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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필 기념관 문연다

    독립운동가인 서재필(1864∼1951) 박사 기념관이 다음달 8일 고향인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에서 문을 연다.29일 서재필기념사업회에 따르면 124억원을 들인 서재필기념관이 7월8일 서재필기념공원에서 기념사업회와 광복회, 지자체, 주민 등이 모인 가운데 문을 연다. 기념관은 2004년 완공된 뒤 운영비 부담과 관리주체 등을 둘러싸고 전남도와 보성군, 기념사업회측이 의견을 달리해 뒤늦게 개관한다. 서재필기념관은 지난해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보훈시설로 지정돼 해마다 2000만원을 지원받는다. 또 전남도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000만원을 운영비로 받는다. 기념사업회가 공원 운영을 맡는다. 기념공원에는 4만 5700㎡에 서 박사 기념관과 독립문 모형, 사당, 조각공원, 동상, 야외공연장 등이 세워졌다. 기념관에는 8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된다.보성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생각나눔 NEWS] 한국인 가미카제 위령비 논란

    [생각나눔 NEWS] 한국인 가미카제 위령비 논란

    일본의 유명 여배우이자 대표적인 친한파로 알려진 구로다 후쿠미(52)가 28일 서울신문사를 찾았다. 구로다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경남 사천에 세워졌던 일본 자살특공대 가미카제 대원인 한국인 탁경현의 위령비에 대한 소회를 털어놨다. ●구로다 “강제 징집된 탁경현 영혼 위로” 구로다는 탁경현의 고향인 사천에 위령탑 건립을 추진해왔다.17년전 어느날 “나는 조선인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이름을 달고 죽었다.”면서 원한을 풀어달라는 젊은이의 꿈을 꾼 게 계기였다. 구로다는 가미카제 관련 자료를 뒤졌고 사천시에서 태어난 25살 청년이 자살특공대로 투입돼 오키나와 앞바다에서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 확인 끝에 위령비를 건립해 주겠다고 결심한 구로다는 지난해 사천시에 이같은 의사를 전달했다. 사천시도 흔쾌히 건립부지를 내줬고 지난 10일 위령비 제막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광복회와 사천 시민단체들이 “탁경현은 일본을 위해 목숨을 버린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이라고 반대하고 나섰다. 그래서 제막식은 열리지 못했고, 위령비는 지난 13일 철거됐다. 구로다는 “광복회 등의 의견도 충분히 존중한다.”면서 “다만 부지까지 내준 사천시가 임의대로 비석을 철거한 것은 서운하다.”고 말했다. ●광복회 “日 일등공신 추앙… 자원 틀림없어” 탁경현의 위령비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그의 자격 시비다. 구로다는 “탁경현의 유족에 따르면 한국에 있는 가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징집 전에 스스로 일본에 갔고 그의 영혼은 불쌍하게 일본인 이름으로 떠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복회는 “가미카제는 일본이 일등공신으로 받드는 만큼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탁경현의 자원입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천시는 “일본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탁경현은 9살 때 건너가 의료전문대학을 나오고 곧바로 군대에 자원했지만, 당시 상황상 순수한 자원입대로 보기는 힘들다.”고 모호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천시는 구로다의 좋은 뜻은 인정하지만 비석을 다시 세우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사천시 관계자는 “다만 비석에서 탁경현이라는 이름을 없앤다면 다시 공론화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구로다는 “이미 비석을 세우기 전에 제안한 바 있고 오히려 시측에서 이름을 빼면 의미가 없다고 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에 강제로 징집되어 죽은 한국인의 영혼을 위로하려는 진심이었으므로 합의점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신임 광복회장에 김영일씨

    광복회는 13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신임 회장에 김영일(83)씨를 선출했다. 김 회장은 평북 정주 출신으로 전 육군대학 총장과 한국해외개발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국내 진공작전을 위한 미 OSS특수훈련에 참가하기도 했다.
  • 3개 5·18관련단체, 법정단체로 통합될까

