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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닭띠 인사 10명의 “새해에는…”

    닭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명을 알리는 서조(瑞鳥)로 여겨져 왔다. 민간에서는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도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에 지상에서 사라진다고 믿었다. 이처럼 상서롭고 신통한 을유(乙酉)년 닭의 해를 맞아 사회 각계의 닭띠동갑 저명인사들로부터 새해 소망을 들어봤다. ●강만길 상지대 총장(1933년생) 올해는 우리민족이 광복 60주년을 맞는 의미 깊은 해다. 사람으로 치면 회갑을 맞는 만큼 나라가 안정되고 성숙한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 모두 과거 분단의 모습을 딛고 평화통일의 시대로 도약해야 한다. ●최근덕 성균관장(1933년생) 닭은 아침을 열고 새로운 하루를 알리는 동물이다. 이런 닭의 모습과 같이 을유년은 우리 민족이 새롭게 화합하는 해로 자리잡았으면 한다.60갑자를 돌아 광복의 해인 을유년으로 돌아온 만큼 새로운 시작이 있어야겠다. 유교계도 ‘신(新)유학’의 원년으로 삼아 현대적으로 재해석되는 유교를 확립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다. ●이장호 영화감독(1945년생) 새해에는 나의 영화 데뷔작인 ‘별들의 고향’을 뮤지컬로 만들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2005년 우리 사회가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시기를 더 좋은 시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보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해인 수녀·시인(1945년생) 달걀 같이 동그란 희망을 키우는 2005년이 되길 바랍니다. 첫째,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열려 있는 사랑과 기도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둘째, 일상의 소임에서 가꾸어 가는 잔잔한 기쁨과 감사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셋째, 타인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이해와 용서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넷째, 온유와 겸손으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다섯째, 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양인자 방송작가(1945년생) 새해 가장 큰 바람은 지난 여러해 동안 각박하기만 했던 우리 사회가 좀 더 정의롭고 정직하게 변해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제게 ‘우리가 이해관계에 얽매였을 때 한 발짝씩 양보한다 하더라도 평생 100m도 채 양보하지 못한다.’고 하시더군요. 좀 더 서로를 배려하고 우리 이웃을 생각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1945년생) 2005년은 짧게 보면 현 정권이 집권 후반기로 들어가는 해이다. 길게 보면 광복 60주년을 맞고, 더 길게 보면 국가주권을 상실하며 근대에 발을 들인 1905년으로부터 100년째 되는 해이다.2005년에는 새로운 리더십이 발현돼 국가적으로 생산적인 대타협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일본 학계와 함께 동아시아적 가치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다. ●강석우 탤런트(1957년생) 일상생활과 작품 모두에서 친근한 아버지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KBS 성장 드라마 ‘반올림’은 그래서 더 애착이 많이 간다. 요즘에는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 남매와 함께 인라인을 타거나 산책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중년의 나이에 드니까,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게 더 많아졌다. 연기자로서 ‘진∼한 로맨스’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도 든다. ●강원래 가수·안무가(1969년생) 2004년은 라디오 프로그램도 새로 맡고, 강릉에 ‘클론댄스스쿨’도 세우는 등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전환점이 됐다.2005년에는 더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소망은 다시 음반을 내는 것과 아내를 닮은 닭띠 2세를 갖는 것이다. 새해를 맞은 국민들에게 힘내시라고 응원의 구호를 외치고 싶다.“쿵따리샤바라” ●최정원 뮤지컬배우(1969년생) 오는 5월 나의 이름을 걸고 콘서트를 한다. 꼭 잘 됐으면 한다. 어머니로서 소망은 딸 수아가 항상 건강하기를 바란다. 수아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 더 나아가 세계 모든이들이 건강하기를 염원한다. 건강해야 사랑을 할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나라 가수·탤런트(1981년생) 안녕하세요?장나라입니다. 캐럴이 울려 퍼졌던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이제 2005년 새해가 밝았네요. 나라도 지난해의 즐거움을 뒤로하고 올 한해 계획을 가만히 짜봅니다. 지난해 혹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더라도 올 한해 기운차게 새출발하세요. 내년에는 닭띠(헤헤 저도 닭띠여요.)해니까 모두들 금달걀을 듬뿍 낳으실 거예요. 감기 조심하시고 모두들 건강하세요!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마라도 등대지기 김석천 항로표지관리소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마라도 등대지기 김석천 항로표지관리소장

    지난 풍진(風塵)세상의 먼지를 털고 새 옷을 입어 보자. 어디로 갈까. 산사(山寺), 바다, 아니면? 파도가 거칠고 바람이 몹시 부는 곳이면 어떨까. 처음 시작되는 이름이 ‘마(麻)’에서 ‘마(馬)’로 바뀐 곳, 최남단이 좋겠다. 맞다, 그 섬이구나.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제주 들녘으로 바다로 나간다. 그래도 간이 맞지 않으면 섬 밖의 섬 마라도로 간다.(∼)산다는 것이 싱겁다, 간이 맞지 않는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마음의 장난이다.” 20년 동안 제주에서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김영갑씨의 ‘그섬에 내가 있었네’가 문득 생각난다. 또다름의 풍진세계가 다가온다. 올해는 아픈 역사를 되새길 일도 유난히 많다. 을사조약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40주년…. 굵직한 화두다. 어이해야 하나. 생각의 나침반을 우선 저 멀리 돌려 보자. 국토의 한 점밖에 안되는 낮은 그 곳으로. 마라도는 우리 땅의 막내이자 맨끝.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줄을 잘못 서서 홀대를 받아왔다. ●90년째 국토 시작의 불 밝힌 마라도 등대 마라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반도의 허리가 삭둑 잘린 상황에서, 마라도는 반도 시작의 불을 밝히는 곳이다. 그렇다, 마라도의 등대. 온갖 선박의 항로를 밝혀주는 생명의 길잡이가 있는 곳이다. 거친 파도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90년째 묵묵히 걸어왔다.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지금은 세계 각국의 해도(海圖)에 어김없이 표기될 정도로 창대해졌다. 마라도 등대는 을사조약 체결 10년 뒤인 1915년 3월 첫불을 밝혔다.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을 염두에 두고 주위 작은 섬들과 교신하기 위해 군사통신기지를 설치하면서 시작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난달 말.50여명을 태운 마라도행 유람선이 제주 남제주군 송악산 선착장을 막 출발했다. 겨울바다여서 그런지 파도가 꽤 높았다. 유람선 오른편 창가너머로 얼굴을 돌렸다. 바다와 맞닿은 송악산 절벽자락에 뻥 뚫린 동굴들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들어왔다. 유람선 안내원이 선내 방송을 통해 “보다시피 송악산 해안가에는 모두 25개의 인조동굴이 있다.”면서 “저 동굴은 일본군이 연합군 함대가 인근을 지날 때 어뢰공격이나 가미카제식 공격을 하기 위해 어선을 숨겨 놓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일제는 10m 간격으로 해안을 돌며 동굴을 파놨으며 공사에는 인근 주민들이 강제 동원됐다.”고 덧붙였다. 20여분후 저 멀리 마라도 등대가 보였다. 마라도의 전체 둘레는 4.2㎞,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0m. 그 위에 마라도 등대탑이 16m 올라가 있었다. 한폭의 풍경화 같았다. 외부인의 침입(?)에 대한 경고일까, 아니면 홀대받아온 막내의 ‘몽니’일까. 배가 마라도 해안가에 가까워질수록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잠시후 배는 가까스로 접안했고 관광객들은 ‘와’하는 탄성을 지르며 발을 내디뎠다.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풍진의 먼지를 털어내려는 듯 사방팔방에서 바람이 세차게 몸을 감았다. ●등대 대표로 보신각 ‘화합의 종’ 울려 등대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제주지방해양수산청 마라도항로표지관리소’라는 문패가 있었다. 좌우로 살폈다. 아무리 둘러봐도 발 아래에는 망망대해뿐. 뒤로는 한라산, 동으로 대마도와 일본열도 구나카이현, 서쪽으로는 중국 남쪽 상하이와 마주하는 북태평양이 펼쳐진다. 아, 이곳이 시작이구나. 누가 국토의 끝이라 했던가. “마라도 등대는 올해부터 ‘바다로, 세계로, 미래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됩니다. 최근 이곳에 해양문화공간을 완공했거든요. 이는 곧 세계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 해양문화의 시발점을 상징합니다.” 김석천(43) 항로표지관리소장. 등대근무 경력만 20여년째의 베테랑. 그는 섬(우도)에서 자라 고교를 졸업한 뒤 곧장 등대원의 길을 걸었다. 우도에 3년, 추자도에서 5년 등 주로 제주의 섬 등대에서 근무했다. 마라도에는 1년여 전에 부임했다. 등대원들은 옛날과 달리 공무원 신분으로 2년마다 순환근무를 하게 된다. 을유년(乙酉年) 새해를 맞는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우선 31일 서울 보신각 ‘화합의 종’ 제야 타종 인사 16명 가운데 한명으로 선정됐다. 개인적으로는 등대원 생활 20년 만에 처음이지만 전국 유인등대 43개소 가운데 대표로 발탁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159평 해양문화공간 최근 완공 또 있다. 다름아닌 타종식이 있던 날 마라도 등대시설에 새로운 해양문화 공간이 들어선 것. 그는 “마라도가 결코 국토의 끝이 아닌 광복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장소가 될 것”이라고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이 공간에는 대지 159평에다 100여평의 전시실 외에도 휴게공간 ▲사진촬영 코너 ▲거꾸로 보는 세계 지도 ▲광파의 시초인 장작불 모형의 조형물, 특히 마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꿈을 보관할 수 있는 타임캡슐까지 만들어 먼훗날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등대 탄생 90년 만에 동방의 새로운 불을 밝히는 국토사랑의 장소로 탈바꿈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 소장에 따르면 10초마다 한번씩 깜박이는 마라도 등대의 불빛은 최장 40㎞까지 뻗어 나간다. 등대에는 태양과 풍력 에너지로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전기가 끊겨도 불빛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는 것. 최근에는 위성항법 장치까지 설치돼 마라도 주위를 항해하는 모든 선박에 기상 상태 등을 실시간 제공해 주고 있어 한차원높은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새해 소망요? 마라도는 1년내내 아무리 많은 파도가 쳐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불이 한번도 꺼지지 않는 곳입니다.2004년의 괴롭고 어두웠던 풍랑은 이미 지나갔지요. 올해는 다들 힘든 일이 있어도 등대처럼 어두운 길에 불을 밝혀주는 그런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또 “관광객들 중에는 마라도를 어떤 낙도의 외딴섬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면서 “마라도를 국토사랑의 순례지로 아끼고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아울러 피력했다. 김 소장과 함께 일하는 등대원 고성봉(39)씨는 “이곳 30여가구의 주민들이 마라도에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희망을 안겨주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횟집을 운영하는 김춘광(34)씨는 “경제난의 여파가 마라도에도 불어닥쳤다.”면서 마라도를 떠나는 주민이 생겨나서는 안될 것이라고 의미있는 지적을 했다. 전교 학생수가 3명이 고작인 마라분교의 김혜지(4학년)양은 “요리사가 꿈”이라면서 “컴퓨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올해 소망을 얘기했다.3학년의 김영일군과 2학년의 김은영양은 열심히 공부해서 장차 선생님과 변호사가 되겠다며 활짝 웃었다. 마라도 김문기자 km@seoul.co.kr ■ 마라도 등대에 얽힌 사연 ‘군인집’으로 불렸던 마라도 등대는 한때 파괴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 마라도 주민들에 따르면 1948년 4·3사건 때 서북청년단들이 쳐들어와 등대를 부수려고 했다는 것. 그러나 당시 나봉필이라는 주민이 서북청년단들을 겨우 설득시켜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그후 나씨는 자진해서 등대지기가 됐고, 또 마을 주민들과 조를 짜서 밤마다 등대에 올라가 손으로 직접 불을 밝혔다고 한다. 나씨는 정부수립때까지 무료봉사로 등대를 관리했으며 정부수립 후에 밀가루와 구호물자 등으로 3년 동안의 보수를 한꺼번에 받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후 등대운영은 정부측으로 넘겨졌다. 한편 ‘마라’란 명칭은,1702년(조선 숙종 28년) 제작된 ‘탐라순력도’에 ‘麻羅島’로 표기돼 있다. 칡넝쿨이 우거진 섬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그 이후 언제부터인가 ‘馬羅島’로 표기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어부들 사이에는 남쪽에서 부는 바람인 ‘마파람’에서 유래됐다는 해석도 있다.
  • [사설] 친일청산 이번엔 확실히 하자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때늦기는 했지만, 우리사회가 해묵은 과제인 친일 청산을 완수할 법적·사회적 기준을 세우고 실행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중차대하다. 여야가 합의해 법을 마련함으로써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에 우리는 친일 행적의 실상을 밝히고 그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몇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에 친일 문제를 완전히 털고가야 한다는 점이다. 해가 바뀌면 2005년, 곧 광복 60주년에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두 세대가 지나도록 친일 문제를 청산하지 못한 채 사회 내부에서 고질병으로 앓아 왔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더이상 시빗거리가 남지 않게끔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 그 결과를 역사의 장(場)으로 넘겨야 한다. 우리가 친일 문제를 청산하려는 뜻이, 이제 몇명 남지도 않은 친일 당사자를 응징하거나 친일파 후손을 욕보이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친일 행적 조사는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냉정하고 엄격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대상인물 또는 그 후손이 현 사회에 영향력 있는 인사라고 눈감아 주어서도 안 되지만 이를 공격의 빌미로 삼아서도 아니된다. 정치·개인적 이유로 친일 문제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개입한다면 가차 없는 국민의 지탄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친일파의 행적이 드러나면 당사자에 대해 평가는 당연히 새로 내려질 것이다. 당사자와 그 후손들은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 새 박물관이전 보신각종 서울신문이 구해

