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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성주보’ 영인본 출간

    ‘한성주보’ 영인본 출간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이사장 문창극)이 대한제국 때 발행된 한성주보와 일제 강점기 및 광복 직후 발행된 언론 전문잡지인 ▲신문춘추 ▲평론 ▲신문평론 3종을 영인 출간했다.한성주보는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가 갑신정변으로 폐간된 뒤 제호를 바꿔 발행된 신문이다.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한성순보 9호를 찾아내 추가로 영인하고 원문을 모두 텍스트로 입력하는 동시에 전문을 번역했다.
  • [독자의 소리]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바란다/농협 경주환경농업교육원 교수 남광호

    9일은 565돌이 되는 한글날이다. 한글날이 1946년 국가지정 기념일로 지정된 후 1991년 정부는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휴일이 많다는 이유로 공휴일 제정 해제했고, 2005년 한글날을 삼일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과 함께 5대 국경일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아직도 2%가 부족하다. 그것은 바로 한글날이 국경일이면서 유일하게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은 날이기 때문이다. 문명(文明)과 문화(文化)의 ‘문’(文)은 글자를 뜻한다. 따라서 한글은 우리 문명과 문화의 원천이며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1991년부터 평일로 전환된 ‘한글날’을 다시 종전처럼 공휴일로 지정하여 한글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뜻있는 날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재지정하여 기념회 등 일회성의 반짝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지속적으로 한글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선도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한글의 가치와 중요성을 재인식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농협 경주환경농업교육원 교수 남광호
  • ‘서울의 옛 추억’을 찾습니다

    ‘서울의 옛 추억’을 찾습니다

    우리나라 전화카드의 시작은 1986년부터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내외 임원과 선수들의 통신 편의를 위해 주요 경기장과 호텔, 선수촌 등 주변에 카드 공중전화를 설치하고 2종의 카드를 발행했는데, 바로 일명 ‘따릉이’(5000원권)와 ‘장고춤’(1만원권)이다. 한 시민이 국내 카드전화 문화를 처음 연 ‘따릉이’와 ‘장고춤’를 기증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올해 3월부터 ‘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고 연락주세요-여러분의 과거가 서울의 미래가 됩니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생활자료 수집 운동을 벌여, 최근까지 광복 이후 서울의 변화된 모습과 시민들의 추억이 담긴 자료 1000여점을 수집했다고 26일 밝혔다. 또 다른 시민은 1954년 교부된 운전면허증을 내놨다. 1950년대 서울의 자동차등록대수는 인구 10만 명당 5대 수준으로 총 1만대를 넘지 못했다. 면허증에는 사진과 본적, 주소이동사항, 적성검사 일시, 포상과 교통위반 관련 사항까지 표시돼 있다. 이밖에도 박물관은 광복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의 의류, 특별시민증, 도장 만드는 도구, 새마을 모자, 서울올림픽 기념메달도 기증받았다. 최근 철거된 화양고가도로나 노량진 고가도로 명패, 종묘와 창덕궁 연결공사 기공식 안내책자, 무상급식 주민투표 관련자료 등 박물관 측이 직접 현장을 누비며 수집한 자료도 있다. 박물관은 이들 자료를 정리해 영구 보존하고, 상설·특별전시를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기증한 시민들에게는 특별 예우하고 증서도 발급한다. 기증을 원할 경우 유물관리과(724-0156)로 연락하면 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25주년 ‘트로트 여제’ 가수 문희옥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25주년 ‘트로트 여제’ 가수 문희옥

