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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호의 어찌보면] 트럼프 시대 세계시민으로 산다는 것

    [이광호의 어찌보면] 트럼프 시대 세계시민으로 산다는 것

    며칠째 뉴스에서는 중동에 떨어지는 미사일들과 그 섬광을 보여 준다. 그것은 전쟁 영화의 익숙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쟁의 참상이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되는 것은 윤리적 무감각을 가져온다. 저 화염과 폭발음 아래 있는 사람들의 참상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안에 있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신체가 부서지고 불타는 참혹을 보지 못하며, 그들의 끔찍한 비명을 단 한마디도 듣지 못한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전쟁 영상은 타인의 고통을 소비 가능한 형태로 변환시키며, 관객은 멀리서 타인의 참혹을 바라보며 일종의 안전한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고 분석한다. 그 순간 전쟁은 실재하는 현실이기를 멈추고 소비되는 이미지가 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며 ‘연민의 피로’가 강화된다. 이미지의 과잉은 관객을 마비시키고, 전쟁의 구조적 원인과 정치적 책임은 그 뒤로 사라진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달 28일 이란을 공습할 때 국민을 설득하지도, 의회의 승인을 구하지도 않았다. 지난해 6월 이란 핵시설을 공습할 때도, 베네수엘라 지도자 마두로를 납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군사 행동의 공통점은 국제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 행사라는 점이다. 유엔이 정한 무력 사용 금지 원칙과 자위권 제한이라는 국제법 질서는 무의미한 것이 됐다. 인류가 두 차례 세계대전의 교훈으로 합의한 평화적 분쟁 해결을 위한 집단안보라는 원칙은 사실상 폐기됐다. 국제질서와 국제법의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선택 하나면 된다. 미국이 전쟁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이란 핵무기의 위협과 이란 민중의 해방이었다. 이란의 억압적 신정체제가 극단적이라면, 미국이 ‘선제 전쟁’을 ‘예방 전쟁’으로 합리화하는 미국 우선주의 역시 극단적이다. 외교적 대안은 은폐되고, 폭력은 불가피한 것으로 제시된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폭격에 의해 죽자 그의 차남이 권력을 승계했다. 이란 민중을 해방한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탄에 의해, 이란에서만 최소 민간인 1만 3000여명이 사망했다. 희생자에는 이란 남부 미나브의 초등학교를 강타한 미사일에 숨진 175명의 여학생이 포함된다. 트럼프는 그 초등학교에 떨어진 ‘토마호크 미사일’이 이란의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 전쟁에서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전쟁의 명분과 작전명 등에 등장하는 수사학적 언어들의 폭력성과 기만성이다. 이를테면 작전명 ‘장대한 분노’에서 장대하다는 표현은 국가의 폭력을 서사시적 영웅주의로 신화화한다. 트럼프의 ‘이란을 다시 위대하게’(MIGA)라는 구호는 파괴와 재건을 이미지 상품으로 포장하는 언어다. 트럼프는 전쟁의 조기 종식을 암시하면서 전쟁을 ‘짧은 여행’이라고 표현했다. 한 나라에서 1000명이 넘게 사람들이 죽어간 사태를 가벼운 여행 수준의 이벤트로 축소한다. 민간인 오폭 피해는 ‘부수적 피해’라는 용어로 일컫는데, 민간인 희생을 군사적 필요 뒤로 감춘다. ‘정밀 무기’는 완벽하게 정밀하지 않으며, 인공지능(AI)의 표적 시스템의 오류는 결국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실패다. 이런 기만적인 수사적 명명은 전쟁을 탈실재화한다. 이 수사 안에서 시민들이 겪는 끔찍한 고통은 존재하지 않으며 군사 작전 승리의 서사만이 도드라진다. 이 전쟁은 평화와 인간 존엄을 둘러싼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 자체를 황폐화한다. 모든 공적인 명분과 이념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규정하는 것은 벌거벗은 권력과 돈의 논리다. ‘이란 드론을 요격해야 하는 미국의 패트리엇 미사일 60억원’이라는 식의 보도를 보면, 전쟁은 인간의 얼굴 자체를 삭제하는 적나라한 머니 게임에 불과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일방주의적 군사행동은 우리가 세계시민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우리 동네 주유소 가격이 급등한다. 석유 의존적인 제조업이 많은 우리나라에 미치는 경제적 타격은 적지 않다. 트럼프 시대에도 우리가 경제적·군사적 이해관계로 얽힌 세계시민이라는 위치를 벗어날 방법은 없다. 주유소 기름값과 요동치는 주식 시장을 걱정하면서도, 세계시민의 윤리적 감수성과 정치적 분노를 잊지 않을 수 있을까? ‘장대한 분노’와 ‘짧은 여행’, ‘MIGA’와 같은 인간의 참상을 지우는 수사적 언어들의 기만성과, 미나브 초등학교에서 죽어간 175명의 여학생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 미국 뉴스는 부서진 교실 잔해 속 책가방과 시신들의 운구 장면을 보여 준다. 이란 신문은 175명의 희생자 얼굴을 게재했다. 사실은 세계시민이라는 보편주의가 이 세계의 불평등한 지정학적 위치들과 그 위계를 은폐하는 것이기도 하다. 죽어간 여학생들은 세계시민으로서 보호되지 않았다. 전쟁은 타자를 얼굴 없는 위협으로 추상화함으로써, 살아 있는 지상의 얼굴들을 삭제한다. 우크라이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를 빌리자면, 전쟁은 결코 ‘소녀들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죽어간 소녀들의 얼굴이 우리와 상관없다는 보장은, 이 세계 어디에서도 할 수 없다. 이것이 세계시민의 두려운 의미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 ‘단종 의리남’ 금성대군, 은평 금성당서 만나요

    ‘단종 의리남’ 금성대군, 은평 금성당서 만나요

    서울 은평구는 진관동 국가민속문화유산 ‘금성당’에서 금성대군의 충의 정신과 민속 신앙을 소개하는 전시와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17일 밝혔다. 금성대군(1426~1457)은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로,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사사(왕의 명령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처분)된 인물이다. 그는 충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민간 신앙 속에서 신격화됐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배우 이준혁이 금성대군을 연기했다. 금성당은 금성대군 신앙을 간직한 장소로, 민속문화와 지역 신앙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무신도(巫神圖)가 전시돼 있다. 무신도는 무속에서 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방문객들은 상설 전시를 통해 금성대군 신앙의 형성, 금성당의 역사, 무신도의 의미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구는 현장에서 정기 전시해설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매주 수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진행되며 금성당의 역사, 금성대군 신앙, 무신도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또 은평역사한옥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금성당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조명하는 기획전시 ‘안녕, 금성당’을 4월 12일까지 개최한다. 현장 탐방 프로그램 ‘우리동네 문화유산, 금성당’도 있다. 박물관에서 전시해설을 들은 뒤 금성당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으로 오는 18일과 4월 8일 두 차례 운영된다. 참여 신청은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누리집에서 할 수 있다.
  • 문학, 역사를 읽다

