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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산업기술협력재단/일 정부에 조속설치 촉구/방일 최 부총리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을 방문중인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8일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를 비롯한 일본정부각료와 만나 한국상품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대폭 완화하고 기술이전촉진을 위해 「한일 산업과학기술협력재단」을 조속히 설치할 것등을 강력히 촉구했다. 최부총리는 이날 상오 일본총리관저로 미야자와총리를 방문,한일 양국간 최대경제현안인 무역불균형과 기술협력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최부총리는 이날 노태우대통령과 미야자와총리간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양국간 경제협력방안의 실천을 위해 「산업과학기술협력재단(산기협)」을 정부주도아래 이른 시일내에 가동,민간업체간의 기술교류를 지원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이에 대한 일본측의 성의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 국가유공자에 존경을/김원홍 사회2부 차장(오늘의 눈)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유공자들은 국민적인 존경을 받으며 명예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역사가 깊고 전통이 있는 나라일수록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예우도 높다. 영국 사람들은 현충일에 전국민이 빨간 양귀비꽃을 달고 런던 수상관저앞에서 여왕이 참석한 가운데 장중한 추념식을 갖는다.프랑스에서도 현충일엔 파리 개선문앞 무명용사비에 하루종일 헌화가 계속되며 샹젤리제거리에는 낡은 훈장을 단 참전용사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국가유공자들은 광복이전 독립운동가와 6·25전쟁 수훈자등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해방전에 독립운동을 하기란 그야말로 태풍속에서 촛불을 켜는것 만큼이나 어려워 수십만이 희생됐으며 광복이후 6·25전쟁 때에는 수백만명의 동족이 체제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수많은 미망인과 전쟁고아,상이용사들이 전쟁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다.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연금을 받고 있는 상이군경은 4만7천64명,유족은 7만3천9백29명,독립유공자및 후손은 6만3천7백66명 등 17만5천3백35명으로 가족까지포함하면 보훈인구가 1백만명 가까이 된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기본연금은 월 27만4천원에 불과하다. 정부는 유공자들에게 사업자금 학자금 영농자금 주택자금 자립자금 등을 지원하고 그외 취업알선,의료지원 등을 하고 있으나 유공자 대부분은 노령과 불편한 몸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6·25전상자들의 대부분은 나이가 65세가 넘은 고령이어서 상처부위의 재발로 고통스러운 특별생활을 하고 있다. 보훈의 달인 이달들어 국가유공자들이 입원중인 병원과 상이용사촌엔 각계각층의 위문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위문이 일년에 한번씩하는 의례적인 행사같이 느껴져 안쓰럽다. 평소 유공자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갖는 것은 물론 그들이 긍지와 명예를 지키고 살 수 있도록 보다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 주한 터키대사 관저/주공,공개입찰 매각

    대한주택공사는 오는 8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330의 주한 터키대사 관저를 공개경쟁입찰로 매각한다. 주공이 지난 73년 대지 2백50평에 연건평 1백67평규모의 2층 콘크리트 슬라브구조로 지어 주한터키대사 관저로 임대해주었던 이 건물은 최근 터키대사 관저가 이전하게 됨에 따라 매각케 된 것이다.
  • 공항 환영행사뒤 바로 국립묘지 참배/부시 내한 첫날 이모저모

    ○…부시미대통령은 5일 하오3시30분 전용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사흘동안의 공식일정을 시작. 부시대통령일행이 탄 전용기가 서울공항에 도착하자 장선섭외무부의전장과 그레그 주한미대사가 기내영접. 쥐색코트차림의 부시대통령은 바바라여사와 함께 21발의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트랩을 내려와 미리 나와있던 정원식국무총리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 부시대통령내외는 이어 차가운 날씨속에 환영나온 이상옥외무장관,한봉수상공장관,현홍주주미대사,주한미대사관·미8군관계자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뒤 미대통령 전용승용차에 올라 동작동 국립묘지를 향해 출발. 이날 부시대통령의 서울공항도착행사는 공식환영행사가 6일 청와대에서 열리기 때문에 정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영접인사와 미측관계자등 20여명만이 참석,특별한 환영식이 없이 7분만에 끝났다. 이에따라 일반 환영객 참석은 물론 꽃다발증정등 일체의 행사도 생략. ○…부시대통령은 하오4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도착,귀빈실에 잠시 머문뒤 4시5분쯤 현충탑에서 강명석국립묘지관리소장의 집례로 헌화하고 분향. 부시대통령은 이어 방명록에 서명한뒤 승용차편으로 청와대로 출발.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부시대통령과 1시간여동안 테니스를 친뒤 관저에서 비공식만찬을 주재.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의 테니스시합은 지난해 7월 백악관에서의 시합에 이어 2번째. 그러나 이날의 청와대일정은 미국측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 ◎한미 정상회담 일지 ▷6공이후◁ ▲88.10.20=노태우대통령­레이건대통령회담(워싱턴) ▲89.2.27=노대통령­부시대통령(서울) ▲89.10.17=노대통령­부시대통령(워싱턴) ▲90.6.6=노대통령­부시대통령(워싱턴) ▲91.7.2=노대통령­부시대통령(워싱턴) ▲91.9.23=노대통령­부시대통령(뉴욕) ▲92.1.6=노대통령­부시대통령(서울) ▷6공이전◁ ▲52.12.2=이승만대통령­아이젠하워대통령당선자(서울) ▲54.7.30=이승만대통령­아이젠하워대통령(워싱턴) ▲60.6.20=허정국무총리­아이젠하워대통령(서울) ▲61.11.14=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케네디대통령(워싱턴) ▲65.5.18=박정희대통령­존슨대통령(워싱턴) ▲66.11.2=박대통령­존슨대통령(서울) ▲68.4.17=박대통령­존슨대통령(호놀룰루) ▲69.8.22=박대통령­닉슨대통령(샌프란시스코) ▲74.11.22=박대통령­포드대통령(서울) ▲79.7.1=박대통령­카터대통령(서울) ▲81.2.2=전두환대통령­레이건대통령(워싱턴) ▲83.11.14=전대통령­레이건대통령(서울) ▲85.4.26=전대통령­레이건대통령(워싱턴)
  • 노 대통령 멕시코방문 이모저모

    ◎“꼬레아 연호”… 멕시코 시청은 축제장/“한국 문화회관 건립 지원” 즉석 약속/여 가수 「베사메무초」 노래에 노 대통령도 합창/명예시민증 받곤 “우의의 증표로 간직하겠다” ▷교민초청 만찬◁ ○…노태우대통령 내외는 26일 하오(한국시간 27일 상오) 숙소인 카미로 레알 호텔에서 멕시코 교민대표 50여명을 초청,만찬을 같이하며 격려. 노대통령 내외는 교민들이 박수로 환영하는 가운데 만찬장에 입장,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좌정한뒤 『대통령으로 처음 중남미국가를 방문한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고 『동포여러분의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보니 기쁘며 앞으로도 여러분의 건강과 발전을 빈다』며 건배를 제의. 노대통령은 만찬이 끝난뒤 격려사를 통해 『86년전 이곳에 처음 이민을 왔던 한인의 후손여러분을 만나게 돼 뭐라고 말할수 없는 감격을 느낀다』고 전제,『조국은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발전을 이루고 있는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다』며 『동포 여러분들도 더큰 긍지를 갖고 멕시코와 조국의 발전을 위해 훌륭한 일을 많이 해달라』고 당부. ▷김옥숙여사 박물관 방문◁ ○…대통령 부인 김옥숙여사는 26일 하오 3시(한국시간 27일 상오 6시)부터 약 1시간동안 멕시코시티 시내 「인류사박물관」을 방문. 김옥숙여사는 박물관장 세라푸체여사의 안내로 메소아메리카문명관으로부터 아즈테카문명관·마야문명관 순으로 박물관을 관람하며 스페인정복이전 멕시코문명의 발달사에 깊은 관심을 표명. ▷애국용사탑 참배◁ 노대통령은 26일 상오 11시25분(현지시간) 차플테팩공원안에 있는 애국용사탑을 참배하고 헌화. 노대통령은 카마초 멕시코시장의 안내로 애국용사탑에 도착,헌화한뒤 군악대가 멕시코국가와 애국가를 연주하는동안 잠시 묵념. 노대통령은 이어 방명록에 「멕시코 애국용사들의 호국정신에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1991.9.26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라고 서명. 노대통령은 애국용사탑참배를 마치고 떠나기전 행사기간동안 도열해있던 멕시코소년군사학교 소속 어린학생들과 전문기술학교소녀들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격려. 