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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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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친일 규명법’ 왜 머뭇거리나/박유철 전 독립기념관 관장

    3·1절 85돌을 맞은 지금 우리가 가장 부끄러워할 일은,과거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라기보다 광복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잘못된 과거사에 책임을 물은 일도,물을 수도 없다는 점이다.당시 일제에 빌붙었던 당사자들에 대한 처벌은 고사하고,그들 스스로가 반성도 사죄도 없고,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오만과 뻔뻔스러움을 대물림까지 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우리나라 꼴이 이 모양이니 잘못된 한·일 관계의 과거사야 들춰내 무엇하겠는가.친일파가 득세하는 세태에서 과거사가 청산될 리 없다.이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 어찌 이 나라에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과거사를 반드시 정리하고 청산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과거의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어찌 새로운 거래가 이루어지겠는가. 일본이 툭하면 제기하는 식민지 시혜론과 신사참배,교과서 왜곡 등의 행위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한·일 관계와 비슷한 독·불 관계를 보면 독일의 적극적인 사죄와 반성으로 과거사를 깨끗하게 청산해 어느때보다 원만한 관계가 정립되었다.프랑스는 종전 60년이 가까운 지금도 나치 부역행위를 가차없이 처벌한다.부역행위를 숨기고 경찰국장과 장관까지 지낸 자가 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법정에 끌려나와 10년 징역형을 받은 기사를 보았다.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 사회가 그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역사에 대해 경외심을 요구하는 프랑스의 사회적 환경이다.역사에 대해 경외심이 없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나치 부역자에 대한 철저한 숙청이 오늘날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프랑스에서는 진정한 과거 청산이 있었기에 그 바탕 위에 국가의 진로를 바르게 설정하고,건전하고 정의가 살아 있는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떳떳하게 행세하고 있지 않는가. 16대 국회에서 과거청산 관련 4대 법안의 발의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역사의 진보를 확인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비록 불법 정치자금 수사에 묻혀 일반은 물론 언론에서조차 큰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 법안이야말로 엄청난 역사의 변화요,사회환경의 변화였다.그런데 이 4대 법안 중 친일관련법과 6·25 전쟁 휴전 이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안),이른바 6·25 통합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기가 어렵다고 한다.이로써 제16대 국회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란 수치보다 더 부끄러운 모습을 민족과 역사 앞에 노출한 것이다. 더구나 친일규명 관련법은 국회 법사위에서 당초 법안에 수정을 거듭하여 친일행위의 죄상을 규명하고 단죄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있으나마나 한 법으로 변질되고 말았다.그것조차 본회의 상정이 보류된다니 민족정기와 사회정의가 통째로 사라지는 느낌이다.그런다고 친일행위를 한 그들의 과거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결국 이를 계속 감춰 국민을 기만하고 역사를 경시하는 행위는 그 자신들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친일행위자들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대한 심판을 면했을는지 모르나 용서받을 기회까지 잃은 셈이다.우리는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또 한번 꺾이게 되었다.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화합은 철저한 과거 청산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항일했던 사람,친일했던 사람,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던 사람들 사이에 맺혀 있는 갈등,…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안목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지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밝힌 것은 전적으로 옳다.국회의원들은 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그래야 16대 국회도 살고 우리 민족도 자존심을 찾게 될 것이다. 박유철 전 독립기념관 관장˝
  • 또 갈라선 보수·진보

    3·1절인 1일 서울 도심에서는 진보·보수진영이 각각 집회를 열어 지난해 이어 ‘보혁갈등’이 재연됐다.진보진영은 남북 공동결의문 형태로 ‘3·1 민족자주선언’을 채택한 반면 보수진영은 ‘친북좌익세력 척결’을 주장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통일연대,한국종교인평화회의 등으로 구성된 남측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 회원 300여명은 이날 오후 3시 탑골공원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 민족대회’를 가졌다.남북은 서울이나 개성에서 공동행사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베이징 6자회담’ 등 민감한 사안이 겹쳐 남북한이 각각 행사를 치렀다.남북 행사본부측은 공동결의문에서 일본의 역사왜곡과 군국주의를 함께 막고 광복절과 6·15남북정상회담 등 민족공동기념일에 공동행사를 열기로 결의했다.같은 시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재향군인회,6·25참전 유공자협의회 등 140여개 보수단체가 주최, 2만여명이 참석한 ‘친북좌익세력과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국민대회’가 열렸다.이들은 “북한의 핵개발로 민족이 불안에 떨고 있고,현실적 자주국방이 어려운 만큼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는 것이 세계 평화와 국가번영을 지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오후 2시 종묘공원을 비롯,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앞,광주 충장로 우체국 앞 등 전국 12개 지역과 미국,일본,영국 등 13개국 50여개 도시에서 네티즌들이 ‘번개 모임’을 갖고 태극기를 흔들며 10분 남짓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아리랑을 불렀다.이는 민간역사연구기관 국학원(www.kookhakwon.org)이 인터넷을 통해 ‘붉은 옷을 입고 태극기를 준비해 집결장소로 모여 오후 2시 정각 대한민국만세를 외치자.’고 제안한 데 따른 것이다. 유영규기자 whoami@˝
  • [조정래의 세상보기] 역사의 빛과 그늘

    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는 잊어도 좋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피흘리고 있는 현실이다.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솟아오르는 것은 그 좋은 반응이다. 한반도를 집어삼킬 모든 계획을 완료한 이토히로부미는 “우리 일본인 300만명만 이주시키면 조선 반도는 영원히 일본이 지배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그리하여 그는 청년 안중근의 총탄을 맞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죽었으나 그가 세운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한반도를 병합했으며,곧바로 토지조사 사업을 시작했고,그 8년 동안에 이땅의 농지 45%를 강탈했다.조선 농민 절반 이상을 소작농으로 몰락시킨 그 토지조사사업은 일본 농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키는 데 필요한 농토 확보 방법이었다. 우리가 광복되었을 때 이땅에 살고 있었던 일본인들은 모두 얼마였을까.대략 80만명 정도였다.그런데 거기에 기생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은 얼마였을까.줄잡아 150만명이 넘었다.일본인들보다 두 배나 많은 수가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샅샅이 알게 해주었다.독립투사들이 만주 어느 지역에서 잡히든 이틀이면 신원 파악을 완료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조선총독부의 정보망도 결국 그 친일파들의 충성 덕분이었다.그런데,일본인 300만 이주를 계획했던 이토히로부미의 구상은 실패한 것일까.그렇지 않다.일본은 친일파 150여만명을 자기네 충복으로 거느림으로써 복잡한 이주책을 쓰지 않고도 그 계획을 달성한 것이었다.어느 시인은 광복된 조국에서 친일의 변을 지치지도 않고 이렇게 되풀이했다.“일본이 200년을 갈 줄 알았다.인도에서 영국이 그랬듯이.” 그래서 평생 그늘에서 살다 죽을 수 없어 양지를 찾아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일본은 조선사람들의 이런 심리상태까지 꿰뚫고 있었다.