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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 개선문’ 기둥 연도 의미는

    프랑스 파리하면 떠올려지는 개선문은 그 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13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동승한 차량이 통과한 평양모란봉 구역에도 개선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TV 화면을 통해 클로즈업되면서 알져진 사실이지만 평양 개선문의 양쪽 기둥에는 두 가지 연도가 표시돼 있다.즉 왼쪽에는 1925,오른쪽에는 1945이다. 이 연도의 유래는 그 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그러나 지난해 북한방송을 통해 그 전모가 밝혀졌다.북한방송이 ‘광복의 천리길’이라는 제목으로고(故)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항일 투쟁을 선전하는 과정에서였다.당시 북한 방송은 진위를 별개로 하더라도 이렇게 보도했다.“김일성 동지가 1925년압록강을 건너셔서 광복의 천리길을 걸어 일제를 쳐부수고… 1945년 개선했다”는 요지였다. 개선문은 인민대학습당,만수대예술극장,평양학생소년궁전 등과 함께 평양의이른바 ‘기념비적 조형물’ 중 하나다.김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사회주의’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들여 지은 조형물들이다.개선문은 60m 높이에 너비가 가로 50.1m,세로 36.2m인 4층 건축물로 수십칸의 방과 승강기 전망대도 갖추고 있다. 구본영기자 kby7@
  • 남북 정상회담/ 2차 단독회담 5대 의제

