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광복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관자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웜비어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동반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129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가볼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가볼까

    1908년 일제가 대한제국 시대에 ‘경성감옥’으로 만들어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쓰였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그동안 서대문감옥, 서울교도소 등 여러번 이름이 바뀌었지만 한국근현대사의 아픔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시대에는 4만여명의 애국지사들이 투옥됐고 해방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자들이 수감됐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지난 98년 문을 연 뒤 현재 역사교육의 현장뿐만 아니라 드라마·영화 촬영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 등으로도 애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관련 망언 등의 문제와 맞물려 방문객은 하루 평균 2500여명에서 5000여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고증 거쳐 일제시대 상황 재현 역사관 양성숙 학예사는 “일제가 우리민족에게 저지른 일을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견학코스로 인기가 높다.”며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문서 등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았다.”고 말했다. 역사관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일제시대 때 ‘보안과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역사전시관’이다. 벽에 만들어진 관이라는 뜻에서 ‘벽관’으로 불렸던 고문기구에 직접 들어갈 수 있다. 김현지(공릉초6)양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사흘 동안 이 곳에 갇히면 온몸이 마비되어 죽게 된다는 말이 실감난다.”고 몸서리를 쳤다. 밀랍인형이 잔혹한 고문장면, 옥중투쟁모습 등을 재현한 장면도 볼 수 있다. ‘제13옥사(공작사)’에서는 벽에 뚫린 구멍에 머리를 넣으면 전기고문을 당하는 착각이 들도록 의자가 부르르 떨리는 전기고문, 손톱을 빼는 고문, 상자에 가둬놓는 고문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유관순 열사가 순국했다는 여성옥사(일명 유관순굴)에서는 높이는 1.48m로 허리를 똑바로 펼 수도 없는 1평 미만의 독감방들을 볼 수 있다. ●‘모래시계’ 배경이 됐던 사형장 역사관 뒤편에 자리잡은 사형장은 80년대 암울했던 시대상을 그린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태수(최민수 역)가 우석(박상원 역)에게 ‘나 떨고 있니?’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애국지사에 대한 성역화 작업과 유족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이 곳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 사형장에 들어서면 사형수들이 붙들고 통곡했다는 ‘통곡의 미루나무’ 한 그루가 관람객들을 맞는다. 사형수들의 한이 서려 있어 미루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일제시대 당시 400여명이 이 곳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사형장 안에는 사형수가 앉는 의자 위로 당시에 실제로 쓰였던 굵은 동아줄이 내려져 있다. 개폐식 바닥이 내려가면 의자가 떨어지면서 사형이 집행되는 방식이다. 사형장 바로 옆에는 일제가 사형을 집행한 시신을 형무소 밖 공동묘지까지 몰래 버리기 위해 뚫어놓은 비밀통로인 ‘시구문’이 있다. 일제가 만행을 감추기 위해 이 곳을 폐쇄했으나 92년 입구에서 40m까지 복원됐다. ●봄나들이 코스로도 가볼만 역사관에는 세월의 흔적을 알려주는 철근 녹슨 자국, 바래진 외벽 등이 남아 있어 사진동호회나 ‘디카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실제 수형시설이었던 ‘10·11·12옥사(獄舍)’는 역설적이게도 신혼부부들의 웨딩촬영장소로도 종종 쓰인다. 인물을 생생하게 보이게 하는 빨간색 벽돌건물이 시내에서 흔치않다는 게 이유다. 역사관인 영화 ‘친구’,‘광복절특사’, 드라마 ‘토지’ 등의 배경으로 쓰이기도 했다. 역사관은 2시간에 20만원의 장소이용료를 받지만 지나치게 상업적인 목적으로는 대여를 해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관람료는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려 서대문형무소박물관 출구를 찾으면 된다. 문의 (02)363-9750.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가족과 함께 가볼만한 서울의 성곽

    가족과 함께 가볼만한 서울의 성곽

    압축성장의 표본인 서울의 국적은 한국이 아닌 ‘세계’다. 도심은 일부 고궁을 제외하고는 미국 뉴욕, 일본 도쿄와 마찬가지로 빌딩군과 아스팔트로 덮여 있다. 아파트숲으로 덮인 시 외곽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서울이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라는 거의 유일한 증거는 성곽들이다. 서울성곽, 남한·북한산성 등 서울의 도심과 외곽을 아우르는 인공 유산인 성곽은 오랜 역사의 질곡을 온 몸으로 견딘 채 오늘도 서울 시민들을 넉넉한 가슴으로 안고 있다. 꽃봉오리가 제 몸을 틔우는 완연한 봄날, 역사의 숨결이 초목들과 한데 어울려 넘실대는 ‘자연 역사 박물관’ 성곽으로 연인과 가족들과 함께 찾아가자. ●도심을 품고 있는 서울성곽 서울의 성곽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적은 서울성곽이다. 조선 개국 뒤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한 석조성곽이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낙산·남산·인왕산을 이으면서 경복궁을 에워싸고 있다. 둘레는 18.127㎞에 이른다. 하지만 일제 침략과 도시계획,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까지 거치며 거의 모두 파괴됐다. 지금은 서울 토박이도 서울성곽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지난 1976년부터 꾸준한 복원 결과 10㎞ 정도 제 모습을 찾았다. 원래 서울성곽의 관문이었지만 이젠 차량의 ‘섬’이 된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등에서도 성곽의 흔적을 따라 올라가면 조선시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원래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낙산을 중심으로 한 길.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서 나와 흥인지문에서 낙산공원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창신성곽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어 30분쯤 타락산을 따라 오르면 ‘서울의 몽마르트 언덕’이라는 낙산공원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는 서울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공원 주차장 쪽으로 내려와 이화장을 지나면 대학로 뒤쪽 혜화문(동소문)과 만나게 되고, 이어 성북지구까지 성곽이 연결돼 있다. 또 혜화동 서울과학고등학교 뒷길을 따라 응봉과 숙정문(숙청문)까지 이어지는 길에서도 서울성곽을 만날 수 있다. 인왕산 성곽길에서도 서울성곽의 운치를 접할 수 있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이나 사직공원에서 경사가 급한 인왕산길을 30분 정도 오르는 길에 기암괴석과 함께 성곽의 장중한 모습이 펼쳐진다. 자하문터널 위 창의문(자하문·북문)에서 올라갈 수도 있다. 이외에도 숭례문에서 남산의 백범광장과 팔각정·서울타워를 거쳐 타워호텔로 이어지는 길이나 장충체육관 뒤에서 신라호텔 뒤로 이어지는 길에도 서울성곽의 예스러운 풍치와 모습이 잘 보존돼 있다. ●서울의 요충지 남한·북한산성 서울의 외곽에서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성곽을 만날 수 있다. 남한산성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일대에 해당한다.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시·하남시·광주시 등에 걸쳐 있다. 본성 둘레는 8㎞, 외성은 12㎞에 달한다. 성 안에서나 바깥에서 죽 돌면 남한산성 전체를 볼 수 있다. 한양을 지키던 대표적인 군사적 요충지답게 많은 문화재도 품고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1호로 지정돼 있는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지휘 및 관측을 위해 지어진 누각이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 조선 시대 임금이 거둥할 때 머물던 별궁인 행궁 등도 눈길을 잡아 끈다. 관광객들이 애용하는 길은 송파구 마천동에서 올라오는 등산길이다. 지하철 5호선 마천역에서 출발, 공수부대를 지나 3㎞ 남짓한 등산로를 따라 1시간30분 정도 올라가면 서문에 도착한다. 혹은 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로 성남 복정·태평사거리를 거쳐 남문으로, 광지원 등을 지나 동문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자리잡고 있는 북한산성은 서울 은평구와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등에 퍼져 있다. 백제 계루왕 때인 132년에 처음 축성된 뒤, 조선 숙종 때 수도 방위를 위해 돌로 쌓여졌다. 전체 둘레는 12.7㎞, 성벽을 둘린 체성(體城)의 길이는 8.4㎞에 이른다. 현재 대서문,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 등의 문루가 복원돼 있다. 성곽을 따라 등산로가 이어져 있어 북한산을 산행하면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밖에도 행궁, 창고, 장대 등 많은 유적지와 사찰문화재가 산재돼 있다. 교통도 편리한 편. 지하철 1호선 망월사역·도봉산역,3호선 구파발역,4호선 길음역·수유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백제의 숨결 여전한 토성들 화려했던 백제 문화의 발상지답게 당시 성들도 송파구 지역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 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풍납리토성과 몽촌토성. 평지성 토성인 풍납리토성은 서북쪽으로 한강, 남쪽으로 성내천과 접해 있다. 성벽 둘레는 3470m로 풍납동을 감싸안고 있다. 광복 이후부터 꾸준히 발굴 작업이 계속돼왔고, 지금도 정비작업이 한창이다. 지하철 5·8호선 천호역이나 8호선 강동구청역에서 내려 도보로 5분 남짓 걸린다. 또 다른 백제 초기의 토성인 몽촌토성은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에 있다. 크기는 남북 730m, 동서 540m이다. 성벽의 높이는 대부분 30m 정도로 지금은 넓은 잔디밭과 산책로로 조성돼 있어 운동이나 소풍을 즐기는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밖에 광진구 광장동의 아차산성,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종로구 홍지동 탕춘대성도 서울 경기에서 찾아갈 만한 성곽들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서울의 성곽엔 무슨 사연이…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의 성곽은 역사 이래 한민족의 숨결을 오롯이 담고 있다. 서울을 수도로 삼은 백제와 조선은 물론, 고려 시대의 문화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와 한국전쟁, 무분별한 근대화라는 ‘괴물’은 전통 유산인 성곽을 제멋대로 파괴했다. 성곽이 역사교과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제의 도읍지로 출발 백제 왕성인 풍납리토성, 몽촌토성은 서울 문명의 첫 흔적이다. 이들 토성은 백제의 초기 도읍지인 위례성 가운데 하나인 하남위례성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지금까지 풍납리토성에서는 다양한 토기 조각과 가락바퀴, 우물터, 해자 등 백제 초기 철기시대 유물 등이 발굴됐다. 몽촌토성에서도 삼족토기, 벼루, 화살촉 등이 출토됐다. 이곳은 비록 백제가 475년 수도를 부여로 옮긴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현재 진행중인 풍납리토성 발굴 조사 등을 통해 번성했던 백제 문명이 더욱 자세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도 아차산성, 이성산성, 대모산성, 행주산성 등 많은 성곽들이 서울에 쌓였다. 중국과의 교류가 가능하고 넓은 평야가 자리잡은 전략요충지로서의 서울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개경을 도읍으로 삼았던 고려도 지리도참설의 영향을 받아 서울을 중시,3경 가운데 하나인 남경으로 삼았다. 창경궁 부근에 가궐이, 북한산에는 중흥산성이 지어졌다. ●일제 침략의 고통 떠안은 성곽 서울성곽과 북한산성, 남한산성은 모두 조선시대 때 수도 한양의 방위를 위해 축조됐다. 서울성곽은 태조와 세종 때인 14세기 말 15세기 초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숙종 때 다시 축조됐다. 삼국시대 때 처음 토성으로 쌓여졌던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은 각각 광해군과 숙종 때 석성으로 개축됐다. 그러나 조선시대 성곽은 구한말부터 시작된 일제의 침탈로 크게 훼손됐다. 전차와 경부선 철도, 조선신궁 등의 공사로 대부분의 성벽은 물론 동대문과 남대문을 제외한 문들도 거의 다 헐렸다.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울성곽은 광복 후 정치적 혼란과 한국전쟁 등 행정 공백기를 틈타 성곽 주변에 무허가 건물이 마구 들어섬에 따라 더욱 파괴됐다.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다. 일본은 북한산성에 헌병대를 주둔시켰고, 산성 안의 시설물을 대부분 불태웠다. 그나마 남아있던 유적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초토화됐다. 구한말 의병운동의 거점이 됐던 남한산성도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거의 무너졌다가 복원됐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직격토론] 日 “한국 독도지배 강화땐 맞대응”

