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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운동 애국지사 구자민옹 별세

    애국지사 구자민(具滋民)옹이 20일 오전 8시 서울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77세. 1924년 황해도 연백에서 출생한 구옹은 중국 시안의 광복군 제2지대 3구대에 입대해 독립운동을 했다.광복후 육사특8기로 임관,군수기지사령부 시설대장으로 근무하다 중령으로 예편했다.독립운동 공로로 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받았다. 유족으로는 장남 구본용씨 등 1남3녀.빈소는 삼성서울병원,발인은 22일 오전 8시.장지는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02)3410-6912
  • [씨줄날줄] 표절시대

    한국 교수들의 표절이 국제 사회에서 망신을 당했다.지방의 모 대학 교수들이 미국 전기·전자학회의 통신학회 전문지에 기고하면서 캐나다 대학 교수들의 연구 논문을 거의 그대로 베꼈다가 들통나 사과문까지 싣는 수모를 겪었다.문제의학회지는 최신 11월호에서 “논문 표절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더러운 짓”이라는 편집장의 논평과 함께 원문과 표절 논문을 대비시켜 가며 게재했다고 한다. 한국 일부 교수들의 논문이나 작품 표절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광복 후 외국 학문이 물밀듯이 들어 오면서시작됐다.유학에 나섰다가 외국 학자들의 주장을 한국 실정에 어울리게 포장해 발표하는가 하면 남의 저서를 그럴듯하게 가필해 자기 것으로 내놓는 파렴치도 서슴지 않았다.지난해 8월이다.송자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1974년의 저서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자 학계의 관행이다고 항변하지 않았던가. 물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학문의 학습 단계에서야 앞선 논문을 흉내냈다 해서 크게 매도할 수는 없다.그러나 전공학도나 학자가 되어서도 학문적 ‘마마 보이’로 안주해서는 안된다.최근에 있었던 일이다.교육인적자원부가 연구비를지원했던 지방의 19개 대학을 상대로 실태를 파악한 결과,절반에 가까운 8개 대학에서 18명의 교수가 연구 실적을 표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제자의 논문을 도용한 사례까지 있었다. 학문적 양심을 포기하는 표절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국내의 풍토와 무관치 않다.지난 해 이맘 때 쯤이다.서울시립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한 평론가가 학업을 포기하면서 ‘토양’의 일단을 폭로했다.석사 논문에서 원로 평론가인 당시 서울대 모 교수의 저서 4쪽 정도가 일본 문학비평가 글과 닮은 꼴이라고 지적한 게 발단이 되어 서울대 출신 교수들의 견제를 받았고 이를 견디지 못해 자퇴키로 했다고 주장했다.학연에 근거한 학문적 배타성이 바로 표절의 온상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표절 시대’를 청산해야 한다.책임을 물어야 한다.서울행정법원은 얼마전 판결에서 학자적 양심을 버리고 대학의 명예를 실추시킨 ‘표절 교수’의 해임은 마땅하다고판시했다.이번에 ‘논문’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30대 교수는 스스로 물러났다고 한다.학문적 양심을 지킨 것이다.표절이 사라지는 아픔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김삼웅 칼럼] 역사교육 살려야 나라가 산다

    교육계가 진통을 겪고 있다. 전교조와 한국교총이 대규모집회를 갖고 교육대학생들은 동맹휴학 중이다. 전국교수노조 결성 강행,수능시험 난이도 조정 실패,자립형 사립고 도입문제 등 교육계의 뜨거운 현안이 하나 둘이 아니다. 전교조는 교원성과급과 주5일 근무제 등을 이유로,한국교총은 교원정년 환원과 정치참여,교육대생들은 중등교사자격증 소지자 초등교사 임용반대,대학교수들은 교수노조 결성을 위해 ‘투쟁’한다. 여기에 야당도 ‘교원정년 연장’강행에 나섰다.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눈에는 모두 ‘제 논에 물대기’로 비친다. 다만 수능 난이도 조정문제는 정책실패의 책임이 크다. 민주화의 진척과 함께 이익단체들이 제몫 챙기기에 나서면서 정부의 조정기능이 취약해지고 목소리 큰 집단이 이익을차지하는 ‘밀림’의 사회로 후퇴하는 모습이다. 교육계의혼란은 역사(국사)교육의 부재에서 오는 측면이 적지 않다. 어찌된 일인지,인권이 향상되고 먹고 살만해지면서 갈수록사회정의나 법치주의,역사의식이 희박해진다.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인권의식이 향상되면 정의감이나 준법정신,역사인식이 향상되는 것이 상식일 터인데 그 반대현상이 심화된다. 그래서 ‘역사교육 퇴출 원인론’이 제기된다. 