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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 경남 진주 秋慶和씨

    “일제탄압에 당당히 맞선 선조들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것은 과거의 아픈치욕을 극복하고 우리의 미래를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입니다” 선조들의 항일투쟁 흔적을 찾아 12년째 전국을 누비고 있는 秋慶和씨(48·사진·경남 진주시 신안동 705의1).그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어져 가는 독립유공자의 발굴에 미친(?) 요즘 보기드문 의인(義人)이다. 秋씨가 이 작업에 뛰어든 것은 광주대 3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87년.조상의 족보를 찾다가 증조부(秋鏞玖)가 일제때 의병활동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서 부터였다.곧바로 증조부의 행적을 찾아나섰고 이 과정에서 우연히 전라도 의병대장 秋璂燁과 黃俊聖의 항일행적을 발굴,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秋씨는 ‘돈 안되는’ 이 일에 매달렸다.운동화 차림으로 눈속을헤매는 것은 예사였고 수십년전 사망한 사람을 수소문하며,호적을 뒤지고 다니다 간첩으로 오인받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의 이같은 열정은 결혼후에도 이어져 생계는 10년전 결혼한 부인張伊順씨(42)가 꾸려가고 있다.그가 전자회사에서 벌어오는 50여만원이 수입의 전부로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秋씨가 그동안 찾아낸 독립유공자만도 50여명에 이른다.모두가 독립유공자로 추서받은 것도 그의 발굴작업이 얼마나 알찬 것이었나를 말해준다.강원도 춘천의 장총단사건,경북 청도 군용열차사건,전남·북 의병활동상 등 묻혀져 있던 주요 사건들을 발굴했다.그러나 막상 자신의 증조부는 기록이 미비해독립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춘천 장총단사건.安二淳·三淳형제와 馬道賢 朴順九 등 일가 친척들이 춘천과 인제일대에서 10여년간 무장활동을 벌였던 활약상을 발굴,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한 것이다.그는 “겨울방학동안 눈덮인 강원일대를 샅샅이 뒤지며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기 때문에 평생 잊을 수 없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秋씨는 요즘 신간회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일제때 문맹퇴치와 계몽운동에앞장선 청년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작업이다.오는 9월쯤이면 신간회 지회의활동상을 담은 세번째 ‘항일투사열전’을발간할 예정이다.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8회)-趙泰一시인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일이다//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국토서시’중) 죽형(竹兄) 趙泰一시인(59·광주대학교 예술대학장).그가 70년대 초부터 5년에 걸쳐 쓴 48편의 연작시집 ‘국토’(창작과비평사)에는 조국의 땀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황톳빛 서정이 넘실거리고 잊혀져간 민중의 목소리가일렁인다.건강한 민중적 삶의 의지를 이처럼 곡진하게 그린 시가 또 있을까. 그러나 ‘국토’의 운명은 가혹했다.유신시절 ‘국토’는 출간되자마자 긴급조치 9호로 판매금지됐다.“그 당시 긴급조치는 긴급조치 위반사례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하는 기막힌 제도였습니다.‘국토’는 75년 ‘신동엽 전집’,박형규 목사의 수상집 ‘해방의 여울목에서’와 함께 판매금지됐지요.이나라 강토와 민족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쓴 것인데 그것을 범죄시하고 민족정신을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이 있었으니….그 뒤로 7년동안 시집을 내지 않았습니다” 30년 넘게 시를 쓰면서 趙시인은 한번도 현실을 외면한 적이 없다.시대의어둠을 가르는 전령으로서 시인의 임무에 충실했다.74년 11월 그는 뜻있는문인들과 함께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결성,간사직을 맡아 유신독재에 맞섰다.77년에는 양성우 시집 ‘겨울공화국’ 발간사건에 연루돼 시인 고은씨와 함께 투옥되기도 했다.그의 문학적 시련은 80년대라고 비켜가지 않았다.80년 그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임시총회와 관련,계엄법 및 포고령 위반이란터무니없는 죄목으로 구속돼 5개월의 형을 살았다.87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바뀌면서 그는 초대 상임이사를 맡았다.70년대와 80년대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승과 저승의 삶을,아니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을 도무지 분간할 수 없던 시대”였다. 시인은 흔히 예언자로 불린다.신(神)의 입을 대신하는 사람이 시인이다.76년에 발표된 趙씨의 시 ‘겨울소식’을 보면 그가 얼마나 날카로운 시안(詩眼)의 소유자인지 알 수 있다.“…찬바람 속에서 광주는/큰 애를 뱄다더라//찬눈에 덮여서도 무등산은/그렇게도 우람한 만삭이더라//광주를 온몸에 적셔서/서울의 내곁에 사알짝 놓아두고/터벅 터벅/서울을/떠나버리는 친구!” 그의 시는 광주와 우람한 무등산이 합궁해 낳은 옥동자가 바로 5·18광주민중항쟁임을 웅변해준다.‘겨울소식’은 일종의 예언시 또는 참시(讖詩)로 읽힌다. 이 땅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그것은 곧 주어진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趙시인은 자신의 시작업을 이렇게 규정한다.“나의 시는 내가 태어난 전남 곡성 동리산 태안사에서 발원해 전국토를 온몸으로 내달려 민족과 역사 앞에 올바르게 서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에게 고향은 시적 영감의 원천이며,시를 쓰는 것은 시대의 어둠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다. 趙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태안사는 곧 아폴로의 헬리콘산과 같은 존재임을알게 된다.“나의 눈물 속에는/동리산 태안사 밑에 붙어 있던/초가집들이 어른거립니다//…초가집도 죽창도 옛 친구들의 허벅다리도/아아,누나의 옷고름도/소리내어 울고 있습니다”(‘나의 눈물 속에는’중) 시인은 태안사의 승려였던 아버지를 한번도 ‘아버지’라고 편히 불러보지 못했다.그는 ‘신기(神氣)서린’ 아버지를 열 두살에 여의었다.그 어두웠던 유년의 체험,고향의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울음소리의 환청을 시인은 끝내 뿌리치지 못한다.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종종 좌절과 체념의 정서가 깔린다.‘눈물’이라는 말이 중심시어로 등장한다.문학평론가 김화영교수(고려대 불문과)는 “조태일은아이러니컬하게도 ‘눈물의 시인’이다.눈물에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그것은 손끝의 재주가 아니라 영혼의 힘이다”라고 했다.적절한 지적이다. 趙시인의 일관된 문학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월간 ‘시인’지 활동이다.그는 69년 지금의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뒤에 있던 남일인쇄소란 곳에보수도 없이 들어갔다.그곳에서 그는 시전문지 ‘시인’을 창간했다.김지하,양성우,김준태 등 70년대를 빛낸 시인들이 이 ‘시인’지를 통해 등단했다.“당시 ‘시인’지를 주관하며 김지하씨의 시론 ‘풍자냐 자살이냐’를 실은 적이 있습니다.특권층의 권력형 부정과 부패상을 비판한 담시 ‘오적’ 때문에 김씨가 도망다닐 무렵이었죠.당국의 탄압으로 할 수 없이 책을 회수,문제 부분을 잘라내고 다시 배포했습니다.‘시인’지는 1년 남짓 발간되다 결국 폐간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때 많은 문인들이 고료 한 푼 받지않고 글을 써준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고 회고한다.문학평론가 염무웅씨 같은 이는 ‘시인’지에 ‘서정주와 송욱의 경우’란 평론 한 편 쓴 것이 화근이 돼 S대 전임기용 기회까지 박탈당하기도 했다고 귀띔한다. 趙시인은 최근 외도 아닌 외도를 했다.처음으로 ‘무등(無等) 둥둥’이란창작오페라 대본을 쓴 것.오는 7월쯤엔 여덟번째 시집 ‘도토리들’(가제)도 펴낼 예정이다.“결코 짧지 않은세월 시를 생각하며 시를 보듬고 살아왔지만 시는 점점 낯설고 두렵게만 느껴집니다” 시에 관한한 문리가 트였을법한 그이지만 요즘은 시 쓰는 일이 너무 힘들단다.그의 말마따나 시인은 밤에도눈을 감지 못하는 존재인가보다.金鍾冕 jmkim@
  • 세계인권선언 50돌 ‘한국인권교육‘ 국제회의 주제발표/李容敎

