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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청서 대입정보 얻으세요

    구청서 대입정보 얻으세요

    본격적인 입시철을 맞아 자치구들이 다양한 대입 설명회를 마련하고 있다. 노원·중랑·양천구가 지난달 입시 설명회를 개최한데 이어 광진·강서·구로·영등포·성북구 등도 같은 행사를 갖는다. 서울 광진구(구청장 정영섭)는 6일(화) 오후 2시∼5시 구청 대강당에서 2006학년도 대학입시 설명회를 개최한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 등 관내 7개 고등학교 수험생 및 학부모 500여명을 대상으로 열린다. 김용근 종로학원 입시평가 실장과 임윤근 종로학원 강사 겸 EBS 언어영역 강사를 초빙했다. 김용근 실장이 먼저 수능을 분석하고, 논술 준비, 대학별 모집 요강에 대해 한 시간 정도 강의한다. 임윤근 강사는 1시간 30분에 걸쳐 논술고사 대응 전략에 대해 강의한다. 학부모 및 수험생과의 질의 응답도 진행된다. 강서구(구청장 유영)는 대입 설명회와 함께 수험생을 위한 음악 공연을 마련했다. 다음달 13일(화) 오전 9시 화곡 6동에 있는 88체육관에서 ‘2006년 대학입시 설명회’를 개최한다. 이광복 오르비스옵티무스 대표가 2006 수능분석 및 지원전략을, 이정혁 대사학원 입시전략연구소장이 논술전략을 강의한다. 입시설명회에 이어 2부 행사로 ‘도원경과 밴드’,‘유노+알파’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구로구(구청장 양대웅)는 14일(수)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동안 구로구민회관 1층 대강당에서 진행한다. 이영덕 대성학원 평가관리실장이 정시 합격 전략을, 이만기 메가스터디 교육 연구소 소장 및 언어논술 강사가 대학별 논술 시험 요강을 안내한다. 참가비와 교재비는 무료다. 성북구(구청장 서찬교)는 다음달 3일 오후 3시 안암동 ‘강북 중앙학원’에서 2006년 전국대학별 정시모집 지원전략 입시 설명회를 갖는다. 중앙학원 김영일 원장과 논·구술 연구소 이기택 소장이 지원 전략과 대학별 논술대비 방법을 집중 분석한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종로구 日人명의땅 국유화 삼청·혜화동 소재 13필지

    서울 종로구(구청장 김충용)가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지적공부상으로 일제잔재 청산작업을 마쳤다. 종로구는 30일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회사·법인·개인 명의(창씨개명 포함)로 등재돼 있지만 1940년대 이후 주인없이 방치돼 있던 토지 13필지를 발굴, 국유화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제잔재청산 차원에서 종로구 스스로 특별계획을 수립, 시행한 것이다. 이번 조치로 국유화된 토지는 모두 13필지(1265.2㎡)이며 재산가액으로는 약 9억 5500만원에 이른다. 일부 토지는 삼청동·혜화동·종로6가 등에 있어 금싸라기 땅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작업은 종로구 지적과 직원들이 지난 3월부터 전담팀을 꾸려 이뤄졌다. 이들은 토지대장을 기초로 등기부에 있는 권리사실을 조사했다. 이를 호적·제적부 등과 일일이 대조한 뒤 특별 지적측량도 실시했다. 김 구청장은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종로 지역에서 일재 잔재를 청산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라면서 “지적행정의 공신력을 높이는 동시에 구 재정확충에도 크게 기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제2광복 새정신운동’ 선언대회

    광복회(회장 김국주)는 29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독립유공자 등 각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2광복 새정신운동’ 선언대회를 가졌다.
  • [사설] 과거사위, 진실과 화해 이끌어내려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내일 12월1일에 정식 출범한다. 과거사위 설립의 당위성과 위원회의 나아갈 바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되돌아볼 때 자명해진다. 우리사회는 일제강점기-남북분단-6·25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거쳤고 그 뒤에도 독재정권과 이에 저항한 민주화운동 세력의 대립을 장기간 경험했다. 그 결과 억울한 피해자와 그 가족의 한이 20세기 내내 우리사회에 그늘로서 존재해 왔다. 뒤늦게나마 그들에게 드리운 어둠을 걷어내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시대적 책무이다. 이제 그 일을 하고자 과거사위가 출발하는 것이다. 과거사위의 할 일은, 명칭에 집약돼 있듯이 진실을 밝혀내는 것과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화해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사를 정리하는 일이 결코 관련자와 관계기관을 단죄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음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해야 한다고 믿는다. 피해자의 한을 풀고 명예를 회복시키려면 무엇보다 진실 규명이 선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자·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불가피하다. 과거사위가 다루어야 하는 개개의 ‘사건’이 멀게는 100년 가까이 지난 오랜 일인 데다 대부분 당대의 공권력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당사자와 그 후손의 자발적인 도움 없이는 진실을 파헤치기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울러 관련자 협조는 궁극적인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가해 사실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며, 피해자가 이를 받아들여야만 궁극적인 화해는 이루어진다. 과거사위에 관한 법은 지난 5월 여·야 합의로 제정됐다. 그런데도 여태껏 과거사위의 구성 및 조사대상 범위 등에 대해 반발하는 이가 적지 않다.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기에 광복 60주년만에 그나마 과거사 정리의 토대를 마련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위원회 활동에 발목을 잡을 게 아니라 다같이 힘을 모아 목적을 달성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사 정리라는 해묵은 숙제를 이번에도 처리하지 못하고 뒷 세대에게 떠넘길 텐가.
  • 경주 ‘최부잣집’ 원형 되찾는다

    경주 ‘최부잣집’ 원형 되찾는다

    중요민속자료 27호인 경북 경주시 ‘최부잣집’ 종택의 사랑채와 별당 등이 30여년 만에 원형 복원된다. 28일 경주시에 따르면 ‘교촌 한옥마을’조성을 위한 첫 사업으로 총 사업비 10억원을 들여 1970년 11월 화재로 소실된 최부잣집 사랑채와 별당 등을 복원하기로 했다. 시는 이에 따라 29일 경주 교동 69번지 현장에서 고유제(기공식)를 치르고, 내년 5월까지 5억원을 들여 120.7㎡ 규모의 사랑채를 복원할 계획이다. 또 내년도 사업비 5억원으로 연말까지 별당과 문간채, 방앗간 등을 복원한다. 시는 이를 위해 올해 국비 3억 5000만원을 지원받은 한편 사랑채 소실 이전 사진과 고증자료를 확보했다. 또 지난 8월 최종 자문회의를 거쳐 10월 초 문화재청의 설계승인을 받았다. 최씨 종택 사랑채 터에는 현재 화강암 주춧돌 20여개가 남아 있으며 이 주춧돌들은 신라 왕경(王京) 건물 터에 있던 유서 깊은 돌로 알려졌다. 최부잣집은 당초 99칸의 큰 규모였으나 광복 이후 줄어들어 현재 대지 3000여㎡에 건물 5채만 들어서 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조용필 ‘음악+드라마’ 새달4~17일 ‘정글시티’ 콘서트

