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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침몰-수색 상황] 해경, 구조 동영상 공개도 뒷북… 압수수색 직전 ‘언론플레이’

    [세월호 침몰-수색 상황] 해경, 구조 동영상 공개도 뒷북… 압수수색 직전 ‘언론플레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목포 해양경찰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한 28일 해경이 뒤늦게 세월호 구조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해경이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의 교신 내용도 늦게 공개한 데다 이번에는 압수수색을 앞두고 영상을 공개하면서 “해경이 검찰 수사를 의식해 언론 플레이를 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공개된 영상은 지난 16일 사고 현장에 처음으로 출동한 목포해경 소속 경비함 123정(100t급)의 한 직원이 개인 휴대전화 카메라를 이용해 사고 당일 오전 9시 28분 58초부터 11시 17분 59초까지 주요 장면을 중간중간 찍은 것이다. 총 9분 45초 분량의 이 영상에는 승무원들이 제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가장 먼저 도착한 구조정에 올라타 도망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들은 바로 코앞에 있던 구명벌도 작동시키지 않은 채 탈출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선장 이준석씨는 팬티 차림으로 발버둥을 치며 경비정에 옮겨 타는 모습이 그대로 찍혔다. 해경이 구조 당시 영상을 사고 발생 13일 만인 이날 공개한 데 대해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는 “해경이 미숙한 초동 대처로 생존이나 구조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인 골든타임을 허비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자 이를 잠재우려고 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해경이 공개한 VTS와의 교신 내용이 조작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해경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비함 123정이 연일 사고 수습을 하느라 육지에 입항하지 않은 채 해상에서 수색을 했고 자체 자료 전송 시스템이 없어 보관 중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해경 관계자는 압수수색을 앞두고 공개한 이유에 대해 “오늘 영상을 공개한 것은 압수수색과는 상관 없다”면서 “(승무원들이 집단 탈출하는 장면을 촬영하고도 공개하지 않는 등) 계속 쉬쉬한다는 이야기가 나와 공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더 일찍 공개하지 않은 것은 합수부에서 가져간 자료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진도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첫 신고 받은 해경 상황실 전면 수사

    세월호 침몰 사고 원인 등을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해경의 초기 대응 부실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업무 태만 등에 대해 전면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합수부는 또 최초 신고자인 단원고 고(故) 최덕하(17)군에게 위도와 경도를 물어보며 시간을 지체한 목포해경 상황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27일 발부받았다. 합수부는 이날 “진도VTS와 제주VTS를 압수수색해 세월호와의 교신 내용, 항적자료, 폐쇄(CC)회로TV 등 관련 자료를 정밀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비리를 수사 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은 이날 청해진해운 등 핵심 계열사 관계자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유씨 자녀들을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 참고인들이 보복 등을 우려해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며 “만약 조사 대상자나 예정자에 대한 보복이나 위해가 있을 경우에는 끝까지 추적해 보복범죄 가중처벌 특별법을 적용해서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인천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반론보도문] 유병언 전 회장 측은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주식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밝혀왔습니다.
  • [무책임한 정부] 해수부의 ‘해피아 지우기’

    해양수산부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들이 해운사 이익단체의 요직을 꿰차 세월호 등 여객선 안전관리와 감독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책임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해수부가 선박 안전운항업무를 독립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이른바 ‘해피아’(해수부+마피아) 논란 차단에 애쓰고 있다. 해수부 관료 출신 유관단체 수장들도 줄지어 사퇴하고 있다. 해수부는 27일 “선박운항관리 업무를 해운조합에서 떼어내기로 했다”며 “그동안 여객선의 안전운항을 감독하는 선박운항관리자를 해운조합이 채용하는 구조적 한계로 단속이 엄격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수부는 우선 해운법을 개정해 안전운항관리자를 정부가 직접 채용, 운용하거나 독립된 조직을 신설해 안전업무를 위임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운항관리자는 선원에 대한 안전관리교육 실시, 선장이 제출한 출항 전 점검보고서 확인, 여객선의 승선정원 초과 여부 확인, 화물의 적재한도 초과 여부 확인, 구명기구·소화설비 확인 등 선박의 안전운항을 관리·감독하는 자리다. 해운조합은 2100여개 선사를 대표하는 단체로 1962년 출범 이래 12명의 이사장 가운데 10명이 해수부 고위관료 출신으로 ‘해피아의 온상’으로 눈총을 받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각종 비리 혐의로 해운조합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가운데 주성호 이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주 이사장은 국토해양부 차관 출신으로 해운조합이 ‘로비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영입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이에 앞서 지난 25일 선박의 안전검사와 인증을 담당하는 비영리단체인 한국선급(KR)의 전영기 회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해수부는 여객선 안전강화 대책을 마련 중이다. 비행기록 장치와 비슷한 ‘항해자료기록장치’(VDR) 탑재 의무 범위를 국제노선을 오가는 여객선 및 3000t급 이상 화물선에서 올해 말까지 새로 건조한 여객선과 새로 도입하는 중고선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미 운항 중인 여객선도 기술적인 검토를 거쳐 탑재를 추진할 예정이다. VDR은 선박의 시간대별 위치와 속력, 타각, 선수 방향, 주기관의 상태, 풍속, 풍향, 관제센터와의 통신 내용, 선교(조타실)에서 오간 대화 등이 기록되는 장치로 선박이 침몰하거나 침수돼도 그 내용이 손상되지 않고, 회수가 쉽도록 위치 발신 기능이 장착돼 있어 선박 사고 때 원인 규명에 유용한 자료로 쓰인다. 해수부는 또 연안여객선의 탑승객 신원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자 6월부터는 승선권 발권을 전산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으면 여객선을 탈 수 없게 된다. 7월부터는 차량과 화물에 대해서도 전산발권이 시행된다.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여객선 안전 혁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해수부는 다음 달까지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해수부 차관을 팀장으로 안전행정부, 해양경찰청, 소방방재청 관계자와 대학, 연구기관, 선박검사 전문기관 등 민간 전문가를 포함해 14명이 참여한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사설] 지휘당국 업무태만 엄히 묻고 처벌하라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대한민국의 공무원 누구도 예외 없이 복창해야만 하는 공무원 선서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세월호 대참사 국면에서 과연 우리 공무원들이 임명장을 받을 때 다짐한 그 선서문대로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다했는지 진지하게 되묻고 싶다. 특히 실종자 구조 등 사태 수습 과정의 난맥상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지휘 당국의 과실과 업무태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마땅하다. 일각 일초가 천금과 같은 세월호 침몰 초기에 인명 구조 비상시스템은 멈춰 섰다. 해경의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세월호가 제주 VTS에 처음으로 침몰 신고를 한 후 진도 VTS와 교신하기까지 몇 분간의 공백은 두고두고 통한으로 남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당연직 본부장인 안전행정부 장관은 일사불란하게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해야 했지만 사고 당일 오후 늦게까지 외부행사에 참석하느라 자리를 비웠다. 그 시간 구조 현장은 선장 없는 배 모양으로 우왕좌왕하다 결국 ‘좌초’했다. 위기 때 영웅과 간신이 드러난다고 했다. 단언컨대 이번 대참사에서 영웅은 이름없는 민초들이었고, 간신은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는 공직자들이었다. 세월호 여승무원, 단원고 교사와 학생, 진도 어부 등은 몸을 사리지 않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반면에 공직자들은 납작 엎드린 것도 모자라 국민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만 안겼다. 교육부장관이라는 사람은 유족들이 체육관 맨바닥에 얼굴을 묻고 대성통곡하고 있는데도 팔걸이 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고, 사또 행차하듯 희생된 학생 빈소를 찾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팽목항 구조 현장의 공직자들은 피해자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헤아리기는커녕 “지시를 받지 못했다”며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그제 진도 VTS와 제주 VTS를 압수수색했다. 초기 업무태만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교신 녹음을 변조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마당이다. 진상을 밝혀내 사실이라면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차제에 지휘 당국을 비롯한 공직사회의 업무태만 여부도 철저히 조사한 뒤 실명을 밝혀 후세의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고, 퇴직 후에도 세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재직할 때 진심전력을 다해 국민에게 봉사하라는 뜻이다. 그런 최소한의 공복(公僕) 의식도 없는 공무원이라면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 최초 신고 故 최덕하 군 의사자 지정 검토 “구명조끼라도 입었더라면…”

