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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환 사장, ㈜동서 회장으로

    ㈜동서는 23일 이창환 동서식품 사장이 ㈜동서 회장으로, 이광복 동서식품 부사장은 동서식품 사장으로, 황번 동서유지 전무는 동서유지 사장으로 승진했다고 밝혔다.
  • [주말 인사이드] 베끼는 법만 알던 한국… 세계 사법제도 ‘과외선생’ 되다

    [주말 인사이드] 베끼는 법만 알던 한국… 세계 사법제도 ‘과외선생’ 되다

    일본에서는 술에 취한 채 자전거를 타면 최고 징역 5년형 또는 100만엔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싱가포르는 2003년까지 번지점프를 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스위스에서는 일요일에 빨래를 널거나 세차를 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 언뜻 봐서는 믿기지 않지만 실제로 각 나라에 존재하는 법이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전통과 문화, 역사, 사법환경 등을 감안해 고유의 법과 사법체계 및 제도를 갖추고 있다. 근현대사의 길목에서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을 겪은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헌법이 제정되는 등 늦은 시기에 사법체계를 갖췄다. 1970년대까지는 외국 법제도 및 체계를 배우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페루 등 남미국가를 비롯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까지 사법제도를 수출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베트남 법원연수원을 직접 지어주는 역량강화 사업, 전자소송 시스템 수출 등 유난히 국제교류가 많았다. 60여년에 불과한 한국 사법의 역사에 비춰 봤을 때 놀라운 성과라는 평가다. 우리나라는 1895년 4월 19일 법률 제1호로 ‘재판소구성법’이 공포되면서 사법과 행정이 분리된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여온 대륙법을 근간으로 광복 이후 헌법과 법원조직법 등을 제정하면서 사법체계가 만들어졌다. 1947년 최초의 사법교류인 미국사법제도 시찰단을 미국으로 보내는 등 영미법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던 사법체계였지만 1970년대까지 미국, 국제연합(유엔), 독일 등 서구국가와의 교류를 통해 사법제도와 체계를 배웠다. 국제교류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일방적인 사법 원조를 받았다. 1970년 태국의 프라보부 후다싱 대법원장이 방한하고 다음 해 당시 민복기 대법원장이 태국을 방문하는 등 일부 고위직 중심의 국제교류가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사법부는 과거 원조를 받는 입장에서 이제는 전자소송, 법관교육제도 등 각종 사법제도를 전수하는 입장이 됐다. 대중가요,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뿐 아니라 각종 사법제도가 베트남 등 동남아를 비롯해 남미, 동유럽, 중앙아시아에까지 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법 정보화 시스템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나이지리아, 몽골 등 10여개 나라가 한국의 전자소송 및 사법정보화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사법 정보화는 ‘사건 정보 및 판결문 저장, 검색이 가능한 정보의 전산화→접수부터 종료까지 업무과정을 전산화해 관리하는 사무절차의 전산화→소장 제출 등 재판 자체를 전산화하는 전자소송’의 단계를 거친다. 우리나라는 법관들에게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된 1991년 이후 2010년 4월 특허법원에 전자소송이 처음 도입되고 2011년 5월부터 민사사건으로 확대 시행되는 등 형사사건을 제외한 특허, 민사, 가사, 행정 등 본안사건 및 가압류, 가처분 등에 대해서도 전자소송이 시행되고 있다. 2011년 2월 방한한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 회의의 운영 주체인 로아시아 사법분과위원회의 폴 드 저지 의장은 대법원 전산정보센터를 둘러보고는 “한국의 사법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세계은행의 2014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 민사 사법제도 평가 부문에서 전자소송이 호평을 받으면서 평가대상 189개국 가운데 2위를 기록했다. 전자소송을 벤치마킹하려는 국가들은 대부분 정보의 전산화, 사무절차의 전산화 등 초기 단계도 구축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법원별로만 사건 결과 및 판결 검색이 가능한 수준인 인도네시아는 2011년 대법관 등이 한국을 찾아 노하우 및 경험을 전수받았다. 우즈베키스탄, 나이지리아, 헝가리 등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대법원장이 방한해 전자소송 시스템을 배워 갔다. 사법 정보화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제도가 사법연수원으로 대표되는 법관교육제도다. 특히 법관교육제도를 전수하기 위해 ‘역량강화 사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베트남에서는 드라마, 대중가요, 한글 등 문화적인 부분에 이어 한국 특유의 교육제도가 또 다른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법원은 2008년부터 베트남 법원연수원 건물을 신축하고 사법연수제도를 개선하는 프로젝트에 김명수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를 직접 파견해 연수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 및 지도를 하고 있다. 또 베트남 강사요원 교육, 강의교재 개발, 한국법 강의와 함께 베트남 법관을 국내로 초청해 교육 및 연수를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10개월째 베트남에서 한류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김 판사는 베트남 하노이국립대에서 사법제도를 연구한 전문가다. 파견을 자원한 김 판사는 “동료 법관들이 없는 데다 재판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어 외로울 때가 많다”면서도 “베트남 법관과 법원공무원들이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관한 강의에 집중하면서 전자소송이나 과거 겪었던 사법 파동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나라별 사법제도는 문화, 정치적 상황 등에 따른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 나라의 사법제도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면서 “단발성 교류가 아닌 지속적인 상호 교류를 통해 진정한 사법 한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외에도 2005년 몽골을 시작으로 동남아 국가인 방글라데시, 태국, 필리핀, 라오스, 캄보디아와 중앙아시아 국가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네팔, 동유럽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남미 국가인 파라과이, 온두라스, 페루 등도 직접 한국을 찾아 법관교육제도를 배워 갔다. 이 외에도 지난달 25일 린쥔이(林俊益) 타이완 사법원 형사청장이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배우기 위해 방문하는 등 다른 사법제도들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당시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한 린 청장은 “한국은 영미법계 배심제와 대륙법계 참심제를 모두 참고해 한국의 사법환경에 맞는 독특한 제도인 국민참여재판을 운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법부는 지한파(知韓派) 양성을 위한 국제교류에 있어서도 점차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대법원은 러시아, 일본, 중국, 프랑스, 덴마크, 호주, 폴란드, 인도네시아, 터키 등과 매년 1~2회 대법원장 해외 순방 및 외국 대법원장 방한으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에는 사법연수원 국제사법협력센터를 설립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수를 위한 조직을 구축하고, 기존에 국제사법교류의 주축이었던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공동으로 주관하는 외국법관 연수에 상대적으로 교류가 없었던 페루를 비롯해 네팔,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 6개국 80명의 법조인을 초청했다. 이러한 사법 한류 열풍은 군사정권을 경험하고 사법부 독립이 침해된 우리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비교적 적은 인원으로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사법제도의 효율성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발도상국은 자신들과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한 우리나라가 사건 처리 효율성에서 2위를 차지하는 등 사법제도를 지금의 수준으로 발전시킨 데 대해 놀라워한다”면서 “제도 전파와 함께 과거사에 대한 반성 등 국민의 사법부가 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경제적 상황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효율성을 배워 가려고 한다”면서 “특히 개발도상국은 우리나라가 2700여명의 법관으로 운영되면서도 형사사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에 전자소송까지 도입하고 있는 점 등을 높게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베끼는 법만 알던 한국… 세계 사법제도 ‘과외선생’ 되다

