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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운동가 김원봉에 서훈 추서하라” 시민단체 현충원 집회

    “독립운동가 김원봉에 서훈 추서하라” 시민단체 현충원 집회

    조선의열단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에게 서훈을 추서하라는 시민단체 집회 시위가 11일 국립서울현충원 앞에서 열렸다. 이들은 일제로부터 독립 후 친일파가 제대로 제거됐다면 김원봉이 월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애국국민운동연합은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약산 김원봉 단장은 식민지 시절 항일투쟁에 가장 앞장선 독립운동가”라며 김원봉에게 서훈을 추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조선의열단은 조국 광복을 위해 일본과 맞서 싸운 독립투사들”이라면서 “광복 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일파들을 철저히 제거했다면 김원봉은 월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김원봉이 월북과 함께 6·25 전쟁을 일으킨 주범으로서 북한의 고위직까지 지낸 경력을 문제 삼은 데 따른 반박으로 해석된다. 이들은 “애국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면서 “독립투사들의 조국은 이념 전쟁 중인 남한과 북한이 아니라 남북한 전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친일파들의 묘역을 파묘하겠다며 휘발성 액체와 삽을 들고 진입하려 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막혔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靑 “김원봉 서훈, 현행 규정상 불가능”

    해방 후 월북 활동 등 논란 커지자 진화 청와대가 10일 약산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 추서와 관련해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조항상 서훈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때 언급과 해방 후 월북 활동 등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팽팽해지자 청와대가 진화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의 8번 항목을 보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을 한 경우 포상에서 제외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조항 때문에 김원봉 선생은 서훈, 훈격 부여가 불가능하다”며 “그런데 마치 이것을 바꿔서 뭘 할 수 있다든가, 보훈처가 알아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 선생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광복군의 독립운동 역량이 완성됐다”는 취지로 언급해 논란이 불거졌다.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김원봉에 마음으로나마 최고급 훈장을 드리고 싶다’고 발언한 데 대해 이 관계자는 “대통령이 김원봉 선생뿐만 아니라 김구 선생 등 독립운동을 하신 분에 대한 존경심을 말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청와대는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20억원의 정부 예산을 지원 요청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보훈처에서 예산 지원을 공식적으로 요청받은 바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한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이날 6·25전쟁의 영웅으로 불리는 백선엽 장군을 예방해 “6·25 남침의 주범 가운데 한 명인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가 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김원봉이라는 사람이 군의 뿌리가 된 것처럼 말을 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청와대 “김원봉 서훈 규정상 불가능…논란 여지 없어”

    청와대 “김원봉 서훈 규정상 불가능…논란 여지 없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1898~1958) 선생을 언급한 이후 일각에서 김원봉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 서훈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까지 실시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청와대가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조항상 서훈이 불가능하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김원봉 선생은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무장독립투쟁을 벌이다가 해방 후 월북해 북한 최고위직을 지낸 인물로 1958년 숙청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10일 취재진과 만나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기준’ 항목을 보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 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을 한 경우’ 포상에서 제외한다”면서 “이 조항상 김원봉 선생에 대한 서훈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마치 이것을 바꿔서 뭘 할 수 있다든가, 보훈처가 알아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 규정을 당장 고칠 의사도 없다”면서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김원봉 선생과 관련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면서 “(좌우가)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는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고, 기득권이나 사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바로 애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논평을 통해 “6·25 전쟁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후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와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등 국내 7개 독립운동 단체들이 오는 8월부터 전국을 돌며 김원봉 선생의 서훈 수여를 위해 서명운동에 나서기로 했고, 지난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서훈 수여를 촉구하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또 리얼미터가 CBS 의뢰를 받아 지난 7일 전국 성인 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4.4% 포인트)가 이날 공개됐는데, 김원봉 선생 서훈에 찬성한다는 응답 비율이 42.6%, 서훈에 반대한다는 응답 비율이 39.9%로 각각 집계됐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찬성 42.6%·반대 39.9%’ [리얼미터]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찬성 42.6%·반대 39.9%’ [리얼미터]

    약산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한 것으로 조사됐다. 리얼미터는 CBS 의뢰를 받아 지난 7일 전국 성인 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4.4% 포인트)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에 대해 ‘항일 독립투쟁의 공적이 뚜렷하므로 찬성한다’는 응답이 42.6%, ‘북한 정권에 기여했으므로 반대한다’는 응답이 39.9%로 각각 집계됐다고 밝혔다. 찬반 양론은 2.7% 포인트 격차로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맞서는 양상이다. ‘모른다’는 응답이나 무응답은 17.5%였다. 지난 4월 12일 조사에서 찬성이 49.9%, 반대가 32.6%였던 것과 비교하면 찬성 여론은 7.3% 포인트 줄었고, 반대 여론은 7.3% 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세부적으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지지층, 진보층, 중도층, 호남, 충청, 부산·경남, 경인, 20대, 30대, 40대에서는 찬성 여론이 우세했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지지층, 보수층, 대구·경북, 서울, 60대 이상에서는 반대 여론이 높았다. 무당층과 50대에서는 찬반양론이 팽팽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해방 후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고, 민주당은 과거 한국당 일부 인사들도 김원봉을 그린 영화 등에 호응한 적이 있다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독립운동단체들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할 것”