이날 노대통령의 애국용사탑참배에는 우리측 공식수행원과 멕시코시장및 관계공무원들이 자리를 함께했고 때마침 공원을 찾은 관광객과 주민들이 행사를 지켜보면서 노대통령이 떠날때 박수로 환송하기도. ▷멕시코시청 방문◁ ○…26일 상오(한국시간 27일 새벽)노태우대통령에 대한 명예시민 증서전달및 행운의 열쇠증정식이 있은 멕시코시청은 축제장을 방불. 상오 10시30분 노대통령이 카마초 솔리스 멕시코시티시장의 안내로 시청청사로 들어서자 2층제단에 자리잡은 악단은 경쾌한 멕시코선율의 환영음악을 연주했고 청사내는 박수의 물결로 가득. 카마초시장은 명예시민증서와 행운의 열쇠,기념수장을 차례로 노대통령에게 전달한 뒤 『모든 시민의 이름으로 다시한번 각하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환영사. 노대통령은 답사에게 『멕시코시티 시민과 서울시민은 인류화합의 축전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숭고한 올림픽정신을 꽃피운 무한한 긍지를 갖고 있다』며 멕시코의 찬란한 문화를 극찬하고 『오늘 받은 명예시민증서와 행운의 열쇠는 한국민에 대한 멕시코국민의 우의의 징표로 소중히 간직하겠다』고인사. 노대통령이 이어 2층복도로 나서자 지붕없이 설계된 1,2,3층 복도 테라스를 가득메운 남녀중학생 수백명이 양국기를 흔들며 「멕시코」「코레아」를 연호,청사내는 갑자기 축제장분위기로 변모. 환호속에 파묻힌 노대통령내외가 카마초시장과 함께 1층홀로 내려와 간이무대앞에 서자 멕시코 제일의 란초음악(농가음악) 여가수인 마리아 데 루르데스가 민속의상을 차려입은 남녀중창단의 백코러스속에 「과달라하라」라는 축하노래를 열창. 노래가 끝나자 청사내는 「와」하는 함성속에 파묻혔고 노대통령내외가 간이무대에 올라 여가수의 손을 잡고 감사의 뜻을 전하는 순간 악단은 갑자기 노대통령의 애창곡인 베사메무초를 연주했고 여가수는 노대통령내외와 마주서서 다시 베사메무초를 열창하기 시작. 여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도중 간간이 마이크를 노대통령과 김여사앞으로 내밀었고 노대통령이 이에 몇소절 노래를 부르자 청사내는 박수와 환호로 가득했고 1,2,3층 복도테라스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학생들도 양국기를 흔들며 베사메무초를 합창,환영분위기는 절정에 도달. 노대통령내외가 여가수및 악단과 인사를 나누고 퇴장하자 청사내는 다시 「멕시코」「코레아」의 연호속에 파묻혔고 노대통령내외는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며 몰려드는 남녀학생들의 손을 잡아주느라 분주. 이같은 열광적인 환영분위기때문에 노대통령은 예정보다 12분이나 늦은 상오 11시22분에서야 다음행사장인 애국용사탑으로 출발. ▷한국경제인 조찬간담회◁ ○…살리나스 멕시코대통령은 26일 상오 노태우대통령을 수행중이거나 한국상품전시회관계로 멕시코를 방문중인 한국경제인들을 대통령관저로 초청,조찬을 함께하며 한·멕시코경제협력 증진방안들에 관해 의견을 교환. 이날 조찬간담회에는 이봉서상공부장관,한·멕시코민간경제협력위원회 한국측위원장인 김상응삼양사사장과 정세영현대·김우중대우·최종현선경회장,조중건대한항공사장,신명수동방유량회장,최동규극동정유사장,금진호무역협회고문,최광수수출입은행장,김철수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사장등 30여명이 참석. 살리나스대통령은 『한국과 멕시코간의 상호협력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면서 『특히 투자부문에서 많은 협력사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언급. ◎노 대통령 교민초청 만찬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처음 멕시코를 방문하게 된 것은 뜻깊은 일입니다. 오늘 저녁 동포여러분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이곳에서 뵙게 된 것은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기후와 풍습,언어와 문화… 모든 것이 낯설기만한 머나먼 이국땅에서 이 분들이 겪은 고난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를 생각합니다. 우리겨레의 지난날은 시련과 수난의 세월이었지만… 여러분의 조국은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발전을 이루고 있는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습니다.한국은 이제 광섬유와 컴퓨터로부터 자동차와 거대한 선박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상품을 만들어 온 세계에 내다파는 나라가 되었습니다.10년후면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만5천달러의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한국은 6·29선언이후 자유와 자율이 넘치는 진정한 민주주의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이제 독일이 통일되고 동서의 세계가 하나가 되는 이 변혁속에 우리의 통일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한반도가 통일을 향해 나아갈 큰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저와 살리나스대통령은 긴밀한 동반자로서 우리 두나라 관계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습니다. 한국과 멕시코는 정치·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가속화해 나갈 것입니다. 교역과 경제협력이 더욱 확대되고 특히 한국기업의 멕시코 진출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자유·번영·통일의 축복이 넘치는 밝은 내일에 대한 희망에 차 있습니다.동포 여러분도 더 큰 긍지를 갖고 멕시코와 조국의 발전을 위해 훌륭한 일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 고르바초프 실각/소 쿠데타… 강경보수파 전권장악

    ◎「8인 비상위」구성… 비상선포/고르비 연금… 야나예프가 대행/“추진중인 개혁정책 계속실행”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개방과 개혁의 기치아래 소련과 동구에 민주화의 새시대를 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19일 실각했다. 6년5개월만에 고르바초프를 권좌에서 몰아낸 세력은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과 드미트리 야조프국방장관,올레크 바클라노프국방위제1부의장등 현정부내 보수파들이며 이들은 이날 8명으로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구성,전권을 장악했다. 대통령직무대행겸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야나예프는 이날 하오 기자회견을 갖고 새지도부는 지난 85년이래 고르바초프대통령에 의해 추진돼온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실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야나예프는 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고르바초프가 현재 크림반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히고 『그가 건강을 회복한뒤 직무에 복귀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군부대의 수백대의 탱크및 장갑차들이 진주한 모스크바 시내에는 보수파의 정권장악에 분노한 수천명의 시민들이 크렘린광장과 러시아공 의사당주변에 몰려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탱크에 올라타 운전병을 끌어내리는등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였다. 소련관영 타스통신은 19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건강상의 문제로 대통령직무를 더이상 수행할수 없게됨에 따라 야나예프부통령이 대통령직무를 인수했으며 19일 상오4시(현지시간)를 기해 소련내 일부지역에 6개월간의 비상사태가 선포됐다고 보도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은 관저에 연금상태에 있다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대변인인 파벨 보슈차노프가 전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야나예프대통령직무대행은 비상사태의 선포와 국가비상사태위원회로의 권력이전을 통보하는 전문을 유엔사무총장과 세계각국의 정부수반들에게 보냈다. 이 전문은 『이번 조치는 일시적으로 취해진 것이며 소련의 모든 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심대한 개혁의 길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설명하고 『소련경제를 페허에서 구하고…소련국민들과 전체국제사회를 위해 예측불허의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대규모 분쟁위협이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검열·시위금지 【모스크바=로이터 연합】 소련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19일 언론을 검열하고 시위를 금지하며 저항이 있는 지역에서는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고르바초프의 실각 발표 이후 이위원회가 최초로 발표한 포고령은 국가보안위원회(KGB)와 내무부가 이같은 지시를 수행하고 소련의 「동족상잔과 내전」을 막기 위한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고 말했다.