최근 필자도 참가하는 국가보훈처 산하 ‘민족정기선양자문위원회’(위원장 최창규)는 ‘국사교육 강화’를 정부에촉구하고 한국사 관련 학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 정부에 보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해온 우리가 스스로 역사교육을 소홀히하거나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모름지기 국사교육은 민족의식을 가진 인류공동체의 일원으로 국민에 대한 자부심과 인류애를 증진시켜주는 기능을발휘하는 교과목이다. 그런데 중·고등학교의 국사교육은 1996년부터 적용된 제6차 교육과정에 따라 초·중·고교의 국사과목이 사회과목밑에 종속되고 수업시간도 주당 3시간에서 2시간으로 축소되었다. 제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는 내년부터는 국사교육시간이 더욱 줄어들어 주당 1시간으로 축소되고 고등학교에서는 근·현대사를 선택과목으로 전환했다. 이러한국사교육의 ‘퇴출’현상은 제8차 교육과정이 실시되는 2007년까지 계속된다. 대학의 국사교육도 교양국사가 폐지된 제6차교육과정 이후 더욱 축소되었으며 각종 국가고시에서 국사과목이 자취를 감추었다. 국사교육이 고사상태에 이른 것이다. 세계화시대에도 선진국들은 자국의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의무교육 전 과정에 역사과목이 필수이며,미국도 초·중·고교 과정에 미국사를 가르친다.영국은주당 전체수업 40시간 중 4시간을 역사가 차지한다. 일본도중등교육과정에 일본사 시간이 한국보다 2배가 많다. 우리만 역사를 의붓자식 취급하듯 홀대한다. 역사교육을 바로잡는 방안은 무엇인가. 첫째,국사를 사회과에서 분리하여 독립교과 필수과목으로 편성하고 교육시간을 늘려야 한다. 둘째,수학능력고사에 국사를 독립과목으로 지정하고 배점도높여야 한다. 셋째,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검인정으로 전환하고 중·고교 국사교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대학교양교육에 국사를 교양필수과목으로 하고 각종 국가고시에국사시험의 의무화가 요구된다. 망국시절 우국지사들은 역사연구와 역사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나라가 망해도 역사만 잃지(잊지) 않으면 언젠가다시 광복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창강 김영택선생은 중국망명때 우리 역사를 저술하면서 “세상에 역사망한 것처럼 슬픈 것이 없고 나라 망한 것은 그 다음이다(哀莫大於史亡 國亡次之)”라고 썼다. 역사교육을 천시하고 역사교훈을 외면하다 보니 나라꼴이말이 아니다. 친일파 후손,군사독재 하수인들,곡필언론,지식인들이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사회정의를 짓밟는다. 역사교육이 천시되고 역사적 심판을 하지 못한 까닭이다. 10년장병에 5년 묵힌 쑥이 특효과라면 이제부터라도 쑥을 묵혀야 한다. 역사교육을 되살리자는 말이다. 사극은 흥행하고 역사교육과 역사정신이 실종되는 사회는 문명일까반(半)문명일까. 김삼웅 주필 kimsu@
  • 장준하선생 인터넷으로 ‘부활’

    70년대 재야운동가 고(故) 장준하(張俊河)선생이 인터넷을 통해 ‘시대의 참된 스승’으로 부활했다. 고인에 의해 지난 53년 창간돼 날카로운 사회비판 칼럼으로 지식인 및 학생층에 큰 인기를 끌다가 70년 폐간됐던월간 ‘사상계’가 폐간 31년만인 지난달 1일 ‘디지털 사상계’로 다시 태어난 데 이어 지난 1일에는 장준하 선생의 공식 홈페이지(www.peacewave.or.kr)가 개설됐다. 지난 99년 출범한 사단법인 장준하 기념사업회는 지난 1일 인터넷에 장준하 선생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하며 최근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활동을 계기로 관심이 높아진고인의 삶과 정신을 담아냈다.특히 광복군 및 사상계 활동시절 그리고 민주화 운동 당시의 각종 글과 영상자료 등도담겨져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
  • [만나고 싶었습니다] 일명 ‘이동광복회’주인공 정진한·이재윤씨씨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의 권익신장과 위상제고에 미력이나마 보탠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국내 독립유공자 사회와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주변에서 ‘이동 광복회’로 불리는 ‘짝꿍’이 있다.주인공은 정진한(鄭鎭漢·78)씨와 이재윤(李載允·73)씨.두 사람모두 독립유공자 후손이다.두 사람은 지난 87년 구 서대문형무소(현 독립공원)보존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이후 ‘바늘과 실’처럼 함께 활동해 왔다. 두 사람은 그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오랜 숙원사업 해결에 유능한 ‘해결사’ 역할을 했다.94년에 전몰군경 원호사업 위주로 만들어진 국가유공자법에서 독립유공자를 따로 떼내 별도로 ‘독립유공자예우법’을 제정하는 일을 비롯,생존 독립유공자 예우금(품위유지비) 신설,독립유공자 후손 특례입학 및 전화세·TV수신료 면제,의료보호 확대 등 10여 건에 달하는 독립유공자 및 그 후손들의 권익확대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다. “서대문형무소 보존운동을 하면서 국회의원들과 쌓은 인연이 아까워 이를 독립유공자 사회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는데활용하기로 했지요.