    5·18 28돌을 맞아 5월 관련 대표적 3개 단체의 통합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5·18유족회, 구속 부장자회, 부상자회 등 3개 단체는 지난 3년여동안 법정 단체로의 통합을 꾀했으나 구성원간 갈등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어 왔다. 12일 이들 단체에 따르면 각 단체의 집행부가 이번 28주년 기념일이 끝나는 대로 함께 모여 통합을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통합에 이르기까지는 조직 구성, 회원 갈등,5·18기념재단과의 관계 설정 등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5·18단체가 통합돼 법적 지위를 인정받을 경우 광복회나 4·19기념사업회 등처럼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보훈처도 이들 단체가 통합되면 국비지원과 함께 비슷한 성격의 행사들이 각 단체별로 중복 개최되는 폐단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 통합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5·18단체들도 보훈처의 이 같은 요구에 공감을 나타내고 단체 내부적으로 의견을 조정하는 등 통합에 나섰다. 그러나 각 단체의 입장이 달라 이견 조정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5·18 단체들은 하나의 공법단체를 만든 뒤 3개 단체가 공법단체 내에서 분과위원회 형식으로 기존의 단체 성격을 유지한 채 통합되고 공동 회장을 두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5·18구속부상자회는 회장과 이사·감사 등 임원진 구성 문제를 놓고 회원 간 첨예한 갈등이 야기된 만큼 내부 문제가 해결돼야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그동안 국비를 지원받아 5·18 관련 기념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5·18기념재단과의 관계 설정 문제도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어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5·18단체 관계자는 “회원들이 단체 통합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 공감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내부 문제 등 때문에 진척되지 못했다.”며 “이번 28돌 기념행사가 끝나는 대로 집행부 차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영원한 YMCA맨’ 전택부 선생이 말하는 스승 스코필드 박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영원한 YMCA맨’ 전택부 선생이 말하는 스승 스코필드 박사