    [주말 인사이드] 베끼는 법만 알던 한국… 세계 사법제도 ‘과외선생’ 되다

    일본에서는 술에 취한 채 자전거를 타면 최고 징역 5년형 또는 100만엔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싱가포르는 2003년까지 번지점프를 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스위스에서는 일요일에 빨래를 널거나 세차를 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언뜻 봐서는 믿기지 않지만 실제로 각 나라에 존재하는 법이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전통과 문화, 역사, 사법환경 등을 감안해 고유의 법과 사법체계 및 제도를 갖추고 있다.  근현대사의 길목에서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을 겪은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헌법이 제정되는 등 늦은 시기에 사법체계를 갖췄다. 1970년대까지는 외국 법제도 및 체계를 배우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페루 등 남미국가를 비롯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까지 사법제도를 수출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베트남 법원연수원을 직접 지어주는 역량강화 사업, 전자소송 시스템 수출 등 유난히 국제교류가 많았다. 60여년에 불과한 한국 사법의 역사에 비춰 봤을 때 놀라운 성과라는 평가다.  우리나라는 1895년 4월 19일 법률 제1호로 ‘재판소구성법’이 공포되면서 사법과 행정이 분리된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여온 대륙법을 근간으로 광복 이후 헌법과 법원조직법 등을 제정하면서 사법체계가 만들어졌다. 1947년 최초의 사법교류인 미국사법제도 시찰단을 미국으로 보내는 등 영미법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던 사법체계였지만 1970년대까지 미국, 국제연합(유엔), 독일 등 서구국가와의 교류를 통해 사법제도와 체계를 배웠다. 국제교류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일방적인 사법 원조를 받았다. 1970년 태국의 프라보부 후다싱 대법원장이 방한하고 다음 해 당시 민복기 대법원장이 태국을 방문하는 등 일부 고위직 중심의 국제교류가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사법부는 과거 원조를 받는 입장에서 이제는 전자소송, 법관교육제도 등 각종 사법제도를 전수하는 입장이 됐다. 대중가요,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뿐 아니라 각종 사법제도가 베트남 등 동남아를 비롯해 남미, 동유럽, 중앙아시아에까지 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법 정보화 시스템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나이지리아, 몽골 등 10여개 나라가 한국의 전자소송 및 사법정보화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사법 정보화는 ‘사건 정보 및 판결문 저장, 검색이 가능한 정보의 전산화→접수부터 종료까지 업무과정을 전산화해 관리하는 사무절차의 전산화→소장 제출 등 재판 자체를 전산화하는 전자소송’의 단계를 거친다.  우리나라는 법관들에게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된 1991년 이후 2010년 4월 특허법원에 전자소송이 처음 도입되고 2011년 5월부터 민사사건으로 확대 시행되는 등 형사사건을 제외한 특허, 민사, 가사, 행정 등 본안사건 및 가압류, 가처분 등에 대해서도 전자소송이 시행되고 있다.  2011년 2월 방한한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 회의의 운영 주체인 로아시아 사법분과위원회의 폴 드 저지 의장은 대법원 전산정보센터를 둘러보고는 “한국의 사법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세계은행의 2014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 민사 사법제도 평가 부문에서 전자소송이 호평을 받으면서 평가대상 189개국 가운데 2위를 기록했다.  전자소송을 벤치마킹하려는 국가들은 대부분 정보의 전산화, 사무절차의 전산화 등 초기 단계도 구축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법원별로만 사건 결과 및 판결 검색이 가능한 수준인 인도네시아는 2011년 대법관 등이 한국을 찾아 노하우 및 경험을 전수받았다. 우즈베키스탄, 나이지리아, 헝가리 등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대법원장이 방한해 전자소송 시스템을 배워 갔다.  사법 정보화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제도가 사법연수원으로 대표되는 법관교육제도다. 특히 법관교육제도를 전수하기 위해 ‘역량강화 사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베트남에서는 드라마, 대중가요, 한글 등 문화적인 부분에 이어 한국 특유의 교육제도가 또 다른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법원은 2008년부터 베트남 법원연수원 건물을 신축하고 사법연수제도를 개선하는 프로젝트에 김명수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를 직접 파견해 연수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 및 지도를 하고 있다. 또 베트남 강사요원 교육, 강의교재 개발, 한국법 강의와 함께 베트남 법관을 국내로 초청해 교육 및 연수를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10개월째 베트남에서 한류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김 판사는 베트남 하노이국립대에서 사법제도를 연구한 전문가다. 파견을 자원한 김 판사는 “동료 법관들이 없는 데다 재판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어 외로울 때가 많다”면서도 “베트남 법관과 법원공무원들이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관한 강의에 집중하면서 전자소송이나 과거 겪었던 사법 파동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나라별 사법제도는 문화, 정치적 상황 등에 따른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 나라의 사법제도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면서 “단발성 교류가 아닌 지속적인 상호 교류를 통해 진정한 사법 한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외에도 2005년 몽골을 시작으로 동남아 국가인 방글라데시, 태국, 필리핀, 라오스, 캄보디아와 중앙아시아 국가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네팔, 동유럽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남미 국가인 파라과이, 온두라스, 페루 등도 직접 한국을 찾아 법관교육제도를 배워 갔다.  이 외에도 지난달 25일 린쥔이(林俊益) 타이완 사법원 형사청장이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배우기 위해 방문하는 등 다른 사법제도들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당시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한 린 청장은 “한국은 영미법계 배심제와 대륙법계 참심제를 모두 참고해 한국의 사법환경에 맞는 독특한 제도인 국민참여재판을 운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법부는 지한파(知韓派) 양성을 위한 국제교류에 있어서도 점차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대법원은 러시아, 일본, 중국, 프랑스, 덴마크, 호주, 폴란드, 인도네시아, 터키 등과 매년 1~2회 대법원장 해외 순방 및 외국 대법원장 방한으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에는 사법연수원 국제사법협력센터를 설립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수를 위한 조직을 구축하고, 기존에 국제사법교류의 주축이었던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공동으로 주관하는 외국법관 연수에 상대적으로 교류가 없었던 페루를 비롯해 네팔,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 6개국 80명의 법조인을 초청했다.  이러한 사법 한류 열풍은 군사정권을 경험하고 사법부 독립이 침해된 우리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비교적 적은 인원으로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사법제도의 효율성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발도상국은 자신들과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한 우리나라가 사건 처리 효율성에서 2위를 차지하는 등 사법제도를 지금의 수준으로 발전시킨 데 대해 놀라워한다”면서 “제도 전파와 함께 과거사에 대한 반성 등 국민의 사법부가 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경제적 상황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효율성을 배워 가려고 한다”면서 “특히 개발도상국은 우리나라가 2700여명의 법관으로 운영되면서도 형사사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에 전자소송까지 도입하고 있는 점 등을 높게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교학사 한국사 교재로 쓸 수 없는 책”

    “교학사 한국사 교재로 쓸 수 없는 책”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652건의 오류, 편향, 서술 오류가 추가로 지적됐다. 검토 작업을 한 7개 역사학회는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도저히 학교에서 교과서나 시험 교재로 쓸 수 없을 정도”라고 총평했다.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중세사학회 등 7개 학회는 19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우재단 빌딩에서 ‘교학사 한국사 검토 공개 설명회’를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장은 “사실 오류가 많고 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마구 담은 책”이라면서 “뉴라이트식 식민지 근대화론 관철을 위해 다른 교과서와 다른 독특한 서술을 하고 친일미화와 독재예찬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스며들게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비판했다. 학회들이 지적한 오류를 보면 일제강점기(259건), 개항기(125건), 현대(116건) 부분은 물론 고대(93건)와 중세(59건) 서술에서도 오류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특히 교학사 교과서 검정통과본이 공개된 직후인 9월 한국역사연구회 등 4개 학회가 지적한 오류를 잘못 수정한 사례도 나타났다. 예를 들어 교학사는 고려 후기 문인으로 관직을 지낸 이규보를 ‘권력자들과 줄이 닿지 않았다’고 묘사했다. 이에 역사학회들이 사실 오류라고 지적하자 이달에 낸 최종본에서는 ‘이규보가 정식 관료가 된 것은 41세 때였다’라고 고쳤다. 하 회장은 “이규보는 32세 때 전주목사록으로 보임됐다”면서 “교학사가 지방관은 정식 관료로 안 보는 기상천외의 새 해석을 내놓았거나 수정마저 엉터리로 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밖에 고조선의 ‘8조법’,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 해석에서도 오류가 지적됐다. 일제강점기 이후 서술에 대해 학회는 친일·독재 인사에 할애하는 분량과 미화가 지나치다고 평가했다. 한민호 한국민족운동사학회장은 “교학사는 수정 과정에서 한국 광복군 창설 내용 등 독립운동사 중 중요한 서술을 누락시켰고, 강점기 당시 깨끗한 거리 사진만 대거 인용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투영해 서술했다”고 밝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北 장성택 전격 처형] 김정은式 공포정치 서막… 당분간 北관리들 맹목적 충성 바칠 듯

