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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독립선언 80돌 도쿄서 기념 행사

    ‘2·8독립선언’ 80주년 기념행사가 한국독립유공자협회(회장서리 閔泳秀)와 도쿄YMCA 공동 주최로 오는 2월8일 도쿄에서 열린다. 한국의 독립운동가들과 유족들이 처음으로 대거 참가하는 이번 행사는 80년전 당시 조선인 유학생들이 ‘선언서’를 낭독했던 도쿄 YMCA에서 오전 11시 열려 ‘2·8독립선언’의 의의를 되새긴다. 기념식에는 金義在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尹慶彬 광복회장,李康勳·金勝坤 전광복회장,安椿生 전독립기념관장,金信 전교통부장관 등 원로 독립운동가들과 유족으로 朴維徹 독립기념관장(임시정부 2대 대통령 朴殷植 선생의 손자), 張致赫 고합회장(‘대한매일신보’ 주필 張道斌 선생의 자제)등 37명이참석할 예정이다. 참석자들은 도쿄의 대표적인 항일의거 현장도 답사한다.답사할 곳은 1932년 1월8일 한인애국단 소속 李奉昌의사(1900∼32·건국훈장 대통령장)가 관병식을 참관하고 황궁으로 돌아가던 히로히토(裕仁) 일황에게 폭탄을 던진 사쿠라다몬(櫻田門) 지역,金祉燮의사(1885∼1928·건국훈장 대통령장)가 1925년 황궁을 향해폭탄을 던진 니쥬바시(二重橋),李康勳 전 광복회장이 1933년 주중(駐中)일본공사 아리요시(有吉明)를 폭살시키려다 체포돼 16년간 옥고를 치른 스가모(巢鴨)형무소지(址) 등이다. ‘2·8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崔八鏞·徐椿 등 10명의 도쿄 유학생이 주동이 돼 3·1만세의거 1개월 전에 발표한 독립선언으로 일명 ‘조선청년독립선언’이라고도 불린다.
  • 백범·단재 장손 정부기관에 특채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후손 두 명이 당국의 배려로 정부기관에 특채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다.주인공은 백범 김구선생의 장손金振씨(50)와 단재 신채호선생의 장손 申尙原씨(28).金씨는 지난해 11월초주택공사 상임감사(차관급)로,申씨는 이달 18일 국가정보원 8급 직원으로 각각 특임(特任)된 것으로 확인됐다. 金씨의 경우 金大中대통령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金대통령은 백범가(家)와 남다른 사연을 갖고 있다.7대 총선때 목포에서 출마한 金대통령은 선거직전 상대후보가 백범암살사건 관련자라는 사실을 폭로,선거를 승리로 이끈 적이 있다.이를 계기로 金대통령은 해마다 백범 묘소를 참배해 왔으며 한동안 백범기념사업회 이사를 지냈다.14대 국회때 ‘백범시해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자 위원회 사무실 운영비를 수차례 지원하기도 했다.특히 8대 총선때는 金대통령측에서 백범의 아들 金信씨(77·전교통부장관)를 야당후보로 영입하려 한 적도 있다.현정권 출범초기 여권 일각에서는 백범가에 대한 ‘배려’가 논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金振씨는 미국 남가주대학·대학원 졸업 후 귀국,국제종합건설 감사실장·부속실장과 외국인회사 국내지사장을 역임하고 최근까지 개인사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단재의 손자 申尙原씨는 李鍾贊 국정원장이 특별히 배려한 케이스.李원장은 작년 8월 안기부의 개명작업을 추진하면서 집무실내에 백범과 단재선생의 사진을 내걸었다.이는 국정원의 연원을 단재의 의혈단,백범의 한인애국단에서 찾겠다는 취지였다.작년말 李원장은 사석에서 단재의 손자가 국정원에 원서를 냈다는 얘기를 듣고 申씨의 채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李원장의 조부인 우당 李會榮선생과 단재 선생은 독립운동 동지이자 같은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로 각별한 사이였다.지난해 성균관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申씨는 국정원 산하 국가정보연수원에 배치돼 국가관교육프로그램 제작 분야에 근무하고 있다.
  • 친일의 군상(22회)-독립선언서 기초 崔南善

    육당(六堂) 崔南善을 ‘역사의 저울’에 달면 공(功)으로 기울까,과(過)로기울까? 공과가 교차되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참으로 어렵다.견해나 입장에따라 한 쪽으로 기울기 쉽기 때문이다.육당 최남선(1890∼1957)이 바로 그런 인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육당은 3·1의거 당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문필가·출판인 등으로 알려진 인물이다.70이 안되는 생애를 살다간 그지만 그가 문화사 분야에서 남긴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다. 육당은 1907년 18세의 나이로 출판사인 신문관(新文館)을 설립,계몽도서를출판하였다.또 이듬해에는 종합잡지 ‘소년(少年)’을 창간,창간호에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게재한 사실은 우리 문화사 첫 페이지에기록돼 있다. 육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족적 면모는 그가 3·1의거 때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실이다.문체를 두고 지나치게 나약하다거나 한문투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지만 그는 이 일로 31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다.그러나 그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이받은 건국훈장을 받지 못했다.이유는 간단하다.그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친일파 중에는 초창기 민족진영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일제말기에 가서 친일로 변절한 사람이 상당수 있다.그러나 육당은 사정이 다르다.1921년 10월 가출옥으로 석방된 그는 출옥 직후부터 일제와 ‘교감’을 하고 지냈다. 출옥 이듬해 그는 16년동안 운영해온 신문관을 그만두고 동명사(東明社)를설립,주간지 ‘동명(東明)’을 창간하였는데 창간과정에서부터 일본측 인사로부터 도움을 받은 구석이 역력하다.출옥후 육당이 일본인 거물인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잡지는 ‘동명(東明)’이라는 이름으로 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중략).잡지건은 진력한 성과가 가까운 시일안에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금후의처분은 모든 것을 하나로 하여 선생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이 편지는 본지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입수,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임) 특히 이 편지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보면 정말 이 편지를 육당이쓴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지난날 (선생께서) 경성(京城,서울)을 출발하실 때부친과 함께 역까지 달려갔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정각에 늦어 실례가 많았습니다.”우선 보고(報告)를 드리면서 이것으로 붓을 놓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사이토(齋藤實)총독의 정치참모이자 총독부 일어판기관지 ‘경성일보(京城日報)’의 사장을 지낸 아베(阿部充家)였다.‘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애국지사 육당 최남선의 면모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3·1의거가 발생한지 불과 2년 9개월만의 일이다. 육당이 친일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1928년 10월 총독부의 역사왜곡기관인 ‘조선사편수회’의 편수위원직을 수락하면서부터다.조선사편수회는1911년 총독부가 ‘구습(舊習)제도의 조사와 조선사 편찬계획’을 목표로 발족한 단체.본래 목적은 조선을 영구히 강점하기 위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개조한다는 ‘동화주의(同化主義)’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편찬하려는 조선사는 식민사관에 의한 조선사 왜곡이 주목적이었다.육당은 편수위원으로 위원회활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실무자로 직접편찬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1928년∼36년).이밖에도 그는 총독부가 위촉하는 여러가지 위원직을 수락,일제에 협조했는데 이 공로로 그는 중추원 참의(주임관 대우·1936.6∼38.3)를 지냈다. 육당의 대표적인 친일행적중의 하나는 만주에서 있었다.중추원 참의를 물러난 직후인 1938년 4월 그는 만주행에 올랐다.처음 맡은 직책은 만주의 친일지 ‘만몽일보(滿蒙日報)’의 고문자리였다.원래 이 자리는 秦學文이 있던자리였는데 진씨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그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1년뒤그는 다시 만주국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로 부임하였다.대우는 칙임(勅任)교수에 월급은 400∼500원으로 최상급이었다.(‘삼천리’1938년 5월호). 사학자로 육당과는 절친한 친구였던 위당(爲堂) 鄭寅普선생이 그의 집 대문앞에 술을 부어놓고 “이제 우리 육당이 죽고야 말았다”며 대성통곡을 한것은 그가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한 것을 두고 한 것이었다.육당은 이 대학예과에서 만몽(滿蒙)문화사를 강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건국대학 교수 재직중 그는 1940년 10월에 조직된 ‘동남지구 특별공작후원회본부’의 고문직을 맡기도 했다.이 단체는 일본 관동군의 반공·선무(宣撫)공작을 지원한 친일단체로 독립군과 항일빨치산을 상대로 한 귀순공작이 주임무였다.이 단체의 총무 朴錫胤은 육당과 처남-매부간으로 나중에만주국 외교부 조사처장,‘매일신보’ 부사장 등을 지냈다. 육당의 친일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4년 7개월간의 만주생활을 청산하고 1942년 11월 귀국한 그는 칩거하면서 집필활동에 전념하였다.그러던중 이듬해말 총독부의 부탁으로 李光洙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훗날 육당은 자신의 학병권유가 마치 조국의 광복을 대비하여 ‘민족 기간요원 양성’을 위한 행위였던 것처럼 변명하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속으로는 일제패망을 확신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당시 그는 일제의 필승을 장담하면서 대일본제국의성전(聖戰)을 위해 조선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 죽어야 한다고 공언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면,그는 학병권유를 한 반면 그의 3남은 그와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경도(京都)상고 출신으로 동경(東京)제대 법학부에 재학중이던 그의 3남 漢儉(1922∼?)은 학병출진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해방을 맞았다.해방후 월북하여 문학대학·김일성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부친의 친일행적 때문에 적잖은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북한 고위직 출신 신모씨 증언). 49년 1월 초부터 반민족행위자 검거에 나선 반민특위는 2월 들어 문화계 인사를 손대기 시작했다.2월 7일 마침내 육당의 우이동 집에 특위 조사관들이들이닥쳤다.자택에서 ‘조선역사사전’의 원고를 집필중이던 그는 “시대적현실을 역행할 수 없다”며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같은 날 세검정에서는 춘원 李光洙가 체포됐다.일제하 문화계의 양대 거물이었던 두 사람이 ‘역사법정’에 끌려나온 것이다. 마포형무소 수감시절 육당은 ‘자열서(自列書)’라는 일종의 ‘반성문’을쓰기도 했다.“내가 변절한 대목,즉 왕년에 신변의 핍박한사정이 지조냐학식이냐의 양자중 하나를 골라잡아야 하게 된 때에 대중은 나에게 지조를 붙잡아라 하거늘 나는 그 뜻을 휘뿌리고 학업을 붙잡으면서 다른 것을 버렸다.대중의 나에 대한 분노가 여기서 시작하며 나오는 것을 내가 잘 알며 그것이 또한 나를 사랑함에서 나온 것도 내가 잘 안다”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학문을 위해 지조를 버렸다.이 선택을 그는 ‘변절’이 아닌 ‘방향전환’이라고 했다.명색이 학자를 자처한 그가 지조와 학식을 별개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그에게 지조있는 지식인이 되어줄 것을 기대한 자체가 조선동포들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金昌淑선생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의 일이다.한번은 전옥(典獄,교도소장)이 육당이 쓴 ‘일선융화론(日鮮融和論)’을 갖고 와서는 읽고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심산은 첫 몇 장을 읽고는책을 전옥에게 던지며 이렇게 호통쳤다.“나는 반역자가 미친 소리로 요란하게 짖어대는 흉서(凶書)를 읽고 싶지 않다.기미년 독립선언서가 남선(최남선)의 손에서 나오지않았는가.이런 사람이 도리어 일본에 붙어 역적이 되었으니 비록 만 번 죽여도 그의 죄가 남는다”고.
  • 3·1운동 기념탑 告由祭儀 거행

