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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4인방’을 아십니까/양필승 건국대 교수·차이나타운 건립위원장

    우리 언론이 심심치 않게 쓰는 용어가 ‘4인방’이다. 그 원조는 40년 전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1966∼1976년)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용어로, 실제로 1975년 정치국 회의 석상에서 마오쩌둥이 다시는 ‘방(幇)’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4인방 단어를 남용한다. 야구 고졸 루키 4인방, 토종미녀 4인방, 닭띠 CEO 4인방 등과 같이 무조건 4인의 조합을 가리킨다. 중국의 4인방은 마오의 처, 장칭을 필두로 상하이의 실력자 장춘차오, 문혁의 신델레라인 왕훙원, 그리고 문혁의 이론가 야오원위안 네 사람을 지칭했다. 이들은 마오주의를 추종했던 인물로서 모두 중국의 최고권력기구인 당정치국의 멤버였으며, 그 중 장과 왕은 9명에 불과한 상무위원으로 권력 최정상에 섰었다. 우선 야오는 1965년 상하이의 신문에서 희곡비평을 통해 마오의 반대파를 공격함으로써 문혁 촉발의 직접적 계기를 만들었다. 장칭은 마오의 개인적 권위를 이용해 홍위병을 진두지휘했다. 장춘차오는 4인방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인물로서, 문혁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상하이 코뮌’을 이끌었다. 마지막으로 왕훙원은 상하이의 노동자에서 단숨에 당 부주석의 자리에 올랐으며 당시 서른 여덟에 불과했다. 4인방의 권력은 모두 ‘마오쩌둥의 사람’이란 추상적 기반에서 비롯된다. 마오의 처, 장칭이야말로 그 같은 속성을 가장 적절히 드러냈다. 그들은 지도자로서 객관적인 능력을 배양할 시간도 없었고, 추종세력을 따로 구축할 필요도 없었다. 마오와의 코드만이 권력의 기반이었을 뿐이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들 사이의 연대를 조직화할 기회도 없었는데, 그 까닭은 마오와의 ‘관시’(관계)만이 자신들의 권력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이들 네 사람 사이의 정치적 비중은 훗날 4인방 재판의 결과에서 드러났는데, 장칭과 장춘차오는 사형, 왕은 무기징역, 그리고 야오는 징역 20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다들 감형을 받았으나, 장칭은 1991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같은 4인방의 급속한 몰락은 모두 문혁에 대한 중국인의 입장, 특히 마오시대를 청산한 덩샤오핑의 고민을 반영했다. 한마디로 문혁의 과오는 모두 4인방의 잘못으로 귀결짓고, 그를 주도했던 마오에게는 면죄부를 부여했던 것이다. 4인방 그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몰락에도 억울한 측면이 있었겠지만, 그들의 권력 자체가 너무나 왜소했다는 측면에서도 스스로 억울하게 느꼈을 듯하다. 왜냐하면 문혁 기간 중 실제 권력은 저우언라이를 중심으로 구축된 관료세력이나 린뱌오가 이끄는 군에게 있었고,4인방은 고작 문화계와 관영 언론을 장악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문혁을 주도할 힘도 없었고,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과 이념은 구체적인 정책에 의해 부인되거나 아예 무시됐다. 결국 ‘마오의 사람’들은 한번도 권력다운 권력을 휘둘러보지 못하고, 마오의 죄과를 몽땅 뒤집어쓰는 희생양으로 역사적 소명을 마쳤다. 그래서 중국 현대사에서 4인방이란 개념은 부정적이고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 언론이 4인방이란 개념을 얼마만큼 남용하는가는 그 자체로서 별 시빗거리가 될 수 없겠지만, 최소한 4인방이 함축하는 비극성만큼은 충분히 고려하고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중국의 4인방과 같은 비극이 여전히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능력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권력도 없으면서 스스로의 목소리만 높이고 끼리끼리 챙겨주다 나중에는 신념의 실패도, 정책의 실패도 아닌 채 우왕좌왕하다가 끝나고 말 한국판 4인방. 이제 우리도 4인방을 단순히 네 명이라는 숫자를 나타내는 도구로 쓸 것이 아니라 그 비극성을 충분히 담아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에 역사적 교훈이 자연스럽게 배어들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양필승 건국대 교수·차이나타운 건립위원장
  • [사설] 광복절에 한국민 모욕한 고이즈미

    어제는 한국민에게 특별한 기념일이었다.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이뤘던 기쁜 날이었다. 한국의 광복절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노골적 도발을 감행했다.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우리 정부는 깊은 실망과 분노를 표명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이를 넘어 한국민은 모욕감까지 느끼고 있다. 고이즈미는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강렬한 반발에도 불구, 취임 후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다.8·15가 아닌 다른 날, 개인 자격 참배를 내세워 비난의 예봉을 피해가려 했다. 이번에는 8·15를 택했고, 총리로서 공식참배의 모습을 강화했다.2차대전 중 저지른 만행의 책임, 특히 한국을 무단통치했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봐야 한다. 일본이 다시 군사대국으로 나아가 동북아 패권을 잡겠다는 의도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고이즈미는 새달 후임 일본 총리가 결정된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고이즈미의 헛된 야망이 깨지도록 남북한과 중국, 동남아 국가가 함께 나서야 한다. 고이즈미를 변화시킬 수 없다면 그를 고립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일본내의 양심세력과 연합해 고이즈미를 견제하고, 차기 일본 총리는 아시아 외교를 경시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다음 총리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도 올봄에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등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이즈미와는 달리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관측이다. 아베와의 소통채널을 강화해 그가 고이즈미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도록 설득해야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고이즈미를 아예 제쳐버리는 게 옳을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언급한 강도는 너무 약했다. 고이즈미의 오류를 더 강력하게 지적함으로써 후임 총리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편이 나았다고 본다.
  • [儒林속 한자이야기] (134) 反骨(반골)