    [北 장성택 전격 처형] 김정은式 공포정치 서막… 당분간 北관리들 맹목적 충성 바칠 듯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원에게 뒷덜미를 제압당한 채 포승줄에 묶여 특별군사재판장에 끌려 들어가는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마지막 모습은 권력의 야심을 한번이라도 품어봤던 북한 간부라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처참했다. 북한은 13일 오전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김일성 주석의 유일한 사위이자 북한 정권의 실세였던 장성택의 처형 사실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데 이어 조선중앙TV에 특별방송을 편성, 세 차례 반복 보도했다. 광복 이후 북한 정권 수립 이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가문의 친·인척 중에서 사형 사실이 공개된 인물은 장성택이 유일무이하다. 장성택의 공개 처형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죽음을 앞둔 수치스러운 모습이 만천하에 생중계되다시피 하면서 그는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마저 말살당했다. 북한 주민들의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성택 처형 당시 기관총으로 사살한 뒤 그의 시신을 화염방사기로 태웠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11일 북한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부인 리설주가 연관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은하수관현악단의 포르노 제작 혐의와 관련, 소속 예술인들을 4신 기관총(총신이 4개인 소구경 기관총)으로 처형한 뒤 화염방사기로 재를 만들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라면 누구라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한다는, 잔인하고 극단적인 ‘김정은식(式) 철권공포정치’의 서막이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제1위원장은 장성택 세력이 완전히 뿌리 뽑히고 자신의 유일 지배체제가 확립됐다고 여겨질 때까지 공포정치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길게는 향후 2~3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숙청 범위는 당과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장성택과 연계된 군부의 전직 고위인사들에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장성택을 처단한 칼끝이 누구에게 향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분간 북한의 관리들은 김 제1위원장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 11일부터 노동신문에는 리만건 평안북도당 책임비서, 김평해 당 간부부장, 전승훈 내각부총리, 렴철성 군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등 북한의 주요 간부들이 작성한 ‘충성의 글’이 경쟁적으로 실리면서 여론몰이용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극단적 공포정치가 단기적으로는 김 제1위원장의 유일 지배체제를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공포심만으로 국가를 지탱할 인재를 키우고 충성스러운 부하를 얻어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권력 구조에 균열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소장은 “단기적으로는 권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유능한 간부들을 내치면서 체제의 효율성은 현저히 저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키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보신주의’, ‘눈치보기’가 간부사회에 팽배해져 결국 김 제1위원장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외화벌이와 경제관리 개선조치 등 국가 정책의 추동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공포정치 자체가 북한 붕괴의 시작점”이라며 체제 내구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북한에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200만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화폐개혁 등의 정책 실패를 장성택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짓 선전이 예전처럼 먹히지 않아 민심 이반 현상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조선중앙통신 특별군사재판 보도문 전문

    -천만군민의 치솟는 분노의 폭발. 만고역적 단호히 처단-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진행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 접하여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들에게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의 웨침이 온 나라를 진감하고 있는 속에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되였다. 특별군사재판은 현대판 종파의 두목으로서 장기간에 걸쳐 불순세력을 규합하고 분파를 형성하여 우리 당과 국가의 최고 권력을 찬탈할 야망 밑에 갖은 모략과 비렬한 수법으로 국가전복 음모의 극악한 범죄를 감행한 피소자 장성택의 죄행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였다. 특별군사재판에 기소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 과정에 100% 립증되고 피소자에 의하여 전적으로 시인되였다. 공판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판결문이 랑독되였다. 판결문의 구절구절은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이며 흉악한 정치적 야심가, 음모가인 장성택의 머리 우에 내려진 증오와 격분에 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준엄한 철추와도 같았다. 피소자 장성택은 우리 당과 국가의 지도부와 사회주의 제도를 전복할 목적 밑에 반당 반혁명적 종파행위를 감행하고 조국을 반역한 천하의 만고역적이다. 장성택은 일찍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높은 정치적 신임에 의하여 당과 국가의 책임적인 직위에 등용되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은덕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아안았다. 장성택은 특히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로부터 이전시기보다 더 높은 직무와 더 큰믿음을 받았다. 장성택이 백두산 절세위인들로부터 받아안은 정치적 믿음과 은혜는 너무도 분에 넘치는 것이였다. 믿음에는 의리로 보답하고 은혜는 충정으로 갚는 것이 인간의 초보적인 도리이다. 그러나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은 당과 수령으로부터 받아안은 하늘같은 믿음과 뜨거운 육친적 사랑을 배신하고 천인공노할 반역 행위를 감행하였다. 놈은 오래전부터 더러운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에는 감히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 눈치를 보면서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다가 혁명의 대가 바뀌는 력사적 전환의 시기에 와서 드디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전당, 전군, 전민의 일치한 념원과 의사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위대한 장군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추대할데 대한 중대한 문제가 토의되는 시기에 왼새끼를 꼬면서 령도의 계승 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대역죄를 지었다. 놈은 자기의 교묘한 책동이 통할수 없게 되고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 인민들의 총의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시였다는 결정이 선포되여 온 장내가 열광적인 환호로 끓어번질 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 놈은 그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한 것이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군령도 지반과 령군 체계가 공고해지면 앞으로 제놈이 당과 국가의 권력을 탈취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조성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자인하였다. 장성택은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일찌기,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 곁을 떠나시게 되자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정권 야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책동하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현지지도를 자주 수행하게 된 것을 악용하여 제놈이 늘 원수님 가까이에 있으면서 혁명의 수뇌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대내외에 보여주어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려고 꾀하였다. 장성택은 제놈이 당과 국가지도부를 뒤집어엎는데 써먹을 반동무리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놈에게 아부아첨하고 추종하다가 된 타격을 받고 철직, 해임된 자들을 비롯한 불순이색분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기관들에 끌어들이였다. 장성택은 청년사업 부문에 배겨 있으면서 적들에게 매수되여 변절한자들, 배신자들과 한동아리가 되여 우리나라 청년 운동에 엄중한 해독을 끼치였을 뿐 아니라 그자들이 당의 단호한 조치에 의하여 적발 숙청된 이후에도 그 끄나불들을 계속 끌고다니면서 당과 국가의 중요직책에 박아넣었다. 놈은 1980년대부터 아첨군인 리룡하놈을 제놈이 다른 직무에 조동될 때마다 끌고다니였으며 당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는 종파적 행동을 하여 쫓겨났던 그자를 체계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자리에까지 올려놓아 제놈의 심복졸개로 만들어 놓았다. 장성택은 당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는 중대 사건을 발생시켜 쫓겨갔던 측근들과 아첨군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몇년 사이에 제놈이 있는 부서와 산하단위들에 끌어올리고 전과자, 경력에 문제가 있는자, 불평불만을 가진 자들을 체계적으로 자기 주위에 규합하고는 그우에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군림하였다. 놈은 부서와 산하단위의 기구를 대대적으로 늘이면서 나라의 전반사업을 걷어쥐고 성, 중앙기관들에 깊숙이 손을 뻗치려고 책동하였으며 제놈이 있던 부서를 그 누구도 다치지 못하는 ‘소왕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놈은 무엄하게도 대동강타일공장에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 영상 작품과 현지지도 사적비를 모시는 사업을 가로막았을 뿐 아니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인민내무군 군부대에 보내주신 친필서한을 천연 화강석에 새겨 부대 지휘부 청사 앞에 정중히 모시자는 장병들의 일치한 의견을 묵살하던 끝에 마지못해 그늘진 한쪽 구석에 건립하게 내리먹이는 망동을 부렸다. 장성택이 지난 기간 우리 당의 조직적 의사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체계적으로 거역하는 반당적 행위를 감행한 것은 제놈을 당에서 결론한 문제도, 당의 방침도 뒤집을 수 있는 특수한 존재처럼 보이게 하여 제놈에 대한 극도의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는 고의적이고 불순한 기도의 발로였다. 장성택은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기 위하여 당과 수령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깨끗한 충정과 뜨거운 지성이 깃들어 있는 물자들까지도 중도에서 가로채 심복졸개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제놈의 낯내기를 하는 무엄한 짓을 하였다. 장성택이 제놈에 대한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고 끈질기게 책동한 결과 놈이 있던 부서와 산하기관의 아첨분자, 추종분자들은 장성택을 ‘1번동지’라고 춰주며 어떻게 하나 잘 보이기 위해 당의 지시도 거역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장성택은 부서와 대상기관에 당의 방침보다도 제놈의 말을 더 중시하고 받아무는 이질적인 사업체계를 세워놓음으로써 심복졸개들과 추종자들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에 불복하는 반혁명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게 하였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는 것들은 그가 누구이든 혁명의 총대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며 그런자들은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힐 자리가 없다. 장성택은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가로채기 위한 첫 단계로 내각총리 자리에 올라앉을 개꿈을 꾸면서 제놈이 있던 부서가 나라의 중요 경제부문들을 다 걷어쥐여 내각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을 수습할수 없는 파국에로 몰아가려고 획책하였다. 놈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 세워주신 새로운 국가기구 체계를 무시하고 내각소속 검열감독기관들을 제놈 밑에 소속시키였으며 위원회, 성, 중앙기관과 도, 시, 군급 기관을 내오거나 없애는 문제, 무역 및 외화벌이단위와 재외기구를 조직하는 문제, 생활비 적용 문제를 비롯하여 내각에서 맡아 하던 일체 기구사업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손안에 걷어쥐고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함으로써 내각이 경제사령부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였다. 놈은 국가건설 감독기구와 관련한 문제를 내각과 해당 성과 합의도 하지 않고 당에 거짓보고를 드리려고 시도하다가 해당 일군들이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작성해주신 건설법과 어긋난다는 정당한 의견을 제기하자 “그러면 건설법을 뜯어고치면 되지 않는가”라고 망발하였다. 장성택은 직권을 악용하여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세워주신 수도건설과 관련한 사업 체계를 헝클어 놓아 몇년 사이에 건설건재기지들을 페허로 만들다싶이 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수도건설단위 기술자, 기능공 대렬을 약화시키였으며 중요 건설 단위들을 심복들에게 넘겨주어 돈벌이를 하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평양시 건설을 고의적으로 방해하였다. 장성택은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하여 심복들이 거간군들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게 만들고 지난 5월 그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놈을 부추겨 수천억원의 우리 돈을 람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조종한 장본인도 바로 장성택이다. 장성택은 정치적 야망 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각종 명목으로 돈벌이를 장려하고 부정부패행위를 일삼으면서 우리 사회에 안일해이하고 무규률적인 독소를 퍼뜨리는데 앞장섰다. 1980년대 광복거리 건설때부터 귀금속을 걷어모아온 장성택은 수중에 비밀기관을 만들어 놓고는 국가의 법은 안중에도 없이 은행에서 거액의 자금을 빼내여 귀금속을 사들임으로써 국가의 재정관리 체계에 커다란 혼란을 조성하는 반국가 범죄 행위를 감행하였다. 장성택은 2009년부터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들을 심복졸개들에게 류포시켜 자본주의 날라리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에서 돈을 망탕 뿌리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장성택이 2009년 한해에만도 제놈의 비밀돈창고에서 460여만 유로를 꺼내 탕진한 사실과 외국도박장 출입까지 한 사실 하나만 놓고 보아도 놈이 얼마나 타락, 변질되였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장성택은 정권야욕에 미쳐 분별을 잃고 날뛰던 나머지 군대를 동원하면 정변을 성사시킬수 있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면서 인민군대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장성택놈은 심리 과정에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실태와 인민 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져지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하였다”고 하면서 정변의 대상이 바로 “최고 령도자 동지이다”고 만고역적의 추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 놓았다. 놈은 정변의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인맥 관계에 있는 군대 간부들을 리용하거나 측근들을 내몰아 수하에 장악된 무력으로 하려고 하였다. 최근에 임명된 군대 간부들은 잘 몰라도 이전시기 임명된 군대 간부들과는 면목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인민들과 군인들의 생활이 더 악화되면 군대도 정변에 동조할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가 있던 부서의 리룡하, 장수길을 비롯한 심복들은 얼마든지 나를 따를 것이라고 보았으며 정변에 인민보안기관을 담당한 사람도 나의 측근으로 리용해 보려고 하였다. 이밖에 몇명도 내가 리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고 꺼리낌없이 뇌까리였다. 장성택 놈은 정변을 일으킬 시점과 정변 이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였는가에 대하여 “정변시기는 딱히 정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에 가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 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 것으로 타산하였다”고 토설하였다.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리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 모든 사실은 장성택이 미국과 괴뢰역적패당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고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장악하려고 오래전부터 가장 교활하고 음흉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여온 천하에 둘도 없는 만고역적, 매국노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장성택의 반당적, 반국가적, 반인민적인 죄악은 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심리 과정에 그 가증스럽고 추악한 전모가 낱낱이 밝혀지게 되였다. 시대와 력사는 당과 혁명의 원쑤, 인민의 원쑤이며 극악한 조국반역자인 장성택의 치떨리는 죄상을 영원히 기록하고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변할 수도 바뀔 수도 없는 것이 백두의 혈통이다. 우리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은 오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동지 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 하늘 아래서 감히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 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 그 어디에 숨어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력사의 준엄한 심판대 우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이 적들과 사상적으로 동조하여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 음모 행위가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것을 확증하였으며 흉악한 정치적 야심가, 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 인민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하면서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에 집행되였다.
  • 朴대통령 “창조경제 예산 꼭 도와줬으면”

