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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경찰모자/임태순 논설위원

    현직 경찰간부가 청와대에 보낸 경찰모자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경찰청 소속 유모 경감은 “내 명예를 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승진할 때 썼던 모자를 우송했다고 한다. 모자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추위나 더위를 가리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에서부터 멋을 내기 위한 장식용으로도 이용된다. 특정집단을 일반인들과 구분하는 제복으로서의 이미지도 강하다. 그래서 모자는 사회적 지위나 권위, 명예를 상징하고 조직의 통일성, 일체감을 가져온다. 우리 조상들은 갓을 쓰고 양반의 위세를 부리기도 했다. 경찰모자는 단정함과 엄숙함을 상징하는 파란색 바탕에 한 가운데 무궁화와 독수리가 새겨져 있다. 창에는 노란테가 둘러쳐져 있다. “명예를 돌려드린다.”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 경감은 지난해 농민시위 진압과정에서의 공권력 행사가 폭력으로 매도되고 경찰청장이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모자를 보냈다. 유 경감은 “정당성이 훼손된 공권력이 어떻게 범죄 앞에 설 수 있느냐. 이번 사건으로 경찰은 서 있는 발판을 잃었다.”며 “제복을 입은 사람의 명예의 상징인 모자를 국민(대통령)에게 돌려드린다.”고 말했다. 또 “정치권은 우리를 폭력배로 낙인찍었다.”며 “시위대의 행동과 관계없이 경찰만 잘못이라고 하면 공권력이 설 자리가 없다.”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유 경감의 서운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경찰 간부가 경찰의 상징이자 공권력의 상징이기도 한 모자를 국가최고책임자에게 보낸 것은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공권력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지만 시위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과잉진압마저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공권력은 치안질서와 국민의 생명을 유지하는 범위내에서 사용되어야지 남용되어선 안된다. 또 국민을 다독거리고 어루만져 줘야 할 경찰이 청와대를 겨냥해 국민들에게 불만을 표출한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쩌다 나라의 기강이 이렇게까지 무너졌는지 개탄스럽기만 하다. 다행히 청와대는 이 모자를 반송했다고 한다. 글을 올린 경찰간부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진해서 글을 내렸다고 한다. 반송된 모자를 쓰고 모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봤으면 한다. 경찰의 명예와 권위는 제 본분을 다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사설] 전·의경 부모의 분노 이유있다

    전경·의경의 부모들이 폭력시위에 항의하는 집회를 오는 7일 경찰청사 앞에서 갖기로 해 작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이 집회를 계획한 까닭은, 여의도 농민시위에서 비롯된 농민 2명의 사망과 그에 따른 경찰청장 등의 문책성 사퇴 과정에서 드러난 일련의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곧 농민 사망은 있어서는 안 될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그렇다고 진압 일선에 나선 전·의경을 가해자인 것처럼 폄훼하는 현실은 부당하다는 항의인 것이다. 우리는 전·의경 부모들의 분노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우리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한다. 전투경찰과 의무경찰로 복무하는 젊은이들은 최전방 GP에 근무하는 사병들과 마찬가지로 병역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이땅의 자랑스러운 아들들이다. 그들이 군복 대신에 진압복을 입고 시위 현장에 나서는 일은 치안질서 유지라는 국가적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는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도 시위진압 과정에서 전·의경들이 입은 피해는 상대적으로 외면받아 왔다. 문제가 된 여의도 농민대회에서만 전·의경 218명이 부상한 것을 비롯해 지난해 중·경상을 입은 전·의경은 747명이나 됐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병역의무를 수행 중인 젊은이에게 폭력을 휘둘러 평생 짊어져야 할 장애를 입힐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우리는 농민 시위대의 폭력도, 희생자를 낳은 경찰의 과잉진압도 모두 용납할 수 없음을 누차 밝혀왔다. 이제 폭력시위는 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폭력을 준비해 먼저 행사한 쪽에 원천적인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전·의경 부모까지 항의집회에 나서는 일이 더이상 없도록 우리 사회가 폭력시위 근절에 온힘을 모아야 한다.
  • 의경어머니의 애끓는 하소연

    “병역을 일찍 마치라고 의경으로 보냈는데 결국 사지로 내몬 꼴이 됐습니다. 우리 애가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의경으로는 보내지 않았을 텐데….” 김진미(48·여·서울 은평구)씨는 길거리에서건 TV에서건 방석복에 방석모를 쓴 전의경들을 보면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서울 시내 한 경찰서에서 의경으로 복무하고 있는 아들(24)이 떠올라서다. 아들은 육군에 입대하려면 1년8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지난해 4월 대학 2학년을 휴학하고 의경에 자원했다. 아들은 입대한 지 석달쯤 되던 7월 어느날 불쑥 집으로 돌아왔다. 첫 시위진압에 나갔다가 온몸에 멍이 들고 상처투성이가 되자 지휘관이 하루 휴가를 줬다고 했다.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픈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면서 “이것 봐, 멀쩡하잖아.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하나도 안 다친 거야.”라는 아들의 ‘거짓말’은 엄마를 두 번 울렸다. 김씨는 “팔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자기가 빠지면 동료들이 더 고생한다며 일찌감치 집을 나서던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들을 돌려보낸 뒤 김씨는 인터넷포털 다음에 ‘전의경 우리 고운 아들들’(cafe.daum.net/arbang1003)이란 카페를 만들었다.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부모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혼자 속앓이를 하다 이곳을 알고 찾아오는 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요. 부모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서로 많은 위로가 됩니다.” 김씨는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고생한다는 얘기나 듣지만 우리 아이들은 시위 현장에서 속수무책으로 맞으면서도 폭력 경찰로만 몰리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대부분 부모들이 말한다.”고 전했다. 농민이 경찰의 과잉진압에 사망한 것도 안타깝지만 전·의경들 역시 피해자라는 것이다. 지난해 말 농민시위 때에는 아들의 절친한 동료가 시위대의 죽창에 오른쪽 눈이 찔려 병원에 실려갔다. 집이 지방이라 외출 허락을 받으면 자주 아들과 함께 찾아와 밥을 먹고 돌아갔던 친구였다.3차례 수술을 받아 겨우 실명 위기는 면했다. 하지만 한쪽 눈은 평생 시력을 되찾기 힘들다고 한다. “농민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농사꾼의 자식이니까요. 하지만 의경들도 정복을 벗고 방패만 내리면 옆집 사는 동생과 마찬가지입니다. 내 아들이라 생각하시고 쇠파이프와 죽창을 제발 그만 거둬주세요.”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與, 예산처리 과반 확보 ‘긴급 공조’

