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광복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출하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분화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메시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불화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129
  • 미군유해 찾기와 애국심(박화진 칼럼)

    지금 평양에선 6·25때 전사 내지 실종한 미군유해 발굴봉환을 위환 미·북유해협상이 1주일째 진행중이다.얼마전 뉴욕회담에서 미국이 그동안의 유해송환에 보여준 북한의 노력에 사의를 표하고 대가로 2백만달러(약 16억원)을 지급하며 금년 10월이전에 유해발굴 미·북 공동작업을 개시하기로 합의한데 따른 실무회담이다.미국정부가 보이는 이같은 미군 전사·실종자유해 찾기노력의 집요성과 끈질김에 놀라고 의아스러워 하는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이미 46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유해를 찾고 발굴하는 일은 물론 신원확인도 사실상 불가능하리만큼 지난한 상황이라 하지 않는가.6·25당시의 주로 미군인 주한유엔군 실종자수는 8천1백72명이며 최근까지 북한이 넘겨준 유해는 1백62구였다.그나마 말·소등 동물뼈를 제하고 미군유해로 확인된 것은 4구 미만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찾기에 열심인 미국의 행동이 이해하기 힘들고 어리석게까지 보일지 모른다.특히 유물론의 공산북한 당국자들에겐 더욱 그랬을 가능성이 많다.그러나 바로 그점에 미국의 장점과 강점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미국은 월남전 실종자 유해송환을 위해서도 많은 돈과 끈질긴 노력을 쏟은바 있다.유해송환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하거나 실종된 장병들을 국가와 정부가 영원히 잊지않고 찾는다는 의지의 과시라 할수 있다.클린턴대통령 재선이라든가 대북관계 개선이라는 정치적 목적도 작용하고 있을지 모르나 북한과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할수있을 것이다. 유해송환 노력에서 보듯 사자의 경우를 포함,미국정부의 철저한 자국민보호는 유명하다.특히 해외국민에 대한 미국정부의 보호는 세계적인 선망의 적이 되고있다.그것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국가에 대해 강한 긍지와 애국심을 갖게 하고 분열·갈등이 불가피한 다인종·다민족에 자유방임의 민주국가인 미합중국의 국가적 단결력 지탱 및 강화의 중요원동력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미국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우리는 오랜 역사와 문화전통의 단일민족국가임을 자랑하고 있다.그때문인진 몰라도,그리고 미처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진 몰라도 그동안 우리 국가와 정부의 자국민보호 및 애국심고취 노력은 부족하고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일제 36년,6·25동란의 시련기등을 통해 우리국민들이 보여준 자발적이고 본능적인 애국·충성심은 단일민족국가의 당연한 장점이었는진 몰라도 미국인들의 그것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이라 할수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족하단 말인가.본능적인 애국심 발휘는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것으로 끝나선 안되는 일임을 광복 및 6·25이후의 우리경험과 미국정부의 끈질긴 실종미군 유해찾기 노력에서 보여준다고 할수있다.특히 오늘의 우리상황은 더욱 그렇다고 할수있다.한때 듣기만 해도 가슴설레이게 하던 애국·애족이란 말도 언제부터인가 사라진지 오래다.그것은 분단과 전쟁,그리고 가난의 혼돈속에 애국심 고취노력은 커녕 애국과 매국의 상벌도 제대로 못가린 우리 근대사의 오점이 남긴 불가피한 결과의 하나라 할수있을것이다. 최근 우리정부가 그러한 역사과오 시정과 바로잡기 노력을 배가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특히 93년의 박은식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비롯한 신규식,노백인,안국태,김인전선생등 상해임정요인 다섯분 유해봉환 및 국립묘지 안장은 눈물겨운 민족사적 쾌거였다고 할수있을 것이다.나머지 87위의 유해 봉환노력과 작년의 광복 50주년을 계기로한 독립유공자 1천4백42분의 새로운 발굴·포상등 노력은 역사적인 업적의 하나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정부는 97년부터 독립유공자의 손자·손녀에게도 대입특례를 부여하고 98년부터 국가유공자 기본연금을 18% 예산증가율(96년 기준)이상으로 대폭 인상·현실화 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애국하면 3대가 망한다」는 자학의 말이 더이상 용납돼선 안될 것이다.정부는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 뿐아니라 6·25와 월남전 전몰·부상자 및 그후손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의 따뜻한 손길과 응분의 보훈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할것이다.그것은 그들의 애국에 대한 너무도 당연한 보훈인 동시에 가장 중요하고 자랑스런 역사바로잡기의 하나이며 새로운 애국·애족을 고무·고취하는 민족백년대계의 씨뿌리기요 기초작업임을 잊어서 안될 것이다.호국·보훈의 이 6월에 미국정부의 열성적인 실종미군유해 찾기노력을 보며 하게 되는 생각이다.〈심의·논설위원〉
  • 독립유공자 초청 보은행사/독립기념관,보훈의 달 맞아

    ◎전국 1백93명 모여 「험난한 시절」 회고/목천·병천초등학생과 통일염원 타종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전국에 생존해있는 독립유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보은행사가 12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관장 박유철)에서 열렸다. 전국의 독립유공자 3백86명가운데 1백93명이 배우자와 함께 1박2일간 한자리에 초청돼 기념행사를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독립에서 통일로!」를 주제로 한 이날 행사에는 이강훈·안춘생·박영준·서상교·이규창·김승곤·조인제·권쾌복선생 등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원로유공자,지부영·신순호여사 등 여성독립운동가 10여명과 황창평 보훈처장,이경문 문체부차관,이수빈 삼성사회봉사단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보은의 뜻과 함께 독립세대와 통일세대가 한 자리에서 만나 독립의 의의를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인근 목천초등학교와 병천초등학교의 어린이 1백40여명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하오 1시부터 참석자들은 독립기념관 추모의 자리에서 육군본부 의장대의 도열과 진혼곡속에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산화한 동지들과 순국선열 영령들에게 헌화를 하고 묵념을 했다.이어 겨레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기념식을 가진뒤 이강훈 선생(93)으로부터 독립운동당시의 회고담을 들었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험난한 시절의 얘기를 손주에게 옛날얘기 들려주듯 자상하게 일러준 이옹은 『나라가 힘이 없으면 다른 나라의 업신여김을 받는다』며 『여러분이 훌륭히 자라 하루 빨리 통일을 이루고 나라를 튼튼하게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이선생의 발표가 끝나자 또랑또랑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던 어린이들이 기다렸다는듯 갖가지 궁금증을 쏟아놓았다.『일본인들이 독립운동가들에게 어떤 고문을 했나요』『독립운동할때 가장 힘든 점은 어떤 것이었나요』『그 당시 독립군가를 불러주세요』 정진영양(13·병천초등6)은 『우리나라를 찾기 위해 열심히 싸우신 할아버지들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더욱더 나라를 사랑할 것을 다짐했다. 열띤 대화의 시간뒤에 이들은 한마음으로 통일염원의 종을 타종하고 이어 독립운동가들의 자취가 배어있는 전시관을 함께 관람하며 제2의 광복인민족통일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삼성그룹과 공동으로 이 행사를 주관한 박유철 독립기념관장은 『생존 독립유공자의 공훈을 기리고 육성녹취를 통해 미흡했던 독립운동사의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이같은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천안=이순여 기자〉
  • 유명 아리아 한자리서 감상/한강·서울오페라 앙상블 갈라콘서트

