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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릭 이슈] 60년만의 ‘원폭 2세 실태조사’ 그후

    [클릭 이슈] 60년만의 ‘원폭 2세 실태조사’ 그후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3일 발표한 ‘원폭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 및 건강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원폭피해자 2세의 빈혈·심근경색 등 특정 질환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최고 90배나 높았고, 사망한 2세의 절반 이상은 열살도 되지 않아 숨을 거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원폭피해자 2세에 대한 국가기관의 실태조사가 광복 60년 만에 처음 이뤄졌다는 사실이었다. 기간과 예산의 제약 탓에 이번 조사도 대부분 우편설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원폭피해 문제는 겨우 시작단계”라면서 “보다 전반적·실질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조사기간·예산 제약 한계 이번 실태조사는 인권위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의뢰해 지난해 8월부터 이루어졌다. 보고서 작성을 제외한 실제 조사 기간은 3개월 남짓으로, 예산도 3000만원선에 불과했다. 먼저 원폭피해자 1세 1256명에게 설문지를 보냈다. 이 가운데 기본 정보가 충실한 1092명의 자녀 4080명을 대상으로 사망자나 선천성 기형이 있는지를 파악했다. 피해자 2세들에게도 설문지를 보내 신상정보를 정확히 기재한 1226명의 특정 질환 발병률을 파악했다. 실제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은 1세 223명과 2세 49명, 심층면접은 2세 47명에 불과했다. 인의협은 최종보고서에서 “이들의 건강상태를 장기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4년간 60억 투입 조사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부의 무관심 때문이다. 조사에 참여한 한림대 주영수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아닌 인권위가 조사했다는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원폭피해자 실태조사를 후생성이 맡고 있다. 후생성은 유전적 질병인지 입증되지 않아 원호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2·3세 1만 5000명에 대한 건강영향조사를 60억원의 예산으로 2002년부터 시작했다. 일본정부는 2006년 끝나는 조사 결과에 따라 원폭피해자 2·3세를 법적으로 인정할 것인지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한국 원폭2세 환우회’는 지난해 6월 “일본이 하고 있는 실태조사라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복지부는 ‘외교적 문제’라며 난색을 표시했다. 환우회 김형율 회장은 “우리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외면당한 채 한평생 병마와 싸우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국내에 생존해 있는 원폭피해자 2세는 7500여명, 이 가운데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은 2300여명이다. ●“先지원 後입증” 요망서 제출 원폭피해자 2세들은 과도한 의료비와 노동능력 저하로 생존권조차 위협받고 있다. 인권위가 심층면접한 47명 가운데 42.5%가 “차별이 두려워 원폭피해자 2세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결혼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변했을 만큼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번 발표 이후 일부 피해자는 “원폭 2세의 발병률이 높다는 사실까지 공개됐으니 앞으로 취업이나 결혼이 더욱 어려워지지 않겠느냐.”고 원망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인권위가 실태조사를 벌이기는 했지만 정부차원의 원폭피해자 2세 대책이 현실화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도 아주 먼 것처럼 보인다. 인권위가 미진한 부분의 추가 조사를 벌이고, 공청회를 거쳐 복지부에 권고안을 내기까지는 최소한 1년 이상이 걸린다. 또 권고안이 나온다고 해도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는 “권고안을 기다려 보겠다.”면서도 “일본에서조차 유전 가능성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면적 실태조사나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전국의 피폭 1·2세 수천명에게 일일이 면접 조사와 건강검진, 유전가능성을 따지는 역학조사까지 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면서 “관련성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같은 예산 집행이 국민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스러운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원폭피해자 2세들은 “관련성이 입증될 때까지 최소한의 의료비만이라도 보조해 달라.”며 ‘선(先) 지원, 후(後)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중앙정부를 대신해 전국 48개 지방자치단체에서 피해자 2세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형율 회장은 “60년 동안 겪어온 고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원폭피해자 2세의 유전 가능성 입증에 충분한 기간·예산·행정력을 동원해 달라.”고 촉구했다. 주영수 교수는 “원폭피해자의 건강문제가 대물림되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드러난 만큼 당연히 국가가 나서야 한다.”면서 “사회적 차별 때문에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원폭피해자들에게 보다 섬세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는 이르면 28일 ‘인권위는 하루빨리 권고안을 제시하고 복지부는 이를 바탕으로 ‘선지원 후입증’에 나서라.’는 내용의 요망서를 제출키로 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시론] ‘韓·日 우정의 해’ 유감/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시론] ‘韓·日 우정의 해’ 유감/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작년 한해 일본에서는 ‘한류’(韓流)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덕택에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한·일 관계의 오래된 비유는 이제 사어(死語)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이며 ‘한·일 우정의 해’다. 문화·예술·관광·스포츠 등 다채로운 분야의 한·일교류 행사가 1년 내내 풍성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경제·외교 면에서의 협력 또한 순조롭다. 이미 김포와 하네다 간의 도심 직항편도 생겼고 자유무역협정(FTA)도 추진 중이며 입국비자 문제도 순탄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국교수립 40년 만에 한·일 관계는 신기원(新紀元)을 맞고 있는가? 그러나 2005년은 한·일관계를 축제와 친선의 무드로만 보내기에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해다. 이상하게도 한·일국교수립 40주년만 강조되고 있지만, 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시해서 기념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우선 올해가 광복 60주년이며, 을사조약 체결 100주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사적으로는 일본이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포츠머스조약 100주년이며, 청·일전쟁의 승전을 마무리한 시모노세키조약 110주년이면서, 동시에 국제연합 창설 60주년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난 세기에 있었던 전쟁의 상처를 되새기고 평화의 가치를 음미하는 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줄을 이을 전망이다. 우선 유엔총회는 창립 6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올해 5월8일과 9일을 ‘기억과 화해의 시간’으로 지정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러시아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 행사는 같은 5월 러시아 국내에서 열리는 ‘반 나치스독일 승리 60주년 기념식’과 함께 2차대전 승리에 기여한 러시아의 역할이 강조될 전망이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노구교(蘆溝橋)에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을 리모델링하고 국제적인 기념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 11월21일자 북경일보에 따르면 “항일전쟁의 위대한 과정을 전면적으로 반영하고, 일본군국주의에 의한 인민학살, 식민통치 등의 범죄를 뿌리째 폭로함으로써 지난 전쟁에서 행한 중국의 중요한 역할과 큰 희생을 충분히 알리기”위해서다. 중국과 러시아는 ‘2005년’이라는 역사적 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승전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과시하면서 일본을 압박하는 외교적 자산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광복 60주년, 국권찬탈 100주년이라는 귀중한 역사자원을 ‘한·일 우정의 해’로 소비하고 국내용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낭비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우리 선조는 세계사상 유례없는 잔악한 식민 지배 하에서 가혹한 억압을 감내하면서 반인류적 침략세력에 끝까지 저항했다. 이는 민족의 긍지라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정신적 자산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올해를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반파시즘을 대표하는 진영의 핵심적인 일원임을 확실히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우정’에 잠시 취해있는 동안에도 일본은 할 일 다 하고 할 말도 다 하고 있다.22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에는 소위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위한 조례안이 제출되었다. 또 23일에는 주한일본대사가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독도는 명백한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든 독도문제를 쟁점화하여 외교현안으로 끄집어내려는 의도가 불을 보듯 뻔하다. 무시하고 넘어가는 게 외교적으로는 정답인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우정’을 내세우고 속으로는 허튼 수작을 거는 그 씀씀이가 고약하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허튼 장난을 길게 끌면 ‘한·일 우정의 해’도 재고해볼 일이다. 올해는 2005년. 명성황후가 시해 된 지 11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 신문방송학
  • EBS, 시청자 참여 프로 늘린다