  • 자민·사회당,후계구도에 고심

    ◎표류하는 일 정계 “선장이 없다”/「가이후 이후」놓고 대정·소화세대 암투/자민/당수 출마 2명,「도이왕국」 재건 기대난/사회 일본의 정치가 표류하고 있다.오는 10월 총재선거를 앞두고 있는 집권 자민당의 내부분열은 말할 것도 없고,이미 사임을 표명한 도이 다카로위원장의 후임을 뽑는 제1야당 사회당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다.「인형정권」「다케시타파의 꼭두각시 내각」 또는 「자민당의 긴급피난의 산물」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가이후(해부)내각은 오는 10월 퇴진하는 것으로 구도가 잡혀져 있다.지난 2년간 다케시타파에 의해 유지되어 온 가이후정권은 권력의 2중구조적 약점을 남김없이 노출했다.가이후 총리는 결코 실권을 잡지 못했다.그가 이끄는 정권은 정책노선을 중층적·논리적으로 생각해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결정적으로 빠뜨리고 있었다.걸프전쟁때 관방장관을 지낸 고토다 마사하루(후등전정청)의원은 이렇게까지 평했었다.『이처럼 중대한 시기에 총리관저의 존재마저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이것은 정부의 중대한 책임이며,이런 상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더구나 주목할만 한 것은 미국을 방문한 가이후총리가 12일 부시대통령과 미일정상회담을 갖기는 했지만 미일관계는 걸프전이전보다 냉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15일부터 개최되는 런던 선진7개국 정상회담에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참석시킬 것인가의 여부에 대해 일본은 거의 사전 상담을 받지 못했다. 중대 정보가 일본외무성에도,총리공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런던 서미트에서의 일본의 존재가치가 엷어졌음을 뜻하는 것이며,부시정권으로부터도 경원시되고 있는 증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그 책임을 가이후정권이 져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이에 따라 각 성청에서 파견된 총리 비서관들도 시종일관 자신이 속한 본가쪽에만 얼굴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그럼에도 가이후정권은 여론조사에서는 계속 인기가 높다.지난달 실시된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는 내각지지율 50%,자민당지지율 64%라는 아사히신문 여론조사 사상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했다.이것은 가이후총리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열심히 일하는 내각』으로서 국민들에게 어필하고 있으며,보수자민당정권의 치부를 대체로 감춰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오는 10월의 총재선거에서는 그 역할을 다했으므로 물러날 것이라고 관측통들은 기정사실화 한다.문제는 파벌그룹회장인 미야자와 기이치(궁탁희일),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같은 다이쇼(대정)세대로 정권이 넘어가 『시계바늘을 다시 한번 되돌려 놓을 것인가』,아니면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대장상같은 쇼와(소화)세대가 계속 담당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제1야당 사회당에도 문제는 많다.지난 6월24일 도이위원장의 사의표명에 따라 현재 2명의 위원장후보가 경선을 벌이고 있다.5년만에 투표로 결정되는 새로운 위원장은 당재건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다.오는 21일 선거를 앞두고 경합을 벌이고 있는 사람은 NHK기자출신인 우에다 데쓰(상전철·63)의원과 다나베 마코토(전변성·69)현부위원장이다.교토(경도)대학 법학부출신인 우에다의원은 젊은 시절 NHK정치부기자·노조위원장을 거쳐 68년 사회당 참의원 전국구의원으로정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당내에서는 적극적인 행동파의 한사람으로 지난 86년 도이위원장과 위원장자리를 놓고 겨뤘던 일도 있다.반면 다나베부위원장은 후쿠다(복전)나카소네(중증근)전총리와 오부치(소연)자민당간사장등 거물급 정치인을 많이 배출한 군마(군마)1구에서 10선의 경력을 자랑하는 거물급으로 당내에서는 우파의 위치를 견지한다.지난해 9월 가네마루신(김환신)전부총리를 단장으로하는 자민당대표단의 북한방문을 실현시켰던 것도 다나베부위원장의 사전조정에 의한 것이었다.그는 논쟁이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기 보다는 사전조정을 더 중요시할만큼 현실감각이 뛰어나며 일본정계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전부총리와도 오랜 세월의 친교를 맺고 있다.이들 2명중 누가 위원장에 선출되더라도 현재의 사회당이 쉽사리 재건되리라고는 보기 어렵다.우선 인기와 지명도에서 도이위원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동안 참의원선거에서 여야역전을 이루고 지난해 2월 중의원선거에서도 야당가운데 사회당만이 유일하게 약진할 수 있었던 것은 「도이열풍」의 덕이었다.이같은 개인적인 매력을 이들 2명의 후보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다.더구나 큰 문제는 사회당노선의 한계성에 있다.지금의 사회당정책은 안보·자위대문제등 각종 정책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예컨대 자위대문제에 있어서 『자위대가 존재한다는 현상은 위헌이지만,이를 3단계로 감축해 위헌상태를 해소해 가는 과정은 합헌으로써 용인할 수 있다』는등 납득하기 어려운 이론을 내세운다.미일안보조약에 대해서도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존중,외교교섭으로 해소할 것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이같은 현상은 비단 일본사회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주의 노선이 갖고 있는 「정견의 한계」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이렇게 볼때 지금까지의 사회당의 인기는 순전히 도이위원장의 개인 인기에 의존해 왔었음을 알 수 있다.도이위원장은 사퇴표명후 곧바로 다나베부위원장을 불러 후임을 맡아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그러던 그가 의사를 번복해 다시 위원장에 출마했다.지난4월 통일지방선거에서의 참패에 책임을 지고 전집행부가 사퇴하는 마당에 책임있는 부위원장의 출마는 또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며,사회당의 앞날을 위해서도 부담이 되는 행위라고 많은 사람들은 지적하고 있다.
