결에 대통령의 이발사가 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어린 아들까지 간첩 혐의로 잡혀가는데…. 송강호·문소리 주연의 휴먼 드라마.116분. ●황산벌(SBS 10일 오후 9시30분)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의 분쟁이 끊이질 않았던 660년. 김춘추는 나당 연합군을 결성해 김유신 장군에게 당나라의 사령관인 소정방과의 협상을 명령한다. 나이로 밀어붙이려던 김유신은 결국 소정방에게 밀려 조공을 조달해야 할 처지가 된다. 하지만 조공을 운반하기 위해선 계백 장군이 버티고 있는 백제군을 뚫어야 하는데…. 걸쭉한 사투리 대결이 배꼽을 잡게 하는 역사 코믹극.104분. ●터미네이터 3(SBS 8일 오후 11시25분) 10여년전 T-1000의 살해 위협에서 벗어난 미래의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는 자신에 대한 모든 기록을 지워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로봇들의 최첨단 네트워크인 스카이 넷의 치밀한 추적 앞에서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로봇인간 T-X가 미래에서 파견되고, 터미네이터가 이에 맞선다.12년 만에 “돌아온다.”는 약속을 지킨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SF 액션.108분.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SBS 8일 오후 8시30분) 팬터지 가족영화 ‘해리포터’시리즈의 2탄. 이모부가 손님을 초대한 날, 요정이 해리를 찾아와 마법학교에 가지 말라며 소란을 피워 결국 손님 접대가 엉망으로 끝난다. 이 일로 해리는 다락방에 갇히게 된다. 어느날 론이 해리를 구출해내고, 우여곡절 끝에 학교로 돌아간다. 그러나 학교는 비밀의 방에 괴물이 살고 있다는 소문으로 뒤숭숭하고, 해리는 비밀의 방을 찾아간다.162분.
  • [박은영의 DVD 레서피] DVD야 황금연휴를 구해줘~

    [박은영의 DVD 레서피] DVD야 황금연휴를 구해줘~

    풍성한 명절 음식 앞에서는 소풍 전날의 설렘마저 느껴진다. 전을 지지는 고소한 콩기름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고, 여러 번 치대서 쫀득한 만두피에 돼지고기와 칼칼한 김치 소를 넣고 꼭꼭 빚어내면 이내 한상 그득 채울 음식들이 마련된다. 여기에 명치까지 시원해지는 얼음 식혜와 말캉한 곶감이 든 계피 수정과까지 갖추면 연휴 준비 끝! 명절 음식만큼 풍성하고 다채로운 DVD 컬렉션까지 준비됐다면 금상첨화다. 이번 연휴는 회사에 따라 길게는 9일 동안이나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장장 9일 간의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우선 인터넷 쇼핑몰에 나와 있는 DVD를 확인한뒤 보고 싶은 DVD 리스트를 작성해 보자. 마음에 드는 타이틀이 있다면 당장 쇼핑몰에 주문해야 한다. 그래야 토요일이나 늦어도 월요일에는 받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구매하는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가까운 DVD 대여점을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굳이 새로운 타이틀을 사거나 빌리지 않더라도 갖고 있는 DVD를 서플먼트 중심으로 재감상하는 것도 좋다.‘반지의 제왕 확장판 트릴로지’ 박스 세트는 어떤가. 극장판보다 2시간이 늘어난 러닝타임에 24시간이 넘는 부가영상이 수록되었다. 리마스터링과 부가영상을 보강해 출시된 ‘매트릭스 얼티밋 에디션’도 이에 빠지지 않는 타이틀이다. 그냥 묻어두기에는 아까운 영화의 비밀들이 서플먼트에 속속들이 숨어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환상적인 연휴가 곧 시작된다. 시원한 식혜 한 그릇과 리모컨만 있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자, 이번 연휴 DVD에 한번 빠져∼봅시다! ●터미널 반란군의 혁명으로 인해 국가를 잃고 입국허가를 받지 못한 난민 빅터 나보르스키의 터미널 생활기다. 시종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공짜 비스킷에 공짜 잼을 발라서 연명하는 톰 행크스의 연기는 일품이다. 스필버그 감독의 DVD답게 밝고 투명한 화질과 공항의 공간감을 살린 예민한 사운드 디자인, 유머러스한 스코어가 돋보인다. 무엇보다 스태프들의 애정이 담뿍 담긴 부가영상이 인상적이다. 이번에도 스필버그의 코멘터리를 만날 수는 없지만, 장시간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친절하고 자상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슈렉2 딸이 괴물과 결혼했다고 생각한 ‘겁나 먼 왕국’의 임금님은 슈렉을 처치하고, 프린스 차밍과 피오나 공주를 결혼시킬 계획을 세운다. 새롭게 등장한 킬러 장화 신은 고양이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은 DVD 화면에서 진가를 발휘한다.D-to-D(Digital to Digital) 방식의 풀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잡티 하나 없는 청명한 화질을 자랑하며, 재치 있는 사운드 디자인과 본편보다 재미있는 부가영상들이 가득한 명불허전의 타이틀이다. 아직도 고양이 킬러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번 설 연휴가 기회다. ●스쿨 오브 락 엽기 코미디의 주인공을 도맡았던 잭 블랙이 초등학교의 음악선생으로 변신했다. 잭 블랙의 발군의 기타 실력과 열정적인 보컬은 너무 의외라 충격적이다. 자연광을 이용한 화질은 청량한 느낌을 주며 레드 제플린을 비롯한 주옥같은 록 음악들은 스코어를 배려한 감칠맛 나는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다.“아침에 잠드니까 아침형 인간”이라는 잭 블랙의 하루일과를 담은 ‘MTV 다이어리’는 그의 캐릭터만큼이나 엉뚱하고 코믹한 부가영상이다. 감독, 잭 블랙, 아역 배우들의 3가지 트랙으로 담긴 수다스러운 코멘터리도 인상적이다. ●반지의 제왕 확장판 트릴로지 박스세트 한 마디로,‘반지의 제왕’의 신화는 이 DVD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2개의 디스크에 웨타 디지털과 피터 잭슨 감독이 함께 만든 특수효과와 제작과정 다큐멘터리가 24시간이 넘는 분량으로 담겼다. 이 부가영상에는 영화로 제작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반지의 제왕’이 현실화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또한, 극장판에서 2시간이 늘어난 감독판 버전의 영화가 수록되어 있다.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파괴적인 사운드와 다채널 스피커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으며, 신화적 상상력이 총집결된 경이로운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얼티밋 매트릭스 에디션 ‘반지의 제왕’과 마찬가지로 시리즈 3편을 묶은 트릴로지로 구성되었다. 일반판에서는 볼 수 없었던 5개의 디스크가 추가되어 10개의 디스크로 구성되었으며,35시간의 부가영상이 수록되었다. 워쇼스키 형제의 코멘터리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대신 ‘매트릭스’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지닌 평론가들과 철학자들이 나와서 영화에 대한 흥미진진한 해석을 들려준다. 신화가 된 영화와 더불어 DVD 역시 신화로 남을 정도로 방대한 자료를 담고 있다.1999년에 제작된 1편을 비롯한 시리즈 모두 리마스터링되어 기존에 출시된 일반판보다 훨씬 더 선명한 화질과 강력한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다.
  • [월드 이슈-부시2기 행정부와 네오콘] ‘극단적 무슬림’ 해체에 역량 집중

    [월드 이슈-부시2기 행정부와 네오콘] ‘극단적 무슬림’ 해체에 역량 집중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비밀 결사단. 명문대를 졸업한 유대인을 중심으로 구성돼 조지 부시 정부와 언론 기관에 뿌리내린 이상주의자들의 세포 조직. 이슬람에 대한 증오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이라크전은 이들이 이슬람을 점령하기 위해 미국을 조종한 것.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방적인 무력행사를 불사한다. 유엔이나 국제사회와의 협력은 목표 실현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 지난 24일(현지시간) 저녁. 워싱턴 시내 17번가에 자리잡은 미국기업연구소(AEI) 12층. 네오콘의 거두 앨버트 울스테터의 이름을 붙인 대형 콘퍼런스 룸에서 ‘네오콘 포럼’이 시작됐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2기 정부 취임에 맞춰 네오콘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단합대회’ 성격의 모임이었다. 최근 ‘네오콘 독자(Neocon Reader)’라는 저서를 펴낸 허드슨연구소의 어윈 스텔저 연구원이 주제발표 첫머리에 미국과 유럽의 언론에 투영된 네오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짧은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지만, 장내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스텔저 연구원은 “언론에 묘사된 것과 같은 뿔 달린 괴물은 없다.”고 일갈했다. 네오콘 포럼은 ‘과격한 이상주의자들’이라는 미국 내부와 국제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의식한 듯 다소 위기감 속에서 시작됐다. 포럼에는 스텔저 연구원과 AEI의 칼린 바우먼, 진 커크패트릭, 찰스 머레이, 워싱턴포스트의 찰스 크라우트해머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누가 네오콘인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유엔 대사를 지냈던 진 커크패트릭은 “가장 분명한 것은 누가 네오콘인가 하는 것이 한 번도 분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커크패트릭은 “(네오콘의 우상격인)어빙 크리스톨을 만났을 때도 물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크리스톨조차도 그같은 질문에 답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암시였다. 크라우트해머는 “네오콘은 집단의 운동(Movement)이 아니라 개인의 성향(Tendency)이라고 설명했다.‘예일대를 나온 사람’과 같은 기준이 아니라,‘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구분이라는 것. 따라서 보기에 따라 네오콘의 범위는 확대될 수도 축소될 수도 있다. 스텔저는 ‘네오콘 독자’에서 네오콘의 대외정책 섹션에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 및 토니 블레어 총리의 글을 올렸다. 가급적 네오콘의 지평을 더 넓혀보려는 의도를 가진 것 같았다. 토론자들에게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로버트 졸릭 부장관이 네오콘이냐고 묻자 “모르겠다.”며 “앞으로 추진하는 정책을 보고 나서야 판단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같은 인물은 네오콘에게 무엇일까. 스텔저는 그의 저서에서 이들이 네오콘의 정책을 구현하는 중요한 ‘실행자(Practitioners)’라고 규정했다. 반대로 부시나 체니, 럼즈펠드의 입장에서 보면 네오콘은 미국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주는 ‘명분 제공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네오콘은 이상주의자들인가? 크라우트해머는 네오콘이 “과격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냉철한 현실주의자”라고 지칭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를 핵심가치로 삼지만, 네오콘들은 비민주적인 파키스탄을 민주화하는 것보다는 파키스탄을 이용, 아프가니스탄의 극단적 무슬림을 해방시키는 것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이다. 머레이는 네오콘들이 “상대적으로 데이터를 잘 다루고, 정책을 기획하고 대통령과 의회를 설득하는 데 정력적인 추진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일이 시작되면 이데올로기에서는 한발 벗어나 있다.”고 주장했다. 포럼에 참석한 독일 기자가 “메시아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종교 지향성을 지적하자 머레이는 “부시 정부(참석자들은 이따금씩 네오콘과 부시 정부를 일치시켰다)의 대외정책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부분은 매우 작다.”고 주장했다. 또 크라우트해머도 “루스벨트, 링컨 대통령도 재임 중에 종교적인 비유를 하곤 했다.”면서 “네오콘 가운데 유대인이 많기는 하지만 수요일밤에 모여 비밀 의식을 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스텔저는 “부시 대통령의 관심은 90%가 대외정책이고 10%만이 국내정책이라는 말을 백악관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면서 “미국의 국익이 대외정책에 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오콘은 대북 강경론자들인가? 저녁 5시부터 7시까지 두 시간 동안 계속된 포럼에서 ‘노스’든 ‘사우스’든 ‘코리아’라는 단어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네오콘의 관심이 ‘극단적 이슬람’의 터전이라는 중동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포럼이 끝난 뒤 참석자들에게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자 “북한은 중동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역”이라면서 “부시 정부는 앞으로도 북한과의 현상을 유지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라우트해머는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매우 명확하다.”고 단언했다. 다만 크라우트해머와 스텔저는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을 외부지역 특히 중동으로 유출할 경우에는 엄중한 사태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포럼에는 정부와 외교가, 학계, 언론계 인사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참석해 네오콘에 대한 관심이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라이스 국무장관의 연설문 담당자라고 소개한 참석자는 행사장을 떠나며 “한편으로는 유익했지만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네오콘들이 향후의 국제질서와 국내정책에 대해 보다 명확한 목표와 대안을 제시하기를 기대했지만 포럼 전체가 네오콘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다소 추상적인 느낌을 줬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아하 그렇구나]‘나쁜놈’ 잡는 형사물 붐

