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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위의 ‘빙상선수 인권보호 권고’, 교육부와 지자체 9곳 불수용

    인권위의 ‘빙상선수 인권보호 권고’, 교육부와 지자체 9곳 불수용

    인권위 “빙상선수 인권 개선책 마련”교육부 ‘불수용’...체육시설법 통해 가능빙상장 설치한 지자체 9곳 ‘불수용’국가인권위원회가 빙상 종목 선수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내린 권고에 대해 교육부와 지자체 9곳이 불수용 입장을 보였다고 29일 밝혔다. 인권위는 2019년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빙상 종목에 대한 특별조사를 실시하고 지난 2월 빙상선수 인권 개선책 마련을 권고했다. 앞서 인권위는 교육부 장관에게 학교 밖 운동선수에 대한 관리·감독을 위해 ‘학원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학교 밖 운동선수와 관련해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체육시설법)을 통해 관리·감독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인권위에 권고 불수용 의사를 통지했다. 학교 밖 운동선수는 학교에 소속되지 않고 외부에서 지도받거나 선수활동을 이어가는 학생을 말한다. 2019년 인권위 전수조사 결과, 학교 밖에서 개인 코치와 스포츠클럽 등을 통해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학생 선수는 전체 선수의 약 14.7%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체육시설법에는 학교 밖 운동선수 등의 체육교습을 관리·감독하는 내용이 없는 점 ▲체육시설법이 제정된 시점(1989년)과 달리 스포츠 분야의 사교육이 급증해 학교 밖 운동선수에 대한 관리감독 사각지대가 크게 늘어난 점 ▲학원법을 통해 체육 이외의 지식·기술·예능 개인교습이 관리감독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교육부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인권위는 빙상장을 운영하는 22곳의 지자체장에게 ▲성범죄처벌경력자 등의 빙상장 사용 허가 제한 규정 마련 ▲공공체육시설 개방의 공정성 강화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이에 지자체 9곳은 일부 수용 등 불수용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과천시, 광주시, 의정부시, 의성군 등 5곳은 인권위의 권고 이행 계획 통지 기한인 3개월이 넘도록 통지를 하지 않아 인권위법 제25조에 따라 ‘불수용’으로 판단했다. 강릉시와 성남시는 ‘공정성 강화 방안’ 권고만 부분 수용했고, 부산 북구청과 남양주시는 빙상장 사업을 종료하거나 학생선수가 대관하는 경우가 없어 권고 이행 필요성이 없다고 회신했다. 한편,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대한빙상경기연맹회장은 빙상종목 인권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을 위해 인권·법률·종목 전문가 등을 포함한 특별팀을 구성해 경기인 등록규정 및 정관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14개 시·도 대선공약에 689조 소요…공약 남발 우려

    14개 시·도 대선공약에 689조 소요…공약 남발 우려

    대선을 앞두고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숙원 사업을 여야 후보들의 대선 공약으로 밀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역 표심을 의식한 후보들이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개발 공약을 검증 없이 일단 받아들이는 분위기여서 ‘빈 공약(空約)’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신문이 29일 서울·경기·제주를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가 요구한 대선 공약을 조사한 결과 모두 506건이나 됐고 소요 예산은 689조 3851억원에 이르렀다. 지역별로는 부산 17건(22조 5900억원), 인천 20건(14조원), 대구 16건(40조원), 대전 16건(21조 7886억원), 광주 20건(229억원), 울산 22건(15조 7602억원), 세종 12건(4조 6858억원), 강원 38건(42조원), 충북 74건(41조 4000억원), 충남 51건(54조 6472억원), 전북 65건(27조 8000억원), 전남 69건(81조 7700억원), 경북 10건(33조 3900억원), 경남 76건(63조 5533억원) 등이다. 지자체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무기로 숙원사업을 해결해 달라고 정당과 후보들을 압박하고 있고, 후보들은 지역의 요구를 그대로 공약집에 넣는 형국이다. 이전 정부와 현 문재인 정부에도 요구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던 공약들을 재탕·삼탕 우려내는 경우도 흔하다. 강원도의 ‘특별자치도’ 설치는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요구한 숙원으로 이번이 3번째 도전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평화특별자치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경제특별자치도’ 설치를 약속한 상태다. 충남도는 현 정부에서 무산된 ‘가로림만 해양정원사업’을 ‘생태복원형 국립공원’으로 이름만 바꾸어 재도전에 나섰고, 이 후보가 이를 받아들였다. 전북의 전주~대구간 고속도로 건설·제3 금융도시 선정·국립치유농업체험원 조성, 부산의 경부선 철도 지하화도 대선 때 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광주시는 단일 사업으로 203조원을 투자해야 하는 ‘호남권 광역 에너지밸리 조성사업’을 공약사업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대규모 개발 사업은 국가 재정형편상 대통령 임기 5년 안에 실현되기 어렵지만, 지자체들은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후보들은 일단 공약으로 내걸고 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자체 관계자는 “대형 숙원사업은 대선 공약에 포함돼야 그나마 실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일본 전범기업 사과·배상 촉구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일본 미쓰비스중공업에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고 나섰다 시민모임은 29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법원의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배상 판결이 3년이 됐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은 강제동원에 대해 사과하고 즉각 배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모임은 “일본은 한반도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은데 이어 수많은 조선인을 사지로 내모는 반인도 범죄를 저질렀다”며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2018년 11월29일 피고 미쓰비시중공업에 배상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이 3년이 되도록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사이 원고 5명 중 2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 정부는 훼방꾼으로 전면에 나서고 있다”며 “기업들의 판결 이행을 가로막는가 하면 ‘한국 경제의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등의 무모한 경제보복조치까지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배상이 지체되고 있는 데는 우리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며 “정부는 피해회복 문제까지 개개인 소송을 통해 해결하도록 하는 등 손놓고 있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전범기업의 강제동원에 대한 문제는 양금덕 할머니가 1992년 일본을 상대로 첫 소송(광주천인소송)을 시작한 지 내년이면 30년째다”며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은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당장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포토] 전국민 선대위와 셀카봉 기념촬영하는 이재명