    독립운동단체들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할 것”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 기념사업 일환…“역사가 재평가”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의 독립운동 ‘공적’을 거론하면서 ‘서훈 논란’이 재점화된 가운데 주요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이 조만간 대대적인‘김원봉 서훈 서명운동’에 들어간다. 8일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등에 따르면, 이 단체를 포함해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와 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 등 국내 7개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은 올해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11월 9∼10일)을 맞아 이달부터 연말까지 다양한 기념사업을추진한다. 조선의열단은 약산 김원봉이 단장(의백·義伯)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 단체다. 1919년 11월 중국 만주 길림성에서 결성된 의열단은 1920년대 일제 요인 암살과 식민통치기관 파괴 등 각종 의거를 이끈 주요 비밀결사다.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김지섭의 동경 니주바시 폭탄투척 의거, 나석주의 동양척식회사 및 조선식산은행 폭탄투척 의거 등은 익히 알려진 의열단의 활동들이다. 중국 시인 궈모뤄(郭沫若)는 ‘항일투쟁의 가장 용감한 전사’라고 평하기도 했다.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돼 조직됐던 이 독립무장단체의 단장이 바로 ‘서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김원봉으로, 이번 기념사업은 김원봉과 함께 역사에서 잊혔던 많은 조선의열단원들의 활약상을 재조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 단체는 특히 오는 8월부터 11월까지 광주·대구·대전·부산을 순회하며 ‘약산 김원봉 서훈 대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한다. 국내 학술대회와 한중 학자들이 참여하는 국제학술대회도 계획하고 있다. 민성진 ㈔운암김성숙기념사업회장은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당시 김원봉 선생이 왜 월북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도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방 후 미군정체제의 남한으로 귀국한 김원봉은 임시정부 김구 주석과 함께 좌우합작을 추진했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역시 남북 좌우합작을 위해 활동한 여운형의 암살을 목격하고, 친일경찰의 상징이었던 노덕술에게 검거돼 모욕을 당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 기념사업회장은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기도 하지만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이기도 하다. 조선의열단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데도, 이념 대립 문제 때문에 묻혀왔다”고 말했다. 이번 기념사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식 및 국민참여 문화행사’는 11월 9∼1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최근 신임 광복회장에 취임한 김원웅 전 의원은 “조선의열단에 몸담은 사람들은 약산(김원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채호, 이육사, 정율성, 윤세주 등 여기 몸담았던 사람들은 정말 눈부신 활동을 전개했다”며 “이제 역사가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김원봉 언급’ 야당 공세에 이낙연 총리 “보수의 통합은 ‘고인 물’”

    ‘김원봉 언급’ 야당 공세에 이낙연 총리 “보수의 통합은 ‘고인 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중 ‘김원봉 언급’을 두고 야당이 이념 공세를 펼치는 것에 대해 이낙연 국무총리도 비판에 나섰다. 총리실의 이석우 공보실장은 이낙연 총리가 7일 오전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무엇이 진정한 통합이냐에 대한 철학의 차이가 이런 문제(논쟁)를 불러 일으킨다”면서 “보수의 통합은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소위 ‘고인물 통합’”이라고 비판했다고 이메일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낙연 총리는 ‘고인물 통합’ 발언에 이어 ‘친일 잔재 청산 등이 지체된 것도 이런 태도 때문’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이 실장은 설명했다. 이낙연 총리의 발언은 전날 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이념을 뛰어넘는 ‘통합’을 강조한 취지였다는 점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진영이 생각하는 ‘통합’의 범위가 ‘고인 물’처럼 좁은 범위라는 것을 지적한 발언으로도 해석된다.문 대통령은 전날 현충일 추념사에서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마지막 5년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다”면서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 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자유한국당 등 야권에서는 김원봉의 해방 후 월북 활동을 언급하며 문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공세를 펼쳤다. 청와대 관계자는 “추념사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메시지는 애국 앞에서 보수·진보가 없고,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어 통합으로 가자는 취지”라면서 “그런 취지에 대한 역사적인 사례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청와대 “김원봉 역사적 평가는 학계에서 해야 될 문제”

    청와대 “김원봉 역사적 평가는 학계에서 해야 될 문제”

    청와대 관계자는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추념사의 핵심 메시지는 ‘애국 앞에서 보수 진보 없다.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어서 통합으로 가자’는 것이고, 그런 통합의 사례로 김원봉 선생의 역할을 얘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날 ‘북한의 6·25 전쟁 공로자 즉 전쟁 가해자에게 대통령이 헌사를 했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원봉 선생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역사학계에서 해야 될 문제”라고 답했다. 관계자는 “임시정부도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어 통합을 통해 구성됐고, 백범일지에 보더라도 김구 선생께서 임시정부에 모두 함께하는 대동단결을 주창한 바가 있다. ‘통합된 광복군’이 국군 창설의 뿌리고 한미동맹의 토대가 된다고 분명히 언급했다. 그런 점을 종합적으로 보고 이해해달라”고 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무장독립투쟁을 벌이다가 해방 후 월북한 약산 김원봉(1898∼1958) 선생과 관련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는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고, 기득권이나 사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바로 애국이다.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가 아니다.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선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보훈”이라고 강조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사설]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애국해야 공동체가 발전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보훈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이 애국과 보훈의 의미를 강조한 것은 말로는 애국을 내세우면서 정파적 이해관계나 진영 논리에 갇혀 갈등과 분열의 골이 깊어진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가 아니다”는 강도 높은 표현까지 사용해 작금의 현실에 일침을 가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 현충일 추념사부터 “애국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며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 유독 ‘애국’과 ‘통합’ 용어가 주목되는 것은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여야 정치권에 상생과 협치의 메시지를 주문한 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막말이 난무하면서 이념 대립이 심화하는 현실에 대한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고, 사회통합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항일 무장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에 대해 문 대통령이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라고 언급한 대목이 이념 논란을 일으킨 점은 아이러니다. 자유한국당은 “6·25전쟁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고 비판했다. 북한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인사의 독립유공자 지정 여부는 국민의 공감대를 전제로 신중히 처리할 문제이나 그와 별개로 김원봉의 광복군 활약마저 폄훼하는 것은 지나친 이념 공격이다. 이날 추념식에는 지난 5월 24일 청해부대 최영함 입항 행사 중 사고로 순직한 최종근 하사의 유가족과 ‘9·19 군사합의’ 이후 유해 발굴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6·25 희생자 유가족, 유해가 해외에 안장됐다가 국내로 봉환된 전사자의 유가족도 참석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이들을 국가가 끝까지 찾아내 보훈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국회가 공전하면서 국립묘지 영예성 훼손 방지 법안과 독립유공자 예우를 위한 법안 등 보훈 정책들도 표류하고 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모셔진 국립현충원에는 현재 친일반민족행위자 11명도 묻혀 있다고 한다. 이들의 유해를 강제 이장하거나 묘 주변에 친일 행적을 표기한 조형물을 세우자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식물국회 탓에 논의조차 못 하고 있다니, 국회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 홋줄 사고 순직 하사 부모, 文 권유에 분향…文 “유족에게 위로 박수를” 즉석 메시지