    [아하 그렇구나]‘나쁜놈’ 잡는 형사물 붐

    형사 기질이 다분한 검사가 ‘진짜 나쁜 놈’을 잡기 위해 모든 걸 내던지고 죽기살기로 덤벼드는 영화 ‘공공의적2’.“관객이 함께 분노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강우석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경제사정이 어려워 허덕이고 있을 보통 사람들의 분노를 한 경제사범에게 투영시켜 대리만족을 얻게 한다. 짜증나는 현실 탓일까.‘나쁜 놈’을 잡으며 관객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형사물과 복수극이 ‘공공의적2’를 시작으로 최근 잇따라 제작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늑대’ ‘주홍글씨’등에서 형사가 등장하긴 했지만, 본격 형사물로는 ‘썸’밖에 없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나쁜 놈’ 잡는 형사물 줄줄이 늘어난 형사물의 수만큼이나 ‘나쁜 놈’이나 ‘악’의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증인보호를 위해 학교에 위장잠입해 학생 행세를 하는 여형사의 활약상을 코믹하게 그린 3월 개봉 예정작 ‘잠복근무’(박광춘 감독, 김선아 주연)에서는 범죄조직이 악의 대상이다. 거친 남자들의 이야기와 강한 액션이 주를 이룰 누아르물 ‘야수’(김성수 감독, 권상우·유지태 주연)도 형사, 검사, 조직폭력배와의 대결을 그려 올 하반기에 개봉한다. 현재 촬영 중인 ‘형사:Duelist’(이명세 감독, 하지원·강동원 주연)에서는 조선시대의 여형사가 경제범죄를 수사한다. 열혈 여형사가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쥔 의문의 여인을 추적하는 ‘12월의 일기’(임경수 감독, 김윤진·에릭 주연)는 살인사건을 주무대로 해 곧 크랭크인한다. 반대로 ‘투캅스’이래 전통을 이어온 ‘비리 형사’ 역시 모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가을 개봉 예정작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이영은 감독, 이범수·최성국 주연)에서는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뺀질거리기만 하던 형사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딸에게 보험금 10억원을 타주기 위해 강력범죄 현장에 뛰어든다.160억원을 들고 잠적한 한 여자를 찾아 지도에도 없는 섬인 마파도에 들어간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마파도’(추창민 감독, 이정진·이문식·여운계 주연)에서 배우 이문식은 비리 형사로 출연해 좌충우돌한다. ●‘나쁜 놈’ 찾아 나서는 복수극도 ‘나쁜 놈’을 잡는 형사물뿐만 아니라 ‘나쁜 놈’을 찾아 복수하는 내용의 영화들도 눈에 띈다. 공권력이 풀어주지 못하는 분노를 스스로 발벗고 나서 해결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현실에 대한 비판을 녹여냈다. 13년간 감옥에 갇힌 착한 여자가 출옥한 뒤 벌이는 치밀한 복수극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감독, 이영애·최민식 주연). 착하게만 보이던 배우 이영애가 선글라스를 벗고 분노가 담긴 심한 욕설을 뱉는 충격적인 장면은 6월쯤 만날 수 있다. 한강에 사는 괴생명체의 난폭한 습격으로 딸을 잃는다는 내용의 ‘괴물’(봉준호 감독, 송강호 주연)에서도 평범한 시민인 주인공은 괴물이 있다는 자신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현실에서 자신만의 적과 사투를 벌인다. ‘나쁜 놈’을 잡는 형사들과 ‘나쁜 놈’에게 복수하는 보통 사람들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올해의 한국영화계. 이들과 함께 되는 일이 도통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조금이나마 털어보는 것은 어떨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박은영의 DVD레서피]샤말란은 홍탁처럼 찌르르르

    홍탁 집 앞을 지날 때면 눈이 따가울 정도로 지린내가 훅 끼친다. 홍어회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코를 감싸 쥐고 뒷걸음질칠 일이지만, 옹기에서 지푸라기와 더불어 삭은 그 독하고 개운한 맛을 아는 이들에겐 꿈속에서도 떠오를 만큼 군침 도는 향이다. 씹을수록 차지고 부드러운 흑산도 홍어의 육질과 목 뒤로 넘길 때의 상쾌한 청량감이란! M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를 볼 때마다 제대로 곰삭은 홍어회 맛을 생각하게 된다.‘식스 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의 절망적인 표정과 “죽은 사람이 보여요.”라는 소년의 말이 오버랩될 때면 홍어회 한 점을 입 안에 넣었을 때처럼 관자놀이에서 목덜미까지가 찌릿해진다.‘언브레이커블’이나 ‘싸인’,‘빌리지’에도 이런 찌르르한 맛이 있다. 반전의 강도는 전작만큼 세지 않지만 홍어회에 맛을 들인 능숙한 미식가들의 입 속처럼 탐탁스럽다. 그 중에서도 ‘싸인’과 ‘빌리지’의 DVD는 이를테면, 홍어삼합 같다. 인도 출신의 샤말란 감독이 홍어의 맛을 알 리 만무하지만 인간의 내면적 공포와 그 실체를 좇는 그의 영화들은 이렇게 소박하고도 강렬하다. 특히 다채널 스피커를 갖추고 감상하는 ‘싸인’과 ‘빌리지’ DVD에선 시종일관 마음 졸이는 긴장감이 넘쳐난다. 반전이 주는 충격은 덜하지만 미식가의 입맛이 숙성되듯 M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도 무르익고 DVD는 점점 더 감칠맛이 난다. ●싸인 최근 출시된 M. 나이트 샤말란의 박스세트에 수록된 타이틀이다. 기존 타이틀에 신작 ‘빌리지’만 추가한 박스 구성이라는 게 아쉽지만, 풍성한 부가영상과 정교한 사운드 디자인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외계인이 언제 집안으로 들어올지 모르는 서스펜스의 조성과 실감나는 배우들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나무 바닥의 삐걱거리는 소리, 바람 소리, 지붕 위에서 쿵쾅거리는 사운드는 예민한 이동감과 입체적인 공간감을 형성한다. 또한 오프닝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스코어는 매 장면 유효적절하게 사용되어 긴장감을 끌어 올린다.4개의 삭제장면과 스토리보드, 샤말란 감독의 첫 외계인 소재 단편영화가 수록되었다. ●빌리지 파격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건 이 영화를 보는 가장 재미없는 감상법. 고립된 마을을 둘러싼 괴물들의 정체와 목숨을 건 러브스토리는 고전적이며 결말은 너무 싱겁다. 그러나 배우들의 훌륭한 앙상블과 섬세하게 연출된 각 장면들은 주목할 만하다.‘싸인’에 못지않은 사운드 디자인으로 귀가 즐겁다. 윤곽이 예리한 화질은 아니지만 노랑과 빨강을 기본으로 한 색채가 풍성하게 표현되었다. 부가영상으로 샤말란 감독의 친절한 해설이 곁들여진 4개의 삭제 장면과 제작과정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있다. 이밖에 감독이 학창시절 직접 출연하고 연출한 ‘인디아나 존스’ 패러디 단편영화도 수록되었다.
  • [조영증의 킥오프]차세대 주역 박주영

    한국 축구의 괴물, 득점 기계, 보배, 아시아의 샛별 등등. 요즘 박주영에게 붙어 다니는 수식어들이다. 카타르 8개국 초청 청소년(U-20)대회에서 차세대 스타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그는 특별한 위치를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왼발, 오른발, 머리 등 몸이 닿는 곳마다 골을 쏟아낼 수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볼 컨트롤이 좋아 슛을 자유자재로 쏠 수 있고, 수비수가 마크할 수 없는 공간 침투와 역동작 등 특유의 타고난 감각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슛의 정확도가 다른 선수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그동안 골 결정력에 목말라 있던 축구팬들은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대들보로 박주영을 낙점해 놓고 있다. 또 축구협회나 각 언론사의 홈페이지에는 박주영을 국가대표팀으로 빨리 보내라는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필자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다. 기량면에서도 기존 대표선수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발전을 위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축구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올해 6월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는 한국 청소년축구가 세계에 다시 한번 위상을 떨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박주영이 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긴 청소년팀의 전력이 어느 정도일지 축구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2003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세계청소년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최성국은 대표팀과 청소년팀을 오가며 적응에 실패, 청소년팀 전력에 큰 차질을 빚었다. 그리고 대표팀의 선수 구성은 감독 고유 권한이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은 박주영의 기술과 두뇌 플레이, 성실성 등은 인정하지만 체력과 경기 경험이 다소 미흡한 것을 늘 염두에 두는 것 같다. 6월 세계청소년대회가 박주영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또래들의 세계 수준을 경험하며 시야를 넓힐 수 있고, 자신을 세계 무대에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세계청소년대회는 세계의 수 많은 스카우트들이 모여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들을 점찍는 장이기도 하다. 박주영을 성급하게 국가대표팀에 발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로 하여금 뿌리를 잘 내리고 착실히 잘 자랄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줄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차세대 한국의 대들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위원 youngj-cho@hanmail.net
  • 청소년축구 결승… 올 첫 한·일전

