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생명] 허리끊긴 산…꽉 막힌 생태이동 통로
자연을 고려하지 않고 산허리를 끊어놓는 바람에 동물들의 발이 꽁꽁 묶였다. 도시 확대와 교통 수요 증가에 따른 도로건설은 동물 서식처를 파괴하고 종(種) 다양성의 감소를 불러오고 있다. 도시개발·도로건설 때 생태이동통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치된 이동통로 역시 실제 서식하는 생물종·이동통로 등을 폭넓게 조사하지 않은데다 비(非)전문업자들이 조성해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무늬만 생태이동통로
●마구잡이 도로건설로 이동권 단절
환경부에 따르면 백두대간을 비롯해 남한지역 9개 정맥을 관통하는 도로만 315곳에 이른다. 산허리를 깎아내리거나 낮은 야산 등을 꿰뚫은 곳까지 더하면 도로건설로 생태이동이 단절된 곳은 수천 곳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해 8월말 현재 전국에 설치된 생태이동통로는 178개에 불과하다. 백두대간을 바로 꿰뚫는 곳에는 이동통로가 설치됐지만 나머지 단절지역에서는 동물들이 고립돼 있다.
금남정맥(마이산∼계룡산∼부여 부소산)과 금남호남정맥(장수 장안치∼마이산)에는 57개의 단절된 곳 중 2곳에만 생태이동통로가 설치돼 있다.
충남 논산시 벌곡면 일대 호남고속도로와 68번 지방도로가 금남정맥 산허리를 관통하고 있다. 양쪽 산까지 거리는 50m 정도. 조류를 뺀 동물들은 양쪽 산을 놓고 완전히 고립될 수밖에 없다. 육교형 생태통로를 만들었다면 어느 정도 동물 이동권이 보장될 수 있는 곳이다.
지방도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충남 공주군 계룡면 23,691번 지방도로 역시 여기저기 금남정맥을 끊어 놓았지만 동물들을 배려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전북 진안 부귀면과 완주 소양면 국도 26번 보룡고개 역시 폭 40m, 깊이 25m의 골짜기를 만들면서 양쪽을 서로 다른 세계로 만들어 놓았다.
이동통로가 없는 곳에서는 동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동하다가 로드킬을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전국 국도 405곳에서 조사한 결과 로드킬을 당한 동물은 포유류 921마리를 비롯해 모두 1147마리에 이른다.
유병호 생태복원과장은 “주요 단절 구간에는 이동통로를 만들거나 펜스를 쳐서 동물들을 안전한 곳으로 유도해야 로드킬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생태이동통로에 나무·풀 안자라
설치된 생태이동통로도 사전 조사를 거치지 않아 엉뚱한 곳에 만들어진 예가 많다. 만들어만 놨지 동물이동 현황을 모니터링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관리가 허술한 곳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생태이동통로 가운데 분기별 모니터링을 하는 곳은 겨우 16곳이다.
지난해 실시한 모니터링 결과 강원도 정선 백두대간 백봉령 이동통로는 유도 펜스를 도로변에 설치하고 통로 위에 풀과 나무가 자라지 않아 동물 유도에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됐다.
남원 여원재, 장수 육십령, 무주 덕산재 등에 설치한 생태통로 역시 나무와 풀이 말라죽고 쓰레기가 방치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배수로가 깊어 양서·파충류가 탈출하지 못하거나 깎아내린 절벽에서 흙이 쏟아지는 등 보강할 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생태통로를 만들 때는 실제 서식하는 동식물을 정확히 조사한 뒤 이동이 잦은 곳에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연생태통로 설치 책임을 지는 도로관리 주체가 건교부-지자체-도로공사 등으로 나뉘어져 있고 사후관리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임채환 환경부 자연정책과장은 “야생동물 접근이 어렵거나 사람의 이동통로·등산로로 이용되는 곳이 많다.”면서 “주변 생태 특성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동물을 유도할 수 있는데도 단순 토목공사로 진행된 곳이 많아 복원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홍태식 청산조경 사장 주장 “자연환경 복원 전문업종 신설 시급”
생태시설 설치 수요와 예산은 크게 늘고 있지만 정작 공사는 비전문가들의 손에 이뤄지고 있어 자연환경복원전문 업종 신설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박사학위 논문이 나왔다.