    儒林(658)에는 ‘反骨’(뒤집을 반/뼈 골)이 나오는데,‘어떤 권력이나 권위에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氣骨(기골)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反’은 ‘오르다’가 본뜻이었으나 ‘반대로’‘거꾸로’ 같은 의미로 쓰이는 예가 많아지자, 본래의 뜻은 ‘攀’(반)자로 대신하였다.用例(용례)에는 ‘反對(반대:두 사물이 모양, 위치, 방향, 순서 따위에서 등지거나 서로 맞섬),如反掌(여반장:손바닥을 뒤집는 것 같다는 뜻으로, 일이 매우 쉬움을 이르는 말)’ 등이 있다. ‘骨’은 점칠 때 쓰이던 ‘소의 어깨뼈’를 본 뜬 글자인데, 원래 ‘月’(=肉)이 없었다.‘鷄卵有骨(계란유골:운수가 나쁜 사람은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나도 역시 일이 잘 안됨을 이르는 말),骨肉相爭(골육상쟁:가까운 혈족끼리 서로 싸움)’ 등에 쓰인다. 蜀(촉)나라의 위연(魏然)은 용감하고 智略(지략)이 뛰어났으나 자신을 過信(과신)하고 남을 깔보는 短點(단점)이 있었다. 유비(劉備)는 그를 장수로서의 능력을 인정하여 한중(漢中)의 太守(태수)로 임명하였다. 제갈량(諸葛亮)은 그의 목덜미에 거꾸로 솟아 있는 뼈를 보고 장차 謀叛(모반)을 꾀할 위험인물로 여겨 警戒(경계)하였다. 어느 날 위연은 머리에 뿔 2개가 거꾸로 솟아 있는 꿈을 꾸었다. 그는 이 꿈이 吉夢(길몽)이라는 조직(趙直)의 말을 근거로 모반을 꾀했으나 제갈량에 의해 鎭壓(진압)되고 말았다. 오늘날 ‘反骨’이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근성’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 것은 진수(陳壽)가 위연을 촉을 배신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인물로 평가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 광무제 때 낙양(洛陽) 縣令(현령) 동선(董宣)은 성품이 剛直(강직)하였다. 광무제의 누이인 호양공주의 종이 대낮에 사람을 죽이고 공주의 집에 숨었으나 逮捕(체포)할 수 없었다. 공주는 외출할 때면 그 종을 수레에 태우고 다녔다. 동선은 하문정을 지나던 공주의 수레를 멈추게 하였다. 조목조목 공주의 過誤(과오)를 열거하고 종을 꾸짖어 수레에서 끌어내어 현장에서 打殺(타살)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광무제는 震怒(진노)하여 동선을 잡아들여 채찍으로 쳐서 죽이려 하였다. 잡혀온 동선은 자신의 과오를 認定(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광무제의 穩當(온당)치 못한 處事(처사)를 꼬집었다. 그는 自殺(자살)을 허락해 달라며 강하게 머리를 기둥에 부딪쳤다. 광무제는 다시 공주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謝罪(사죄)토록 하였으나 끝내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공주는 더욱 화를 내며 즉각 處斷(처단)을 요구했다. 광무제는 오히려 그의 氣槪(기개)를 칭찬하며 30만전을 下賜(하사)하고 釋放(석방)하였다.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선생이 일본시찰단원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逸話(일화)이다. 시장 주최 晩餐(만찬)에서 시찰 所感(소감)을 묻자,“오늘 東洋(동양)에서 제일 큰 도쿄 병기창을 보니 과연 일본이 동양의 강국임을 확인하였소. 그런데 聖經(성경)말씀에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였으니, 그것이 걱정이외다.”라고 말했다. 당연히 同席(동석)했던 일본인들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열린세상] 문혁이란 수수께끼/양필승 건국대 교수·차이나타운 건립위원장

    길고도 긴 역사, 중국사에는 온갖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다 있다. 문화대혁명(문혁)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중국사의 미스터리다. 금년은 문혁이란 사건(1966년부터 1968년까지)이 발생한 때부터 40년, 문혁이란 기간이 종료된 1976년으로부터 30년이며, 뒤집어 말하면 마오쩌둥의 시대가 막을 내린 지 30년이 되는 해다. 역사는 늘 해석되는 것으로, 역사풀이의 방향을 장악하는 자가 권력도 갖고, 권력을 쥐어야 역사해석의 주도권을 잡는다. 이 같은 역사쓰기에 중국 공산당은 늘 발군의 능력을 보여 왔지만, 문혁에 대해서는 단지 1981년에 마오의 정세 판단 실패와 린뱌오·4인방의 정치적 야심의 합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린 채 더이상 언급이 없다. 문혁이란 역사의 수수께끼를 더욱 미궁에 빠뜨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도 문혁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흥미롭게도 문혁에 대한 시각 차이가 우리의 역사인식에 대한 진화를 그대로 반영했다.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에 영향을 받은 세대에게 문혁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그 이전의 세대에게는 ‘공산주의 발악’쯤으로 이해됐다. 그리고 이교수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는 월드컵 거리응원 정도의 이벤트로밖에 쳐 주지 않는다. 이렇듯 다양한 이해가 존재한 까닭은 문혁 자체가 아이러니와 역설로 가득 차고, 아예 수단과 목적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으며, 결과가 의도와 그토록 달랐던 모순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혁명 후 등장한 기득권층에 대한 공격은 관료기구 중에서 가장 위계질서가 뚜렷한 군의 권력 장악으로 끝났다. 문혁의 주체요, 수혜자로 설정됐던 농민은 문혁의 최대 피해자로 남았다. 문혁의 혼란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마오의 모순된 생각에서 비롯됐다. 문혁의 시작과 함께, 그는 홍위병에게 건설이 아닌 파괴를 지시하고, 계승이 아닌 거부를 훈령으로 내렸다. 미국의 마이즈너 교수가 지적한 대로, 문혁은 유토피아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이상하게도 (50년대 말의 대약진운동과 달리) 부정적인 유토피아주의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졌던 운동이며, 문혁의 지도자는 미래의 긍정적 비전보다는 과거의 짐에 더 많이 집착했다. 결국 마오에게 과거는 부정과 극복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그는 과거에 대한 추상적 비판을 토대로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설정함으로써, 수단과 목적이, 의도와 결과가 서로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배경에서, 덩샤오핑이 ‘실사구시’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문혁 종결의 작업에 나섰던 것이다. 그렇다면 문혁은 권력투쟁의 산물에 불과했을까? 홍위병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빨간 색의 마오 어록을 흔들며 열광했던 것은 단순한 대중조작 때문이었을까?마오의 과거 부정은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비전이 급속히 퇴색하고 있다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했고, 당시의 중국 대중 사이에서도 그같은 현실인식에 대한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점점 커가는 사회적 불평등, 새로운 관료 특권층의 형성 등은 실제로 혁명 성공 후 15년이 지난 사회주의 중국이 직면한 현실이었다. 한마디로, 사회주의 비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공포를 마오와 대중들은 공유하고 있었다. 불행히도, 지도자가 대중의 공포감을 해소하기 위해 제시한 것은 과거에 대한 비판과 거부였을 뿐 미래에 대한 긍정적 비전이 아니었다. 이렇듯 미래보다 과거에 집착한 마오가 저지른 ‘역사적 과오’란 대중을 속인 것이 아니라, 대중을 혼란과 절망 속에 빠뜨린 것에 불과했다. 말과 행동이, 의도와 결과가 뒤죽박죽인 모순투성이의 문혁은 ‘죽의 장막’ 밖에 살던 우리에게 더욱 수수께끼 덩어리였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온갖 상반된 견해가 속출했고, 이는 우리 사회의 세대간 역사인식 격차와 맞물려 문혁은 오랜 기간 미궁의 역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양필승 건국대 교수·차이나타운 건립위원장
  • 儒林(646)-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9)