    3·1절 80주년을 기념해 건립중인 독립운동기념탑 고유제의(告由祭儀)가 2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장충동기념비 건립지에서 열렸다. 고유제의란 나라에서 큰 일을 할 때 조상과 천지신명에게 일이 잘 되기를비는 일종의 고사다.3·1독립운동 기념탑 건립위원회(위원장 李壽成)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기념탑 건립을 천지신명께 알리고 3·1운동 선열들에게 애국애족정신 계승을 다짐하기 위해 마련됐다. 고유제의는 신령을 맞이하는 영신례(迎神禮),음식을 바치는 전폐례(奠幣禮),술을 따르는 작헌례(酌獻禮),제사 지낸 음식을 먹는 음복례(飮福禮),신을환송하는 송신례(送神禮)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金義在 국가보훈처장,吳榮祐 한국마사회장,李元範 3·1운동기념사업회장,金三悅 독립유공자 유족회장,金光旭 천도교교령,柳興洙·徐尙敎 원로애국지사 등 각계인사와 광복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 기념탑은 다음달 중순쯤 완공돼 3월1일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李相錄 myzodan@
  • 張俊河선생 기념사업회 3월 발족

    월간 ‘사상계’의 발행자로 민주화투쟁에 앞장서다 지난 1975년 의문사한張俊河 선생 기념사업회가 3월 발족한다.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 劉光彦간사(전 정무1차관)는 18일 張俊河 선생(사진)의 독립·반독재 투쟁과 민족사랑 정신을 기리고 그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기념사업회를 발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준비위원장에는 池明觀 한림대 한림과학원 석좌교수가 선임됐으며 준비위원은 張선생의 지인,가족,후학 50여명으로 구성됐다.준비위원 중에는 桂昌鎬강원아침신문 사장,金道鉉 전 문화체육부차관,국회의원 朴正勳·李富榮씨,金鎭鉉 서울시립대 총장,金三雄 대한매일 주필,李海學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공동의장,李熊根 전 서울대교수,高成勳 전 사상계 부장,張豪權 張선생 장남등이 포함돼 있다. 기념사업회는 張선생이 전국을 돌며 강연 학술회의 등을 개최하던 ‘민족학교운동’의 재개,장준하 상(언론·평화 등 여러부문)제정,사상계 속간,의문사 규명 등의 사업을 펼 예정이라고 劉 간사는 밝혔다. ‘사상계’의 속간은 이 잡지의 판권이 제3자에게 넘어가 있어 새로운 이름의 잡지가 될 가능성도 있다. 張선생은 1918년에 태어나 광복군에 가담,독립투쟁을 했고 해방후에는 민주화투쟁에 앞장 섰으며 특히 유신독재에 강하게 반발,朴正熙 전대통령에 정면 도전하다 많은 의문 속에 경기도 포천에 있는 약사봉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02)733-0969
  • 광복회 14대 회장 尹慶彬씨

    광복회는 지난 16일 광복회관 대강당에서 전국 대의원 임시 총회를 열고 앞으로 4년간 광복회를 이끌어 갈 제14대 회장에 尹慶彬 애국지사(79)를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신임 尹회장은 1919년 평남 중화에서 태어났으며 44년 일본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일제에 의해 학도병으로 징집돼 중국으로 끌려갔으나 故張俊河선생과 함께 탈출,重慶 임시정부의 광복군에 입대,항일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광복군 간부 훈련반을 졸업한 뒤 임시정부 경위대장,광복군 총사령관 부관등을 역임하며 임시정부 金九주석을 보좌했다. 45년 광복 후 金九선생을 수행,환국했으며 이후 대한민국대표 민주의원 비서,흥화공업소 부사장,백범 金九선생기념사업회 이사,독립유공자협회 회장등을 역임했다.80년에 건국포장,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부인 權恩愛여사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金仁哲 ickim@
  • 金대통령 친필휘호 2점 李儁열사기념관 영구 전시

    金大中대통령의 친필휘호 ‘平和’와 ‘敬天愛人’ 2점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李儁열사기념관의 ‘평화의 방’에 영구히 전시된다. 휘호는 金대통령이 지난해 헤이그에 있는 현지법인 이준아카데미 李基恒원장의 요청에 의해 金義在국가보훈처장의 건의를 받아 쓴 것으로 네덜란드 주재 대사관을 통해 이달중 전달된다. 휘호가 전시될 ‘평화의 방’에는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와이즈만 이스라엘 대통령,만델라 남아프리카 대통령 등 세계 22개국 정상과 아웅산 수지 여사 등 다섯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자국어로 쓴 ‘평화’라는 친필휘호 25점이 전시되어 있다. 또 金九선생의 萬古遺芳,李承晩박사의 百世淸風,李始榮선생의 超類高風 遺芳千秋,朴正熙 전 대통령의 殉國大節과 申翼熙·吳世昌선생의 영인본 휘호,金泳三 전 대통령의 한글로 된 친필휘호 ‘평화’ 등이 전시돼 있다. 李儁열사기념관은 95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열사가 순국한 ‘드용호텔’(대지 90평 건평 178평의 3층 건물)을 개조해 개관했다. 기념관에는 만국평화회의에 함께참석했던 李相卨·李瑋鍾선생의 개인별 전시실,평화의 방,만국평화회의 자료실,훈장과 메달방,한국역사실,화란역사실등 10개의 전시실에 234점의 관련자료와 유품이 전시돼 있다. 李儁열사는 1859년 함남 북청에서 태어나 1907년 황제의 친서를 간직하고 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을사조약 무효를 선언하는 공고사(控告詞)를 발표,세계언론을 환기시키고 7월 4일 순국했다.
  • 동서를 껴안고 통일로 하나가 되어 더불어 살자(5회)