    최초 신고 故 최덕하 군 의사자 지정 검토 “구명조끼라도 입었더라면…”

    최초 신고 故 최덕하 군 의사자 지정 검토 “구명조끼라도 입었더라면…”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최초로 신고한 단원고 2학년 최덕하(18)군을 의사자로 지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침몰한 선미에서 발견된 최덕하 군의 시신이 24일 오후 안산 산재병원에 안치됨에 따라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 유족과 협의해 의사자 지정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침몰사고 당시 최군의 빠른 신고로 수많은 승객을 살릴 수 있었던 만큼 당시 목격자를 찾는 한편 해양경찰, 전남소방본부 등에도 사실관계 확인서류를 요청할 계획이다. 의사자 지원제도는 ‘직무 외의 행위’로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 재산을 구하다가 숨진 사람이나 그 유족을 지원하는 제도다. 의사자로 지정되면 유족에게 법률에서 정한 보상금, 의료급여, 교육보호, 취업보호 등의 예우가 주어진다. 의사자 시신은 국립묘지에 안장·이장이 가능하다. 의사자로 지정되려면 유족이나 담당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서류를 갖춰 보건복지부에 신청해야 한다. 사고 발생지역 관할 진도군이 직권으로 신청하거나 주소지 관할 안산시가 유족과 협의해 경기도를 거쳐 신청할 수 있다. 복지부는 60일간 심사를 거쳐 의사자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최덕하 군은 세월호 침몰 당일인 16일 오전 8시 52분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고 알렸다. 이는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시각이다. 최덕하 군은 당시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바꿔 드릴까요?”라고 신고했다. 해경은 최군의 신고전화를 소방본부에서 건네받고 구조선과 헬기 등을 보내 승객 174명을 구조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버지 최성웅(52)씨는 “바다를 보며 기도 밖에 할 수 없는 한심한 현실에 화만 났는데 이렇게라도 (아들이) 돌아와 줘서 정말 감사하다”며 “구명조끼라도 입었으면 가슴이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박수영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수많은 승객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정작 자신은 살아오지 못했다”며 “의로운 행동을 기리고자 의사자 지정작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최덕하 군뿐만 아니라 침몰사고 당시 의로운 행동을 한 희생자들이 더 있는지 사실관계를 파악해 의사자 지정 추진을 검토할 방침이다. 네티즌들은 “최덕하 군 의사자 지정 검토, 정말 의로운 죽음인데 꼭 지정돼야”, “최덕하 군 의사자 지정 검토, 부모님 마음이 너무 아플 듯”, “최덕하 군 의사자 지정 검토, 의로운 죽음 잊지 않겠습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故 최덕하 군 의사자 지정 검토 “침몰 신고…174명 구하는데 결정적 역할”

    故 최덕하 군 의사자 지정 검토 “침몰 신고…174명 구하는데 결정적 역할”