    [직격토론] 日 “한국 독도지배 강화땐 맞대응”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영유권 주장을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면서 한·일 양국관계가 유례없는 냉각기를 맞고 있다. 서울신문은 8일 건국대 법대 김창록 교수와 도쿄신문 야마모토 유지(山本勇二) 서울지국장의 대담을 통해 교과서·독도 문제 등 쟁점과 양국간 동반자 관계 재정립을 위한 해법을 찾는 자리를 마련했다. ●야마모토 유지 지국장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다. 양국의 외교로 사태가 현재보다 나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10%도 없고 관심도 없다. 한국이 독도에 대한 지배를 강화한다면 일본도 대응을 할 것이다. 지난해까지는 다케시마에 대한 보도가 없었는데 일본 정부의 대응도 변한 것으로 짐작된다. 교과서의 경우 합격본이 신청본보다 많이 수정됐다. 부드러워졌다. 채택률도 높아질 것이다. ●김창록 교수 독도 문제는 일본 정부가 지나치게 갈등을 키우고 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분명히 한국의 땅이다. 한국민들은 영토 문제만이 아니라 과거사와 직결된 인식을 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계속 도발하면 이 문제가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진다. 문제의 본질과 한·일 관계를 고려해 잘 관리해야 한다. 교과서의 경우 역사인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계속 검정과 채택률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일본은 역사문제에 대한 몰이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야마모토 양국 국사교과서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한·일합병에서 광복까지 40년을 60페이지에 걸쳐 다뤘다. 일본은 2∼3페이지밖에 없다. 이같은 정보량 차이가 한·일 양국민의 역사 인식의 차이로 나타난다. ●김창록 양의 문제만이 아니다. 교과서 기술에 깔려 있는 역사 인식이 문제다. ●야마모토 도쿄신문에 한국 초등학교 역사교과서 내용을 소개했다. 일본 신문에서 한국 교과서를 다룬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안용복, 다케시마 편입, 위안부 문제, 안중근·유관순 선생 얘기도 했다. 조선총독부는 기간 시설을 정비하고 개발을 하고 토지 조사도 했지만 한국인은 이 점에 대해서 강하게 부인한다고 기사를 썼다. ●김창록 최근 문제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 사회가 분기점에 와 있고 그 분기점이 무엇을 의미하며 방향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일본 정부의 태도가 과거와 상당히 달라졌다. ●야마모토 4년 전 교과서 파동 때와 비교해보면 과거에는 일본의 많은 교과서가 위안부 표현을 썼지만 현재는 거의 없다.4년 전보다 역사 반성이 명백하게 줄어들고 일본이 아시아 근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부분이 늘었다.1995년 무라야마 총리는 식민지배와 전쟁에 대해서 사과했다. 고이즈미 정부도 이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20년 동안 일·미동맹, 중국의 강대국화,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우경화라고 볼 수 있지만 일본 사회가 무라야마 총리 시대와는 달라지고 있다.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대로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의미가 없다고 하기도 한다. ●김창록 1995년 무라야마 총리는 식민지배를 사과했고 1998년 한·일 신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도 오부치 총리가 거듭 사과했다. 고이즈미 정권 이후 기본 입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야마모토 일본 사회는 1998년 이후에 변화가 있었다. 북한의 움직임이다. 핵문제나 납치문제가 일본의 태도를 변하게 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김창록 북한 관련 문제들이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자위대 파병과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이 변하는 일본 사회를 보여준다. 일본의 정체성 변화가 한국에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야마모토 일본 국민이 최근 2∼3년간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 문제이다. 북한이라는 위험한 나라가 있어서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됐다. 대북 압력책과 테러와의 전쟁을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 변했다고 본다. ●김창록 대응방식이 중요하다. 납치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실제 갖는 의미보다 너무 크게 과장됐다. 아시아 전체 질서에서 다뤄져야 하는데 너무 선정적으로 접근했다. ●야마모토 일본은 납치문제 때문에 북한을 지지할 수 없다. 일·북 수교를 하자는 여론이 줄어들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직접 시작한 외교니까 수교를 위해 노력하지만 외무성은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김창록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지향하는 국가로서 근린국가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북한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면 어떤 문제도 풀 수 없다. 세계의 지도국이 되겠다고 하기 전에 아시아에서 먼저 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야마모토 일본 국민들은 일·한 관계에서 일본이 가해자, 한국이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다.1998년 이후 월드컵 등 문화교류가 강화되고 파트너십이 생기면서 일·한 관계는 가해자·피해자가 아니라 동반자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일·북 관계는 납치와 미사일 문제 등을 이유로 일본이 피해자라는 생각이 계속됐다. ●김창록 한국민은 북한 정권을 지지하진 않지만 북한을 형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지메를 당하는 데 거부감을 느낀다. 일본은 한국이 같은 자유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역사적 맥락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잘못된 판단이다. ●야마모토 일본의 70대 이상 정치인들은 외교적으로는 사과를 하는 느낌이 있었지만,50∼60대 정치인들은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김창록 한국도 변했다. 김종필로 상징되는 일본통이 물러났다. 그 사람들이 지나치게 일본의 이해관계를 생각하면서 자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1987년 이후 한국은 크게 변했다. 스스로 민주화를 이루어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과거 문제보다는 현재의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추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은 저자세 외교로부터 대등한 파트너십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1998년 ‘한·일 신파트너십 선언’으로 과거사 문제를 털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과거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진정한 파트너가 되자고 약속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이런 역사적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야마모토 일본과 한국 정치인의 교류는 활발하지만 불편해 보인다. 역사문제 때문인 것 같다. 일본 정치인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의 국회의원들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도 일본의 새로운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없다. ●김창록 적극적인 상호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은 양국 인식차를 해소하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식민지 배상문제를 해결하는 협정이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미봉책으로 덮어오다 보니 지속적으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야마모토 사할린·원폭피해자·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은 1980년대부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응해 왔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아시아 평화기금 창설에도 간여하지 않았는가. 역사 인식을 정리하자는 데 동의하지만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당시로서는 최선의 외교방법을 제의했는데 한국은 일본의 대응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김창록 원폭 피해자 문제의 일부 해결은 피해자들이 소송을 통해 쟁취한 것이지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어느 정도 노력을 했지만 피해자를 설득하기에는 부족했다. 게다가 고이즈미 정권 들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태도가 매우 부정적으로 변했다. 노무현 정부는 최근 일본이 보여주는 모습은 진정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큰 인식차가 문제의 근원이다. ●야마모토 당분간 양국관계의 돌파구는 없다. 고이즈미 총리가 상반기에 한국을 오더라도 불편한 분위기가 될 것이다. 동북아가 계속 대립·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너무 어려운 시대가 왔다. 한편에서는 교류가 계속된다. 일본 관광객의 숫자는 변함없다. 이론 대립과 교류가 동시에 나오는 시대이지만 희망을 찾고 싶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창록 낙관적이라고 전망할 수 없다. 갈등의 뿌리가 너무 깊다. 식민지배에 대한 양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한 계속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역사에 대해 보다 겸허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리 구혜영 박지윤기자 koohy@seoul.co.kr
  • 주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남은 인생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겠습니다.”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원로목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참회하는 행사를 열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는 8일 서울 도곡동 강변교회에서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주제로 월례 조찬기도회와 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김명혁 목사의 사회로 김창인(충현교회), 강원용(경동교회) 원로목사와 조용기(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등이 각각 15분씩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가장 먼저 발표자로 나선 김창인 목사는 광복 이후 교회재건운동을 펼치면서 교회의 분열을 막지 못한 점을 반성했다. 김 목사는 “1945년 광복 후 개신교는 일제 때 신사참배 문제를 놓고 장로교와 고려파로 분열했는데,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고 고백했다. 강원용 목사는 개신교 내의 일치문제에 소홀했던 것, 환경문제에 무관심했던 것 등에 대해 스스로 회초리를 들었다. 강 목사는 “1965년부터 불교, 원불교 등 종교 간 대화운동을 펼쳐왔는데, 정작 가장 먼저 해야 할 기독교 내 대화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서로 갈라지고 대립해온 우리 개신교가 참된 대화와 협력에 힘썼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조용기 목사는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제시한 ‘값 싼 은혜’라는 말을 들어 자신의 죄를 반성했다. 조용기 목사는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삶이 없는 ‘값싼 은혜’를 가지고 살았다.”고 회고하며 “앞으로 율법과 계명을 받들고 은혜와 진리 속에서 새 사람으로 살겠다.”고 약속했다. 조 목사는 이어 “말로만 사랑을 외쳤고, 이웃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으며, 사회의 고통과 부도덕에 너무 침묵했다.”며 “이제부터라도 있는 힘을 다해 사회의 정의를, 우주의 하나님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열린세상] 독도가 북핵을 만났을 때/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북핵문제는 북한의 회담불참 선언과 미국의 회담복귀 요구가 평행선을 그은 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계기로 외교전쟁이 진행되면서 급속도로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한국이 방위비분담금 축소 의사를 밝히자 주한미군은 한국인 근로자의 대량해고 방침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 발언은 한·미동맹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불편한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래저래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일간 독도를 둘러싼 갈등은 최근 몇주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로 자리잡았다. 연일 수많은 시위 군중이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일본대사 추방과 독도 사수를 외치며 데모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하기까지 하다. 일본총리 화형식과 함께 시위대가 손가락을 자르는 모습에서는 독도가 우리땅임을 확인하는 확고한 결의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독도 관련 시위현장을 보면서 하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 사회의 좌우, 진보와 보수가 모두 동일한 목소리를 내면서 하나가 되어 결의를 다진다는 점이다. 대북정책을 포함하여 한·미관계와 주한미군, 이라크 파병 등 거의 대부분의 외교안보 이슈에서 진보와 보수는 이른바 남남갈등이라는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도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접근법과 해법은 놀라울 정도로 상이했고 양극단을 달리곤 했다. 그런데 독도문제가 터져 나오자 우리나라의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심지어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모두 똑같은 분노와 결의를 표출하는 것이다. 일본대사관 앞에 반핵반김 단체 회원과 한총련 및 통일연대 회원들이 같은 목소리로 일본 규탄을 하는 모습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독도문제에 관한 한 남남갈등이 무색할 정도로 한목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북핵문제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진보진영은 미국의 대북 무시 정책과 협상의지 결여를 비판하면서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 요구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반면 보수진영은 북한의 핵카드가 협상용이 아니라 핵보유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인식하에 북한의 강경노선이 사태를 악화시키므로 북한의 태도변화가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독도 문제에서는 보수 진보의 구분 없이 일본을 비판하는 똑같은 입장을 보이지만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반미와 반북이 강조되면서 서로 다른 인식과 해법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독도 문제만을 따로 떼어 이야기할 때는 소리 높여 반일을 외치던 보수진영이, 독도와 북핵문제가 섞여서 다뤄지면 일부이긴 하지만 딜레마에 빠져 내심 반일의 정도가 약해지곤 한다. 독도와 북핵 중 어느 것이 더 시급한 것이고 따라서 일본과 북한 중 어느 편이 더 적대적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얼마 전 필자가 토론자로 참석한 북핵관련 세미나에서는 독도문제보다 북핵문제가 보다 사활적인 안보 이슈라면서 독도 문제를 이유로 북핵을 해결하기 위한 한·일공조가 약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즉 보수진영의 입장에선 독도로 인해 북한을 압박하는 한·일공조가 흔들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고민이 존재하는 것이다. 독도문제를 따로 고민하면 일본의 책임을 묻고 비판할 수 있지만 독도와 북핵문제가 같이 고민되면 일부 보수진영은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더 큰 나머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이 밉긴 하지만 그것이 자칫 북핵전선에서 한·일간 공조를 해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특히나 독도문제를 놓고 남북공조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상황은 더더욱 보수진영에 용납하기 힘든 것이 된다. 북한 때리기를 위해 한·일공조가 더 필요한 마당에 독도 때문에 남북공조로 일본규탄을 한다면 이는 우리 보수진영에 매우 난처한 지경이 될 것이다. 민족보다 반공이 더 중요했고 반공을 위해서라면 친일파 등용도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광복 후 역사가 오버랩되면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 “한·중 사이버게임 대전 올 광복절에 개최 추진”