    홋줄 사고 순직 하사 부모, 文 권유에 분향…文 “유족에게 위로 박수를” 즉석 메시지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대표 분향을 보훈자 유가족도 하게 하고, 예정에 없던 위로말을 추념사에 추가하는 등 각별히 예우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지난달 청해부대 최영함 입항 행사 도중 홋줄 사고로 순직한 최종근 하사의 부모도 참석했다. ●대통령 부부 이외 인사 대표분향은 처음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후 현충탑을 향할 때 문 대통령 부부 바로 뒷줄에는 최 하사 부모가 섰다. 헌화·분향 후 관계자가 퇴장 안내를 하는 순간 문 대통령은 최 하사 부모에게 직접 분향을 권했다. 두 사람은 흰색 장갑을 낀 뒤 분향을 마쳤다. 현충일 추념식에서 대통령 내외가 하는 대표 분향을 순직 유공자 부모가 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당초 준비된 내용에 없던 위로의 메시지도 추가했다. 연설문 원고대로 최 하사의 사고를 언급한 문 대통령은 “오늘 부모님과 동생, 동료들이 이 자리에 함께하고 계시다. 유족께 따뜻한 위로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란다”며 즉석에서 청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입장하면서 최 하사 부모의 손을 꼭 잡고 위로를 건네는 모습도 보였다. 배우 김혜수씨가 6·25전쟁 당시 남편을 잃은 김차희(93) 할머니의 사연을 담은 편지를 낭독했다. 김 할머니 남편 성복환 일병은 1950년 8월 학도병으로 입대해 같은 해 10월 13일 백천지구 전투 중 전사했지만 현재까지 유해가 수습되지 못했다. 숙연한 표정으로 듣던 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참전용사 위패 앞 ‘대통령 문재인’ 꽃다발 추념식 종료 후 문 대통령 내외는 위패봉안관에 들러 김 할머니와 함께 성 일병 위패 앞에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쓰인 꽃다발을 바쳤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과 함께 위패봉안관을 둘러본 문 대통령은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 4000여 전사자 명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분들이 유해를 찾아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요”라고 말했다.지난달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악수 패싱’ 논란이 일었던 김 여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기념식에서 재회해 악수했다. 행사 시작에 앞서 문 대통령 부부가 참석자들과 인사하는 순서에서 김 여사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먼저 악수한 뒤 황 대표와도 눈을 맞추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문 대통령은 국회·정부 관계자석 맨 앞줄에 자리한 김원웅 광복회장과 악수하고 바로 뒷줄의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발견하고는 팔을 뻗어 두 사람에게도 악수를 건넸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홋줄 사고 순직 하사 부모, 文 권유에 분향…文 “유족에게 위로 박수를” 즉석 메시지

    홋줄 사고 순직 하사 부모, 文 권유에 분향…文 “유족에게 위로 박수를” 즉석 메시지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대표 분향을 보훈자 유가족도 하게 하고, 예정에 없던 위로말을 추념사에 추가하는 등 각별히 예우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지난달 청해부대 최영함 입항 행사 도중 홋줄 사고로 순직한 최종근 하사의 부모도 참석했다.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후 현충탑을 향할 때 문 대통령 부부 바로 뒷줄에는 최 하사 부모가 섰다. 헌화·분향 후 관계자가 퇴장 안내를 하는 순간 문 대통령은 최 하사 부모에게 직접 분향을 권했다. 두 사람은 흰색 장갑을 낀 뒤 분향을 마쳤다. 현충일 추념식에서 대통령 내외가 하는 대표 분향을 순직 유공자 부모가 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당초 준비된 내용에 없던 위로의 메시지도 추가했다. 연설문 원고대로 최 하사의 사고를 언급한 문 대통령은 “오늘 부모님과 동생, 동료들이 이 자리에 함께하고 계시다. 유족께 따뜻한 위로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란다”며 즉석에서 청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입장하면서 최 하사 부모의 손을 꼭 잡고 위로를 건네는 모습도 보였다.  배우 김혜수씨가 6·25전쟁 당시 남편을 잃은 김차희(93) 할머니의 사연을 담은 편지를 낭독했다. 김 할머니 남편 성복환 일병은 1950년 8월 학도병으로 입대해 같은 해 10월 13일 백천지구 전투 중 전사했지만 현재까지 유해가 수습되지 못했다. 숙연한 표정으로 듣던 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추념식 종료 후 문 대통령 내외는 위패봉안관에 들러 김 할머니와 함께 성 일병 위패 앞에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쓰인 꽃다발을 바쳤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과 함께 위패봉안관을 둘러본 문 대통령은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 4000여 전사자 명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분들이 유해를 찾아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요”라고 말했다. 지난달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악수 패싱’ 논란이 일었던 김 여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기념식에서 재회해 악수했다. 행사 시작에 앞서 문 대통령 부부가 참석자들과 인사하는 순서에서 김 여사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먼저 악수한 뒤 황 대표와도 눈을 맞추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문 대통령은 국회·정부 관계자석 맨 앞줄에 자리한 김원웅 광복회장과 악수하고 바로 뒷줄의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발견하고는 팔을 뻗어 두 사람에게도 악수를 건넸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文, 김원봉 언급하며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무장독립투쟁을 벌이다가 해방 후 월북한 약산 김원봉(1898∼1958) 선생과 관련,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면서 “(좌우가)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는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이념의 대립을 뛰어넘는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다”며 이처럼 김원봉 선생을 ‘소환’했다. 현직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그를 언급하고 공적을 평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고, 기득권이나 사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바로 애국”이라며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극한 대립과 진영 논리에 매몰돼 남남 갈등이 확산하는 현실을 우려하며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사람이나 생각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며 대립하던 이념의 시대가 있었다”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보수와 진보의 역사가 모두 함께 어울려 있으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독립과 민주주의, 경제발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노력이 함께 녹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선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보훈”이라고 덧붙였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김원봉 앞세운 文, 이념·정파 극복 취지… 보수야당 강력 반발