    朴대통령 “창조경제 예산 꼭 도와줬으면”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국회의 창조경제 관련 새해 예산안 심의와 관련, “국민을 위한 것이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창조산업을 발전시키려는 것인 만큼 꼭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창조경제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해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창조산업 오디션 예산 20억원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듣고 이같이 말했다고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앞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조정소위는 ‘창조경제 종합지원서비스 구축’(69억원), ‘창조경제 기반 구축’(45억원) 등 관련 예산에 대한 처리를 줄줄이 보유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 관련 예산에 대한 반영을 당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박람회에서 지난 9월 출범한 ‘창조경제타운’(www.creativekorea.or.kr)에 아이디어를 올렸다가 사업화에 성공한 ‘단체급식 배식량 예측시스템’, ‘스피커 장착 리모컨’ 등 창조경제 제품 등을 둘러봤다. 박 대통령은 개막식 축사에서 “온라인을 통한 이런 성공을 오프라인으로 확산하고 경제 전반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면서 “창작과 교류, 협업의 공간으로 오프라인 창조경제타운을 전국 곳곳에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달에 중소·벤처기업, 대기업 등과 함께 ‘민관 합동 창조경제추진단’을 출범시킬 예정”이라면서 “부처별로 운영돼 온 연구개발과 사업화, 창업 지원 등 다양한 창조경제 지원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연계해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지원이 이뤄지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 수석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올해 성탄절을 포함해 연말 또는 연초에 대통령의 특별사면 행사 여부와 관련, “지금까지 들은 바 없다”면서 “준비하는 기간이 있기 때문에 지금 없으면 (사면은)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 대통령은 8·15 광복절에도 특별사면을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장성택 사형 집행 전 비자금 규모는…김정은 이복형 김정남 자금줄은?

    장성택 사형 집행 전 비자금 규모는…김정은 이복형 김정남 자금줄은?

    13일 전격 사형이 집행된 북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굴린 자금 규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장성택의 사형 집행 사실을 발표하며 장성택이 ‘비밀기관’을 통해 귀금속을 사들이는 등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앞서 장성택의 숙청을 결정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도 ‘장성택 일당’에 대해 “부정부패행위를 감행하고 부화타락한 생활을 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사형집행 당한 장성택은 북한의 실질적인 2인자 권력을 누리며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재산은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 정보 당국 역시 이에 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날 조선중앙통신이 “장성택이 지난 2009년 한해에만도 자신의 비밀 돈창고를 통해 460여만 유로(67억여원)를 꺼내 탕진했다”고 밝힌 대목이 주목할 부분이다. 북한의 1년 예산이 약 60~65억 달러(6조 3000~6조 8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한해 예산의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한사람이 고스란히 써버렸다는 점에서 장성택이 축적한 부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장성택이 이같은 치부를 통해 자신의 세력을 관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아울러 대북 소식통들 사이에선 장성택의 재산이 “조선 안에 또 다른 조선을 만들 수 있는 액수였다”는 풍문마저 돌기도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장성택이 이미 1980년대 광복거리건설 때부터 비밀기관을 통해 은행에서 국가의 돈을 빼내 귀금속을 걷어 모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해외에서 유랑 중인 김정은의 이복 형 김정남의 해외 체류 자금을 장성택 측이 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장성택이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을 옹립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은 이미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에 눈밖에 났던 만큼 승계 정통성을 중시하는 북한 특성상 신빙성이 낮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김정남에 다소 우호적이었던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의 입지가 극도로 좁아졌기 때문에 향후 김정남의 해외 체류 생활이 힘들어질 가능성은 있다. 한편 북한 당국은 장성택에 대해 북한 사회 풍기문란 조장 혐의도 들었다. 또 “2009년부터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들을 심복졸개들에게 유포시켜 자본주의 날라리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에서 돈을 망탕 뿌리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고 외국 도박장까지 출입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북한은 사형 집행에 앞서 장성택이 숨긴 비자금의 대부분을 회수했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비열한 쓰레기”…北, 장성택 사형 보도 전문보니