    조용필 ‘음악+드라마’ 새달4~17일 ‘정글시티’ 콘서트

    가수 조용필이 새달 4일부터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콘서트를 갖는다. 지난 99년 ‘조용필 밀레니엄 콘서트’를 시작으로 시작된 조용필의 예술의전당 콘서트는 올해로 7번째. 이제는 연중 행사가 됐지만, 이번 콘서트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어느 가수도 엄두를 내지 못한 사상 초유의 전국 월드컵 경기장 투어에다 북한 평양 공연까지, 올해는 조용필에게 최고의 한해였기 때문. 조용필은 그 감동을 이어가기 위해 이번 예술의전당 콘서트를 예년과 다른 형식으로 선보인다.‘음악과 드라마의 만남’이란 새로운 시도로 ‘스토리가 있는 비주얼한 퍼포먼스’를 꾸밀 예정. 평소 뮤지컬 제작에 열정을 보인 조용필로서는 실험적인 시도인 셈. 공연 횟수도 14회로 대폭 늘렸다. ‘정글시티’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콘서트는 한 남자가 고대의 한 도시에서 출발해 미래로 이동하며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을 담아낸다.“차가운 도시 속에서 충돌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에 대비되는 한 남자의 순결한 사랑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연출 의도. 위대한 탄생과 함께 연출가 이원종, 무대미술가 권용만 등 젊고 실력있는 스태프가 참여하고 소프라노에는 뮤지컬 명성황후역의 이상은이 함께한다. 제작진은 “1부는 뮤지컬,2부는 콘서트로 진행된다.”면서 “1부는 가수가 없는 한편의 드라마로, 고대와 현대의 첨단 영상과 세트를 통해 생생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조용필은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주관하는 ‘자랑스런 한국인 대중예술 부문’수상자로 선정됐다.(02)555-5420(YPC프로덕션),(02)580-1475(예술의전당).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해방후 혼란기 연구 밑거름”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무렵까지 격동의 해방공간을 기록한 서울신문 등 4개 신문 영인본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가 24일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렸다. LG상남언론재단이 재단 창립 1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해방공간 4대신문 영인본’ 발간사업의 결과물인 이번 영인본은 1945년 8월15일부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 말까지 약 5년동안 발행된 서울신문(매일신보 포함)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을 담고 있다. 타블로이드판 1만 3200여쪽 17권 분량으로, 서울신문이 5권, 조선일보·동아일보·경향신문은 각각 4권이다. 출판기념회에는 안병훈 LG상남언론재단 이사장, 정진석 한국 외국어대 명예교수,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이경형 서울신문 논설고문, 김진수 매일경제 전무, 이택휘 전 서울교대 총장,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 이인수 이승만 전 대통령 아들, 남중구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이사장, 안응모 전 내무부 장관, 김호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등 학계·언론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안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해방공간 4대신문 영인본은 해방, 좌우익 대립, 지도자 암살 등 해방 이후 혼란기 실상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작성되었던 기사를 통해 정확하게 조명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역사의 기록보존”이라고 강조하고,“올해 광복60주년을 맞아 이 영인본이 현대사는 물론 정치사, 언론사, 문화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활동에도 널리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세계석학에 듣는 ‘문명 갈등과 해소책’

    ‘문명과 평화’를 주제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국제심포지엄을 연다. 올해 진행됐던 광복60년기념사업의 대미를 장식하는 학술대회로 다음달 5일부터 7일까지 7개 세션에 40여명의 석학을 포함한 300여명이 참가한다. 한국판 다보스포럼을 만들겠다는 야심이 반영돼 각 세션은 원로급 연구자들이 발표하고, 주목받는 젊은 학자들이 토론을 벌이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참가자들 면면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이 첫날 연설대에 선다. 샤시 타루 유엔사무차장도 참석한다. 눈에 띄는 학자는 ‘관료적 권위주의’개념으로 좌파 정치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노테르담 정치학 교수 길예르모 오도넬,‘인종’과 ‘폭력’문제에 천착하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 미셀 비비오르카, 문화와 민주주의의 문제를 파고들어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 발표하는 독일 베를린대 명예교수 한스 디터 클링거만, 일본의 전쟁 책임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일본 이바라키대 명예교수 아라이 신이치 등이다. 이들은 발제와 토론 형식으로 문명간 갈등과 해소방안은 물론, 동아시아의 역사와 전망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최근 윤리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황우석사단의 안규리 박사도 ‘생명윤리’세션에 참가키로 되어 있어 실제 참석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명론하면 흔히 떠올리는 인물들이 아닌 전문연구자들이 참가자들이어서 일반인들에겐 다소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이름만 드높은 명사’에 비해 훨씬 더 알찬 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주최측의 기대다. 한도현 문명과평화 국제포럼 추진위원장은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야말로 이같은 포럼을 만들 수 있는 적격자라고 생각했다.”면서 “문명과의 대화, 아시아와 휴머니티, 동아시아의 화해 등과 같은 세션은 해가 바뀌어도 계속 운영하고, 나머지 세션은 당시 이슈를 중심으로 매년 새롭게 꾸밀 예정”이라고 말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한국·남베트남 역사가 주는 교훈

    ‘제3세계’. 참 낯설다면 낯선 단어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나든다는 우리에게 제3세계란 정치·경제적으로 낙후된, 지구상 저 어디쯤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은 식민시대·압축성장·민주화 투쟁을 걸어온 전형적인 제3세계 국가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의 현대사를 평가하기 위한 비교연구대상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서구 선진국보다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 제3세계 국가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남한과 남베트남을 비교분석한 연구서가 나왔다. 한성대 전쟁과평화연구소 윤충로 연구원이 ‘베트남과 한국의 반공독재국가형성사’(선인 펴냄)를 냈다.“베트남의 역사는 세계에서 한국 역사와 가장 비슷합니다. 식민지경험과 광복, 분단과 경찰독재국가의 성립,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거의 똑같습니다.”그런데 제대로 된 연구가 없다. 그가 남한과 남베트남 비교연구에 베트남 현지생활 1년을 포함해 7년여의 시간을 들인 이유다. 비교사회학자로서 윤 연구원의 관심은 두가지다.1945년 이후 왜 이승만·응오딘지엠 정권으로 상징되는 반공독재국가가 남한과 남베트남에 들어섰는가. 그리고 왜 남한은 성공하고 남베트남은 실패했는가.●일제식 강압적 통치기구가 남한의 기반 윤 연구원은 ▲지방통제능력 ▲이데올로기적인 것 ▲사회경제적 측면 등 3가지 원인을 꼽았다. 일제는 억압정책의 효율성을 위해 한국의 중앙집권화를 꾀했고 이는 미군정과 반공우익 정부에 그대로 계승됐다는 것. 반면 베트남은 마을 단위의 자치권이 강하다 보니 장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베트남에 미국은 프랑스에 이은 제국주의세력이었지만 한국에 미국은 맥아더 동상철거 논란에서 보듯 해방군의 성격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남베트남이 외친 반공은 민족주의 바람에 밀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문에 ‘반공’이 절대 가치로 떠올랐던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국가 입장에서 보자면 시민사회 제압을 통한 국가 안정에 도움이 됐다는 결론이 나옵니다.”이 과정에서 불거진 것들이 바로 각종 ‘폭동’과 ‘양민학살’ 사건들이다.●역사를 결과론적으로 보지 말라 이런 설명은 얼마 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강정구 교수의 주장과 일치한다. 강 교수 주장의 배경으로 꼽혔던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 사관과 역사추상형 접근법에 대해 물었다.“역사추상법이 그 사건에서 지나치게 확대됐습니다. 역사에서 어떤 단면을 잘라두고 ‘만약’이라고 가정해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 방법 자체가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서구에서도 ‘가설적 가정법’이라는 방법을 씁니다.”수정주의 비판도 반박했다.“외려 수정주의를 너무 일찍 버린 것이 문제라 생각합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국의 개입과 그 효과입니다.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이라는 차원에서 수정주의는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뉴라이트 진영에서 제기하는 ‘건국과 부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결과론적으로 역사를 보지 말자는 것.“지금 와서 보니 옳은 것이니 그것은 처음부터 정당했고 당시의 저항은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방식은 외려 다른 방향을 모색했던 ‘또 하나의 역사’를 외면하고 평가하지 말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참전군인들 목소리 생생히 남길 터 윤 연구원은 앞으로 베트남전을 더 파고 들 예정이다.“베트남전에는 8년여에 걸쳐 30여만명의 한국인이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작게는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크게는 남한이 본 남베트남과 남베트남이 본 남한을 그려볼 생각입니다.”연구방향이 이렇게 정해지다보니 아무래도 앞으로의 연구는 문헌연구보다 구술연구쪽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 연구원은 한국내 작업을 마무리짓는 대로 다시 베트남으로 떠날 예정이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신문 광복4개월 생생히 전달

