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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 별세…독재에 굴하지 않은 풍자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 별세…독재에 굴하지 않은 풍자

    ‘고바우 영감’ 최장수 시사만화…한국기네스 등재 우리나라 시사만화의 상징인 ‘고바우 영감’을 탄생시킨 김성환 화백이 8일 오후 별세했다. 87세. 1932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타고난 그림 솜씨로 17세에 연합신문 전속 만화가로 데뷔했다. 고인이 그린 네 컷의 ‘고바우 영감’은 격동기 세태를 풍자하고 우리 국민의 애환을 대변하는 시사만화로 자리매김했다. 고인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위처럼 단단한 민족성을 상징한다는 뜻에서 시사만화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을 고바우로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고바우 영감’은 1955년부터 2000년까지 1만 4139회 연재돼 단일 만화로는 우리나라 최장수 시사만화로 2001년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원화는 2013년 2월 근대 만화 최초로 등록문화재(제538호)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고인은 1950년 12월 30일 전쟁 와중에 육군본보의 잡지 ‘사병만화’에서 고바우 영감을 처음 그렸고, 이후 1955년 2월 1일부터 동아일보에서 공식적으로 첫 연재를 시작했다. 이후 조선일보, 문화일보로 옮겨가면서 2000년까지 작품 연재를 이어갔다. 독재 정권 하에서 시사만화를 그려오면서 여러 차례 탄압을 겪었는데 이른바 ‘경무대 똥통 사건’으로 처벌까지 받았다. 1958년 1월 23일자 ‘고바우 영감’에서 김 화백은 ‘경무대(이승만 당시 대통령 관저)는 똥 치우는 사람마저 권력을 휘두른다’는 내용을 그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앗! 저기 온다./귀하신 몸 행차하시나이까?/저 어른이 누구신가요? 쉬-/경무대서 똥을 치는 분이요.당시 이승만 독재 정권을 풍자한 것인데, 이 내용 때문에 김 화백은 연행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도 국가 권력의 검열을 풍자했다가 벌금형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허금자 씨와 아들 규정 씨, 딸 규희·규연 씨가 있다. 고인의 빈소는 분당재생병원 장례식장 8호실이며, 발인은 11일 오전이다. (031)708-4444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고노 日 외무상 교체될 듯…6자회담 수석대표도 교체

    한국과 일본의 갈등 국면에서 일본 측 입장을 대변해 온 고노 다로 외무상이 다음주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3일 “(오는 11일 개각에서) 고노 외무상 후임으로 미일 무역협상을 담당했던 모테기 도시미쓰 경제재생담당상의 이름이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지통신도 “모테기 경제재생상이 외무상이 될 것”이라는 아베 신조 총리 주변 인사의 말을 전했다. 외무상이 바뀌더라도 한국에 대한 강경 대응을 총리관저에서 주도하는 만큼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외무성은 이날 남북한과 중국 등을 담당하는 아시아대양주국장에 다키자키 시게오 남부아시아부장을 9일자로 임명하고 북한을 담당하는 북동아시아2과장도 바꾸는 등 한반도 관련 실무라인을 교체했다.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는 아시아대양주국장 교체는 3년여 만으로, 가나스기 겐지 현 국장은 차관보급인 경제담당 외무심의관으로 승진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日언론 “이 총리 제안, 아베가 거절”…이 총리 “제안한 적 없다”

    日언론 “이 총리 제안, 아베가 거절”…이 총리 “제안한 적 없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과 수출 규제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고 일본 측에 제안했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거부했다는 일본 보도가 나왔다. 반면 이 총리 측은 이에 대해 “제안한 바 없다”고 반박해 논란이 예상된다. 3일 NHK와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전날 한국에서 이 총리를 만나고 귀국한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전 관방장관)은 이날 아베 총리와 총리관저에서 만났다. 가와무라 간사장은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에게 이 총리가 “한일 지소미아가 11월 실효되므로 그때까지 일본의 수출관리 문제와 묶어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근간에 있는 ‘징용’을 둘러싼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이다. 이는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므로 (한국이) 제대로 지켜야 한다. 그 한 마디가 전부다”라고 잘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석우 총리실 공보실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총리가 가와무라 간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실장은 이메일 브리핑을 통해 “이 총리는 ‘일본 측이 취한 조치를 원상회복하면 한국도 지소미아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설명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리의 입장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전제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일본 언론 보도는 두 조치를 한꺼번에 원점으로 돌리자는 취지여서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다. 가와무라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은 지난 2일 서울에서 이 총리를 비공개로 만나 징용 소송,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지소미아 종료 문제 등을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그는 또 이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가와무라 간사장은 “이 총리가 ‘지금의 상황을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가와무라 간사장은 방한 기간 한일의원연맹의 강창일 회장과 만나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연기된 한일·일한의원연맹의 합동 총회를 오는 11월 1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아베 “한일관계 풀려면 한국이 강제징용 문제 해결해야”

    아베 “한일관계 풀려면 한국이 강제징용 문제 해결해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악화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 측이 징용 소송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3일 아베 총리는 한국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를 만나고 귀국한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과 관저에서 회동했다. 앞서 가와무라 간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이 총리를 비공개로 만나 강제징용 소송,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문제 등을 놓고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아베 총리는 이 자리에서 최근 경색된 한일 관계에 대해 “징용공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라고 전제하며 “(한국이) 국가 간 약속을 확실히 지켜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어긋난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그는 지난달 26일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통고하는 등 국가 간 신뢰 관계를 훼손하는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며 “한국 측이 청구권협정 위반을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맞서 한국 정부는 아베 총리의 주장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오히려 국가 간 신뢰를 깨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문제 삼아 일본이 경제 보복 조치에 나선 것이야말로 신뢰를 훼손한다고 강조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日언론 “일본, 北 미사일 발사 한국보다 26분 먼저 발표”

    日언론 “일본, 北 미사일 발사 한국보다 26분 먼저 발표”

    요미우리 “日자위대 통해 독자적 정보 분석”통상 한국보다 늦게 발표하던 日이례적 공개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지 처음 감행된 북한의 미사일(북한은 방사포라고 발표) 발사 사실을 일본 측이 한국보다 26분 먼저 발표했다고 일본 외신이 보도했다. 통상 한국보다 늦게 북한 발사 소식을 애매하게 전달하던 일본이 이례적으로 ‘탄도미사일’이라고 규정하며 공개한 것은 지소미아 종료 뒤 자체 정보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북한은 25일 탄도미사일이 아닌 ‘방사포’라며 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이날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방위성이 전날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한 것은 오전 7시 10분이었다. 북한이 첫 발사체를 쏘아 올린 지 약 26분 지난 후였지만, 한국 합참 발표(오전 7시 36분)보다는 26분 빨랐다. 한국 합참 발표는 일본 방위성 발표 내용을 전한 일본 언론의 첫 보도(교도통신 기준 오전 7시24분)와 비교해도 12분 늦은 것이었다. 이는 지난 7월 25일 이후 북한이 6차례에 걸쳐 발사를 반복할 때마다 한국 측이 먼저 발표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이번에 일본 측의 발표가 빨랐던 것은 발사 가능성에 치밀하게 대비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장관)은 전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 방위성 출입 기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면서 “만반의 태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모였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24일 오전 6시 44~45분과 오전 7시 1~2분쯤 함경남도 선덕 일대에서 2차례에 걸쳐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오는 11월 22일 만료되는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일본 정부에 통보한 다음 날 단행된 것이어서 한·일 당국의 대응태세가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당국이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을 통해 얻은 독자 정보를 중심으로 분석해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당국의 이번 대응에서는 종전 6차례의 발사 때와 다른 점은 또 있다.북한이 발사 하루 만인 25일 ‘새로 연구·개발한 초대형 방사포’라고 발표한 이번 발사체의 성격을 탄도 미사일이라고 일찌감치 단정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전 6차례 발사 직후에는 날아가는 물체라는 의미의 ‘비상체’라는 애매한 표현을 쓰고 나서 향후의 정보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탄도 미사일’로 판단하는 절차를 밟았다. 비상체와 탄도미사일은 군사적, 정치적인 의미에서 심각성에 큰 차이가 있다. 단순 비상체라면 문제가 없지만,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본 정부가 이번 기회를 독자적인 정보수집 능력을 과시하는 계기로 활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와야 방위상은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조기에 탄도미사일로 판단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판단을 근거로 24일 오전 베이징 외교 경로를 통해 북한 측에 이례적으로 조속히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일본 정부는 또 이번 발사 직후 총리 관저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 중인 아베 신조 총리를 대행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주재로 관계부처 담당자들이 모이는 긴급 위기관리 대응 회의를 열었다. 이것도 직전의 6차례 발사 때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사히는 일본 정부가 종전과 다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 배경에는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통보가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외무성 간부는 “일본은 (군사정보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하고 있고, 독자적인 정보 수집도 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정보수집) 능력이 높음을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사히는 일본 정부가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자체 정보수집 능력을 자랑하고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또 요미우리는 지소미아에 근거한 한국의 정보 제공이 없어도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는 데 지장이 없음을 과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日정부 “한국 상대 않는 게 제일”…아베 “한·일정상회담? 관망하라”