    청소년축구 결승… 올 첫 한·일전

    ‘일본은 없다.’ 새해 첫 한·일 ‘축구 전쟁’이 성사됐다. 오는 27일 새벽 1시45분 카타르에서 열리는 20세 이하 청소년축구대회 결승전에서다. 한국은 24일 준결승전에서 알제리를 연장끝에 2-1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날도 천재 박주영의 ‘원맨쇼’는 백미였다. 박주영은 후반 10분 헤딩슛으로 선제골을 뽑아 무난한 승리가 점쳐졌지만 골키퍼 정성룡(20·포항)이 막판 어이없는 헛발질로 동점골을 내주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해결사’ 박주영의 진가는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연장 시작하자마자 페널티지역 오른쪽 사각에서 절묘한 오른발 슈팅을 날리며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은 것. 이제 마지막 상대는 역시 노르웨이를 2-0으로 물리치고 결승에 오른 ‘영원한 맞수’ 일본. 스무살 동갑내기 박주영과 히라야마 소타(쓰쿠바대)의 골대결이 특히 관심이다. 박주영은 이번 대회 3경기에서 경기당 2.33골인 무려 7골을 폭죽처럼 쏘아올린 타고난 골잡이.‘100년에 한번 나올 만한 골게터’라는 명성에 걸맞게 헤딩슛 프리킥 드리블에 이은 슈팅 등 동물적인 골감각을 자랑한다. 이에 맞서는 히라야마는 190㎝의 장신이지만 볼컨트롤과 득점력이 뛰어난 일본의 차세대 간판 공격수. 고교 시절 ‘괴물’로 불리며 J리그 스카우터들의 표적이 돼왔다. 이번 대회에서는 1골1도움으로 기대에 다소 못미치지만, 언제든 한방을 터뜨릴 선수여서 경계를 늦출 수 없다. 박주영과 히라야마는 지난해 아시아청소년대회 준결승에서 만나 1골씩 주고 받았지만 승부차기끝에 한국이 3-1로 승리, 일단 박주영이 ‘판정승’을 거뒀다. 이번 결승전은 양팀이 동반출전하는 오는 6월 세계 청소년대회의 ‘전초전’격이어서 의미를 더한다. 개인으로만 보면 박주영이 히라야마에 견줘 파괴력은 한 수위다. 하지만 팀전력에서는 한국이 밀린다. 한국은 박주영을 제외하고 이렇다할 득점원이 없다.4경기 8골중 박주영 이외의 선수가 넣은 골은 단 한골 뿐이다. 실점도 6점이나 된다. 따라서 박주영이 상대의 집중 마크에 휘말릴 경우 득점 물꼬를 트기 쉽지 않다. 박주영이 강호 일본의 수비를 뚫고 또다시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진실이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천운영,‘포옹’ 천운영 소설에 대한 보다 정확히 말해,‘바늘’이 출간되고 난 후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엽기성’,‘동물성’,‘야생성’,‘야수성’,‘육식성’,‘파괴성’,‘공격성’,‘관능성’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천운영 소설에 이르러 우리 문학은 “가부장적 질서를 난도질하는 육체적 질감을 지닌 현장(김양선,‘기이하고 낯선 가족과 여성이야기’)”을 갖게 되었다는 식의, 지난 연대의 여성 소설과 천운영 소설을 구획짓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평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러므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불감증, 거식증, 불임, 도벽 등과 같은 히스테리적 징후로서만 즉, 부정으로서만 여성 소설의 위반성을 거론할 수 있었던 지난 연대와는 달리,“맹수의 이미지를 띤 여성인물들(황종연,‘탈승화의 리얼리즘’)”은 유례없이 “전복적이고 파괴적인(황도경,‘환상 속으로 탈주하라’)”힘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신선한 살과 피를 원하는 이 짐승의 다음 먹잇감은 무엇이 될 것인가(남진우,‘늑대의 후예’)”쯤으로 표현되는 것이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육체적 질감”,“신선한 살과 피” 등의 앞서 인용한 비평적 수사에서 은연 중 드러나듯, 천운영 소설이 보여 주는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 그 생생한 현장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려진 ‘발로 쓰는’ 이 작가의 스타일이나 그로 인한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의 창출에도 불구하고, 천운영이 정작 공들여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취재한 세계, 바로 그 곳으로부터 도출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직접 회를 뜨고, 야나기상의 문신을 보고, 소머리 가르는 접칼을 쥐어도, 작가의 시선은, 장어를 다루는 횟집 주방장의 손놀림에서 텅 빈 수족관 앞에 망연히 앉아 있는 그의 ‘아내’에게로, 남자의 육체에 수놓아진 화려한 거미 문신에서 문신사의 자살한 ‘어머니’에게로, 뼈와 살이 갈려진 소머리에서 우시장 노동자의 ‘할머니’와 ‘연인’에게로 이동한다. 한 세밀한 묘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좌우하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의 포커스 또한 이동할 때가 된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들;천운영 소설의 세밀한 묘사와 이에 기반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가려 미처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저토록 야수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인물들 내면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작가의 두 번째 창작집 ‘명랑’이 출간된 지금, 우리가 시도해야 할 작업은 엽기성과 파괴성의 이면 혹은, 공격성과 야수성의 연원을 추적해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그로테스크함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비평적 키워드들의 시발점의 하나가 되었던 천운영 소설 인물들의 ‘몸’으로부터 출발해 보자.“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신체를 보여(심진경,‘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로지르는 섹슈얼리티의 모험과 위반’)”주면서 “몸의 해부학적 묘사라 할 만큼 유난히 신체에 대한 묘사에 집착(황도경, 앞의글)”한다고 평가받는 이 작가의 소설에서, 몸,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는 몸의 일부는 얼굴이 아니다. 바로 ‘등’이다. 우리 중 누군가 자신의 ‘등’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있을까. 등은 인간의 육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등의 실제 모습을 모르고 산다. 심지어 거울 앞에서도. 그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은유하고 있으며, 나조차 알지 못하는 이면을 타자는 볼 수 있다는 인식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으로 자리한다. 만약 자신의 등이 “굽은 등”이고, 자신이 “곱사등이”이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포옹’의 ‘나(인경)’는 “평면만을 보여주는 거울의 기만성(1:213, 이하 괄호안의 표기는 수록소설집:페이지수)”을 충분히 알고 있다.“그렇게 화장을 하고 차려 입으니 너무 예쁘구나(1:213)”라는 거울 속 어머니의 말은 그러므로 거짓이라는 것도. 일찍이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대로 거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 더 이상 엄마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아이의 고통은 원초적인 것에 육박하지만, 거울이 제공하는 이 기만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정체성을 구성해 내고, 거울을 통과한 후에야 아이는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굽은 등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인경은 여전히 엄마의 일부일 때에만 완전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엄마 품에 안겨 거울 속 나를 바라보(1:213)”며, 자신의 뒷모습이 “백지”로 남기를 바란다. 진실이 절망을 가져다준다면 그 진실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 그것은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믿는 그녀가 불우한 삶을 견뎌 내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포옹’에서 인경의 등은, 어머니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손대기를 꺼려한다는 점에서는 나조차 어찌할 수조차 없는 내 안의 괴물―‘바늘’에서 곱추를 연상시키는 ‘나’의 등이나,‘숨’에서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할머니의 단단한 등뼈를 보라―이지만, 거꾸로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소통을 불러오는 몸의 유일한 창구가 된다.“어느 누구도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법이며, 타인만이 그 등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등뼈’)다는 소설 속의 한 전언은 천운영 소설에서 타인과의 소통이란 것은 곧 위무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자신은 볼 수조차 없지만 타자는 볼 수 있으며, 자신은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없지만 타자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기 때문에,“아내의 굽은 등”“할멈의 굽은 등”(‘행복 고물상’)에서 번져 나오는 고독감은 남편과 이웃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지친 이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편은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멍게 뒷맛’)이며, 위로받는 가장 좋은 방법 또한 “등을 내맡기는”(‘아버지의 엉덩이’) 것이다. 천운영 소설에서는 환상 속에 잠깐 이루어진 만남 또한 “등을 만졌던 것 만 같다”(‘월경’)라고 표현된다. 이런 식이라면 타인에 대한 분노나 타인으로부터의 외면은 등을 돌리거나, 등을 치는 것으로 그려질 성싶다. 마치 아버지를 경멸하는 아들이 제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보”고, 그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어 하는 것(‘아버지의 엉덩이’)처럼, 친구들이 대항할 힘도 없는 ‘나’를 “등을 밀쳐 땅바닥에 넘어뜨리”던 것(‘세번째 유방’)처럼, 살인 장면의 마지막 기억이 “남자가 정말 당신 등을 밀었다”(‘멍게 뒷맛’)로 남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무엇보다 천운영 소설에서 등은 대부분 대상­타자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작중인물의 불안을 담고 있다. 등을 돌린 사람 혹은, 돌아선 사람의 등에 대한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 뒤에서 그의 아내는 “침묵하는 당신(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그 “등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왜소한 그 등을 보이고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당신의 바다’)며 견딜 수 없어 한다. 연인들의 연애의 끝은 또 어떠한가. 꿈 속에서 골목을 헤매던 여자는 길 모퉁이에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지만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모퉁이만 계속해서 나타날 뿐이고(‘모퉁이’), 연인에게 입 맞추던 여인은 “등을 보이고 돌아”선 후 그로부터 “점점 멀어진”다(‘세번째 유방’). 이렇듯 도저한 상실감이 등의 이미지를 빌려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소설은 그 표제가 아예 ‘등뼈’이다. “여자가 떠났다”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등뼈’는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집착하던 여성이 떠난 이후 전개되는 남성의 황폐한 내면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아무런 징후나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1:138)”라는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여자의 실종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남자에게 그것은 “떠난 것이 아니라 증발한 것(1:143)”에 가까우며, 남자는 당연히 여자의 그러한 증발에 대비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못한 채이다. 그러나 “그때 왜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까(1:148)”라는 소설 속의 한 구절을 제외한다면 남자가 여자의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자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떠난 뒤 살 속에 숨은 뼈에 집착하기 시작(1:150)”한다. 주위 사물들에서 뼈를 연상해 내고(1), 원인을 알 수 없는 요추디스크로 고통받다가(2), 급기야 뼈를 찍은 엑스레이 필름을 닥치는 대로 모으며(3), 결국 아무런 식욕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 그의 몸엔 뼈만 두드러지게 된다(4). 여자가 떠난 후 이 남자가 보여주는 모든 증상((1)∼(4))은 그러니까 ‘뼈’에 대한 집착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왜 하필 ‘뼈’일까?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돌려 등을 만졌다. 손끝에 등뼈 마디마디가 분명히 잡혔다. 남자는 욕조에서 기어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서린 김을 걷어내자 남자의 퀭한 얼굴이 보였다.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이 쑥 들어간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들어 있었다. 남자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거울에 등을 비추어보았다. 등골이 패고 뼈가 튀어나온 등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었다.(1:158) ‘뼈’에 대한 남자의 집착은 그의 일상을 와해시키고 결국 그 자신을 말 그대로 뼈만 남게 만들어 버리는데, 사라진 여자가 등뼈는 말할 것도 없고 광대뼈, 턱뼈, 어깨뼈, 복사뼈까지 유난히 뼈가 도드라졌으며 식성도 특이해서 생선뼈, 닭갈비뼈, 조개껍데기와 같이 뼈에 붙은 살들만을 골라 먹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남자의 집착은 그녀에 대한 남자의 무의식적 동일시 즉, 사라진 대상을 불완전하게나마 보유하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동일시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면 누구나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현실적인 요구와 함께 대상에 투자되었던 리비도는 다시 회수된다(프로이트,‘애도와 우울’). 이것이 상실된 대상에 대한 상식적인 ‘애도’의 과정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에 대한 리비도가 너무나 강해서 현실에서 상실된 대상을 대체할 만한 다른 대상을 찾지 못할 때, 주체는 상실된 대상을 내면화(internalization) 혹은 합체(내적 동일화,incorporation)함으로써 계속 보유하고자 한다(J 버틀러,‘멜랑콜리적 젠더/거부된 동일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상실된 대상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가까스로 거울에 비춰본 자신의 등에서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환상으로 처리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뼈가 튀어나온 등”은 현재의 환상 속에서 과거의 상실된 대상과 남자가 조우하는 장소로 공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이처럼 상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저항이 지극히 위장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멜랑콜리적 주체의 성격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이 애도로 승화되지 못한 원인은 무엇보다 이들이 도저한 상실감의 원인이 된 대상에 대해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환상 속에서조차 대상과의 만남이 허락되지 않을 때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난폭한 짐승(2:119)”이 출몰하게 된다. 이 “난폭한 짐승” 혹은,“광포한 짐승” 혹은,“제 속에 든 짐승”은 인물들 특히, 여성인물들을 숨이 차도록 달리게 만들기도 하고, 그녀들에게 무서운 식욕을 부추기기도 한다. 다음을 보라:애도할 만한 죽음이 나타나면 여자 속에 숨은 짐승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슬픈 일이 일어나기를, 짐승을 다스릴 만한 제물이 나타나기를 여자는 빌었다(‘모퉁이’, 강조 인용자).“애도할 만한 죽음”이 여자 속 숨은 짐승을 사라지게 하고,“무언가 슬픈 일”이 그 짐승을 다스릴 것이라는 저 여자의 내면이 가리키는 것은, 자신의 상실감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 앞에 있다면 그 상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막한 기대이다. 통제 불가능한 내면은 분명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된 대상이 눈 앞에 있어 이를 애도할 수 있다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내용은 이미 소실되었으되 기억-감정이 남아 있어 유사한 심리적 기제가 주어지면 어김없이 리비도가 투자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상실된 바로 그 대상은 아니기에 상실의 흔적은 그녀들에게 애도해야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남자의 유골을 뿌리러 제주도로 향하는 여자(‘포옹’)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또한 바로 그것이다. 천운영의 소설들에서 누군가의 죽음 혹은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티프이다. 