    ‘아, 스코필드 박사님/호랑이 할아버지 사모합니다./병상에 누워계실 때 찾아가 문안 드리면 ‘난 호랑이가 아니요, 고양이요’/임종이 가까워져서 찾아가 문안드리면/‘난 고양이가 아니요, 참새요.’하며 눈시울을 적시던 호랑이 할아버지, 지금도 할아버지를 사모합니다.’ 올해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38년 전에 떠난 스승을 그리워하며 쓴 추모시 중 일부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Schofield)로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에서 의료, 선교, 독립운동 보도 등의 활동을 한 영국 출생의 캐나다인이다. 한국의 3·1운동을 적극 지지해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렸고,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지난달 10일, 주한 캐나다대사관 1층 로비에서 스코필드 박사를 기리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스코필드 박사가 1970년 4월12일 81세로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임종을 끝까지 지켜봤던 오리 전택부(93) 선생은 이날 행사장에서 ‘호랑이 할아버지, 영원히 사랑합니다’라고 다시 한번 읊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이날은 또 ‘호랑이 스코필드 동우회’(회장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발족식도 함께 열려 캐나다 대사관 신축건물 1층을 ‘스코필드 홀’로 명명했다. 행사에는 데이비드 피터슨 캐나다 토론토대 총장, 김국주 광복회 회장, 김한중 연세대 총장 등의 인사가 참석했다.‘호랑이 스코필드’는 한국명 ‘석호필(石虎弼)’의 ‘호(虎)’와 그의 강직한 성품을 기리는 뜻에서 이름 지었다. ‘영원한 YMCA맨’으로 불리는 오리 전택부 선생. 그는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다. 스승 스코필드 박사와의 각별한 사제지간의 정이 그 첫번째. 그리고 ‘스승의 은혜’의 노랫말을 지은 아동문학가 강소천이다. 소천과는 한 고향에서 태어나 학교를 같이 다녔다. 함흥 영생고보 시절, 소천은 일본인 교사의 조선학생 차별대우에 항의해 동맹휴학을 주동했다가 퇴학당한 친구 오리 전택부를 통해 항일사상을 길렀다. 둘은 6·25전쟁으로 헤어졌다가 휴전 직후 서울에서 다시 만났는데, 오리는 기독교계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잡지 ‘새벗’의 주간으로 있었다.1955년 오리가 ‘사상계’로 옮길 때 소천을 새벗의 주간으로 추천할 정도로 절친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에서 노년을 보내는 오리를 만났다. 그의 아호는 ‘전택부’의 오리 ‘부(鳧)’에서 따왔다. 어린 시절 오리의 부모가 귀엽다는 이유로 “오리야, 오리야!”라고도 불렀다. 한자로는 ‘나의 동리’라는 뜻에서 ‘오리(吾里)’로 적는다. 그의 집에 들어서자, 맨 먼저 벽에 걸린 김동리 선생의 친필 ‘낙도안덕(樂道安德)’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궁금해 하자 오리는 “1975년 YMCA총무를 퇴임하면서 ‘무슨 재미로 사나’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을 때 동리가 축사한 뒤 직접 써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코필드 박사는 우리보다 더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아꼈다며 스승을 회상했다. “2001년 4월20일, 주한 캐나다 대사관 주최로 스코필드 박사의 유품 전시회가 있었지요. 이때 보관해왔던 유서원문과 유품을 기증했습니다. 나더러 조사(弔詞)를 하라고 하기에 (앞에 언급된)‘호랑이 할아버지 사모합니다.’라고 읊었더니 그걸 전시장에 액자를 만들어 내걸더군요.” 스코필드 박사와의 인연은 오리가 서울YMCA총무를 맡았을 때였다. 당시 전택보 YMCA 이사장이 빈털터리나 다름없는데다 소아마비로 다리까지 불편해 절뚝거리는 스코필드 박사에게 승용차를 선뜻 선물했다. 이때 스코필드 박사는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YMCA를 왕래했고 오리는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3·1운동 때 스코필드 박사는 어떤 역할을 했나요. “그 분이 1916년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가 3·1만세 때 죽거나 다친 많은 시민들을 위해 구호활동에 앞장섰습니다. 당시에는 세브란스병원 의과대학 교수였지요. 특히 경기도 화성군 제암리 사건 때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폭로했지요. 