    [포토] 전국민 선대위와 셀카봉 기념촬영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9일 광주시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민 선대위회의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셀카봉으로 직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11.29 연합뉴스
  • 與 광주 선대위원장에 ‘만 18세 여고생’ 파격 발탁

    與 광주 선대위원장에 ‘만 18세 여고생’ 파격 발탁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선 후보의 ‘광주 대전환 선대위’ 공동 위원장으로 만 18세 여고생을 발탁해 화제다. 민주당은 28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 대전환 선대위 출범식에서 광주여고 3학년 남진희 양을 비롯한 공동선대위원장 10명을 임명했다. 이 후보는 직접 남 위원장을 소개하면서 “만 18세의 여고생이고, 광주 고등학교 학생의회 의장을 역임하셨다”며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 확장을 위해 애써 온 청소년 활동가”라고 소개했다. 남 위원장은 이날 행사에서 직접 이 후보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저는 대한민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 청소년의 목소리를 내고자 이 자리에 섰다. 저는 내년 대선에서 처음 투표하게 된다”며 “뚜렷한 철학과 비전이 있는 대통령을 바란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대통령을 바란다. 모두의 안전을 지켜주는 대통령을 바란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할 수 있는 대통령을 바란다. 국민과 언제나 함께할 대통령을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틀 전만 해도 제가 여기에 나올지 몰랐다”며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민주당이 파격적으로 10대 학생을 지역 선대위 위원장에 위촉한 것은 청년층 여론을 잘 살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10명의 공동선대위원장 중 송갑석 광주시당위원장을 제외한 9명을 청년으로 임명했다. 고등학생부터 노무사, 영화감독, 사회복지사, 기업인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울렀다.
  •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 도청소년야영장 현장 점검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 도청소년야영장 현장 점검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위원장 박창순 의원,더불어민주·성남2)는 25일 경기 광주시에 소재한 경기도청소년야영장을 방문하여 운영현황에 대하여 보고받고, 오토캠핑장을 비롯한 주요 시설물 등을 점검했다. 이 날 현장방문은 2022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청소년야영장 기능보강사업비(1,977백만원)에 대한 세부내용과 향후 예산집행 계획을 점검하고자 마련됐으며 박창순(더민주·성남2) 위원장을 비롯해 김성수(더민주·안양1) 부위원장, 김용성(더민주·비례대표) 부위원장, 송치용(정의당·비례대표)·유영호(더민주·고양6)·이진연(더민주·부천7) 의원 등이 참석했다. 현장방문에 참석한 위원들은 오토캠핑장과 대피소 및 부대시설을 둘러보며, 한 목소리로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되면, 신속하게 집행할 것을 주문했고 이를 통해 야영장을 찾는 도내 청소년과 해당 가족들의 높아진 만족도를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박 위원장은 “청소년야영장은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위치한 우수하고 자랑스러운 시설인 만큼 보다 많은 학생과 가족 등 도민들이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해달라”고 당부했다.
  •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 경찰 출석…‘40억 의혹‘에 침묵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 경찰 출석…‘40억 의혹‘에 침묵

    성남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이 당시 성남시의회 의장을 지낸 최윤길 화천대유 부회장을 26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경기남부경찰청 대장동 의혹 전담수사팀은 이날 오후 최 부회장을 불러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조사에 앞서 취재진을 만났지만 “녹취록에 담긴 수십억 성과급 의혹은 사실인가”, “화천대유에서 무슨 일 하나”,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는 어떻게 아나” 등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는 차량도 받았다는 얘기가 있다는 말에는 “왜 이러세요. 소설 쓰고 계시네”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고선 “경찰 조사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하며 내가 기자들에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나”라고 반문한 뒤 “경찰 조사에서 밝히겠다”며 조사실로 들어갔다. 최 부회장은 2013년 2월 대장동 개발의 시발점이 된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는 이후 대가로 성남시의회 의장직을 내려놓은 뒤 화천대유 부회장으로 근무하면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등으로부터 성과급 40억원을 받기로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장동 의혹을 동시에 수사하는 검찰에 정영학 회계사가 제출한 녹취록에는 “성남시의장에게 30억원, 성남시의원에게 20억원이 전달됐고, 실탄은 350억원”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찰은 이날 최부회장을 상대로 받기로 한 성과급의 대가성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경찰은 지난 17일 최 씨의 경기도 광주시 자택과 성남시 화천대유 사무실을 압수수색 해 성과급 지급 내역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씨를 소환조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세한 조사 내용 등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 광주시 ‘성남~장호원’ 자동차 전용도로 진출입램프 착공