일본의 지배가 길어질수록 친일파들은 늘어날 텐데 굳이 자기네 국민들에게 이주를 강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독립투사들은 얼마나 되었을까.식민지배 36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투쟁을 전개했지만 그 수는 미처 10만명에 이르지 못했다.이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우리는 일본의 폭압이 두려워 집단적인 적극 저항을 하지 못한 비겁을 저질러 결국 36년 동안 400여만명이나 죽어가야 했다.그런 참극을 막기 위해 적극 저항을 선택한 지도자가 있었다.의열단을 이끌었던 김원봉 선생이다.의열단은 한마디로 ‘너 죽고 나 죽자’는 투쟁방법을 실행한,요즘 말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했다.그래서 총독부가 내건 현상금 중에 김원봉 선생이 김구 선생을 능가해 으뜸이었다.일본 ‘천황’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의열단은 그러나 해산되어야 했다.참 슬프고 어이없게도 활동자금의 고갈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김원봉 선생의 뜻을 따라 10만명,아니 5만명만 뭉쳐서 전국 도처에서 날마다 일본인을 몇 십명,몇 백명씩 죽이고 우리 조선사람들도 자결하는 일이 벌어졌더라면 조선총독부는 일본인 5만명이 죽기 전에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그랬으면 우리의 광복은 25년쯤은 더 빨리 왔을 것이고,우리 동포가 400만명씩이나 희생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이런 말을 그때 상황을 무시한 허황된 공리공론이라고 지탄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그런데,10여년 전에 남미 어느 나라의 군부독재 폭압을 그린 ‘로메로’라는 영화가 있었다.그 마지막 자막은 ‘그들은 뭉치지 못해 결국 7만명이나 죽어 갔다.’고 쓰고 있었다. 흔히 역사에서 배운다고 말한다.특히 우리의 참혹한 식민지 역사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군위안부 비극도 그 중의 하나다.그 쓰라린 슬픔을 상업화하려다가 큰 말썽이 일어났다.그 원인은 역사의식 부재와 황금만능주의에서 비롯되었다.그들이 역사의 진실을 캐려는 진정성으로 군위안부를 다룬 영화를 만들었더라면 그 누드 사진들보다 훨씬 더 야한 장면들이 나왔더라도 전혀 말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오히려 ‘실미도’ 못지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돈벌이에도 성공했을 것이다.그 사건을 향해 삽시간에 일어난 뜨거운 지탄은 역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진지성과 건강성을 입증하는 것이다.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는 잊어도 좋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피흘리고 있는 현실이다.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솟아오르는 것은 그 좋은 반응이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조정래의 세상보기] 역사의 빛과 그늘

    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는 잊어도 좋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피흘리고 있는 현실이다.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솟아오르는 것은 그 좋은 반응이다. 한반도를 집어삼킬 모든 계획을 완료한 이토히로부미는 “우리 일본인 300만명만 이주시키면 조선 반도는 영원히 일본이 지배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그리하여 그는 청년 안중근의 총탄을 맞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죽었으나 그가 세운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한반도를 병합했으며,곧바로 토지조사 사업을 시작했고,그 8년 동안에 이땅의 농지 45%를 강탈했다.조선 농민 절반 이상을 소작농으로 몰락시킨 그 토지조사사업은 일본 농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키는 데 필요한 농토 확보 방법이었다. 우리가 광복되었을 때 이땅에 살고 있었던 일본인들은 모두 얼마였을까.대략 80만명 정도였다.그런데 거기에 기생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은 얼마였을까.줄잡아 150만명이 넘었다.일본인들보다 두 배나 많은 수가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샅샅이 알게 해주었다.독립투사들이 만주 어느 지역에서 잡히든 이틀이면 신원 파악을 완료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조선총독부의 정보망도 결국 그 친일파들의 충성 덕분이었다.그런데,일본인 300만 이주를 계획했던 이토히로부미의 구상은 실패한 것일까.그렇지 않다.일본은 친일파 150여만명을 자기네 충복으로 거느림으로써 복잡한 이주책을 쓰지 않고도 그 계획을 달성한 것이었다.어느 시인은 광복된 조국에서 친일의 변을 지치지도 않고 이렇게 되풀이했다.“일본이 200년을 갈 줄 알았다.인도에서 영국이 그랬듯이.” 그래서 평생 그늘에서 살다 죽을 수 없어 양지를 찾아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일본은 조선사람들의 이런 심리상태까지 꿰뚫고 있었다.일본의 지배가 길어질수록 친일파들은 늘어날 텐데 굳이 자기네 국민들에게 이주를 강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독립투사들은 얼마나 되었을까.식민지배 36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투쟁을 전개했지만 그 수는 미처 10만명에 이르지 못했다.이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우리는 일본의 폭압이 두려워 집단적인 적극 저항을 하지 못한 비겁을 저질러 결국 36년 동안 400여만명이나 죽어가야 했다.그런 참극을 막기 위해 적극 저항을 선택한 지도자가 있었다.의열단을 이끌었던 김원봉 선생이다.의열단은 한마디로 ‘너 죽고 나 죽자’는 투쟁방법을 실행한,요즘 말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했다.그래서 총독부가 내건 현상금 중에 김원봉 선생이 김구 선생을 능가해 으뜸이었다.일본 ‘천황’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의열단은 그러나 해산되어야 했다.참 슬프고 어이없게도 활동자금의 고갈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김원봉 선생의 뜻을 따라 10만명,아니 5만명만 뭉쳐서 전국 도처에서 날마다 일본인을 몇 십명,몇 백명씩 죽이고 우리 조선사람들도 자결하는 일이 벌어졌더라면 조선총독부는 일본인 5만명이 죽기 전에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그랬으면 우리의 광복은 25년쯤은 더 빨리 왔을 것이고,우리 동포가 400만명씩이나 희생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이런 말을 그때 상황을 무시한 허황된 공리공론이라고 지탄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그런데,10여년 전에 남미 어느 나라의 군부독재 폭압을 그린 ‘로메로’라는 영화가 있었다.그 마지막 자막은 ‘그들은 뭉치지 못해 결국 7만명이나 죽어 갔다.’고 쓰고 있었다. 흔히 역사에서 배운다고 말한다.특히 우리의 참혹한 식민지 역사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군위안부 비극도 그 중의 하나다.그 쓰라린 슬픔을 상업화하려다가 큰 말썽이 일어났다.그 원인은 역사의식 부재와 황금만능주의에서 비롯되었다.그들이 역사의 진실을 캐려는 진정성으로 군위안부를 다룬 영화를 만들었더라면 그 누드 사진들보다 훨씬 더 야한 장면들이 나왔더라도 전혀 말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오히려 ‘실미도’ 못지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돈벌이에도 성공했을 것이다.그 사건을 향해 삽시간에 일어난 뜨거운 지탄은 역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진지성과 건강성을 입증하는 것이다.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는 잊어도 좋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피흘리고 있는 현실이다.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솟아오르는 것은 그 좋은 반응이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기고] 일제만행 사진발굴과 3·1정신/안주섭 국가보훈처장