    올해 국회 본회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29일 열린우리당은 예산안 등 시급한 핵심 법안들을 처리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들과 사안별 공조에 나섰다. “거대 정당들의 선거구 나눠먹기”라며 민주노동당 등이 반발해온 ‘기초의회 선거구획정’ 파문에 대한 진상조사단을 구성키로 하고, 민주당 등이 요구해온 호남 폭설 피해지역 등에 대한 특별재난지역 선포 건의안에 합의한 것도 30일 본회의 의결 정족수 확보와 무관치 않다. 한나라당이 불참하는 상황에서 현재 144석인 여당 단독으론 법안 처리가 불가능한 데다, 여론을 고려, 다른 야당들과 함께 법안을 처리하는 모양새를 갖추려는 것이다.●왜곡된 선거구획정 바로잡기, 민노당 끌어안기? 허준영 경찰청장의 사의 표명으로 민노당이 30일 본회의에 참석하기로 하면서 일단 한숨 돌렸다. 민노당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따른 시위농민 사망 사건에 책임을 지고 “허 청장이 물러나기 전에는 본회의에 출석하지 않겠다.”며 정부와 여당을 압박해왔다. 민노당 등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두 거대 정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4인선거구’를 ‘2인선거구’로 쪼개고 있다.”고 반발해온 기초의회 선거구획정과 관련해서도 당 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문제가 시정되지 않을 경우 2월 임시국회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구를 다시 획정하도록 법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 주도의 대구 시의회와 경남 도의회가 선거구획정 날치기를 했다.”며 참석 의원들의 동의를 구해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호남 등 특별재난지역 지정, 민주당 등 유인책? 열린우리당 의원이 과반수인 국회 행정자치위원회가 이날 전체회의에서 폭설 피해를 입은 호남·충청·제주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자는 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과 연계돼 있다는 평가다. 민주당과 가칭 국민중심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민노당이 파병연장안에 대해서는 부결 원칙을 밝히고 있는 데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도 표결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의결 정족수 채우기가 만만찮아서다. 민주당 이낙연 원내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개인 사정으로 30일 본회의에 2∼3명의 의원들은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종인 의원 등 여당 내 일부 의원들도 반대 원칙을 밝히고 있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허경찰청장 사퇴

    허경찰청장 사퇴

    농민 사망을 부른 과잉진압을 이유로 사퇴 압박을 받아온 허준영 경찰청장이 29일 오전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는 이날 허 청장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허 청장이 제출한 사표가 행자부장관과 국무총리를 거쳐 청와대로 올라왔고, 절차에 따라 수리됐다.”고 말했다. 허 청장은 사퇴의 변을 통해 “연말까지 예산안 처리 등 급박한 정치 현안을 고려해 자신의 거취 문제가 국가경영에 부담이 돼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허 청장은 그러나 “(농민 사망이)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는 변함없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또 “새해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국민의 고막을 찢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며 자신을 향한 사퇴 압력에 불만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자신을 경찰총수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한 집회시위 관리에 대해 허 청장은 “바뀌어야 할 것은 결국 문화”라면서 “경찰장비 보강이나 관련법규의 강화는 오히려 과격 시위를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난 농민들의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 중 우발적으로 발생한 불상사지만 결과적으로 농민 두 분이 돌아가신 데 대해 비통하게 생각한다.”면서 “병상에 있는 전ㆍ의경, 농민의 쾌유를 빈다.”고 덧붙였다. 수사권 조정 문제와 관련해 허 청장은 “검경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영시스템상 견제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성역을 없애자는 것이므로 국민 여러분의 각별한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외무고시 출신 1호로 1984년 경찰에 입문한 허 청장은 서울경찰청장을 역임한 뒤 올 1월 경찰 인사권과 관련해 사표를 낸 최기문 전 경찰청장의 후임으로 경찰총수에 올랐다. 박홍기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두번째 임기제 청장도 중도하차