    ◎「카르멘」중 「투우사의 노래」 등 소개 오페라 전편을 아무 부담 없이 흥겹게 즐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사각」의 음악장르를 젊은 신세대와 매니아가 아닌 일반음악애호가에게 가깝게 다가가도록 하기 위한 오페라 갈라 컨서트가 푸짐하게 마련된다. 한강오페라단(대표 박현준)이 16(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17일(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무대에 올리는 「세계 7대걸작 오페라 하이라이트」와 서울오페라앙상블(대표 장수동)이 19일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사랑의 오페라 갈라 페스티벌」. 줄거리를 우리 현실에 맞게 각색했거나(사랑의 오페라…),걸작 오페라 7개를 엄선해 주옥같은 아리아만 보여줄(세계 7대걸작…) 두 공연은 「예술적 감동」과 「흥겨움」을 관객에게 선사하려는 참신한 기획의 무대다. 「세계 7대걸작…」에서 엄선된 오페라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푸치니의 「라보엠」「토스카」,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비제의 「카르멘」등.람메르무어의 루치아중 「광란의 장면」,카르멘중 「투우사의 노래」,라 트라비아타중 「축배의 노래」,리골레토중 「여자의 마음」등 모두 20곡이 16일 소개된다.또 17일에는 라보엠중 「그대의 찬손」,토스카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일 트로바토레중 「불꽃은 타오르고」등 평소 귀에 익은 아름다운 아리아 18곡이 펼쳐진다. 협연은 서울아카데미심포니(지휘 안재성)가 맡는다.소프라노 곽신형·박미혜·김금희,메조소프라노 김학남,테너 신영조·박현준·정광,바리톤 장유상·권홍준·김범진·변병철,베이스 임승종 등 내로라 하는 성악가가 출연,신인성악가와 함께 앙상블을 이룬다. 공연문의 581­0041. 「사랑의 오페라…」에는 지난해 광복 50주년 기념오페라로 공연돼 인기를 끈 「안중근」과 「라 트라비아타」「카르멘」의 하이라이트가 공연된다.또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을 한국적 상황으로 각색한 「서울 라보엠」이 초연된다.「서울…」은 80년 광주의 아픔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그린 가극.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김흥식)가 협연하고 소프라노 이승희·신지화·김선영·권혜영,메조소프라노 김정화,테너 박치원·강영린·임산,바리톤 유상훈·최상규등이 출연한다. 공연문의 574­8798〈김수정 기자〉
  • 첫 단추 잘못 낀 국회/김경홍 정치부 차장급(오늘의 눈)

    『6월6일은 현충일,8월15일은 광복절,6월5일은 국회 개원일이다』 새 양복 입고 새 마음으로 5일 등원했던 한 국회의원의 푸념이다.법으로 정해진 특별한 날임에는 틀림없다는 얘기다.현충일에 절차와 조건이 맞지 않는다고 추모식을 하지 않는가. 그런데 5일 국회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개원 첫날 국회의장단을 선출하라고 국회법에 임시로 권한이 부여된 야당측의 의장직무대행은 의무를 행사하지 않고 산회를 선포했다.남은 것은 헌정사상 처음인 여당의원들의 등원 첫날 본회의장 농성과 여야의 소모적인 논쟁 뿐이었다.따라서 이날 열릴 예정이었던 개원식도 열리지 못했고 6일 현충일 추모식에는 3부요인 가운데 유일하게 국회의장 자리만 비었다.물론 국회의장내정자는 참석했지만 의원자격일 뿐이었다. 결국 국회는 자신들이 만든 법의 첫 실천에 실패했다.굳이 법을 따지지 않더라도 민주주의의 본질인 대화와 다수결의 원칙을 지키는데도 실패했다.「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말처럼 이유야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법을 만든 국회가 그법을 지키지 않았고,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외치던 정치인들이 민주적 절차를 외면한 것은 틀림없다.「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이 이날 국회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여야가 끝내 의장단 선출과 개원식을 갖는데 실패한 것은 힘 겨루기 차원의 정치논리때문이다.뒷켠에는 정당 지도자들의 패권주의도 숨어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예우하는 것은 경륜과 지혜를 높이 산다는 뜻이다.젊은 사람을 아끼는 것은 패기를 높이사 장래에 대비한다는 뜻이다.그런데 국회의원 가운데 76세로 최연장자인 자민련의 김허남 의장직무대행과 야당 지도자들은 인생후배들과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것 같지 않다.1백30여명의 초선의원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등원 첫날부터 삿대질하고 저지조까지 편성해야 하는 싸움판과 「원맨쇼」를 구경했을 뿐이다. 한 야당지도자는 의장단도 뽑지 않고 산회를 선포한 김의장대행에게 『80년을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오신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다른 야당 지도자는 『잘 끝나서 다행』이라고 했다.이유야 어떻든 간에 법을지키지 않은 것이 평생을 거론할 만큼 잘 한 일인지 묻고 싶다.
  • 김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오늘 우리는 마흔한번째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신명을 바치신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그 분들의 위훈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전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용사의 영전에 다 함께 머리 숙여 안식과 명복을 빌고 감사와 경의를 표했습니다.온 국민은 지금 이 순간 조국의 의미를 새롭게 헤아리고,진정한 나라사랑,참다운 겨레사랑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슴속 깊이 되새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애국선열들은 빼앗긴 나라의 광복을 위해 낯선 이국땅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을 위한 투쟁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으로 우리는 나라를 되찾고 민족의 자존을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6·25전쟁때는 수십만 용사들이 이땅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위해 장렬히 산화했습니다.우리는 애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민주주의와 정의가 바로 선 나라를 만들기위해 그동안 참으로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민주주의와 번영은 애국선열과 호국용사들이 뿌린 희생의 씨앗을 우리의 피와 땀으로 가꾸어낸 소중한 열매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열과 호국용사들의 충의를 현창하고 그 후손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은 역사를 바로세우는 첫걸음입니다.민족정기를 드높이고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기위해 우리는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해외에 흩어진 애국선열의 유해를 이곳에 옮겨 모시고,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동시에 독립운동유적지를 복원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국가유공자와 그 후손들이 명예와 긍지를 가지고 살아갈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습니다.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명예를 회복하고 12·12군사 쿠데타를 단죄하는 것도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입니다.역사가 바로서야 법과 정의가 구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정의와 법이 살아있어야 나라를 바로세우고 미래를 올바로 열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단순히 추모하는데 그쳐서는 안됩니다.그분들의 충의와 희생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통일된 세계중심국가를 건설하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온 국민이 진실한 마음으로 국가유공자와 유가족,그리고 아직도 병상에서 고생하는 전상자들을 보살피고 위로하는 것을 나라의 기풍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순국선열과 전몰용사들이 몸바쳐 다시 찾고,지킨 이 나라를 물려받은 우리는 그 분들이 못다이룬 뜻을 펴나가야하는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온 겨레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자주독립국가의 건설이 선열들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세계사의 중심무대에서 활약하는 일류국가,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적극 기여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호국영령들의 유지를 받드는 길입니다.민족의 얼이 서린 이곳,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도 우리는 선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충탑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서도 우리는 호국영령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영령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합니다.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해야 합니다.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힘있는 나라,세계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통일국가를 만들어 선열들의 간절한 소망을 이룩해야 합니다. 애국영령들의 영전에서 21세기 세계 중심국가를 건설하여 위대한 한민족의 시대를 열어 나갈 것을 다함께 다짐합시다.오늘 뜻깊은 현충일을 맞아 저는 다시 한번 선열들의 영전에 경건히 머리숙여 명복을 빌며,온 국민의 이름으로 삼가 추념사를 올립니다. 호국영령들이시여,부디 안식을 누리소서.
  • 호국영령에 묵념하며(사설)