    트로트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 잡고 있을까. 원래 트로트(trot)라 함은 사전적으로 ‘빨리 걷다’ ‘속보’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트로트 시대의 개막을 알린 음악은 1934년에 발표된 고복수의 ‘타향살이’와 이듬해 발표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다. 이어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과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 등으로 연결된다. 이후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귀국선’, 6·25의 참상을 생생하게 고발한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가요는 트로트 리듬을 타고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국민과 함께해 왔다. 1980년대 초반에는 ‘트로트 메들리 붐’이 생겨났다. 노래를 1절씩만 엮어 만든 빠른 템포의 댄스곡으로 편곡돼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소위 ‘뽕짝’이라는 유행어까지 나왔다. 김연자의 ‘노래의 꽃다발’에 이어 주현미의 ‘쌍쌍파티’가 당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주현미는 또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사람’ 등을 발표하면서 대표적인 트로트 가수로 성장했다. #여고생 문희옥은… 이럴 무렵인 1986년 봄, 당시 서울 은광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문희옥은 학교 소풍 때 노래자랑에서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구성지게 불렀다. 그러자 선생은 물론 학생들까지 기립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여고 2년생이 성인가요를 부른 것도 대단했지만 트로트 특유의 ‘꺾기 창법’을 기가 막히게 소화해내 다들 ‘은광 출신’의 가수탄생을 기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1년 뒤 문희옥은 교장의 특별 배려로 학교강당에서 파격적인 트로트 음악 발표회를 가졌다. ‘워째 그라요, 워째 그라요 시방 날 울려놓고~’를 시작으로 하는 ‘팔도 디스코 메들리’를 맛깔스럽게 불렀다. 이때 발표한 메들리 앨범은 발매 1주일 만에 360만장이나 팔렸을 정도로 크게 히트쳤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던 운전자들이 휴게소에 잠시 들르면 저절로 눈길을 끌게 만들 만큼 ‘하이웨이 트로트’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지금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여전히 인기순위 톱에 있다고 하니 적어도 1000만장 이상 팔려 나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음악적 고집쟁이, 문희옥 가수 문희옥(42)은 올해로 데뷔 25년째를 맞는다. 그는 이미자·주현미의 뒤를 잇는 ‘정통 트로트의 계승자’라는 자부심으로 줄곧 트로트의 길을 걸어 왔다. 그러면서 무대에 설 때면 특유의 은근한 미소로 사투리 메들리를 비롯해 ‘성은 김이요’ ‘강남 멋쟁이’ ‘사랑의 거리’ 등의 노래로 많은 팬들을 확보해 왔다. 문희옥은 현재 활약하는 가수 가운데 주현미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정통 트로트 가수’로 인정받고 있다. 문희옥 스스로도 지난 세월 ‘정통 트로트’라는 경계선을 벗어난 적이 없이 올곧게 그 길을 고집해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고민이 무척 많아졌다. 트로트의 위기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K팝(K-POP)이 대세인 상황에다 장윤정, 박현빈 등 ‘세미 트로트’ ‘댄스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후배 가수들이 많아졌고 또 일부 동료 트로트 가수들도 정통 트로트의 틀을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요 평론가 박성서씨는 정통 트로트에 대해 “4분의 4박자를 기본으로 하면서 강약의 박자를 넣고 독특한 꺾기 창법을 구사하는 독자적인 가요 형식”이라며 “네오 트로트와 댄스 트로트 등으로 변화하는 요즘 시대에서는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기가 쉽지 않으며 따라서 시장에서도 승부가 안 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문희옥은 지난 추석 때인 12일 MBC ‘나는 가수다’의 스페셜 편 한가위 특집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김수희, 남진, 박현빈, 설운도, 장윤정, 태진아 등 대한민국 최고의 트로트 가수 6인과 함께 경쟁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특히 문희옥은 이날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부르며 파격댄스를 선보여 방청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를 지켜본 남진은 “대단하다. 문희옥이 춤은 안 출 줄 알았다.”고 감탄했고 네티즌들은 “문희옥 대박!”, “너무 귀여웠어요.”, “추석 특집에서만 볼 수 있는 건가요?” “문바디라 불러다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에 앞서 문희옥은 케이블채널 tvN 프로그램 ‘오페라 스타’에 트로트 가수로는 유일하게 도전해 ‘나비부인’과 레퀴엠 중 ‘자비로운 예수님’ 등을 열창했다. 처음 예상과 달리 4번째 무대까지 오르면서 ‘트로트의 힘’ ‘아줌마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해 많은 찬사를 받았다. 트로트 외길을 걸어온 문희옥의 이러한 변신은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며 절정의 음악적 끼로 무한한 능력을 어디까지 보여줄지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기획사 사무실에서 문희옥을 만났다. #문희옥의 외도? 먼저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의 댄스 얘기부터 시작했다. 그는 “막춤은 좀 추지만 무대 위에서 댄스를 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박진영 안무팀한테 두 시간 반 정도 익혔는데 주위에서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다.”며 웃는다. 후배 가수들의 노래를 잘 듣느냐는 질문에 “주얼리, 동방신기 등 리듬감각을 익히기 위해 자주 듣는 편이다. 퓨전음악이라는 시대의 흐름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그러더니 긴 한숨을 내쉰다. “정통 트로트 가요는 이제 죽었습니다. 좋아하는 팬들도 앞으로 10년 정도나 버틸까요. 무서운 시장경쟁에서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을 가수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나는 트로트 가수니까’ 하면서 안주할 수도 없고요. ‘도전 1000곡’이나 최근의 ‘오페라 스타’와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 출연할 때에도 그래서 열심히 했습니다. ‘쟤는 트로트 가수밖에 안 돼’라는 말을 안 듣기 위해서였지요. 정통 트로트 가수가 변신하기란 쉽지 않거든요.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오면 저의 끼가 어느정도인지 스스로 검증받고 싶기도 합니다.” 문희옥은 트로트에 대한 애정과 절망의 심경을 동시에 털어놨다. 20~30대 후배 가수들이 현대 트로트와 댄스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노래를 부르지만 결국 정통 트로트만큼은 못하다고 했다. “정통과 대체되는 새로운 트로트, 즉 샐러드식 음악이 많이 나오고 있지요. 하지만 샐러드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간장이나 된장, 김치 같은 정통 트로트 음악이 과연 계속 인기를 끌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그는 ‘위기의 트로트’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앞으로 어느 방향에 서 있어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정통이냐, 세미 트로트냐 하는 것 또한 숙제라고 했다. 신곡 음반을 7년째 못 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그동안 걸어온 ‘문희옥의 길’을 되돌아보니 선뜻 음반을 내기가 겁이 난다는 것이다. “제가 지향하는 길과 안 맞더라도 ‘서둘지 말자’, ‘지금의 페이스에서 카리스마가 있는 선배, 노력하는 선배로 보여주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수 중에 신곡을 7년째 안 내는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겁니다. 요즘 신곡을 내면 일단 뜹니다. 하지만 가수는 빛을 못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대중들은 인물의 됨됨이까지 봅니다. 가수가 노래만 잘하면 된다는 정석은 이미 깨졌지요. 노래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다 잘할 수 있는 만능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조심 조심 지나치지 않게 가자는 것이 제 인생의 화두가 됐습니다.” 그에게 ‘트로트가 죽었다’는 부문에 대해 다른 가수와 공감대를 형성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주현미 언니랑 만날 때 그런 걱정을 털어놓곤 합니다. 제가 아는 트로트 가수 중에 주현미 언니는 비교적 관리를 잘하는 편입니다. 유일한 트로트 프로그램인 ‘가요 무대’에도 함부로 나가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얘기도 해요. ‘가요 무대’는 말 그대로 정통 가요를 사랑하는 가수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인데 검증되지 않은 가수들이 자주 등장해서 그런가 봐요. 그러면서 언니는 ‘우리라도 트로트를 잘 지키자’고 얘기하지요.” #아내이자 엄마, 문희옥 그는 요즘 들어 지나 온 세월을 자주 돌아본다고 했다. 올해는 ‘오페라 가수’ 와 ‘트로트의 여제’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더욱 자신을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가요보다 2~3 정도 키가 높다는 오페라 발성을 직접 해보이면서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는 자세로 정통 트로트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다. 그러던 중 소풍 가서 우연히 노래 한 곡을 불렀고 당시 교감 선생님한테 ‘희옥이는 가수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가수의 꿈을 앞당겼다. 얼마 후 작곡가 안치행씨를 만나면서 1년 동안 비밀리에 트레이닝을 받아 ‘팔도 사투리 메들리’로 데뷔했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방언으로 부른 노래를 담은 앨범은 당시 밤을 새워서 찍어내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던 것. 그때 돈을 좀 벌었느냐고 하자 “저는 노래만 불렀고 문희옥이란 이름을 알렸잖아요. 아마 안 선생님은 많이 벌었을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동안 낸 곡 중 가장 아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니 ‘성은 김이요’가 좋은 것 같다.”며 웃는다. 1995년 일반 회사원과 결혼한 문희옥은 2004년 아들을 얻었고 이제 학부모가 됐다. 매주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교회에 가서 가족의 행복을 기도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신곡 앨범이 언제 나오느냐고 하자 옆에 있던 기획사 대표가 “서정적인 가사로 11월 중 팬들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문희옥은 누구 1969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황해도 출신으로 6·25때 월남했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곧잘 부른다는 칭찬을 들으며 자란 그는 은광여고 3학년 재학 당시 ‘팔도 사투리 메들리’로 데뷔했다. 앨범 발매 1주일 만에 360만장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가요계에 혜성같이 나타났다. 이후 서울예술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면서 본격적인 정통 트로트의 길을 걸었다. 대표곡으로 ‘성은 김이요’ ‘사랑의 거리’ ‘강남 멋쟁이’ 등을 발표하면서 연이어 히트를 쳤다. 1995년 일반 회사원과 결혼한 그는 8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 2003년 제5회 한국예술실연자대상 특별공로상 등을 수상했으며 최근 ‘오페라 스타’ ‘나는 트로트 가수다’ 등에 출연해 새로운 끼를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올 11월쯤에는 서정적인 풍의 신곡을 낼 예정이다.
  • “봉사하며 아내도 얻고… 여생 외롭지 않아”

    “봉사하며 아내도 얻고… 여생 외롭지 않아”

    지난 2009년까지만 해도 매일 아침 서울 영등포역 근처에서는 임진국(96)씨를 만날 수 있었다. 임씨는 교통경찰 제복을 입고 손에 신호봉을 든 채 교통이 혼잡한 영등포역 근처에서 교통정리를 해왔다. 그가 영등포 일대 도로 위에서 시간을 보낸 세월이 무려 30년이나 된다. 주민들은 그런 임씨를 ‘영등포 교통장관’으로 불렀다. ●영등포 도로 위에서 교통정리 봉사 30년 임씨의 교통정리 봉사는 50여년 전에 목격한 교통사고의 충격이 계기가 됐다. 1964년 어느 날 청계천을 지나다 초등학생 3명이 유턴하던 차량에 치여 숨지는 모습을 본 것. 임씨는 서울지방경찰청을 찾아가 교통경찰 제복을 얻어 입고 종로·을지로·청계천 등에서 교통정리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1979년부터는 영등포역 근처로 옮겨 이곳에서만 30년 동안 교통정리 봉사를 했다. ●후원회원·경찰 등 수많은 자식들 생겨 사람들은 그를 ‘교통장관’이라고 불렀지만 그의 삶이 장관의 그것처럼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네살 때 일본인 부부의 양자가 돼 일본으로 건너가 살다가 광복이 되어서 귀국했지만 곧바로 6·25 전쟁을 겪어야 했다. 이후 결혼을 하지 않아 따로 가족이 없는 그는 영등포의 한 평 남짓한 쪽방에서 외롭게 살아왔다. 그러던 가운데 임씨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생활에도 큰 변화가 왔다. ‘임진국 교통할아버지후원회’가 생겨 그에게 자그마한 아파트를 선물했는가 하면 후원회와 영등포경찰서의 도움으로 2006년에는 같은 쪽방촌에 살던 차갑선(79) 할머니와 백년가약을 맺기도 했다. 이제는 건강이 좋지 않아 더는 교통봉사 현장에 나서지 못하지만, 임씨는 “교통봉사를 하면서 여생을 같이할 아내도 얻고, 후원회와 경찰 등 수많은 자식들까지 두게 돼 결코 외롭지 않다.”며 주름진 얼굴에 가득 웃음을 담았다. 김소라기자 sors@seoul.co.kr
  • [중앙부처 국정현안 중간점검] (5)통일부