    지역감정문제는 우리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 왔지만 해소를 위한 노력은 별달리 두드러지지 못했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역감정 해소를 최우선과제로 외쳤지만 구체적인 실천은 뒤따르지 않았다.시민·사회단체 활동도마찬가지였다.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단체도 드물었고 그 기간도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 86년에 출범한 ‘지역감정해소국민운동협의회’는 이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민단체의 효시(嚆矢)라 할 수 있다.“87년 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게 金知吉 당시 상임의장의 말이다. 국민운동협의회는 ‘동서장애인화합대회’와 학생교류,국토횡단대회 등 각종 행사를 열기도 했지만 다른 관변 행사와 차별성을 갖지 못한 채 사회적호응을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이 단체는 93년 ‘공동체의식개혁국민운동협의회(공개협)’라는 이름으로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姜英勳·李賢宰·劉彰順·南悳祐·玄勝鍾 전 국무총리를 비롯,李英燮·李一珪 전 대법원장,李康勳 전 광복회회장,具常 시인,姜元龍 목사,安東壹변호사,洪一植 전 고려대총장,朴弘 전 서강대 총장 등 각계 원로들이 대거 참여한 순수 민간자율단체였다. 지역갈등의 근본원인을 ‘우리 의식’이 실종된 데서 비롯됐다고 보고 그해결방안을 공동체의식의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공개협 徐聖喆사무총장은 “결자해지(結者解之)차원에서 지역감정문제는 정치권이 풀어야 하지만 이미 정치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면서 시민단체가 나서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했다.수년간 이 분야에서 활동해온 그는 “지방을 다녀보면 영·호남으로 나뉜 동서 분할의 지역분권 구도가 이제 충청·강원권으로까지 세분화돼 사분오열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공개협은 기존 조직에 새로이 시·도,시·군·구협의회 등 100여개 지부를만들어 세미나와 토론회,학술회 등을 여는 동시에 공동체의식개혁 실천 100대 과제를 선정하는 등 실천운동으로 발전시키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5월 발족한 ‘국민화합시민연대’(사무총장 金鍾仁)도 문제에 대한접근방식은 공개협과 비슷하다.지역감정문제는 단순하게 지역대립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시민연대측의 판단이다.이미 사회·문화적 대립관계로까지 변질돼 그 골도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대립은 50년 만의 여야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지역대립의 감정적 응어리가 더욱 증폭될 위험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지역주의와 지역대립이 계속된다면 국민적 분열에 따르는 국가 안위상의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습니다.우리는 국가의 갈등과 분열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모였습니다’.시민연대 발기문의 일부이다.소극적으로는 국가 분열방지운동이지만 적극적 의미에서는 한국 통일운동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金鍾仁사무총장은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잘 자라지 못한 데는 지역분열로 인해 국민적 역량을 민주적 방식으로 결집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설명했다. 金총장은 “지역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 단순한 지역갈등을 넘어 지역소외문제,지방자치문제,북한문제,해외동포문제 등을 해결하는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연대가 제시한 국민화합운동 방식은 민간 부문이 주체가 되고 지방자치단체는 사업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홍보용이나 일회성 사업은 지양하고 실용적인 사업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영·호남뿐 아니라 충청·강원 등 단위지역 모두가 함께하는 경제교류,교통수단의 활성화,초·중·고 학생들의 교류확대 방안 등을 구상중이다.지난해7·21 재·보선 과정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했던 사례를 분석,발표했던 것처럼 정치활동과 사회현상을 감시해 국민에게 알리는 일도 추진할 방침이다.李志運 崔麗京 jj@
  • 정직한 역사 되찾기-친일의 군상(21회)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가곡 ‘선구자’의 제1절이다.노랫말이 담고 있는 비극적 서사성과 장중한선율,게다가 가사 구절마다 배어있는 조국 광복의 웅지가 어우러져 부르는이,듣는 이 모두를 숙연케 하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가히 ‘국민가곡’이라 부를 만하다.일송정(一松亭)에 오르면 멀리 서쪽으로 용정(龍井)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발아래 북쪽으로는 해란강(海蘭江)이 서에서 동으로 유유히 흐른다.이곳이바로 ‘선구자’의 고향이다.그러나 유구한 세월 속에서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말 달리던 선구자도,활을 쏘던 선구자도….‘선구자’의 주인공들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오직 그들이 부르던 노래만 남아 입으로,가슴으로 전해오고 있다. ■시인·작사가 尹海榮‘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가곡 ‘선구자’의 제1절이다.노랫말이 담고 있는 비극적 서사성과 장중한선율,게다가 가사 구절마다 배어있는 조국 광복의 웅지가 어우러져 부르는이,듣는 이 모두를 숙연케 하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가히 ‘국민가곡’이라 부를 만하다.일송정(一松亭)에 오르면 멀리 서쪽으로 용정(龍井)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발아래 북쪽으로는 해란강(海蘭江)이 서에서 동으로 유유히 흐른다.이곳이바로 ‘선구자’의 고향이다.그러나 유구한 세월 속에서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말 달리던 선구자도,활을 쏘던 선구자도….‘선구자’의 주인공들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오직 그들이 부르던 노래만 남아 입으로,가슴으로 전해오고 있다. 1932년 10월 어느 날 저녁.만주 하얼빈에 살고 있던 청년작곡가 趙斗南(1912∼1984)에게 낯 모르는 한 청년이 찾아왔다.키가 작고 마른 체격의 청년은조두남에게 시 한편을 내놓으며 곡을 붙여달라고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조두남은작곡을 해놓고 그 청년을 기다렸으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조두남은 그가 주고간 시의 내용으로 봐 그를 독립군 정도로 여겼다.이 내용은 조두남이 ‘선구자’ 작곡에 얽힌 비화를 소개하면서 작사가 윤해영에 관해 언급한 것이다. 尹海榮의 일제시대 행적이 밝혀진 것은 90년대 초반.한동안 윤해영은 ‘신비의 인물’로 여겨져 왔다.지난 90년 한국을 방문한 연변대학의 權哲교수는 “윤해영은 독립군이 아니라 시인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권교수에 따르면 윤해영은 1909년 함경도에서 출생,소학교 교사를 하다가 시인이 됐다는 것.초창기 그의 시는 ‘선구자’에서 엿보이듯 민족적 색채가 강했다.그러나 그는 식민지 시대를 겪으면서 훼절,친일로 전향하였고 해방후에는 공산주의를찬양하는 시를 썼다고 권교수는 주장하고 있다.권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윤해영은 결국 만주 친일파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셈이다. 친일파들 가운데 행적입증이 가장 쉬운 부류는 단연 문사(文士)들이다.곳곳에 친일의 흔적(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윤해영 역시 예외가 아니다.일제하 만주에서 간행된 ‘만주시인집(滿洲詩人集)’(1943년 간행)과 ‘반도사화 낙토만주(半島史話 樂土滿洲)’에 남아있는 그의 친일시 몇 편을 우선 살펴보자. ‘오색기 너울너울 낙토만주 부른다/백만의 척사들이 너도나도 모였네/우리는 이 나라의 복을 받은 백성들/희망이 넘치누나 넓은 땅에 살으리…’(‘낙토만주’ 제1절) 운율과 형식이 가곡 ‘선구자’를 본뜬듯이 꼭 같다.그러나 속생각은 정반대다.우선 ‘오색기(五色旗)’는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의 국기(國旗)를 말한다.만주국은 만주족·몽고족·한족·일본족·조선족 등 오족(五族)으로 구성돼 있었다.만주국 국기의 다섯 가지 색깔은 각 민족을 상징한다.만주국의 통치이념인 ‘오족협화(五族協和)’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이 무렵 윤해영은 태극기 대신 오색기를 들고 있었다.바로 ‘낙토만주’는반민족 정서의 정수라 할 만하다.당시 만주에는 조선땅에서 건너간 유랑민들이나 독립운동가들의 가족들이 숨어서 은거하던,말 그대로 ‘고난의 땅’이었다.이를 두고 그가 ‘낙토’ 운운한 것은이미 민족의 반대편에 서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에 흐르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지극히 낭만적이고 평화롭다.‘말달리던 선구자’를 외치던 정신은 온데 간데 없고 선구자들이 말달리던 만주국을 이상향(理想鄕)으로 미화하고 있다.‘유사품’ 한 편을 더 소개하자. ‘흥안령(興安嶺) 마루에 서설(瑞雪)이 핀다/4천만 오족(五族)의 새로운 낙토(樂土)/얼럴럴 상사야 우리는 척사(拓士)/아리랑 만주(滿洲)가 이 땅이라네…’(‘아리랑 滿洲’,‘만선일보’ 1941.1.1) 이 시는 윤해영이 만주국 기관지 ‘만선일보(滿鮮日報)’ 신춘문예 민요부문에서 일석(一席:1등)을 차지한 작품이다.심사평에서 평자(評者)는 이 시의 3연 2행 ‘기러기 환고향(還故鄕) 님 소식(消息)가네’를 두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귀에 익은 ‘아리랑’에다 전통타령조까지 가미한 것이 흥겨운 민요 한 편을 만난 기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작품이 나온 시기와 장소이다.1939년 10월 조선에는 ‘국민징용령’이 내려졌고 2개월 뒤인 12월에는 ‘창씨개명령’이 공포되었다.그 무렵 만주에서는 ‘선만일여(鮮滿一如)’,즉 ‘만주와 조선은 하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륙침략에 조선의 물자와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었다.이같은 형국에 척사(拓士·개간꾼)들 앞에서 ‘얼럴럴’ ‘낙토’ 운운한 것이 당시 윤해영의 시(詩) 정신이요,민족관이었다.이름이 ‘아리랑’이지우리 전통민요 ‘아리랑’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1940년대 그는 만주국 친일조직인 협화회(協和會)의 간부를 지내기도 했다.친일의식이 행동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한편 윤해영이 1941년에 쓴 시 가운데 ‘발해고지(古址)’라는 시가 있다.이 작품은 윤해영이 발해유적을 답사하면서 민족의 비극을 돌아보는 내용을담고 있다.‘변절자’ 윤해영이 정신적 방황을 거듭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윤해영의 시세계를 연구해온 인천대 오양호교수(국문학)는 “일제말기 우리 지식인들이 운명적으로 겪어야 했던 비극의 편린을 보는 느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지난해 가을에도 해묵은 논쟁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다.바그너 곡(曲) 연주를 둘러싼 찬반론이었다.이스라엘은 아직도 공식 석상에서 바그너 작품 연주를 금하고 있다.바그너가 제공한 반(反) 유태정신이 나치즘의 이론적인 기틀을 제공,민족감정에 배치된다는 것이 ‘연주금지’의 이유다.바그너는 1883년에 사망했다.그러므로 금세기에 자행됐던 유태인 탄압과는사실상 직접적 관계는 없다.그러나 이스라엘은 아직도 바그너의 작품 연주 금지를 풀지 않고 있다.이스라엘 민족이 편협해서일까. 예술작품의 참 가치는 기교가 아니라 정신이다.鄭雲鉉 jwh59@
  • 문익환목사 삶의 흔적·문학작품 모은 전집 출간