그 분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요즘도 두 사람은 여전히 바쁘다.해방후 사망한 독립유공자의 연금혜택이 손자 대까지 연장되도록 규정 개정,매국의 대가로 축적한 친일파들의 재산환수 등을 골자로 한 ‘민족정통성회복 특별법’의 제정,‘국군의 날’을 현행 10월 1일에서 광복군 창건일(9월 17일)로 변경 등의 현안해결을 위해국회의원,당국자,학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14년째 ‘돈이안되는 일’을 해온 두 사람에게 돌아온 것은 유공자 사회의 박수와 ‘빚’이었다.두 사람 모두 살던 집까지 경매로 날리고 이제 거리로 나앉을 처지다. 정씨의 조부(鄭寅琥)는 3·1의거 직후 구국단을 조직,단장으로 활동하다 6년여 옥고를 치렀으며,이씨의 부친(李定烈)은 상해 임시정부에 거액의 재산을 군자금으로 바친 독립인사로 각각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다. 정운현기자 jwh59@
  • 박은식선생 中망명시절 抗日 논설 집필

    1일로 작고 76주년을 맞는 백암 박은식선생이 중국망명 시절 상하이(上海)에서 한국역사와 항일구국 논설을 집필한 순한문 신문 ‘사민보(四民報)’가 발굴돼 학계와 독립운동연구가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백암선생의 각종 자료에는 ‘사민보’주필을 역임한 것으로만 전해졌을뿐 신문과 백암의 글이 밝혀지기는 처음이다.백암은 중화민국 10년(1922)10월 상하이에서 중국인들이 창간한 ‘사민보’의주필로 영입되어 많은 글을 썼다. 백암의 저서 중 손꼽히는 ‘이순신전’도 이 신문에 연재되었다.그 중 앞 부문이 한글로 번역돼 국내에 소개되었는데새로 중·후반 내용도 찾게 된 것이다.‘이순신전’은 당초‘사민보’에 연재한 것을 중국 중찡(中京)에서 출범한 한국 광복군기관지 ‘광복’ 제1권에 제6장까지만 실렸으며 해방후 국내에 그대로 소개되었다.이번에 19장까지 전문이 밝혀진 것은 큰 성과다. 이 자료는 신라대학 배용환 교수가 상하이에서 입수하여 대한매일과 동방미디어가 공동추진중인 ‘박은식·양기탁전집편찬위원회’(위원장윤병석 인하대명예교수)에 기증했다. ‘편찬위원회’는 지난 8월 백암의 ‘단조사고(檀祖事攷)’도 발굴한 바 있다.(대한매일 8월15일자 1면) ‘사민보’는상하이 망평(望平)가 261호에서 발행된 순한문 신문으로 백암을 제외하고 사장을 비롯 사원 모두가 중국인이었다.중국역사와 한문에 박식했던 백암은 한문으로 논설을 집필하면서 ‘이순신전’을 연재했다.1922년 11월20일부터 백암의 또다른 아호 ‘백치(白癡)’란 필명으로 이순신전을 연재하고 각종논설을 썼다. ‘이순신전’은 첫날 “고금수군지제일위인(古今水軍之第一偉人)”,“세계철갑군함의 비조,동양유교계 진정영웅”이란소제목을 달고 연재를 시작했다.이 충무공 사후 300여년 후한국이 망하고 중국 역시 위기와 굴욕에 빠진 이유는 국민이 이순신의 이름을 알지만 그 정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 때문이라는 내용과 함께 글을 풀어갔다. 백암은 ‘이순신전’을 연재하는 한편 ‘학부(學府=학예)’난에 다양한 논설을 썼다.‘고려선유 율곡 이이 약사(高麗先儒 栗谷 李珥 略史)’,‘민족생존권’,‘민력(民力)추진희망’‘근로계급 향상진전’‘장강(長江)의 쟁점’,‘세계경제추세’,‘군벌세계의 민의기관’,‘견지(堅持)군국주의 일본군벌’,‘노동계 정의의 행동’,‘전후의 민심’,‘세계인도(人道)의 장래’,‘국제노동운동회의’ 등 당시로서는 대단히 진보적인 논설과 해박한 국제문제 특히 일본제국주의에대한 중국인민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백암의 ‘사민보’논설과 ‘이순신전’은 연말에 발행될 전집에 원문과 함께 번역문을 실을 예정이다. 김삼웅주필 kimsu@
  • 위안부출신 강일출 할머니 美아이비리그서 위안부 증언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가 미국 동부 명문 대학들인 ‘아이비리그’ 순회 증언에 나선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31일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강일출(73) 할머니가 오는 5일부터 17일까지 미국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위와 공동으로 예일대학 등 6곳을 돌며 증언을 한다”고 밝혔다. 이번 순회집회는 미국의 대학생들이 주관하는 행사로 미국 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북 상주군 출신인 강 할머니는 1943년 가을에 위안부로 끌려가 이듬해 1월 중국 목단강 위안소로 가 1년여 동안 위안부로생활하다 45년 8월 광복 직전 탈출했다.그뒤 계속 중국에서 머물다 지난해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현재 경기 광주군 ‘나눔의집’에서 살고 있다. 강 할머니의 순회 증언은 5일 코넬대학을 시작으로 하버드대(7일) 예일대(8일) 미국교회(11일) 뉴욕대(12일) 프린스턴대(15일) 조지타운대(17일) 등으로 이어진다. 이창구기자 window2@
  • 고침/ 10월 12일자 27면 중

    본보 10월 12일자 27면의 ‘광산허가 받고 골재 채취 수천억 수익… 충북도·음성군 10년째 묵인 의혹’ 제하 기사의 본문과 제목의 ‘수천억원’을 ‘200억원대’로 바로 잡습니다.기사에서 언급된 광복산업개발 회사측은 30일 지난10년 동안의 자사 골재채취 총매출액이 200억원대라고 밝혔습니다.