    보물2호 ‘보신각종’이 지난 21일 용산 새 국립박물관으로 옮겨가면서 현재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 걸려 있는 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높이 372㎝, 너비 273㎝, 무게 24t으로 그 크기와 무게가 성덕대왕 신종을 능가하는 단일 문화재로는 최대규모인 보신각종은 조선 세조14년(1468년)에 만들어져 정릉사와 원각사를 거쳐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보관됐다. 고종 32년(1895년)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면서부터 지금의 이름이 붙었다. 해방 이후 새해 첫날,3·1절, 광복절에 각각 열리던 타종행사에 쓰이던 종의 표면에 균열이 발생하자 1984년 1월15일자 서울신문은 ‘보신각종이 수명을 다했다’는 내용의 특종기사를 보도했다. 그 결과 1984년 1월20일 윤보선 전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보신각 새종 중주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서울신문사안에 ‘보신각종 중주사무국’을 꾸렸다. 이후 거국적인 모금운동이 펼쳐진 끝에 모두 8억원의 성금을 거둬 지금의 새 종을 만들었다. 디자인 및 조각은 서울대 미대 강찬규 교수가 맡았고 서울대 공대 생산기술연구소에서 제작했다.1985년 8월15일 보신각에 걸렸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보신각 신종’인 셈이다. 원래의 종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구한말 항일구국의 선봉 대한매일신보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서울신문이 보물2호를 지켜낸 것이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서울광장] 자주의 조건/이기동 논설위원

    [서울광장] 자주의 조건/이기동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최근 발언은 미국에 대한, 그리고 한·미 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이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양국관계는 불평등관계이고, 따라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를 바로잡으려는 자신의 노력을 보고 놀라는 것도 과거의 낡은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했다. 홍석현씨의 주미대사 내정 또한 대미(對美)저자세 인식에 사로잡히지 않은 새로운 대화채널 구축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일리있는 말이다. 북한핵 문제는 결국 북·미가 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미국이 변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인식 또한 일리있다. 하지만 우리가 한·미관계에 매달려온 사이, 한반도 주변에서는 여러 께름칙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을사보호조약 100년, 광복 60년, 한·일수교 40년…. 새해는 여러 모로 크게 꺾어지는 해다. 숫자상 구분에 굳이 별스러운 의미부여를 하지 않더라도, 주변의 움직임을 소홀히해서는 안 된다. 집권당의 치졸한 부정선거로 패했던 야당후보가 재선거에서 여당후보를 물리친 우크라이나대선의 역전 파노라마는 감동적이다. 하지만 우리를 진짜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감동의 드라마 뒤에 모습을 숨긴 구체제의 망령이다. 이번 선거는 십수년만에 러시아와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무대로 신냉전식 대리전을 치른 격이 됐다. 제국주의, 민주, 국유화 등 살벌한 냉전식 개념들이 양진영의 설전과 시위대의 구호속에 등장했다. 막대한 자금으로 야당을 지원한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입을 추진할 태세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미국의 포위전략을 분쇄하기 위한 법적, 정치적 대응을 다할 것임을 천명했다.9·11테러 이후 반테러 공동전선을 구축했던 양진영의 밀월은 어느덧 옛이야기가 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미국은 러시아의 구체제 복귀를 용납 않겠다는 결의다. 이런 태세면 두나라가 새해 6자회담에 함께 앉은들 북한핵 해법에서 전처럼 한목소리를 낸다는 보장이 없다. 러시아가 북한의 핵개발을 미국의 팽창주의 저지에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고, 북한이 새 변화의 틈새를 이용하려 들지도 모른다.6자회담에 관한 한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한국과 미·일·중·러 5개국이 협력하는 5+1의 구도를 추구해왔다. 미국과 러시아의 불화로 이 구도는 이제 장담하기 힘들게 됐다. 더 큰 변수는 중국이다. 지난 10여년간 평균 10%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룩해온 중국은 이제, 그들의 주 경쟁국이 미국임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19세기말 서세동점기때 식민시대의 아픔을 겪은 중국은 체질적으로 부국강병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다. 미국내에 고조되는 중국위협론을 의식해 화평굴기(和平起)의 평화론을 내세우나, 실상은 발톱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전략이다. 중국이 패권 저지를 앞세워 미국과 충돌할 경우, 북한핵에 두나라가 전처럼 한목소리를 낸다는 보장은 없다. 북·일관계도 무시 못할 변수다. 가짜 유골문제로 일본의 대북 감정은 지금 최악이다. 아직 경제제재에 신중하겠다는 고이즈미 총리지만, 여론에 계속 맞서기는 힘들 것이다. 더구나 아시아에서 미국의 대리인이 되겠다는 일본이 중·러와 충돌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LA방문과 유럽순방을 통해, 노 대통령은 북핵문제에서 우리의 주도적 역할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예외없이 미국이었다. 친미를 경계하겠다는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중·일·러, 유럽을 당연히 우리와 한목소리를 내는 우군으로 간주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없다. 그들은 그들나름의 국익 계산법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자주외교에 반대할 국민이 누가 있을까마는, 심정적(emotional)자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게 길지 않은 우리 근현대사의 교훈이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광복 60주년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장상씨 유력