    문익환 선생의 삶은 거대한 스케일의 대하소설이다.분단과 독재를 배경으로 펼쳐진 장대한 소설의 주인공처럼 살았다. 그는 열정적인 민족주의자였다.통일을 염원하는 뜨거운 민족애는 차가운 냉전의 벽을 넘어 북한을 방문하는 열정으로 나타났다.그는 종교와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는 큰 포용력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독재의 현실이 너무 갑갑했다.그래서 독재권력이라는 거대한 힘에 끝없이 도전했다.민중을 억압하는법을 깨면서 살았다.그러나 어둠의 밤이 영원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그는 찬란한 역사의 아침을 믿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흔적이 배어있는 작품을 모은 ‘문익환 전집’이 11일 출판된다.‘통일맞이 늦봄 문익환 기념사업회’가 발간하는 그의 작품 하나 하나에는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한 ‘불행한 시대 자유인’의 삶이 현대사의 한 부분으로 담겨 있다.사계출판사는 타계 5주기를 맞아 12권의 전집을 800질 한정본으로 발간한다고 밝혔다. 제1권과 2권은 시인으로서의 문익환 선생을 조명한다.3권부터 5권까지는 통일을 향한집념과 발자취 및 민주화 투쟁 과정을 담고 있다.6권은 수필이다.7권에서 9권까지는 투옥기간에 가족과 지인에게 보낸 옥중서신,그리고 파스요법등 그가 창안한 민중의학으로 꾸며져 있다.10권과 11권은 신학자이며 목사였던 그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12권은 설교문으로 구성돼 있다. 늦봄 문익환은 1918년 북간도 용정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시인 윤동주와는 고향에서 초등·중학교를 같이 다녔다.그의 생애에서 윤동주는 언제나 ‘별’이었다.윤동주가 ‘별 헤는 밤’에서 어둠을 뚫고 찾아오는 아침과 조국광복을 믿었듯이 그도 민주주의와 통일시대가 올 것을 믿었다. 윤동주가 마음의 별이었다면 그를 70년대 반독재투쟁에 나서게 한 것은 장준하였다.그는 3권에 실린 ‘역사를 보는 눈’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장준하의 죽음을,아니 그의 마음을,그의 뜻을,그의 나라사랑·겨레사랑을 땅에 묻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그의 시체를 땅에 묻으면서 저는그의 죽음 앞에 맹세했습니다.“네가 하려다가 못다한 일을 하마.” 그는 신학교후배인 장준하와의 약속대로 반독재투쟁의 한가운데 섰다.그의 활동은 76년 3월1일 명동성당에서 발표한 ‘민주구국선언’으로 하나의 절정을 이루었다.그는 선언문을 기초했다.명동선언은 유신독재에 대한 도전이었다.‘7·4공동성명 이후의 민족문제’라는 글은 절박했던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긴급조치 1호가 발동된 74년 1월을 김지하는 ‘죽음’이라고불렀다.학원의 외침마저 침묵해 버렸다.이 암흑기에 누군가 민족의 진로를염려해서 할 말을 했다는 기록만이라도 남겨야 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던 그가 새삼스럽게 발견한 것은 분단의 현실이었다.그는 모든 문제의 뿌리는 분단에 있으며 민주화와 민족통일은 다른 과제가아니라 하나라고 인식했다.그리고 통일이 민족문제 해결의 완결편이라고 생각했다.“동학 농민혁명에서부터 70·80년대 인권운동에 이르는 민족의 수난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모든 과제들을 한꺼번에 푸는 일은 통일입니다”라고 ‘역사를 보는 눈’에서 지적했다.통일은 그러나 평화적이고 민족 주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그의 글은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자주적 통일 제단에 하나의 벽돌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그는 마침내 분단의벽을 넘었다.1989년 3월25일.문익환이 평양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한국뿐만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깜짝 놀랐다.그는 88년 그믐날을 명상으로 지샌후 89년첫 새벽에 쓴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시 마지막 줄을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라고 끝맺으며 방북의 결의를 다졌다. 그는 김구 선생이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기분으로 북한에 왔다고 도착성명에서 밝혔다.그는 북한에서도 “북은 자유를 남은 평등을 향해서 궤도수정해야 한다”는 자신의 지론을 강조했다.그의 논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창조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앤서니 기든스 교수의 ‘제3의 길’과 맥이 닿아 있다. 통일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서 기독교 신앙과 시는 힘의 원천이었다.그는많은 시를 썼다.쉰이 넘어 문단에 데뷔한 그는 “시가 거의 40%를 차지하는구약성서를 번역하다 뒤늦게 시인이 됐다”고 밝혔다.신경림 시인은 작품해제에서 “그의 가장 치열한 시 정신은 민족현실을 아파하는 시,통일을 염원하는 시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문익환은 10여년 동안의 옥중생활 중에도 많은 시와 산문을 썼다.그의 옥중서신은 바깥 세상을 향한 ‘희망의 종이 비행기’였다.그의 글은 쉽고 명료하다. 행동하는 구약 신학자였던 그는 독재권력과 제도권 언론으로부터 많은 탄압과 비난을 받았다.그러나 권력과 제도의 속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의 다양한 삶을 살았다.그래서 그는 ‘생의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았다.李昌淳 cslee@
  • 의전 이야기-실수에 놀라고 날씨에 울고 ‘긴장 25시’

    정부의 의전 전문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朴載宅 정부 과천청사 관리소장으로부터 ‘의전 이야기’를 듣는다.朴소장은 행정자치부 의정국과 대전 엑스포조직위원회 등에서 10년 넘게 정부 의전과 행사업무를 맡아 왔다. 행사는 잘해야 본전이다.그만큼 변화무쌍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의전담당자의 고심은 크다.더구나 주요의식과 외빈영접 등 국가의전을 맡은 사람들의 긴장은 상상을 넘는다. 지난해 8월15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일이었다.정부 의전업무를 맡은 행정자치부 의정국 관계자들은 경복궁 마당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는기념식 준비를 위해 보름이 넘게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런데 행사를 하루 앞둔 14일이 되자 아침부터 폭우가 내렸다.물론 악천후를 대비한 제2의 장소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준비해 놓기는 했다. 기상청은 광복절 당일에는 날씨가 개일 것으로 예보했다.장소 결정은 金正吉 행자부 장관의 손에 맡겨졌다. 의정국 관계자들은 어떤 결정이 내려지기를 바랐을까.폭우 속에서도 경축공연의 리허설은 모두 마친 상태다.그동안 흘린 땀을 생각한다면 예정대로 치르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생각은 한결같았다.실내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결국 金장관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행사는 조촐하게 끝났다.1억원을 들여 세운가설무대는 한 방송사의 특집방송무대로 쓰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의정국 직원들은 왜 빛이 안나는 쪽을 택했을까.행사는 잘 될 때보다는 잘안되는 때가 더 많다.큰 실수가 없더라도 사소한 문제는 언제나 나타난다.실수 뒤에는 질책이 이어지고,책임만 뒤따른다.반면 행사가 원만하게 끝났을때는 어떤가.정신적,육체적으로 가장 고생한 관계자들은 행사 주관 고위인사으로부터 “수고했어.내가 한턱낼께”라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지만 현실은다르다.행사담당 간부는 오히려 주관한 고위 인사에게 “귀빈을 접대하느라고 고생하셨죠.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행사에 협력한다른 부서에도 일일이 감사의 말을 전해야 뒤탈이 없다. 정부차원에서 주요행사의 일정을 잡을 때 의전담당자들은 기상청의 협조를받아 지난 5∼20년 동안의 날씨를 점검하여 가장 행사하기 좋은 날짜와 시간대를 고른다. 대통령 취임식같은 행사는 보통 30년 동안의 기상 기록을 검토한다.그러나광복절같은 기념일은 날짜가 정해져 있으므로 날씨변화에 철저히 대비하는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 權전부총재 귀국

    국민회의 權魯甲전부총재가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후 4개월여의 일본생활을 마치고 30일 오후 귀국했다. 吳一萬 oilman@daehanmaeil.com [吳一萬 oilman@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7회)-일본문학보국회원 장혁주