    서울신문 광복4개월 생생히 전달

    해방공간의 언론계는 격변과 혼돈의 연속이었다. 좌우익 이념이 극심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미 군정청이 ‘절대적 언론자유’ 보장을 선언하면서 정론지를 내세우는 신문들이 난립하였다. 하지만 이 정책은 극심한 혼란의 와중에 여러 부작용을 드러냈고, 결국 당국의 언론 통제와 억제, 언론인 구속이라는 반작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같은 어려움속에서도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 내려오는 신문이 바로 서울신문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 4개 신문이다. 특히 1945년 광복 당시엔 서울신문(당시 매일신보)이 유일한 한국어 신문으로 발행되었다. 따라서 서울신문은 그해 11월11일 군정청에 의해 강제 정간될 때까지, 광복 직후 흥분과 혼란의 도가니였던 4개월여의 극적인 순간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일한 신문이다. 이번에 나온 서울신문 영인본을 통해 당시의 생생한 사회모습을 들여다본다. ●8월15일자 혼란 경계 광복 당일인 8월15일자 신문을 보면 그 제목만 보아도 긴박감이 절로 느껴진다. ‘소서(昭書)’란 성명을 통해 미영중소의 공동선언인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고 밝히고, 그 아래엔 ‘와신상담 국란극복(臥薪嘗膽 國難克服)’,‘경거(輕擧)를 엄계(嚴戒)하야’란 제목으로 일제의 항복과 함께, 그에 따른 참담함, 한국인들의 ‘경거망동’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8월15일자 매일신보는 1면만 발행하고 2면은 백지였으며,1면 아래 부분도 백지로 편집했다. 일본측 시각에서 작성된 이같은 지면 분위기는 다음날부터 급격히 바뀐다.8월16일자 매일신보 지면을 보면 ‘카이로 선언 정문’‘포츠담 선언 정문’ 등을 싣고 그 의미를 알리는 동시에,‘일본군 전쟁 정지에 관한 통고’,‘사상관계자 석방’ 등 일본 항복에 따른 기사가 쏟아진다. ●9월2일자 남북분단 기사 게재 17일자 신문에선 ‘안재홍씨, 우리 광명의 날 맛자 방송’‘여운형씨 민족 해방의 사자후’‘우리 이천리 강산에 여명이 온다’ 등 광복의 기쁨을 토하는 기사가 넘쳐난다. 이런 가운데,‘일본군 조선군 관구, 치안방해자 단호조치’란 기사가 조그맣게 지면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맥아더가 조선 분할 점령책을 발표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남북이 갈리는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기사는 9월2일자에 실렸다.1면 머리기사로 ‘연합군 점령지역 분담결정’이란 큰 제목하에 ‘조선은 미·소 양군 분담, 만주는 소, 불인은 영중 양군’이란 중간제목을 달았다. 9월7일자엔 ‘국호는 조선인민공화국’이란 기사가 1면 머리기사로 실렸다. 여운형이 위원장인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국호를 정하고 조각까지 한 내용을 담고 있어 그야말로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감을 보여준다.10월17일자는 이승만 박사 기사로 넘쳐난다. ‘이승만 박사 33년만에 돌연귀국’이란 1면 머리기사와 함께 ‘평생을 민족해방에’‘이승만 귀국과 금후 정국’‘다망한 귀국후의 첫날’ 등 그의 귀국 첫날 일거수일투족을 담고 있다. ●11월11일자 강제정간 사실 알려 11월11일 매일신보는 군정청으로부터 강제 정간조치를 당한다.11일자에 실린 ‘본보정간에 대하야 독자에게 고함’이란 사고를 보면 ‘∼돌연 군정청광고국인쇄과 헤렌 대위로부터 아놀드 장관이 명령하야 ‘내일로부터 신문발행을 정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나이다.∼언론의 자유가 해방된 지 불과 몇 삭∼건국대업에 마음껏 이바지하지 못함을 독자아페 사과하나이다’란 사고를 내고 있다. 매일신보는 정간된 지 12일 뒤 ‘서울신문’으로 재탄생,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해방공간 4대신문 영인본 발간

    해방공간 4대신문 영인본 발간

    광복 직후부터 한국전쟁 무렵까지 격동의 해방공간을 기록한 서울신문 등 4개 신문 영인본이 나왔다. LG상남언론재단(이사장 안병훈)은 재단 창립 10주년을 맞아 1945년 8월15일부터 1950년 6월말까지 약 5년간 발행된 서울신문·조선일보·동아일보·경향신문의 지면을 복원한 ‘해방공간 4대신문 영인본’을 21일 발간했다. 광복 이후 한국엔 수많은 신문이 생겨났으나, 좌우익 대립과 극심한 혼란 등으로 대부분 폐간되었으며,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신문을 끊임없이 발행해온 신문은 이 4개 신문뿐이다. 이에 따라 역사의 기록보존이라는 의미에 더해 현대사를 연구하는 각 분야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발행된 영인본은 타블로이드판 1만 3200여페이지 17권으로 300질 한정 제작됐다. 서울신문은 1945년 8월15일부터 11월11일까지(매일신보)와 11월23일부터 1950년 6월27일까지 5권, 조선일보는 1945년 11월23일 복간호∼1950년 6월28일까지(4권), 동아일보는 1945년 12월1일 중간호∼1950년 6월27일까지(4권), 경향신문은 1946년 10월4일 창간호∼1950년 6월25일까지(4권)다. 재단측은 영인본들을 언론사 자료실과 국공립 도서관, 대학 도서관, 해외 한국학연구소 등에 기증할 계획이다. 재단은 24일 오후 6시30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출간기념 모임을 갖는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영인본 만든 정진석 교수