    3월이 오면,“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우리 민족 고난의 시대를 표현한 한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85년 전 기미년의 봄,종다리도 하늘 잃고 울었을 그 암흑 속에서,전 민족이 하나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뜨거운 함성이 오랜 역사를 넘어 들리는 듯하다. 올해는 3·1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85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그러나 3·1절을 앞두고,일본의 한반도 강점 시기에 자행된 만행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사진 1000여 점이 발굴돼,우리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 사진들 가운데,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백두산 천지에 쇠말뚝을 박고 제사를 지내는 행위가 담겨진 장면은 우리 민족에 대한 압제 수준을 넘어 국토 곳곳의 맥을 끊고,우리 나라를 지구상에서 말살하려던 천인공노할 만행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를 통해서 오늘이,오늘을 통해서 미래가 보인다.”는 토인비의 말이 시련의 역사를 겪은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으로 다가오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대한이 자주독립국임과 대한인의 자주민임’을 세계 만방에 선언했던 3·1독립운동은 사상·종교·지역 등 모든 것을 초월해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민족이 하나로 뭉칠 수 있음을 보여준 우리 민족 최대의 항일투쟁이었다. 이는 세계 석학들이 평한 바와 같이,“전세계를 놀라게 한 위대한 사실이었고,한국 민족운동사에서 가장 중대한 의의를 지닌 운동이며 투쟁이었다.”고 하겠다. 이렇듯 3·1독립운동을 통해 발휘된 3·1정신은,우리 나라가 국권회복을 하기까지 전 민족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고,오늘날에는 자주·자유·세계평화정신으로 승화되어 우리 국민의 영원한 지표가 되고 있다. 오늘 우리가 85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선열들의 당당함과 그 불굴의 독립정신을 되새기자는 것은 결코 지난 역사의 한 사실을 회고하자는 데만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위국헌신을 실천한 선열들의 고귀한 애국충정을 본받고,과거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보다 희망찬 내일을 가꾸어 나가자는 것이다. 따라서 선열들의 민족혼과 나라사랑 정신을 오늘에 계승 발전시켜 후손에게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주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인 것이다. 지금 국제정세는 안보,경제,역사 등 전 분야에 걸쳐 자국의 이익을 위한 무한경쟁 속에 급변하고 있으며,나라간 평화공존이 화두가 되고 있으면서도 한쪽에서는 전쟁과 내란 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지구촌의 현상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앞에는 세대와 계층과 지역의 벽을 넘어,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열어가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이러한 때 우리 민족의 자존을 위해 강한 의지와 저력을 보여줌으로써 빛나는 승리를 가져온 3·1독립운동의 자주 독립정신을 이어받아 국민화합을 이룰 수 있도록 온 국민이 힘과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하겠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일찍이 3·1운동을 통해 본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황금시대를 연 동방의 빛’이라고 예찬하였다.3월이면,전국 방방곡곡에서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이루어 지고 있다.이것은 대한민국의 광복을 위해 전 민족이 하나가 되었던 그날의 모습을 되새겨 보고 계승·발전시키려는 것이다. 3·1절 85주년이 되는 올해야말로 진정 선열들의 위훈을 기리고,나라사랑의 푸른정신을 되새기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안주섭 국가보훈처장˝
  • 日帝 땅이름 뿌리 뽑는다

    일제의 횡포로 왜곡된 지명을 우리 식으로 되돌려받기 위한 사업이 서울에서 본격화된다. 보신각 등 우리나라 정기(精氣)를 대변하는 문화재와 시설이 많은 ‘독립만세의 고장’ 종로구(구청장 김충용)는 3·1절을 앞두고 민족정기와 문화를 되찾고 극일(克日)운동을 편다는 취지에서 원서·원남동 등 일제시대 생긴 동명을 회복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26일 밝혔다. 일제는 한반도 침략 초기인 1904년 당시 우리나라 임금이 사는 궁궐을 폄하하기 위해 창경궁과 창덕궁을 정원 수준의 창경원·비원으로 각각 낮춰 명명하면서 창경궁 서쪽에 있던 지역을 원서동으로,남쪽을 원남동으로 일컬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원서동은 나라의 어른인 왕이 자리해 좋은 기운이 깃들게 된다는 의미의 ‘양덕동’,원남동은 옛날 순라꾼이 돌던 곳이란 뜻의 ‘순라동’ 등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종로구는 이런 일제 잔재를 씻어내기 위해 전문가들의 주장과 주민 설문조사,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안이 나오는 대로 행정자치부에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지명 되찾기 사업을 발표하면서 밝힌 1차 지역명 변경대상은 72곳이나 된다.이 가운데 일제가 자의로 고친 게 20곳,근거를 왜곡하거나 격하시킨 경우가 2곳,광복 뒤 일본식 이름을 개정하면서 왜곡된 경우가 7곳 등이다.종로구 최용순 자치행정과장은 “동명을 바꾸려면 지방자치법 관련 규정과 절차가 워낙 까다롭고,호적부·주민등록부 등 각종 공부(公簿) 58종과 65종의 법령을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에 행정력과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현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부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정서운씨 전세계에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폭로한 정서운 할머니가 26일 경남 진해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향년 82세. 13세가 되던 1937년부터 7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위안부 생활을 한 정 할머니는 지난 1992년 위안부 신고를 한 뒤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는 활동을 벌여왔다.1995년 9월에는 베이징(北京)여성대회에 참석,일본군을 하루 평균 50명씩 주말에는 100명이나 상대했다고 증언해 충격을 던졌다.유엔 등 국제사회는 정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명백한 전쟁범죄’로 규정하기도 했다.광복 후 1년 동안 싱가포르 수용소에서 머무르다 귀국한 정 할머니는 평생을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에 시달렸다.유족은 없으며 빈소는 경남 진해 제일병원에 마련됐다.발인은 27일 오전 7시반.(055)543-9461 ●朴南奎(전 조양상선그룹 회장)씨 별세 載祐(삼익물류 회장)載福(진주햄 대표)載俊(전 남북수산 대표)씨 부친상 世鎭(전 조양상선 전무)씨 조부상 金亨國(에이오에스 부회장)씨 빙부상 26일 오후 3시1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일 오전 5시 (02)3010-2270 ●金達鎭(자영업)重鎭(〃)洸鎭(한국가스공사 대외사업단장)浩鎭(자영업)英鎭(〃)씨 모친상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발인 28일 오전 7시30분 (031)787-1503 ●姜準鎬(KD 미디어 사원)씨 부친상 鄭根弼(㈜풍산 사원)金昇鎬(한국건설관리공사 사원)李昌求(서울신문 체육부 기자)씨 빙부상 26일 오전 7시 1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8일 오전 6시 (02)3010-2235 ●卞鉉日(자영업)鉉泰(전 공군정훈공보실장)鉉基(자영업)씨 모친상 17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8일 오전 8시 (02)392-0499 ●成好哲(전자신문 IT산업부 기자)씨 부친상 26일 오전 5시 제주 한라병원,발인 29일 오전 10시 (064)759-0910 ●金洪辰(루프트한자 직원)姸淨(동부화재 대리)씨 부친상 璿九(노바테크 대표)瑃九(LG생활건강 부장)씨 형님상 李承俊(삼성전자 대리)씨 빙부상 25일 오후 9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7일 오전 8시 (02)3010-2251 ●梁龍模(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코치)씨 부친상 26일 오전 7시 경기 동수원병원,발인 28일 오전 6시 (031)216-0870 ●柳成椿(대우증권 기획실 차장)씨 부친상 26일 오전 3시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28일 오전 8시 (02)929-2499 ●李元必(증권예탁원 안전관리실장)씨 모친상 25일 오후 4시40분 대구 파티마병원,발인 28일 오전 8시 (053)957-4442 ●朴東琳(전 화순군교육청 관리과장)씨 별세 濟兪(프랑스 거주)相起(자영업)씨 부친상 河鍾大(서울 하약국 대표)金相鉉(서울지방국세청 과장)高秉武(전 쌍방울 부장)씨 빙부상 26일 오전 9시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8일 오전 6시 (02)392-3499 ●芮鍾德(단국대 법학과 명예교수)明秀(자영업)仁秀(투어파크 대표)美鈴(자영업)씨 모친상 26일 오전 9시35분 서울대병원,발인 28일 오전 9시 (02)760-2022 ●金鍾守(통영시 광영한의원장)씨 모친상 海蒼(전국언론노조 국제신문지부 위원장)씨 조모상 25일 오후 10시 경남 통영시 통영강남병원,발인 27일 오전 11시 (055)645-6699 ●朴甲守(자영업)甲術(전 CBS 사업국장)甲錫(전 광주도시개발공사 직원)鄭宇(광주시 도로과 직원)씨 모친상 화생(전남지방경찰청 정보과 직원)종일(회사원)수범(한국수출보험공사 직원)씨 조모상 김영근(평화파이프 광주전남지사장)김종철(세명정밀 대표)김영복(금호고속 기술부 엔지니어)씨 빙모상 26일 오전 4시37분 광주 삼성병원,발인 28일 오전 10시 (062)519-4441 ●文曰仁(오라컨트리클럽 주임)順烈(웅진닷컴 수석국장)씨 모친상 고봉일(자영업)장일선(개인택시)金琮培(CBS 제주방송 보도제작국장)씨 빙모상 26일 오전 5시45분 제주 북제주군 한림읍 옹포리 자택,발인 28일 오전 8시 (064)796-1601˝