    오늘 41회째 현충일을 맞는다.상오 10시 전국 일제히 울리는 사이렌소리에 맞춰 국민은 모두 경건하게 묵념을 올리고 호국의 영령을 생각하게 된다. 6월6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기념하는 것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바친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호국의 얼을 이어받자는 뜻에서다.따라서 공휴일 하루가 생겼다는 철없는 생각에 분수없이 행락에 나대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광복을 되찾고 대한민국을 건국하기까지,그리고 6·25 한국전쟁을 치르며 나라를 지키고 자유를 수호하기까지 험난한 역정을 거듭해왔다.우리조국이 백척간두위기의 고비에 처할 때마다 호국선열은 분연히 일어나 역사의 소명앞에 한몸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일신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는 숭고한 희생정신은 민족정기로 승화되어 오늘의 우리의 번영과 발전을 초래하게 했음을 어찌 우리가 잊을 수 있으랴. 광복 반세기가 지나 우리는 전쟁의 참화에도 불구하고 번영과 성장을 거듭하여 수출 1천만달러에 무역규모 세계12위권,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진입했다.정치적으로 문민정부 출범이후 완전한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켜 세계 중심국가로 우뚝 서고 있는 중이다.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이어 21세기 첫장을 여는 2002년 월드컵대회를 한·일공동주최로 유치해놓고 있다.이러한 모든 발전과 번영,국운의 융성이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에서 비롯된 것임을 국민은 절실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역사는 영광과 고난을 굽이쳐 돌며 연면히 이어진다.오늘의 우리가 경제발전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제의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순국선열과 호국의 영령 앞에 진정으로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그들이 목숨까지 바치며 사랑한 조국의 번영을 위해 온 국민이 합심하여 매진하는 일이요,한국을 선진국의 대열에 밀어올리고 분단조국의 통일을 앞당겨 실현하는 일이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유일한 선생/서울신문사·보훈처·독립기념관 선정

    ◎미주 항일조직 「해외 한족대회」 주도/민족경제 살리며 26년 유한양행 설립/41년부터 OSS 특수공작대서 활약 국가보훈처는 미주지역에서 한인자유대회,해외한족대회 등에 참여,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유일한 선생(1894∼1971)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1894년 12월13일 평양에서 태어난 선생은 11살때인 1905년 미국으로 유학,네브래스카주 커니에 정착했다.선생은 1909년 박용만이 미주지역에서 최초로 설립한 「한인소년병학교」에 입교,상오에는 농장에서 학비를 벌고 하오에는 학과공부와 군사훈련을 받았다.이 학교에서의 3년간 생활에서 형성된 민족의식과 자주독립 사상은 선생이 전개한 독립운동의 원천이었고 기업경영의 지표로 작용했다. 헤스팅스 고교를 거쳐 미시간주립대학 4학년에 재학중이던 1919년 선생은 「한인자유대회」에 대의원자격으로 서재필,이승만,조병옥,임병직 등과 함께 참가했다. 대학을 졸업한뒤 라초이 식품회사를 설립,여기서 마련된 자금으로 귀국해 26년 유한양행을 설립했으며 연희전문학교 교수로도 활동했다.선생이 유한양행을 설립한 것은 민족의 실력양성과 경제적 자립을 염두에 둔 것이다. 1930년대 들어 일제의 만주침략과 중일전쟁 등으로 국내외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선생은 3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체류하면서 수출선의 다변화를 위해 유럽 및 중국 시장개척에 노력하는 한편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해외한족대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이 대회는 대한민국 임정의 후원 아래 항일독립전선에 모든 역량을 집결하여 광복대업을 촉성하기 위한 대일 민족통일전선의 일환으로 구상된 것이었다. 41년 12월7일 일제의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선생은 미군 전략정보처(OSS)의 한국담당 고문으로 활약했다.조국광복에 대한 선생의 투철한 의지는 45년 「냅코작전계획」의 참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OSS가 수립한 이 계획은 반일 민족의식이 투철한 재미한인을 선발,특수공작훈련을 시킨뒤 한국과 일본에 침투시켜 적후방을 교란하려는 작전이었다.45년 1월 이 작전계획의 핵심요원으로 선발된 선생은제1조 조장으로 임명돼 명령을 기다리던 중 일제의 항복으로 작전실행을 하지 못했다. 선생은 46년 7월 미국에서 귀국한 뒤 유한양행을 재정비,사장과 회장,대한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민족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아울러 52년 고려공과기술학교,64년 유한공고 등을 설립운영했고 개인 소유주식을 각종 장학기금으로 출연하는 등 자본의 사회환원에도 힘썼다.특히 69년 기업의 제일선에 은퇴하면서 혈연관계가 없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인계,전문경영인 시대의 서막을 열었으며 한국에서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천하는 등 기업경영사에 남을 선진적인 일들을 몸소 실천했다.선생은 71년 3월11일 76세로 타계했으며,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지난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황성기 기자〉
  • 월드컵 2002­한·일 협약 추진 배경

    ◎“불·독 과거청산” 엘리제조약이 모델/「불행한 과거」 덮고 우호·화합 도모/일 정계지도자 명확한 인식 우선 한국과 일본 사이에 프랑스­독일간의 엘리제조약과 같이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를 정리하는 포괄적인 관계개선 조약체결이 검토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정부는 지난 80년대초에도 일본과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불·독간의 엘리제조약 체결과정을 점검했다.그러나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그릇된 역사인식을 바꾸지 않는 상황에서 조약 체결이 어렵다고 판단,추진하지는 않았다. 2002년 월드컵을 공동개최한다고 해서 일본의 역사인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그러나 2002년은 21세기를 여는 시점이고,양국이 월드컵을 공동개최하게 되면,어차피 양국 정부차원에서도 행사 지원·협조 방안을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월드컵조약」의 체결이 검토되는 것 같다.조약에는 우호친선을 다짐하는 내용만을 담을수도 있고,월드컵 공동개최에 따른 양국 정부간 공식협의 채널 마련을 위한 실무 근거규정이 삽입될 수도있다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엘리제 조약은 프랑스와 독일이 나폴레옹 시대이후 1세기에 걸친 적대감을 해소하고,화합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63년 1월22일 체결됐다.그후 양국은 올해까지 60여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양국의 외무·국방·문교 장관들도 매년 두차례씩 회담을 갖고 주요현안을 협의하고 있다. 양국은 또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간의 교류확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불독청소년교류재단을 설립했다. 지난해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을 맞아 한일의원연맹에서도 이같은 취지로 한일청소년교류재단의 설립에 합의,일본측이 기금을 내고,한국측이 장소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그러나 지난해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과거사 망언이 거듭 이어지면서 사업추진은 저조한 상황이다.또 지난해 9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2차 한일포럼에서도 엘리제조약과 같은 한·일간의 포괄적 조약의 체결 필요성을 논의한 바 있지만,같은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21세기를 여는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한일간의 미래지향적인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느냐하는 것은 일본의 명확한 역사인식 확립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이도운 기자〉
  • 한·일 관계 앞날(출발 2002년 월드컵:1)

