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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런던올림픽 D-100] 美 경제학자 대니얼 존슨 ‘경제지수’로 金메달수 전망해보니

    [2012 런던올림픽 D-100] 美 경제학자 대니얼 존슨 ‘경제지수’로 金메달수 전망해보니

    미국 콜로라도 칼리지 경제경영학부의 대니얼 존슨 교수는 특별한 경제학자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에서 각국이 따낼 메달 수를 예측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는 것. 캐나다 출신으로 2004년부터 이 대학에 몸담은 존슨 교수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까지 6차례 올림픽 무대에서 각국이 얼마나 많은 메달을 딸지를 예측하는 데 공을 들였다. ●1인당 국민소득 등으로 예측 그런데 경제학자답게 그는 선수들의 경기력이나 다른 국가대표와의 경쟁 같은 변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 인구, 개최국의 텃세, 개최지와의 근접성 같은 변수들만 따지는 종합지수를 개발해 이것으로 각국의 메달 순위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과거에는 정치구조나 기후 같은 변수도 이 지수에 넣어 계산해 왔으나 이번 런던올림픽을 앞두고는 이 두 항목을 빼고 개최국 여부와 경험, 호주와 중국처럼 역사적으로 저평가된 국가들을 보정하도록 고안된 ´특정문화 팩터’(cultural specific factor)를 넣어 지수를 산정했다. 이에 따라 런던올림픽에서 미국은 금메달 34개를 수확해 종합 1위를 차지하고 중국(33개), 러시아(25개), 개최국 영국(20개)이 뒤를 이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전체 메달을 99개 따내 러시아(82개), 중국(67개) 등을 따돌릴 것으로 예상했다. 존슨 교수는 “어떤 나라가 다른 국가보다 나은 성적을 내는 배경에는 일정한 경제적 패턴이 있다.”며 훈련과 균형잡힌 식사, 각종 기반시설 등에 얼마나 투자하는지가 세계 정상급 선수의 배출과 직결된다고 풀이한다. 경제학자의 외도이겠거니 싶겠지만 기실 그렇지는 않다. 존슨 교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이 금메달 수에선 미국을 따돌리겠지만 전체 메달 수에선 미국이 앞선다고 예측했는데 실제로 중국은 금메달 51개를 따내 36개에 머문 미국을 압도했지만 전체 메달 수는 100개에 그쳐 110개를 획득한 미국에 뒤졌다. ●시설 등 투자가 정상급 선수 배출 아테네 대회를 앞두고는 미국이 37개의 금메달을 포함, 103개의 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실제로 미국은 아테네올림픽 시상대 맨위에 35차례 섰고, 정확히 103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러시아는 94개의 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실제로 92개를 땄다. 앞서 2000년 시드니 대회를 앞두고는 미국이 33개의 금메달을 포함해 90개의 메달을 수확할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실제로는 39개의 금메달을 비롯해 97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개최국 호주는 54개의 메달을 수확할 것이라고 점쳤는데 실제로 56개를 땄다. ●순위 예측서 한국 제외는 ‘의문’ 존슨 교수는 이전 6차례 올림픽에서 메달수는 차치하고 종합순위 예측이 93% 적중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존슨 교수팀은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130개국의 메달수를 예측하면서 결정적인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바로 대한민국을 지수에서 제외한 것. 광복 이후 처음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시작으로 4년마다 한 번씩 꾸준히 참가해 모두 215개의 메달을 따고 있는 스포츠 강국을 쏙 빼놓았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수확하지 못한 66개국을 지수 산정에 포함시키면서 한국을 제외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국내에서도 관심 있는 이들이 이메일을 보낸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이 점을 지적했는데도 기자가 16일 오후 6시까지 그의 웹사이트(http://faculty1.coloradocollege.edu/~djohnson/vita.html)를 열어봤지만 바뀌지 않았다.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독도 봉우리 이름 짓습니다”

    독도 동도·서도 봉우리에 공식 명칭이 부여된다. 경북도는 16일 “독도 영유권 강화 등을 위해 동·서도 봉우리에 공식 명칭을 각각 부여키로 하고, 최근 국토해양부·울릉군과 관련 협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독도에는 동도(해발 98.6m)와 서도(해발 168.5m) 등 두 개의 봉우리가 있지만, 아직 공식 명칭이 없다. 이런 가운데 일부에서 독도 동도·서도 봉우리를 ‘일출봉’·‘대한봉’으로 각각 임의 명명하는데다, 국내 한 의류업체가 홈페이지에서 동도·서도 봉우리 명칭 공모에 나서는 등 명칭을 둘러싼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울릉군은 다음 달쯤 독도 관련 기관 및 단체,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독도 동·서도 봉우리 지명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 의견을 모을 계획이다. 이어 군 지명위원회는 과거에 불렸거나 앞으로 사용이 타당한 이름을 놓고 최종안을 만들어 경북도지명위원회와 중앙지명위원회에 보고하며, 최종안은 중앙 지명위원회를 거쳐 오는 10월 말쯤 확정·발표될 예정이다. 안의탁 도 토지정보과 지적관리총괄담당은 “독도 동·서도 봉우리 명칭 부여는 우리 영토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200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독도 부속도서 89개의 바위에 각각 표준화된 이름을 부여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LS전선 인도 케이블공장 준공

    LS전선은 국내 전선업계 최초로 인도에 전력 케이블 공장을 준공했다고 5일 밝혔다. LS전선은 3500만 달러(약 390억원)를 투입해 인도 북부 하리아나주 바왈에 전력 케이블 공장을 건설했다. 4일(현지시간) 열린 준공식에는 판딧 쉬브 찰란 랄 샤르마 하리아나 주지사, 김중근 주인도 한국대사, 손종호 LS전선 사장, 구자은 LS전선 사장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이 공장은 기존의 통신공장을 포함해 20만㎡(약 6만평) 규모이다. 주 생산품목은 220kV급까지의 전력케이블과 광복합가공지선(OPGW) 등이다. 이번 준공으로 LS전선은 인도에서 연간 2억 달러 규모의 전력 케이블과 1억 달러 규모의 통신 케이블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돼 인도 내 종합케이블 제조회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4월 11일 지방선거도…왜냐고요?

    4월 11일 지방선거도…왜냐고요?