    EBS가 28일부터 봄 개편에 들어간다. 교육 기간방송의 위상 강화, 민주시민의식 고취, 열린 문화공간 확대, 광복 60주년 기념, 유아·어린이 프로그램 개발, 실업문제 극복과 경제강국 방향성 모색 등 6가지 큰 틀 안에서 프로그램 신설과 기존 프로그램의 내실화를 기했다고 방송사 측은 설명했다. 눈에 띄는 신설 프로그램은 ‘생방송 토론카페’(금 오후 10시50분)로, 토론·토크·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시도이다. 성공회대 김민웅 교수가 진행을 맡아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듯 편안하게 토론을 하고, 음악도 들려준다. 인물ㆍ사회다큐멘터리에 도전하는 ‘EBS 스페셜’(목 오후 10시)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주제에 다가선다.EBS와 MBC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련된 ‘EBS 연중기획, 교육이 미래다’(금 오후 10시)에서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아동 프로그램으로는 한국판 ‘텔레토비’를 표방한 ‘똑똑! 노리하우스’(금 오전 9시15분)가 신설된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뮤지컬 프로그램이다. 평일에 방송되는 ‘톡!톡! 보니하니’에는 경제관념을 심어주는 코너 ‘아자아자 금요일’(금 오후 6시10분)을 새로 추가했다. 이밖에 기존 프로그램 가운데 ‘TV 정치교실’은 ‘시민의 신문’ 정지환 기자와 ‘헤딩라인 뉴스’로 잘 알려진 인터넷뉴스 이명선 아나운서가 가세했고,‘미디어 바로보기’는 현장성을 강화했다.‘지금도 마로니에는’(토·일)은 2시간 늦어진 오후 10시50분으로 시간대를 옮겼다.FM라디오에는 손석춘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이 처음으로 진행을 맡은 ‘EBS 월드FM 손석춘입니다’와 영어교육 프로그램 ‘초보탈출,English Go!Go!’,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김진수의 충전, 영파워’가 새롭게 전파를 탄다. 이번 봄 개편 가운데 지상파 TV의 개편 비율은 9.1%. 개편 때마다 15∼20% 정도를 물갈이했던 것에 비하면 소폭이다. 박달화 편성기획팀장은 “안정 속 소폭 개편이라는 취지 아래 시청·청취자의 참여폭을 늘리는 등 프로그램의 내실화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국내외서 항일운동 옥고치러

    국내외서 항일운동 옥고치러

    국가보훈처가 이번 3·1절에 서훈을 추서하기로 한 독립유공자 165명 가운데 좌파 계열로 구분되는 54명의 면면과 활동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빼어난 독립운동 공적에도 불구하고 좌파 계열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서훈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하지 않았을 경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라 해도 서훈을 줄 수 있도록 정부가 최근 관련규정을 변경함에 따라 이들이 6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다음은 이번에 복권된 주요 좌파 계열 독립운동가 면면과 활동상이다. ●여운형(1885∼1947) 항일 독립운동 및 공산주의 운동, 해방 후엔 정치 및 남북 합작운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공산당, 조선총독부, 미 군정과 소련 군정, 김일성 등과 정치적 담판도 가졌다. 몽양의 항일투쟁 사실에 대해 학계는 물론 남북 누구도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좌파 계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뛰어난 공적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심사에서 ‘보류’ 판정을 받아 왔다. ●권오설(1897∼1930) 전남도청에 근무하던 중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렀다. 경북 안동에서 풍산소작인(小作人)회를 결성,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조선노동총동맹 집행위원(1924), 언론집회압박 탄핵위원(1924), 제2차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로 선임돼 활동했다. 학생들과 연계해 6·10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숨졌다. ●조동호(1892∼1954) 1919년 신한청년당 이사로 선출돼 조선독립 청원서를 미국 대통령에게 제출하는 데 관여하는 등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임시 의정원 의원과 국무위원, 독립신문 창간 등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동아일보 선양특파원으로도 활동했다. 조선공산당 결성시 중앙위원으로 선출돼 일하다 옥고를 치렀으며, 조선건국동맹 조직을 결성했다. ●구연흠(1883∼1937) 구한 말 관원 출신으로 무산자 동맹회, 신사상 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하며 6·10만세운동을 추진하다 상해로 망명했다. 그 곳에서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 참여, 중국공산당 강소성위원회 한인지부 책임비서 등으로 활동하며 3·1운동,6·10만세운동 국치일 등을 기념하는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국내로 압송,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김재봉(1891∼1944) 3·1운동에 참여했고,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군자금 모금활동을 하다 체포돼 징역 6월의 옥고를 치렀다..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로 전국에 세포단(細胞團)을 조직하는 등 조국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여운형·권오설등 좌파 독립운동가 54명 서훈