    ◎교사·부모부터 인권의식 높여야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愼鏞碩)는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아 1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인권교육의 진로’라는 주제로 국제회의를 열었다.李용교 광주대 교수의 ‘한국 인권교육의 현실과 대안’이란 주제 발표문을 간추린다. 학교나 사회에서의 인권교육과 훈련 제도가 미비하다.학교 교육에서는 국민의 권리보다 사회 안정과 법질서 확립을 강조,권위주의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강했다.중·고교의 인권이나 권리와 관련된 교과 내용도 사회와 법 질서를 설명하는 단원에서 다뤄지고 있을 뿐이다. 초·중·고의 인권교육 방법에도 문제점이 많다.강의에 의한 주입식 수업방식은 체계적인 지식을 단시간내에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태도나 행동을 중시하는 법질서 교육방법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강의식 수업도 적절한 자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단점을 보완할 수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활용할 자료가 거의 없거나 교과 내용만으로도 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다. 청소년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분명히 인식하고,인권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교사와 부모의 태도가 변화해야 한다. 인권교육에 포함돼야 할 가능한 방안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학교 교육과정을 통한 인권교육=△학생 자신들이 어떤 권리와 책임을 지니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이 가진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 경우가 없었는가를 생각해 본다 △학교나 사회에서 인권침해를 발생시키는 구조적인 원인을 알아본다 △침해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본다. ②청소년 인권에 대한 교사 교육=△학생들이 존중되어야 할 권리의 주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학생의 권리에 대한 침해사례를 알아보고 해결 방안을 찾아 본다. ③자녀의 인권에 대한 학부모교육=△자녀도 독립된 인격체라는 인식을 먼저 가져야 한다 △가정내 의사결정시 자녀의 의견이 존종돼야 한다 △자녀의 진로와 관련해서 자녀의 의사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 민주열사 열전:7/朴寬賢 前 전남대 총학생회장(정직한역사되찾기)