    오는 11일 19대 총선과 동시에 치러지는 지방선거 재·보궐선거가 ‘후보들만의 선거’로 전락하고 있다. 정치권과 선거관리위원회 모두 총선에 주력하면서 유권자들이 후보가 누군지도 모른 채 투표를 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되고 있다. 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9대 총선 당일 전국에서 61개의 지방선거 재·보선이 함께 치러진다. 광역단체장 선거는 한 곳도 없고 기초단체장 5곳, 광역의원 37곳, 기초의원 19곳이다. 단독으로 재·보선을 할 때보다 선거관리비용이 30% 정도 적게 들지만 그래도 지자체들이 총 21억원이란 적지 않은 돈을 부담해야 한다. 지역일꾼을 뽑는 중요한 선거지만 총선에 묻혀 찬밥 신세다. 후보자가 명함을 건네면 “지방선거도 하느냐.”는 질문이 돌아오기 일쑤다. 충북 청주 다선거구 기초의원 보선에 출마한 통합진보당 엄경출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보선이 뭔지, 왜 보선을 하게 됐는지, 투표는 언제 하는지까지 설명을 하고 있다.”면서 “저를 총선 후보로 착각하는 유권자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후보들이 선거운동에 애를 먹고 있다. 엄 후보는 차별화를 위해 자전거를 타고 선거운동을 한다. 엄 후보와 경쟁 중인 새누리당 최진현 후보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어깨띠를 두른 여성 선거운동원 6명에게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주고 선거운동 대신 동네 곳곳의 청소를 시키고 있다. 조용한 선거운동을 통해 자신을 부각시킨다는 역발상을 한 것이다. 울산 제3선거구 광역의원 보선에 나선 강대길 새누리당 후보는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자 같은 당 총선 후보와 모자, 점퍼 등 선거운동원들의 복장을 통일시킨 뒤 같은 장소에서 공동유세전을 하고 있다. 재·보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유권자들이 재·보선을 외면하는 이유로 분석된다. 이번에 5곳은 당선자가 임기 도중 사망해 어쩔 수 없이 재·보선이 치러진다. 하지만 나머지는 정치적 욕심을 위해 임기를 채우지 않고 물러나거나 선거법 위반 등으로 당선이 무효돼 재·보선을 치른다. 기초단체장 보선을 치르는 인천 강화, 전남 순천·강진·무안, 경북 문경 등 5개 지역은 모두가 현직 시장·군수들이 총선 출마를 위해 중도사퇴하면서 2년도 안 돼 다시 선거를 한다. 서삼석 무안군수는 총선후보 당내 경선에서 탈락해 출마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오판으로 무안군이 보선비용 2억 8000만원을 쓰게 만든 꼴이다. 문경시는 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총선과 시장 보선 출마를 위해 동시에 사퇴하면서 행정공백이 초래돼 국군체육부대 문경 이전과 영상문화관광복합단지 조성 등 현안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다. 청주 남인우기자·전국종합 niw7263@seoul.co.kr
  • ‘가요계 3대 보물’ 반야월 하늘로

    ‘가요계 3대 보물’ 반야월 하늘로

    가요계의 원로 가수 겸 작사가 반야월(본명 박창오) 한국가요예술작가동지회 명예회장이 26일 오후 3시 2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95세. ●군국가요 작사 친일행적 오점 1917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진해농산고를 수료한 고인은 1939년 태평레코드가 주최한 전국 신인가수 선발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가수로 데뷔했다. 이듬해 진방남이라는 이름으로 태평레코드사 소속 가수로 활동하면서 ‘불효자는 웁니다’, ‘고향만리’, ‘오동잎 맹세’ 등을 불러 히트시켰다. 광복 이후에는 작사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꽃마차’, ‘내 고향 마산항’,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 사랑’, ‘소양강 처녀’, ‘삼천포 아가씨’ 등 불후의 명곡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노래를 지어 히트시키고 가장 많은 노래비를 보유한 작사가이기도 하다. 그의 주옥같은 노랫말은 현인, 황금심, 남인수, 백설희, 이미자, 김세레나, 남일해, 배호, 하춘화, 남진, 나훈아, 은방울자매 등 수많은 가수들이 불러 히트곡이 되었으며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줬다. ●소장품 158점 제천시에 기증 한편 그는 남대문악극단을 구성해 ‘산홍아 너만 가고’, ‘마도로스 박’ 등 악극을 제작하고 방송극도 집필했다. 대한레코드작가협회,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가요반세기작가동지회 등을 설립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66년 국제가요대상 작사상, 1967년 공보부장관 감사상, 1991년 문화훈장 화관장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소년초’, ‘조국의 아들’ 등을 부르고, ‘결전 태평양’과 같은 군국가요 작사에 참여한 경력으로 2008년에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됐다. 2010년 고인은 과거 행적을 후회하며 국민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박달재에 수목장 엄수 예정 하지만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예술가인 것은 변함이 없다. 고향 마산에서는 반야월가요제가 열리고 있고, 가요계에 기여한 공로로 KBS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한편 지난 22일 고인은 자신의 음악과 관련된 소장품 158종을 충북 제천시에 무상으로 기증하겠다는 협약을 한 뒤 박달재를 둘러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품은 제천시가 내년에 준공할 예정인 한국가요사기념관에 소장할 것으로 보인다. ‘울고 넘는 박달재’의 무대인 제천시 백운산의 박달재 정상에 건립될 이 기념관에는 반야월 전시관과 고인의 동상 등이 들어서며 한국 가요 100년의 자취를 돌아보는 다양한 자료도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고인은 생전의 유언대로 박달재에서 수목장으로 엄수될 예정이다. 유족은 부인 윤경분(92)씨와 2남 4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한국가요작가협회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02)3010-2230.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제 얼굴 찾은 서대문형무소