홍태식 청산조경 사장은 올해 단국대 대학원 박사학위를 통과한 ‘환경보전을 위한 자연환경복원전문업 도입’ 논문에서 생태복원을 내건 대부분의 사업이 비전문가에 의해 시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사장은 각계 설문조사 결과 98.8%가 전문 업종 신설을 찬성했고, 이 업종은 자연환경보전법에 근거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자연환경복원전문업무 영역은 생태계 조사·연구, 자연환경복원설계·감리, 자연환경복원공사, 유지관리·모니터링 등이다. 따라서 동물 이동통로 조성, 길 비탈면 훼손 복원사업, 훼손된 습지관리 등은 일반 건설공사가 아닌 자연환경복원전문 공사로 분류, 전문 업자가 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박사는 “생태라는 이름을 내걸고 예산을 따내 주민 편익시설을 설치하는 사례가 많고, 대부분 생태복원 공사가 단순 토목공사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부 국가자격법에서는 자연환경기술사를 뽑아놓고도 과학기술사법에는 정작 이를 반영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까치고개 생태이동통로
남부순환도로로 나뉜 서울 관악산(관악구 남현동)과 까치산(동작구 사당동)을 잇는 까치고개 꼭대기에 생태통로가 지난해 말 조성됐다. 폭 15m, 길이 80m 규모다. 서울시는 도로 건설로 끊어져 40년 가까이 고립됐던 까치산과 관악산 생태를 이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는 동물 이동 통로라기 보다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육교나 마찬가지로 이용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오후 30분 동안 지켜본 결과 60여명이 통로를 지나갔다. 강아지를 끌고 나온 학생부터 등산객, 동네 아주머니들이 동네 근린공원처럼 이용하고 있다. 날씨가 풀리면서 이용객은 훨씬 늘었다. 저녁 때 공원처럼 이용하는 주민도 많았다.
돌무덤을 만들거나 나무를 심는 등 생태통로 흉내는 냈지만 주변 식생과 다른 나무를 심어 놓았고 남부순환도로 소음을 막을 수 있는 시설도 설치되지 않았다.
더욱이 사당동쪽 까치산으로 연결되는 통로 끝에는 게이트볼장이 있고, 바로 아파트 단지 벽을 경계로 하고 있어 동물 이동통로 입지로 적합하지 않았다. 관악산과 까치산을 이어주기에 적합한 장소를 골랐지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생태통로의 운영은 엉망이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정부 대책은
환경부는 오는 2010년까지 주요 대간·정맥을 단절시킨 도로에 생태이동통로를 설치하고 2016년까지 전국 생태축을 연결하는 장기 계획을 마련했다.
환경부는 생태통로 설치에 앞서 우선 체계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백두대간 외에 9개 정맥 단절 지점의 생태 특성 및 이동경로, 주변 서식지와 연결 가능성 등을 조사해 효율적인 설치 지점을 찾아낼 계획이다.
새로 만드는 도로는 생태 자연도, 야생동물 분포도 조사 결과를 활용해 환경영향평가협의에 반드시 생태통로를 설치하도록 했다. 로드킬 발생 지점에는 지방국토관리청, 지자체, 도로공사 등에 유도 펜스 등을 설치해야 한다. 설치 후보 지점은 최소 1∼2년간 분기별 모니터링을 실시, 생태통로 설치 위치와 목표 종(種)을 선정하기로 했다.
생태통로조사단과 로드킬조사연구센터의 사전·사후 모니터링과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적합한 시설을 설치하는 동시에 예산 확보도 적극 지원한다.
우선 금남정맥과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을 단절하고 지나가는 도로를 대상으로 15곳에 생태통로를 설치하기로 했다.
2010년까지 700억원을 투자해 기존 국도 36곳, 신설 국도 77곳에 생태통로가 설치된다.
도로공사는 724억원을 들여 고속도로에 야생동물 사고방지 및 유도시설을 설치하도록 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