    한국 문학사전보다는 일본 현대문학사전에 더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 작가 장혁주는 식민지 시대 때 일본문단으로 등단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문명을 떨 쳤던 인기작가였다.1932년 ‘아귀도’(餓鬼道)란 사회성 짙은 작품이 일본의 유명한 ‘개조’(改造)지 제5회 현상공모에 당선된 후 그는 일·한 두 나라 에서 두 언어로 민족의식이 짙은 작품활동을 하여 금서 조처를 받는 등 아나 키즘적 경향이 짙은 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1905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장은중(恩重)이고,창씨개명은 노구치 가쿠주(野口赫宙),일본인으로의 귀화명은 노구치 미노루(稔)이다.그가 쓴 단편 ‘다른 풍속의 남편’은 일인칭 소설로 ‘나’는 작가이다.모국(한국) 에서 간통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피신,본처와 헤어지고 일녀 게이코와 결 혼하여 겪게 되는 서로 다른 풍속의 부부생활 중 아내로부터 온갖 수모와 학 대를 견디면서도 일본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각오를 다지는,말하자면 단순한 ‘친일’의 차원이 아니라 혈연적인 일본인화의 표상이다.자전적 요소가 짙 은 이작품처럼 그는 일본문단으로 등단한 이후 일녀 노구치 게이코(野口桂 子)와 결혼,아내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는 ‘무지개’ 등의 작가에다 문단 페스트균의 논쟁 유발자로 여전히 장혁주란 이름으로 남아있는 노구치의 친일행적은 임종국이 ‘친일문학사’에서 간략히 밝혔고,광복 이전 일본에서의 활동은 하야시 고 지(林浩治)의 ‘재일 조선인 일본어 문학론’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숱한 친일문인을 제치고 새삼 장혁주를 거론하는 까닭인 즉 그가 친일을 위하여 조선문인보국회가 아닌 일본문학보국회 회원으로 맹활약했었기 때문이다. 두 저서가 다 광복 이전의 ‘친일’행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해방 후의 활동은 묻혀 있었는데,장혁주가 일본인으로 귀화했던 1952년 전후에 취했던 그의 태도는 가히 충격적이다.그는 구태여 해방된 조국을 버리고 일본으로 귀화한 이유를 “한국 조야가 자기를 환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반역자 취급 을 하고 있기 때문”(조선일보 1952.10.14)이라고 밝혔다. 귀화 직후인 10월 19일부터 28일까지 열흘 동안 일본 잡지 ‘부인구락부’ (婦人俱樂部)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전쟁을 취재한 그의 행위를 ‘서울신문’ 은 ‘민족반역자 장혁주 변장가명으로 불법입국’(1952.11.2)이란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수난의 조국을 배반하고 일신의 영화를 누리기 위하여 스스로 일본국에 귀화한 민족의 반역자 장혁주가 .....그 더러운 발자국을 유엔 종군기자라는 복장에 감추어 극비리에 이 땅에 들여 놓고 다시 돌아갔다는 사실이 일본의 신문보도로써 이제 밝혀졌다.....그는 10일간이란 체류 기간에 서울을 비롯 하여 그의 더러운 눈으로 본 한국의 그릇된 일편을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 에 게재케 하여 결국 일본에 귀화함으로써 왕도낙토(王道樂土)를 얻었다고 술회하였다......그는 이번 여행을 극비밀리에 계획하여 유엔군 병사의 복장 을 빌려 입고 심지어는 변장을 위하여 검은 안경에 안대까지 하여 유엔종군 기자의 패스포트로써 이 땅의 눈을 속여 가면서 온갖 곳을 돌아 다녔다는 것 이다.” 이어 ‘서울신문’은다음날 ‘장혁주 등의 비국민 행위를 규탄’이란 기 사에서 “친일작가 장혁주가 자기의 과거를 돌아보아 그 잘못을 회개하지 못 하고 아직도 8.15 해방 전과 꼭 같은 죄과를 범하고 있다”고 서두를 쓴 뒤 “조국에의 반역을 감행하고 조국을 팔아 외국인의 안목을 현혹하게 하며 민 족의 위신을 떨어뜨리게 하는 일은 우리가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위정당국 은 하루 빨리 이 자를 체포해 오게 하여 국민의 엄정한 심판을 받게 해야 된 다”고 역설한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행동했던 재능있는 이 작가의 초상은 역사와 문학을 다시 진지하게 생각토록 만들기에 충분한 자료가 될 것이다. 任軒永(문학평론
  • 한일漁協 비준 줄다리기 본격화

    한·일어업협정 비준 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간 힘겨루기가 표면화됐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내년 1월7일까지인 이번 임시국회 회기중 비준 동의안 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방침이다.반면 한나라당은 비준 동의안 처리 불가(不可)의 뜻을 분명히 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28일 국회 통일외교통 상위 전체회의가 비준 동의안의 처리 전망을 가늠케 했다. 이날 비준 동의안을 상정,본격 심의에 착수한 통일외교통상위는 각계 전문 가의 찬반 의견을 청취하며 신경전을 벌였다.서울대 愼鏞廈교수 등 ‘반대파 ’와 朴椿浩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등 ‘찬성파’가 여야를 대신해 열띤 ‘전초전’을 벌였다. 특히 이날 회의에는 광복회와 한국국제법학회 관계자 등이 방청인으로 참석 ,사안의 민감성을 반영했다.그러나 여야간의 이견이 워낙 첨예해 비준 동의 안 처리 문제는 해를 넘겨 내년 1월4일 전체회의로 넘겨졌다. 愼교수는 “새 한·일어업협정에는 독도가 중간수역에 위치하고 있어 독도 영유권이 치명적으로 훼손됐다”며 “국제법상 독도에 대한한국의 실효적 점유를 보장한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 677호와 1,033호의 효력을 소멸시키 고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말려들었다”고 주장했다.“비준 절차를 6개월∼1년 정도 늦춰 정밀 검토작업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朴재판관은 “이번 협정은 독도 영유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어업 측면에서 한일간에 균형을 이룬 것”이라고 전제한 뒤 “독도 영유권은 연합 국 최고사령부 지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확립된 것”이라고 반박하며 협정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했다.“독도의 영유권은 이미 확보된 것 이므로 굳이 재론,삼론함으로써 자신이 없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오히려 해 로운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앞서 한나라당 李信範의원 등은 “최근 일부 의원이 독도를 방문하려 했는 데 朴浚圭국회의장과 洪淳瑛외교통상장관이 자제토록 설득했다”며 “국회의 원의 우리나라 영토 방문에 일본의 눈치를 본 것은 규탄받아 마땅하다”고 洪장관의 사과와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의원 전원의 독도 방문을 주장했다. [朴찬玖 ckpark@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潘炳律 외국어대 교수 ‘誠齋일대기’ 펴내

    ◎독립운동사의 거인 李東輝 ‘제모습 찾기’/신민회 활동·상해臨政 초대총리 활약/사회주의 접목 독립운동 새바람 꾀해/이념의 족쇄벗고 균형잡힌 재평가 시도 한 시대나 인물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제때,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시대가 바뀌면서 역사의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영웅이 쿠데타의 주역으로,또 반대로 반역자가 시대의 선각자로 등등.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도 그런 예는 허다하다. 최근 한국외국어대 潘炳律 교수(한국사)가 출간한 ‘성재 이동휘 일대기’(범우사)는 이같은 ‘역사의 평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반 교수는 한·일·중·러·미 등에 산재한 관련자료를 수집,이동휘 선생의 ‘제모습찾기’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성재(誠齋) 李東輝(1873∼1935) 선생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결코 홀대할 수 없는 큰 별이다. 더러 백범 金九,우남 李承晩,도산 安昌浩 반열에 놓기도 한다. 구한국 정부에서 강화도 진위대장(鎭衛隊長)을 지낸 선생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을사오적 처단후 자결할 것을 결심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신민회 핵심멤버로 활동하다가 나라가 망하자 1913년 만주로 망명,북간도와 러시아령(領)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지도하였다. 3·1만세의거 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한편 이 무렵 선생은 당시 풍미하던 사회·공산주의 사상을 한국독립운동 선상에 접목시키는 한편,선생 자신이 ‘고려공산당’을 창당하여 독립운동 진영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그러나 선생의 이같은 사회주의 혁명노선은 선생을 해방후 반세기 동안이나 ‘이념의 창고’에 가둬두는 족쇄로 작용하였다. 한동안 학계에서조차 선생의 이름을 거명하는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반공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 역대 남한정권은 선생의 사상성향을 이유로 독립운동 공적마저 덮어버렸다. 극도의 왜곡과 폄하 그 자체였다. 정부는 1962년부터 독립운동가에 대해 포상을 실시해왔는데 ‘광복50주년’인 95년에야 겨우 선생에게 훈장을 추서하였다. 친일경력자·가짜독립운동가 목에도 훈장을 걸어준 우리 정부가 진짜 독립운동가인 선생 앞에서는 ‘이념타령’만한 셈이다. 반 교수는 선생을 두고 “독립운동 공적은 물론,조국광복을 향한 사심없는 열정·희생정신·혁명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라며 ‘이동휘 예찬론’을 편다. 전기출판과 때맞춰 지난 21일 학계·종교계 인사 500여명을 주축으로 ‘이동휘기념사업회’가 조직됐다. 뒤늦었지만 선생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기념사업이 본격 시작될 모양이다. 선생의 자료집 ‘성재 이동휘 전서’(전2권·독립기념관 간행)을 곧 출간예정인 인하대 尹炳奭 명예교수(한국사)는 “민족운동사의 거인 이동휘를 균형잡힌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이해해야한다”고 밝혔다. 만주·연해주 일대를 제집 앞마당처럼 내달리며 항일운동을 하던 선생.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후 레닌정부가 약소민족 독립운동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자 멀리 인도양·지중해·알프스산맥을 넘어 모스크바로 레닌을 찾아가 만나기도 했던 선생. 저자의 서문 가운데한 귀절이 가슴을 친다. “‘2∼3년 내로 광복군을 이끌고 되돌아오겠다’며 압록강을 건넌 후 한시도 쉬지않고 뜨겁고 진실하게 살다간 선생의 삶과 꿈에 조금의 티라도 남기지 않았는지 죄책감마저 든다”. 어디 저자만의 ‘죄책감’일까. 선생 가신 후 60년이 지나도록 아직 유해조차 찾지 못한 우리 후손들인 것을. 범우사 20,000원.
  • 제2건국위 총점검­개혁과제 주요 내용