    제 얼굴 찾은 서대문형무소

    일제 강점기 유관순(1902~1920) 열사를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이 투옥돼 민족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서대문형무소가 2009년 발견된 1936년 건축 원형 도면에 맞게 전면 복원됐다. 26일 서대문구에 따르면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군 출신 형무소장이 냉전 이데올로기에 따라 붉은 색을 꺼려 주요 건물인 보안과 청사(현 전시관) 붉은 외벽에 덧붙였던 흰 타일을 제거하고 원래의 붉은 벽돌 건물을 되살렸다. 또 1987년 서울구치소 이전 직후 철거했던 지상 1층 398㎡(120평) 규모의 취사장을 과거 공사 도면을 근거로 복원했다. 아울러 유관순 열사가 순국했던 여성 옥사와 실외에서 운동하는 수감자들이 대화하지 못하도록 만든 격벽장, 형무소 정면담장 등의 복원작업도 마무리됐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지어졌다가 광복 뒤 ‘서울구치소’로, 1988년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탈바꿈했다. 구는 2007년부터 서울시와 함께 역사관 주변 무질서한 상가지역을 편입해 9만 803㎡(2만 7516평) 면적의 원형 복원 사업을 진행했다. 2009년 1월에는 국가기록원에서 형무소 초기 원형 도면이 발견돼 청신호를 켰다. 현재 서대문형무소는 서울시 지정 제1종 전문박물관이다. 옥사 3개동과 사형장을 포함해 2만 9218㎡(8854평)가 사적 324호로 지정돼 있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서대문형무소는 외국인 5만명을 포함해 연간 55만명이 찾는 역사적 문화명소”라면서 “원형 복원으로 더 많은 방문객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돌사자 4마리”… 나머지 3마리 어디갔나

    “돌사자 4마리”… 나머지 3마리 어디갔나

    경주 불국사의 국보 20호 다보탑 돌사자의 기구한 운명은 일제 침탈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문화재청이 2011년 낸 ‘불국사 다보탑 수리 보고서’에 따르면 도쿄대 교수를 지낸 세키노 다다시가 작성한 ‘한국건축조사보고’(1904년 간행)에 “다보탑 기단 모서리 4곳에 돌사자가 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일제 병탄 직전까지는 돌사자 4마리가 온전히 제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돌사자의 위치는 세키노가 1916년부터 1935년까지 펴낸 15책의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실린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키노는 1909년부터 1912년 사이에 조선의 문화유적을 한 차례 더 조사한 뒤 ‘조선의 건축과 예술’을 내는데 거기에 “다보탑의 돌사자 1쌍이 없어졌다.”고 기록했다. 나머지 2마리 중 1마리에 대해선 작가 현진건이 1929년 동아일보에 쓴 ‘고도순례 경주’란 칼럼에서 밝히고 있다. 현진건은 “두 마리는 동경 모 요리점의 손에 들어갔다 하나 숨기고 내어놓지 않아 사실 진상을 알 길이 없고, 한 마리는 지금 영국 런던에 있는데 다시 찾아오려면 500만원을 주어야 내놓겠다고 하던가?”라고 적고 있다. 즉 1925년 이전까지 돌사자 4마리 가운데 3마리가 수탈돼 해외로 반출된 것이다. 그렇다면 1마리는 어떻게 이 땅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가. 수리 보고서는 “사자상의 경우 정수리, 꼬리, 입, 가슴 부위, 남측 다리와 발가락 등이 파손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지금 다보탑에 남아 있는 돌사자는 얼굴에 난 상처 덕분에 제자리를 지키게 됐다.”고 설명했다. 훼손됐다는 이유로 다행히 수탈을 면한 1마리는 1936~1944년 사이의 기록을 보면 불국사 극락전 앞에 있었다. 수탈을 위해 다보탑 기단에서 끌어내렸으나 훼손된 것을 알고는 극락전 앞에 방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돌사자는 광복 이후 원위치인 기단의 모서리에 배치된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의 다보탑 복원 공사 때 1마리만 모서리에 있는 모양이 어색하다고 판단한 불국사 측이 공사팀과 상의해 지금의 기단 서쪽 중앙부로 옮겨놓았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국립경주박물관 앞마당에 있는 복제품 다보탑은 그야말로 일제강점기 이전의 다보탑을 그대로 살려놓은 모습이다. 경주박물관은 안내문에서 “분황사 석탑이나 화엄사 사사자석탑, 흥덕왕릉에 있는 사자 네 마리가 모두 네 귀퉁이에 있는 것으로 보아 다보탑도 네 귀퉁이에 불법을 수호하라는 의미로 사자를 배치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보탑 돌사자 이동이 확정되면 다보탑이 들어가 있는 현행 10원 주화를 비롯해 역사 교과서, 국가 기증품 등의 수정, 이동이 불가피하다. 10원 주화는 다보탑을 기본 문양으로 1966년 8월 처음 발행한 데 이어 1970년, 1983년, 2006년 등 4차례 도안을 바꿔 가며 45년간 총 72억개를 발행했다. 1966년과 1970년에 발행한 주화는 다보탑을 정면에서 바라본 도안을 채택했는데 이 도안에는 돌사자가 없다가 1983년 발행분부터 지금의 다보탑처럼 기단의 중앙부에 돌사자가 들어갔다. 한국은행은 천원권 지폐의 뒷면 도안에 있던 도산서원의 금송(錦松)이 일본풍이라는 논란에 휩싸이자 2007년 1월 신권 발행 때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로 대체한 바 있다. 10원 주화 외에도 우리 정부가 칠레 독립 2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지난해 칠레 수도 산티아고 리베라수르공원에 기증한 다보탑에도 돌사자의 위치가 잘못돼 있다. 또한 올해 2쇄를 낸 비상교육의 검정교과서 ‘중학교 역사(상)’의 101쪽에도 지금의 다보탑 사진이 실려 있다. 김문·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문화재 환수운동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혜문 스님