    *긴장완화-평화 정착. 남북 단독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단연 한반도 평화 정착문제다.55년간의 한반도 냉전구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기초작업’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양 정상은 회담에서 상대방 체제를 인정하고 상호 무력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한반도 평화선언’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두 정상들은 이미 13일 ‘승용차회담’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남북통일까지 ‘1국2체제’ 형식의 평화 공존을 통해 공동번영이란 민족적 과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합의가 이뤄질 공산이 높다.상징적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두 정상은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을 포함,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과 이를 위한 화해·군사·경제·사회문화 공동위의 재가동문제도 깊숙이 토의됐다는 후문이다. 미국과 일본 등 주변 우방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난 8일 도쿄한·미 정상 회동에서 이 문제를 북측에 전달,설득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핵·미사일문제가 미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의 주요 관심 사항임을 지적한 뒤 “북한의 경제 회생과 대외 개방을 위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이 문제 해결을 위한 북측의 성의 있는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같은 맥락에서 김 대통령은북·미,북·일관계 정상화를 강력히 권유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에 대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반응은 즉각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적어도 향후 “북·미 미사일회담이나 고위급회담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란 원론적 입장을 피력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반도 평화 정착에 앞서 분위기 조성문제도 심도 있는 토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오일만기자 oilman@. *화해와 통일. 평양 방문 이틀째의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우호적인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부당국간 대화 재개’에 대한 합의는 상당한 진전을 이룰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두 정상이 이산가족 문제와 경제 협력 등 각종 의제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이끌어낼 경우 그것을 구체화시킬 부문별 양측 실무 접촉은 자동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우리 정부는 특히 당국간 대화채널을 일시적이 아니라 상설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대화 상시화는 남북이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이미 구체적으로 합의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양쪽의 결단이 있을 경우 어렵지 않게 타결될 수 있다. 우선 가장 손쉬운 것은 판문점에 국장급을 대표로 하는 ‘연락사무소’를설치하는 것이다.나아가 장관급을 대표로 하는 부문별 ‘공동위원회’를 가동한다면 통일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게 된다.공동위 설치가 합의될 경우 경협 등을 다룰 경제공동위나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는 사회문화공동위가 최우선적으로 가동될 공산이 크다. 한쪽에서는 남북이 서울과 평양에 각각 상주(常駐)대표부를 설치할 것이란기대 섞인 전망도 나돈다.상주 대표부는 대사관이나 다름없는 시설로 사실상평화체제로 본격 진입하는 ‘획기적인’ 진전을 의미한다. 김상연기자 carlos@. *이산가족 문제 해법.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도 중요한 실마리가 풀렸다. 김정일 위원장은 14일 김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어제 남한의 TV를 보니 실향민이라든가 탈북자들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빨라지지 않는가 해서 이번 정상회담을 환영하더라”고 말했다. 적어도 김 위원장이 남측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가를알고 있다는 의미다.특히 김 위원장이 실향민을 직접 거론한 것은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회담에서 “현재 남북의 이산가족은 대부분 고령자”라면서 “이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반드시 부모형제를 만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도 김 대통령의 인도적 차원의 제안에 동감하고 양측이 이 문제를풀기 위해 노력해나가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우리측의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과 북측의 김용순(金容淳)노동당 통일선전 담당비서가 접촉,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양측의 의견을 교환할것으로 보인다. 또 우리측 특별수행원에는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는 대한적십자사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과 장치혁(張致赫)고합그룹 회장 등 북한에 이산가족을 둔 기업인 3명이 포함돼 있다. 이들도 14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북측 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협의했다. 이도운기자 dawn@. *경제등 다방면 교류. 남북경협 활성화문제는 향후 남북관계 개선의 강력한 ‘물적 토대’가 될전망이다.북한의 경제난은 회복 중에 있다고 하지만 자력으로 완전히 복구되기 어려운 지경이며 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현안이란 인식이 강하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1차 단독회담에서 “김 대통령이 왜 방북했는지,김 위원장은 왜 승낙했는지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고대답을 주는 사업에 김 대통령뿐 아니라 장관들도 기여해 달라”고 강조한것도 같은 맥락이다.이번 방북단에 이헌재(李憲宰)재경부장관과 이기호(李起浩)청와대경제수석은 물론 경제단체,기업대표들이 대거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다양하고 심도있는 논의와 가시적 성과가 도출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14일 2차 정상회담에서 남북경협의 확대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했다.특히 민간 차원으로 국한돼온 경제협력을 당국 차원에서 제도화,안정화하는 문제에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후문이다. 이를 위해 당장 시급한 투자보장협장과 이중과세방지협정,분쟁해결 절차 문제 등이 정상회담 이후 실무진 차원에서 전격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 정상회담 이후 실무 차원에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문제 역시 구체적 진전이 예상된다. 경의선 복원문제와 도로 건설 등이 1순위로 떠오른다.공장 가동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에너지 공급 문제도 심도 있는 토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방북단의 기업대표들은 막후에서 북한 경제 전문가들과 수시로접촉하면서 서해안 대규모 공단 건설과 관광자원 개발 문제 등 향후 남북경협의 ‘밑그림’을 완성할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오일만기자. *서울 온다면 언제쯤. 평양 순안공항 영접 등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보여준 파격적인 행보로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 상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과의 14일 2차 단독회담에서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적극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13일 서울공항에서의 방북 출발 인삿말에서 “김 국방위원장의서울 방문도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 했었다. 실무작업을 총괄한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도 방북 전 “김 국방위원장의서울 답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수차례 언급었했다. 김 대통령이 적극적인 초청 의사를 보였을 경우 김 국방위원장도 이를 딱잘라 거절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그렇다면 문제는 답방 시기다. 현재 중국 외교가에서는 김 국방위원장이 오는 8월15일 광복절에 서울을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한쪽에서는 연내에 방문할 것이란 분석도있다. 그러나 만일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이 합의되더라도 ‘빠른 시일 안에…’라는 식으로 원론적인 표현만 쓰고 구체적인 시기는 명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북한이 대내외에 개방을 공식 선언하는 전환점이 된다는 점에서 북측으로서는 큰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고, 따라서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김상연기자
  • 離散상봉등 5개부문 합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14일 오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2차 단독 정상회담을 갖고 올해 8·15 광복절에 즈음해 이산가족을 왕래시키기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 5개항의 남북공동선언에 합의,서명했다.두 정상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答訪)에도 합의했다.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밤 11시20분 백화원 영빈관에서 공동서명한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은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간다”는 데 합의했다. 두 정상은 이산가족 왕래와 관련,8·15에 즈음해 흩어진 가족,친척 방문단을 교환키로 하고 비전향 장기수 문제 등 인도적 문제도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했다. 두 정상은 이어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해 서로의신뢰를 다져 나간다”는 데 합의하고 이같은 합의사항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빠른 시일 안에 당국간 대화를 개최키로 했다. 선언은 “김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했으며 김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명기했다.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시기와 관련,“구체적인 시기는 못박아서 말하기 어렵지만 북측의 의견을 들어 상호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정상은 이날 오후 3시부터 한차례 휴식을 취해가며 오후 6시50분까지 마라톤 회담을 한 끝에 이같이 합의했다. 이날 회담에서 김 대통령은 “남과 북은 7·4 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등 이미 많은 합의를 이뤘으나 이제는 이를 실천하고,행동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양측은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화해·협력을 위한모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특히 “북측도 통일을 위한 화해와 협력에 적극 나서야 하며이를 위해 미국,일본과 관계개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일을 비롯한국제사회와의 관계개선 등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단독회담에는 남측에서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특별보좌관,황원탁(黃源卓)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기호(李起浩) 경제수석이,북측에선 김용순(金容淳) 아태평화위원장이 각각 배석했다.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양측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만수대 의사당에서 공식면담을 갖고,7·4 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토대로 한 교류·협력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남북기본합의서 등 이미 합의한 내용 등 실천가능한 것부터 논의해 합의를 이뤄내자”면서 “남북간에 많은 대화를 통해 이견을 해소하고 대화와 교류·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남 위원장은 “한·미·일간의 대북 공조는 우리의 자주문제와 관계있는 것인데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며 남측 입장을 물었다. 이에 김 대통령은 “3국 공조는 대북 정책이 북한에게도 유리하고,우리에게도 좋은 ‘윈-윈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라며 “이는 결코북한을 해롭게 하자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또 “국가보안법이 남북의 교류·협력을 방해한 측면이 있는데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고 김 대통령은 “현재 남측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어 국회에 개정안이 제출돼 있는 상태”라고 답변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 [외언내언] 평양행 차비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오만원/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가는곳 없는데/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은 왜 못가’.신형원이 부른 ‘서울에서평양까지’의 도입부다.80년대에 나온 노래지만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 이후 자주 방송을 타고 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320㎞.평양까지 거리는 그에 훨씬 못미치는 246.2㎞이다.평양까지 택시요금 5만원은 오래 전 얘기다.현행 요금으로 계산하면 11만7,000여원.모범택시로는 19만6,000원 가량이 나온다.평양까지의 거리는 전주까지와 비슷하다.서울∼전주간 고속버스 요금은 우등이 1만3,000원,일반이 8,900원이다.철도요금은 새마을이 1만6,400원,무궁화가 1만1,300원이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서울에서 평양으로 가는 교통수단으로는 베이징을 거치는 항공편이 사실상 유일하다.서울∼베이징 항공료는 45만원.베이징에서평양까지 편도요금은 일반석이 160달러,1등석이 200달러 정도다.우리 돈으로는 17만8,000원,22만2,000원 가량이다.이를 합치면 서울∼평양과 같은 거리의 국내선 요금보다 9배,11배 가량비싸다.베이징에서 평양행 여객기의 1등석 차지 경쟁은 치열하다고 한다.1등석을 타고 가야 현지에서 좋은 대우를받는다는 소문 때문이다. 광복 전 서울에서 평양을 가려면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열차를 이용했다.1등석 요금은 50원.100㎏짜리 쌀 한 가마니에 32원 가량 하던 시절이다.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30만원 가량 들었다. 당시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편은 경의선 외에 서울∼원산을 운행하는 경원선,그리고 경원선의 지선인 금강산선이 있었다.이들 철도는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 곧바로 복원될 가능성이 크다.북한은 2년 전 시베리아 횡단철도 사업 참여를 위해 경의선과 경원선의 복원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알려졌다.우리 정부도 같은 취지에서 철도복원을 위한 용지 매입을 완료한상태다.경의선의 끊어진 구간은 20㎞,경원선은 31㎞,금강산선은 24.5㎞이다. 육로는 임진각과 개성을 연결하면 고속도로를 타고 평양까지 달릴 수 있다. 2년 전에 화제가 됐던 영화 ‘간첩 리철진’에서 남파간첩 리철진은 술에취해 택시를 타고 “평양까지 갑시다”라고 말한다.운전기사와 실랑이 끝에경찰서로 가 자수하지만 경찰관은 주정뱅이로 취급해 면박만 주고 풀어준다. 희극의 이면에 담긴 비애가 절절하다.택시를 타고 평양을 가자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그날이 기다려진다.신형원의 노랫말처럼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평양까지 신명나게 달려보는 것은 우리 모두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김명서 논설위원.
  • 북측의 움직임 ‘연기’ 언론보도 없이 회담준비 한창