오늘 새로 밝힐 것도 있습니다. 그해 4월15일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병사들이 제암리 외에 화성군 수촌마을까지 급습했습니다. 교회당과 집집마다 사람을 가둬놓고 불을 질렀지요. 무차별 총질로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 불도 못 끄고 마을의 42가구 중 40가구의 식구들이 대부분 불에 타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스코필드 박사는 자전거로 수촌마을을 오고가며 부상자들을 치료했지요. 이로 인해 스코필드 박사는 국외로 추방됐는데 ‘끌 수 없는 불꽃’이란 책을 써서 한민족의 의거를 세계만방에 알렸지요. 광복 이후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에 와서 훈장을 받았습니다.” 오리는 이같은 스코필드 박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76년 4월19일 수촌마을에 3·1운동 기념비를 세웠다. 이때 직접 비문을 지었다.‘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인생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더니, 여기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와 의좋게 오래 살며, 길이 길이 낙원을 이루리라.’ ▶스코필드 박사는 동물도 무척 아꼈다고 하던데요. “맞아요. 하루는 침통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기에 까닭을 물었더니 ‘내 동생이 죽었어.’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캐나다에서 동생소식이 왔나요?’라고 다시 물었더니 ‘아니야, 내 동생이 창경원에 있잖아. 창경원에 문제 많아요, 그래서 내 동생이 죽었어.’라고 해요. 그날 아침 신문에 호랑이 한 마리가 죽었다는 신문을 보고 슬퍼했던 것입니다.” ▶유서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나요. “모 고아원에 돈 얼마 주고,YMCA에는 얼마 주고, 누구누구에게는 얼마를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갑을 열어봤더니 미화로 2500달러밖에 없었는데 주라는 돈은 4000달러 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돈을 더 보태 유서대로 했지요.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도 그 분은 많은 학생들과 고아들에게 돈을 주면서 ‘돈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라고 하셨지요.” 스코필드 박사는 월남 이상재 선생을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그리고 캐나다 출신 선교사 게일(G.S.Gale·연동교회 창설자)과 에비슨(O.R.Avison·세브란스의전 창설자) 등이 토론토대학의 선배이자 한국 YMCA창설자였기 때문에 오리에게 YMCA회관 재건에 쓰라며 30달러,50달러씩 돈을 자주 주었다고 한다. “돌아가실 때까지 그분은 서울대 관사에서 혼자 사셨지요. 자식 얘기가 나오면 ‘한국에 아들과 딸들이 많이 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연금과 지지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여생을 보냈지만 1년 내내 옷 한 벌 사 입지 않고 그 돈을 모았다가 불우 이웃을 위해 썼습니다.” 오리는 스코필드 박사의 유지를 제대로 받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몇번 되뇌었다. 오리는 서울에서 살다가 두 달 전에 도곡리로 이사를 왔다. 서울여대 교수로 있는 아들이 새로 집을 지어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는 것. 오리는 “아들이 어릴 적 우리 고향집처럼 지었어.”라면서 “나는 일제때 공산주의자였지…, 문익환, 장준하 등도 다 내 친구이고 후배였는데 먼저 갔어.”라고 덧없는 세월을 잠시 떠올린다. 그는 최근 ‘에세이문학’ 봄호에 자신의 마지막 글 ‘상사화의 비밀’이라는 수필을 썼다고 했다.100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라고 하자 “(인심)쓰는 김에 넉넉하게 200살로 하면 안 되겠나.”며 웃는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마당까지 배웅나온 오리는 “참, 스승의 날이라고 했지, 독립운동가였던 여천 이용설(1895∼1993) 선생 있잖아. 그분도 스코필드 박사를 스승으로 무척 존경했다고 꼭 좀 써줘.3·1운동으로 일본 경찰에 쫓길 때 스코필드 박사가 많이 도와주셨거든.”이라고 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항일 언론인 배설 선생 100주기 추모식