  • 청와대 새 관저 준공

    ◎“대통령 일가 살림집”… 팔작지붕 전통미 살린 단층/내년 집무실 완공되면 일제의 잔재 씻는 셈/노 대통령,“옛 중앙청 이전,경복궁 복원해야” 전통 한옥형태에 청기와를 올린 새 대통령 관저가 청와대내에 마련됐다. 청와대는 25일 상오 노태우 대통령 내외,비서실 직원,공사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통령 관저 준공식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금명간 새로 마련된 관저에 입주,비록 짧은 거리이지만 지금까지 1,2층 계단을 오르내리던 출퇴근에서 차량으로 출퇴근하는 맛을 느끼게 됐다. 현재의 청와대 본관건물은 1층이 집무실이고 2층이 살림집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현 청와대 본관건물 동쪽 약간 뒤편 계곡에 자리잡은 새 관저는 본채(2백44평),접대시설이 마련된 별채(1백50평)와 사랑채 부속건물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대지면적은 1천2백60평이다. 전통 한옥형태로 4면에 추녀를 달아낸 팔작지붕(까치박공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에 청기와를 올려 전통미를 살린 단층인 이 관저는 얕은 담장을 둘러 별도의 살림공간 분위기를 내고 있고 솟을 대문에는 「인수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지난해 8월28일 착공,4백25일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이날 준공된 신축 관저는 총 공사비 60억원에 연인원 8만1천명과 연 2천3백대의 장비가 동원됐다. ○…노 대통령은 이날 준공테이프를 끊은 뒤 별채에서 참석자들과 다과를 나누면서 『과거 같았으면 대통령이 새 집을 짓는다면 장기집권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을지 모르나 나는 그럴 염려가 없는 사람 아니냐』고 반문한 뒤 『처음 신축 건의를 받았을 때는 임기만료 6개월 전쯤 완공하면 된다고 했는데 예상보다 빨라졌다』고 피력. 노 대통령은 기자들이 『항간에 대통령 관저가 훌륭하게 건축되고 있는 점을 들어 앞으로 내각제를 하기는 어렵다는 농담이 나돌고 있다』고 말하자 『말레이시아에 가보니 국왕과 수상이 있는데 수상은 국정의 온갖 일을 다하느라 위세를 부릴 시간도 없다고 하더라』고만 말해 청와대 관저 및 집무실(내년 7월 완공) 신축과 내각제문제는 연관이 없음을 시사. 노 대통령은 또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한국식으로 새로 짓고 경복궁도 옛 모습대로 복원하면 일제 침략의 역사로부터 나라의 위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일제 총독 부청사였던 옛 중앙청(현 국립박물관) 건물도 다른 곳으로 옳겨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 청와대 본관건물은 1937년 3월 제7대 조선 총독 미나미(남차랑)가 일본 식민통치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경복궁을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이곳에 총독 관저용으로 착공,2년 만에 완공했던 것. 독립한 지 40여년이 된 국가의 대통령이 식민통치하의 총독 관저를 집무실로 사용한다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것이라는 인식이 청와대 집무실과 관저를 신축하게 된 배경이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
  • “공관폐쇄 공방”… 전운짙은 페만

    ◎“미 공격 임박설”… 이라크인,수도 탈출 러시/나토소속 미군 중동지역 이동 배치/페만운항 유조선 보험료 최고 6백%까지 치솟아/이란,“미­이라크전 불개입” 강력시사 ○…외국군이 이라크를 공격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수만명의 이라크인들이 바그다드시를 빠져나가고 있다고 24일 쿠르드족 반군들이 전언. 이들은 또 이라크군이 수백대의 탱크와 대포ㆍ병력을 쿠웨이트시내에 증강배치하고 있다고 밝히고 터키와 터키 남서쪽 나토기지에 면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자코시에 3개 사단병력을 배치했다고 전했다. ○미 외교관 12명 잔류 ○…미국은 24일 현재 이라크의 최후통첩을 무시한채 대사를 포함,12명의 대사관직원이 쿠웨이트주재 대사관을 지키고 있다. 이밖에 일본이 2명,프랑스는 대사가 휴가중인 상태에서 6∼7명이 대사관을 지키고 있다고. 스웨덴은 대사관에 1명,대사관저에 2명이 머무르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련은 대사관직원 전원이 철수를 완료한 상태. 소련 대사관측은 그러나 국제법상 소련 대사관은 계속 「열려 있는」상태라고 설명. ○…이라크와 미국간의 전쟁 발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수십척의 유조선과 화물선들은 치솟는 보험료에도 불구,페르시아만의 항로를 바쁘게 오가고 있다고 해운소식통들이 24일 전했다. 미국과 영국의 군함들이 대 이라크 봉쇄조치를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무력을 사용할 태세를 갖추고 페르시아만을 순찰하고 있으나 이들 선박에 물건을 실은 화물주들은 아직까지 가장 수익성이 높은 화물들을 운반하는 나머지 남은 항로를 통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관련,유엔이 내린 대 이라크 금수조치에 따라 페르시아만에 들어오는 유조선의 수는 격감했으며 페만 입구 호르무즈해협 부근의 푸자이라 부근에는 평상시 10∼12척이던데 비해 거의 80척이나 되는 유조선이 놀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선박 보험료가 3주전에 비해 급등,어떤 경우에는 무려 5백∼6백%나 인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ㆍ이란 및 기타 페만지역 아랍국가의 주요 석유수출항으로 통하는 항로는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식수ㆍ약품지원 호소 ○…요르단정부는 24일 수만명의 외국인 난민들이 식수ㆍ의약품 부족과 끔찍한 위생상태하에서 지내고 있다며 어린이용 분유 50만통을 비롯,기초식품들을 보내달라고 각국 정부에 호소. ○부시,두 아들과 골프 ○…부시 미 대통령은 페만의 긴박한 사태속에서도 23일 새벽 젭과 조지 등 그의 두 아들과 골프를 즐기는등 여유있는 모습을 과시. 골프를 치는 동안 페만사태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일체 답변을 하지 않았는데 최근 골프치는 동안에는 일체 심각한 사안에는 답변을 않기로 한 「새 방침」에 따른 것인 듯. 부시 대통령은 22일에도 국가안보보좌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와 보트놀이를 했고 테니스도 치는 등 여유를 보였다. ○…쿠르트 발트하임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25일 바그다드를 방문,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억류 외국인들을 석방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알로이스 모크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 24일 말했다. 모크 장관은 이날 로이터통신과의 회견에서 『발트하임 대통령은 외국인들이 이라크로부터 출국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히고 『특히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출국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은 24일 페르시아만에 집결해 있는 외국군이 나중에 철수만 한다면 이들이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강제로 물러나도록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라프산자니 대통령은 이날 페르시아만에서의 미국주도 군사력 증강에 대한 연설을 통해 『한가지 가능성은 그들이 공격을 중단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이를 개의치 않고 있으며 어느 누구로부터 오는 어떤 형태의 도움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라프산자니의 이같은 발언은 쿠웨이트를 둘러싼 미국­이라크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백히 시사하는 것이다. ○애 노동자 귀국 보장 ○…시리아는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탈출한 이집트 노동자들이 요르단을 경유,시리아의 항구를 통해 귀국토록 합의했다고 시리아 관리가 24일 말했다. 