    김원봉 앞세운 文, 이념·정파 극복 취지… 보수야당 강력 반발

    야당 대표 때도 “치열하게 무장투쟁한 분” 김삼웅 “일제, 홍범도 다음으로 두려워 해” 金, 北서 고위직 지내 유공자 대상서 제외 보수 야당 “귀 의심케 하는 추념사” 비판 보훈처 “의견 수렴중”… 서훈 논란 재점화올 들어 독립운동가 서훈 논란이 불거졌던 약산 김원봉(1898∼1958) 선생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6일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의 광복군 편입으로)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고 “(좌우가) 통합된 광복군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는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는 사회통합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보수 야당들은 ‘귀를 의심케 하는 추념사’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따라 서훈 논란 또한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원봉 선생은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해 요인 암살 등 무정부주의 투쟁을 전개했다.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으며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도 지냈다.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의 저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은 첫째가 홍범도, 둘째가 김원봉, 셋째가 김구”라고 했다. 1948년 월북 이후 국가검열상과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지만 1958년 연안파 숙청으로 제거됐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2015년 7월 영화 ‘암살’을 관람한 뒤 “정말 치열하게 무장투쟁한 분인데, 해방 후에 북으로 갔다 얼마 있어 숙청됐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설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해 광복절에는 페이스북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취지를 밝히고 김원봉 선생을 직접 거론했다. 북한에서 6·25전쟁 공훈을 인정받아 노력훈장을 받고 고위직을 지낸 탓에 그동안 국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선정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하지만 올 초 보훈처 자문기구가 3·1절을 맞아 독립유공자로 포상할 것을 권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쟁이 불거졌다. 지난 3월 피우진 보훈처장은 국회에 출석해 ‘김원봉을 국가보훈 대상자로 서훈할 것이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지금 현재 기준으로는 되지 않는다”면서도 “의견을 수렴 중이며 (서훈 수여) 가능성은 있다”고 답했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6·25전쟁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 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했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도 “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난데없이 북한의 6·25전쟁 공훈자를 소환했다”며 “말로는 보수와 진보가 없다고 하면서 사실은 보수·진보의 편을 갈라 놓을 일방적 주장을 그때그때 무늬를 바꿔 가며 이어 가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이념·정파 갈등을 뛰어넘자는 취지”라면서 “김원봉 선생이 언급된 맥락도 좌우가 통합된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는 의미이지 조선의용대가 곧 국군의 뿌리라고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한국당 “문 대통령의 김원봉 헌사, 귀를 의심”…김원봉 누구길래

    한국당 “문 대통령의 김원봉 헌사, 귀를 의심”…김원봉 누구길래

    자유한국당이 6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원 추념사에 발끈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현충월원을 ‘살아있는 애국의 현장’이라고 지칭하며 “여기 묻힌 한 분 한 분은 그 자체로 역사이며 애국이란 계급이나 직업, 이념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에게는 사람이나 생각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며 대립하던 이념의 시대가 있었다”며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위해 임시정부가 좌우합작으로 창설한 광복군을 소개하고,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끈 조선의용대가 편입되면서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귀를 의심” “반국가적 망언” 현·전 의원들 비판 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이런 광복군의 독립운동 활약상을 설명한 뒤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덧붙인 것을 문제삼았다.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에서 “귀를 의심하게 하는 추념사”라면서 “6·25 전쟁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고 밝혔다. 전 대변인은 “이 정부에서 김원봉에게 서훈을 안기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 보훈처를 넘어 방송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다”면서 “여기에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했다. 그는 “6·25 전사자들을 뒤에 모셔두고, 눈물로 세월을 견딘 가족들을 앞에 두고, 북의 전쟁 공로자에 헌사를 보낸 대통령이 최소한의 상식의 선 안에 있는지 묻고 싶다”며 “청와대와 집권세력이야말로 가장 극단에 치우친 세력이라 평가할 만하다”고도 했다.이만희 원내대변인 역시 논평을 통해 “북한에서 훈장까지 받았다는 김원봉을 콕 집어 언급한 데 대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대통령의 언급이 김원봉 등 대한민국에 맞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까지 서훈하기 위한 이 정권의 분위기 조성용 발언은 아니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차명진 전 의원도 페이스북에 “김원봉이 누구인가. 김일성 정권 권력 서열 3위,6·25 남침 최선봉에 선 그 놈”이라며 “이보다 반(反)국가적, 반(反)헌법적 망언이 어디 있는가. 그것도 현충일 추모사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썼다. “내가 더이상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하나”라며 “한국당은 뭐하나. 이게 탄핵 대상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투사…이념 떠난 평가 필요 김원봉 선생에 대한 정치적·역사적 판단이 엇갈리는 부분은 있다. 영화 ‘암살’, ‘밀정’ 등에서 항일단체 단장으로 그려졌던 그는 1919년 의열단을 꾸려 조선총독·일본군·친일파 등을 암살하고,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주요 기관에 폭탄을 투척하는 등 무장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 일제는 김원봉 선생을 두고 “재외 반일 조선인의 거두”라고 표현하며 두려워했다.하지만 이런 업적에도 아직 그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데는 해방 뒤 월북한 행적 탓이 크다. 1947년 김원봉은 극우주의자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자 남조선노동당 지도자 박헌영(1900~1955)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해 국가검열상(검찰총장)에 임명됐고 노동상(노동부 장관)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북한에서 최고위직으로 활동하다가 1958년 숙청됐다. 한국당은 김원봉 선생이 “6·25 남침의 공으로 북한에서 훈장까지 받았다”면서 그를 기리는 데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역사학자들은 김원봉 선생이 월북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당시 친일파들이 기득권을 잡으면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테러를 당하고 목숨을 잃었던 상황이 있었다고 전한다. 역사학계에서는 남북을 가른 이념이 아닌, 1945년 해방 전 행적을 기준으로 역사적 인물을 평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한편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과 관련해 “좌우합작을 이룬 임시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좌우 이념의 갈등을 극복하고 애국에 뜻을 모으자는 취지”라면서 “애국을 위해 낡은 이념에 갇혀서는 안된다는 의미인데 거꾸로 이를 문제삼아 다시 이념 공세에 나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문 대통령의 말은 역사적 사실이며 광복군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며 “약산 김원봉의 월북 이후 행적을 끌어들여 광복군 운동 자체를 색깔론으로 덧칠하는 일이야말로 역사 왜곡”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고의 독립투사조차 포용하지 못했던 뼈아픈 배척의 역사를 이제 뛰어넘을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 역시 논평을 내고 문 대통령이 ‘통합’을 강조한 데에 공감한다면서 “배는 좌현과 우현의 노가 서로 힘의 균형을 이룰 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우현이 손을 놓고 있어 대한민국호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이라며 “경제가 어렵다며 전국을 돌며 정부를 흔들고 있는 한국당은 본인들이 그 주범임을 깨우치고 이제라도 통합 대한민국으로 함께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학계 “독립운동 서훈, 이념 아닌 1945년 광복 기준으로 평가해야”
  • 김정숙 여사, 황교안과 재회…웃는 얼굴로 악수 건네