    영인본 만든 정진석 교수

    “일부만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모두가 인용해서 공평하게 쓸 수 있는 자료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해방공간 4개 일간지 영인본(影印本) 작업을 마무리한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무엇보다 ‘정보의 민주화’로 그 의미를 평가했다. 영인본은 말 그대로 문헌 자료를 사진(影)으로 찍어 인쇄(印)해둔 책(本)을 말한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종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작업이다. 정 명예교수는 서울·경향신문 조선·동아일보 등 4개 일간지에서 1945년 8·15광복에서 1950년 6·25전쟁 때까지 발행한 신문을 모아 영인본을 냈다. 서울 반포 연구실에서 만나 이번 작업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영인본을 만든 가장 큰 뜻은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1차자료’로 활용하자는 데 있다. 실제로 최근 많은 연구자들이 1930∼40년대 시대상황에 대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주로 문화사나 생활사쪽에서 이뤄지는 이런 시도들은 대부분 당시 발행된 ‘잡지’에 기대고 있다. 신문도 소중한 기초 연구자료로 쓰일 수 없을까. 쓰일 수 있다. 다만 잡지와 신문의 차이도 봐야 한다. 신변잡기적 소재를 다루는 잡지와 달리 신문은 아무래도 정치사회적 이슈에 집중한다. 그러니 아무래도 잡지보다는 ‘정치적 성격’이 짙다.“역사를 공부했다는 저 역시도 이번 기회에 해방공간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요즘 대표적인 ‘수구언론’쯤으로 평가받는 조선일보가 백범 김구 선생의 남북협상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는 사실이나,38선을 경계로 수시로 일어났던 남북간 무장충돌도 때로는 100여명의 사상자가 생길 정도로 큰 규모였다는 점 등이다. 여순사건도 마찬가지다.“당시 현지에 기자를 보낸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현장의 참혹함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불고 있는 과거청산 논의는 다소 못마땅하다. 장지연의 경우 단편적인 글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판단이다.“고종의 손자는 일본군 중좌로 히로시마 원폭에 죽습니다. 일본 국방상이 애도하고 대좌로 추서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도 친일입니까?” ‘누가 이랬다더라’식의 한건주의가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과 구체적 행동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물론 과거사를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작업에 필요한 객관적인 자료가 있습니까?” 정 명예교수는 영인본 작업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영국만 해도 인덱스(index·색인)작업을 높이 평가합니다. 인덱서(indexer)를 전문가로 인정해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조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외면합니다.” 정 명예교수는 국가의 관심부족을 아쉬워했다.“국가가 할 일은 평가 자체가 아니라, 평가를 위한 기초자료를 충실히 보존·관리하는 겁니다. 평가는 전문 연구자들간 토론과 합의에 맡겨야지요.” 그래서 정 명예교수는 영인본을 해외 한국학자들에게 보내는 것에 더해 150쪽 분량의 별도 요약집도 낸다.8·15광복이나 6·25전쟁, 김구 선생 암살사건, 북한의 위장평화공세 등과 같은 주요 사건들에 대한 기사만 따로 뽑을 예정이다. 정치적 사건만 다루면 딱딱해질 것을 우려해 서울신문에 처음 선보인 연재만화 ‘블론디’(지금은 한국일보 연재),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처음 발표된 경향신문 지면 등도 함께 넣을 생각이다.2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릴 출판기념회 때 내기 위해 마무리작업이 한창이다. 영인본을 만들면서 정 명예교수가 가장 신경쓴 대목은 영인본을 펴보는 게 당시의 신문을 펴본다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는 점. 이 때문에 없어진 면은 영인본에 백지 그대로 넣었다. 당시로는 드물었던 대판(지금의 신문크기) 신문은 영인본 첫 페이지에 축소판을 넣고 다음 페이지에 대판 크기의 신문 한 면을 두 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두면에 걸친 제목과 레이아웃을 고스란히 살리겠다는 ‘고집’ 때문이다. 글·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정대철씨 1년간 美연수… 정치재개설 일단 잠복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고문이 앞으로 1년간 미국에 머무른다.지난 8·15 광복절에 사면 복권된 정 전 고문은 오는 27일 출국,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초청으로 객원연구원 생활을 할 예정이라고 한 측근이 전했다. 정 전 고문은 이달 초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유선호·문학진 의원 등 재야파 인사를 초청, 만찬을 주재했으며, 지난달 초에는 6일간 일정으로 방북, 황해도의 농장을 둘러봐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하지만 정 전 고문의 외유로 사면 복권 이후 곧바로 정치를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은 일단 수그러들게 됐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3000억대 ‘송병준 땅’ 소유권 3파전

    3000억대 ‘송병준 땅’ 소유권 3파전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들이 토지반환 소송을 제기한 인천시 소재 13만여평 공시지가 3000여억원의 땅 소유권을 놓고 ‘땅찾기 3파전’이 벌어져 추이가 주목된다. 문제의 땅은 인천시 부평구 산곡동 15의2 등 67필지 13만 3000평. 해당부지는 도심속에 위치한 미군부대인 ‘캠프마켓(18만 7000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일 인천시와 법원에 따르면 송병준 후손들에 이어 천도교단과 애국지사 민영환 선생의 후손들도 각각 이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 땅은 미군부대가 2008년 이전할 예정이어서 그 가치가 계속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송병준의 증손자 송모(60)씨 등 후손 7명은 지난 2002년 “증조부가 국가로부터 합법적으로 받은 땅인데 일본군 병참기지로 활용되다 광복 후 미 군정이 국가에 귀속시켰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을사늑약에 비분강개해 자결한 민영환 선생의 유족들은 “해당 땅은 송병준이 선대를 속이고 빼앗아간 것”이라며 별도로 소송을 냈다. 여기에다 최근 천도교단이 이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천도교측은 “문제의 땅은 송병준이 일제로부터 하사받은 것이 아니라 천도교 재정을 총괄하는 금융관장이었던 송병준이 친일행위를 하다 천도교에서 출교된 뒤 1907년 시천교를 만들면서 천도교 재산과 교인들을 빼내 이를 기반으로 개간한 것”이라며 “시천교는 해산되면서 모든 재산이 천도교에 귀속됐다.”고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천도교단은 ‘친일재산환수 특별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돼 송병준 후손들이 낸 소송의 효력이 상실되면 국가를 상대로, 송씨 후손들이 승소할 경우 이들을 상대로 재산반환소송을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이 소송은 서울중앙지법에서 결심을 마친 상태이나, 친일재산환수 특별법이 발의되자 판결이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애경그룹-장영신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애경그룹-장영신 회장家