이 관리는 『시리아와 이집트 정부가 그간 접촉을 해왔으며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탈출한 이집트인들을 요르단을 통해 시리아로 이송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이집트인들은 선박편으로 귀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시리아 관리는 그러나 시리아의 타르투스ㆍ라타키아항을 통해 귀국할 이집트인의 수가 얼마나 될지는 밝히지 않았다. ○사막작전 수행 일환 ○…미국정부는 23일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기지들로부터 처음으로 미군을 중동지역으로 이전 배치중이라고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서독에 주둔하고 있는 미 육군 유럽 제7의료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이라크의 사우디아라비아 침공에 대비한 사막방어작전 수행의 일환으로 페르시아만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제7의료사령부로부터 이전 배치되는 군대 규모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국방부는 또 미 공군은 제435 공수부대의 C­130E 허큘레스수송기를 서독의 한 기지에서 페르시아만 지역으로 배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일 이라크 침공을 이끌었던 이라크 정예수비대가 쿠웨이트내 사우디 접경지역으로부터 철수,다른 부대들로 교체되고 있다고 한정보소식통이 23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은 『이라크가 공화국 수비대를 후방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 특수부대는 이라크의 사우디 공격시 언제든 전선에 투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16만명 가량의 이라크군이 여전히 쿠웨이트내에 주둔하고 있다고 말하고 오히려 더 많은 이라크군 사단들이 이라크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쿠웨이트 대사관원 소개 ○…소련은 쿠웨이트 주재 소련 대사관의 전 직원들을 대피시켰다고 유리 그레미흐츠키 소련 외무부 대변인이 24일 밝혔다. 그레미흐츠키 대변인은 소련 외교관들이 「현 중동위기로 인해 임무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쿠웨이트를 떠났다고 말했으나 이같은 소련의 조치가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생필품 배급제도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특파원은 유엔의 경제제재가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하여 이라크에서는 일부 생필품의 배급제가 실시되고 있으며 식품을 살 수 있는 곳을 아는 것은 중요한정보의 하나라고 23일 바그다드발로 보도. 이날 영국 TV기자로는 처음으로 바그다드에 들어간 BBC의 존 심프슨기자는 공항과 시가지가 전과는 달리 군복의 유니폼들만 보일 뿐 텅빈 것 같다고 첫소식을 전하면서 이라크인들이 미군의 공격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요르단,국경 재개방 ○…지난 22일 이라크와 쿠웨이트로부터 유입되는 엄청난 난민들을 미처 수용ㆍ처리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라크 국경을 폐쇄했던 요르단은 국경폐쇄 후에도 멈추지 않는 난민들의 쇄도로 국경폐쇄 조치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곧 국경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요르단 소식통들은 23일에도 2만6천명의 난민들이 이라크 국경을 넘어 입국했다고 전하면서 요르단 정부가 24일(현지시간)중 국경을 공식으로 개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르단왕 수단방문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페르시아만 사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중동국 순방의 일환으로 수단과 예멘을 잠시 방문하고 24일 상오 귀국했다. 한 정부 대변인은 후세인 국왕이 23일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과 요담을 갖고 곧바로 수단의 수도 하르툼을 방문,아마르 알 바시르 국가평의회의장과 회담을 가졌다고 말했다. ○영 15세 소년 풀려나 ○…페르시아만 사태로 이라크에서 억류됐던 스코틀랜드 소년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이라크에서 석방된 후 24일 암만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브리티시 에어웨이 항공사가 발표했다. 알렉스 카메론 바네트군(15)은 페르시아만 지역 단독 여행차 런던발 쿠웨이트행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지난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쿠웨이트에서 억류,바그다드로 이송됐었다.
  • 「남산골」등 재현,문화ㆍ휴식공간으로/「남산가꾸기」 어떻게 추진하나

    ◎경관 가린 아파트ㆍ대형건물 철거/민속촌 수목원 등 확충,학습장화/일제땐 왜인촌 들어서… 60년대 개발여파 크게 훼손 서울시가 17일 발표한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은 훼손된 남산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며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시민들에게 되돌려 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총면적 89만6천평에 이르는 남산은 수도 중심부에 자리잡은 대형자연공원으로 60년대이후 개발바람을 타고 각종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훼손돼 중병을 앓아왔다. 특히 정보기관ㆍ군시설 등이 들어서 시민들의 접근이 어려웠으며 접근이 용이한 동서쪽이 사실상 차단돼 전체공원면적의 절반가량이 진입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에따라 시의 이번 계획은 늦은감이 있지만 시민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의 이번 계획은 지난 6월 노태우대통령의 남산 복원계획 수립검토지시와 용산 미8군 시설이전계획 등 여건성숙에 따라 윤곽을 드러낸 것으로 오는 94년 서울 정도 6백년 기념사업과 연계,추진된다. 시는 이같은 계획에 따라 세부추진방안을 마련,남산을 명실상부한 시민휴식공간으로 가꿀 계획이다. ▷잠식경위◁ 서울의 상징인 남산이 훼손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때 북쪽 기슭인 회현ㆍ필동 일대와 서쪽 기슭은 후암동 일대에 외인촌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뒤 해방과 6ㆍ25동란으로 인한 혼란기를 거치면서 월남민들의 판잣집이 산허리까지 들어서 크게 훼손됐으나 실질적으로 경관이 훼손된 것은 60,70년대 10여차례이상 갖가지 명분으로 건물들이 들어선 때문이다. 지난 57년 9월 용산구 이태원동 산 1의 7 일대 3만3천㎡가 외국인 주택단지조성 명목으로 공원지구에서 풀린 것을 비롯,62년 7월 타워호텔 및 자유센터 건립을 위해 장충동 산 5의 19 일대 12만2천㎡,63년 6월엔 월남피난민 주택지불하로 12만1천㎡,65년 8월엔 동국대 건립부지 2만7천㎡가 공원지역에서 각각 해제됐다. 또 67년 5월과 8월엔 군장교 주택건립및 불량주택 재개발을 위해 이태원동 258의 48 일대 5만7천㎡와 신당동 432 일대 11만㎡가 풀렸으며 69년 1월과 5월 한남동 726의 180 일대 3만8천5백㎡와 이태원동 산 1의 7 일대 4만7천㎡가 이화여대병원부지와 외인아파트 건립부지로 각각 떨어져 나갔다. 특히 70년대 들어선 재벌들이 호텔건립에 나서면서 대규모로 남산이 잠식됐다. 71년 3월엔 한남동 747의 8 일대 7만4천㎡에 하이아트호텔이,75년 5월엔 장충동 201 일대 12만㎡가 신라호텔로 둔갑되기도 했다. ▷추진방향및 사업내용◁ 시는 「남산위에 저소나무」로 상징되는 원래모습으로 남산을 복원해 자연환경을 회복하고 시민들이 걸어서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며 잠식시설을 이전시키고 주변경관관리를 해나갈 계획이다. 이번 계획의 핵심적 사항은 이곳에 있던 국가안전기획부를 비롯,군부대 미군통신대의 이전과 외국인아파트ㆍ남산 맨션아파트ㆍ외국인 임대주택의 철거등 공원구역내 부적격 시설물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수방사가 올해 이전되며,주공외인아파트 2동,남산맨션 1동,주공외국인 임대주택 43동,개인주택 13동을 92년까지 철거한다. 93년엔 안기부 이전을 추진하고 미군통신대와 외국공관 9동은 미8군 이전과 연계,96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외국인아파트및 맨션아파트는 지난 72년에 지어져 92년이면 20년째가 돼 철거가 가능해진다. 