    故 최덕하 군 의사자 지정 검토 “침몰 신고…174명 구하는데 결정적 역할”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최초로 신고한 단원고 2학년 최덕하(18)군을 의사자로 지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침몰한 선미에서 발견된 최덕하 군의 시신이 24일 오후 안산 산재병원에 안치됨에 따라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 유족과 협의해 의사자 지정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침몰사고 당시 최군의 빠른 신고로 수많은 승객을 살릴 수 있었던 만큼 당시 목격자를 찾는 한편 해양경찰, 전남소방본부 등에도 사실관계 확인서류를 요청할 계획이다. 의사자 지원제도는 ‘직무 외의 행위’로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 재산을 구하다가 숨진 사람이나 그 유족을 지원하는 제도다. 의사자로 지정되면 유족에게 법률에서 정한 보상금, 의료급여, 교육보호, 취업보호 등의 예우가 주어진다. 의사자 시신은 국립묘지에 안장·이장이 가능하다. 의사자로 지정되려면 유족이나 담당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서류를 갖춰 보건복지부에 신청해야 한다. 사고 발생지역 관할 진도군이 직권으로 신청하거나 주소지 관할 안산시가 유족과 협의해 경기도를 거쳐 신청할 수 있다. 복지부는 60일간 심사를 거쳐 의사자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최덕하 군은 세월호 침몰 당일인 16일 오전 8시 52분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고 알렸다. 이는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시각이다. 최덕하 군은 당시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바꿔 드릴까요?”라고 신고했다. 해경은 최군의 신고전화를 소방본부에서 건네받고 구조선과 헬기 등을 보내 승객 174명을 구조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버지 최성웅(52)씨는 “바다를 보며 기도 밖에 할 수 없는 한심한 현실에 화만 났는데 이렇게라도 (아들이) 돌아와 줘서 정말 감사하다”며 “구명조끼라도 입었으면 가슴이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박수영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수많은 승객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정작 자신은 살아오지 못했다”며 “의로운 행동을 기리고자 의사자 지정작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최덕하 군뿐만 아니라 침몰사고 당시 의로운 행동을 한 희생자들이 더 있는지 사실관계를 파악해 의사자 지정 추진을 검토할 방침이다. 네티즌들은 “최덕하 군 의사자 지정 검토, 너무 슬퍼 눈물이 난다”, “최덕하 군 의사자 지정 검토, 본인은 구명조끼도 못 입었다니 안타깝다”, “최덕하 군 의사자 지정 검토, 잊지 않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부디 웃으며 지내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초 신고 단원고 학생 의사자 지정 검토 “최초 신고로 174명 구하는데 결정적 도움”

    최초 신고 단원고 학생 의사자 지정 검토 “최초 신고로 174명 구하는데 결정적 도움”

    최초 신고 단원고 학생 의사자 지정 검토 “최초 신고로 174명 구하는데 결정적 도움”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최초로 신고한 단원고 2학년 최덕하(18)군을 의사자로 지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침몰한 선미에서 발견된 최덕하 군의 시신이 24일 오후 안산 산재병원에 안치됨에 따라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 유족과 협의해 의사자 지정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침몰사고 당시 최군의 빠른 신고로 수많은 승객을 살릴 수 있었던 만큼 당시 목격자를 찾는 한편 해양경찰, 전남소방본부 등에도 사실관계 확인서류를 요청할 계획이다. 의사자 지원제도는 ‘직무 외의 행위’로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 재산을 구하다가 숨진 사람이나 그 유족을 지원하는 제도다. 의사자로 지정되면 유족에게 법률에서 정한 보상금, 의료급여, 교육보호, 취업보호 등의 예우가 주어진다. 의사자 시신은 국립묘지에 안장·이장이 가능하다. 의사자로 지정되려면 유족이나 담당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서류를 갖춰 보건복지부에 신청해야 한다. 사고 발생지역 관할 진도군이 직권으로 신청하거나 주소지 관할 안산시가 유족과 협의해 경기도를 거쳐 신청할 수 있다. 복지부는 60일간 심사를 거쳐 의사자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최덕하 군은 세월호 침몰 당일인 16일 오전 8시 52분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고 알렸다. 이는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시각이다. 최덕하 군은 당시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바꿔 드릴까요?”라고 신고했다. 해경은 최군의 신고전화를 소방본부에서 건네받고 구조선과 헬기 등을 보내 승객 174명을 구조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버지 최성웅(52)씨는 “바다를 보며 기도 밖에 할 수 없는 한심한 현실에 화만 났는데 이렇게라도 (아들이) 돌아와 줘서 정말 감사하다”며 “구명조끼라도 입었으면 가슴이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박수영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수많은 승객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정작 자신은 살아오지 못했다”며 “의로운 행동을 기리고자 의사자 지정작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최덕하 군뿐만 아니라 침몰사고 당시 의로운 행동을 한 희생자들이 더 있는지 사실관계를 파악해 의사자 지정 추진을 검토할 방침이다. 네티즌들은 “의사자 지정 검토, 꼭 지정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의사자 지정 검토, 아 가슴이 먹먹하다”, “의사자 지정 검토, 최초 신고로 174명을 구하다니 그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아! 끝내 기적은 오지 않는가