    내년 광복 60주년을 맞아 국무총리실에 출범될 ‘2005 광복 60주년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총리실 관계자는 “내년 초 출범될 광복 60주년 추진위원회는 이해찬 국무총리와 민간 인사가 공동위원장을 맡게 될 것”이라며 “민간 위원장으로 장상 전 총장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장 전 총장은 지난 2002년 국민의 정부 시절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무총리에 지명됐으나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위장전입 및 투기 의혹 등으로 인준이 부결됐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안중근의사 유해 남북공동발굴 추진”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 중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2일 “해방 60주년을 맞는 내년에 남북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을 공동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날 오후 베이징특파원 간담회에서 “남북 당국간 회담이 재개되면 안 의사 유해 발굴 문제를 즉각 협의할 것이며 중국측도 원칙적인 협조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안 의사의 유해는 랴오닝(遼寧)성 뤼순(麗順) 감옥 뒤편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지가 확인됐다.”며 “70년대에는 북측에서,92년 한·중 수교 이후 국내 학계에서 안 의사 유골 발굴에 관심을 가져왔고 이제는 광복 60주년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국측은 안 의사의 유해 발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 [열린세상]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北의 오해/박영호 통일연구원 통일안보 선임연구위원

    북한에서 2005년은 대대적인 행사가 연속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조선노동당 창건 60돌, 조국광복 60돌,‘선군정치’ 10돌,‘3대혁명 붉은기 쟁취운동’ 개시 30돌,6·15 공동선언 5돌 등 이른바 꺾어지는 해이다. 앞의 두 행사가 김일성과 연결되는 행사라면, 뒤의 세 행사는 김정일의 ‘치적’과 관련된 행사이다. 지금 북한에서는 내년 2월초 평양에서 개최할 ‘선군혁명총진군대회’의 준비에 여념이 없다. 북한은 내년에 내부적으로 ‘선군정치’의 사상과 노선을 더욱 강조하면서, 남한에 대해서는 ‘민족공조’의 공세를 드높일 것이다. ‘민족공조’가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통한 21세기형 선진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기여하면, 그처럼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민족공조’ 공세 이면에는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력사적인 6·15 북남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조선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대하여’(노동당출판사,2003.9)라는 긴 제목의 ‘간부 및 군중 강연자료’에서 북한은 “남한에서 ‘친북련공세력’이 ‘반공보수세력’에 비해 역량상 우세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력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한국 사회에서 과거에 “그나마 우리(북한)의 사상에 공감하고 우리를 따르고 동조했던 세력들이 지하의 소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로 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남한 사회에서의 “모든 변화들이 위대한 장군님(김정일)께서 6·15 북남공동선언을 마련하시어 남조선에서 진보세력의 활동공간을 넓혀 주시고 극소수 반공보수분자들을 철저히 고립시키신 결과”라고 선전하고 있다. 이밖에도 한국 사회에서 북한식 표현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그러한 변화의 예로 지적하고 있다. 자료의 용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강연 자료는 북한 노동당이 당 간부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상 교육에 사용하기 위해 발간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지도자를 ‘칭송’하고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려는 목적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의 남한 정세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한은 1972년 7·4 공동성명에서 시작하여 1992년 2월 남북관계를 포괄하는 ‘남북기본합의서’의 발효를 거쳐,6·15 남북공동선언을 만들어냈다. 동 선언은 남북한이 대립·갈등의 관계에서 벗어나 화해·협력의 관계로 나가자는 약속이었다.4년여가 지난 지금 개성공단에서 첫 상품이 출하되었다. 그처럼 남북관계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 발전에 진정성을 부여하려면, 이제는 남북한이 서로의 사정을 바르게 알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각각의 내부적 차원에서도 남북한의 주민들이 서로에 대한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는 1990년을 전후하여 국내정치의 민주화와 더불어 ‘북한바로알기’ 운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단편적이고 제한된 지식으로 북한을 보기보다는,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이후 한국 사회에서의 민주주의의 심화는 학문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북한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북한에 관한 정보와 지식의 홍수라고 할 만큼, 한국 국민들은 각종 정보 및 지식 매체를 통하여 북한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한국 사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북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도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친북’적 시각도,‘반북’적 시각도, 그리고 제3의 시각도 있을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북한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반영하고 있음을 이해할 때만이, 비로소 북한은 이 시대에 맞는 그들 체제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통일안보 선임연구위원
  • [화두로 본 2004 정치] 수도이전 위헌에 “관습헌법이 뭐야”