    日정부 “한국 상대 않는 게 제일”…아베 “한·일정상회담? 관망하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23일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신조 총리 주도의 일본 정부가 한국의 문재인 정부와 한층 더 거리를 두는 정책을 펼 것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익명의 아베 정권 고위 인사는 “대화의 의미가 있을까. 상대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라며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또 일본 외무성 간부는 “한일관계는 당분간 움직일 수 없다. 냉각 기간을 둘 필요가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교도는 아베 정부가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려 하지 않는 것은 ‘장기화하는 한·일 대립의 원인이 한국 측에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일본 내 여론이 아베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것도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했다. 아베 총리 관저의 소식통은 한국의 반발을 산 수출규제 강화 정책에 대해 ‘잘한다’는 일본 내 의견이 많이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일본 외무성 소식통은 “문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는 한 수렁 관계가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고 교도는 전했다. 교도는 또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미국이 우려 입장을 표명한 마당이어서 아베 총리가 종전보다 한층 더 문재인 정부와 거리를 둘 공산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당분간 한일 정상회담은 보류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아베 총리가 유엔 총회 참석차 다음달 뉴욕을 방문할 때 현지에서 문 대통령과 대면하더라도 정식 양자 회담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교도는 올 10월 말~11월 초 태국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 관련 정상회의, 11월 중순 칠레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도 두 정상 간 회담에 부정적인 시각이 일본 정부 내에서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22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는 취지로 맺었던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지난달 4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핵심 반도체 소재 등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한 데 이어 지난 2일 수출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수출 우대 혜택국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2차 경제보복을 단행한 데 따른 대응 전략으로 해석됐다.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인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정부는 한·일 간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을 종료하기로 결정했으며 협정의 근거에 따라 연장 통보시한 내에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 정부에 이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차장은 “정부는 일본 정부가 지난 2일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한·일 간 신뢰 훼손으로 안보상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유를 들어 ‘수출무역관리령 별표 제3의 국가군’(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함으로써 양국 간 안보협력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안보상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지속시키는 게 우리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지구의 허파‘ 아마존 불타는데 마크롱 vs 보우소나루 입씨름

    ‘지구의 허파‘ 아마존 불타는데 마크롱 vs 보우소나루 입씨름

    ‘지구의 허파’ 아마존 산불이 걷잡을 수 없다. 그래픽을 보면 한국시간 22일 밤 8시 30분까지 48시간 동안 브라질 아마존에서만 무려 2500여건의 산불이 일어났다. 우주에서도 거대한 연기가 포착될 정도라니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 환경단체나 지역사회 차원의 우려를 넘어 국제사회 전반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도 개발주의자인 자이르 보우소나르 브라질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비판을 ‘주권 침해’라고 맞받아치며 논란에 불을 붙이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2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아마존은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구 기후 위기의 한가운데서 산소와 생물 다양성의 주요 원천에 더 심한 손상을 감당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아마존 화재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긴급히 다뤄야 한다고 주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위터에다 “정말로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 지구 산소의 20%를 생산하는 허파인 아마존 열대우림에 불이 났다”고 시급한 대처를 촉구했다. 브라질 환경장관을 지낸 마리나 시우바 전 상원의원은 이날 콜롬비아 보고타 콘퍼런스 도중 “난 현재 상황을 반(反)국토 범죄, 반인륜 범죄로 여긴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열대우림을 보존하기보다 개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보우소나루 행정부를 정조준한 것이다. 아마존 열대우림의 60%가 분포한 포함한 브라질에서 올해 보고된 산불은 7만 5000건 이상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만 건 미만에서 84%나 늘었다. 기상학자들과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와 열대우림 파괴를 산불 규모가 커진 이유로 꼽는다. 특히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아마존 보호정책이 국토 개발을 지연시켰다고 주장하며 환경단체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기구도 아마존 원주민 보호지구 근처에서 불법 경작과 방화가 다수 발생한 것을 들어 브라질 정부의 책임을 묻고 있다.국제앰네스티의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얼토당토 않은 거짓을 유포하며 삼림 파괴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행태를 중단하고 산불 차단에 즉시 나서라”고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시우바 전 상원의원도 “역사상 처음으로 (브라질) 정부가 실질적, 공식적으로 부추긴 사태”라고 비판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런 비판에 갈팡지팡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날 관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도중 정부의 미흡한 대책을 지적하는 질문에 “아마존은 유럽보다 더 큰데 그곳에서 어떻게 방화를 다 해결할 수 있느냐”고 되묻고는 “우리는 그렇게 할 자원이 없다”고 답변했다. 서방이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를 지적하며 지원 예산 집행을 동결하자 ‘주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페이스북 생방송을 통해 “여기 돈을 보내는 나라들은 비영리 지원 활동이 아니라 우리 주권을 침해하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마크롱 대통령의 G7 논의 제안에는 “아마존 문제를 지역 국가들의 참여 없이 G7에서 논의하자는 제안은 21세기에 맞지 않는 식민지 시대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맞받았다.한편 다른 나라의 산불 피해도 만만찮다. 베네수엘라에서도 2만 6000건 이상이 일어났고, 볼리비아가 1만 7000건으로 뒤쫓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아베 “지소미아 종료, 유감..美와 연대할 것”

    아베 “지소미아 종료, 유감..美와 연대할 것”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3일 한국정부의 전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등 국가와 국가 간의 신뢰 관계를 해치는 대응이 유감스럽게도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관저에서 한국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일본은 현재의 동북아 안보 관계에 비추어 한미일 협력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답변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아베 총리의 첫 언급이다. 아베 총리는 향후 미국에 의존해 북한 관련 정보를 얻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앞으로도 미국과 확실하게 연대하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의 악화에도 그는 “그들이(한국 정부가)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해 나갈 생각”이라며 기존 입장을 번복할 뜻이 없음을 재차 확인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도 한국정부에 책임을 돌리며 유감을 나타냈다. 이와야 다케시 일 방위상은 이날 기자단과의 대화에서 “실망을 금치 못했으며 매우 유감이다”이라고 말했다고 일본 매체들은 전했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반복하는 등 지역의 안전 보장 환경이 어려움을 더하고 있는 가운데 일한, 일·미·한의 제휴는 중요하다. 현재의 안보환경에서 완전히 잘못된 대응”이라고 성토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연장 기대했던 아베 당혹… 日 “한미일 대북 안보협력 체계 균열”

    연장 기대했던 아베 당혹… 日 “한미일 대북 안보협력 체계 균열”

