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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간총리 새달 ‘한·일병합100년 담화’ 방침

    日 간총리 새달 ‘한·일병합100년 담화’ 방침

    일본 정부가 다음 달 한·일 병합 100년을 계기로 간 나오토 총리 명의의 담화를 발표한다는 방침 아래 문안정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시기는 8월15일 광복절(종전 기념일)이나 합방조약이 강제 체결된 8월22일쯤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은 “(한·일 병합) 100년을 맞아 정부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검토하고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NHK방송이 17일 보도했다. 앞서 내각의 제2인자인 센고쿠 관방장관도 “총리 담화 발표를 검토하고 있다.”며 “뭔가 견해를 밝힌다면 어떤 내용이 될지 내 머릿속에는 들어 있다.”며 총리 담화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담화의 수위에 대해서는 한국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준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 7·11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야당인 자민당과 보수파들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만한 획기적인 내용을 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본 정부는 1995년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무라야마 담화가 나온 이후 이보다 진전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나오지 않고 있다. 당장 산케이신문 등 보수 언론은 센고쿠 장관의 발언에 대해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촉구하고 나서는 등 일본은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핵심 브레인인 이이오 준 정책연구대학원대학 부학장은 “한·일 과거사에 대한 총리 담화는 민주당 전체로 봐서는 컨센스를 가지기 힘들다.”며 “총리가 자기 책임하에 적극적으로 하면 가능하지만 당내 합의를 이끌어 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관건은 간 내각이 극우·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뚫고 진전된 역사인식을 펼칠수 있는 돌파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간 총리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보수세력과의 정면충돌은 피하려 할 공산이 크다는 예상이 많은 실정이다. 간 총리는 지난달 취임 직후 이명박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해 “반성해야 할 역사는 반성하고 미래를 감안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노력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NTN포토] ‘화이트 여신’ 이인혜, 매력적인 미소로

    [NTN포토] ‘화이트 여신’ 이인혜, 매력적인 미소로

    [서울신문NTN 현성준 기자] 18일 오후 서울 남산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일광그룹과 함께하는 ‘희망과 사랑 나눔’ 열린 음악회에서 일광복지재단 홍보대사 이인혜가 입장하고 있다.현성준 기자 gus@seoulntn.com
  • [NTN포토] ‘일광복지재단 홍보대사’ 이인혜

    [NTN포토] ‘일광복지재단 홍보대사’ 이인혜

    [서울신문NTN 현성준 기자] 18일 오후 서울 남산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일광그룹과 함께하는 ‘희망과 사랑 나눔’ 열린 음악회에서 일광복지재단 홍보대사 이인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현성준 기자 gus@seoulntn.com
  • [NTN포토] ‘청순미인’ 이인혜, 순백의 아름다운 자태

    [NTN포토] ‘청순미인’ 이인혜, 순백의 아름다운 자태

    [서울신문NTN 현성준 기자] 18일 오후 서울 남산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일광그룹과 함께하는 ‘희망과 사랑 나눔’ 열린 음악회에서 일광복지재단 홍보대사 이인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현성준 기자 gus@seoulntn.com
  • [NTN포토] ‘청순미인’ 이인혜, 순백의 아름다운 자태

    [NTN포토] ‘청순미인’ 이인혜, 순백의 아름다운 자태

    [서울신문NTN 현성준 기자] 18일 오후 서울 남산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일광그룹과 함꼐하는 ‘희망과 사랑 나눔’ 열린 음악회에서 일광복지재단 홍보대사 이인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현성준 기자 gus@seoulntn.com
  • [NTN포토] ‘일광복지재단 홍보대사’ 이인혜

    [NTN포토] ‘일광복지재단 홍보대사’ 이인혜

    [서울신문NTN 현성준 기자] 18일 오후 서울 남산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일광그룹과 함꼐하는 ‘희망과 사랑 나눔’ 열린 음악회에서 일광복지재단 홍보대사 이인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현성준 기자 gus@seoulntn.com
  • [사설] 광복절 사면복권 국민 힘 모으는 내용 돼야

    정부가 8·15 광복절을 맞아 수천 명을 대상으로 특별사면 및 복권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인과 정치인, 그리고 18대 총선에서 선거법을 위반해 형이 확정된 선거사범 등이 대거 포함됐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 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단독사면 때 제외된 경제인이 상당수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과 재판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대통령의 이러한 사면권은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이번에 특별사면이 실시되면 이명박 정부 들어 5번째여서 너무 잦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사면은 의미가 적지 않다. 광복절 사면복권은 분열된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 정권교체 혼란기에 무리한 사법처리 논란을 불렀던 일부 경제인들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사면해 경제살리기에 동참시키는 것을 검토해 봐야 한다. 선거정국을 거치면서 표적 사법처리 논란이 인 정치인들도 고려해야 한다. 이제 화합의 손을 잡아야 할 시점이다. 다만 사면은 명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시행되어 국민들이 흔쾌히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사면권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면복권은 부작용이 많은 제도이다. 사면권이 남용되면 법치주의 근간이 파괴된다. 법제도의 안정성을 해쳐 사법질서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대화합을 명분으로 단행하는 사면복권이 국론분열의 씨앗을 잉태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면복권이 취지와 달리 법 경시 풍조를 낳지 않도록 엄격하게 대상자를 선정해야 한다. 주요 경축일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단행되는 사면복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국민 화합은 최대한 도모하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2007년 사면업무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설치된 사면심사위원회가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무부 장·차관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의 민주적 운영으로 정당성을 강화해야 한다.
  • [사설] 소통과 화합으로 선진 한반도 시대 열자