    [화두로 본 2004 정치] 수도이전 위헌에 “관습헌법이 뭐야”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4·15총선 물갈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신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 국가보안법 폐지안 개혁입법 처리 논란….2004년 정국은 충격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들로 점철됐다. 올해만큼 정치가 ‘청룡열차’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한 적도 없었다는 평가가 많다. 말 그대로 넘치는 말잔치 속에 올해 정국의 다사다난했던 변화를 조망해보기 위해 화두를 주제로 한 정치 캘린더를 꾸며본다. ●1월, 오세훈 의원의 불출마 선언과 물갈이 열풍 여야 중진 의원들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줄줄이 구속됐다.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자 한나라당의 초선 오세훈 의원은 6일 “정치가 아니라 전쟁을 하듯 늘 갈등만 했던 게 부끄럽다.”며 4·15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는 정치권 ‘물갈이 열풍’으로 번져 자진 사퇴 의원들이 잇따랐다. 그는 ‘돈 안드는 정치’를 위한 정치자금법, 선거법 등을 만드는 데 일조해 이들 법안은 ‘오세훈법’으로 통했다. ●2월,與 ‘총선 올인’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과 유인태 정무수석은 13일 “총선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공직자 사퇴시한 15일을 이틀 앞둔 때였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총선 출마 압력을 견디다 못해 12일 사퇴해버렸다. 참여정부는 총선용으로 징발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김진표 경제부총리, 이영탁 국무조정실장, 한명숙 환경부 장관, 변재일 정통부 차관 등을 총선 출마에 합류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어떤 일이 생길지….”라는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3월,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노 대통령은 2월24일 방송클럽 토론회에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압도적 지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3월4일 “선거법 9조의 공무원 선거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밝혔고, 의견서를 청와대로 보냈다. 이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9일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다. 노 대통령은 11일 사과를 거부하고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 뜻에 따라 정치적 결단을 하겠다.”며 재신임과 연계시켰다. 야당은 12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고, 이날 오후 5시15분 대통령의 권한은 공식 정지됐다. 한나라당은 23일 여의도 천막당사 시대를 열었다. ●4월, 정동영 의장 ‘노인폄하 발언’ 파문 열린우리당 정 의장의 3월26일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다. 집에서 쉬셔도 된다.”는 발언이 인터넷에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탄핵 ‘후폭풍’으로 총선에서 299석 중 3분의2석을 싹쓸이 할 것이라는 전망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정 의장은 12일 선대위원장·비례대표 후보에서 사퇴했다. 열린우리당은 초선 108명(108번뇌)을 포함해 151석,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의 선전 속에 121석을 차지했다. 민주노동당은 10석으로 첫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5월, 탄핵소추안 기각 헌법재판소는 14일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 아니다.”고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윤영철 헌재 소장은 최종 기각 주문을 내리기 전에 “대통령의 권한과 정치적 권위는 헌법에 부여받은 것이며, 헌법을 경시하는 대통령은 스스로 권한과 권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이라며 ‘충고’의 메시지도 전달했다. 고건 국무총리는 대통령 직무대행직을 그만두게 됐고,24일 사표를 제출했다. ●6월, 책임총리제 도입 노 대통령은 8일 5선 중진인 열린우리당 이해찬 의원을 새 총리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앞서 경남지사 출신의 김혁규 의원을 총리후보로 내정했으나, 당 안팎의 반발로 관철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의 정치특보였던 문희상 의원은 노심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다가 내부 반발이 일자 “나는 총독이 아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는 14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관련해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고 발언했다가 파문을 일으켰고,30일 정 전 의장과 함께 보건복지부 및 통일부 장관에 각각 임명됐다. ●7월, 박근혜 대표 ‘국가 정체성 전면전’ 한나라당 박 대표는 19일 전당대회에서 재선출됐고,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돌아가신 분과 싸우자는 것이냐.”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열린우리당의 ‘친일진상규명법’에 반발했다. 박 대표는 21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간첩과 빨치산을 민주화 인사로 판정했는데 대통령이 경고 한번 하지 않았다.”면서 “정부가 국가 정체성을 흔드는 상황이 계속되면 야당이 전면전을 선포해야 할 시기가 올 것으로 본다.”고 강경 대응을 선언했다. 강금실 법무장관은 28일 사퇴하면서 “너무 즐거워 죄송하다.”는 어록을 남겼다. ●8월,與 지도부 친일행적 논란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논란이 돼 온 부친의 친일 행적이 사실로 확인되자 19일 의장직을 사퇴했다. 열리우리당에선 과도체제 주장 등이 제기됐으나 당헌 당규에 따라 이부영 의장이 승계했다. 친일과 관련한 시련은 광복절이 끼어 있는 8월 계속 열린우리당 지도부을 괴롭혔다. 친일진상규명법을 추진하던 김희선 의원은 ‘할아버지 김학규 장군’ 혈통 논란에 시달렸다. 이미경 상임중앙위원도 아버지가 일제시기에 일본에서 헌병을 지낸 전력이 드러나 곤혹을 치렀다. ●9월 노 대통령,‘국보법 박물관으로 보내야’ 노 대통령은 5일 MBC ‘시사매거진2580’과의 대담프로에서 “국가보안법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고 지금은 쓸 수도 없는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이라며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발언은 국보법과 관련해 열린우리당에서 사분오열되고 있던 의견을 ‘폐지’로 확고하게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고, 한나라당 박 대표는 “법치국가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10월, 관습헌법으로 수도이전 위헌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등 4대 입법을 당론을 확정짓고 연내 관철을 선언했다. 헌재는 21일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에 대해 재판관 8대 1로 ‘관습헌법론’을 토대로 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지난 7월12일 서울시 의원 50여명과 공무원 대학생 등 169명의 청구인단이 헌법소원을 했을 당시 언론들도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사건이 위헌판결이 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처음 들어보는 이론”이라고 불만을 표시했고, 한나라당은 환호했다. ●11월, 이 총리 ‘차떼기 당’발언 논란 이 총리는 10월28일 정치분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한나라당은 지하실서 차떼기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 받은 당”이라고 발언한 것을 놓고 한나라당이 반발하면서 국회 파행으로 이어졌다. 이 총리가 한나라당 폄하 발언과 함께 “조선·동아일보는 역사의 반역자”라고 했다가 설화를 입었다. 한나라당은 이 총리가 사과할 것을 요구하며, 대정부 질의를 거부해 국회는 2주일이 넘도록 공전됐다. 이 총리는 9일 ‘사의’라는 이름으로 사과했다. ●12월, 이철우 의원 北 노동당원 논란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8일 국회 본회의 5분 발언에서 “열린우리당 포천·연천의 이철우 의원이 지난 92년 노동당원으로 현지 입당하고 당원번호까지 받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열린우리당은 ‘수구 냉전세력의 백색테러’로 규정하며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기로 하는 등 강력히 대응했다. 주 의원은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다.”는 주장도 곁들였다가 오히려 ‘색깔론’,‘정형근 의원 고문 논란’ 등 역풍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문소영 박지연기자 symun@seoul.co.kr
  • “운동권 1세대·노동운동의 원조”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운동권 1세대·노동운동의 원조”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마치 광복 직후 진보와 보수가 격돌하듯 하는 것 같아요. 그럴수록 중도가 많이 생겨나야 합니다. 한쪽으로 쏠리면 못씁니다.” ‘운동권 1세대’ ‘노동운동의 원조’로 불리는 새얼문화재단 지용택(池龍澤·67) 이사장의 고언이다. ‘진보’ 하나로 격랑의 세월의 헤쳐나온 그지만 어느새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용(中庸)의 가치를 강조하는 중도론을 펴는 논객이 되어 있었다. 마음대로 하여도 규범에 어긋남이 없다는 ‘종심(從心·70세)’의 나이에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좌우를 떠나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지향하다 보니 ‘좌’에서는 ‘우’라 하고 ‘우’에서는 ‘좌’라 합디다.” ●“시민 지지없는 노동운동은 앞날 없어” 현재의 노동운동에 대해 “시민들의 지지가 없는 노동운동은 앞날이 없다.”면서 “상황이 달라진 만큼 자제하면서 조화를 이뤄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삶 자체가 우리나라 사회·노동운동과 궤를 같이해왔기에 남다른 무게가 느껴진다. 그는 일찍이 인천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59년 또래들을 규합해 ‘창사회’라는 사회단체를 만들 정도로 사회의식이 강했다. 이를 토대로 인천지역 4·19 시위를 주도했으며 ‘이권분배분식고발청년대회’와 ‘혁신보수경제정책토론회’를 여는 등 진보운동을 전개해 왔다. 중앙에서는 한화갑·조홍래 등과 함께 전국학생총연맹의 주요멤버로 활약했다. 이 시절 그의 우상은 죽산 조봉암이었다. 동향(인천)인 동시에 지향점이 비슷해 죽산의 재판에는 한번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이러한 행적으로 당국의 미움을 받아 경희대 법대 2학년 재학중이던 1961년 5·16 혁명검찰청에 잡혀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이때 서대문형무소는 좌익과 우익 거물들의 집합소였다.“민주당 정권에 의해 자유당 세력이, 군사정권에 의해 민주당 혁신세력이 거세되었기 때문에 형무소에는 유명인물들이 많았지요.” 당시 수형생활은 오히려 사회변혁적 이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1년 뒤 풀려난 그는 4·19세대 상당수가 국회의원 비서 등 정치권을 선택한 것과는 달리 유일하게 노동운동에 몸담았다.“당시에는 노동운동이라는 말조차 어색하던 시절이었지만 출세보다는 없는 자를 대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63년 전국자동차노조 경기지부 교육선전부장으로 들어간 그는 사무국장을 거쳐 지부장(68년)에 올랐다.78년에는 한국노총 사무총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요즘 노동권에서 유행하는 준법투쟁은 그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교육선전부장 시절 인천 월미도∼서울 용산간을 운행하던 운수회사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운전사들을 탄압하자 제한속도를 엄격히 지키고 학교 앞마다 정지하는 준법운행을 지시했다. 때문에 운행시간이 2배로 늘어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자 운수회사는 손을 들었다. 이 일로 지씨는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지만 담당검사의 배려로 비교적 가벼운 벌금 5000원에 처해졌다. 하지만 “준법투쟁이 처벌받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검사와 판사의 분노를 사 법정구속되는 신세가 됐다. 이때 얻은 별명이 ‘노동조합 사관생’이다. ●첫 준법투쟁으로 ‘노조사관생’ 별명 얻어 퇴직금 투쟁도 주요 이슈였다. 당시 법으로도 운전사들에게 퇴직금을 주도록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받는 사람은 없었다. 퇴직금을 받으면 운수업자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운수업자들의 힘이 셌던 시절이었다. 지씨는 이러한 폐습을 고치기 위해 한 운전사를 꼬드겨(?) 퇴직금을 받도록 했고, 당연히 그가 재취업이 되지 않자 운수회사 전무를 찾아가 사정을 통해 취직시켰다. 지씨는 운수업자들에게 껄끄러운 존재였지만 ‘몹쓸 사람’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운수업자에 대한 관의 횡포에는 대신 나서 싸워주고, 무엇보다 ‘장난을 안 치는’ 순수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지씨는 “요즘 일부 노조 지도자들이 사용자와의 뒷거래를 통해 노동귀족화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간적 면모는 그의 ‘자산’이 돼 80년 8월 신군부에 의해 전국자동차노조가 해체됐을 때 노조에서 일하던 36명 모두를 운수회사 등에 취업시켰다. ●“일부 노조지도부 귀족화 안타까워” 하지만 자신은 실직자가 돼 3년간 쉬다가 83년 ‘새얼문화재단’을 만들어 문화운동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지 이사장은 이에 대해 “반대만 하다가 긍정도 할 줄 아는 자리를 찾은 셈”이라며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재단은 회원들이 계좌당 5000원씩 내는 후원회비만으로 운영되는데 처음 70여명에 불과하던 회원이 지금은 9000여명으로 늘어났다. 기금은 장학사업, 역사기행, 학술심포지엄, 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등 다양한 문화활동에 쓰여진다.86년 4월부터는 각계 명사들을 매달 한명씩 초빙하여 강연을 갖고 토론도 하는 ‘새얼아침대화’를 시작했다. 학술·예술·종교·법률·경제 등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지만 정치인은 배제한다. 처음에는 강연자를 모셔오기에 급급했지만 내실있는 토론회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오히려 초빙되는 것을 반길 정도가 됐다. 지 이사장은 또 93년 12월 시사 계간지인 ‘황해문화’를 발간, 통권 45호를 맞았다. 이 잡지는 지역지이지만 지역에만 갇혀 있지 않다.‘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모토에 걸맞게 사회 현안에 대해 다양하고도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90년대 후반 이후 내로라하던 중앙의 계간지가 사라졌거나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실정에서도 탄탄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지역에서 신망이 높은 지 이사장은 인천시장 선거 때마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단골로 하마평에 오르내린다.95년과 98년 선거에서는 여·야에서 적극적인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한번도 ‘정치는 안 한다.’는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정치를 할 요량이었으면 4·19 이후에 시작했다.”면서 “노동·문화운동은 노력한 만큼 성과가 있지만 정치는 그렇지 않아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가진 것도, 특별한 지위도 없는 그가 지역에서 ‘큰 스승’으로 존경받는 것은 이같은 일관된 삶 때문이리라.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4대입법’ 해법없나] ③ 유기준의원·강창일의원 문답