    고노 외무상, 한밤중 주일 한국대사 초치 日방위성 “믿을 수 없다… 대응 검토할 것” 美국방부 “한일 이견 해소 함께 협력해야” AP통신 “美 삼각체제 강화 노력에 차질”22일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자 일본 정부는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일관되게 지소미아의 연장 필요성을 주장해 왔고 실제로 한국 정부가 연장을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던 일본 정부는 한국의 발표에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청와대 발표가 나온 직후인 오후 6시 30분쯤 급히 총리관저에 들어서면서 지소미아 중단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니혼TV는 “총리관저에서는 한국 측 발표 1시간 전까지만 해도 한일 외교장관끼리 대화가 통하기 때문에 지소미아 연장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한밤중인 오후 9시 30분쯤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불러 한국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한 항의 입장을 전달했다. 일본 방위성 간부는 “믿을 수 없다. 한국은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일본) 정부도 지금부터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한국 정부 내 강경파가 온건파을 누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로써 문재인 정부는 일본은 물론이고 한미일 안보협력 체계에도 무게를 실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비쳐질 선택을 한 셈이 됐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현재 한국의 정부·여당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들을 타개하기 위한 물타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일본 정부는 미일 공조가 잘될 경우 정보 공유에 있어 실질적인 타격은 적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전직 방위성 고위간부는 니혼TV에 “북한의 미사일 등 대응과 관련해 한미일 공조는 못한다는 한국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일본의 중견 언론인은 “당분간 한일 관계의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의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아는데, 그것을 거부당한 것이기 때문에 한일은 물론이고 한미일도 당분간은 경색 국면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중국, 러시아에 맞선 북동 아시아 전체의 안보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교도통신은 속보 형식의 보도를 통해 “한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를 징용판결 문제에 대한 보복이라고 이해해 그에 대한 대응 조치로서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했다”며 “역사 문제에 의한 한일 대립의 영향이 통상 분야로부터 안보협력으로 확대됐다”고 전했다. 이어 “한미일 3국에 의한 대북 대응 연대에 균열이 생겼다”고 했다. 미 국방부 데이비드 이스트번 대변인은 이날 “한일 양국이 이견 해소를 위해 함께 협력하길 권장한다”며 “양국이 신속하게 이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AP통신은 “한국의 이번 결정으로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이 한층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따라서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 체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표정 굳은 아베…日 “文정부, 한미일 안보협력 신뢰 깨뜨렸다”

    22일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자 일본 정부는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일관되게 지소미아의 연장 필요성을 주장해 왔고 실제로 한국 정부가 연장을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던 일본 정부는 한국의 발표에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청와대 발표가 나온 직후인 오후 6시 30분쯤 급히 총리관저에 들어서면서 지소미아 중단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니혼TV는 “총리관저에서는 한국 측 발표 1시간 전까지만 해도 한일 외교장관끼리 대화가 통하기 때문에 지소미아 연장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한국 정부 내 강경파가 온건파을 누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로써 문재인 정부는 일본은 물론이고 한미일 안보협력 체계에도 무게를 실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비쳐질 선택을 한 셈이 됐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현재 한국의 정부·여당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들을 타개하기 위한 물타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일본 정부는 미일 공조가 잘될 경우 정보 공유에 있어 실질적인 타격은 적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전직 방위성 고위간부는 니혼TV에 “북한의 미사일 등 대응과 관련해 한미일 공조는 못한다는 한국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일본의 중견 언론인은 “당분간 한일 관계의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의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아는데, 그것을 거부당한 것이기 때문에 한일은 물론이고 한미일도 당분간은 경색 국면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중국, 러시아에 맞선 북동 아시아 전체의 안보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교도통신은 속보 형식의 보도를 통해 “한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를 징용판결 문제에 대한 보복이라고 이해해 그에 대한 대응 조치로서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했다”며 “역사 문제에 의한 한일 대립의 영향이 통상 분야로부터 안보협력으로 확대됐다”고 전했다. 이어 “한미일 3국에 의한 대북 대응 연대에 균열이 생겼다”며 “협정 파기에 따라 한일 간 기밀정보의 공유에 어려움이 발생하게 됐다”고 했다. AP통신은 지소미아 종료를 보도하면서 “한국의 이번 결정으로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이 한층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따라서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 체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한국 정부의 결정이 미국에 낭패감을 불러올 것”이라면서 “지소미아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막아내려는 노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포토] 특사 졸리, 주한미국대사와의 만남

    [포토] 특사 졸리, 주한미국대사와의 만남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왼쪽)가 지난 20일 서울 중구 정동 주한미국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에서 한국을 방문중인 할리우드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와 악수를 하는 모습.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22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유엔난민기구(UNHCR) 특사 졸리를 만나 지역 내 인권과 강력한 한미 동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해리스 대사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 환영 안 해줬다고 조종실로 돌진…이스라엘 퍼스트레이디 논란

    환영 안 해줬다고 조종실로 돌진…이스라엘 퍼스트레이디 논란

    사치와 갑질로 입길에 오른 이스라엘의 퍼스트 레이디가 이번엔 기내에 탔는데도 조종사가 탑승 환영 방송을 하지 않았다며 조종실로 진입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부인인 사라(60) 여사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남편 네타냐후 총리와 함께 항공편으로 이틀간의 우크라이나 국빈 방문길에 나섰다. 사라 여사는 조종사가 자신의 탑승을 환영하는 기내 방송을 하지 않자 화가 난 듯 자리에서 일어났고 주의를 주겠다며 조종사와의 만남을 요구했다고 이스라엘 ‘채널12’ 방송이 보도했다. 하지만 사라 여사는 경호 요원들의 만류로 조종실에 들어가지 못 하고 제자리로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동 직후 기장은 사라 여사의 탑승을 환영한다는 방송을 새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라 여사는 이미 여러 차례 부적절한 행위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사라 여사는 정부가 지원하는 전속 요리사를 두고도 나랏돈으로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을 주문한 혐의로 기소된 것과 관련, 지난 6월 혐의를 일부 인정하면서 벌금과 국고 반납분을 포함해 약 1만 5000 달러(약 1800만 원)를 부담하게 된 바 있다. 사라 여사는 또 관저 청소담당 직원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4만 2000 달러(약 5000만 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며, 가정부였던 여성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피소돼 소송 중에 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인사] 대전시교육청, 법제처, 대전시 유성구, 대전시