    항일 언론인 배설 선생 100주기 추모식

    구한말 박은식·양기탁·신채호 선생과 함께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항일 언론투쟁을 한 배설(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선생의 100주기 추모식이 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묘지 1묘역에서 열린다. 광복회와 배설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 한국언론재단 등이 후원한다. 행사는 배설 선생 항일 언론투쟁 보고와 추념사, 진혼무, 헌화 등 순서로 진행된다. 진채호 기념사업회장과 김양 국가보훈처장, 김국주 광복회장,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김명서 서울신문사 상무이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배설 선생은 1904년 3월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영국 런던의 데일리 크로니클지 특별 통신원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일제의 만행을 보다 못해 회사를 사직하고 같은 해 7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 일제의 국권 찬탈 음모를 고발하고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 당시 고종황제와 우국지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일제의 계속되는 언론 탄압과 외교 마찰을 우려한 영국 정부의 압력, 신문사 간부진의 구속과 경영난 등으로 1908년 5월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돼 1909년 5월1일 37세의 나이로 숨졌다.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감사원 “우리 위상이…”

    감사원 직원들이 새 정부 들어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며 강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행정 기관과 공무원의 직무에 대한 감찰을 수행하는 대통령 직속 사정기관으로서의 예우가 과거 정부와 다르다는 것. 감사원은 지난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9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전윤철 감사원장의 자리 배치 문제를 놓고 청와대, 행정안전부와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3일 “당초 청와대와 행정안전부는 전 감사원장을 기념식 단상 위가 아닌 아래쪽으로 자리를 배치했다가 감사원측으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아 단상 위로 재배치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3·1절 행사를 준비하는 청와대와 행정안전부 측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부부와 김국주 광복회장 등 독립유공자들이 나란히 단상에 입장하는 등 과거 권위적인 행사 진행에서 과감히 탈피한 ‘파격 행보’를 보였다. 이런 과정에서 그동안 대통령 내외,3부 요인과 나란히 단상 위에 앉았던 감사원장 자리가 단상 아래로 밀려났다. 전 원장을 다른 국무위원들과 같이 단상 아래로 앉도록 한 것. 반면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시장은 단상 위에 자리를 차지해 감사원측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후문이다. 감사원측은 “감사원장은 부총리급”이라면서 “감사를 받는 행정안전부장관과 서울시장이 단상 위에 오르고, 감사원장이 단상 아래에 앉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청와대 등에 제시했다. 결국 전 원장은 원 장관, 오 시장과 함께 단상 위 두번째 줄에 나란히 앉게 되면서 자리배치 문제는 일단락됐다. 감사원은 그동안 감사원 출신이 맡았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현 민정 2비서관) 자리도 법무부측에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이 자리는 총리, 장관 등 고위공직자 인선을 검증하는 공직자 ‘존안파일’을 갖고 있는 핵심 포스트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3월 독립운동가’ 장인환 선생

    ‘3월 독립운동가’ 장인환 선생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및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100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친일 외교관 D W 스티븐스를 처단한 장인환(1876∼1930)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평안남도 평양 태생인 선생은 1904년 미국 하와이로 노동이주자로 건너간 뒤 미국 본토로 옮겨 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주 한인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선생은 1908년 3월 대한제국 외교고문으로 있던 스티븐스가 일제의 지령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제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 선전활동을 펴자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 선생은 같은 달 23일 워싱턴으로 출발하기 위해 부두에 도착한 스티븐스에게 전명운 의사가 권총을 발사했으나 불발하자 뒤이어 권총을 3발 발사,2발을 가슴 등에 명중시켜 절명케 했다. 미국 경찰에 체포돼 구속된 선생은 법정에서 “스티븐스가 을사보호조약을 찬성해 죽이지 않으면 우리 동포가 멸망하게 되겠으므로 내가 신명을 내놓고 이 일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해 동포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같은 해 12월 미 법정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그는 1919년 가석방된 데 이어 1924년 자유의 몸이 됐다.1927년 잠시 귀국했다가 같은 해 10월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 생활하던 중 병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와 함께 전쟁기념관은 이날 비무장지대(DMZ)에 침투한 무장간첩을 소탕하고 전사한 최병연(1948∼1971) 육군 상병을 ‘3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정부는 최 상병의 전공을 기려 충무무공훈장과 함께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6일 유족과 육군·유관단체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최 상병을 추모하는 현양행사를 갖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서울시 3·1절 기념 타종행사

    서울시는 제89주년 3·1절을 기념해 다음달 1일 낮 12시에 종로 보신각에서 타종행사를 갖는다고 27일 밝혔다. 올해 타종행사에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주웅 서울시의회 의장, 김충용 종로구청장을 비롯해 독립운동가인 고(故) 남상은 선생의 아들 남만우(78) 광복회 사무총장, 고 이필주 선생의 손자 이현기(66) 민족대표 33인 유족회장, 고 권득수 선생의 손자 권중찬(69)씨가 참여한다. 또 매년 4억원가량을 기부해온 가수 김장훈(40)씨,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 은메달 주역인 임오경(37) 서울시청 핸드볼팀 감독, 선로에 떨어진 승객을 구한 서울메트로 안현철(42) 기관사, 국내 최초의 외국인 출신 동장인 리위옌(35) 연남글로벌빌리지센터장, 총 242회의 헌혈을 한 특전여단 노규동(47) 원사,120다산콜센터 우수상담원 박하나(22)씨 등도 참가한다. 이들은 이날 4명씩 3개 조로 나눠 11번씩, 모두 33번의 종을 치게 된다. 3·1절 타종 행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펼친 애국지사의 정신을 기리고,3·1운동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1953년부터 계속해 왔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부고] 광복군 활동 김승곤 전 광복회장