    [‘4대입법’ 해법없나] ③ 유기준의원·강창일의원 문답

    ■A 유기준 의원 ←Q 강창일 의원 한나라당은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할 의지가 있나. 대체토론과 공청회를 거쳤고, 법안심사 소위까지 통과했는데 언제까지 심의를 하자는 것인가. -과거 청산에 반대한 적 없다. 조사는 하되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돼야 하고, 인권 침해 등 부당한 피해가 없어야 하며, 국민 갈등을 부추기지 않아야 한다. 한나라당은 과거사기본법이 민족 정기를 확립하고, 국가의 도덕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법임을 부정하는 것인가. -열린우리당은 산적한 민생문제와 미래의 먹고 사는 문제를 제쳐두고 왜 과거에만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과거사법을 통해 한나라당이 과거에 뿌리를 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덧칠해 반한나라당 여론을 조성하고, 특정 정치인을 모해하기 위한 것 아닌가. 한나라당의 ‘현대사 조사연구를 위한 기본법안’은 행정자치위원회가 아닌 교육위에 회부됐는데 코미디 아닌가. -과거청산법안을 행자위에서만 다루고 처리하라는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떤 위원회에서든 논의될 수 있다. 절차상의 문제일 뿐이다. 과거 청산 대상 또는 범위에 민주화운동을 가장한 친북 이적활동을 포함하려는 저의는 무엇인가. -한때 김일성 부자의 주체사상을 떠받들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일부는 사상 전향도 없이 권력의 핵심에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과거사법을 통해 과거 정부를 가해자로 몰아 국가 해체를 기도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위원은 당연히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 아닌가. 학술원장이 임명해야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는 논거는 무엇인가. -열린우리당안에 따르면 진실과화해위원회는 위원장 1인과 상임위원 4인을 포함한 13인의 위원을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토록 했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선임된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게 돼 왜곡되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조사위원을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회의 조사권 강화는 진실 규명에 필수불가결한데 동행명령 제도를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논거가 무엇인가. -친일진상규명법에서 법관이 아닌 위원장이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는 것은 헌법 제12조 제3항의 영장주의에 명백히 위배되는 위헌이다. 여당도 위헌성을 인정하고 최근 제출한 과거사법(진실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안)제27조에는 위원회가 관할 지방검찰청에 압수·수색·검증 영장 청구를 의뢰할 수 있도록 수정했다. 국가 예산을 지원하고, 위원장을 장관급으로 하며 국무총리에게 국무회의 의안 제출을 건의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거부해야 하는가. -진실과화해위원회 구성·운영과 관련해 추정 예산이 291억원이고 ‘친노(親盧)’ 그룹을 위한 새로운 고위직 일자리 130개가 생긴다. 조사 대상을 넓히고 보상까지 하면 수천억원이 더 들 것이다. 경제도 어려운데 경제 회생에 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A 강창일 의원 ←Q 유기준 의원 여당이 과거사 문제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국론 분열을 부추기고 있는 것 아닌가. -민생과 개혁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균형 있게 둘 다 추진해야 한다. 민생을 팽개치고 과거사 진실규명을 우선하자는 것이 아니다. 반민족·반민주·반인권으로 얼룩진 과거사를 정리해야만 진실의 바탕 위에서 화해와 국론통합이 가능하다. 과거사 정리를 안 하면 도리어 국론이 분열된다. 과거사법은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국정 우선순위를 조정하도록 건의할 생각은. -열린우리당은 1인 독재정당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1인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인지 되묻고 싶다. 과거청산관련법은 7000만 민족이 부여하는 역사적 과제다. 한나라당에 과거에 뿌리를 둔 죄과가 많은 정당으로 이미지를 덧칠하고,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야당 지도자를 흠집내려는 것 아닌가. -광복 이후 60년 묵은 역사적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이다. 한나라당이 반민족 반민주 정당이 아닐진대 진실 규명과 화해에 앞장서 동참하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반민족 반민주 행위 진실을 규명하면 한나라당 대권후보가 왜 흠집이 난다는 얘기인지 이해가 안 되며, 대권후보 1인 때문에 7000만 민족이 피해를 볼 수는 없다. 한나라당은 과거사 조사에 반대하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의 두개의 법안은 위헌, 위법적인 조항이 다수 포함돼 있다. 위법 소지가 있는 법안이라도 단독처리해서 조사해야 된다는 입장인가. -이미 기자회견을 통해 한나라당의 주장이 거짓과 왜곡으로 얼룩진 억지임을 밝힌 바 있다. 대국민 언론전 대신에 위헌 위법 소지를 배제하기 위해서라도 토론에 참여할 것을 정중히 요청한 바 있다. 역사는 특정 권력의 입맛대로 해석하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역사학자에 의해 조사 연구를 통해 해석돼야 한다. 특정 권력하에 법으로 권력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위원회를 만들고 정치적 의도에 의한 역사 조사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여당의 법안은 모두 대통령소속의 위원회와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들에 의해 조사가 진행되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반면 한나라당 법안은 위원회를 학술원 산하에 두고, 위원을 학술원장이 임명하게 하여 역사의 평가를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할 수 있게 하였다. 야당안에 따라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어떤가. -역사 평가나 연구는 당연히 학자 또는 연구자의 몫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진실규명과 화해, 즉 과거 청산이다. 과거 청산은 국가의 이름으로 국가의 권위를 가지고 진실규명을 제대로 해야만 한다. 학자들의 연구나 평가에 맡기는 것은 진실 또는 진상 규명이 된 다음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일진상규명위원회가 대통령 소속인 것은 대통령이 국가의 원수로서 국가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학술·종교플러스] ‘조선왕실역사박물관’ 새이름 공모

    문화재청은 광복 60돌을 맞아 경복궁내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에 내년 여름 개관하는 ‘조선왕실역사박물관’(가칭)의 명칭을 공모한다. 새 궁중박물관은 경복궁과 연계한 문화공간으로서 조선시대의 궁중문화 전체를 알리는 역사교육 및 문화관광 명소로 조성된다. 이달 말까지 문화재청 홈페이지(www.cha.go.kr) 또는 우편(서울시 중구 5-1 궁중유물전시관 명칭 공모담당자)을 통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당선작(1명) 및 우수상(3명), 가작(5명)으로 뽑힌 사람에겐 각각 50만∼2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과 새 궁중박물관 가족평생관람권이 주어진다.
  • 총련계 학생 연대 최종합격

    지난 10월 연세대의 2005학년도 수시 2학기 재외국민과 외국인 전형에 합격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계 학생 황모(19)군이 최종 합격했다. 이 대학 백윤수 입학관리처장은 15일 “통일부의 북한주민 접촉승인을 받아 16일 발표하는 수시 2학기 공학계열 합격자 명단에 황군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황군 부모는 광복 이후 일본이나 한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고 무국적 상태로 남았고, 황군은 입학원서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적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인사]

    ■ 국무조정실 ◇부이사관 파견 △2005년 광복60년 추진기획단 기획국장 洪允植 △국가평가인프라구축추진단 기획총괄팀장 李在洪 ◇과장급 전보 △기획수석조정관실 총괄심의관실 姜泰玉 △심사평가조정관실 심사평가1심의관실 鄭基東 △정책상황실 정책상황심의관실 沈和石 ■ 농림부 ◇국장급 파견△한국농촌경제연구원 파견 朴炯奎 ■ 식품의약품안전청 △의약품평가부 기관계용의약품과장 徐京源 ■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이사 승진△기술사업단장 金永儀 ■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吳世正 ■ 한성대 △총장 직무대행 李愚寬 ■ 예신퍼슨스 ◇부사장 △경영지원본부장 김치남△패션사업〃 김창환△유통사업〃 이상범△상무이사 유원근 ■ LG화학 ◇승진 △상무 曺甲鎬 金在律 郭炳求 許衍秦 安泰聲 朴炫信 徐永朱 金東垠 金洪基 蔣在浩 朴承培 洪錫承 羅殷澤 李址承 睦更洙△연구위원(상무급) 閔庚楫 安詢昊△LG석유화학 상무 趙良權△LG다우폴리카보네이트 상무 李意俊△LGMMA 상무 林南燮 ■ LG CNS ◇상무 전보 △전자사업부장 辛文善◇상무 승진 李在星 金永澈 李明寬 白尙曄 林壽卿 尹完植 鄭泰琇 ■ LG상사 ◇상무 승진 安局模 吉昌培 金守彦 曺丙祥 具本辰 金守漢 趙元俊 ■ 국민은행 △안전관리팀장 鄭判錫 ■ 키움닷컴 (채권금융팀)△부장 許永弘
  • 배우 문근영 외할아버지 장기수로 밝혀져