  • [부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정서운씨 전세계에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폭로한 정서운 할머니가 26일 경남 진해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향년 82세. 13세가 되던 1937년부터 7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위안부 생활을 한 정 할머니는 지난 1992년 위안부 신고를 한 뒤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는 활동을 벌여왔다.1995년 9월에는 베이징(北京)여성대회에 참석,일본군을 하루 평균 50명씩 주말에는 100명이나 상대했다고 증언해 충격을 던졌다.유엔 등 국제사회는 정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명백한 전쟁범죄’로 규정하기도 했다.광복 후 1년 동안 싱가포르 수용소에서 머무르다 귀국한 정 할머니는 평생을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에 시달렸다.유족은 없으며 빈소는 경남 진해 제일병원에 마련됐다.발인은 27일 오전 7시반.(055)543-9461 ●朴南奎(전 조양상선그룹 회장)씨 별세 載祐(삼익물류 회장)載福(진주햄 대표)載俊(전 남북수산 대표)씨 부친상 世鎭(전 조양상선 전무)씨 조부상 金亨國(에이오에스 부회장)씨 빙부상 26일 오후 3시1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일 오전 5시 (02)3010-2270 ●金達鎭(자영업)重鎭(〃)洸鎭(한국가스공사 대외사업단장)浩鎭(자영업)英鎭(〃)씨 모친상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발인 28일 오전 7시30분 (031)787-1503 ●姜準鎬(KD 미디어 사원)씨 부친상 鄭根弼(㈜풍산 사원)金昇鎬(한국건설관리공사 사원)李昌求(서울신문 체육부 기자)씨 빙부상 26일 오전 7시 1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8일 오전 6시 (02)3010-2235 ●卞鉉日(자영업)鉉泰(전 공군정훈공보실장)鉉基(자영업)씨 모친상 17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8일 오전 8시 (02)392-0499 ●成好哲(전자신문 IT산업부 기자)씨 부친상 26일 오전 5시 제주 한라병원,발인 29일 오전 10시 (064)759-0910 ●金洪辰(루프트한자 직원)姸淨(동부화재 대리)씨 부친상 璿九(노바테크 대표)瑃九(LG생활건강 부장)씨 형님상 李承俊(삼성전자 대리)씨 빙부상 25일 오후 9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7일 오전 8시 (02)3010-2251 ●梁龍模(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코치)씨 부친상 26일 오전 7시 경기 동수원병원,발인 28일 오전 6시 (031)216-0870 ●柳成椿(대우증권 기획실 차장)씨 부친상 26일 오전 3시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28일 오전 8시 (02)929-2499 ●李元必(증권예탁원 안전관리실장)씨 모친상 25일 오후 4시40분 대구 파티마병원,발인 28일 오전 8시 (053)957-4442 ●朴東琳(전 화순군교육청 관리과장)씨 별세 濟兪(프랑스 거주)相起(자영업)씨 부친상 河鍾大(서울 하약국 대표)金相鉉(서울지방국세청 과장)高秉武(전 쌍방울 부장)씨 빙부상 26일 오전 9시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8일 오전 6시 (02)392-3499 ●芮鍾德(단국대 법학과 명예교수)明秀(자영업)仁秀(투어파크 대표)美鈴(자영업)씨 모친상 26일 오전 9시35분 서울대병원,발인 28일 오전 9시 (02)760-2022 ●金鍾守(통영시 광영한의원장)씨 모친상 海蒼(전국언론노조 국제신문지부 위원장)씨 조모상 25일 오후 10시 경남 통영시 통영강남병원,발인 27일 오전 11시 (055)645-6699 ●朴甲守(자영업)甲術(전 CBS 사업국장)甲錫(전 광주도시개발공사 직원)鄭宇(광주시 도로과 직원)씨 모친상 화생(전남지방경찰청 정보과 직원)종일(회사원)수범(한국수출보험공사 직원)씨 조모상 김영근(평화파이프 광주전남지사장)김종철(세명정밀 대표)김영복(금호고속 기술부 엔지니어)씨 빙모상 26일 오전 4시37분 광주 삼성병원,발인 28일 오전 10시 (062)519-4441 ●文曰仁(오라컨트리클럽 주임)順烈(웅진닷컴 수석국장)씨 모친상 고봉일(자영업)장일선(개인택시)金琮培(CBS 제주방송 보도제작국장)씨 빙모상 26일 오전 5시45분 제주 북제주군 한림읍 옹포리 자택,발인 28일 오전 8시 (064)796-1601
  • [문화마당] 다르다와 틀리다/성기완 팝칼럼니스트·시인

    “그건 이거하고 틀려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물론 이 어법은 ‘틀린’어법이다.‘다르다’를 써야 할 자리에 ‘틀리다’를 썼기 때문이다.대신,“그건 이거하고 달라요.” 이렇게 써야 맞는 문장이다.왜 사람들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해서 쓰고 있는 것일까.사람들이 하도 많이 이렇게 쓰니 이젠 ‘난 너와는 틀려.’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틀리게 들리지도 않는다.나는 어학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엄밀하게 따졌을 때 이와 같은 말의 용법이 진짜로 틀린 어법인지 아닌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그러나 중요한 것은,‘틀리다’와 ‘다르다’는 엄밀히 다르다는 점이다. ‘틀리다’는 영어로는 ‘fault’,즉 논리적으로 혹은 이치상 그릇된 어떤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예를 들어 ‘2 곱하기 2는 5’라고 말하면 그건 틀린 말이다.또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다.’,이렇게 말해도 틀린 말이다.반면에 ‘다르다’는 영어로는 ‘different’,즉 문자 그대로 ‘다르다’는 뜻이다.한마디로 ‘다르다’는 차이에 관해 이야기할 때 쓰는 말이다.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이렇게 말하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가리키는 문장이 된다.반대말을 봐도 ‘틀리다’와 ‘다르다’는 엄연히 다르다.만일 초등학교 2학년생쯤에게 반대말 숙제를 내보면 ‘틀리다’와 ‘다르다’가 어떻게 구별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틀리다’의 반대말은 ‘맞다’이다.‘그르다’의 반대말이 ‘옳다’인 것과 마찬가지의 쌍이다.반면에 ‘다르다’의 반대말은 ‘같다’이다. ‘틀리다’와 ‘다르다’의 이런 혼동은 내가 볼 때 큰 걱정거리이다.이 말 씀씀이의 안쪽에는 ‘나와 같지 않은 것은 틀리다.’,즉 다른 것은 옳지 않고 그르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다른 것은 분명 틀린 것이 아니다.같다,다르다의 개념은 옳다 그르다,하는 가치판단의 개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그러나 사람들은 ‘틀리다’와 ‘다르다’를 혼동하면서 은연중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훈련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태도는 지역감정,이념 등으로 파당을 갈라 나와 다르면 원수처럼 여기며 살아온 우리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그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우리와 비슷한 듯해도 분명히 다른 사람들인 ‘일본’ 같은 나라들이 한때 우리의 주권을 앗아갔던 적이 있다.우리와 다른 사람들인 그들은 북한산,백두산에 쇠말뚝을 박았고 우리를 마치 그들의 일부인 양 여겼다.그런 불합리는 거꾸로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는 인식을 낳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우리는 ‘나와 다른 나’와 전쟁을 치른 적도 있다.그들은 분명히 나의 일부,즉 우리였다.그러나 광복이 되면서 우리는 갈라졌고 우리 내부의 다른 ‘우리’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동족상잔의 대결을 벌인 적이 있다.전쟁이란 괴물은 사람들에게 나와 다른 것은 절대적으로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본능을 키워준다.그들은 우리를,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대했다.그것은 생존의 요구였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의 지구촌 시대는 다른 것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소통의 쌍방향성으로 역동성을 키워 가는 시대이다.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판단하도록 만드는 이 어법의 혼란 속에 마음을 열지 않으려는 편협한 우리 마음씨가 스며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안타깝다.선거 같은 큰일을 치를 때 이런 마음씨는 극명하게 표출된다.좀 달라졌으면 좋겠다.부디,이번 선거 때에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는 생각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기를. 성기완 팝칼럼니스트·시인˝