    광주시 ‘성남~장호원’ 자동차 전용도로 진출입램프 착공

    경기 광주시는 25일 중대동 ‘성남~장호원 자동차 전용도로 진출입램프 개설 공사’ 착공식을 가졌다. 이 사업은 338억원의 예산을 들여 태전지구에서 고블로와 중로 1-17호선을 통해 국도3호선(성남~장호원)으로 곧바로 연결되도록 총연장 1856m(횡단교량 65m 포함)의 중대동 진·출입램프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이곳은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이면 국도45호선 태전동 구간과 국도3호선의 진·출입차량으로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고 있는 지역이다. 시는 중대동 진·출입램프 개설로 주민불편 해소와 교통체증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동헌 시장은 “중대동램프가 개설되면 태전지구와 국도3호선 진·출입 차량들이 분산돼 차량 흐름이 상당부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며 “교통체증 해소를 위한 공사 추진에 박차를 가해 오는 2024년 4월 전면 개통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전두환 사망 기념 한우 10% 할인”…쏟아진 다양한 반응

    “전두환 사망 기념 한우 10% 할인”…쏟아진 다양한 반응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소식에…“전두환 사망 기념 한우 10% 할인” 지난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24일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현재 광주의 한 정육점 근황’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가 게시한 사진에는 ‘금일한정, 전두환 사망기념 한돈 한우 10% 할인 판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를 접한 네티즌은 “통 크게 쐈네”, “사장님 센스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 할인 조치에 ‘센스있다’는 평을 보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사람이 죽었는데 ‘사망 기념’은 좀 아니지 않나”는 반응도 나왔다.“광주에 무지개 떴다” 전두환 사망한 날 목격담·사진 속출 앞서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광주에 무지개가 떴다’는 목격담과 사진이 게시되기도 했다. 이날 오전 11시 48분쯤 ‘전두환 떠나자 광주에…’라는 제목의 글과 사진이 올라왔는데, 글쓴이는 “오늘 방금 찍었다”고 전했다. 트위터에도 광주시청 위로 커다랗게 드리워진 무지개 사진이 공유됐다. 이날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무지개 사진은 광주 외에도 전남 나주, 경남 김해 등에서도 속속 올라왔다. 공교롭게도 이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해 무지개와 이를 연관 짓는 이들이 많았다. 앞서 지난 1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광주 망월동 5·18묘지를 방문한 직후에도 하늘에 무지개가 떠 화제를 모은 바 있다.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23일 90세 나이로 사망했다. 이날 오전 8시55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가족에 의해 발견됐다.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40분쯤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오전 8시 55분쯤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으며, 경찰은 오전 9시 12분쯤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전씨는 최근 알츠하이머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등의 지병을 앓았다. 유족은 유언에 따라 전씨 시신을 화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치른다.
  • ‘고백’ 통한 5·18 진상 규명 어려워졌다

    ‘고백’ 통한 5·18 진상 규명 어려워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하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 규명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씨가 사망하면서 사건 당시 최고권력자의 ‘고백’을 통한 국가 폭력의 실체를 밝히기는 어려워졌으며 결국 진상 규명은 관련 위원회 및 학계의 조사·연구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사건이 일어난 지 41년이 지났지만 5·18 관련 실체적 진실 규명과 국가 공권력의 희생자에 대한 상처 치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동안 국회 특별위원회 청문회와 검찰 수사, 국방부 위원회 조사 등을 거쳤지만 사건의 진상은 완전히 규명되지 못했다. 어떤 조사에서도 당시 최초 발포와 집단발포 명령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헬기 사격 책임자, 성폭력 가해자, 암매장 장소 등에 대한 조사도 남아 있다. 전씨와 신군부 관계자들은 줄곧 발포명령을 부정해 왔다. 1997년 확정된 5·18 재판에서 전씨와 이희성 계엄사령관, 주영복 국방부 장관,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정호용 특전사령관 등 5명은 1980년 5월 27일 벌어진 ‘상무충정작전’(전남도청 무력 진압 작전)에 관해서만 내란목적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생존해 있는 당시 핵심 관계자가 입을 열지 않는 한 앞으로의 진상 규명은 5·18진상 규명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위원회는 지난해 5월 5·18 40주년을 맞아 실무진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조사 활동에 돌입했다. 위원회는 5·18 당시 최초 발포와 집단발포 책임자 규명, 당시 사망사건, 민간인학살, 행방불명자 규모 및 소재 등을 조사하고 있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으로 이 중 6명은 2001년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의 무명열사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다. 최근에는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전투기 무장출격 대기 사실이 밝혀졌고 계엄군과 보안사 수사관의 성폭력 등 성범죄 폭로도 이어지면서 진상 규명 범위도 넓어졌다. 위원회는 이 같은 부분에 대해서도 직권조사 개시를 결정하고 진상규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학살자·독재자 역겨운 삶 살았다… 전씨, 대한민국의 부끄러움”