    배우 문근영 외할아버지 장기수로 밝혀져

    영화 ‘어린신부’에 출연한 배우 문근영(17)의 외할아버지가 장기수 출신인 류낙진(77)씨로 밝혀졌다. 일요신문은 14일 ‘어린신부 문근영 슬픈 가족사’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류씨는 1971년 ‘통혁당 재건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류씨는 1990년 전향서를 제출하고 19년만에 가석방됐지만 1994년 ‘구국전위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수감됐다. 류씨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뒤 광주지역 재야 인사들이 ‘류낙진 선생 석방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석방 운동을 벌인 결과 1999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당시 석방추진위원회는 ‘양심수 가운데 최고령이고 5·18 희생자 유가족인 점을 참작해달라.’고 요구했다. 류씨의 동생 영선(당시 28세)씨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항쟁 때 사망했다. 현재 문근영의 부모 대신 촬영장을 함께 다니면서 사실상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는 외할머니 신애덕(73)씨의 사연도 알려졌다. 신씨는 전남 보성 예당중학교 교사였던 류씨가 수감되자 시장행상과 보험 외판원으로 2명의 시동생과 4남매를 교육시켰다. 이에 대해 문근영의 소속기획사인 나무액터스는 15일 “근영이 본인의 일도 아니고 가슴 아픈 가족사라 자세히 물어본 적은 없다.”면서 “근영이의 외할머니나 어머니께 고통스러운 일이라 숨길 이유도 없지만 굳이 나서서 알릴 필요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근영의 가족사는 외할머니 신씨가 매스컴에 등장하면서 광주의 재야인사 사이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문근영은 학생복 모델료 3억원을 전액 소아암 환자돕기에 기부하는 등 배우 수입금의 대부분을 어려운 이웃돕기에 쓰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소록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소록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한센인(한센병 환자와 병력자) 700여명이 모여 사는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1리 소록도. 일본 변호사 65명과 한국 변호사 37명이 일제강점기 때 강제 수용돼 노역에 시달린 이곳 할아버지, 할머니 117명을 대리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1년 특별법을 제정, 강제 수용됐던 일본 한센인에게 1인당 800만∼1400만엔씩 보상했지만, 소록도 주민은 내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한·일 변호사들은 지난 8월 일본 정부의 결정에 불복, 보상청구소송을 냈다.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재판과정을 보고하러 가는 변호사들을 동행, 취재했다. ■ 日정부상대 소송 소록도 르포 #1. 할머니와 손녀의 상봉 지난 11일 오후 2시. 전남 고흥군 소록도 중앙리 강당을 가득 메운 할아버지, 할머니 50여명이 한국과 일본의 변호사들을 반갑게 맞았다. 한센병을 앓았던 노인들은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를 타거나 비스듬하게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일본에서 온 여변호사들이 손가락이 뭉개진 할머니 손을 다정히 잡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서툰 한국어로 안부를 묻는다. 일그러진 얼굴로 눈을 꼭 감은 할아버지를 포옹하기도 했다. 미소를 머금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랜만에 손녀딸이라도 만난 듯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이날 일본 변호사 5명과 한국 변호사 15명이 보고대회에 참석했다.10차례가 넘게 이곳을 방문한 사람도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 박영립 인권이사가 “첫 재판(10월25일) 때 장기진(84), 강석우(80) 할아버지가 증언했는데 17일 2차 재판 때 김일임(71·가명) 할머니가 증인으로 나선다.”고 말하자 노인들은 투박한 손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2. 피와 눈물로 얼룩진 ‘소록도’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6시간을 달리면 전남 고흥군 녹동항에 도착한다.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는 소록도(小鹿島)는 선착장에서 돌을 던져도 닿을 듯 가까이 보인다. 선착장과 소록도 사이 거리는 겨우 600m. 섬은 가운데 자리잡은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관광객이 북적이는 해수욕장, 왼쪽은 출입이 제한된 한센인 거주지역으로 나뉜다. 김명호(55) 자치회장은 “일제강점기 때 6000여명이 거주하던 섬에는 이제 ‘한센인’ 702명만이 남았다. 평균 연령은 78세이고 한해 노환으로 사망하는 분만 50∼6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1936년에 착공돼 3년4개월만에 완공된 중앙공원은 한센인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다. 한센인 6만여명이 강제 동원돼 산림을 베어내고,6000여평의 대지를 조성했다. 암석은 완도 등에서 채취, 운반해 왔다. 나무는 일본과 타이완에서 들여왔다. 장기진 할아버지는 “몇 척의 배를 연결해 뭍에서 섬까지 다리를 만들었어. 우리는 목도라는 장대에 길이 2∼3m, 폭 1∼1.5m짜리 돌 수십개를 매달아 옮겼지. 언덕 위를 오르다 쓰러지면 돌 위에 앉은 일본인이 몽둥이로 마구 때렸어.”라고 회상했다. 중앙공원 한쪽에 자리잡은 붉은 벽돌집도 ‘고통의 역사’를 안고 있다. 시체해부실, 감금실, 단종대(斷種臺·남성불임수술대)…. 김 자치회장은 “일제 때 한센인은 다섯 차례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가족과 생이별하며 호적에서 파내져 한번, 자녀를 낳지 못하도록 단종수술 받으며 또 한번, 목숨이 끊어져 한번, 그 시체를 해부해 또다시 한번, 불에 태워 화장하며 마지막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감금실은 일제 때 노역을 하지 않거나, 소록도를 탈출하다 잡힌 한센인들이 7∼60일씩 갇혔던 곳이다. 실컷 매를 맞은 뒤 감금되면 음식도 없이 추위를 견뎌야 했다. 결혼을 하려면 단종수술을 해야 하는 규정은 2002년 10월24일 국립소록도병원 운영규칙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유지됐다. #3. 오늘도 고통은 계속된다 한·일 변호사들은 진술서를 작성하기 위해 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 강제 격리된 상황과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했다. 권모(77) 할아버지는 1943년,16살 때 3살 많은 누나와 소록도로 들어왔다고 했다. 경북 안동에 살던 남매는 “소록도에 가면 6개월만에 나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일본 순사의 말을 믿고 따라나섰다. 그러나 소록도는 치료는커녕 좁은 방에 10명씩 몰아넣어 강제노역을 시키는 ‘지옥’이었다. 가마니를 짜고, 벽돌을 굽고, 토끼가죽을 만들었다. 당시 한센인들은 한 해 벽돌 140만장, 가마니 30만장, 토끼가죽 1500장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배고픔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동상과 고된 노동으로 멀쩡하던 손과 발은 상처투성이로 변해갔지. 그리고 손목, 발목이 절단되더라고….”권 할아버지의 한숨이 이어진다. 1945년 광복 후 강제노역은 사라졌다. 그러나 강제격리 정책은 66년 말까지 계속됐다.92년에야 소록도에 노령수당이 지급됐고, 이듬해 의료보험 대상자로 선정됐다. 장애인 등록은 94년 9월에 가능해졌다.4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생활하는 소록도 노인들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이들의 생활비는 노령수당 3만∼5만원이 전부다. 한센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애달픈 사연을 변호사들은 한글과 일본어로 옮겼다. 이 진술서는 일본에서 진행 중인 보상청구 소송에 주요 자료로 일본재판소에 제출될 것이다. 12일 오후 변호사들은 노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뭍으로 향했다.“고마우이.” 뭉툭한 손으로 등을 쓰다듬던 할머니를 향해 한 여변호사가 돌아섰다. 그는 차별, 편견과 싸우느라 가냘퍼진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안았다.“우리는 하나인 걸요.” 소록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소송 앞장 日변호사 구니무네 “인권을 침해당한 한국인도 일본인과 동등하게 보상받아야 합니다.” 일본인 구니무네 나오코(國宗直子·49) 변호사는 2002년 3월부터 소록도 한센인 소송에 앞장서고 있다. 소록도변호단의 일본측 사무국장을 맡으며 14차례 방문했다.12일 한센인 117명에게 받은 진술서를 마무리하던 그를 만났다. 구마모토 출신의 구니무네 변호사가 소록도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다키오 에이지(73) 때문이다. 