    ◎21세기 동반협력관계 전기로/개·폐회식 참석「일왕 방한」 상징성 큰 행사/비자없이 왕래… 일 문화 본격 상륙할지도 2002년 월드컵의 한·일공동개최에 대해 외무부의 일본 관련업무담당자는 『한·일관계로만 볼 때 공동개최는 차선이 아닌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외무부 당국자들은 광복50년(일본은 종전50년),국교정상화 30년이라는 역사성을 가진 지난해에도 국민감정 때문에 양국이 그럴듯한 공식행사 한번 치를 수 없었던 현실을 매우 아쉽게 생각해왔다.그런 상황에서 올림픽과 함께 최대의 국제행사로 꼽히는 월드컵을 공동으로 치르게 됐다는 것은 두 나라 관계발전에 더 없는 기회가 된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양국의 국민은 서로에게 소원한 느낌을 갖고 있지만,국제사회에서 양국간의 이해는 일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시장경제와 무역입국을 추구하는 양국의 국가목표가 같다는 것이다.실제로 우리나라는 지난해 유엔 안보리 이사국 선출과 김철수 전 상공부장관의 세계무역기구(WTO)차장 선임과정에서 일본의 적지않은 협조를 받았다.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시아유럽회의(ASEM)등에서도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이 당국자는 일본측이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인식만 갖게 된다면,이러한 기반을 토대로 양국은 「전략적 동반관계」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월드컵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일본지도층 일부의 비뚤어진 과거사 인식이나 배타적경제수역(EEZ)획정과 독도영유권,재일한국인 지위,군대위안부문제등 양국간에 해결해야 할 오랜 현안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양국의 외무당국자들은 한·일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 문제는 한·일간의 다른 관계와는 분리해서 처리한다』는 편의적인 발상을 하지만 실제로는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일본측의 성의 있는 조치가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6년동안 월드컵행사를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국의 외무부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의 관계발전조치를 하나씩 하나씩 시도해갈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가장 큰 행사는 역시 일본왕의 한국방문이 될 것이다.일본왕이 서울에서 열리는 개막식,혹은 폐막행사에 공동주최국의 국가원수자격으로 당연히 초청될 것으로 보인다.일본왕이 방한을 계기로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수도 있지만,행사의 성격상 거론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부담이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양국 국민간의 교류를 보다 확대하기 위해 입국사증(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다.우리 정부는 일본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 88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인에 대해 비자를 면제했다. 양국 관계발전의 마지막 단계는 우리정부의 일본 대중문화개방이 될 것으로 보인다.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일본은 자연스럽게 대중문화의 한국 진출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이도운 기자〉
  • 피아니스트 신수정(이세기의 인물탐구:97)