    “학살자·독재자 역겨운 삶 살았다… 전씨, 대한민국의 부끄러움”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갑자기 사망하자 광주 5·18 단체들과 시민들은 “법적·역사적 책임을 묻지 못했다”며 원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5·18 기념재단과 5월 3개 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전씨가 죽었으나 5·18의 진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전씨는 반성과 사죄는커녕 5·18 영령들을 모독하고 폄훼하는 역겨운 삶을 살았다”고 비판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송선태 위원장은 “지난 41년간 피해자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기회가 있었으나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해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켜 왔다”며 “전씨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에 따라 진상규명을 위한 엄정한 조사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지역 24개 시민사회단체로 결성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시민들을 학살하고, 반대자들을 감옥에 가뒀던 독재자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불행이고 부끄러움”이라면서 “학살자 전두환의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28일 만에 전씨가 갑자기 사망하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씨의 연희동 자택 인근에서 만난 정모(28)씨는 “전씨 사망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무고한 시민들을 사살하고 생전에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아 좋게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29)씨는 “진상 규명은 계속돼야 한다”며 “죽음을 계기로 전씨가 미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 시민들의 표정은 아쉬움과 분노로 가득했다. 박모(52)씨는 “역사의 죄인이 아무런 처벌 없이 90년을 살다가 간 사실에 분노가 치민다”면서 “학살의 책임자를 밝혀내는 일이 영영 물거품이 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전씨 고향인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내천마을은 조용한 모습이었다. 내천마을은 전씨가 태어나 대구로 이사 갈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현재 79가구에 14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희재(61) 내천마을 이장은 “고향마을에서 별도로 준비하는 것은 없으며 주민들도 특별한 의견이나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합천군도 추모 여부 등을 논의하고 있으나 지역에서도 전씨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등 민감한 탓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천마을 한 주민은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이었다면 고향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추모식을 열 수도 있겠지만, 전국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데다가 고향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추모할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광주는 폭동” “전 재산 29만원” 분노만 키운 정치군인의 퇴장

    “광주는 폭동” “전 재산 29만원” 분노만 키운 정치군인의 퇴장

    빈농의 아들 출신으로 12·12 군사쿠데타를 통해 제11·12대 대통령직을 움켜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력욕은 굴곡지고 어두운 대한민국 현대사를 만들어 냈다. 전씨는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일절 인정하지 않은 채 23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전쟁 중에 육군사관학교 입학 전씨는 1931년 경남 합천의 빈농에서 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인 식품공장에서 배달 일을 하는 등 가족을 부양했다. 전씨는 대구공고를 졸업한 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내 성적은 228명 중 끝에서 두 번째였다. 육사 합격은 내 인생에서 운명적 전환점이었다”고 밝혔다. 1955년 육사 11기로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걸었으나 처음부터 돋보이지는 못했다. 군 생활 초반에는 한직을 전전하다 1961년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서 육사 생도들의 지지 선언을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 소장의 눈에 띈 이후 당시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비서관으로 기용된다. 그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30대대장, 1사단장, 보안사령관 등 출세가도를 걸었다. 그가 속했던 하나회의 전신 오성회도 군 내 주류 모임으로 급부상했다. 전씨가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79년 유신 통치의 마침표를 찍은 10·26 사태가 발생한다. 그는 하나회를 등에 업고 박정희 대통령 총격 사건 수사·처리를 맡은 합동수사본부를 이끌면서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마저 체포하면서 12·12 신군부 반란을 일으켰다. 1980년 5월 17일 전국 대학생들이 군부에 반기를 들고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요구 시위에 나선다. 그러자 전씨는 ‘시국 수습’을 핑계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다. 5월 18일 서울 시위에 이어 광주에서도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신군부는 계엄군·공수특전여단을 투입해 무력 진압하며 걷잡을 수 없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달 27일에야 마무리된 계엄군의 무분별한 진압은 무고한 광주시민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개헌까지 하며 11·12대 대통령 연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하며 국정 실권을 장악한 전씨는 1980년 최규하 대통령 사임 직후 선거에 단독 입후보해 제11대 대통령이 된다. 같은 해 10월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공포하고, 1981년 간선제로 치러진 제12대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며 제5공화국을 열었다.‘3저(저유가·저금리·저달러) 호황’을 누리는 국가 개발 시기에 정권을 잡았으나, 끊임없는 민주화운동 탄압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거세졌고, 맞대응으로 내놓은 4·13 호헌조치는 6월 항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결국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선후보가 집권여당 대표로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1988년 대통령 임기를 마친 전씨는 여생 내내 심판대에 올랐다. 퇴임 직후 전씨가 ‘5공 청문회’에 나와 5·18 진압에 대해 “자위권 발동”이라고 답한 데 대해 이철용 평화민주당 의원이 “살인마”라고 비판한 것은 사회가 그의 책임을 묻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이다. 이후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에 전씨는 부인 이순자씨와 강원 백담사로 들어가 769일간 은둔 생활을 했다. 문민정부 들어 본격적인 법적 심판이 시작된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5·18 특별법을 제정했고, 그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을 거쳐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을 최종 선고받았다. 1997년 김영삼 정부는 국민 대화합 명분으로 그를 특별 사면했다. 전씨는 이후에도 반성 없는 모습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씨는 2003년 법원의 재산 명시 명령에 ‘예금 29만원’을 기재하며 사실상 납부를 거부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전씨 등 3년 이상 형을 선고받은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 환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전씨는 훈장 반환도 거부하다 7년 만인 2013년에야 12·12 이후 받은 9개 훈장을 반납했다. ●조비오 신부 사자 명예훼손 등 1심 유죄 2017년 4월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도 논란이 됐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비상계엄은 “정당한 법 절차를 따랐다”고 주장했다.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두고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5·18 관련 단체들은 사자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 등으로 고발했다. 전씨는 1심 내내 알츠하이머 투병, 고령 등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하다 2019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해 11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해 재판을 진행하다 오는 29일 변론을 앞두고 있었다. 올해 8월 다발성 골수종 확진을 받았던 전씨는 생전 가깝게 지낸 노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 李도 尹도 “조문 안 해”