    여운형·권오설등 좌파 독립운동가 54명 서훈

    좌파계열이라는 이유로 독립 유공자 서훈대상에서 제외됐던 독립 운동가들이 광복 6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특히 이들의 대표격인 몽양 여운형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이 수여된다. 국가보훈처는 3·1절 86돌을 맞아 일제에 항거하여 3·1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김진영, 배희두 선생 등 108명과 국내·외에서 항일운동을 벌인 여운형, 권오설, 조동호 선생 등 57명의 독립유공자를 포함한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165명을 포상한다고 22일 발표했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의 훈격(勳格)은 건국훈장 35명(대통령장 1명, 독립장 2명, 애국장 4명, 애족장 28명), 건국포장 29명, 대통령 표창 101명이다. 최고 훈격인 대한민국장(1등급)에 추서된 인물은 없다. 특히 포상자 중에는 몽양을 비롯, 권오설(독립장), 조동호(〃), 구연흠(애국장), 김재봉(애국장) 등 그동안 좌파계열이란 이유로 서훈 대상에서 제외됐던 인사 54명이 포함됐다. 심사를 맡았던 신용하(한양대 석좌교수) 국가유공자 공적심사위원장은 “사회주의 독립운동이라고 해서 공적을 제외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학계의 오래된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역사에서 높게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몽양 선생의 경우 훈장을 몽양의 남측 가족들에게 전달할 수도 있지만, 북측에 유일한 혈육인 딸 여원구(77)에게 전달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포상식은 3월 1일 오전 10시 서울 정동 이화여고 내 유관순기념관을 비롯, 각 지방자치단체와 재외공관에서 거행된다. 후손이 없는 순국선열의 훈장은 정부에서 보관한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일제시대 한국어영화 첫 발견

    한국어로 된 일제시대의 극영화 4편이 한국 영상자료원(원장 이효인)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지난해 중국과 일본에서 발굴ㆍ수집 작업을 벌여 한국어 극영화 4편과 광복 직후 기록영화 4편, 광복전 기록영화 1편을 발굴했다고 22일 밝혔다. 영상자료원은 그동안 해방 전 제작된 영화 가운데 일본어 극영화 3편과 한국어 극영화 3편의 일부 프린트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시대에 한국어로 만들어진 영화의 프린트 전체를 갖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발굴된 극영화는 38년작 ‘군용열차’(서광제),39년작 ‘어화’(안철영),41년작 ‘집없는 천사’(최인규)와 ‘지원병’(안석영)으로,‘어화’를 제외하고는 한국어로 제작됐지만 내용상 친일영화로 분류될 만한 작품들이다. 이밖에 해방직후 만들어진 뉴스 영화 ‘해방뉴-쓰’ 네 편이 발굴됐으며 조선의 주요 관광지 홍보용 다큐멘터리 ‘조선’(38년작)도 함께 수집됐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우리동네 이야기] 장충동

    [우리동네 이야기] 장충동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끌어안고’라는 요절가수 배호(1942∼71)의 노랫말과도 같이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 돼지족발로 이름난 곳…. 서울 중구 장충동은 장충단(奬忠壇)이 자리해 이름이 붙여졌다. 한때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동원돼 대통령을 뽑는 등 ‘체육관 정치’의 대명사로 꼽힌 장충체육관을 떠올리게도 한다. 장충단은 현재의 장충단공원에 자리했으나 6·25전쟁 때 파손되고 장충단비(서울시 유형문화재 1호)만 남아 있다.1900년 고종이 설치했으며,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민비 시해사건 때 숨진 문무(文武) 관리들의 넋을 달래는 제사를 지냈다. 장충체육관 맞은편 족발골목에는 대형 업소만 20곳 있다. 이젠 워낙 유명해져 전국 어디서나 품질을 보증이라도 하듯 장충동 이름을 빌리고 있다. 장충동 족발이 유명해진 데에도 장충체육관과 깊은 사연이 숨었다. 중구문화원 김동주(46) 과장은 “60년대만 해도 건강식으로 꼽혔던 족발을 파는 업소가 한두 곳이었다.”면서 “1960년 국내1호 실내체육관으로 지어진 장충체육관이 들어서 프로레슬링, 복싱 등 스포츠 경기를 보러 온 시민들이 허기를 채우려고 몰려들어 성시를 이루자 계속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50년대 초 중국 음식인 오향장육에서 힌트를 얻어 족발찜을 개발한 원조 전박숙(여·91년 작고)씨도 장충동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그 무렵 관중들이 족발집에서 소주잔을 곁들여 일삼던 선수들 얘기와 함께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장충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관상학 교실’이 열린다. 매번 수용인원 40명보다 훨씬 많은 50∼60여명이 몰려든다. 우리나라에서 단 한 곳뿐인 종이미술박물관도 장충동에 있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쪽 ‘종이나라’ 건물에서는 종이접기 전문가들이 만든 그림, 꽃, 인형 등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종이에 얽힌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평일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 문을 연다. 장충동은 옛날 사소문(四小門) 가운데 하나인 남소문이 있었다는 빌미로 일제가 남소동이라고 낮춰 불렀다. 그러다가 광복 이듬해인 46년 장충동으로 명예를 되찾았다.2900여가구에 인구 6200여명이다. 중구 15개 동 가운데 면적이 1.36㎢로 가장 넓다. 글 사진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본사후원 한·일수교 40주년 기념 세미나