    분단 55년만에 이뤄지는 남북 정상회담이 하루 순연된 것으로 발표된 11일에도 북측은 ‘차분하고 성의있는’ 회담 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연기 사실에 관한 북한 언론보도는 일절 없었다. ◆북한 언론 반응/ 북한 언론매체들은 정상회담이 연기된 사실을 이날 전혀언급하지 않은 채 조국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남북,해외동포들의 대단결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반세기가 넘는 민족분열의 비극을 끝내고 조국통일을 이룩하려는 겨레의 염원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강렬해지고 있다”면서‘민족 자주’의 기치 밑에 단결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특히 보도 가운데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통일 의지’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손님맞이 최종 점검/ 북측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일행이 13일 첫 발걸음을 내딛는 평양 순안 국제공항의 대대적인 정비를 벌이는 한편,15일 귀로인평양∼개성간 고속도로의 부분적인 보수·정비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 주변 농가의 담벽을산뜻하게 도색하고 농로 역시 정비를 거의 끝냈으며,평양 시내 광복거리,통일거리 등 주요 거리의 외벽 도색작업과 함께 벌초작업도 마쳤다. 김 대통령이 묵을 백화원 초대소에는 인삼 살결물(스킨로션),머리비누(샴푸),동백기름,일회용 면도기 등 세면도구가 90년대 초 고위급 회담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잘 갖춰져 있다는 전언이다.외형적 준비 이외에 내적 변화도감지된다. 우선 북측의 안내 시스템이 크게 달라졌다는 지적이다. 북측은 그동안 평양에서 열린 회담에서 1대 1 안내를 하며 감시쪽에 신경을썼지만 이번엔 대접에 치중한 ‘집단안내’ 체제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는후문이다. 정상회담을 앞둔 북측의 이런 준비자세는 결국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거는북측의 성의와 열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 북한을 움직이는 사람들/ (상)노동당

    오늘의 북한은 누가 움직이고 있나.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보좌하며당과 군,정부에서 핵심역할을 하고 있는 실세들을 세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북한을 이끌고 있는 권력의 핵심기관인 조선노동당의 비서국.김정일위원장의 최측근들이 포진,매일 정부부처와 사회 각 조직에서 올라온 보고를 챙기고 지시하며 북한을 이끌고있다.정점인 총비서에는 김위원장이 있다. 체제유지의 보루인 정부와 군의 각종 정보·사찰기관을 총괄하는 공안비서는 계응태(桂應泰·75).대내외의 각종 정보를 김위원장에게 직보하며 체제수호의 첨병역할을 하고 있다.당 국제부 부장,무역성 부상·부장을 역임했다.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김용순(金容淳·66)대남비서는 실세그룹 중 한사람.김위원장과 함께 술자리를 함께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최고지도자의 ‘이너 서클’사람 중 하나.김위원장이 광범위한 현안을 편안하게 협의하고 있는대상자란 평.아태평화위 위원장·조평통 부위원장 등을 함께 맡으며 대외관계에도 깊이 관여한다. 북한 내 각종 공직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김국태(金國泰·76)간부비서도핵심 실세.김일성주석의 혁명동지인 김책의 장남.인민군 총정치국 부총국장과 사회안전부 정치국장 등을 거치며 김일성-김정일 체제구축에 역할을 한것으로 알려져 있다.당내 대표적인 이론가.김위원장의 공식시찰을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다.혁명가 가족들만이 나올 수 있는 만경대혁명학원 1기생이며 김일성대학을 거쳐 소련군사대학 정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 김기남(金己男·74)선전비서는 김위원장의 입.김정일사상을 선전하고 그의이름으로 발표되는 문서나 축하문 등을 관리·대필한다.후계체제와 관련,일찍부터 김위원장의 편에 서서 측근 중 측근으로 자리잡았다.‘우리식대로 살자’ 등의 구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김일성종합대학과 옛 소련의 고급당학교를 졸업했고 노동신문 책임주필 등을 역임했다.‘구호제조기’란 평. 군수담당 비서인 전병호(全炳浩·74)와 한성룡(韓成龍·73)도 북한경제를주무르는 양 축.전비서는 지난 71년부터 10년 동안 기계공업부장으로 일했고82년부터 북한경제의 주축인 군수공업을 총괄해 왔다. 민간인이면서 국가군사위원회 위원이다. 장성택(張成澤·54)조직지도부 제 1부부장은 비서 반열에는 들지 못하지만김위원장을 대신,비서국 일을 총괄하고 있는 ‘2인자’다.김위원장의 친여동생 김경희(金敬姬)의 남편.김일성대출신으로 89년 평양축전과 광복거리 ,5·1경기장 등 주요 건설을 총괄해 호평을 얻었다. 이들 핵심 비서들은 대부분 북한의 ‘명문 혁명가족’출신으로 김일성대학이나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하고 모스크바 유학 등을 마친 엘리트들.80년대김정일체제확립 이후 연속적으로 북한 권력의 주류로서 행사하고 있다.대부분의 비서들이 고령화되면서 김위원장과 같은 연배의 제1부부장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 순국선열 묘소·동상 관리 엉망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과 민족정기 회복에 몸 바친 선열들의 묘소와 동상·기념비 등 애국심을 일깨우는 귀중한 시설물이 내팽개쳐지고 있다.관리 주체가 국가보훈처,문화재관리청,지방자치단체,각 기념사업회 등으로 분산돼있어 체계적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관리비 예산이 부족한것도 원인이다. 사적 330호인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은 상해임시정부 요인이었던 김구·이동녕·조성환·차리석 선생과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안치된곳.그러나 공원에는 애국지사들의 묘소나 기념물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표지판조차 없다. 김구 선생의 묘비는 비바람에 퇴색해 회색으로 변했고,비둘기와 까치 등의배설물을 뒤집어 쓴 채 외롭게 서 있다.봉분에도 잡초만 무성하다. 이봉창 의사의 동상은 다 쓰러져가는 울타리 안에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는 솔방울과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곁에 나란히 있는 이봉창·윤봉길·백정기·안중근 의사의 묘소와 묘소로 올라가는 계단은 언제 청소를 했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지저분하다. 공원관리사무소 직원 이모씨(53)는 “하루 평균 2,000여명의 시민들이 찾아와 무책임하게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면서 “8명의 직원으로는 쓰레기 청소도 버겁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남산공원에도 안중근 의사를 비롯,순국 선열 10명의 동상과 9개의 기념비가있으나 사정은 효창공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동상과 기념비들은 건립된지30년이 넘어 심하게 녹이 슬었고,심지어 표면이 떨어져 나간 것도 있다. 공원관리사무소에 따르면 공원내 동상 관리에 배정되는 예산은 연간 180만원 안팎.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동상에 스며든 녹과 기단의 화강암에 낀 때를 제거하려면 동상 1개당 2,000여만원이 든다”면서 “예산이 모자라 1년에한번 비둘기 배설물만 닦아 낸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애국선열 묘역의 이준 열사,이시영 선생, 광복군 18인묘소와 위훈비 관리도 엉망이다.이준 열사 위훈비는 이끼와 거미줄로 범벅이돼 있고 흉물스런 철조망이 묘소를 둘러싸고 있다. 묘역 입구에 사는 이시영 선생의 며느리 서차희(徐且喜·90)씨는 “예전에는 정부에서 묘소 관리를 도와주곤 했는데,요즘은 지원이 거의 없어 동네 사람과 참배객들의 힘을 빌려 청소한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 선양정책과 신명철(申明澈)서기관은 “공원·기념비·묘소 등의관리 주체가 제각각인 현 상황에서는 시설물의 소재 파악조차 힘들다”면서“관리체계를 일원화할 수 있는 법령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윤경빈(尹慶彬)광복회장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산재해 있는 독립운동유적지에도 관심을 가질 때”라면서 “선열들의 넋이 깃든 곳을 보살피지 못하는 것을 국민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매체비평] 빗나간 특종경쟁 신뢰성 저해