    문학, 역사를 읽다

    이광수 ‘단종애사’ 1920년대 연재작 좀더 쉽게 각색영화 ‘왕사남’ 속 엄흥도 챕터 추가임순만 ‘백범 강산에 눕다’탄생 150년 김구 삶의 문학적 복원“독립운동·분단서 느낀 상실감 표현”장아미 ‘우리 안에 불꽃이 있어’세종 때 한양 대화재 다룬 ‘꽃불’ 등설화·역사 기반 한국형 판타지 펼쳐 치열했던 삶의 기록인 역사가 작가의 상상력과 만나 격정의 순간으로 재탄생하는 게 역사소설이다. 최근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최근 1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를 몰고 있는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어린 나이에 폐위된 뒤 살해된 조선 제6대 국왕 단종의 비극적 삶을 조명한다. 춘원 이광수의 역사소설 ‘단종애사’도 그렇다. 1928년 11월부터 1929년 12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 소설을 오늘날 독자가 편히 읽을 수 있도록 각색한 책이 출판사 열림원에서 출간됐다. “그러나 그날 밤, 달빛 아래에서 어린 임금을 업고 산을 오르던 그 한 사람의 발자국은 이미 하늘이 알고 있었다.”(이상배 편저, ‘단종애사’ 14장 ‘마마, 늦었습니다. 추우시죠’ 부분) 역사소설 작가 이상배가 어려운 원문의 장벽을 낮춰 젊은 세대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각색했다. 영화에서 배우 유해진이 연기하는 ‘엄흥도’ 이야기는 이광수 원작에는 없다. 이상배 작가는 13장으로 끝나는 원작 마지막에 14장을 추가해 엄흥도의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야사, 전설 등의 자료를 토대로 작가가 새롭게 창작했다. 9쪽 정도의 짧은 분량이다. 영화에서 받은 감동을 독서로 잇고자 하는 독자에게 추천할 만하다. “그는 이름을 김구(九)로 바꿨다. 구는 숫자라기보다 결기였다. 그는 다짐했다. ‘무어라 단정할 수 없고, 끝을 알 수 없는 숫자 구(九), 그 숫자를 이름에 넣은 사람은 꺾이지 않고 끝까지 견뎌야 한다.’”(‘백범 강산에 눕다’ 부분) 소설가 임순만의 ‘백범 강산에 눕다’(한길사)는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백범 김구의 삶을 문학으로 복원한다. 소설은 총 24장으로 구성됐는데 각 장이 한 편의 단편처럼 읽히도록 구성됐다. 자료수집 등 취재에만 5년이 걸렸고 집필 후 실제 소설을 완성하기까지는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김구를 주인공으로 삼은 픽션이지만, 허구는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그는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며 진정 우리가 써야 할 것은 독립운동과 해방 직후 분단된 상태에서 느끼는 상실감이었다”며 “지금까지 헤매고 있는 상태에 중심을 잡아주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결국 문학이기에, 역사의 무대를 ‘사실적으로’ 그려낼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장아미 작가의 신작 단편집 ‘우리 안에 불꽃이 있어’(황금가지)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설화를 기반으로 한 ‘한국형 판타지’의 매력적인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소설집에는 조선 시대 최대 화재 사건으로 기록된 ‘한양 대화재’(1426)를 배경으로 한 ‘꽃불’ 등 총 12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꽃불’은 세종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만삭의 몸으로 화마에 맞선 소헌왕후를 통해 강인한 여성상을 그리고 있다. “뜨거움이 도를 지나치다 못해 살점을 저미고 뼈를 빠개는 것 같았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날뛰고 싶었다. … 죽음조차 자비로 여겨질 듯한 고통 속에서 왕비가 이를 악물고 되풀이해 다짐했다. ‘못 준다. 한 명도 내어 주지 않을 것이다.’”(‘꽃불’ 부분)
  • 무정차·QR안내·통역 지원… 26만 아미, 광화문서 ‘BTS앓이’

    무정차·QR안내·통역 지원… 26만 아미, 광화문서 ‘BTS앓이’

    20일 밤부터 세종대로 차량 통제공연 당일 광화문·시청·경복궁역 오후 2시  ~ 저녁 10시 무정차 통과 서울신문사 광장선 응원봉 제공 ‘군백기(군 복무+공백기)’를 마치고 3년 9개월 만에 완전체로 돌아오는 방탄소년단(BTS)의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공연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시와 관계기관은 광화문 일대에 최대 26만명의 ‘아미’(BTS 공식 팬덤)가 집결할 것으로 보고, 이들이 안전하게 공연을 즐기고 귀가할 수 있도록 막바지 점검에 들어갔다. 17일 서울시에 따르면 공연이 열리는 21일 지하철 1·2호선 시청역과 3호선 경복궁역은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무정차 통과한다. 공연장과 직접 연결되는 5호선 광화문역은 1시간 이른 오후 2시부터 무정차 통과한다. 3개 역사의 출입구 29곳도 모두 통제되며 광화문역(2~7번, 9번)과 시청역(1~8번, 12번) 출입구는 행사 당일 아침부터 폐쇄된다. 광화문에서 덕수궁까지 이어지는 세종대로로 진입하는 버스 노선(총 62개)은 종각역과 서대문역 등으로 우회 운행한다. 중앙버스전용차로를 지나는 노선은 오전 8시부터 무정차 통과하고 오후 4시부터는 우회 노선으로 돌아서 이동한다. 차량 통제도 이뤄진다. 객석이 설치되는 광화문광장부터 서울광장까지는 공연 전날인 20일 오후 9시부터 공연 다음 날인 22일 오전 6시까지 통제된다. 사직로(정부서울청사 교차로~경복궁 사거리)는 21일 오후 4~11시까지, 새문안로(새문안로 교차로~종로1가 사거리)와 광화문 지하차도는 21일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통제한다. 서울시는 교통·안전 안내를 온오프라인 통합으로 제공한다. 시는 홈페이지에서 해당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린다. 서울도서관 외벽의 대형 현수막과 티켓부스에 비치될 해치 포토카드형 리플릿에 삽입되는 QR 코드로도 안내 페이지에 연결된다. 120다산콜센터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몽골어 등 외국어 지원 인력을 공연 전날과 당일에 추가 편성한다. 공연 지정석이 설치되는 세종대로 옆 서울신문사 광장 전광판에서는 20일 오후부터 21일 늦게까지 소속사 하이브가 제작한BTS 멤버 7명(RM, 진, 슈가, 제이홉, 지민, 뷔, 정국)의 환영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송출돼 아미들의 뜨거운 함성을 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신문사 앞마당(서울마당)은 관람객들이 쓰는 첨단 응원봉을 받는 장소로 활용된다. 하이브가 운영하는 팬덤 플랫폼 위버스를 통해 주문한 관객들에게 제공되는 응원봉은 반도체 칩이 내장된 첨단 제품이다. 모든 빛의 색깔과 깜박거림을 중앙통제 방식으로 조절해 객석까지 무대의 일부로 활용할 수 있다. 공연장 전체가 거대한 무대로 변하면서 현장 관객은 물론, 넷플릭스를 통해 공연을 지켜보는 전 세계 팬들에게 벅찬 감동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 자백할 때까지 주리를 틀어라? 국왕 형벌에 제동 건 ‘조선 여론’