    본사후원 한·일수교 40주년 기념 세미나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한·중·일 학자 160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학술대회인 ‘한·일수교 40주년 기념세미나’가 18일 고려대 LG포스코관에서 열렸다. 한국일본학회와 고려대 일본학연구센터가 공동주관하고 서울신문이 후원하는 이 학술대회는 19일까지 이틀 동안 진행된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집중 점검한다. “일본문화연구는 여전히 미개척 분야입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학문적으로는 방법론적 단련을 소홀하게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습니다.” “기존 근현대사 연구는 민족적 색채가 강하다 보니 문장 하나 혹은 서적 하나만 가지고 너무 물고 늘어진 측면이 강합니다.” “일본을 배우자거나 따라잡자 혹은 협력하자고 외치면서 기본적인 통계치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18일 오후 1시반부터 고려대 LG포스코관 107호 강의실에서 열린 ‘한국에서의 일본학 연구의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서 쏟아져 나온 한국내 일본 연구자들의 자성론이다. ●우리식 일본이해 ‘폭력’ 수준 광복 후 우리의 일본 연구는 스테레오타입화했다. 일본을 대상화하고 재단하기에 바빴다. 여기에다 ‘일본은 악랄한 가해자, 한국은 선량한 피해자’라는 선악 이분법까지 보탰으니 우리식 일본 이해는 ‘폭력’에 가까웠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 들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우리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조치와 일본의 한류열풍이 그 상징이다. 이분법적인 시각은 점차 설 땅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일본연구는 ‘이제서야’ 조금씩 움트고 있다는 게 토론회 참가자들의 지적이다. 이제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벗어났으니 한층 더 학문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묻어나왔다.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 고선규 교수는 “일본정치연구에서 이제야 서서히 ‘일본’이란 제약을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광복 직후 일본은 아예 연구 자체가 금기시된 분야였고, 그 뒤에는 미국 등 서구적인 시각에서 분석한게 전부였다. 그나마 ‘일본은 악’이라는 가치판단이 전제된 뒤에야 연구가 시작됐기 때문에 연구내용도 한일관계사에만 치우쳤다. 이러다보니 기존 연구는 “학문적 상상력이 동원된, 해석으로서의 정치학”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직접 공부한 세대들이 학계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이 같은 경향이 바뀌고 있다. 고 교수는 학제간 협동연구를 앞으로의 과제로 꼽았다. 일본역사 연구에서도 이런 발전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대 남상호 교수는 “반일정서가 강했지만 1946년에서 1948년까지 열린 동경재판에 대한 제대로 된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무조건 매도만 했지 일본을 제대로 살펴볼 여유나 인식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 성과가 축적돼 가면서 보다 세밀하고 정치한 분석과 연구가 정착돼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일경제 기초 통계도 없어 이에 반해 일본경제와 일본문화를 공부한 한양대 김종걸 교수와 세명대 김필동 교수의 일본학 비판은 신랄했다. 김종걸 교수는 기본적으로 한일경제 관련 기초 통계치조차 없다는 점을 지적한 데 이어 은연중에 일본의 학문적 저력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1930년대 오오쓰카 히사오는 ‘구주경제사서설’ 등 일본과 영국간 비교연구를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경제학의 일반론을 끌어냈다. 이 논의는 모리스 돕과 폴 스위지 사이의 ‘자본주의체체 이행논쟁’을 낳았을 만큼 센세이셔널한 주제였지만 한국은 이에 대해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는 부러워하면서 정작 그들이 경제를 어떻게 분석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김필동 교수는 아예 “그래도 다른 발표자들은 시대구분이라도 했지만 문화분야에 있어서는 시대구분조차 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는 “일본 경제 성장만 숭배하다보니 일본은 있니 없니 하는 불필요한 일본 논쟁만 낳았다.”면서 “최근 완화됐다지만 기초적인 문헌연구조차 없이 쉽게 쉽게 써내는 일본문화론이 번창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반일논리로 제대로 된 연구를 막는 사회분위기도 문제지만 이에 무사안일하게 편승한 연구자가 더 큰 책임”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주관적·선정적 일본론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기초자료 조사를 통한 보다 엄정한 접근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정치인 사면 분위기 성숙 생계형 신불자 선별 구제”

    이해찬 국무총리는 16일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면·복권론에 대해 “광복 60주년을 맞아 국민통합을 위해 여러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며 “올해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성숙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 총리는 이날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해 처벌받은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복권 단행 여부를 묻는 열린우리당 노웅래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변했다. 이 총리는 또 ‘야당 인사도 경제부처에 입각시켜야 한다.’는 질의에 “대통령께서 소속 정당과 상관없이 역량있고 좋은 사고방식을 가진 분을 구해 보자고 말씀하셨다.”며 “좋은 분은 당과 관계없이 제청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한국형 뉴딜’ 정책을 위해 국민연금을 국채외에 주식시장의 블루칩(대형 우량주)에 장기투자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신용불량자 대책과 관련,“미성년자나 학자금을 빌려쓰고 군에 입대한 청년층, 생계형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선별해 생업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인사]