    중앙일보는 2일자 3면에 자화자찬식 특종담을 이례적으로 지면을 할애해 소개했다.‘김정일-장쩌민 극비 베이징 회담’기사를 AP,로이터 등 세계적 통신사들보다 먼저 보도했다는 것.‘중앙일보 세계적 특종 공인’이란 제목하에서 이 신문은 “세계적인 네트워킹을 자랑하는 영국의 BBC방송도 이날 오후 9시가 넘어서 베이징발로 1신을 인터넷에 올렸다.본지에 비해 거의 24시간이나 뒤늦은 보도였다”고 자랑했다. 신속한 보도를 위해 노력한 중앙일보의 ‘특종보도’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는 점을 미리 말해두고자 한다.그러나 북한관련보도에 관한 한 그동안 특종이란 미명하에 확인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소설식 보도가 난무한 것이 관행이었다.‘김일성 사망설’로 한국언론이 단체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사실은역사로 남아있다.중앙일보가 수년전 ‘김일성 사후 최초로 동토의 땅 북한을가다’라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가 국제적 오보시비에 휘말린 것도 바로 이런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됐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각 언론사의 북한관련 특종보도를 위한 취재경쟁이본격화 된 시점에서 중앙일보의 이런 무용담은 다른 언론에 영향을 주고 있는 듯 하다.동아일보는 6월3일자 보도에서 ‘김정일 북한 총비서가 8.15 광복절에 한국을 방문한다’는 내용을 톱으로 올렸다.정부는 부인하든 말든 동아일보는 평양에서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벌써 두달 뒤에김정일 총비서가 한국을 온다고 앞서가고 있다.특종으로 보자면 이보다 더큰 특종이 또 있을까.신속성으로 따진다면 세계적 통신사도 BBC방송도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특종이다.김 총비서가 금년 8.15에 서울에 올지 안올지는알 수 없다.아직 평양 첫 정상회담도 열리기 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이런 믿거나 말거나 식의 보도가 과연 이 시점에서 바람직한 것인가?중앙일보가 영국의 BBC 방송보다 하루 빨리 보도했다고 흥분하는 이 자랑은 과연 박수를 쳐 줄만한 것인가? 미국은 개국 이래 최고의 수출품으로 미수정헌법 제1조를 내세우기도 한다.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쉰여덟자로 된 미수정헌법은 세계 각국의 정치적 변혁과 혁명의 철학적 바탕이 됐다는 이유에서다.제국이 사라진 영국에서여전히 ‘대영제국의 자존심’으로 남아있는 영국의 BBC방송은 세계적으로공정성과 신뢰성으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하루살이처럼 속보성 하나에도박을 걸었다면 ‘오늘날의 BBC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면 BBC는 어떻게 신뢰성을 그 트레이드 마크로 키울 수 있었는가.원동력은 바로 ‘투소스룰(two source rule)’이다.국제적으로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비록 BBC기자가 특종을 건졌다고 해도 그와 일치하는 내용의 기사가 다른 통신사나 자유기고가에 의해 확인이 될 때까지 보도하지 않는다는 내부적원칙이다. 내부적 반발이 없지않지만 보도의 신뢰성을 위해 다시 한번 보도의 신중을 기한다는 것이다. 한국언론이 북한 관련 특종을 찾아 헤맬 때,그 특종의 무용담에 아까운 지면을 할애할 때 매향리 주민의 이유있는 신음소리는 들리지 않게된다.한미합동조사반의 조사결과가 ‘주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고 결론을 내려도 어느 언론사 하나 조사반 구성의 문제점과 조사과정의 공정성,결론도출의합리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않았다.오히려 조선일보는 국방대총장, 세종대 국제교류원장 등의 기고문을 앞세워 ‘주한미군 감정대응 말자’고 딴전을 피우고 있다.빗나간 특종의식과 본질흐리기식 보도가 한국언론의 발목을잡고 있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 언론정치학
  • [발언대] “기무사터에 일제침략박물관 세우자”