    儒林(646)-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9)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9) “알겠습니다, 나으리. 두향 아씨께 전해 드리겠나이다.” 여삼이가 물동이를 걸망에 집어넣고 일어섰다. 퇴계는 웃으며 말하였다. “…그릇에 담아서 술이나 식초에 담아두면 언제까지라도 물맛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시게나.” “알겠습니다, 나으리. 쇤네는 이만 물러나겠나이다. 부디 옥체 만강하옵소서.” 서당을 나와서 한참을 걸어가던 여삼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서당 앞 우물 곁에 퇴계는 아직 서서 모퉁이를 돌아서려는 여삼에게 연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언제까지라도 물맛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직 동이 트기 전 몸소 여삼이를 문 밖까지 배웅하며 직접 두레박을 던져 정화수를 동이에 한가득 채워 두향이에게 보낸 퇴계. 그 이상의 정표가 있을 것인가. 열정(冽井). 퇴계가 도산 남쪽 기슭에 서당을 옮겨 짓기로 결심하였던 것도 바로 이 우물물 때문이 아니었던가.‘도산잡영’에서 퇴계는 ‘여기는 작은 골짜기가 있어 앞으로 산과 들을 굽어보고 있고, 골짜기 속은 깊숙하고 넓으며, 바위기슭이 선명하고 돌우물의 물이 달고 맑아서 머물러 살기에 아주 적당한 땅이다.’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돌우물의 물이 달고 맑다.(石井甘冽)’란 표현에서 퇴계가 직접 열정(冽井)이라 명명하였던 돌우물. 퇴계가 이 우물물에 심취하고 이 우물물을 만나 비로소 물의 참맛을 얻고, 또한 밭농사를 짓는 농부가 사용하던 우물 역시 자신을 알아주는 진인(眞人)을 얻었다는 상호교감의 심정은 퇴계가 지은 열정(冽井)이라는 시 속에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인 것이다. “서당의 남쪽 돌 우물물은 달고 맑네. 천년 오랜 세월을 산안개 속에 가라앉아 있었으니, 이제부터는 언제까지나 덮지 말게나.(書堂之南 石井甘冽 千古烟沈 從今勿幕) 돌 사이에 우물물이 너무 맑고 차가워서 저 홀로 있어도 어찌 내 마음 슬프겠는가. 세상으로부터 물러난 사람 여기 터 잡고 엎드려 사니, 한 바가지의 물로 샘과 내가 서로의 마음을 얻었네.(石間井冽寒 自在寧心惻 幽人爲卜居 一瓢眞相得)” 비교적 인생의 말년에 지은 퇴계의 이 시는 단순히 우물물을 예찬한 절구(絶句)는 아니다. 이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퇴계가 이 무렵 얼마나 역학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던가를 미루어 짐작케한다. 공자가 말년에 역을 좋아하여 주역을 읽는 사이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고 논어에서 ‘나에게 몇 년을 보태주어 오십세에 이를 때까지 주역을 공부할 수 있었다면 큰 과오가 없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한탄하였던 것처럼 퇴계 역시 항상 몸이 마르고 쇠약해지는 평생의 지병을 얻은 것도 이십세 때 이르러 주역을 읽고 그 뜻을 강구하기에 거의 침식을 잊을 정도로 몰두하였던 데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 [사회플러스] 뇌물수수 前부장판사 1년형

    부장판사로 근무할 당시 청탁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받은 변호사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인천지법 형사12부(김천수 부장판사)는 15일 부장판사로 근무하면서 브로커로부터 다른 법원의 재판에 관여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2500만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알선수재)로 구속기소된 변호사 A(49)씨에 대해 징역 1년에 추징금 2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법관으로서 다른 법관이 진행하는 사건에 대한 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은 행위는 엄격한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처지에서 있을 수 없는 과오”라고 밝혔다.
  • 고르비 “소련해체 후회”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이 소련 해체를 후회하자 중국이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홍콩의 친중국계 일간 문회보(文匯報)는 2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게재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인터뷰 기사를 인용, 그가 국가 해체뿐 아니라 신념의 붕괴라는 측면에서 중대한 과오를 시인했다고 전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중국에 대해 ‘민주화’를 용납치 말라는 충고와 더불어 소련 해체 과정에서 공산당이 영도력을 잃었던 부분에 대한 후회를 늘어놓았다. 소련 해체와 같은 사태를 가장 경계해온 중국이 국제사회와 국내 자유화 세력에 하고 싶었던 말을 고르바초프가 대신해준 셈이어서 중국 관영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내가 중국의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충고는 ‘민주화’와 관련된 어떤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민주화를 용납하면)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황을 혼란에 빠뜨려선 안되며 안정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고 주문했다.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와해에 대해서도 “개혁시기엔 국가와 개혁에 대한 당의 지도력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깊이 체득했다.”며 “우리의 비통한 실책을 통해 중국 친구들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의 전도사였던 고르바초프는 그동안의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에서 돌변해 “우리는 어떤 준비도 없이 사회를 완전히 개방하는 바람에 격심한 국제경쟁하에서 국내 공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고르바초프는 “빈곤층은 옛 소련 시기보다 훨씬 많아졌고 극소수만이 하룻밤 사이에 거부가 됐다.”면서 “중국 지도부가 동부 연안보다 발전 속도가 늦은 서부 및 동북지방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상황을 완전히 정확하게 짚은 것”이라고 평가했다.jj@seoul.co.kr
  • ‘참패 쇼크’ 與 진로 갈등

    ‘참패 쇼크’ 與 진로 갈등

    ‘5·31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악의 결과를 맞본 여권이 참패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1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긴급 소집하는 등 내부 수습과 전열 정비에 나섰지만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번 선거의 총사령탑인 정동영 의장은 이날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정 의장의 사퇴에 따른 후임 지도체제와 당 수습방안을 놓고 심각한 이견을 노출한 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서 ▲당규에 따른 김근태 최고위원 후임 의장 선출 ▲당 지도부 총사퇴 후 비상 대책위 구성 방안 등에 대해 격론을 벌였다. 후임 지도체제를 둘러싼 최고위원들 간의 이견은 ‘포스트 정동영’ 체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당내 노선·권력투쟁의 성격이 가미된 형국이다. 특히 향후 진로와 관련,‘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을 둘러싸고 계파간 대립과 분열이 조기에 종식되지 않을 경우 극심한 내홍에 빠져들 개연성이 적지 않다. 김두관 최고위원 등 친노그룹들은 호남을 중심으로 한 ‘서부 벨트 구축 전략’이 지역주의 회귀와 개혁 정체성 상실로 이어진다고 반발하고 있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고위원들이 난상토론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며 “오는 5일 오후 국회의원-중앙위원 연석회의를 열어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의 고위 관계자는 “후임 지도체제를 놓고 각 계파간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으며 김 최고위원의 의장직 승계가 현재로선 당 수습 차원에서 가장 현실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 의장은 전날 밤 김근태 최고위원을 단독으로 만나 의장직을 맡아줄 것을 권유한 데 이어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동의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내 친노·영남그룹의 김혁규 최고위원과 조배숙 최고위원은 “선거에 참패한 당의 지도부가 그대로 눌러 앉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과오”라며 “지도부 전원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즉각 반발하는 등 내홍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병완 비서실장으로부터 선거결과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추진해온 정책과제를 충실히 최선을 다해 이행하겠다.”고 밝혔다고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그럼에도 열린우리당에서는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도부 총사퇴와 근본적인 당의 변화를 위한 비상대책위 구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진통이 계속될 전망이다. 수도권, 광주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 지도부에 위기 타개책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어 ‘선거 문책론’과 당 쇄신 방안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의 경우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12곳에서 압승했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의 초강세가 이어져 서울 25개 구청장 선거를 석권하는 등 230개 선거구 가운데 155곳(67.4%)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는 지난 2002년 지방선거 당시 기초단체장 232곳 중 140곳에서 승리해 60.3%의 점유율을 얻은 최고 기록을 또다시 경신한 사상 최고의 성적이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사설] 獨출신 교황의 아우슈비츠 참회