    자백할 때까지 주리를 틀어라? 국왕 형벌에 제동 건 ‘조선 여론’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 복위를 추진하다 체포된 신하들의 주리를 트는 고문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죄인의 다리를 묶은 뒤 그 사이에 굵은 막대기(주릿대) 두 개를 끼워 가위처럼 비트는 ‘주리틀기’는 사극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고문 방식이다. 조선시대 법제사를 연구하는 정진혁 박사는 최근 펴낸 학술서 ‘조선 후기 형정개혁과 추국’에서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조선의 중앙집권적 통치구조에서 추국(推鞠, 의금부가 임금의 특명에 따라 중죄인을 신문하던 일), 결안(사형에 해당하는 죄인의 형 확정 절차)과 같은 형사행정(형정)의 구조와 변화과정을 추적했다. 정 박사는 조선 후기 중죄인의 조사·판결서를 모은 책인 ‘추안급국안’에 실린 형사 정보와 개인 정보를 모두 계량화해 조선 후기 사법개혁 추진 배경과 진행 과정을 살펴봤다. 1601년(선조 34년)부터 1892년(고종 29년)까지 300년 정도의 각종 사건을 전수조사한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숙종 대에는 경신·기사·갑술환국, 영조 대에는 이인좌의 난, 정조 대에는 정유역변(정조 시해 미수 사건)이 형정 운영의 변곡점이 됐다. 형정 개혁을 둘러싸고 왕권과 신권이 충돌하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권력이 국왕에 집중되던 숙종 때도 민간의 여론이 형사제도에 영향을 미친 장면은 눈길을 끈다. 1689년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 폐비 반대 상소를 주도했던 박태보에게 법외 악형인 압슬형(무릎을 짓이기는 형벌)과 낙형(쇠붙이로 지지는 형벌)을 가해 결국 물고(고문치사)시킨 사건은 부정적 여론을 일으켜 이후 숙종이 사망할 때까지 악형이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국왕의 형사법 남용을 관료와 민간 여론이 제약한 대표적 사례라고 정 박사는 설명했다. 압슬형이나 낙형 같은 악형은 자백 유도 효과는 높았지만 부작용도 상승했다. 이 때문에 영조 이후에는 법외 악형은 완전히 소멸되는 상황이었고, 법적 규정에 의한 고신으로 전환됐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국왕이 직접 수사하고 피의자가 직접 자백한다’는 도덕적 제약에서 벗어나 ‘하위 사법 기관이 수사하고 국가가 증거를 종합해 판결한다’는 효율적 측면으로 전환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왕사남’ 장항준, 개명·성형 대신 커피로 1000만 돌파 인사

    ‘왕사남’ 장항준, 개명·성형 대신 커피로 1000만 돌파 인사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 광장에서 12일 열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1000만 관객 돌파 커피차 이벤트에 참석한 장항준 감독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장 감독은 “저와 배우들 모두 관객분들의 사랑에 꿈만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서 “우리 작품을 계기로 한국 영화가 살아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이 몰리면서 장 감독으로부터 커피를 받을 수 있는 200여명의 자리는 일찌감치 마감됐다. 이벤트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은 행사장 주위를 둘러싸고 행사를 지켜봐야 했다. 장 감독은 시민들에게 일일이 커피를 나눠주면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현장을 찾아 장 감독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고 일부 관객은 장 감독을 업거나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영화 속 인물처럼 한복을 입고 갓을 쓴 관객도 눈에 띄었다. 커피차 이벤트는 장 감독이 ‘천만 영화’ 공약으로 내건 성형, 개명 등을 대신해 영화 흥행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마련한 행사다. 극 중 한명회 복장을 하고 현장을 찾은 김사다함씨는 “극 중 한명회의 캐릭터가 상당히 멋있었고 인상에 많이 남았다”면서 “영화 내용도 감동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어서 흥행에 성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새봄 고품격 문화예술공연 성황…“계속 살고 싶은 송파 만들기 최선”[현장 행정]

    새봄 고품격 문화예술공연 성황…“계속 살고 싶은 송파 만들기 최선”[현장 행정]

    클래식 공연장 롯데콘서트홀서구민 대상 연간 4차례 무료 공연문화 누려 구민들 삶 더 풍요롭게 봄의 길목인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이 송파구민으로 가득 찼다. 송파구가 오로지 구민들을 위해 기획한 ‘2026 송파 신춘음악회’를 찾은 관객들이다. 1700석을 가득 메운 구민들은 송파구립교향악단 연주로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 2번, 8번’에 이어 바리톤 박정민이 부른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나는 이 거리의 만능 일꾼’까지 이어지는 1부 공연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송파구는 2024년부터 구민 대상으로 송파문화재단과 함께 롯데콘서트홀에서 ‘송파 문화공연 시리즈’를 열고 있다. “구에 훌륭한 공연 시설이 있음에도 정작 구민들은 제대로 즐길 기회가 없다”며 공연장 혜택을 구민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는 서강석 송파구청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2016년에 개관한 롯데콘서트홀은 예술의전당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본격 클래식 공연장이다. 1부에선 구립교향악단과 함께 메조소프라노 김향은, 테너 노경범, 바리톤 박정민, 소프라노 김서영 등이 민요와 가곡, 친숙한 오페라 아리아를 관객에게 선물했다. 2부에서는 KBS국악관현악단과 함께 경기민요 아티스트 송소희와 소리꾼 김준수, 가야금 연주자 최진이 나서 흥을 더했다. 매년 4차례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음악회는 계절별 테마에 맞춰 열린다. 5월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어린이 클래식 공연, 8월은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재즈와 탱고, 12월에는 연말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송년 음악을 주제로 한다. 구민 대상 무료 공연으로 네이버를 통해 선착순 예매를 받는다. 2024년부터 총 9번 공연에 2만여명의 구민이 공연을 찾았다. 공연장에서 만난 박행란(63)씨는 “지난해 처음 알게 돼 ‘광클릭’을 해서 어렵게 왔다. 이번이 두 번째 ”라면서 “구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주는 혜택인 데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수준 높은 공연을 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다. 이런 사업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웃었다. 서 구청장은 “올해도 고품격 문화예술공연으로 구민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겠다”면서 “계속 살고 싶은 송파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천만영화 특수 누리자”… ‘왕사남’ 열풍에 뜨거운 도시들