    ◎시민 민주역량 결집한 ‘광주의 아들’/5·18 당시 특유의 지도력으로 평화 시위 주도/교도소내 비인간적 처우에 항거 단식중 사망 역사는 검은 음모를 뿌리치지 못하지만 가끔 환한 광장으로 가는 길을 가리킨다.음모의 시대가 갈듯말듯 하던 1980년 봄 사람들은 광장을 찾았다. 1980년 봄 광주의 도청앞 광장은 일개 지리적 점에서 드넓은 역사적 공간으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었다.이 변신은 朴寬賢이란 촉매제 덕분이었다. 80년 5월14일 박관현이 주도하는 ‘민족민주화 성회(聖會)’가 도청앞 광장에서 개시될 때 1만명의 참가자 중 대학생 아닌 시민은 소수였다.박관현을 아는 시민은 더더구나 적었다.성회 마지막날 5월16일 야간 횃불시위를 마치고 다시 광장에 모였을 때 참가자는 5만명이 넘었고 시민 수가 학생 못지 않았다.그리고 50만명 이상의 광주 시민들이 朴寬賢을 ‘광주의 아들’‘무등의 아들’로 부르고 있었다. 朴寬賢은 광주의 희망으로 우뚝섰다.그러나 도청앞 광장은 그의 존재보다 더 큰 부피로 살아나고 있었다. “민주화의 성스런 횃불이 꺼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영원히 꺼진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활활 타오르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朴寬賢은 “휴교령이 발동되면 정오에 도청앞 광장에 모이자”고 당부했다.광장은 광주 시민을,역사를 안을 태세가 되었다. 80년 4월9일 직선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뽑혔던 朴寬賢은 5·18 광주민중항쟁이란 역사의 핏빛 숲으로 똑바로 난 푸르른 길이다.광주에 박관현이 있음으로 해서,박관현의 결집력과 지도력이 있음으로 해서 5·18의 야만적 폭거와 승화된 공동사회체의 대조적인 두 측면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민주화운동에 남다른 열정 그는 한달이 약간 넘는 짧은 기간에 전남대 학생들과 광주 시민들에 잠재된 민주역량을 깊은 속까지 파내고 정연한 모양새로 다듬었다. 광주 시민들은 이 민주역량의 판석들을 꺼내 비록 가장 불행한 형태이긴 하지만 거대한 항거의 피라미드를 구축했던 것이다. 79년 10월26일 朴正熙 대통령의 사망과 함께 유신철폐와 민주화에의 기대가 드높기만 했으나 崔圭夏 과도정부는 애매한 이원집정제의 정부주도 개헌을 고집하고 있었다.무엇보다 全斗煥 중앙정보부장 겸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는 비상계엄 상태를 유지하면서 정권찬탈의 야욕을 구체화해 갔다.분열과 대립으로 내닫는 정계보다는 대학이 민주화의 기수로 나섰으며 특히 광주의 전남대가 그러했다.박관현이 4월 27세의 나이많은 법대 3년생으로 총학생회장에 당선할 때 그의 사회 및 학원 민주화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탁월한 대중지도자 자질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소수였다. 고시 합격을 통해 사회정의 실현을 강력하게 꿈꾸었던 그는 1학년 말 야학운동에 뛰어드는 일대 방향전환을 한다.‘들불’ 야학을 통해 박관현은 尹祥源,金永哲 등 광주 빈민·노동 운동의 선구자들을 만나는데 박관현과 깊은 신의를 맺은 이들은 5·18 때 시민투쟁군의 중추로 활약했다. ○현상금 눈먼 동료 공원이 고발 朴寬賢은 5월 중순 단 며칠새 민주화를 희원하는 모든 광주 시민의 가장 믿음직한 아들로 자리잡았다.변혁에 대한 갈망은 리더에 대한 갈구를 깊게했고 민주화 변혁 갈망이 유달랐던 광주에 때마침 청중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 연설력의 박관현이 등장한 것이다.전남대와 박관현의 주도로 계엄령 아래 3일 연속 도청앞 광장에서 열린 민족민주화 성회는 비상계엄 즉각해제를 요구했으나 평화스럽게 마무리되었다.朴寬賢은 이때 방관자,구경꾼으로 머물러 있던 시민들을 민주화 희원의 역군으로 동참시키는 자력을 발휘했다. 그의 이같은 능력은 세계 역사상 드문 5·18 항쟁의 일반시민 주도 사실과 맞물려 전설이 되다시피 했으나 정작 박관현은 5·18 때 현장에 있지 못했다.신군부가 5·17 비상계엄 확대 쿠데타로 민주 인사들을 사전검거하자 18일 아침 격렬한 논쟁 끝에 학생회장 박관현의 피신이 결정됐다. 인간의 야수적 본성을 그대로 드러낸 만행과 함께 사람들의 더불어 같이 사는 소질이 꽃처럼 만개한 열흘간의 항쟁 상황을 여수 앞바다 돌산섬에서 전언으로만 듣게된다.몇번 잠입을 시도하다 실패한 박관현은 항쟁이 진압된 뒤 6월6일 서울로 도피한다.항쟁후 ‘공수부대원들이 조각조각내 버렸다’는 소문이 돌았던 朴寬賢은 82년 4월 서울 편물공장에서 현상금을 탐한 동료 공원의 고발로 체포돼 광주로 압송됐다. “도청앞 광장에서 만나자”는 자신의 ‘말’을 금쪽같이 지켜줬던 광주에 23개월 만에 발을 디딘 박관현은 드디어 ‘행동’한다.내란 중요임무 종사 죄목으로 5년형이 선고됐으나 朴寬賢의 눈은 다른 곳을 천착하고 있었다.그는 광주교도소 수감 3개월 후인 7월부터 교도소 내의 비인간적 처우에 항거하는 단식을 실시한다.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로 육신을 택한 그의 단식은 철저한 것이었고 3개월 동안 3차에 걸쳐 50여일에 달했다. ○단식중 외부진료 한번 못받아 교도소 당국은 처우개선 약속을 조롱하듯 파기하면서 점점 한계 상태로 빠져드는 그를 외부진료 한번 없이 방치했다.10월10일 온 신경이 돌처럼 굳어 도무지 음식을 음식으로 여기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전남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급성 심근경색증에다 급성 폐부증 증세로 12일 새벽 숨지고 말았다.만 29세였다. 朴寬賢의 젊고 강한 넋은 5·18의 핏빛 숲 뒤꼍에 언제나 푸르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朴寬賢 열사 연보 ▲1953년 전남 영광군 불갑면 출생 ▲70년 광주동중 졸업 ▲73년 광주고등학교 졸업 ▲74년 군입대 ▲78년 전남대학교 법대 입학 ▲78년 12월 광주공단 노동자실태 조사작업에 참여 ▲79년 광천 들불야학 강학 활동 ▲80년 4월 전남대 총학생회장 당선 ▲80년 5·17조치로 서울 피신 ▲82년 4월5일 체포,12일 광주교도소 수감 ▲82년 7∼10월 3차례에 걸쳐 50여일 간 단식투쟁 ▲82년 9월 ‘내란중요임무종사자’로 5년형 선고 ▲82년 10월12일 전남대 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사망 ◎누나 朴幸順 여사/어머니는 아들 검거된뒤 생존 사실 알아/동생 죽기전 “전면 단식” 조언 지금도 恨 朴寬賢 열사의 셋째 누나인 朴幸順 여사(49)는 광주대에서 구내매점을 열고 있다. 항쟁이 끝난 후 寬賢이 죽지 않고 서울에 은신한 사실을 서울의 큰언니를 통해 알았지만 寬賢의 부탁대로 아들의 생사를 몰라 애태우는 어머니에겐 체포 때까지 비밀에 부쳤다.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어머니의 안색이 달라져 당국의 주의를 끌까 우려해서였다. 체포된 뒤 단식 소식을 전해듣고 찾아간 그에게 寬賢은 새벽 2시 무렵에 고문하는 소리가 수시로 들리고 수형자의 부식비를 빼먹는 비리와 함께 생명 유지도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는 음식만 지급한다며 “안에서 이런 악을 해결하지 못하면 바깥에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누나는 자신의 잘못된 조언이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며 지금도 가슴아파한다.단식이 30일째에 가까웠을 무렵 재소자 폭행 근절,주·부식 정량 지급,정치범 부당 차별대우 개선 등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았다며 다시 전면 단식을 강행할 것인가,부분 단식으로 나갈 것인가를 寬賢이 자신에게 물었다는 것이다.이때 누나는 다소라도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있으면 ‘전면’으로 나가라고 말했는데 동생이 죽기 열흘 전쯤 한 이 ‘매정한 조언이 두고두고 한이 된다는 것이다. ◎동료 宋善泰씨 회고/결벽 심해 현실적 타협 거부/뜻 정하면 끝장보는 성격… 自身에 철저/검정고무신 신고 술·노래 잘하던 학생 朴寬賢 총학생회장 아래서 제2선의 비공식 기획실장 역을 맡았던 宋善泰 현 광주 시의회 전문위원은 “결벽증이 있을 만큼 자신에게 철저했던 朴寬賢은 뜻을 정하면 끝장을 보고 말지 결코 어설프게 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학생회장 취임 직후 학원민주화 현안으로 어용교수들의 퇴진 문제가 대두됐을 때 朴寬賢은 타협안이나 다른 이슈와 함께 추진하자는 의견에 반대,어용교수의 발본색원과 문제의 완전해결을 강력 주장했다.또 학생들이 단식 농성에 들어간 후 몇몇 집행부 학생들이 투쟁 지도를 위해 김밥을 먹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는 이를 빼앗아 내팽겨쳐 버렸다고 한다. 소금장수,모기장 행상,편물공장 공원 등으로 서울에 피신하고 있을 때 광주 민주인사들에게 연락을 해 고향에서 잠적하거나,자수를 해서 형을 살고 나와 ‘내일’을 도모할 수도 있었다고 본 宋위원도 그의 강직한 성품이 이런 현실적 타협책을 거부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학생회장이 되기 전까지 쭉 검정 고무신 차림으로 학교에 다녔던 朴寬賢은 술도 잘 먹고 노래도 곧잘하는,놀 줄아는 젊은이였다고 한다.
  • 왜곡보도 50건 선정