    허준영 경찰청장이 취임 11개월 11일 만에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취임사부터 ‘인권경찰’을 강조한 그가 임기 중 농민 2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청장이란 오명을 쓰고 결국 총수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 것이다. 지난달 15일 쌀 협상 국회 비준에 반대하던 농민 1만여명은 서울 여의도에서 시위를 했다. 농민들은 국회로 진입하려 했고 경찰과 정면충돌했다. 경찰과 농민 부상자만 합해 200여명. 부상자 속에는 농민 전용철씨와 홍덕표씨가 있었다. 하지만 머리를 다친 전씨는 10일 만에 숨을 거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홍씨의 ‘사망원인이 정지된 물체에 의한 것’이라며 경찰 진압이 직접적인 사인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농민들은 부검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허 청장은 “전씨가 시위 현장에서 다친 것은 확실하지만 경찰의 폭행 여부는 조사 중”이라며 직접적인 책임 인정을 유보했다. 이후 전신마비 증세를 보인 홍씨마저 18일 사망하면서 농민들의 경찰에 대한 감정은 점점 격해졌다. 결국 진상조사에 나선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6일 전씨와 홍씨의 사인으로 ‘경찰의 과잉진압’을 지목함에 따라 허 청장에 대한 사퇴 여론은 더 거세졌다. 서울청 기동단장이 직위해제되고 서울청장이 사퇴를 표명했지만 농민들은 경찰 최고책임자인 허 청장의 사퇴와 대통령 사과를 요구했다. 27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청장의 거취는 본인의 뜻에 맡기겠다고 했다. 허 청장은 ‘사퇴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폭력시위에 대한 공권력 행사 중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그의 소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농민단체와 야당, 심지어 여당까지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자 결국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허 청장의 ‘소신’을 지지했던 청와대가 국회 정상화를 위해 결단을 촉구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편으로 허 청장도 검찰과 수사권을 놓고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경찰총수로서 자리를 고집하는 게 조직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장이 중도 사퇴한 예는 전에도 있었다.1991년 경찰청 출범 이래 처음으로 자진 사퇴한 경찰 수장은 제3대 김효은 청장으로 이후 김세옥(7대)·김광식(8대) 청장도 중도하차했다. 최초의 임기제 경찰청장인 최기문 청장도 임기를 3개월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올 1월 취임한 허 청장마저 옷을 벗으면서 임기제 시행 이후 청장 2명이 모두 2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게 됐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靑 ‘떠밀기’ 警 ‘버티기’

    노무현 대통령의 27일 대국민사과로 허준영 경찰청장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본인이 판단할 일이라고 밝혔으나, 허 청장은 사퇴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허 청장이 사퇴하지 않겠다는 배수진은 임기제다. 노 대통령도 이날 허 청장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농민단체 요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우리의 제도상 대통령이 경찰청장에 대해 문책인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나 권한을 갖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거꾸로 기자들에게 제도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노 대통령의 고민이 배어있는 발언이다. 허 청장이 자진사퇴할 경우 수리할지에 대해서는 “본인이 어떤 판단을 했을 때 대통령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것은 이미 본인의 판단이 아니고 대통령의 판단을 말하는 셈이 된다.”고 즉답을 피했다.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로 볼 때 현실론보다는 자진사퇴 쪽에 무게중심이 실려있는 듯하다. 현재 청와대의 기류는 두 갈래인 것으로 알려진다. 임기제인 허 청장을 교체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는 측이 있고, 즉각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양분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교체론이 우세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은 청와대의 기류는 경찰공무원법 개정안 처리에서도 읽을 수 있다. 공포를 눈앞에 두고 전격적으로 거부권 행사 등의 문제제기를 한 것은 청와대 참모진이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정부 부처에서 이견을 제기했는데도 통과된 법 개정안을 청와대가 뒤늦게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청와대와 경찰의 관계는 허 청장의 거취, 검경수사권 독립 등의 현안들과 맞물려 민감하고 긴박하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시위농민 사망사건과 최근의 쌀수입개방을 놓고 농민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상황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노 대통령은 경찰의 시위 과잉진압과 폭력시위 문화에 대해 양비론을 펴면서도 공권력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공권력은 국민들에게 주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이 폭력시위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와 협의에 나서겠다고 밝혀 앞으로 시민사회단체와 조율이 주목된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사설] 허준영 경찰청장 즉각 사퇴해야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 집회에 참석했다가 숨진 두 농민의 사인이 경찰 과잉진압으로 밝혀졌다.70에 가까운 홍덕표씨의 경우 뒤쫓아온 경찰의 방패에 뒷목을 맞았다는 조사결과까지 드러났다. 국가인권위는 엊그제 이같이 잠정결론을 내리고 검찰에 정식수사를 의뢰했다. 예상 안 했던 바는 아니지만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경찰로부터 시민이 ‘죽임’을 당한 꼴이다. 일반국민은 물론 깊은 슬픔과 시름에 빠져있는 유가족들의 마음을 어찌 달랠 수 있을까. 이처럼 심각한 상황인데도 정부의 대응을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과 함께 책임자 문책 및 국가배상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허준영 경찰청장은 대국민사과를 한 뒤 “책임은 통감하지만 사퇴는 안 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앞서 인권위는 농민시위 진압과정의 지휘선상에 있는 서울청장 등에 대한 징계를 권고했다. 이기묵 서울청장은 어제 사의를 표했다. 하지만 서울청장의 징계는 최소한의 경고였을 뿐이다. 이같은 미봉책으로는 성난 농심(農心)은 물론 일반여론을 잠재울 수 없다.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허 청장은 사건 초기부터 발뺌하기에 급급했다.“시위현장에서 넘어져 숨졌다.”는 등 안일하게 대응했다. 또 서울경찰청이 진상조사에 나섰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결과도 내놓지 못했다. 국가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이다. 폭력시위 등의 정황도 있지만 공권력이 그 정도를 넘어서 은폐한 사실까지 드러났는데 이정도 수습으로 끝내겠다는 게 말이 되는가. 허 청장은 ‘임기제’를 핑계대고 있다. 그것은 명분이 되지 않는다. 임기제를 먼저 도입한 검찰총수가 물러난 사례도 참여정부 들어 두 번이나 있다.노대통령이 “문책권한이 없다.”며 “경찰청장 책임은 본인이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딱한 일이다. 대통령이 사과까지 하게 하면서 자리에 연연해하는 듯한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다. 허 청장은 즉각 사퇴해 경찰 쇄신과 국민신뢰의 회복 길을 터주기 바란다.
  • 과격시위·과잉진압 악순환 왜