    “엄마, 걱정마. 이 앞에서 학생들 상대로 뽑기장사하면 되잖아!”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실의에 빠져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자기도 잘 먹던 뽑기장사해서 먹고 살면 되니 엄마보고 걱정 말란 것이다. 너무나 대견하고 안쓰러워 큰아들을 끌어안고 그때 처음 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울지 않는 엄마, 강한 엄마가 되어 내 아이들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자식들로 키울 것을 결심했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아버지의 유업을 잘 지키고 있다가 성년이 되면 물려주리라. 이렇게 생각을 발전시켜 애경을 내가 맡아 아이들과 똑같이 건실하게 성장시키기로 다짐했다. 국내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장영신(69) 회장이 자서전 ‘밀알심는 마음으로’에서 남편이 죽고 회사를 떠맡게 된 이야기를 이렇듯 생생하게 되짚었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강한 모성, 남편의 유업을 버려둘 수 없다는 아내로서의 의리, 애경 종업원들에 대한 책임감이 경영참여 이유라고 덧붙였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장 회장은 1970년 막내 아들을 낳은 지 사흘 만에 남편 고 채몽인 사장을 심장마비로 잃으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3남1녀의 어머니로 살림만 하며 지내던 12년차 주부가 국내 대표 생활용품 브랜드의 수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애경 창립 17년 만의 일이다. 장 회장은 1971년 남편 타계 1주기가 끝나자마자 경리학원에서 복식과 부기를 배웠고 이듬해인 1972년 8월1일부터 출근했다.1954년 6월 남편 고 채몽인씨가 5000만환으로 세운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가 현재 LG그룹의 모태인 비누제조사 락희화학과 경쟁을 벌이며 사업확대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다. 장 회장이 경영참여를 선언하자 시댁과 친정 가족은 물론 회사 임원들까지 반대하고 나섰다.“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부터 “그만두겠다.”고 협박하는 임원들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애경이 얼마 가지 않아 망하겠다.”는 말도 했다. 남편이 죽은 뒤 사장 자리를 맡고 있던 둘째 오빠 고 장성돈씨는 장 회장이 취임하자 회사를 나가버리기도 했다. 당시의 심경에 대해 장 회장은 “잠자리에 들면서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매일 일감을 집으로 가져와 밤늦도록 공부했고, 관청에선 담당공무원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다는 이유로 동행했던 회사 임원으로부터 책상 밑으로 구둣발에 차이기도 했다. 경제인 모임에서는 홀로 여자라는 자격지심에 기둥 뒤에 숨어 몇시간이나 서 있다 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잘해보겠다는 일념으로 겁없이 뛰어들었지만 기업환경도 나쁜 것뿐이었다. 경영에 참여한 1972년 말부터 오일쇼크에 따른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 그러나 장 회장은 더욱 힘을 냈다. ‘불황에 투자하라.’를 모토로 공장을 지방으로 확대 이전하는 한편 남편이 계획만 했던 석유화학 원료제조 분야를 애경의 미래 지표로 삼아 애경유화·애경화학·애경PNC(전 애경공업)·애경정밀화학·코스파 등 관련 회사를 속속 설립했다. 비누 산업에는 한계가 있지만 본격적인 화학공업은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분야는 지금까지도 애경에서 매출 비중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사업군이다. 남편이 설립한 비누회사도 소홀하지 않았다. 제품을 고도화시키는 데 집중했던 만큼 히트 상품도 꾸준히 내놓았다.1975년에는 분말 합성세제인 ‘크린업’을, 이듬해에는 액체세제 ‘써니’를,1980년 들어서는 세제 ‘스파크’를,90년 들어서는 클렌징 화장품인 ‘포인트’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트리오도 이름은 같지만 세척력을 높이고 공해도를 낮춰 지금까지도 1등 주방 세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줍은 소녀…‘터프우먼 마담 장(張)’으로 장 회장은 어머니 고 문금조씨와 아버지 고 장회근씨의 4남4녀중 막내딸이다.1936년 7월22일 서울에서 태어나 종로구 명륜동 1가 등에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당시 일본 와세다대에서 영문과를 졸업한 대지주의 아들. 어머니 문 여사도 당시 일본 귀족학교인 쓰다여대 영문과를 나온 재원이다. 장 회장은 혜화동성당 유치원을 나온 뒤 혜화국민학교를 다녔다. 노래를 잘해 전국 콩쿠르에서 상도 자주 받았다. 건강하고 공부도 잘해 반장을 도맡기도 했다. 부모님의 학구열이 강한 덕에 형제들 모두 공부를 잘했다. 큰오빠 고 장윤옥씨는 일본대 전문부 상과를 졸업한 뒤 감사원에 들어가 5국장(부이사관)까지 지냈고, 미국으로 이민간 큰언니 장영옥(81)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둘째 오빠 고 장성돈씨는 애경유지 사장을 지낸 바 있고, 서울대 정외과 출신의 셋째 오빠 고 장위돈씨는 서울대 정외과 교수,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치담당특별보좌관, 이집트 총영사, 에콰도르 대사를 지내는 등 이력이 화려하다. 애경유지 이사를 지낸 넷째 오빠 장기돈(75)씨는 성균관대 상대 출신이다. 장 회장의 집안은 일제시대 유학을 갔을 정도로 부유했지만 광복 후 실시된 토지개혁으로 가세가 기울었고 6·25가 터지자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경기여중을 졸업하고 경기여고에 재학중이던 그는 돈 안들이고 대학을 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마침 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어 재능을 인정받아 교장선생님이 일찌감치 유학을 준비시켰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1955년 미국 필라델피아 체스넛 힐 대학 화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시절에도 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당시 교내에서 오페라 하우스와 협연한 나비부인의 프리마돈나를 맡기도 했다. 애경이 쉘, 유니레버 등 다국적기업과의 합작을 무리없이 진행했던 배경에는 유학 생활로 다져진 영어실력과 당시 익혔던 외국 풍습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피란시절 여고생 신분으로 부산에서 사과장사를 한 적도 있다. 좌판을 벌여놓고 사과를 예쁘게 쌓아놓았지만 막상 손님이 와서 얼마냐고 물어보면 먼산 바라보기 일쑤였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탓에 장사꾼이 아닌 척한 것이다. 그러나 애경을 경영하면서 그에게는 ‘호랑이’‘터프우먼’‘마담장’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80년대 들어 새로운 돌파구로 외국계와 합작에 집중했을 당시 그쪽에서 공동대표를 요구하면 그는 “여기는 한국 회사다. 너희가 한국에 대해 뭘 아느냐. 한국 문화를 이해할 때까지 너희들은 뒤에서 지켜봐라.”고 충고했다. 합작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달지 말라고 요구받으면 애국가 봉창, 국기에 대한 맹세까지 순서대로 진행했다. 당시 외국인들은 이런 장 회장을 놓고 ‘마담장 터프우먼’이라고 외쳤다. 사내에서는 ‘호랑이’로 통했다. 화가 나면 직설적으로 퍼붓는 성격과 한번 결정하면 매몰차게 추진해 나가는 돌파력 때문이란 설명이다. 물론 풀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래서 ‘너그러우면서도 불같다.’는 평을 받는다. ●남편과는 어릴적 이웃사촌 장 회장과 남편 채몽인씨는 이웃사촌으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고 채씨는 장 회장이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부터 애정 공세를 퍼붓다 미국까지 따라가 무려 3년11개월 동안 구애 공세를 펼쳤다. 공개청혼으로 남편의 존재는 대학내에도 다 알려져 수녀 교수들로부터 “왜 저 좋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느냐, 이해를 못하겠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는 졸업후 약속대로 서울로 돌아와 23세이던 1959년 6월 신당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자식들(3남1녀)의 혼사는 장 회장보다 더 빠르다. 대부분이 대학시절에 결혼을 모두 끝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두 연애 결혼이다. 큰아들인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45)은 1982년 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 재학 당시 학교에서 만난 홍미경(43)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친구로부터 소개받아 교제 1년 만에 결혼했다. 당시 부인은 1학년에 재학중인 생활미술학과 새내기. 채 부회장은 1983년 졸업후 미국 보스턴대에 MBA를 받은 뒤 1985년 애경산업 생산부 마케팅부 등을 섭렵했다. 부인 홍씨도 함께 유학을 떠나 보스턴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홍씨는 전공을 살려 현재 종로에서 갤러리 ‘사간’을 운영 중이다. 불혹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출중한 미모가 인상적이다. 장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평소 “우리 큰애(큰며느리)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정말 착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한다. 인천교대 음대 교수를 지낸 장인 고 홍종수옹은 서울시립교향악단,KBS교향악단 등에서도 활약한 음악가다. 장 회장의 맞손녀이자 큰아들인 채 부회장의 딸 문선(19)양은 할머니의 성악 실력과 외할아버지의 음악 재능을 모두 물려받아 현재 미국 맨해튼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다. 유통부문을 맡고 있는 둘째 아들 채동석(41) 애경백화점 사장은 성균관대 철학과 3학년 때 미팅으로 만난 동갑내기 이정은(41)씨와 결혼해 졸업하기 전 1년 동안 학생 부부로 지내기도 했다. 채 사장은 미국 조지 워싱턴대 국제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1991년 애경에 합류했다. 현재 애경백화점,AK면세점, 수원애경역사, 평택역사 등 애경의 유통부문을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씨는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프랜치 퓨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의 아버지 이병문(75)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예편한 4성 해병대 사령관 출신으로 아세아시멘트 회장을 지냈다. 큰딸 채은정(42)씨는 외숙모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던 안용찬(46) 애경 사장을 소개해줘 결혼한 경우다. 안 사장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과정 재학 당시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채씨 외숙모의 권유로 은정씨를 만났다. 은정씨도 대학 3학년때 결혼했다. 은정씨는 이화여대 조소학과를 나와 미국 애크리하트대에서 그래픽을 전공한 뒤 1998년 애경산업에 들어왔다. 애경 마케팅지원부문 상무를 맡고 있다. 