    서울신문이 18일로 창간 106주년을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연륜의 신문으로서 생일을 자축하는 한편 옷깃을 여미며 새출발의 다짐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는 일제가 국권 침탈의 발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한말인 1904년 구국의 깃발을 높이 내걸고 탄생했습니다. 애국지사 양기탁 선생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영국인 배설(裵說·Bethell) 등에 의해 창간된 항일 정론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국내 최고(最古)의 민족정론지라는 뿌듯한 자긍심만 내세우려는 게 아니라 차제에 부끄러운 과거도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대한매일신보는 1910년 국권 상실과 함께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문으로 제호가 바뀌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광복과 함께 서울신문으로 재탄생했지만, 1948년부터 정부 소유로 귀속되면서 역대 정권들이 때로 독재나 권위주의로 치달을 때 시비곡직을 가리는 데 주춤거려 독자들의 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1998년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꿨다가 사원이 1대주주인 독립언론으로 거듭나면서 지난 2004년 서울신문이란 이름을 되찾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다만 우리는 지난 세월의 공과에 대해 겸허히 자성하되 지나친 자기 비하에 빠지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나라와 민족의 안녕을 수호하려 했던 창간 취지를 되살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이익을 맨 앞자리에 놓는, 공정한 보도로 독자로부터 사랑받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100여년 영욕의 시간, 겸허히 자성 서울신문이 지켜본 지난 105년 간의 민족사도 국권상실과 광복, 동족상잔의 전쟁, 그리고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 투쟁 등으로 영욕이 교차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현대사는 총체적으로는 성공 스토리였다는 게 우리의 견해입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옥수수 가루로 허기를 달래던 나라가 세계 15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지 않습니까. 더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140여개 신생국 중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최근 십수년간 선진국의 문턱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지만 일류 선진국으로 가는 고지는 아직도 신기루인 양 멀어 보이기만 합니다. 미국발 금융 쓰나미에서 보듯이 세계는 지금 문명사적 전환기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유럽 주요국과 일본마저 이른바 ‘선진국의 함정’에 빠져 경제난을 겪고 있음을 보십시오. 보수·진보, 공론의 장으로 역할할 것 이처럼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온 국민이 일치 단결해도 모자랄 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내부적으로 갈가리 찢겨져 성장잠재력을 스스로 좀먹고 있습니다. 남북 분단도 서러운데 지역 및 세대간 갈등에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가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습니다. 올 들어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여야의 무한 대치는 분열과 갈등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축도일 뿐입니다. 누가 봐도 북한의 도발임이 뻔한 천안함 폭침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고도 정략과 소리에 휘둘려 서로 눈을 부라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소통과 화합의 결핍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입니다. 선진국들이 경제위기를 수반한 정치적 격랑에 휩싸여서도 국가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소통과 타협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다문화 사회의 초입에 들어선 만큼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상생·협력하는 기풍을 확립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본지 창간 106주년을 맞아 각계 전문가 1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각계 원로와 중진들은 이명박 정부의 집권 후반기 최우선 과제로 사회통합을 꼽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신문은 무엇보다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소이(小異)를 버리고 대동(大同)을 추구하도록 공론의 장의 역할을 다하려고 합니다. 특히 여야와 각 지역 및 세대가 소속 집단의 이해를 넘어 국가 공동체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길에서 만나도록 건전한 비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소통이 중요하지만, 각계각층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 주겠다는 식의 인기영합주의로 흘러 나라 살림이 거덜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서울신문은 머잖아 오고야 말 통일된 선진복지국가를 내다보며 공익을 앞세우는 보도자세를 꿋꿋이 지켜나갈 것임을 거듭 다짐합니다.
  • [Next 10년 신성장동력] 롯데백화점-해외진출 박차… ‘글로벌 톱10’으로

    [Next 10년 신성장동력] 롯데백화점-해외진출 박차… ‘글로벌 톱10’으로

    롯데백화점은 2020년 글로벌 유통기업이 되기 위해 과감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점포수 확장과 해외시장 확대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해외 선진기업과 견줘도 손색 없는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롯데백화점은 ‘2018 글로벌톱 10’을 모토로, 신규 출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8년까지 국내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구축하고 성공적인 글로벌화도 일궈 매출 목표 22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각오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부산 광복점을 오픈했고 오는 8월에는 청량리역사점, 광복점 신관, 아웃렛 대구 율하점 개점도 앞두고 있다. 내년에는 대구 봉무 LSC(라이프스타일센터), 2012년에는 김포스카이파크, 제2롯데월드와 수원점을, 2013년에는 인천 송도점 등을 오픈해 10여개의 점포를 추가로 확보한다는 생각이다. 해외에서는 중국 텐진점, 베트남 하노이점, 중국 선양점 오픈이 확정돼 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에 러시아 2호점 진출을 검토 중이다. 중국에서는 베이징, 톈진, 선양, 상하이, 광저우 등 주요 도시를 거점으로 지역마다 1~2개씩 점포를 오픈하거나 거점지역과 가까운 주변 도시를 묶어 진출하는 등 집중화 전략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중국에만 2018년까지 총 20개 백화점을 열기로 했다. 인도시장 진출을 위한 노력도 다각화하고 있다. 이미 2006년 11월 인도에 주재원을 파견하고, 2008년 1월에는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현재 시장조사 단계를 넘어 뉴델리, 뭄바이 등 인구 1000만명 이상 도시를 중심으로 부지 물색을 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통기업에서 더 나아가 세계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초우량 백화점’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이를 위해 국내 신규 사업을 강화하고 해외사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의 실천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新지방시대] 여성 기초단체장에게 다섯가지 물었더니