  • 독립투사 김인전선생 공적비 새달 1일 충남 금강하구서 제막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제4대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경재 김인전(經齋 金仁全·1876∼1923) 선생 공적비가 충남 서천군 마서면 금강하구에 세워져 3·1절인 새달 1일 제막된다. 목사이자,교육자이며 애국지사인 김인전 선생은 고향인 서천에서 학교와 교회를 세워 인재를 육성하다가 전주 서문교회 목사로 1000여명이 참여한 전주 남문 3·1만세를 주도했다.선생은 일제의 위협 속에 1919년 6월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다.여기서 서거할 때까지 5년 동안 독립운동을 벌였다.선생은 임시정부의 내무·재무차장과 학무총장 대리로 행정부에서,의정원 부의장과 의장으로 입법부에서 각각 활동하면서 외곽단체를 이끌고 법통성 유지와 조국광복 달성에 매진했다. 이에 앞서 독립운동사연구가인 이현희 전 성신여대 교수는 경재 김인전 의장 추모사업회의 요청에 따라 ‘경재 김인전 목사의 나라사랑’이라는 연구서로 선생의 일생을 복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리모델링’ 세종문화회관 재개관-권위주의 상징 VIP석 역사속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1년 동안의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28∼29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야제가 사실상의 재개관 공연이다.318억원을 들인 개선공사로 하드웨어는 이제 ‘국가대표급’ 공연장으로 손색이 없는 수준이 됐다.오는 5월8∼9일 소프라노 신영옥과 뉴에이지그룹 시크릿가든의 합동공연까지,70여일 동안 벌어지는 재개관 페스티벌의 의미를 점검해 본다. ●당초 건축목적은 통일주체국민회의 회의장 개선공사로 대극장은 3822석의 다목적홀에서 수준급 음향을 자랑하는 3075석짜리 공연장으로 거듭났다.그러나 세종문화회관은 당초 다목적홀도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 회의장으로 추진됐다. 1972년 세종문화회관 터에 있던 서울시민회관이 불타자,이른바 ‘10월 유신’으로 영구집권 체제에 들어간 박정희 대통령은 5000명이 들어가는 통일주체국민회의 회의장으로 만들고,국제회의장으로도 쓴다는 생각을 가졌다.남북회담을 계기로 북한 공연장에 질 수 없다며 1972년 국립극장을 신축했지만,박 대통령이 그곳에서 아내를 잃고는 세종문화회관에 더욱 애착을 가졌다. 그러다 1975년 광복30주년 기념음악제가 성공을 거두면서 일년 내내 비워 두어야 하는 회의장보다는 공연이 가능한 다목적홀이 좋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문화계 인사들로 새로 구성된 건립추진위원회는 5000석에서 1000석 이상을 덜어냈다. 잠정적으로 쓴 서울문화회관이라는 이름은 개관 1년 전 월탄 박종화 선생의 제안을 박 대통령이 받아들임에 따라 세종문화회관으로 바뀌었다.개관일은 1978년 4월14일이었는데,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15일 경축행사가 열리는 만큼 ‘김빼기’로 결정됐다는 것이 개관기념예술제 사무총장을 역임한 음악평론가 이상만씨의 회고이다. 이른바 VIP석은 1994년 일반에게 개방됐다.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권위주의 청산 작업이 벌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2층 한복판에 만들어진 VIP석은 사실상 대통령의 전용공간이었다.이번 리모델링 과정에서 VIP석은 완전히 사라졌다. ●28~29일 빈 필하모닉 재개관 기념 연주회 빈 필하모닉이 내한한다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는 지났다.물론 ‘빈 필하모닉 위크’라는 이름으로 거의 해마다 7∼8차례 연주회를 갖는 일본에 비해 시장 규모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하지만 빈 필은 지난해에도 예술의전당은 물론 서울월드컵경기장 야외공연과 불과 1000석짜리 통영시민문화회관 연주회에 흔쾌히 참여하는 등 우리 음악계를 각별히 대우한다. 거장의 반열에 오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이 우리 음악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이번 프로그램에서도 드러난다.28일은 슈베르트의 교향곡 ‘미완성’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2번,29일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 후안’과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다.빈 필하모닉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정통 독일 레퍼토리다. 주목을 끄는 것이 브루크너 2번.일본의 얘기지만 ‘말러 다음은 브루크너’라고들 한다.클래식 마니아들이 말러에 심취한 다음 흔히 브루크너에 탐닉한다는 뜻이다.요즘 한국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그만큼 음악감상 수준이 높아졌다는 얘기다.그런 점에서 빈 필하모닉을 재개관 페스티벌의 전야제로 선택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 다만 당초 29일 예정한 빈 출신 현대 작곡가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에 나오는 3개의 소품을 루마니아 작곡가 에네스쿠의 ‘루마니아 광시곡’으로 뒤늦게 바꾼 것은 빈 필하모닉보다도 주최측인 MBC가 우리 수준을 오히려 낮추어 보는 때문은 아닐까. ●파이프오르간 활용 못해 아쉬워 1978년 세종문화회관이 개관하면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뭐니뭐니 해도 파이프오르간이었다.독일의 칼 슈케사(社)가 만든 파이프오르간 설치는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강력히 추진했다. 김 총리는 “일본 NHK홀 것 보다 하나라도 더 커야한다.”고 지시하여 손건반이 NHK 것 보다 하나 많은 6개 짜리가 설치됐다고 한다. 개관 예술제에서 오스트리아의 한스 하젤백과 영국의 제니퍼 베이트,한국의 윤양희 곽동순 유회자 등이 잇따라 독주회를 갖는 등 서울의 명물로 등장했다.하지만 그동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소문을 입증하는 듯 이번 재개관 페스티벌에서는 파이프오르간을 주제로 한 연주회가 아예 없다. 지난 15일에는 새로운 무대막이 설치되어 호평을 받았다.김병종 화백의 수묵화 ‘생명의 노래’다.역동성과 생명력,자연과 인간의 만남에 주안점을 둔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개관 당시에는 서양화가 권옥연 화백의 작품이 있었다.십장생도를 수놓은 작품이었으나,2000년 불이나 일부가 타버렸다.이 작품을 되살리는 것이 어려웠다면,권위주의 유물도 아닌 만큼 완전히 폐기되기 전에 권 화백의 무대막을 일부라도 영구 전시하여 역사를 살리는 것은 어떨까. 그때나 지금이나 변치않은 대목도 있다.높은 티켓값이 주머니가 가벼운 관객을 울리고 있는 것은 똑같다. 서동철기자 dcsuh@˝
  • EBS 지상파, 새달부터 北애니메이션도 방송

    EBS 지상파TV가 봄철 프로그램 개편과 함께 문화교양 전문 채널로 위상을 강화한다.새달 1일부터 시사해설 및 진단,민주 시민 교육,어린이·유아 교육,문화예술,시청자 참여 등의 프로그램을 신설·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케이블·위성 채널인 플러스1과 플러스2가 각각 수능전문 채널과 중학·직업 채널로 전환된 것에 맞물린 차별화 전략이다.신설되는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먼저 평일 자정부터 연속 방영하는 ‘오늘의 쟁점’과 ‘움직이는 세계’가 눈에 띈다.각각 그날그날의 국내와 국제 이슈를 전문가의 시각으로 분석하고,시청자들에게 세상 보는 눈을 기르도록 도와준다.시민의 건전한 사회 참여를 유도하는 NGO 관련 ‘시민의 힘(목 오후 10시20분)’도 주목할 만하다.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낙천·낙선 운동 등 시민단체의 목소리와 그 활동 상황을 소개한다. ‘집중 조명 우리교육(월∼금 오후 9시40분)’은 교육전문 기간 방송으로서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내놓은 야심작.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교육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국내 방송 사상 처음으로 정규 편성한 북한 애니메이션 ‘령리한 너구리’(수 오전 9시25분),유아의 연령을 더욱 세분화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토끼가 까꿍’(월·화 오전 9시15분),‘바나나를 탄 끼끼’(목 오전 9시5분) 등 어린이 프로그램도 새로 전파를 탄다.‘2003 어린이 드라마 극본 공모’당선작 가운데 2편을 HD드라마로 만든 ‘어린이 미니시리즈’(월∼목 오후 9시15분)도 선보인다.공연,문화 인사,영화,여행 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평일 오후 11시대에 따로 편성한다. 처음으로 본격 드라마도 만든다.광복 이후부터 5·16까지 서울 명동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한국의 대중문화사를 다루는 24부작 미니시리즈 ‘명동백작’(가제)이 4월말 제작에 들어가 하반기 중 방영될 예정이다. 이영표기자 tomcat@˝
  • 술따라 맛따라-안동소주

    “술 빚기의 처음은 ‘기도’하는 마음입니다.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술을 기다리는 정성이 깃들어 있어야 ‘안동소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와 전통식품 명인6호로 지정받은 안동소주의 제조기능보유자 조옥화(83) 할머니는 지금도 소주를 내리는 날에는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온 정성을 쏟는다.“안동소주는 누룩과 쌀만을 섞어 발효시키고 그것을 증류하여 만들어 낸 순곡주입니다.안동에서 소주를 만드는 사람들이 여럿 있지만 누룩,쌀,물 등 재료 선별에 정성을 들이지 않습니다.저는 누룩을 직접 띄우고 좋은 쌀을 손으로 만지며 깨끗한 술이 나오기를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조 할머니가 술을 한 잔 권했다.안동소주는 향이 깊고 강했다.45도의 안동소주 한잔을 들이켜자 혓끝에 담백함이 느껴질 뿐 쓴맛은 없다. 우리 소주는 몽골(후에 원나라로 칭함)에서 전래되었다.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페르시아의 이슬람문화를 받아들이며 증류방식의 술제조법을 배웠고 그것이 고려에 전파되면서 비로소 소주의 시대가 열렸다.당시 몽골군 기지가 있었던 개성,안동,제주를 중심으로 소주를 많이 빚었다.역시 그랬다.그래서 안동소주에는 선비의 부드러움보다 무인의 강렬함이 느껴지는가 보다.안동소주는 조선시대 들어 안동 사대부집안의 가양주(家釀酒)로 자리잡았다.그러나 일제 강점기때 전통주 생산이 금지되었고 광복 후엔 1962년 주세법이 개정되어 순곡주 생산이 금지되면서 안동소주의 맥도 끊겼다. 조씨가 안동소주 재현에 뜻을 두게 된 것은 1986년 새마을운동 기금 마련을 위해 동동주를 향토 야시장에 팔면서다.