채 부회장과 연세대 경영학과 77학번 출신인 안 사장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채 부회장은 “안 사장이 나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친구 사이여서 이미 대학시절부터 안 사장을 알고 지냈다.”면서 “성실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 여동생의 남자친구가 되어 있었고 유학을 끝낸 뒤 애경으로 꼭 와줄 것을 내가 청했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1987년 애경산업 마케팅부에 입사하기 이전 유학을 마치고 미국 폰즈사에서도 마케팅 담당 업무를 맡았다. 통역 장교 1기 출신인 안 사장의 아버지 안상호(76)씨는 육군 참모총장 수석 보좌관, 미국 엔지니어링 회사 플로 코리아의 한국 대표 등을 지냈다. 막내 아들 채승석(35) 애경개발 부사장은 50만평 18홀 규모의 경기도 광주시 중부 컨트리클럽을 운영하는 애경개발을 맡고 있다. 애경개발은 1987년 출발 당시부터 애경의 계열사중 유일하게 주력인 세제·화학과 동떨어진 업종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한때 SBS아나운서로도 활동했던 한성주(31)씨와 99년 6월 결혼,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단국대 사학과 89학번인 채 부사장은 형제들 중 유일하게 어머니를 닮아 노래를 잘한다. 당초 친정에서 장 회장의 경영참여를 반대했지만 앙금은 남아 있지 않다. 조카들도 여럿 애경에 몸담고 있다. 둘째 오빠인 고 장성돈 전 애경유지 사장의 큰아들인 장인규(53)씨는 과거 애경PNT(전 경신산업) 사장으로 일하다 미국으로 이민갔고, 둘째 아들 장인원(49)씨는 계열사인 코스파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장 회장의 셋째 오빠인 고 장위돈씨가 낳은 3형제 중 큰아들인 우영(37)씨는 애경 화장품사업부장으로 있다. ●애경백화점에 남다른 애착 장 회장은 회사를 맡은 이후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큰아들 채 부회장이 1993년 9월10일 애경백화점 개점식 인사말에서 “이 백화점을 돌아가신 아버님께 바칩니다.”라고 말한 순간 ‘마음이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됐다.’고 회고했다. 애경백화점 본점인 서울 구로구점은 창업자인 남편 고 채몽인씨가 타계하는 순간까지 비누를 만들었던 창업 터전이다.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 비누인 ‘미향’을 만든 곳으로 70년대까지 ‘트리오’ 등 세제를 만들다 공장이 대전으로 옮겨가면서 계속 창고로 써왔다.“아버지가 물려준 땅이니 잘 연구해서 활용해보라.”고 맡긴 지 3년 만에 1만평 부지가 백화점으로 거듭났다. 장 회장은 애경백화점을 두고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지금도 두 아들이 사이좋게 이 백화점 5층에서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다. 장 회장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백화점을 다녀갈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이유다. 장 회장은 즐기는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 채 부회장은 장 회장에 대해 “희생하는 삶만 사신 분”이라면서 “항상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아왔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여름휴가를 가본 적이 없고 남들이 취미를 물으면 ‘빨래’라고 대답할 정도로 아직도 집안 일을 혼자 한다. 말년에 잠시 정치에 참여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크게 어긋나는 길은 아니란 평이다.1997년 고사해 오던 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여성들이 기업하기 불편한 환경을 고쳐야 한다고 마음먹었다.1999년 민주당 신당창당 준비위원 공동대표로 영입된 뒤 백화점이 있는 구로를 텃밭삼아 16대 국회의원으로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왜 정치를 하느냐. 이미지 버린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여성경제인들을 도와야 한다는 선배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더이상 정치에 참여할 뜻은 없다. ●가족간 우애는 애경의 힘 장 회장은 경영에서 손을 뗐다. 애경 창사 50주년을 맞았던 지난 2004년 구로동 본사 회장실을 비웠고 결재도 큰아들에게 모두 맡기고 보고도 받지 않는다. 애경복지재단 일에 관여하며 무역협회 부회장직만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취미삼아 중국어를 배우고 있고, 순환기계통이 안 좋은 탓에 홍콩에 침을 맞으러 다니고 있다.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된 일로는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간 볼썽사나운 재산 분쟁이 많은 재계에서 애경가문 형제들은 함께 회사를 키워가며 우애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채 부회장과 동생 채동석 사장은 10년 넘게 한 사무실을 쓰고 있다. 채 부회장은 “인맥이랄 만한 사람들을 알지도 못하고 술을 먹거나 함께 어울리는 대상이 모두 형제들이다.”면서 “네 남자가 모여 술을 자주 먹는다.”고 말했다. 며느리들도 친하다. 큰동서와 작은 동서도 단짝 친구 같다. 형제들이 화목할 수 있는 주요 원인이란 지적이다. 채 부회장은 1985년 입사한 뒤 점차 그룹의 덩치를 키우는 데 주력했다.1993년 애경백화점 구로점을 열며 유통업계에 뛰어든 뒤 AK면세점(2001년) 애경 2호점인 수원애경역사(2003년)로 확대했고 3호점 평택역사는 2009년 완공된다. 제주도와 함께 설립한 ㈜제주항공을 통해 2006년 6월부터 민간항공 사업도 벌인다. 채 부회장은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동생 채동석 사장은 유통부문을, 처남인 안용찬 사장이 생활용품 부문을 키우고 있다.2세대에 와서 생활용품과 기초화학의 양축을 키워가는 한편 유통과 항공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채 부회장은 고혈압이 있어 거의 매주 등산을 즐기고 있다. 유아세례를 받고 결혼식도 명동성당에서 올린 천주교 신자이지만 산을 자주 찾는 탓에 항상 절을 찾아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산사를 찾을 때마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에 항상 감사드린다는 내용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다.”면서 “애경의 힘은 형제간의 우애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jhj@seoul.co.kr ■ 장회장 ‘유별난 시간개념’ 애경가(家)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유별나다. 장영신 회장은 약속 시간보다 최소한 10분 먼저 도착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나는 사업상으로나 개인적으로 약속을 하면 꼭 10분 전에 나가 상대방을 기다린다. 약속 시간보다 단 5분이라도 늦는 사람은 첫 대면부터 뭔가 부족한 사람이란 평가를 하게 된다. 나는 부하 직원들을 평가할 때도 시간관념을 하나의 척도로 삼는다. 시간 하나 제대로 못지키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시간은 비즈니스를 포함한 모든 인간 관계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첫 관문이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작은 사실 하나가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을 대변한다.”(자서전 ‘밀알심는 마음으로’에서) 그가 경영일선에 있을 때는 ‘나인 투 파이브’ 원칙을 지켰다.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게 아니라 늦어도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면 기상하는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조간 신문을 읽고 그날의 주요 업무를 점검하고 계획했다. 새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도 아침 시간을 이용한다. 회의도 결재도 오전에 처리한다. 관청과 은행이 문을 여는 아침 9시 이전에는 하루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일을 놓은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은 그대로다. 그래서 애경에는 오전 8시만 되면 결재를 받기 위한 줄이 이어지고, 오전 9시면 그날 결재받는 것은 포기해야 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철저한 시간관념은 애경가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배어 있다. 아들 딸은 물론 며느리 사위 모두 새벽형 인간이다. 채형석 부회장은 한술 더 떠 새벽 4시면 일어나 아침밥을 꼭 챙겨먹고 출근한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식구들끼리 밥을 먹기로 하거나 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 모일 때는 아예 30분 먼저 나갈 정도다. 채 부회장은 “식사 시간을 통해 가족 모임이 주로 이뤄지는데 식당 문을 여는 시간이 바로 우리 가족이 만나는 시간”이라면서 “예컨대 6시에 모이기로 해도 식당이 문을 여는 오후 5시 30분이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 있다.”고 전했다. 급한 성격 탓에 식사를 시작하면 1시간내에 모두 끝내고 일어선다. 한 번은 막내인 채승석 부사장이 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 약속한 정시에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이미 식구들이 모두 제사를 지낸 뒤 산에서 내려오고 있더라는 일화도 있다. jhj@seoul.co.kr ■ 장영신 회장과 제주와의 인연 장영신 회장의 ‘제주 사랑’은 남다르다. 그의 제주 인연은 1970년 창업주인 남편 고 채몽인 사장이 타계하면서 더 각별해졌다. 장 회장은 남편의 조의금 전액을 제주도 재경장학회에 기증했다. 장학회는 이 돈으로 지금까지 매년 30명, 모두 1300여명의 제주 출신 대학생을 후원했다. 제주도는 고 채 사장의 고향이다. 큰아들 채형석 부회장도 최소한 1년에 세차례 이상 제주도에 간다. 선산이 모두 중문 색달동에 있다. 꼭 성묘가 아니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가끔 간다. 채 부회장은 “제주는 아버지의 고향이지만 저도 국민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 제주도에 요양을 가셨을 때 동행했기 때문에 한동안 지낸 기억이 있어 친근하다.”면서 “할아버지가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현감을 지내기도 했다는데 증조 할아버지까지만 기록이 있어 뿌리를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장 회장도 제주에서 지낸 시절이 있다. 경기여고 재학시절 6·25때 제주로 피란가 1년간 지냈다. 장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제주도 여성들을 보면서 여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깨달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애경은 제주도와 손잡고 내년 6월부터 도민의 숙원인 저가항공 시대 대열에 동참한다. 애경은 제주도와 합작해 저가항공사인 ㈜제주항공을 만들었다.㈜제주항공의 왕복 비용은 기존 항공비용의 70% 수준인 11만원선.㈜제주항공의 애경 지분은 75%다. 채 부회장은 “이윤이 크게 나는 사업은 아니지만 중국과의 경쟁에서 영향을 받지 않을 영역이라고 보고 사업을 결심했다.”고 말하지만 주변에서는 “장 회장의 제주 사랑과 무관치 않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발언대] 순국선열의 날에 생각한다/정하철 서울지방보훈청장