    김정숙 여사, 황교안과 재회…웃는 얼굴로 악수 건네

    김정숙 여사는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악수 패싱’을 지적했던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에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국가유공자 유족 등과 먼저 악수를 나눈 다음 정부·국회 관계자가 앉은 구역으로 이동해 인사를 나눴다. 맨 앞줄에 김원웅 광복회장이 앉았고, 그 뒷줄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앉았다. 문 대통령은 뒷줄까지 팔을 뻗어 악수를 빠짐없이 악수를 건넸다. 이어 문희상 국회의장, 김명수 대법원장 등과 악수하고 민주당 이해찬 대표, 한국당 황교안 대표 등 여야 대표와도 인사했다. 김정숙 여사 역시 그 뒤를 따라 인사했다. 김정숙 여사는 지난달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황교안 대표와 악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청와대가 제1야당 대표를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민주당은 ‘적반하장 식 시비 걸기’라고 지적했고, 청와대는 당시 ‘시간 관계상 여유가 없었을 뿐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김 여사는 이날 황 대표에 눈을 맞추며 웃는 얼굴로 악수를 건네며 인사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와도 악수했다. 한편 올해 추념식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국가유공자 및 유족, 각계대표, 시민, 학생 등 1만여 명이 참석했다. 유해가 해외에 안장돼 있다가 최근 국내로 봉환된 전사자를 포함한 6·25 전사자 유가족들도 주빈들과 함께 식장에 입장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손성진 칼럼] 힘을 합쳐도 부족한 현실인데

    [손성진 칼럼] 힘을 합쳐도 부족한 현실인데

    주말에 시내에 나와 보면 어떤 섬뜩함마저 느낀다. 저마다 자기의 요구와 주장을 외치는 시위대들의 표정을 보고서다. 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촛불시위에선 민주화를 연상시켰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 않다. 우리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갈등과 대립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기에 외국인 관광객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양보와 관용, 타협과 통합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오직 자신의 이익과 아집에 집착하는 극렬 폭주 기관차들이 찢어지듯 울리는 굉음에 견디다 못해 온건, 온순한 국민은 도리어 숨을 곳을 찾아야 할 지경이다. 중국의 국공합작처럼 지난 100년 동안 우리도 누란의 위기에는 통합을 시도한 일이 없지 않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는 모든 종교계 대표가 포함됐고 다 같이 옥고를 치렀다. 임시정부에서도 안창호, 김동삼, 김규식이 민족유일당 운동을 벌이며 좌우합작을 추진했다. 광복 직전에 이뤄진 김구와 김원봉의 군사적 타협도 통합의 일환이었다. 이념적 대립을 하더라도 일제 앞에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는 공감대는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작금의 국내외 현실이 위기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다. 추락하는 경제지표만으로도 정부의 경제정책을 무작정 믿고 기다리기에는 위험 부담이 커 보인다. 정부·여당이야 절반 이상을 외인(外因)으로 돌리겠지만, 그 또한 무책임한 모습이다. 위기를 돌파하려면 누군가 책임을 걸머지고 국민 대통합을 부르짖어야 할 판인데 불행히도 정반대로 분열을 재촉하니 답답할 뿐이다.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마이웨이’다. 정책의 성패를 논하기에는 이르겠지만, 스스로 흔들지 않겠다는 고집에서 나쁜 예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장하성 전 수석이 말했던 ‘연말’은 이미 6개월 전에 지났다. 예측은 빗나갔고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이 빚은 부작용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야당 의원들은 순번을 정한 듯 시리즈로 막말 퍼레이드를 벌이며 통합은커녕 편가르기에 몰두해 있다. 과오는 벌써 잊었고 상궤(常軌)를 짓밟으며 과격한 언사로 지지율 회복에 목을 매달았다. 여당, 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은 야당을 쳐다보면 더욱 한숨이 나와 기댈 곳을 찾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사분오열, 극한대립, 고집불통, ‘내로남불’, 이권고수 같은 용어들로도 다 설명이 안 되는 난국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삼류도 안 되는 정치, 정치인들이다. 이런 정치권을 쳐다보는 국민이 선택하는 길이 더 격렬한 시위다. ‘태극기 부대’의 활동은 좌파독재라는 야당 대표의 발언에서 힘을 얻어 더욱 격화됐다. 그래도 배가 덜 고픈 노동자의 이익집단인 민노총은 소형 타워크레인 기사들과 일용직 노동자들의 생존에는 귀를 막음으로써 스스로 귀족노조의 본색을 드러낸 꼴이 됐다. 더불어 지역, 집단, 계층, 성별 이기주의와 좌우 갈등은 4·19 이후 최고조다. 좌파라면 죄다 ‘문재앙’이고 우파라면 모두 ‘틀딱’으로 규정짓곤 귀를 틀어막고 대화의 문을 닫아 버린다. 어느 쪽이든 논리와 근거가 있을진대 “너는 무조건 틀렸어”라고 몰아세운다. 언론은 또 어떤가. 이념과 정파, 정권과 무관하게 옳고 바름을 논하는 언론의 부존재는 필자를 포함한 누구나 반성할 일이다. 언론들은 각자 지지하는 쪽이 정해져 있고 그 틀에 따를 뿐이니 또 하나의 이익집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언론에서 정의를 찾고 통합을 기대하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더욱 불행한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국민이 청와대 청원을 통해 집단의 힘을 보여 주려 하고 직접 민주주의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시위에 나서는 국민도 국민이고 청원에 나서는 국민도 국민이다. 여의도 정치를 믿지 못하겠으니, 국민 스스로 행동한 것이다. 상대의 존재와 가치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몰상식 아래서 건전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뤄 내기는 어렵다. 막무가내식 비난과 매도부터 거둬야 하겠다. 힘을 합쳐도 힘이 모자랄 만큼 현재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맞고서도 나라 안위를 생각한 순국선열의 고귀한 뜻을 떠올려 보자. 일제하 독립운동가들이 그랬고 북한에 맞서 싸운 국군이 그랬다. 일제 압정 앞에선 좌우가 없었고 남침 앞에선 나 혼자 살겠다는 이기심도 없었다. 오늘이 마침 현충일이다. sonsj@seoul.co.kr
  • 文 “보훈은 제2 안보”…천안함 유족 등 유공자와 오찬