    “천만영화 특수 누리자”… ‘왕사남’ 열풍에 뜨거운 도시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가 1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인기를 끌자 영화 속 주인공인 단종과 엄흥도 등을 활용한 관광 마케팅이 줄을 잇고 있다.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하다가 숨을 거둔 강원 영월에서부터 엄흥도와 금성대군의 흔적이 남은 대구 군위군, 경북 영주시까지 특수를 누리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영월문화관광재단은 다음 달 24~26일 개최하는 단종문화제에서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못다 한 인연을 기리는 국혼과 단종이 유배지인 청령포로 들어가는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를 새롭게 선보인다고 12일 밝혔다. 단종문화제 개막 첫날 왕사남을 연출한 장항준 감독을 초청해 영월문화예술회관에서 ‘창작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단종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특강을 연다. 단종문화제는 1967년 시작한 영월의 대표 축제다. 재단은 구름 인파가 몰릴 것을 대비해 주요 관광지와 영월역, 시외버스터미널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동강 둔치 전역을 임시주차장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김성진 재단 관광축제부장은 “단종의 생애와 그를 지킨 충신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영월에 있는 탑스텐리조트 동강시스타는 이달 말까지 장릉(단종의 묘), 청령포 입장권이나 왕사남 관람 티켓을 제시한 투숙객에게 바비큐 1인분을 무료 제공한다. 영화 속에서 영월 백성들이 단종에게 수라상을 올리는 장면에서 착안해 출시한 ‘영월 반상 2인 패키지’도 다음 달 말까지 선보인다. 태백시는 장릉, 청령포 입장권을 소지한 관광객에게 365세이프타운 케이블카, 가상현실(VR) 체험시설 이용료를 받지 않는 이벤트를 연말까지 진행한다. 365세이프타운 2층에는 ‘단종의 육신은 영월 장릉에 머물고 있지만 영혼은 태백산 산신이 됐다’는 설화를 소개하는 스토리보드와 포토존도 설치된다. 군위군은 다음 달부터 시티투어 코스에 유배 생활을 하는 단종 곁을 지킨 엄흥도의 묘(산성면 화본리)를 포함한다. 군은 10여년 전부터 엄흥도 묘 일대를 정비하고 진입로 데크 및 안내 팻말을 설치하는 등 관광 자원화 사업을 벌였다. 엄흥도는 단종의 주검을 수습한 후 화를 피해 둘째 아들과 군위에 숨어 살다 1474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영주시는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순절한 금성대군의 발자취가 남은 유적지를 ‘반띵 관광택시’를 타고 돌아보는 관광상품을 내놨다. 복위 운동에 가담한 백성들이 학살당한 피끝마을과 금성대군 신단(추모 제단), 소수서원, 부석사를 코스로 한다. 택시 요금 절반은 시가 지원한다.
  • “헌트릭스 팬들 응원봉 꺼낼 시간”… 아카데미 무대 ‘골든’ 울려퍼진다

    “헌트릭스 팬들 응원봉 꺼낼 시간”… 아카데미 무대 ‘골든’ 울려퍼진다

    한국 전통악기·춤 퍼포먼스 예고사상 첫 한국어 K팝 라이브 무대‘케데헌’ 오스카 두 부문 후보 올라 “헌트릭스 팬 여러분, 이제 응원봉을 꺼낼 시간이에요.”(아카데미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주제가 ‘골든’이 영화계 최고 권위 시상식인 아카데미에서 울려 퍼진다. 한국 전통 악기와 춤이 어우러진 퍼포먼스까지 예고되면서 시상식 무대에 K팝의 색채가 더해질 전망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최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10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케데헌 속 걸그룹 ‘헌트릭스’의 보컬을 맡은 이재,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가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골든’을 부른다”고 밝혔다. 지난해 제97회 시상식에서 아이돌 가수 리사(블랙핑크)가 K팝 아티스트 최초로 축하 공연에 오른 적은 있지만, 한국어로 된 K팝 노래가 아카데미 무대에서 라이브로 울려 퍼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대 연출도 눈길을 끈다. 공연은 한국 전통 악기 연주와 춤이 어우러진 퍼포먼스로 막을 연다. 케데헌 세계관의 뿌리인 민속적 분위기를 먼저 펼쳐 보인 뒤, 이재 등 세 사람이 등장해 골든을 열창하는 구성이다. 시상식 총괄 프로듀서 라지 카푸르와 케이티 멀런은 케데헌을 두고 “전 세계적으로 팝 컬처 열풍을 일으킨 작품”이라며 “이번 공연은 단순한 무대를 넘어 음악과 스토리텔링의 결합을 기념하고 이 영화가 왜 전 세계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는지를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과 주제가상 두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올해 1월 골든글로브 어워즈와 지난달 그래미상까지 휩쓴 만큼, 아카데미까지 거머쥐며 ‘트리플 크라운’을 완성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15일 오후(한국시간 16일 오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다.
  • 부소니·쇤펠트 사로잡은 ‘클래식의 미래’를 만난다

    부소니·쇤펠트 사로잡은 ‘클래식의 미래’를 만난다

    지난해 열린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은 젊은 연주자들의 음악세계를 만나는 독주회가 나란히 열린다. 77년 역사를 가진 페루초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판 우(21)는 올해 스타인웨이 위너콘서트의 첫 주자로 나서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세계적인 피아노 회사 스타인웨이(Steinway&Sons)는 2007년부터 위너콘서트 시리즈를 통해 유명 콩쿠르 우승자들에게 연주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 상하이 출신인 이판 우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14세부터 피아노 전문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빠른 집중력과 노력으로 두각을 드러냈고 야코프 플리에르, 싱가포르, 선전 등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수상했다. 현재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음악원에서 스타니슬라프 유데니치를 사사하고 있다. 한국에서 여는 첫 리사이틀에서 이판 우는 자신의 음악적 잠재력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을 선보인다. 이탈리아 작곡가 페루초 부소니의 엘레지 제7번 ‘자장가’를 비롯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코랄 전주곡 편곡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BWV 645),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소나타 d단조 K9(칼 타우지히 편곡)와 e단조 K233, 로베르트 슈만의 ‘아라베스크’와 피아노 소나타 제1번, 페데리코 몸포우 ‘풍경들’ 중 제1번 ‘샘과 종’과 제2번 ‘호수’ 등 다양한 시대와 미학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이번 공연은 강북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세종예술의전당(13일), 인천 남동소래아트홀(14일), 용인 포은아트홀(15일), 파주 솔가람아트홀(17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18일)로 이어진다. 19일 강동아트센터에서 투어를 마무리한다. 22일에는 서울 강남구 거암아트홀에서 쇤펠트 국제 현악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이재리(17)가 독주회를 연다. 이재리는 이자이 주니어, 다비드 포퍼, 구스타프 말러 등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지난해에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2위와 금호문화재단 박성용 영재특별상을 수상했다. 어린 나이에도 집중력과 탄탄한 기교, 성숙한 음악성으로 무장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갖춘 연주자로 평가받으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박영성과 슈만의 환상소곡집 Op.73,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첼로 소나타, 프레데릭 쇼팽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하며 낭만주의부터 20세기 음악의 서정을 펼쳐낸다.
  • 신화를 벗기다 [으른들의 미술사]

    신화를 벗기다 [으른들의 미술사]