    李도 尹도 “조문 안 해”

    여야 대선후보와 지도부는 대부분 전두환 전 대통령 조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전씨의 사망에 대한 여야 반응은 미묘하게 엇갈렸다. 여당은 애도 대신 마지막 순간까지 죄과를 반성하지 않은 전씨를 향한 비판에 초점을 맞췄고, 야당은 조문 여부부터 추모 메시지 수위까지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3일 “전씨는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무고한 광주시민을 살상해 권력을 찬탈한 내란 학살 주범”이라면서 “그런 그를 흔쾌히 애도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삼가 조의를 표하고 유족에게 위로 말씀을 드린다”며 말을 아꼈다. 윤 후보는 당초 조문 의사를 밝혔다가 두 시간 여 만에 철회했다. 최근 ‘전두환 옹호 발언’ 등으로 홍역을 겪고 광주를 방문해 사과까지 한 상황에서 여론의 역풍을 우려한 결정으로 보인다.●안철수 “불행한 역사” 심상정 “성찰 없는 죽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국민과 함께 조문할 수 없는 불행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성찰 없는 죽음은 유죄”라고 비판했다. ●송영길 “조화·조문·국가장 모두 불가” 강조 여권은 날 선 비판과 함께 조문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은 조화, 조문, 국가장 모두 불가”라고 강조하며 “생물학적 수명이 다해 형법적 공소시효는 종료됐지만 민사적 소송과 역사적 단죄와 진상규명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오섭·윤영덕 등 호남 의원들은 “살인마 전두환이 사망했다”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반성도, 사죄도 없었고 법원이 처벌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추모 안 해” 김기현은 조문하기로 반면 국민의힘은 오후에서야 당 차원 조화는 보내되 구성원 조문은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했다. 이준석 대표는 “본인도, 가족도,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와는 과오에 대해 다른 자세를 보여 왔다”면서 “독재의 상징이 됐고 과오에 대한 반성이 없던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조화는 보낼 수 있어도 개인적 추모나 조문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기현 원내대표는 개인 자격으로 조문하기로 했다. 여당에선 윤 후보의 조문 번복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이용빈 민주당 대변인은 ‘개 사과 논란’까지 거론하며 “준비 안 된 대선후보의 미숙한 정치 행보에서 국민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 과거사 진실 안 밝힌 최규하·전두환·노태우

    과거사 진실 안 밝힌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하면서 12·12 쿠데타(1979년)와 5·18 광주민주화운동(1980년) 유혈 진압에 관여한 전직 대통령(최규하·전두환·노태우)들이 마지막까지 국민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은 채 모두 세상을 떠났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씨의 만행에 대한 역사적 진실 규명이 더욱 요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씨는 2017년 4월 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기 때문에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주장은 악의적 왜곡이라고 주장하며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적었다. 이후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재판에 넘겨진 전씨는 1심에서 유죄를 받은 후 항소해 오는 29일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둔 상황이었다. 5·18 집단발포 명령의 전모와 발포 명령자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는 광주시민들에게 협조하기는커녕 끝까지 재판으로 ‘진실’을 다투다 사망하면서 당시 상황은 미궁으로 남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전씨보다 한 달 앞서 별세한 ‘동지’ 노 전 대통령(제13대)은 12·12 쿠데타 당시 자신이 지휘하던 제9보병사단에서 2개 보병연대를 동원해 반란을 지원했다. 그는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운동은 유언비어가 진범이다.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등 유언비어를 듣고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했다”고 왜곡했다. 아들 재헌씨가 최근 광주를 잇달아 찾아 사죄했지만, 노씨는 5·18 당시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를 비롯해 5·18의 진실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고 세상을 등졌다. 2006년 10월 침묵을 지킨 채 사망한 최 전 대통령(제10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10·26사건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권한대행을 포함해 10개월 정도 국가원수 자리를 지켰다. 그는 역사적인 순간에 최고 결정권자였던 만큼 당시 상황을 소상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도 12·12 쿠데타에서 신군부의 정승화 당시 육군 참모총장 연행을 사후 재가한 과정, 5·18 당시 광주 시민에 대한 발포가 대통령의 최종 결정인지 신군부의 독자적 행동인지 등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 사과없이 떠난 전두환, 국가장 안한다…“전직 대통령 중 처음”

    사과없이 떠난 전두환, 국가장 안한다…“전직 대통령 중 처음”