    “비열한 쓰레기”…北, 장성택 사형 보도 전문보니

    조선중앙통신은 13일 북한이 전날 특별군사재판을 열고 장성택에 사형을 판결한 뒤 즉시 집행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됐다”면서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했고 판결은 즉시에 집행됐다”고 밝혔다. 북한 형법 제60조는 국가전복음모행위에 대한 규정으로 사형에 처할 수 있다. 다음은 조선중앙통신 보도 전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 접하여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에게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의 웨침이 온 나라를 진감하고있는 속에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되였다. 특별군사재판은 현대판종파의 두목으로서 장기간에 걸쳐 불순세력을 규합하고 분파를 형성하여 우리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찬탈할 야망밑에 갖은 모략과 비렬한 수법으로 국가전복음모의 극악한 범죄를 감행한 피소자 장성택의 죄행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였다. 특별군사재판에 기소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립증되고 피소자에 의하여 전적으로 시인되였다. 공판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판결문이 랑독되였다. 판결문의 구절구절은 반당반혁명종파분자이며 흉악한 정치적야심가, 음모가인 장성택의 머리우에 내려진 증오와 격분에 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준엄한 철추와도 같았다. 피소자 장성택은 우리 당과 국가의 지도부와 사회주의제도를 전복할 목적밑에 반당반혁명적종파행위를 감행하고 조국을 반역한 천하의 만고역적이다. 장성택은 일찍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당과 국가의 책임적인 직위에 등용되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은덕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아안았다. 장성택은 특히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로부터 이전시기보다 더 높은 직무와 더 큰 믿음을 받았다. 장성택이 백두산절세위인들로부터 받아안은 정치적믿음과 은혜는 너무도 분에 넘치는것이였다. 믿음에는 의리로 보답하고 은혜는 충정으로 갚는것이 인간의 초보적인 도리이다. 그러나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은 당과 수령으로부터 받아안은 하늘같은 믿음과 뜨거운 육친적사랑을 배신하고 천인공노할 반역행위를 감행하였다. 놈은 오래전부터 더러운 정치적야심을 가지고있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에는 감히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 눈치를 보면서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다가 혁명의 대가 바뀌는 력사적전환의 시기에 와서 드디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전당, 전군, 전민의 일치한 념원과 의사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위대한 장군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추대할데 대한 중대한 문제가 토의되는 시기에 왼새끼를 꼬면서 령도의 계승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대역죄를 지었다. 놈은 자기의 교묘한 책동이 통할수 없게 되고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 인민들의 총의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시였다는 결정이 선포되여 온 장내가 열광적인 환호로 끓어번질 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 놈은 그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한것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군령도지반과 령군체계가 공고해지면 앞으로 제놈이 당과 국가의 권력을 탈취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조성될것이라고 생각하였기때문이라고 자인하였다. 장성택은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일찌기,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게 되자 오래전부터 품고있던 정권야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책동하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현지지도를 자주 수행하게 된것을 악용하여 제놈이 늘 원수님 가까이에 있으면서 혁명의 수뇌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것을 대내외에 보여주어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려고 꾀하였다. 장성택은 제놈이 당과 국가지도부를 뒤집어엎는데 써먹을 반동무리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놈에게 아부아첨하고 추종하다가 된타격을 받고 철직, 해임된자들을 비롯한 불순이색분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기관들에 끌어들이였다. 장성택은 청년사업부문에 배겨있으면서 적들에게 매수되여 변절한자들, 배신자들과 한동아리가 되여 우리 나라 청년운동에 엄중한 해독을 끼치였을뿐아니라 그자들이 당의 단호한 조치에 의하여 적발숙청된 이후에도 그 끄나불들을 계속 끌고다니면서 당과 국가의 중요직책에 박아넣었다. 놈은 1980년대부터 아첨군인 리룡하놈을 제놈이 다른 직무에 조동될 때마다 끌고다니였으며 당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는 종파적행동을 하여 쫓겨났던 그자를 체계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자리에까지 올려놓아 제놈의 심복졸개로 만들어놓았다. 장성택은 당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켜 쫓겨갔던 측근들과 아첨군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몇년사이에 제놈이 있는 부서와 산하단위들에 끌어올리고 전과자, 경력에 문제가 있는자, 불평불만을 가진자들을 체계적으로 자기 주위에 규합하고는 그우에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군림하였다. 놈은 부서와 산하단위의 기구를 대대적으로 늘이면서 나라의 전반사업을 걷어쥐고 성, 중앙기관들에 깊숙이 손을 뻗치려고 책동하였으며 제놈이 있던 부서를 그 누구도 다치지 못하는 《소왕국》으로 만들어놓았다. 놈은 무엄하게도 대동강타일공장에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영상작품과 현지지도사적비를 모시는 사업을 가로막았을뿐아니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인민내무군 군부대에 보내주신 친필서한을 천연화강석에 새겨 부대 지휘부청사앞에 정중히 모시자는 장병들의 일치한 의견을 묵살하던 끝에 마지못해 그늘진 한쪽구석에 건립하게 내리먹이는 망동을 부렸다. 장성택이 지난 기간 우리 당의 조직적의사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체계적으로 거역하는 반당적행위를 감행한것은 제놈을 당에서 결론한 문제도, 당의 방침도 뒤집을수 있는 특수한 존재처럼 보이게 하여 제놈에 대한 극도의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는 고의적이고 불순한 기도의 발로였다. 장성택은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기 위하여 당과 수령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깨끗한 충정과 뜨거운 지성이 깃들어있는 물자들까지도 중도에서 가로채 심복졸개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제놈의 낯내기를 하는 무엄한짓을 하였다. 장성택이 제놈에 대한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고 끈질기게 책동한 결과 놈이 있던 부서와 산하기관의 아첨분자, 추종분자들은 장성택을 《1번동지》라고 춰주며 어떻게 하나 잘 보이기 위해 당의 지시도 거역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장성택은 부서와 대상기관에 당의 방침보다도 제놈의 말을 더 중시하고 받아무는 이질적인 사업체계를 세워놓음으로써 심복졸개들과 추종자들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에 불복하는 반혁명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게 하였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는것들은 그가 누구이든 혁명의 총대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것이며 그런자들은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힐 자리가 없다. 장성택은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가로채기 위한 첫 단계로 내각총리자리에 올라앉을 개꿈을 꾸면서 제놈이 있던 부서가 나라의 중요경제부문들을 다 걷어쥐여 내각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을 수습할수 없는 파국에로 몰아가려고 획책하였다. 놈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 세워주신 새로운 국가기구체계를 무시하고 내각소속 검열감독기관들을 제놈밑에 소속시키였으며 위원회, 성, 중앙기관과 도, 시, 군급기관을 내오거나 없애는 문제, 무역 및 외화벌이단위와 재외기구를 조직하는 문제, 생활비적용문제를 비롯하여 내각에서 맡아하던 일체 기구사업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손안에 걷어쥐고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함으로써 내각이 경제사령부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할수 없게 하였다. 놈은 국가건설감독기구와 관련한 문제를 내각과 해당 성과 합의도 하지 않고 당에 거짓보고를 드리려고 시도하다가 해당 일군들이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작성해주신 건설법과 어긋난다는 정당한 의견을 제기하자 《그러면 건설법을 뜯어고치면 되지 않는가.》고 망발하였다. 장성택은 직권을 악용하여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세워주신 수도건설과 관련한 사업체계를 헝클어놓아 몇년사이에 건설건재기지들을 페허로 만들다싶이 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수도건설단위 기술자, 기능공대렬을 약화시키였으며 중요건설단위들을 심복들에게 넘겨주어 돈벌이를 하게 만들어놓음으로써 평양시건설을 고의적으로 방해하였다. 장성택은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하여 심복들이 거간군들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게 만들고 지난 5월 그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놈을 부추겨 수천억원의 우리 돈을 람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조종한 장본인도 바로 장성택이다. 장성택은 정치적야망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각종 명목으로 돈벌이를 장려하고 부정부패행위를 일삼으면서 우리 사회에 안일해이하고 무규률적인 독소를 퍼뜨리는데 앞장섰다. 1980년대 광복거리건설때부터 귀금속을 걷어모아온 장성택은 수중에 비밀기관을 만들어놓고는 국가의 법은 안중에도 없이 은행에서 거액의 자금을 빼내여 귀금속을 사들임으로써 국가의 재정관리체계에 커다란 혼란을 조성하는 반국가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장성택은 2009년부터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들을 심복졸개들에게 류포시켜 자본주의날라리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에서 돈을 망탕 뿌리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장성택이 2009년 한해에만도 제놈의 비밀돈창고에서 460여만€를 꺼내 탕진한 사실과 외국도박장출입까지 한 사실 하나만 놓고보아도 놈이 얼마나 타락, 변질되였는가를 잘 알수 있다. 장성택은 정권야욕에 미쳐 분별을 잃고 날뛰던 나머지 군대를 동원하면 정변을 성사시킬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면서 인민군대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장성택놈은 심리과정에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실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져지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하였다.》고 하면서 정변의 대상이 바로 《최고령도자동지이다.》고 만고역적의 추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 놈은 정변의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인맥관계에 있는 군대간부들을 리용하거나 측근들을 내몰아 수하에 장악된 무력으로 하려고 하였다. 최근에 임명된 군대간부들은 잘 몰라도 이전시기 임명된 군대간부들과는 면목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인민들과 군인들의 생활이 더 악화되면 군대도 정변에 동조할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가 있던 부서의 리룡하, 장수길을 비롯한 심복들은 얼마든지 나를 따를것이라고 보았으며 정변에 인민보안기관을 담당한 사람도 나의 측근으로 리용해보려고 하였다. 이밖에 몇명도 내가 리용할수 있다고 보았다.》고 꺼리낌없이 뇌까리였다. 장성택놈은 정변을 일으킬 시점과 정변이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였는가에 대하여 《정변시기는 딱히 정한것이 없었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에 가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것으로 타산하였다.》고 토설하였다.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리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 모든 사실은 장성택이 미국과 괴뢰역적패당의 《전략적인내》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고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장악하려고 오래전부터 가장 교활하고 음흉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여온 천하에 둘도 없는 만고역적, 매국노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장성택의 반당적, 반국가적, 반인민적인 죄악은 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심리과정에 그 가증스럽고 추악한 전모가 낱낱이 밝혀지게 되였다. 시대와 력사는 당과 혁명의 원쑤, 인민의 원쑤이며 극악한 조국반역자인 장성택의 치떨리는 죄상을 영원히 기록하고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변할수도 바뀔수도 없는것이 백두의 혈통이다. 우리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은 오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 하늘아래서 감히 김정은동지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 그 어디에 숨어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력사의 준엄한 심판대우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이 적들과 사상적으로 동조하여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음모행위가 공화국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것을 확증하였으며 흉악한 정치적야심가, 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 인민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하면서 공화국형법(북한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에 집행되였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산업부 운송비만 5억…‘민족 대이동’ 수준, 교육부 일부 이사…女직원 13% 육아휴직