    억겁의 역사는 도도히 흐른다.역사를 올바로 읽으면 옷깃을 여미게 되고,역사를 바로 알면 마음의 두려움이 생긴다.그렇기에 옛 사람들은 역사를 ‘통감(通鑑)’이라고도 하고 ‘통사(通史)’에 비유하기도 했다. 역사를 올바로 살피는 첩경은 상황과 흐름을 정확히 읽어야 하고 객관적인판단으로 더듬어야 한다.그러므로 역사를 단편적으로 끊어 이해하면 생각하지 못했던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역사에는 오묘한 흐름이 있고 엄숙한 법도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1876년 2월 2일 체결된 병자수호조약 제1조에는 ‘조선국 자주지방 보유여일본국 평등지권(朝鮮國 自主之邦 保有與 日本國 平等之權)’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외관상으로는 조선과 일본은 마치 평등하고 공정하게 체결된 것 같다.그러나 이 조약은 일제가 차제에 정치적 우월권을 명확히 하여 청국의 발언권을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복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일제는 침략의 독수를 뻗쳐 1905년 11월 17일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고,1910년 8월 29일에는 급기야 조선을 식민지로 전락시켰다. 필자는 광복이후 처음으로 지난 3월10일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일제침략박물관이나 일제침략사료관 건립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마침 정부는 지난 14일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국군 기무사령부를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기로 최종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필자는 이곳 일대가 일제 식민통치의 심장부였음을 감안하여 일제 침략박물관이나 침략사료관을 건립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당국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천안 독립기념관이 지리적인 사정으로 시민,외국관광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5,000년 우리 민족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의 표상물들을 서울시내 한복판에 마련하여야 할 당위성은,친일파건 애국자건 모두가 역사의 한 울 안에서생성되고 소멸되는 편린들이지만,어떤 경우에도 당대에서 끝나지 않고 후대로 이어지는 것이 역사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신영길[한국장서가협회 회장]
  • 광복절 ‘밀레니엄 대사면’추진

    정부와 민주당은 4·13총선 등을 감안해 연기했던 ‘밀레니엄 대사면’을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 이해찬(李海瓚)정책위의장은 24일 기자와 만나 “총선용 사면이라는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지난 3·1절 사면 때 연기했던 밀레니엄 대사면을광복절에 맞춰 다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당초 석가탄신일을 맞아 사면을 추진했으나 대상인원이 워낙많아 행정준비에 시간이 부족했었다”며 “8·15사면을 목표로 법무부와 다시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밀레니엄 대사면은 지난해 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송년담화를 계기로추진됐으나 장기수와 신용불량자 등에 대해서만 3·1절에 사면이 이뤄졌을뿐 도로교통법 위반사범이나 운전면허취소자,부정수표단속법 위반자 등 IMF형 경제사범,징계를 받은 공무원 및 공기업 직원 등에 대해서는 사면 및 복권이 이뤄지지 않았다. 밀레니엄 사면 대상자는 지난 3·1절에 사면된 신용불량자 100만명을 제외하고 대략 400만∼5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진경호기자 jade@
  • 민족화해협, 남북정상회담 원로간담회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홀에서이강훈(李康勳) 광복회 고문,김성수(金性洙) 성공회 주교,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강만길(姜萬吉) 민화협 상임의장 등 39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의 방향제시를 위한 원로간담회(사진)’를 개최했다.강 의장은 개회사를 통해 “이번 정상회담은 우리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민족적 대사건으로 역사적 전환기”라고 규정하고 “각계 원로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한다”고 말했다. 토론에서 손장래(孫章來) 현대정공 고문은 정부에 건의할 ‘원로간담회 취지문’에 “북측 배려차원에서 7·4 공동성명을 언급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박광원(朴光源) 통일민주협의회 회장은 “통일이 절실함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이문영(李文永) 경기대 석좌교수는 정상회담에서 남북의상호인정과 상호이익을 강조했으며 송월주(宋月珠) 전 조계종 총무는 전국민적 지지와 관련단체,정부간 협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26일 추모제전 갖는 김우전 광복군동지회장

    “이곳에 잠들어 계시는 18위 동지들은 이역만리 중국땅에서 조국광복을 쟁취하기 위해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하신 분들입니다.그러나 살아남은 우리들은 이 동지들을 평소 제대로 찾아보지 못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우리 후손들이 일제하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할 때 가장 가슴저미는 대목은안중근 의사처럼 유해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이다.그 다음은 후손이 없어 돌보는 이가 없는 독립운동가의 묘소를 볼 때이다.항일운동의 상징인 유관순열사는 묘소도,후손도 없다.유 열사가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의 무후(無後)선열제단에 모셔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4·19혁명의 주역들과 한국근현대사의 역사적 인물 다수가 잠들어 있는 수유리에는 후손 없이 숨진 광복군 18위의 묘소가 있다.올해로 광복군 창설 60돌을 맞아 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김우전)는 26일 오전 11시 이곳 묘소에서앞서간 동지들의 추모제전을 갖는다. 이날 행사에는 생존 광복군 출신 180여명과 국가보훈처·광복회 관계자들이참석할 예정이다.김 회장은 “18위 동지들은 일찌기 가신 탓으로 생전에 짝도 지어보지 못했다”면서 “살아남은 동지들은 늘 이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수유리 광복군묘역은 지난 85년 국가보훈처가 광복40주년을 맞아 단장했다. 당시 이곳에는 김천성·김찬원·문학준·이해순·김성률·한성수·현이평·김유신·백정현·김백운·한 휘·전일묵·이도순·동방석·정상섭·이한기·안일남·김순근 등 18위의 묘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한성수·이도순 두 분이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으로이장,현재 16위가 모셔져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황민호교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 주제 발표