    ●탑에 갇힌 여성 그리스 신화에서 다나에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탑에 갇힌 불운한 공주였다. 다나에가 탑에 갇히게 된 이유는 예언 때문이었다.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우스는 후계를 이어받을 아들이 없어 델포이 신탁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다나에가 낳은 아들이 결국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이 예언을 두려워한 아크리시우스는 딸이 남자를 만나지 못하도록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높은 탑에 가두어 버렸다. 이 이야기에서 탑은 인간이 운명을 피하려 할수록 오히려 운명의 덫에 걸리고 만다는 고대의 비극적 세계관을 보여 주는 장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제우스는 황금비로 변신하여 다나에에게 다가왔다. 그는 황금비의 형태로 방 안으로 스며들어 다나에와 결합했고, 그 결과 둘 사이에서 영웅 페르세우스가 태어난다. 그러나 클림트의 화면에서 중요한 것은 비극적인 신화의 서사보다, 그 황금빛이 몸에 닿는 순간에 드러나는 간지러운 감각이다. 예언을 피하려던 아크리시우스의 행동은 오히려 예언을 실현시키는 계기가 됐고, 훗날 페르세우스는 경기 중 던진 원반이 우연히 외할아버지 아크리시우스를 맞히면서 결국 예언은 이뤄졌다. 신화는 그렇게 인간의 의지와 다르게 마무리됐다. ●황금기 절정 클림트는 다나에를 화면 가득 웅크린 자세로 배치했다. 얇은 보라색 천과 금빛 장식은 그녀의 몸을 감싸지만 동시에 궁금하게 한다. 특히 허벅지 사이로 흘러드는 황금빛 비는 신화적 사건을 상징하면서도 감각적 화면을 만들어 낸다. 이는 단순한 누드가 아니라 욕망의 순간을 시각화한 것이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작품을 클림트의 ‘황금기’ 대표작으로 보며, 비잔틴 장식성과 상징주의가 결합된 결과라고 평가한다. 흥미로운 점은 다나에가 외부 세계와 거의 단절된 채 스스로의 감각 속에 잠겨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관객을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린 채 순간의 감각에 빠져 있다. 사회적 규범과 시선이라는 겉옷을 벗어 던질 때 인간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감각과 마주하게 된다. 클림트의 다나에는 바로 그 찰나를 상징한다. ●태아 자세 ‘다나에’에서 여인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자세는 단순한 신체 표현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와 감정을 강조하기 위한 구성이다. 먼저 이 자세는 태아와 비슷한 ‘태아형 자세’로 해석되며, 황금비가 내려오는 순간을 내밀하고 폐쇄적인 공간 속 사건으로 표현한다. 웅크린 자세는 에로틱한 황홀감과 내적 몰입을 표현하는 장치로 이해된다. 또한 몸을 둥글게 만 자세는 인물을 화면 안에 응축시키며 관객의 시선을 그녀의 몸과 황금빛 비에 집중시키는 효과를 만든다. 결국 이 그림에서 보라색 베일로 흘러내리는 것은 옷이 아니라 역할이다. 왕의 딸, 신화 속 인물, 혹은 도덕적 규범의 대상이라는 여성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한 인간의 감각적 존재만 남는다. 황금빛 비가 떨어지는 순간, 다나에는 더 이상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는 존재가 된다. 클림트는 그 은밀한 순간을 화려한 금빛 장식 속에 봉인해 뒀다. 신화라는 외피를 잠시 내려놓은 자리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황금빛 속에서 조용히 드러난다.
  • [정지욱의 창가에서 바라 본 영화] 우리 곁에 찾아온 봄날 같은 멜로영화

    [정지욱의 창가에서 바라 본 영화] 우리 곁에 찾아온 봄날 같은 멜로영화

    연초부터 여러 언론 매체 기자들에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에는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는데, ‘멜로 영화’에 대한 게 특히 많았다. 지난 연말 개봉한 김도영 감독의 ‘만약에 우리’가 좋은 성적으로 흥행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현재 260만명의 관객이 이 작품을 봤다. 2024년, 2025년의 한국영화산업 현황을 봤을 때 많은 관객들을 모았고, 큰 흥행을 이룬 셈이다. 이런 까닭으로 멜로 영화에 대한 질문이 쇄도한 것이리라. 내가 기억하는,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멜로 영화는 무엇일까? 대학 시절을 전후해 봤던 작품, 곽재용 감독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비롯해 내가 유바리국제영화제 출품에 관여했던 ‘클래식’,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배경으로 했던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 개론’이 떠오른다. 하지만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곽지균 감독의 ‘겨울 나그네’가 으뜸이겠다. 운명의 장난으로 어둠의 길로 추락한 의대생 ‘민우’(강석우 분)와 첫사랑을 지키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다혜’(이미숙 분)의 비극적이고 애달픈 청춘 로맨스는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을 후벼 팠고, 길고 긴 여운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물론 예쁘고, 아기자기하며 통통 튀듯 밝은 사랑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 곁에 오래도록 기억나는 작품은 어쩌면 슬프고 아픈 이야기다. 왜 그럴까? 그만큼 안타깝고 가슴을 저미게 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여기서 작동하는 요소가 바로 ‘신파’적 요소라 하겠다. 그렇다면 신파란 무엇일까? ‘신파’(新派)란 일본에서 전해진 개념으로 19세기 초 일본의 전통 예능인 가부키와 대비되는 ‘서양극’을 지칭하며 형성됐다. ‘구극’(舊劇), ‘구파’(舊派)에 맞서 새로움을 표방한 연극이란 의미로 신파라 칭했다. 이처럼 초기엔 계몽사상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서양극이었지만 점차 애정, 가족 등 통속적 소재를 담아내게 된다. 일제강점기를 통해 우리에게도 전해져 지금은 통속적 소재 자체를 일컫는 개념이 됐다. 영화에서 ‘신파’(shinpa)란 영문도 발음 그대로 표기되며, 감정의 과잉을 통해 관객을 몰입시키는 서사적 기법으로 정의되고 활용된다. 단순히 남녀 관계에 그치지 않고 가족이나 국가 관련 내용에서도 관객들을 극에 몰입시키고 감동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에 많은 상업영화에서 이를 활용해 신파극(新派劇)을 제작하는 것이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은 가족에 대한 정을 소재로 한 신파, 재작년 말 조용히 광풍을 가져온 영화 ‘서울의 봄’과 ‘파묘’도 또 다른 신파적 요소로 관객들을 관람에 몰입시키고 가슴 저미는 울림을 전해준 영화라 할 수 있다. 다시 영화 ‘만약에 우리’로 돌아가 보자. 이 작품은 2018년 중국에서 개봉한 유약영 감독의 ‘먼 훗날 우리’(后来的我们)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우연히 만난 청춘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고, 한참 시간이 흘러 재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달콤한 사랑도, 시디신 이별도 겪는다. 관객들은 눈물과 미소를 함께 곁들이며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나 역시 울컥하기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며 이 영화를 봤다. 관람객의 입장에선 다 똑같은 것이다. 매력적인 청춘 남녀 은호와 정원, 우연한 만남, 누구보다도 이들을 잘 이해해 주는 아버지, 우여곡절의 이야기가 두 남녀를 두고 스크린 가득 펼쳐진다. 우리에게도 있었음 직한 신기루 같은 사랑 이야기를 가슴 저미게 들려주기에 여러 다양한 관객들의 수많은 감성을 제각각 건드린다. 상영되는 동안 올곧이 스크린에 몰입하게 되고, 엔딩크레디트가 다 올라가면 긴 여운과 함께 극장을 나서게 된다. 그야말로 신파를 그득히 머금은 모습으로. 이런 작품들로는 ‘건축학 개론’, 김현석 감독의 ‘세시봉’ 등을 들을 수 있고, 이들 작품은 청춘의 사랑과 아련함으로 신파적 요소를 더 탄탄히 무장하고 있다. 그들의 사랑이 완벽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끝내 이뤄지지 않았기에 관객들의 마음에 더 깊은 여운을 남겼을 것이다. 물론 그래서 흥행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지만. 이처럼 장르적으로 멜로 영화는 요즘처럼 영화산업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어쩌면 좋은 탈출구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기력이 잘 갖춰진 배우들을 캐스팅한다면 지나치게 많은 제작비를 들이지 않더라도 좋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겨울 우리 곁에 다가온 반가운 멜로 영화처럼 우리 영화산업의 봄날에도 잔잔한 미소가 찾아와 주면 기쁠 것이다. 곧 본격적인 봄이다. 훈훈한 봄을 맞으며 우리 인생의 멜로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첫 데이트, 대한극장 ‘마지막 황제’의 긴 여운, ‘서편제’의 휘몰아친 한 줄기 바람, 혜화동에서의 여러 공연들, 달리던 경춘선 열차에서 나직이 속삭이던 대화, 부석사 새벽 예불 시간의 종소리, 을지로 오뎅집에서 도루묵구이와 함께 기울이던 대폿잔, 도쿄의 봄날에 흔적으로 내린 눈, 바람이 몹시 불던 가마쿠라 에노시마 요트장의 추억. 종각에서 재야의 종소리와 새해맞이, 내 마음속 정원이는 어찌 지낼까? 영화 ‘만약에 우리’를 보면서, 또 이 글을 쓰며 잠시나마 두근거려 본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 한국적으로… 정공법으로… ‘바냐 아저씨’ 매력 속으로