  • 독립군 中동북지역 대첩 기념식

    한국독립유공자협회(회장 김국주)는 24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한국독립군 중국동북지역 대첩 기념식및 강연회’를 갖고 한국 무장독립운동사에 빛나는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대전 자령전투의 항일애국정신을 되새겼다. 김국주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청산리전투 등 중국 동북지역에서 거둔 3대 전투는 숫적으로나 장비면에서 일본군과 비교도 안되는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뒀다”며 “이는우리민족의 굳건한 독립의지와 민족의 용기,한국인의 지혜때문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윤경빈 광복회장은 기념사에서 “일제강점기 민족해방투쟁 가운데 무력투쟁은 국권회복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자 첩경이었다”고 지적하고 “선열들의 항일정신을 이어받아 조국통일과 국력신장에 힘을 총집결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행사에서는 김진홍 목사(두레공동체 대표)가 초청연사로 참석해 ‘독립운동정신과 민족의 미래’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김유길 광복회 부회장,김원웅(한나라당) 의원,김종성 국가보훈처 차장,석근영 광복군동지회 회장,김우전 광복회 이사를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김삼웅 칼럼] 연해주의 안중근·이상설 유허비

    순국 92주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이름앞에 옷깃이 여며지는 안중근의사와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역에서 서거한 보재(溥齋) 이상설선생의 유허비(遺墟碑)가 연해주에세워졌다.러시아 땅에 처음 세워진 유허비다. 1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거리인 크라스키노 류하노프카(煙秋 下里)마을에서 안의사 유허비가 제막되었다.1909년 안의사 등 동지 12명이 왼쪽손 무명지를 잘라‘대한독립’이라 쓰고 조국독립을 다짐한 유서깊은 지역이다.정작 단지동맹을 했던 장소는 이웃마을인데 그곳은 황무지로 변해 인적이 끊겨서 대로변에 비를 세웠다. 광복회(회장 尹慶彬)와 국가보훈처가 주관하여 해외 독립전쟁의 본거지에 표지석을 세운 의미는 각별하다.광복회가지난 8월 중국에 ‘청산리 항일대첩비’를 세운 데 이어 두번째다. 연해주 한·러 국경지역은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땅에 둥지를 튼 한인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무대였다.1937년 스탈린이 이 지역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쫓아낸 이후 광대무변한 지역이 대부분 황무지로 변했다.안의사는이곳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국적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듣고 뜻을 같이한 우덕순과 권총 한자루씩을 준비하여 하얼빈 역두에서 이토를 처단했다. 안의사의 거사 소식에 신규식(申圭植)은 이렇게 썼다.“푸른하늘 대낮에 벽력소리 진동하니/6대주 많은 사람들 가슴이 뛰놀았다/영웅 한번 성내니 간웅(奸雄)이 거꾸러졌네/독립만세 세번 부르니 우리 조국 살았도다.” 보재선생 유허비는 18일 우스리스크 수이푼강 유역에서 제막되었다.발해의 남경(南京)이었던 이 지역 역시 항일지사들이 조국광복운동을 벌인 곳이다. 보재선생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위종을 대동하고 고종황제의 정사(正使)로 파견되었지만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울에서는보재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귀국을 단념하고 미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10년 연해주에 이르러 유인석·이범윤 등과 13도의군을 편성하여 일군과 싸우고 권업신문 주필로 활동했다.이어 1914년 이동휘·이동녕 등과 중국·러시아령의동지를 규합,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워 정통령(正統領)에 취임했다. 1915년 상하이에서 박은식·신규식 등과 조직한 신한혁명단 본부장에 선임되어 조국광복투쟁에 앞장섰던 보재는 1917년 연해주의 니콜니스크(雙城子)에서 눈을 감았다.47세 때이다.보재의 유허비가 세워진 곳은 발해의 옛토성이 바라보이는 수이푼강 언덕이다.발해가 망할 때 수많은 병사와 백성들이 이 강물에서 죽어 발해유민들이 ‘슬픈강’이라 불렀던 것이 수이푼강이란 이름의 사연이라 전한다. 안의사가 순국 직전 아우들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던 고국으로 반장해다오”란 유언을 남겼듯이,보재선생도 “동지들은 합심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나는 광복을 못보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내 몸과 유품은 남김없이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버리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동녕·조완구등이 화장하여 재를 강물에 뿌렸다. 안중근의사와 보재선생 유허비 제막식을 지켜보고,극동대학에서 안의사의거 92주년 한·러 국제 학술회의에 참석하고,두만강 건너 북녘땅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한반도의 넓이만한 연해주의 광활한 지역을 종단하면서 이국에서 숨진 순국선열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안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조국으로 반장되지 못하고 남북관계는 이어질 듯 끊어질 듯하고 국내에서는 친일파 후손들이활개친다. 심지어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 아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세태가 되었다.안의사나 보재선생을 기리는 상은없어도 친일파를 기리는 상은 줄줄이 제정되고 시상되는 조국의 현실에서 동토에 잠든 순국 선열들의 영령 앞에 발걸음이 무겁구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삼웅 주필 kimsu@