    [부고] 광복군 활동 김승곤 전 광복회장

    일제 강점기 조국 독립을 위해 중국에서 광복군 등으로 활동했던 김승곤 전 광복회장이 2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93세. 전남 담양 태생인 김 선생은 1933년 중국으로 망명, 민족혁명당에 가입한 뒤 난징(南京)에서 민족혁명당 특무부 간부로서 비밀 정보활동에 종사했다.38년 10월 조선의용대 창설에 참여하고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광복군 제1지대에서 근무했다. 92년 광복회 회장을 지낸 선생은 독립기념관 이사장과 대한애국동지회 회장, 한국독립동지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발인은 26일 오전 9시 30분.(02)3478-2899.
  • 독립투사 조문기 선생 겨레장

    일제강점기 ‘부민관 폭파 의거’의 주역인 고(故)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의 영결식이 시민사회단체가 민족운동에 헌신한 인물을 위해 마련한 겨레장(葬)으로 엄수됐다. 겨레장은 1994년 세상을 떠난 고 문익환 목사 장례식에 이어 두번째로 열렸다. 조 선생은 1999년 민족문제연구소 2대 이사장에 취임해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애썼지만 발간을 불과 6개월 앞둔 지난 5일 지병으로 별세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1일 오전 중구 정동 성공회대성당 성프란시스홀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신부, 백기완 선생, 김국주 광복회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고진화·김희선 의원 등 시민사회단체 및 정계 인사 등이 대거 참석했다. 임헌영 소장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인용해 “선생은 늘 우리 곁에 계실 것”이라며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눈앞에 두고 가셔서 안타깝다.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한 선생의 뜻을 우리가 이어가겠다.”고 추도했다. 고인은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에 안장됐으며, 정부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키로 하고 지난 10일 빈소를 방문해 유족들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부고] 최고령 애국지사 김종호 선생 별세

    [부고] 최고령 애국지사 김종호 선생 별세

    전국 최고령 애국지사인 김종호 선생이 21일 오전 1시쯤 경북 경산시 진량읍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101세. 경산시 봉회교회(옛 진량 제일교회)의 장로였던 고인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부하며 항일운동을 펼치다 1943년 11월17일 체포돼 1년 동안 옥고를 겪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7년 건국 포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 아들 병영·대영·일영씨와 딸 애영·순자·영자씨 등 3남3녀가 있다. 빈소는 경산시 중방동 경산대경병원 영안실(053-812-4004)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3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이다. 광복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작고한 애국지사 중 최고령은 2003년 11월 향년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고 이강훈 선생이었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단국대 22대 이사장 박유철씨

    학교법인 단국대는 7일 제22대 이사장에 박유철 전 국가보훈처장을 선임했다. 박 이사장은 광복회 부회장,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 [Local] 독립운동가 박상진 생가 복원

    울산 출신으로 대한광복회 총사령관을 지낸 독립운동가 박상진(1884∼1921) 의사의 생가 복원 사업이 끝나 광복절인 15일 오전 11시 준공식과 추모제가 열린다. 울산시는 사업비 12억 9800만원을 들여 북구 송정동 생가 2245㎡ 부지에 안채 보수를 비롯해 곳간채·날개채·사랑채·아래채·대문간채 등 건물 6동을 복원했다. 시는 추가로 10월까지 전시실을 조성하고 주변 3만 6000㎡를 역사공원으로 조성한다.
  • [Seoul In] 헐버트박사 58주기 추모식