남산 맨션아파트는 당초 외자를 도입,관광호텔을 지으려다 외국기관 주택문제해결을 위해 불법용도 변경된 대표적인 불법건물로 남산경관을 가로막고 있다. 태국ㆍ콜롬비아ㆍ페루ㆍ멕시코대사관 등과 콜롬비아 등 5개국 관저도 외무부와 합의,이전이 완료되면 공원 남쪽인 이 지역은 생태교육장ㆍ수목원ㆍ체육시설로 활용된다. 올해말 이전하는 수방사 자리에는 인근에 있는 「한국의 집」과 연계,옛 양반촌인 민속마을 「남산골」을 재현시켜 민속촌으로 꾸밀 예정이다. 시는 또 오는 93년이전 목표인 안기부는 기존 건물을 도서관ㆍ시사자료관ㆍ전시관으로 쓰고 공터는 조경시설을 하는 한편 남산 1호터널 북쪽끝 차폐시설을 철거할 방침이다. 이와함께 현재 남대문쪽 뿐인 진입로에서 후암동ㆍ한남동ㆍ장충동ㆍ필동 방면의 5개 도로축을 개설,시민들이 걸어서 쉽게 공원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보행안내표지판도 설치할 계획이다. 후암동축은 1백6만평에 이를 용산공원과 연계시킬 계획이다. ▷문제점◁ 안기부를 비롯,이를 이전대상 시설물이 모두 옮겨가더라도 남산주변은 순환도로를 경계로 외곽에 하이아트ㆍ신라ㆍ힐튼ㆍ타워호텔 등 고층건물과 남산등 대한적십자사 건물들이 경관을 가로막아 전망좋은 도심공원으로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또 힐튼호텔 양쪽 토지개발공사의 도심재개발지역에 서울시가 이번 조치와는 달리 지난 5월과 7월 18층및 20층 빌딩이 건축허가를 내준 상태에 있다. 특히 이번 계획이 차질없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확고한 뒷받침이 전제돼야 하며 순환도로위에 위치한 일부 학교의 이전추진과 남산케이블카의 철거도 검토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 노대통령 방미외교 3박4일 취재비화

    ◎“정상회담장 극비 예약자는 고르비”/소 겉으론 “덤덤” 안으론 “치밀한 준비”/라이사도 한인 점포서 “계산된 쇼핑”/성과 없었으면 두 대통령 기념촬영 못했을 듯 노태우대통령의 지난 3박4일간에 걸친 샌프란시스코ㆍ워싱턴 일정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고 전후 냉전체제의 마지막 유산인 분단 한반도를 어느날 갑자기 화해와 협력의 세계물결의 중심부에 실어 놓았다. ○끝난 뒤에 겨우 촬영 노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주미대사관저에서 수행기자단,워싱턴주재 한국특파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우리가 세계변화의 중심에서 세계의 변화를 만들고 있다』 『힘이 없어 강대국의 분단을 감수해야 했던 과거는 가고 이제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우리가 개척하고 결정하는 시대가 왔으며 그 누구도 우리의 가는 길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 4일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 신관 23층 스위트룸에서 있은 노­고르비 대화는 아직도 많은 비화를 간직하고 있다. 정상간의 만남은 물론 모든 국가간의 회담은 외교관행상 포토세션(기념촬영의 의전절차)은 언제나 회담직전에 이뤄진다. 그러나 노­고르비 대좌의 기념촬영은 회담이 끝난뒤 가까스로 이뤄졌다. 한소 양측의 공식 기록사진사 1명씩 2명이 회담시작 전부터 회담장 바깥 다른 방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나 소련측 경호원들은 회담이 시작되어도 촬영을 허용치 않았다. 1시간여에 걸친 회담이 끝나자 그들은 소련측 사진사만 들여보냈다. 이에 우리측 배석자 한 사람이 『우리 사진사는 왜 안 들어 오느냐』고 재촉하자 우리측 촬영사를 들여보내 역사적인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우리 사진사가 두 대통령에게 악수하는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노대통령은 고르비에게 손을 내밀었고 고르비도 미소를 지었으며 노대통령은 다시 왼손으로 고르비의 허리를 감싸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소련측은 두 정상의 만남을 사진기록으로 남기는 데 반대했으나 우리측은 「사진 안 찍으면 회담은 무효다. 누가 그런 회담을 믿느냐」고 완강하게 버텼다는 것. ○총영사관저등 주장 우리측 수행원의 한 사람은 노­고르비회담의 결과가 성공적이지 못했다면 그들은 회담후에도 기록촬영을 거부했을 지 모른다고 피력. 소련측은 겉으로는 한소 정상회담이 세계적인 뉴스의 초점이 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듯 회담직전까지도 회담성사가 유동적인 인상을 주려고 했으나 내부적으로는 노대통령과의 회담을 치밀하게 준비했던 증거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우선 회담장소문제인데 소련측은 노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기 전날까지도 샌프란시스코 소련총영사관이나 총영사관저를 주장했다. 우리는 「미국내 소련영토」인 총영사관은 불가하다면서 제3의 장소를 주장했다. ○23층 스위트룸 추적 우리 실무팀들은 온갖 정보채널을 동원,회담장소를 물색하던 끝에 페어몬트호텔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원수급이 사용하는 스위트룸의 예약상황을 점검했다. 4개의 스위트룸은 노대통령 숙소(본관 7층과 그 위층)와 IMF총회에 참석중인 미 재무장관,스위스은행연합회장의 숙소 등으로 3개는 예약자가 파악이 되었으나 나머지는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다. 호텔측이 극비에 부친 나머지 한개의 스위트룸 예약자는 바로 고르비였다. 소련측은 회담장소를 고르비의 숙소인 소련 총영사관저나 총영사관을 주장하면서도 그이전에 이미 노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신관 23층 스위트룸을 예약해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증거는 당초 노­고르비회담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던 4일 하오 4시무렵 고르바초프대통령 부인 라이사여사가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한국인 점포에 우연히 들르는 것처럼 해 한국상품을 사면서 「보드카는 얼마나 팔리느냐」고 묻는등 한국에 대한 친근한 제스처를 보였던 것도 그 실례가 된다. ○소 외무부 소외된 듯 소련수뇌부의 의사결정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대통령궁의 핵심막료들에 의해 결정되고 있으며 이번 한소정상회담 추진도 거의 막판까지 고르비와 두 핵심참모등 3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이 핵심참모는 이번 회담에 배석한 5명의 소련측 인사가운데 두 사람이라는 것. 배석인사는 마슬리코프 경제담당정치국원,프리마코프 대통령위원회위원(전 연방최고회의의장),도브리닌 대통령외교고문(전 주미대사),체르니아예프대통령안보보좌관,말케비치 연방상공회의소장 등인데 도브리닌과 체르니아예프가 그 두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도브리닌은 30년간 주미대사를 했기 때문에 서방측에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체르니아예프는 골수당료 출신으로 고르비와는 40년동안 친분을 유지했으며 흐루시초프때부터 개혁을 주장한 인물. 안보보좌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대통령제로 체제를 바꾸면서 신설한 최근접보좌관 4명 가운데 1명으로 정식 직함은 자본주의국가담당 대외정책보좌관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준높은 화술 구사 이번 회담에 셰바르드나제외상이 배석에서 빠진 것은 유럽지역의 국가와 외상회담이 사전에 약속이 돼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사실은 한소 정상회담이 한소 외무성도 모르는 가운데 추진됐기 때문에 외무성이 외상회담 일정을 따로 잡아놓았을 것이란 분석들. 노대통령은 이번 고르비와의 회담때 매우 수준높은 대화술을 구사,고르비와의 친근미를 돋보이게 했다. 회담장소가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사실을 들어 한소 두 나라가 태평양국가임을 자연스럽게 지적했고 방한공연했던 레닌그라드교향악단 지휘자의 「고르비대통령은 너무 바빠 우리 교향악단공연을 관람한 적이 없으나 한국의 대통령은 관람해줘 고맙다」는 말을 인용함으로써 대소우의를 표시. 노대통령은 고르비와의 회담에 대비,러시아 속담 슬라브 속담을 섭렵했고 고르비대통령도 아무런 서류파일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을 공부하고 임했다는 것. 이번에 노대통령을 수행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대통령이 어느새 이렇게 커져버렸나」하는 것이었다.