    [저자와 차 한 잔] 문화재 환수운동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혜문 스님

    2012년 2월 13일 창덕궁 앞 석등이 사라졌다. 멀쩡하던 석등이 왜 없어졌을까. 창덕궁에 달려 있는 우리 문화재로 착각했던 그 석등이 실은 일본풍 장식물이었다. 그렇다면 일제가 설치한 것일까. “1970년대 궁궐 주변 정비를 위해 설치한 펜스의 일부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문화재청의 기가 막힌 대답. 석등의 오류를 지적하고 철거를 이끌어 낸 ‘문화재 제자리 찾기’의 대표 혜문 스님이 얼마 전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작은숲 펴냄)를 출간했다. 강탈당한 우리 문화재의 환수를 주도하는 활동가답게 책은 시종 우리의 신물(神物)인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 문화재를 지켜 내야 할 당국의 무신경을 콕콕 집어낸다. 창덕궁 석등과 비슷한 사례가 일본식 석등을 어깨에 인 청와대 정문(사진①)이란 게 혜문 스님의 주장이다. 그는 “석등은 조명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자(死者)의 영혼을 위로하거나 부처님께 공양을 하기 위한 법구(法具)로 우리나라에선 사찰이나 능묘에서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신사에서나 있을 법한 석등은 남산에 있던 조선총독부의 그것(②)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고 분개한다. 청와대에는 지난 2월 하순 석등 철거에 관한 요청이 접수됐다고 한다. “어떻게 처리할지는 모르지만 돌아오는 광복절 전까지 청와대가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2004년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에 뛰어든 혜문 스님은 평생 50가지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조선왕조실록 환수를 포함해 16가지는 이뤘다.”는 그는 남은 34가지 중 우선적으로 해결할 ‘4대 목표’를 소개했다. 조선 왕실에서 전래되던 제왕의 투구, 이천 오층석탑과 평양 율리사지석탑, 고려시대의 사리와 사리구, 금강산 종이다. 제왕의 투구는 일본 도쿄의 국립박물관, 두 석탑은 도쿄의 오쿠라호텔 정원, 사리구 등은 미국 보스턴 미술관, 금강산 종은 중국 다롄에 있다. “남의 나라 왕실의 투구나 석탑, 사리를 그들이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 우리 것이 제자리를 잡도록 찾아와야 한다는, 듣다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지금까지 왜 아무런 자각이 없었을까 슬그머니 부끄러워진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게 없거나 엉뚱한 자리에 있는 것들이 유난하게 잘 보이는 신묘한 눈을 가졌냐고 물었더니 “이 일을 하다 보면 법력이 생겨 절로 보인다.”며 웃는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눈을 부릅뜨고, 발로 뛰어 확인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의 일본식 배열을 한 석등, 환구단의 일본풍 석등, 비틀어진 광화문 등 그가 지적하는 문화재 오류는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다. 그렇다 보니 우리 것을 찾아내고 갈고 닦아 제대로 후손에 전해 줘야 할 문화재청을 비롯한 전문가 집단의 권위적이고, 한편으론 태평한 태도에 화가 날 수밖에 없다고. “보통 사람이 알기 힘든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아닌 것을 그렇다고 하는 고집이 우리 문화재의 오류, 오해를 낳는다.”고 쓴소리도 잊지 않는다. “과연 가능할까 했던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의 환국이 현실이 된 것처럼 다른 나라에 있어서는 안 될 우리의 문화 유산은 찾아와야 하고 찾아올 수 있습니다.”는 혜문 스님. 제자리를 찾는다는 환지본처(還至本處)의 뜻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글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언젠가는 민족의식 담은 음반 낼래요”

    “언젠가는 민족의식 담은 음반 낼래요”

    길고 가냘픈 손가락은 그녀가 피아니스트임을 한눈에 알게 했다. 차수진(30)씨. 그는 각종 뮤지컬과 음반 녹음 때 키보드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그를 설명하기 어렵다. 눈빛이 형형한 차씨는 또렷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독립운동가 차이석의 손녀입니다.” 그녀를 2일 서울 신도림의 한 쇼핑몰 휴게소에서 만났다. ●임정 수립에 참여한 차이석 선생이 할아버지 동암(東岩) 차이석(1881~1945)은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다. 신민회에서 활동하다 1919년 중국으로 망명, 충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과 비서장 등 중책을 역임했다. 차씨는 어린 시절 오빠와 함께 매일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의 연대기를 듣고, 또 외웠다. “1919년 3·1운동 참가, 1928년 한국독립당 조직….” 아버지가 남매에게 시켰던 유일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공부였다. ‘친일파 집안은 대를 이어 호의호식하지만 독립운동가 집안은 삼대가 고생한다.’는 민초들의 인식은 곧 차씨의 현실이었다. 차씨의 할머니는 당시 두 살배기였던 아버지 차영조(68)씨를 품에 안고 고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모자를 기다리는 건 찢어지는 가난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친일파의 것이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게 다예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아버지의 가난은 남매에게로 이어졌다. 집안 형편은 좀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꿈꾸며 매일밤 텅빈 교회에서 연주 차씨에게는 피아니스트라는 꿈이 있었다. 차씨는 “어머니가 ‘밥은 굶고 옷은 못 입어도 피아노는 계속 하라’며 뒷바라지를 하셨다.”고 돌이켰다. 값비싼 레슨 대신 교회 반주자에게서 피아노를 익혔다. 매일 밤 텅빈 교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 새벽 2시 무렵에야 귀가하곤 했다. 가난한 독립운동가의 손녀가 음대에 갈 수 있는 길은 피나는 노력밖에 없었다. 결국 숭실대 음대에 입학, 2006년에 졸업한 뒤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당당하게 살아가는 저같은 젊은 후예도 있어요” 차씨는 음악인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미국 유학 때 만난 음악인 권영경(31)씨와 의기투합해 레게 음반을 제작하고 있는 것. 차씨는 ‘M.TySON’(엠타이슨)이라는 예명으로 준비 중인 권씨의 데뷔앨범 제작을 맡았다. 차씨의 설득으로 앨범 수익금의 일부를 위안부 문제 해결이나 독도 지키기 등의 활동에 기부하기로 했다. 차씨는 올여름 발매를 목표로 자신의 피아노 연주 음반도 준비 중이다. 언젠가는 민족의식을 주제로 음반을 발표하는 꿈도 꾸고 있다. “광복절이나 3·1절에는 늘 어렵게 사는 독립운동가 자손들이 조명되지요. 하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는 저 같은 젊은 후예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차씨는 두 주먹을 꼭 쥐어 보였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집권 5년차 MB ‘인권’에 소리 높인다