    [新지방시대] 여성 기초단체장에게 다섯가지 물었더니

    (1) 남성 단체장에 비해 가진 장점은 무엇이고 이를 행정에 어떻게 반영할 계획인가? (2) 직원들이 최일선에서 민원업무를 하다 보면 비리유혹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청렴한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한 복안이 있다면 무엇인가? (3) 남과 같이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고 본다. 어떤 각오로 4년간 지역살림을 꾸려갈 생각인가? (4) 공약들이 많다.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두 가지만 들라면? (5) 취임사와 함께 고별사 준비도 해두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본다. 4년 뒤 어떤 단체장이라는 평가를 듣고 싶은가?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박춘희 서울 송파구청장 ① 부드럽고 섬세한 카리스마로 구민들과 소통하는 부분은 여성이 조금 더 우월하지 않을까 싶다. 연이어 여성구청장을 선택해 주신 송파구민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섬세하고 포용력있게 구정을 이끌어 나가겠다. ②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그 다음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나부터 청렴해야 하는데, 구민들이 나를 선택해 줬을 때 가졌던 그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면 청렴하게 생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직원들은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서 비리에 연루되지 않게 하겠다. ③ 송파구민의 뜻을 받들어 힘과 지혜를 하나로 모으는 구청장이 되겠다. 구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과 어려움을 모두의 과제로 삼아 함께 힘을 모으고 해결하는 구청장이 되기 위해 늘 공부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갖겠다. ④ 무엇보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우선으로 하겠다. 현재 송파구 내에 현안 과제인 제2롯데월드건설. 뉴타운 추진 등을 해결해 문화관광도시로 만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일자리를 생성시키도록 하겠다. ⑤ 구민들의 편에 서서 귀를 기울였던 열린 마음을 가진 구청장이였고, 행동에 있어서도 늘 최선을 다했던 구청장으로 평가받고 싶다.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 ① 장점으로 표현한다면 여성만의 부드러움과 섬세함, 가족 친화적 마인드의 소통이다. 지역의 첫 여성구청장으로 지난 4년 동안 현장행정, 주민 참여행정을 한 것이 재선의 결과라 생각된다. 이것을 민선5기에도 이어 가면서 주민과 함께 주민의 소리를 많이 듣는 행정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② 자체 청렴행정 추진단을 구성하여 사전에 내부 반부패 시스템을 구축, 자율적 실천을 유도하고 있으며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부조리 신고 보상금지급(최고 1000만원이내), 홈페이지 부조리 신고방, 전 직원 청렴서약서 서명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③ 지금까지처럼 현장의 생생한 의견들을 들으며 신뢰와 소통의 자세로 주민과 함께 주민이 행복한 중구로 가꾸어 나가고자 한다. ④ 문화와 관광으로 연결되는 도심 재창조 사업이 계속되어야 하겠고, 그린중구, 특히 아토피 없는 영유아 보육원, 유치원, 친환경급식으로 오고 싶고 살고 싶은 중구 만들기에 최선을 다 하겠다. ⑤ 기초를 잘 다졌다. 미래설계를 잘했다는 평가로 기억에 남는 구청장이 되고 싶다. ●송숙희 부산 사상구청장 ① 의정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섬세함과 어머니의 강인함으로 소신 있고 뚝심 있게 구정을 이끌어 가겠다. ② 저부터 솔선수범하여 정말 깨끗하고 투명한 구정을 펼치겠다. 내부적으로는 사전에 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감찰 기능을 강화하고 반부패 청렴교육을 강도있게 실시할 계획이다. 비리를 저지른 직원에 대하여는 온정주의가 아닌 신상필벌을 엄히 적용하여 직원 스스로 변화된 공직사회 분위기를 느끼도록 하겠다. ③ 지금까지 성실히 의정활동을 해온 것처럼 구청장으로서 새로운 사상구의 미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발전역량과 구민들의 뜨거운 염원을 결집해 사상의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겠다. ④ 어둡고 낙후된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상공업지역을 밝고 활기가 넘치는 첨단산업도시로 확 바꾸어 나가겠다. 서민과 소외계층도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 특히 홀로 어르신과 취약계층 아동 등 소외계층을 위해 1:1 돌봄시스템을 갖추고, 다문화가정과 외국인들을 지원하는 종합센터도 설치하겠다. ⑤ 겸손하게 일 잘하는 구청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김은숙 부산 중구청장 ① 정책 입안 및 추진 과정에서 남성보다 부드럽게 접근할 수 있고 주민을 대할 때에도 권위적이기보다는 좀 더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여성의 안목과 섬세함으로 문화관광도시로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 나가겠다. ② 비리개입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무원 행동강령 교육 및 청렴교육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으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일깨워 주고 싶다. ③ 공약사항을 완벽하게 추진, 누구나 행복한 복지환경, 세계가 원하는 관광문화, 쾌적한 친환경 녹색도시, 참여와 신뢰의 행정을 구현, 민선자치가 지향하는 지역발전과 주민복지 향상에 기여코자 한다. ④ 용두산 공원 등 다양한 역사·문화 유산과 우리 구의 대표 축제인 부산자갈치축제, 광복로문화축제 등과 원스톱 관광·문화 종합서비스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 ⑤ 저소득층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약자의 복지 증진을 위해서 헌신한 구청장, 주민 화합을 일궈낸 마음이 따뜻한 구청장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신연희 서울 강남구청장 ① 평소 저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추구하는 의지, 배려와 섬세의 마음, 절약의 미덕 등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앞설 것 같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앞으로 제가 펼치는 구정에서도 +α로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② 청렴·친절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다. 공직자들의 무사안일, 기회주의, 복지부동, 세금낭비성 행정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일벌백계와 신상필벌로 공직자를 통솔할 것이다. ③ 구민으로부터 청렴성을 인정받아 천하무적의 추진력을 갖고 싶다. 구민들께서 저에게 천하무적의 추진력을 실어 주실 때 강남을 경제뿐 아니라 교육, 문화, 복지, 교통, 환경행정 등 모든 분야에서 전국 제일의 모범자치구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저의 공약실현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④ 강남을 경제는 물론 행정, 복지, 교육, 교통, 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전국 제일의 자치구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 중에 두 가지를 들라고 하면 경제와 교육을 선택하고 싶다. 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두 가지가 경제와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⑤ 강남구의 역대 구청장 중에서 가장 일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홍미영 인천 부평구청장 ① 섬세함과 유연함, 전문성을 잘 살려서 부평구민이 함께 참여하여 행복지수, 청렴지수가 높아질 수 있는 정책을 펼치고자 한다. ② 청렴교육의 정기적인 실시는 물론 전 직원의 연간 1회 이상 청렴교육 이수를 정례화하고, 부패행위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업무에 대하여는 자체 청렴도 조사를 실시, 부패행위 발생을 억제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할 것이다. 또 공직자를 사랑으로 감싸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면 부패행위는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③ 첫 여성 구청장으로서 구민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 주민들이 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바로 단절과 고통에서, 함께하는 소통과 서민 복지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④ 먼저,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교육과 건강을 지키는 생기발랄 부평을 만들겠다. 둘째 가족이 편안하고 행복한 부평을 만들기 위해 “안심보육·안심치안”을 추진하겠다. ⑤ 부평이 내가 구청장이 되기 전보다 ‘살고 싶은 부평, 행복한 부평’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세계 속의 파스쿠찌’ 이벤트, 8주년 축제카드 발행