    ■ 재정경제부 ◇과장급 전보 △대통령 비서실 朴在植 ■ 교육인적자원부 ◇부이사관 전보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실 黃洪奎△교육부 徐明範 ■ 금융감독위원회 ◇전보 △혁신행정과장 洪永萬 ◇서기관 승진 △혁신행정과 李碩雨 ■ 대한주택공사 ◇임원급 임용 △경영지원본부장 성운기◇부장급(2급)승진△홍보실 배재국△감사실 백성욱△전략개발실 양창남△주거복지처 문윤태△임대계획처 이창환△택지계획처 정명섭 박병득△건설관리처 이윤재 유광복△건축설계처 최인수 최병은△토목설계처 홍기문△기계설계처 김승구△설계견적처 문태수△인력개발처 윤귀석 이정태△에너지사업단 정태기 이영갑△품질시험소 김기형△서울지역본부 이준환 강명균△경기지역본부 유대진 김종엽 김석수 전유재 서성만 주영해 남성권 박윤현 남기봉 이준혁 신원식△부산지역본부 손창곤 황성열 이정환△인천지역본부 박오현△강원지역본부 조명현 박두용△충북지역본부 이은겸 박근규△대전충남지역본부 김용태 조대현 이덕선 신태범 박상철 이창훈 최재영△전북지역본부 신우식△광주전남지역본부 구자곤 김형인 국순경△대구경북지역본부 조완호△울산경남지역본부 김태락 황재우 정창모 권영기 권헌재◇부장급 전보△기계설계처장 직무대행 최만수 △비서실 신동철△기획조정실 권만기△경영관리실 조성필△전략개발실 이광구 신홍기△주거복지처 유영균 추원호△임대계획처 김성윤△임대관리처 임석숭 노홍렬△택지계획처 유환태△택지보상처 박영식△PF사업단 이종완 박춘식△도시정비처 박종곤△주거환경처 안기두 안영현△건설관리처 이건형△건축설계처 박완수 박대길△토목설계처 김태룡△전기통신처 이성일△설계견적처 장성주 박정태 강기명 정각섭△인력개발처 정형균 박영호△재무처 곽윤상△정보관리실 임의선△총무팀장 김원근△연구개발실 이강옥△품질시험소장 이용근△서울지역본부 박정만 박재현 송용섭 황종철 김용율 이병호 고재택 이준원△경기지역본부 유영일 최준하 이명구 홍천표 백운기 이석희 박주성 박병식 엄기인 윤가호 김진환△부산지역본부 김동수△인천지역본부 고선기 문득용 강명석 △충북지역본부 곽상균 △전북지역본부 신정근△대전충남지역본부 남용재△광주전남지역본부 명남수△대구경북지역본부 박운철 조해용△울산경남지역본부 임병균 남상욱△제주지역본부 유진오△서울대 교육파견 성기천 허동준 박헌석 허영준 ■ 근로복지공단 △보험관리이사 李厚宰 ■ 헤럴드 미디어 ◇헤럴드경제△논설위원 최교서△국제부장 이완수△헤경전략마케팅국장 성항제△헤경전략마케팅 1부장 심재익△〃 2부장 송국현△마케팅지원팀장 권오행◇코리아헤럴드△KH편집국 국차장 김영한△KH전략마케팅국장 황해창△KH전략마케팅부장 황창영 ■ ㈜YTN미디어 △기술국 국장 曺灐根△〃 기술팀장 金周昊△〃 영상〃 朴振秀△방송본부 취재부장 金炳在△〃 편성팀장 曺有美△〃 방송〃 曺昇煥△〃 제작〃 權義廷△기획국 채널마케팅〃 朴希哲△경영관리국 경영지원〃 柳在權△〃 재무관리〃 車相憲
  • 한·일수교 40주년 ‘민족주의 정체성’ 심포지엄

    2005년은 여러 의미가 겹치는 해다. 한·일수교 4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병합 100주년 등. 그러다 보니 올해에는 한국과 일본은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지어 왔는지를 밝히는 작업이 활발하다. 16일 한림대 한림과학원 한국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21세기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 심포지엄은 한국의 정체성을 다루는 한국학이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기조발표에 나선 한림대 한영우 특임교수는 탈민족주의자들의 국사해체론을 반박했다. 그는 국사해체론의 뿌리를 일본 식민주의 역사가에서 찾은 뒤 “배타적·국수적 민족주의는 비판돼야 하지만 민족적 특수성을 거부하거나 민족의 실체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그 자체가 역사의 새로운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앞으로 한국학 연구의 초점은 “왕조의 장기지속성이 보여주는 사회통합력과 신뢰구조에 대한 이해”여야 하고 그 핵심에는 “선비정신이 있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한 특임교수의 주장이 마냥 환영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에만 집착해 스스로 국학으로 내려앉은 한국학의 시야를 동아시아로까지 틔워줘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한림대 사회학과 전상인 교수는 한국의 근대화를 설명하는 기존 주장을 재검토하면서 “학문을 하는데 일종의 ‘운동’ 정서를 버려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서구의 근대화 과정이 절대선도 아닌데 서구 근대화의 틀에 맞게 한국사를 끼워 맞추려는 조급증을 지적한 것이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 몸담고 있는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는 더 신랄하게 기존 한국학을 비판했다. 그는 기존 한국사 연구가 무비판적으로 서양의 역사발전론인 ‘고대-중세-근대’ 구분을 인용하고 있다면서 ▲비교사의 관점 ▲동아시아사의 관점 ▲중국사에 대한 이해 등을 통한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전 교수와 미야지마 교수의 이런 비판을 거꾸로 일본에 투영한 심포지엄도 열렸다. 앞서 15일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와 BK21일본연구팀이 함께 주최한 ‘일본의 발명과 근대’ 심포지엄이다. 초점은 ‘일왕제의 위력’에 맞춰졌다. 근대 초입 대다수 사람들이 일왕이 누군지도 모르던 일본은 20세기 초반 절대적 일왕제가 성립했다. 일왕제 폐지를 내걸었던, 그래서 가장 이단적이었던 일본 공산당원 대부분이 전향했다는 사실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공산당 최고 이론가 사노 마사부는 전향 뒤 아예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일국사회주의 건설을 내세울 정도였다. 성균관대 정혜선 교수는 만주사변에 비판보다 열광을 보내는 일본 민중과의 괴리감 때문이었다고 해석했다. 이런 힘은 ‘일왕=일본역사=국가의 중심’이라는 도식에서 나온다. 이것은 아직도 연례행사 같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서 잘 드러난다. 단순한 제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한양대 박규태 교수의 결론이다. 박 교수는 일본 근대화 초기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던 ‘신사 비종교론’으로 근대국가의 정교분리 원칙을 피해나간 뒤 신사와 일왕제가 결합하면서 사실상 국가종교화됐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의 정체성을 둘러싼 이런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왜 민족주의적 정체성은 여전히 강한가. 경희대 허우성 교수는 아사바 미치아키의 ‘신체성’ 개념에서 그 답을 찾았다. 너무도 이기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체화된 감정, 그것이 민족주의 정체성이다. 허 교수가 비판적 연구자들에게 “매국노로 비난받을 각오”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18∼19일 한국일본학회 주최로 고려대에서 열리는 ‘한·일수교 40주년 기념세미나’는 일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목표로 삼았다. 기획특집으로 ‘일본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 문제’도 다룰 예정이어서 기억에 대한 논의까지 함께 벌어질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상수씨 “광복60년사업 손떼겠다”