    현재 국내의 공식적인 독립운동사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사회주의 계열이 벌인 독립운동은 아직 그늘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그 ‘나머지반쪽’에 대한 재평가를 공개 논의한 첫 세미나가 지난 20일 서울 대우재단빌딩 3층 강연실에서 열렸다. 한국민족운동사학회(회장 박영석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가 마련한 이 세미나 주제는 ‘한국민족운동의 쟁점:사회주의운동의 민족적 성격과 광복군비호대의 실체’.이날 발표문 3편 가운데 황민호 숭실대교수의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의 민족적 성격’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훗날 북한 권력의핵심부가 된 김일성 최용건(최석천)김책 등의 활동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요약한다. 1931년 9월18일 만주사변이 발발한 뒤 만주에서는 다양한 세력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이 가운데 중국공산당 산하로 체계화한 세력은 항일유격대-동북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으로 조직의 내용과 명칭을 바꿔가면서 오랜기간적극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했다.이 과정에서 만주에 있는 한인들이 한 일과그 성과는 대단히 컸다. 그러나 이들의 투쟁은 공산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중국공산당 아래서 중국혁명의 하나로 전개됐다.또 참여자 일부가 나중에 북한정권 핵심부를 장악해이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민감한 문제로 남아 있다. 과거에는 이들의 투쟁이 궁극적으로 중국 공산혁명을 위한 것이므로 우리 독립운동사로 이해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그러다 80년대후반부터 이들의 활동을 민족 독립운동의 하나로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가적극적으로 제기됐다.아울러 그 조직에 관해서도 ‘중국에 예속된 것이 아닌,한국과 중국의 민족연합적 부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동북항일연군 결성을 전후해 발표된 여러 문건을 검토해 보면,항일연군은 민족연합을 상정하고 결성된 조직이 아니라 계급연합적 성격의 항일부대라고 생각된다.다만 한인대원들이 활발한 무장투쟁을 전개한 점은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데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동의해 가는 추세이다. 항일연군에서 한인들은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이는 결성 당시중국공산당이 한인들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있다.또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한 한인들은 일제의 만주침략에 일정한 타격을주었으며,그들이 한국 독립을 염두에 두고 활동한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어야 한다. 이용원기자
  •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교수 33년만의 귀국 포기

    [베를린 연합]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宋斗律·56)독일 뮌스터 대학 교수가1967년 독일 유학을 위해 고국을 떠난 지 33년만의 귀국 기회를 또 포기했다. 송교수는 15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받았으나 국가정보원이 귀국조건으로 준법서약서 제출등을 요구하자 귀국을 포기했다. 지난해 광복절 서울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됐으나 역시 조건 없는 귀국허용을요구하며 귀국을 포기한 바 있다. 송교수는 주최측인 전남대 5·18연구소에 보낸 불참 통보 서한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이 남북한 화해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송교수는 70·80년대 작곡가 윤이상씨와 독일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 운동을 주도했다. 송 교수는 그동안 한번도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으나 1991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래 지금까지 10여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 최고 30억 제주 관광복권 1등 5조 4944800번

    제주도가 발행한 슈퍼 밀레니엄 관광복권 1등 당첨번호는 5조 4944800으로앞뒤 번호와 앞앞,뒤뒤 번호 등 5장을 산 사람은 장당 6억원씩 모두 30억원을 타게 됐다. 제주도는 14일 오전 제주시 탑동 해변공연장에서 MBC가 방영하는 ‘고향은지금’ 프로를 통해 당첨자를 추첨했다. 2등(1억원)은 각조 149544번,3등(2,000만원)은 각조 19401번이 됐으며 행운상인 EF소나타는 각조 46056,74792,76962번,제주도 여행권은 각조 506번,농산물상품권은 각조 051번에 돌아갔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애국지사 金永憲옹 별세

    애국지사 김영헌(金永憲)옹이 지난 12일 밤 10시44분 서울 강남시립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79세.고인은 1944년 일본 수상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방하는 유인물을 돌리다 체포돼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과 함께 출소했다.발인은 15일 오전 8시.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된다.빈소는 현대중앙병원.(02)2224-7351
  • 이범석장군 28주기 추도식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장군(1900∼1972) 28주기 추도식이 11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회장 姜英勳) 주관으로거행된다. 추도식에는 최규학(崔圭鶴) 국가보훈처장,윤경빈(尹慶彬) 광복회장을 비롯한 광복회원,유가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다.이 장군은 1900년 서울 종로에서태어나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광복군을 양성했고 1920년 북로군정서 연성대장으로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노주석기자 joo@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3)무산된 金泳三·金日成 회담