    파스쿠찌는 국내 시장 진출 8주년을 기념해 슈퍼후르츠 그라니따 3종을 출시, 8월 22일까지 ‘Worldwide Pascucci (세계 속의 파스쿠찌)’ 온·오프라인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새롭게 선보인 슈퍼후르츠 그라니따는 대표 열대과일 구아바와 망고를 혼합한 ‘구아바망고 그라니따’를 비롯해 ‘아사이베리 그라니따’, 열대성 체리로 비타민C가 풍부한 ‘아세로라 그라니따’ 등 총 3종이며 가격은 각각 5,500원이다.이번 신제품 출시에 이어 매장에서는 ‘8주년 축제카드’를 발행한다. 신제품 그라니따를 3회 구매하고 기존에 판매 중인 음료 2잔 구매시 커피 혹은 음료 1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또한 오는 31일부터 8월 8일까지 강남역점, 명동2호점, 부산광복동점, 대전세이점 등 4개 매장에서는 텀블러, 머그컵, 커피잔 세트, 에코백 등 각종 MD 제품을 50% 할인 판매한다.홈페이지(www.caffe-pascucci.co.kr)에서는 슈퍼후르츠 그라니따를 구매 후 영수증 하단부의 응모번호와 함께 온라인 축하 메시지를 함께 남기면 추첨을 통해 400만원 상당의 여행상품권, 카메라, 포토프린터, 커피교환권 등 경품을 제공한다. 특히 8주년 기념 여름 대표 제품은 “00000 그라니따이다” 퀴즈 정답, 당첨고객에게 커피 쿠폰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동시에 진행된다.파스쿠찌 관계자는 “8년 동안 파스쿠찌를 사랑해주신 소비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의미로 준비한 이벤트”라며 “앞으로도 이태리 정통 커피의 맛을 전달하는 전도사로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기쁨을 줄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
  • [기고]서울역 110주년을 맞이하여/윤중한 코레일 서울역장

    [기고]서울역 110주년을 맞이하여/윤중한 코레일 서울역장

    대한민국 대표역이자 경부선과 경의선의 기점인 서울역이 7월8일 110주년을 맞는다. 서울역은 1899년 노량진~제물포 간 경인선 개통 이듬해인 1900년 7월8일 현재의 자리에 10평 남짓 작은 목조건물에서 출발해 남대문역, 경성역, 서울역으로 역 이름이 바뀌었다. 2004년 4월1일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2003년 역사를 새로 지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약소국 수탈의 상징이었던 철도는 서구열강의 손에 의해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등이 건설됐고 6·25전쟁 중에는 목숨을 건 피란행렬이 우리 철도를 통해 이뤄졌다. 1960~1970년대 경제개발시대에는 산업발전의 견인차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이후 철도의 역할이 다소 위축되기는 했지만 KTX 개통을 계기로 우리 철도는 다시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서울역은 우리 민족과 함께 애환과 추억을 간직한 소중한 우리들의 산 역사다. 단순한 기차역이 아니라 개항 이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관문 역할을 했다. 광복 직후 환호성이 메아리쳤던 서울역 광장은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상경한 사람들과 명절이면 수많은 사람들의 귀성전쟁으로 붐볐다. 1980년대 초에는 민주화시위의 현장이 됐고, 숱한 연인들의 만남과 헤어짐의 추억 어린 장소가 되기도 했다. 사적 284호로 지정된 옛 서울역사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원형 복원을 위한 공사가 완료되는 내년 초에는 상설전시관과 전시공연장, 야외카페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새로운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는 11월 개최되는 G20 세계경제정상회의와 경부고속철도 전 구간 개통, 연말 코레일공항철도가 완전 개통되면 서울역은 명실공히 교통의 관문이자 중심이 될 전망이다. 서울역은 현재 일일 승하차 인원이 10만명에 육박하고 코레일 전체 여객수입의 22%를 차지한다. 미래를 향해 웅비하기 위해 역을 찾는 고객들에게 세계 1등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고객감동분야 혁신허브사업을 추진하면서 고객만족문화 정립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철도를 열망하는 녹색생활’을 의미하는 ‘GLORY코레일운동’의 일환으로 서울역도 주변의 지역주민과 시민단체들과 함께 힘을 모아 기차타기 생활화를 실천하고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에 걸맞은 ‘푸른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동차 보급으로 밀렸던 철도의 영광을 되찾고, 녹색교통수단인 철도의 가치를 재조명하며, 국민철도로서 녹색한국의 희망을 열어가고자 한다. 경부선과 경의선이 연결되고 시베리아, 몽골, 중국횡단철도를 잇는 대륙철도망 건설로 ‘제2의 철도르네상스’를 위한 중심적 역할을 맡게 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일본이 선도적인 경제축을 형성하는 상황에서 남북한과 대륙을 잇는 연계철도망 구축은 우리의 희망 그 자체다. 서울역은 2014년까지 ‘서울역북부역세권개발사업’과 광화문까지의 ‘국가상징거리 조성’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대표 역으로서 손색 없는 모습을 선보일 계획이다. 미래를 향해, 세계를 향해 힘차게 웅비하는 코레일의 핵심영업장인 서울역은 앞으로도 세계1등 역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
  • [특파원 칼럼]정대세의 눈물 또 볼 것인가/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정대세의 눈물 또 볼 것인가/이종락 도쿄특파원