정년을 앞둔 한 시청 직원이 ‘동동주보다 안동소주가 더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던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보처럼 내려오던 조씨의 전통 소주고리가 빛을 보게 된 것은 1990년 9월.그때 처음으로 안동소주 제조면허를 받아 빚기 시작했다.안동시 신안동에 살던 집에서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 팔면서 안동소주의 명성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그때는 정신이 없었어요.전국 각지에서 술을 사겠다고 새벽 5시부터 집 앞에 줄을 섰는데,그 줄이 동네를 한 바퀴 돌고도 남았어요.술을 더 달라고 항의하는 이들도 많았어요.” 그때는 혼자 제대로 된 술을 만들려는 욕심 때문에 밤새우는 일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안동소주는 누룩(밀)과 쌀을 발효시켜 증류시킨 술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오래될수록 향기와 맛이 좋아진다.또한 증류를 통해 불순물이 제거돼 마신 후에도 뒤끝이 깨끗하다. 현재 조옥화씨는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 배경화(53)씨에게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음식을 만들고 술을 빚는 일이 너무 힘들어 며느리에게는 가르치고 싶지 않았지만 며느리 배씨가 자청해 수제자가 되었다고. 조옥화씨는 마지막으로 “안동소주의 맛과 향의 비결은 ‘누룩’입니다.좋은 밀에 정성을 쏟아 발효시킨 누룩만이 안동소주의 이름을 지킬 수 있게 합니다.”라고 했다.조씨는 “지금도 옛 어른들의 정신과 방법을 충실히 지키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안동소주 이렇게 빚어요 ① 좋은 밀 1㎏을 분쇄한 후 물을 넣고 적당히 반죽한다. ② 원형틀에 밀반죽을 넣고 모시보자기를 씌운 후 발로 밟아 모양을 만든다. ③ 누룩을 틀에서 꺼내 20일 정도 띄운 뒤 콩알 크기로 분쇄해 건조시킨다. ④ 건조한 누룩을 하룻밤 이슬을 맞혀 곡자 냄새를 없앤다. ⑤ 쌀 5㎏을 씻어 물에 불린 후 시루에 쪄 고두밥을 만든다.그늘에 멍석을 깔고 고두밥을 넓게 펴 말린다. ⑥ 누룩과 고두밥을 손으로 버무리며 적당량의 물을 넣어 혼합한 후 술독에 넣고 약 15일간 숙성시킨다.전술 완성. ⑦ 전술을 증류기에 넣고 증류를 한다.처음에는 70도의 독한 술이 나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도수가 떨어지는 술이 나온다. ⑧ 받은 술의 도수가 45도 정도 되고 혀끝에서 가장 좋은 향과 맛이 날 때 증류를 멈춘다. 글 안동 한준규기자 hihi@˝
  • 스모 서울대회 인산인해

    ‘일본씨름’ 스모가 ‘씨름의 고향’ 한국에서 광복 이후 첫선을 보였다. 15일 ‘스모 한국공연’이 이틀째 펼쳐진 서울 장충체육관은 ‘인간 산들의 향연’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는 인파가 6000명을 훌쩍 넘기는 등 전날에 이어 장사진을 이뤘다. 한국 관중들은 본격적인 대회에 앞서 열린 어린이들과의 앙증맞은 시범경기와 북(야구라다이코)공연,독특한 입장의식 등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봤다.오랜 기다림 속에 150㎏을 넘나드는 엄청난 몸집의 리키시(스모선수)들이 맞붙어 다람쥐처럼 날쌘 동작과 기술을 선보이자 탄성과 환호가 이어졌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박성훈(31)씨는 “그동안 접할 기회가 없었던 스포츠라 호기심에 경기장을 찾았다.”면서 “눈깜짝할 사이에 승부가 나는 등 속도가 빠르고 화끈했다.”고 말했다. 김영철(43)씨는 “기술이 더 다양한 민속씨름이 재미있는 것 같다.”면서 “우리 씨름도 스모처럼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세계로 진출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민속씨름 관계자들도 스모공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LG씨름단의 차경만 감독과 김경수 선수는 “경기도 경기지만 마케팅이나 대회 진행에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씨름연맹 관계자들은 이번 대회의 전 과정을 비디오에 담기도 했다. 가장 관심이 집중되고 많은 박수를 받은 선수는 역시 한국출신 김성택(26·149.5㎏).15일 자신(주우료)보다 1등급 높은 ‘마에가시라’의 와카토바(26·144㎏)를 ‘겨드랑이에 손을 감아 던지기(시타테나게)’로 꺾고 2회전에 진출한 김성택은 `요코즈나(천하장사)’ 바로 아래 등급인 ‘오제키’의 도치 아즈마(27·146.5㎏)와 격돌,‘들어던지기(기메다시)’로 승리하는 등 강자들을 제치고 8강에 오르는 최대 이변을 연출했다.김성택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한국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줘서 기분이 최고”라면서 “부상도 회복된 만큼 올해 좋은 성적을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틀에 걸친 서울대회 종합우승은 둘째날 우승자인 아사세키류(22·136.5㎏)를 꺾은 첫 날 우승자인 몽골출신 요코즈나 아사쇼류(23·138㎏)가 차지했다.한편 오는 18일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는 스모 한국공연의 마지막날 대회가 열린다. 홍지민기자 icarus@˝
  • [열린세상] 화합과 개혁의 순리/서영훈 (사)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상임대표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무엇보다도 국리민복을 해치는 사당 파쟁을 중지하고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과제는 국민화합과 정치·사회의 개혁이다.얼마전 청와대에서는 우리 사회의 ‘원로’라 불리는 각계 인사 20여명이 초청되어 대통령과 함께 나랏일을 걱정하는 모임이 있었다.그 자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고 강조된 것 역시 국민화합의 중요성과 변화와 개혁의 당위성이었다.발전을 가로막는 분열과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 당리당략에 집착한 정쟁을 중지하고 국민화합을 이루어야 하며,사회 전반에 만연된 부정 부패와 각종 사회악을 뿌리뽑기 위해서 제도의 개혁,의식과 문화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문제는 화합과 개혁의 두 가지 공안(公案)적 과제를 동시에 추진함에 있어서 그 선후(先後)와 순역(順逆)이 맞지 않아 갈등이 생기고 대립,반목이 야기된다는 데에 있다.바로 이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두 과제를 조화롭게 병진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필수 과제요,절박한 과제이다. 그때 모인 자리에서 있었던 발언 내용을 요약해 보면 대개 이러했다.국민화합과 정치개혁을 올바르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정운영과 정당,사회활동에 있어서 지나친 편 가르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개혁은 이념과 도덕성을 준거로 삼을 수밖에 없는데 이 중 이념에 잘못 치중하다 보면 보수와 진보를 따지게 되고 상호 불상용과 양극 대결로 치달아 결국은 민주질서 자체를 파괴할 위험성마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편 가르기로 점철된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조선조나 개화기의 당파 싸움은 접어두고라도,나라를 잃고 종살이를 하던 시기에도 독립운동 세력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파벌 분쟁으로 외모(外侮)를 자초하였고 광복 후의 건국과정과 건국 후의 국정 운영에서도 얼마나 한심한 파벌싸움을 지속해 왔던가. 남북 분단의 비극도 꼭 미·소(美·蘇)에 의한 외인(外因)적 원인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동족상잔의 전란을 치른 지 반세기가 넘도록 남북화해와 민족 공동체의 복원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민주주의의 정상적 발전과 사회문화의 건전한 발전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어찌 남의 탓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광복 정국의 혼란 속에 어렵게 터를 닦아 세우고 역경과 시련을 겪으며 오늘의 발전을 이룩하는 고비고비에서 얼마나 많은 수난과 인고의 역정(歷程)을 지나 왔던가.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권 통치하의 근대화 과정에서 꺼져가던 민주주의를 회생(回生)시키고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통해 민생 복지의 기반을 닦아 오는데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리며 고난 극복의 행진을 지속해 왔던가. 그런데 오늘날 바로 그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무엇보다도 국리민복을 해치는 사당 파쟁을 중지하고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또한 우리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정치적,사회적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제도의 민주주의를 전제로 한다.하지만 국민의 각성된 의식과 실천이 이를 뒷받침하지 않으면 그 제도가 보장하고 우리가 기대하는 성과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따라서 국민 각자도 스스로 의식을 개혁하고 민주적 참여와 합리성,공정성의 원칙을 준수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지구촌 시대,세계화의 시대이다.날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국제 질서와 새로운 역사의 도전 앞에 뜻과 지혜를 모아 대응하고 분발 협력할 때다.안으로 민생안정을 이루는 가운데 진정한 민주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며,밖으로 보편적 가치 실현과 평화공존의 새 질서 건설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어찌 편 가르기 이해관계나 해묵은 원한 감정에 집착하고 사로잡혀서야 되겠는가.우리는 마땅히 그리고 반드시 이 잘못되고 부끄러운 과거의 기반과 구속에서 벗어나 밝고 영광스러운 새 역사 창조를 위해 미래지향적으로 화합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개혁에 동참 협력해야 할 것이다. 서영훈 (사)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상임대표˝