    ◎의식·생활·제도 개혁 ‘방향키’ 잡았다/대형예산사업·주요정책 결정·평가 시민참여 제도화/100만 일자리 창출·인권 살아있는 나라 만들기 주력 ‘제2의 건국’운동의 핵심과제는 위원회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분야별 7대 국정과제다.제2건국위는 이들 과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과제별 작업단(Task Force)을 구성해 본격적인 작업을 진행해왔다. 다음은 제2건국위가 이달 말 실천계획을 최종 확정하기에 앞서 24일 밝힌 7대 분야의 21개 기획과제 추진방향 가운데 눈길을 끄는 내용들이다. ●정부혁신 대형예산사업,주요 정책결정 및 평가에 시민참여를 제도화한다. 공공부문의 경쟁을 확대하고 경영마인드를 높이기 위해 공무원 충원제도와 직급제 개편을 추진한다. ●지역갈등 극복 지역차별금지를 입법화하는 등 차별금지를 제도화한다.지역감정 선동을 처벌하는 입법을 통해 지역감정의 정치적 동원을 억제한다. ●경제살리기(100만 일자리 창출) 주요 업종·분야별로 창업을 촉진하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규제완화 및 창업 인센티브를 발굴한다.청년 실업자의 해외취업을 지원하고,‘1실험실 1사 창업운동’‘엔젤투자운동’‘코스닥주식 갖기운동’을 전개한다. ●경쟁환경의 조성 영업범위·지역 등과 관련한 경쟁 제한적 인허가제도를 개선한다.공정위의 전문성을 높이고 역할을 강화한다. ●인권국가의 확립 인권법을 제정하고 국민인권위원회를 설치한다.구속수사요건을 엄격히 적용하고,불법감청을 억제한다. ●세계시민 교육과 문화한국 건설 외국인을 개방적으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태도를 증진한다.외국인의 국내투자와 부동산 취득,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외국인이 살고 싶은 한국만들기’ 캠페인을 전개한다. ●과학기술과 미디어산업의 진흥·개혁 과학기술 안보체계를 강화한다.방송등 미디어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노사간 협력과 신뢰구축 노사분쟁에 공정한 법 집행으로 대응한다.종업원지주제를 발전적으로 개선하는 등 근로자 참여제도를 확충한다. ●남북간 화해환경의 조성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북한의 실상 알리기’를 통해 이질감을 해소한다.북한의 국제사회 진출 여건을 조성하고 ‘한민족 네트워크 공동체’를 통한 대북 협력을 촉진한다. ◎각 부처 어떤일 하나/차관 총괄 ‘추진반 구성’ 99개 실천과제 제출/행자부­민간 인사교류 확대/노동부­노동시장의 유연화/재경부­불로소득 과세강화 정부 각 부처의 ‘제2의 건국’운동 참여는 정부부터 자기개혁을 선행하는 것이 국민생활과 밀접한 제도개혁을 추진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위원회측은 설명한다.각 부처는 현재 차관을 총괄책임관으로 ‘추진반’을 구성하고,이미 99개 실천과제를 제2건국위에 제출해 놓았다.다음은 부처가 추진할 주요 실천과제들이다. ●입법과정에 국민참여확대 입법예고 매체를 다양화하는 등 예고방식을 개선하고,입법의견은 반영결과를 반드시 통보하고,우수한 입법의견을 낸 국민은 포상하는 제도를 신설한다.(법제처) ●공직사회의 경쟁력 강화 정부와 민간부문의 인사교류를 확대하고,고등고시제도를 바꾼다.(기획위·행자부) ●효율성·투명성을 높이는 재정개혁 총괄경상경비 및 효율성배당제도,산출예산제도 및 분산조달제도,복식부기,발생주의회계제도를 도입한다.(기획위) ●조달기능으로 수출·중소기업 지원 중소기업만 참여하는 구매제도를 확대한다.중소건설업체의 입찰규모를 확대하고 공동계약제도를 확충한다.(조달청) ●노동시장 유연화 추진 퇴직금제도와 근로시간,휴가제도의 개선방안을 마련하고,성과급제를 정착시키는 등 임금제도를 개선한다.(노동부) ●수출입 및 외국인 투자에 대한 관세행정 지원 서류없는 관세환급 및 수입통관체제를 구축하고,관세자유지역제도를 도입한다.(관세청) ●공평한 세정 강화 음성·불로소득과 변칙 상속·증여에 대한 과세를 강화한다.봉급생활자와 사업소득자간 세부담의 형평을 도모한다.(재경부) ●식·의약품의 국제화 식품 및 첨가물,기구 및 용기,의료용구의 기준과 규격을 국제화한다.(식의약청) ●실력이 우선되는 사회조성 학습과정과 평가인정기관의 내실화를 통해 학점은행제를 활성화한다.직업능력인정제의 도입을 추진하고,문화·예술 분야의 문하생 학력인증제를 도입한다.(교육부) ●남북기상협력의 내실화 서울·평양 사이 기상전용 통신회선과 한반도 중·북부 해역에서의 실시간 기상관측망을 구축한다.(기상청) ◎지방조직은/자치단체장 자문에 역점둔다 제2건국위의 지방조직은 중앙조직과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다.시·도와 시·군·구에는 별도의 추진위원회가 구성된다. 그동안 참여가 부진했던 영남지역에서도 95% 이상의 자치단체가 지방위원회의 법적근거가 되는 조례제정작업을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각 시·도청과 시·군·구청은 부단체장을 반장으로 하는 추진반을 이미 구성해 놓은 상태다. 제2건국위측은 또 지방조직이 중앙조직의 계선조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중앙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2건국위의 한 관계자는 “부정부패추방이 전국 공통의 과제라면 관광도시는 지역실정에 맞게 관광업체와 관청과의 유착을 막는 것이 최대의 과제일 수 있는 만큼 지방조직은 필요한 것”이라면서 “지방위원회는 대통령의 자문기구가 아니라 각각 당적이 다른 자치단체장의 자문기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방위원회가 현 정부의 정치조직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제안 어떤것 있나/“광복절 한라에서 백두까지 인간사슬 만들자”/한달새 436건 접수 ‘2002년 8월15일 광복절에 200만명이 남북한을 잇는 인간사슬을 만들어 제주도에서 백두산까지 연결하는 한민족 평화축제를 열자’‘영아 유기를 막기위해 병원에서 출산과 동시에 출생신고 업무를 자동처리하도록 하자’ 제2의 건국 범국민 추진위원회에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국민들의 제2건국 아이디어 일부다. 제2건국위는 국민들이 생활현장에서 느끼는 불편사항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11월부터 각종 아이디어를 받고 있다.지금까지 모두 436건의 제안이 접수됐다. 시민 朴대일씨는 법원 등에서 민원서류를 접수시킬 때,은행처럼 순번표를 활용하자고 제안했다.급행료 등 법원직원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여·야 국회의원 등 사회저명 인사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가홍보 CF를 만들어 국민사기를 높이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있었다.짓다가 중단된 아파트 등 대형건물의 건물주,공사책임자를 찾아 정부나 지자체가 공사를 재개토록 해 도시미관을 개선하고 범죄예방도 도모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아파트 입구에 제2건국 상징이 있는 신문수거대를 제작,폐지도 수집하고 외화절약 및 제2건국 운동을 홍보하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제시됐다. 덕수궁 안에 있는 세종대왕상을 세종로에 옮겨 ‘세종로’라는 거리이름에 맞게 하고 이순신 장군 동상 뒤에 두면 문무상징의 의미도 높일 수 있다는 제안도 있었다. 제2건국위는 접수된 아이디어를 매달 심사해 위원회에서 처리할지,각 부처에서 처리할지 여부를 결정한다.제안자에게는 2,000원짜리 전화카드가 기념품으로 주어지고 내년 초에는 우수제안자를 뽑아 대통령 표창 등을 줄 계획이다. 제안은 전화 (02)720­0209 또는 팩스 (02)3703­2969를 이용하면 된다.E­메일은 j209@reko.go.kr. ◎정치적 논란은/민·관 서로 견제하며 개혁 ‘채찍질’/‘대통령 자문’본업 명확… 추진력 얻어/활동 성격 둘러싼 정치적 공방 주춤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가 그 활동 목표와 성격을 둘러싼 정치공방 속에서도 하루하루 추진력을 얻어가고 있다.제2건국위는 최근 대통령에 대한 ‘자문기구’라고 성격 규정을 명확히 하면서 운신이 보다 자유스러워진 것 같다.또 대통령이 제2의 건국을 정치개혁과 함께 내년도 2대 국정과제로 손꼽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활동에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제2건국위는 23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21개 개혁과제를 확정하고 내년도 중점과제 및 실천 계획을 의결했다.건국위는 우선 활동의 목표에 의식·생활개혁과 함께 그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제도 개혁도 포함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건국위 관계자는 “자문기구는 아무런 제약없이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어야 제 역할을 한다”면서 “특히 의식과 생활의 개혁이 구체화되려면 제도적 개혁이 반드시 앞서거나 뒤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감사원장 자문기구인 정방지대책위원회도 93년 이후 사회 전 분야의 부패 실태 조사와 개선책 제시는 물론 감사원의 조직 개편 문제까지도 건의해왔다는 것이 건국위측의 설명이다. 제2건국위가 건의할 개혁의 내용을 金대통령이 수용하느냐는 또다른 문제다.그러나 제2건국위는 갖고 있는 역량껏 국정전반의 개혁에 대한 연구와 제안을 하는 것이 자문위로서의 역할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건국위가 발표한 개혁과제에는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행정조직 개편,공정거래위원회 역할 조정 등 정부혁신 분야가 그대로 포함돼 있다. 공무원 충원 제도와 직급제 개편,부처·지역간 인사교류 확대,정부 기관 민영화 등의 핵심 사안을 피해나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제2건국위는 또 야당측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李康來 정무수석 등 청와대와 정부 인사의 참여와 지방조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모든 운동에는 중심적인 추진체가 필요하며,제2건국운동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청와대가 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제2건국위를 민관(民官)합동기구로 추진하는 것은 ‘중이 제 머리 못깎는’ 우리 사회의 풍토와도 연관돼 있다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정부가 정부를,민간이 민간을 스스로 개혁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관을 개혁하려면 민의 힘이,민을 개혁하려면 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서로가 견제하면서도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특히 제2건국위가 내년도 개혁과제로 선정한 정부 혁신 과정에는 공무원들의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된다.따라서 일단 내년에는 민간의 힘을 빌어 정부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이 제2건국위 핵심의 복안인 것같다. 물론 앞으로는 제2건국위 기획단장을 민간인으로 임명하거나 민·관 공동단장·부단장제를 도입하는 등 조직개편 문제를 검토해나갈 방침이다. ◎국회통과 법안요지/해외이주 결격사유 완화·알선업 등록제로/청소년 보호범위 확대·유해행위 처벌 강화/지역예비군 대원 거주지 신고의무 없애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과 동의안은 다음과 같다. ●지방세법(개정) 내년 1월부터 비영업용 승용자동차의 등록세율을 채권금액의 3%에서 0.2%로 인하.그외의 자동차에 대해서는 비영업용인 경우 2%에서 0.2%로,영업용인 경우는 1%에서 0.2%로 하향 조정하고 배기량 2000㏄ 초과 비영업용 승용자동차의 자동차세를 ㏄당 220원으로 단일화.1가구 2차량에 대한 취득세·등록세의 중과세제도를 폐지. ●청소년보호법(개정) 청소년보호법에 의한 보호대상을 18세 미만에서 19세 미만으로 확대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청소년에게 신체적 접촉 또는 은밀한 부분의 노출 등 성적 접촉행위를 하게 하는 행위,청소년에게 구걸을 시키는 행위,혼숙을 하게 하는 행위 등 9개 청소년유해행위를 금지하고 처벌규정을 새로 규정. ●해외이주법(개정) 해외이주의 결격사유를 대폭 완화해 금치산자·한정치산자·정신지체인 및 전염질환자 등을 포함한 일반국민이 보다 자유롭게 해외이주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해외이주알선업의 허가제를 등록제로 전환하고 수수료 상한선 폐지. ●하도급거래공정화에 관한 법(개정) 원사업자가 발주자로부터 위탁과 관련해 결제받은 현금 비율 이상으로 수급사업자에게 하도급대금을 지급토록 의무화하고어음으로 결제하는 경우엔 발주자로부터 원사업자가 교부받은 어음의 결제기간을 초과하는 어음을 교부할 수 없도록 규정. ●국군조직법(개정) 상륙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해병대에 대한 지휘·감독권한을 지금까지는 육군참모총장이 행사했으나 그 권한의 일부를 해병대사령관이 행사할 수 있도록 함. ●군인사법(개정) 장관급 장교의 계급정년을 1년 이내의 기간에 한해 각 군별로 단축 또는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영관급 장교는 2년 이내의 기간에 한해 정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함. ●군무원인사법(개정) 3급 이상 군무원과 6급,7급 일반군무원의 정년을 1년씩 단축하고 4급 이하 일반군무원에 대한 정년연장제도를 폐지. ●전자서명법(제정) 공인인증기관이 인증한 전자서명은 법령이 정하는 서명 또는 기명날인으로 봄. ●향토예비군설치법(개정) 향토예비군조직 대상자의 예비군대원 신고제도와 지역예비군대원의 거주지 이동 및 병적사항 변동시 신고의무를 폐지. ●국군포로대우 등에 관한 법(제정) 국방장관은 등록된 포로로서 군인연금법에 의한 퇴역연금을 받을 권리가 없는 자에 대해 억류기간 중의 행적에 따라 등급을 정해 정착금을 지급하도록 함. ●공공차관도입계획에 대한 동의안 중소기업은행과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가 일본수출입은행으로부터 도입하고자 하는 미화 23억5,000만달러에 대해 정부가 지급 보증. ●공공차관도입계획 변경에 대한 동의안 아시아개발은행 금융부문 프로그램차관 40억달러 중 이미 인출돼 당초 국회동의에 따라 한국산업은행에 전대된 30억달러를 제외하고 향후 인출될 10억달러에 대한 전대차주를 한국산업은행에서 예금보험공사 및 성업공사로 변경. ●1999년도 미국의 수출신용공여(GSM)에 따라 발생하는 국내은행의 대외채무에 대한 국가보증동의안 미국 상품신용공사의 수출신용공여프로그램에 의해 발생하는 15억달러 이내의 대외채무에 대해 국가가 지급을 보증. ●기타 통과법안 ▲전파법 ▲낚시어선업법 ▲항만법 ▲방위산업에 관한 특별조치법 ▲한국국방연구원법 ▲전산망보급 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 ▲잠업법폐지법안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자본유치촉진법 ▲한국보건의료산업진흥원법 ▲책임운영기관의 설치 운영에 관한 법 ▲정보통신공사업법 ▲정보화촉진기본법 ▲전자서명법 ▲수산물검사법 ▲연안관리법 ▲공유수면 관리법 ▲종자산업법 ▲농수산물품질관리법 ▲외무공무원법 ▲해난심판법 ▲해양개발기본법 ▲선주상호보험조합법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 ▲항로표지법 ▲99년 비료계정의 한국은행 차입원리금 상환에 대한 국가보증동의안 ▲99년도 미국의 수출신용공여(GSM)에 따라 발생하는 국내은행의 대외채무에 대한 국가보증동의안.
  • 납·월북문인­검열·삭제(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6)