    ◎14살에 데뷔한 모차르트 연주 명인/조기교육 1세대… 초등교부터 각종 콩쿠르 입상/“생명이 있는 연주” “영혼이 깃든 선율”로 청중매료/78년 도미… 지나친 연습에 근육다쳐 한때 연주생활 중단도 「작품에 헌신하고 자기자신을 성찰할줄 아는 사람만이 모차르트를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알로이스 글라이더가 쓰고 62년 독일 유수의 출판사인 로볼트사가 출판한 「볼프강 아마데 모차르트」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새로운 광채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다이아몬드처럼 차갑게 빛나는 하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모차르트 연주자는 순수한 심성을 지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피아노의 마음을 아는 수많은 별중에서도 특히 신수정을 「모차르트 피아노연주의 명인」으로 꼽는 까닭은 「그의 때묻지 않은 동심과 완전에 도달하려는 음악적 몰입,그리고 음악의 본질만을 끌어내는 투철한 예술정신」이 작곡자의 청결과 천진난만과 투명성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와 모차르트의 인연은 특별히 남다르다. 56년 1월27일,모차르트탄생 2백주년이 되던 날,서울 안국동 풍문여고 강당에서 그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20」을 연주했고 그해 3월,「천재소녀」라는 타이틀과 함께 서울시향의 전신인 해군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음악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그때 나이가 14살.이후 수많은 리사이틀과 런던필·도쿄필·NHK오케스트등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지난 91년 모차르트서거 2백주기 기념행사에서도 9회에 걸친 「피아노협주곡 전곡연주」로 그는 모차르트만의 「명징과 영롱」을 거침없이 안겨주었다. ○피아노협주곡 전곡 연주 음악애호가이면 누구나 한번은 모차르트에 빠지거나 그 「낭랑하고 정치하면서도 유연한 음향」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특히 창작의 절정기에 씌어진 「피아노협주곡 20번」은 밝고 화려한 다른 곡과는 달리 작곡자의 애환이 담긴 「명작중의 명작」으로 피아노가 분산화음을 뿌리는 알레그로 아사이의 론도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대화,생동감이 넘치는 D장조로 클라이맥스를 꾸미는 찬란한 종결이 일품이다. 그중에서도 신수정의 연주는 「올바른 클레메이션(낭송)과 자연스러운 칸틸레나(서정적 선율),크레셴도(점강)와 데크레셴도를 절묘하게 구사하여 피아노만이 갖는 투명한 음색으로 곡전체를 아름다운 꽃으로 개화시키는 것」이 특징이다.평론가 한상우에 의하면 「신성한 음향상을 이뤄낸다는 것은 삶을 완성시키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연주자」다. 이른바 「생명 있는 연주란 작곡자의 탄생과 성장,시대와 개성과 교양의 넓이는 물론 인생에서의 사건과 환경에까지 빈틈없이 파고들어 마음의 소리가 계시하는 바를 쫓아서 자신만의 인터프리테이션(해석적 연주)으로 작품을 재창조한다」는 의지다. 그러나 피아노를 시작하던 어린시절에는 「피아노 없이는 못살겠다」는 소명의식이 없었고 단지 『공부 잘하는 우등생인 만큼 당연히 피아노도 잘쳐야 한다는 선에서 피아노에 열중했을 뿐 혼신을 다해 노력해왔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그래서 『나자신이 피아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피아노가 나를 선택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또 『모차르트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지만그가 지닌 천재성과 경박성이 너무 난해하여 마음껏 양에 차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정열적이면서도 두뇌가 탁월한 연주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가 78년 결혼과 함께 부군(한광열씨)을 따라 도미,한동안의 공백기로 「피아니스트의 영광」을 잃는 것이나 아닌가 우려하는 이도 있었으나 미국에 간 지 4년만인 83년 5월,샌프란시스코 첫독주회에서 그곳에서 발간되는 크로니클지는 「그의 모차르트연주는 천상의 양식」이란 평으로 그의 건재를 과시해주었다.같은 해 8월,KBS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위해 일시귀국했을 때도 『그동안 아주 즐겁게 살았다.그야말로 삶자체를 속속들이 즐길 수 있었고 새로운 것을 많이 깨우칠 수 있었다』면서 「어느때보다 탁월한 연주와 다이내믹한 긴장감,경쾌한 리듬의 향연」으로 그는 변함없이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종달새처럼 명랑한 모차르트의 내부에 남모를 애수와 음영이 도사린 것처럼 그는 미국생활동안 지나친 연습에서 온 근육이상으로 1년 넘게 연주를 멈춘 일과 부군과의 자녀 없이 이혼등 전혀 예기치 못한 시련을 겪는 동안 「화려한 소년기와 열정과 오만의 청년기를 지나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기회」에 도착했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경원대 음대 학장 맡아 따라서 87년 영구귀국하면서 가진 독주회는 「인간적 성숙과 예술적 연륜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음악은 광채를 발하게 된다」는 평대로 「한 음악가가 자신을 완성시키는 결연한 의지」와 「무르익은 경지」를 확인시킨 자리이기도 했다.그때도 여전히 나이와는 상관없이 마모가 보이지 않는 젊은 모습과 「남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하는 따뜻한 마음씨」,맑고 높고 청량한 그의 목소리는 모차르트음악만큼이나 화창하고 투명하여 사람을 반기고 기쁨만을 나눠주었다. 그는 재미 피아니스트 한동일,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누나인 김덕주와 함께 한국 피아노음악계의 새로운 분기점을 이룬 세대다.그 세대로부터 조기피아노교육붐이 일기 시작했고 음악의 해외유학이 활성화되었으며 국내 음악콩쿠르가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다. 충북 청주에서 평생 교육자이던 신집호씨(82)와 김석태씨(76)의 4남매중 장녀.옥천과 청주에서 중학교교장으로 있던 부친 덕분에 아무때나 학교의 피아노를 칠 수 있었고 벌써 그 시절에 서울과 청주,청주와 대구를 오가며 피아니스트 1세대인 김하경·이애내 스승에 사사,청주국민학교 6학년때 국내최초의 이화·경향음악콩쿠르와 오스트리아에 유학중 그곳에서 열린 각종 국제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세계무대를 향한 「음악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제는 어엿한 음악계의 중진의 위치에서 각종 음악콩쿠르에서 심사를 맡고 후진을 양성하는 위치지만 그의 어느 구석에도 권위나 거드름이나 관록의 티는 찾아볼 수 없다.92년부터 경원대 음대학장직을 맡아 학교운영에 참여하면서 요즘은 주로 실내악에 관심을 갖고 경원대오케스트라를 일류로 키우기 위해 애정과 열성을 쏟고 있다.어릴때부터 그의 연주를 지켜본 평론가 이상만은 지난 5월초 예술의 전당서 열린 연주에 대해 『그의 선율에는 영혼이 있고 그의 피규레이션(수식)에는 현란함과 온갖 독창성이 있으며 그의 연주는 전아하고 유창하며 거기다가 화려하기까지하다』는 찬사를 보낸다. ○동생가족과 한집 생활 일상생활에서는 여자답고 꼼꼼해서 그의 수첩은 깨알만한 글씨로 그날의 일이 일일이 기록되고 친구를 좋아해서 외국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의 안부까지 묻는 섬세한 면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살고 있던 청운동의 빌라에서 지난해 방배동주택으로 이사,친구 같은 동생인 화가 신수희씨가족과 아래위층을 나눠쓰고 있다.책과 피아노와 신수희그림 외에 집에는 아름다운 요크셔테리어만 세마리.요즘은 그 모든 캘릭터가 합쳐진 그만의 독특한 색깔과 풍부한 분위기를 지니면서 「중용과 절제미가 보이는 달관의 연주를 성취」하려는 시기다. 「명인」이란 언제나 자기자신과 자신의 생애를 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또 「무리를 떠나 혼자 높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다이아몬드의 영광은 외롭고,영광의 길은 고독하지만 그는 「피아노를 통한 청중과의 대화」로 외로움이나 고뇌의 기미란 전혀 없이 「다이아몬드처럼 차갑게 빛나는 광채」를 내기 위한 상서로운 징조만을오로지 그의 내면에 품고 있는 것 같다. □연보 ▲42년 충북 청주출생 ▲52년 이화·경향음악콩쿠르입상 ▲59년 서울예고졸업 ▲61년 동아음악콩쿠르수석입상 ▲63년 서울대음대졸업,오스트리아유학중 부조니국제피아노콩쿠르(64년)· 베토벤피아노콩쿠르디플롬(65년) ▲67년 오스트리아 빈국립음악예술 아카데미졸업,빈(브람스잘)·도쿄(이이노홀)·서울독주회(시민회관) ▲68년 한국일보주최 서울독주회 ▲69년 런던필등 협연 ▲70년 동아음악콩쿠르 심사위원,베토벤 탄생 2백주년기념 국향협연 ▲71년 동아일보주최 서울독주회 ▲74년 미피바디음대대학원졸업 ▲75년 도쿄독주회 ▲68∼81년 서울대음대교수 ▲77년 영국연수,방콕독주회 ▲78년 세종문화회관개관기념 NHK오케스트라협연,독일연수 ▲83년 샌프란시스코 독주회 ▲87년 중앙일보주최 서울독주회 ▲89년∼경원대교수 ▲90년 쇼팽아벤트(독주회),체코아카데미 목관5중주협연 ▲91·93년 독일뮌헨 국제콩쿠르 심사위원,모차르트 2백주기기념음악회서울시향협연,김민·신수정2중주,모차르트연탄곡전곡 이경숙과 2중주 ▲92·94년 일본 소노다피아노콩쿠르 심사위원 ▲92∼경원대음대학장 ▲95년 김신자·신수정 두오콘서트(미시간주립대),광복50주년기념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연주등 2중주 3중주 교향악단협연등 수회,일본 국제콩쿠르심사위원 ▲96년 독일 쾰른음대주최 국제피아노콩쿠르심사위원 〈수상〉 대한민국예술원상(78년)대한민국목관문화훈장(95년)
  • 의식이 없어진 기념일들(송정숙 칼럼)