    “한·중 사이버게임 대전 올 광복절에 개최 추진”

    “올해 광복절에 한국과 중국간의 사이버 게임(스포츠) 대전을 추진하겠다.” 6일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에 취임한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e-스포츠 발전에 대한 일성으로 이같이 밝혔다. e-스포츠를 국민 스포츠로 만들고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 국제 무대를 주도하겠다는 포부다. 그는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협회 2기 출범식에 앞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김 사장은 “e-스포츠는 1500만명 이상이 즐기는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다.”면서 “전세계 게이머들의 꿈이 한국 무대에 진출하는 것인 만큼 이에 걸맞은 국제 위상을 정립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중국과 함께 아시아 e-스포츠 대전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광복 60주년이자 동시에 중국의 2차대전 종전 60주년인 광복절에 사이버 한국-중국 대회를 갖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월드사이버게임즈(WCG), 월드e스포츠게임즈(WEG) 등 국제 e-스포츠 행사 등을 협회 안에 담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현재 11개 게임구단 중 아직 스폰서가 없는 6개 구단이 구단주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전용 경기장을 짓기 위해 올 하반기쯤 어디에 어느정도 크기 등으로 만들면 좋을지 타당성 조사를 벌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e-스포츠가 외국산 게임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 국산 게임 개발과 종목 표준화 등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e스포츠 상무팀 창설 추진”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회장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e스포츠협회 제2기 출범식’에서 프로게이머의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군 e-스포츠 상무팀 창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국군 e-스포츠 상무팀 창설이 400여 프로게이머의 숙원임을 잘 알고 있다.”면서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국군 상무팀 창설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또 “올해 광복절에는 남북 청소년 게임대회가 열리도록 북측과 교섭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①어장 황폐화 주범 고테구리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①어장 황폐화 주범 고테구리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해양수산부에서 어선감척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연안어선은 90년대 중반부터 실시됐으며 어장황폐화를 가져온 소형기선저인망어선에 대해서는 이달부터 본격적인 단속과 함께 정리에 들어갔다.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어천을 다섯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어장 황폐화를 가져온 소형기선저인망어업은 속칭 고테구리로 불린다. 일제때 우리나라 연안에서 일본인들이 자행한 어법으로 광복이후 국내 어민들도 도입했다. 당시는 무동력이어서 어자원을 고갈시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동력선이 등장하면서 어업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시켰다. 1953년 수산업법이 제정되면서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연안에서의 조업이 금지됐으나 50년이 넘도록 쉬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전남 1815척… 절반넘어 해양수산부가 소형기선저인망어선 정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조사한 결과 국내 고테구리어선은 3586척. 지역별로는 전남이 1815척(50.6%)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경남((726척)·전북(656척) 등 순이며, 경기에는 단 한척뿐이다. 대부분 어업허가를 갖고 고테구리어업을 하고 있으며, 무허가 어선은 499척에 불과하다. 고테구리 어선들은 경남 홍도 및 남해 세존도, 전남 소리도와 백도주변 해역, 서해안은 전북 위도와 어청도사이 해역을 훑고 다닌다. 지난해 8월 이후 단속이 강화되면서 일부는 제주근해까지 내려가 조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도 김상옥 어업지도계장은 “도내에 선적을 둔 10t급 고테구리 10여척이 추자도 근해에서 조업한다는 첩보를 입수했지만 꼬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요즘은 주로 야간이나 새벽에 조업하면서 단속을 피하고 있지만 종전에는 주·야간을 가리지 않고 버젓이 조업했다.30∼50척씩 선단을 이뤄 조업하다 단속에 조직적으로 맞서거나 예사로 단속 공무원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어업지도선 고의로 들이받기도 지난해 8월 전북 군산 앞바다에서 불법어업을 단속하던 공무원이 폭행을 당했고,2003년 2월에는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고테구리 어선을 적발한 공무원 3명이 어민 김모(42)씨가 휘두른 흉기에 부상을 입었다. 또 지난해 6월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어업지도선이 고테구리선을 적발, 선원을 검거하려고 하자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27척이 몰려 방해했다. 고테구리 어선이 어업지도선을 에워싼 채 1척이 돌진, 선박을 파손시켰으며, 다음날에는 여수지역 어민들이 여수신항에 정박 중인 어업지도선을 국동항으로 강제예인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고테구리는 지난 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전 해역에서 성행했으나 동해안과 제주해역에서는 7∼8년 전쯤 근절됐다.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해안에서는 여전히 고테구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법어업에 대한 당국의 단속은 미온적이었고, 처벌이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지역경제를 위축시킨다는 지적에 반짝 단속에 그쳤고, 지난 96년이후 연간 3000여건이 적발되지만 생계형 범죄라는 이유로 벌금형으로 선처,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해양부는 지난해 8월부터 법무부와 검찰, 해양경찰청, 행정자치부 및 지자체 등과 합동으로 불법어업은 물론 불법어획물 유통에 대해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고테구리 조업은 강력한 단속에 크게 위축됐지만 불법조업은 여전하다. 지난달 29일 자망어선 선주 유모(54)씨와 통발어선 선장 제모(51)씨가 고테구리 어업을 하다 통영해경에 긴급체포됐다. ●연안 어업소득의 1.5배 달해 어민들이 고테구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은 손쉽게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테구리 어선의 연간 소득은 2500만∼6500만원으로 여타 연안어업에 비해 1.5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어민회 총연합 김인규 의장은 “수입이 얼마인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한달에 15일정도 조업하는 것으로 보고 판단하라.”며 정확한 수입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관계 공무원들은 부부가 조업하는 3∼5t어선의 경우 한번 조업으로 30만원정도 벌어 기름값 등 경비 10만원을 제하고도 20만원쯤 남긴다고 설명했다.10t이상 대형은 이보다 훨씬 높다. 선원 3명이 4∼5일 조업으로 400만∼500만원을 거뜬히 번다는 것이다. 고테구리 그물에 걸리는 어류는 고급 횟감인 넙치와 돔을 비롯, 새우 문어 등 저서어종. 자연산 선호풍조에 따라 활어는 부르는 게 값이다. 아울러 몸길이 2∼3㎝정도의 치어는 가두리양식장에 넘길 수 있어 판매도 손쉽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고테구리 어업이란 소형기선저인망어업인 고테구리(小手繰)는 주로 20t 미만의 소형어선을 이용, 바다 밑바닥을 그물로 끌어 고기를 잡는 저인망 어업을 일컫는다. 고테구리 어업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25∼30㎜ 크기의 촘촘한 그물망코로 만들어진 어구를 사용, 치어부터 성어까지 온갖 어종을 싹슬이해 자원을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고테구리는 일제시대때 우리나라 수역에서 불법으로 고기를 잡던 일본 기선저인망 어업이 그 유래다. 당시만 하더라도 조그만 목선인 무동력선을 이용하고 어구나 고기잡이 기술이 원시적인 수준이어서 그다지 문제가되지 않았는데, 광복이후 사회 질서가 혼란한 틈을 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고테구리 어업을 막고 수산자원 보호 등을 위해 1953년 연안수역에서의 기선저인망 영업을 금지시키는 수산업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정부가 1965년 한·일어업협정때 일본으로부터 지원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어민들을 지원하자 일부 어민들이 동력선을 구입, 고테구리 어업에 나서는 등 한때 전국적으로 그 규모가 5000척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어업방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어선 한척이 자루모양의 그물을 로프로 연결해 바닥을 끌면서 고기를 잡는데 어구 입구를 넓힐 수 있는 전개판(展開板)을 달고 있어 어획량이 다른 어업에 비해 월등히 높다. 특히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어구 끝부분에 자루를 매달아 놓아 치어의 남획은 물론, 어구가 바다 밑바닥을 끌게 돼 생태계를 파괴시켜 연안 어족자원의 씨를 말리는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바다청소선 ‘환경1호’ 홍기주 선장 양식장이 늘고 대형그물 사용 횟수가 증가하면서 바닷속이 쓰레기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해양부는 지난해 조사한 국내 10대 어장의 쓰레기 양은 2만t이고 연안어장으로 확대하면 40만t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수거실적은 2678t이고 이중 폐어망이 2400t에 그쳤다. 올해 정화 사업비는 지난해와 같은 100억원이 책정됐다. 한국해양오염방제조합 소속으로 전남도 내 바다 청소선인 환경 1호(120t급) 선장 홍기주(55)씨는 34년차 선장이다. 유령어업이 무엇인가. -폐그물이 올라올 때면 주렁주렁 걸려 죽은 썩은 고기들의 냄새로 코를 들지 못할 정도로 악취가 심하다. 작은 고기나 게 등이 폐그물에 걸리면 이를 잡아먹으려는 좀 더 큰 고기가 순차적으로 걸려들어 죽어간다. 이를 어민들이 유령어업이라 부른다. 폐그물에 한 번 걸리면 절대 빠져나갈 수가 없다. 불법어구량은. -지난해 여수 관내 거문도 나로도 일대에서만 폐어구와 폐기계 등 800t을 건져 올렸다. 수백년이 가도 썩지 않는다는 양식장에서 버린 10여m짜리 굵은 동앗줄과 여기에 끼어둔 고무, 태풍에 떠밀려 온 그물량이 엄청나다. 또 게나 낚지·문어 등이 들어가는 폐통발이 가장 많다는 게 문제다. 삼중자망은 길이가 200m 폭 20m도 넘는다. 농어잡는 유자망, 피조개와 새조개 채묘틀 그물 등 가지가지다. 단속이 강화되면서 새 그물도 적잖게 올라온다. 아마 달아나면서 잘라버린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작업하나. -한국해양기술원이 음파탐사기로 쓰레기 지점을 파악하거나 어민들 신고로 잠수부가 확인한 뒤 작업에 들어간다. 양식장과 어장이 형성된 곳에 쓰레기도 많다. 지형적으로 완도군과 신안군 해역은 섬으로 둘러싸여 조류의 흐름이 약해 쓰레기가 더 많다. 한 지역에서 3∼4개월씩 작업한다. 수심 7∼40m에 쇠갈고리를 던져 넣어 배를 끌면서 쇠줄로 감아 올린다. 길이 40m 폭 30m 짜리 그물이면 20t도 넘는다. 그물이 바닥 70㎝ 이상 박혀 있다가 배가 끌면서 튕겨 나와 100t이 넘는 배가 기우뚱할 때면 아찔하다. 그물이 크고 엉켜 있다 보면 2∼3일 동안 끌고 다니다 잠수부가 줄을 잘라 올리기도 한다. 이 쓰레기는 바지선으로 옮겨져 운반·처리된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시론] 공수처 신설은 수사체계 혼란 부른다/김주덕 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법학박사