    국가장 도입 후 사망 전직 대통령 중국가장 치르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 정부가 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국가장’(國家葬)을 치르지 않기로 했다. 2011년 국장과 국민장을 통합해 국가장이 도입된 이후 사망한 전직 대통령 중 국가장을 치르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승만·윤보선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정부가 장례를 지원하지 않은 세번째 전직 대통령이 된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전 전 대통령에 대해) 국가장을 치르지 않기로 했다”며 “국가장을 하지 않기로 한 만큼 유족들이 가족장을 치르더라도 정부 차원의 지원은 없다”고 밝혔다. 국가장법에 따라 정부는 국가장을 추진할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이 제청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최종 결정하게 되지만, 행안부는 이런 절차를 밟지 않기로 했다.국가장 치른 노태우와 달리 가족장으로 장례 치를 듯 국가장법은 2조에서 전·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이 사망시 국가장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중대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법의 목적을 담은 1조는 “이 법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逝去)한 경우”라는 표현을 썼다. ‘국가·사회에 현저한 공훈’이 있거나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을 국가장의 대상자로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이런 결정은 비슷한 역사적 궤적을 살다 지난달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른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는 전씨의 경우 과오에 대해 나름의 반성의 뜻을 표한 노 전 대통령과 다른 행보를 보여온 것을 고려해 국가장을 치르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이라는 큰 역사적 과오를 짊어지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사과 표명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반하장격의 발언으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2003년 방송 인터뷰를 통해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라고 발언하는 등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선고받은 추징금 2205억원은 완납하지 않았다.청와대 “진정성 있는 사과 없어 유감” 청와대는 이날 전씨의 빈소에 조화를 보내거나 조문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여야 대선주자들과 지도부도 전 전 대통령이 자신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사망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면서도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사망한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지만, 성과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가장으로 치러지면서 논란이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대통령 명의의 조화와 함께 유영민 비서실장을 통해 조문했다.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청와대 차원의 조화는 물론 조문도 하지 않기로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발언 당시 ‘전 대통령’이라는 호칭도 생략한 것으로 알려졌다.여야 대선주자들 및 지도부도 비판…“죽음조차 유죄” 여야 대선주자들과 지도부도 싸늘한 반응을 보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디지털 대전환’ 공약 발표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 전 대통령을 ‘전씨’라 지칭했다. 이 후보는 “내란, 학살사건 주범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확인됐다. 자신의 사적 욕망을 위해 최하 수백명을 사살하고 국가권력을 찬탈한 범죄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다”며 “이 중대범죄 행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조문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은 조화·조화·조문·국가장 모두 불가“라고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조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가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가지 않겠다며 입장을 번복했다.국민의힘 당대표 차원 조화만…”조문은 개인적 판단“ 국민의힘은 당대표 차원의 조화를 보내기로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조문할 계획이 없다. 당을 대표해서 조화는 보내도록 하겠다. 당내 구성원들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조문 여부를 결정하셔도 된다”고 설명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성찰 없는 죽음은 그조차 유죄다. 역사를 인식한다면 국가장 얘기는 감히 입에 올리지 않기를 바란다. 역사의 깊은 상처는 오로지 광주시민들과 국민의 몫이 됐다”고 지적했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도 “역사적 심판과 사법적 심판이 끝나기도 전에 사망했다. 죽음조차 유죄”라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스스로 굴곡진 삶을 풀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면서 “고인의 역사적 과오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내 인정하지 않고 국민께 사과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 사과없이 떠난 전두환의 일생…분노만 키운 全의 입