    세종시로 가는 6개 부처 공무원들은 주말도 반납한 채 업무와 이사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아직 병원이나 산후조리원 같은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세종시 근무가 힘든 여성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육아휴직도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전체 직원의 7%인 56명이 육아휴직 중이며, 내년에도 36명이 이미 육아휴직을 신청한 상태다. 교육부는 여직원 185명 가운데 13%인 25명이 육아휴직을 했다. 2단계 이전 부처 가운데 가장 이사 규모가 큰 산업통상자원부는 13일까지 선발대 174명이 세종시로 옮긴다. 자료와 집기 등을 옮기는 차량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민족 대이동’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운송 비용만 약 5억원이다. 교육부는 오는 22일 완료를 목표로 지난 6일부터 움직였다. 우선 파티션(칸막이) 제거 작업으로 이미 세종시로 파티션을 옮겨 설치 작업까지 끝마쳤다. 2단계는 각종 문서를 옮기고, 컴퓨터와 같은 개인 물품이 마지막으로 정부서울청사를 떠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오는 13~15일, 20~22일 두 차례에 걸쳐 주말을 끼고 이사를 진행한다. 본부 근무 인원인 920여명이 세종시 이전 대상으로, 서울에서는 협소한 공간 탓에 분산·배치돼 있던 조직도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대부분 직원은 이미 한두 달 전부터 세종시에 숙소를 마련해 놓고 개인적인 이사를 마무리했다. 여성 직원들은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한 경우가 많지만 중년 이상의 남성 직원들은 서너 명씩 짝지어 전·월세 아파트를 임대하는 등 ‘기러기 아빠’의 길을 스스로 택했다. 일부는 서울에서 당분간 출퇴근을 감행할 계획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보관할 서류와 폐기할 서류를 구분해 처리하는 게 요즘 주된 업무”라며 “지난 수개월간 꾸준히 짐을 줄이는 작업을 했고, 나머지 짐들은 포장업체가 옮겨 주는 만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이전 상황을 소개했다. 다만 이전 직전까지 지방자치단체 등과 관련된 인·허가 업무가 남아 있는 일부 과 직원은 고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운영지원과도 서울에서 직원들이 임시로 머물며 일할 회의실을 마련해야 하는 등 업무 부담이 커졌다. 복지부는 오는 20일 장·차관실이 마지막으로 이사를 마무리하면 서울 종로구 계동사옥 시대를 끝내고, 세종청사에서 970여명이 근무하게 된다. 민원실과 당직실이 가장 마지막에 옮기는 노동부는 효율적 업무를 위해 일주일 안에 신속하게 이사를 끝낼 계획이다. 국가보훈처는 1978년 뿌리를 내려 35년 동안 정들었던 서울 여의도 광복회 건물을 떠나 세종시 201구역 9동(3~7층) 청사로 옮긴다. 보훈처는 서울 잔류 직원 없이 445명 전원이 세종시로 이동한다. 보훈처 관계자는 “일부는 아파트를 분양받고도 입주 시기가 맞지 않아 조치원이나 대전 등의 오피스텔과 원룸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안석 기자·부처 종합 ccto@seoul.co.kr
  • [단독] ‘비정상의 정상화’ 국정 핵심과제로

    도로 등 공공인프라 건설, 방위산업체 구매 과정에서 오가는 사례금, 원자력발전 납품비리, 적자가 쌓여 가면서도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공기업 임직원들, 공공기관들의 사원 부정 채용 등 ‘음서제’ 확산, 실업급여와 어린이집 보조금 등을 조작해서 타내는 복지 관련 정부지원금 부정수급, 세금 및 보험료의 상습체납…. 우리 사회에 쌓여온 부조리와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고 뜯어고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내년도 국정 핵심 개혁과제로 중점적으로 추진된다. 5일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정부 각 부처와 공공기관 등은 부문별로 “잘못됐으나 관행으로 굳어져 온 비정상적 행태들”의 과제화를 마쳤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4일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실·국장급 주요 간부들이 모인 가운데 ‘정상화 과제 후보(안) 검토회의’를 갖고 추진 방법과 문제점 등을 논의하면서 마지막 점검회의를 가졌다. 과제안에는 ´역대 정부가 방치했던 사학 비리, 체육계 승부조작 및 불공정 판정, 체육단체장들의 도덕적 해이, 문화재 관리 소홀, 특정 전문가 집단의 끼리끼리 돌봐주기 및 뒷거래´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달 중으로 김동연 실장 주재로 차관회의를 거쳐 과제 안을 손본 뒤 국무회의에서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해 관련 과제를 확정할 방침이다. 국무조정실은 정부 출범 이후 각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들로부터 5개씩 제출받은 대표적인 ‘비정상 관행 사례’ 중에서 일부를 골라 과제화 작업을 벌여왔다. 지난 4일 검토 회의에서 김동연 실장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비정상적 관행을 국민의 눈높이와 시각에서 찾아내 범정부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작업”이라면서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등 국정과제의 실현을 가로막는 왜곡된 관행들을 뿌리뽑아 선진화와 국민행복을 이룩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과거의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으로 되돌려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고 선언한 뒤 기회 있을 때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해 왔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신임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도 “국정을 맡아보니까 너무나 비정상적인 것이 당연한 것같이 내려온 게 많았다. 부패도 여기저기 많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서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좌절케 하는 부정부패와 비리를 확실하게 바로잡아 달라”고 주문했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윤상현 의원 “사면 복권 제한법안 발의”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1일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형법의 내란죄·외환죄, 군 형법의 반란죄·이적죄로 처벌받은 경우 사면 복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사면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제2의 이석기 방지법’으로 불리는 개정안은 반국가단체 구성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거나 헌정질서 파괴범죄를 저지르고 이에 대한 형 집행이 끝나지 않았거나 집행이 면제되지 않은 자에 대해 사면과 감형, 복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에서는 사면 대상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아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거나 내란음모, 헌정질서 파괴 등의 행위를 한 자에 대해서도 사면과 감형, 복권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2003년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으로 복역하던 중 그해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됐다가 2005년에 특별복권됐다고 윤 의원은 설명했다. 앞서 윤 의원은 ‘종북 혐의’로 구속기소된 국회의원에 대해 세비 지급을 중단하고 정부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를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안 및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평생 모은 30억원으로 ‘문화꽃’ 핀다면…