    언론개혁시민연대는 한국 언론의 대표적인 왜곡 보도사례 50건을 선정,2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전시실에서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새달 2일까지 계속되는 전시회는 독재권력을 정당화하거나 용공조작·인권유린 등에 앞장섰던 허위 왜곡기사들의 실체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언개련이 선정한 허위 왜곡보도 사례 50건을 소개한다. □왜곡보도 50건 내용 ▲권력의 정당화­민주화 외면 ­자유당 4사 5입 개헌 정당화(서울 56년 3월) ­이승만 우상 숭배(서울 56년 3월) ­박정희 군부쿠데타 지지(경향,조선 61년 5월) ­10월 유신 지지(조선,중앙,서울,한국 72년 10월18일) ­부마사태 왜곡(경향,서울,중앙,한국 80년 10월) ­전두환의 권력 장악 정당화(서울 80년 4월) ­광주민주화 운동 포고로 매도(조선 80년 5월) ­전두환 미화­‘인간 전두환’(81년 8월) ­4·13 호헌 조치 옹호 ­김대중 친서설(연합 89년 7월) ▲냉전이데올로기 강화와 용공조작 ­이승복군 허위보도(조선 68년 12월) ­경향신문 기자 6명 용공혐의 구속(80년 5월)­김근태 용공조작 사건(경향,중앙 85년 10월) ­‘대학가의 음영’ 시리즈(경향 85년 10월) ­건국대 사태(86년 10월) ­평화의 댐(86년 10월) ­문익환 목사 기자회견(조선 89년 5월) ­북한 핵실험 보도(92년 6월) ­김평일 망명설 보도(94년 8월) ­성혜림 망명 사건(96년 2월) ­북한 공군 이철수 대위 귀순 사건 컬러 조작(96년 5월) ­북한정치범 수용소 보도(97년 7월) ­이석현 의원 명함 파문(97년 8월) ▲민중생존권 외면 인권 유린 ­광주대단지 사건(71년) ­함평고구마 피해보상 요구(76년) ­삼청교육대 왜곡(80년 8월) ­YH여공 신민당사 농성 사건(79년 8월) ­권인숙양 성폭행 왜곡(86년 8월) ­노동자 대투쟁(87년) ­김기설 유서대필 논쟁(91년 7월) ­여의도 농민시위(94년 6월) ▲선정주의에 의한 오보 ­김구,이승만 동석 사진 조작 ­중공군 인해전술 사진 ­압록강변 병사 사진 ­일본군 독립군 작두 처형 사진 ­호랑이 출몰 사진(동아 80년 1월) ­김일성 주석 사망설(조선 86년 11월) ­사노맹 백태웅씨 옥중 결혼(중앙 92년 6월) ­서해 훼리호 백두운 선장 생존(한겨레 등 93년 10월) ­육영수 여사 파격 의혹(국민 90년 5월) ­뉴스위크 이대생 ‘돈의 노예들’ 사진보도(91년 11월) ▲언론사의 이기주의에 의한 왜곡 ­신문제작 거부 사태에 대한 견해(조선 75년 3월) ­동아투위에 대한 왜곡(동아 75년 3월) ­류근일 칼럼 ‘정주영 변수’(92년 7월) ­선거유세장 인파 조작(제주신문 92년 6월) ­지역민방 케이블TV 경영 수지 과장(95년 5월) ­중앙일보 대선 편파보도(97년 12월) ­월 펀슨 세계은행 총재 발언(97년 9월) ­재경원 발표(97년 11월) ­한국경제 위기 아니다(97년 4월)
  • 좋다가 만 여·야 의원들/개인사업 無關 상위 재배치