    독일 출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엊그제 독일 나치정권에 의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가 자행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한 것은 진정한 사과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무려 150만명의 유대인이 아무런 이유없이 학살당한 그 현장에서 베네딕토 16세는 “기독교도로서, 독일 출신의 교황으로서 이곳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특별히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참회했다. 교황의 아우슈비츠 방문은 1979년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두번째이지만, 독일 출신으로 그것도 젊은 시절 나치의 청년조직인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었던 베네딕토 16세가 이곳을 찾았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홀로코스트는 20세기 최대의 대학살로 꼽힌다. 오죽하면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11개국이 홀로코스트를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행위를 형사범죄로 규정하고 있겠는가. 추악한 과거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과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황이 “진실과 정의, 그리고 희생당한 모든 이들을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나의 의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일제 36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징용으로, 정신대로 끌려가 희생당한 우리의 참담했던 과거는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참회를 받아냈는가.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일관하는 일본이 최근에는 한술 더 떠 독도문제까지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은 이제라도 사과의 진정성을 위한 첫걸음을 제대로 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한 지도자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본다.
  • 윤증현 금감위원장 “기업 경영과오 자기정화기능 갖춰야”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6일 충남 도고 한국증권연수원에서 열린 ‘재무관련 5개 학회 공동 학술대회’에서 “기업이 경영상 과오를 스스로 시정할 줄 아는 자기정화 기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일부 대기업의 경영 행태가 드러나면서 기업의 투명성에 의문을 갖는 투자자가 많다.”면서 “내년부터는 집단소송제에 노출되기 때문에 기업들 스스로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 [中 문화대혁명 40주년] 사회부조리가 부른 마오의 부활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당신의 검색어는 관련 법률에 위배될 수 있습니다.’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라는 단어에 대한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 바이두(百度)의 반응이다. 문혁에 대한 호기심이 여전히 법률로 제한돼 있다는 얘기다. 아예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다.’는 안내어가 뜨는 곳도 많다. 신화사 등 주요 언론사 홈페이지나 다른 포털 사이트도 마찬가지다.16일로 발발 40주년을 맞는, 문화대혁명의 현주소다. ●16일 40주년… 기념식·정치행사 없어 올해 문혁과 관련, 국가차원의 특별한 기념식이나 정치행사가 준비된 것은 없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도 올 초 전국인민대표대회 등에서 공산당의 역사를 말하면서도 문혁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물론 어떤 움직임조차 없는 건 아니다. 문혁을 재조명하자는 주장도, 간헐적이나마 끊임이 없다. 대문호 바진(巴金)을 비롯,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비서를 지낸 리루이(李銳) 전 공산당 조직부 부부장 등이 대표적이다.“마오는 위대했으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해 문혁과 같은 참상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게 주장의 실질적 핵심이다. 이같은 ‘전통적인’ 문혁 재조명론 외에 양극화 문제 등 일련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제2의 문혁론’ 등 문혁 재조명론의 이유도 양분돼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한 주요인사는 최근 한 사석에서 “저마다 나름대로의 잣대가 있다.”는 표현으로 공식적인 문혁의 재조명 가능성을 일축했다. 평가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시각이 있지만, 그것과 재조명과는 별개의 일이란 얘기다. 그는 “지금 문혁을 드러내놓고 떠들어봐야 중국 사회에 득 될 게 없다는 사실에 지도부와 지식인 사회에서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혁 재조명은 중국이 전면적 발전단계에 진입하는 202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면서 “경제의 성장 정도가 그 여부를 가름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의 부패·빈부격차에 불만 팽배 이런 가운데 정작 문혁의 주역 마오쩌둥 전 주석은 이미 문혁의 ‘어두운 그림자’을 떨쳐냈다는 데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건국 이후 역사 문제에 관한 약간의 결의’(1981)를 통해 “마오 전 주석이 오류를 저질렀으되, 공과(功過) 비율은 7대3”이라는 ‘체면치레’ 평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와 관련, 중국의 한 전직 언론인은 “90년대 중·후반부터 ‘차라리 그 때가 좋았다.’며 마오를 추억하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당의 부패, 빈부 격차, 사회적 불평등에 따른 불만이 마오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며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외신들은 “급격한 변화에 따른 사회적 역기능이 심화될수록 옛날에 대한 향수와 동경은 더 깊어간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른바 ‘신좌파 지식인’의 문혁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는 이런 분위기와 맞물린 것이다. ●“지도부 실질적 재산공개하라” 베이징의 한 주요 대학에 재직중인 A교수는 마오 신드롬의 한 요인을 ‘솔선수범’에서 찾아냈다.“마오는 전쟁터에 아들을 보냈고 그 아들은 죽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의 지도층의 자제는 모두 외국에 나가 있거나 유학에서 돌아와 떼돈을 벌고 있다. 마오 이후의 당과 지도부는 솔선수범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질적 재산 공개 없이 현 지도부와 당은 결단코 마오 시대와 같은 신망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 지식인도 있었다. 그는 “법에 따라 재산신고를 할 때 어느 성(省)의 성장(省長)은 비서가 월급봉투에 적힌 액수만을 적어낼 뿐 예금이나 부동산 등은 숨기고 있다.”고 지적하면서,“그나마 국가 최고 지도자급은 그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어떤 이들은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4세대 지도부가 반부패를 강조하고 ‘팔영팔치(八榮八恥)’ 등을 선전하는 배경을 이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 중국 사회가 다시 문혁을 들춰낼 기미는,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마오에게만 조용히 손짓만 하고 있을 뿐이다.‘사회 부조리’는 마오를 부르는 주문(呪文)인 셈이다. jj@seoul.co.kr ■ 성장이냐 분배냐 中 지도부 딜레마 |베이징 이지운특파원|‘가난이 걱정이 아니고 균등치 못한 게 근심이다.’(不患貧而患不均) 중국에서 평등 의식을 제고시키며 마오쩌둥을 불러내고 있는 논어(論語)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동시에 인터넷 토론방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중국 사회 전체에 ‘효율과 균형(또는 공평)’, 즉 ‘성장과 분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화두이기도 하다. 나아가 ‘물질재부가 적은 게 두려운 게 아니고 분배가 고르지 못한 게 두렵다.’(不物質材富少,而是分配不均)는 말은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사회 문제를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네티즌들의 사회 진단은 ‘분배 불공평’(分配不公平)으로 집약되고 있다. 이같은 사회 분위기를 감안, 일각에서는 “후진타오 정권은 분배를 선택한 마오쩌둥의 정책 노선을 택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2006∼2010 5개년 경제규획 등에서 성장 일변도 경제 정책을 조정한 데 대해 “중국이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며 좌파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도 곁들인다. ●‘부의 획득 단계, 우파 논리 그대로’ 그러나 당의 동향에 밝은 전문가들은 이런 분석을 일축한다. 이들은 “현 정권은 마오쩌둥식 분배 정책을 실현할 수도 없을 뿐더러, 절대 그런 식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권력 핵심부 및 싱크탱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효율과 균형’ 논의는 사회 일반에서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균형, 즉 분배에 관한 논의가 사회 일반에서는 뭉뚱그려져 있으나, 당 내부에서는 세분화돼 있다. 즉 ‘생산과정 또는 부의 획득 과정’에서는 여전히 효율이 중시돼야 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분배 여력 많지 않아’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남은 ‘균형(분배)’은 교육, 의료 등에 있어 기회의 평등이다. 나아가 엄청난 부를 축적중인 기업 등의 사회기부나 각종 기금 조성, 공적부조를 통한 분배도 거론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당 또는 정부가 균형, 분배에 역량을 쏟더라도 실질적인 분배 효과를 내기에는 여력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농민·저소득층의 제반 문제를 ‘혜택’으로 해결하기에는 재정이 감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기부나 각종 기금 등이 보조 역할을 해야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의식이 현저하게 낮은 중국에서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혹 부의 획득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면 ‘부패 및 각종 경제범죄 척결’을 통한 간접적인 ‘기회 조정’ 방식 정도가 꼽힌다. 그러나 이마저도 뿌리깊은 관행을 뽑아내기엔 갈 길이 멀다. 중국 싱크탱크 집단의 한 전문가는 “지금의 사회 갈등과 문제점들은, 교육·의료·양로 등 모두 국가가 책임져 오던 것들이 시장경제 도입 이후 개인 부담으로 전가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면서 그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고충을 토로했다. 시대가 마오를 찾으나 마오로도 시대를 아우르기 쉽지 않은, 문혁 40주년 중국의 현실이다. jj@seoul.co.kr ■ 아직도 금지단어?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츠부바오(吃不飽).´ ‘그 시절´에 대한 물음에 돌아오는 가장 일반적인 답변은,“배부르게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립적이되 다소의 ‘판단´이 가미된 이 표현은, 중국 사회가 문혁에 대해 암묵적으로 내리고 있는 대체적인 ‘평가’다. 지식인, 예술인 그룹을 중심으로는 “전통이 사라졌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답변이다.“한국은 전통을 잘 유지했다….”는 부러움도 종종 접할 수 있다.“한류(韓流)의 배경에는 ‘전통’에 대한 동경이 깔려 있다.”고 평하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다. 중년의 교수부터 유력 언론사의 중견 간부, 택시기사에까지 어려서라도 그 시절을 경험한 이들의 답변은 의외로 담담해 보인다. 답변도 길지 않다. 물론 ‘문혁’은 묻지도 못하고,‘어려웠던 당시’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물었을 때의 얘기다. 가까운 사이에서라면 간혹, 억눌린 시절에 대한 울분을 들을 수도 있다.“문혁은 정치 투쟁의 산물일 뿐이며 당과 국가에 의해 명백히 과오로 인정된 일 아니냐.”는 단정적인 반응도 접하게 된다. 젊은이들에게서라면 확실히 국수적인 태도를 확인할 때가 많다. 베이징 모 대학의 한 4학년생은 “결과적으로 당과 사회의 모순을 한번에 들춰내 개혁·개방을 가속화하는 순작용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한껏 긍정론을 폈다. 칭화대(淸華大)의 한 중견교수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같은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많다.”며 또 다른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유력 방송사의 30대 초반의 PD는 사회 금기에 대한 외국기자의 호기심이 못마땅한 듯,“도대체 뭘 알고 싶은 게냐, 서점에 가면 책도 많은데…”라는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한 3학년 여대생의 대답 역시 젊은 부류의 또 다른 반응이다. 한편 많은 중국인들은 문혁이란 단어가 인터넷 사이트에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아직도 금지 단어냐?”는 반응인 셈이다. jj@seoul.co.kr
  • 외환은행 매각 내부갈등 심화