    기회가 있으면 한번 제언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언제부턴가 그저 노는 날로만 찾아왔다가 지나가는 현충일을 보낼 때면 송구스럽고 부끄러워 번번이 별러보는 그런 「제언」이다. 최근 그런 충동을 또한번 자극받았다.어느 조간신문에서 한 보훈관계 공무원의 투고를 발견하고서다.총선이 끝나자 연일 당선자들을 초청하여 『자랑스런 동문』잔치를 벌이는 풍경들을 보며 자기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국회의원을 많이 배출한 것이 소속 집단이나 동문들에게 자랑인 것이라면 그들만큼 기려지고 추모해야 할 또다른 대상들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같은 명문대학에는 교정에 충혼탑을 세우고 거기에 전쟁에 나가 나라위해 목숨바친 모교출신들의 이름을 새겨놓고 영원히 기억될 자랑스런 동문으로 기리게 한다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6·25전쟁이 나자 조국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학도병으로 지원병으로 전선에 뛰어들어 산화한 고귀한 희생학도병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있는데 그런 동문을위해 무엇인가 기념될만한 일을 해놓은 대학이 우리에게는 한군데도 없다는 것이다.『그들의 희생위에 오늘을 살고있는 우리』의 무심을 한탄한 그 투고글은 뒷맛을 씁쓸하게 했다. 그가 지적한 현상은 우리의 단순한 무심함만도 아니기 때문이다.『그 희생을 딛고』 번영하는 오늘을 사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일조차 자연스럽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우리에게는 있다.그때의 「희생」을 가장 존귀하게 회고해야 당대의 군출신 원로정치인조차,사선을 넘어 몰고온 「귀순 미그기」를 『도로 돌려주는 것이 좋겠다』는 「농담」을 즐기는 판국이라 「분위기」는 더욱 이상해졌다. 「추모」와 「기리기」를 위해 있는 것은 국경일과 기념일인데 그 또한 명색뿐인 날들이 되고 있다.3·1절도 4·19도 현충일도 제헌절도 그리고 독립절인 건국기념일 8·15도 「광복절」로만 축소시켜,그저 「노는 날」로만 즐겨지고 있고 민족의 하늘이 열린 개천절도 그냥 「공휴일」일뿐이다.크리스마스나 석탄일같은 날들은 열성적인 신도들이라도 많아서 화려하게 누려지지만 「나라」와 관계있는 기념일들은 그런 대접도 못받는 것같다. 그래도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학교들은 이날 기념식을 하고 이런 날들이 왜 「노는 날」만은 아닌지를 새기는 기회를 가졌었다.『기미이년 사암월 일일 정오오…』로 시작되는 기념노래를 부르며 피투성이가 된 태극기와 더불어 만세를 부르다가 쓰러진 선열도 그려보고,새나라를 세운 감격도 되새기며,현충일이면 경건하게 머리숙여 호국영령들께 묵념도 함께했었다.그러나 이제는 이틀만 연휴가 되어도 괌으로 뉴질랜드로 골프여행을 계획하고 등산이나 행락일정을 세워 고대하는 것 외에는 왜 그날이 「즐거운 공휴일」이 되었는지를 도무지 아랑곳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연전에 수원의 발안 어딘가에서 농업학교 교장을 하는 훌륭한 교육자 한분을 만나뵌 일이 있었다.그분은 기념일에 대한 오늘과 같은 현상을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어서 당신이 봉직하는 학교에서만은 기념일 아침 일찍이 전교생과 교직원이 참석하는 기념식을 마치고서야 휴일을 즐기게 하고 있다고 했다.그러면서 『나같은 고집쟁이 늙은이나 하는 짓이니까 내 대에서 끝날 일이지…』하며 쓸쓸히 웃던 그분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그 이후 초중등학교에서 이런 기념식을 되살리자는 것을 「제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노는 날」의 의미로만 기억하는 날들을 기념식으로 「묶자」는 인기없는 「제언」이 먹혀들리는 없다.그렇다면 꼭 그날이 아니라 하루 전날에라도 기념행사를 갖고 그날에 담긴 민족정기를 어린 세대에게 옮겨주어 구천을 떠도는 호국영령을 위로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민족이고 국민된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날로 놀기에만 극성스러워지고 그러노라고 국토와 산하를 쓰레기로 뒤덮이게 하며 타락해가는 우리 심성을 다스리는 일도 어느정도 가능할 것이다.사려깊은 젊은 아버지가 아이들 손을 잡고 민족의 시원(시원)을 들려주고,『나라 지키다 숨진 영령들을 위해서 우리 묵념하자』며 경건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어느 교훈보다 훌륭한 모습으로 심어질 것이다. 옷깃을 여미고 그것을 제언한다.〈본사 고문〉
  • 일본 대표명저 12권 나왔다/한림과학원 일본학연 총서1차분 완간

    ◎“일본 바르게 알기” 취지… 일반인에 보급/문화론·소설집 등 98까지 50권 발간 한림대 부설 연구기관인 한림과학원 일본학연구소(소장 지명관)에서 발간하는 일본학총서가운데 1차분 12권이 최근 완간됐다.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몇년째 비평서와 연구서,문학작품등 다양한 일본관련서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 「총서」는 권위있는 연구기관에서 체계있게 구성해 간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또 일본의 대표적인 저서를 문고본 형태에 담아 일반인을 상대로 보급하는 것도 특징이다. 그동안 나온 책은 1권 「일본문화의 숨은 형」(가토 슈이치 등 지음)을 비롯 「일본적 자아」(미나미 히로시),「중국사상과 일본사상」(쓰다 소키치),「근대 일본인의 발상 형식」(이토 세이),「다도와 일본의 미」(야나기 무네요시),「일본사회의 인간관계」(나카네 지에)등 일본인·일본문화론이 주를 이룬다. 아울러 「일본의 불교」(와타나베 쇼코),「근대 일본정치사」(오카 요시타케),「무교회주의자 내촌감삼」(스즈키 노리히사)등 분야별 명저와 「소설의작법」(오에 겐자부로),「폭풍우 외 7편」(시마자키 도손),「재일 동포작가 단편선」(양석일 등)같은 문학작품도 들어 있다. 이 가운데 「일본문화의 숨은 형」은 지난 81년 「일본문화의 원형을 생각한다」는 주제로 열린 연속 강연회에서 일본의 원로학자·작가 4명이 발표한 내용을 묶은 것. 지난해 국내에서도 출간된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의 저자 마루야마 마사오 동경대 명예교수등 쟁쟁한 인물들이 참여했다.일본문화의 본질에 대한 자체 분석이 깊이 있으면서 강연이라는 쉬운 형식에 담겨 있다. 「달은 어디에 떠 있나」로 근년에야 알려진 양석일을 제외하곤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작가 6명의 작품을 모은 「재일 동포작가 단편선」이나,김교신·함석헌의 스승인 우치무라 간조의 전기 「무교회주의자 내촌감삼」도 관심을 끈다. 일본학연구소는 광복 50주년인 지난해 5월 「진정한 한일관계를 정립하려면 일본을 바르게 알아야 하며,이를 위해 일본의 양서를 소개한다」는 취지로 일본학총서 발간을 시작해 1년만에 12권을 냈다. 앞으로도정치·경제·대중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권위있는 책들을 골라 올해안에 15권을 더 출간할 예정이다.재일작가 이회성의 「죽은 자가 남긴 것」,에드윈 라이샤워의 「일본근대화론」등이 곧 나온다.「총서」는 98년까지 50권으로 마무리된다. 일본학연구소는 이밖에 올 하반기에 ▲일본 암파서적과 제휴하는 계간지 「사상」과 ▲국제적인 일본학 저널지 등 잡지 두가지를 더 발간할 계획이다.〈이용원 기자〉
  • 시위진압 “해산서 검거 위주로”/박 경찰청장

    ◎노동현장 좌익세력 척결 박일용 경찰청장은 10일 불법 시위 주동자를 끝까지 추적,검거해 구속하는 등 강력히 대처하라고 전국 경찰에 지시했다. 박 경찰청장은 이 날 기자회견을 갖고 『문민정부 출범 후 잠잠하던 폭력시위가 올들어 되살아나 각종 시위현장에서 화염병 투척과 분신,자해행위 등의 극렬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지적하고 『모든 경찰력을 동원해 엄중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부 운동권 학생들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 16주년과 김일성 사망 3주기인 7월8일 및 8·15광복 51주년을 전후해 반미·통일투쟁을 표방한 대대적인 폭력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설명하고 『불법시위를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학원 및 노동현장의 좌익세력들을 척결하겠다』고 말했다. 폭력·불법시위 현장에는 사복 경찰관들도 대거 투입,가담자를 현장에서 검거하는 등 시위 대응방식을 해산 위주에서 검거 위주로 바꾸기로 했다.사진기와 비디오 등을 갖춘 채증팀도 늘릴 방침이다.〈박용현 기자〉
  • 화염병시위 20배나 늘다니(사설)