    시간은 애타게 흐른다. 물속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한 부모들에겐 1분 1초가 영겁 같을 것이다. 속은 새까맣게 탔고 침은 바짝 말랐다. 내 아들, 내 딸이 살아 돌아올까 퀭한 눈으로 기다렸건만 여태 생존자 소식은 없다. 희망의 빛줄기도 점점 가늘어져 간다. 기적은 끝내 오지 않을 것인가. 극한의 환경에서 사투를 벌인 잠수부들의 노고를 폄하하지는 않겠다. 생명을 위협하는 물살과 어둠을 뚫고 생존자를 찾으려고 몸을 던진 노력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자식과 남편의 생사 여부조차 알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의 애끊는 심정도 이해해야 한다. 해운사나 선장이나 해경이나 그들에게 안겨 준 건 깊은 절망감뿐이다.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100명이 넘는 실종자가 남은 결과를 놓고 본다면 과연 정부가 구조에 100% 온 힘을 기울였다고 자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중 구조작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물 밖에 있는 사람이 다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치에 너무 빗나갔다. 몇몇이라도, 설사 내 가족이 아니더라도 숨이 붙어 있는 채 구조돼 나오는 모습을 온 국민은 간절히 기원했다. 간절한 기원도 이제 접을 때가 된 듯하다. 그러면서 두고두고 아쉽고 분통 터지는 것은 초기 대응을 잘못한 점이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세월호가 사고 해역에 들어서 속도가 절반 가까이 떨어지고 항로를 이탈해도 알아채지 못했다. 해역에 들어온 두 시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교신하지 않았다. 견습 항해사는 가까운 진도가 아닌 제주 VTS와 먼저 교신함으로써 천금 같은 12분을 허비하고 말았다. 늑장 구조에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손치더라도 구조 과정의 잡음은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다. 민·관·군 구조대원 726명과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 등을 투입해 집중 수색하겠다는 등의 발표는 과시용 숫자놀음에 불과했다. 실제로 물속에서 작업하는 잠수부는 10여명뿐이다. 수백 명이 물속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을 설명해 줬어야 했다. 정부 말대로 민·관·군의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도 못했다.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라는 업체에 과도하게 의존한 점이다. 해군이나 해경의 구조 전문가가 아니라 민간업체가 구조를 주도한 꼴이다. 심지어 ‘언딘’은 청해진해운과 계약을 맺고 있는 업체다. 그러면서 해경은 해군 UDT 출신 등 전국 각지에서 발벗고 달려온 다른 민간 구조 자원자들은 배척했다고 한다. 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을 주지 못했다. 오죽하면 실종자 가족들이 해양수산부 장관이나 해양경찰청장을 앉혀놓고 거친 언행을 했겠는가 싶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늑장구조요, 전력을 쏟지 않은 구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고 발생 직후부터 우왕좌왕한 정부의 모습은 구조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구조 과정의 미숙함은 침몰 전의 안이한 대응이나 매한가지다. 이런 지경이니 해수부나 해경이 국가기관으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설마 “마지막 한 분까지 구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가족을 달래고 현장을 모면하기 위한 감언이었단 말인가. 기적은 손에 넣을 수 없는 신기루일지 모른다. 그러나 허황한 신기루일망정 포기하는 순간 희망도 한꺼번에 무너진다. 기적은 오지 않더라도 마지막까지 믿고 좇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다.
  • [세월호 침몰-눈물의 단원고] 첫 신고 학생… 끝내 못 돌아왔다

    [세월호 침몰-눈물의 단원고] 첫 신고 학생… 끝내 못 돌아왔다

    “살려 주세요.” “배가 침몰하는 거 같아요.” “제주도에 가고 있었는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지난 16일 오전 8시 52분.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로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앳된 목소리의 남학생은 다급한 목소리로 구조를 요청했다. 세월호 선원들이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시간이었다. 이후 이어진 목포해양경찰과의 통화에서 해경은 위도와 경도를 묻는 등 답답한 대응을 했지만 학생은 침착하게 배 이름을 ‘세월호’라고 알렸다. 목포해경은 123정(100t급)을 급파했고 함정은 오전 9시 30분쯤 도착했다. 해경 대원 3명은 고무보트로 세월호에 접근해 9시 50분까지 수십명을 구조했다. 이때 브리지(선교)에 모여 있던 이준석(69)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을 외면하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 하지만 정작 신속한 신고로 174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한 학생은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방재당국에 처음 신고를 했던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최모(17)군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 24일 해양경찰청 등에 따르면 민관군 합동구조팀 잠수요원들이 전날 오전 8시 50분쯤 가라앉은 선체 내 꼬리 부분 격실에서 최군으로 보이는 시신을 수습했다. 사고 발생 뒤 141번째로 수습된 실종자다. 해경 관계자는 “최군 부모가 시신의 인상착의를 확인한 결과 ‘아들의 시신으로 보인다’고 했다”고 밝혔다. 다만 지문, DNA, 치아 검사 등의 정확한 신분 확인 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아직은 최군으로 추정 중인 상태다. 사고 당시 최군은 “구명조끼를 입고 객실에서 기다리라”는 선내 방송을 듣고 객실에 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2학년 6반 최군의 담임교사인 남윤철(36)씨도 학생들을 구하다가 침몰선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 최군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던 지인들은 “정말 착한 아이였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군이 다니던 안산 와동성당에서 만난 한 신자는 “매주 토요일 학생 미사를 빠지지 않던 조용한 아이였다”면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인지 구김살이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차분한 성격의 최군은 사춘기임에도 부모의 속 한번 안 썩였던 속 깊은 학생이었다고 한다. 최군의 대부(천주교 교인의 남성 후견인)인 김모씨는 “최군이 내 아들과 단짝이어서 잘 안다. 사고 전 주말 성당에서 생전 처음 제주도에 간다며 참 좋아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사고 이튿날인 17일부터 20일까지 전남 진도 팽목항에 최군 부모와 함께 있었다”면서 “처음에는 구조를 바라던 최군 부모도 시간이 흐르면서 온전한 시신이나 건졌으면 하는 마음에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진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안산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세월호 속보]세월호 사고 최초 신고 학생, 결국 숨진채 발견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최초로 사고를 신고한 단원고 학생 A군의 시신이 발견됐다. 24일 해양경찰청은 전날 4층 선미 부분에서 발견된 학생 사망자 중 한 명이 최초 신고자인 A군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해경은 “A군의 부모에게 시신 인상착의를 확인한 결과 아들 시신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 지문, DNA검사, 치아 등 정확한 신분확인 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추정이라고 해경은 설명했다. 해경은 팽목항 임시 안치소에서 A군의 신분확인 절차를 밟고 있다. A군은 지난 16일 오전 8시 52분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는 첫 신고전화를 걸었다. 이는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시각이다. A군은 당시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바꿔 드릴까요?”라고 신고했다. 해경은 A군의 신고전화를 소방본부로부터 건네받고 구조선과 헬기 등을 보내 승객 174명을 구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 최초 신고한 단원고 학생, 결국 시신으로…‘3분 앞선 신고’

    [세월호 침몰] 최초 신고한 단원고 학생, 결국 시신으로…‘3분 앞선 신고’