    [시론] 공수처 신설은 수사체계 혼란 부른다/김주덕 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법학박사

    공직부패수사처 신설은 꼭 필요한가? 공수처를 설치하지 않으면 고위공직자의 부정과 부패를 근절시킬 수 없는 것인가? 결론은 간단하다. 공수처를 새로 만든다고 해서 부정부패 척결에 대단한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공수처는 옥상옥의 기구로서 아까운 예산만 낭비할 뿐 아니라 기존의 수사체계를 흔들면서 공연히 위헌 시비만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수처는 대통령 직속 부방위 소속의 독립기구로서 고위 공직자 본인과 그 가족의 범죄를 수사하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별로 유례가 없는 특별수사기구를 설치하여 부정부패를 줄이겠다는 발상에는 동의할 수 없다. 새로운 수사기구를 만드는 것이 획기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광복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부정부패는 법과 제도가 미비해서 근절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공수처 신설에 엄청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뇌물사건과 수사의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다. 먼저 공수처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는 것은 헌법체계에 맞지 않는다. 헌법은 국민의 권리의무와 직결되는 집행기능은 행정 각부에 부여하고, 각 부를 지휘 감독하는 장관에 대한 의회통제권을 인정하고 있다. 수사권 행사와 관련하여 법무부장관과 행자부장관은 각각 검찰과 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하여 국회의 통제를 받고 정치적 책임을 진다. 부방위원장은 국회 출석의무도 없고 해임건의 대상도 아니다. 국회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방위에 수사기능을 부여하는 것은 의회통제원리 및 책임행정원칙에 위배된다. 다음으로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되는 공수처는 수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있어서 태생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공수처장에 대한 탄핵 사유는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로 제한된다. 위법한 수사가 아닌 한 탄핵 대상이 되지 않는다. 표적수사, 축소 은폐 등 부당한 수사에 대하여는 국회의 견제수단이 전혀 없다. 또한 일정한 범위의 공위공직자 및 그 가족만을 별도로 떼어 특별수사기구가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그 처우를 다르게 하는 결과가 되어 헌법 제11조 평등원칙에 배치된다. 게다가 검찰과 공수처의 수사 결과가 다른 경우 국민의 불신이 누적되고 여기에 정략적 의혹 제기가 더해지면 커다란 혼란이 우려된다. 정치적인 수사기구인 공수처 신설로 기존 사정기관에서 경쟁적 수사 활동을 할 경우 정치권과 공직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사정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또한 강제처분 등 인권옹호에 관한 사항만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하고 수사를 종료한 때에만 송치의무가 있어 내사 활동에 대하여는 견제수단이 없다. 내사 활동은 정치인을 길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고, 상시적인 정보 수사기능이 결합된 제2의 사직동팀의 부활이 우려된다. 이와 함께 수사 대상으로 고위공직자의 가족까지 포함하고 있어 일종의 연좌죄에 해당한다. 수사 대상에 여야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 선출직까지 포함되어 표적수사, 정치보복 도구로 악용될 경우 견제수단이 없다. 그동안 총풍, 안풍, 세풍 등 정치적 사건마다 중립성 시비가 있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대통령 직속기구인 공수처가 정치인을 수사할 경우 더 심각한 정치 쟁점이 될 것이다. 공수처를 신설해서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발상은 현실성이 없다.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만 있으면, 부정부패 척결은 현재의 수사 체계로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은 공수처 설치 논의보다는 대선자금 수사를 제대로 해서 국민의 신뢰를 조금씩 쌓아가고 있는 검찰이 수사권을 공정하고 철저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할 때다. 그것이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효율적인 방안이다. 김주덕 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법학박사
  • [부고]

    ●김용태 전 국회의원 민간인으로 5·16군사쿠데타에 참여했던 김용태 전 의원이 지난 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80세. 김 전 의원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했으며, 지난 1961년 5·16군사쿠데타에 몇 안되는 민간인으로 참여해 공화당 원내총무까지 지내는 등 3공정권의 실세였다. 김 전 의원은 63년 6대 의원을 시작으로 10대 의원까지 내리 5선을 기록했으며, 국회운영위원장, 제1무임소장관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영규씨와 2남2녀. 서울 강남 삼성병원, 발인은 6일 오전 8시. (02)3410-6914 ● 통일운동가 류낙진씨 영화 ‘어린 신부’ 문근영(18)의 외할아버지로 더 잘 알려진 통일운동가 류낙진씨가 별세했다.78세. 2일 유족들에 따르면 류씨는 1일밤 11시40분쯤 광주 북구 현대병원에서 숙환으로 숨졌다. 류씨는 한국전 직후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했다가 구속, 석방된 뒤 전남 보성 예당중 교사로 재직하던 71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88년 6공 정권때 20년형으로 감형된 뒤 90년 전향서를 제출하고 가석방됐지만 94년 구국전위 사건으로 또다시 검거됐다. 이어 류씨는 광주 재야인사들이 구성한 석방추진위원회 등의 석방운동에 힘입어 99년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돼 이후 광주에서 줄곧 생활해왔다. 빈소는 현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 등 장례절차는 재야인사들의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062)570-0402 ●우홍제(전 서울신문 논설주간)복희(이화재단 상임이사)애자(재미 사업)씨 모친상 조중형(웅진 부회장)최명무(재미 의사)씨 빙모상 우의정(이대목동병원 의사)씨 조모상 2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5일 오전 7시 (02)2650-2741 ●안성욱(대검찰청 검사)성은(명성C&D 부장)씨 부친상 김기형(한국자산신탁 과장)씨 빙부상 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5일 오전 9시 (02)3010-2239 ●문형석(한국철도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혜정(미국 거주)씨 부친상 조기호(미국 거주)씨 빙부상 2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5일 오전 7시30분 (02)2001-1095 ●이경재(전 방송작가)씨 별세 공항진(SBS보도국 차장)씨 빙부상 3일 서울대병원, 발인 5일 오전 5시30분 (02)2072-2027 ●박제우(바니랜드 대표)씨 부친상 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5일 오전 9시 (02)3010-2268 ●윤수복(우단모피 대표)귀복(〃 상무)영중(로드훠 대표)씨 모친상 박종문(우단모피 부장)씨 빙모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5일 오전 6시 (02)3010-2270 ●소재완(사업)재준(준영건축 대표)덕자(삼성화재 노원사업소 팀장)씨 모친상 하명우(영천사우나 대표)김순상(한국만화가협회)박용철(신정에어테크 대표)씨 빙모상 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5일 오전 6시 (02)3010-2236 ●문경호(전 전남지방경찰청장)씨 모친상 3일 광주 무등장례예식장, 발인 5일 오전 8시30분 (062)515-4488 ●유진평(건축예술가)진형(신세계공원 이사장)씨 모친상 장덕환(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이영택(국방대학원 〃)씨 빙모상 2일 일산백병원, 발인 4일 오전 10시 (031)919-3099 ●심상우(이큐엔지니어링 직원)씨 부친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11시 (02)3010-2264 ●남정윤(자영업)정훈(GS칼텍스 차장)정두(롯데카드 과장)씨 부친상 홍순용(신한종합개발 부장)씨 빙부상 3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5일 오전 7시30분 (02)921-8899 ●한만춘(전 서울가정법원장)씨 별세 명철(전 한미은행 지점장)명수·명훈(자영업)명선(창순물산 대표)씨 부친상 강원식(창순물산 이사)씨 빙부상 김정려(생계백병원 영양부장)씨 시부상 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6일 오전 8시30분 (02)3410-6909 ●진용기(전 동양공업대 화공과 교수)씨 별세 홍성양(전 방일초등학교 교장)씨 상부 진영재(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학과장)씨 부친상 박상호(충남대 기계공학과 학과장)씨 빙부상 3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5일 오전 8시 (02)392-0299 ●김용식(서초구 총무과 국제교류팀장)씨 별세 2일 보라매병원, 발인 5일 오전 4시 (02)831-3899
  • [옴부즈맨칼럼] ‘열린 민족주의’를 키우자/염희진 성균관대신문 前 편집장