    ■ 대전시교육청 ▣ 초등 ◇ 기관장 임용 △ 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장 유덕희 ◇ 장학관 전직(초등학교장 → 장학관) △ 유초등교육과장 김윤배 △ 서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신상현 ◇ 교육연구관 전직(초등학교장 → 교육연구관) △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이영석 ◇ 장학관 승진(장학사 → 장학관) △ 유초등교육과 이재현 장지현 ◇ 교육전문직간 전직(장학사 ↔ 교육연구사) △ 유초등교육과 김민소 △ 동부교육지원청 남희영 △ 교육연수원 권오정 △ 교육정보원 송나영 ◇ 장학사·교육연구사 임용(교사 → 장학사·교육연구사) △ 교육복지안전과 이유진 △ 교육정책과 김동희 △ 교육정책과 박진용 △ 동부교육지원청 최옥분 △ 서부교육지원청 김성원 민길홍 이준호 △ 유아교육진흥원 송은영 ◇ 장학사 전보 △ 교육정책과 백금녀 임말지 △ 유초등교육과 김미희 김선정 오현정 ◇ 장학관 정년퇴직 △ 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장 전병두 ◇ 초등학교장 승진(공모교장 → 초등학교장) △ 신흥초 민경랑 △ 월평초 백금성 △ 탄방초 송선희 △ 구즉초 오용규 ◇ 초등학교장 승진(초등학교 교감 → 초등학교장) △ 유천초 노유진 △ 판암초 이순우 ◇ 초등학교장 전직(장학관·교육연구관 → 초등학교장) △ 죽동초 박세권 △ 목상초 윤기원 △ 태평초 차영환 ◇ 초등학교장 공모(초등학교 교감 → 공모교장) △ 중리초 이병각 ◇ 초등학교장 중임 △ 대덕초 전길상 △ 노은초 김정태 ◇ 초등학교장 전보 △ 갑천초 안태성 △ 내동초 임낙수 △ 대화초 전현숙 △ 배울초 이수옥 △ 봉명초 김용신 △ 산성초 오성배 ◇ 초등학교장 정년퇴직 △ 내동초 임익호 △ 대화초 한수만 △ 태평초 황경연 ◇ 유치원장 전직(장학관 → 유치원장) △ 가양유 강미애 ◇ 유치원장 중임 △ 신흥유 최미경 ◇ 초등학교 교감 특별 승진 △ 대동초 김정순 △ 목양초 윤경숙 △ 산성초 윤안나 △ 선유초 김명숙 △ 신계초 신기동 △ 만년초 윤소현 △ 복수초 임재란 ◇ 초등학교 교감 승진(초등학교 교사 → 초등학교 교감) △ 문화초 김혜정 ◇ 초등학교 교감 전직(교육연구사 → 초등학교 교감) △ 신계초 조해옥 ◇ 초등학교 교감 전보(청간) △ 용운초 김광헌 ◇ 초등학교 교감 관내 전보 △ 문성초 이은선 △ 보운초 곽명선 △ 석봉초 이석호 △ 원평초 이선영 △ 산흥초 성명희 △ 세천초 이재민 △ 자운초 송해민 ▣ 중등 ◇ 기관장 임용 △ 교육연수원장 이광우 ◇ 장학관 전직(교장 → 장학관) △ 학생생활교육과장 권기원 △ 동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강진구 ◇ 장학관 승진 △ 체육예술건강과장 이충열 ◇ 장학관 승진(장학사 → 장학관) △ 교육정책과 최종선 △ 중등교육과 이연충 △ 체육예술건강과 김석중 ◇ 교육연구관 승진(교육연구사 → 교육연구관) △ 교육연수원 꿈나래교육부장 윤상화 ◇ 장학관 전보 △ 과학직업정보과 한혁 ◇ 장학사·교육연구사 간 전직(장학사 ↔ 교육연구사) △ 중등교육과 정래옥 △ 과학직업정보과 박은주 민경윤 양상인 △ 학생생활교육과 육미란 △ 서부교육지원청 김덕진 △ 교육연수원 이석구 △ 학생해양수련원 정석범 ◇ 장학사·교육연구사 신규 임용(교사 → 장학사·교육연구사) △ 혁신정책과 이응룡 △ 교육정책과 김시명 △ 교육정책과 김우전 박진호 이은실 △ 체육예술건강과 김도현 △ 동부교육지원청 권성중 이광형 △ 서부교육지원청 최명희 △ 교육과학연구원 김혜선 박미영 장선미 △ 교육연수원 구본권 장오희 △ 교육정보원 연정아 ◇ 장학사·교육연구사 전보 △ 중등교육과 원영웅 유순준 이성녀 △ 체육예술건강과 성재현 △ 동부교육지원청 김영범 서혜란 △ 교육정보원 박영미 ◇ 교육전문직원 정년퇴직 △ 교육연수원장 김상규 ◇ 중등학교장 승진(교감·공모교장 → 교장) △ 한밭여중 원종학 △ 충남중 오세문 △ 가양중 이현숙 △ 용운중 모점숙 △ 오정중 오현숙 △ 신탄중앙중 이학우 △ 용전중 한인택 △ 법동중 윤석원 △ 대문중 김함오 △ 대청중 정진은 △ 갈마중 김중식 △ 봉우중 김혜순 △ 괴정중 최임순 △ 관평중 이외숙 △ 봉명중 박종식 △ 둔산중 백수현 △ 관저중 장명신 ◇ 중등학교장 전직(장학관·교육연구관 → 교장) △ 전민고 조진형 △ 한밭중 박인규 △ 글꽃중 안일용 ◇ 중등학교장 공모(교감·장학사 → 공모교장) △ 충남고 최정수 △ 유성생명과학고 손인성 ◇ 중등학교장 중임(교장·장학관 → 교장 중임) △ 한밭고 정미애 △ 지족중 홍정화 △ 노은중 여인선 △ 구봉중 이용희 △ 새미래중 최근식 ◇ 중등학교장·특수학교장 전보 △ 맹학교 원종대 △ 대전여중 이정옥 △ 대덕중 최동순 △ 탄방중 황현태 △ 전민중 김미경 △ 문정중 오두환 △ 둔원중 주현희 △ 버드내중 박용균 △ 두리중 조주호 ◇ 중등학교장·특수학교장 정년퇴직 △ 충남고 우제환 △ 유성생명과학고 양영석 △ 전민고 김현태 △ 맹학교 최규붕 △ 대전여중 진영욱 △ 한밭여중 김선희 △ 충남중 조충길 △ 신탄중앙중 임영묵 △ 용전중 고경희 △ 글꽃중 나우현 △ 대덕중 이찬배 △ 탄방중 민형식 △ 전민중 전홍식 △ 둔원중 최명기 △ 버드내중 김일환 △ 지족중 이군희 △ 노은중 김선홍 △ 괴정중 심기창 △ 두리중 김혜숙 △ 관평중 정리다모 ◇ 중등학교 교감 승진(교사 → 교감) △ 충남기계공업고 임재범 △ 동신과학고 안중호 △ 전자디자인고 김정미 △ 괴정고 우부식 △ 산업정보고 채미경 △ 한밭여중 김남수 △ 가양중 여창석 △ 가오중 임경훈 △ 신탄중앙중 양대석 △ 중리중 신은실 △ 대화중 박혜경 △ 송촌중 박종근 △ 탄방중 임항진 △ 관저중 노금종 △ 느리울중 박경신 △ 동화중 유경호 △ 새미래중 최상복 ◇ 중등학교 교감 전직(정학사·교육연구사 → 교감) △ 유성고 정주일 △ 대덕고 김용기 △ 대문중 홍상욱 △ 도마중 국승오 ◇ 중등학교 교감 전보 △ 관저고 김정애 △ 둔원고 정찬우 △ 충남여중 박애란 △ 글꽃중 정석순 △ 봉산중 임은영 △ 어은중 이윤기 △ 남선중 김성희 △ 둔산중 전혜옥 △ 문지중 김복자 △ 장대중 양승운 △ 외삼중 이경자 △ 신계중 박연기 △ 하기중 김진희 △ 관평중 하동수 ◇ 중등학교 교감 정년퇴직 △ 충남기계공업고 박병호 △ 대덕고 최승우 △ 둔원고 신정휴 △ 괴정고 여승준 ◇ 중등학교 교감 특별 승진 △ 충남기계공업고 박천구 △ 대전여고 박장순 △ 신탄진고 송은주 △ 전자디자인고 조규흠 △ 관저고 이범재 △ 법동중 한지숙 △ 진잠중 궉영미 △ 진잠중 노금선 △ 탄방중 김학중 △ 삼천중 한남순 △ 어은중 송순덕 △ 구봉중 유동협 △ 동화중 주재영 △ 두리중 주인희 ■ 법제처 ◇ 고위공무원 승진 △ 행정법제국 법제심의관 안상현 ◇ 과장급 전보 △ 행정법제국 법제관 배개나리 ■ 대전시 유성구 ◇ 3급 △ 부구청장 이동한 ◇ 4급 △ 자치혁신본부장 최진석 △ 사회복지국장 오강진 ◇ 5급 △ 복지정책과장 장규환 △ 교통과장 정회영 △ 노은2동장 전남숙 ■ 대전시 ◇ 국장급(3급) △ 건설관리본부장 류택열 ◇ 과장급(4급) △ 재난관리과장 전덕표 △ 에너지산업과장 김가환 △ 건설도로과장 이종범 △ 인재개발원 교학과장 이경하
  • ‘중국 인민해방군 10분 거리’ 무장시위 속 홍콩 주말 집회