    대학가에 좌경세력이 준동하고 있는 것은 용납할수 없는 일이다.정부가 지난 7일 치안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좌경학생세력의 폭력시위를 엄단키로 한 것은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한다.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각 대학의 총학생회를 이끌고 있는 좌경운동권학생들의 움직임이 더이상 방치할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최근 서강대총학생회가 펴낸 학생수첩에 「공산당선언」이 수록돼 놀라움을 안겨주더니 지난달 27일에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북한의 대학들과 「북·미평화협정체결」「주한미군철수」등을 골자로 하는 공동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그런가하면 한동안 뜸했던 화염병이 시위때마다 난무,많은 학생과 경찰들을 다치게 했다. 내무부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4월말까지 벌어진 대학가의 화염병시위는 65회,던져진 화염병은 2만5천여개로 지난해 같은기간(시위 3회,화염병 1천2백여개)보다 20배 이상이나 늘어났다고 한다.이처럼 급증하고 있는 대학가의 폭력시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직시해야 할 것이다. 학생운동권의 올 투쟁목표는 오는 8월15일 광복절을 전후해 「남북공동통일축전」을 판문점에서 갖자는데 있다.이 행사는 북한의 조평통이 주도하고 있는 대남전략의 일환이다.그런데도 「통일축전」을 투쟁목표로 잡은 것은 성사에 뜻이 있다기보다는 행사추진을 통해 극도로 침체된 이념적이고 투쟁적인 학생운동의 열기를 다시 고조시켜보자는 안간힘으로 분석된다.어처구니없는 발상이 아닐수 있다. 지금 우리가 대학가의 좌경세력에게 주고싶은 충고는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일어나라」는 것 뿐이다.지성인들이 시대착오적인 망상으로 사회를 혼란스럽게하고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면 그야말로 반지성적 사회폭력이라고 하지않을 수 없다.이제부터라도 학생본분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부는 대학가의 좌경세력이 발붙일 수 없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대학당국도 이들을 올바르게 이끌수 있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강구해주기 바란다.
  • 기미년 「서울역 만세시위」 주도/이달의 독립운동가 신익희 선생

    ◎서울신문·보훈처·독립기념관 선정/3·1운동 전국확산 계기… 일에 쫓겨 망명/임정 수립·만주 「대일전선동맹」 결성 주역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은 2일 해공 신익희 선생(1894∼1956)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총장과 임시의정원 부의장을 지내면서 항일독립투쟁을 펼치고 광복후에는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1894년 6월9일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서하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려서 한학을 수학한 뒤 13살때인 1908년 상경,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에 입학했다.일제로부터 국권을 되찾고 민족적 수모를 설욕하는 방법은 서구의 진보한 문명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영어과를 택했다. 선생은 조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된 1910년 졸업했다.극일의 심정으로 일본유학을 단행,1912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수학하고 귀국,중동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윌슨 미국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천명한 1918년 림규·송진우·최남선 등과 독립운동을 밀의한다.3·1운동을 지켜본 선생은 3월5일 서울역 앞에서 만세시위를 추진한다.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면서 일경에 쫓기는 몸이 돼 중국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선생은 상해에서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을 추진하고 같은 해 4월13일 임정수립을 대내외에 공포하는 한편 대한민국을 민주공화제로 하는 10개항의 임시헌장도 선포한다. 임정의 조각이 이루어지자 선생은 초대 내무차장 겸 내무총장대리로 선임되어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대리로 부임한 안창호를 도와 임정의 국내 행정조직인 「연통제」를 창안,실시하게 된다. 임정 법무총장·외교부장을 두루 역임한 선생은 한국청년 5백명을 모집,군사행동을 위한 유격대성격의 「분용대」도 편성하는 등 한·중 합작에 의한 대일항전을 역설했다.한국혁명당을 창당한 선생은 만주사변과 상해사변을 도발하며 중국침략을 노골화한 일본에 맞서 모든 독립운동단체와 정당이 결속할 것을 주장,「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그러나 가맹단체간 협의기관인 이 동맹은 결속력과 통제력에 한계를 드러내 1935년 남경 금릉대학에서 민족통일전선의 원칙아래 신한독립당·의열단·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 등 5당 통합을 이뤄낸다. 선생은 조선의용대 병력이 모여 있는 낙양으로 가서 조선민족해방동맹과 연합,무장투쟁노선의 「조선민족해방투쟁동맹」의 결성을 주도했으며 1941년에는 한·중합작으로 한·중문화협회를 조직한 뒤 다시 임시정부에 합류하게 된다. 1943년 4월 임정 선전부의 선전위원회에서 조소앙·유림 등과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의 선전계획수립과 실행에 이바지했다.1944년 5월 임정의 연립내각성립 때 내무부장에 선임되어 활약하다가 중경에서 광복을 맞는다. 광복이후 선생은 1945년 12월2일 임정요인의 2차환국 때 자주적 민족국가건설의 희망을 안고 귀국하지만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안이 결의되자 김구주석을 도와 반탁운동을 선도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선생은 1946년 국민대학을 설립,민족국가건설의 동량을 육성하는 한편 「자유신문」을 발행,민족 자주성을 길러나가는 데 일조했다. 1948년 5월 제헌의원선거때 경기 광주에서 출마,당선됐고 이승만의 후임으로 국회의장에 선출되어 활약하면서 대한민국건국에 크게 공헌하게 된다.1956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출마했으나 5월5일 호남선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황성기 기자〉
  • 남북대학교류 실현시키자(사설)

    전국 4년제대학 총·학장들의 자율협의기구인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남북한 대학교육교류와 협력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남북한 대학총장회담」을 적극 추진키로 한 것은 좋은 발상이다.대교협이 지난 26일 주최한 세미나에서 박홍서강대총장을 통해 제기한 남북대학교육 교류제의는 남북의 실무대표들이 제3국에서 예비접촉을 갖되 본회담은 오는 8월15일 광복절을 전후해 개최하자는 것으로 우리는 이 제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지금으로서는 이 회담의 성사여부는 불투명하다.지난 89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지침이 제정된 이후 지난 2월까지 통일원이 승인한 우리대학 및 학술단체들의 대북교류계획 35건 가운데 북한측이 수용한 것은 단 한건밖에 없기 때문이다.과거의 경험에 비춰 이 회담도 북한당국이 선뜻 허용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그러나 4자회담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한반도 주변정세가 대화분위기 쪽으로 흐르고 있을 뿐아니라 최근 미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남북학생대표들이 자리를 같이 한 일도 있어 앞으로의 여건변화에 따라서는성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책임있는 당국간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그러나 지금처럼 당국간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민간차원의 대화로 이를 보완할 수밖에 없다.그런 의미에서 남북대학총장회담이 열릴 경우 남북간의 화해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 사회·문화적 장벽을 허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회담이 성사된다고 해도 북한측이 정치문제까지 거론하면서 상투적인 통일전선전략을 구사하려 든다면 서로의 사상적인 이질감만 심화시킬 우려도 없지않다.북한당국이 이같은 고식적인 자세를 버리고 이 회담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면 공동학술연구와 공동답사,자연과학 및 문화·스포츠분야의 교류,남북대학간 자매결연,교수·학생상호교환 등 남북의 대학교육교류는 크게 활성화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에도 기여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북한 당국의 슬기로운 선택을 다시한번 촉구한다.
  • “북 4자회담 결국 수용할것”/김 대통령 독 신문 회견