    농민 전용철·홍덕표씨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과잉 진압과 폭력 시위를 중지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사망한 농민들이 참가했던 시위를 진압한 경찰이 먼저 비난을 받는다. 바로 서울경찰청 제1기동대 소속 1001∼1003중대다. 이 기동대가 출동하는 현장에는 항상 많은 부상자가 발생, 과잉진압 시비가 일었다. 하지만 시위대에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찰은 죽창과 벽돌, 쇠파이프가 등장하는 폭력적인 시위문화가 과격진압을 부르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방패 갈기, 내리찍기 등 ‘실전 요령’ 가르쳐” 1기동대 대원들 사이에서는 과잉진압 요령이 자연스럽게 전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1기동대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전역한 A씨는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선배가 후배에게 진압 요령을 일러준다.”고 말했다. 그는 “방패를 시멘트에 갈아 날카롭게 만드는 방법부터 시위대를 흥분시켜 먼저 달려들게 하는 방법, 방패를 세로로 세워 찍는 방법, 복부나 목을 가격해 쓰러뜨리는 방법, 쓰러뜨린 뒤 가슴을 내리찍어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방법 등 구체적인 실전요령을 알려준다.”고 했다. 또 “과잉진압 논란이 일어서 방패에 안전고무를 씌우라고 했을 때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별다른 징계나 주의를 받지는 않았다.”면서 “언론사의 사진이나 경찰 내부의 채증에 잡히지만 않으면 무시해도 된다는 식이었다.”고 덧붙였다. 1기동대는 서울경찰청 산하이지만 과격시위가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파견된다.▲부안 핵폐기장 유치 반대시위 ▲청주 하이닉스 노사 분규 ▲울산 플랜트 노사 분규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집회 ▲인천 맥아더 동상 철거집회 등에서 맨 앞에 서 있었던 게 이들이다.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은 1기동대의 과잉진압으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도 있다고 주장해 왔다. ●“건장한 청년 엄선… 폭력진압 자부심 심어” 1962년 서울경찰국 기동중대로 창설된 1기동대는 수도의 치안을 맡아왔으며,91년 서울경찰청 기동단에 예속된 뒤 96년부터 진압부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13개 중대 가운데 1∼3중대가 최정예로 꼽힌다.1중대는 ‘선봉중대’,2중대는 ‘최강사복중대’,3중대는 ‘특공중대’로 불린다.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은 올 국정감사에서 “평균신장이 1중대 182㎝,2중대 181㎝,3중대 182㎝로 우리나라 고등학교 3학년생의 평균 신장인 172.8㎝와 10㎝ 가량 차이 날 만큼 신체조건이 좋은 사람만 엄선하고 있다.”면서 “최강, 선봉 등의 단어로 오도된 자부심을 심어주고 폭력적 진압이 자랑스러운 전통인 양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위대가 더 폭력적…생명의 위협 느끼기도” 하지만 경찰 역시 집회·시위 현장에서 폭력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올 9월 맥아더 동상 시위에서는 전경 1명이 대나무창에 눈을 찔려 실명 위기에 처했고, 지난 농민시위에서도 3중대 대원 1명이 집회 참가자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방석모의 안구보호용 아크릴이 깨지면서 오른쪽 각막이 손상됐다. 올 들어 집회·시위 현장에서 부상당한 경찰관과 전·의경은 모두 803명으로 해마다 부상자가 늘고 있다. 연도별 부상자 수는 ▲2001년 304명 ▲2002년 287명 ▲2003년 749명 ▲2004년 621명 등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적으로도 열세인데다가 뾰족하게 날을 세운 쇠파이프나 죽창으로 방석모를 찌를 때면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다.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방패를 휘두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일선 경찰서 경비과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경찰은 시위대뿐 아니라 다른 시민들의 안전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과잉진압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화적인 시위문화 정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서울경찰청 제1기동대 구호 ▲1001 선봉중대 우리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곳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1002 최강사복중대 제일 격렬하며 난폭한 상황의 중심엔 언제나 우리가 있다. 그 극한 상황 속에서 엄청난 기동력으로 극렬 시위대를 검거하는 우리야말로 최강이다. ▲1003 특공중대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리, 병처럼 깨질진 몰라도 캔처럼 찌그러지진 않는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노대통령 “문책할 권한 없어” 경찰청장 “임기제…사퇴안해”

    노대통령 “문책할 권한 없어” 경찰청장 “임기제…사퇴안해”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농민 두 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갖고 “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정부는 책임자를 가려내서 응분의 책임을 지우고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국가가 배상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특히 허준영 경찰청장의 문책에 대해 “지금 제도상 대통령이 경찰청장에 대한 문책인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나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나머지는 정치적 문제이며, 대통령이 권한을 갖고 있지 않으면 본인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으로, 정도를 넘어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 국민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다.”면서 공직사회에 이 점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권력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되며, 공권력의 책임은 무겁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폭력시위가 없었으면 이런 불행은 없었을 것인 만큼 정부와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폭력시위가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적절한 조치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우발적이 아니고 준비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들을 자주 보며 어떤 정당성을 갖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그같은 상황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시민사회단체의 책임의식에 대해 납득할 수 없고, 이같은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도록 모두 결과적으로 용납한 데 대해 참으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서울신문이 선정한 2005년 국내외 10대 뉴스