  • 한ㆍ소 정상회담 어떻게 추진되나

    ◎「태백산계획」 마무리… 부산한 청와대/한국,“동등관계” 주장… 장소싸고 진통/회담 결과는 따로 「언론발표」 갖기로 역사적인 4일의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과 6일의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3일 미국으로 떠나는 노태우대통령의 방미계획(암호명 태백산계획)을 준비해온 청와대는 출국 하루전인 2일 대부분의 작업을 일단 마무리. 그러나 청와대당국은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회담에 따른 배경설명은 하면서도 회담의 시간ㆍ장소ㆍ의제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계속 함구로 일관. ○…한소간에 막바지까지 절충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문제는 회담장소. 회담장소는 소련측이 샌프란시스코의 소련총영사관을 주장한 반면 우리측은 페어몬트호텔로 주장. 한소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양국간 실무협상은 고르바초프가 미국에 도착한 지난달 30일 워싱턴에서 이정빈외무부제1차관보와 고르바초프의 외교고문인 아나톨리 도브리닌 전주미대사와 사이에서 진행되었다고. 소련측은 보안,경호상의 이유로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이나 총영사관관저를 주장하고 있으나 한국측은 양국이 출발부터 대등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소련의 외교특권(총영사관이긴해도 대사관과 같이 치외법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외교관행)이 미치는 총영사관은 곤란하며 제3의 중립적인 장소를 선정해야 한다고 완강히 반대. 제3의 장소로는 고르바초프가 한소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경제인을 상대로 연설을 하게되고 또 1948년 유엔창립총회가 열린 유서깊은 페어몬트호텔내의 특별회의실이 적절하다는 게 우리의 주장. 이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스탠퍼드대학도 한때 거론되었다고. 소련실무팀은 한국의 이같은 완강한 태도때문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직접 결정을 내리도록 건의했다는 것. 한국측은 특히 총영사관에서의 회담이 자칫 구한말 고종의 아관파천의 기억을 국민들에게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 매우 신경을 쓰는 눈치. ○…회담시간은 4일 하오 4∼6시사이(현지시간)가 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알려진 당일일정 가운데 비어있는 시간대는 정확히 하오 4시15분부터 5시30분까지.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상오에는 레이건 전 미대통령과 조찬을 하고 한소 정상회담직전에는 미경제인 2백명을 상대로 연설을 하는데 2천여명의 방청신청이 있어 페어몬트호텔내의 폐쇄 TV를 활용하게 된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당초 5일 귀국도중 캄차카반도에기착,대아시아정책과 관련,중요연설을 할 예정이었으나 이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안다면서 한소 정상회담의 시간도 가변적인 요소가 많다고 전망.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는 시간도 하오 7∼7시30분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것도 유동적이라는 것. 회담후 양국정상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고 대신 개별적인 언론발표문(Press Release)을 통해 회담결과를 발표하기로 이미 합의돼 있다고. ○…노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과의 회담은 6일 상오 10시 백악관에서 약 45분간 진행될 계획이라고. 부시대통령은 노대통령과의 회담이 결정되기 이전에 이미 이날 그리스수상ㆍ유엔사무총장ㆍ콜롬비아대통령 등과의 회담일정이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조찬회담이 고려됐다가다른 일정을 밀치고 다시 상오회담으로 낙착되었다고. 한편 청와대 당국자는 국내언론이 「한소 양국정상의 연내 교환방문 가능성」 「대소 대규모경협차관 검토」 등을 보도하고 있는 데 대해 『정상회담에서 상호초청의사는 표할 수 있지만 시기문제 등은 수교이후에 양국 외교경로를 통해 얘기할 성격일 뿐만 아니라 아직은 그같은 추측을 할 단계가 아니다』 『소련측에서 소련내 소비제품의 공급을 원활히 하는데 한국측이 기여해주었으면 하는 타진이외에 일체 차관공여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
  •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 신축지/“천하명당” 4백년전 표석 발견

    ◎공사중 우연히 드러나 「풍수설」 화제로/화강암 암벽에 「천하제일 복지」 음각/글씨크기 가로ㆍ세로 50cm… 해서체로/정도전도 “명당” 지목… 낙관자리 「연릉 오거」 규명이 열쇠 청와대 구내 대통령관저 신축공사장 바로 뒷산 암벽에 천하 명당자리라는 표석이 최근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표석은 수직으로 된 화강암 암벽을 깍아 가로 2m50cmㆍ세로 1m20cm의 암벽면에 「천하제일복지」라고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글씨의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50cm,획의 굵기는 9cm인데 해서체로 씌어있다. 낙관자리에는 가로 세로 12cm 크기로 「연능 오거」라고 새겨져 있어 이 표석의 글을 쓴 사람이 아닌가 여겨진다. ○획 굵기는 9cm 정도 청와대측은 지난 20일 우리나라 금석학의 태두인 청명 임창순옹을 초빙,1차 감정한 결과,글을 새긴 연대는 지금부터 3백∼4백년전인 조선조 중기쯤으로 추정되며 글씨체로 미뤄 중국 청대의 서체 영향을 받은 것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연능오거」의 인적사항이 규명되면 더 정확한 내용이 밝혀질 것으로 보이나조선조때 서예대가로 오거라는 인물이 없는것 같고 연능이 아호인지 아니면 연능에 사는 오거인지도 불확실하다. 오거가 명필이 아니라면 조선초기나 중기의 풍수지리에 밝은 역학가일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는 터에 「천하제일복지」라는 선인들이 새긴 표석이 기초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은 무언가 길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표석이 발견된 암벽은 현 청와대 본관에서 동북쪽으로 계곡을 지나 1백50m 떨어진 가파른 지역인데 암벽 전면이 나무로 가려져 있는데다 이 쪽에는 길이 없어 그동안 전혀 눈에 띄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작년 5월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으로서 총독관저로 사용해온 현 청와대 건물 대신에 대통령 집무실(현 본관의 서북쪽 1백50m)과 함께 관저를 이곳에 새로 착공하면서 최근 공사를 위한 배수로를 치다가 이를 발견한 것이다. 청와대가 자리잡고 있는 북악의 언저리는 본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이태조가 서울로 천도할때부터 궁터로 점지되었던 곳이다. 