    ‘중국 인민해방군 10분 거리’ 무장시위 속 홍콩 주말 집회

    교사 2만명 “학생 지키자” 평화행진‘반폭력’ 구호 세운 친중국 집회 열려18일 대규모 송환법 반대 집회 고비 중국이 인민해방군 산하 무장경찰을 홍콩 경계에서 10분 거리까지 전진 배치한 가운데 홍콩에서 17일(현지시간) 주말을 맞아 다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철폐 요구 시위가 이어졌다. 이번 시위는 지난 6월 이후 11주 연속 대규모 주말 시위다. 17일 명보 등에 따르면 이날 홍콩 도심 센트럴에 있는 공원 차터가든에서는 주최 측 추산 2만 2000여명의 교사들이 모여 송환법 반대 운동에 앞장서 온 학생들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었다. 교사협회 주최로 열린 이번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은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는 날씨 속에서 ‘다음 세대를 지키자’, ‘우리의 양심이 말하게 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차터가든에서 캐리 람 행정장관 관저까지 행진했다. 오전에 시작된 교사들의 집회는 오후까지 평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오후 3시쯤부터는 카오룽반도 훔훔 지역에서 수백에서 수천명에 이르는 홍콩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송환법 반대 집회 및 행진이 이어졌다.이곳 집회와 행진은 경찰의 허가를 받았지만, 신고된 행사가 끝난 뒤에도 약 수백명의 시위대는 신고하지 않은 경로로 이동해 인근 몽콕 경찰서를 둘러싸고 경찰과 대치했다. 시위대는 항의의 표시로 레이저 포인터로 경찰서를 비췄고, 일부 시위대는 경찰에 계란과 물병을 던지기도 했다. 경찰은 경고 방송을 한 뒤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력을 투입해 거리를 점거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송환법 반대 시위에 맞서 친중파 인사들의 맞불 집회도 열렸다. 홍콩수호대연맹은 오후 5시부터 홍콩 도심인 애드미럴티에 있는 타마공원에서 ‘폭력 반대, 홍콩 구하기’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47만 6000명이 참석했다고 추산했다.이들은 지난 6월부터 이어진 대규모 시위로 인해 홍콩의 혼란이 극에 달했다면서 폭력을 멈추고 중국과 홍콩을 분열시키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본 행사격인 대규모 집회가 18일에 예정돼 있어 홍콩은 긴장감이 돌고 있다. 대규모 도심 시위를 주도했던 민간인권전선은 18일 오전 10시 빅토리아 공원에서 송환법에 반대하고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다. 홍콩 경찰은 폭력 시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18일 집회는 빅토리아 공원 내 집회만 허용하고, 주최 측이 신청한 행진은 불허했다. 이 때문에 일부 시위대가 경찰이 불허한 행진을 강행할 경우 거리에서 시위대와 경찰, 친중 시위대 간 충돌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중국 정부는 최근 일부 시위대의 해동을 ‘테러리즘에 가까운 행위’라고 규정했다. 특히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육군은 홍콩 인근인 선전만의 춘젠 체육관에 군용 차량을 대거 대기시키고, 군중 진압 훈련을 벌이는 등 무력 시위를 벌였다. 몽콕 등 일부 지역에서 경찰과 시위대 간의 소규모 대치 상황이 빚어졌지만 16일 밤부터 이날까지 홍콩에서 진행된 일련의 송환법 반대 진영 시위는 중국군의 개입 경고를 의식한 듯 대체로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16일 밤 차터가든 공원에서는 대학생 등 주최 측 추산 6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집회가 열렸지만, 최근 여느 대형 집회 때와는 달리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판깨스트] 판결로 본 ‘세월호 보고조작’… “김기춘, 허위 보고 직접 주도”

    [판깨스트] 판결로 본 ‘세월호 보고조작’… “김기춘, 허위 보고 직접 주도”