    지난 16일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후쇼사판 역사교과서 왜곡 등 ‘일본발 쓰나미’로 한국은 반일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올해는 한·일수교 40주년, 광복 60주년, 을사조약 체결 100주년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갖는 해이다. 따라서 올해 일본과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는 앞으로 한·일관계의 향방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제정 조례안 상정 및 통과를 계기로 불거진 한·일간의 영토·역사 분쟁은 ‘한·일 우정의 해’라는 구호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일본의 계속된 ‘망언과 도발’, 그리고 한국 정부의 ‘신(新)대일독트린 선포’는 양국의 관계를 타협이 불가능한 극단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현실을 다루는 언론보도는 민족감정과 애국심을 부추기는 행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격분하여 일장기를 태우는 시민들의 사진, 일본을 맹비난하는 선정적인 기사 등 반일을 넘어선 혐일(嫌日) 이미지를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도 또 다른 극단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차근차근 사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책임있는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같은 ‘감정의 과잉’이 수용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 한달 동안 끊임없이 불거진 일본 관련 이슈에 대해 서울신문은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를 냈다.“일본의 식민지배는 축복”이라는 한승조 교수의 기고문 파문에서 촉발된 대학 내 친일 청산 움직임에 대해서도, 친일 청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시각과 조사기간이 짧고 검증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우려를 함께 보도했다. 또 일본을 대하는 데 있어 절제하되 일관되고 치밀한 대응을 주문하는 칼럼도 돋보였다(3월25일자 ‘대국적·대양적 시각이 필요하다’,3월24일자 ‘대일분노 무엇을 남길 것인가’,3월23일자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포커페이스). 하지만 한·일 어업협정 폐기 요구, 마산시의회의 ‘대마도의 날’ 제정, 국회가 쏟아놓는 각종 대일 정책, 정부의 신(新)대일 독트린 등에 대한 ‘다른’ 시각은 부족했다. 극단적 반일 정서와 맹목적 민족주의에 기대어, 이를 자성적으로 바라보는 목소리도 작았다. 한·일 어업협정 폐기 주장의 경우, 협정 폐기가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국제사회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학계의 비판 역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서울신문은 어업협정 폐기 주장을 비중 있게 다룬 반면(3월19일자 ‘중간수역 독소조항…한·일어협 갱신해야’),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정치권의 이슈로 단순하게 보도했다. 거시적 관점을 가지고 일본을 바라보는 기획이 부족했던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그때그때 터져 나오는 사안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닌 과거, 현재, 미래의 한·일관계에 대한 방향타를 설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획이 없었다. 냄비근성으로 인해 또다시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가 국민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긴 호흡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서울신문이 후원한 한·일 수교 40주년 세미나 관련 기획(2월19,21일자)은 더욱 돋보인다. 두 회에 걸쳐 보도된 이 기획은 민족에 함몰돼 ‘일본은 무조건 악, 한국은 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비판했다. 일본은 동북아 시대를 함께 이끌어나갈 협력자라는 점에서 일본에 대한 객관적이고 ‘사심 없는’ 연구는 필요하다. 또 지난해에 다루었던 일본 역사교과서 관련 기획(12월24일자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실체와 해법은’)은 국정교과서 체제 후 경직된 한국 역사교육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상생을 위한 열린 서술을 주문하고 비판과 자성을 통해 건전한 대안까지 제시한, 바람직한 기획이었다. 언론은 한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다루는 ‘확성기’가 되기보다 여러 주장들을 논란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즉흥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는 일시적인 감정의 분풀이는 될 수 있어도 내실 있고 장기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닌, 열린 민족주의를 키우기 위한 언론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염희진 성균관대신문 前 편집장
  • 고대 총학 ‘親日’ 10명 발표…연세대는 “반대”

    고대 총학 ‘親日’ 10명 발표…연세대는 “반대”

    고려대 총학생회가 28일 ‘친일 행적 전·현직 교수’ 1차 명단을 발표했다.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를 비롯해 2∼4대 총장 유진오, 문학평론가 최재서, 사학자 이병도 등 10명이다. 그러나 고려대 안팎에서는 ‘친일 행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이 2주일의 짧은 검증 기간을 거쳐 명단을 발표한 데 따른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김성수·유진오·최재서·이병도 포함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날 “김성수는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해 10,12대 교장을 지내며 일제의 전쟁 동원을 지지하고 학병제와 징병제를 찬양하는 글을 다수 썼다.”고 친일 인사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제2∼4대 총장을 지낸 유진오는 1943년 ‘매일신보’에 ‘병역은 큰 힘이다’를 쓰는 등 ‘문학을 통한 친일행적’을 선정이유로 들었다. 총학생회는 1953년부터 21년 동안 영문과 교수로 재직한 조용만은 매일신보 논설위원으로 친일문학을 했으며, 장덕수는 ‘매일신보’에 학병지원을 촉구하는 ‘대용단을 내라’는 시론을 썼다고 밝혔다. 보성전문 출신으로 1955∼1956년 교우회장을 지낸 이병도는 식민사관총서인 ‘조선사’ 간행에 참여했고, 신석호는 ‘조선사 편수회’ 수사관으로 일제의 역사왜곡 식민사관 구축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밖에 보성전문 6대 교장으로 중추원 참의를 지낸 고원훈,‘황국신민의 서사’를 집필한 이각종, 대동동지회 회장을 지낸 선우순, 친일문학지인 ‘국민문학’주간으로 활동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최재서 등이 명단에 포함됐다. 총학생회는 “명단은 총학생회 및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간부 등 10명으로 구성된 ‘일제잔재청산위원회’가 조사하고, 민족문제연구소와 전·현직 교수 3명의 자문을 받아 확정했다.”고 밝혔다. 총학생회는 다음 달 7일 비상총학생회를 열어 교내에 있는 김성수 동상의 철거 및 백서 발간 등 본격적인 활동 방향을 정할 계획이다. ●다른 목소리 낸 연세대 총학생회 그러나 연세대 총학생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 학교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의 ‘백낙준 초대 총장의 동상 철거’요구에 “막연한 반일 감정을 토대로 한 여론몰이에 불과하다.”면서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탈정치’를 표방하는 비운동권인 연세대 총학생회는 “반일감정이라는 막연한 논리보다 체계적·학문적·교육적인 해결책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법”이라면서 “동상 철거보다 공적과 과오를 명시한 게시판을 설치하고 판단은 학우 개인에게 맡기자.”고 제안했다. 한편 당초 이달 말 친일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던 연세대 민노당 학생위는 명단 발표를 새달 초로 미뤘다. ●“섣부른 낙인찍기는 경계” 고려대 교수들은 총학생회의 발표에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외과의 한 교수는 “식민지라는 특수상황에서 한 사람의 행적을 학생들이 몇 주일 만에 재단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섣부른 낙인찍기에 우려를 표시했다. 경제학과의 한 교수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뭔가 해보겠다는 학생들의 모습이 마치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반면 고려대 잔재청산위 유지훈 집행위원장은 “친일행적이 명확하고 누구나 인정할 근거가 있는 사람만 선정했다.”면서 “앞으로 광복 이후 식민사관을 공고히 하는 데 동참했던 사람을 중심으로 신중하게 2,3차 명단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효용 박지윤기자 utility@seoul.co.kr
  • ‘독도사랑 전도사’ 윤한도 전의원

    “독도를 사수하는 길은 하루빨리 독도개발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입니다. 우선 사람이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하거든요. 또 한·일어업협정을 당장에 파기해야 합니다. 지금 파기한들 국제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15·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윤한도(69·경남 의령·함안)씨는 독도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의원시절 원내 ‘독도사랑모임’을 이끌면서 매년 8월14일 독도를 방문하는 등 남다른 독도사랑을 과시했다. 그래서 ‘윤독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역에서 물러난 지금도 ‘독도사랑 전도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26일 오후 서울 연희동 자택 인근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들고 온 보따리를 풀었다. 독도관련 행사를 담은 사진첩, 독도수호 정책자료, 대정부질문서 등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이들을 내보이며 독도문제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연신 목소리를 높인다. 우선 지난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 때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측 대표가 너무 서둘러 서명을 했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굴욕적인 협정체결이나 다름없다는 것. 당시 윤 의원은 이같은 내용을 파악하고 국회에서 ‘을사오적’같은 ‘독도오적’이 있다면서 온몸으로 국회의 비준동의를 막았다. 하지만 김봉호 국회부의장 주재로 기습·날치기통과됐다며 당시의 분을 삭이지 못했다. 두번째는 지금이라도 일본의 속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일본은 오래전부터 3단계 전략을 세워 그 수순을 밟고 있다.”면서 즉,▲독도를 한국과 일본의 공동수역으로 한 다음 ▲영유권 분쟁을 유도하며 ▲분쟁해결을 위해 국제사법재판소까지 이르게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앞으로 일본의 잠수함·해군함정·전투기 등이 독도주변에 출몰하는 등 무력시위를 통해 우리측과의 일촉측발 상황까지 유도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서둘러 어업협정을 파기하고 독도개발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독도사랑은 지난 93년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재임 때 독도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독도를 처음 접하면서 가슴이 찡하도록 큰 사명감이 생겨났다는 것.96년 국회 농림수산해양위원회 소속으로 독도를 다시 방문했고, 이후 광복절 때마다 독도에서 가수 정광태씨 등 60여명과 함께 만세삼창을 외쳤다. “자위대는 독도상륙을 위한 가상훈련까지 마쳤습니다. 우리도 독도에 경찰이 아니라 군대를 내보내야 합니다. 거기에 도둑이 있습니까, 교통사고가 있습니까. 국회내에 독도사랑모임도 서둘러 부활해야지요.” 김문기자 km@seoul.co.kr
  • 안중근의사 유해 발굴 추진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1910년 3월 중국 뤼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을 위해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大連)시에 있는 뤼순 감옥을 방문할 계획이다. 국가보훈처는 27일 “박 처장은 안 의사의 순국 95주년을 맞아 유해발굴을 위한 사전조사 차원에서 뤼순 감옥을 방문하고 정확한 조사를 위해 학계 전문가와 안 의사와 관련된 단체 관계자들을 동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박 처장은 뤼순 방문에 앞서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민정부 고위 인사들을 만나 유해발굴에 대한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보훈처는 유해 매장 추정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이 파악되면 외교통상부 등 관련부처와 협의를 거쳐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유해발굴단을 꾸릴 계획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 올해 광복 60주년을 맞아 남북회담 등을 통해 안 의사의 유해발굴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할 계획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초·중·고 ‘토요휴업’ 첫날 표정