    文 “보훈은 제2 안보”…천안함 유족 등 유공자와 오찬

    문재인 대통령은 4일 “평화가 절실한 우리에게 보훈은 제2의 안보”라며 “보훈이 잘 이뤄질 때 국민의 안보의식은 더욱 확고해지고 평화의 토대도 그만큼 두터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현충일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260여명과 오찬을 갖고 “국가유공자와 가족에 대한 보상과 예우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품위를 높이고 국가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문 대통령은 “100년 전 평범한 사람이 독립군·광복군이 됐고 그 후예가 국군이 돼 대한민국을 지켰다”며 “선대 의지를 이어받은 아들딸·손자손녀가 4·19혁명을 시작으로 민주화 여정을 걸어왔고 국민소득 3만 달러의 경제발전을 이뤄 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이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만큼 사연을 갖고 계실 것”이라며 “다들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특히 6·25 전쟁에 참전한 박운욱(92)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장을 소개하며 각별히 고마움을 전했다. 오찬에는 2002년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다 전사한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씨 등 제2연평해전 희생자와 천안함 피격 희생자 유족, 강원도 산불 피해를 본 보훈대상자 일부도 함께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한국 기계산업 연 대동공업, 최초 전자기술은 금성사…어떤 제품이

    한국 기계산업 연 대동공업, 최초 전자기술은 금성사…어떤 제품이

    광복 이후 1960년대가 될 때까지도 우리나라 농가에서는 주로 소나 사람의 힘을 이용했다. 이 때문에 농업생산량에 한계가 있었고 보릿고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광복 직후인 1947년 설립된 대동공업은 1963년에 국내 최초로 동력경운기 ‘H6E-CT 83’을 생산해 농촌의 근대화를 이끌어 냈다. 국내 전문가들은 대동공업의 동력경운기 개발이 국내 기계산업 분야의 시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현재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는 전기전자산업 분야의 최초 기술은 각각 1959년 금성사(현 LG)에서 개발한 국내 최초 진공관식 라디오 A-501, 정보통신 산업 분야에서는 1986년 세계 10번째로 개발한 전전자교환기 TDX-1으로 꼽혔다. 특히 전전자교환기 TDX-1은 한국 과학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고 통신, 인터넷 분야 강국으로 자리잡게 만들었고 1989년 1가구 1전화 시대를 앞당긴 것으로 평가받았다. 한국공학한림원은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1945년 광복 이후 2015년까지 국내 10대 산업의 기술발전 과정을 총망라한 ‘한국산업기술발전사’를 발간했다고 3일 밝혔다. 한국 경제성장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재도 많은 나라들에서 산업기술 발전의 모델로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된 산업기술사는 없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18세기부터 기술사 연구가 지속돼 사료정리나 박물관이 만들어져 있고 일본의 경우도 산업기술사자료정보센터를 설치해 19세기 메이지 유신 이후 산업기술발전사를 정리해 연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학한림원은 국내 산업분야를 11개 분야로 분류해 400여명의 대규모 집필진을 구성해 4년 동안 진행해 이번에 산업발전사를 만들게 됐다. 특히 이번 산업발전사에는 11개 산업별로 첫 기술과 제품을 선정했다는데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건설부분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바이오의료분야는 1983년 녹십자가 세계 3번째로 B형간염 백신 개발, 소재분야는 1973년 포항제철 고로 1기에서 첫번째 출선, 식품분야는 1952년 대한제분에서 국내 최초 밀가루 출시, 운송장비 산업에서는 1975년 현대에서 포니자동차 개발, 에너지자원 분야는 1950년 연탄화덕 등이다. 섬유분야에서는 1919년 경성방직이 설립돼 민족자본에 의한 최초의 면방직 공장을 세운 것이 국내 섬유산업을 이끌어온 것으로 꼽히기도 했다. 편찬위원장을 맡은 최항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번에 발간한 10권 분량의 기술발전사는 광복 이후 70년간 산업기술 노하우가 집대성된 귀중한 사료이며 역사를 통해 새로운 혁신 동력을 찾아볼 수 있는 귀중하고 의미있는 저작물”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림원은 이번에 발간한 책자를 대학 도서관과 연구기관 등에 배포하는 한편 전자책 형태로도 만들어 한림원 홈페이지(www.naek.or.kr)에서 내려받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내년 공휴일 수 67일…올해보다 하루 늘어