이 작가의 어느 작품을 들춰 보아도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명랑’‘아버지의 엉덩이’‘세번째 유방’에서는 할머니가,‘바늘’‘명랑’‘월경’‘당신의 바다’에서는 아버지가,‘바늘’‘멍게 뒷맛’‘월경’‘아버지의 엉덩이’에서는 어머니가,‘숨’‘그림자 상자’에서는 양친부모 모두가,‘등뼈’‘멍게 뒷맛’에서는 여자가,‘모퉁이’에서는 연인이,‘당신의 바다’에서는 남편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아무런 예고 없이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러한 상실이 대개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인 가족 관계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것은 이렇게 열거한 목록에서도 금방 포착되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할머니)의 빈자리이다. 천운영 소설이 가족관계 안에서의 갈등을 그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모퉁이’‘그림자 상자’‘세번째 유방’을 제외하면 형제나 자매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서마저도 언니, 오빠, 동생은 화자를, 부모 특히 어머니 곁에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쟁자로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천운영 소설 속 주인공들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 혹은 애증은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다. 최근 한 평론에서는 천운영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로 ‘부재하는 아버지’가 거론되었거니와(남진우, 앞의 글), 이 논자의 지적대로 무능하고 비루한 아버지의 초상은 이 시대 거세된 남성성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부재하는 아버지’는 실로 오랫동안 우리 소설의 한 테마였고,‘아비-부재’,‘아비-찾기’,‘아비-되기’,‘아비-부정’의 기나긴 순환 속에서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정체성의 근거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과 함께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에서 아버지의 죽음, 그 부재의 효과는 말 그대로 그저 ‘없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특징적이다. 아버지의 위치가 지극히 주변화되어 있음에도,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들에게서는 그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이를 복권하려는 의지도, 스스로 가부장으로 전신하고자 하는 충동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천운영 소설에서 강력한 입법자로서의 아버지란 ‘세번째 유방’의 아버지를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며, 심지어 ‘아버지―법’은 “어머니를 닮은 부라보콘”에게까지 자리를 내준다(‘눈보라콘’);“오직 부라보콘만이 내 운명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1:90)”다.‘∼하지 말라’가 사라진 자리에서, 가위를 든 “이발사” 아버지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서,‘나’는 어머니를 마음껏 향유하고자 한다.‘눈보라콘’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는 그러므로 이후 도래할 어머니의 빈자리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그치게 된다. 또 다른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버지의 엉덩이’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느낄 수 없을 만큼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본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쇼핑호스트가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소개하고 있다. 앞치마를 두른 쇼핑 호스트는 크기가 각기 다른 밀폐용기를 쌓아놓고 얼마나 저렴한지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며 전화주문을 유도한다.(……) 아버지는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조금씩 내려가는 숫자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2:172) 위 장면의 등장인물의 성(性)을 여성으로 치환시켜 놓으면 즉, 아버지와 아들의 식사장면이 아니라 어머니와 딸의 그것으로 바꾸어 놓으면, 우리 눈 앞에 매우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늙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딸이 “상”을 차려 들어간다, 어머니의 모습에 “신경질”이 난 딸은 그녀를 “쏘아 본다”, 텔레비전에서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선전하는 “홈쇼핑”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어머니는 숫자판에 넋을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주인공은 분명 아버지와 아들이다. 홈쇼핑 중독자인 아버지의 “게걸스런 주문과 반품”이 “외출”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히스테리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혹은 홈드라마의 역전된 판본이라 할 만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언급한 것은 이 시대의 ‘아버지 부재’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한다. 아버지의 ‘엉덩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이 말해 주듯이 다만,‘어머니 부재’로 세계의 중심을 잃어버린 한 “엄마”의 아들로서만,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이 소설의 아버지와 아들, 두 남성 주인공을 움직이는 숨은 작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부재하는 어머니이다. 자신의 어머니 묘소 앞에서 “이제 막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처럼 우는(2:166)” 아버지는 물론이고, 태어나자마자 잃어버린 “따뜻한 자궁(2:167)”을 그리워하는 아들 역시 포도나무 가지에서조차 “침묵하며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2:182)”를 발견한다. 이들 부자(父子)에게 ‘부재하는 어머니(할머니)’는 모성적 초자아(maternal superego)의 형상으로 그녀의 아들들을 조종한다. 남성인물을 움직이는 모성적 초자아의 형상은 ‘숨’에서는 ‘차가운 자궁’의 이미지를 빌려 섬뜩하게 변주된다. 할머니를 설득하는 마지막 방편인 송치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나’가 불법적인 물먹이기를 감행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도망치는 대목에서, 단속반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 장소가 높이 2미터, 영하 20도의 “거대한 냉장창고”라는 점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추격의 장면이 마치 사냥의 한 대목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할머니가 “육식동물”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발각으로 인해 할머니의 의사를 거스른 미연과의 결혼이 틀어질 위기에 처한다는 점, 그 안에서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을 죽여(1:55)”야 한다는 점 등은 이 냉동고가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얼어붙은 자궁’이 물질화된 것임을 암시한다.‘숨’에서 아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냉동고가 이처럼 은유적 차원에서 자궁의 부정적 이면을 함축하고 있다면,‘행복고물상’에서 그것은 “유산된지도 모르고 보름 동안이나 자궁 속에 죽은 아이를 넣고 다녔던(1:162)” 아내를 빌려 실체화되고 있기도 하다. 자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자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천운영의 소설들에서는 빈번하게 출물하면서 작품의 기저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당신을 둘러싼 바다 밑바닥 같은 어둠”(‘당신의 바다’)과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천운영 소설에서 어둠, 바다는 의미론적인 층위에서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 놓이는 경우가 흔하며,“깊은 어둠(1:195)”,“어두운 바닷 속으로 깊숙이(1:139)”,“바다 깊숙한 곳(1:156)”,“물 속 깊숙이(1:158)”,“깊은 바다로 침잠(1:136)” 에서와 같이 곧잘 하강 혹은 침잠의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는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최종지점에 어머니―모체―자궁이 자리한다.“탄생 이전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명랑’)나,“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해진 어둠”을 즐기는 아이(‘유령의 집’)는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에서 발견되는 모체―자궁으로의 회귀욕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무력한 아버지를 대체하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법에 내포된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전복을 읽어낼 수도 있고, 성적 관계의 절대적 방해자로 나타나는 할머니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손자의 서사를 아버지―질서의 외부를 꿈꾸는 딸의 서사의 역전된 판본으로 체감할 수도 있으며, 빈번히 등장하는 자궁 회귀욕으로부터 주체―대상의 이분법에 이전하는 원초적 충동으로서의 모체 회귀욕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소설들에서는 그것이 의존성이건, 억압이건, 회귀이건 간에 어머니의 부재가 스토리―시간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며,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아버지의 엉덩이’)이나 재혼(‘눈보라콘’)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버려짐이나 내쳐짐의 쓰라린 감각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대상―타자의 상실을 ‘버려짐’으로써 격렬하게 경험하는 인물들은 무엇보다 ‘바늘’‘멍게 뒷맛’‘월경’‘모퉁이’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다. 울음보가 터졌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락 계단을 기어오르면서부터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코피가 나올 것처럼 콧잔등이 매큼해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엄마는 내 울음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다. 내 울음이 엄마를 돌려세울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울음을 그칠 수는 없었다.(2:100) ‘모퉁이’는 주인공 ‘나’가 ‘엄마’와 헤어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엄마를 잃어 비통한 한 소녀의 심사는,14줄에 걸쳐 집요하게 서술된다. 마치 그것을 영원한 이별이라 예감하는 듯이 소녀는 줄기차게 울어댄다. 그러나 소녀가 그토록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엄마는 단지 아빠의 공장에 밥을 가져다주러 나선 길일 뿐이다. 매일 반복되었을 이 일상적인 엄마의 떠남 앞에서 소녀는 한참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다고 생각되는 존재는 “뱃속의 아이”라도 저주하는 소녀,“엄마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악을 쓰고 울었(2:112)”던 그 소녀,“우는 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2:105)”이었던 바로 그 소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에게는 여전히 “울음소리”로 존재한다.‘멍게 뒷맛’,‘바늘’에서 역시, 어머니와의 이별은 언제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성장한 그녀들이 겪는 모든 상실의 밑그림이 된다. 엄마들은 결국 떠난다. 엄마가 떠난 길목을 바라보며 꼼짝도 못하고 있던 그날을 기억하는 ‘나’(‘바늘’)나,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기차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엄마에게 “버려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당신’(‘멍게 뒷맛’)은, 그런 점에서는 모두 닮은 존재들이다. 이 세 작품에 비해 어머니의 비중이 미미하게 그려진 ‘월경’에서조차, 주인공 ‘나’는 어머니의 화사한 보석함에, 손톱 자른 것, 빠진 머리카락, 상처에서 떼어낸 딱정이와 같이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을 모아둠으로써, 뿌리깊은 분리 불안을 드러낸다. 이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어린시절, 주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대상-타자에게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되, 필연적으로 그 애착이 거부(혹은 금지)됨을 경험한다. 가령,‘모퉁이’에서 그것은 금지의 양상(“엄마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젖무덤을 헤치는 내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는 엄마의 매정한 손이 야속했다. 엄마는 내게 동생이 생길 거라고 했다. 동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되우 맞은 사람처럼 휘청거렸다(2:109)”)으로,‘바늘’에서 그것은 거부의 양상(“엄마가 내민 보자기에는 꽤 많은 돈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스님의 옷을 들고 집을 나섰다.‘나는 그곳으로 가야겠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이었다.(1:24)”)으로 전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금지/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욕망은 부인된 형태로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뒤 그녀의 뼛가루를 생전의 할머니가 명랑가루 먹듯 맛보는 손녀가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2:37)”고 고백하는 것(‘명랑’)처럼, 상실이 일어났을 때 상실을 부인하고 상실된 대상의 속성을 취하여 이를 내면화하는 것이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생존전략이라고 한다면,‘바늘’과 ‘월경’의 ‘나’는 바로 그 길을 간다. ‘바늘’과 ‘월경’은 각각 그로테스크한 인물 묘사와 도착적인 섹슈얼리티로 인해 발표된 직후부터 유독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온 작품들이다. 이 글의 관점에서 역시, 두 작품은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두 소설을 집중적으로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 단서들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먼저 두 소설 모두 여성 화자들이 이미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임에도 여전히 아동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공히 인물이 비성적인 단계―통상적인 의미로―에서 성적인 단계로 이행하는 순간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 인물들은 각각 어머니(‘바늘’) 혹은 아버지(‘월경’)와의 이별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대성(性)의 부모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단서들로, 이로부터 우리는 천운영 소설에 나타나는 도저한 공격성(/도착성)의, 이면(/연원)을 다시금 집약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바늘’과 ‘월경’에서는 여성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한 쪽 부모의 상실이 그녀들의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바늘’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삽화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의 세 장면은 특히 문제적이다;(1)먼저, 죽어가는 새끼고양이.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절에서 살던 시절 ‘나’는 “어미고양이의 날카로운 울부짖음(1:20)”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새끼고양이를 변기통에 버리고는 그 변기통 속으로 고양이가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2)다음으로, 전쟁기념관에서의 상상. 전쟁기념관에서 ‘나’는 전시된 무기들을 하나씩 꺼내 스님을 공격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보지만 스님의 심장이 관통당하고 내장이 갈가리 찢기고 발에서 피가 솟구쳐도, 그녀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좀더 강인하면서 잔인한”“엄마가 할 수 있는 그런 방법(1:21)”이 아니었기 때문에.(3)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자살 소식 직후 행해지는 육식. 