    “(대통령)비서실에서는 20~30분 단위로 간단없이(끊임없이) 유·무선 보고를 하였기 때문에 대통령은 직접 대면보고 받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14년 7월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과정에서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와 서면답변서를 제출하고 보고서 내용 그대로 국회에서 답변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해 법원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권희)는 “청와대의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들을 기만하고자 한 것으로 그 죄책(죄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김 전 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이른바 ‘세월호 보고조작’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의 판결 내용을 통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과 이후 청와대가 보고시각을 조작한 과정을 되짚어 봤습니다.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발생 무렵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국무회의나 외부 행사 등 공식적인 일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근무하지 않고 주로 관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 등 관계 공무원들과 직접 대면하여 국정을 논의하거나 보고를 받는 일이 드물었고 주로 서면보고를 받았다” 김 전 실장 등의 판결에 기본 전제사실로 적힌 박 전 대통령의 근무 형태와 보고 방법입니다. 공식 행사가 없을 때는 관저에 머물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졌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중앙재난대책본부에 나가기까지 7시간 동안 과연 무엇을 했는지가 사고 직후부터 큰 논란이 됐죠. ●청와대, 최초 보고시간 ‘9시 30분→10시’으로 수정 왜? 사고 직후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이 오전 9시 30분 사고 발생에 대한 첫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사고 상황에 대한 첫번째 보고서를 작성한 국가안보실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오전 9시 19분쯤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뉴스속보 자막을 통해 세월호 사고 발생 소식을 접했고, 안보실 소속 전모씨는 9시 22분 청와대 문자메시지 발송시스템을 이용해 각 수석비서관과 비서관, 행정관 등에게 사고 발생 소식을 알렸습니다. 역시 안보실 소속인 이모씨는 10분 안에 상황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겠다고 보고 보고시간을 ‘2014. 4. 16(수) 09:30’으로 적은 상황보고서 1보를 작성했습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사항만 보고를 올렸다가 상황팀장인 김모씨의 지시를 받고 조난 신고 시간, 배의 명칭과 톤수, 탑승인원 등을 추가로 파악했고 김씨가 이씨의 보고 내용을 토대로 1보 보고서를 수정했습니다. 상황2반의 상황팀장인 백모씨가 9시 39분과 9시 42분쯤 구조세력 동원 현황을 파악했고 9시 54분과 9시 57분쯤 56명이 구조됐다는 것과 구조된 인원이 사고지점으로부터 약 7㎞ 떨어진 서거차도로 이동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해경 상황실과의 전화통화로 파악했죠. 이미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예상한 보고시간보다 30분 가까이 지체가 됐습니다. 그리고는 안보실 상황팀은 1보 초안을 작성해 10시에 상황병에게 김장수 전 실장에게 보고서를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김 전 실장이 1보를 검토한 뒤 신인호 전 안보실 국가위기관리센터장에게 1보를 대통령에게 보내도록 지시했고 신 전 센?장은 10시 12~13분쯤 1보 보고서를 출력해 밀봉한 뒤 상황병에게 관저로 전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위기관리센터에서 대통령 관저 인수문까지 597m를 상황병이 뛰어서 이동할 경우 소요되는 시간은 약 6분 20초. 관저 경호원이 이를 전달받아 대통령의 침실 앞 탁자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은 최소 10시 19~20분이 됐을 것이라는 게 검찰 수사와 법원의 판단 내용입니다. 1보를 포함해 국가안보실에서 청와대 관저로 상황보고서를 보낸 것은 모두 세 차례였습니다. 1보가 10시 19~20분쯤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10시 40분쯤 상황보고서 2보, 11시 20분쯤 상황보고서 3보가 각각 안보실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와 함께 정무수석실 산하 사회안전비서관실에서 해경 출신 이모 행정관이 해경 상황실 등과 통화하며 파악한 내용들을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에게 보냈습니다. 오전 10시 36분, 10시 57분, 11시 28분, 오후 12시 5분, 12시 33분, 1시 7분, 3시 30분, 5시 11분, 8시 6분, 8시 50분, 10시 9분 총 11차례 정 전 비서관에게 이메일이 전달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정 전 비서관이 이메일을 열어보았는지, 이메일 속 보고서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실제로 보고됐는지는 확인하지 안?고 정 전 비서관도 비서실에 이메일을 받았는지,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는지 알리지 않았습니다. ●국회 답변 앞두고 보고시간 및 대응상황 재점검…김기춘 “좋아, 다음으로” 일일이 확인 스스로 탈출한 생존자들을 제외하고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참사의 비극이 나날이 짙어지자 청와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더욱 높아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제대로 상황이 전달되지 않아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런데다 참사 일주일 뒤 김장수 전 실장은 당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통일, 정보, 국방 분야의 컨트롤타워이지 자연재해 같은 게 났을 때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발표해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을 고조시켰죠. 참사 당일 과연 박 전 대통령에게 어떻게 보고가 이뤄졌고 왜 제대로 된 대처가 이뤄지지 못했는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면서 국회는 국정조사를 하기로 했습니다.국회 운영위원회와 국정조사특위가 7월로 예정되자 5~6월 정무수석실을 중심으로 예상 질의·응답자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김기춘 전 실장은 각 수석비서관실과 국가안보실 소속 행정관들인 실무자들이 작성한 답변자료 초안을 직접 검토한 뒤 6월 18일부터 7월 9일까지 14차례 ‘검독회’를 갖습니다. 쟁점별로 질의응답을 직접 주고받으며 정리하는 것이죠. 신동철 당시 정무비서관이 예상 질의내용과 답변을 읽은 뒤 관련된 수석들이 부가적인 설명을 하는 식으로 답변 내용이 정리되면 김기춘 전 실장은 “좋아, 다음으로 넘어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판결에는 “피고인(김기춘 전 실장)이 각 답변자료에 대해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질의사항 및 답변사항 추가, 수정 및 삭제 등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답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특히 청와대의 늦장 대응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신인호 센터장은 국가안보실의 최초 사고 인지 시점과 최초 서면보고 시점 등에 대해 정확하게 다시 사실관계를 파악해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애초에 안보실에서 작성된 1보에는 ‘9시 30분’으로 보고시간이 적혀있었지만 실제로 1보 보고서가 완성된 시간은 10시가 다 가까워졌으니 보고시간부터 이미 틀린 상태였습니다. 판결에는 “상황팀 직원 모두 상황보고서 1보에 기재된 보고시간 09:30이 실제 보고시간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이들이 최초 보고시점을 특정하려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상황팀은 위기관리센터 안에 있던 폐쇄회로(CC)TV 두 대를 통해 당시 보고서를 전달한 상황병들의 출발 시간을 확인하고 9시 50분쯤을 1보 보고서의 보고시간으로 특정했습니다. 이후 그해 6월 초까지 1보 보고서의 보고시간을 9시 50분으로 정리했는데, 해경 녹취록을 입수한 뒤 9시 50분도 틀린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해결 녹취록과 상황보고서 1보의 내용을 비교해 보니 9시 57분쯤 안보실이 파악한 구조 인원들이 서거차도로 이동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1보에 포함돼 있던 겁니다. 청와대는 최초 보고시간을 10시로 바꾸기로 결정했는데, 누구의 지시와 제안으로 최초 보고시간을 10시로 바꾸게 됐는지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진술이 서로 엇갈려 명확하지 않습니다. 상황팀 직원들은 자신들이 변경 지시를 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일로, 정무수석실 관계자들로부터 변경됐다는 내용을 들었다고만 했습니다. 보고시간을 수정한 것과 함께 재판의 쟁점이 된 것은 과연 ‘실시간으로’ 보고가 이뤄졌는지였습니다. 김기춘 전 실장은 그해 7월 7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업무현황 보고에 이어 7월 10일 세월호 국정조사특위에서 잇따라 박 전 대통령이 오전 10시부터 서면보고를 받은 뒤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달받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국가안보실장이 10시 서면보고를 대통령에게 올리자마자 10시 15분에 대통령이 (안보실장에게) 전화를 주셔서 해경에 지시를 하도록 했고, 다시 또 해경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하시고 그 이후에 저희들이 계속 간단없이 20~30분 단위로 문서로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충분히 직접 만나서 물어보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보고시간은 최소 10시 19~20분보다 늦었음에도 세월호 탑승자가 마지막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시간인 10시 17분의 ‘골든타임’ 이전에 보고가 이뤄졌음을 강조하기 위해 오전 10시에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조작했고 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이 사고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고 했다는 게 김기춘 전 실장의 공소사실 핵심 내용입니다. ●법원 “‘20~30분 간격, 끊임없이 보고했다’는 김기춘 답변은 허위” 김기춘 전 실장 측은 특히 정호성 전 비서관을 비롯한 부속비서관실 직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대통령에게 10차례 이상 보고가 됐으니 실시간으로 보고한 게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정 전 비서관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정 전 비서관이 검찰에서는 “오후 1시 27분쯤 관저로 올라가 비서실에서 받은 보고서(10시 36분부터 1시 7분까지 보내진 6건)를 한꺼번에 출력해 침실 옆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려놓는 방법으로 보고를 했다. 다만 오전 10시 36분과 57분 보고서는 오전에 관저에 한 번 올라가서 갖다 드렸거나 팩스르 보냈을 수도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법정에서는 “오전에 한두 번 팩스를 넣었던 것 같고, 오후에 관저에 올라가면서 출력해 침실 앞 탁자에 올려두었던 것 같다”면서 그 뒤 오후 상황까지 자세히 보고 시점을 언급했습니다. 검찰과 법정 증언이 엇갈리는데 특히 사고와 더 멀리 떨어진 법정에서의 진술이 더 자세하고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정 전 비서관이 기억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또 정 전 비서관이 실제 몇시에 몇 번이나 관저에 직접 찾아가 보고를 했는지를 밝힐 증거는 없었습니다. 재판부는 김기춘 전 실장이 정 전 비서관에게 보고 시간 및 횟수 등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보고서가 실시간으로 보고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여기에 국회 질의응답 자료를 준비하던 실무자들은 한 목소리로 ‘실시간으로’, ‘20~30분 단위로’, ‘간단없이’라는 문구는 김기춘 전 실장이 직접 쓴 표현이라고 진술했습니다. 재판부는 “사고 당일 대통령비서실이 정호성에게 이메일로 보낸 대통령에 대한 서면보고서가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는지 확인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보고서가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전달되지 않은 사실을 인식했음에도 대통령이 20~30분 단위로 간단없이 보고를 전달받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고 허위의 사실을 기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사고 당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의문이 든다고 강조했습니다.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과 직접 대면한 사람은 그날 오후 2시 15분쯤 관저를 방문한 최순실씨와 정호성·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이었는데 이 가운데 비서실에서 이메일을 받은 정 전 비서관조차 그날 점심 무렵까지 상황의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정 전 비서관이 평소에 급한 보고서가 있으면 바로 팩스로 대통령에게 전송했다고 하면서 그날은 팩스를 보냈는지 아닌지 기억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오후 2시 50분쯤 김장수 전 실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190명 추가 구조 보고는 서해 해경청에서 본청에 잘못 보고한 것”이라고 보고할 때까지도 그렇게 큰 사고인 줄 몰랐다며 스스로 불찰이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대면한 사람 가운데 그나마 정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의 인식과 가장 비슷했을 텐데 그조차 오후까지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으니 박 전 대통령 역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재판부는 “당시 대통령이 최초 보고를 받은 때부터 약 7시간에 이르도록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선내에 갇혀있는 것조차 몰랐던 것은 아닌지 상당한 의문이 든다”고 했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5년. 이날 선고공판을 지켜보기 위해 노란색 옷을 입고 온 유가족들은 방청권을 미리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정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한 시간 남짓 법정 밖에서 울부짖던 부모들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분노와 슬픔이 뒤섞였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2014년에 살고 있다고요”, “자식을 이렇게 잃은 부모의 심정을 알기나 합니까?” 목이 터져라 토로하던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김기춘 전 실장은 피고인석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74주년 광복절 다크 투어리즘 명소 선정

    74주년 광복절 다크 투어리즘 명소 선정

    서울관광재단이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서울에 남겨진 당시 흔적들을 찾아가는 ‘다크 투어리즘’ 명소를 선정해 소개했다. ‘남산 국치의 길’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남산 자락에 들어선 시설들을 따라간다. ‘한국통감관저 터’, ‘노기신사 터’ 등이 이 구간에 있다. ‘경제 침탈의 길’은 보신각 남쪽 광교에서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이르는 구간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은행이 밀집했던 금융 지역의 흔적을 살핀다. ‘고종의 길’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 이른바 ‘아관파천’ 당시 통과했던 길을 복원한 것이다. 전체 길이가 불과 120m로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되지 않는 짧은 코스다. 덕수궁 중명전, 정동전망대 등과 함께 둘러보면 좋다. 서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박물관’은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해 경교장, 돈의문 박물관, 경희궁, 한양도성박물관, 청계천박물관 등 다수의 분관으로 구성돼 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수감됐던 서대문형무소를 복원해 조성한 곳이다. 1907년 경성감옥으로 시작한 서대문형무소에서 고초를 겪은 독립투사만 4만여명이라 전한다. 5000여장의 당시 수형 기록표 등을 전시해 놨다. ‘망우리공원’은 독립투사와 유명 예술인 등이 묻힌 곳이다. 예전엔 공동묘지였으나 최근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안창호, 한용운, 이중섭, 박인환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인물들의 묘지가 있다. 유관순 열사 합장비도 세웠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한일 우여곡절 끝 국교 재개 합의했지만… 기로에 선 ‘1965년 체제’

    한일 우여곡절 끝 국교 재개 합의했지만… 기로에 선 ‘1965년 체제’