한양천도 당시 무학대사는 지금의 인왕산 자락에 동향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한 반면 정도전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남향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주장,이태조가 정도전의 건의를 받아들여 결국 지금처럼 북악산의 정남쪽에 경복궁을 창건하게 된 것이다. 한양천도 당시 풍수지리에 따른 주산(터를 등지고 있는 산) 결정과 도읍의 좌향 논의는 차천로의 오산설림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무학이 한양의 세를 보며 인왕산을 진산(주산)으로 삼고 백악(북악)과 남산으로 좌우의 청룡ㆍ백호를 삼으라고 하니 정도전이 자고로 제왕은 남면하여 다스리는 것이지 동향을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궁궐은 임(서북서)좌병(남쪽)향하여 백악현무,인왕백호,낙산청용으로 해야 한다』 청와대 주변 터는 한양천도 이전인 이미 고려 숙종때 지기가 쇠해가는 송도의 왕업을 연장하기 위한 이궁터로 선택됐다. 지금부터 9백28년전인 숙종9년(1062)에 이궁을 지었으나 1백50년이 채 못된 고종19년(1210)에는 강화천도와 더불어 폐기되었다. 조선조에 들어 이 자리가 경복궁 후원으로 단장된 것은 세종8년(1426)이었으며 서현정ㆍ취로정ㆍ관전ㆍ충순당ㆍ융문당ㆍ융무당ㆍ경농제ㆍ연무장ㆍ과거장 등을 설치했다. 그후 국운의 흥망에 따라 성쇠를 함께해 임진왜란 이듬해(1593) 경복궁의 소실로 황폐화되었으며 고종8년(1868)에 경복궁이 재건되자 이곳 또한 과거ㆍ열무ㆍ근농의 행사 등이 치러지는 후원으로 옛 영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일제의 본격적인 조선왕실 유린으로 이곳도 훼손돼 융문당ㆍ융무당 할것 없이 차례로 철거되었다. 조선조때 건물도 남아있는 것은 약간 자리를 옮겨 일부 복원된 것이긴 하지만 별채와 같은 20평 남짓한 침유각과 2평 가량의 오운정이 옛날의 향취를 다소나마 간직하고 있다.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물은 일제 식민통치의 제7대 조선 총독이었던 미나미 지로(남차랑)가 착공,중일전쟁으로 한차례 공사를 중단하는 곡절을 겪으며 착공 2년반만인 1939년 9월 준공을 했다. 당시 미나미는 남산의 왜성대,용산의 사택,현 적십자병원 자리의 임시사택 등을 옮겨가며 식민통치의 권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사택 신축 부지를 물색하던 중 경복궁의 후원으로 경복궁이 눈아래 보이는 이곳을 택했다. ○청대 서체 영향 받아 일제는 조선 주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리기 위해 그 전면에 총독부 청사(현 국립박물관ㆍ구 중앙청)를 지은데 이어 그 후면에 총독관저를 지어 조선왕실의 기를 누르고 풍수에 있어 용맥을 끊어 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항설에 의하면 일제는 경성부 청사(현 서울시청)­총독부 청사­총독관저로 이어지는 남향축이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할 당시 북악을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 왕궁을 건설한 풍수의 맥을 압살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또한 공중에서 보면 경성부 청사건물이 「대」자형,총독부 청사가 「일」자형이고 총독관저 건물 구조가 「본」자형으로 돼있어 동대문쪽에서 서대문쪽을 바라보면서 이를 읽어보면 「대일본」으로 읽혀진다는 항담도 있다. 그러나 풍수에 밝은 술가들 사이에는 당시 일제의 총독관저 자리 물색에 징발되었던 조선인 풍수지관이 본래 「임좌병향」의 북악의 용맥과는 약간 비켜나 있는 현 위치를 잡아주어 그 건물에 기거하게 되는 총독들이 망하도록 했다는 구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알수 없지만 이번에 발견된 표석이 북악의 혈(풍수에 있어 음양이 합해지고 산수의 정기가 응결된 곳)에 해당되는 곳이라면 그럴법도 하다. 청와대 당국이 현재의 이 본관건물을 역사의 전면에서 퇴진시키고 새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짓기로한 결정적인 동기도 이 건물이 지난 반민족적 역사성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독립한지 45년이 되고 전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세계 10대 무역국가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식민통치의 채찍을 휘두르던 일제 총독의 사택을 집무실겸 거처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자존을 국정의 제1 지표로 내건 6공화국 정부의 이념에는 물론 민족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 집무실의 건물은 영빈관쪽 출입문과 직선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본관 건물 서쪽 뒤편 구릉에 신축되고 있으며 한옥지붕 양식의 2층으로 총건평은 현재 본관 건물(1층 집무실ㆍ2층 대통령 살림집)의 9백평 보다 약간 적은 8백평 규모이다. 완공시기는 내년 상반기쯤으로 잡고 있어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후반부 1년반을 이곳에서 집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관저는 명당표석이 발견된 곳으로 부터 남쪽 아래로 50여m 떨어진 곳에 동향인 본채와 남향인 별채로 나뉘어 지어지고 있는데 역시 한옥 양식의 단층으로 건축되며 총건평은 8백평 가량 된다. 관저는 빠르면 금년 9월께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집무실과 관저가 모두 한국전통의 청기와 지붕형태로 건축되기 때문에 이미 사용하고 있는 영빈관 건물,그리고 오는 7월쯤 완공되는 보도관(프레스 센터)건물 등이 한데 어우러져 현 청와대 경내는 우리 고유의 전통건축미로 조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앞으로 집무실과 관저가 완공되면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으로부터 윤보선ㆍ박정희ㆍ최규하ㆍ전두환 전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에 관한 자료를 보관,전시하는 기념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길조로 받아들여” 대통령 관저의 신축장소가 명당표석이 발견된 지점과 일치된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청와대 주변지반은 대부분이 암반이어서 공사하기에 쉽게 좀 넒은 터를 찾아보니 이곳이 눈에 띄었을 뿐』이라며 『전적으로 우연이었다』고 설명했다. 「천하제일복지」라고 새긴 표석의 역사적인 고증은 앞으로 전문가들의 조사와 검토가 더 있어야 밝혀지겠지만 현 본관건물 2층에서 기거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뒤끝이 별로 좋지 않았던 사실에 비추어 풍수지리설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새 관저 신축을 계기로 대통령의 임기가 평화롭게 끝나고 물러나서도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전직대통령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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