    집권 5년차 MB ‘인권’에 소리 높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1일 3·1절 기념사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직접적으로 꺼내 든 것은 최근 탈북자 문제에 대해 발언 수위를 높여 온 것과 함께 다목적 포석이 담긴 것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에서는 “탈북자가 범죄자가 아닌 이상 중국 정부가 국제규범에 의해서 처리하는 것이 옳다.”며 중국 정부를 향해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이어 지난달 29일에는 탈북자 북송 중단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간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모두가 해야 할 일을 혼자 하고 있어서 미안하고,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지금껏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이날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일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 모두의 일이자, 양심을 가진 세계 모든 사람의 일”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는 ‘군위안부’라는 표현을 쓰면서 일본 정부에 강도 높게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지난해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를 언급한 뒤 두달여 만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3·1절과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위안부 문제를 직설적으로 거론한 적이 없었다. 2009년과 2010년엔 대일 메시지가 아예 빠졌고, 지난해 3·1절에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일본이 진정성 있는 행동과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는 선에서 그쳤다. ●위안부 할머니에 편지·화장품 이 대통령은 그러나 이번 기념사에서 위안부 문제를 비중 있게 지적했다. 대신 교과서 왜곡이나 독도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 문제를 외면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들이 대부분 고령으로 여생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급한 상황임을 감안, 양국 현안의 초점을 위안부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한·일 관계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촉구한 것”이라면서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태세를 이달 안에라도 보이면 사전조율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8·15 광복절은 너무 늦고, 지금이 지적할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영토문제는 우리가 굳이 먼저 꺼낼 필요가 없고, 교과서 문제 역시 일본 쪽의 결과가 안 나온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거론할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영토·교과서 문제 먼저 거론안해 이 대통령이 이처럼 탈북자, 위안부 문제 등 인권문제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올해가 임기 마지막 해라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글로벌 국격 외교와 경제·자원외교에서는 지난 4년 동안 성과를 거둔 만큼 임기 마지막인 올해에는 인권외교에서 보다 진일보한 성과를 거두겠다는 방침인 것이다. 이에 더해 인권 문제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국민 다수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자칫 선거의 해를 맞아 우려되는 국론 분열을 최소화할 카드로 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후] 독립운동 사적지 오류 광복절까지 고친다

    서울시가 서울신문이 지적한 독립운동 사적지 90여곳에 대한 오류를 8·15 광복절까지 바로잡을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내 독립운동 사적지의 일부 표석 위치와 문안 내용이 잘못된 것을 파악하고 있다.”면서 “광복절 전까지는 모든 오류를 바로잡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2008년 독립기념관의 의뢰로 독립운동 사적지의 실태를 조사한 뒤 당시 확인한 오류 및 훼손된 사적지 등을 방치해 비난을 사고 있다. 시 문화재관리팀 관계자는 “지난해 7월 독립기념관에서 독립운동 사적지의 조사보고서를 넘겨받아 지난해 9월부터 사료 검증과 조사보고서 내용을 검토 중이었다.”고 작업이 늦어진 이유를 해명했다. 서울시는 서울신문이 지적한 유심사 터와 이봉창 의사 집터 이외에도 심훈 선생 생가와 3·1운동 당시 천도교의 주요 거사 거점인 상춘원 터 역시 표석 위치나 안내 글에 잘못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성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했던 한성오 집터 표석은 서울시가 세운 것이 아니므로 관련 사실을 추가로 파악한 뒤 조치하겠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측은 또 “전문가로 구성된 표석설치자문위원회가 현장과 사료 등을 비교해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측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대비해 독립운동 사적지 표석을 급히 설치하다 보니 조사가 부족해 적지 않은 수의 오류가 발생한 것”이라면서 “또다시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꼼꼼히 살펴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더럽혀져 눈에 잘 띄지 않는 표석들도 정기적으로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온고지신, 국역자의 손에 달려 있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온고지신, 국역자의 손에 달려 있다

    오랫동안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소홀히 했다. 구미 선진국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 과정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때는 주권마저도 빼앗겨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전통의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급격한 외래 문물의 유입과 경제발전 과정에서 전통문화는 또다시 걸림돌로 인식돼 우리 것은 점점 멀어지고 버려지게 됐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반성과 대안 모색의 필요성에서 출발한다. 그간 우리는 단기간에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를 누리게 됐다. 하지만 정작 이런 성공 스토리를 만든 국민들은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세계 100위 안에도 못 들어갈 정도로 후진국 수준이고,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청소년들의 학원 폭력 문제도 그러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제의 해결책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조상들의 삶 속에 그 해답이 있다. 선인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 우애가 넘쳤으며 가정은 화목했다. 또한 사회는 예의가 넘쳐 유학의 종주국인 중국에서조차 우리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칭송할 정도였다. 그것은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에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배려와 양보를 솔선수범하며 몸으로 가르친 어른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인들은 우리 곁을 떠나고 없지만, 그들의 삶과 생각은 방대한 문헌 기록을 통해 전해 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선인들이 남긴 기록 자료는 보석보다 값진 유산이다. 문제는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이들 자료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와 다른 것으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고전은 대부분 한문으로 돼 있어 국역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고문서는 초서(草書)가 대부분이어서 탈초(脫草)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아예 해독 자체가 불가능하다. 세계 어떤 나라도 겪지 않는 우리만의 고충이다. 영국인과 독일인은 그들의 현재 문자로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칸트의 저작을 읽을 수 있고, 중국과 일본 사람도 지금의 문자로 그리 힘들이지 않고 그들 조상의 기록과 만날 수 있다. 유독 우리만 우리 조상들이 남긴 기록을 오늘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귀감으로 삼는 데 탈초와 국역이 필수불가결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럼에도 전통적인 교육을 충실하게 익힌 한학 원로들은 빠르게 사라져 가지만 그들을 이어 갈 세대의 배출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서 뜻있는 이들은 산처럼 쌓여 있는 보물을 포클레인이 아닌 숟가락으로 퍼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다. 한문 후속 세대의 양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시대적 과제다. 이런 가운데 임진년 새봄을 맞아 지방에서 한문 후속 세대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개원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몇 년 전 개원한 전주분원에 이어 밀양분원을 세우고, 한국국학진흥원은 한문교육원 대구강원을 연다. 그동안 한문 교육기관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 이제 지방 한문 교육기관의 등장으로 선현들의 지혜를 오늘에 되살리고 활용할 제도적 기반이 구축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국역 전문가 양성은 인성 함양, 화목한 가정의 회복, 예의 염치가 통하는 사회의 구현 등 오늘 우리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고, 옛 기록 속 이야기 소재의 발굴을 통해 문화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들이 말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길이다. 그 중심에 새롭게 길러질 국역자가 있다. 국역 관련 인재 양성의 노력이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국민적 지원과 관심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 “3·1절 이름 제대로 짓자” 급속 확산