    ◎좌익계열 문학인 1∼3급 분류/49년 첫 제한조치로 교과서서 삭제/50년 전향작가 원고심 사제 없앴지만/6·25 터지자 대부분 자의·타의로 월북 광복 직후 한국문단은 제대로 된 문인족보도 없는 황무지에서 이념적인 패가름에 따른 단체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분단 고착화가 조금은 미지수였던 1946년 2월8∼9일에 열렸던 조선문학자대회는 그 무렵까지의 단체중 가장 광범위한 명단을 과시했는데 그 대회 초청자에는 213명의 문인 이름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 명백한 우익적 문학인도 약 60명이 포함되어 있는데,여기에는 널리 알려진 친일문학인이 빠져있다.이 명단중 월북이 확인되는 게 대략 80명 가량이고,신원 미상은 50명 전후,기타 사상적으로나 전공이 애매한 인사가 20여명이다. 조선문학자대회는 바로 이 행사를 고비로 급격하게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는 한편 불법화 조처로 분단 한국사에서 암매장당해 오다가 87년에야 해금으로 재평가를 받기에 이르고 있다. 세칭 납·월북 문학인에 대한 금서조치는 일제 식민시기의 작품도 포함시켰다는 점에서한국의 근대문학사에 커다란 공백을 초래했었는데,일단 한번 뚫어진 가치의 공동화 현상은 해금 이후에도 그대로 흉뮬스럽게 남아있는 것 같다. 정부 수립후 좌경문학인에 대한 첫 제한조처는 49년 9월 중등국어와 글짓기 교과서에서 일체의 관련작품을 삭제한 것인데,이때 삭제당한 작품수는 8종의 교재에서 시 수필 소설등 총 55편이었다. 관계기관이 공식적으로 ‘좌익계열 문화인’에 대한 제한조처를 발표한 것은 49년 11월5일이다. ○조선문학인대회 초청자 215명 이미 월북한 문학인을 1급으로 분류하고 남한에 남은 문학인중 좌익적이라고 당국이 판단한 문학인을 2,3급으로 나눠 총 51명이라고 밝힌다. 이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창작과 발표 활동 제한 조처를 강화하는 한편 보도연맹 가입권유가 잇따랐다. 분단 한국 현대문학사의 주축을 이루게 될 한국문학가협회 총회가 열린 것은 49년 12월17일이다. 추천회원의 명단에는 151명의 문학인이 올라있는데 이중에는 김기림,정지용 등 이른바 ‘전향자’들이 약 20명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내 전향문필가들의 원고 심사제를 발표(50년 1월27일),이들의 작품이나 저서를 게재 혹은 출판하려면 “각 시도 경찰국장을 경유하여 발간 사전에 원고를 치안국장에게 보내어 심사를 거친 후 출판”하고,“신규 간행물을 치안국 사찰과 검열계로 2부씩 보내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근대문학사에 커다란 공백 초래 이러한 조처가 내린 한편 친일문학인들의 활동이 전면적으로 자유화돼 신문에는 그들의 각종 저서 광고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좌경 문학인에 대한 실질적인 활동금지 조치가 우리 민족문학사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더 따져봐야 할 일이다. 정부는 50년 4월7일 전향작가 원고심사제 철폐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심사제가 정착도 안된 불과 석달만의 일이다. 그리고 두달뒤 6.25가 발발했고,전향문학인들 대부분은 자의,혹은 타의로 월북했다. 정부가 ‘부역자’란 개념을 정립,월북작가 명단을 발표한 것은 51년 10월1일로 대략 75명 정도인데 여기에는 이광수와 같은 우익인사들도 포함돼있는 반면 박승극이나 송완순같은 비중있는 문학인의 이름은빠져있기도 하다. 물론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상당부분 연구가 진척돼있으나 납·월북문학인 문제가 아직은 숫자나 인적인 초보자료도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라는 점에서 남북대화나 통일문학의 창출을 위하여 관계당국이 적극 대처해야 될 시급한 과제의 하나일 것이다. 더구나 월북문학인중 상당수가 북한에서의 활동이 분명치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북한체제에서 이들에 대한 연구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자료의 소멸시한이 이미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 姜東錫 건설공단 이사장 인터뷰(인천신공항 성공을 위해서:6­2)