    광복60년 기념사업 추진과정을 공개 비판해 논란을 빚은 연극연출가 김상수(47)씨는 15일 “이번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날 정윤재 국무총리실 민정2비서관의 ‘(김씨가)유명세를 타겠다.’는 발언에 이은 대응이다. 김씨는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정 비서관의 발언을 겨냥,“말장난 하지 말라.”고 치받았다. 그는 “문제는 정직이고 진실이지 이죽거림이나 변명이 아니다. 정직할 것을 새삼 주문하고 싶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 비서관은 최근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씨가 (추진위 인사채용과 관련해)무리한 부탁을 해 거절했더니 그런 글을 올린 것 같다. 김씨가 내게 만나자고 해 자리를 함께 했는데 다시 총리 면담과 상근 기획전문위원직을 요구했다.”고 주장했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내게 기획전문위원을 맡아 달라고 한 쪽은 추진기획단이었고,‘국무조정실 8·15 광복 60년 기획전문위원’이란 명함을 만들어 준 곳도 당신들”이라며 “이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정식 위촉’이란 말이냐.”고 반박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조병옥 박사 45주기 추도식

    일제 강점기 흥사단과 신간회 등을 통해 민족 계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유석 조병옥(1894∼1960) 박사의 45기 추도식이 15일 오전 10시 국회 헌정회관에서 열린다. 조병옥박사기념사업회(회장 민관식) 주관으로 열리는 이날 추도식에는 황인환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한 광복회원과 유족 등 1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충남 천안 태생인 조 박사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14년 미국으로 건너가 안창호 선생이 주도한 흥사단 결성에 참여했으며, 뉴욕 거주 동포들을 중심으로 한인회를 조직했다.
  • [사설] ‘광복 60주년’ 정파이해 떠나야

    사람이 환갑을 기념하는 것은 살 만큼 살아, 세상이치를 알 만치 됐다는 반추의 정신이 담겨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광복 60주년에 성대한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것은 숨가쁘게 달려온 현대사를 되돌아보고, 새출발을 다지자는 결의에서다. 하지만 정부의 광복 60주년 기념사업 추진이 사당적(私黨的) 패거리 같다는 내부비판은, 우리가 지난 역사를 회고할 자격이 있나 하는 회의를 갖게 한다. 기념사업 추진위 기획전문위원 내정자인 김상수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차라리 사실이 아니길 바랄 만큼 충격적이다.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자는 사업이다. 각계 전문가들이 마음을 모아 밤을 새우며 준비해도 모자랄 판이다. 하지만 참여한 면면들은 국회의원 보좌관, 정당의 지방조직원 출신에, 총선에서 낙선한 총리실 비서관이 막후 월권을 일삼았다고 한다. 전문성도, 열의도 없는 이들이 “떼거리로 무리를 지어 자신들을 제외한 모두를 편가름질하는 식으로” 행사를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나아가 이달초 각계 원로와 전문가들을 모아 구성한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한두번 만나 밥이나 먹는 모임”으로 폄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국민 모두가 지난 60년을 이런 식으로 허비해온 것이 아닌가라는 자괴감마저 든다. 총리실측은 김씨가 사감을 가지고 쓴 허위내용이라고 반박했지만, 내용중 일부라도 사실이라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어제 추진위 첫회의가 열려 사업방향 등을 논의했다는데, 늦어도 한참 늦었다. 연초부터 각종 행사가 시작됐어야 할 텐데, 무엇하다가 이제 와서 첫회의인가. 나라 잃은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자 시작한 행사다. 이제라도 역사에 욕되지 않는 행사가 되도록 중지를 모아야 한다.
  • 광복60년사업추진 새달 본격화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광복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이해찬 국무총리·강만길 상지대 총장)는 14일 전체회의를 갖고 각종 기념사업 계획을 다음달 중순까지 확정짓고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서기로 했다. 강만길 위원장은 회의에서 “앞으로 광복 60년 사업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중점을 둬 민족사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정치권출신 비전문가가 주도 광복60주년 기념사업 파행”

    정부의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이 초반부터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단 기획전문위원인 연출가 김상수(47)씨는 지난 12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기념사업 추진과정과 기획전문위원 인선을 비판하는 글을 띄워 총리실 관계자들을 공개 비판했다. 김씨는 ‘누가 노무현정부를 고립과 위기로 몰아넣는가.’라는 글에서 “기념행사를 총괄하는 기획전문위원이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치권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3명의 전문위원에 대해 “일정 규모의 국가 문화예술행사를 중심에서 치른 경험이 없다.”면서 “전문성을 따지기에는 너무나 한계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들이 각각 국회의원 보좌관, 모 정당의 지방조직팀장, 민간 예술단체의 간부 출신”이라면서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끼리끼리의 익숙한 문화’에 절어 있는 인상이 짙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기획단과 관련도 없는 총리실 실세 비서관이 막후에서 60주년 사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홍윤식 추진기획단장은 13일 “총리 비서실이 사업기조나 방향, 위원 인선과정 등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전횡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환경·생명] ‘백두대간 보호’ 출발부터 흔들흔들