    “3·1절 이름 제대로 짓자” 급속 확산

    “광복절은 빛을 되찾은 날,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날…. 그럼 3·1절은(?)” 29일 한 블로거의 발랄한 문제제기에 따라 ‘3·1절 이름을 제대로 지어주자’라는 개칭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른 국경일은 명칭에 기념일의 의미를 담았지만 3·1절은 날짜 이상의 의미를 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역사학자 등도 “항일 만세운동의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이름이 있다면 개칭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며 호응하고 있다. 3·1절에 새 이름을 지어 주자는 운동은 아이디 ‘깨몽’이라는 블로거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는 지난 2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3·1절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이름으로 무엇이 좋을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일제 감시가 심하던 시기에 국민이 자발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인 뜻 깊은 날을 그냥 날짜만 담은 3·1절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겁다. 게시 당일부터 하루 1000명 이상의 네티즌과 트위터리안들이 리트위트를 하면서 3·1절 새이름 짓기 운동에 가세하고 있다. 새 이름으로 ‘만세절’, ‘자주선언일’ 등 제안하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전문가들도 3·1절 새 이름 짓기 운동에 긍정적이다.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는 “신선하면서도 의미 있는 제안”이라면서 “3·1운동이 가진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을 담을 수 있는 새 이름을 짓는 것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독립유공자유족회 주최로 29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3·1정신 실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3·1절의 새 이름 짓기를 제안했다. 홍정완 역사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3·1운동은 당시 민중들이 중심이 된 자생적 항일 민족운동이었다.”면서 “3·1절이라는 명칭이 당시 항일운동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으므로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명칭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독립기념관 연구위원도 “젊은 층이 3·1절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새겨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라도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반겼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이윤옥 시인 ‘서간도에 들꽃 피다’ 출간

    3·1절을 앞두고 여성독립운동가 20인을 기리는 시를 쓴 이윤옥의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얼레빗 펴냄) 2권이 나왔다. 지난해 광복절에 같은 이름의 시집 1권을 냈던 시인 이윤옥은 2권에서 훈·포장을 받은 204명의 여성독립운동가 중 15명과 이름 없는 5명의 애국지사를 추모하고 있다. 묵묵히 독립운동가를 뒷바라지한 허은·이은숙·이해동 여사, 교육운동에 뛰어든 김마리아·김순애·차미리사·최용신·하란사, 광복군으로 활동한 오희영·이화림, 제주 해녀조합을 이끈 부춘화 여사, 기생으로 만세 운동을 이끈 변매화 등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생애를 시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 설렘·희망·아쉬움… 그 옛날의 졸업식

    설렘·희망·아쉬움… 그 옛날의 졸업식

    계란에 밀가루 범벅 된 ‘오물’ 교복, 알몸 난동, 집단 폭행….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서야 하는 살풍경한 요즘 졸업식 행태를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은 상상이나 했을까. 너나없이 힘겨운 살림살이에 소 팔고 논 잡혀가며 진학의 꿈을 이룰 수 있었기에 졸업식은 그만큼 애틋했고 가슴 벅찬 자리였다. 행여 옷매무새 한자락이라도 흐트러질까, 자로 잰 듯 반듯하고 정갈했던 졸업식장의 교복 대열에 새삼 코끝 시큰해지는 건 왜일까.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졸업철을 맞아 ‘이달의 기록’으로 졸업식 관련 기록물을 선정해 14일 나라기록포털(http://contents.archives.go.kr)에 공개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기록물은 광복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풍경들로 문서 13건, 사진 24건, 동영상 10건 등 모두 62건이다. 송귀근 국가기록원장은 “설렘과 희망, 아쉬움이 배어 있던 지난날의 모습에서 졸업식의 참의미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열린세상] 윤동주 시집을 읽는 펭귄/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윤동주 시집을 읽는 펭귄/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월 16일은 시인 윤동주가 광복 6개월 전 28세의 나이로 옥사한 날이다. 시인은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라고 했다. 시인은 짧은 생을 그렇게 살다 갔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그의 시는 지금까지도 살아 우리들의 메마른 영혼을 정화시켜 주고 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윤동주 시집을 선물 받았다. 그의 시에 매료돼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표현처럼 그 시집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면서 시인이 시 속에서 이야기한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보길도에 다녀왔다. 15년 전 땅끝 마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 하룻밤을 지냈는데, 그때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을 보면서 윤후명 소설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에 나오는 ‘별들의 교향곡’을 떠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보길도로 가는 도중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다리가 생겼고, 배는 더 이상 보길도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 최첨단의 다리 앞에서 내 기억 속에 있던 별빛 쏟아지는 보길도의 이미지는 희미해져 갔다. 보길도의 육체는 화려해졌지만 그 영혼은 사라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앞으로 보길도는 저 다리로 인해 급속도로 번창하면서 그 본연의 모습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보길도에서 올라와 하루를 쉬고 대구로 갔다. 대구의 모 백화점에서 인문학 강의를 주최했고, 그 일환으로 내가 문학 강연을 하게 되었다. 평소 나는 백화점을 거의 가지 않는다. 온갖 상품이 즐비한 실내에 들어서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백화점에서 무척 편안함을 느꼈다. 문학 강연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문명의 이기에 휘둘리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는 문학의 향기가, 그리고 인간다운 내음이 짙게 스며들어 있었다. 충격 체험이라는 말이 있다. 물질문명이 가져다 주는 체험이 하도 충격적이어서 현대인들은 인간다운 삶과 관련된 서정적 기억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가끔 지하철을 타면 거의 모든 이들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푹 빠져 있는 것을 보곤 한다. 그들을 보노라면 고속으로 달리는 지하철에 외롭게 떠 있는 섬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고독한 섬과 섬으로 단절된 이들. 그들 사이를 잇는 유일한 다리가 바로 스마트폰인 듯하다. 마치 보길도의 다리처럼. 이상의 수필 ‘산촌여정’에는 “축음기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북극 펭귄”이라는 구절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정보화 기기 없이는 단 하루, 아니 단 일분도 살아갈 수 없는 시대임이 분명하다. 그런 기기가 주는 충격 체험이야말로 가히 혁명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시대에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에 열중하기보다는 시집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내가 꼭 펭귄 같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열(熱)이 있으면 냉()이 있다.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 육체적 가치와 영혼의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사회야말로 행복한 사회다.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세상에는 즉흥적이고 찰나적이며 비인간적인 만남이 난무하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따뜻한 온기가 깃들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이 주는 충격 체험에 압도돼 인간다운 서정적 기억을 망각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영혼의 불구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문학은 우리가 잊고 있는 인간다운 삶과 관련된 소중한 기억의 보고다. 학창 시절 한 편의 시,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편의 시가 섬과 섬 사이를 따뜻하게 이어 주는 소중한 다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책장에 꽂아 둔 윤동주의 시집을 다시 읽어 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교감하는 아름다운 영혼의 시를 읽으면서 이번 기회에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윤동주 시집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펭귄이 될지라도 지하철에서 시집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 [데스크 시각] 검사 엄상섭 그리고 검찰개혁/이기철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검사 엄상섭 그리고 검찰개혁/이기철 사회부 차장