  • 다큐멘터리는 땜질 편성용?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재방송과 땜질용?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잦은 시간 변경과 재방송으로 시청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MBC의 경우 지난 5일 방송 예정이던 특집 다큐멘터리 ‘저어새의 꿈’이 12일로 긴급 변경되었다.지난 8월 12일,19일 두 차례에 걸쳐 내보내려던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재외교포 600만-꿈을 찾아서’도 방송을 일주일도 남기지 않고 15,16일로 시간이 변경됐다.이에따라 다큐멘터리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의 부족이라는 비난이 잇따랐다. 시청률 조사 기관인 AC닐슨에 따르면 올해(10월 9일까지)KBS1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재방송까지 합쳐 983회.MBC의 357회,SBS의 323회 등 다른 방송사에 비해 거의 3배 수준이지만 약 25% 정도가 재방송인 것으로 드러났다. 재방송 비율은 0.03%인 MBC나 10%인 SBS에 비해 훨씬 높은수치이다. 이에 대해 KBS 양성수 교양국장은 “재방송은 시청자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한 번 더 보여주기 위한 배려이며 재방송 시청률이 본방송과 비슷할 때도 있다”면서 “좋은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에 밀려 시청률이 저조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사들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홀대는 시청률을하락시키는 큰 요인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KBS1의 ‘취재파일 4321’은 시청률 24.3%를 점유해 올해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가운데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그러나 지난 99년 MBC의 ‘PD수첩’이 39.5%,지난해 SBS의 특집다큐멘터리 ‘생명의 기적’이 34.8%로 1위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턱 없이 낮은 수준이다. 올해 다큐멘터리 평균 시청률은 MBC 6.1%,KBS1 5.6%,KBS28.4%,SBS 7.6%로 지난 99년 각기 7.3%,7.7%,7.6%,8.2%에 비해 현저하게 하락했다. SBS의 장동욱 교양국장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오랜‘노하우’가 쌓여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어려운 프로그램”이라면서 “방송에서 시청자를 가르치려고 들면 즉각 반발을 일으켜 시청률이 하락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 조만식선생 51주기 추모식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 선생 순국 51주기 추모식이 18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추모식에는 이재달(李在達) 국가보훈처장,윤경빈(尹慶彬)광복회장을 포함한 각계 인사 400여명이 참석하며,김형석연세대명예교수가 ‘고당 정신과 21세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 러에 독립운동 표지석 건립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끊으며 조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러시아 연해주의 크라스키노 ‘단지(斷旨)동맹터’와 헤이그밀사중 정사(正使)였던이상설(李相卨) 선생의 유해를 뿌린 우수리스크 수이푼강유적지에 ‘독립운동 표지석’이 세워진다.러시아에 독립운동 표지석이 건립되는 것은 처음이다.국가보훈처와 광복회는 오는 18일과 19일 우스리스크 수이푼강 언덕과 크라스키노 단지 동맹터에서 이상설 선생과 안중근 의사의 표지석제막식 행사를 각각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안 의사의 단지동맹 표지석은 가로 4.5m×5.7m 크기의국내산 화강암 기초석에 직경 2.1m,높이 0.6m 반구 모양의 바탕석을 올려놓고,11명 동지들의 애국심을 형상화한 11줄의 무늬를 새겨 넣었다.앞뒷면에 오석판을 붙여 한글과러시아어로 안 의사 유지도 새겼다. 이 선생의 표지석도 3.9m×5.7m크기의 국내산 화강암 기초석에 8면체의 하단기둥과 직사각형 모양의 상단기둥을 세워 선비의 정신에 맞는 선(禪)적인 형상을 연출했다.앞뒷면에 한글과러시아어로 선생의 일대기를 음각했다. 표지석 제막에 맞춰 17∼1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학교에서 ‘안중근과 러시아 지역의 항일독립운동’이라는 주제로 한·러 국제학술회의가 열린다. 강동형기자 yunbin@
  • [기고] 교원양성체제 개혁 나서라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칠 선생님이 또 모자란다.2002년에모든 교대졸업생을 하나도 남김없이 초등교사로 임용하고,이미 교단을 떠난 선생님들을 다시 불러들여도 3,753명이부족하다.2003년도에는 문제가 훨씬 심각해진다.부족한 교사를 충원하고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으로 감축하기 위해서는 7,698명의 선생님이 더 필요하다.나아가 농어촌 지역에는 선생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2001년도에 전남에서는 200명의 초등교사를 모집하였으나.겨우 25명만을 충원하였을뿐이다. 그것도 그 해의 교대 졸업생은 9명뿐이었고,나머지16명은 퇴직한 선생님들이었다. 정부는 턱없이 모자라는 선생님들을 교대졸업생만으로는충원할 수 없어서,중등교사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1년 이상 교육대에서 70학점 정도를 집중적으로 이수하도록 한 후 초등교원으로 임용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전국의 교육대생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동맹파업에 돌입하였다.“초등교원의 전문성을 무시한 무책임한 교육정책이며,교육의 질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포기’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전교조도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정부에서는 사범대 등에서 4년 동안 교직과목과 전공교과를 배우고 익힌 사람들을 다시 일년이 넘는 기간동안 교육대학에서 학사편입에 해당하는 교과목들을 이수하도록 한후,초등학교 교사로 임용하기 때문에 교원의 전문성에는 그다지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또한 당장 담임 선생님이 없어서 아우성인 초등학교 학생들을 어떻게 하느냐고반문하고 있다. 