    ◎항의 빗발… 원내 총무들 곤욕 20일 국민회의 원내총무실은 빗발치는 ‘항의전화’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자신의 사업과 관련된 상임위에 배정됐다가 ‘무관(無關) 상임위’로 전격 교체된 의원들의 불만 때문이었다. 韓和甲 총무는 당사에서 열린 지도위회의 도중 청와대로부터 긴급 전화를 받았다.“개인사업과 연관된 상임위에 배정받을 경우 국정운영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시중의 여론을 전달 받았다.같은 시각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정례 기자브리핑을 통해 “일부 국회의원들이 개인 사업등과 관련된 상임위에 배정된 것은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여망에 부응하지 않는 것”이라고 金大中 대통령의 의중을 전했다.국민들의 정치개혁 열망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된다는 판단이다. 韓총무는 곧바로 부총무단 회의를 소집,鄭喜卿 鞠창근 金仁坤 의원 등 3명의 상임위 교체를 확정했다.鄭의원은 청강학원 이사장,金의원은 광주대 이사장,鞠의원은 운송사업을 하고 있다.이 때문에 鄭·金의원은 교육위에서 통일외교통상위와 농림해양수산위로,鞠의원도 건교위에서 농림해양수산위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재경위에 배치됐던 趙洪奎 의원은 정무위의 鄭漢溶 의원과 맞바꿨고 李錫玄 金成坤 의원은 각각 정무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위로 자리를 옮겼다. 한나라당도 경민전문대 이사장인 洪文鐘 의원(교육위)을 과학기술정보통신위의 黃祐呂 의원과 맞바꿨고 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중인 洪準杓 의원은 법사위원을 자진 사퇴했다. 자민련도 4명 의원이 자리를 바꿨다.朴泰俊 총재는 환경노동위에서 정무위로,농림해양수산위의 姜宗熙 의원은 환경노동위로 조정됐고 국방위의 李澤錫 의원과 통일외교통상위의 李東馥 의원은 자리를 맞바꿨다.환란책임으로 구속된 무소속 姜慶植 의원은 당초 법사위에서 환경노동위로 바뀌었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의 경우 여전히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91년 수서택지 비리사건때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던 자민련 金東周 吳龍雲 의원은 건교위를 고수하고 있다.또 (주)기산 사장 재직시 횡령과 뇌물수수 혐의로 사법처리가 임박한 한나라당 李信行 의원과 선거법 위반혐의로재판에 계류중인 국민회의 李基文 의원이 법사위에 배치됐다. 학교법인 영도의숙 이사장인 金許男 의원(자민련)도 교육위를 고수했으며 제약회사를 운영중인 金秉泰 金明燮 의원(국민회의),봉생병원을 경영하는 鄭義和 의원(한나라당),의료법인 순영재단 이사장인 黃性均 의원(한나라당) 등은 보건복지위에 포진한 상태다.
  • 보안법 위반 저작물 재평가를/柳一相(기고)

    문민정부를 자칭하던 金泳三정권하에서 학술탐구와 저술활동에 ‘부지런한’ 몇분 교수들이 열정에 넘친 자신들의 연구성과를 공표했다가 오히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사건들이 있다.광주대 朴智東 교수는 그의 저서를 이적표현물로 몰아부친 구정권에 의해 구속되었다가 현정권 출범후 건강상태에 대한 인도적 배려로 보석되어 현재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독재정권 유지 희생양 이밖에도 한국외국어대 李長熙 교수는 96년 통일원 추천도서로까지 지정되었던 ‘나는야 통일 1세대’라는 교양저술로 지난해말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줄 의도를 깊숙이 감춘 공안검찰의 집요한 구속요구에 시달렸다.94년 경상대 張尙煥·정진상 교수의 ‘한국사회의 이해’사건 역시 위의 두 사건과 같은 유형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다.이들 역시 아직도 재판에 계류중이다. 이 사건들에서 우리는 국가보안법이 군사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지식인들의 인권을 의도적으로 유린하고 정론직필 대신 사론(邪論)과 곡필,그리고 ‘당근’과 같은 연구프로젝트에 탐닉하도록 만드는 부작용이 있었음을 재인식하게 된다.왜냐하면 이들 세권의 저술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한국사회가 안고있는 여러 모순들의 근원과 그 전개과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방책을 궁리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게 하고,더 나은 말과 글로 자신들의 의식과 판단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양서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는 언론학자로서 朴智東 교수의 ‘진실인식과 논술방법’이라는 저술이 전체적으로 보아 올바른 논술전개를 위한 안내서로서 기자를 포함한 논술자가 오류에 빠지지 않고 객관성,전체성,심층성을 고려하면서 논술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취재보도 방법론의 책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朴교수를 구속에까지 이르게 했던 것은 검찰측의 일부가 선거때의 북풍공작에 편승하여 민주주의발전과 사회개혁을 위해 애써오던 사람들의 올바른 의견공표에 재갈을 물리고 보수·수구세력의 집권을 연장해 보려는 정치적 의도에 조직적으로 동원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지식인 바른양심에 재갈 현행 국가보안법 제7조 1항과 5항은 이적단체에 대한 찬양·고무와 관련표현물을 제작한 죄를 처벌하는 규정인데 적용범위가 광범하여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을 정도로 법문(法文)으로서 애매모호한 점이 있지만 더욱 큰 문제는 검찰의 교조성,언론의 무책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 무책임성도 한몫 이제 검찰과 언론은 구시대의 잘못된 정치로 인해 공안몰이의 피해자가 됨으로써 고통을 당한 이웃들을 편안하게 해줘야 할 의무가 있음을 심각하게 깨달아야 한다.검찰은 朴智東 교수를 비롯하여 연구실적의 공표 때문에 사법적 처리의 대상이 된 다른 3명의 교수들에 대해서도 공소를 취하하는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언론도 공정보도를 포기하고 남북관계라면 무조건적으로 색안경을 쓰고 보던 과거의 타성으로부터 비판적 이성을 되찾는 것이 진정한 언론개혁임을 숙지해야한다.국민정부의 검찰과 새시대의 언론은 金大中 대통령이 추진하는 민주사회를 활짝 여는데 동참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이제 새로운인식과 판단의 잣대로 새시대의 법질서를 지켜주고 도와주기 바란다.
  • 영남권 大學 한총련 중추세력으로/학생 운동권 지역별 재편