    한국적으로… 정공법으로… ‘바냐 아저씨’ 매력 속으로

    5월 22~31일 국립극단 ‘반야 아재’ 19세기 러시아, 한국 마을로 옮겨사회 모순과 고립을 투영한 변주‘바냐’ 조성하·‘소냐’ 심은경 연기5월 7~31일 LG아트센터 ‘바냐 삼촌’ 원작 유지하며 인물 밀도에 집중‘타인의 삶’ 손상규가 연출 맡아이서진·고아성 연극 데뷔작 기대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를 이끈 대문호 안톤 체호프는 “인간은 식사하고 차를 마시고 시시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살아간다. 그 와중에 행복이 무너지기도 하고 비극이 결정되기도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4대 희곡은 이런 일상의 비극을 파고든다. ‘갈매기’에서 예술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랑과 재능을 갖지 못하고, ‘세 자매’에선 모스크바로 돌아갈 미래를 낙관하지만 지방도시에서 꿈을 잃어간다. ‘벚꽃동산’에선 집과 땅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도 파티를 열고 수다를 떨다가 결국 삶의 터전을 잃는다. ‘바냐 아저씨’는 가족을 위해 살아온 바냐와 조카 소냐의 상실을 그린다. 바냐는 매형에게 평생 헌신했지만 그가 무능한 지식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무력감에 빠진다. 소냐는 사랑을 얻지 못한다. 비장한 파국마저 어이없이 실패한다. 비극 속 희극, 견디는 삶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바냐 아저씨’는 체호프 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오는 5월,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다른 색채로 풀어낸 연극 두 편이 관객을 만난다. 국립극단은 한국적 정서로 번안한 ‘반야 아재’를, LG아트센터 서울은 원작을 현대적 감각으로 살린 ‘바냐 삼촌’을 올린다. 2024년 ‘벚꽃동산’, 지난해 ‘헤다 가블러’를 동시에 올린 데 이어 세 번째 ‘같은 작품 다른 해석’으로 만났다. 국립극단의 ‘반야 아재’(5월 22~31일)는 원작의 배경인 19세기 말 러시아 영지를 현대 한국의 어느 마을로 옮겨왔다. 번안과 연출을 맡은 조광화 연출가는 한국적 변주를 더해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 위에 한국 사회의 모순과 고립을 투영한다. 주인공 이름도 바냐는 박이보로, 소냐는 서은희로 바꿨다. 박이보 역은 중후하고 탄탄한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조성하가 맡아 무력감과 내면의 갈등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일본에서 먼저 연극 무대를 경험한 심은경은 서은희로 분해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삶을 지탱하는 인물을 연기한다. 이번 작품이 심은경에게는 첫 한국 연극 무대다. 손숙, 남명렬, 기주봉, 정경순, 임강희, 김승대 등 오랜 무대 경험을 가진 배우들이 흐름을 뒷받침하면서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LG아트센터 서울의 ‘바냐 삼촌’(5월 7~31일·LG시그니처홀)은 원작의 결을 유지하면서 인물의 밀도에 집중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공동창작집단 양손프로젝트 소속 배우인 손상규가 극작과 연출에 나섰다. 손상규는 지난해 연극 ‘타인의 삶’을 연출하면서 인물 표현과 제한된 무대를 영리하게 활용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이번 ‘바냐 삼촌’에서는 어떻게 원작에 집중하면서 치밀한 무대를 만들어낼지 기대를 모은다. 이 작품이 배우 이서진과 고아성의 연극 데뷔작이라는 점도 관심을 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특유의 까칠함을 보여준 이서진이 허무한 바냐와 만나는 지점에 궁금증이 쏠린다. 고아성은 최근 영화 ‘파반느’에서 고립 속에 살다가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6일 첫 대본 리딩 현장에서 고아성은 “이런 좋은 대사를 매일매일 내뱉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면서 “늘 카메라 너머로 상상하던 관객들 앞에서 직접 연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고 소감을 전했다.
  • 동강시스타 ‘왕사남’ 영월서 관광 프로모션

    동강시스타 ‘왕사남’ 영월서 관광 프로모션

    SM그룹 레저부문 계열사 탑스텐 리조트 동강시스타가 1000만 관객 돌풍을 일으킨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배경이 된 강원 영월 지역 주요 관광지와 연계한 프로모션을 선보인다고 9일 밝혔다. 영화의 흥행으로 최근 영월을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동강시스타 투숙율도 영화가 개봉한 지난달 4일 이후 이달 첫 주까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가량 늘었다. 이달 말까지 ‘역사 인증 이벤트’를 통해 동강리조트 투숙 고객이 장릉, 청령포 등 영월의 주요 관광지 입장권이나 영화 관람 티켓을 제시하면 리조트 내 식음시설에서 바비큐 1인분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극 중 백성들이 유배지 인근에서 나는 식재료로 단종에게 상을 올리는 장면에서 착안한 ‘영월 반상 2인 패키지’도 다음 달까지 선보인다.
  • 광대들이 뛰고, 떠들고…박신양표 ‘연극적 전시’