    한일회담은 한국이 승전국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의 서명국 참가가 좌절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할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을 대일강화조약 서명국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하자, 조약에 일본과의 양자협의를 개최할 수 있는 근거(제4조 a항)와 일본의 한국 내 재산의 포기를 확인하는 조항(4조 b항) 등을 추가해 줄 것을 미국에 요구했고, 결국 성사시켰다. 제4조 a항은 ‘재산 및 채무를 포함한 청구권의 처리는 일본과의 특별협정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 조항에 근거해 미국의 주선으로 마련된 예비회담이 1951년 10월 20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최고사령부에서 시작되었고 중단에 중단을 거듭하다 7차 회담을 통해 1965년 6월 22일 마무리됐다. 1개의 조약과 4개의 협정이 체결됐다.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 ▲어업 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이다. 양국 국회에서 비준된 뒤 1965년 12월 18일 양국 정부가 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정식 발효됐다. 이날부로 양국 국교가 재개되었고 이른바 1965년 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1차 회담(1951~1952년) ‘대한(對韓)청구권’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다. 해방 후 미 군정청은 ‘법령 33호’를 통해 한반도 내 일본 정부와 기관 등의 공공재산과 사유재산을 전부 몰수했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9월 11일 한국 정부와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 협정’을 체결하고 인계했다. 회담이 시작되고 일본은 1907년 헤이그 조약 46조의 ‘사유재산은 몰수할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 삼아 역(逆)청구권을 주장했다. 일본은 패망 시점 일본의 한반도 내 재산을 702억여엔(당시 환율로 대략 47억 달러)으로 집계해 이 재산으로 한국의 대일청구를 상쇄하고 연합국 배상에도 충당하려 했다. 역청구권 주장이 계속되자 한국은 “일본이 청구권을 철회하지 않는 한 회담은 계속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고, 일본은 무기연기를 제의했다. ●2차 회담(1953년) ‘어업 문제’로 인해 일본은 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앞서 1차 회담이 시작되기 1개월 전 이승만 대통령은 해상에 ‘이승만 라인’을 설정하고 이를 침범한 일본 어선을 ‘마구잡이’로 나포했다. 일본은 나포된 어선과 선원들을 송환받기를 원했다. 1953년 4월 15일 도쿄에서 열렸지만 일본은 이승만 라인의 철폐를, 한국은 일본의 대한청구권 주장의 철회를 서로에게 일방적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기본관계 ▲재산청구권 ▲재일한인의 국적 처우 ▲어업 ▲선박 등에서 5개 위원회가 설치되어 돌아가던 중 6·25전쟁 휴전이 성립되자 서로 회담을 뒤로 미루기를 원했다. ●3차 회담(1953년) 구보타 망언 파문으로 양국 간 감정 대립이 격화하고 회담이 장기간 표류했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에 유익했다는 이른바 ‘식민지 시혜론’이 한국 여론을 들끓게 했다. 일본 측이 역청구권을 포기하지 않자 재산청구권 위원회에서 한국 측 홍진기 대표가 “일본이 36년간의 축적을 반환하라고 한다면, 36년간의 피해를 상각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하자 일본 측 구보타 수석대표는 “한국에서 민둥산을 녹화한 일, 철도를 깔고 항만을 건설하고 논을 조성한 일, 대장성이 1000만~2000만엔을 지출해 한국 경제를 배양한 일을 한국 측 요구와 상쇄했을 것”이라고 한 데 이어 “(한반도에) 일본이 가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들어왔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카이로선언에서 사용된 ‘조선인의 노예 상태’라는 단어는 연합국이 전시 흥분 상태였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라고도 했다. 회담은 개시 2주 만인 10월 21일 결렬됐다. ●4차 회담(1958~1960년) ‘재일조선인’의 북송 문제가 파란을 일으킨 회담이었다. 앞서 회담 휴지기에는 상당한 진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1954년 구보타 망언이 철회되었고, 미국의 강력한 개입으로 일본이 역청구권을 포기한다. 한일회담에서의 최초의 합의였다. 문화재도 일부 ‘인도(반환이 아닌)되었다. 1958년 4월 15일 회담이 개최되었지만 6월 북한과 일본이 북송에 합의하자 한국은 한일무역을 단절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적극적 중재와 양측의 필요성이 회담을 추동해 4차례 본회의를 열었으나 1960년 4·19혁명과 대통령의 하야로 회담은 보류됐다. ●5차 회담(1960~1961년) 경제협력 방식을 통한 청구권 문제의 해결 방안을 일본이 본격 제기했다. 한국은 이 방안은 수용할 수 없었지만 비공식 관련 회담에는 응했다. 장면 내각은 적극적인 대일 정책을 천명했다. 한국의 경제건설을 위해 일본과의 경제 협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일본도 1950년대 호황기를 지나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을 생산기지 겸 시장으로 바라보고 경제협력 구축의 필요성을 느꼈다. 1960년 9월 6일 일본 외상이 친선사절단으로 방한, 회담 재개에 합의했다. 해방 후 일본 고위관리의 첫 한국 방문이었다. 5차 회담은 5·16을 맞으면서 중단된다. ●6차 회담(1961~1964년) ‘김·오히라 메모’로 청구권의 액수와 공여 방식을 결정했다. 앞서 양국은 실무협상만으로는 타결이 어렵다고 보고 고위급 정치회담을 개최, 1962년 3월 최덕신 외무장관·고사카 외상 간 이른바 제1차 정치회담을 열었다. 이때 청구권 금액은 한국 7억 달러 대 일본 7000만 달러(차관 2억 달러 제시)로 편차가 컸다. 1962년 10~11월 2차 정치회담에서는 김종필 부장과 오히라 외상이 만났다. 앞서 배의환·스기 수석대표 간 10차례에 걸친 예비회담을 통해 상대방이 염두에 두고 있는 수치가 무엇인지 탐색했다. 메모는 ‘무상공여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 달러, 자금협력 1억 달러+@’로 정리되었다. 김·오히라 메모 합의 후 오히라 외상은 그 명목을 “한일국교 정상화를 축하하고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라고 주장했다. 이후 일본은 청구권이 아닌 경제협력을 위한 자금으로 할 것을 회담 내내 고집했다. ●7차 회담(1964~1965년) 회담이 마무리되기까지는 2년 반이 더 소요됐다. 어업 문제, 기본조약 문제 등 나머지 현안에 대한 교섭이 남아 있었는데 일본은 특히 어업 문제를 청구권 문제의 미해결 사안과 연계시켰다. 1963년부터 김·오히라 메모에 대한 극심한 반대로 한국이 큰 혼란을 겪은 탓도 컸다. 1964년 12월 7차 회담이 재개되었다. 1965년 2월 17~20일 방한한 시나 에쓰사부로 외상이 김포 도착 성명에서 “양국 간의 오랜 역사 중에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서 깊이 반성하는 바이다”라고 한 것은 회담 타결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었다. 일본은 조인식 직전까지 몇몇 표현에 집착했다. 예컨대 ‘청구권’이라는 단어를 끝까지 거부했고, ‘문화재’라는 명칭을 피하려 ‘문화상 협력에 관한’이란 표현을 제시했다. 최종적으로는 ‘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 협정’ 등의 이름으로 타협됐다. 6월 22일 이동원 장관이 일본 총리관저에서 국교정상화를 위한 1개의 조약과 4개의 협정, 2개의 의정서에 조인한 뒤 총 27건에 이르는 조약, 협정, 부속문서가 조인되거나 교환됐고 각각 국내 비준절차를 거쳐 12월 18일 발효되었다. jj@seoul.co.kr
  • “日 사죄하고 배상하라”… 광복절 10만명 ‘NO 아베 촛불’ 들다