  • [스모] 14일부터 한·일 공동 미래프로젝트 스모대회

    ‘스모가 온다.’ 오랫동안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접한 일본의 전통씨름 스모(相撲)가 공식대회를 통해 한국에 상륙한다.‘스모 한국공연’으로 명명된 일본 스모협회 주최의 이번 대회는 공식경기로는 광복 이후 한반도에서 처음이며,아시아에서도 1973년 베이징 대회 이후 31년 만이다.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 성공을 기념하고 문화교류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 ‘한·일 공동미래프로젝트’ 1호로 마련됐다. 오는 14·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대회가 열리고,18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는 시범경기가 치러진다. 이번 대회에는 몽골 출신으로 스모 최고봉인 요코즈나(橫綱)에 등극한 아사쇼류(23)를 포함,두번째 계급인 오제키(大關)급의 도치 아즈마(28),지요 다이카이(28) 등 1부리그 정상급 리키시(力士·씨름선수) 42명이 참가해 자웅을 겨룬다. 가장 주목되는 선수는 역시 아사쇼류.다카노하나의 은퇴로 하락세인 스모 인기를 되살리고 있다는 평이다.지난해 1월 요코즈나에 올랐으며,지난달 도쿄 국기관에서 열린 올해 첫 대회에서 15승 무패로 우승했다. 96년 다카노하나 이후 7년여 만에 달성한 대기록.전광석화 같은 스피드와 호쾌한 기술로 일본 스모계를 평정했다.‘일본 토종’인 도치 아즈마와 지요 다이카이도 차세대 주자로 각광받고 있다. 민속씨름의 천하장사에 해당하는 요코즈나는 과거 300년 동안 65명 만이 이름을 올렸다.일단 요코즈나가 되면 하위 등급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다.다만 성적이 나빠지면 은퇴하는 것이 관례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스모 1부리그 격인 마쿠우치(幕上)에 올라 국내에도 잘 알려진 김성택(26·스모명 가스가오)도 참가,기량을 선보인다. 인하대 씨름선수 출신인 김성택은 지난 98년 데뷔했으며 지난해에는 부상으로 부진,2군리그 마쿠시타(幕下)로 떨어져 이번 참가 대상에서 제외됐으나 한·일 문화교류라는 취지를 살려 특별 출전하게 됐다. 150∼200㎏의 ‘산더미만한’ 거구들이 번개같이 날렵한 동작으로 상대방을 쓰러뜨리거나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는 모습은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리키시들은 여러가지 고기와 야채를 고아서 만든 ‘잔코나베’라는 죽을 하루에 두차례 먹고 ‘사케(쌀로 빚은 일본 술)’를 마시며 식사가 끝나면 낮잠을 즐기는 방법으로 거대한 몸집을 유지한다.하와이 출신 스타 고니시키는 한때 267㎏까지 나가기도 했다. 입장료는 ‘도효(土俵·씨름판)’ 주변 방석을 깔고 앉는 자리가 15만원(부산 14만 3000원)이며 4인이 함께 앉는 S석은 52만원(부산 44만원),2·3층 자유석은 각각 1만 5000∼3만원(부산 7000원) 선으로 일본 내 요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정해졌다. 대회 수익금 전액은 자선단체에 기부된다.입장권 구입은 티켓링크(www.ticket link.co.kr)나 콜센터(1588-7890). 홍지민기자 ica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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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부 ◇부이사관 승진 △정보분석국 분석총괄과장 楊昌錫 ■ 행정자치부 ◇관리관 승진 △경상북도 행정부지사 南孝彩◇이사관 교육 파견△국방대학교 申貞浣 全熙宰◇부이사관 승진△울산광역시 金秉吉△정부청사관리소 관리총괄과장 羅炳惟◇부이사관 전보 및 파견△경기 남양주시 부시장 芮昌根△구리시 부시장 尹聖均△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朴在赫◇서기관 전보 및 파견△부산시 중구 부구청장 沈載龍△경기도 정책기획관 兪政仁△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파견 安榮煥△국가정보원 국가사이버안전센터 파견 權五慶 ■ 문화관광부 ◇부이사관 △감사관실 감사담당관 李承振△종무실 종무1과장 金鍾律△관광국 관광정책과장 愼庸彦△세종연구소 파견 崔圭學◇학예연구관△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金宗大△〃 유물과학과장 鄭鍾秀 ■ 교육인적자원부 ◇이사관 전보 △국제교육정보화국장 朴景載△경기도 부교육감 柳宣圭△공보관 鄭永宣△교육자치심의관 金正基△서울대 사무국장 李承茂△교육부 崔秀泰△홍익대 교수 張基元◇부이사관 전보△경상남도 부교육감 趙興來△장관 비서실장 禹承求 ■ 재정경제부 ◇국장급 △정책조정국장 趙誠益(내정)△국무조정실 전출 李明奎(내정)△참여정부 국제세미나 준비기획단 지원 鄭宅煥△본부 太應烈 陸東翰 任鍾龍 禹周河◇과장급△감사담당관 朴哲圭△기획예산담당관 周龍植△종합정책과장 姜鎬人△경제분석과장 鄭恩甫△물가정책과장 金鳳翼△정책기획과장 崔熙男△인력개발과장 鄭智元△소비자정책과장 申潤秀△복지생활과장 尹基相△정책조정총괄과장 金永東△산업경제과장 李鎬澈△재정정보관리과장 張勳起△개발협력과장 梁敦善△금융정보분석원 기획행정실장 李基萬△산업관세과장 安雄麟△국세심판원 조사관 朴鍾聲(내정)△기술정보과장 趙源雄△지역경제정책과장 崔元睦(내정)△관세제도과장 禹鍾顔△지역협력과장 柳卜煥△경제홍보기획단 파견 崔永錄△경수로사업준비기획단 파견 愼秀範(내정)△경제자유구역준비기획단 지원 申炯澈(내정)△국가채무관리전담반 지원 李丙根(내정) ■ 기획예산처 ◇국장급 전보 △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金龍賢△국방대학교 파견 柳性杰◇과장급 전보△총무과장 金政民 ■ 한국국제교류재단 △교류담당 상근이사 金惠媛 ■ 대한상공회의소 △경기인력개발원장 朴烘柱 ■ 건국대 ◇팀장 △서울캠퍼스 교무 李炳佑△〃 학생복지 金光漢△〃 영선 韓鍾奭△충주캠퍼스 경리 柳在雄◇행정실장△언론홍보대학원 朴君植△축산대학 張蘇基△수의과대학 金柄九△예술문화대학 宋鍾昇△교양학부 李載喆△사회과학대학 李一燮△의과대학 林圭興 ■ 국민은행 ◇지점장 명동영업부 田英姬△여의도〃 金順賢△남대문 韓圭宣△동대문패션타운 鄭振亨△명동역 曺永辰△숭례문 徐祺烈△신당동 朱鎭培△종로1가 李光圭△종로3가 金在玉△종로타워 韓相勛△충무로 朴湖周△평창동 朴尙周△혜화동 尹在瓘△마두역 金宰坤△마포역 權純暎△모래내 朴淳鍾△벽제 閔榮鉉△서교동 任性德△서교 金桂演△성산 吳鍾熹△신능곡 金萬洙△신촌 白相哲△연서 李基赫△연신내 崔南植△응암오거리 李星圭△홍제역 黃舜燦△화정 金桂鎭△후곡 任炳洙△가리봉동 李相洙△개봉동 鄭埰益△고척동 李在邦△구로 金演△구일 金副鎬△금천 金英洙△김포서 金勝仁△대림3동 徐昌錫△독산동 全宰奭△목동2단지 李廷三△목동5단지 韓成錫△서여의도 趙信根△신길동 韓東準△신길서 吳尙憲△신월남 金思鎭△화곡동 전용원△광명역 李尙元△권선동 文三浩△대야동 李相昊△명학 李相文△박달동 李東起△산본2동 金鍾勳△산본역 洪錫奎△수원남문 金永鎭△시흥 柳康烈△안산 徐甲錫△안양1번가 姜京旭△원곡동 金熙昌△인계동 金東洙△인덕원역 金東烈△정자동 金明海△철산역 申沃植△파장동 李在允△평촌남 李炫△포일 林鍾漢△호계동 韓仲淵△화서동 申貴日△계산역 朴周鉉△고강동 李秉澤△남인천 郭暎熙△동암 趙淳模△동춘동 姜又錫△만수6동 鄭寬永△부천상동 孫東浩△부천 李秉根△부천홈플러스 洪性郁△부평중앙 鄭昌勳△부평 金榮國△산곡북 林英植△송내동 李成基△송내역 金禎烈△심곡동 金正述△역곡 姜元奎△용종동 康益煥△용현동 崔完基△원종동 元善鎬△주안8동 宋慶一△주안역 朴圭完△주안 姜寶遠△중동 韓承熙△강남대로 余元植△남성역 金良善△반포남 朴贄愚△방배동 鄭榮基△봉천중앙 鄭文燮△사당역 任正子△신대방동 金承浩△신림본동 閔丙珠△신림역 李康烈△신반포 孫澈圭△양재남 崔相勳△이수역 吳英一△장승배기 許盛植△갈월동 咸奭鎬△강남타운 朴柱洪△논현동 安慶恩△동부이촌동 安惠鏡△동역삼 李榮燮△매봉역 洪良杓△삼성동 姜点求△압구정동 李榮模△압구정서 李喜根△언주로 趙乙坤△용산 金秉秀△청담북 金海京△학동역 金鐵弘△한강로 姜宇聲△모란 鄭鐘洛△분당시범단지 鄭在金△분당양지 黃石煥△분당효자촌 張仁台△상대원 韓宗烈△송탄남 高永天△수내동 全德洙△야탑역 鄭樂宗△용인서 徐大範△주택공사 李成熙△태평동 李基哲△태평역 李壽鎬△가락본동 崔德鎬△거여동 李榮煥△광장동 金興運△구의동 趙誠柱△길2동 金柱日△길동 南相夏△둔촌동 李炳鎬△삼전북 李承鎬△상일동 張德浚△서잠실 吳普根△성내동 金允洙△신천역 徐唱鉉△암사동 權道淳△암사역 南仁△올림픽아파트 金榮奎△자양동 李基勳△잠실중앙 趙漢睦△중곡동 朴容彩△훼밀리아파트 李圭錫△교문 白仁基△망우용마 姜寅洙△면목동 鄭振燮△사가정역 李容澤△속초 朴善東△옥수동 金善泰△왕십리 金平柱△용답동 安富榮△용두동 白肇鉉△이문2동 黃善權△이문동 趙鍾文△장한평역 宋白圭△중화동 權五錠△청량리역 金玘洙△태백 韓允熙△퇴계원 崔明東△공릉서 孔書魯△노원역 崔三鏞△수유서 李京淵△수유역 李京秀△쌍문동 安熙泰△월계동 金鉉得△의정부중앙 李昌鎬△의정부 金時伯△창동 池萬浩△포천 咸熙震△가야 金俊坤△개금동 蔣承桓△구서동 許應道△남양산 朴大孝△동울산 金文守△명륜동 金永喆△반송동 鄭大龍△부산법조타운 金承哲△부산진역 金政泰△부전동 安飛俊△전포동 吳世春△토곡 河元達△해운대우동 朴胡澈△감전동 朱康植△광복동 金仲坤△괴정동 崔正基△동삼동 朴成一△마산역 金柄珍△부산 朴仁秉△부평동 沈斗燮△사상 李炯來△삼방동 趙泰永△충무동 尹仁宇△통영 金性旭△공평동장 姜海中△관음동 金庾坤△구미역 姜錫遠△구미 權純重△김천 崔源吾△노원동 鄭漢九△대구계산동 金東植△대구중동 蔡應樑△대명동 裵鍾孝△방촌동 裵相哲△본리동 申亨錫△성서 金利坤△송현동 李永壽△신암동 鄭光埰△안심 全炳昊△중동교 安孝榮△중앙로 金鎬慶△칠곡 李秉煜△평리동 金太官△포항 池溶萬△광산 柳在鉉△광양 車載述△군산 崔圭原△두암동 許丙哲△서귀포 梁彰起△순천 朴英均△오치동 韓辰洙△운암2동 鄭主秦△익산 姜庠旭△인후동 兪昌熙△일곡 閔點植△전주남문 尹公模△제주 李景熹△첨단 高光淑△태인동 安治國△풍암 金利童△풍향동 李斗秀△효자동 金鍾善△가장동 李鍾涉△대전가양동 李仁植△대전은행동 崔光龍△대전중부 趙源相△둔산선사 丁奎亨△송촌동 金五中△용전남 李濟京△율량동 白承均△청주남문 申完洙△청주북문 曺東琪△청주서 金南壽△고척동기업금융 李在天△구로동〃 李喜永△구미〃 姜永德△구월동〃 金永奎△김해〃 鄭鎭錫△돈암동〃 金永鎭△마포〃 宋錫榮△부천〃 林東述△삼성센터〃 이득영△서교동〃 李厚植△석관동〃 李浚求△성수역〃 金雲泰△순천〃 黃潤晧△스타타워〃 孫海振△양평동〃 金復來△여의도〃 黃太源△용산〃 金興洙△용인〃 金成奎△울산〃 李相雨△호계동〃 金容浩△서여의도법인영업부 梁南植△여수기업금융팀 張世日◇센터장△남부지역심사 金郡鎬△부산〃 尹得三△서부〃 金明哲△호남〃 車載喆△청주NPL관리 李昌均△대치PB 朴禮善△분당PB 成光善△일산PB 金賢傑◇개설준비위원장△구갈 金正柱△수락산역 尹統圭△관저동 黃圭明