    ■ 국내 ●황우석교수 ‘줄기세포 논문’ 조작 파문 ‘국보급 과학자’에서 ‘허풍 과학자’로 전락한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파문은 온 국민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아직 완전히 조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세계 최초라고 했던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믿을 수 없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난치병 환자들은 다시 절망에 빠졌고 한국은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어떻게든 성과를 빨리 보여주려는 조급성과 과학자로서의 윤리 상실이 부른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안기부·국정원 수천명 불법도청 확인 7월 도청테이프 한 개의 내용이 폭로됐다.1997년 삼성측 인사들이 한 음식점에서 정치권과 검사에게 금품을 주려고 논의하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를 실마리로 국가정보기관의 불법도청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이 국가정보원을 사상 처음으로 수색하는 등 다섯달 동안 수사를 벌여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 미림팀이 정·관·재·언론계 인사 수천명을 도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도청 추방을 외쳤던 김대중 정부에서도 도청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이 구속됐다. ●정부, 8·31 부동산투기 억제대책 발표 연초부터 서울·수도권 신도시 아파트값과 전국 땅값이 폭등해 서민들의 주름살이 더욱 깊어졌다.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서 시작된 가격급등은 일반 아파트로까지 번졌고, 판교 신도시 광풍은 주변 아파트값을 끌어올려 연간 아파트값 상승률이 11%(㈜부동산114 기준)를 넘어섰다. 결국 정부는 강력한 투기억제책이 담긴 ‘8·31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고, 연말부터 부동산 시장은 안정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일부 투기억제 법률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 국회 통과 12부4처2청의 국가기관을 수도권에서 충남 연기·공주로 옮기는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법안이 3월2일 전격적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도 헌법소원에 휘말렸지만 헌법재판소가 합헌취지의 결정을 내리면서 법리논쟁이 일단락됐다. 여권은 청와대까지 옮기려던 당초 계획에서 다소 물러서긴 했지만 대통령선거 공약을 지킨 것으로 자평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이 바뀔 경우 재검토되거나 변경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 ●청계천 47년만에 복원 ‘생태하천으로’ 서울 도심을 흐르는 청계천이 47년만에 복원돼 시민들 품으로 돌아왔다.1958년 콘크리트로 복개되면서 땅속에 묻혔던 5.84㎞ 물길이 10월1일 따사로운 햇볕을 되찾아 물고기와 새가 노니는 생태하천으로 거듭났다. 공사 비용을 뛰어넘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성공적 하천복원 사례로 외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도 오랜 단장 끝에 새롭게 문을 열어 시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 도심의 명소로 거듭났다. ●‘독도 영유권분쟁’ 한·일 감정대립 격화 일본 시마네현이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하는 조례안을 상정하고 주한일본대사가 서울 한복판에 앉아 ‘독도는 일본영토’라고 주장하면서 한·일 외교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3월16일 시마네현은 일본 정부의 묵인과 국수주의자들의 응원 속에 조례를 통과시켰다.6월20일 한·일 정상들은 냉랭하게 만났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10월15일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한·일 양국의 감정대립은 격화됐고 연말로 예정됐던 양국 정상간 정례 ‘셔틀회담’도 결국 무산됐다. ●기생충알 김치등 중국산 먹을거리 파동 10월 중국산 김치에서 납 성분에 이어 기생충알까지 검출됐다는 당국의 발표로 중국산 식품 전체가 극도의 불신을 받았다. 검출된 알이 모두 미성숙란이어서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지만 한때 한국과 중국은 외교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11월에는 일부 국내산 김치에도 기생충알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먹을거리의 국민건강 위협이 심각하게 부각됐다. 또 중국산 어류에 이어 송어·향어 등 국내 양식 민물고기에서도 발암물질인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됐다. ●한국축구, 월드컵 6회 연속 본선진출 한국축구대표팀이 6월9일 쿠웨이트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에서 쿠웨이트를 4-0으로 대파하며 6회 연속 본선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월드컵 6회 연속 진출은 세계에서 9번째이고 아시아에선 최초다. 하지만 8월 초 열린 동아시아축구대회에서 2무1패로 꼴찌를 기록한 데다 8월17일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졸전 끝에 0-1로 맥없이 패배, 조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되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새로 영입하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여성 악법’ 호주제 2008년 완전 폐지 50년간 여성계의 숙원사업이던 ‘호주제 폐지’는 2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물꼬를 텄다. 헌재결정후 50일이 안돼 국회는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호주제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호주제는 여성권리의 신장, 한 부모 가족 증가 등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존속시켜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유림을 중심으로 거세게 일었다. 유예기간을 거쳐 호주제가 완전 폐지되는 2008년 1월부터는 가족 관계를 개인별로 관리하게 된다. ●과거사규명·사립학교법 여야의원 격돌 17대 국회는 ‘과거사 규명’과 ‘사립학교법’의 격랑 속에 여야간 극한 대립을 불러왔다. 여야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사대상과 범위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었는데 지난 9일 ‘반쪽 통과’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는 정면 충돌, 연말까지 급랭정국이 이어졌다. 한나라당의 장외투쟁, 종교계의 불복종운동, 사학재단의 신입생 모집 거부 경고 등으로 반발이 확산되자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불가’와 ‘단독 국회 개최’로 맞섰다. ■ 국제 ●카트리나 강타와 구겨진 미국자존심 8월29일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 멕시코만을 강타해 1306명이 숨지고 6644명이 실종됐다.‘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가 순식간에 물속에 잠겨 유령의 도시로 변하면서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꼬리를 문다. 피해를 키운 연방정부의 늑장 대응은 초일류국가임을 자임해온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특히 재난 대처 과정에서 첨예화된 흑백간 인종 갈등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국제사회에 그대로 드러냈다. ●파키스탄 강진으로 7만5000명 사망 10월8일 발생한 리히터 규모 7.6의 파키스탄 강진은 7만 5000명의 사망자,350만명의 이재민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낳았다. 재난 앞에서 카슈미르 관할권을 둘러싸고 앙숙 관계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은 국경을 개방, 구조작업에 나선 군인들을 오가게 했다. 그러나 영하 30도까지 수은주가 곤두박질치는 겨울이 닥쳐왔다. 이재민들에게 제공된 텐트는 대부분 겨울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어서 동사(凍死)자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전세계 확산 비상 ‘21세기 흑사병’으로 불리는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하던 AI가 9월 이후 중국과 동유럽을 거쳐 서유럽, 중동, 미주로까지 번졌다. 세계보건기구(WHO) 집계 결과 현재까지 AI로 숨진 사람은 73명.WHO는 특히 치명적인 H5N1 바이러스의 사람간 감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AI가 역병(疫病)이 될 경우 1억명 이상이 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이슬람계 런던 연쇄 폭탄테러 이라크전에서 미국의 최대 우방인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7월7일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했다.9·11테러 이후 4년만에 세계가 다시 테러공포에 휩싸였다. 출근길 런던 시민들로 붐비던 지하철과 2층버스에서 발생한 테러로 56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다쳤다. 인명피해 못지않게 충격을 준 것은 테러범들이 영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자생적인 이슬람계 이민 2세들이라는 점이다. 이후 테러용의자를 사살하는 과정에서 영국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프랑스 이민자들 ‘인종갈등’ 폭동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가 인종갈등으로 빚어진 폭동으로 불탔다.10월27일 파리 교외 무슬림 빈민가에서 경찰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10대 소년 2명이 감전사했다. 이후 3주 동안 무슬림과 저소득층 이민자들이 사는 파리 외곽 지역에서 분노한 젊은이들의 방화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9000여대의 차량이 불탔고 약 3000명이 체포됐다. 이 소요사태는 이민자 2·3세의 사회통합문제, 실업, 빈부차 등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라크 주권정부 구성 행보 계속 혼란과 갈등이 노출되고는 있지만 주권정부 구성을 향한 이라크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1월 제헌의회 선거를 통해 구성된 의회가 내놓은 새 헌법안이 10월 국민투표를 통과하면서 이같은 안정화 일정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 치러진 총선 개표 결과 발표가 늦춰지면서 정파간 갈등과 혼돈이 초래되고 있지만 내년 1월 총선 결과가 나오면 총리 지명, 내각 구성 등 새 정부 출범을 향한 정치 일정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 교황 보수파 베네딕토 16세 즉위 4월2일 26년 동안 재임해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저는 전부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선종한 뒤 전 세계의 이목은 바티칸에 쏠렸다.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네번째 콘클라베가 열린 같은 달 19일 오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 새 교황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제 265대 교황으로 선출된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시절 ‘하느님의 충견’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데서 볼 수 있듯 대표적 강경 보수주의자로 평가돼왔다. ●자민당 과반의석… 고이즈미 개혁독주 우정민영화를 기치로 중의원을 전격 해산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도박’이 ‘대박’으로 나타났다.9·11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15년 만에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고 개혁 독주를 시작했다.‘제왕적 총리’가 된 고이즈미 우경화도 탄력을 받았다. 취임 후 다섯번째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가 하면 아소 다로 외상 등 극우 인사를 내각에 중용해 이웃나라인 한국·중국과 최악의 외교마찰을 빚고 있다. ●국제유가 고공행진… 세계경제 긴장 연초만 해도 배럴당 40달러 안팎에 머물던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6월27일 사상 처음 60달러를 넘어섰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미국 멕시코 만의 석유시설 피해가 생긴 8월 말에는 10월 인도분 WTI 가격이 70달러를 넘었다.3차 오일쇼크가 오리라는 우려는 이후 유가가 하락세로 안정되면서 다행히 기우로 그쳤다. 고유가 쇼크로 정신이 번쩍 든 미국을 비롯한 에너지 소비대국들이 원자력, 석탄, 에탄올 등 대체에너지 사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독일 첫 女총리 메르켈 ‘좌·우 대연정’ 9·18 총선 후 두 달여의 연정(聯政) 줄다리기 끝에 독일 총리직을 거머쥔 앙겔라 메르켈. 조기 선거 승부수를 던진 7년 집권의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꺾었다.36년 만이라는 좌·우 대연정의 수장을 맡아 독일병을 치유하고 제2의 라인강 기적을 이룰지 주목된다. 취임 첫 날을 해외순방으로 연 메르켈은 유럽연합 예산안을 막후 조정으로 타결시켜 국제 무대 데뷔전도 성공리에 치렀다. 동독 출신과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제2의 대처’로 탄생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인권위 “농민사망 경찰 과잉진압탓” 檢에 수사 의뢰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 농민 시위에 참가했던 전용철·홍덕표씨의 사망 원인을 “경찰의 과잉 진압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진압에 직접 가담한 2개 부대를 특정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키로 하는 한편 지휘책임자 등에 대해선 징계조치를 권고했다. 인권위는 26일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이처럼 결론짓고 허준영 경찰청장을 상대로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서울청차장, 경비부장은 경고 ▲서울청 기동단장은 징계 ▲각 격대장·중대장 등 지휘책임자 등은 자체적으로 조사한 뒤 징계 조치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전용철씨는 경찰의 방패에 얼굴을 맞은 것이 직접적 사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홍덕표씨도 경찰 폭행으로 사망했다고 결론지었다. 인권위가 시위 현장을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경찰의 무전 통신기록 등을 분석한 결과 경찰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 장비사용에 관한 규정’도 크게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장비 사용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경찰이 방패를 비스듬히 들거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 찍어서는 안되며 방패를 사용해 시위대를 막을 경우에도 몸통만 접촉하게 되어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여의도 농민 집회는 서울경찰청에서 관할했기 때문에 이번 조사에서 허준영 경찰청장에 대한 책임은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집회참가 농민 또 사망