    [중앙부처 국정현안 중간점검] (5)통일부

    이명박 정부에서의 통일부 정책은 남북 교류·협력에서 통일 대비 준비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천안함 사건으로 취해진 5·24 대북 제재 조치 이후 남북 간 경제·문화 교류는 중단됐고, 대신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 이후 착수된 통일 재원 마련 사업에 통일부가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통일부 장관이 교체됨에 따라 통일부의 이 같은 정책 방향도 다소간 수정될 전망이다. 통일 문제 전문가들은 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회의적이라는 지적도 동시에 하고 있다. 통일부는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이후 일관되게 북한을 제재하는 정책을 취해왔다. 2010년 취해진 5·24 조치는 남북 간 교역과 신규 투자를 금지하는 한편 문화 교류를 위한 방북도 제한해 사실상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대북 접촉을 차단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진정성 있는 자세와 비핵화를 유도한다는 구상이었지만 오히려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결속을 강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금강산 관광은 통일부 내부에서조차 원상회복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이미 법(정령)까지 발표한 상황에서 이를 무르고 남한 측을 사업 파트너로 한 관광사업을 재개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고 말했다. 인도적 지원 사업 분야에 대한 북한과의 대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단 두 차례 실시됐다. 반면 고령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위로 방문·정책설명회를 개최하는 한편 2009년 3월 ‘남북 이산가족 생사 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이산가족 실태를 조사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지지부진했던 북한 인권 분야에서는 북한 인권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는 한편 유엔에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을 제안하는 등 국제사회에서의 협력을 강화해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 언급으로 시작된 통일 재원 마련 사업은 세계 경제 위기로 총체적 난국에 빠진 상황이다. 통일부는 2030년 통일이 이뤄진다는 가정 아래 초기 1년간 통합 비용으로 55조~249조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사전에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남북협력기금 출연 ▲통일세 납부 등의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와의 협의가 난항을 겪으면서 당초 8월을 목표로 했던 정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점도 크다. 이와 함께 올해 탈북자가 2만 2000명을 넘어서면서 이들에 대한 정착 지원 문제도 통일부가 풀어가야 할 숙제 가운데 하나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사설] 소득·법인세 추가 감세 철회 잘한 일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어제 소득·법인세 최고구간에 대한 추가 감세를 철회하기로 했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해선 당초 계획대로 감세를 진행한다. 감세 기조를 유지하겠다던 정부가 정치권의 논리에 굴복했다는 얘기를 듣긴 하겠지만, 경기 상황이 썩 좋지 않고 유럽 등과 같은 재정위기를 맞지 않으려면 재정 건전성 확보가 관건이란 점에서 잘한 일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추가 감세 철회 합의에 따른 세수증가분(2013년 2조 8000억원)은 재정 건전성 회복과 서민 복지재원 확충에 활용하겠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사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부자 증세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우리만 소득·법인세를 감면하는 것도 타이밍이 적절하지는 않은 터였다. 이를 반영하듯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1 세제개편’도 고용과 공생발전의 큰 틀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친서민정책을 표방한 이후 2010년 공정사회, 올해 공생발전이라는 키워드를 주창해온 것과 궤를 같이한다. 저소득 근로자를 대상으로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고용증대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보험료 세액공제, 중소기업 취업 청년에 대한 소득세 면제 등이 그런 것들이다. 재벌 오너들의 변칙적인 상속·증여세 회피를 막기 위해 대기업들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이익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은 획기적이다. 실효성 여부가 관건이다. 다만 물가안정을 위해 설탕·밀가루 등 독과점 고착화 품목에 대한 기본관세율을 무리하게 내려 국내 산업이 붕괴될 수 있다는 지적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재정 건전성 제고와 기업경영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세수 확보와 법인세율 인하가 불가피하다. 이번에 법인세율 인하 대상에서 대기업만 제외한 것은 국민 정서와 무관치 않다. 법인세율을 낮추면 결국 재벌 오너들의 주머니만 두둑해지는 것 아니냐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부자와 재벌 오너들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세제상으로 뒷받침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법인세율을 낮출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재정 건전성 제고도 저출산·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복지 관련 씀씀이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세원을 넓히는 노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 [차관급 인사 안팎]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 내정자 “한 정권 일출서 일몰 지켰다”

    “‘순장’(殉葬)이 아니고 ‘완주’(完走)다. 한 정권의 ‘지킴이’로, 해가 뜨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해가 지는 것까지 모두 지켜본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6일 사실상 수석급인 기획관으로 승진한 김상협(48) 녹색성장기획관 내정자는 이같은 말로 승진 소감을 대신했다. 기자 출신인 김 내정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1998년 조지워싱턴대에서 1년간 연수생활을 할 때 워싱턴 특파원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2008년 청와대에 미래비전비서관으로 처음 들어왔다. 그는 생소한 개념이던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명박 정부의 핵심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의 녹색성장기획단장과 미래기획위원회의 미래기획단장까지 겸임하며 온실가스 감축, 신성장 동력 과제 선정 및 추진에도 앞장 섰다. 특히 한국이 이끄는 최초의 국제기구가 될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GGGI) 창립을 주도해 추진력을 인정받았다. 2009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광복절 경축사의 제목으로 등장한 ‘더 큰 대한민국’도 그가 창안해낸 말이다. 기획력이 뛰어나 ‘천재형’ 참모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7월 차관급 인사 때 환경부 차관직 제의를 받았으나 “좋은 자리지만 대통령을 끝까지 보필하고 싶다.”며 고사했다. 김 내정자는 “이제 2단계에 접어든 ‘녹색성장’이 확실히 이행되도록 끝까지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본적은 경북 경산. 보성고와 서울대 외교학과(82학번)를 나왔고 취미는 바둑이다. 부인 김수미(46)씨와 1남 2녀를 뒀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서울광장] 이제 국민을 좀 대접하라/오병남 논설실장