일본 근대사를 전공한 다키오씨는 구니무네 변호사가 1998년 일본 한센인들을 대리해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 승소하자 소록도 얘기를 들려줬다. 1907년 ‘나병예방법’을 제정한 일본은 1996년, 법이 폐지될 때까지 90년 가까이 한센인을 요양소에 강제 격리시켰다. 구니무네 변호사를 비롯한 일본 변호사 200여명은 ‘한센병 예방법 위헌 국가배상 변호단’을 구성, 소송을 냈고 2001년 5월 승소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항소를 포기, 한센병 환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구니무네 변호사는 “일제강점기 때 한국과 타이완에서도 한센인 강제격리정책이 펼쳐졌다는 얘길 접하고 바로 소록도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국적과 관계없이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많은 고통을 받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를 반갑게 맞을 때 눈물나도록 고마웠다.”고 털어놨다. 일본 한센인들이 보상금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 소송비용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언어 장벽 탓에 소록도 노인들의 진술서를 받는 게 쉽지 않던 구니무네 변호사는 한국 변호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우리 일을 대신해줘서 고맙다.”며 발벗고 나섰다. 한·일 변호사 102명은 지난 8월 도쿄 지법에 보상청구소송을 냈고, 지난 10월25일에 이어 17일 열리는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구니무네 변호사는 “일본 한센인들은 요양소에서 의식주 해결은 물론 매월 8만 5000엔(약 85만원)씩 받아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한국 한센인들의 생활 여건은 너무나 열악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센인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려면 일본 정부에 앞서 한국인들의 편견과 오해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타이완 한센인 격리지역인 낙생원의 일본 정부 상대 소송도 돕고 있다. 소록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한센병에 대한 몇가지 오해 한센인에 대한 두려움과 차별은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가톨릭의대 채규태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한센병은 하늘이 내리는 형벌(天刑)도, 전염성이 강해 격리가 필요한 난치병도 아니라고 말한다. 한센병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풀어본다. ●한센병은 전염성이 강하다 한센병은 전염병예방법상 가장 낮은 단계인 3군 전염병이다. 결핵의 전염력이 한센병의 2000배를 웃돌 정도다. 특히 일반인은 95% 이상 한센병에 대한 자연 항체를 갖고 있다. 또 리팜피신이란 치료제를 단 1차례 4알(600㎎)만 복용해도 나균의 99.9%는 전염력을 상실한다. 신체는 물론 성접촉, 임신을 통해서도 감염되지 않는다. ●치료하려면 격리조치가 필요하다 1980년대 치료제 리팜피신이 발견되면서 한센병은 통원치료를 받는 병으로 바뀌었다. 전염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손가락·발가락 등 일부 신체기관의 변형으로 수술이 불가피하면 입원하지만, 장기간 격리는 필요치 않다. ●한센병은 난치병이다 한센병은 약물 복용으로 1∼2년이면 완치된다. 예전엔 치료시기를 놓쳐 변형된 손·발로 살아가는 한센인이 많았지만, 최근 발병한 환자들은 피부 반점 정도만 남는다. 치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몸속 나균은 전염력을 잃는다. ●한센병은 유전된다 1973년 대한나협회가 조사한 결과, 전국 88개 정착촌에 살고 있는 2세 4157명 가운데 한센병에 감염된 2세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가족 가운데 한센인이 있다 해도 감염은 240만명에 한 명 꼴로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고 의학계는 분석하고 있다. ●새로운 한센병 환자가 많다 2004년 1월 현재 한센인은 1만 6801명이다. 대부분 치료가 끝난 사람들이다. 새로운 환자는 해마다 20여명에 불과하다. 소록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열린세상] 지배세력의 교체/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올해 초 과거사 진상규명법들로부터 시작된 개혁법안은 지금은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기본법 및 사립학교법 개정 등 4대 개혁법안으로 확대되어 있다. 이것을 왜 개혁법안이라 하는가. 군사독재체제에서 벗어난 지 불과 10여년에 이룩한 민주화의 성과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하여 움직이는 새로운 사회체제의 구축을 향하고 있고, 개혁법안들이 그것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4대 개혁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현재의 답답한 상황은 압축적 민주화의 주름진 모습일 것이다. 여기서 나는 역사학자로서 과거사 진상규명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과거사 진상규명의 대상은 멀리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명예회복에서 시작하여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권위주의시대 인권침해 진상규명 등에 걸친다. 이 중 동학, 친일, 강제동원의 진상규명을 위한 법률이 16대 국회에서 이미 제정되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작업만이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친일에 대하여는 개정안이, 다른 안건들은 통합안으로서 여당의 경우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규명 기본법’이, 한 야당에 의해서는 친북활동까지 포함하는 ‘현대사 연구·조사를 위한 기본법’이 제안되어 있다. 이웃 나라 국토를 유린하면서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군이 초토화전술로 처절하게 진압한 동학농민군의 그 혁명적 활동은 동학당의 반란으로 폄하되고, 일제에 의한 수탈과 인권탄압은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미화되는 가치의 전도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광복 후 냉전·분단상황에서 벌어진 인권침해는 북한위협론이나 개발독재론에 의하여 불가피성이 호도되고 있다. 과거사 진상규명은 이러한 전도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한국역사의 변화와 발전을 ‘사회적 지배세력의 변천’에 초점을 두어 파악한 역사서가 있다. 오랫동안 한국사 개설서의 지배적 지위를 점해 왔고,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이기백 선생의 ‘한국사신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지배세력의 변천을 지표로 삼아 역사의 시대적 발전을 설명한다.‘신흥사대부의 등장’,‘사림세력의 등장’,‘중인층의 대두와 농민의 반란’,‘개화세력의 성장’ 등의 소시대를,“낡은 시대의 잔재들보다는 다음 시대의 새 요소들의 성장과정을 중요시하는 입장”에서 설정하였다. 이러한 시대구분법에 전적으로 찬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시대의 설정에는 시사되는 바가 없지 않다. 낡은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시대의 새요소가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세워야 역사가 발전할 수 있다. 과거사 진상규명은 바로 그 낡은 시대를 청산하는 작업이며 그 귀결은 단지 정치지형의 변화나 집권세력의 유불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담당할 지배세력의 교체를 초래할 것이다. 수도이전을 둘러싼 논란 중에 ‘지배세력 교체론’이 제기되었다. 수도이전을 역사상의 천도에 빗대어 지배세력의 교체라고 했던 집권세력이 이에 반대하는 야당의 공세에 주워담기는 했으나, 집권세력이 정치권력의 유지 재창출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지배세력의 교체라고 했다. 그러나 지배세력의 교체가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은 헌재에 의한 수도이전의 좌절에서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94년 동학농민의 저항운동에서부터 110년, 이제 식민지와 분단시대의 시련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역사의 시계추를 되돌리려는 시대역행적 퇴행적 세력의 목소리가 길거리에 난무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실력과 사회적 리더십을 갖춘 세력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때는 도래했는데 그것을 주도할 세력의 결집을 보기 어렵다. 과거사 진상규명을 비롯한 4대 개혁법안의 돈좌(頓挫)는 그것을 웅변한다. 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 [삶과 경영 이야기] (37)남양알로에 이병훈 사장