    [세월호 침몰]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최초로 신고한 단원고 학생 A군의 시신이 발견됐다. 24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어제 4층 선미 부분에서 발견된 학생 사망자 중 한 명이 최초 신고자인 단원고 학생 A군인 것으로 추정됐다. 해경은 “A군의 부모가 시신 인상착의를 확인한 결과 아들 시신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고 밝혔다. 다만 지문, DNA검사, 치아 등 정확한 신분확인 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추정이라고 해경은 설명했다. 해경은 팽목항 임시 안치소에서 A군의 신분확인 절차를 밟고 있다. A군은 지난 16일 오전 8시 52분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는 첫 신고전화를 걸었다. 이는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시각입니다. A군은 당시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바꿔 드릴까요?”라고 신고했다. 해경은 A군의 신고전화를 소방본부로부터 건네받고 구조선과 헬기 등을 보내 승객 174명을 구조했다. 세월호 침몰, 최초신고 학생에 대해 네티즌은 “세월호 침몰, 최초신고 학생..세월호가 보낸 신고보다 3분 빠를 이유가 뭘까?”, “세월호 침몰, 최초신고 학생..결국 시신으로 돌아오다니” “세월호 침몰, 최초신고 학생,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월호 침몰, 최초신고 학생, 안타까운 소식이다 정말” 등의 애도를 표했습니다. 사진 = 방송 캡처 (세월호 침몰, 최초신고 학생)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사설] 해경의 참사 앞 헛발질 책임 엄중히 물어야

    침몰한 세월호 승객 구조 과정에서 해양경찰의 미숙한 초동대응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가 관제구역으로 진입했는데도 정확한 보고를 받지 않아 초기 구조에 적극 대처하지 못한 빌미를 제공했고, 해경 간부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조하려는 자세로 임해야 함에도 “못한 게 없다”는 언사로 들끓는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사고 현장에서 젊은이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고 온 국민이 죄인의 심정인 마당에 적절치 못한 개탄스러운 처신이다. 해경의 초기 대응은 곳곳에서 안일했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세월호가 관제해역에 들어섰지만 진입보고를 받지 않았고, 사고 전 2시간 동안 어떤 교신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는 500명에 가까운 승객이 탄 여객선이었기에 신고가 들어오지 않아도 먼저 호출해서 경로를 파악해야 했었다. 따라서 세월호가 목적지인 제주VTS에만 통신채널을 열어 놓고 나머지 채널은 끈 채 운항했지만 이를 알 수 없었다. 이는 선박 관리 모니터링의 문제다. 이날 진도VTS의 교신 녹취록에 따르면 다른 선박과는 교신한 것으로 확인됐다. 목포해경은 또 침몰을 최초로 신고한 학생에게 ‘경도와 위도’를 묻는 등 시간을 낭비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세월호가 권역에 진입했을 때 위치 등 기본적인 파악만 해놓았으면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러다 보니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비정은 초기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을 지체할 수밖에 없었고, 단정(고무보트)을 세월호에 접근시켰으나 배 안에 있는 다수 승객은 구하지 못했다. 해경이 사고 초기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이뿐이 아니다. 해경의 한 간부는 초기 대응 미흡에 대한 비판이 들끓고 있는데도 적절치 못한 실언을 했다. 안모 과장은 초기 대응과 관련해 “해경이 못한 게 뭐가 있느냐. 80명을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다 자리에서 물러났다. 매를 자초한 부적절한 발언이다. 어떤 이유로 사고가 났든 참회의 심정으로 구조에 임해야 하는 게 국가의 의무다. 유족 앞에서 컵라면을 먹은 장관과 기념사진을 찍은 부처 간부, 장관의 행차를 알린 직원의 행위가 지탄받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해경은 해상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총괄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칠흑 같은 바다 밑에서 사투(死鬪)를 벌이는 잠수부들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말이었다. 해경으로선 사고 직전의 교신과 관련한 논란 등에 대해 해명하고픈 게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초기 대응의 부실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검·경합동수사본부에서 종합 수사 중이니, 해경의 대응에 잘못이 드러나면 엄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 뻔뻔한 탈출 선원들… 체육관에 모여 곰탕 비우고 커피까지

    뻔뻔한 탈출 선원들… 체육관에 모여 곰탕 비우고 커피까지

    세월호 침몰 때 승객들보다 먼저 탈출한 선원들이 뻔뻔한 ‘거짓말’로 일관해 공분을 사고 있다. 이들은 수사본부에서 “구명정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 “승객 퇴선 명령을 내렸다” 등의 각종 거짓말을 쏟아 내고 있다. 이는 승객 구호 조치 없이 먼저 탈출한 데 따른 형량(특가법)을 덜기 위한 노림수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수사본부가 차려진 지 일주일이 지났으나 지금껏 ‘선장의 조타실 부재 시간’, ‘급격한 변침 이유’, ‘승객 퇴선 명령 여부’ 등 사고 원인을 규명할 핵심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한 검사는 “20여년간의 수사 경험상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실토한 피의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며 “객관적인 증거(물)를 확보해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수사본부가 선원에 대해 조사 강도를 높이는 것은 각기 맡은 일에 충실했더라면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구속된 1등 항해사 강모씨는 수사본부에서 “배가 너무 기울어져 구명정 쪽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1등 항해사 신모씨도 “배가 수직으로 90도 가까이 기울어졌을 때 선장이 퇴선 명령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진술은 실제로 배가 45도쯤 기울어진 상태에서 승객들을 구출하지 않고 빠져나간 장면이 해경의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선수 갑판 통로 바로 곁에 구명정을 두고도 탈출하기 바빴다. 선장 이준석(69)씨와 3등 항해사 박모(25·여)씨, 조타수 조모(55)씨 등은 수사에서 “(승객)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말했지만 일부 선원들은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한 선원은 “선박을 탈출한 뒤 해경 구조정에 탑승해 구조 활동을 도왔다”고 말했으나 이 역시 거짓으로 밝혀졌다. 사고 당일 선장 이씨와 선원들은 5층 조타실에 머물다가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마지막으로 교신한 오전 9시 38분 이후 모습을 감췄다. 이들이 단체로 머물렀던 조타실은 맨 꼭대기 층으로 배가 가라앉더라도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공간이다. 선장 이씨 등이 이곳으로부터 35㎞쯤 떨어진 전남 진도 팽목항에 발을 디딘 것은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승객들이 가라앉는 배에 갇혀 아우성치던 오전 10시 전후에 탈출했다는 증거다. 이처럼 ‘재빨리’ 탈출한 선원 10여명은 이날 오후 진도읍 실내체육관으로 옮겨진 뒤 한 외식업체가 마련한 식사를 맛있게 즐겼다. 이들은 체육관에서 4명, 5~6명씩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가 봉사자들이 “식사 드릴까요”라고 묻자 “예, 주세요”라고 대답한 뒤 한자리에 모였다. 이어 봉사자들이 제공한 곰탕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뒤 커피까지 마시고 자리를 떴다. 구조된 학생들이 “친구들이 오면 같이 먹겠다”며 음식을 입에도 대지 못한 채 함께 탈출하지 못한 친구들을 기다리며 애태웠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자원봉사자 허모(47·여)씨는 “나중에 TV 방송을 통해 이들이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원들이란 걸 알고 울분이 일었다”고 기억했다. 한편 수사본부는 23일 조기수 이모(55)·박모(58)씨, 1등 기관사 손모(57)씨, 2등 기관사 이모(25·여)씨 등 4명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들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24일 오전 10시 30분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다. 선장 이씨 등 이미 구속된 7명을 더할 경우 구출된 선박직 선원 15명 가운데 피의자가 11명으로 늘었다. 나머지 선원 4명도 언제든지 피의자로 바뀔 수 있다고 수사본부는 밝혔다. 승객보다 먼저 탈출한 이들 모두에게는 치사유기,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다. 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세월호 침몰-불거지는 책임론] ‘멀뚱멀뚱’ 해경