    [서울광장] 이제 국민을 좀 대접하라/오병남 논설실장

    대한민국 국민은 착하다. 광복 이후 66년간 가난과 전쟁, 군사독재의 질곡 속에서도 개미처럼 근면했고, 민주주의 대장정을 멈추지 않았다. 더구나 나라가 어렵거나, 큰일을 치를 때면 늘 세계가 깜짝 놀랄 민도를 보여줬다. 외환위기 때 들불처럼 일어난 ‘금 모으기’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었다. 이리 착한 국민의 피땀 덕분에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뤘는지 모른다. 대접받을 만한, 아니 대접받아야 할 국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달리는 말에 채찍 든다고 했던가. 박정희정권 시절 지상명령처럼 외친 수출 100억 달러-1인당 국민총생산(GNP) 1000달러는 무역규모 1조 달러(세계 9위)-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로 바뀌었지만 쉼 없이 달려온 국민을 다독이고, 격려하고, 대접하는 일은 사뭇 소홀한 듯하다. 삶의 질 지표가 2000년 이후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주요20개국(G20)에 속한 39개국 가운데 27위에 정체돼 있는 사실이 하나의 방증이다. 최근 이념전쟁으로 변질돼 헛배만 부른 복지논쟁도 착한 국민에게는 섭섭하고 피곤한 일이다. 뒷감당도 못하면서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의 ‘표(票)퓰리즘’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중산층이 무너진 가운데 노숙자가 하루에 한명꼴로 숨지고,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세계 1위인 현실에서 복지에 대한 비전 제시는 없이 이제 막 움튼 복지의 싹을 잘라내기라도 하려는 듯한 태도는 곤란하다. 열심히만 살면 나라가 잘되고, 그 나라가 자신을 대접해 주리라는 기대를 배반하는 것만큼 가혹한 일은 없다. 이쯤에서 착한 국민을 위해 나라가 무엇을,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를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지금 나라가 국민을 위해 최소한 무엇을 대접하려고 노력한다는 믿음은 줘야 한다. 복지선진국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라도 챙겨 보라. 가까운 예로 시민단체들이 10여년 전부터 줄기차게 요구해온 경인·경부고속도로 등의 무료화도 해볼 만하다. 지난 1968년 12월 21일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된 경인고속도로와 1970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는 이미 법률상으로도 통행료 징수기간을 한참 넘겼다. 현행 유료도로법은 30년 이내에서 통행료 수납기간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행료 총액도 건설유지비 총액을 초과할 수 없다. 개통 30년을 넘긴 고속도로는 모두 9곳이다. 이 가운데 건설유지비 총액까지 회수한 곳은 경인선·경부선을 비롯해 울산선(1969년)·남해2지선(1981년) 등 4곳이다. 한국도로공사와 국토해양부는 전국의 고속도로를 하나의 도로로 보는 통합채산제를 근거로 10년 넘게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일본 민주당 정권이 지난 6월 고속도로 무료화를 2년 만에 접어 ‘폐지 불가’ 입장은 더 단단해질 것 같다. 하지만 지난 6월 1일 인천 경실련 등 4개 시민사회단체와 30명의 공익소송인단이 2000년 이후 11년 만에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내는 등 폐지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총체적인 해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갈등은 갈수록 증폭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전면적인 무료화가 여의치 않다면 사실상 고속도로 기능을 상실하는 명절 때만이라도 통행료 징수를 멈추는 건 어떨까. 사흘 뒤면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 연휴가 시작된다. 이번에도 전국의 고속도로는 고향 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룰 것이다.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고 더 몰려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차피 주차장을 방불케 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팍팍한 삶 속에서 명절은 오아시스 같은 것이다. 올해 한가위는 유럽·미국발 글로벌 경제쇼크,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고통 속에 맞는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고향을 오가는 동안만이라도 전국의 고속도로를 무료 개방해 한시름 덜어주면 좋겠다. 이제 우리 국민도 좀 대접받을 때가 됐다. obnbkt@seoul.co.kr
  • 홍준표, 독도 해병대 배치 정부와 합의했다더니...

    홍준표, 독도 해병대 배치 정부와 합의했다더니...

    경찰청은 독도를 경비할 의무경찰을 처음으로 공개 선발한다고 6일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독도를 지키는 전투경찰은 의무 복무자 중에서 무작위로 선발됐지만, 앞으로는 처음부터 독도를 경비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의무경찰을 뽑아 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2013년 7월부터 독도에 배치된 전경이 모두 의경으로 교체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또 “해병대에서 하는 것처럼 자원을 받으면 독도 경비 경력이 정예화되고 독도 수호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효과도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올해 3차례에 걸쳐 의경 독도 1~3기를 뽑아 11월부터 독도에 주둔시킬 예정이다. 4개 소대로 편성된 경찰력은 50일씩 돌아가면서 독도에서 근무하고 이외 기간에는 울릉도에서 근무한다. 독도 1기는 6~23일까지 원서를 접수해 다음달 10일 입영한다. 인원은 20명이다. 또 2·3기는 7명씩으로 다음달 1~20일, 21~11월 20일에 원서를 받아 12월 1일과 29일에 배치된다. 지원 자격은 만 18세 이상 30세 이하의 병역 미필자이며 보트 조종면허나 수상 인명구조요원 자격증, 발전·조수기 관련 전기 관련 자격증, 요리 자격증 등을 소지할 경우, 우대한다. 접수 뒤 면접과 체력 검정 등 과정을 거쳐 1개월 뒤에 확정된다. 앞서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달 15일 광복절을 맞아 독도에 해병대를 배치하자고 정부에 공식 요구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해 김관진 국방장관과 협의를 거쳤다.”면서 “해병대 주둔이 결정되면 울릉도에 중대급 해병대를 배치하고, 한 개 소대씩 독도에 순환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는 독도를 우리 스스로 분쟁 지역화할 수 있다며 난감한 입장을 보였다. 결국 당시 홍 대표의 제안은 실현되지 않고 무산된 셈이 됐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강우규 의사 동상 서울역광장에 우뚝

    강우규 의사 동상 서울역광장에 우뚝

    일제 강점기에 사이토 마코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졌던 왈우(曰遇)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92년 전 의거 현장에 세워졌다. 강우규 의사 기념사업회는 2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강 의사 의거 92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지난 2008년 6월부터 동상 건립을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해 3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기념식에는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 박유철 광복회장, 오산고 학생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굳게 다문 입술과 형형한 눈빛의 강 의사 동상은 흰 천에 덮여 있다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강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예순의 나이로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다. 총독 폭살에는 실패했지만 일본 경찰 37명이 죽거나 다쳤다. 강 의사는 보름 뒤 종로구 사직동에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선무도에 심취한 벽안의 불자들