    초·중·고 ‘토요휴업’ 첫날 표정

    어른의 주5일 근무제에 맞춰 청소년에게 가족과 함께 하는 체험학습의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지난 26일 전국 초·중·고교에서 첫 실시된 토요 휴업은 대체로 ‘합격점’을 보였다. 그러나 학교별, 빈부차, 지역별 교육여건의 요인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 들쭉날쭉 ‘놀토(노는 토요일)’의 모습도 드러냈다.‘나홀로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준비된 초등학교에는 드문드문 학생들이 등교했는가 하면, 일부 고교에서는 강제 출석을 시켰고, 대부분의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찾아 볼 수 없는 하루였다. ●고교생 서울은 학원, 지방은 학교로 서울에 비해 학교간 학력 격차가 존재하는 수도권과 지방의 경우 대부분 고3 학생들이 대입 준비를 위해 등교했다. 일부 지역은 고교 1·2학년생도 학교에 출석해 자율학습을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전국 주5일제 실태 모니터링에 따르면 수원 A고, 광명 B고, 부천 C고 등 수도권 지역은 전 학년이 평일처럼 등교해 자율학습을 실시한 학교들이 많았다. 일부 학교는 시·도교육청의 방침과 달리 등교하지 않은 학생에 대해서는 결석처리를 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인천 지역 일부 고교는 등교를 하지 않은 학생으로부터 사유서나 부모의 확인서를 받을 방침이다. 경북 대구 지역과 전남 광주 지역은 소위 명문대 진학을 준비하는 심화반 학생들에 대해서만 자율학습을 실시했다. 또 기숙사를 운영하는 지방 고교도 정규수업의 보충 형태로 진행되는 전국적으로 ‘놀토’가 ‘자토’(자율학습 토요일)로 편법 운영되는 양상도 보였다. 반면 ‘사교육 흡수력’이 큰 서울 지역은 고교생이 입시학원으로 대거 몰려 사교육 특수효과의 징후도 나타냈다. 서울 중동고 안광복 교사는 “자습 희망자가 거의 없고 대부분 가정학습을 신청했다.”면서 “강남 일부 학원에서는 특강반을 개설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 서울지부 박혜성 교육선전국장은 “서울 지역 고교에서는 등교를 강제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도 “시험기간이나 입시철이 다가오면 토요휴업이 변칙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경제격차에 따른 토요휴업의 명암도 초등학교에서 마련된 박물관 견학, 컴퓨터, 레크리에이션 등 각종 특기·적성 프로그램의 호응도는 기대보다 낮았다. 학교별로 평균 10∼20명 안팎으로 출석률이 낮은데다 학년 분포도 천차만별로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등 일부 문제점을 노출했다. 서울 D초등학교는 맞벌이 부부나 결손가정의 저학년생 4명만 출석했을 뿐이다. 학교에 등교하지 않은 초등학생은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했다. 오수정(11)양은 “한달에 한번뿐이지만 학교에 안 가니 너무 좋다.”면서 “오전엔 친구들과 서점에 가서 책을 봤고 오후엔 뭘 할까 고민 중”이라고 즐거워했다. 서울 강남권 초등학생의 경우 가족 나들이를 가거나 보습, 태권도, 피아노 학원 등에서 시간을 보냈다. 반면, 경제력이 떨어지는 가정이나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 느낀 소외감도 컸다. 전교조 경기지부 이성 정책실장은 지난해 시범실시에서 드러난 부모와 자녀의 휴일 불일치, 사교육을 대체할 프로그램 부족이 문제점으로 확인된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동환 나길회기자 sunstory@seoul.co.kr ■ 초등교 ‘나홀로 아동’ 많아 “박물관이요? 가고는 싶지만 돈이 들잖아요….” 토요 휴업이 실시된 지난 26일 오전 10시30분 무렵 서울 번동초등학교 근처 길가.‘나홀로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 중인 이 학교의 담장을 사이에 두고 어린이 3명이 앉아 있다. 이 학교 학생이라는 이들은 그저 시무룩한 얼굴이다. 계획이 있냐고 묻자 공도 갖고 있지 않은 아이들은 “축구요.”라고 대답했다. 자세히 묻자 김모(12)군은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혼난다.”면서 “사실 축구는 학교에 낸 주말 계획서에 써 넣은 것일 뿐”이라고 털어놨다. 같은 학교 5학년인 동생과 함께 나온 김군은 “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같은 반 친구들 대부분 참여하지 않아 나도 신청하지 않았다.”면서 “주말 활동 보고서는 대충 작성해 내야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도 김군에게는 희망사항이다. 아버지와 이혼 후 생활비를 받아쓰는 어머니에게 나들이를 가자고 말조차 꺼내기 어렵다.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라모(12)군도 사정은 비슷하다. 가족끼리 놀러가 본 지 오래다. 노는 토요일이라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라군은 “나도 친구들과 어디든 가고 싶지만 입장료 때문에 어울릴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을 흐렸다. 이날 번동초교에는 전교생 800명 중 120명 가량이 주 5일 수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연극놀이, 구슬공예, 과학실험, 동요 부르기 등 6개의 프로그램이 마련돼 다른 학교보다 비교적 충실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김군, 라군처럼 갈 곳 없는 아이들은 여전히 있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놀이공원 꼬마손님 ‘북적’ 첫 토요휴업을 맞아 오전 시간에 박물관과 놀이공원을 찾는 꼬마손님이 크게 늘었다. 26일 오전까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에는 전 주의 배를 넘는 1만 2000여명이 입장했다. 민속박물관에도 5000여명이 찾아와 평균 관람객 수를 두 배 이상 넘겼다. 용인에버랜드에도 오전 입장객이 지난 19일보다 7000여명 많은 3만 2000여명에 이르렀다. 에버랜드측은 이날 하루 통틀어 5만 2000여명이 몰려 당초 예상한 4만 5000여명을 훨씬 웃돌았다고 밝혔다. 학교에 가는 대신 숙제로 부과되는 교육프로그램을 위해 박물관 등을 찾은 학생도 많았다. 국립민속박물관에는 이날 오전까지 2500여명이 찾아 전 주의 1000여명보다 2.5배 많은 손님이 몰렸다. 서대문구 자연사박물관에는 5000여명이 입장, 토요일 평균 관람객 수인 2000여명은 물론 방학 때 찾아오는 4000여명을 훌쩍 넘겼다. 삼성교통박물관과 어린이 민속박물관도 토요일 오전 평균 관람객보다 배 이상 많은 손님이 찾았다. 주말과 휴일 연휴를 이용해 교외로 빠져나가는 가족도 많았다. 한국도로공사는 주말 서울을 빠져나간 차량이 33만대로 전 주보다 2만여대 늘었다고 밝혔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여야의원 24명 부산~모스크바 ‘지프랠리’

    국회의원들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한반도와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지프 랠리’에 나선다. 북한에도 동참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24명과 러시아 국회의원 5명 등 29명의 참여가 확정됐다. 국회 연구모임인 ‘한민족평화네트워크’의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과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은 25일 “남북한과 러시아 국회의원이 지프 25대를 운전해 한반도를 횡단한 뒤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가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모임 24명의 의원이 참여할 뜻을 밝혔다. 러시아 의회에서는 카레이스키(고려인)인 장 르보미르 의원 등 5명이 동참한다. 랠리단은 오는 7월말 부산을 출발, 서울·평양·원산을 거쳐 대륙으로 넘어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 모스크바까지 가기로 했다. 북한에는 민화협을 통해 최고인민회의에 동참을 요청해 놓은 상태이고, 다음달 말까지 최종 확답을 받을 예정이다. 시베리아 철로를 따라 가는 이동경로에는 대략 30일 정도 소요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횡단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속초에서 배를 타고 금강산을 ‘찍고’ 돌아와 다시 배편으로 러시아로 이동하는 ‘편법’도 검토 중이다. 이같은 행사는 평화네트워크 의원들이 이달 초 러시아 사할린을 방문했다가 아이디어를 내놨다. 박계동 의원은 “장 르보미르 의원이 저처럼 택시를 몰았던 경험이 있어 뜻도 잘 맞았다.”고 말했다. 한국과 러시아는 지난해 수교 120주년을 맞았고, 올해에는 각각 광복 60주년과 2차대전 승전 60주년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상연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이번엔 반드시 뿌리 뽑을 것”

    “이번엔 반드시 뿌리 뽑을 것”

    노무현 대통령은 23일 최근 한·일관계에 대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또다시 패권주의를 관철하려는 의도를 이상 더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됐다.”면서 “이제는 정부도 단호히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천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에 실은 ‘최근 한·일 관계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일본의 각종 도발행위가)이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겨날 수 있지만, 우리도 어지간한 어려움은 충분히 감당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에 반드시 뿌리를 뽑도록 하겠다.”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선포,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이것은 일본이 지금까지 한 반성과 사과를 모두 백지화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이런 일들이 일본 집권세력과 중앙정부의 방조아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일본의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이전에 일본 지도자들이 한 반성과 사과의 진실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면서 “100년전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로 편입한 바로 그 날을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로 선포한 것은 지난날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대한민국의 광복을 부인하는 행위”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며 외교적으로 단호하게 대응해 나가면서 국제여론 및 일본국민에 대한 설득작업을 병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일본 국민 전체를 불신하고 적대해서는 안 된다.”면서 “냉정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멀리 내다 보고 전략적으로 대응해 나아가야 한다.”고 국민에게 당부했다. 이어 정치권과 학계 일부의 독도 해병대 주둔과 한·일어업협정 파기 주장 등 대일 강경론을 의식한듯 “그동안 너무 많은 말과 행동이 쏟아져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불만이 없지 않다.”며 자제를 주문했다. 여야는 노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천명한데 대해 “대통령으로서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일본의 행태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열린우리당 오영식 대변인)이라는 등 “적절한 입장표명”이라며 환영했다.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의 언급 내용을 국회차원에서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대내용’에 그치지 않으려면 구체적 후속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1)전국의 길지 (하)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1)전국의 길지 (하)