형사로부터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의연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으며, 바위에 찢긴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나’의 머릿속엔 “여자의 하얀 알몸만 떠오를(1:31)” 뿐이다;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들이 무대화되고 있는 이 세 장면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나’의 공격적인 행위의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첫 번째 장면에 대한 질문 하나. 어미고양이에게서 떨어져 나와 변기통 속으로 빠져 들어간 새끼고양이는 마찬가지로 버려진 ‘새끼’인 ‘나’의 분신과 다름 없을 터. 그렇다면 이 장면은 ‘나’에게 지극한 고통을 유발했을 것임에도 왜 ‘나’는 이를 스스로 자행하며 게다가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일까? 마조히스틱한 쾌감 때문에?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상실이 곧 결핍을 부른다는 오래된 통념은,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 앞에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아가 포기된 대상의 심리적 저장고이며 상실된 대상은 구성적 동일시의 하나로 자아 안에 거주하면서 자아와 함께 출몰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프로이트가 ‘자아와 이드’에서 기술한 바 있으며, 버틀러는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대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위상을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으로 전이하는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J 버틀러, 앞의 글). 즉, 상실에 대처하는 멜랑콜리적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상실 자체를 무화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나’가 새끼고양이를 변기통 속에 버릴 수 있었던 까닭으로 이미 그녀의 자아 안에, 거부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멜랑콜리적 동일시를 통해 그 자아의 일부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는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숨쉰다! ‘나’의 행위에서 ‘나’의 위치와 어머니의 위치가 이중적으로 얽혀있는 것은 이러한 내면화의 결정적인 증거다. 버려짐과 버림을 동시에 구현하는 새끼고양이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스님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상상이나, 자살 소식 직후의 육식 또한 마찬가지의 메커니즘 아래에서 작동한다. 스님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어머니를 빼앗아간 존재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가 있지만, 그 방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던 방법 혹은 어머니가 스님을 살해했던 바로 그 방법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나’는 그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가 없다.‘나’가 공격으로부터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내부에서 그녀와 함께 공존하는 어머니의 시선 바로 그것을 체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키면서 찢겨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녀로부터 우리는, 어머니가 여전히 ‘나’에게는 알몸의 여자로 현현하는 에로틱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유추함과 동시에,“상실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각내고 분해하고 자르고 삼키고 소화하고”자 하는 곧, 대상을 먹음으로써 그 대상을 제 안에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식인 행위의 환상(J 크리스테바,‘검은 태양’)의 한 풍경과 마주하기에 이른다. 정신이 아득해져온다. 가슴 한쪽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온다.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했던 것처럼 팔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다. 누구를 향해 팔을 휘둘렀는지 모른다. 푸른 모자가 튀어오른 것 같기도 하고 계집의 찢어지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1:83) ‘바늘’에서와 같이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에도 여전히 아동으로 남겨진 듯한 여성 주인공은 ‘월경’의 ‘나’로 재등장한다.‘월경’의 ‘나’는 스무살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월경(越境)하지 못한 채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나’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 자라기를 멈추었다(1:62).” 이 소설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그 경계를 넘어서는 한 순간에 있다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되는 바다. 그런데 ‘바늘’과 마찬가지로 한쪽 부모의 상실을 초점화하고 있는 이 소설을 전작 옆에 나란히 놓고 따져볼 때 새롭게 부각되는 측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 상실이 ‘나’의 젠더 정체성 형성에 개입됨으로써 ‘나’의 젠더 정체성을 매우 불안정하게 구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경’에서는, 천운영 소설에서는 이례적으로, 어머니의 떠남이 아니라 아버지의 떠남이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나’가 떠나버린 아버지를 하나의 이성으로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 또한 수차례 등장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칭하지 않고 ‘그’라고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상을 강화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일렉트라 콤플렉스의 천운영식 판본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울 듯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에게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과 그 욕망의 금지가 여아에게 여성성을 최종적으로 선사하는 것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 ‘나’의 젠더 정체성은 오히려 남성의 그것에 가깝게 드러나고 있어 차별적이다. 즉,“가슴도 가슴이지만 계집의 엉덩이는 정말 탐스럽다. 표주박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듯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툭 불거지는 모습이 여간 아니다(1:70)”라는 구절을 비롯한 소설의 여러 대목에서 나타나듯이 ‘나’는 “은하수 계집”을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욕망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여러 평자들로 하여금 ‘월경’을 도착적 섹슈얼리티가 전경화된 소설로 주목하게 한 주요한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함께 트럭 짐칸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았고, 별들은 작은 이슬방울이 되어 우리의 배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1:63)”에서와 같이 지극히 감상적으로 또 지극히 여성적인 시선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억하고 또 애타게 그리는 ‘나’가 어떻게 동시에 “은하수 계집”을, 그것도 저러한 시선으로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불균형은 작가가 도발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몰두한 나머지 그 일관성은 신중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함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상실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내면화하고자 했던, 그럼으로써 상실로 인한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무화하고자 했던 ‘바늘’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월경’의 ‘나’ 역시 상실한 아버지를 그러한 방식으로 제 속에 부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즉, 그녀의 자아 안에, 상실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그 자아의 일부로서 공존하고 있다고 말이다.“은하수 계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에 대한 한 근거가 됨은 물론이거니와,‘나‘가 “은하수 계집”을 여러모로 ‘그녀(어머니)’와 견주어 보면서 ‘그녀(어머니)’의 분신처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위치하는 사건 곧,“은하수 계집”과 “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정사장면을 ‘나’가 목격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그 사건에서,‘나’가 ‘그(아버지)’의 위치를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과거의 ‘그(아버지)’―‘그녀(어머니)’―“낯선 남자”의 구도를, 현재의 ‘나’―“은하수 계집”―“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구도로 전이시키고 있다는 점은 그 결정적인 증거로 제출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요컨대 ‘월경’에서 ‘나’는 아버지를 욕망하는 데서, 아버지의 욕망을 그리고 아버지가 욕망할 것이라 추정되는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나’의 젠더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의 시발점에 현실에서의 상실을 절대로 수락할 수 없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내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읽는 이를 순식간에 포박하는 천운영 특유의 자질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상실과 박탈의 어두운 그림자……, 누군가는 사라지고 그 사라짐이 가족 내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저토록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리하여 이 작가에게 가족은 천운영식으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같은 유령의 집(‘유령의 집’)” 즉,‘아가리(구강기)’적 욕구에 충실한 “괴물”스러운 인물들이 집 안을 떠도는 “유령”의 “어두운” 그림자와 씨름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핏줄”과 얽혀진 인간 욕망의 가장 원초적인 그래서, 들여다보고 싶으면서도 그러기에는 두려운 “하수도” 속 같은 “어둠”이야말로 이 작가의 해부 대상인 것이다. 이어지는 ‘유령의 집’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보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이면에 삶은 존재하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해보세요. 그건 때때로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겁니다.” 천운영이 꾸며놓은 유령의 집을 방문한 독자에게 이 보다 더 친절한 안내가 또 있을까. 천운영은 이렇게 근본적인 상실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그것도 가족 내부에서 끈질기게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 문단에서는 매우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배수아, 백민석 같은 바로 앞선 연배의 작가는 물론이고, 비슷한 연배이며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정이현이나 김윤영에 견주어 보아도 이는 이 작가 특유의 자질이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에서처럼 특히나 천운영은 가족 안에서의 상실을 한 인간을 배태해내는 결정적인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전환을 맞을 때가 온 것은 아닐까.‘늑대가 왔다’나 ‘그림자 상자’와 같은 비교적 근작들에서는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파괴적 욕구가 분출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가족이 부여한 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은 아직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고 결국에는 처참한 결말을 맞지만 말이다. 앞으로 이 작가에게 “배꼽을 버리고자 하는(‘그림자 상자’)” 욕구가 앞설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에 더 깊숙이 천착할 것인지, 우리는 이 작가를 계속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 ■ 당선 소감 하루 평균 서른 통 정도의 전화를 받고 또 그만큼의 전화를 하며 두 해를 보냈다. 맞춤법을 묻는 전화부터 부고를 알리는 전화까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며 또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호소에 응답하는,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마음껏 공부할 수 없어 애태우던 나날들이었지만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기에 당선은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응모한 글에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공이 아니라 주위 여러분들의 은덕이다. 국문과 은사님들과 조남현 지도 교수님,202호와 326호에서 동고동락했던 선후배 동료들, 이 분들께 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결점이 많은 글을 너그러이 감싸주신 김윤식 선생님과 정과리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결같이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언니, 동생, 오랜 벗들에게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하건대,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그것도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쓸쓸하다. 그러나 약속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세상을 향한 내 새로운 수화기를 함부로 놓지 않겠노라고. 그것이 지금 주어진 이 지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인 것 같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약력 ▲1976년 대구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이번에도 평론의 기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이론에 대한 지식을 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설익은 개념들이 횡행하면서 작품을 파괴하거나, 작품과 겉도는 독무를 추는 글이 적지 않았다. 이론이 문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배울수록 좋다. 그러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니 작품 분석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네 편이다. 김수영의 시를 다룬 정경은의 ‘생활의 뒤란, 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김수영의 시를 장식해가면서 시의 변주를 다룬 재미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김수영 시의 이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장욱과 김행숙의 시를 다룬 송승환의 ‘청동 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은 동일성의 부정이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 새로운 시의 존재 가능성을 탐색한 글이다. 꼼꼼한 분석이 돋보이고 설득력도 있었다. 오랫동안 시를 써본 사람이라는 짐작이 간다. 다만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한 게 흠이었다. 최윤의 세 장편을 분석한 허병식의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은 ‘기원의 부재’라는 현대 이론의 신화에 깊이 침윤된 글이다. 그래서 마치 소설이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씌어진 것처럼 읽었다. 그것이 약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주체의 귀환이라는 명제를 끌어낸 것은 글쓴이만의 독창적 사유의 결과이다. 전체적으로는 대상 작품에 들어맞았지만 세목들에서는 무리한 적용이 많았다. 천운영의 소설 세계를 해부한 차미령의 ‘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은 ‘등뼈’ 이미지를 천운영 소설의 핵심 징조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소설의 무의식의 ‘작업’과 변주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파고든 글이다. 분석과 해석이 요령을 얻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기존의 상식적인 해석을 뛰어넘으려는 패기가 돋보였다. 마무리를 서둘러 처리했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글 전체가 보여준 가능성은 그런 약점을 무시해도 좋게 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김윤식·정과리
  • [NBA] 마이애미, 파죽의 14연승