    선무도에 심취한 벽안의 불자들

    가람도, 스님들도 남다른 곳이다. 경북 경주 함월산 자락에 있는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 골굴사(주지 적운스님) 말이다. 2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취재진이 지난달 20일부터 1박 2일의 템플 스테이를 함께했다. 첫날 오후에는 비가 내려 극락보전 안에서, 비가 갠 다음 날 오전에는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장삼을 걸친 스님들이 곰과 용, 여우 등의 형상을 닮은 동작들을 취하는 것을 20여명의 외국인 수련생, 국내외 관광객들과 지켜봤다. 수련의 세월이 새겨져 깡마른 얼굴의 스님들이 하늘을 붕붕 나는(?) 듯한 모습을 보는 일은 신기하기도 했다. 무예라고만 여기면 안 된다. 12개의 석굴이 연결돼 있던 골굴사에선 신라 화랑들이 몸과 마음을 닦았고 조선 때는 승병들이 왜적을 무찌를 기예를 연마했다. 이렇게 불가에서 전통으로 내려오던 수련법을 체계화한 것이 선무도(禪武道). 요가·명상·선기공·선무술·선체조 등을 종합했고 방어 위주의 동작이 주를 이룬 것이 다른 무예와 다른 점. 일제 때 맥이 끊겼던 것을 광복 뒤 양익스님(2006년 5월 좌탈입망)이 부산 범어사에서 복원했는데 20여년 전 적운스님이 당시 암자였던 골굴사를 중창하면서 세계적인 무도로 키웠다. 불교와 전통 무예에 호기심을 가진 외국인들이 하나둘 찾아오면서 1992년부터 ‘사찰 숙박 체험’이 시작됐는데 이게 요즈음의 템플 스테이의 시작이었다. 첫날 오후 4시 이곳에 머무른 지 4개월이 됐다는 독일인 악셀(52)이 사찰 예법 등을 안내하면서 일정이 시작됐다. 외국인들이 엉성한 모습으로 부처를 향해 극진한 예를 표했다. 저녁공양을 마친 수련생들은 오후 7시 노르웨이인 무정(29·본명 스베인 이바 링헤임) 사범의 지도로 90분 동안 선무도의 기본 동작들을 익혀 본다. 다음 날 새벽 4시, 도량석(道場釋·새벽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는 의식) 소리가 들리자 수련생들은 잠이 덜 깬 채 극락보전에 모여든다. 예불을 마친 뒤 곧바로 좌선을 해보는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명상을 하느라 많이 힘겨워했다. 빈 그릇으로 시작해 빈 그릇으로 끝내는 아침 발우공양, 젓가락질이 어색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음식의 귀함을 강조하는 식사법인 만큼 수련생들은 묵언하며 밥알을 한 톨도 남기지 않았다. 홀가분해진 몸과 마음으로 적운스님과 차담(茶談)을 나눴다. 수련생들은 예정된 시간을 넘겨 사찰 예법, 한국 불교나 정신 문화에 대한 궁금증까지 털어놓고 답을 구했다. 경주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김인규 인턴(미국 인디애나대학 경영학부)
  • MB “공생, 총수가 앞장서야”… 30대그룹 “올 12만명 채용”

    이명박 대통령은 31일 “공생발전은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면서 “시대적 요구가 왔을 때 선순환으로 바꾸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역시 총수가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30대 대기업 총수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한 ‘공생발전’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공생발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시장경제를 지킬 수 있고 우리 사회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면서 “당면한 여러 문제를 극복하는 데 정부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고 기업이 앞장서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자발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면 국가도, 기업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정부는 (이런 변화가 있는 동안 생기는) 여러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노력 중이며 교육비리, 권력형비리, 토착형비리는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엄격하게 다뤄 우리 사회가 일류국가로 가는 데 뒷받침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대통령과 재계의 오찬 회동에 맞춰 전경련은 올해 국내 30대 그룹이 12만 4000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하기로 한 내용의 채용계획을 발표했다. 11만명이었던 지난해 채용보다 12.7% 늘어난 수치다. 상반기에 이미 6만 8000명을 채용했다. 특히 고졸 인력도 3만 5000명을 신규 모집한다. 특히 10대 그룹은 하반기에 모두 3만 4260명을 채용한다. 김성수·이두걸기자 sskim@seoul.co.kr
  • MB “전경련 50년후 고민해야… 그래야 국민신뢰 얻어”

    MB “전경련 50년후 고민해야… 그래야 국민신뢰 얻어”

    31일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30대 대기업 총수들과의 오찬 간담회는 ‘공생발전’에 대해 정부와 재계가 호흡을 맞추는 자리였다. 지난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이 화두를 꺼내든 이 대통령이 취지와 당위성, 재계의 동참 필요성을 역설했고, 재계는 다양한 공생 구상을 제시하며 화답했다. 오찬은 예정보다 25분 정도 늘어난 2시간 15분 동안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간담회에 앞서 총수들과 티타임을 갖고 가벼운 인사말을 먼저 나눴다. 이 대통령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는 “딸이 결혼한다면서요. 축하합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는 “동계올림픽 유치한다고 고생했어요.”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기업들이 후원금을 많이 내서 도움이 됐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돌아보며 “삼성이 많이 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니까 당연히 많이 내야죠.”라고 조크를 던져 웃음이 터졌다. 가벼운 농담도 잠시. 한식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한 뒤 이어진 간담회는 진지하게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공생발전을 위한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공생발전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라면서 “더불어가는 환경 속에서 공생발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시장경제를 지키고 지속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미 상당한 변화의 조짐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그런 점에서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총수들이 직접 관심을 가져 준다면 빨리 전파돼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08년 말 금융위기를 맞아 모두 힘들어할 때 우리 기업인들이 열심히 해줘 금융위기를 잘 넘겼다.”면서 “이제 다시 재정위기 속에서 다시 한번 우리 기업인들이 힘을 발휘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기업을 사랑하고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서 “협력을 하되 시혜적 협력이 아니라 서로 윈윈하고 함께 발전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의 향후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전경련이 금년에 50주년을 맞았는데, 향후 50년을 내다볼 때 전경련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개별 기업의 고민과 대책도 중요하지만, 전경련이란 경제단체 측면에서 고민을 많이 해줬으면 한다.”면서 “그래야 국민의 신뢰와 애정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참석한 재계 총수들은 모두 돌아가면서 공생발전과 관련해 발언을 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공생발전을 위한 거래구조를 선진화하고, 모든 부문에 있어 협력기업의 체질이 강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앞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사회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 공생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이를 위해 중소기업과 협력을 강화해서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기업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친환경차를 비롯한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면서 “ 1차 협력업체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가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2, 3차 협력 업체 육성과 체계적 지원을 강화해 건전한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LG는 지난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제시하신 공생발전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면서 “투자, 고용은 물론 동반성장을 위해 협력회사 연구·개발(R&D) 지원, 주요 장비나 부품의 국산화 등 5대 과제를 선정해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공생발전에 대해서 주로 사회적 기업을 통한 실천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강건한 공생발전 기업생태계를 위해서 향후 3년간 민간 공동기술투자 500억원, 벤처 창업 지원과 펀드 조성에 500억원 등 총 2600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편성하겠다”(정준양 포스코 회장),“지방사업장에서 현지 학생들을 우선 채용하고 여성인력 특별채용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고용 효과를 높이겠다.”(신동빈 롯데 부회장)는 발언도 이어졌다. 박용현 두산 회장은 “올해도 창사 이래 최대 인원을 채용할 예정”이라면서 “특히 고졸자 채용 정책에 발맞춰 대폭 신규 채용을 하겠다.”고 밝혔다. 박삼구 금호 회장은 “제일 중요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고용창출이며, 공생발전의 한 부분인 고졸자 취업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잘나가는 ‘공정사회’ 지지부진 ‘건강사회’

    잘나가는 ‘공정사회’ 지지부진 ‘건강사회’