    기자는 서울신문 2일 자 16면에 조선적(朝鮮籍)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를 취재하면서 남아공월드컵에서 북한팀으로 뛰었던 정대세 선수의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꿈에서 그리던 월드컵 무대에 올라 흘린 그의 눈물에는 한국인도, 북한인도, 일본인도 아닌 어정쩡한 처지에서 겪은 온갖 설움이 담겨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정 선수는 부친 정길부씨의 국적에 따라 자동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지니게 됐다. 그런데도 북한팀으로 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머니 리정금씨가 조선학교 교사였던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라는 게 조선적 동포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그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아이치 조선학교와 도쿄 조선대학교를 다니면서 북한 대표팀에서 뛰기를 원했다. 정 선수의 사례를 보면서 궁금해지는 게 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정 선수가 한 번이라도 한국학교를 가려고 생각하지 않았겠냐는 의문이다. 하지만 해답은 간단하다. 정 선수가 설령 한국학교를 가고 싶어했다 해도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살던 나고야에는 한국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 내 한국 학교는 도쿄 동경학교, 교토 국제학교, 오사카의 금강·건국학교 등 세 곳에 네 개교밖에 없다. 2029명이 재학 중이다.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각각 따로 셈을 해도 12개교에 불과하다. 반면 조총련이 운영하는 조선학교는 도쿄 조선대학교를 비롯, 일본 전역에 초·중·고 103개교를 두고 있다. 6000~7000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이처럼 큰 차이가 난 이유는 1945년 광복 이후 동포들이 같이 운영하던 조선학교가 조총련과 민단이 분리되면서 조총련으로 귀속됐기 때문이다. 한국학교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으로 건너온 ‘뉴 커머’ 숫자가 15만~16만명에 이르는 것을 감안할 때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실제로 2년 전 한국학교의 실태가 요미우리신문에 보도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 동경한국학교에 입학하려 했지만 결원이 나지 않아 인근에 있는 도야마 초등학교에 몰린다는 기사였다. 동경학교에 입학하려는 대기자가 150명에 이르고 1년이 지나야 입학이 가능해 이 학교를 선택해야만 했다. 전체 학생 800명 중 한국 학생이 180명에 이르렀는데 요즘도 사정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요식업을 주로 하는 한국인들이 대거 거주하는 스미타구 긴시초의 일본학교에도 한국 학생들이 많다. 필리핀, 방글라데시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니 일본어 대신 한국어를 더 자주 사용해 교육청이 긴장하고 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린다. 일부 일본학교 내에도 민족학급이 있어 동포 학생들이 한글을 배울 수는 있다. 1990년 이후 소수민족에게도 자기 민족의 글을 쓸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는 유엔의 권고에 따라 생겼다. 하지만 특별활동부 형태로 운영돼 결국 일본교육에 동화되기 싶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동포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 한국학교를 집중적으로 세워야 한다. 동경학교가 위치한 신주쿠 이외에 도쿄 내 분교를 지어야 한다. 한국민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사이타마, 지바, 나고야, 후쿠오카에도 한국학교의 신설이 시급하다. 당장 100~200명이 다니는 소규모 학교라도 지어 동포 자녀들에게 한글교육을 시켜야 한다. 실제로 이들 지역에는 당장 한국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학생들이 200명 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4개 한국학교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은 3억 2950만엔(약 42억 800만원)이었다. 2008년의 5억 5420만엔보다 크게 줄었다. 한국에서 오던 파견교사들도 중단됐다. 이쯤 되면 한국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도록 요구하는 게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 국적의 또 다른 선수가 북한 인공기를 가슴에 달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교육부, 외교부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다. jrlee@seoul.co.kr
  • ‘임정청사’ 경교장 복원 공사 개시