    미국프로농구(NBA) 최강의 원투펀치 샤킬 오닐-드웨인 웨이드가 선봉에 선 마이애미 히트가 루키 에메카 오카포가 분전한 ‘신생팀’ 샬럿 밥캐츠에 한 수 지도를 했다. ‘동부의 지존’ 마이애미는 2일 아메리칸에어라인 아레나에서 열린 04∼05시즌 샬럿과의 첫 대결에서 웨이드(26점 9어시스트)를 비롯한 7명이 두 자릿수 득점을 쏟아붓는 폭발적인 화력으로 113-90의 완승을 거두며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인 14연승을 기록했다. 샬럿의 ‘괴물루키’ 오카포(23)는 17득점 10리바운드를 올려 루키 더블더블 연속경기 기록을 ‘19’로 늘렸지만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NBA 닷컴에서 실시중인 ‘최고의 원투펀치는 누구냐.’라는 설문조사에서 2일 현재 68%의 지지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오닐(16점)-웨이드 콤비를 중심에 두고 에디 존스(13점·3점슛 3개)-데이먼 존스(12점·3점슛 4개)-유도니스 하슬렘(11점 9리바운드)으로 물샐 틈 없이 이어지는 마이애미의 조직력은 샬럿에 한차례의 역전도 허용하지 않고 승리를 엮어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범죄로 본 2004 서울] 동기없는 ‘묻지마 범행’… 괴담만 떠돌아