    국무총리실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관리 중인 ‘공정사회’ 실천을 위한 중점 과제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는 반면 국무총리가 직접 추진하는 ‘건강사회’ 과제의 추진은 답보상태여서 총리실이 애를 태우고 있다. 두 사업 모두 총리실이 정부 부처들을 통솔해 정리하는 것이지만 ‘공정사회’ 추진 사업의 경우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는 점에서 부처 독려 효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총리실은 31일 ‘공정사회 국민토론회’를 열고 지난해 8·15 광복절 당시 대통령이 경축사를 통해 국정 핵심가치로 천명한 ‘공정사회’ 관련 추진 성과를 발표한다. 대통령의 일성 이후 청와대는 공정사회 실천을 위한 8대 중점 과제를 선정했다. 이어각 부처는 국민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제도·관행 등 공정사회 실천을 위한 중점 과제 80개를 선정,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내놓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30일 “청와대가 학력·학벌에 의한 차별 개선을 중점과제로 선정한 뒤 금융권과 공공기관은 물론 대기업에서도 고졸자 채용 증가 소식이 나오는 등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청와대가 ‘공정사회추진회의’를 통해 주요 사업들을 점검하면서 부처에서도 핵심과제 추진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당장 다음 달 2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제4차 공정사회추진회의에서도 ‘학력·학벌에 의한 차별 개선’ 주제와 관련, 재직자 대학전형 확대 유도 방안이 나올 예정이다. 재직자 대학전형을 오는 2012학년도부터 최대 30개 대학까지 확대·실시하기 위해 재직자 전형 대학에 1억~1억 5000만원의 예산이 지원된다. 이에 앞서 특권 없는 사회 과제의 하나로 지난 2월 지방국세청에 체납자 전담팀을 구성, 올 상반기 중 체납된 6944억원의 세금이 회수됐고, 전관예우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퇴직자가 재직 중 직접 처리한 특정 업무는 퇴직 후 다룰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도 개정됐다. 이 밖에 ▲상습 체불사업주에 대한 명단을 공개토록 하는 근로기준법이 마련됐고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해 교원지위 부여에 따른 4대 보험 적용 및 단가 인상 등 작지만 의미 있는 조치들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반면 총리가 지휘하는 건강사회 만들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올 초 총리 이름을 걸고 세부 과제들이 출시됐으나 아직 내놓을 만한 성과가 마땅치 않다. 공정사회 과제와 달리 제도 개선을 통해 이뤄지기보다 교육과 홍보를 통한 의식 개혁이 요구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예산 확보는커녕 홍보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내용을 보면 ▲자살 예방 대책 추진 ▲불법 낙태 줄이기 ▲건전한 입양문화 만들기 ▲실종·가출 청소년 줄이기 ▲폭력·따돌림 없는 학교 만들기 ▲무분별한 고소 줄이기 ▲아름다운 인터넷 세상 만들기 ▲도박중독·불법도박 없는 사회 만들기 ▲인터넷 중독 없는 사회 만들기 등 12개다. 그나마 이들 가운데 4개 과제 관련 내용은 출시되지도 못해 내년 예산에 반영하기조차 어려운 처지다. 정부 관계자는 “총리실은 현재 사업 추진을 위해 해당 사업이 걸려 있는 주무부처에 예산 협의를 위한 보다 자세한 사업 내용을 제출하라고 독려하는 등 해당 부처보다 목이 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전통상인 계승한 보부상… 일제침략 후 친일파로 변신”

    “전통상인 계승한 보부상… 일제침략 후 친일파로 변신”

    개항(1876년) 이후 한국 기업사를 총정리한 연구서가 나왔다.전우용(49) 서울대 강사가 쓴 ‘한국 회사의 탄생’(서울대출판문화원 펴냄)이다.조선 땅에 ‘회사’라는 것이 어떻게 등장했고,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다뤘다.10여년의 공력을 들인 작업이다. 지난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국사학계에서 기업사 연구는 상대적으로 드문 편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그는 서울대에서 국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출발점이었다. 일본이나 국내 뉴라이트 진영은 식민지 경험이 도움 됐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바꿔 생각해보면 일본은 당대 제국주의 세력 가운데 가장 후진적이었다. 이는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비교에서도 드러난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플랜테이션(Plantation)화했지만, 일본은 조선에 대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본 자체가 후발 제국주의였기도 했지만, 조선의 자본을 동원할 만하다고 판단해서였기도 하다. 파괴보다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 이게 중요하다. →그 자본의 역량은 어떤 수준이었나. -대한제국 최대의 자본가가 누구였겠나. 바로 고종황제다. 내장원(왕실 재산을 관리하던 관청)을 통해 기업을 실질적으로 소유했고, 광산, 인삼, 홍삼 같은 이권사업을 쥐고 있었다. 일제가 빼앗은 것은 조선인의 다른 재산, 농지였다기보다 철저하게 이 부분에 집중됐다고 봐야 한다. 가령 친일파로 불리는 송병준은 원래 민씨 일가 겸인이었다. 겸인이란 유력 정치인 집에 드나드는 정치인 지망생 정도로 보면 된다. 학식도 재산도 그저 그랬던 그가 한·일병합 뒤 조선 10대 재벌로 등극한다. 반면 최석주라는 인물이 있다. 탁지부 전환국장, 요즘으로 치자면 조폐공사 사장쯤 되는데 지금이야 중앙은행이 문제 제기하겠지만 그때만 해도 화폐를 막 찍어내도 문제가 없었다. 마구 찍어내서 일부는 착복하고 그랬다. 그래서 그는 민영휘와 함께 당대 최고의 탐관오리로 꼽혔다. 그렇게 부를 쌓아 올렸던 이가 1914년 빈털터리가 돼서 자살한다. 왜 이런 급격한 변동이 일어났겠나. 황실이나 내장원 재산이 일제에 약탈당하면서 그에 연계된 토착자본도 집중적으로 와해됐다고 봐야 한다. →토착자본과 전통상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많다. 보부상과 황국협회가 대표적인데. -보부상을 보따리장수쯤으로 보는 것은 잘못됐다. 그런 보부상도 있었지만 ‘큰손’도 있었다. 이들은 분세(分稅)를 담당했다. 장사할 수 있는 권리를 면허세 형식으로 걷어서 일부는 국가에 바치고 일부는 자신이 가졌다. 조선 후기에 축적된 전통적 관행에 입각해 나름대로의 대응을 한 거다. 내가 주목하는 대목은 바로 이 과정에서 오늘날로 치면 전문 경영인 같은 존재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여러 회사에서 고문을 지낸 김익순(독립운동가 김규식의 삼촌) 같은 존재가 대표적이다. →보부상 하면 고종의 어용부대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그들은 대부분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친일파로 변신한다. 고종 황제가 일제에 맞서 보호해줄 때는 고종 편에, 일제의 승리가 육박했을 때는 일제 편에 가담했다. 그렇다고 이를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외부 압력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됐을 때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는 이들은 황국협회로, 새로운 방식을 주장하는 이들은 독립협회로 갈린 것뿐이다. 문제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이들이 정치적 폭압으로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꿈꾼 자본주의 체제란 어떤 것이었을까.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보자면 지주가 자본가로 변신했는지 여부가 가장 관건이다. 그러나 난 자본주의가 반드시 그런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물자, 사람, 권력, 욕망 등을 자본주의로 파악한 페르낭 브로델(프랑스 역사학자)의 관점이 더 좋다. 조선 땅에 회사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83년 (장통회사·서울 청계천 장통교 주변 상인들이 모여 만든 회사)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주냐, 부르주아냐를 떠나서 말이다. 이들의 머릿속엔 17~18세기 유럽 초기 자본가들과 비슷한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일제가 자생적 자본주의의 싹을 밟았다는 내재적 발전론과 어떤 차이가 있나. -발전의 싹을 밟아 없앤 게 아니라 동원당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고질병인 정경유착과 관계 있다. 고종 황제의 방법이 정경유착이었다. 후발 주자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국, 일본, 독일 할 것 없이 모두 그랬다. 그런데 이게 일제 지배라는 크나큰 정치적 변동을 만나면서 확고한 원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요즘 자유시장 원칙으로 대기업을 옹호하는 주장에 대한 비판인 듯한데. -결과론적 해석이다. 거꾸로 말해보자. 국제그룹은 경영을 못 해서 전두환 정권 시절에 사라졌나. 다른 대기업들은 경영을 잘해서 정치적 급변 속에서 살아남았나. 그렇다면 경영 능력이란 도대체 뭔가. 대기업들의 힘이 엄청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정치권력이 큰소리 낼 때 대기업들은 일단 주춤하고 고개 숙인다. 정치적 급변기 때 가장 중요한 경영 능력은 세계 경제 흐름을 읽는 눈이나 소비자 욕구 파악 능력보다는 정치권력과의 관계 설정 아니었겠나. 여기에 또 한 가지 요인을 추가하자면 우리 대기업들은 아직 전문 경영인 체제가 아니라 가계기업 체제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오너가 정치권력의 명확한 타깃으로 존재한다. →후속 연구, 즉 근현대 기업사 연구가 기대된다. -어려운 작업이다. 칭찬만 하면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텐데 그럴 수 없으니…(웃음). 광복 직후까지 사람으로 보는 기업사 정도는 한번 더 다뤄보고 싶다.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기고] 녹색성장, 기아와 물 문제 해결의 단비/민동석 외교통상부 2차관