    【베를린 연합】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이 결국 한반도 4자회담 제의를 수용할 것이며 한국도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가 26일 보도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날 이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은 한·미관계를 이간질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버려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북한이 현재 지연작전을 펴고있으나 결국 4자회담 제의에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 인터뷰에서 대북 원조제공 문제와 관련,기본적으로 도움을 줄 용의가 있으나 북한이 자신과 한국정부에 대한 비방과 폭력혁명 선동을 계속하는 상황에서는 원조제공이 이뤄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를 단계적으로 개선하고 43년전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4자회담 구상은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것으로 당초 지난해 8월15일 광복절때 제의하려 했으나 제의에 무게를 싣기 위해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방한때로 연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일본에 4자회담 제의를 미리 알렸으며 북한에도 제의 이틀전 인도네시아를 통해 사전 통보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4자회담 제의를 검토해보겠다는 북한측의 입장 표명과 관련,시간이 좀더 걸릴 수도 있지만 북한으로서는 이 제의를 수용하는 길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면서 클린턴 대통령의 확약에 비춰볼 때 북한이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단독협상을 벌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대통령은 또 『고립정책을 펴고 있는 북한의 상황이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1백% 정확히 알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때 북한 경제사정이 극도로 악화돼 있으며 정치도 불안정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비무장지대에서 있었던 북한군의 도발행위도 북한의 심각한 상황을 은폐할 수 없었다면서 북한의 이같은 도발행위가 지속되는 한 북한에 대한 원조제공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김영삼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개폐 여부에 대해 정부가 종교지도자들과 기업인들의 방북을 지원하고 있으나 남북한 국민들간의 교류를 통제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공로명 외무장관과 권오기 통일원장관은 북한이 한국내 과격세력,특히 과격학생들에게 폭력혁명을 선동하는 공작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의 유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또 김대통령의 한 정치보좌관은 한국내에 북한체제에 호감을 갖고 있는 국민이 10∼15%에 이르고 있으나 이들에게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대응수단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국가보안법 규정을 완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 남북 대학·총장 교류 제안/대교협“통일대비 교육문제 집중 논의”

    ◎합법적 절차로 시기·방법 결정 전국 1백64개 4년제 대학 총·학장들의 자율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회장 김민하 중앙대총장)는 26일 올 광복절을 전후해 남북한 대학총장 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최근 4자회담이 추진되는 등 긴장관계가 다소 완화되고 있으며,남북간 정치적 대화보다 부담이 적어 성사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박홍 서강대총장은 이 날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대교협의 평화통일교육 연구위원회 주최로 열린 「남북한의 대학교육 교류방안 모색」에 관한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통일에 대비한 남북한 대학교육 교류의 일환으로 남북한 대학총장 회담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박총장은 『남북한 당국의 주도 아래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쌍방이 같은 수의 총장을 선임하고 장소·시간·일정·운영방식 등은 양측 실무진들이 합의해 결정하자』고 제의했다. 대교협은 이미 정부에 양측 대학총장 회담의 필요성을 비공식적으로 전달했다.광복절을 전후해 회담이 열리도록 통일원 등과 협의할 계획이다.대표단은 남북한 똑같이 각각 10∼20명 규모로 구성하고,제 3국에서 예비접촉과 실무대표자 회의를 갖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한편 박재규 경남대총장은 주제발표에서 『합법적 절차에 따라 남북한 대학 구성원들의 학술적·인적·물적 교류가 활성화되면 정치경색 국면을 완화시킬 것』이라며 의학과 한의학 등 자연과학 및 문화·스포츠 분야 교류→남북대학간의 자매결연→교원·학생 상호교환 등의 순서로 남북간 학술교류를 발전시켜나가자고 제의했다. 한편 정부의 한 당국자는 『대교협 측에서 내부 의견을 수렴,공식 신청해오면 그 때가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나라 걱정하는 모임」 원로 1백명 시국선언

    ◎“15대국회 정쟁 지양을” 각계 원로들의 모임인 「나라를 걱정하는 모임」(대표 서영훈)은 22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15대 국회와 여야 정치인에게 보내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총선 결과 심각한 지역할거와 보스 중심의 파벌경쟁,부정한 공천경쟁 등 고질적인 병폐가 그대로 되풀이됐다』며 『정부와 정당 및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드러난 국민의 뜻을 받들어 당파를 초월해 국정 과제들을 현명하고 공정하게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 하라』고 촉구했다. 균형있는 경제발전과 민생안정,정의로운 질서확립,생존 환경보호,교육개혁,문화복지 실현,세계사 속의 민족정체성 확립과 통일기반 조성 등에 역점을 둘 것도 당부했다. 서대표를 비롯,고흥문 전 국회부의장,조완규 전 교육부장관,이강혁 전 한국외대 총장,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김지길 목사,이세중 변호사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선언에는 이한빈·현승종 전총리,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이영덕 한국정신문화 연구원장,김승곤 광복회장,송 연세대·홍일식 고려대·박홍 서강대·고건 명지대·김진현 서울시립대 총장과 김성수 전 성공회 대주교 등 각계 지도급 인사 1백명이 서명했다.〈김태균 기자〉
  • 최 대통령 하야과정/전씨,내각 무력화·군원로 설득 양면 압박작전

    ◎김정렬씨 수차례 밀사로 파견… 최씨 적극 설득/“「8·15 하야」는 모양새 좋지 않다” 하루 늦추기도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는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측의 집요한 양면 압박전술에 따른 것이었다. 최대통령은 외견상으로 지난 80년 8월16일 상오 10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특별성명을 내고 대통령직을 사임했다.최 전대통령은 지금껏 사임과정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22일 검찰의 신문에서 최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경위가 두 갈래로 정리됐다.신군부측이 5·18 이후 국회를 해산하고 국보위를 설치함에 따라 내각의 기능이 상실된데다,군 원로들의 최대통령 하야설득이 주효한 것이다. 그러나 전씨는 대부분 부인했다. 전사령관은 사실상 5·17 비상계엄의 확대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집권 시나리오를 하나씩 실천에 옮겼다. 6개 항의 시국수습 방안에 따라 국회를 해산하고 주요 정적들을 부정축재 또는 소요배후 혐의로 체포했으며 국보위를 설치했다.특히 국보위 상임위원장으로서 행정부를 장악,권력이 집중됐고 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국내외에 부각됐다. 이처럼 내각의 기능이 실질적으로 상실되자 최대통령은 7월 하순쯤 사임을 결심하게 됐다. 신군부는 이와 별도로 김정렬 전국방부 장관을 최대통령에게 수차례 밀사로 보내 하야를 설득했다.신현확 총리는 이같은 사실을 김씨로부터 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처음 최대통령은 하야를 거부했다.『지금 국민들은 군인들이 나서는 것보다 나처럼 별 의심이 가지 않는 사람이 과도정권을 끌고 가기를 원하고 있다』는 게 반대이유였다. 김씨의 몇차례에 걸친 설득 끝에 최대통령은 7월30일 하야를 결심한다.그날 하오 6시부터 청와대 접견실에서 5시간에 걸친 김씨와의 입씨름 결과였다. 김씨는 이촌동의 집으로 돌아온 자정쯤 전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 내용을 알렸다.이튿날인 31일 최대통령이 전씨를 청와대로 불렀다.『내 자리를 대신 맡아달라』며 하야의사를 밝혔다. 전씨는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한뒤 『휴가나 다녀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고 권유했고,최대통령은 강릉으로 휴가를 떠났다. 전씨는 이 사실을 노태우 수경사령관에게 알렸다.7월 초에는 유학성·황영시 장군 등 신군부 장성 10여명이 공군 참모총장 공관에 모여 현수막을 내걸고 전씨를 대통령으로 추대키로 결의했다.벅찬 운명에 전씨는 눈물을 많이 흘렸다. 최대통령은 당초 8월15일 하야하려 했으나 신군부측이 「광복절에 사임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고 말려 하루 늦췄다.〈박선화 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