    광대들이 뛰고, 떠들고…박신양표 ‘연극적 전시’

    전시장에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 소리를 내거나 크게 움직이면 안 된다. 관람객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의도대로 걸린 그림 앞에서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는 태도로 움직인다. 배우이자 화가인 박신양(58)이 이런 일방적인 전시장의 약속에 질문을 던지며 관람객의 능동적인 태도를 유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시를 선보인다.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연극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는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은 전시에 연극적인 요소가 결합된 특이한 전시다. 부제인 ‘제4의 벽’은 연극 용어로 무대와 관객석을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의미한다. 박신양은 2023년 저서 ‘제4의 벽’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제4의 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상상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 개념을 전시로 끌어왔다. 전시장은 그의 가상 작업실로 꾸며졌다. 작업실처럼 보이기 위해 전시장의 흰 벽 대신 콘크리트를 굳힐 때 쓰는 거푸집인 유로폼 1500개를 벽에 둘렀다. 지난 6일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박신양은 “이번 전시는 전시장이 아니라 작가의 작업장에 초대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경험하는 방식”이라며 “‘전시’라는 말보다 ‘쑈’라는 말이 더 가볍고 사람들을 덜 긴장하게 만들 것 같아 ‘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전시에는 사과, 당나귀, 투우사 연작 등 작품 150점과 함께 정령으로 분한 15명의 배우가 함께한다. 정령은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정령이 살아 움직인다는 ‘호두까기 인형’의 설정에서 가져왔다. 광대 분장을 한 정령은 바닥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시늉을 하거나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리를 내며 대화를 한다. 이들은 그림 속 모습을 따라 하거나 기차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이들이 전시 몰입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그는 “굳이 이런 시도를 왜 하는지 물을 수도 있겠지만,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면서 “단순히 보는 전시가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 이야기를 완성하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전시와 함께 그는 에세이집 ‘감정의 발견: 우리는 모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도 선보였다. 책은 왜 감정이 중요한지, 예술가의 감정 표현이 평범한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우리는 왜 예술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돌아봐야 하는지 생각하도록 안내한다. 여기에는 박신양의 예술 철학, 그림과 사진,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가들의 미술평론 등이 수록돼 있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 ‘언더독’의 반란… 반전의 극장가

    ‘언더독’의 반란… 반전의 극장가

    ‘언더독’의 반란이 한국 영화 부활의 신호탄을 쏘고 있다. 중소 규모 영화들이 연달아 손익분기점을 넘어 장기 흥행을 이어가며 침체 일로를 겪고 있던 한국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올해 초 구교환·문가영 주연의 멜로 영화 ‘만약에 우리’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영화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순제작비 30억원이 투입된 이 작품은 13일 만에 손익분기점 110만명을 돌파하고 누적 관객 260만 명을 동원했다. 멜로 영화가 200만 관객을 넘긴 것은 2019년 ‘가장 보통의 연애’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은 멜로 영화는 극장에서 흥행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를 리메이크한 ‘만약에 우리’는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법한 사랑과 이별, 재회라는 소재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시대상을 담아 아날로그 감성을 강조한 것도 흥행 요인이 됐다. ‘신의 악단’의 흥행도 올해 영화계의 이변으로 꼽힌다. 당초 이 작품은 기독교적 색채가 짙은 영화로 고전이 예상됐지만 역주행에 성공하며 손익분기점 70만명의 두배에 가까운 14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신의 악단’은 북한에서 국제사회 지원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가짜 찬양단을 창설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로 ‘광야를 지나며’, ‘은혜’ 등의 서정적인 CCM(현대 기독교 음악)이 스토리와 어우러지면서 몰입도를 높였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교회 단체 관람 등 종교계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100만명의 관객을 넘기기는 어렵다”면서 “‘신의 악단’은 휴머니즘을 강조한 음악영화로 참회와 희생의 종교적인 메시지가 큰 울림을 줬다”고 분석했다. 역대 34번째 천만 영화에 등극한 ‘왕과 사는 남자’는 사극 장르로는 비교적 적은 예산인 105억원으로 제작됐다. 화려한 볼거리와 스타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손익분기점인 260만명을 가뿐히 넘겼고 1000만을 넘어 1100만 관객까지 불러모으는 등 흥행세가 지속되고 있다. 당분간 눈에 띄는 경쟁작이 없어 1200만을 넘어 1300만 관객 동원까지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황재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최근 중소 규모 영화의 흥행은 높은 제작비와 톱스타를 내세운 블록버스터가 아니더라도 극장에서 가치 소비를 할 수 있는 작품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면서 “앞으로 관객들과 정서적인 감정을 공유하고 화두를 던질 수 있는 다양한 규모의 영화들이 많이 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 28년 만에 이룬 ‘천만 배우’… “한명회 미움 커질수록 흥행”

    28년 만에 이룬 ‘천만 배우’… “한명회 미움 커질수록 흥행”

    체중 5㎏ 늘려 권신 위압감 표현차가운 눈초리와 호통 많이 받아단종·엄흥도 ‘인간성’ 공감대 형성작품 밀도 증명… 1100만 넘어서 “제 인생에 이런 날이 다 오네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데뷔 28년 만에 생애 첫 ‘천만 배우’가 된 유지태는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항상 천만 배우들을 보면 부러웠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 배우로서 모든 것을 다 이룬 것 같다”고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영화의 흥행 비결에 대해 “남녀노소, 세대를 불문하고 극장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공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지난 6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8일 누적 관객 1100만명을 넘어서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유지태는 이 작품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단종을 폐위시키고 수양대군을 왕으로 세운 조선의 권신 한명회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안정된 발성과 눈빛 연기로 단종을 압박하는 그의 악역 연기는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번 영화처럼 차가운 눈초리와 호통을 많이 받은 적은 처음이에요. 관객들이 단종을 사랑하는 만큼 한명회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미움이 커질수록 흥행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한 ’왕과 사는 남자‘는 정치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단종과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킨 엄흥도(유해진 분)의 이야기가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극 전반에 흐르는 따뜻한 시선은 관객들에게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이 작품은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인간성과 휴머니즘의 가치를 기억하는 영화”라면서 “저 역시 관객의 한 사람으로 단종과 엄흥도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1998년 영화 ‘바이준’으로 데뷔한 유지태는 대표적인 영화 ‘올드보이’를 비롯해 ‘봄날은 간다’, ‘동감’, ‘뚝방전설’, ‘꾼’ 등 다양한 작품에서 폭넓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그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약삭빠르고 왜소한 기존의 한명회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캐릭터의 변주를 보여줬다. “장항준 감독님이 멋있는 한명회를 그리고 싶다고 제안하셨고 저도 체중을 5kg 정도 늘려 권력자의 위압감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눈꼬리를 올려서 악인의 이미지를 강조했고 단종과 대면하는 장면에서는 심혈을 기울였죠.” ‘왕과 사는 남자’는 코로나19 뒤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는 한국 영화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유지태는 “관객이 꽉 들어찬 극장을 정말 오랜만에 봤다”면서 “우리 작품이 예산 규모보다 작품의 밀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기 때문에 한국 영화가 더 많이 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10년 만에 돌아온 연극 ‘홍도’… 1930년대 신파를 다시 보다