초등교원 수급의 부족과 과잉은 결코 어제오늘만의 일이아니다.광복 직후에도 초등교사가 부족하여 임시교원양성소를 통하여 임기응변으로 초등교사를 양성하였다.그러나 1973년도부터는 교육대학 졸업자가 남아돌기 시작하자 5개 교육대학을 일반대학으로 개편하는 비상조치를 취하였다. 그래도 초등교원이 남아돌아서 몇년 전까지만 해도 교육대학 졸업자들이 발령을 받지 못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최근 교원이 부족하게 된 것은 국민의 정부가 교원 정년을 일시에 단축하고,퇴직금에 대한 불안이 가속화되면서 많은 교원들이 교단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현재와 같이 교육대학에서 초등교원을 독점적으로 양성하는 체제를 유지하는한 교원수급의 공급부족과 과잉 현상은 주기적으로 지속될수밖에 없다.우리나라와 같이 인구의 이동과 사회적 변화가많은 나라에서 앞으로 몇년 후의 교원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여 교육대학졸업자들을 양성하고,이들을 모두 임용하도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광복 이후 이제까지 우리는 초·중등교육의 근간이라고 할수 있는 교원양성체제를 그때그때마다 문제가 생기면 임시방편적인 방법으로 땜질하는 데에만 급급하여 왔다.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우리나라도 이 기회에 교원의 양성체제를개혁해야만 한다. 현 정권이 힘이 없어 못하면,준비라도 차분히 해서 차기 정권에 넘겨주어야만 한다.언제까지 땜질식교원정책에만 의존할 것인가?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는 진리를 외면한 채,결코 교육의 질적인 개선을 도모할 수는 없다. 정진곤 한양대 교수
  • [CULTURE & JOB] 컬러리스트 김경인씨

    “지난 광복절 기념식때 김대통령이 입은 파랑색 와이셔츠 보셨어요? 너무 안어울렸어요.좀더 차분했으면 좋았을텐데….” “거실은 녹색,아이들 방은 파랑계통이 좋아요.침실은 보통 분홍으로 꾸미는데,그거 남자들 힘 못쓰게 하는 색이에요.” “아파트 외벽을 산뜻하게 한다고 알록달록 칠하는 건 값떨어뜨리는 지름길입니다.” ‘색을 쓰는 여자’ 김경인씨(35).색채디자인 전문회사 ‘빌디자인(vildesign.co.kr)’대표인 김씨는 기자와 마주앉자마자 색깔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줄줄 쏟아낸다.‘컬러리스트’는 색채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옷,주택,자동차,화장품,빌딩 등 물건들에 가장 어울리는 색을 골라내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는 사실 공식적인 컬러리스트가 없어요.외국에는 벌써부터 각광받는 직업으로 떠올랐지만 한국은 내년에야 국가자격증 제도가 도입될 정도로 미개척분야죠.” 서울대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일본 교토대 공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딴 김씨의 주전공은 외부경관 디자인.충청남도 걷고싶은 가로만들기 사업,부평역 색채계획 등을기획했고 서울,인천,용인시 건축심의위원도 맡고 있다. “도시공간의 건물,다리,보도블럭 색을 마음대로 칠하면그야말로 ‘소음색’이 됩니다.주변의 산,도심,강 등 환경을 고려해 전체적으로 조화를 주어야 안정감을 줍니다.” 나라마다 피부색깔,얼굴 골격이 다르듯 습도,일조량에 따라 민족감성에 맞는 색도 다르다.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색은 한복,단청 등에 많이 쓰이는 파랑·노랑·빨강·하양·검정의 다섯가지 색.햇볕이 강한 이탈리아나 아프리카 나라등이 밝고 화려한 색을 좋아하는 것과 취향이 비슷하다. 반면 습도가 한국보다 2배나 높은 일본이나 하늘이 늘 잿빛인 영국,독일 등은 탁한 색을 좋아한다.“아무리 우리나라에서 잘팔리고 성능,디자인이 뒤지지 않아도 외국인의 감성에 맞지 않는 상품을 수출하면 거의 실패합니다.감성에어필해 사고싶게 만들어야죠.” 국산 휴대폰이 유럽에서 “색깔 못쓰겠다”고 잇달아 클레임이 걸리는가하면,국내에서는 재고로 썩고 있던 빨강색 전자밥통이 중국에서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던 게 좋은 사례다. 색깔은또한 도시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핵심요소.하지만국내에서는 자기 맘대로 건물을 색칠하고 대문짝만한 간판을 내거는 것은 물론 공공시설물도 정책 결정자들의 취향대로 즉흥적으로 결정되는 게 일쑤다. “한때 서울시내에서 보라색 버스가 등장했다 금새 사라졌잖아요.한국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색을 썼으니 당연하죠. 듣기로는 당시 서울시장이 보라색을 좋아했다더라구요.” “성수대교의 빨강색이 보기싫어 못살겠다”는 시민들의민원이 최근 쇄도하는 것도 색을 잘못 쓴 탓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붕괴전 녹색이었던 성수대교의 이미지를 쇄신하기위해 미국 금문교를 본땄지만,선호도가 극명한 색깔이라밀집된 도심공간에서는 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색을 칠하는 면적이 넓고 오래쓰는 것일수록 색깔이 약하고 평범해야 합니다.프랑스는 16세기부터 지붕의 색깔과높이를 통일시켰고 영국에서는 2층이상에 간판을 걸지 못하게 합니다.우리나라는 저마다 튀려고 하니 산만하고 안정감이 없죠. 사회의 문화수준이 높아질수록 컬러리스트의 수요가 높아질 것은 물론이다. “부모님이 편물업을 하셨는 데 어릴 때부터 색실을 보면서 자연히 색감이 발달한 것 같다”는 김씨는 “기본적으로 색깔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하지만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에 너무 집착하거나 자기고집에 강한사람은 이 직업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대중의 취향을 꿰뚫고,공통된 선호색을 알아내는 능력이 먼저라는 얘기다. 컬러리스트는 어떤 직업병이 있을까.“온갖 색깔을 많이보니까 눈이 항상 피로해요.또 상대방의 옷,립스틱 색깔을보며 어떤 성격일지를 알아맞추려고 하는 것도 직업병인 것 같아요.”허윤주기자 rara@. ■컬러리스트란. 국내에 컬러리스트라는 직업이 최초로 소개된 것은 지난 89년.미국,프랑스 등지에서 색채학을 공부한 김민경씨(43)가 ‘컬러리스트’라는 직함을 내걸고 국내에 돌아오면서부터다. 김씨는 감각에만 의존해 옷,화장품의 색깔을 결정하던 관행을 깨고 “컬러가 이미지를 좌우한다”는 색다른 주장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대체 뭐하는 직업이냐”는 뭇사람의 무지(?)에 부딪쳐 ‘컬러이미지연출가’라는 복잡한 직함을 사용하는 우여곡절을 거쳐야만 했다. 