    [범죄로 본 2004 서울] 동기없는 ‘묻지마 범행’… 괴담만 떠돌아

    2004년은 어느 해보다도 범죄피해에 대한 불안이 컸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사건을 비롯, 서울 각지에서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는 부녀자 피살 및 피습사건이 잇따랐다.‘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괴담까지 떠돌았지만, 경찰은 용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고 있다. 서울신문은 범죄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올 한 해 서울에서 일어난 살인 및 피습사건을 분석했다. 구로·관악·동작·강서구 등에서 잇따른 7건의 ‘서남부 연쇄살인’은 동일범에 의한 연쇄범행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양동의 20대 여성 살인사건과 용답동 모녀 살인사건은 ‘비오는 목요일’에 일어나 연쇄살인 괴담을 증폭시키는데 한몫했지만, 수사 결과 내연관계에 의한 치정살인으로 드러났다. 지난 5월 대림동 중국동포 살인사건 역시 평소 피해자와 금전 문제로 갈등관계에 있던 탈북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다. ●’비오는 목요일’은 없다 우연히 사건발생 요일과 날씨가 같았을 뿐 범행도구도 일치하지 않았다. 신림4동 여고생 피습사건에서는 10㎝ 정도, 신대방동 보라매 공원 여대생 살인사건에서는 18∼20㎝ 길이의 흉기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은 일치하지만 연령은 1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연쇄살인범은 비슷한 범행대상을 고르고, 도구에 집착하는 성향도 짙다. 유영철 역시 20대 전화방 도우미와 출장마사지사를 주로 범행대상으로 골랐다. 형사정책연구원 최인섭 범죄동향연구실장은 “올해같은 ‘살인 괴담’이 등장한 것은 화성 연쇄살인사건 이후 처음”이라면서 “살인사건이 연속적으로 근접한 지역에서 일어나고, 일부 언론이 이를 과대포장하면서 막연한 공포심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경기불황으로 어려워진 시기에 강력사건까지 잇따라 공포로 시민들의 삶은 더욱 움츠러들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올해 강력범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무(無)동기 범행’을 꼽았다. 범행동기나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범인추적 단서가 없다 신대방동 보라매공원 여대생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사망 직전 “모르는 사람이 찔렀다.”는 말을 남겼다. 지난 8월 미아4동과 9동에서 10분 간격으로 일어난 심야 부녀자 피습 사건의 피해자들 역시 “갑자기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찔렀다.”고 진술했다. 고척2동 여대생 살인사건은 범인이 피해자의 집 현관 앞에서 기다렸고, 피해품이 없는 것으로 미뤄 원한에 의한 면식범 소행으로 추정했으나 주변인 수사는 성과가 없었다. 대부분 피해자를 흉기로 난자했다. 잔인한 범죄는 원한이 개입된 것이라는 상식도 뒤엎었다. 경기대 이윤호 행정대학원장은 “잇따르는 무동기 범죄는 금품을 목적으로 하는 생계형 등 ‘도구형 범죄’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한 불만 등을 분출하는 ‘표출형 범죄’의 전형”이라고 분석했다.30년 경력의 한 형사는 “용의자가 주변인을 벗어나면 동종전과자에서 사회불만자, 여성혐오자까지 수사대상이 거의 무한대로 넓어진다.”면서 “범행동기조차 뚜렷하지 않아 범인 검거는 더욱 힘들다.”고 털어놨다. 대낮에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상가에서 흉기를 휘두르고, 범행현장에 불을 지르는 등 범죄의 흉포화·지능화 성향도 짙었다. 지난 8일 오후 1시쯤 석촌동 상가에서 발생한 연쇄피살 사건은 피해자가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비디오방 안에 손님이 있는데도 성인남성 2명을 여러 차례 흉기로 찌른 뒤 유유히 사라지는 대담함으로 시민들을 경악케 했다. ●흉포화 끝이 없다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았지만 성추행이나 성폭행 시도가 거의 없었던 것도 특징적이다. 정액이나 체모 등 증거가 남을까봐 일체의 성접촉을 하지 않았다는 것. 고척2동과 보라매공원 살인사건 등을 비롯, 지난 5월 용산 원효로에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된 20대 여성에게도 성폭행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모방범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16일 서대문구 홍제동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50대 여성은 머리에 둔기로 수차례 맞아 함몰된 상처가 있었다. 지난 19일 광진구 중곡동에서 50대 건물주를 살해한 세입자 역시 둔기로 피해자의 머리를 수차례 때렸다. 모두 유영철 사건에서 수법을 착안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10월 금천구 독산4동에서는 40대 중국동포 여성의 토막난 시체가 여행가방에 든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독재정치나 경제적 궁핍 등 국민을 위협하는 대형이슈가 사라지면서 개인의 범죄피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최근 범죄는 현장에서 과학적인 증거를 잡지 않는 이상 용의자를 특정하기조차 힘들다.”면서 “웰빙 등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는 ‘괴물’의 존재는 새로운 위협적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wisepen@seoul.co.kr ■ 수난의 공권력-올 25명 순직… 공격받는 경찰 2004년에는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이 목숨을 잃는 사례가 유난히 많았다. 흉기에 찔리거나 총상을 입는 등 공무를 수행하다 부상을 입은 경찰관도 급증했다. 올 한해 순직한 경찰관은 모두 25명이다. 이 가운데 범인에게 피격을 받아 숨진 경찰관은 이학만 사건에서 순직한 2명을 포함, 모두 3명이다. 지난 2003년과 2002년 순직자는 각각 27명,39명으로 올해보다 많았으나, 범인에게 피격된 사망자는 2003년 1명,2002년에는 한명도 없었다. 그만큼 경찰관이 목숨을 위협받는 강력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지난 8월 부녀자 폭행피의자 이학만을 검거하려다 경찰관 2명이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은 경찰이 사건현장에서 처해 있는 위험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상대는 흉기상해까지 저지른 전과 10범이었지만, 두 경찰관은 맨손으로 이에 맞서다 변을 당했다. 지난달에는 대구에서 경찰관이 수십차례에 걸쳐 절도와 방화를 저지른 모자 일당을 검거하려다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이 경찰관은 중상을 입고서도 범인들을 추격, 휴대전화로 지구대에 연락한 뒤에야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공무를 수행하다 다치는 경찰관도 크게 늘었다. 올해 1088명으로 지난해 896명보다 21.4%나 급증했다.2002년에는 803명이었다. 이처럼 범인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경찰관이 잇따르자 경찰의 총기사용규정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제한이 많아 실질적으로 범인 제압에 총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힘들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9월 경찰이 총격전 끝에 날치기범들을 검거한 것은 총기사용의 선례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장에 출동한 영등포경찰서 박현수(45) 경위는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실탄을 발사,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범인을 검거했다. 함께 출동한 고남귀(30) 경장 역시 허벅지와 엉덩이에 총상을 입고도 2인조 일당 검거에 일조했다. 지난달에도 서울 서부경찰서 한재군(29) 경장이 강도강간 피의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흉기에 찔려 부상을 입었으나,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이 실탄을 발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 범인을 제압했다. 서울경찰청 송좌균 강력실장은 “갈수록 범죄가 흉포화하고 있어 경찰관도 언제 어디서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면서 “총기 사용 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규정을 좀 더 완화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범죄로 인생역전” 한탕주의 기승 올해는 부유층을 노린 범죄가 어느 때보다 만연했다. 경기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로또복권처럼 ‘한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범행이 잇따라 불황을 힘겹게 헤쳐가는 서민의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지난 1월30일에는 재력가 집안 여성이 자주 드나드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강남구 청담동의 최고급 옷가게 앞에서 가게 주인(72·여)이 떼강도 일당 5명에게 폭행을 당하고 납치된 뒤 현금 1500만원을 뜯겼다.9월에는 용산구 후암동 모 이동통신회사 전 사장(51) 집 앞에서 부인(51)과 처이모(60)가 금품을 노리던 성모(34)씨에게 흉기로 찔려 처이모가 숨지고 부인이 중상을 입었다. 특히 11월에는 일당 5명이 중소기업 회장(77)과 일가족 3명을 납치한 뒤 대낮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버젓이 현금 5억원을 건네받아 사라진 초유의 사건이 발생, 온 국민을 경악케 했다. 범인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한탕’이라는 카페에서 만나 범행을 꾸민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하지만 한탕을 노린 범죄들은 결국 성공에 이르지 못했다. 한탕 범죄를 위해 모인 집단은 대부분 돈을 보고 모인 범인들이라 조직력이 허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소 수억원 이상을 노렸던 청담동 옷가게 주인 사건의 범인들은 현장에서 챙겼던 1500만원이 의외로 적어 밖에서 지휘하던 공범들의 의심을 살까봐 일부러 돈을 가져가지 않기도 했다. 중소기업 회장 일가 납치사건을 수사한 남대문서 송용욱 수사과장은 “한탕을 노리고 다수가 가담하는 범죄는 결국 허점이 남을 수밖에 없다.”면서 “순간적인 허영심으로 한탕을 노린 결과는 결국 초라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동남아 대지진] 인도양 ‘쓰나미’ 경보시스템 전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주변에서 26일 발생한 이번 ‘아체 지진’의 피해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것은 경보체제 미비 등 무방비 상태에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동·서남 아시아의 연해지역에 지진 후 유례없이 강력한 해일이 밀려들었지만 아무 경보도 발동되지 않았다. 스리랑카, 인도 연해지역 등에 지진 해일이 밀려든 것은 해저 지진 발생 후 2∼3시간 뒤. 지진 발생에 따른 지진 해일인 ‘쓰나미’(Tsunami)의 발생에 대한 경보체계가 갖춰져 있었다면 수천명 가량의 피해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에 따르면 당시 ‘쓰나미’는 제트 여객기와 비슷한 평균시속 700~800㎞의 속도로 인도양 연안을 헤집고 다녔다는 것이다. 인도양 지역에선 1883년 발생한 지진 해일을 끝으로 지난 100여년 동안 피해가 없었다. 지진 발생에 따른 해일경보체계가 없는 것은 물론 지진 해일에 대한 지식도 전무한 상황이었다. 미 남가주대학 코스타스 니놀라키스 교수는 “갑작스러운 썰물 발생은 해일 발생을 의미한다.”면서 “‘쓰나미’의 성격을 알면 해일이 덮치기까지 10분 남짓한 여유 시간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1960년 칠레 대지진으로 ‘쓰나미’의 혹독한 피해를 입었던 태평양지역 국가들은 비교적 진원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몰려오는 ‘쓰나미’에 대한 경보체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알류샨 열도, 남미 앞바다 해저에 ‘쓰나미’ 감지장치가 설치돼 있다. 또 하와이의 ‘태평양 쓰나미 경보센터’가 각국에 경보를 발령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쓰나미’ 피해가 연말 휴가시즌의 황금휴일에 발생한 것도 피해를 키웠던 이유 중 하나다. 당시 관광객들은 휴가철을 맞아 평소보다 해변지역에 많이 몰려 있었고, 해당국의 재해 관련 당국들도 느슨한 자세에서 지진과 해일 재앙을 맞았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났던 인도 안드라 프라데시에선 26일 보름달을 맞아 물 속에서 종교의식을 벌이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이 그 강도만큼 전파 속도가 빠르고 파장과 지속시간이 길어져 피해가 더 컸다.”고 분석했다. 조용식 한양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지진의 영향으로 발생한 해일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 수심이 얕아지면 파고가 더 높아져 해안가에서는 거대한 물기둥이 마을을 덮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해일이 해안으로 다가서면서 속도는 수십㎞로 줄었지만, 고층건물 높이의 괴물로 변신하면서 육지를 강타했다는 것이다. 이석우 홍희경기자 swlee@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조정래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

    [문학이 머문 풍경]조정래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

    “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그믐달이 동녘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작가 조정래가 발표한 소설 ‘태백산맥’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림자들은 무덤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막한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현실 투쟁에 패배한 하대치 일행이 ‘야산대장’ 염상진의 묘에 성묘한 뒷 상황을 이같이 설명하며 소설은 끝난다. 토벌대에 쫓긴 이들 패잔병은 끝없이 펼쳐진 적막과 어둠속으로 빨려든다. 그 어둠 건너편엔 초롱초롱한 별들이 가을밤 산골짜기를 비추고 있다. 별들은 야산투쟁에서 숨진 대원들의 넋이다. 이 별들은 희망이고 언젠가 완수해야 할 ‘혁명’의 불길이다. “마지막 남은 이들 대원이 사라져가는 곳은 어딘가.”라는 물음을 남긴 채 전체 1만 7000장 분량의 원고지가 대단원을 장식하는 대목이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당시만 해도 금기시됐던 ‘빨치산’과 ‘남로당’의 실체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일대 ‘사건’이었다. 좌우 대립과 전쟁과정에서 탄생한 ‘야산 대원들’을 역사의 한 축으로 부각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일제 말기∼해방∼여순사건∼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격랑을 대서사시처럼 엮어낸다. 역사의 베틀은 남해안의 한 포구인 벌교에서부터 조계산, 지리산, 태백산, 거제포로수용소 등으로 무대를 옮겨가며 한올 한올 짜여진다. 그 중심인 지리산의 골짜기와 능선들은 단순히 지형지물만이 아니다. 그 자체가 역사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이 이데올로기란 ‘괴물’과 버무려져 있는 공간이다. 작가는 그들에게 염상진·김범우·염상구·하대치·최익승·심재모·소화·외서댁·들몰댁… 등의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이들은 한많은 시대를 살아간 우리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죽임과 죽음, 보복의 악순환으로 내몬 원인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는 ‘땅’에서 비롯된 점을 부각시켰다. 종문서는 불살라졌으나 당장 부쳐먹을 자갈논 한뙈기 없는 민초들은 일제와 손잡은 지주의 소작농으로 전락한다. 이들에겐 ‘내땅’을 가져 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다.“지주들의 땅을 빼앗아 나눠 준다는데 누가 싫어할 사람 있겠느냐.”는 한 소작인의 말처럼 ‘땅=생명’이었다. 소설 태백산맥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의 캐릭터나 지명 이름이 현실과 똑같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 소설에 묘사된 지명은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작가는 “역사의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 현장답사를 되풀이하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고 밝힌다. 소설 현장인 벌교읍은 실제로 여순반란사건때 좌우익 대립이 심각했고 억울한 죽임과 보복성 살해가 난무했었다. 주민 나모(72)씨는 “어렸을 때 읍내 북국교 등지에서 빨치산과 토벌대가 번갈아 인민재판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시체가 중도방죽 제방에 널려 있었다.”고 말했다. 지리적으로도 제석산과 진광산 등이 포구를 감싸안으며 북쪽으론 조계산과 맞닿아 있다. 섬진강을 사이로 조계산과 지리산이 태백산맥을 따라 금강산까지 이어진다. 광주에서 주암호를 따라 낙안읍성 쪽으로 가다 보면 순천시 외서면과 벌교읍을 가르는 석거리재가 나타난다. 이 고개에서 우측으론 염상진 부대가 한때 해방구로 삼았던 보성군 율어면이다. 선수머리∼벌교읍 사이엔 제법 넓은 농토(중도방죽)가 펼쳐진다. 중도방죽은 실제로 일본인 중도(中島·나카시마)가 땅에 주린 소작농을 꼬드겨 둑을 쌓아 만든 간척지이다. 중도 들판은 소설 속에서 그릇된 토지 소유관계의 역사를 집약한 중심 소재이다. 중도방죽 이외에도 읍내 곳곳에는 소설의 무대들이 작품속에서 묘사된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봉화가 타오른 제석산, 순천 쪽으로 이어진 관문인 진트재(국도 2호선), 하대치 일행이 군용열차를 털었던 경전선 터널, 새끼 무당 소화와 정하섭의 사랑이 깃든 무당집, 현부잣집 재각, 양철지붕의 청년단 건물, 염상진의 목이 내걸렸던 벌교역 광장, 보복으로 점철된 죽임의 현장인 홍교, 양심적 지주 김사용의 퇴락한 기와집, 땅벌과 염상구가 주도권을 다퉜던 철교, 토벌대 사령부로 사용됐던 남도여관, 금융조합 건물 등등…. 요즘 이곳엔 일주일이면 200∼300명의 답사객이 몰린다. 그러나 작품에서 묘사된 지명을 알리는 간판 하나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아직도 ‘빨갱이’와 ‘토벌대 후손’ 주민들 사이에 앙금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나 보다. 일부 원로 주민들은 소설속의 장소들을 ‘기념화’하는 사업에 떨떠름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백산맥 문학관을 짓는데도 의견이 분분했다고 전한다. 보성군은 그러나 내년쯤 제석산 자락인 현부자집 아래에 문학관을 착공키로 했다. 지난해부터는 문화해설사를 배치해 답사객들을 돕고 있다. 또 내년 봄 중도방죽 2.4㎞구간에서 가족 걷기대회를 열고 이때 작가 조정래씨를 초청해 ‘문학강좌’도 마련한다. 선수머리 입구엔 갯벌 체험장을 조성, 녹차밭 등과 연계한 관광상품 개발에 나선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좌익도 우익도, 지주도 소작농도 없다. 소설속의 전투와 살벌함을 느낄 만한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농어가가 산재한 조용한 포구마을을 둘러싼 산자락에 어둠이 내린다. 들물때가 됐는지 홍교 밑 갈대 숲에 바닷물이 흘러든다. 보성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좋은도시 만들기] (5)미국의 도시개발