    마포구(구청장 신영섭) 3일 오전 11시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호머 헐버트 박사 서거 58주기 추모식을 연다. 추모식에는 헐버트 박사의 외손녀를 비롯해 김정복 국가보훈처장, 신영섭 마포구청장, 김국주 광복회장, 제프리 존스 암참 명예회장 등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헐버트 박사는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내한해 1909년까지 교육선교사로 활동했다. 문화체육과 330-2512.
  • ‘헤이그 특사 100주년’ 기념행사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100주년을 맞아 당시 현지에 파견돼 일제의 침략상을 고발한 이상설·이준·이위종 특사의 활동을 기념하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 광복회는 27일 오전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헤이그 특사파견 10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김정복 국가보훈처장과 광복회원, 유가족 등 300여명이 참석한다. 헤이그특사 100주년 기념우표도 발행된다.27일부터 전국 우체국에서 160만장이 판매된다. 이날 잠실 올림픽공원 일대에서는 헤이그 특사의 활동을 기리기 위한 자전거 대행진도 펼쳐진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사설] 군위안부 박물관도 광복의 역사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 추진하고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이 광복회의 반대로 진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광복회는 목숨을 걸고 광복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들과 일본군 위안부는 격이 다르다는 이유로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독립공원에 박물관이 들어서면 성지의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광복회가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은 서대문 형무소 자리를 독립운동의 성지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독립공원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며 격을 따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여성인권박물관은 강제연행된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일본군의 만행을 기록해 후세에 남기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킨다는 취지로 추진돼 왔다.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에서는 숱한 민중이 부당한 폭력과 수탈을 당했다. 국권을 찾으려고 일제에 항거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이 있는가 하면 공포에 떨며 저항 한번 못하고 끌려가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정대협이 광복회 주장을 위안부 문제를 수치로 여기는데서 나온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박물관을 짓지 말라는 압력 속에서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광복회 요구를 공개하지 못했다고 한다. 광복의 역사는 독립운동을 포함한 이 땅에서 고통을 겪은 모두의 역사이기도 하다. 미 하원도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하는 마당에 독립공원에 지으려는 위안부 박물관에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 8일 배설선생 서거 98주년 추모행사

    사단법인 배설(베델)선생기념사업회는 8일 오전 11시 한국언론재단과 공동으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배설(베델) 선생 서거 제98주년 추모기념행사’를 개최한다.서울신문과 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 서울특별시 등이 후원하고 노진환 서울신문 사장, 김국주 광복회장, 정남기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등이 추모기념사를 낭독한다.
  • 독립기념관 ‘국채보상운동 어록비’ 제막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27일 충남 천안 기념관내 애국시어록비공원에서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 운동을 주도한 김광제·서상돈 선생의 어록비를 제막했다. 국채보상운동 어록비가 건립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록비는 높이 2.6m, 너비 1.8m 크기로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두 선생이 1907년 2월21일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에 게재한 ‘국채 1300만원 보상취지서’가 새겨져 있다. 취지서에는 “지금 국채 1300만원이 있으니 이것은 우리 한국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2000만 민중이 3개월 기한하여 담배 피우는 것 폐지하고 그 대금으로 매인에게서 매달 20전씩 거두면 계산해서 거의 1300만원이 되겠습니다.…저희들이 여기서 감히 발기하여 취지를 알려드리어 혈루로 호소합니다.”라고 써 있다. 이날 제막식에는 두 선생의 유족과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 광복회 등 유관기관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했다.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새해 ‘이달의 독립운동가’ 13명 선정

    저항시인 윤동주, 독립운동단체 신간회 부회장을 지낸 권동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활동한 이위종 등 13명이 2007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국가보훈처는 21일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내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해 발표했다. 내년이 신민회 창건과 국채보상운동, 헤이그특사 파견 100주년이라는 점을 고려해 관련 인물들이 대거 뽑혔다. 신민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임시정부 연통제 참사를 지낸 임치정,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김광제·서상돈 등이 대표적이다. 순국 100주년을 맞는 의병장 정환직·권득수, 탄생 150주년을 맞는 구춘선 북간도 대한국민회 회장, 좌·우합작 여성운동단체 근우회를 창립한 조신성 등도 함께 뽑혔다. 보훈처는 국민들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이달의 독립운동가 카페(cafe.naver.com//bohunstar)를 개설,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은 월별 독립운동가 명단이다. 임치정(1월), 김광제·서상돈(2월), 권동진(3월), 손정도(임시정부 교통총장·4월), 조신성(5월), 이위종(6월), 구춘선(7월·대한독립군단 결성), 정환직(8월), 박시창(9월·한국광복군 상하이지대장), 권득수(10월), 주기철(11월·신사참배 거부 옥사), 윤동주(12월).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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