    ◎“승객 1만여명 동원 실전처럼 시운전”/하역·분류·출하 등 전과정 리얼타임 모의운영/수도권 남부와 신공항 잇는 연계교통망 개발 “홍콩 첵랍콕공항의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종합시운전 때는 1만여명의 승객을 동원할 계획입니다.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세팡공항 등 외국 신공항의 건설과 개항준비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을 자문역으로 초빙해 그들의 경험을 전수받기로 했습니다” 광복 이후 경부고속철도사업과 더불어 ‘최대의 역사(役事)’로 꼽히는 인천국제공항의 건설현장을 94년부터 진두지휘하고 있는 姜東錫 신공항건설공단 이사장.그는 “21세기에는 공항 운영과 기능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된다”며 첵랍콕공항이나 세팡공항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인천국제공항이 차질없이 문을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인천국제공항의 공정이 60%에 이르고 있습니다.성공적인 개항을 위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문은 무엇입니까. 9월 초 공단내에 운영준비본부가 발족돼 기본계획을 만들고 있습니다.개별시운전은 내년 6월 시작하며 실제운영을 가상한 종합시운전은 2000년 10월부터 3개월간 하게 됩니다.1년6개월간의 시운전 기간을 갖게 돼 차질없는 개항을 확신합니다. ●신공항의 최첨단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는 인력 대책은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요. 신공항에 도입되는 종합정보통신시스템(IICS)은 세계 공항사에 획을 긋는 첨단 시스템입니다.시스템을 모두 구축하게 되는 2000년 6월부터 공단·항공사·관련기관 등의 모든 종사자들이 기술전수를 받게 되지요.또 시스템 구축후 1년간은 계약자측의 전문기술진이 상주해 돌발사태에 대비할 것입니다. ●첵랍콕공항이나 세팡공항도 개항전 사전 예행연습을 했지만 개항 뒤에 많은 문제점이 나왔습니다.인천국제공항은 어떤 대책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 계획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종합시운전을 하는 것입니다.실제 상황에 대비해 1만여명의 가상 승객과 보잉 747­400기종을 투입할 것입니다.화물터미널도 실제 운영 때와 동일한 수준의 화물을 수집·분류·탑재할 계획이지요.하역·분류·출하 등 전과정도 실(實)시간으로 모의 운영할 생각입니다. ●외국 신공항 건설관계자와 개항준비 요원,전문가 등이 참석하는 공청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요. 내년 초에 홍콩·말레이시아 등 신공항 건설 및 운영에 경험이 있는 전문가 20∼30명을 불러 공항운영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 대해 의견과 조언을 들을 계획입니다.외국 신공항 개항 경험자들을 우리 기술자문역에 영입해 노하우도 전수받을 예정입니다. ●신공항 접근 교통수단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재 건설중인 6∼8차선 전용고속도로는 신공항 개항 초기의 항공수요예측과 교통영향평가에 따라 설계된 것인 만큼 2005년까지의 교통수요를 양적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그러나 다양성면은 취약해 조속한 시일내에 수도권 남부와 신공항을 잇는 연계교통망이 개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배후단지 확대·조성 서둘러야/국제업무지역 5만평에 불과… 경쟁력 뒤져/인천 외곽 농지 매입 ‘자유도시’ 건설 필요 인천국제공항의 평균 건설 공정률이 60%에 육박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배후지원단지의 조성작업은 극히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정부가 지난 10월 영종도 일원을 홍콩에 버금가는 아·태 경제특구로 만들려던 국제자유도시 계획을 백지화하면서 인천국제공항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가 원래 인천국제공항 주변에 구상했던 배후지원단지는 크게 3종류.여객청사와 남쪽 방조제 사이 5만평에 국제업무지역(IBC)을 건설하고,공항종사자를 위한 66만평 규모의 지원도시는 따로 조성하기로 했다.여기에 오는 2020년까지 용유도와 무의도 일대 2000여만평을 국제 업무·물류·관광의 중심지로 개발할 방침이었다.그러나 외자유치가 어렵고 홍콩이나 싱가포르보다 입지경쟁력이 뒤진다는 이유로 국제자유도시 건설을 백지화했다. 국토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인천국제공항의 배후지원단지가 올들어서야 기반시설 공사에 들어간데다 국제업무지역의 규모도 5만평에 불과하다”면서 “일본 간사이(關西)공항 98만평,중국 상하이(上海) 푸동신공항 1억500만평, 미국 덴버공항 522만평보다 턱없이 좁아 경쟁력이 최하위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관세와 출입국 제한이 있고 면적이 5만평에 지나지 않은 곳에 외국인들이 선뜻 투자할 리가 있겠느냐”며 “용유도와 무의도 주변을 메워 국제자유도시를 건설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인천 외곽의 농지를 정부가 매입해 자유도시를 건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관광복권 발행 외국인 허용/국회 통과 법안 요지

    ◎천연기념물 무단박제 처벌/국제경기 체육복권 정기발행/외국인 정간물 투자 일부 허용/집단에너지 사업 신고제로/예산 절감 공직자 성과급 지급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1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안 요지는 다음과 같다. ●관광진흥법(개정) 유원지시설업을 문화관광부장관의 소관으로 이관하고 관광사업으로 규정.관광사업에 대한 사업계획의 승인을 얻은 경우에는 농지전용허가 등 9개의 인허가 등을 받은 것으로 함.외국인이 관광사업에 1억달러 이상을 신규로 직접투자하는 경우 조건부로 카지노업을 허가할 수 있도록 함.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관광복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함. ●문화재보호법(개정) 지방자치단체도 국가지정문화재 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권한의 일부를 부여함.현상변화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천연기념물을 표본 또는 박제로 제작한 자에 대한 벌칙을 신설. ●청소년기본법(개정) 청소년 지도사의 자격 부여와 관련,기존의 양성과정 이수제도가 폐지되고 청소년 관련 분야 근무경력이 있는 자로서 검정에 합격한 자에게 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함.청소년수련시설의 이용료 및 수련 비용을 정하는 경우 시·도지사의 승인제를 폐지.청소년수련시설 운영을 폐지하는 경우 종전의 시·도지사 승인제를 신고제로 완화함. ●에너지이용합리화법(개정) 각 분야의 에너지 절약을 강화하기 위해 이산화탄소의 배출저감계획을 수립하고 정부와 협력을 체결한 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자발적 협력제도를 도입. ●광업법(개정) 외국인 및 외국법인에 대해서 광업권의 향유를 허용하고 일반인도 제한없이 석유 우라늄 등 특수광물에 대한 광업권설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함.광물의 기본품과 사업설비에 관한 설계서 제출의무를 폐지함.광업권자 및 조광권자의 사업개시 의무기간을 설정등록 후 1년 이내 및 6개월 이내에서 각각 2년 이내 및 1년 이내로 완화함. ●국민체육진흥법(개정) 국민체육진흥심의위원회를 폐지.2002년 월드컵대회 등 국제경기대회 지원을 위해 체육복권을 정기적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함. ●정기간행물등록법(개정)정기간행물 발행시 체육·교육 등 일부 분야에 대해 문화관광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외국자본의 출연을 받을 수 있던 것을 모든 분야로 확대하고 승인을 신고제로 전환.그동안 전면금지됐던 정기간행물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일정비율 투자로 완화됨.모든 정기간행물에 대해 납본하던 것을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기간행물 이외에는 납본을 폐지함.장기 미창간 정기간행물에 대한 직권등록취소기한을 종전 1년에서 6개월로 단축. ●집단에너지사업법(개정) 집단에너지공급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에서 그동안 산업자원부장관이 지정하는 자만이 집단에너지 사업의 허가를 받을 수 있었으나 앞으로 누구나 사업을 허가받을 수 있음.집단에너지사업의 양도나 합병의 경우 기존 인가제를 신고제로 전환함. ●농어촌주택개량촉진법(개정) 이 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지역 중에서 도시계획법에 의하여 지정된 읍·면의 상업·공업지역을 제외한 지역과 광역시·시의 동(洞)지역 중 주거지역·상업지역·공업지역을 제외한 지역을 적용대상에 포함함. ●지방공무원교육훈련법(개정) 5급 이상 지방공무원에 대한 교육훈련을 공무원교육훈련법에 의해 설치되는 통합교육훈련기관에서 실시함.교육훈련시설·교육훈련용역 등을 국가기관·공공단체 또는 민간에 유상으로 제공하고 그에 따른 수익금은 수입대체경비로 계리(計理)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함. ●지방재정법(개정) 예산절약에 기여한 공무원에게 그 절약한 예산의 일부를 성과금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함.공유재산의 관리계상과 취득·처분 결과를 시·도지사나 행정자치부장관에게 보고하던 것을 폐지함.잡종재산을 신탁할 수 있도록 하되 탈법적으로 무상대여·교환 또는 양여의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신탁과 지방자치단체 이외의 자를 수익자로 하는 신탁은 금지함. ●기타 통과법안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 ▲경륜(競輪)·경정(競艇)법 ▲전통건조물보존법 폐지법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외국간행물 수입배포에 관한 법 ▲출판사 및 인쇄물의 등록에 관한 법 ▲향교재산법 ▲관광숙박시설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 ▲지방문화원진흥법 ▲공업 및 에너지기술 기반조성에 관한 법 ▲상공회의소법 ▲광산보안법 ▲송유관사업법 ▲전기공사업법 ▲오지개발촉진법 ▲공무원연금법 ▲선거관리위원회법 ▲공무원교육훈련법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촉진에 관한 법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 ▲지방공기업법 ▲온천법 ▲재난관리법 ▲대전엑스포기념재단법 폐지법 ▲한국석유개발공사법 ▲사립학교법
  • 국악 반주 애국가 본격 보급

    ◎정부 행사때 연주… 반응 좋아 CD·테이프 제작 문화관광부는 16일 국악 애국가를 보급하기로 하고 국악기로 반주한 애국가를 담은 테이프 및 CD를 제작,정부기관,단체 및 재외공관 등 865곳에 배포했다. 테이프 및 CD에는 애국가 외에도 국기에 대한 경례,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광복절.개천절.한글날 노래 등 국가 의식음악과 아리랑 및 민속음악 접속곡 등이 들어 있어 행사는 물론 행사준비 전·후 음악으로도 쓸 수 있다. 문화부는 국악기를 사용한 애국가 반주가 정부 고위층 취임행사에 생음악으로 연주돼 호평을 받아 지난 7개월간 애국가 편곡작업과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완성하게 됐다고 밝혔다.연주는 국립 국악원 국악연주단이 맡았다. 문화부는 국악 애국가를 보급하기 위해 가능하면 공식행사에 국악 애국가 사용을 권장해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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