    ◎경북·부산 등 대부분대 NL 강경파가 장악/전통적 강성 광주·전남지역은 온건 ‘변신’ 새 정부 출범이후 학생 운동권이 지역에 따라 재편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지난 3월말을 기준으로 총학생회장 선거를 끝낸 전국의 159개 대학을 분석한 결과,지금까지 민족해방(NL)계열의 강경파가 주류를 이뤘던 광주·전남 지역 대학에서 비운동권 및 NL 온건파와 민중민주(PD)계열 총학생회장들이 대거 당선됐다. 반면 그동안 비교적 온건했던 경남·북 지역 대학은 상당부분 NL 강경파가 득세했다.한국대학총학생회가 오는 10일 대구 영남대에서 제6기 대의원 대회를 갖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고 있다. 현재 NL 강경파가 장악한 곳은 경북대 부산대 경산대 영남대 동아대 계명대 등 경남·북 대부분과 외국어대 경기대 국민대 동국대 한양대 인천대 등 30개 대학이다. 경희대 중앙대 세종대 숭실대 등과 전남대 전북대 등 23개 대학에서는 NL계 온건파에서 총학생회장을 냈다. 민중민주 계열은 서울대 연대 고대 성균관대 건국대 서강대등 23개 대학이다. 83개 대학에서는 비운동권 출신 총학생회장이 당선됐다.여기에는 광주대 조선대 광주동신대 호남대 군산대 등으로 호남지역 대학이 적지않다. 과격한 학생 운동을 이끌던 조선대와 전남대에서도 온건파 학생회장이 당선됐다.
  • 학생운동의 새 방향(사설)

    광주·전남 지역 12개 총학생회장단이 24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韓總聯)의 폭력투쟁에 반대하는 ‘비폭력 평화선언’을 발표해 시선을 모으고 있다.이들 학생회장들은 “새 학기 들어 다시 시작될 한총련의 폭력투쟁을 관망할 수 없어 이 선언을 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전북지역 13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전북총련도 오는 27일 한총련과 범민족청년학생연합(汎靑學聯)을 공식탈퇴한다고 한다.이들은 또 한총련과 달리 비폭력적이며 사회에 봉사하는 새로운 학생운동조직을 이번 학기내에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학생운동방향은 바로 그들의 선언에서도 밝혔듯이 교육개혁과 대학자치,사회봉사활동으로 표현되고 있다.새로운 시대에 맞는 올바른 방향으로 여겨진다.이에 앞서 전남대와 동신대 총학생회는 지난 5,6일 ‘사랑의 피 나누기 헌혈운동’을 펼쳤으며 뒤이어 조선대와 광주교대,광주대도 이 운동에 동참해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했다.단순한 선언적 의미 이상의 실천의지가 담겨있음을 전해주고 있다.이들은 폭력시위를 주도하는 한총련에 반대하는 모든 대학들과 연대해 이같은 새로운 학생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어 더욱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남·북 지역 대학 총학생회의 이같은 움직임은 한총련이 새 학기 들자마자 전(前)정부의 경제실정을 물어 ‘전직 대통령 체포조’를 결성해 과격·폭력 집회와 시위를 획책하고 있는 때에 나와 더욱 대조를 보이고 있다.한총련은 전국 206개 대학 가운데 75%인 155개 대학이 탈퇴할 정도로 절대다수의 대학이나 학생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는 소수 집단이 됐다.그러나 극소수 핵심분자들은 아직도 주사파(主思派)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조직을 재건해 폭력시위와 불법적인 남북학생교류 등을 꿈꾸고 있는 실정이다.새로운 학생운동은 폭력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21세기를 준비해야 된다는 사실을 그들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광주·전남 12개大 “한총련 탈퇴”

    ◎폭력투쟁 반대선언… 새 협의체 결성키로 【광주=南基昌 기자】 광주·전남지역 12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은 24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폭력투쟁에 반대하고 새로운 학생회 협의체를 출범시키겠다는 내용의 ‘비폭력 평화선언’을 발표했다. 총학생회장단은 이날 상오 9시 전남대 총학생회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해 한총련 출범식 폭력투쟁 등으로 학생운동이 국민의 의식과 정서에 어긋난 데 문제의식을 느꼈다”면서 “한총련의 폭력적 투쟁에 엄중한 자제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이번 비폭력 평화선언에 참가한 대학 총학생회는 앞으로 모두 한총련을 탈퇴하기로 했다”면서 “이를 위해 전남대는 다음달 9일,조선대는 다음달 중순 한총련 탈퇴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총련과는 별도로 사회봉사활동 등을 전개하는 전국적 규모의 학생운동조직을 이번 학기 내에 출범시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평화선언에 참가한 대학은 전남대,조선대,광주대,호남대,동신대,서강전문대,전남전문대,보건전문대,동신전문대,조선대공업전문대,송원전문대,기독간호전문대 등 12개 대학이다.
  • 사립대 올 등록금 동결 잇달아/교육부,50여곳 조사

    ◎일부 대학은 소폭 인상 그칠듯 교육부는 18일 최근 50여개 사립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고려대 등 23개 대학이 이미 등록금 동결을 결정했으며,소폭 인상을 고려하고 있는 일부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도 대부분 동결을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등록금을 동결하기로 한 사립대는 숙명여대 한양대 서울여대 고려대 동국대 단국대 경희대 경기대 덕성여대 인하대 가톨릭대 대진대 동아대 영남대배재대 부산외대 경남대 경산대 계명대 광주여대 전주대 광주대 전북산업대 등이다. 교육부는 이번 조사가 전국 135개 사립대를 모두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등록금 동결을 결정한 대학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박지동 광주대 교수 구속/보안법 위반 혐의

    광주지검 공안부는 28일 광주대 언론대학원장 박지동 교수(57·신문방송학과)를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제작배포) 혐의로 구속했다. 박교수는 지난해 4월 말 고등학생 및 대학생에게 논술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저술한 ‘현실인식과 논술방법’이란 책에서 북한 주체사상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역설하고 우리나라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고 주장한 혐의다. 검찰은 지난 7월초 이 책을 내논 출판사인 서울 마포구 일월서각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박교수의 원고와 책 1백80여권을 압수하고 내사를 벌여왔다.
  • 개방대 정원 내년 1,860명 증원