    [좋은도시 만들기] (5)미국의 도시개발

    외국은 오래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도시를 개발해왔다. 개발의 원칙도 잘 지켜지고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노하우도 앞서 있다.2부에서는 외국의 선진 사례를 통해 우리 도시와 주택의 오늘을 조명해본다. 미국의 경우 도시개발은 민간 사업자 주도로 이뤄지지만, 정부와 주민이 방관하지는 않는다. 정부와 주민은 난개발을 막고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안전판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국토계획을 세우지만 허술해서 난개발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미국에는 거의 없다. 재건축·재개발조합 주민들이 재산증식에만 관심이 있지 지역사회 문제를 등한시하는 한국 풍토와 대조적이다. ●공공부문이 개발 전과정 지속 관리 뉴욕 맨해튼 남단의 낡은 부두시설을 없애고 12만 2000평의 ‘배터리파크시티’(Battery Park City)라는 최첨단 주상복합단지를 꾸미는 데는 뉴욕시와 이곳을 종합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BPCA(배터리파크시티공사)가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이곳은 아직도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BPCA 레티샤 레모로 부사장은 “뉴욕시는 합리적이지만 강력한 규제를 마련하고,BPCA는 이를 근거로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에 개발업자와 건축가에 의한 예측가능한 개발이 가능했다.”면서 “1969년에 확정된 종합개발계획을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적용할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개발계획에는 심지어 건물 출입구의 위치까지 포함, 단지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했다. 또 뉴욕시로부터 2069년까지 토지를 장기임대한 BPCA는 상업·주거용지의 경우 개발업자에게 재임대했지만, 공원과 도로 등 공공용지(전체의 49%)에 대해서는 개발권을 틀어쥐고 난개발 가능성을 차단했다. 제임스 사바너 운영국장은 “개발업자들은 이곳에서 얻은 이윤에 대한 세금을 BPCA에 납부하고,BPCA는 재정계획을 세워 세금을 재투자하는 ‘작은 정부’로서 기능한다.”면서 “앞으로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사후관리가 이뤄지도록 (BPCA의) 역할을 재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즉 공공부문이 개발계획에서 공공환경 개발, 재정집행,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지원을 맡는 셈이다. 이같은 방식은 보스턴 ‘찰스타운 네이비야드’ 재개발에도 적용됐다. 공공환경의 질 향상에 초점을 둔 보스턴재개발공사(BRA)에 의해 지난 1974년 미해군조선소가 이전한 뒤 버려진 땅에 불과했던 12만 8700평이 최고급 주거단지로 탈바꿈했다. ●주민들 반대보다 대안제시 지역주민들의 자치기구인 ‘커뮤니티 보드’(Community Board)나 시민단체가 재개발에서 맡은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재미건축가 박건석씨는 “한국에서는 개발이익이 지주와 대행업자(건설업체)에 집중되고, 사회적 비용은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전가되는 구조”라면서 “미국에서는 커뮤니티보드와 시민단체가 개발업자에게 집중될 이익을 주민들에게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 사례가 빈민가였던 뉴욕 70번가 일대를 재개발한 ‘더 트럼프 플레이스’(The Trump Place). 빈민들이 쫓겨날 것을 우려한 이 지역 커뮤니티보드는 개발에 반대했고, 결국 시민단체가 중재에 나서 트럼프의 개발 동의를 전제로 허드슨강 유역정비사업을 추진토록 했다. 이같은 합의를 바탕으로 뉴욕시는 1992년 사업을 허가했으며 1998년부터 21∼55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 7개동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물론 트럼프는 허드슨강변을 말끔히 정비,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돌려줬다. ●업체·주민 환경개선비용 분담 박씨는 “정부는 커뮤니티보드의 역할을 존중하고 개발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면서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커뮤니티보드는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구심점”이라고 말했다. 뉴욕의 대표적 범죄지역이던 타임스퀘어 인근 42번가 도심재개발도 지역주민인 상인들이 환경개선비용을 분담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이뤄졌다. 특히 포르노상영관 등 150여곳의 성인전용시설을 없애는 데는 1995년 개관한 청소년용 뉴빅토리극장이 촉매제가 됐다. 여기에는 지역시민단체와 재개발계획을 세운 건축가, 극장 소유주인 디즈니사 등의 협력이 뒷받침됐다. 뉴욕·보스턴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특별취재팀 ●북유럽팀 이상일 논설위원(특별취재팀장), 김세용 건국대 교수 ●서유럽팀 이동구 기자, 이정형 중앙대 교수 ●미 국 팀 장세훈 기자, 김도년 성균관대 교수 ■ 보스턴 중앙간선도로·터널사업 “대형 공공투자사업이 장기간 추진되면 노동자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깊이 파는 공사라고 해서 ‘빅딕’(The Big Dig)으로 불리는 미국 보스턴 중앙간선도로·터널 건설사업은 구상에서 완료까지 35년이 걸리는 대규모 도시재개발사업이다. 사업을 담당하는 MTA(매사추세츠 유료도로공사·Massachusetts Turnpike Authority) 덕 핸체트 홍보책임자는 장기간 이뤄지는 공공투자의 효과로 이같은 점을 주저없이 꼽았다. 핸체트는 “공사기간이 당초 계획보다 연장되면서 처음 책정됐던 공사비의 6배에 달하는 146억 2500만달러(16조원)가 투입됐다.”면서 “하지만 하루 평균 3000여명의 일자리를 만드는 지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강조했다. 보스턴시 인구가 57만명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업자를 5∼10%가량 줄일 수 있는 적지않은 숫자다. 또 일용직 노동자들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 공사 근로자 매튜 딘디오는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덜면서 이곳 노동자들끼리 독자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등 지역사회와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면서 “공사계획을 탄력적으로 수정, 적용할 수 있는 점은 부수적인 효과”라고 설명했다. 빅딕사업의 핵심은 보스턴 시내 중심부를 관통하는 고가도로 2.5km 구간을 철거하는 대신 용량이 더 큰 지하터널을 뚫어 교통량을 흡수한다는 데 있다. 또 고가도로 철거로 생긴 260에이커(32만여평)에 이르는 지상공간에는 공원과 녹지를 조성하게 된다. 지난 71년 처음으로 논의를 시작해 84년부터 설계에 들어간 뒤 91년 공사에 착수, 지난해 1월 터널이 개통됐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상공간에 대한 공사는 오는 2006년 말쯤 마무리될 예정이지만, 이마저도 확정적이지 않다. 핸체트는 “59년 개통 당시 ‘하늘의 고속도로’(The Highway In The Sky)로 불리던 고가도로가 10여년만에 상습정체구역으로 바뀌고 주변지역이 슬럼화되면서 ‘녹색 괴물’(Green Monster)이라 일컬어졌다.”면서 “얼마나 빨리 마치느냐의 시각으로 사업의 효율성을 따지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청계천 복원사업과 유형은 비슷하지만, 사업기간 등 접근방식에서는 사뭇 차이가 있다. 뉴욕·보스턴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개발권양도제’ 허와 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유명한 ‘티파니’는 화려하지만 불과 5층짜리 건물이다.1837년 잡화점에서 시작, 세계 최고의 보석점으로 거듭난 티파니는 뉴욕 맨해튼 5번가와 49번가가 만나는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다. 만일 티파니의 사장이 부지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면 그 자리에 인근의 트럼프타워(68층)와 비슷한 초고층 건물을 짓는게 낫다. 그러면 오래된 티파니 건물은 망가질 것이다. 땅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개발 압력과 역사적 건물을 보전하려는 상충되는 두 요구를 수용할 방법은 없을까. 그 묘수가 바로 TDR(개발권양도제,Transferable Development Rights)이다.1970년대 미국에 도입된 TDR는 토지 소유권과 개발권을 분리하는 것이다. 예컨대 티파니의 땅주인은 5층 이상으로 건물을 올릴 수 있는 개발권한을 부여받지만 행사하지 않고 건물을 그대로 보전한다. 그 대신 개발권을 티파니 옆쪽 땅에 팔아 부동산 개발이익을 얻는다. 이처럼 TDR는 역사적 건물이나 자연환경 보전에 도움이 되지만 간혹 악용되기도 한다. 뉴욕 센트럴파크 남서쪽 80층짜리 주상복합 쌍둥이 건물 ‘타임워너센터’는 TDR행사의 대표적인 사례다.2000년 11월 착공,17억달러(약 2조원)를 들여 최근 완공된 타임워너센터는 연면적 84만㎡(25만평)에 200여가구의 최고급 아파트를 비롯, 호텔, 오피스텔 등이 들어서 있다. 주변 건물의 개발권을 사들여 높이 지은 것이다. 또 이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55층짜리 주상복합건물 ‘트럼프타워’(Trump International Hotel & Tower)도 마찬가지다. 주민 수잔 베커트는 이 건물에 대해 “You’re fired.”(최근 한 TV 리얼리티쇼에 출연하고 있는 드널드 트럼프에 의해 유행어가 된 표현으로 ‘너는 해고야.’라는 의미)라고 잘라 말했다. 김도년 성균관대 교수는 “TDR는 허용된 용도와 규모로만 개발할 수 있는 기존 용도지역제를 보완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개발밀도에 대한 지역별 한계가 명확해야 하고, 개발권을 어떻게 할당하고 규제할 것인지 충분한 사전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보스턴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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