    [세월호 침몰-불거지는 책임론] ‘멀뚱멀뚱’ 해경

    목포해양경찰서가 세월호의 사고 신고를 받은 시간은 16일 오전 8시 58분. 목포해경 상황실은 8시 59분 서해해양경찰청에 헬기 구조를 요청하고 100t급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123정’을 급파했다. 완도·제주·여수해경에도 함정을 비상 소집할 것을 요청했다. 헬기(B511호)와 ‘123정’이 사고 해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30분. 헬기는 15분 뒤인 9시 45분쯤 승선원 6명을 처음 구조한 뒤 모두 18명을 구조했다. 5분 뒤에는 ‘123정’이 추가로 80명을 구조했다. 당시 구조 작업에 투입된 해경 함정은 모두 38척이고, 헬기는 7대였다. 하지만 해경의 구조가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진행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세월호가 전복될 때까지 해경의 구조작전은 선박 주변에서만 이뤄졌다. 배 밖으로 탈출했거나 눈에 보이는 선체에 있는 승객들을 구조하는 정도였다. 지원 나온 어선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당시 바닷물 속으로 침몰하는 여객선 안에는 300명 이상이 남아 있었지만 여객선 내부에는 진입하지 않았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 곧바로 수중 구조대를 투입했더라면 몇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123정 자체 판단에 의한 구조작업이었다. 해경 측은 “123정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세월호는 이미 왼쪽으로 50∼60도 기울어진 상태여서 수중 수색 전문 특공대가 아닌 한 선체 진입이 불가능했다”고 해명했다. 서해해양경찰청 소속의 특공대는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목포항에 대기했지만 10시 11분에야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선체 진입을 시도한 것은 여객선이 전복된 지 1시간 가까이 된 11시 24분. 이마저도 강한 조류 탓에 16분 만에 선체 진입을 중단했다. 세월호 사고는 이러한 초기 대응 미흡으로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관제 시스템의 문제도 드러났다. 진도교통관제센터(VTS) 교신 기록에는 관제센터가 오전 9시 5분까지 세월호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돼 있다. 세월호는 신고 접수 전 1시간 이상 사고 해역에 머무는 등 이상 징후를 보였다. 본분을 어기고 세월호의 이상 징후를 전혀 모니터하지 못한 것이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진도 VTS, 11분의 골든타임 놓치지 않았더라면…“모든 선박 실시간 추적 불가능” 해명

    진도 VTS, 11분의 골든타임 놓치지 않았더라면…“모든 선박 실시간 추적 불가능” 해명

    ‘진도 VTS’ ‘골든타임’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진도 VTS)가 세월호 침몰 전 급선회 등 이상 징후를 감지하지 못하고 관제를 소홀히 해 첫 교신까지 11분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에 대해 해경은 “모든 선박의 항적을 실시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23일 해명자료를 내고 “진도 VTS는 관제구역이 제주도 면적의 2.2배인 3800㎢로 넓고 사고 당시 160여척의 많은 선박이 다녔다”며 “모든 선박의 항적을 실시간 추적하며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VTS의 주요 업무를 선박 간 충돌, 위험지역에서의 선박 좌초 방지로 규정해놓은 대책본부가 정작 관련 업무를 할 수가 없다고 ‘무능’을 드러낸 셈이다. 실제 항만 주 출항로를 중심으로 정밀관제가 실시되는 항만청 VTS에 비해 연안VTS는 항로 중심이라 관제범위가 넓다. 진도 VTS 담당구역은 전남 신안 도초면을 비롯해 대흑산도, 제주 추자군도, 해남 어란진을 연결한 내측 해역으로, 진도 서망항을 기점으로 반경 63㎞에 달한다. 대책본부는 “선박의 관제구역 진입 시 일정 거리 안에 다른 물체가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는 도메인 워치를 선박에 설정하고 항로가 교차하는 선박들을 대상으로 예상 항로를 관찰해 위험이 예견될 시에 주로 관제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충돌 위험이 없이 갑자기 변침하거나 속력을 줄였다고 하더라도 모니터 상 점이나 작은 도형으로 나타나는 선박의 위험을 감지하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진도 VTS에 신고를 하지 않고 관제 구역을 지나던 세월호 측도 문제지만 진도 VTS 역시 신고가 들어오지 않으면 호출을 해서라도 승객수와 화물 내용 등을 파악해야 하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최대의 여객선인 세월호는 400명이상이 승선한 정기 운항 여객선으로 물살이 센 맹골수도로 진입했을 때 관제사가 좀 더 집중해 감시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드러나는 사고원인] 핵심 선원들, 구조 요청 30분전 조타실 집합