  • 한국인 첫 美육사 생도 여단장…4000여명 지휘맡은 정한샘씨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육사(웨스트 포인트)에서 한국인 여성 사관생도가 여단장 생도로 활약 중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미 육사 생도 4000여명의 자체 지휘 체계상 서열 1위로 학생회장에 해당되는 여단장 생도(Brigade Commander)를 한국인이 맡은 것은 웨스트포인트 사상 처음이며,여성이 차지한 것도 두 번째다. 한·미연합사에 따르면 미 육사 신문 포인터 뷰(Pointer View)는 최근 뉴욕주 콩거스에 거주하는 육사 4학년 정한샘(22·여·미국명 그레이스 정)씨가 2학기에 여단장 생도로 임명됐다고 보도했다. 정씨는 생도들의 규율 확립은 물론 생도를 대표하는 의전역할과 언론에 생도들의 의사를 알리는 대변인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부(副) 여단장 생도를 맡고 있던 지난해 9월엔 육사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안내했다. 그녀는 13세 때인 1995년 오빠 정한뜻(24·미국명 티모시 정)씨와 함께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자전거 대륙 횡단에 나서는 등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왔다.고등학교 때도 아시아계 여학생으로서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학생회장을 지냈다.그녀는 아이비 리그(미국 동부 명문대학군)로 진학하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사망한 뒤 어려운 집안 사정 등을 감안해 육사를 선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레오 브룩스(육군 준장) 생도대장은 “정 생도는 웨스트포인트 프로그램을 군사적,체력적,학문적으로 훌륭하게 이행해 동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있는 검증된 지도자”라고 극찬했다.정씨는 사관학교 졸업 후 군용 항공기 조종사로 활동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승진기자 red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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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부 ◇부이사관 승진 △정보분석국 분석총괄과장 楊昌錫 ■ 행정자치부 ◇관리관 승진 △경상북도 행정부지사 南孝彩◇이사관 교육 파견△국방대학교 申貞浣 全熙宰◇부이사관 승진△울산광역시 金秉吉△정부청사관리소 관리총괄과장 羅炳惟◇부이사관 전보 및 파견△경기 남양주시 부시장 芮昌根△구리시 부시장 尹聖均△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朴在赫◇서기관 전보 및 파견△부산시 중구 부구청장 沈載龍△경기도 정책기획관 兪政仁△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파견 安榮煥△국가정보원 국가사이버안전센터 파견 權五慶 ■ 문화관광부 ◇부이사관 △감사관실 감사담당관 李承振△종무실 종무1과장 金鍾律△관광국 관광정책과장 愼庸彦△세종연구소 파견 崔圭學◇학예연구관△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金宗大△〃 유물과학과장 鄭鍾秀 ■ 교육인적자원부 ◇이사관 전보 △국제교육정보화국장 朴景載△경기도 부교육감 柳宣圭△공보관 鄭永宣△교육자치심의관 金正基△서울대 사무국장 李承茂△교육부 崔秀泰△홍익대 교수 張基元◇부이사관 전보△경상남도 부교육감 趙興來△장관 비서실장 禹承求 ■ 재정경제부 ◇국장급 △정책조정국장 趙誠益(내정)△국무조정실 전출 李明奎(내정)△참여정부 국제세미나 준비기획단 지원 鄭宅煥△본부 太應烈 陸東翰 任鍾龍 禹周河◇과장급△감사담당관 朴哲圭△기획예산담당관 周龍植△종합정책과장 姜鎬人△경제분석과장 鄭恩甫△물가정책과장 金鳳翼△정책기획과장 崔熙男△인력개발과장 鄭智元△소비자정책과장 申潤秀△복지생활과장 尹基相△정책조정총괄과장 金永東△산업경제과장 李鎬澈△재정정보관리과장 張勳起△개발협력과장 梁敦善△금융정보분석원 기획행정실장 李基萬△산업관세과장 安雄麟△국세심판원 조사관 朴鍾聲(내정)△기술정보과장 趙源雄△지역경제정책과장 崔元睦(내정)△관세제도과장 禹鍾顔△지역협력과장 柳卜煥△경제홍보기획단 파견 崔永錄△경수로사업준비기획단 파견 愼秀範(내정)△경제자유구역준비기획단 지원 申炯澈(내정)△국가채무관리전담반 지원 李丙根(내정) ■ 기획예산처 ◇국장급 전보 △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金龍賢△국방대학교 파견 柳性杰◇과장급 전보△총무과장 金政民 ■ 한국국제교류재단 △교류담당 상근이사 金惠媛 ■ 대한상공회의소 △경기인력개발원장 朴烘柱 ■ 건국대 ◇팀장 △서울캠퍼스 교무 李炳佑△〃 학생복지 金光漢△〃 영선 韓鍾奭△충주캠퍼스 경리 柳在雄◇행정실장△언론홍보대학원 朴君植△축산대학 張蘇基△수의과대학 金柄九△예술문화대학 宋鍾昇△교양학부 李載喆△사회과학대학 李一燮△의과대학 林圭興 ■ 국민은행 ◇지점장 명동영업부 田英姬△여의도〃 金順賢△남대문 韓圭宣△동대문패션타운 鄭振亨△명동역 曺永辰△숭례문 徐祺烈△신당동 朱鎭培△종로1가 李光圭△종로3가 金在玉△종로타워 韓相勛△충무로 朴湖周△평창동 朴尙周△혜화동 尹在瓘△마두역 金宰坤△마포역 權純暎△모래내 朴淳鍾△벽제 閔榮鉉△서교동 任性德△서교 金桂演△성산 吳鍾熹△신능곡 金萬洙△신촌 白相哲△연서 李基赫△연신내 崔南植△응암오거리 李星圭△홍제역 黃舜燦△화정 金桂鎭△후곡 任炳洙△가리봉동 李相洙△개봉동 鄭埰益△고척동 李在邦△구로 金演△구일 金副鎬△금천 金英洙△김포서 金勝仁△대림3동 徐昌錫△독산동 全宰奭△목동2단지 李廷三△목동5단지 韓成錫△서여의도 趙信根△신길동 韓東準△신길서 吳尙憲△신월남 金思鎭△화곡동 전용원△광명역 李尙元△권선동 文三浩△대야동 李相昊△명학 李相文△박달동 李東起△산본2동 金鍾勳△산본역 洪錫奎△수원남문 金永鎭△시흥 柳康烈△안산 徐甲錫△안양1번가 姜京旭△원곡동 金熙昌△인계동 金東洙△인덕원역 金東烈△정자동 金明海△철산역 申沃植△파장동 李在允△평촌남 李炫△포일 林鍾漢△호계동 韓仲淵△화서동 申貴日△계산역 朴周鉉△고강동 李秉澤△남인천 郭暎熙△동암 趙淳模△동춘동 姜又錫△만수6동 鄭寬永△부천상동 孫東浩△부천 李秉根△부천홈플러스 洪性郁△부평중앙 鄭昌勳△부평 金榮國△산곡북 林英植△송내동 李成基△송내역 金禎烈△심곡동 金正述△역곡 姜元奎△용종동 康益煥△용현동 崔完基△원종동 元善鎬△주안8동 宋慶一△주안역 朴圭完△주안 姜寶遠△중동 韓承熙△강남대로 余元植△남성역 金良善△반포남 朴贄愚△방배동 鄭榮基△봉천중앙 鄭文燮△사당역 任正子△신대방동 金承浩△신림본동 閔丙珠△신림역 李康烈△신반포 孫澈圭△양재남 崔相勳△이수역 吳英一△장승배기 許盛植△갈월동 咸奭鎬△강남타운 朴柱洪△논현동 安慶恩△동부이촌동 安惠鏡△동역삼 李榮燮△매봉역 洪良杓△삼성동 姜点求△압구정동 李榮模△압구정서 李喜根△언주로 趙乙坤△용산 金秉秀△청담북 金海京△학동역 金鐵弘△한강로 姜宇聲△모란 鄭鐘洛△분당시범단지 鄭在金△분당양지 黃石煥△분당효자촌 張仁台△상대원 韓宗烈△송탄남 高永天△수내동 全德洙△야탑역 鄭樂宗△용인서 徐大範△주택공사 李成熙△태평동 李基哲△태평역 李壽鎬△가락본동 崔德鎬△거여동 李榮煥△광장동 金興運△구의동 趙誠柱△길2동 金柱日△길동 南相夏△둔촌동 李炳鎬△삼전북 李承鎬△상일동 張德浚△서잠실 吳普根△성내동 金允洙△신천역 徐唱鉉△암사동 權道淳△암사역 南仁△올림픽아파트 金榮奎△자양동 李基勳△잠실중앙 趙漢睦△중곡동 朴容彩△훼밀리아파트 李圭錫△교문 白仁基△망우용마 姜寅洙△면목동 鄭振燮△사가정역 李容澤△속초 朴善東△옥수동 金善泰△왕십리 金平柱△용답동 安富榮△용두동 白肇鉉△이문2동 黃善權△이문동 趙鍾文△장한평역 宋白圭△중화동 權五錠△청량리역 金玘洙△태백 韓允熙△퇴계원 崔明東△공릉서 孔書魯△노원역 崔三鏞△수유서 李京淵△수유역 李京秀△쌍문동 安熙泰△월계동 金鉉得△의정부중앙 李昌鎬△의정부 金時伯△창동 池萬浩△포천 咸熙震△가야 金俊坤△개금동 蔣承桓△구서동 許應道△남양산 朴大孝△동울산 金文守△명륜동 金永喆△반송동 鄭大龍△부산법조타운 金承哲△부산진역 金政泰△부전동 安飛俊△전포동 吳世春△토곡 河元達△해운대우동 朴胡澈△감전동 朱康植△광복동 金仲坤△괴정동 崔正基△동삼동 朴成一△마산역 金柄珍△부산 朴仁秉△부평동 沈斗燮△사상 李炯來△삼방동 趙泰永△충무동 尹仁宇△통영 金性旭△공평동장 姜海中△관음동 金庾坤△구미역 姜錫遠△구미 權純重△김천 崔源吾△노원동 鄭漢九△대구계산동 金東植△대구중동 蔡應樑△대명동 裵鍾孝△방촌동 裵相哲△본리동 申亨錫△성서 金利坤△송현동 李永壽△신암동 鄭光埰△안심 全炳昊△중동교 安孝榮△중앙로 金鎬慶△칠곡 李秉煜△평리동 金太官△포항 池溶萬△광산 柳在鉉△광양 車載述△군산 崔圭原△두암동 許丙哲△서귀포 梁彰起△순천 朴英均△오치동 韓辰洙△운암2동 鄭主秦△익산 姜庠旭△인후동 兪昌熙△일곡 閔點植△전주남문 尹公模△제주 李景熹△첨단 高光淑△태인동 安治國△풍암 金利童△풍향동 李斗秀△효자동 金鍾善△가장동 李鍾涉△대전가양동 李仁植△대전은행동 崔光龍△대전중부 趙源相△둔산선사 丁奎亨△송촌동 金五中△용전남 李濟京△율량동 白承均△청주남문 申完洙△청주북문 曺東琪△청주서 金南壽△고척동기업금융 李在天△구로동〃 李喜永△구미〃 姜永德△구월동〃 金永奎△김해〃 鄭鎭錫△돈암동〃 金永鎭△마포〃 宋錫榮△부천〃 林東述△삼성센터〃 이득영△서교동〃 李厚植△석관동〃 李浚求△성수역〃 金雲泰△순천〃 黃潤晧△스타타워〃 孫海振△양평동〃 金復來△여의도〃 黃太源△용산〃 金興洙△용인〃 金成奎△울산〃 李相雨△호계동〃 金容浩△서여의도법인영업부 梁南植△여수기업금융팀 張世日◇센터장△남부지역심사 金郡鎬△부산〃 尹得三△서부〃 金明哲△호남〃 車載喆△청주NPL관리 李昌均△대치PB 朴禮善△분당PB 成光善△일산PB 金賢傑◇개설준비위원장△구갈 金正柱△수락산역 尹統圭△관저동 黃圭明
  • [서울시 은평구 인사]

    ■ 은평구 ◇지방행정사무관 전보△감사담당관 김윤근△구의회 사무국 전문위원 안정순△행정관리국 장경환(과장)△주민자치 김쌍문△민원봉사 서광복△재무 송석도△세무1 윤한일△사회복지 신배섭△주택 제성출△도시정비 최서영△교통행정 송호재△교통지도 김기업△보건위생 부성철 (동장)△불광1 권오인△구산 손판수△응암2 이기찬△응암4 배윤호△증산 김광원◇지방행정사무관 승진△세무2과장 고을생△녹번동장 정경실△갈현2〃 나성석◇지방행정주사 전보△역촌2동장 직무대리 이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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