    [기고] 녹색성장, 기아와 물 문제 해결의 단비/민동석 외교통상부 2차관

    지난달 104년 만에 최악이라는 집중호우로 서울시내 전역이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물난리를 겪는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바로 옆 중국 서부지역에서는 30년 만에 온 최악의 가뭄으로 물 부족 사태가 악화하여 잎들이 손으로 만지면 다 쉽게 부스러질 정도였다고 한다. 대표적 벼 주산지인 후난성에서는 올가을 쌀 수확량이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제적 리더십을 인정받아 만장일치로 연임이 결정된 후 처음으로 고국을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서울에서 열린 ‘유엔 아카데믹 임팩트 포럼’에 참석해 “기후변화 문제야말로 기아와 물, 에너지를 해결하는 하나의 진입점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반 총장이 강조하고 있는 최우선 의제가 기후변화 문제를 포함한 지속가능 발전 문제다. 2015년이 되면 기후변화로 말미암아 밀 생산량이 30%, 쌀 생산량이 15% 감소하고 가격은 각각 194%, 121%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경은 ‘스턴보고서’에서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에 주저하는 사이에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매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20%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녹색성장 정책을 발전의 패러다임으로 선포한 지 3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녹색성장은 세계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만든 우리 역사상 최초의 비전이며 더 큰 대한민국의 중심 비전”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2009년부터 녹색성장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하고 GDP 2%를 녹색성장계획에 투입하고 있다. 또한 ‘내가 먼저’(Me First) 정신에 입각하여 온실가스를 2020년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하겠다는 목표치를 설정했다. 작년 6월에는 경제성장과 환경적 지속가능성의 조화를 목표로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GGGI)를 설립하여 녹색성장 이론을 체계화하고 발전모델을 국제적으로 전파하고자 힘쓰고 있다. GGGI는 브라질, 에티오피아 등을 대상으로 녹색성장 지원 프로젝트 사업에 착수했다. 2012년까지 약 2억 달러를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기후파트너십을 통해서도 녹색성장 선도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녹색성장 정책을 국제자산화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지난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는 우리나라 녹색정책 사례가 포함된 녹색성장전략 종합 보고서를 채택하는 등 한국의 녹색성장과 GGGI를 모범사례로 높이 평가했으며 국제연합환경계획(UNEP)도 우리에게 높은 평가를 내려 주었다. 전 세계가 우리의 녹색성장 정책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경제발전과 녹색성장 정책 경험을 세계와 함께 나누고 유엔과 협력하여 보다 더 나은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우리가 주도하는 녹색성장은 빈곤이나 가뭄으로 시달리는 전 세계에 단비가 되어 기아나 물 문제 등 다양한 이슈를 풀어 나갈 핵심 열쇠가 되어 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대통령이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바 있는 ‘공생 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으로 가는 지름길인 셈이다.
  •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 원폭 피해 67년째… ‘代를 이은 피울음’ 끝나지 않았다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 원폭 피해 67년째… ‘代를 이은 피울음’ 끝나지 않았다

    여느 농민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경남 합천군 초계면의 강상기(45)·상원(40)씨 형제. 정신지체 2급인 형제는 자신들의 생년월일도, 부모의 제사 기일도 알지 못한다. 4년 전 세상을 뜬 어머니 윤말순씨는 돈벌이가 된다는 소문에 히로시마로 건너가 일하던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에 피폭돼 크게 다쳤다. 당시 징용으로 끌려 갔거나 먹고 살기 위해 건너갔던 한국인 7만여명이 피폭됐고 그 중 4만여명이 숨졌다. 그런데 한국인 피폭자의 60%가 이곳 합천 출신으로 추정된다. 광복된 뒤 합천으로 돌아온 피폭 1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 이제 2000명 남짓 남았다지만 2세들은 역사의 형벌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27일 오전 7시와 오후 7시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취재진이 지난 21일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합천을 찾아 그 피울음을 담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형제만 남았다. 이웃의 허드렛일을 돕지만 셈을 할 줄 몰라 제 품삯을 챙기지도 못한다. 전날도 일했다고 해서 얼마 받았느냐고 묻자 “만원 하고 오백원”이라고 답한다. ‘오백원’이 뭔가 이상하다 싶어 물었더니 “할매 그려진 거?”라고 되묻는다. 취재진을 안내한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 등이 그제야 “아! 형은 일 잘하니 5만원, 동생은 일 못하니 만원 받았다는 얘기구나.”라고 정리한다. 형제 모두 정신지체 2급이라 정상적인 대화가 힘들다. 형 상기씨는 그나마 어느 정도 되는데 동생 상원씨는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한다. 취재진과 일행이 들고간 빵과 음료수가 담긴 봉지만 쳐다보고 있었다. 여느 농촌에 견줘 손색없는 경관을 갖춘 합천, 국도에서 빠져나와 읍내로 들어서니 ‘대장경 천년’ 을 자축하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내걸렸다. 그러나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은 비극의 역사를 떠안은 이들의 신음 소리를 품고 있었다. ●피폭 2세,일반인보다 질병 유병률 훨씬 높아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피폭 2세의 질병 유병률은 일반인에 견줘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빈혈이 88배, 심근경색·협심증이 81배, 우울증 발병률이 65배나 높았다. 여성은 심근경색·협심증이 89배, 우울증이 71배, 유방 양성종양이 64배나 높게 나왔다. 그러나 정부는 “방사능 피폭과 2세 질환의 상관관계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1995년 일본 정부의 견해를 그대로 좇아 지원에 뒷짐을 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건강진단 비용을 2년에 한 번씩 두 차례 지급하고는 없어진 것이 고작이다. 형제의 집에서 20분 떨어진 거리의 문택주(60)·종주(58) 형제 역시 선친이 물려준 후유증에 신음하기는 마찬가지. 부친 문홍수씨는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귀국했다가 환갑이 되던 해에 암으로 세상을 떴다. 형 택주씨는 스무살 무렵부터 시력이 약화되기 시작해 전혀 앞을 볼 수가 없고 귀조차 들리지 않는데 이제 당뇨까지 얻어 밤마다 고통 속에 지새운다고 했다. 동생 종주씨마저 시력이 나빠지고 있다. 관절염으로 다리가 퉁퉁 부어 지팡이를 짚어야 겨우 걷는 노모 박달순(85)씨는 이날 교회에 다녀오던 길에 한 순간도 택주씨 손을 놓지 못했다. ●방사능 피폭과 2세 질환 연관성 입증 안돼 얼굴에 검버섯 투성이인 박 할머니는 “딴 거는 걱정 안 돼. 이거 놔두고 어찌 가노. 같이 죽으면 좋을 텐데. 같이 가면 좋을 텐데, 그게 되나.”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다운증후군 환자인 정영현·허진영(44)씨 부부는 15년 전 결혼했지만 남편 정씨에게 언제 결혼했느냐고 묻자 엉뚱한 대답이 돌아온다. “1년.” 기자가 나이나 건강과 관련된 질문들을 던지자 계속 답이 엇갈린다. 정씨의 아버지와 허씨의 어머니 모두 피폭자. 허씨는 한 차례 유산하고 난 뒤 영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취재진과 마주한 내내 아내를 향해 연신 애정공세를 퍼붓던 정씨는 정신분열증세까지 있어 밤잠을 못 이룬다고 했다. 정씨의 어머니 안해숙(65)씨는 “아이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밤에 자면서 제 살을 마구 뜯어요.”라고 말하며 혀를 찼다. ●원폭 2세 환우 전국 1만여명 추정 2005년에 환우회가 출범하면서 지금까지 가입한 2세는 1000명 남짓. 하지만 1만명으로 추정되는 이들 2세 환우의 대다수는 피폭 2세란 사실을 밝히길 꺼리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으니 차라리 이웃의 불편한 시선이라도 피하겠다는 요량이다. 2세를 넘어 3세까지 병마가 찾아든 예도 심심찮게 있다. 2세인 한 회장은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으로 인공관절 수술 등 여러 차례 수술대에 올랐고 큰오빠는 뇌출혈로 숨졌으며 작은 오빠 역시 협심증과 심근경색 수술을 받았으며 자매들도 피부병과 관절 통증으로 고생한다고 했다. 맏아들(28)도 선천성 뇌성마비로 종일 누워 지낸다고 했다. 2005년 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특별법안을 발의했지만 17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18대 국회 들어 조진래 한나라당 의원이 다시 특별법안을 냈지만 여태껏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읍내에 환우들의 쉼터인 ‘합천 평화의 집’을 열었다. 치료·요양시설을 마련할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땅 한 평 사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나마 희소식은 건강이 상대적으로 나은 2세들이 위중한 2세들을 돌봐 병원도 다니고 집안 일도 돕는 시스템이 다음 달 중 도입된다는 것이다. 한 회장은 “한국과 일본 정부가 가해 책임을 둘러싸고 논쟁만 벌일 것이 아니라 우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놓고 나서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합천을 떠나 고속도로를 몇시간 달렸지만 그곳에서 머물렀던 시간이 던진 막막함으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합천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후원 계좌:국민은행 804201-01-184087 진경숙(한국원폭2세환우회)
  • “앞서가는 의술 나누는게 진정한 광복”