    외환은행 부장 및 지점장(부점장)들이 8일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고 나서 국민은행으로의 재매각과 관련해 내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점장급 이상인 부점장들이 경영진 퇴진을 요구한 것은 은행권에서 처음이다. 부점장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현 경영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내고 “지금 외환은행이 겪고 있는 위기는 재난에 가깝다.”면서 “론스타에 의해 고용된 경영진은 조직의 퇴조를 새로운 기회로 호도하고, 위기 극복을 지향하는 직원들의 단결에 대해 조직을 해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피합병 기정 사실화로 론스타의 이익 대변과 관리자 의무 해태 ▲과거 경영상태 폄하로 대외 의미지 실추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 진행중에도 조기매각 종용 등을 경영진의 과오로 꼽았다. 외환은행 노동조합도 성명을 통해 “부점장들의 경영진 퇴임 요구는 전적으로 현 경영진에 책임이 있으며, 부점장들이 불이익을 받을 경우 즉각 전면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열린세상] KBS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KBS 강 모 감사는 지난 4일 고려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김대업 사건과 대통령 탄핵 사건 보도 등을 예로 들면서 KBS가 ‘정권과의 특수 관계로 인해’ 부적절한 보도를 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KBS가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업씨 관련 보도를 ‘9시 뉴스’에서 80번이나 다뤄 국민들로 하여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하는 의문을 갖게 했으며,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의결 관련 보도에 있어서는 탄핵 반대 여론이 7대 3으로 우세했다 하더라도 공영방송은 5대 5로 방송해야 하는데 9.9대 0.1로 편파 방송을 했다는 것이다. 강의를 들은 어느 학생은 나에게 “KBS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영이라지만 국영이나 진배없는 KBS의 간부가 공개 강의를 통해 KBS와 정권과의 ‘특수 관계’를 털어놓는 것을 보고,“저토록 자기성찰에 충실한 임원이 있는 한 방송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저 방송사의 미래는 밝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재시대 같으면 강 감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어느 어두운 골방에서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그런 위협이 없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해 우리는 또한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 강 감사의 지적은 대체로 옳다. 탄핵방송의 찬반 보도 비율을 5대 5로 해야 할지 당시 여론을 감안해 3대 7로 해야 할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거나 KBS가 9.9 대 0.1로 했다면 그건 공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불공정 보도에 대해서는 방송사 노조가 먼저 문제를 제기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노조는 구차한 논리로 편파 방송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노조가 대로를 걷지 않은데 반해 늦게나마 감사가 공개적으로 자기반성을 한 것은 평가할 일이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잘못에서 교훈을 얻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런 원칙은 미국의 권위 있는 언론이 웅변으로 입증한다. 최근의 일이지만, 뉴욕타임스는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에 관해 백악관에서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다 기밀누설 사건까지 유발한 주디스 밀러의 취재보도 과정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여 선배인 거물 기자로 하여금 언론계를 떠나게 했다.CBS는 2004년 인기프로 ‘60분’에서 대통령후보 부시가 국민방위군 복무를 불성실하게 했다고 폭로했다가 문제가 되자, 검찰총장을 지낸 딕 손버그 등을 패널로 선정해 검찰수사에 가까운 자체 조사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결국 CBS는 선임 부사장과 편성 책임자 두 명을 직위 해제하고 담당 PD를 해고했다. 사실을 호도하기보다 냉혹한 성찰의 칼을 들이댐으로써 두 언론사는 더 없는 신뢰를 쌓는데 성공했다. 두 언론사의 이런 조치가 평기자나 평PD들의 압박에 의해 이루어진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떤 언론사의 자기성찰은 다른 언론사로 파급될 때 그 가치가 배가(倍加)한다.CBS의 조치가 뉴욕타임스의 조치로 이어지게 한 미국의 언론계 분위기는 그래서 부러워할 만하다. 그런 예를 본받는다면,KBS 감사가 KBS의 과오를 토로하면 다른 언론사에서 활발한 자문(自問)이 제기되어야 한다. 우리 사는 매사를 공정하게 보도했는가? 우리 사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말해도 될 만큼 회사 분위기가 열려 있는가? 내부적으로 비판적 커뮤니케이션은 활발한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바는 이밖에도 많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강 감사의 강의 내용이 알려지자 자문은 외면하고 KBS의 오류에 대해서만 열을 올려 비난했다. 누군가가 제 눈의 티를 말하면 나도 거울을 들어 내 눈을 살펴야 한다. 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 “뭐, 아버지…” 성폭행으로 붙잡힌 30대 남성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양녀라고 해도 그런데 친딸을 어떻게 성폭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만도 못한 ×이지” 중국 대륙에 30대의 한 남성이 자신의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붙잡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중국 동남부 안후이(安徽)성 페이시(肥西)현에 가오뎬(高店)향 살고 있는 30대 후반의 중년 남성이 자신의 친딸을 2차례에 걸쳐 성폭한 혐의로 붙잡혀 주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고 있다고 안휘시장보(安徽市場報)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희대의 파렴치 사건’의 장본인은 올해 37살의 량(梁)모씨.그것도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아내와 두딸이 둔 엄연한 가장이다. 성폭행 사건은 지난해 8월 하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인 어느날,집에는 중학교에 다니는 14살짜리 큰 딸만 지키고 있었다. 짐승으로 돌변한 량은 이때를 놓칠 세라 몰래 살금살금 딸의 방안으로 들어갔다.당시 딸은 아버지가 들어오는 것도 모른 채 책상에 앉아 온통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방에 들어간 그는 딸의 뒤에서 껴안고는 곧바로 침대에 눕힌 뒤 몸을 만지는 등 성폭행을 자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량의 ‘필생의 거사’는 성공하지 못했다.큰 딸이 심하게 반항하고 마침 귀가한 둘째 딸이 이를 보고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결국 미수에 그쳤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그가 아니었다.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량은 며칠 후,큰 딸이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알고 문을 열어주는 틈을 타 성폭행을 자행했다.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리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비밀은 없었다.충격을 받고 집을 나갔던 큰 딸이 나중에 공안(경찰)기관에 붙잡혔을 때 아버지의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결국 량씨가 붙잡혔다. 그는 경찰서에서 “나는 개돼지보다도 못한 놈”이라며 “나의 지나간 과오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의 눈물은 가식으로 가득찬 ‘악어의 눈물’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한 큰 딸이 공안에 가서 아버지의 성폭행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자,감옥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가 성폭행한 사실을 완전히 번복한 탓이다. 페이시법원은 그러나 량의 범죄가 사회 악영향을 끼치는 죄질이 워낙 나쁜 점을 감안,보충 증거를 확보해 그에게 ‘겨우’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5) 소유에서 존재로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5) 소유에서 존재로