    [세월호 침몰-드러나는 사고원인] 핵심 선원들, 구조 요청 30분전 조타실 집합

    세월호가 침몰한 시점부터 핵심 선원들이 배를 탈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1시간 남짓 동안 조타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조타실은 항해와 조난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컨트롤하는 장소이다. 주요 선원들은 사고 전후 이곳에 모여 ‘뭔가’를 했지만 끝내 승객들을 뒤로한 채 자신들만 배에서 탈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22일 “선장 등 핵심 선원들이 사고에 대처하는 행적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원 간 진술이 엇갈려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수사본부는 “선장 이모(69)씨가 상당기간 자리(조타실)를 비웠다”고만 확인했다. 사고를 전후한 선장의 행적에 대해 “선원들의 진술이 엇갈려 특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수사본부는 또 “사고 전후 박모 기관장이 기관실 직원들만 데리고 승객들보다 먼저 탈출했다”고 확인했다. 선장 이씨는 수사본부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조타실을 잠깐 비웠고, 비상시에는 이곳에 머물며 상황을 통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본부는 그러나 “선장 이씨가 항해사 등을 통해 승객 퇴선 명령을 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승객들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의 핵심 인물인 이씨의 행적이 그가 구속된 지 5일이 지났지만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조타실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16일 오전 8시 25분쯤 항로 변침 이후 동력을 잃은 세월호가 45도가량 오른쪽으로 급격히 꺾이면서 표류를 시작한다.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면서 선장과 항해사, 기관장 등 주요 선원들이 조타실로 몰려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때 기관사 등도 기관실을 벗어나 맨 꼭대기층의 조타실로 올라왔다. 기울어진 선체 복원이나 기관의 재시동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어 8시 55분쯤 1등항해사 강모씨와 2등항해사 김모씨는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처음 신고해 구조를 요청했다. 이들 항해사는 이후 9시 6분~37분 진도VTS와 30여분 동안 구조와 관련된 통화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배는 점점 기울어 갔다. 이때 기관장, 기관사, 조타수, 갑판원 등은 구조 매뉴얼에 따라 승객 구조에 나서야 함에도 이를 방관했다. 9시 17분 이뤄진 진도 VTS와 교신내용을 보면 세월호 측은 “지금 50도 이상 좌현으로 기울어져 사람이 좌우로 움직일 수 없다.” 이어 9시23분 “방송이 불가능해 승객을 탈출시킬 수 없다”고 답변한다. 9시 27분 목포해경 항공대 소속 511헬기가 현장에 처음 도착해 12명의 승객을 구출하고, 주변 어선들도 물로 뛰어든 승객 구출에 나선다. 10여분 후인 9시 37분 진도VTS와의 교신은 완전이 끊긴다. 기관사들이 자신들만 아는 3층 통로를 통해 구조선을 탔고, 다른 선원들도 잇따라 탈출했다. 선장 이씨는 사고 해역으로부터 18마일(35㎞)쯤 떨어진 진도 임회면 팽목항에 11시 16분에 도착했다. 이 거리라면 빠른 경비정이라 해도 1시간 넘게 걸린다. 그와 선원들이 늦어도 배를 탈출한 시각을 역산해 보면 오전 9시 38분 전후로 추정된다. 세월호 선박직 직원 15명은 그렇게 전원 구조됐다. 당시 남은 승객은 차디찬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구명벌 작동 안 시키고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끝까지 변명 일관

    구명벌 작동 안 시키고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끝까지 변명 일관

    ‘구명벌’ ’워키토키’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당시 선원들이 조타실 바로 옆에 구명뗏목(구명벌)을 두고도 이를 작동시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해양경찰청과 당시 목격자 진술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선장 이준석(69)씨 등 선원 10명은 조타실에 있다가 탈출했다. 이들은 지난 16일 오전 9시 30분 사고지점에 처음 도착한 목포해경 경비정 123정(100t급)에 옮겨 타며 탈출을 시도했다. 이들은 그러나 수백명의 승객을 배에 놔두고 탈출하면서 조타실 바로 옆 구명벌조차 작동시키지 않았다. 구명벌은 선박이 침몰하면 일정 수압에 의해 자동 팽창되는 튜브식 구조장비로 상자의 잠금장치를 풀어 수동으로 펼칠 수도 있다. 구명벌은 비상식량과 낚시도구까지 구비돼 있는데다 천막을 올려 입구를 닫아 해수 유입도 막을 수 있다. 겨울철이 아니라면 최대 10일까지도 버티게 해 주는 구조 장비다. 운항관리계획서 상으로는 세월호에 25인승 구명벌이 총 46개 있었고 실제로 조타실에서 불과 2m 앞에 있는 왼쪽 선측에는 14개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현장상황을 담은 연속사진을 분석한 결과 선원들은 구명벌을 바다에 던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지금 배가 넘어간다”며 최초로 조난사실을 알린 오전 8시 55분에 구명벌을 바다에 투척하고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수백명의 인명을 구조할 수 있었지만 이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제주VTS 다음 교신 대상이었던 진도VTS가 오전 9시 24분 “방송이 안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바랍니다”라고 했지만 선원들은 해경 경비정이 언제 오느냐고 되물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선원들은 123정이 세월호 좌현에 바짝 붙자 서둘러 배를 빠져 나갔다. 이 때가 오전 9시 50분으로 400명에 가까운 승객이 여전히 배에 갇혀 있을 때였다. 구명벌을 바다에 투척한 것은 123정 소속 해양경찰관이었다. 그는 선측 좌현 구명벌 14개 중 2개를 풀어 바다에 던졌다. 14개 모두를 던지지 않은 것은 선박 왼쪽 바다에 빠진 승객들이 서해해경청 헬기 B511이 하늘에서 던져 준 구명벌 덕분에 대부분 구조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당시 현장 사진에는 123정에 구조된 한 선원의 손에 워키토키 형태의 무전기가 쥐어진 장면도 포착됐다. 선원들이 무전기로 선원들끼리만 상황을 공유하며 탈출했다는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않는 대목이다. 합동수사본부는 선원들이 무전기를 이용, 자기들끼리만 상황을 공유하며 탈출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선원들은 ”구조에 애썼다”며 여전히 변명에 급급한 태도를 보여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이모저모] 학생 “살려주세요” 첫 신고에… 해경 “위도·경도는요” 되풀이