    [환경·생명] ‘백두대간 보호’ 출발부터 흔들흔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중심축인 백두대간마저 훼손되면 안 된다(산림청).”“그렇다고 지역주민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가해지면 되나요(주민).” 올 1월1일부터 발효된 백두대간보호법에 따른 보호구역 지정 범위를 둘러싸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주민간 신경전이 한창이다. 더이상의 훼손을 막고, 법 테두리안에서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지만 관점이 서로 다른 탓에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보호지역 면적이 당초 계획보다 크게 줄어드는 등 법 제정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몸살 앓는 백두대간 백두대간은 대륙으로부터 야생 동식물이 들어오는 이동통로이자 우리나라 산림자원의 비축기지 구실을 한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식물(4071종)의 33%에 이르는 1326종이 분포하고 이중 108종은 한국 고유 특산식물이다. 수달, 산양, 삵, 담비 등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들도 대부분 이곳에 서식한다. 해발 1000m 이상 높은 산들이 많은 데다 동쪽은 해양성 기후, 서쪽은 내륙성 기후를 이루는 독특한 지대여서 ▲비무장지대 ▲도서·연안지역과 함께 한반도의 3대 생태 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훼손 사례는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정선군 임계면에 걸쳐 있는 자병산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지나가는 자병산은 1978년 석회석 광산을 개발하면서 229㏊에 달하는 산림이 송두리째 사라진 상태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현재 계획된 65㏊ 규모의 추가 개발사업이 마무리되면 자병산은 원래 지형보다 200m 내려앉은 모습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녹색연합 이유진 간사는 “자병산은 개발로 인한 국토 파괴의 대표적 현장”이라면서 “정상은 사라져 버렸고 지난 20년간 생태복원은 커녕 산림녹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병산의 석회석 광산은 한 사례일 뿐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현재 백두대간 산줄기를 따라 12개의 광산이 개발 중인가 하면 도로(72개)와 철도(5개), 댐(6개) 그리고 각종 위락단지와 목장, 군사시설 등이 늘어서 있다. 백두대간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른 야생동·식물의 서식처 단절과 파괴 등 생태계 훼손의 심각성도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광복 이후 압축적 경제성장의 개발논리와 이로 인한 난개발 앞에 국토의 등줄기인 백두대간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보호지역 26만㏊ 잠정 결정 이같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바로 백두대간보호법인데, 정부 당국은 올 상반기까지 산림청 고시로 개발행위를 제한하는 보호지역 범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미 보호지역 내에 생활권을 형성하거나 재산권을 가진 주민 및 각종 개발을 계획하고 있는 지자체 등의 반발로 예정대로 실행될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산림청은 32개 시·군 자치단체가 제출한 의견 등을 반영해 보호지역 면적을 26만 5838㏊로 잠정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림청은 “마지노선인 25만㏊는 유지한 것”이라고 자위하고 있지만, 지난해 5월 작성한 기초도면(53만 5918㏊)의 49.6%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개발행위가 금지되는 핵심구역은 당초 24만 2477㏊에서 17만 1161㏊로, 제한적 개발이 이뤄지는 완충구역은 29만 3441㏊에서 9만 4677㏊로 크게 축소됐다. 특히 강릉시의 경우 33개 쟁점구역중 22개 구역이 핵심·완충구역에서 제외됐고 재산권 침해 논란이 심했던 왕산면 일대는 완충구역에서 대거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삼례(인제군의회 의장) 강원도 시·군의회협의회장은 “백두대간 보호의 필요성은 공감하나 그로 인해 생활이 침해되고 생활터전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면서 “주민 동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현재는 추이를)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정안 내용대로 확정될지조차도 불투명한 대목이기도 하다. 산림청은 재산권 보호 등을 위해 보호지역내 30%에 이르는 8만여㏊의 사유림에 대해서는 산주 요구시 매수할 방침이지만, 주민·지자체 반발에 대한 미숙한 대응과 협상력 부재가 결과적으로 법 제정 취지를 약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보호지역 축소는 주민들의 이해부족에도 기인하지만 주민 참여를 유도하는 당국의 노력 부족의 결과”라고 말했다. 유기준 상지대 교수는 “백두대간 보호의 기본은 자연환경적 가치에 있으나 삶의 터전으로서 형성된 사회·인문적 가치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면서 “환경자원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국보(國寶)관리라는 공감대 형성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이 땅의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를 일컫는다. 총길이 1 400㎞(남한은 강원도 고성 향로봉∼지리산 천왕봉까지 684㎞)로 동쪽과 서쪽 물길이 서로 섞이지 않는 산줄기(山徑)의 중심축이다. 이익의 성호사설(1760년)에서 처음 사용됐으나 그 자취는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풍수지리의 비조로 불리는 신라말 도선(827∼898) 스님의 비결서인 옥룡기(玉龍記)에 “우리나라의 지맥은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그치는데…”라고 기록, 백두대간의 존재가 처음으로 언급돼 있다. 이후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에서 1대간(大幹),1정간(正幹),13정맥(正脈)으로 체계화됐다.
  • 도올, 다큐 연출자로

    도올 김용옥이 다큐멘터리 연출자로 나선다. 도올은 EBS가 8월 방영 예정인 다큐멘터리 ‘한국독립운동사 10부작’의 연출을 맡기로 했다. 도올은 최근 펴낸 책 ‘앙코르와트ㆍ월남가다’의 서문에서 “EBS에서 다큐멘터리의 총연출을 나에게 맡겼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식 속에서 사라져 있던 현대사를 좌ㆍ우 이념이나 남북의 분열과 관계없이 총체적으로 부활시키는 작업을 감행키로 했다.”면서 “한국독립운동사야말로 우리민족의 정체성의 뿌리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EBS는 “김용옥씨가 연출을 맡고 출연도 하기로 했지만, 아직 다큐멘터리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구성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EBS는 지난해 12월 2005년 ‘EBS 7대 약속’ 가운데 하나인 ‘광복 60주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갑니다’의 실천방안으로 다큐멘터리 ‘한국독립운동사 10부작’을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北 核보유 공식선언 파장] 남북대화 교착상태 길어질듯