김씨는 “노동부가 내년부터 국가기술 자격증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는 등 컬러리스트가 뜨는 직업으로 부상해 감회가 깊다”면서 “앞으로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컬러리스트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늘어날것”이라고 전망했다. 컬러리스트는 염료를 조합해 색깔을 만들어내는 염색 전문가와는 전혀 다르다.제품별 타겟층의 색깔에 대한 심리와선호 색을 조사하고 소비경향까지 종합적으로 감안해 최적의 색깔을 제시하는 일을 맡는다. 활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꽃꽂이 전문가,헤어 디자이너에서부터 심리치료,색채 마케팅,웹디자인 분야까지 다각도로접근할 수 있다. 문은배 중앙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똑같은 물건이라도 색깔에 따라 구매욕구가 달라진다.컬러리스트는 적은 비용으로 고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주역”이라며 IMF이후 기업들이 색의 중요성에 눈뜬 것을 다행스러워했다. 국내에서 특히 컬러리스트가 활약하고 있는 분야는자동차,화장품 업종.하지만 유행을 선도한다는 패션계에서조차 디자이너가 색깔까지 담당하고 있는 업체가 수두룩할 정도로낙후성을 드러내고 있다.샤넬,아르마니 등 세계적 패션회사들이 경제상황과 유행 추세 등을 검토해 치밀하게 색채 계획을 짜는 데 비하면 그야말로 주먹구구 수준이다.컬러리스트는 적용 범위가 넓기 때문에 심리학,의상학,철학 등 인문학 전공자에서부터 물리학,화학,지리학 등 이공계 전공자들까지 도전할 수 있다. 허윤주기자
  • 광복군출신 팔순 실향민 자살

    광복군 출신으로 건국훈장 애국장까지 받은 80대 실향민이고향을 그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2일 오전 5시40분쯤 부산시 남구 대연5동 대연그린맨션 앞 화단에 이 아파트 703호에 사는 박규채씨(84)가 떨어져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 안모씨(55)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박씨는 황해도 개성출신으로 광복군의 전신인 전지공작대에서 1930년대부터 10여년간 활동하다 46년에 귀국,한국전이후 2남매와 함께 월남했다.월남후 건국훈장 애국장까지 받았으나 별다른 공직에 재직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개인 사업을해오며 몹시 고향을 그리워 했다는 것. 특히 4년전 부인과 사별하고부터는 우울증까지 앓았고 최근에는 북한에 여동생(82)이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 거주하는 형(86)과 함께 방북신청까지 했지만 탈락됐다. 박씨의 큰아들 영철씨(50)는 “육로로 북한에 갈수 있는 길이 뚫린다고 해서 그날만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면서 “아버님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을 꼭 한번만이라도 모시고가야하는데 이렇게 세상을 떠나시니 큰 불효를 저질렀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충북도·음성군 10년째 묵인 ‘의혹‘

    충북도와 음성군이 광산허가를 내준 취지를 외면한 채 부산물인 토석을 주로 채취해 수천억원대의 판매이익을 낸 업체를 묵인해 왔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11일 충북도에 따르면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 광복산업개발(대표 최광복)은 지난 90년 제철소 원료로 쓰이는 사문석 채취를 위한 광산허가를 받은 뒤 10년째 골재 채취를 해오고있다. 당초 도는 매년 광물생산실적 보고를 조건으로 허가를 내줬으나 이 업체는 지난 91년부터 95년까지 생산실적을 아예 보고조차 하지 않았으며 지난해에도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드러났다. 이에 앞서 도는 허가 당시 광산법에 따라 실제 사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매월 광물생산실적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조건을 달았고 위반시에는 광산허가를 취소하도록 했다. 이 업체는 또 지난 96년부터 4년간 8,000여t의 사문석을 채취한 것으로 보고했으나 사문석의 판매실적은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음성군은 이 업체의 사문석 판매실적이 전혀 없는 것을 알고도 사문석 채취에 따른 부산물 처리를 위한 골재 채취허가를 내준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광물생산실적이 없어 지난 99년현장지도를 했으나 광물채취와 토석채취의 개념이 모호해 허가취소 등의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광복산업 관계자는 “사문석의 용도는 따로 제한돼 있지 않다”며 “채취한 사문석은 야적해 놓고 있으며 부산물로 나오는 토석은아스콘 공장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 김대통령, “”내년 대선 공정관리 위해 野의견 충분히 수렴할것””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5일 경향신문 창간 55주년 특별회견에서 “본격적인 대선 일정이 시작되는 시점이 되면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여당의 의견뿐만 아니라 야당의의견도 충분히 수렴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에도 국민 여러분께 다짐한 바와 같이 내년 대선은 역사상 가장 공명하고 깨끗한 선거가될 것”이라며 “정부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공명선거 분위기를 확고하게 지켜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민주당은 당의 강령과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문호가 열려있는 정당”이라며 “대선 후보와 관련해서도 당내 민주적 절차에 의해 누구나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여권 대선후보의 문호개방 방침을 내비췄다. 또 오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고이즈미 총리가)한국 사람들의생각을 아주 중시하는 입장에서 언급이 있을 것”이라고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용호 게이트’에 대해서는 “무엇을 감출 수가 없고 감출 필요도 없다”면서 “그러나 의혹 부풀리기는 여든 야든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는 원인이 되므로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복권은 ‘애물단지?’