    교육부는 23일 전국의 19개 개방대 가운데 초당산업대 영산국제산업대 등 6개 사립 개방대의 98학년도 입학·편입학 정원을 올해보다 1천860명 늘어난 3만8천540명으로 확정했다. 서울산업대 등 8개 국립 개방대,일반대학으로 전환을 검토중인 광주대와 동명정보대 등 2개 사립 개방대,증원신청을 안한 한려산업대 등 3개 사립 개방대의 정원은 동결됐다.
  •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씨/경찰 피하다 추락사

    16일 0시10분쯤 광주시 북구 매곡동 청암 원룸아파트 1308호에서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씨(27·광주대 금융학과 93년졸업)가 베란다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 광주대교구·전주교구/60주년 행사 풍성

    ◎신앙대회·성극공연 등 기념축제/40돌 맞은 부산교구도 행사 다채 천주교 광주대교구(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와 전주교구(교구장 이병호 주교)가 올해로 교구설정 6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경축행사를 마련했다.올해 교구설정 40주년을 맞는 부산교구(교구장 이갑수 주교)와 내년에 40주년이 되는 청주교구(교구장 정진석 주교)도 신앙대회와 북방선교 청소년선도 학교개교 등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 교구는 2000년 대희년을 3년 앞두고 맞는 교구설정 행사를 대대적으로 마련,그 의미를 새롭게 새길 예정이다. 광주대교구는 광주에서 기념심포지움을 여는 한편 10월 12일 목포 유달경기장에서 전 교구신자가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기념축제를 개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광주대교구가 목포 행사에 특별히 비중을 두는 이유는 올해가 목포지역 선교 1백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광주대교구는 이를 위해 목포 신정동성당에 목포선교 1백주년 기념관과 레지오 마리에(마리아의 군대) 전시관도 건립할 계획이다. 전주교구는 ‘새로 나자’를 주제로 오는 28일 교구신앙대회를 갖는 한편 20일 군산 시민문화회관,21일 익산 솜리문예회관,25∼27일 전주 삼성문예회관에서 전주 가톨릭예술단의 성극 ‘님이시여,사랑이시여’를 공연한다.기념행사를 위해 준비위원회 구성을 마친 전주교구는 성지순례와 성서통독,성체성사 등의 실천사항을 모든 신자들에게 제시했다. 부산교구는 10월 12일 사직체육관 야구장 및 실내체육관에서 미사와 체육대회,청년예술제·성가대회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1784년 전래된 한국천주교는 1831년 서울대교구의 전신인 조선교구가 설정된 이래 대구대교구(1911년)·원산대교구(1920년) 등이 설정됐으며 현재 북한에 있는 평양교구와 함흥교구를 포함,모두 17개의 교구를 갖고 있다.
  • “야 후보 단일화 협상 합의”/김대중 총재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20일 『자민련 전당대회(24일)가 끝난뒤 양당 대표를 뽑아 본격적인 후보단일화 협상을 시작하기로 김종필총재와 합의를 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4면〉 국민회의 김총재는 이날 광주대학교에서 열린 호심·인성학원(이사장 김인곤 의원) 창립 27주년 기념식에 참석,축사를 통해 『야권 후보단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을 받들어 반드시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두총재는 이날 상오 광주행 아시아나 비행기에 나란히 동승,50여분간의 기내대화에 이어 광주대학 이사장실에서의 10분간의 단독회동을 통해 이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 DJ·JP/「하늘 회담」 50분/광주행 기내서 단일화 등 논의

    ◎최근 “불협화” 입방아 잠재우기 20일 DJP(김대중­김종필 총재)의 「광주회동」은 외견상 후보단일화 협상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 두 총재는 이날 호심·인성학원(이사장 김인곤 의원) 창립 27주년 기념식 참석을 전후로 두차례의 회동을 가졌다.두 총재의 회동은 국민회의 소속의 김의원(전남 함평·영광)의 고희 출판기념회를 빌미로 이뤄졌다.양당 소속의원 60여명이 몰려 분위기도 한껏 고조시켰다. 두총재는 광주행 비행기에 나란히 동승,50분 가까운 「공중대화」에 이어 광주대 이사장실에서의 10여분간의 단독회동으로 이어졌다.하지만 이날 주요대화는 주로 기내에서 이뤄졌고 단독밀담은 최근 불협화음으로 비춰지는 DJP연합에 대한 「모양갖추기」에 불과하다는 해석이다. 회동결과는 DJ가 축사를 통해 발표했다.그는 『자민련 전당대회(24일)가 끝나는데로 양당이 대표를 뽑아 공식적으로 단일화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며 『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반드시 야권단일화를 성사시키자는 합의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DJP회동은 시종 DJ가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분위기였다.당초 계획된 두 총재의 오찬회동도 JP가 일정상의 이유로 무산시켰다는 후문이다.이에 국민회의 김봉호 지도위의장이 이날 긴급밀담(?)을 중재하는 등 분위기 조성에 안간힘이었다.이종찬 부총재는 『최근 DJP단일화 전망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가 많아 이를 한번에 잠재울 필요성이 있었다』며 광주회동의 배경을 털어놓았다. 여기에 최근 JP의 「보수대연합」을 겨냥한 듯한 일련의 행보도 DJ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단일화 협상의 조기가시화로 JP의 발목을 묶어둘 수순이 필요했다는 해석이다.
  • 열차 강제정차 남총련서 지휘/경찰 밝혀