    ●호남의 길지 호남엔 여느 도 못지않게 길지가 많다며, 성질 급한 독자들은 내게 거세게 항의했다. 그런 줄 내가 왜 모르겠는가? 다만 ‘정감록’의 길지는 태백산과 소백산을 모태로 삼는 까닭에 그 두 산부터 설명을 시작해 점차 주변지역으로 확대시킨 것뿐이다. ‘남격암’에 가장 먼저 언급된 호남의 길지는 무주(茂朱) 덕유산(德裕山)이다. 덕유산 아래서도 무풍(舞豊) 북쪽에 있는 동굴 옆 음지가 으뜸이라 했다. 그곳은 어떠한 환난도 피할 수 있는 명당이라 한다.‘피장처’에선 약간 다른 곳을 지적해, 덕유산 남쪽의 원학동이야말로 숨어 살기 적당하다 했다. ●덕유산 부자마을 한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덕유산의 성격을 흙산이라 보았다. 지리산과 성질이 같은 것으로 본 것인데 남격암과 마찬가지로 산의 북쪽에 있는 무풍에 주목한다. 이중환은 바로 그 옆의 설천(雪川)도 길지로 간주한다. 그는 남사고가 무풍을 복지(福地)로 파악했던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는데 덕유산의 미덕을 이렇게 말한다.“무풍의 바깥쪽은 온 산이 비옥해 부자 마을이 많다. 이는 속리산 이북 지역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남사고는 내게 보낸 편지에서도 덕유산의 장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과연 그렇다네. 실로 덕이 넉넉한 산이 덕유산이요, 풍요로움을 기꺼워하다 못해 저절로 춤이 나오는 곳이 무풍이라네. 우리나라 12대 명산 가운데 하나인 덕유산. 그 주산은 향적봉(香積峰·1614m)이요, 산세의 흐름이 유장해 무풍의 삼봉산(1254m)에서 흘러내린 용맥이 수령봉(933m), 대봉(1300m), 덕유평전 (1480m), 중봉(1594m), 무룡산(1492m) 삿갓봉(1410m), 남덕유(1508m)까지 무려 100리를 굽이쳐 흐르며 영호남을 갈랐다네. 충청, 경상, 전라 3도를 굽어보는 향적봉에 한번 올라보게. 가까이는 북으로 적상산을 발치에 두고 멀리 황악산과 계룡산을 바라보네. 서쪽을 둘러보게나. 운장산, 대둔산이 버티고 서있어. 남쪽은 어떠한가. 남덕유를 코앞에 걸어두었네. 지리산 반야봉도 가물거리네. 동쪽을 어찌 빠뜨릴쏜가. 저 멀리 가야산과 금오산이 보이지 않나? 향적봉 정상에서 흘러내린 옥 같은 샘물줄기가 한참을 흐르다가 구천동 33비경을 만들어 놓았도다. 요즘은 북사면에 무주 리조트가 있다지. 서남쪽의 칠연계곡도 큰 장관일세. 봄의 덕유산은 칠십 리 깊은 계곡에 붉은 철쭉꽃이 불타오르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이 온 산을 적시네.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꼬까옷을 입히지. 겨울이면 설화를 피운 고목이 고요한 은세계를 더욱 빛낸다네. 참 아름다운 곳이야! 길지란 대부분이 이렇게 아름답고 고즈넉하며 은근히 풍요로운 곳에 있기 마련이네.” 덕유산에 대한 남사고의 예찬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나는 이쯤에서 줄이기로 했다. ‘남격암’은 호남의 명산 내장산(內臧山)도 길지로 손꼽는다. 이른바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라는 내장산은 가을 단풍 하나로만 전국에 유명하다. 이 산의 단풍은 30여종의 나무들이 토해낸 붉고 노란 빛깔이 어우러진 전원 교향악이다. 많은 사람들은 단풍에만 혹할 뿐이나 실은 난세를 피할 길지로서 이만한 곳이 무척 드물다. 임진왜란 때는 전주 사고(史庫)에 소장돼 있던 왕조실록이 내장산에 옮겨져 잠시 화를 피했다. 그 때 만일 내장산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세계기록문화유산이기도 한 왕조실록은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내장산은 과연 길지로다.‘피장처’는 내장산에서 별로 멀지 않은 담양 추월산도 숨을 만한 곳이라 추천한다. 추월산은 전남 담양군 용면과 전북 순창군 복흥면 사이에 걸쳐 있는데, 구한말 호남의병운동의 한 거점이었다. ●길지 변산에 웬 도둑 떼가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호남 굴지의 길지는 부안의 변산(邊山)이야.” 남사고는 그렇게 주장한다.“내 책 ‘남격암’을 살펴보게나. 부안엔 호암(壺岩)이 있고 그 아래 변산 동쪽은 몸을 숨기기에 정말 적합하구나라고 했지. 만일 제주도가 다른 나라 땅이 되고 말면 일은 그릇된다고 했어. 이는 왜 그런가? 제주에서 배를 타고 북상하면 전남 강진, 영광, 또는 전북 부안에 곧장 뱃길이 닿을 테니 위험할 수밖에. 어쨌거나 내 생각은 그래. 기왕 변산을 찾았다면 그 동쪽 계곡까지 들어가라. 하지만 그 산을 빠져나가지는 말라! 언제는 속리산 이북으로 가지 말랬다가 이젠 또 변산 동쪽을 벗어나지 말라고 하니, 자네들이 좀 헷갈리겠군. 내 말의 뜻은 그만큼 속리산 이남이 길하고 변산이 좋다는 말이야. 다른 뜻은 전혀 없다고!” 참 이상한 노릇이지만 좀 조사해본 결과 문학속의 변산은 도둑의 소굴이기도 했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주인공 허생이 변산의 도둑 떼를 인솔해 무인도로 떠나간 걸로 돼 있다. 어떤 연구자는 이를 두고 영조 때 일어난 ‘무신난(戊申亂·1728년)’ 무렵 변산의 실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도 불리는 무신난의 주체는 남인(南人)·소론(少論)·소북(少北)의 연합세력이었다. 그들은 당시 집권층인 노론(老論)을 몰아내려고 난을 일으켰고 거기에 전국 각지의 도둑들·서얼·상민·천민들이 상당수가 가담했다. 호남 여러 고을의 빈농들과 변산의 도적들도 무리 가운데 끼어 있었다. 사실 그 당시 빈농은 자칫하면 유리걸식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살다 보면 자연히 도적 무리에 포섭되었다. 허생전에 나오는 변산의 도둑 떼는 허생의 영도 아래 각자 배우자와 소 한 마리씩을 이끌고 무인도로 들어간다. 그들은 그 곳에서 열심히 농사 지어 외국과 무역에 종사 하는 등 유족한 삶을 누린다. 변산 도둑들의 입장에서 볼 때 허생은 다름 아닌 ‘진인’이었다. 혹자는 허생이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이상향으로 도둑들을 이끌고 숨었다며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현실에 순응하며 합법적인 개혁을 꿈꾸던 연암 박지원에게서 허생 이상의 주인공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요구가 아닐까? 그야 어쨌거나 허생전에 변산이 도둑의 소굴로 설정된 것은 실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변산은 골짜기가 깊고 사방으로 뻗어 있어 은신에 적합했다. 그렇기 때문에 변산이 길지로 손꼽혔다. 하지만 도둑 떼들이 이러한 자연 조건을 적극 이용한 결과, 조선 후기엔 그들의 요새로 둔갑하기도 했다. 남사고는 말하기를,“변산이 중요한 까닭은 그 산세에 국한된 것이 아니야. 좀더 깊은 연유가 있었지.”라며 매우 의미심장하게 운을 뗀다. 그러나 그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기회를 마련해 경청하기로 한다 ●조계산의 ‘십팔공’ ‘남격암’은 전라도의 또 다른 길지로 조계산(曺溪山·887m)을 예로 든다. 전남 승주군에 있는 이 산엔 고찰(古刹) 송광사(松廣寺)가 있어, 산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절에서 동북쪽으로 10여리를 올라가면 천자암(天子庵)이란 작은 암자가 있다. 이 암자의 오른편에 곱향나무 두 그루(천연기념물 제88호)가 우뚝하다. 높이가 12.5m, 가슴높이쯤에서 둘레가 3∼4m나 되는 거목인데, 나무에 얽힌 유래가 특이하다. 지금부터 800여년 전 이 절에 머물던 보조국사(普照國師)는 중국에 건너가 황후의 불치병을 고쳐준 다음 그 인연으로 왕자 하나를 제자삼아 데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천자암에 오른 그들은 나란히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그것이 살아나 차츰 거목으로 자랐단다. 보조국사 일행의 도력도 만만치 않지만, 조계산의 지력도 여간 왕성하지 않은 모양이다. 워낙 명산에 자리잡은 까닭에 송광사의 “松”자는 길한 예언을 담고 있다. 그 글자를 해체하면 “십팔공(十八公)”이 돼,18명의 국사가 나온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조국사를 비롯해 모두 16명의 국사가 나왔다 한다. 앞으로 2명이 더 나오게 돼 있는데 그때가 되면 모든 중생에게 불법이 바로 전해져 용화세계의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유추되듯, 조계산은 최고수준의 길지라 미륵세상의 도래를 약속하는 곳이 된다. 소백산에서 남서쪽으로 곧게 뻗어 내린 용맥이 서해바다를 눈앞에 두고 멈춰선 곳에 한 길지가 있다.‘남격암’이 말한 월출산(月出山)이 그곳이다. 전남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에 불쑥 솟아오른 월출산은 단순히 많은 큰 산의 하나가 아니다. 산 이름 그대로 달맞이하는 산이라서, 이 산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달 신앙의 대명사로 우뚝 솟았다. ●왜적도 못 들어온 팔령산 월출산에서 좀더 남으로 내려가면 한반도 남단의 길지 팔령산(八靈山)이 웅자를 드러낸다.‘남격암’은 이렇게 말했다.“우리나라의 지세를 논할 때 섬이 바라보이는 남쪽은 절대적으로 피할 일이다. 다만 한 예외가 있어 팔령산이 바로 좋은 산이다.” 남사고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소백산 줄기가 고흥반도 동쪽까지 내려오다 끝맺음을 한 것이 바로 이 팔령산이야. 정상의 봉우리가 모두 8개인 산이지. 팔영산(八影山)이라고도 부른다네. 예전엔 팔전산(八顚山), 팔형산(八兄山), 팔봉산(八峰山)으로도 불렸어.‘택리지’에서 이중환은 이 산이 마치 섬처럼 바다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고 했어. 일찍이 내가 복이 있는 땅이라고 기술했다고도 썼어. 기특한 내 후배 이중환은 늘 중요한 지점에서 내 말을 곧잘 인용한단 말이야! 아는 대로 임진왜란 때는 왜선이 고흥반도를 타고 침입하려고 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어. 이게 다 팔령산의 지기(地氣)에 힘입은 거야. 고흥의 옛 문헌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팔령산의 넷째 봉우리인 사자봉이 대단해. 마치 용이 바다를 향해 치닫는 형상이라고 할까. 사자봉의 혈(穴)은 국왕의 옥쇄인데 마지막 봉우리에서 그만 미완성으로 끝나 여간 아쉽지 않아. 일제시기 그 놈들이 조선의 맥을 끊어버리려고 팔봉에다 큰 쇠막대를 깊이 박았어. 그 놈들은 한국 사람들을 미신적이라고 비웃었지만, 그래도 뒤가 켕겼는지 갖은 못된 짓을 다했어. 이제 와선 멀쩡한 우리 땅 독도를 자기네 섬이라고 주장하지를 않나. 가소롭기 짝이 없어! 한데 말이야, 당시 그 놈들이 혈을 정확히 짚지 못하는 바람에 그 뒤 고흥선 진짜 장군이 나왔다고들 하지.” 팔령산이 명산이란 소문은 진작 전국에 널리 퍼졌다. 각지의 무당이 몰려와 무속신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고, 난리가 닥치면 산 속 깊이 은신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 삼십년 전엔 어느 사이비 종교단체가 이 산에 본거지를 두고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경기도의 길지 “나는 주로 속리산 이남인 하3도(충청, 경상, 전라)에서 길지를 찾았지. 속리산 이북인 중부지방엔 별다른 길지가 없다고 보는 편이야. 영산인 태백산에 가까운 강원도 남부지역에 한두 군데 있을까 말까. 그 외엔 사실 주목되는 곳이 하나도 없는 셈이야. 정감록에서도 말했을 걸. 오대산 이북은 몹시 흉하다고 말이야.” 그러나 ‘피장처’와 ‘두사총비결’엔 중부지방의 피난지가 다수 언급돼 있다. 우선 ‘피장처’에 따르면 양주 산내촌에서 북쪽으로 80리를 들어가면 길지가 있다 했다. 또한 양근 소설촌의 북쪽 40리쯤에서 좀더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가장 은밀한 곳에 숨은 길지가 있다고도 했다. 요새 설곡리(雪谷里)라 불리는 곳 말인데 고려 말 임제종(臨濟宗)을 개창한 명승 보우(普愚)가 설곡리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진다. 여주의 사전촌에선 장수와 정승이 나온다고 했고, 광주 율평 동쪽에 있는 동굴은 난리 때 여덟 성씨가 함께 숨어 살 곳이며 장차 56대 동안 장수와 정승이 출생할 곳이라고 했으니 굉장한 명당이다. 또한 ‘피장처’엔 이천 북면의 광복동, 가평의 대아, 도성 등도 피난할 만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인천의 영종도 역시 복지라 했다. 오늘날은 국제비행장이 들어선 영종도는 고려 말부터 단 한번도 전쟁의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무사했다는 것이다. ●중국 지관 두사총이 손꼽은 길지 임진왜란 때 이여송을 따라 중국에서 왔다는 지관(地官) 두사총이 쓴 비결로 알려진 ‘두사총비결’에도 경기도의 길지가 두어 군데 언급된다. 그 중 하나는 화약산이다. 가평에서 36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나오는 산이 바로 그 산인데 부근엔 집다리골 휴양림도 있어 쉬어 갈 만하다. 그밖에 포천의 도성산도 길지로 말해진다. 도성산은 길가에 가까워 산세가 얕다는 평을 듣지만 전쟁의 기운이 미치지 않고 간사한 기운도 침범하지 못한다고 믿어진다. 고려가 망했을 때 어느 선비는 도성산 밑으로 들어가 시냇가에 대(竹)를 심고 충절을 맹세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그 선비가 지조를 온전히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도성산의 지기 덕분이라 한다. ‘두사총’은 강화의 마니산(467m)도 길지라 일컫는다. 인천시 강화군(江華郡) 화도면(華道面)에 있는 이 산은 강화섬에서 가장 높다. 마니산은 한반도 남쪽의 한라산, 북쪽의 백두산까지 거리가 똑같아 주목된다. 마니산은 마리산·머리산이라고도 불리는데, 마리란 머리를 뜻한다. 이 산은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이름이 그렇게 됐다. 마니산이 길지로서 특별한 위치를 주장하게 된 것은 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塹星壇·사적 제136호) 때문이다. 참성단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건립했다고 한다. 높이 5m의 자연석을 포개어 만든 이 단의 기단부는 원형이며 그 상단은 네모꼴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이란 고대 동양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이 단이 축조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멀리 고려 때부터 국가가 제관을 파견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전한다. ●황해도의 길지 북부지방엔 길지가 없다는 게 ‘정감록’의 근본 주장이다. 이와 달리 ‘피장처.’는 황해도 곡산의 명미촌을 길지라 한다. 좀더 정확히 말해 명미촌에서 서쪽으로 발길을 재촉해 희령과 잇닿은 경계 지점에 숨으면 어떤 난리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남격암’은 “수양산(首陽山·899m)은 백미(白眉)의 난을 당하면 물 마른 개울의 물고기처럼 되느니라.”라고 했다. 수양산이 좋긴 해도 눈썹 흰 사람이 난리를 일으키면 도리어 흉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수양산은 황해남도 벽성군(碧城郡)과 해주시(海州市)에 걸쳐 있다. 이 산은 남격암이 거론한 서북지방의 유일한 길지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영혼의 고백’ 녹아든 색채추상