    [세월호 침몰-이모저모] 학생 “살려주세요” 첫 신고에… 해경 “위도·경도는요” 되풀이

    “살려주세요.” 침몰 위기에 빠진 세월호 속 최초 구조요청 내용이 22일 공개됐다. 하지만 녹취록에는 신고 접수자가 학생에게 위도와 경도를 물어보는 등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이 담겨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사고 당일인 지난 16일 오전 8시 52분 32초. 신고 학생은 전남 119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살려주세요. 배가 침몰하는 것 같다”며 구조요청을 했다.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신고하기 약 3분 전이다. 이 학생은 제주도로 가는 중으로 배 이름은 세월호라고 밝혔다. 119는 해경 상황실로 “배가 침몰한다는 신고가 왔다. 휴대전화 위치를 파악해보니 서거차도”라며 신고자 전화번호 등만을 전달했다. 이어 신고자-119-해경 상황실의 3자 통화가 시작됐지만 이미 파악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신고가 처음부터 반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신고자가 학생이라는 점을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질문까지 나온다. 해경은 학생에게 “배의 위치, 경위(경도와 위도)를 말해 달라”고 물었다. 학생이 당황하자 해경은 다시 “침몰 중이라는데 배 위치를 말해 달라. 배 위치, 지금 배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신고자가 “잘 모르겠다”고 하자 다시 해경은 “거기 GPS 경위도 안 나오나요. 경도와 위도”라고 계속해서 캐물었다. 이내 학생이 “여기 섬이 보이기는 하는데…”라고 말하자, 해경은 다시 출항 시간과 장소에 이어 배 이름을 대라고 하더니 상선인지 여객선인지 어선인지 캐묻기를 반복했다. 결과적으로 해경이 시간만 허비하다 경비정을 출동시킨 시간은 최초 신고 시간으로부터 약 4분여가 지난 56분 57초였다. 해경 관계자는 “신고자가 선원인 줄로 착각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일정한 항로를 운항하는 선박들은 선박관제센터와 연락망, 채널이 사전에 구축돼 있어 해경상황실이나 관제센터에 배 이름만 치면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최초 신고를 한 학생의 생사 여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목포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세월호 침몰-불거지는 책임론] VTS에 구조요청 뒤 조치 全無…최고 무기 징역까지 처벌 가능

    침몰하는 세월호에 승객들을 내버려 둔 채 탈출한 선장 이준석(69)씨와 승무원들은 사고 초기부터 책임론과 함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이들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선박 등 5가지 혐의로 구속한 가운데 앞으로 사법처리 수위가 어느 선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씨와 승무원들은 오전 8시 55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배가 기울고 있다며 구조 요청을 한 뒤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배가 급속하게 기울자 결국 오전 9시 37분 침몰 직전의 배를 버리고 탈출했다. 구조명령을 지시하고 승객들을 구해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이 이미 탈출한 배에서는 오전 10시 15분까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선내에 대기하라’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사고 직후 구조 작업을 돕기 위해 세월호 주변에 접근했던 두라호 선장 문예식(60)씨와 드라곤호 선장 현완수(57)씨는 “세월호는 누가 봐도 회복 불능 상태였고 선장이 퇴선 명령만 했어도 승객 대부분이 살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선장 이씨는 수사본부의 조사 과정에서 ‘내가 운항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 뻔뻔한 진술과 행동을 이어 가고 있다. 거세지는 비난과 함께 법조계 일각에서는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까지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란 마땅히 해야 할 위험발생 방지 조치를 하지 않아 사람을 숨지게 한 행위일 때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유죄로 인정되기 위해선 이씨가 법적으로 위험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었는지(작위 의무)와 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 승객들이 사망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도 방치했는지(미필적 고의)가 입증돼야 한다. 지금까지 이씨에게 승객을 죽이겠다는 의도가 있었다는 정황이나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씨 등에게 적용된 혐의 가운데 특가법상 도주선박은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또 선원법 11조는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인명, 선박 및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해당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세월호 최초 신고자 단원고 학생, 여전히 실종 상태…애통

    세월호 최초 신고자 단원고 학생, 여전히 실종 상태…애통

    ‘세월호 최초 신고자’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최초 신고자는 단원고 학생이었던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174명의 생명을 구조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 학생은 안타깝게도 사고 발생 1주일째인 현재까지 생존자 명단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다. 16일 오전 8시 52분 한 남학생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는 신고전화를 걸었다.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시각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학생은 단원고 2학년 6반 A군으로 밝혀졌다. 많은 사람이 이 신고자를 궁금해했으나 당초 알려졌던 이름이 탑승자 명단에 없어 확인되지 않다가 결국 신원이 밝혀졌다. A군은 119상황실에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바꿔 드릴까요?”라며 사고사실을 신속하게 알렸다. 119상황실은 2분 뒤인 8시 54분 목포해경에 신고 내용을 전달해 신고자, 목포해경과 3자 통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목포해경은 119상황실로부터 배가 침몰한다는 신고내용과 신고자의 대략적인 위치를 전달받은 뒤 신고자에게 위도와 경도를 물어보는 데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고 3자 통화는 2분만에 종료됐다. 그 뒤 신고를 접수한 해경은 구조선와 헬기 등을 보내 학생 등 승객 174명을 구조했다. 당국의 조치는 허술했지만 A군의 전화 한 통은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계기’가 된 셈이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게 사고사실을 알린 의로운 학생은 어른들의 무책임 탓에 침몰사고가 난 지 1주가 지나고 있는데도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A군은 1분 1초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제 한몸 챙기기에 급급했던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신고했다”며 “수많은 승객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정작 자신은 아직 구조되지 못해 안타깝고 슬프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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