    ◎대학별 승차지점 지정… 조직적 집단탑승/무선호출기 음성녹음 이용 작전 지시/화염병 던지며 운행저지… 720명 승차 지난달 30일 「광주·전남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남총련)소속 학생 720명이 열차를 강제로 세워 집단 상경한 사건은 남총련 지도부의 치밀한 계획 아래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10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남총련 지도부는 대학별 승차 지점을 지정해주고 집단탑승을 위한 실무지침을 내리는 등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계획을 짰다. 남총련 의장 정기찬씨(24·조선대 총학생회장·지난달 30일 구속)와 투쟁국장 김형환씨 등 지도부는 상경 하루전인 지난달 29일 산하 36개대학 투쟁국장을 불러 실무지침을 하달했다. 탑승 열차는 「30일 하오 1시 목포발 서울행 무궁화 244호 열차」로 정했다.대학별로는 5개 지점에 미리 모여 탑승토록 지시했다.목포지역 대학은 무안군 일로역,조선대는 함평군 학교역,호남대·광주대·동신대 및 광주지역 전문대는 나주역,전남대는 정읍역으로 배정했고 여수·순천지역 학생들은 전라선을 이용,전북 익산 신태인역까지 와서 열차에 합류토록 했다. 승차 책임은 대학별 총학생회장과 부회장이 맡고 현장 실무는 투쟁국장이 전담토록 했다.학생들은 선배 1명에 후배 1∼2명씩,2∼3명이 한조가 돼 행동하도록 했다.경찰에 붙잡히면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했다고 말하도록 가르쳤다. 열차를 탑승하기 전까지 연락은 주로 무선호출기의 음성녹음을 이용했다. 이들 가운데 목포지역 대학생 120여명은 지난달 30일 하오 1시30분쯤 무안군 일로역에서 화염병 등을 던지며 열차를 강제로 세워 승차했다. 이어 30여분뒤 열차가 함평 농공단지앞 언덕길을 서행할 때 조선대생 50여명은 열차를 세우고 야산 등지에서 내려와 탑승했다. 이런 방법으로 이날 열차에 오른 학생은 모두 720여명이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열차운행을 52분동안 지연시켰으며 이를 제지하는 경찰에 화염병 230여개를 던져 정읍경찰서장 등 23명에게 중화상을 입혔다. 학생들은 열차가 서울 영등포역에 도착하자 하차,떼를 지어 선로를 마구 넘었고 이 때문에 다른 열차 및 전동차 운행이 13분간 지연되기도 했다. 경찰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서울에 올라오기전 학교별로 차비 등 참가비 명목으로 2∼3만원씩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집행부가 이 돈을 빼돌렸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 한총련 시위장비 강화·조직화/무법천지 5일 왜 진압안되나

    ◎도시게릴라식 동시다발… 경찰 속수무책 한총련의 과격시위가 서울 도심에서 5일 동안이나 계속되는데도 경찰이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는 까닭은 쇠파이프·화염병 등으로 무장한 학생들이 전례없이 극렬하게 저항하는데다 사전 현장답사와 「성동격서」 전술 구사 등 치밀한 계획 아래 시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한총련이 지난해 연세대 사태를 철저히 분석,작전을 보완한 데다 「시위 지휘부」가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특히 1만5천여명의 경찰 병력이 서울대 한양대 등 주요 대학과 지하철 역 등을 철저히 막고는 있었으나 을지로 대학로 등 서울 도심 등지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몰래 빠져 나간뒤 다시 모여 동시다발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1만여명의 시위대들을 막기에는 속수무책인 형편이다. 3일 경찰에 따르면 한총련이 한양대를 출범식 장소로 고집하는 이유는 지하철 2호선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감안한 것이다. 한총련은 지난해 시위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니다 3·4호선을 통해 30분내 시내로진입할 수 있는 2호선을 주로 활용했다. 올해도 이를 최대한 활용해 1호선과 7호선 및 도심에서 가까운 한양대를 택했다.2일 고려대에서 나온 5천명 가운데 4천여명은 하오 7시쯤 신설동역∼순환선 성수∼뚝섬역으로 이동,경찰의 눈을 속이고 성동교에 도착했다.신당역∼하왕십리 사이에서는 지하철 선로를 걸어서 이동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지난 1일에는 1천여명이 성동교 인근 도로를 점거한 채 사전답사를 하고 한양대 전철역 옥상에 오르면 좌우 양방향으로 경찰의 움직임을 훤히 알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시위의 귀재」라고 불리는 한총련 김준배 투쟁국장(26·광주대 4년중퇴)이 진입작전을 주도했다.가명 「태경」으로 알려진 김씨는 강위원의장 등 지휘부와 4천여명의 학생을 한양대로 들여보내기 위해 남총련 소속 「사수대」 350명을 직접 지휘했다. 경찰의 고위관계자는 『투쟁국장이 진두지휘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이날 선두에 나선 사수대는 별도의 선발을 거쳐 지리산에서 합숙훈련을 마친 정예』라고 말했다. 김씨는 학생 300명을 먼저 내세워 성동교 남단에 배치된 3개 중대 400여명 병력을 자신의 진영안으로 깊숙히 끌어들인뒤 기습공격,10여분만에 성동교를 건너 한양대 후문까지 500여m를 밀어붙이는 숫법을 썼다. 또 유상경의 사망소식을 접한 순간 경찰의 거센 반격으로 많은 학생이 고립될 것을 예측,학생들과 지휘부를 철수시키기도 했다.연세대사태 때 학생들과 지휘부를 고립시킨 경찰의 작전을 역이용했다. 학생들은 또 성동격서 전술을 사용,「성동교 작전」 시행 직전 반대편인 제2마장교와 도선로타리 부근에 각각 300명과 500명의 학생을 보내 경찰의 시선을 돌렸다.
  • 이인제 지사/광주서 전·노씨 사면 강조

    ◎“악명 떨쳐버리고 미래로 나가자” 역설/홍남순 변호사 등 방문·5·18묘역 참배 러시를 이룬 대선 예비후보의 5월 광주행에 이인제 경기도지사도 끼었다.이지사는 11일 광주로 내려가 재야원로 홍남순 변호사를 방문하고 이환의 광주서구위원장 등 광주·전남지역 지구당위원장 15명을 만났다.홍변호사는 『든든한 병풍이 되어달라』는 이지사의 부탁에 『늙은이들은 물러나고 참신한 신진들이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이지사가 주장해온 세대교체론에 화답한 셈이다.이지사는 이어 가진 기자간담회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을 강한 톤으로 주장했다.그는 『이들이 역사와 국민앞에 진정으로 뉘우치고,광주시민과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김영삼 대통령 임기안에 화합조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같은날 천주교 광주대교구 윤공희 대주교는 『정치권에서 국민화합 운운하며 정략적 이해차원에서 사면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것은 정의의 정신에서 벗어난다』는 두 전직대통령의 사면을 반대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이지사는 12일 상오 5·18묘역을 참배한 뒤 광주대교구로 윤주교를 방문했다.이지사는 『광주와 전남이 금세기 안에 악몽을 떨쳐버리고 미래로 힘차게 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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