    검찰이 위기다. 국가의 중추적 법집행 기관으로서 신뢰의 위기는 국가적 문제다. 공정한 법집행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국민적 신뢰 회복의 지름길이다. 위기의 검찰에는 개혁이 절대적이다. 검찰 개혁 하면 효당 엄상섭이 생각난다. 효당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법조계, 특히 검찰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대쪽 검사’ 김익진과 함께 한국 검찰의 두 기둥으로 꼽힌다. 효당은 검사와 정치인을 지내면서 오늘의 형법과 형사소송법, 검찰의 뼈대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효당은 1907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32세 때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일제강점기에 검사를 지냈다. 광복을 맞아 일제시대에 검사를 지낸 다른 7명과 함께 사직했다. “검사생활, 이것이야말로 왜정 압력하에서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치시던 애국지사들에 대하여는 지금도 면목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정하에서 검사를 지냈다는 것은 한없이 후회되는 일입니다. 굴절했고 왜제 통치에 협력을 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해도 오히려 모자랄 것입니다.” 그가 단행본 ‘권력과 자유’에서 밝힌 친일 반성문은 가장 통절한 반성문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후 지조 없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듯 ‘고집불통’으로 변했다. 재야에 있던 그를 미군정은 검사로 발령냈다. 신생국의 검사로서 법령을 정비하다 1949년 9월 검찰을 떠났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민의원 선거를 통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한국전쟁의 피란길에서 세 아들을 잃었다. 1960년 5월 3일 효당은 헌법기초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다 뇌내출혈로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효당은 대한민국 건국시대에 국가권력의 핵심이 되는 형법과 형사소송법 제정의 중심에 섰다. 제정 헌법 정신에 맞게 형사재판의 민주화와 형사소송의 정치도구화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효당은 이를 실현하는 도구로서 현재의 검찰조직 큰 얼개인 검찰청법을 마련했다. 검찰청법을 입안할 때 그가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검찰의 ‘독립과 견제’였다. 검사의 신분보장과 법무부 장관의 개별 사건에 관한 지휘권 배제를 주장해 관철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고등검찰청 폐지론이다. 범죄수사에서 기민성을 발휘하고, 수사 및 형사정책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명령계통의 간명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고등검찰청 같은 중간단계는 필요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검찰이 법원에 대응하는 조직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 부분은 60여년이 흐른 지금으로서도 상당히 독창적이다. 여기에 그쳤다면 효당은 검사의 관점과 이익을 대변한 인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가 평가받아야 할 부분은 검찰에 대한 외부의 견제장치 도입을 제안한 점이다. 물론 사법경찰의 검찰전속화가 전제돼 있다. 효당은 검찰의 ‘권력 강대화와 독선의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 검찰위원회를 설치, 검찰권을 감시하자고 강조했다. 검찰위원회는 외부인을 포함해 10~11명으로 구성된다. 그의 의견이 다소 설익은 느낌이지만 외부 통제를 과감히 도입해 검찰의 강대화와 독선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 이전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디어였다. 시민의 참여로 검찰의 공정성과 독립성, 책임성을 강화시키자는 요즘의 주장과 맥락이 같다. 그의 발상이 아직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를 검찰은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최근 검찰은 법원과 경찰의 협공을 받는 형국이다. 스스로 개혁하는 데 실패한 탓이다. 법률가인 검사는 수사전문가도 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전과 전략을 갖고 수사를 전문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거악과 맞서는 ‘고독한 전사’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의 참다운 공익의 대표자로 거듭나야 한다. 효당이 제안했던 검찰위원회의 참뜻이다. 검찰은 효당처럼 과거 잘못을 절절하게 반성하고, 시민의 통제를 받는 개혁의 길을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 실기하면 중수부가 아니라 대검찰청 자체가 존폐 문제에 내몰릴 수 있다. chuli@seoul.co.kr
  • [인사]