    “앞서가는 의술 나누는게 진정한 광복”

    국내에 외국인 의사들을 가르치는 고관절 명의가 있다. 25일 전남대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의 관절센터장 윤택림(53) 박사는 관절센터가 개최한 국제 고관절 수술교육 과정에서 10여명의 일본 의료진에게 수술 시연을 했다. 참석자들은 오사카 긴키대학 의과대 정형외과 교수 2명, 도쿄 기타사토 대학 정형외과 전문의 2명 등이다. 윤 박사는 지난 4월에 인도, 싱가포르, 타이완, 파키스탄 등 13명의 의사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이번 교육에서 일본인 의사들은 두부위 인공 고관절 치환술(인공고관절 수술에서 근육을 자르지 않고 근육과 근육 사이로 절개해서 인공고관절을 삽입하는 수술)과 키아리 골반 절골술(골반 뼈를 잘라서 골두를 덮는 수술) 등을 배웠다. 윤 박사는 “올해가 광복 66주년인데 일본 의사들이 교육을 받으러 와서 감회가 더 새롭다. 서로 앞서가는 의술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광복이고 우호관계를 증진시키는 일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화순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열린세상] 건강불평등 해소에 정부가 나서야 할때다/강대희 서울대 예방의학 교수

    [열린세상] 건강불평등 해소에 정부가 나서야 할때다/강대희 서울대 예방의학 교수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광복절 경축사에서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회, 창조적 혁신이 흘러 넘치는 사회, 책임을 공유하는 사회’를 이루자고 했다. ‘격차를 줄이는 발전이 되어야 하고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따뜻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공생발전’과 ‘동반성장’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우리는 지난 50년간 압축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나라가 되었다. 수명도 늘어 우리는 적어도 80세까지는 살 수 있게 됐다. 이쯤에서 2011년 한국은 과연 ‘더불어 사는 따뜻한 사회’인가 자문해 본다. 해묵은 지역 간 갈등에다 최근 들어 세대 간, 소득계층 간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은 사회 전체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사회경제적인 차이가 바로 건강의 불평등과 불형평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 주민은 부유한 지역 주민들보다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대학교 손미아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사회계층이 자녀들의 발육, 학생들의 흡연율, 시력 및 근골격계 질환의 유병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직업수준보다 교육수준의 차이에 의한 사망률의 차이, 만성질환 유병률의 차이가 더 크다고 한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박영아 의원이 공개한 ‘2010 학교별 비만율 내역’에 따르면 서울에서 비만 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자치구는 중구였고 동대문구, 중랑구 등이 뒤를 이었다. 비만율이 가장 낮은 자치구는 서초구였고 이어 양천구, 강남구, 송파구 등의 순이었다. 서울 시내 초·중·고 중 비만학생이 많은 ‘뚱보 학교’는 대부분 강북 지역이었다.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의 학생 비만율이 가장 낮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울수록 부모가 자녀의 건강을 보살피기 어려운 것과 무관치 않다. 비만이 개인 책임인지, 국가가 돌봐야 할 사회적 질병인지를 놓고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고도비만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정책을 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 외국인근로자, 다문화가정, 탈북자, 노숙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건강관리도 문제다. 전통적으로 산업재해나 직업병은 외국인근로자가 주로 근무하는 소규모 유해 작업장에서 훨씬 높게 발생한다.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정신질환 발생률이 높다고 한다. 탈북자 건강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결핵, 간염 등의 전염성질환뿐 아니라 당뇨,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 유병률도 훨씬 높다고 한다. 노숙인 2만 2000명을 대상으로 일반인과의 사망률 차이를 조사한 한림대학교 주영수 교수의 연구결과도 노숙인의 사망률이 일반인의 2배 이상으로 나타나 국가차원의 체계적인 시스템 개발이 시급함을 말해준다. 우물쭈물하다 보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은 뻔하다는 얘기다. 최근 서울대학교병원이 운영하는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이 전국의 시·도 공립병원 중 최초로 간 이식에 성공했는데, 비급여 진료수가가 다른 병원보다 60%가량 저렴해 취약계층의 건강불평등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사례가 될 듯싶다. 의사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소의(小醫), 환자를 치료하는 중의(中醫), 사회를 치료하는 대의(大醫).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은 이런 사회경제적인 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대의가 하는 학문이다. 문제의 규모를 파악하고 무엇 때문에 잘못되었는지를 알아야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가장 기본적인 보건지표(사망률, 발생률, 유병률 등)를 국가차원에서 만들어내고 지역별, 계층별 차이와 그 원인에 대한 체계적인 대규모 조사연구이다. 건강불평등 해소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건강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 권리이기 때문이다. 건강하지 못한 것을 조상 탓으로 돌리거나 잘못된 개인 습관으로만 치부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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