    중앙 부처들이 너도나도 복권사업에 뛰어드는 바람에 발행된 복권의 3분의 2가 폐기처분되고 있다. 국회 예결위 소속 한나라당 심재철(沈在哲) 의원은 4일 행정자치부와 문화관광부 등 복권을 발행하는 중앙 8개 부처가 제출한 자료를 집계한 결과 상반기에 18종,13억8,572만장(구입가격 기준 8,543억원어치)의 복권이 발행돼 이 가운데 65%인 8억9,390만장(6,089억원어치)이 버려지고 있다고밝혔다. 심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15종에 17억5,020장(1조4,281억원어치)의 복권이 발행돼 이 가운데 45%인 7억9,321장(7,312억원어치)이 폐기처분된 것으로 집계됐다. 폐기율이 가장 높은 것은 행자부에서 발행하는 추첨식 제주관광복권으로 82.6%를 기록했고 문화부의 추첨식 월드컵복권과 국가보훈처에서 발행하는 인터넷 플러스복권도 각각 75%와 64.7%로 나타났다. 심 의원은 “이밖에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인터넷복권과 축구복표 토토복권 등의 발행이 계획중이거나 시범사업에들어간 상태”라면서 “행정부처가 경쟁적으로 복권을 발행하는 바람에 예산낭비는 물론 국민의 사행심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kid@
  • [대한광장] 화해와 협력, 통일을 위한 쌀

    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덥고 일조시간이 길며 결실기의 일교차마저 알맞아 쌀 생산량이 사상 최고수준인 3,730여만섬이넘을 것이라 한다.당초 목표치보다 184만섬이나 많은 풍작이다.그럴 경우 미곡연도 10월말 기준으로 재고량은 1,100만섬에 이를 전망이다.이는 FAO(국제식량농업기구)가 권장하는적정 재고보유량 580만섬(총소비량의 17∼18%)을 무려 520만섬이나 초과하는 수준이다.지난 5년동안 온갖 자연재해와 1998∼2000년의 혹심했던 태풍 및 홍수 피해를 이겨내고 거둬들인 성과다. 예부터 쌀 한마지기 농사를 지으려면 농부들이 보통 7근의땀을 쏟아붓고 88번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는데 자연재해가극심하면 할수록 더 많은 구슬땀과 마음을 쏟게 마련이다.바야흐로 대풍을 앞둔 추수철 황금빛 들녘에는 지금 풍년가와웃음소리 대신 농민들이 풍작을 우려하고 볏단을 갈아엎는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쌓여가는 재고미를 정리하지 않으면 쌀값 하락은 물론,통상 2,000억원에 가까운 직접 보관비용과 8,000여억원의간접비용을 국민의 세금과 민간 유통업자와 농가들이 부담해야 한다.그래서 90년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 인도네시아에 현물상환 조건으로 현물차관을 제공한 바 있다.김영삼대통령 때는 북한에 100만섬을 조건없이 원조했었다.그러나쌀농사란 한해만 흉작이 들어도 금세 재고가 바닥난다.바로북한에 쌀을 보내고 난 다음해인 95년의 큰 흉작으로 당시정부 일각에서는 미국으로부터 쌀수입을 몰래 추진했었다고한다.원래 농사란 하늘과 땅과 사람의 3재(三材)가 한데 어울려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너무 방정을떨어서는 아니되는 법이다. 북한은 올봄의 왕가뭄 현상으로 밭농사가 절단났다.대략 1,500만섬 정도의 식량부족 사태가 예상된다는 것이 국제기관의 분석이다.이럴 때 모처럼 여야가 대북 쌀지원 원칙에 한목소리를 내고있는 것은 순리이며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본다.굶주린 백성,특히 같은 동포를 돕는 일이기 때문에 하늘의뜻에 부합하고,천문학적인 재고 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어 정부와 국민부담을 경감시킨다. 문자그대로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다만 대북 식량지원은1회성 조치로 끝날 사안이 아니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장기지원계획을 가지고 근본적으로 도와야 한다.농업 생산기반조성과 생산자재 및 기술지원이 있어야 항구적인 대책이라 할수 있다. 그와 더불어 국내 농가의 소득안정과 쌀값 보장에 대한 확고한 조치와 함께 양질미 생산과 쌀소비 확대 대책이 강구되어야 형평성에도 맞다고 본다.북한에는 비료를 무상으로 지원하면서 국내 농민들에게는 비료계정 적자를 이유로 비료값을 올리려는 시도는 형평성에 어긋난다. 북쪽에 식량을 연차적으로 지원할 경우 현재 국산 쌀값이국제가격의 5∼7배가 넘기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계정상과다하게 표시되어 국내외에서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한때 국내에서는 “우리가 보낸 식량,총탄되어 날아온다”라는 플래카드가 길거리에 나부낀 적이 있고,정치권에서는 “퍼주기론”과 “못줘서 안달”이라는 등 우리의 고유한 상부상조 정신과 인간 심성을 파괴하는 발언들이 난무하고 있다.동냥은 못줄 망정 쪽박마저 깨려드는 이들의 비인도적 심성은연민의 대상일 뿐이다.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FAO·WFP와 국제 원조기관들이 북한190여개 시·군에 주재원을 두고 식량분배 상황을 감시해온결과,군사용으로 전용된 사례를 한건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것이 공식 조사결과 보고다.인도주의적 지원에 조건을 달고상호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우리는 광복 이후 6·25를 거치면서 기아와 영양실조로 온 국민이 고통 받았을 때를 잊을 수 없다.그때 미국을 비롯,세계 각국의 민관기구들이 아무 조건없이 천문학적인 원조를 제공해준 덕분으로 오늘날 이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그 보은의 표시로 우리는 에티오피아 난민을 도왔고,아시아·아프리카 빈국들을 돕고 있다.그 대상이 북녘 땅의 같은 동포에 이르러서는참으로 적절하고도 남음이 있다.하늘도 즐겁고,땅도 살아나고,이 나라의 농민과 북녘의 동포도 살리는 대북 쌀지원은그래서 참 좋은 일이다. 김성훈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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