    ‘6자회담 무기한 불참’과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한 북한 외무성 발표는 남북관계에도 커다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난해 7월 이후 중단된 남북 당국간 대화의 교착 상태가 길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이는 최근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6자회담 3월 개최설’을 제기한 사실이나 올해가 광복 60주년,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이라는 점에 비춰 볼 때 충격파가 클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이 가능하리라는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선 정부가 대북정책에 소극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우영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그 동안 참여정부가 정체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미국이 주도권을 잡는 사이에 북한에 대한 적절한 신뢰를 얻지 못해 북한이 회의적으로 우리 정부를 바라본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정도면 만족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도 안일한 판단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대북정책만 보면 부시 2기 행정부는 1기에 비해 핵문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체제 전환 문제로까지 인식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평화적·외교적 해결에만 안도해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북한이 성명을 통해 남한 정부에 대해서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의도가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감정적으로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기보다는 경협과 개성공단, 비료 전달 등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들린다. 통일부 고위관계자의 “(성명 파문이)오히려 남북관계의 진전이 필요하다는 걸 암시하는 것 아니냐.”는 언급이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다만 이철기 교수는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너무 예민하게 연결시키지 말고 북한을 꾸준히 설득·지원하되 비핵화 선언은 남북 합의사항이므로 강력히 제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57)

    儒林 270에는 ‘萬世師表(일만 만/대 세/스승 사/본보기 표)’가 나온다.‘아주 오랜 세대에 걸쳐 학식과 덕행이 높아 남의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을 일컫는 말이다. ‘萬’자는 전갈을 본뜬 글자의 變形(변형)이다.‘艸(풀 초)’로 굳어진 윗부분은 먹이를 집을 때 쓰는 집게였으며,‘田(밭 전)’으로 정착된 가운데 부분은 몸체, 그리고 나머지는 꼬리 부분의 毒針(독침)이다. 그러나 萬은 곧 숫자를 표시하는 글자로 자리잡았다. 당시에 숫자 1만의 개념은 있었으나 글자가 없었는데,萬과 발음이 같아 숫자의 槪念(개념)으로 借用(차용)한 것이다. ‘世’자 字源(자원)에 대해서는 ‘돗자리를 짜고 새끼를 꼬는 데 쓰이는 도구’,‘葉(잎 엽)자의 古文(고문)으로 줄기와 잎을 그린 象形字(상형자)’,‘세 개의 十자로 30년을 나타냄’,‘(서른 삽)자를 잡아 늘린 형태’라는 등의 설이 있다.世의 뜻에는 인간, 시세, 세대, 대(代), 해, 평생 등이 있다. 그 용례에는 ‘世態炎(세태염량: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여 따르고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인심을 비유적으로 이름)’‘蓋世之才(개세지재:세상을 뒤덮을 만큼 뛰어난 재주)’ 등이 있다. ‘師’자의 자원에 대해서는 ‘정찰에 유리한 언덕의 상형인 왼쪽 부분과 군부대의 표지로 세운 깃발의 상형인 오른쪽 부분이 합쳐진 글자’라는 설과 ‘큰 물고기 토막의 상형인 왼쪽부분과刑(경형:죄인의 이마 따위에 먹줄로 죄명을 써넣던 형벌)에 쓰이던 끌 모양을 한 刑具(형구)의 상형이 합쳐졌다.’는 설이 있으나 뜻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본래의 뜻은 ‘주둔지’였으나 점차 ‘스승’‘우두머리’ 등의 파생된 뜻으로 일반화되었다.用例(용례)에는 ‘師承(사승:스승에게서 학문을 이어받음)’‘銳師(예사:날랜 군대)’ 등이 있다. ‘表’자는 ‘毛(털 모)’와 ‘衣(옷 의)’가 합쳐진 會意字(회의자)로 원래의 뜻은 ‘털옷’ 혹은 ‘갖옷’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外套(외투)처럼 늘 바깥에 입었으므로 表는 ‘겉’을 뜻하게도 되었다.用例로는 ‘表裏不同(표리부동:마음이 음흉하고 불량하여 겉과 속이 다름)’‘表情(표정:마음속에 품은 감정이나 정서의 심리 상태가 겉으로 드러남)’을 들 수 있다. 師表는 師法表率(사법표솔)의 省略(생략)으로 學識(학식)과 人格(인격)이 높아 남의 模範(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일컫는데, 이 말을 처음 使用(사용)한 이는 司馬遷(사마천)이라고 한다. 큰 富者(부자) 三代(삼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경주의 최부잣집은 만석꾼의 전통을 무려 300년 동안 12대나 이었다. 그 秘訣(비결)인 家訓(가훈)은 우리 모두에게 龜鑑(귀감)이 될 만하다.“(1)절대 進士(진사)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2)財産(재산)은 1년에 1만석 이상을 모으지 마라.(3)나그네를 후하게 待接(대접)하라.(4)凶年(흉년)에는 남의 논, 밭을 買入(매입)하지 마라.(5)집안에 며느리를 들이면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혀라.(6)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최부자 家門의 마지막 명맥을 이었던 최준씨의 결단은 또 하나의 人生 師表이다. 조국 광복의 熱望(열망)으로 대학을 設立(설립)하고 獨立資金(독립자금)을 支援(지원)했던 그는 노스님에게서 받은 金言(금언)을 平生(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財物(재물)은 糞尿(분뇨)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 두면 惡臭(악취)가 나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주변에 큰돈을 거머쥔 猝富(졸부:벼락부자)들이 많다.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대로 쓰는 것임을 안다면 이들이 敗家亡身(패가망신)할 이유가 없으련만.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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