    쌀 개방에 항의 시위를 벌이던 농민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또 다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앞서 숨진 농민 전용철씨 때와 달리 경찰 스스로 책임을 인정한 상태라 경찰 수뇌부 문책 등 파문이 예상된다. 18일 전국농민회 총연맹 전북도 연맹에 따르면 시위 진압과정에서 중상을 입고 전북 익산 원광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홍덕표(68·김제시 백산면)씨가 이날 오전 0시40분쯤 경추 손상에 의한 패혈증으로 숨졌다. 홍씨는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 농민집회 시위 도중 진압 경찰에 맞아 이마와 목 뒷부분 등을 크게 다쳤다. 함께 시위에 참가했던 김정진(55)씨는 “경찰이 휘두르는 방폐 등을 피해 도망가던 중 홍씨가 안 보여 뒤를 보니 화단 근처에서 얼굴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홍씨는 부상이후 서울 영등포 성애병원에서 다시 전북 익산의 원광대병원으로 옮겨져 33일째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 10일부터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해왔다. 경찰은 홍씨가 사망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부상원인이 폭력진압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사망소식이 전해진 18일 이후 공식적 입장발표를 유보했다. 최광식 경찰청 차장은 지난 14일 “시위현장에서 진압경찰에게 가격을 당해 부상했을 가능성이 현저하다.”면서 “특히 이마와 인중부위 부상은 (방폐 등의) 가격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발표와 함께 지휘책임을 물어 서울청 기동단장을 직위해제했다. 한편 홍씨 사망으로 농민단체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고(故)전용철·홍덕표 농민살해규탄 범국민대책위’는 이날 오전 홍씨의 시신이 안치된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경찰청 기동단장 구속 ▲허준영 경찰청장과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 파면 ▲서울경찰청 1기동대의 해체 등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농민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고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벌이겠다.”고 덧붙였다.대책위는 20일 오후 추모집회를 전국 각 시·군 경찰서 촛불시위에서 열고,22일부터 3일간 청와대 앞에서 대규모 철야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씨줄날줄] 시위 선진국