    ■대법원 ◇법원장 전보 <지법원장>△서울동부 심상철△서울남부 이성호△서울북부 유남석△서울서부 강영호△인천 조용구△수원 서기석△춘천 최성준△청주 사공영진△대구 김창종△울산 김신△창원 우성만△광주 지대운△제주지법 이대경<고법 부장판사>△서울 조용호 박삼봉△대구 최우식△부산 윤인태△광주 방극성◇고법 부장판사 전보△사법연수원 수석교수 임시규△서울고법 곽종훈(수석) 김흥준 이동원 정형식 김용상 한양석 황적화 김기정 김용석 윤성원△대구고법 이기광(수석) 김찬돈△부산고법 최인석(수석)△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 성낙송△〃 형사수석 임종헌△〃 파산수석 이종석△인천지법 이상주(수석)△수원지법 김용대(수석)△대구지법 정용달(수석)△부산지법 구남수(수석)△〃 동부지원장 박효관△광주지법 박병칠(수석)◇고법 부장판사 승진△대전고법 김소영 양현주 성지용 허용석△부산고법 강영수 이재영 김필곤 조한창 김형천 문형배△광주고법 김종근 김정만△특허법원 배광국◇고법 부장판사 겸임△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 이경춘△법원도서관장 김창석◇고법 부장판사 파견복귀△서울고법 김동오 ■방송통신위원회 △전파기획관 양환정△외교안보연구원 교육파견 오남석 ■기획재정부 △사회예산심의관 조경규 ■통일부 △통일정책협력관 배광복△장관정책보좌관 김영완 ■지식경제부 △통일교육원 전성무△국방대학원 송양회△정보통신표준과장 박인수△세종연구소 송현민 ■고용노동부 ◇승진 △노동시장정책과장 이정한<중부지방고용노동청>△인천고용센터소장 김영중△강원지청장 조철호◇전보△장관비서관 김유진<팀장>△홍보기획 정경훈△정보화기획 노명종△고령사회인력정책 최상운△서비스산재예방 김충모<담당관>△감사 장미혜△기획재정 김민석△행정관리 김대환△규제개혁법무 김은철△국제협력 이도영<과장>△운영지원 박종필△고용정책총괄 여성철△사회적기업 민길수△외국인력정책 윤영순△직업능력정책 권창준△직업능력평가 송민선△여성고용정책 임영미△장애인고용 이덕희△고용서비스정책 노길준△근로개선정책 양성필△고용차별개선 최관병△건설산재예방 이철우△노사협력정책 박광일△공공기관노사관계 최준하<서울지방고용노동청>△서울고용센터소장 권오일△서울서부지청장 정성균<중부지방고용노동청>△부천지청장 양정열△의정부〃 김순림△성남〃 박명순△안산〃 송병춘<부산지방고용노동청>△부산고용센터소장 강현철△창원지청장 최성준△양산〃 이해수△진주〃 윤영귀<대구지방고용노동청>△대구북부지청장 김상용△포항〃 유한봉△구미〃 이기숙<광주지방고용노동청>△익산지청장 이정조<대전지방고용노동청>△충주지청장 박영길<중앙노동위원회>△사무처 교섭대표결정과장 권태성 ■법제처 △세종연구소 파견 김경동△경제법제국 법제관 김성원 ■국세청 △외교통상부 주미대사관 이동원 ■문화재청 ◇승진 △기획재정담당관 조현중△무형문화재과장 황권순△운영지원과 남기황△근대문화재과 김정남△수리기술과 최장락△유형문화재과 나명하 ■서울시 △경제진흥실장 권혁소△도시안전〃 김병하△복지건강〃 김경호△산업경제정책관 한국영△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 한문철△재무국장 강종필△도시기반시설본부장 송경섭△한강사업〃 최임광 ■서울대 △미술관장 권영걸 ■한국교총 ◇사무국 <본부장>△조직 김종식△정책(정치활동특보 겸임) 정동섭△교권연수 김항원<실장>△기획조정 김재철△대변인(정책기획특보 겸임) 김동석△홍보 박영옥<국장>△조직기획(정책추진특보 겸임) 김무성△조직지원 이서구△대외협력 이선영△정책기획 문권국△정책지원 하석진△교권 신정기△교원연수 이헌구◇한국교육정책연구소△사무국장(파견·홍보기획특보 겸임) 정종찬◇한국교육신문사△사장(정치활동특보 겸임) 백복순△한국교총공제회추진단장 강병구<본부장>△편집출판 이낙진△복지관리(총무국장 겸임) 박충서<국장>△교원복지 신현욱△사업(한국교총공제회추진단 추진국장 겸임) 권영백△편집 서혜정△출판 신연숙 ■경인방송 ◇승진 △기획실장(보도국 부국장 겸임) 이영철△경기취재본부 부국장 김종성 ■인터넷한국일보 △부사장 조상현
  • 감사원 ‘행정 감사’ 2題

    ●성남시 시설관리공단 본부장 ‘직원 직위해제’는 부당 조치 지난해 업무추진비 유용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회계자료를 유출했다는 의심으로 직원들을 직위해제해 물의를 빚었던 성남시시설관리공단 유 모 본부장에 대해 감사원이 주의 조치를 내렸다. 감사원은 지난해 7월 공단 직원들에 대한 본부장의 직위해제가 부당하다며 성남시의회가 제기한 공익감사청구 결과를 6일 공개했다. 당시 공단 본부장은 직원들이 회계자료를 외부에 유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직무 수행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자’ ‘소속 직원에 대한 감독능력이 부족한 자’라는 인사규정을 적용, 직위해제했다가 닷새만에 복직시켜 논란을 일으켰다. ●문경 영상문화 체험단지사업 민자유치계획 추진 절차 잘못 문경시가 영상문화관광복합단지 조성을 위해 문경읍에 추진 중인 민자유치사업(다양한 영상문화 체험단지)이 부당한 절차로 진행된 것으로 감사 결과 확인됐다. 감사원은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에 민자유치계획은 지방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공고하고 설명회도 개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으나, 문경시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문경시장에 주의를 요구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국민이 희생하며 밀어줬는데…한국 재벌의 몰염치

    ‘가난한 집 맏아들’(유진수 지음, 한국경제신문 펴냄)은 제목 그대로다. 공정거래를 전공한 숙명여대 교수인 저자는 신파 막장 드라마를 고스란히 한국 경제에 적용시킨다. 기껏 돈 몰아줘서 공부시켜 놨더니 출세해서는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가족과 애인을 모른 체한다는 그 익숙한 스토리의 드라마 말이다. 저자는 한국 재벌들을 이 밉상스러운 가난한 집 맏아들에 비유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이승만 정부 때부터 산업발전을 위해 온갖 지원책을 다 내놨다. 낮은 이자율, 외자유치, 경쟁제한을 통한 독과점적 이윤 보장 등이다. 이를 통해 재벌기업군이 차츰 등장했다. 박정희 정권은 더욱더 조직적으로 밀어줬다. 시장개방을 늦추고 노동운동을 극도로 탄압한 것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의 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승승장구했으나 지원그룹에서 제외된 회사들은 차츰 사라져 갔다. 저자는 이것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가난한 부모가 맏아들을 대학에 보낸 것이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정부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한국의 고도성장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맏아들만 대학에 보내는 것은 “너만 대학을 보내는 대신 나중에 성공하면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는 전제 아래 진행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약속이 깨져버렸다. “성공한 맏아들이 그래야 하듯 기업과 부자들도 자신들의 성공 과정에서 암묵적인 비용을 낸 사람들에게 보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물 먹고 똑똑해진 맏아들은 다른 근거를 댄다. 아무리 돈을 대줬어도 내가 피눈물나게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지원받아 봤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혹은 지원받은 건 사실이라 해도 보상해야 할 법적인 책임이나 의무는 없다 등등. 저자도 일부 인정한다. 그들의 열성과 공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고,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환경이 녹록지 않았으리라는 것도 그렇다. 그럼에도 그들은 특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때문에 다른 기업은 특혜를 누리지 못했고, 국민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했으며 국내 경쟁을 억제했기 때문에 더 높은 가격을 내야 했다. 또한 노조에 대한 억압으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1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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