    내년 공휴일 수 67일…올해보다 하루 늘어

    내년에 실제 공휴일이 올해보다 하루 많은 총 67일로 확정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3일 발표한 ‘2020년도(단기 4353년) 월력요항’에 따르면 내년에는 52일의 일요일과 15일의 관공서 공휴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4월 15일), 설날 대체공휴일(1월 27일) 등 총 69일의 공휴일이 있다. 다만 설 연휴 마지막 날(1월 26일)과 3·1절이 일요일이어서 실제 공휴일은 67일이다. 주 5일제를 실시하는 기관은 52일의 토요일을 더해 휴일이 총 119일이 된다. 공휴일 중 설날(1월 25일)과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이 토요일이어서 실제 휴일 수는 115일이다. 내년에 가장 긴 연휴는 추석이다. 9월 30일~10월 2일 연휴에 개천절(10월 3일)과 10월 4일 일요일까지 총 5일을 쉴 수 있다. 설 연휴는 대체공휴일까지 포함해 1월 24일부터 27일까지 총 4일이다. 한글날(10월 9일)과 크리스마스(12월 25일)가 금요일이어서 주 5일제 기관 근로자는 그 주에 각각 3일을 연달아 쉴 수 있다. 내년은 2월이 29일로 1년이 366일인 윤년이다. 음력도 윤달(윤4월)이 추가된다. 월력요항은 음력 날짜와 24절기, 관공서 공휴일 등 달력 제작에 필요한 요소가 요약된 자료로 달력 제작의 기준이 된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이상호 기자, 김광석 아내에 5천만원 배상”…법원, 명예훼손 인정

    “이상호 기자, 김광석 아내에 5천만원 배상”…법원, 명예훼손 인정

    “SNS에서 서씨를 ‘악마’라고 표현…비방 행위 인정”“영화 ‘김광석’은 과장…표현의 자유는 넘지 않아”‘고 김광석이 아내 서해순(55)씨에게 살해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고발뉴스 이상호(51) 기자에게 법원이 “서씨에게 총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 정은영)는 29일 서씨가 이상호 기자와 고발뉴스, 김씨의 형인 김광복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고 이렇게 밝혔다. 앞서 서씨는 이씨와 김광복씨, 고발뉴스에 대해 각각 3억원, 2억원,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에서 서씨를 ‘악마’라고 표현한 것, 음악 저작료를 독식하고 딸을 방치했다고 쓴 것 등이 허위사실로 인정된다”면서 “이로 인해 서씨의 인격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에 “이씨 개인이 2000만원, 고발뉴스와 공동으로 3000만원을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광복씨에 대해서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김광복씨가 언론 인터뷰를 한 것 중 허위사실이 있긴 하지만 이는 공적인 관심 사안이었기에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고, 이씨처럼 서씨를 용의자라는 등 단정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밝혔다. 영화와 관련한 명예훼손 부분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영화는 김씨의 사망과 관련해 일부 과장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이 사건이 공적인 관심 사안이고 그 전부터 의문이 제기돼왔다는 점에 비춰볼 때 표현의 자유를 벗어나 서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2017년 8월 이 기자는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을 통해 김씨가 서씨에게 살해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관객을 중심으로 김씨의 사망 원인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김씨와 서씨의 딸인 서연양 역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숨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김광복씨가 2017년 9월 서씨를 유기치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지만,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혐의없음’이라고 결론 내렸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여성해방 진두지휘, 6·10만세운동 주도…파란만장했던 ‘최고 미인’