    금년은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다. 일제 침략으로부터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우리 민족은 암울한 질곡의 세월 속에 살아야 했다.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국내는 물론 머나먼 타국 땅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오로지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신념 하나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으셨던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어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강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항거하다 끝내 꿈에 그리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의 위훈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1939년부터 11월1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제정하였다. 그 배경은 1905년 11월17일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비분강개하여 순절하거나 의병항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던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국민들 중 상당수가 순국선열의 날이 있음을 알지 못할 뿐더러 순국선열이란 용어조차 낯설고 생소한 느낌을 갖고 있다. 즉 학교 조회시간이나 행사 참가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은 수없이 하고 있으나 그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학생이나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덕이 높은 분을 불천위(不遷位)라 하고 그 분들에 대하여는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예우하고 존경하였다. 그 가문에서는 신위(神位)를 사당에 모시고 후손대대로 불천위 제사를 지냈다. 이들 후손은 그 조상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시대 최고의 명문가로 인정받았다. 이는 국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인물을 영웅으로 대접하고 그런 훌륭한 인물이 탄생된 가문을 영구히 추앙하는 많은 선진국가의 제도와 유사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국민들은 선진국에 비해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부족한 듯하여 부끄럽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국권회복을 위해 위국 헌신한 수많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독립정신은 물론 조국 광복 이후에도 대한민국을 지키다 소중한 신명을 바친 호국용사들의 피와 땀, 남겨진 유가족의 비통함을 쉽게 잊어버린 채 세대간·지역간·계층간 갈등으로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물질만능과 소비향락 주의가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하여 국가에서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풍조를 바로잡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예우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현충일이나 순국선열의 날 등을 정부기념일로 정하고 기념식과 추모제전을 거행하고 있다. 이는 과거 우리 조상들이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해 그 집안 대대로 불천위 제사를 지낸 것과 같이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만큼은 우리 국민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일제에 항거하다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의 거룩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그 분들의 고귀한 뜻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는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은 조국을 위한 모든 순국선열들의 염원을 대변한 것이기도 하다.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수많은 순국선열들과 국가유공자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정하철 서울지방보훈청장
  • “왼쪽·오른쪽 아닌 앞으로 갑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한국처럼 이념 논쟁하는 곳은 없습니다. 이념 대립을 바로잡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조정자 역할을 하겠습니다.” 16일 오후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고이즈미 정권의 동아시아 외교와 중·일관계’를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희망21포럼’의 창립기념 행사.‘희망21포럼’은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교수를 중심으로 소장학자들 100여명이 ‘이념 갈등을 조정하고 발전적 의제 설정을 해보자.’며 만든 학술 모임이다. ‘급진 좌파‘,‘수구 꼴통’ 등 60년 전 광복 이후에나 있을 법하던 좌우 이념 대결이 21세기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 현상으로 부활되면서 국력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는 게 주최측의 설명이다. 서울과 경기, 대전 등 전국 8개 시도 지부의 총괄 대표를 맡은 박 교수는 “OECD 국가들에서도 정책 대립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그 같은 대립은 가능하지만, 이념 갈등이 우리처럼 사회를 양분화하는 곳은 없다.”면서 “사회적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3년 전부터 동료 학자들과 고민해오다 포럼을 창립하게 됐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최근 등장한 ‘뉴라이트’와 관련해 “사회적 다양성 차원에서 그것도 하나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를 좌와 우, 진보와 보수로 양분하려는 것은 잘못됐다는 점”이라며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태도를 강조했다.첫 주제를 일본 외교와 중·일 관계로 정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박 교수는 “매년 2차례에 걸쳐 전국적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시도 지부별로 매월 1회 워크숍도 가질 것”이라면서 “향후 지부를 16개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포럼은 9개의 분과위원회를 두고 각 분과위원회에 전공 학자들을 포진시켜 전문성을 강화했다.정치성을 배제하고 연구와 실천의 관점에서 향후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지만, 이 같은 연구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희망 있는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는 성과물을 내겠다는 원대한 목표도 갖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서울대 손기섭 교수의 논문 발표와 명지대 신율 교수 등의 토론으로 진행됐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12개부문 선정