    ‘임정청사’ 경교장 복원 공사 개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인 경교장이 본격 복원공사에 들어간다. 서울시는 1일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자리에 위치한 경교장을 원형대로 복원하는 공사를 하기 위해 내년 11월까지 임시 폐쇄한다고 밝혔다. 이화장(梨花莊)·삼청장(三淸莊)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건국활동 3대 명소의 하나인 경교장(사적 제465호)은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이후인 1945년 11월부터 암살당한 1949년 6월까지 집무실 겸 숙소로 쓰던 곳이다. 신탁통치 반대운동, 남북 정치지도자 회담 등 한국현대사를 장식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주무대였던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쓰이기도 했다. 시는 현 소유자인 삼성생명·강북삼성병원과의 협의와 문화재청의 예산지원을 받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하고 현재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경교장 복원자문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복원설계를 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 원무실로 쓰였던 경교장 1층 서쪽방은 임시정부 환국 후 국무회의가 열렸던 귀빈 응접실로, 약품창고로 활용됐던 2층 중간방과 동쪽방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와 서재로 복원된다. 또 병원시설로 활용되면서 변형된 내부 벽체나 사라진 창호 역시 모두 1945~1946년 당시 임시정부 청사의 모습으로 되살린다. 안건기 문화재과장은 “의료시설로 사용되고 한때 철거 위기까지 맞는 등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경교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적 위상이 바로 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복원되면 근현대사의 발전을 조망할 수 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시는 다만 2005년 부분 복원·공개돼 시민들에게 사랑받아온 경교장 2층 서쪽 백범 김구 기념실은 공사기간에도 매주 토요일 3차례씩 제한적으로 개방할 예정이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공무원 채용 60년사 살펴보니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공무원 시험이 실시된 지 60년이 되는 해다. 1950년 최초로 고등고시 행정과 시험이 치러진 이후 공채를 통해 지금까지 임용·배출된 공무원의 수는 20만여명에 이른다. 강산이 여섯 번 변하는 동안 관존민비 의식이 남아 있던 건국 초기 ‘나랏일을 하는 사람’으로 경원시됐던 공무원도 어느새 젊은 인재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가운데 하나가 됐다. 노량진, 신림동 고시촌에는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공직사회 진입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책과 씨름하고 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행정안전부가 소장한 각종 자료를 통해 대한민국 공무원 채용의 역사를 살펴봤다. 광복 이후 공무원 채용의 가장 큰 목적은 정부 핵심인재를 신속히 선발해 일제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행정적 독립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50년 53명 선발… 현재는 3000명선 1950년 고등고시를 통해 21명, 보통고시를 통해 32명을 선발했다. 이후 매년 100여명 정도를 유지하던 채용규모는 6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면서 공직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1967년엔 정부수립 후 최대 인원인 1만 635명이 공직사회로 유입됐다. 한·일 국교정상화 후 미·일 차관 등으로 본격적인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제도 정비 등 실무작업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실무집행 업무를 담당하는 9급이 전체의 97%인 1만 307명을 차지했다. 하지만 70년대로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유신헌법 제정과 국민들의 저항 등 국내외의 정치·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공직자 선발규모는 2000명대로 떨어졌다. 1981년엔 현재 일반직 1~9급 제도가 체계를 갖췄다. 공무원임용령이 개정돼 종전 ‘3급 을류’라는 계급은 사라지고 지금의 5급 사무관으로 대체됐다. ●공직충원 경로 다양화로 초점 이동 80년대의 공무원 채용 동향의 특징은 역시 ‘88서울 올림픽’이다.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뒤 이를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과 각종 국제기구 가입으로 공직수요는 5000명대로 반등했다. 이후 안정국면에 접어든 공직 채용규모는 큰 변화 없이 3000~4000명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정부의 관심은 공직자 채용의 양에서 질로 옮겨가고 있다. 1996년 도입한 양성평등채용제도, 2007년부터 차례로 도입한 지방인재채용제도·중증장애인구분모집등 공직충원 경로를 다양화하려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 공직사회로 진입시켜 사회통합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남상헌기자 kize@seoul.co.kr
  • 민간인피학살 유족 ‘연좌제 고통’

    민간인피학살 유족 ‘연좌제 고통’

    1962년 1월29일 혁명재판소. 경주피학살자유족회 회장 김하종(당시 28세)씨에게 무기징역이 구형됐다. “6·25전쟁 때 우리 국군과 경찰이 선량한 국민을 살해한 것처럼 왜곡하고 위령탑 건립 등을 주장해 북한 괴뢰의 목적사항을 찬양동조했다.”는 것. 김씨는 오른쪽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며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틀 후 징역 7년형이 선고됐다. 김씨의 고향인 경북 월성군 내남면은 1945년 광복 직후부터 민간인 학살로 얼룩졌다. 46년 조선공산당의 선동으로 ‘대구 10·1 사건’이 터지자 대한청년단이 조직됐고, 이들은 좌익분자를 색출한다며 민간인을 마구 살해했다. 49년 7월7일(음력) 김씨의 일가친척 22명도 잠을 자다가 총살당했다. 이 가운데 열살 미만의 어린이가 8명이나 됐다. 대한청년단 단장인 이모(당시 28세)씨가 소 판 돈을 약탈하고 죄를 은폐하려고 저지른 짓이라고 김씨는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청년단이 공비토벌을 돕는 터라 수수방관했다. ‘가해자’ 이씨는 이후 자유당의 3선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4·19 혁명이 터지자 세상이 뒤바뀌었다. 60년 5월27일 국회가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조사를 벌이고 검찰이 살인죄로 이씨를 구속기소했다. 민간인 학살사건 재판이 최초로 열린 것이다. 검찰은 “이씨는 유대인 학살을 지휘한 독일 친위대 중령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에 버금간다.”고 밝혔다. “아이를 안은 어머니를 앉혀 놓고 총살했다.”는 목격자의 법정증언이 잇따랐다. 61년 3월6일 1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5·16 군사 정변이 발생하면서 세상이 다시 뒤집혔다. 진상 규명 활동은 ‘특수 반국가행위’로 바뀌었다. 경주유족회는 해산되고, 김씨는 불법 구금됐다. 경상남북도·경산·마산·창원·밀양·금창·동래유족회도 마찬가지였다. 유족 28명이 기소돼 최고 사형까지 선고받았다. 경찰은 민간인 희생자가 묻힌 합동묘를 없애고 위령비도 정으로 지워 훼손했다. 살인죄로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가해자’ 이씨는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유족회 간부의 처벌을 지켜본 증인들이 항소심에서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일부 유족은 허위 증언의 대가로 돈을 받기도 했다. 징역 7년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2년간 복역하고 63년 12월16일 사면됐다. 그 후로도 경찰의 감시가 이어졌다. 취업할 수 없어 농사를 짓고 살다가 78년 중등학교장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신원특이자’라고 교육청에서 승인이 제때 나오지 않았다. 민간인 피학살 유가족은 김씨처럼 법적 근거도 없는 ‘연좌제’에 시달려야 했다. 형사처벌을 받고 신원조회로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당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연좌제로 피해를 당한 301명의 사례를 발표했다. 공무원·사관학교 임용시험에서 탈락하고(73명), 취업이나 승진 때 불이익을 받았다(44명). 출국도 불가능했고(43명) 신원조회에 걸려 부당한 대우(91명)를 받았다. 김씨는 “집단학살된 가족의 생사 확인을 반국가활동이라고 사형까지 선고하고 ‘연좌제’로 수십 년간 감시해온 국가가 이제 와서 소멸시효(5년)가 지났다며 배상을 거부하는 게 상식에 맞느냐.”고 반문했다. 글 사진 대구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이태원 지명 유래 說·說·說