    우리는 시위문화가 일천해 군중집회가 과격해진다는 얘기가 통설처럼 떠돈다. 그러나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합리적 시위문화가 축적되어 있었다. 양반·선비들은 상소(上疏)·구언(求言)·순문(詢問)·직계(直啓)라는 통로를 통해 임금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일반민중을 위한 언로도 다양했다. 왕이나 지방관리의 행차길에 뛰어들어 직소하는 규혼(叫昏). 대궐앞에 엎드려 호소하는 복합(伏閤). 집단으로 관청에 몰려가 청원하는 등장(等狀). 특히 원통한 일이 있을 때 왕이 거동하는 길가에서 꽹과리나 징을 치는 격쟁(擊錚)은 계몽군주 정조가 장려했던 제도였다. 이들 제도가 활발히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평화시위 정신은 연면히 내려왔다고 볼 수 있다. 근대적 의미의 시위는 19세기말 독립자강운동에서 시작됐다. 일제 치하의 3·1운동은 한국 민족주의를 세계에 알리는 시위였다. 독립·반외세 시위를 거쳐 정부 수립 후에는 자유·반독재 시위가 활발했다. 독립운동이나 민주화투쟁은 온건할 수 없었다. 목숨을 건 항쟁에서 준법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1990년대부터 민주화가 이뤄졌다. 시위목적이 평등·반독점쪽으로 옮아갔으나 양상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위대와 진압경찰 양쪽 모두 변화에 약했다. 최근 농민시위에서 과격시위와 과잉진압 논란이 일었고, 시위농민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린 홍콩에서 한국의 반(反)세계화 시위대가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다. 삼보일배, 바다 시위, 오리걸음 시위를 선보였고 주변청소와 함께 빼앗은 경찰 방패를 돌려줌으로써 “조직되어 있고,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지언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0% 이상이 한국 시위대를 호평했다. 근래 프랑스와 호주의 종교·인종 분규에서 보면 선진국 시위양태를 반드시 모범으로 보기 어렵다. 축제하듯 비폭력 원칙을 지키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방법에서 한국이 선도국이 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홍콩에서 한국 시위문화가 한단계 높아질 가능성을 본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WTO각료회의는 18일 끝난다. 폐막일 시위대 자살설이 나오기도 한다. 시위 참가자들은 막바지까지 준비한 행동강령을 지켜 참사가 없도록 해야 한다.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농민사망 진상조사 경찰청장에 직접권고