    지금까지 독자들은 이 연재를 통하여 소유와 존재라는 낱말을 여러 번 보았을 것이다. 이 두 낱말의 의미는 이 연재를 관통하는 핵심적 철학용어 중의 하나인데, 소유라는 개념은 쉽게 와닿지만, 존재라는 낱말은 다소 어려운 의미로 여겨졌을 것이다. 더구나 존재론적 사유라고 하면 더 아득해서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 그런 말이겠다. 실제로 존재와 존재론적 사유는 쉽게 파악이 안 되는 그런 용어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존재의 의미를 살펴보자. 우리는 인생이 있다는 것을 안다. 또 죽음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내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막상 인생과 죽음과 내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그것들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정의하기가 어려워진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지식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안다. 그런데 그것들을 내가 소유하려고 하며 또 소유할 수도 있다. 내가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것들을 남들에게 자랑삼아 으쓱대면서 제시하거나 전시할 것이다. 물론 제시나 전시하는 방법이 가지각색일 수 있다. 그런데 인생과 죽음과 나를 물으면, 나는 그것들을 남들에게 소유물로서 제시하거나 전시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나의 소유물일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소유는 인생의 존재를 딛고 서서, 그리고 나를 근거로 삼아서, 죽음의 이전에서만 가능하다. 죽음은 인생에서의 모든 소유의 한계를 뜻한다. 죽음의 너머로 인간은 이승의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다. 모든 소유를 다 버리고 인간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야 한다. 죽음은 소유의 무상함을 철저히 가르쳐 준다. 죽음은 존재하나 그 누구도 죽음을 소유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죽음은 소유의 탐욕을 철저히 고쳐줄 수 있는 존재의 약이기도 하다. 소유는 미술전시회처럼 전시가능한 것, 제시가능한 것을 일컫는다. 또 소유는 명사처럼 분명히 구획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구획짓기가 불가능한 모호한 것은 소유의 싸움을 일으킨다. 돈의 구획이 불분명하고, 권력과 명예가 선명하게 그어지지 않으면, 사람들 사이에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분쟁이 일어난다. 지식과 도덕도 소유의 영역에 속한다. 지식도 인간이 배워서 소유한 능력이고, 도덕도 사회생활에서 인간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공공(公共)의 원리가 되기를 사람들이 원한다. 이 말은 사회생활에서 사람들이 도덕을 공통으로 소유하여 그 힘이 지배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인생이나 나와 죽음 등은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나 나는 소유를 가능케 하는 근거가 되고, 죽음은 소유를 불가능하게 하는 한계상황이다. 철학에서 이런 것을 존재라고 명명한다. 인생이나 내가 있기에 소유가 가능해진다. 인생과 내가 없다면, 무엇 때문에 소유하려고 그렇게 안간힘을 쓸 것인가? 그러나 인생과 나의 구획은 명확하지 않고 대단히 모호하다. 내 인생의 폭과 반경이 얼마나 될는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나 자의식을 갖고 있으나, 그 자아의 경계가 얼마인지 상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자아는 넓게는 하늘의 허공만큼 광대할 수 있고, 작게는 바늘구멍만큼 미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존재는 구획불가능하고, 그 경계가 모호하다. 또 존재는 전시되거나 제시될 수 없다. 인생과 자아를 전시하거나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내 인생을 보여달라고 하면, 나는 비밀창고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처럼 그것을 전시하거나 제시할 수 없으므로 그냥 있는 그대로 나의 인생을 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방편을 우리는 현시나 계시라고 부른다. 소유는 전시(展示)나 제시(提示)가 가능하지만, 존재는 오직 현시(現示)하거나 계시(啓示)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소유와 존재의 두 번째 차이다. 모든 소유는 대상화가 가능하다. 대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객관화가 가능하다는 것과 같다. 대상화가 가능하기에 내가 그것을 취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빼앗길 수 있다. 그러나 존재는 그런 대상화가 불가능하다. 인생과 나라는 것은 모든 대상화를 가능케 해주는 근거이지 스스로 대상화가 안 된다. 나의 인생을 대상화해도 그것을 다시 대상화하는 다른 나 자신이 뒤로 물러나 있기에 결국 나의 인생은 대상화가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소유는 형이하학적인 물질의 영역에서 기술의 대상이거나 경제적 영역으로서 상품가치를 지닌다. 또 다른 한편으로 소유는 형이상학적 정신의 영역에서 사회생활을 혼란과 무질서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이 소유해야 할 정신적·도덕적 가치로서 제시될 수도 있다. 이처럼 소유는 가치와 동격의 의미를 지닌다. 가치가 없는 것을 사람들은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려는 사상은 결국 인생에서 비싼 소유를 많이 지닐수록 더 값나가는 이치와 같다 하겠다(9회 글). 결국 나의 인생은 가치를 소유하게끔 해주는 근거의 역할을 하지, 그 자체가 가치로 매겨지지 않는다. 존재는 명사적 개념으로 쉽게 구획되지 않고 모호하며, 오직 사실을 사실 그대로 현시하거나 계시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고, 또 대상화가 안 되고, 경제기술적 가치나 도덕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에 대단히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본질을 지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존재는 자의식처럼 나의 존재를 근거로 하여 소유가 생기게 되는 그런 근거와 같다고 언급되었다. 즉 존재는 소유의 근거와 같지만, 존재 자체는 철저히 비소유적이다. 그런데 ‘나’나 또는 ‘우리’라는 자의식이 강렬하면 할수록, 소유는 그런 자의식의 강도에 비례하여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유의식이 두드러지게 대두되는 이유는 경제성과 도덕성에 있다. 즉 경제성은 자아의 이기심이 좋아하는 이익과 연관되어 있고, 도덕성은 공동체적 우리의식의 공공적 정의가 옳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소유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있다. 경제적 자아의식이든 도덕적 공동체의식이든 다 예리한 자의식활동을 전제한다. 그런 점에서 소유의 가치론인 경제기술학과 사회도덕학은 다 의식의 철학에 바탕하고 있다(2회 글). 오랜 세월동안 인간은 가치를 만들고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는 요청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경제성과 도덕성의 가치창조에 몰입되어 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장사상과 불교사상에서 가치창조를 넘어서는 무위법을 말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인간의 현실세상에 맞지 않는 둔세적 사유라고 하여 개인의 사적 공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과거의 서양철학에서도 존재론이라는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은 철학적으로 존재(Being)를 존재자(beings)로 오독한 철학의 과오라고 지적한 이가 바로 독일의 하이데거다. 과거의 전통 철학은 존재를 존재자로 잘못 읽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음으로 사람들은 그것을 존재자로 해석했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소론이다. 존재자는 존재를 명사적 개념으로 구획가능한 어떤 형이상학적 대상으로 취급하여,‘신이 존재한다.’,‘사람이 존재한다.’,‘산과 구름이 존재한다.’에서와 같이 주어의 명사들이 바로 ‘존재하다’라는 동사의 개념적 주체와 같은 것으로 보는 그런 철학이 재래의 존재론이다. 이런 철학을 하이데거는 존재자적(ontic)인 사고방식의 철학으로 여겨 존재론적(ontological) 사유와 엄격히 구분했다. 엄밀히 말하여 존재자적인 사고의 철학은 존재론이 아니고 소유론인 셈이다. 왜냐하면 존재자학은 의식이 써먹으려는 소유적 가치의 관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하이데거는 포착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론적 사유를 주장하는가? 인생과 세상은 인간이 능위적으로 창조한 경제기술적 가치와 사회도덕적 가치로 황폐화되었고, 따라서 인간의 마음도 그 가치들에 의하여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으로 둘러싸여 세상을 여여하게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하는 편견으로 꽉 찬 것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아집에 먹힌 경제기술적 가치는 탐욕을 부르고, 법집의 분노에 젖은 사회도덕적 가치는 독선의 독기를 세상에 뿌린다. 존재론적 사유는 ‘신/사람/산/구름’ 등의 구분없이 일체의 존재를 명사적 개념으로 보지 않고,‘존재하다.’의 동사적 방식으로서 읽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들의 존재방식은 서로 연계되어 연기법적으로 얽혀 있어서 우주가 모두 한 몸임을 알게되고, 신약(마태복음 6:25-33)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공중의 새와 들에 핀 백합화’처럼 무위적으로 먹이를 먹고 옷을 입는 사실을 대우주의 필연적 존재방식의 선물로서 깨닫게 되리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새와 백합화에게도 그런 존재의 선물을 주는데, 하물며 지혜를 가진 인간에게 어찌 존재하기에 필요한 경제와 도덕의 선물을 주지 않겠는가?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이것은 이상주의적 공상이 아니다. 이상주의는 이성이 꾸미는 꿈이다. 이것은 그런 꿈이 아니다. 이것은 존재하는 필연법(하느님)의 사실이다. 자연은 필요한 것을 다 보시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이기도 하다. 자연은 인간이 돈의 탐욕으로 환장하거나 정의의 분노로 흥분하지 않으면, 자리이타하는 본성을 준다. 이것이 또한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자연적으로 행하는 일이겠다. 존재론적 사유는 인간의 의식이 잘난 체하지 않고 고요히 쉬면, 깊은 마음에서 본성(本性)과 신성(神性)이 다 함께 공명하는 경제성과 도덕성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존재론적 사유는 인간도 공중의 새와 들에 핀 백합화처럼 그렇게 살기를 기약하는 지혜닦기에 다름 아니다.14세기 독일의 가톨릭 수도사인 에카르트는 예수가 그리스도의 길을 보여준 하나의 큰 활용이고, 인간 모두가 다 작은 그리스도라고 언명했다. 석가모니가 용대(用大)로 마음의 활용법을 크게 가르쳐 준 화신불(化身佛)이라고 인도 고승 아슈바고샤(1세기)가 말했듯이(11회 글), 예수 그리스도도 인간에게 그리스도가 되는 마음의 활용법을 보여주기 위해서 육화(肉化)하였다는 것이 에카르트의 가르침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씨줄날줄] ‘행복하세요’/이용원 논설위원