    94년 7월9일 낮 12시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보름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에 대비,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하던 이홍구(李洪九)통일부총리에게 메모지 한장이 전달됐다.-‘김일성 사망’ 회의장은 일순 놀라움에 술렁거렸다. 분단 반세기만에 성사를 눈앞에 뒀던남북 정상간 만남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김영삼(金泳三·YS) 당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여성정책심의위원회’ 위원 15명과 환담을 나누던 중인 12시2분쯤 전날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았다.얼마나 놀랐던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그것은 그가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동안 적지않은 ‘마음고생’을 했다는 것을나타내기에 충분했다. YS는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란 정통성을 무기로 취임 초부터 남북문제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온다.9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연설을 통해 ‘민족우선론’을 펴며 김일성과의 회담을 제의했다.그러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의사를 밝힌 것을 계기로 핵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면서 그의 대북정책은강경으로 치닫게된다.6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핵무기를 가진 자와는 악수를 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94년 2월25일 취임 1주년 회견에서는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된다면 김일성 주석과 만날 용의가 있다”며 갑자기 종전과 다른 입장을 밝힌다.일부에서는 한달전인 1월28일 현 대통령인 김대중(金大中) 당시 아·태평화위원장이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의 회담이 조건없이 하루빨리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한 것에 YS가 자극을 받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동안 북한의 반응은 냉담했다.‘희소식’은 6월 중순 대북특사로 북한을방문,김일성을 만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왔다.카터는 김일성이 “언제 어디서든 조건없이 김영삼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고,YS는 이를 전격 수락했다.당시 김일성의 회담 제의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엔의 대북제재를 무산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후 양측은 6월28일 판문점에서 예비접촉을 갖고 정상회담을 7월25일부터27일까지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하는 등 세부일정을 거의 확정지었다.그러나북한은 김일성 사망 사흘뒤인 7월11일 “우리측의 유고로 예정된 북남 최고위급 회담을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회담 무산’을 공식 통보해 왔으며,YS는 “아쉽게 생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94년의 ‘무산된’ 남북 정상회담은 제3국의 개입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정상간 만나자는 약속을 처음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이때의 경험이 밑바탕이 됐기 때문에 지금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이 비교적 쉽게 추진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상연기자. * 역대 정상회담 추진사. 남북 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남과 북이 수십차례 제의했으나 서로 묵살하거나 지나친 전제조건을 내세워 94년까지는 공염불 상태나 다름없었다. 남북이 이 문제를 처음 공식 거론한 것은 72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제2차 회의석상에서였다.이때 양측은 이른 시일내 정상회담이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입장을 공동으로 밝혔다. 처음으로 정상이 직접 이를 제시한 것은 75년8월18일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뉴욕 타임스 회견.박대통령은 “김일성이 군사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통일을 추구한다면 그를 만나 통일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박대통령은 또 집권말기인 79년1월 연두회견에서 “남북한 당국이 시기, 장소에 상관없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우리측의 정상회담 제의는 전두환(全斗煥)대통령 시절부터 활발히 벌어졌다.전대통령은 81년 1월12일 국정연설을 통해 ‘남북한 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을 제의했다.재임시절 동안 전대통령은 그후 거의 매년 국정연설,8·15 경축사 등을 통해 정상회담의 성사를 북측에 촉구했다.이에 북한은 남한에반공정책 포기와 주한 미군철수 등을 역으로 요구하며 피해갔다. 북방외교를 가장 큰 목표로 내건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전대통령보다 정상회담에 더 열심이었다.노대통령은 8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용어를 쓰며 김일성과 만날 뜻을 밝혔다.88년 10월 유엔연설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의제까지도 자세히 밝혔다.또 91년 12월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는 과정에서 양측이 막후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해 성사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북한 김일성은 신년사를 통해 가끔 정상회담 의사를 비쳤으나 별로 무게가실리지 않았다.90년에는 평양을 방문한 남북고위급회담 우리 대표에게 정상회담 의사를 밝혀 기대를 모았으나 역시 말에 그쳤다. 김상연기자 carlos@. *당시 협상 주역. 94년 남북정상회담 협상을 맡았던 남북한 대표들은 서로 일면식(一面識)도없는 사이였다.그러나 한번의 예비접촉만으로 7월25∼27일의 정상회담 일정을 도출했다. 양측은 통일문제 전문가 3명씩을 협상에 내세웠다.우리측은 당시 이홍구(李洪九)통일부총리·정종욱(鄭鍾旭)청와대외교안보수석·윤여준(尹汝雋)총리특별보좌관이,북측은 김용순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안병수 조평통부위원장·백남순 정무원책임참사가 나왔다. 북측 수석대표 김용순과 34년생 동갑내기인 이부총리(현 주미 대사)는 당시북한문제 최고 브레인으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고 있다는평가를 받았다. 정수석(현 아주대 교수)은 대통령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윤보좌관(현 한나라당 의원 당선자)은 당시 안기부 3특보로 북한담당이아니었으나 말솜씨와 언론관계 등이 고려돼 특별보좌관이라는 직함으로 협상단의 일원이 됐다.윤보좌관은 예비접촉후 속개된 실무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다.특히 지난 3일 간암으로 타계한 엄익준(嚴翼駿)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의경우 당시 딸 결혼식에까지 불참하면서 우리측 실무협상 대표로 나서 두 차례 협상만에 실무합의서를 타결짓는 열의를 보였다. 북측 김용순 대표는 대남전략은 물론 미국·일본 등 국제문제에도 정통해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웠다.그는 현재도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겸 당 통일전선부장으로서 대남사업을 총지휘하고 있으며,김정일 앞에서 직언할 수 있는 몇안되는 인물로 꼽힌다. 김상연기자
  • [외언내언] 탤런트와 빵집주인