    사과없이 떠난 전두환의 일생…분노만 키운 全의 입

    빈농의 아들 출신으로 12·12 군사쿠데타를 통해 제11·12대 대통령직을 움켜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력욕은 굴곡지고 어두운 대한민국 현대사를 만들어 냈다. 전씨는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일절 인정하지 않은 채 23일 세상을 떠났다. 전씨는 1931년 경남 합천의 빈농에서 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인 식품공장에서 배달 일을 하는 등 가족을 부양했다. 전씨는 대구공고를 졸업한 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내 성적은 228명 중 끝에서 두 번째였다. 육사 합격은 내 인생에서 운명적 전환점이었다”고 밝혔다. 1955년 육사 11기로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걸었으나 처음부터 돋보이지는 못했다. 군 생활 초반에는 한직을 전전하다 1961년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서 육사 생도들의 지지 선언을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 소장의 눈에 띈 이후 당시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비서관으로 기용된다. 그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30대대장, 1사단장, 보안사령관 등 출세가도를 걸었다. 그가 속했던 하나회의 전신 오성회도 군 내 주류 모임으로 급부상했다. 전씨가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79년 유신 통치의 마침표를 찍은 10·26 사태가 발생한다. 그는 하나회를 등에 업고 박정희 대통령 총격 사건 수사·처리를 맡은 합동수사본부를 이끌면서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마저 체포하면서 12·12 신군부 반란을 일으켰다. 1980년 5월 17일 전국 대학생들이 군부에 반기를 들고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요구 시위에 나선다. 그러자 전씨는 ‘시국 수습’을 핑계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다. 5월 18일 서울 시위에 이어 광주에서도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신군부는 계엄군·공수특전여단을 투입해 무력 진압하며 걷잡을 수 없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달 27일에야 마무리된 계엄군의 무분별한 진압은 무고한 광주시민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하며 국정 실권을 장악한 전씨는 1980년 최규하 대통령 사임 직후 선거에 단독 입후보해 제11대 대통령이 된다. 같은 해 10월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공포하고, 1981년 간선제로 치러진 제12대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며 제5공화국을 열었다. ‘3저(저금리·저유가· 저달러) 호황’을 누리는 국가 개발 시기에 정권을 잡았으나, 끊임없는 민주화운동 탄압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거세졌고, 맞대응으로 내놓은 4·13 호헌조치는 6월 항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결국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선후보가 집권여당 대표로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1988년 대통령 임기를 마친 전씨는 여생 내내 심판대에 올랐다. 퇴임 직후 전씨가 ‘5공 청문회’에 나와 5·18 진압에 대해 “자위권 발동”이라고 답한 데 대해 이철용 평화민주당 의원이 “살인마”라고 비판한 것은 사회가 그의 책임을 묻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이다. 이후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에 전씨는 부인 이순자씨와 강원 백담사로 들어가 769일간 은둔 생활을 했다. 문민정부 들어 본격적인 법적 심판이 시작된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5·18 특별법을 제정했고, 그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을 거쳐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을 최종 선고받았다. 1997년 김영삼 정부는 국민 대화합 명분으로 그를 특별 사면했다. 전씨는 이후에도 반성 없는 모습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씨는 2003년 법원의 재산 명시 명령에 ‘예금 29만원’을 기재하며 사실상 납부를 거부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전씨 등 3년 이상 형을 선고받은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 환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전씨는 훈장 반환도 거부하다 7년 만인 2013년에야 12·12 이후 받은 9개 훈장을 반납했다. 2017년 4월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도 논란이 됐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비상계엄은 “정당한 법 절차를 따랐다”고 주장했다.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두고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5·18 관련 단체들은 사자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 등으로 고발했다. 전씨는 1심 내내 알츠하이머 투병, 고령 등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하다 2019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해 11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해 재판을 진행하다 오는 29일 변론을 앞두고 있었다. 올해 8월 다발성 골수종 확진을 받았던 전씨는 생전 가깝게 지낸 노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 과거사 진실 안 밝힌 최규하·전두환·노태우

    과거사 진실 안 밝힌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재판 중에 사망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하면서 12·12 쿠데타(1979년)와 5·18 광주민주화운동(1980년) 유혈 진압에 관여한 전직 대통령(최규하·전두환·노태우)들이 마지막까지 국민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은 채 모두 세상을 떠났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씨의 만행에 대한 역사적 진실 규명이 더욱 요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씨는 2017년 4월 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기 때문에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주장은 악의적 왜곡이라고 주장하며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적었다. 이후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재판에 넘겨진 전씨는 1심에서 유죄를 받은 후 항소해 오는 29일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둔 상황이었다. 5·18 집단발포 명령의 전모와 발포 명령자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는 광주시민들에게 협조하기는커녕 끝까지 재판으로 ‘진실’을 다투다 사망하면서 당시 상황은 미궁으로 남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전씨보다 한 달 앞서 별세한 ‘동지’ 노 전 대통령(제13대)은 12·12 쿠데타 당시 자신이 지휘하던 제9보병사단에서 2개 보병연대를 동원해 반란을 지원했다. 그는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운동은 유언비어가 진범이다.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등 유언비어를 듣고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했다”고 왜곡했다. 아들 재헌씨가 최근 광주를 잇달아 찾아 사죄했지만, 노씨는 5·18 당시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를 비롯해 5·18의 진실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고 세상을 등졌다.2006년 10월 침묵을 지킨 채 사망한 최 전 대통령(제10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10·26사건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권한대행을 포함해 10개월 정도 국가원수 자리를 지켰다. 그는 역사적인 순간에 최고 결정권자였던 만큼 당시 상황을 소상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도 12·12 쿠데타에서 신군부의 정승화 당시 육군 참모총장 연행을 사후 재가한 과정, 5·18 당시 광주 시민에 대한 발포가 대통령의 최종 결정인지 신군부의 독자적 행동인지 등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 “광주에 무지개 떴다” 전두환 사망한 날 목격담·사진 속출

    “광주에 무지개 떴다” 전두환 사망한 날 목격담·사진 속출

    23일 광주를 비롯한 남부 지역에 무지개가 목격됐다. 이날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광주에 무지개가 떴다’는 목격담과 사진이 다수 올라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는 오전 11시 48분쯤 ‘전두환 떠나자 광주에…’라는 제목의 글과 사진이 올라왔는데, 글쓴이는 “오늘 방금 찍었다”라고 전했다. 트위터에도 광주시청 위로 커다랗게 드리워진 무지개 사진이 공유됐다. 이날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무지개 사진은 광주 외에도 전남 나주, 경남 김해 등에서도 속속 올라왔다. 공교롭게도 이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해 무지개와 이를 연관 짓는 이들이 많았다.작곡가 김형석은 트위터에 광주에서 촬영된 무지개 사진을 공유하며 “광주에 무지개가 떴다네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하다 억울하게 숨진 수많은 분들을 애도합니다”라고 썼다. 김형석은 전씨의 사망 소식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란 것도 있다”라고 평가했다.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40분쯤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오전 8시 55분쯤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으며, 경찰은 오전 9시 12분쯤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전씨는 최근 알츠하이머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등의 지병을 앓았다.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수장이었던 전씨는 1979년 12월 12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국을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로 인해 1980년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민주화 열망을 짓밟았고, 5·18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하기에 이르렀다.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1987년 민주항쟁에 밀려 퇴임 뒤 백담사로 쫓겨나듯 물러나 칩거했다. 이때 재산 헌납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때인 1995년 구속기소돼 1996년 내란·내란목적살인죄·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수감됐다. 2년 만인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지만 전직 대통령 예우 등은 박탈됐다. 대법원에서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됐지만 그는 전 재산이 ‘29만원’에 불과하다며 버텼고, 정부와 검찰의 추징금 환수 노력에도 끝내 완납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군사 쿠데타와 집권 기간 동안의 민주화 운동 탄압, 무엇보다 5·18민주화운동 유혈진압에 대해 단 한번도 진정성 있게 사과하지 않았다.
  • 입 닫고 가버린 전두환 전 대통령…5·18 진상규명은 어떻게