    ”행복하세요?” 2006년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웃에게 이같은 질문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은커녕 불행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투로 인상 찌푸리고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스스로 행복을 누리며 남들에게도 행복을 전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분이 지난해 4월2일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를 인류사에 길이 기억될 교황이라고들 합니다. 그는 즉위한 이듬해에 고향인 폴란드를 전격 방문, 대지에 입맞춤했습니다. 이교도와의 화해에도 결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또 가톨릭 교회의 해묵은 과오를 솔직히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종교·이념·인종의 틀에서 벗어나 사랑과 화해·평화를 이야기했기에,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라는 자리를 뛰어넘는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존경받게 되었습니다. 지난 2일 선종 1주기를 맞아 세계는 다시 한번 요한 바오로 2세의 인간사랑을 되새겼습니다. 그의 생명사랑과 행복·평화의 정신을 보여주는 사진전,‘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가 오늘부터 16일까지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서울갤러리에서 열립니다. 전시회에는 교황이 방한했을 당시를 비롯한 생전의 활동, 선종후 고향인 폴란드 작은 마을의 주민들이 추모하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 40여점이 선보입니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한국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현장을 발로 뛰어 만든 것들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더불어 20세기를 사랑으로 수놓은 테레사 수녀가 인도·캄보디아 등지에서 벌인 봉사활동도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1993년 조계종 종정인 성철 스님이 열반에 들었을 때 우리사회는 그분이 생전에 남긴 법어를 되새기며 마음 깊이 추모했습니다. 종교에 상관없이 그분을 따를 수 있었던 건 큰 가르침이란 누구에게나 통하는 진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물이 새 생명을 싹틔우는 이 계절, 요한 바오로 2세가 주는 축복의 말씀인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가 더욱 가슴에 와닿습니다. 행복은 결국 스스로가 찾는 것일 테니까요.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교통카드 싸움 ‘등 터진 시민’

    교통카드 싸움 ‘등 터진 시민’