    여성해방 진두지휘, 6·10만세운동 주도…파란만장했던 ‘최고 미인’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대표적인 인물은 이동휘(대통령장,1995년) 선생이다. 2005년 3·1절에 몽양 여운형(대한민국장) 등 사회주의 계열 54명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는 등 2007년까지 다수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훈장을 받았다. 그중에 주세죽이 있다.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부인. 코뮤니스트. 당대의 ‘얼짱’. 3·1만세운동과 6·10만세운동에 참여한 항일투사. 여성해방운동가.” 주세죽의 일생은 파란만장하고 비극적이다. 주세죽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돼 왔다. 수년 전 손석춘 작가의 ‘코레예바의 눈물’과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 이야기’를 통해 생애가 알려졌다. ‘코레예바의 눈물’은 손 작가가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여행을 갔다가 발견한 주세죽의 자필 기록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주세죽은 함남 함흥에서 태어났다. 호적상으로는 1901년생이다. 중농 집안에서 태어난 주세죽은 영생여학교 고등과에 다녔고 피아노 실력이 출중했다고 한다. 1919년 3월 3일 함흥 장날,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주세죽도 참가했다가 붙잡혔다. 한 달 동안 입에 담기 어려운 모멸적인 성고문을 받고 출소했다. 풀려난 주세죽은 함흥 시내 병원에서 간호 보조원으로 일했다. 일본인 의사의 성추행에 또다시 진저리를 친 주세죽은 중국 상하이 유학을 결심했다. 그곳에는 한 살 아래 친구 허정숙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피아노를 공부하러 간 상하이에서 주세죽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허정숙의 소개로 박헌영을 만났다. 박헌영, 김단야 등은 주세죽이 오기 한 달 전인 1921년 3월 고려공산청년회를 결성했다. 박헌영은 책임비서였고 주세죽도 고려공청에 가입해 기관지 ‘올타’를 편집하는 등 사회주의 활동을 벌였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동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박헌영을 뒤따라 주세죽은 1922년 3월 조국으로 돌아왔다. 조국에서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벌이겠다는 의지에 불타 있었다. 먼저 갔던 박헌영과 허정숙의 남편 임원근, 김단야는 귀국 정보를 알아낸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세 사람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고 평양형무소에 수감됐다. 주세죽은 여성해방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당대 조선 최고의 미인으로 통했다. 박헌영의 친구인 소설가 심훈은 대리석으로 깎은 얼굴이라고 했다. 주세죽을 모델로 ‘동방의 애인’이라는 소설도 썼다. 주세죽, 허정숙, 김단야의 동거녀 고명자를 당시 언론은 여성 트로이카라고 불렀다.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은 남자 삼총사였다. 주세죽과 허정숙은 반봉건, 여성해방의 뜻으로 단발머리를 했다. 주세죽은 허정숙, 정종명 등과 함께 1924년 5월 서울 천도교회관에서 조선여성동우회 창립총회를 열었다.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조직이었다. 고무공장, 비단공장, 정미소를 찾아다니며 강연회와 토론회를 열었다. 여성 항일운동단체 근우회에도 동참했다. 1925년 5월 조선공산당이 출범했다. 조선공산당을 추동할 조직인 고려공산청년회도 창립했다. 박헌영이 고려공청 책임비서를 맡았고 주세죽은 후보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우발적인 술자리 사고로 조직이 탄로 났다. 김단야만 피신했고 주세죽, 박헌영, 임원근, 허정숙이 검거됐다. 주세죽은 증거 부족으로 한 달 만에 풀려났다. 순종의 국장일인 1926년 6월 10일, 주세죽은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또 보름 만에 풀려났다. 주세죽은 만세운동을 기획한 공청 중앙위원이었지만, 박헌영이 아니라고 보호했기 때문이다. 박헌영은 심한 고문을 받았고 정신이상자가 됐다. 그러나 이는 위장이었다. 박헌영은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주세죽과 박헌영은 요양을 이유로 함흥으로 간 뒤 소련 블라디보스토크로 배를 타고 탈출했다. 임신한 주세죽은 도착하자마자 딸 영(影)을 낳았다. 1928년이었다. 그해 11월 두 사람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김단야가 먼저 가 있었다. 김단야는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조선담당관이었다. 주세죽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박헌영은 국제레닌학교에 입학했다. 박헌영은 주세죽에게 ‘코레예바’라는 러시아식 이름을 지어줬다. 고려의 여성이라는 뜻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두 사람은 1932년 초 딸을 국제유아원에 맡겨놓고 상하이로 갔다. 영에게 ‘비비안나’라는 다른 이름을 지었다. 상하이에서 주세죽은 박헌영과 조선공산당 활동을 지원하고 기관지를 국내로 들여보냈다. 이듬해 7월 박헌영은 체포됐다. 그 사이 주세죽과 김단야는 도망쳤다. 김단야는 박헌영이 고문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주세죽을 연모한 김단야의 거짓말이었다. 그러고는 사랑을 고백했다. 둘은 1934년 1월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박헌영이 죽었다고 믿은 주세죽은 김단야와 결혼했다. 1937년 소련은 일제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씌워 김단야를 체포했다. 이성태란 사람의 모함이었다. 이듬해 2월 13일 석 달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주세죽도 5년 유배형을 받았다. ‘제1급 범죄자의 아내로서 사회적 위험분자’라는 죄목이었다. 1938년 5월 주세죽은 유배지 카자흐스탄으로 떠났다. 김단야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은 유배지에 도착하자마자 병에 걸려 죽었다. 유배지 크질오르다는 사할린에서 활동하던 홍범도 장군이 강제이주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광복 후 지하에서 활동하던 박헌영은 월북한 뒤 1946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주세죽은 프라우다지에 난 기사를 보고 박헌영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당시 18세이던 비비안나에게 아버지임을 알렸다. 박헌영은 주세죽이 유배된 사실을 알고 최대한의 배려를 요청했다. 주세죽은 그다음 날 거주 제한이 풀렸다. 박헌영은 비비안나를 만났다. 그러나 주세죽을 만날 의사는 없었다. 주세죽은 스탈린에게 조선으로 보내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다. 스탈린은 거부했다. 주세죽은 딸에게로 가다 병에 걸려 숨을 거두었다. 휴전 회담이 한창이던 1953년 나이 52세 때였다. 두 남자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박헌영은 김일성에게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3년 후 죽임을 당했다. 주세죽의 첫 남편은 미제 스파이, 두 번째 남편은 일제 스파이로 몰려 죽은 것이다. 허정숙은 북한 문화선전상,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등을 지내고 1991년 89세로 사망했다. 고명자는 일제의 고문으로 원치 않는 전향을 했다가 친일적인 글을 쓰기도 했고 6·25 전쟁 중에 사망했다.1989년 소련 당국은 주세죽과 김단야를 사면했다. 1991년 박비비안나는 한국을 방문했다. 박헌영의 고향 충남 예산에서 가져간 흙을 주세죽의 묘비에 뿌려줬다. 비비안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무덤이라도 있는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행복한 편입니다.” 비비안나는 무용수와 대학교수로 활동하다 2013년 사망했다.우리 정부는 2007년 주세죽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김단야에게는 독립장을 추서했다. 임원근은 앞서 1993년 애국장을 받았다. 중국 태행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사망한 윤세주(독립장)와 진광화(애국장)도 건국훈장을 받았다. 님 웨일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 김산(장지락)에게도 2005년 애국장이 추서됐다. 그러나 아직도 복권되지 못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빨갱이’에게 무슨 훈장이냐”는 우파의 공격을 받고 있다. 전쟁과 분단을 겪은 현실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념의 무덤에서 독립유공자를 파내는 일을 멈춰선 안 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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