    경찰청 인권수호위원회(위원장 박경서)는 13일 농민집회 뒤 사망한 전용철씨 사건과 관련, 경찰의 과도한 시위진압에 우려를 표명하고 허준영 경찰청장에게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권고했다. 올 5월 발족한 인권수호위가 경찰관에 대한 제재를 직접 권고한 것은 처음이다. 위원회는 “전용철씨 사망과 올 7월 평택 미군기지 반대 집회에서 과잉진압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고 위법이나 부당행위가 있었다면 책임자의 사법조치 등 적절한 징계조치를 취하는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권고했다. 또 평택 집회에서 강경진압을 지시하는 발언을 했던 서울경찰청 기동단장을 엄정히 조사하고 징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이번 권고를 적극 수용해 철저한 조사를 실시, 그에 따른 조치를 내리겠다고 답변했다. 인권수호위는 경찰의 인권정책 수립과 인권침해 사례 조사·개선 대책을 권고하는 외부 자문기구로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 14명으로 구성됐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사설] 안타까운 농민들의 시위·분신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안이 지난 23일 국회를 통과한 시점을 전후해 농민들의 반대 시위가 전국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다. 화를 참지 못한 농민의 분신이 잇따르고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머리를 다친 농민은 엊그제 끝내 숨졌다. 이달 들어 농민 2명이 쌀 개방 반대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기도 했다. 과격 시위로 그동안 농민 100여명과 전·의경 22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는데도 사태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아 큰 걱정이다. 더구나 아까운 생명을 이렇듯 쉽게 내던지는 농민들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농민 시위가 하도 과격해서 경찰은 통제불능이라고 하소연할 정도라고 한다. 물론 경찰의 원천봉쇄와 과잉진압으로 불상사가 속출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극단적·폭력적 방법으로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특히 공권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자제돼야 마땅하다. 이런 와중에 일부 농민단체들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협박하고 정권퇴진 운동을 벼르는가 하면, 외국 쌀의 입항 저지와 수입쌀 창고 소각투쟁을 전개하겠다니 앞날이 더 걱정이다. 쌀시장 개방은 세계적 대세이며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농민들이 이성을 되찾아 정치권·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차분하게 대책을 논의해야 할 때다. 농업의 체질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 나가고, 농업인의 소득보전을 위해 궁리 중인 정부를 일단 믿어야 한다. 정치권도 농민의 표와 인기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이번에야말로 농민들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다. 농민들도 귀중한 생명을 잃거나 버리는, 무모한 행동을 당장 그만두기 바란다.
  • 집회참가 농민 ‘뇌출혈 사망’ 파문

    지난 15일 서울 농민집회에 참석했던 농민 전용철(44)씨가 24일 오전 외상에 의한 뇌출혈로 숨지면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사망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농민단체들은 전씨의 죽음을 ‘공권력에 의한 타살’로 규정하고 정권타도 운동과 연계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24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에 따르면 보령시 주교면지회장인 전씨는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농민집회에 참석했다 집회 도중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다. 다음날 전씨는 구토 증세를 보이며 집 앞에서 쓰러졌고 18일 충남대병원에서 두 차례 뇌수술을 받았다.6일간 병원치료를 받던 전씨는 24일 새벽부터 뇌출혈이 심해져 이날 오전 7시 결국 사망했다. 전농 충남도연맹 관계자는 “집회 당시 충남에서만 부상자가 60여명이 발생하는 등 경찰의 과잉진압이 있었고 전씨도 그 자리에서 부상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씨는 경찰의 집단 구타로 눈 부위에 피멍이 들었고 쓰러지기 전에도 계속 머리가 많이 아프다는 얘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위 도중 구타당해 뒤늦게 동료에게 발견된 전씨는 옷이 찢어져있었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횡설수설했다.”고 했다. 전씨를 담당한 충남대병원 의사는 “외상에 의한 뇌출혈로 판단된다.”면서 “병원 후송 당시부터 오른쪽 눈가에 멍이 들어 있었고 이 충격으로 뇌 안쪽에도 멍자국이 선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담당의사는 “초기 상처가 경찰 폭력에 의한 것인지는 의사로서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충남경찰청 관계자는 “뇌출혈의 원인이 농민집회와 직접 관련이 있는지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한편 이날 저녁 경찰이 전씨의 시신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음에 따라 전씨의 주검은 보령 아산병원으로 옮겨졌고 부검이 실시됐다. 부검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연구원과 인도주의실천의사회 소속 의사, 유족 등 4명이 참가했다. 부검 결과는 정밀조사 후 한달 뒤쯤 발표될 계획이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美경찰 총격 한인 부상자도 숨져

    |로스앤젤레스 연합|지난 1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알라메다 카운티 더블린의 자택에서 처남 이모(61)씨와 다투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총격을 받고 얼굴 등을 다친 김모(56)씨가 14일(현지시간) 끝내 숨졌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은 그동안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아오던 김씨가 이날 오후 9시30분쯤 사망했다고 경찰이 알려왔다고 밝혔다. 지난 5월 한국에서 건너온 이씨는 현장에서 바로 숨졌었다. 경찰은 사건 당시 이씨가 손에 칼을 쥐고 있었고 흉기를 내려 놓으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흉기를 놓지 않아 부득이하게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김씨의 부인 이모씨 등 유족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이라고 맞서고 있다. 특히 경찰측이 14일 숨진 두 사람이 모두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밝힌 가운데 유족들은 조만간 변호사를 선임, 법정 다툼을 벌일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 美경찰 과잉진압 논란

    미국에서 현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한국인 1명이 숨지고 또 다른 1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14일 “현지 시간 11일 자정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알라메다 카운티의 더블린에서 한국인 이모(61)씨가 현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고 같이 있던 김모(56·미 영주권자)씨가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김씨와 이씨는 처남·매부 지간으로 사건 당시 심하게 다퉜고 이웃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흉기를 들고 있는 이씨에게 정지 명령을 내렸으나 이에 불응하자 총격을 가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은 다음날 경찰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통보받고 즉시 현장에 부총영사를 파견해 상세한 경위 파악에 나섰다. 김씨 등 가족들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이같은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김수정기자cryst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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