    [삶과 경영 이야기] (37)남양알로에 이병훈 사장

    남양알로에 이병훈 사장은 창업주인 선친 이연호(1996년 작고) 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알로에 판매기업을 한단계 도약시켰다. 판매기업을 세계적인 알로에 원료농장 기업과 생약연구 기업으로 키워낸 글로벌 최고경영인(CEO)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친의 만류에도 교수의 꿈을 접고, 사업에 뛰어든 지 19년 만에 10억원대의 매출을 2000억원대로 성장시켰다. 차세대 재계 지도자로도 주목받는 그의 성공담을 들었다. ●고대부터 신비의 물질 -우선 알로에 자랑부터 하고 싶다. 알로에는 인삼과 함께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생약이다. 서양에선 고대부터 ‘신비의 물질’로 소중하게 여겼다. 백합과 열대식물인데, 신선한 잎으로부터 추출한 원액은 위장 질환과 화상, 곤충에 물린 상처의 치료제로 쓰였다. 알로에는 기원전 2000여년의 수메르 석판에도 등장하고 이집트에선 미라를 천에 감쌀 때에도 사용됐다. 고대 그리스의 의약서에는 ‘배를 편안하게 하고 위를 정화한다. 우유나 물에 타서 먹으면 구토를 멈추고 황달을 낫게 한다. 상처를 아물게 하고 푸른 멍을 삭인다.’라고 적혀 있다. 중국에선 송대에 서양으로부터 건너와 ‘눈을 밝게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신비의 명약’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동의보감에도 나온다. -우리 회사가 성공한 이유는 알로에의 200여가지 성분을 세계 최초로 정확하게 규명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약효가 면역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병이 걸리거나 몸이 약해지면 면역 기능이 떨어지는데 이를 다시 강하게 해준다. 화상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일본에선 원폭 치료제로 쓰였다. 다른 사업을 하던 선친께서는 1984년 악성 간질환을 앓다 알로에 덕분에 완치된 뒤 알로에 사업을 시작했다. 생전에 돈독한 우의를 나누던 친구분 중에는 김정문알로에의 김 회장도 있다. 김 회장은 약초재배에 능력이 탁월한 분이었다. 광복 후 부산에서 기독교 학생모임을 통해 서로 연을 맺었다고 들었다. 두 기업이 경쟁할 이유는 별로 없다. 우리 회사는 해외활동이 중심이고 김정문알로에는 국내 판매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선친의 반대 불구하고 알로에 사업에 참여 -대학 교수가 꿈인 나는 대학 영문학과를 나온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대학가는 학생운동으로 혼란했다. 나도 고민을 했으나 공부를 먼저 하고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서 변혁을 실천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사회학을 선택했다. 유학중이던 지난 1986년 선친의 회사가 미국에 처음 진출했다. 원료와 판매망 확보를 위해서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회사 일을 하면서 선친을 도왔다. -사업을 제대로 키우려면 든든한 원료 공급선을 확보해야 한다. 나는 88년 미국 텍사스에서 경영 부실로 망한 알로에 원료공급 농장을 발견했다.425만달러의 농장을 100분의1인 단돈 5만달러에 매입했다. 농장을 사고 나니까 신경써야 할 일이 많아졌고, 슬슬 재미도 붙었다. 알로에 사업은 매력이 있다. 알로에는 우선 식물 재배이기 때문에 공해 문제가 없다. 황무지를 개간하니까 지력이 살아난다. 건강·미용 식품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권할 수 있다. 선순환 산업인 셈이다. 알로에 사업에 동참하겠다고 선친께 말씀을 드렸더니 강하게 반대하셨다. 부모님들은 내가 공부를 계속하길 바라셨다.1년을 졸라 허락받았다. 나는 미국에서 알로에 공급을 맡았다. 농장을 맡은 지 1년만에 텍사스에 냉해가 닥쳤다. 서둘러 원산지인 멕시코로 건너가 원료를 선매했고, 덕분에 원료 메이저로 이름을 날리는 계기가 됐다. 그러다 92년쯤 위기가 닥쳤다. 미국 알로에 시장에서 가짜 원료가 범람한 것이다. 판매 실적이 반토막 났다. 이를 이겨내는 과정은 악몽이었다. 알로에 분말 원료는 겉으로 보면 전분 가루와 비슷하다. 미국의 악덕 원료업자들이 알로에 원료 1%에 전분 가루를 99%나 섞었다. 가짜를 먹어 본 소비자들은 효능이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고 다시는 알로에를 찾지 않았다. 나는 양심적인 알로에 생산업자들과 가짜 원료를 구별하는 법 등을 강연하고 돌아다녔다. 식품의약안전청(FDA)에 신고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여의도의 3.7배 농장 확보 -마침 92년부터 알로에 성분 분석을 포함한 생약 연구에 착수했는데, 시작부터 중단 위기에 놓였다. 연구개발은 장사가 잘되든 안되든 꾸준히 돈을 투입해야 한다. 힘겹게 돈을 대도 아무런 실적도 없을 때가 많다. 연구개발은 소신과 꿈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잘 팔리던 미국의 화장품 회사를 처분하고 댈러스에 있던 부동산도 팔았다. 한바탕 난리를 친 탓인지 가짜 파동도 가라앉았고, 소비자들의 신뢰도 서서히 되살아났다. 농장은 계속 늘어나 현재 140만평 규모의 멕시코 탐피코 농장을 비롯해 텍사스 할링젠 농장(80만평), 러시아 크라스키노 농장(650만평) 등을 확보했다. 총 재배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3.7배인 940만평에 이른다. 이들 농장은 ‘존슨앤존슨’ 등 해외 40여개국 1300여개 기업에 원료를 공급하고 있다. 연간 1억달러 안팎인 알로에 원료시장의 40%(매출액 800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2위 업체와는 매출액이 3배 정도 차이가 난다. ●4000여종의 천연식물 분석 -우리 회사의 특징은 사업구조가 수직계열화 돼 있다는 점이다.1차 산업인 농사부터 3차 산업인 판매·마케팅까지 한 곳에서 한다. 이같은 구조 때문에 원가 경쟁력을 갖고 품질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연구개발에 몰두할 수 있는 바탕을 갖춘 셈이다. 당시 연구에 초빙한 외국인 연구진들은 “10년은 헛돈을 들이는 고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무슨 소리냐.”면서 이를 믿지 않는데 정말 한동안 투자만 했다. 알로에 연구 6년만에 200여종의 유효성분을 밝혀냈다. 인삼의 핵심 성분을 추출해 상품으로 성공시킨 것은 스위스의 베링거 인겔하임이다. 인삼을 연구하는 분들께는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5년산 홍삼이 좋다고 하면서 왜 좋은지, 어떻게 체계적으로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지는 아무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서양의 인삼’이라는 알로에를 성공적으로 분석했다. 알로에는 이미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다.2000년부터 세계에서 채집된 3만여종의 천연식물을 연구하고 있다.4000여종은 완벽하게 데이터베이스(DB)화했다. 이는 필요한 시점에 보완 연구를 하면 언제든지 상품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천연식물 산업은 일종의 신소재 산업이며 성장 산업이다. 매출액의 10%를 연구개발비로 쓴다. 천연식물에 대한 논문을 3000여종이나 입수해 보니 세계의 어느 한 국가도 이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한 곳이 없었다. 천연식물 연구의 첫 성과로 중국의 ‘황금’이라는 식물에서 ‘항염제’를 추출했다. 올해 580만달러어치를 수출할 예정이다. 대나무 등에서 추출한 혈전방지제도 곧 나온다. ●CEO의 리더십과 글로벌기업 -나의 애칭은 ‘알로에 빌(Bill)’이다. 자랑같지만 미국에선 꽤 유명하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아시아 차세대지도자들의 의장 자격으로 대표 연설을 했다. 나로선 큰 영광이었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정치를 해보라는 권유도 받는데, 전혀 뜻이 없다. 사람은 태어날 때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한가지씩의 역할을 받고 나오는데, 천연식물 사업만 해도 30∼40년이 걸린다. 차세대기업인은 글로벌 마인드가 중요하다. 리더십도 가져야 하는데, 카리스마가 선천성이라면 리더십은 후천적으로 다듬어진 성품이다.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것은 자연자원, 인적자원, 시장자원의 활용이다. 한국의 기업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역량을 기술개발에 투자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야 산다. 깨어있는 리더십에서 최고의 명품이 나온다. 선친께서는 생전에 ‘문화는 산업과 연계돼야 더 큰 가치가 있다.’는 소신을 내세우며 교육사업에 관심을 가졌다.(외동 아들인 이 사장의 모친은 청강문화산업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희경 전 국회의원이고, 그의 누이는 이수형 학장이다.) 우리나라는 조상 대대로 생약 연구에 대한 토대를 갖고 있다. 동의보감 등을 보면 조상들의 우수성을 느낄 수 있다. 독보적인 생약연구 기업을 만들어 세계인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이병훈 사장은 남양알로에 이병훈(43) 사장은 일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1000만평에 이르는 알로에 농장과 해외지사가 세계 10여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서도 아침식사 전에 반드시 알로에 생즙 한잔을 마신다.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일하는 게 보람이라고 한다. 교수가 되려고 공부하던 중 아르바이트로 여기고 선친의 알로에 사업에 합류한 뒤 19년만에 매출 10억원의 기업을 2000억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성실하고 치밀한 성격이 밑바탕이 되었다. 지금은 생약사업의 최고봉에 서려는 꿈에 가득 차 있다. 미국 등에 퍼져있는 다양한 네트워크와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차세대 재계 지도자로도 꼽히고 있다. 경복고와 연세대 영문학과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 [여의도in] 與의원들 “금강산서 새해를”

    열린우리당 A의원은 연말연시를 금강산에서 보내기 위해 며칠전 금강산호텔에 예약하려다 깜짝 놀랐다. 객실 167개의 예약이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광복 60주년을 맞는 ‘2005 을유년(乙酉年)’ 새해 아침을 통일염원의 상징인 금강산에서 ‘의미 있게’ 맞으려는 생각으로 열린우리당의 지도부를 비롯한 많은 의원, 당직자들이 이미 금강산호텔에 대규모 예약을 해놓았던 것이다. 낙담해 있던 A의원은 그러나 12일 “금강산호텔에 빈 방이 생겼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이부영 의장 등 지도부가 새해 일정을 갑자기 바꾼 데 따른 ‘반사 이익’이었다. 이 의장은 연말연시에 금강산 대신 공단과 시장 등 민생현장을 방문키로 계획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는 “지도부로서는 가뜩이나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 의원들이 대거 금강산으로 몰리는 데 대한 여론의 역풍을 걱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포함한 50여명만 금강산으로 향하게 됐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광고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마정미 지음

    “광고라고 하는 것은 비유컨대 기계와 같이 증기의 힘을 입어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니 (중략)증기라는 것은 물이 끓어 김이 오르면 (중략)화륜거도 그 김 운동으로 몇만리 육지를 운동하여 다니는 것이오. 또 아무리 큰 기계라도 모두 이 김 운동으로 돌아가는 법이니 광고도 또한 범백 사업의 증기와 일체라.”(독립신문 1899년 6월2일자 4면) 광고는 흔히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린다.‘꽃’은 화려하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광고가 갓 도입된 19세기 말, 우리는 광고를 꽃 대신 ‘증기’에 비유했다. 광고의 ‘힘’과 ‘찰나적 속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꽃에 대한 비유보다 더 탁월해 보인다. ●독립신문 광고를 ‘증기’에 비유 그 시대 사람들은 근대화 물결 앞에 당황하기만 했던 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광고가 무엇인지 이미 짚어내고 있었던 셈이다. ‘광고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마정미 지음, 개마고원 펴냄)는 광고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유통되어 왔는지 꼼꼼하게 담아내고 있다. 각종 기록 자료와 책 곳곳에 이리저리 배치된 당시의 광고 사진은 책을 풍성하게 해준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지만 소재가 시대의 성감대라는 광고여서인지 가벼운 교양서로도 손색이 없다. 기성세대라면 “맞아 맞아….”라며 고개를 끄덕거릴 만하고 광고에 얽힌 뒷얘기는 젊은 세대도 관심을 보일 만하다. 책은 ‘근대의 새벽’ ‘보릿고래를 넘어’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라는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세기 말에서 광복 때까지를 다룬 ‘근대의 새벽’을 보면 그 당시가 지금과 별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근대 문물을 재빨리 받아들인 젊은이들에게 붙던 ‘모던(modern)’이 ‘모단(毛斷·짧은 머리)’이나 ‘못된’으로 변하는 과정은 신세대 담론이 결국 오렌지족으로 비하되는 과정과 닮아 있다. 광복부터 박정희 정권 붕괴까지를 다룬 ‘보릿고개를 넘어’는 상반된 두 가지 조류가 섞여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잘 살아보세.’로 요약되는 광고가, 다른 광고에서는 억압적 정치상황에 따른 ‘울분’과 ‘자포자기’의 심정이 묻어나온다. ●보릿고개시대 ‘잘살아보세’ 유행 컬러텔레비전이 등장한 전두환 정권부터 현재까지를 설명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는 자본주의가 본궤도에 올라 본격적으로 소비문제가 부상하는 때를 다루고 있다. 매체가 문화를 주도하고 젊음과 일상성이 과도하게 넘쳐 흐르는 광경이 펼쳐진다. 이 책은 그러나 ‘한국사회문화사로 읽는 광고’라고 책 이름을 바꾸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일제 수탈-군부개발독재-포스트모던’이라는 공식을 각 장 첫머리에 제시해버려 자칫 도식적으로 보일 위험도 있다.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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