    10년 만에 돌아온 연극 ‘홍도’… 1930년대 신파를 다시 보다

    1930년대 대표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현대적 감각을 입고 관객들을 다시 찾는다. 오빠의 학업을 위해 기생이 된 홍도와 명문가 아들 광호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가부장제의 악습과 신분 사회의 단면을 포착해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1939년 동명 영화로 제작되어 당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으며, 주제곡 ‘홍도야 우지마라’와 1960년대 리메이크 영화(신영균·김지미 주연)를 통해 국민적 서사로 자리 잡았다. 고선웅 연출이 이끄는 극공작소 마방진은 진부할 수도 있는 신파 이야기를 간결한 무대와 리듬감 넘치는 대사, 과장된 몸짓으로 재해석한 연극 ‘홍도’를 2014년 선보였다. 한국적인 미장센에 한(恨)의 정서를 세련되게 녹여냈다는 호평 속에 국내 주요 연극상을 휩쓸었다. 2016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립극장 초청 당시엔 전석 매진과 기립 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홍도’가 마방진 창단 20주년을 기념해 4월 10~2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10년 만의 서울 공연을 올린다. 공연제작사 옐로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이 제작에 참여했다. 캐스팅도 화려하다. 주인공 홍도 역에는 초연의 주역 예지원을 비롯해,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는 박하선, 마방진 소속 배우 최하윤이 캐스팅됐다. 예지원은 “한층 성숙해진 무대”를, 박하선은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잃지 않은 홍도의 순수함”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광호 아버지 역에는 배우 정보석이 합류해 중심을 잡는다. “고 연출과 꼭 한 번 작업해 보고 싶었다”는 그는 “마방진 20주년이라는 뜻깊은 무대에 함께하게 되어 기대가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 연출은 “감정은 덜어내고 담백하게, 격조 있게 그려내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홍도’는 서울 공연에 이어 5월부터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대구 수성아트피아,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포항문화예술회관,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부산시민회관, 안성맞춤아트홀 등 전국 7개 도시에서 공연한다.
  • ‘왕과 사는 남자’ 영화 흥행에 ‘단종앓이’ 책도 유행

    ‘왕과 사는 남자’ 영화 흥행에 ‘단종앓이’ 책도 유행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영화에서 시작된 ‘단종앓이’가 관련 책으로도 확장되는 모습이다. 8일 예스24에 따르면 왕사남이 개봉한 지난 2월 4일 이후 한 달간 ‘단종’ 키워드 도서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565.4% 증가했다. 어린이 역사책부터 조선왕조실록, 고전 소설 ‘단종애사’까지 다양한 장르의 도서 판매가 함께 늘며 영화 흥행이 독서 열풍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단종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춘원 이광수의 장편 소설 ‘단종애사’에 대한 관심이 특히 뜨겁다. 영화 개봉 이후, 다양한 출판사에서 출간된 ‘단종애사’의 판매량을 합산한 결과 전년 동기(2월 4일~3월 3일) 대비 약 80배 늘었다고 예스24는 설명했다. 어린이책에서도 단종 관련 키워드가 인기다. 어린이 역사책 ‘어린 임금의 눈물’은 단종 키워드 도서 판매 1위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4614.3% 증가했다. 단종이 살았던 시대와 역사적 배경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왕조실록 3 : 세종 문종 단종’은 전년 동기 대비 약 800% 판매 증가를 기록했다. 또 단종의 비극적인 운명과 세종 시대 이후 왕실의 정치적 상황을 함께 조명한 ‘단종의 비애 세종의 눈물’도 같은 기간 약 2700% 상승했다. 교보문고는 영화가 개봉한 2월 4일부터 이달 2일까지 약 한 달간 ‘조선왕조실록’을 키워드로 한 도서의 판매량은 개봉 이전 기간보다 2.9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도서관에서도 단종 관련 책의 대출이 크게 늘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운영하는 도서관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도서관 정보나루’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이후 단종이나 세조, 조선 왕조 역사를 다룬 책 대출이 늘었다. 도서별로 보면 새움출판사에서 나온 이광수의 ‘단종애사’의 경우 영화 개봉 전인 지난 1월 28건에 불과했지만, 영화 개봉 후인 지난달 대출 건수는 총 148건을 기록했다. 단종실록과 세조실록을 다룬 역사 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5’ 역시 영화 개봉을 전후해 월별 대출 건수가 70건에서 186건으로 배 이상 늘었다.
  • “성형·개명 대신 커피차 쏩니다”… 장항준 감독 ‘천만 공약’ 정정

    “성형·개명 대신 커피차 쏩니다”… 장항준 감독 ‘천만 공약’ 정정

    “왕사남 공약은 웃자고 한 얘기박찬욱 감독에 문자 받아 영광”이르면 오늘 1000만 관객 돌파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영화 등극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 영화는 5일 현재 980만 관객을 동원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이르면 6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할 전망이다. 2024년 ‘범죄도시4’ 이후 2년 만이다. 역대 국내 개봉작 중 34번째, 한국 영화 가운데 25번째다. 1000만 관객 동원이 현실화되자 ‘왕과 사는 남자’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장항준 감독이 내걸었던 파격적인 공약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장 감독은 영화 개봉을 앞둔 지난달 1일 SBS 파워FM ‘배성재의 텐’에 출연해 “1000만 관객을 넘는다면 일단 전화번호를 바꾸고, 개명하고 성형할 것”이라며 “다른 데 귀화할까도 생각 중이다, 요트를 살 것”이라며 특유의 입담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장 감독은 지난 4일 같은 프로그램에 다시 출연해 “웃자고 한 얘기였다. 그걸 다 지킬 사람이 세상에 있겠느냐”고 너스레를 떨며 “대안으로 시내에서 시민들을 위해 커피차 이벤트를 열겠다”고 공약을 수정했다. 이와 관련, ‘왕과 사는 남자’ 배급사 쇼박스는 오는 12일 낮 12시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 광장에서 커피차 이벤트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장 감독이 직접 현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커피와 감사 인사를 전할 예정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단종이 폐위된 뒤 유배지에서 보냈던 마지막 시기를 그렸다. 배우들의 호연이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들의 N차 관람이 이어졌다. 특히 3·1절 연휴에는 하루 관객 80만명을 넘기며 개봉 이후 최고 관객 수를 기록했다.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작품의 배경이 된 강원 영월군 청령포 역시 방문객이 급증했다. 장 감독도 흥행 열풍을 체감하고 있다. 그는 “마스크를 써도 알아보고 전철에서도 알아보는 분들이 있다”며 “박찬욱 감독한테서 큰일을 해냈고 박수받아 마땅하다는 축하 문자를 받았는데 영광이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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