    ‘오월은 푸르고나 우리들은 자란다…’어린이날 노래는 이제 노인세대라도어려서 몇번쯤 불러 본, 가장 오래된 가락이 됐다.78회 어린이 날을 맞아 5일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져 그 의미를 되새겼다.어린이 헌장은 ‘대한민국모든 어린이가 차별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나라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사람으로 존중되며,바르고 아름답게 씩씩하게 자라도록 해야한다’고규정하고 있다. 우리의 어린이날 기원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3·1운동후 어린이들의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1923년 천도교 소년협회가 중심이 돼소파 방정환선생의 지도로 5월1일이 어린이 날로 정해졌다.그후 1927년 5월첫째 일요일로 변경돼 해를 거듭할수록 민족정신고취 행사로 자리잡자 조선총독부가 39년 이를 폐지했다. 광복후 어린이 날에 대한 의미가 되살아나 46년부터 5월5일이 기념일이 되었으며 57년 2월 동화작가협회 이름으로 어린이 헌장이 제정됐다.당시 헌장전문은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 나갈 새사람이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써야 한다’고 했다.헌장은 88년 시대변화에 맞게 개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민족의 이같은 수난사를 반영하듯 어린이들의 장래희망이 과거에는 대통령과 장관·장군·판사 등으로 권위적 직업을 선호했으나 요즘은 현실로눈을 돌리고 있어 흥미롭다.어린이날을 앞두고 한 대학교수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탤런트·운동선수 등 유명인이 25%로 1위를 차지했고 부자(20,5%),사회사업(18%)이 뒤를 이었다.대통령과 장관은 10위(7%)로마지막 순위였다.어렵고 배고프던 시절과 대의명분에서 벗어나 인간을 위한,자신을 위한 직업관이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는 현상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다이이치(第一)상호보험이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래희망조사’에서는 남자 1위는 목수이고 다음으로 인기 운동선수·경찰관·구조대원 순이었다.여자는 빵집주인이 3년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꽃집주인·선생님·미용사가 그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의식이 현실적으로 변하고있지만 일본어린이 보다는공익적인 성향이다.나라 잃은 어린이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못배우고 천대받던 시절 어린이를 올바르게 기르는 일이 나라를 되찾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어린이날 정신은 귀중한 경험이었다.21세기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아나라의 번영과 민족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건실한 어린이들이건강한 사회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어린이날의 정신이 기념일만의 행사가되지 않도록 쉼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돌보는 공동체가 희망있는 사회이다. 李基伯 논설위원 kbl@
  • 남북 정상회담 2차 준비접촉/ 이모저모

    27일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2차 준비접촉은 단비 속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북측은 지난 94년 7월8일 남북정상회담 실무접촉 대표단 이후5년9개월만에 군사분계선을 넘은 남측 대표단을 반갑게 맞았다. ■양영식(梁榮植) 수석대표 등 남측 대표단은 회담 시작 5분전인 이날 오전9시55분쯤 회담장인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 도착했다.통일각 현관 앞에서기다리던 김령성 단장 등 북측 대표단은 남측 대표단을 반갑게 마중했다. 서로 “반갑습니다”라며 악수를 나눈 뒤 양 수석대표가 “날씨가 좋아졌다”고 말하자 김 단장은 “남측 대표단이 오니 오전 비가 멎었다”며 간단한 인사말을 나눴다. ■남·북측 대표단은 오전 10시 정각 서로 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회담장에입장했다.북측 김 단장은 회담장 입장 직후 사진기자들이 좌우에서 포즈를취해달라고 요청하자 남측 양 수석대표에게 “이쪽도 한번 더 봅시다”라고제의하는 등 여유를 보였다. ■회담이 진행되던 오전 11시25분쯤 남측 수행원이 회담이 끝나간다는 사실을 회담장 바깥에 알리기 위해 회담장 문을 열자 회담이 끝난 것으로 오인한일부 기자단이 회담장으로 몰려 들었다.갑작스런 기자들의 등장으로 일부 남·북측 대표단의 표정이 굳어졌다.이 과정이 잘못 알려져 “회담이 잘 풀리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었으나 곧이어 회담장 바깥에서 들릴 정도로 웃음소리가 터져나와 회담장 주변은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회담 직후 양측 대표는 사이좋게 악수를 나누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북측 김 단장은 “오늘 회담이 잘 됐느냐”라는 질문에 “잘 됐습니다”라고대답했다.이에 남측 양 수석대표는 “판문점 길은 평화와 통일의 길”이라며“계속 밝은 얼굴로 만나자”고 화답했다.남측 대표단과 취재단은 오전 11시37분쯤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유의 집으로 돌아왔다. ■앞서 남측 대표단을 지원하기 위한 행정 지원팀이 오전 9시30쯤 남측 일행으로서는 처음으로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옆 군사분계선을 넘었다.이어 9시40분쯤 국내 풀기자단 23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풀기자단은 북측의 외신기자 취재 거부로 국내 언론사 기자만으로 구성됐다. 남측 대표단은 오전 9시20분 판문점 남측지역 ‘자유의 집’에 도착, 이날접촉을 최종 점검했다. ■북측 대표단은 전날 개성에서 1박한 뒤 이날 오전 9시 통일각에 도착,준비접촉을 위한 최종 점검 작업을 벌였다.이날 회담장 탁자에는 자개 필통과 ‘영광 담배’,평양역사(驛舍)가 그려진 성냥갑,재떨이,필기용기가 가지런히놓여 있었다. ■이날 회담장 주변에는 북측기자 16명이 남측기자들과 환담하며 회담전망등을 둘러싸고 의견을 나눴다.1차접촉때 기자단으로 평화의 집을 방문했던박용남조선중앙방송 기자(44)는 “준비접촉이 열릴 때마다 그동안 가물었던한반도에 역사적인 회합이 잘 되라는 ‘통일의 단비’가 내리고 있다”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이날 실무접촉이 열린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 옆에는 김일성 주석의 ‘통일유훈비’가 눈길을 끌었다.김 주석이 사망하기 직전인 지난 94년 7월7일통일문제와 관련한 중요한 문건에 명기한 자필 서명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김 주석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서명한 문건인 셈이다. 길이 9.4m,너비 7.7m인 통일친필비는 김 주석이 사망한 이듬해인 지난 95년8월 11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세워졌다. 전면에는 ‘김일성,1994.7.7’이라는 아홉 글자가 새겨져 있다.비석 뒷면에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가시고…김일성 주석의… 숭고한 뜻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가리’라는 74자의 해설문이각인됐다. ■박재규(朴在圭)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는 5월3일 3차 접촉에서 절차문제를 마무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박 장관은 오후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우리측 대표단의 보고를 받은 뒤 이같이 밝히고 의제와 관련,“오늘은 1차 접촉에 대해 북한이 반응을 보인 만큼 양측이 공부를 해서 3차때시험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차접촉 날짜는 북측이 제시했다”며 “1,2차 접촉보다 시기가 늦춰진 점은 양측이 좋은 답안지를 작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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