    삼성카드와 신한카드가 지난 29일 한국스마트카드(KSCC)와 수도권 후불교통카드 재계약 협상을 타결함에 따라 시민을 볼모로 잡고 벌이던 ‘제로섬 게임’은 일단락됐고, 교통카드 대란도 일단은 피하게 됐다. 그러나 이번 교통카드 수수료 인상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신용카드사들의 반목이 깊어지는 등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삼성과 신한측은 이번 협상에서 서울시가 마련한 중재안 수준에서 합의하기로 했다. 서울시 중재안의 수수료는 ‘사용액의 0.5%+장당 1500원’ 또는 ‘1.0%+1000원’이었다. 두 카드사는 개별 협상 사안이어서 구체적인 타결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하지만 카드업계는 ‘1.3%+700원’ 수준에서 타결된 것으로 본다. 그동안 카드사는 버스운송조합과 철도청, 서울메트로 등으로부터 교통카드 사용액의 1.5%를 수수료로 받아 0.5%를 교통카드사업자인 KSCC측에 제공해 왔다. 사용액 0.1%를 장당으로 계산하면 100원 정도여서 결국 카드사들은 종전보다 4배 비싼 수수료를 KSCC에 내게 됐다. 인상된 수수료 1.3%는 카드사가 부담한다손 치더라도 ‘+700원’ 부분은 결국 소비자의 몫이라는 게 카드업계의 전망이다. 현재 카드사들은 고객들로부터 교통카드 기능이 탑재된 카드를 발급하더라도 별도의 수수료를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기본 연회비에다 교통카드 수수료 700원을 더 부과시킨다는 것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서울시가 조정안을 마련할 때부터 카드사들은 ‘+α’는 연회비 추가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이를 연회비에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교통카드 기능을 탑재하는 고객에게만 혜택을 주는 결과를 초래해 탑재하지 않는 고객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과 신한측은 “아직 고객에게 부담시킬지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삼성과 신한 이외의 카드사들은 이번 협상을 ‘백기투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교통카드 운영을 잘못한 KSCC측의 과오나 적자 원인 등을 따져보지도 못한 채 시민을 볼모로 한다는 여론에 밀려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중재안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 가맹점의 평균 수수료는 2.0∼2.5%로, 교통카드를 통해 발생했던 기존 수수료 수입 1%(1.5-0.5%)도 ‘역마진’이었는데 기존 비용의 4배를 KSCC에 갖다주면 경영상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오는 6월 협상 예정인 비씨,LG,KB카드 등은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미리 신규 및 재발급을 중단해 왔지만 결국 이번 타결로 발급을 재개할 수밖에 없고, 이후 협상에서도 삼성과 신한 수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만일 특정 카드사가 끝까지 KSCC측의 조건을 거절할 경우 “삼성과 신한은 교통카드를 발급해 주는데 당신들은 왜 발급해 주지 않느냐.”는 민원을 감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에서 카드사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어 KSCC를 압박하려 했던 여신협회도 “할 말이 없다.”며 불쾌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나 삼성과 신한측은 “다른 카드사들은 그나마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지만 우리는 당장 4월1일부터 기존 고객들의 교통카드 서비스도 중단될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서울시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고 항변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열린세상] 평등교육 이념의 ‘오·남용’/남승희 명지전문대학 교수·바른교육권실천행동 공동대표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실린 ‘교육 양극화, 그리고 게임의 법칙’이라는 글을 보면서 60∼70년대 중남미를 휩쓸던 계급투쟁의 교육운동 이론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여당 원내대표의 ‘귀족계급’을 들먹인 실업고 일일교사 강의내용을 접하고는 ‘정치의 계절’에 교육을 정치적 목적으로 무리하게 꿰어맞춘 선전·선동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국정의 책임주체인 정부·여당의 이런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교육 문제가 사회구조와 가정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함으로써 정부는 물론 교사나 교육정책 입안자 등 교육 공급자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기 때문이다. 부모 직업을 바꾸란 말인가, 소득을 줄이란 말인가? 교육 문제의 진단과 대안 마련에는 교육 내적인 요인 못지않게 교육 외적인 요인도 중요하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이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 조성 대신 부모 직업과 가계소득이 교육 양극화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주장은 학부모들에게는 무책임하게 들린다. 사회구조와 가정환경을 탓하기 전에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설정과 환경개선이 더 직접적이고 시급한 문제라고 학부모들은 본다. 학부모들을 계몽의 대상이나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해서도 안된다.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고 무한책임을 갖는 학부모들의 고민은 삶과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이를 담보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주체이기 때문이다. 실업계고 대입특별전형 확대를 추진하는 여당의 발상은 더 놀랍다. 우수한 학생은 대학이 먼저 알아보고 데려간다. 그것이 대학의 생리다. 대학 입학전형을 여당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발상이야말로 구시대적이다. 실업계고의 주요 관심사가 대학진학이라면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 실업고가 대입 특혜의 방편으로 인식되고 활용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청와대의 ‘교육 양극화’ 글에서조차 참여정부에서는 “직업교육으로서 실업계고의 실효성을 높이고자 하며 이를 위해 학력사회 풍토 타파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학제개편을 포함한 중장기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당연히 실업계고의 교육을 내실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일반계고보다 월등히 높은 실업계고의 중도탈락률부터 낮춰야 한다. 오히려 교육 양극화의 원인(遠因)이 평준화정책에 있다는 지적이다. 수준과 특성이 다른 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수업하는 상황에 대비한 교육환경과 교수방법의 변화가 적절히 뒷받침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학생지도의 어려움과 교수(敎授)의 효율성 저하는 공교육 불신에 크게 한 몫 한다. 개인차에 따른 수준별 학습을 거부하는 정서 때문에 상위권 학생은 물론 학습부진 학생들조차 교실에서 소외되는 구조적 문제가 교육 양극화와 무관하다 할 수 있는가? 점점 심화돼가는 지역간·학교간 교육격차의 문제도 평준화체제와 무관치 않다. 평준화제도로 계층적 분리가 학군분리로 이어지고 도시와 농촌 간의 교육기회 분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교육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정부·여당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학교의 책무성을 높이는 국가수준의 질 관리이고 이것은 교실혁신과 수업혁신에서 시작돼야 한다. 지식기반사회와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서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체제 수립이 필요한 때 다수의 힘을 동원해 소수의 능력을 억압하고 제한하며 핵심을 비켜가려 한다면 명백한 과오가 될 것이다. 조지프 애디슨은 시구(詩句)에서 “온갖 논리와 주장으로 사회를 갈라놓는 학자나 논객들을 볼 때 나는 슬픔과 놀라움에 젖는다.”고 한탄했다. 정치의 계절에 범람하고 있는 평등교육 이념의 ‘오·남용’은 개인과 국가의 미래에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거나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책임지겠다는 일은 선전·선동의 전형일 뿐이다. 남승희 명지전문대학 교수·바른교육권실천행동 공동대표
  • 최연희 “법 판단 따를것” 사퇴 거부

    최연희 “법 판단 따를것” 사퇴 거부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20일 성추행 파문과 관련,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의원직 사퇴 압박에 대해서는 “법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말해 사실상 사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최 의원은 지난달 27일 탈당한 뒤 잠적 21일 만에 국회에서 대국민 사과회견을 갖고 이같은 입장을 공식화했다. 최 의원은 ‘사죄합니다.’라는 회견문을 낭독하면서 “지난 주 동아일보 기자분들이 검찰에 고발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에 따른 법의 판단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공복으로 최선을 다해 왔던 저에 대한 최종 판단을 그때까지만이라도 잠시 유보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며 여론에 밀린 의원직 사퇴는 반대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공인으로서 물의를 일으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저를 그토록 아껴주신 지역 주민들께 용서를 빈다.”며 “무엇보다 당사자이신 여기자분께는 아무리 술 자리에서의 과음 상태라 하더라도 저의 큰 과오로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드려 진정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특히 “여기자분께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다면 정중히 다시 사죄하고 음식점 주인 운운으로 본의 아니게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을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법을 바꾸는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 의원을 사퇴시키겠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당으로서는 언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3분만에 세금납부

    ‘세금·과태료 납부 3분이면 끝.’ 서울시는 지방세와 과태료, 상하수도요금 등을 빠르고 간편하게 인터넷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이텍스 시스템’(http:///etax.seoul.go.kr)을 개편했다고 8일 밝혔다. 이에 따라 인터넷을 통해 종전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세금납부와 신고납부, 영수증 확인, 과오납 환급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홈페이지에 접속, 고지서에 적혀 있는 전자납부번호를 입력, 수납기간을 선택한 뒤 은행계좌나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된다. 은행 업무시간으로 국한됐던 납부 시간은 오전 9시∼오후 10시(평일)로 연장하고, 조회는 24시간 가능하다. 또 보안 프로그램을 강화해 안전성도 한층 높였으며, 인터넷이 아닌 금융기관에서 납부한 세금에 대해서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자 영수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시는 이와 함께 그동안 각 구청과 동사무소에 별도 시스템으로 분산돼 있던 과태료, 부담금, 사용료 등 ‘세외수입 징수 시스템’을 내년 2월까지 통합해 세외수입 종합징수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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