    평생 모은 30억원으로 ‘문화꽃’ 핀다면…

    “평생 근검하게 살며 모았는데 지역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바랄 게 없지요.” 80대 노인이 아끼고 아껴 모은 30억원을 쾌척, 서울 관악구에 문화복합시설을 짓는 주춧돌을 놓았다. 통큰 기부의 주인공은 남현동에 살고 있는 김삼준(83)씨. 전남 신안군 출신으로 광복 전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와 산전수전을 겪으며 자수성가한 그다. 금융권에서 일했던 그는 20여년 전 살고 있던 용산 지역이 재개발돼 관악구로 이사하며 목돈을 손에 넣기도 했지만 큰 재산을 모으게 된 것은 근검절약 덕분이다. 젊은 시절 언젠가 뜻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 푼 두 푼 모은 게 태산이 됐다. 먹을 것, 입을 것 아끼는 것은 기본. 택시를 타 본 게 평생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신용카드도 없이 살았다. 29일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도 옷차림은 평범 그 자체였다. 그는 “남들이 알면 창피할 정도로 하나에서 열까지 구두쇠 생활을 하며 씀씀이를 아꼈다”고 했다.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구에 전달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등산을 무척 즐겼던 그는 관악산에 등산 박물관이 생기는데 사업비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얼핏 떠올려 구를 찾았다. 알고 보니 그 계획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지 오래였다. 이왕 마음 먹은 김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서울의 대표적인 빈민촌 가운데 한 곳이었던 난곡에서 살던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종필 구청장 등과 상의 끝에 문화복합시설 건립에 기부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최근 맺은 세부 협약에 따라 30억원을 다섯 차례에 나눠 기부한다. 부동산 등을 처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복합시설은 관악문화관·도서관 내에 들어선다. 이곳은 지역을 대표하는 도서관이자 문화 공간으로 각종 공연을 비롯해 교양 강좌 개최, 도서 대출 등을 담당해 왔으나 비좁은 공간 탓에 주민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연면적 1335㎡ 규모 4층짜리 복합시설은 문화관과 도서관 건물 사이 야외무대 자리에 들어서 문화관·도서관의 공간 부담을 덜게 된다. 청소년상담센터와 잡오아시스, 영유아도서관, 다문화가정을 위한 복지 시설 등이 설치된다. 다음 달 초 착공, 내년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유 구청장은 “어린이, 청소년, 소외받는 어려운 이웃들이 문화를 편히 즐길 수 있으면 한다는 어르신 뜻을 받들어 지역 사회의 귀감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작은 일인데 인터뷰 자체도 민망스럽다”면서 “기부 문화가 보다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용기를 냈다”며 웃었다. 글 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기고] 잡초가 우거진 밭 같은 우리 말글살이 모습/이대로 우리말살리는겨례모임 공동대표

    [기고] 잡초가 우거진 밭 같은 우리 말글살이 모습/이대로 우리말살리는겨례모임 공동대표

    올 한글날은 매우 뜻 깊고 기쁜 날이었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진 지 23년 만에 다시 공휴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글은 우리말을 적는 표기 수단으로 뿌리를 내렸으나 아직도 일본 한자말과 일본말투에다가 요즘엔 영어까지 마구 섞어 쓰고 있어서 우리 말글살이가 어지럽고 국가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마침 정부가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공공언어 개선 방안을 찾아 쉬운 우리말 쓰기에 힘쓰기로 했다고 하니 반갑고 고맙다. 공공언어를 쉽게 다듬는 일은 정부와 국민이 서로 생각과 뜻을 통하게 함으로써 행정 효과도 높여서 민주주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한마음으로 뭉쳐서 튼튼한 나라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영국과 스웨덴도 쉬운 제 나라말 쓰기 운동을 하고 있고, 프랑스에서도 프랑스어를 지키고 다듬는 정책을 펴고 있으며, 요즘엔 미국 대통령도 쉬운 영어쓰기를 강조한 바 있다. 지난해 5월 경북과 영남대 국어생활상담연구소가 공문서를 올바로 작성하려고 도민과 공무원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공문서에 모르는 한자말이 많아서 불편했다는 민원인이 42.9%였으며, 공무원들도 26%가 어려운 한자말 때문에 일하기 힘들었다”고 답했단다. 그런데 국민과 공무원들이 어려워하는 한자말은 거의 일제강점기부터 쓰던 일본식 행정용어와 전문용어다. 우리말 속에 있는 일본말을 버리는 일은 광복 뒤부터 했다. 1948년 정부가 ‘국어정화위원회’를 만들어 일본말을 쓰지 말고 우리말을 찾아서 쓰자는 운동을 했다. 그러나 그때 거의 지식인이나 공무원이 모두 일제 때 일본 국민으로 태어나서 일본말을 국어로 배우고 익힌 사람들이라 흐지부지 끝났다. 그 뒤 1970년대에 바른말 고운 말 쓰기 국어순화운동을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날 어려운 한자말에다 영어까지 마구 섞어 씀으로써 우리 말글살이가 더 어지럽다. 회사 이름을 영문으로 바꾸더니 아파트 이름과 상품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 기관 직제 이름까지 영어로 바뀌고 있다. 우리 말글살이는 마치 주인이 없어 잡풀이 우거진 밭과 같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국어나 국사까지도 영어로 강의하고 초· 중·고교에서 영어 몰입교육을 한다고 난리법석이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인 한글을 가진 나라가 제 말글을 버리고 있다는 것은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우리말 속에 있는 잡풀 같은 외국말과 어려운 한자말을 뽑아내고 우리말이 잘 자라도록 하자.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고 외국인이 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고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할 일이다. 민주 복지시대를 열고 다지는 일이며, 자주 문화를 꽃펴서 문화융성시대를 여는 밑거름이며 남북통일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일은 지난날 일부 우리말 단체와 국민이 나섰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 정부와 언론과 기업은 말할 것이 없고 온 국민이 함께 나서서 성공시키자. 이 일이 잘되면 교육도 행정도 잘되고 사회 통합도 이루어질 것이며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노벨상을 탈 문학작품도 나오고 ‘한류’ 바람이 더 세차게 나라 밖으로 퍼져 나가 세계 문화발전에도 이바지하게 된다.
  • 부산 영도다리 47년 만에 일어선다

    부산 영도다리 47년 만에 일어선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과 실향 등 우리 근대사를 오롯이 간직한 부산 영도다리(영도대교)가 47년 만에 다시 힘차게 일어선다. 부산시는 오는 27일 오후 2시 중구 남포동 자갈치 매립지에서 도개 기능을 회복한 영도다리의 개통식을 한다. 식전 행사로 오후 1시 20분부터 타악 퍼포먼스 등의 문화 공연과 영도다리의 과거 및 현재를 조명하는 영상 등이 상영된다. 본 행사에서는 1966년 9월 중단 이후 47년 만에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도개식이 진행된다. 도개 시 영도다리 밑으로 소방정 2대가 오색 물대포쇼를 연출하고 도개 뒤 중구와 영도구 양쪽에서 각각 최고령자 2명(남녀 각각 1명)과 어린이 30명(남녀 각각 15명)이 다리에 첫발을 내디디고 다리 중간에서 만남의 행사를 갖는다. 식후 행사로 축하 공연이 펼쳐지고 마무리 행사로 7000여발의 불꽃이 영도다리를 수놓을 예정이다. 부대 행사로 롯데백화점 광복점 일원에서는 금순이 선발 대회와 야구 선수 이대호 팬 사인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어린이 책꽂이]

    치카치카 올리(마르쿠스 C 포이르슈타인 지음, 올라프 오스텐 그림, 김경연 옮김, 은나팔 펴냄) “이 닦는 건 지겨워.” 호랑이 릴리의 말에 돼지 올리가 정색을 한다. “이 닦는 게 얼마나 신나는데. 하지만 난 이 닦아주는 일을 하다 목숨이 위태롭기도 했지.” 동물원에서 코끼리와 캥거루, 기린, 악어 친구의 이를 닦아주느라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던 올리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1만원. 우리나라 좋은동화 12(김문홍 외 11명 지음, 모라·정가애 그림, 파랑새 펴냄) 지난해 아동문예지에 수록된 작품 가운데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와 감동, 성찰을 전하는 좋은 동화 12편을 골라 묶었다. 2000년 1회로 출간된 뒤 2004년 중단됐다가 5회로 복간됐다. 1만 1000원. 아기 곰과 안경(곤노 히토미 지음, 다카스 가즈미 그림, 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펴냄) 할머니 곰이 떠난 세상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아기 곰. 할머니가 남기고 간 안경을 내내 끼고 희미하게 보이는 세상에 자신을 가둬버린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쓰러진 아기 곰의 눈에 뿌옇게 천사의 날개가 보이는데, 누가 아기 곰에게 와준 걸까. 곁에서 공감해 주는 누군가가 가장 큰 힘이 되어 준다는 포근한 이야기가 파스텔톤의 화풍에 담겨 있다. 1만 1000원. 성장을 위한 책 읽기(안광복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펴냄) 철학 교사 안광복이 고른 청소년 책 52권이 한 권에 담겼다. 2004년 8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저자가 출판 잡지 ‘기획회의’에 연재했던 청소년 도서 리뷰를 모은 책. 문학, 역사, 철학, 사회, 과학, 예술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르며 지난 10년간 출간된 청소년 책의 흐름을 짚어준다. 1만 4000원.
  • 독립운동가 故한형석 선생 주택 새단장