    한국언론인연합회(회장 서정우)는 12월5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별관 3층 코스모스홀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한국을 빛낸 인물을 대상으로 ‘제5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부문별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애국운동=김국주 광복회 회장 ▲조국봉사=이종문 미국 암벡스벤처그룹 회장 ▲국위선양=이준구 국제 10021클럽 총재 ▲경제·무역=김재철 한국무역협회장 ▲방송언론=윤세영 서울방송(SBS) 회장 ▲행정=이명박 서울시장 ▲전통문화=김의정 명원문화재단 이사장 ▲교육산업=강영중 대교그룹회장 ▲의류산업=박순호 세정그룹 회장▲대중예술=가수 조용필 ▲과학=김현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반기술연구팀장 ▲스포츠=축구선수 박지성
  • [씨줄날줄] 을사늑약/이용원 논설위원

    광복 60주년을 맞은 올해는 한·일협정 체결 40주년이자 을사늑약 100주년이기도 하다.1905년 11월18일 강제 조인된 이 한·일협상조약은 한동안 을사조약·을사보호조약·을사5조약 등으로 불리다가 몇년 전부터 ‘억지로 맺은 조약’이라는 뜻의 을사늑약(勒約)으로 명칭이 정리됐다. 을사늑약의 결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잃은 데다 일본이 파견한 통감(統監)을 고종 휘하에 받아들이게 돼 내정까지도 통제받게 됐다. 따라서 을사늑약이야말로 대한제국이 사실상 국권을 상실하는 원인이 되었다. 을사늑약 체결을 전후해 항일·구국운동의 선봉 격인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는 일본 특사인 이토 히로부미를 비판하는 논설을 잇따라 실어, 훗날 이토에게서 “한국에서 신문이 가진 권력은 비상한데 그 중에서도 대한매일신보는 일본의 제반 악정(惡政)을 반대하여 선동함이 끊이질 않는다.”라는 한탄을 끌어냈다. 장지연의 그 유명한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이 황성신문에 실린 것도 체결 직후였다. 늑약의 내용이 알려지자 민영환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의 자결이 잇따랐고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출현했다. 최익현·신돌석·유인석 등이 을사의병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한편 일본 측은 고종이 을사늑약에 찬성하였으며 대신들(을사5적)이 자발적으로 체결에 나섰다고 선전해 한국인들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이같은 선전과 달리 고종은 체결 나흘 뒤 황실고문 헐버트에게 총칼의 위협 아래 조인된 을사늑약은 무효임을 만방에 알리도록 지시했다. 모레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100년째 되는 날이다. 이를 앞두고 을사늑약에 고종이 반대하였음을 보여주는 일본측 자료가 공개됐다. 이토가 늑약 체결후 그 과정을 일본 왕에게 보고한 복명서의 초안이 발견된 것이다. 그 초안에는 당초 ‘한국 황제는 대체로 이번 제안에 동의한 것이 아니고’라고 썼다가 그 위에 줄을 긋고 ‘한국 황제가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으로 고쳐 썼다. 고종의 ‘반대’를 ‘동의’로 둔갑시킨 이 초안은 당시 이토를 수행한 스즈키 게이로쿠 추밀원 서기관장이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고종의 동의를 주요 근거로 내세워 을사늑약의 합법성을 주장해온 일본 학자들이 앞으로 어떤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을지 궁금해진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국내 최초 용광로 등록문화재 지정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용광로인 삼화제철소 8호 용광로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포항시는 최근 문화재청이 삼화제철소 8호 용광로를 등록문화재 제217호로 지정, 시에 통보해 왔다고 15일 밝혔다. 포스코가 지난 5월 이 용광로가 국내 최초의 근대식 용광로 보존 가치가 있다며 포항시를 통해 경북도와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한 지 6개월 만이다. 삼화제철소 8호 고로는 일본 고레가와(是川)제철이 1943년 삼척공장을 건설하면서 설치한 선철(무쇠) 생산량 1일 20t 규모의 소형고로 8기 가운데 하나다. 높이 25m, 직경 3m, 철피 두께 15㎜, 중량 30t 규모이다. 광복 직후 삼화제철소로 회사 이름을 바꾼 뒤 자금 및 전력 부족으로 가동과 휴업을 되풀이하면서 1971년까지 존속했다. 이후 몇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철거 위기에 놓인 것을 1993년 포스코가 사들여 포항으로 옮겼다.2003년 4월부터 포스코역사관 야외 전시장에 복원·전시해 왔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 용광로는 국내 제철기술과 제철공업 발달사에 대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중요한 산업시설물로 역사적·산업 발달사적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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