    이태원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효종(1619~1659)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효종 때 배밭이 많은 동네라는 까닭으로 배나무 이(梨)가 붙은 이태원(梨泰院)으로 불렸다고 전해 내려온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이곳에 귀화해 살았다는 뜻으로 ‘이타인(異他人)’이 어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 왜란 중 성폭행을 당한 여성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모여 살던 동네여서 다를 이(異), 태반 태(胎)자를 써서 이태원(異胎圓)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이태원은 이방인 공동체 성격이 강한 곳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조선 때부터 군사 관련 시설이 많았다. 일제 강점기 들어 군용지로 이용되면서 일본군 사령부가 머문 뒤 군사지역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냈다.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조선에 온 청나라 군대가 1882∼1984년 주둔했고, 1910∼1945년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광복 이후엔 미군이 이곳을 차지했다. 한국전쟁 뒤 미군이 이태원 상권을 주도했다. 1970년대 미군기지에서 나온 물품들로 상권이 형성된 이태원은 미군 유흥가로 거듭나 클럽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1957년 미군의 외박·외출이 허용되면서 기지촌까지 생겼다. 1960년대 말까지 미군 대상 매춘업소가 남산3호 터널 입구부터 이태원 입구까지 해방촌과 삼각지 파출소 뒷골목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정부는 이태원 미군기지 중심으로 서빙고동, 한남동, 동부 이촌동 일대에 외국인 전용주택과 아파트는 물론 고급 외국인 주택단지까지 건설했다. 그러자 1960년대 이후 한국에 들어온 각국의 대사관이 대거 입주했고, 그 영향으로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고급주택단지가 조성됐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쇼핑지구가 형성돼 88올림픽 당시 이태원 상가 점포는 1800개에 이를 정도로 쇼핑의 중심지로 주목받았다. 올림픽 때 하루 평균 6000명의 외국인이 약 3억달러를 썼다는 연구 논문도 있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박지성, ‘고고8강’ 화제…제작자는 신인가수 이온

    박지성, ‘고고8강’ 화제…제작자는 신인가수 이온

    박지성 캐리커쳐를 수준급으로 그려내 온라인을 강타한 17살 월드컵 응원소녀가 새로운 패러디물을 공개해 화제다. 응원소녀가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을 기원하며 그린 박지성 선수의 캐리커쳐에 이어 이번엔 8강 기원 월드컵 패러디 합성 포스터 5종과 함께 제작 과정 동영상을 공개해 또 다시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녀는 영화 ‘고고70’의 배우 조승우를 박지성 선수의 모습으로 합성해 ‘고고8강’으로 패러디, 우리나라 대표팀이 원정 월드컵 사상 첫 16강 진출을 이룬 김에 8강까지 가자는 소망을 담았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정말 대단하다.”, “제목도 센스가 넘치는듯.”, “포토샵으로 어떻게 저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대단하다.”라면서 탄성을 자아냈다. 한편 17세 응원소녀는 영화 ‘광복절 특사’에서 송윤아가 불러 화제를 일으켰던 ‘분홍립스틱’의 연작곡인 ‘분홍립스틱 그 후’를 발표한 신인가수 이온인 것으로 알려져 팬들은 “정말 다재다능하다.”, “가수로도 성공하시길. 앞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 등 관심을 보였다. 사진 = 디시인사이드, 응원소녀 동영상 캡처 서울신문NTN 김민경 인턴기자 cong@seoulntn.com
  • 근·현대 군사유물 7점 문화재로 등록