    입 닫고 가버린 전두환 전 대통령…5·18 진상규명은 어떻게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하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 규명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씨가 사망하면서 사건 당시 최고권력자의 ‘고백’을 통한 국가 폭력의 실체를 밝히기는 어려워졌으며 결국 진상 규명은 관련 위원회 및 학계의 조사·연구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사건이 일어난 지 41년이 지났지만 5·18 관련 실체적 진실 규명과 국가 공권력의 희생자에 대한 상처 치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동안 국회 특별위원회 청문회와 검찰 수사, 국방부 위원회 조사 등을 거쳤지만 사건의 진상은 완전히 규명되지 못했다. 어떤 조사에서도 당시 최초 발포와 집단발포 명령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헬기 사격 책임자, 성폭력 가해자, 암매장 장소 등에 대한 조사도 남아 있다. 전씨와 신군부 관계자들은 줄곧 발포명령을 부정해왔다. 1997년 확정된 5·18 재판에서 전씨와 이희성 계엄사령관, 주영복 국방부 장관,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정호용 특전사령관 등 5명은 1980년 5월 27일 벌어진 ‘상무충정작전(전남도청 무력 진압 작전)’에 관해서만 내란목적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생존해 있는 당시 핵심 관계자가 입을 열지 않는 한 앞으로의 진상 규명은 5·18진상 규명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위원회는 지난해 5월 5·18 40주년을 맞아 실무진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조사 활동에 돌입했다. 위원회는 5·18 당시 최초 발포와 집단발포 책임자 규명, 당시 사망사건, 민간인학살, 행방불명자 규모 및 소재 등을 조사하고 있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으로 이 중 6명은 2001년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의 무명열사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다. 최근에는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전투기 무장출격 대기 사실이 밝혀졌고 계엄군과 보안사 수사관의 성폭력 등 성범죄 폭로도 이어지면서 진상 규명 범위도 넓어졌다. 위원회는 이 같은 부분에 대해서도 직권조사 개시를 결정하고 진상규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공직사회 점심시간 휴무, 찬반 팽팽...부산 중구·기장군 내년부터 시행

    부산에서도 내년부터 일부 기초자치단체들이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한다. 점심시간 휴무제는 공무원의 쉴 권리를 보장해 주민들에게 더 나은 민원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공무원의 정당한 권리라는 의견과 시민 불편함이 가져온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부산 기장군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한다. 점심시간인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1시간 동안 군청과 읍·면 행정복지센터 등의 민원 업무를 중단한다. 기장군은 군 홈페이지, 통화연결음 및 전광판 송출, 현수막·포스터 등 온·오프라인 매체를 이용한 다양한 홍보로 주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로 했다. 행정복지센터 등에는 무인민원발급기를 추가로 설치하고, 점심시간 휴무제 안내 요원을 배치해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부산 중구도 내년부터 점심시간 휴무제에 들어간다. 중구는 내년 1월 1일부터 구청과 산하 9개 동주민센터 공무원이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민원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구 역시 점심시간 휴무제로 공무원의 쉴 권리를 보장해 주민에게 더욱 나은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이 제도를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부산 북구 등 대부분 기초자치단체도 점심시간 휴무제에 긍정적인 입장인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지역 16개 시·군 공무원 노조도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단체장들과 점심시간 휴무제 도입을 둘러싼 교섭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점심 휴무제 도입으로 민원인 불편이 커질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과 함께, 일부 공직사회에서도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이는 등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직장인에게는 점심시간이 개인적인 일을 볼 수 있는 시간이고, 무인민원발급기나 온라인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업무도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의 한 공무원은 “아직 코로나 19가 진행 중이어서 오히려 점심시간을 분산하는 게 낫고 직장인 등 민원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주민자치센터를 많이 찾고 있어 아직 시기상조”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부산 기장군 관계자는 “공무원들의 근무환경에 대한 배려는 장기적으로 주민들에게 양질의 행정서비스로 돌아올 것”이라며 “초기에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주민들의 불편사항을 꾸준히 관찰해 민원불편을 최소화하고, 점심시간 휴무제가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 법원 민원실·등기소는 2019년부터 점심시간 휴무를 하고 있으며, 광주시 산하 5개 구청 민원실과 동행정복지센터도 지난 7월부터 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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