    “日 사죄하고 배상하라”… 광복절 10만명 ‘NO 아베 촛불’ 들다

    750개 단체 광화문광장 ‘범국민 문화제’ 자유발언 땐 “신혼살림도 日 제품 불매” 낮엔 서울광장 ‘강제동원 해결 시민대회’ 참가자들 주한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 日 시민단체도 도쿄서 아베 비판 시위 일본의 경제보복 탓에 촉발된 한일 갈등 국면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가운데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반(反)아베 집회가 열렸다. 750여개 시민사회 단체로 꾸려진 ‘아베 규탄 시민행동’은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8·15 제74주년 아베 규탄 및 정의 평화 실현을 위한 범국민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 10만명(주최 측 추산)은 우산을 내려놓고 ‘NO 아베’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광장 곳곳에서 “강제징용 사죄하라”, “침략 지배 사죄하라”, “경제 침탈, 평화 위협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공연과 자유발언이 이어지는 형식으로 진행된 문화제에서 발언자로 나선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0)씨는 “여러분,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젊은이들이 한몸, 한뜻이 돼야 한다”며 “아베한테 할 말은 다 하고, 용기를 내서 우리 한국 사람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지 말고 끝까지 싸워 아베를 끌어내리자”고 말했다. ‘평화의 소녀상’ 조각가 김서경 작가도 발언대에 올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트리엔날레에서 전시 중이던 소녀상이 사흘 만에 전시 중단을 당했다”면서 “하지만 일본인들이 우리를 위해 시위를 해 주고 있다. 소녀상이 이름에 걸맞게 평화의 소녀상으로 역할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동참하며 신혼살림을 장만하고 있다는 예비부부 성치화·최경은씨는 “답답한 마음에 결혼 준비를 미루고 이 자리에 왔다”면서 “아베의 도발에 똘똘 뭉쳐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자”고 강조했다. 문화제가 진행되던 광화문 일대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도 동시에 열려 작은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문재인 퇴진’ 머리띠를 맨 여성들이 탄 트럭이 촛불 문화제 무대 근처로 접근하자 문화제 참가자들이 “부끄러운 줄 알라”며 이들을 쫓아냈다. 꽹과리를 치면서 문화제를 방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촛불 문화제 시민들이 “매국노”라고 외치며 부딪치자 경찰은 이들 사이를 막아섰다. 앞서 이날 오전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서울광장에서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대회’를 열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2000명(주최 측 추산)가량의 참가자들은 장대비 속에 우산을 들거나 비옷을 입고 “강제동원 사죄하라”, “아베는 사죄하고 배상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대회에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도 참여했다. 징용 피해자 이춘식(95)씨는 “할 말은 많지만 목이 메어 못한다. 미안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참가자들은 대회 종료 후 비둘기 형상 풍선 200여개를 들고 주한 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했다. 노동자들도 한데 모여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민주노총은 광화문광장에서 ‘8·15 전국 노동자 대회’를 열었다. 일본과 북측 단체도 아베 정부의 행보에 비판 목소리를 더했다. ‘8·15민족통일대회·평화손잡기’ 행사에서는 일본 평화포럼, 재일한국인민주통일연합,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가 국내 단체와 함께 공동호소문을 내며 아베 정부를 비판했다. 행사 참가자들은 항의의 의미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욱일기를 찢었다. 전국 곳곳에서도 광복절 행사가 열렸다. 경북 울릉도 사동항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태권도 퍼포먼스가 개최됐고, 경기 용인의 용신중 학생 100명은 만세삼창을 하며 광복의 순간을 재현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저녁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 앞에서도 아베 정권 비판 집회가 열렸다. 일본 시민단체 ‘평화와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는 전국 교환회’ 등은 ‘아베 그만둬라’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만들어가는 한일 평화시민 공동선언’을 낭독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손잡은 한일 시민·노동자 “아베 경제보복 규탄”

    손잡은 한일 시민·노동자 “아베 경제보복 규탄”

    日젠로렌 “한국 불매운동은 反아베 행동”…한일 노동자·시민 ‘성숙한 연대’ 오다가와 의장 “27일 아베 관저 앞 시위” 민주노총 김명환 “양국 노조 공동 행동” 한일 양국의 시민과 노동자들이 74주년 광복절인 15일 손을 잡고 일본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과 경제보복 조치를 규탄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배제’ 조치로 한일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양국 시민사회는 성숙한 모습으로 연대 노력을 하고 있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이날 서울광장에서 ‘광복 74주년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시민대회에는 일본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과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노총인 전국노동조합총연합회(全勞聯·젠로렌) 오다가와 요시카즈 의장이 참석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규탄하고 한국 시민사회와 연대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비 오는 날씨에도 집회에 모인 2000여명(주최 측 추산)은 “한일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야노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는 지난해 (강제동원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 9개월이 지나도록 사죄는커녕 배상 이행도 안 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정치 상황이 간단하지 않지만, 피해자들이 35년 넘게 싸워 온만큼 함께 극복할 것을 약속하면서 싸우자”고 말했다. 일본 ‘공동행동’은 일본 내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동자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민단체들이 지난해 11월 모여 만든 연대체로, 이번 서울 집회와 평화행진을 한국 ‘공동행동’과 함께 준비해 왔다. 서울광장 집회에서는 일본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일본 오사카에서 온 하루유키 니이(68)는 “일본과 한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집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일본이 먼저 제대로 된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사카에서 한국인 친구들을 사귀면서 한일 관계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젠로렌의 오다가와 의장은 이날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간담회도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화이트리스트 배제’ 시행령 발효 전날인 오는 27일 아베 총리 관저 앞에서 항의행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또 “아베 정권은 일본 내 우파 세력의 지지와 관심을 끌어들이려고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다가와 의장은 “한일 양국은 경제적으로 긴밀해 무역 마찰이 발생하면 (일본 제품을) 생산하는 곳에 여파가 생기고, 한국 관광객이 감소해 일본 노동자들이 직격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강하게 추궁하는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을) 해고 등 ‘경영합리화’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어 이를 (노동조합이) 막아 내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오다가와 의장은 한국 내 일제 불매운동에 대해서도 한국 시민사회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한국의 불매운동을 ‘반일 행동’ 또는 ‘반아베 행동’으로 보는 견해로 나뉘는데, 젠로렌은 ‘반아베 행동’으로 본다”면서 “양국 노조가 더더욱 신뢰를 강화하고 연대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74년 전 700만 조선 민중이 일본과 동아시아 각국으로 전쟁 물자를 대기 위해 끌려갔다”면서 “민주노총은 그 역사를 제대로 세우고, 평화헌법을 수호하려는 (젠로렌을 비롯한) 일본 양심세력과 공동행동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아베 반대”…한일 노동자들 광복절에 뭉쳤다

    “아베 반대”…한일 노동자들 광복절에 뭉쳤다

    오다가와 일본노총 의장, 민주노총 찾아 간담회일본노총, 오는 27일 아베 관저 앞에서 항의행동오다가와 “한국 불매운동 반 아베 행동이라고 본다”“‘화이트리스트 배제’ 시행령 발효 전날인 8월 27일 일본 수상관저 앞에서 항의행동을 벌일 것입니다.” 110만 조합원을 대표하는 일본 노총 전국노동조합총연합회(全勞聯·젠로렌) 오다가와 요시카즈 의장이 74주년 광복절인 15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아베 정권의 역사왜곡과 군국주의 흐름을 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다가와 의장은 “한일 양국은 경제적으로 긴밀하기 때문에 무역 마찰이 생겨나게 되면 (일본 제품을) 생산하는 곳에 여파가 생기고, 관광객이 감소해 노동자들이 직격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정부에 강하게 책임추궁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현장에서는 (기업이) 경영합리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식으로 이끌어 갈 수도 있어서 그 부분을 (노동조합이) 막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젠노련 등이 포함된 일본의 ‘총단결행동실행위원회’는 27일 아베 총리의 관저 앞에서 2000~3000명 규모로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 오다가와 의장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한일 갈등) 문제를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경제적으로 풀어가는 건 정경 분리 원칙에도 맞지 않고 도리에도 맞지 않다”면서 “아베 정권은 일본 내 우파 세력의 지지와 관심을 끌어들이려고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베 정권은 ‘역사 수정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침략전쟁과 식민지주의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며 “역사수정주의 입장에서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고 헌법구조까지 바꾸려고 하고 있다. 이런 시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저희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오다가와 의장은 한국에서 확산되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일본에서는 한국의 일본 불매운동을 ‘반일 행동’으로 보거나 ‘반 아베 행동’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전노련은 이를 ‘반 아베 행동’으로 본다”면서 “양국 노조가 더더욱 상호 간의 신뢰를 강화하고 연대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조치는 역사 왜곡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기조로 깔고 있다”면서 “이를 규탄하고 철회를 요구하는 한일 노동자와 시민들의 연대라는 측면에서 74주년 광복절에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74년 전 700만 조선 민중들이 일본과 동아시아 각국으로 전쟁 물자를 대기 위한 강제동원을 당했다”면서 “민주노총은 그 역사를 제대로 세우고, 평화헌법을 수호하려는 (젠로렌을 비롯한) 일본 양심세력과 공동행동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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