    무릇 예술은 자기고백의 산물이다. 예술작품에는 어떤 형식이든 작가의 삶의 흔적이 서려 있다. 서양화가 정경자(66)의 작품은 그 두드러진 예다. 정경자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개인사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고 광복 후 김구 계열이었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으면서 집안이 기우는 아픔을 겪었다. 고향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가족은 일본으로 건너갔고, 화가가 꿈이었던 그는 일본여자미술대학에 들어가 그림공부를 한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그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그런 ‘경계인’의 입장으로부터 얼마간 자유로워진 것은 프랑스로 건너가면서부터다.1970년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 입학하면서 그는 예술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다.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온 90년대 중반.50대에 뒤늦게 인권변호사 이흥록과 결혼한 그는 지금 경기도 양평에 정착해 작품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원로 여성화가 정경자가 10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 관훈동 학고재아트센터에 마련된 ‘봄의 소리’전은 국내 화단에는 아직 낯선 이름인 그의 화풍과 인생 내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출품작은 50여점. 작가의 어린시절 정신적 외상은 초기의 인형그림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인형들은 한결같이 복잡한 창살이나 견고한 성벽에 갇혀 있다. 하지만 파리시절로 들어서면 작품은 한층 밝고 환상적인 색채의 신(新)구상화풍을 띤다. 이번에 선보인 ‘몽마르트의 봄’‘골목에서’ 등은 멀리 사크르 쾨르 성당이 보이는 파리의 거리 풍경을 원색으로 그려낸 대표작들이다. 작가의 ‘양평시대’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파리시절의 자유분방한 원색은 이제 온화하고 부드러운 파스텔조로 바뀌었다. 도회감각의 경쾌한 선들도 점차 사라져 자연의 색채추상에 녹아들었다. 작가는 오랜 외국생활에서 잊고 지내던 고국의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도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는다. 그같은 마음자리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바람·물’‘호반’‘어스름’‘봄의 소리’ 같은 작품들이다. 오로지 색의 농담을 통해 자연의 서정을 풀어낸 이 작품들은 더없이 따뜻하고 경쾌하고 투명하다. 그것은 곧 작가의 영혼의 표백이다.29일까지 (02)739-4937.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日 3·16도발] 日에 과거사 ‘독일식 정리’ 요구

    [日 3·16도발] 日에 과거사 ‘독일식 정리’ 요구

    ‘신(新) 대일신독트린’은 독도 문제 등에 대한 일련의 일본의 행태를, 사실상 광복의 역사를 부인하는 ‘제2의 한반도 침탈’로 간주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17일 성명은 “식민지 침탈을 정당화하려는 의식이 내재된 엄중한 사안”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동영 NSC 상임위원장 겸 통일부 장관은 “단순한 영유권 문제가 아니라 해방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경고했다. 이로써 독도 문제는 국가 주권의 문제인 동시에 역사의 영역으로 확대됐다. 따라서 한·일 관계의 설정도 근본적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그간의 기조가 ‘과거문제 극복을 통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였다면, 신 독트린은 과거사에 대한 분명한 정리를 강조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또한 그간 우호·번영을 위한 평화세력, 이웃으로 바라보던 일본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기조 위에 신 독트린은 독도 문제 등 근본적인 한·일간 현안에 대해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의 전환을 천명했다. 지난 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등을 비롯, 정부는 지금까지 일본의 자성과 자발적인 협력을 요구하는 데 그쳤다. 신 독트린은 과거사 문제를 ‘풀어갈 것’이라는 표현으로 문제 해결에서의 주체적인 의지를 내보였다. 아울러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근본 태도를 바꾸기 위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 활용할 뜻을 분명히 했다. 독트린이 거론한 ‘인류보편적인 가치와 상식’의 기준은 전후 독일과 프랑스 관계를 모델로 삼을 것으로 알려졌다.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는 우선 국제무대를 향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우리의 대의와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당당히 밝히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와의 연대시도는 필연적으로 일본과의 ‘외교적 경쟁’을 수반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상임이사국 진출 국제사회 신뢰얻어야” 먼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을 노리는 일본에 대해 “이웃의 신뢰를 먼저 얻으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지금까지는 공개적 언급을 자제했던 부분이다.65년 한일협정에 대해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 점은 특기할 만한 부분이다.“개인 피해자에 대한 권리보호는 국가가 박탈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이는 그간 일본에 개인 청구권을 제기할 수 있느냐의 논란에 정부가 사실상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차원의 추가 협정 의사는 내보이지는 않았지만, 외교부 이태식 차관은 “모든 게 해결됐는가 하는 부분에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日 개선노력 여지는 남겨 이 차관은 “종군 위안부나 사할린 교포, 원폭 피해자 문제 등은 한일 청구권 협정 8개 항목에 미포함됐다.”면서 “일본도 도의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경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독트린은 한·일간 파트너십의 근본 틀은 유지해 놓았다.“미래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함께 구현해 나갈 동반자이자 공동운명체라는 믿음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존에 합의된 정치·외교적 교류와 경제·사회·문화 및 인적 교류는 변함없이 증진시키겠다고 덧붙였다. 이지운 구혜영기자 jj@seoul.co.kr
  • [열린세상] 克日의 元年 삼아야/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언론인

    사실 일본의 한낱 지방자치단체인 시마네현이 엉뚱하게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채택했다 해서 독도의 위상에는 티끌만한 변화도 오지 않는다. 한국의 ‘독도의 실효적 점유’라는 현실이나 국제법적 지위에도 아무런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이번 시마네현 사태를 전에 없이 끈질기고 음험한 일본 위정자들의 ‘독도 침탈’ 속셈 바로 뒤에 도사린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 조짐에 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만 한다. 아울러 독도문제다, 일본 교과서 왜곡이다, 하면 그때마다 요란스레 들끓다 마는 냄비처럼 철저하지 못한 우리의 ‘일본을 다루는’ 자세를 반성, 시정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는 과거처럼 감정에 호소하는 일과성 반일, 항일 시위의 되풀이로 끝내서는 안 된다.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는 수없이 되풀이되어온 것이지만 이처럼 일본의 보수화 경향 등 시대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에서 근본적으로 새 한·일 관계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을 속속들이 연구하고 장기적 시각에서 양국관계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아직까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양국간의 과거사를 바로잡는, 우리로서는 진정한 극일(克日)의 원년을 삼아야 한다. 이토록 한·일 국가간 공식 관계가 근래 들어 가장 심각한 올해가 한·일 우정의 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일본에 확산되고 있는 무슨 사마, 무슨 히메의 소위 한류 열풍에 취해 사실 우리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왔다. 삼성이 소니를 눌렀다느니, 현대가 도요타를 따라잡고 있다느니 하여 일본에 대해 은근히 자부심을 키워오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우리 수출품인 첨단 전자제품을 만드는 기계들의 상당부분이 일제이며 원천기술 보유를 비교한다면 한·일간에는 아직도 엄청난 수준 차이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듣는다. 드라마, 연예의 한류바람도 어찌 보면 왜색의 재가공 수출인 측면이 없지 않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우리는 아직 우쭐할 때가 아니다. 또한 한·일 우호를 운운할 자격도 없다. 올해로 광복 6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60년이 지나도록 식민지 청산작업조차 말끔하게 하지 못해 우리는 오늘날까지 식민지 역사관 바로잡기, 친일파 척결, 과거청산 문제를 현안으로 안고 살고 있다. 수교 40주년을 맞았다고 하지만 과거 정부가 식민지 시절 피해 국민의 배상문제를 멋대로 포기하는 수교협상을 벌인 것이 확인돼 생생한 쟁점으로 살아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일본을 제대로 철저하게 연구해 본 일이 없다. 일본은 과거 조선을, 지금의 한국을 철저하게 연구했다. 우리가 과거사 속의 일본을 극복하고 오늘의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일본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당연히 인간 생체 실험 등 과거 일본의 잔혹한 전쟁 죄악상에 대한 연구 실적이 미미하다. 우리 후세에 대한 과거사 교육이 형식에 그치고 있음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한·일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와 함께 일본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 조치로 국내의 민간외교 활동을 지원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민간단체들의 자발적 일본 과거사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이들이 일본의 피해를 입었던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과 유대해 일본의 과거를 추궁하는 조직적 민간외교를 전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어떤 통쾌한 조치로 매듭지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일본이 진심으로 과거사를 반성치 않을 수 없게 하는 효과적 조치, 한국의 극일의 방도를 찾아내는 깊이 있는 일본 연구, 처절한 우리의 과거사 반성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언론인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