    독립운동가 故한형석 선생 주택 새단장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항일 음악가인 고 한형석(?~1996) 선생이 생전에 거주했던 부산 서구 부민동 주택과 주변이 말끔하게 단장된다. 시는 한 선생 주택 주변 정비 사업을 다음 달 완료할 방침이라고 20일 밝혔다. 현재 이 집에는 한 선생의 부인이 살고 있다. 이번 정비 사업은 한 선생이 부민동에 한국 최초의 아동 전용 극장인 자유아동극장을 세웠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한 선생은 일제강점기 광복군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아리랑과 항일 가곡 등 100여곡의 작품을 남긴 음악가다. 해방 뒤 부민동의 자유아동극장, 야학 등을 통해 청소년 예술 교육의 터전을 닦은 문화예술 혁명가이며 교육 선각자이기도 하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으로 완료한 임시수도 기념거리 조망 쉼터, 아미골 찬샘물터, 까치고개 푸른 쉼터, 고분도리 전망대, 고분도리 카페, 아미 문화학습관 등과 연계한 관광 코스로 활용돼 산복도로 탐방객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덕신하우징, 골프 꿈나무 발굴에 힘써

    덕신하우징, 골프 꿈나무 발굴에 힘써

    건축용 철강재 전문 기업 덕신하우징(회장 김명환, www.duckshin.com)은 골프 꿈나무들의 발굴, 육성을 위해 지난 6일 서울 웨스턴 조선 호텔에서 한국초등학교골프연맹(회장 강전항)과 ‘제1회 덕신하우징배 전국 남녀 꿈나무 골프대회’ 개최를 위한 업무협약식(MOU)을 체결하였다. 덕신하우징은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2014년부터 매년 전국 남녀 꿈나무 골프대회를 개최하고, 대회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한국초등학교 골프연맹 발전기금 지원과 우수 선수 장학금 기부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동안 덕신하우징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소년소녀 가장돕기 및 불우 청소년 지원활동을 위한 희망봉사단 발족, 매칭 그랜트 방식의 임직원 기부 프로그램 등을 실시해왔다. 2013년 광복절을 맞이해서는 농촌 어린이 초청 백두산 탐방 연수를 진행하는 등 꿈나무 지원, 육성사업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자선 골프대회 개최 및 KLPGA 프로골프 선수의 후원 활동 등 대한민국 골프 발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이번 초등학생 골프대회 창설을 계기로 2015년부터는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장학사업도 추진할 방침이다. 덕신하우징컵 전국초등학생 골프대회는 매년 5월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5월 첫째 주에 개최되며, 총 3일간 연습라운드, 예선 및 본선 경기가 치러진다. 골프대회는 대한골프협회의 승인을 받아 상비군 포인트가 부여되는 공식 대회로 추진되며, 골프 전문 TV 채널을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덕신하우징 김명환 회장은 “대한민국을 끌고 갈 미래는 지금의 초등학생들”이라며 “기업들이 꿈나무에 대한 투자를 계속 늘려야 우리 사회의 희망도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 후] 외교부 홈피에 여전히 없었다, ‘월북 장관’사진

    [서울신문 보도 그 후] 외교부 홈피에 여전히 없었다, ‘월북 장관’사진

    ‘단순 실수인가, 의도적인 배제인가.’ 정부가 국민의 알권리를 강화한 ‘정부 3.0’ 비전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서울신문은 지난 8월 외교부 홈페이지의 역대 장관 소개란에 김성환·최덕신 두 전직 장관의 사진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보도 후 3개월이 넘은 7일에도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최 전 장관의 사진이 여전히 공란으로 남겨져 있다. 반면 김 전 장관의 사진은 보도 직후 바로 채워졌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월북한 최 전 장관의 과거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최 전 장관은 월북한 국내 인사 중 최고위직이다. 역대 정부는 최 전 장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려 왔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에도 월북 인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관용성이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961년 10월부터 1963년 3월까지 제9대 외무부(외교부) 장관을 지낸 최 전 장관은 현재 북한 평양의 애국 열사릉에 묻혀 있다. 최 전 장관은 8·15 해방 이전 광복군에서 복무했고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거쳐 6·25전쟁 때 사단장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이후 외무부 장관과 독일 대사를 거쳐 1967년부터 민족종교인 천도교 교령을 맡았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와의 불화로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1981년 6월 김일성 주석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해 1986년 9월 북한에 정착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을 했던 사람이 월북했다는 면에서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불명예”라면서 “남북 관계가 교착된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최 전 장관에 대한 재평가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열린 정부’를 지향하면서 공과에 따라 인물의 기록 사진 자체를 누락시키는 것이 타당한가 여부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적성 국가로 도피한 장관의 훈·포장을 취소하게 하는 상훈법 규정은 있으나 기록 자체를 말살하는 법은 없다”고 밝혔다. 육군사관학교는 6대 교장을 지낸 최 전 장관의 사진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선 아니면 악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적용되는 분단 구조 속에서 최씨의 월북에 대해 자유로운 평가는 어렵다”면서도 “정부에 반하는 행위 때문에 사진을 누락시켰다면 3·15 부정선거를 촉발시켜 의회 정치를 말살한 이기붕 전 국회의장의 사진도 국회에서 떼어 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인사 자료에 (최 전 장관의)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시스템을 구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혼선이 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우리 동네 Secret 스토리] 강북구 북한산 역사 순례길

    [우리 동네 Secret 스토리] 강북구 북한산 역사 순례길

    깊은 계곡에서 우려낸 찬 공기여서가 아니었습니다. 숨을 멈춰야 했던 것은 규모 탓이었습니다. 지난 4일 오후 4시쯤 북한산 이준 열사의 묘역에 올랐습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이랍니다. 근처엔 순국선열의 묘가 제법 있습니다. 의암 손병희, 몽양 여운형, 해공 신익희, 심산 김창숙, 성재 이시영, 가인 김병로, 유석 조병옥에다 중국에서 산화한 광복군 열일곱 분까지. 강북구가 여기에다 ‘근현대사기념관’을 짓고, 순국선열묘역과 그 아래에 자리한 국립4·19민주묘지까지 한데 묶어 ‘역사문화관광벨트’로 만들려는 이유를 헤아릴 만합니다. 이준 열사 묘역엔 묘와 석물만 있는 게 아닙니다. 깨끗한 입구, 예쁜 벽돌이 깔린 긴 진입로, 중간엔 자유평등을 수호하는 동상이 우뚝 섰고, 묘역 보호를 위해 병풍처럼 둘러쳐진 벽도 있습니다. 유해를 묻은 곳은 태극 마크로 봉인해 뒀고, 왼쪽엔 네덜란드 헤이그 묘역을 고스란히 본뜬 묘가 있으며, 오른쪽 벽면엔 헤이그 밀사 파견 때 고종 황제가 준 친필 위임장을 새겨 뒀습니다. 위임장엔 고종이 직접 도장을 찍었을 때만 남겼다는 사인이 뚜렷합니다. 대한제국 말기 일제와 맺어진 각종 조약이 가짜라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그 사인입니다. 그 위임장 옆에는 ‘순국대절’(殉國大節) 네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누가 썼을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헤이그에 잠든 열사의 유골을 이렇게 옮겨다 성대히 묻은 사람이 박 전 대통령입니다. 바로 그해 ‘1963년’이라는 글자가 동상, 비, 글씨 등에 남았습니다. 쿠데타 뒤 ‘불행한 군인’으로서 대통령에 당선된 해가 1963년이지요. 그 시절 대대적으로 묘역을 꾸린 배경이 여기 있다는 게 정설입니다. 열사 유해와 달리 귀국을 절대 막았던 사례도 있습니다. 대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죠. 4·19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 정부가 무너지니 귀국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왜 막았을까요. 이런저런 자료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도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무척 비판적이었습니다. 4·19가 없었다면 그 이전에라도 쿠데타를 했을 것이라는 것 또한 정설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 쿠데타의 대상, 아니 박 전 대통령의 입장에선 ‘혁명’의 대상이던 이 전 대통령을 ‘건국자’로 불러내고, 모세라는 둥 세종대왕이라는 둥 하는 사람들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일관성은 갖춰 달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요. 열사 묘역에서 가슴 시린 까닭입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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