    우리나라 최초 군용기와 전투함 등이 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23일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육군의 초창기 깃발과 최초 항공기 등 근·현대 군사유물 7건을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밝혔다. 한국전쟁 때 사용됐던 군용기인 ‘대한민국 최초 항공기’(L-4 연락기)는 194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 1948년 9월13일 공군의 전신인 육군항공대가 인수한 10대 가운데 1대다. 한국 공군이 보유한 최초의 항공기다. 2인승 연락용 경비행기이지만 전쟁 초기에는 뒷자리에서 폭탄을 손으로 던지는 방식으로 전투에 쓰이기도 했다. 1949년 미국에서 구입한 백두산함은 1950년 6월26일 새벽 대한해협에서 북한 무장 선박을 격침시킨 이른바 ‘대한해협 해전’ 승리의 기억을 품고 있다. 군용기는 제462호, 백두산함 돛대는 463호 문화재로 각각 등록됐다. 1946년 4월 제정된 모표(帽標)가 그려진 육군의 초창기 깃발(461호)과 휴전협정 체결 때 미국 대표인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사용한 책상(464호) 등도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흥선대원군 지시로 만들어져 1871년 신미양요 때 쓰였던 ‘면제(綿製) 갑옷’(제459호)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이었던 한국광복군 군복(제460호), 경북 안동 지방에서 의병 활동을 펼친 의병장 김도현(1852~1914)이 사용하던 칼(제465호) 등도 외세에 저항한 민·관의 군사 문물이라는 점에서 문화재 가치를 인정받았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실시한 ‘근대문화유산 군사유물 목록화 조사 용역’ 결과와 전문가 고증 등을 거쳐 이들 유물을 문화재로 공식 등록했다고 설명했다.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은 이들 유물을 전시한 ‘6·25전쟁 60주년 특별전’을 오는 10월31일까지 연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60년 지나도 여전한 ‘끝이 없는 전쟁’

    60년 지나도 여전한 ‘끝이 없는 전쟁’

    한국전쟁의 그림자는 여전히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중국과 일본도 수시로 한국전쟁의 여파에 휩싸이며, 미국과 유엔 동맹국들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한국을 침공한 지 60년이 지났지만 한국전쟁은 관련국들에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 전쟁은 1948년 제주와 여수·순천반란에서부터 시작됐다. 반란의 뿌리는 1919년 3월 일본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대규모 만세운동에 있다. 3·1만세운동이 실패하면서 일부는 중국으로 피해 국민당과 공산당의 보호 아래 들어갔다. 다른 이들은 한국 내에서 은신처를 찾아 숨었고, 일군의 무리는 1930년대 만주에서 항일운동에 가담했다. 또 다른 이들은 소련에 의탁했다. 독립된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했던 이들은 1945년 광복을 맞자 중국과 일본, 미국에서 물밀듯 조국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한국인들에게는 희생의 경험이 주를 이룬다. 1945~1948년 미국과 소련 군정의 유일한 목적은 한국에서 일본과 이들의 잔재를 몰아내는 데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대한(對韓) 정책의 지향점은 같았지만 달성하고자 하는 바는 너무도 달랐다. 소련은 1904~1905년 러·일전쟁 참패에 대한 인적·물적 배상을 북한에 물어 2차대전의 피해를 충당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일본 제국주의 잔존 인물들이 일본으로 돌아가 경제·사회적 개혁을 순탄하게 진행시키길 바랐다. 이처럼 한반도에 들어서는 과도정부는 다양한 목적에 부합돼야 했고, 결국 서로 다른 후원국들에 의해 남북한에 들어선 정부가 서로의 적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모두 흡수통일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미국과 소련간의 차이점은 미국은(물론 나름의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을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었지만, 소련은 직접 관여하기보다 북한과 중국을 앞세워 싸웠다. 한국전쟁이 국제적인 분쟁으로 확대된 1950~1953년은 남북한 상호간에 뿌리깊은 증오를 낳았고, 이같은 적개심을 오늘날 한국의 젊은 세대들과 세계는 이해하지 못한다. 남북한간 증오는 전선을 넘어 광범위하게 자행된 잔혹성에 근거한다. 한국전쟁은 유럽의 30년전쟁(1618~1648) 당시 공포를 연상시킨다. 한국의 민간인 사망자는 한국군 전사자수를 능가했다. 기근과 질병, 유엔군의 무자비한 폭격, 남북한군에 의한 인질과 포로 학살로 최소 1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에 패배한 북한은 수많은 양민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해 학살했다. 수천명이 집단농장으로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전쟁의 정당성과 김일성의 ‘신성’에 도전하는 사람은 감옥에 갇히거나 처형됐다. 남한의 사정도 전혀 다를 바 없었다. 비무장지대에서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공산주의 게릴라들과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공산당 잔당에 대한 토벌작전으로 남한의 인구는 급격히 줄었다. 1950년대 한국의 상황은 잔혹했던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김일성은 1953년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승만과 마찬가지로 휴전할 생각이 없었다. 소련과 중국이 북한의 경제적 재건과 군사적 안보의 열쇠를 쥐고 있었기에 결국 김일성은 이들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승만은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았고, 휴전협정에 서명하길 거부했다. 이후 이승만은 미국과의 상호안보조약체결과 10억달러 원조, 한국군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한국·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이 한국을 방위한다는 약속을 얻어낸 뒤에야 휴전을 받아들였다. 한반도 통일이라는 전쟁 목적을 양보하는 대신 미국은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지불했고, 현재도 지불하고 있다. 3년간의 전쟁으로 남북한을 통틀어 민간인과 군인 2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러시아군이 2차대전에서 입은 인명피해와 맞먹는다. 이 밖에 교전국 인명피해는 50만명에 이르며, 이중 90%가 중국인이다. 휴전협정은 순식간에 한국인들로 하여금 정복이 아닌 전복을 위한 전쟁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 미국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핵전쟁이나 재래식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억지한다는 데 암묵적 합의를 도출해 냈다. 그렇다면 남북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남북한은 계속해서 주변국들과 미국의 우려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한국이 태평양의 주요 국가로 발전해 나가지 않는 한, 역사와 지정학적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미래는 다른 여타 포스트모던 시장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밝다. 반면 북한은 이미 실패한 국가이지만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독재체제는 3대를 넘기지 못한다. 다음에 닥쳐올 ‘제국’의 몰락을 국제사회는 준비 없이 맞아서는 안 된다. 이번에는 한국인들이 그렇게 열망하는 새로운 통일된 국가를 전쟁 없이 세울 수 있도록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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